2015.12.09 20:46
영생
1980. 4. 19. 토새
본문: 누가복음 10장 25절- 28절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 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내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내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지난주일 오전에 설교한 그 녹음을 여러 곳에서 온 분들에게 들릴까 하다가 들릴까 했는데 시간이 아마 많이 걸릴 것 같아서 그만 뒀습니다.
생명과 영생을 우리가 구별해야 합니다. 생명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결합이 된 이 결합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이요 우리는 거기에 죽어있는 나를 하나님이 살리시매 살아난 생명입니다.
영생은 이미 예수님의 공로로 생명을 받아 가진 자가 이 생명생활을 할 때에 이 생명 생활한 그 움직임이 그 역사가 그 생애가 세상 그 시에 행한 그것으로 운동은 끝나고 그 역사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이 세상에서 역사한 그 역사의 기능과 본질 본성과 그 역사의 종류와 또 거기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하나 빠짐없이 다 무궁한 세계에서 다시 그 생애가 시작되어 영원히 계속되는 그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귀한 일이든지 천한 일이든지 행동하면 그 행동함으로 그에게 습관은 습성은 조금 남아있지마는 한 번 한 그 행동 그 행동 거기에 관련된 전부가 다시 그와 같이 있어서 움직이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단번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영생이 되는 이 행동은 세상에서 한 번 한 거기에 관련된 모든 요소 모든 지식 사상 기능 이용물 그 전부가 무궁세계에서 다시 시작되어 영원히 계속하는 그 종자를 그 원인을 그 터전을 세상에서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은 생명과 달라 생명이 생명 생활하는 기능 작용의 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기독자들이 생명은 꼭 같은 생명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 또 하나도 가지지 못한 사람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생명 생활을 아니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한 시간 생명생활 했으면 생명생활은 그 생명생활은 그것으로 끝나고 무슨 상급이나 칭찬이나 영광이 남아있는 것 아니고 그것도 물론이지마는 한 시간 생명생활 했으면 한 시간 생명 생활한 그 본질도 본성도 기능도 그 종류도 그때에 관련된 모든 것이 영원히 살아서 그 사람의 역사가 됩니다.
그러기에 만물들이 여기에 동참하면 영생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유함에 이르기를 원한다 그렇게 했습니다. 자유하게 한 자유함에 이르기를 원한다는 이 자유는 제가 세상을 이렇게 저렇게 마음대로 한다는 그 자유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하시는데 어떻게 하시든지 자기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그 순종 그 피동 그것이 자기 소원대로 그대로 하는 그 자유를 말합니다.
그런고로 생명과 영생을 우리가 똑똑히 구별해야 합니다. 자기가 일생동안을 생명생활을 했으면 거기에 등용된 세상과 세상의 것들도 많겠고 또 종류도 심히 많겠고 또 기능의 종류도 심히 많겠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이거하고 저거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한꺼번에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한 사람의 하늘나라 움직임이 여러 수천만 명 움직인 것보다도 크게 움직이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은 가졌지마는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아무런 작용 없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 얻었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지어서 다 불타버리고 없어지는 것 그 건설이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쓸 건설은 하나도 없고 그 건설이 다 타버렸다 그 말입니다.
영생은 여기 영생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영생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어떤 그 움직임을 했든지 영생이 되는 그 움직임을 했으면 그 움직임은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자기가 활용할 수 있는 작용할 수 있는 자기 기능이 됐습니다.
또 움직인 그 사건 종류 그 종류도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서 그 종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자 됐습니다. 또 세상에서 움직일 때에 그때에 이용된 모든 만물 이용된 자기 몸 자기 마음 모든 기능 자기 몸밖에 있는 모든 피조물 우리가 하나 하려면 이 세상에서 생명생활 할 때에 햇빛도 이용되고 공기도 이용되고 공간도 이용되고 모든 사회도 국가도 사람도 만물도 이용되는 것 많습니다.
제가 생명생활을 하되 거기에 이용되는 그 이용되는 것이 무엇 무엇이 이용되는지 수를 모를 만치 많습니다.
그런데 나 한 사람이 생명생활 안 했으면 생명생활 안 할 때에 나와 관련된 것은 내 기능도 영원멸망이요 거기에 관련된 만물도 영원멸망이요 사상도 영원 멸망이요 지식도 영원멸망이요 본질과 본성도 영원멸망입니다. 영원한 사망과 영생이라는 요거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생명은 가졌으나 영생은 하나도 가지지 못한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영생이냐? 영생은 어떻게 하는 영생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영생이냐? 영생은 요한복음 17장 3절에는 보면 "영생은 곧 이것이니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오늘 아침에 봉독한 이 누가복음 10장 25절 이하에는 보면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와 같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여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요것이 영생이다" 그렇게 말씀했고 또 요한복음 12장 끝 절 5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명령이 영생이라 아버지의 말씀이 영생이라 내가 한 말은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이 영생이라"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을 다 합하면 하나입니다.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하는 것은 영원 자존자이신 하나님, 대주재시며 주권자시며 영원히 만 왕의 왕이신 이분 이 하나님 이분이 독생자를 보내주신 이것세상을 아옵고 안다 말은 거기는 지식한다는 그 정도에서 그침이 아니고 이 일을 자기가 받아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아옵고" 받아 책임지고 받아 가지고 그러면 이 독생자를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하나님 수많은 자존하신 유일하신 하나님 지금도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요 당신 홀로 주관하시고 당신 홀로 기르시고 하시는 이분 대주재시오 영원히 통치하실 왕이시오 모든 것의 주인이시오 창조주시요 홀로 주권 의지로 예정하시고 주권 능력으로 성취하시는 이분이시라 그 말이요.
이분이 자기를 사랑하셔서 이분이 자기를 사랑하셔서 멸망 가운데에 둘 수가 없어 이분이 피조물 되어 사람되어 와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으로 속건 제물 속죄제물 화목제물 번제물 모든 소유는 소제 전제물 모든 생애는 요제물로 이렇게 당신이 친히 제물 되시고 모든 소유로 다 제물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를 구속하신 이 하나님을 자기가 깨닫고 이 사랑의 은혜를 자기가 받아 감당하는 요것이 영생이라 그 말입니다. 요것이 영생이라 말이요.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고 하니 마치 자기 태에서 난 자녀 그것이 죽을병이 들어 가지고서 꼴막 거리니까 그만 아버지보다 어머니 아버지는 보면은 안 그런 사람들 더러 많아요 그러니까 자녀에게 대해서는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먼저 말하고 어머니 사랑이 커. 그리되면 그 어머니가 가만히 잠 잘 수가 없어 그 조그마한 것이 꼴막 거리니까 가걀가걀 하고 있으니까 어머니가 그까짓 것 그만 들어 내버리면 되지마는 그것이 누워서 물 달라 하면 물주고 업자하면 업고 가고 어짜든지 그만 자신이 어찌된다는 그 피곤이라든지 자신이 희생하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은 생각할 수가 없고 그 아이의 고통이 자기의 고통이 되어버리고 아이의 그 좋아지는 그것이 자기 좋아지는 것보다 나아서 그 아이 위해서 희생을 안 할 수 없고 희생하나 희생하는 것도 모르고 된 것도 모르고 거기에만 전부가 다 기울어지는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의 힘입니다.
그것을 살려놓으면 그만일 것인데 또 그것을 실력 있는 사람으로 행복 있는 사람으로 살리기 위해서 죽을 똥 살 똥 모르고 있는 전부를 다 기울려 가지고서 공부를 학비를 댄다 뭐 어쩐다 하는 그것이 뭐 하나님의 이 사랑이 우리에게 조금 비추어 와서 우리가 비추어 보는데 요 어머니가 그 자녀가 병들었을 때에 그 날뛰는 자녀가 건강했을 때에 그이의 장래의 행복을 위해서 날뛰는 부모의 것은 그 자녀가 무슨 간청을 해 그런 것보다도 그것도 모르는데 순전히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힘을 가지고서 고생도 하고 수고도 하고 또 천한 것도 하고 오만 것 다하는 요와 같은 그 요것이 본체는 아니고 요 본체의 그림자로 된 한 그와 비슷한 그 비유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종류가 비교해 모형이라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은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무엇 때문에 보냈느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인해서 당신이 독생자를 보낸 것은 당신이 친히 피조물 되어서 사람되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되어 오신, 이렇게 천해질 수 없고 이렇게 가난해질 수가 없고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신 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어떠하며 사랑하셔서 본능적으로 어떻게 하게 됐으며 또 어떻게 하셨는가 하신 요 사랑과 사랑의 역사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결과 그것을 제가 받아 가지고 인식도 하고 실감도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되어진 그 사람이 되어지는 그것을 가르쳐서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하는 이것은 그분이 어떤 분인데 독생자를 보내신 이 사랑의 역사를 자기가 깨닫고 요 은혜 요 사랑을 받고 이분을 어떤 분인 것을 자기가 알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에게 대해서 올바른 그 관계를 가지는 요것이 영생인 것을 가르쳐서 홀로 하나이신, 나만 못한 사람이 그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비참을 이것을 어짜든지 구원하기 위해서 해도 그 은혜와 그 사랑이 감격하고 그를 내가 어떻게 사은해야 될지 모를 건데 홀로 하나이신 이분이 이렇게 하니 이것을 깨닫고 이 사랑에 감격한 감격만 아니라 이 사랑이 나에게 만들어 주신 이것을 자기가 받아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받았으니 이 받은 것을 자기가 가질 뿐만 아니라 어떤 분이 어떻게 해 가지고서 이렇게 해 주신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이 사랑과 이 은혜와 이 조성하신 이 구원을 받은 이것을 자기가 가지고 이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이 은혜를 베푸신 이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으로 자기가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면 이것이 영생이라는 말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예수라 말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날 대속 하신 것인데 나를 대속하시고 그리스도 대속 하신 이분이 지금도 계속해서 십자가의 대속을 하실 뿐만 아니라 까 위에 붙은 것은 영원 전 하나님이 이 사랑의 계획을 가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완성하신 것을 말할 때에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십자가에서 완성하시고 완성하신 이것을 모든 각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나누어 줘 가지고서 대속을 입은 이 사람들이 법적으로 대속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 대속 입은 자가 되어지도록 이렇게 하는 그 역사를 가르쳐서 예수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는 이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하나님과 같은 이런 온전자가 되어지고 하나님과 해결이 되어지고 진리와 해결이 되어지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행동은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번제, 다른 모든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 이렇게 해 가지고서 우리를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이 자가 되도록 하셨고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법에서 되도록 하셨고 또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되어서 하나님이 나의 모든 더러운 것을 다 책임져서 이것이 하나도 없이 하시고 그것만 없을 뿐만 아니라 나를 좋게 하시되 하나님처럼 좋게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싶은 이 사랑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신 이 희생을 깨닫고 이로 인해서 나도 예수님이 지금 이 역사를 계속하고 계시는 이 역사 에 동참해서 나도 내 이웃이 불행스러운 그 모든 불행을 내 모든 것을 다 투쟁해서 희생해도 그 불행을 면제하지 않고는 그 이웃을 행복 되게 하되 하나님처럼 그렇게 온전해지고 하나님과의 관련이 맺어져 영원무궁토록 이는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이런 완전한 행복 된 자가 되기를 원하는 요 사랑에서 자기 전부가 다 희생될 수 있는 요 사람이 되어져야 할 줄 알고 요 사람이 되어지려고 애를 써서 요 일에 동참하는 요 동참하는 자가 되어져 동참한 행동 동참된 그것이 영생이라 그 말입니다.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뭐 많이 해야 책을 기록할라 하면 몇 권이 되어야 될지 모르는 그런 것을 이렇게 간단하게 하니까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니까 마음쓰면 알게 됩니다. 요것이 영생이라.
홀로 하나이신 참 알고 영생은 곧 이것이고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자 이것은 홀로 하나이신 이분이 예수님을 보내신 그 사람 그 사람을 내가 깨닫고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한 그것을 내가 깨닫고 그 희생으로 나에게 조성된 내 구원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요것을 받아 가지고 알고 하는 것은 책임진다 하는 말 더 중요합니다.
가지고 요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이 사랑의 역사가 그리스도 제사장 선지자 왕 이 제물 된, 제물 되어서 이 제물은 예수님이 당신이 친히 제물 되어 가지고서 제사 드리신 이 제사는 누가 시켜 그런 것 아닙니다. 누가 시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서 그렇게 왔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우리 택한 자를 사랑함으로 그 사랑의 발동이 사랑이 못 견뎌서 이 사랑이 못 견뎌서 사랑의 발작이 발동이 이렇게 제물 되신 것입니다.
제물 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처럼 완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해서 흠점이 없는 이런 완전자를 만들기 위한 그 희생제물이 그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책임지고 일하는 것이 영생이니이다 요렇게 여기에서 말씀했고 누가복음에는 그러면 이 사랑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요 사랑을 깨달아 요 사랑에 마음이 다 감격되어 버렸고 또 목숨이 생명이 다 그만 이 사랑의 것이 되어버렸고 마음도 이 사랑의 것이 되어버렸고 생명도 이 사랑의 것이 되어버리고 힘도 이 사랑의 것이 되어버렸고 자기의 기능이나 소원이나 모든 뜻도 이 사랑의 것이 다 되어 버려서 이 사랑의 것이 다 되어버렸고 이 사랑으로만 움직이지 그 외에 딴 거 움직인 게 하나도 없다는 요것을 가르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 사랑하는 것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이웃 사랑하는 마음 빼버리고 나니까 그 마음이 하나도 남은 게 없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그 마음뿐이고 그 목숨이라 하는 그 생명 그 사는 것이 살고있는 것이 자기 목숨을 여기 다 투자할 뿐 아니라 지금 살고있는 그 생명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그 생명 외에 딴 것이 없고 힘도 그 외에 딴 것이 없고 소원이나 경영도 그거 외에 딴 것이 없는 요 본질과 본성으로 요것이 작용하는 요 본질과 본성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순전히 요것만으로 된 요것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그 작용을 한 그것이 영생이라, 알아듣겠습니까? 요 각도를 모르면 소용없습니다.
어짜든지 모두 보니까 엉뚱이 설교들을 많이 하는데 어제 써낸 사람 가운데에 그런 말이 있어 설교를 하는 것을 암만 배우는 것이지마는 그 배우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지마는 설교하는 그것을 그만 대중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것이 안 했으면 좋겠고 또 그것을 설교하는 가운데에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아마도 그 잘못인 줄 알고 그걸 똑 정죄 해서 잘못인 줄 알고 요렇게 해서 우리 교회에서 써 붙여 놨는데 써 놨는데 그걸 여러분이 내가 다 읽어 줄 겁니다.
그러면 내가 거기에 대해서 그것을 안 할 줄 알아도 그것이 옳고 바르고 참된 것이기 때문에 요것은 마귀가 싫어하는 것이니까 요것은 죽는 날까지 꼭 계속해서 해야 된다 그것을 내가 단정을 지우고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잘못한 것을 백 명이 들었는데 백 명들은 그것을 백 명이 있을 때에 그것을 고쳐 말하면 잘못 가르친 그 사람 심판 받을 것이 없습니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잘못한 그 사람의 하나님의 심판 받을 게 없소 백 명이 들은 그 사람들 있는데 그 틀렸다 잘못 됐다 했으니까 죽기 전에 그 사람들이 고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고 그런 그것을 알려 줬다 말이요.
그러니까 그 잘못 가르침으로 어찌 됐다는 그런 잘못 가르친 사람의 심판 책임이 없고 또 그 사람들이 그래 가지고 하나님 심판 앞에 갔으면 큰 낭패 될 터인데 가기 전에 그걸 알고 깨달으니까 그 사람의 구원 잘 됐지 증거한 사람에게 대해서 얼마나 사랑이며 들은 사람에게 대해서 얼마나 사랑인가 이것을 심판을 무시하기 때문에 그렇지 심판을 안다면 이걸 깨닫게 됩니다.
또 그것을 설교할 때에 하는 것은 그 벌써 많은 분위기를 만들어 가지고 그만한 말을 한 마다 하려고 할 때에는 거기에 아, 백 미터 되는 산도 백 미터 되는 산이 높은 산이 아니라 낮은 산 아니요 양쪽을 다 깎아서 아주 싹 깎아서 기둥 한 개 만치 되어놨으면 백 미터 기둥이라 하면 얼마나 높습니까? 이랬지마는 옆에 벙벙하게 이래놨기 때문에 높은 줄도 모르게 여기 옆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이렇게 말 한 마디를 진리를 가르칠라 하면은 옆에 그게 부수된 이것을 많이 말해 가지고서 오만 말을 다해 가지고서 그 말을 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그 (격이)를 만들고 그 순서를 만들고 거기에까지 마음을 이끌고 와 가지고서 그렇게 딱 하는 것인데 거기 따라 오지 안한 사람은 그 말 암만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옆에 부수된 말을 많이 한다 말이요. 요렇게 와서 그때 왔으니까 요기에서 그것 잘못된 것을 요 기회에 말을 하면 그게 틀렸다는 것을 본인도 알 거고 많은 배우는 사람이 그걸 알 것이기 때문에 그 기회 중에 기회로 그 기회를 만드는 데에 그게 얼마나 힘이 들었고 해서 가장 적절한 백 프로 효력 나겠다 싶은 그런 그 기회를 만들고 모든 배경을 만들고 그 형편을 만들어 가지고 그걸 말하는 것인데 그렇게 힘들여 말하는 것인데 그걸 그때 말하지 말라고 하는 그거는 순전히 인본주의요 이 세상만 생각하고 고깃덩어리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판없이 인간 여론만 생각하고 하나님과의 관련된 그걸 생각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하는 사람은 설교 듣는 것이 귀가 없는 사람이라 그 말이요.
심판도 모르는 사람이요 여기서 영원한 수치를 그 영광으로 바꿀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런 그 말을 그것을 나와야 될 수 있는 그런 기회에 그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는 알아듣기 쉽소. 알아듣기 쉽기 때문에 그게 틀렸다는 말을 다를 때는 하면 모르는데 그때는 말하니까 틀린 줄 알았다 말이요 저도 들었다 말이요 틀린 줄 들으니까 틀린 것을 본인에게나 말하고 은밀히 말하지 뭐 대중 있는데 말할 게 뭐 있겠느냐 저도 틀린 줄 그때 말하니까 알지 다른 때 말하면은 그 틀린 줄 모른다 그거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에 감격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요 자기의 가진 것이 마음, 마음은 그것 마음의 움직임이 요것뿐이 고것이 영생에 들어갑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요것뿐이 아니라 딴 게 섞여있는 것은 아직 영생이 안됐소.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을 이루려고 자꾸 이래 애를 쓰는데 일생동안 생활해 봤자 영생이 하나도 이루지 안한 사람 있다 그 말이요. 그 영생을 이룬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든다는 이걸 알아야 되지 그저 이렇게 아무나따나 하는데 이게 영생되는 줄 여기지 말라 그 말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러면 하나님이 날 어떻게 사랑했는데 내가 하나님의 원수 되어 있고 비참하고 가련하게 되어있는 이것을, 이것을 모두 비참하고 가련한 것을 면제해 줄뿐만 아니라 하나님 당신처럼 온전한 자가 되어지도록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요 사랑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되어 왔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 사랑, 이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신 이 사랑을 내가 깨달을 뿐이 아니라 이 사랑으로 나에게 만들어 준 이것을 내가 이 어떤 것을 가지고 만들었는데 어떤 자본을 들여 만들었는데 요것을 자기가 잘 간직해서 요 사람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이가 사랑에 감격해서, 이러니까 내가 당신을 어떻게 기쁘게 하며 어떻게 안심을 시키며 당신이 원하시는 일 내가 어떻게 해야 될 건가 하나님이 날 사랑함같이 나도 당신을 사랑하는, 이러니까 내게 있는 것이 당신이 다 드렸으니까 다 드려 날 사랑한 그걸 깨닫고 보니까 내게 있는 것을 다해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당신이 날 사랑하셨는데 이분이 원하는 것이 내 원수를 당신이 원수 되어 나를 사랑함같이 나도 내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이것을 사랑하되 하나님이 나 사랑한 것처럼 내가 그 원수를 사랑하여 하나님 나 위해서 희생한 것처럼 나도 그걸 위해서 희생하는 이것을 당신이 원하고 이것 외에는 당신을 기쁘시게 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여기에 내게 있는 요소는 마음이나 목숨이나 힘이나 내 모든 그 경영의 뜻이라 하는 경영의 움직임을 말하는데 이 모든 것이 그것뿐이지 그 외에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고 그것 뿐으로 되어있는 그것 뿐으로 되어있는 요것이 보냈음이니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그것 뿐이요.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내가 깨달아서 감격하고 그 사랑이 만들어 놓은 그것 이것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 원하시는 뜻으로 나도 원수를 위하여 사랑하는 요 요소만 내게 되어있어 가지고 요거 영생이 아니라 말이요 요것만되어 있어 가지고 있어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예수 된 예수 되어서 십자가의 대속의 제물이 된 요대로 나도 형제를 이웃의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제물 되어 제물 되어진 요것, 요것이 영생이라. 요것 많은 시간에 말해야 되지 짧은 시간에 말하니까 요거 잘 안 되는데 요것이 영생이라 말이요.
그러면 내게 있는 것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그 뭐 뿌럭지를 다 말 못 하겠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아니까 하나님이 날 어떻게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내가 알았고 그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가 만들어진 것을 내가 가졌고 그 사랑이 내가 되어져 가지고 또 하나님이 날 사랑한 것처럼 내가 이웃 사랑하여 하나님이 뭐 때문에 하나님을 소원하고 이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분의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나도 다 드릴 마음이 있다 말이요.
이래 가지고서 다 드려서 이웃을 사랑하여 주님이 날 사랑함으로 어떻게 함같이 나도 이웃을 사랑함으로 어떻게 하는 요 마음 목숨 힘 뜻 다 요래가지고 예수님 되심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속에 제물 되심같이 나도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요 제물 된 요 제물 된 예수님의 제물 된 것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제물 됐습니다. 요 제물 된 요 제물 된 요 원인을 가지고 요 제물 된 요것이 영생이다.
사람의 방언 천사의 방언 모든 비밀을 다 나타낼 수 있는 그 산지의 권위, 산을 옮길 만한 믿음, 자기 전체를 다 불살라 희생의 제물로 줘도 사랑이 없으면 상대방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고 내게도 자기 본인에게도 소용없다. 다 아무 유익이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것이 다 한말입니다.
요러기에 우리는 자기가 하나님 사랑, 하나님이 사랑하되 하나님이 날 뭐 때문에 어떻게 사랑했으며 이 사랑을 받아 나도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라, 해야 되는 요 사랑의 본질 본성으로 행동된 것이 예수님이 제물 된 것과 같은 그 사랑의 목적에서 그것을 원해서 그것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희생된 요 희생된 데 희생이 되되 그것이 어떻게 돼야 되느냐 하면은 그 희생된 그 법칙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 영생, 영생인줄 안다. 그 법칙대로 그대로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삼각입니다. 삼각 다해야 되고 또 하나님이 나에게 하심같이 나도 하나님과 이웃에게 하는 요것 있어야 되고 하되 아버지의 말씀이라야 영생이다.
아버지의 말씀 그 이치대로 그 법칙대로 돼야 된다. 요것이 영생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자기가 평생에 성자그릇 했고 개혁가 노릇했고 부흥사 노릇했고 목사 노릇했고 아주 모든 사람에게 명망 있는 생활을 했다 할지라도 그에게 영생은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쳐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라.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사하니까 다 타버리고 말았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 한가지. 내 마음 내 목숨 힘 뜻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을 사랑함으로 인하여서 내 자체가 그 이웃이 행복 되어지고 그것이 화를 면해져야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그 일을 위해서 자기가 희생된양 희생된 양 희생된 양인데 희생된 요것도 하나님의 말씀인 그 진리대로 그대로 또 희생이 되어야지 그거 아니면 안 된다 그 말이요.
요 삼각이 맞은 것이 아니면 영생이 아닙니다. 영생은 이렇게 어렵습니다.
영생은 이렇게 어렵소. 우리가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은 우리가 받았지마는 영생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어렵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 영생이 그 속에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영생이 없다고 말씀했소. 이러기 때문에 요 말씀을 가서 연구해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요것으로 살아야 됩니다. 사랑의 동기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이웃을 완전케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그 욕망 그 욕심 그게 사랑의 욕심입니다.
이라고 보니까 자기는 예수님이 제물 되심같이 자기의 전부는 제물 되어지는 그 행사 요것이 사랑으로 인해서 그 소망을 가졌고 사랑으로 그 소망 가져 그 소망 달성하려고 하니까 자신이 필연적으로 제물 되지 아니할 수 없는 요 제물 된 요 양이 영생입니다. 이것은 영원히 살아 역사 합니다. 무궁한 세계 요런 것만 촐촐 추려 가지고서 이것들이 살고 있으니까 거기는 사망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망이 없소. 그것은 불평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심판해서 다 제거 되어버리고 그 나라에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요것을 깨닫고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내게 뭐 손해를 보여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간다 할지라도 우리가 미움은 용납 못합니다. 자기 목숨을 빼앗아 간다 할지라도 미움은 용납 못하고 또 우리가 어떤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요 사랑에 희생할 기회는 놓칠 수 없는 것입니다. 요것이 영생입니다.
통성으로 기도 하니까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