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09:54
엘리야의 심정-기도
1984. 2. 9. 목새
본문: 야고보서 5장 17절∼18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갚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획 하나도 에누리가 없이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보증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호리도 거짓되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진실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이거 타락한 후에 마음이 부패해져서 무엇이든지 진실성 없는 그런 에누리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된다고 하신 것은 다 되는데 우리가 거기에 모지라는 것이 있어서 안 되지 하나님이 된다고 약속을 선포해 놓으신 그 일에 하나님이 추호라도 에누리 하셔 가지고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그것은 안 된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그래도 하면 된다 하는 것은 하면 안 되는데 우리가 욕심에 못 이기고 감정에 못이겨 가지고서 성경이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또 하면 그것이 됩니다. 이러니까 여기에서 착각이 생겨져 가지고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라도 우리가 힘써 하면 그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하나님 없어도 무엇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는 그런 오판, 잘못 판단하는 오판을 가진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에게도 노여움이 되고 또 우리 사람들에게도 영이나 육이나 모두 다 해가 되지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 말아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또 하라는 것은 하나님에게도 기쁨이 되고 우리 사람에게도 영과 육의 금생과 내세에 유익하고 자기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사람도 유익하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심지어 내가 그대로 하면 내 원수에게까지도 유익이 되어서 나는 그 한 것을 모르고 했지마는 뒤에 가서 광명의 밝은 세계가 나타날 때에 그것들이 이리 이리 당신이 날 위해서 유익되게 해 주셨다 그 감사를 받을 수 있는, 그러기 때문에 이 구원을 가리켜서 영광의 구원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광의 구원이라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대로 그대로 한 그것은 현재에 사람들이 어두워서 자기에게 대적이 되고 마찰이 된다고 불만 불평을 품고 있지마는 뒤에 결과적으로 모든 걸 보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한 그 일은 그대로만 하면 모든 사람이 뒤에 알고 보면 감사하고 칭찬하고 참 그저 사례를 할 수 있는 그런 전부이 지도다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그것을 해서 일시에 된 그것은 가만히 살펴보면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의 그 사욕, 하나님도 이웃도 생각지 안하고 제 욕심대로 해서 제 욕심이 달성된 것이기 때문에 욕심 그놈이 들어서 되어졌으니까 좋다 이렇게 만족을 했지 그 결과를 보면 그것이 세월이 갈수록 일 년 가면. 그것이 더 해독이 됐다는 것이 나타나고 또 십 년 가면 더 그것이 해가 되었다는 것이 나타나고 이래서 그 뭐 하지 말라는 것 한 것이 그 해도 참 삼사 대까지 간다고 했지마는서도 얼마나 그 해독의 영향이 가는지 모르는 것을 우리가 가만히 마음이 밝을 때에 생각해 보면 그 해독이 무지무지 길게 영향이 있고, 또 하나님의 하라 하시는 대로 이렇게 한 것은 그것은 우리가 다 보지 못하나 차차 그 이치를 따져서 이래 볼 때에 그 유익이라 하는 것이 뭐 천 대만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가고, 옆으로는 자기 가까운 사람에게만 그 혜택이 가는 게 아니고 원수에게까지 전부에게 미쳐서 과연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지옥에 있는 것들도 다 감사하고 다 주라고 시인했다 할 만치 그렇게 되는 것인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에누리를 가지지 안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분은 정확 무오하십니다. 천지는 변해도 그분은 우리에게 대해서 털끝만치도 변하지 않습니다. 또 그럴 뿐 만 아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이 선포는 당신이 그 완전한 길을 우리에게 말했고 우리를 완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 하신 말씀이고 또 빛이 되신 그 하늘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인데 그 말씀 자체에게 털끝만치라도 에누리가 있다든지 부정이 있다고 하면은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하나님이 온전하시니 그분이 추호라도 허탄한 말씀을 하시지 아니 하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이 경영하고 계획하신 그 일이 다 완전 완전, 깨끗 깨끗, 거룩 거룩 이 전부가 이 뭉텅이의 참 하늘나라요 이것만으로 다 되어 있는 그 하늘나라인데 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인데 이 말씀이 에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털끝만치도 그 에누리가 없는 정확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니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이 말씀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에누리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조그만치라도 뭐 불린 거나 과장한 것도 없고 과소한 것도 없고 꼭 그대로 당신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당신이 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어디다가 사용하느냐? 하늘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거룩한 나라. 완전한 나라, 흠이 없는 나라.
빛의 나라 그 슬기로운 마귀가 아무리 송사할라고 해도 털끝만치도 송사할 그런 티를 뜯을래야 티를 뜯을 것이 없고 마지막에는 주라 시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서 과연 옳습니다. 바릅니다. 깨끗합니다. 하면서 이렇게 찬성하는 이런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이런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이기 때문에 그 목적이 이렇게 다 완전하니 그 목적을 이루려는 그 법칙이 우리에게 허탄한 그런 분자가 그런 요소가 털끝만치라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 무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게 추호도 에누리가 없다, 없는 것은 말씀하신 그분이 그러하신 분이요, 또 이 말씀을 무엇 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하느냐? 그 목적이 그러한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에누리 하면 안 됩니다. 그저 순서도 그 순서대로 모두 다 이 성경 말씀대로 안 되는 것은 우리에게 그 맞지 안하는 것이 있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할라고 하셔도 우리가 아직까지 그것이 미비돼 가지고서 우리에게 틀린게 있어서 하나님이 그렇게 노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틀렸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도 같이 따라서 위약자가 되기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틀려서 그 일이 안 이루어지는 이것을 우리가 알고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안 됐으면 안 되는 그 이유가 상대방 하나님만이 지키면 되는게 아니라 우리도 다 계약이라 하는 거는 쌍방 계약이지 일방적인 계약은 없는 것입니다. 세상 법에서도 계약을 쓸 때에 어떤 사람은 지혜가 있고 어떤 사람은 지혜가 없고 이래서 지혜 있는 사람이 지혜 없는 사람을 해롭게 하고 자기가 유익되도록 해서 이렇게 공평이 없는 그런 계약을 썼다고 하면 그 계약을 말하기를 일방적 계약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계약에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이것은 네가 공평이 없이 너만 유익하고 상대방은 해 되도록 그렇게 계약한 계약이기 때문에 이거는 공정성이 없으니 이 계약은 인정을 못한다 해서 판사가 판단할 때에는 그렇게 공정성이 없는 계약이니 이거는 무효라 이렇게 판단합니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그것이 올바른 법인데 요새 법은 또 판사들이 변질되어서 요새 판사들은 뭐 옳은 사람도 있지마는 삐뚤어진 사람 있기 때문에 암만 일방적인 그런 공평이 없는 쌍방이 계약했으면 쌍방 다 공평돼서 쌍방이 다 지킬 그 책임이 꼭 같고 의무도 같고 또 나중에 손해가면 배상하는 그런 것도 같고 이래야 되지 한쪽은 유리하고 한쪽은 해롭게 이렇게 일방적인 계약이 되어 가지고 있으면 이 계약은 일방적인 계약이기 때문에 아무리 계약에는 돼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이것은 다 이 공평이 없는 무효의 계약이다 하고서 물리쳐야 되는데 요새 판사들은 보면 아무리 뭐 틀린 계약이라도 '계약이 돼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그 계약이라 하는 것이 생명이 공평이지 공평이 없으면 그 생명이 없는 계약이라는 것을 인정을 못 해요.
이러니까 법을 공부해도 법철학 법 근원인 법철학을 그들이 모르고 이래 껍데기만 가지고 하기 때문에 삐뚤어진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가등기라는 그 가등기 때문에 제가 지방 법원에 법원에다가 전화한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느냐 이런 판단이 되느냐 이러면 이건 법이 아니지 않느냐?' 이러니까 그것 때문에 좀 물어 보라고 알아보라 이랬는데 '과연 그 가등기는 지금 그렇게 되어 가지고 있는데 그 가등기 법이 너무 불공평하게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은 법이라 해 놨지마는서도 그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이라지마는 그 법은 고쳐야 된다는 그것을 지금 다 법인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랬는데 오랜 후에 저 신문에 한번 보니까 가등기 법은 이것은 잘못됐기 때문에 그 가등기 법이 아주 잘못된 것이 약간 수정이 됐습니다. 다시 그 개헌이나 개법이나 하는 그런 국회가 모이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러나 너무 틀렸기 때문에 그걸 약간 좀 수정한 일이 있습디다.
구약 성경에 보면 법을 많이 말했고 또 구약도, 신약은 다 법입니다. 법이라면 다 법입니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말씀은 다 법이라면 법이고 계약이라면 계약이고 공평이라면 공평이고 정의라면 정의고 정확무오라면 정확무오합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걸어가야 되느냐 하는 생애 법칙으로 우리의 그 살아갈 걸어갈 노정으로 우리가 모든 것을 비판하는 그 저울로, 이 목수들이 먹줄 가지고 놓으면 쪽 곧게 놓는 것처럼 먹줄로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데 이 말씀을 우리가 에누리하면 우리가 에누리한다고, 하나님이 거기에 응해 주시지도 안 할 것이고 우리가 또 에누리한다고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의 이 입법이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이리 저리 주관대로 그렇게 해석을 하고 생각한다고 따라올 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우리가 에누리하는 것은 우리만 스스로 속아서 자기가 자기를 해치는 것이지 아무런 그 일이 실행은 안 됩니다.
왜 이 말을 하는 고 하니 여기에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그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와 꼭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해서 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안했고 또 기도하니까 비가 왔는가? 그 이유가 어데 있는가 하는 그것을 우리가 여기에 서 생각하고 에누리하지 말자 하는 것을 위에 지금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어떻게 그 기도했기 때문에 기도 한 그 엘리야의 기도 한 그 기도 하나님이 참 기뻐 들어 주시고 또 그 기도로 인해서 원수의 수 백 명의 사백 오십 명의 그 선지가 당장에 죽임을 받는 그런 결과를 맺었고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냈고 또 모든 백성들이 다 인정을 할 만침 삼 년 육 개월 비오지 안 하다가 기도하니까 비가 와서 모든 사람들이 뭐 과연이라고 그렇게 할 수 있었고, 또 제물을 불로 태웠고 이게 다 하나님이 엘리야의 기도를 응답을 하신 것인데 어떻게 해서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을 하셨을까?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째 그 응답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고 그렇게 우리의 기도에 대해서 에누리가 있는가? 이것은 분명히 고장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위약하는 하나님에게 고장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했던가 그 심정을 한번 우리가 살펴 볼 때에 그 이세벨로 인해서 그 아합왕이 왕이 하나 잘못되면 백성이 다 전부 잘못하는 것인데 왕이 잘못되면 그 백성의 그 모든 게 다 잘못으로 돌아갑니다. 지금도 그 정권자가 삐뚤어지게 하면은 온갖 삐뚤어지면 사람들이 말하지마는서도 말해도 그 정권의 권력이 없어지기 전에는 그대로 삐뚤어진 대로 나가고 맙니다.
그러니까 뭐 데모가 하면, 곳곳마다 데모가 일어 날 때에 거기에서 죽이는 것도 있고 여러가지 몰사 시키는 것도 있고 별 별 참사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물론 그 데모가 바로 하는 것을 삐뚤어진 단체가 바로 하는 것을 해치기 위한 데모도 있겠고 또 잘못하는 것을 잘못한다고 그렇게 옳은 그 생각과 일로써 데모하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권자의 가는 대로 그 밑에 있는 모든 백성은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아합왕이 그 외모의 용모 아름다운 꼭 여우 새끼 같은 그 이세벨을 자기 아내로 삼아 가지고서 그 이세벨이 감언이설로 아주 농락하고 아주 아부하고 그 간교하게 하는데 그만 넘어 가 가지고 하나씩 둘씩 자꾸 이 이방신 하나님의 도에 삐뚤어진 것 하나님의 법칙에 삐뚤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할 수 없는 그런 것을 자꾸 하나씩 둘씩 자꾸 영을 내려서 하게 될 때에 그걸 보고서 일반 그 백성들이나 선지자들은 무심히 봤고 뭐 그렇거나 저렇거나 우선 내 당장 밥 먹고 옷 입는 데에 피해가 없으면 그저 안심하고 이래 가지고 있었고, 그 엘리야는 그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그때부터 자꾸 이래 말하니까 그 아합왕이 엘리야를 만내가지고서 항상 나를 괴롭게 하는 이놈이라 그렇게 말을 했고 또 전쟁할 때에도 항상 엘리야는 그만 아합왕을 괴롭게 하고 아합왕을 항상 좋게 말하지 안 하고 자꾸 이렇게 갉아서 삐져서 이렇게만 말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딱 찍혀 버렸습니다.
왜? 그가 그 이스라엘 왕 아합이 잘못하면 하나님이 노여워하시고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첫째는 은혜가 거두워지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화가 오기 때문에 그 엘리야가 거기에 대해서 마음 아피 자꾸 이렇게 말하니까 대립이 됐고 마지막에는 그 세도가 강해 가지고 차차 차차 이방 그 바알 신화 이렇게 되어지는 이 일이 차차 차차 짙어져 가니까 엘리야는 더 거기에 대해서 마음이 더 아프게 되었고 또 거기에 대해서 아무리 매를 맞고 대적을 해도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는 말을 더 하게됐고 더 고통이 됐고 더 근심이 됐고 더 말하게 됐고 하나님은 더 섭섭해 그러시니 하나님이 섭섭한 데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미안하고 죄송하고 두렵고 하는 이 마음이 자꾸 채이고 채여서 마지막에는 그가 말할 때에 '하나님이여' 로뎀나무 밑에서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게 뭐입니까? 내가 뭐 별 사람입니까? 이런데 지금 다 죽였고 이제는 나만 남았습니다. 이러니까 이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만 남았습니다. 그들이 그저 그래도 그만 다른 사람 죽으면 죽는 걸 봐도 예사로 예사로 여기 그 이래 가지고서 벌써 바알 세계가 다 됐고 나 하나만 지금 똘똘 몰려서 죽일라고 찾아다니고 있고. 이런 중에 있으니 내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면서 그 생명을 불러 달라고 하는 것은 그 생명을 불러 달라고 죽기를 원하는 그것이 뭣 때문에 죽기를 원했느냐? 죽기를 원할만치 그렇게 고민되어진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스라엘 이 그렇게 멸망 받는데 대한 고민이요 이스라엘이 그렇게 그 원수의 멸망이 자꾸 가까와 오지마는서도 짙어 오지마는서도 거기에 대해서 무심히 생각하다가 이 선지자 하나 죽고 저 선지 하나 죽고 자꾸 차차 차차 죽임을 받아도 멸망을 받아도 멸망받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대해서 안타까운 것, 멸망을 지금 받는 거기에 대해서 안타까운 것, 멸망해도 멸망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거기에 대해서 안타까운 것, 멸망받는 이를 볼 때에 안타까운 것. 멸망시킬 만침 하나님의 진노의 지금 그 진노가 자꾸 쌓여져 가는 거기에 대해서 안타까운 것 이것을 인해서 자기 생명도 애끼지 안하고 이렇게 자꾸 이래 혼자 자꾸 막아서 대적해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나만 남았나이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없으니' 하는 그 자기의 생명을 이제는 하나님에게 하나님이-자살할 수는 없고-하나님이 불러서 그만 세상을 이 일을 두고 떠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그 심정으로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가도하니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비가 내리지 않게 했습니다.
그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것은 첫째 하나님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사신을 갖다 세우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고 하는 그 일에 대해서 심히 마음이 아팠고 또 그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되면 저희들이 멸망 받는 건데 멸망 받는 것을 예사로 여기고 멸망 받는 줄 모르고 있으니 그게 안타까왔고, 또 멸망받으면 받는 사람만 받았지 옆에 사람이 그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꾸 이스라엘이 패역해 나가고 부패해 나가고 강퍅해 나가고 자꾸 이렇게 안일주의만 취해 가지고서 이렇게 나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타락에 대한 마음에 견디지 못하는 그 마음,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니 견디지 못하는 그 마음 하나님의 진노가 곧 지금이라도 와 가지고서 이스라엘을 망치겠다 하는 이것을 볼 때에 그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 이 마음을 가지고서 발버둥 치면서 하나님에게 기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신 것을 우려가 이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비오지 않게 하다가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늘 그래 미뤄 가지고 나오니까 엘리야는 낙심할 만치 비는 안 오지마는서도 안 오지마는서도 마음에 안 되니까 이제 비가 안 오고 삼 년 육 개월 거의 되어갈 때에는 자기가 그만 죽기를 각오했다 말이요. 각오하고 또 자기가 사렙다 과부의 집에 가 가지고 자기는 그저 그냥 현실을 유지하고 이렇게 숨어서 은둔 생활하고 있지마는서도 이 이스라엘 백성이 자꾸 멸망되고 이렇게 되어도 회개치 않는데 볼 때에 마음에 안타까와서 견디지 못하는 그 엘리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애끼는 그 마음과 이스라엘이 타락한 데에 대해서 아파하는 그 마음과 이스라엘이 멸망받을 그게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과 그 원수를 하나님 앞에 멸해 달라는 그 마음 이 마음의 이 힘, 마음의 힘, 이 깨달음의 힘, 이 마음의 간절의 힘 그 아픔의 힘, 그 마음의 힘이 힘이 우리와 같은 성정이지마는서도 그 힘이 그것이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오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이 없느냐? 우리가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 자기가 어떤 비참한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가 죽을라고 하는 그 순간에 우리 마음이 아픈 마음이 자기 사랑하는 자녀가 지금 죽을라고 꼴막 거릴 때에 살려 돌라고서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그 마음, 우리도 그럴 때에는 그런 성정이 있다 말이오. 할 수 있는 성정이 무슨 엘리야는 독특한 성정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같은 그 마음이지마는서도 우리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방신이 오는 이 죄악에 대해서 민족이 범죄에 대해서 민족의 마음 방탕에 대해서 앞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멸망이 오는데 대해서 내가 사랑하는 친 자녀가 지금 죽는 그 경우에 닥쳤을 때에 우리의 심정이 모두 쏟아 가지고서 기울어져서 이거 간절한 거와같은 그런 심정으로 이것 이래 했으면 우리도 다 듣는 것인데 우리 기도도 듣는 것인데 그 엘리야는 그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들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나 또 하나님의 진노나 그 인간이 범죄하는 것이나 멸망이나 거기에 대해서 우리 마음이 도무지 거기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기울일 만한 마음이 없는게 아니고 그 뜨거운 마음을 기울일 수 있는 뜨거운 마음이 없는게 아니고 있는데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아무 무감정하게 아무 그 무감각하게 있는 거기에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안하니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강퍅한 연고요 거기에 대해서 관심이 없이 자기가 깊이 생각하고 느껴 보지 안하는 데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그 때에 그런 거와같이 뭐 지금 남한에도 자꾸 여기에 빨갱이 있다 거기에 빨갱이 있다. 여기 지금 학생들 뭐 데모하는데 이 데모하는데 그 데모하는 요새 데모하는 그 데모 가운데 보면 그 데모는 물론 거기에서 조금 뭐 잘못된 이런 것도 있다. 그때 그 은행에 뭐 그런 부도 사건 그런 것도 있지마는 그것은 그 뭐 그 본인 정권자들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고 저거가 공연히 알아 가지고 그래 할라 하니까 참, 공연히 그 은행 직원들이 알아 해 가지고서 그래 했지 그 사람들이 정권자들이 해라 하는 소리 안 했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에게 속한 자들이 그렇게 그걸 이용을 해 가지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래 하고 하니 그래 됐지 그런 거 아닌데 뭐 그런 것 가지고서 데모할 것이 없고 그런 것 다 수정하면 되는 것이지 그 본인의 과오가 아니라 그 말이오.
이런데 지금 데모하는 이것은 대개는 보면 그 속에 빨갱이입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모르면 안 됩니다. 그게 전부 이북 운동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이렇게 뭐 이 지하의 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예배당에 또 몇 십 명이 있는지 모릅니다. 다 모두 재벌가들도 양쪽 다리를 디디고 있습니다.
아, 공산주의자들이 지하운동하는 자들이 벌써 그 적색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말을 잘 못합니다. 이렇게 모두 이래 가지고서 껍데기는 안 그런 척 해도 속으로 저 사람은 지금 좌익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에게 모 박혔다가는 뒤에 가서 만일 적색이 되면 큰일 난다. 모 박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거기에 서 무슨 지하 자금을 달라 하면은 그저 모른 체 하고 슬며시, 이거 지하 자금이라 하고서 돌라 하면은 뒤에 또 모면할 길이 없으니 모르지마는서도 내가 지금 이렇게 이리저리 사업할라 하는 거야 돈을 좀 빌려 주시요 이라면은 저 사람이 돈 빌려 돌라는 건 사업할라 하는 거 아니라 그 지하 적색 운동할라고 하는 것인데 내가 이거 안 빌려 주면 저 사람과 나와 대립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적색화 적화될 때에는 내가 탈이다. 이러니까 자꾸 돈있는 사람은 자꾸 주니까 그사람 돈이 자꾸 많다 말이오. 지하 운동하는 사람들이 자꾸 돈을 그래 주니까 이렇게 자꾸 자본이 돌아가 가지고서 이래 운동비가 활발하게 지금 하고 있다 말이오.
이렇게 지금 되는 그것이 바알 신이 오는 것보다도 못지않습니다. 바알 신은 그래도 이거는 하나님이라는 신이지마는 우리는 바알신이 우리 신이 참 신이라 이렇게 신과 신을 비교해서 말한 것 같지마는서도 그것보다도 뭐 몇 배로 말할 것 없이 이북에서 신이 없다 합니다. 신이 없다. 이러니까 이 신보다 이 신이 낫다 신과 신을 구분하는 그래도 그거는 종교성이 있지마는서도 여기에 는 아야 종교라 하는 것은 박멸을 하고서 신이 없다 하는 그 세력이니까 그보다 더 짙은 것이 우리 옆에 와 가지고 지금 자꾸 이래 밀고 들어오고 있다 말이오. 밀고 들어오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심하고 자고 있으면서, 뭐 요새는 국방이라는 말이 기도가 얼마 동안 또 우리가 또 좀 힘을 쓸 때에는 또 그게 뭐 말이 나오더니마는서도 또 요 말 안 하고 또 지금 우리가 지금 이거 그게 대해서 기도를 시작했으니까 얼마 후에는 또 그들에게 우리도 기도해야 되겠다하는 이 말이 또 생겨질 것입니다.
이러니까, 일파동 만파동이라고. 한 물결이 움직이면 일만 물결이 움직인다고서 이거 모두 다 전 민족이 부패해져 타락해 나가는 것이 다 내가 타락하니까 타락해 나간다. 내가 다 이와 같이 지금 무심해 나가니까 무심해 나간다 하는 그것을 자기로서 중점을 두고 거기다가 두고서 우리가 이것을, 엘리야의 심정을 우리가 가져야 할 것입니다.
가져서 밀고 오면 어찌 됩니까? - 지난 밤에도 말했지마는서도 이북에는 벌써 일본쪽으로 있는 그 강에는 바다에는 바다에 요소까지 요소는 다 원산이라는 곳도 지금 그곳을 이렇게 드러나게는 안 했지마는 원산은 지금 소련이 자기네들 마음 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사용하고 이래 있으니까 거기다가 막 들이 재놨으니 그거 뭐 거기에 있는 잰 것만 해도 우리 남한은 빽 둘러 쌀라면 빽 둘러 쌉니다. 우리 남한은. 이 배로 가지고서 해군력을 가지고서 우리 남한을 빽 둘러 쌀라면 빽 둘러 쌀라면 빽 둘러 쌀 수 있도록 이렇게 돼 가지고 있지, 또 거기에 서 발사하면 이건 다 절단날 수 있도록 이렇게 돼 가지고 있지.
이러니까, 이 한국을 지금 벌써 그 세계를 전체를 두고서 이 평가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국이 세계의 핵이 다 여기에 세계의 흥망과 성쇠가 여기 있다, 전쟁은 여기 전부 집중되고 있다 이렇게들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지마는 과연 그때에 이스라엘의 선지가 다 바알 그 세력에게 죽임을 다 당하고서 엘리야가 있다가 나만 남았다 할 때와 같이 이렇게 지금 다 죽지는 안했지마는 그렇게 다 죽임을 받지는 그 원수의 세력에게 죽임을 받지는 안했지마는서도 죽임을 받은 그들의 심정과 태도와 정신과 행동과는 꼭 같습니다. 같으니 안 올 것입니까? 같으면 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받아서 매를 맞은 거와같이 꼭 매맞을 맷정은 다 써 놨으니까 매가 안 오는 것은 하나님이 참고 있다고 봐야 되지 매를 안 오리라고 그렇게 어떻게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이 공산 국가가 이렇게 오는 이 일에 대해서 무심한 것 그거 오는 거는 상관없어. 암만 와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기에 대해서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서 그런 것이 오는 것을 대항하고 그걸 근심하고 걱정하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 없다는 그런 세력을 다 멸해야 되지. 하나님 없는 그런 세력을 둬서는 되느냐 이렇게 해 가지고서 하는, 그 정신이 있어야 되는데 정신이 없다 그 말이오.
6·25때도 왜 그들 다 국가인데 그들 뮈 그들 시키는걸 뭐 나쁜 거 뭐 있겠습니까? 그들 시키는 일에 대해서 나쁜 게 없지마는 단 그거였었습니다. 그, 어떤 목사는 말하기를 '인민군을 뭘 두려워 해 인민군이 뭐 두려운데' '그 왜 안 두렵소? 안 두려운 그 안 두려워하는 두려워하지 안하는 그런 방편 좀 말해 주십시오' 내가 그러니까 교역자회 때 모일 때인데 그때 이제 인민군이 다 가고 해방되고 난 다음에 인민군은 다 이제 후퇴하고 나서 처음에 교역자회 모였을 때에 '어찌 안 두렵습니까?' 이라니까 말하기를 '아 그 사람들 만나면 아 수고하십니다. 그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뭐' 허, 그말 할진대 정조 다 팔았는데 말할 거 뭐이오? 어떻게 '수고하십니다'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주의자들이 이제 하나님을 무신론주의를 가지고서 모두 다 하나님 없다고 하는 것으로 그 운동하고 있는데 그 운동을 만나서 수고하십니다. 하면 그 찬성하는 말인데 이 저주 받을 일 하지 말아라 그 소리나 했으면 했지 어떻게 그 말 할 수가 있는가? 그것 가지고 그거를 방편해서 자기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아주 씩씩하게 승리한 척 하니까 그것도 다 깨달음이 차이 있었다 말이오. 그래서 그럴 때에 왜 그들에게 협조하지를 못했느냐? 못하는 그것은 이 나라 되면 이 나라 협조하고 저 나라 되면 저 나라 백성들에게 협조되는 것인데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주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물질이 귀한 것이라 유물주의 그거보다도 유물주의라도 또 하나님을 인정하면 우리는 그리 대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다고 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대적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게 세력이 와도 앞으로 이리되면 기독교라 하는 것은 다 박멸을 당한다. 하나님은 짓밟히고 이북에 지금 하나님의 이름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까지 된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증거할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우리가, 여호와의 군대.
따라합시다. 여호와의 군대! 여호와의 군대! 우리는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되지 우리 대장되신 하나님이 우리가 싸워야 우리를 통해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데 그런 무신론의 세력이 와도 무심하이 저거끼리 감투싸움이나 하고 자꾸 우리가 정통이다 저거가 정통이다 이래 가지고서 저거 교파가 아니면 자꾸 이와 같이 핍박이나 하고 이러니까 이거 다 자멸하는 총을 꺼꾸로 들고 자기편으로 들이 꺼꾸로 잡고 쏘는 이런 거와 같은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노여워하실 것과. 또 무시하고 있는데 대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과 하나님의 진노가 온다는 것과 이 모든 백성들이 깨지 못한 이와같이 있는데 대해서 안타까운 것과 여기에 대해서 참 엘리야와 같은 자기가 죽을 줄도 모르고 생명을 걸고서 이렇게 이 일을 인해서 마음 아파하는 이런 기도가 우리에게 있는지? 없으면 우리는 그 원수에게 멸망받는 그게 되든지 원수를 멸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자기가 살필 때에 어떤 사람인지? 또 자기 한 사람이 된다 할지라도 한 사람이 된다 할지라도 나는 나 한 사람 된게 내가 아니겠고. 아무리 이거 입술로는 입술로는 옳은 걸 말한 다 할지라도 이 손이 안 들으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 무슨 입술로는 정직을 말한다 할지라도 정직을 말함이라도 손으로 뭐 이래 훔치면 그 몸이 감옥에 들어간다 말이오. 이러니까 아무리 나 혼자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 혼자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내 수족과 수족이 되어 있는 전신 전체가 되어 있는 온 교인이, 온 교인은 그런 사람이면서 나 혼자 주장해 봤자 소용없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나 혼자 주장하는 이것은 온 교인이 다 함께 동하고 정해야 나 할일을 다하는 것이지, 동하지 정하지 안하면은 나는 해도 안한 것이기 때문에 안 한 것인 줄 알고 미달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야 되겠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나혼자 하는 이거 가지고 안 되고 또 거기에 서 권사님들이나 장로님들만 가지고 해도 안 되고 온 우리 교인 전체가 이 심정을 가져야 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을 기뻐하실 거라 말이지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그때는 다 없어지고 몇 명만 남았고 엘리야 하나의 기도를 듣고도 하셨지마는 그 배후에는 엘리야 하나의 기도가 아니라 수많은 기도를 들었다 말이오. 주님 말씀하시기를 바알에게 무릎을 끓지 안하고 지금 한 사람을 칠 천이 남아 있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배후에 그많은 사람들이 그 마음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어짜든지 지금 고때와 지금 꼭 같은 형편이니까 참 바알을 찬성하지 안하고 그걸 반대해서 지금 죽일라 하니까 숨어 있는 사람들이 칠천이나 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엘리야는 나타나 가지고서 자꾸 다니면서 이와같이하는 그런 선지가 있었으니 우리는 그때 와 지금과 꼭 같은 형편입니다.
우리가 엘리야와 같은 그 마음을 가지고 참 그런 심정을 가지고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그 자녀가 곧 죽을라고 지금 꼴박거릴 때에 그때에 보고서 우리의 심정이 막 한테 뭉쳐 기울여 가지고서 이제 하나님께 부르짖는 거와같은 그 죽는 것이 안타까운 거와 같은 것 하나님께 부르짖는 거와 같은 그와 같이 우리가 이 일에 대해서 우리도 그렇게 그런 엘리야와 같은 심정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심정은 있습니다. 깨달음이 달랐고 우리의 욕망이 달랐고 우리의 견해가 달라 그렇지. 그러니까 그런 심정이 되기까지 스스로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자꾸 자기 마음을 일깨워서 슬기롭게 해 가지고서 그런 심정이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그런 심정이 지금 우리에게는 꼭 같기 때문에 그런 심정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회를 작정하고 기도하기는 이것도 뭐 등록만 하고 여기에 와서 형식적으로 삼십 분 동안 기도하고 가는게 아니라, 우리가 그런 엘리야와 같은 그런, 하나님이 참 그 마음을 볼 때에 내 아픈 마음을 네가 가졌고 내 안타까운 마음을 네가 가졌고 내 분노를 네가 가지고 내가 미워하는 걸 네가 미워하고 네 분노를 네가 가졌고 이랬으니 그 엘리야의 한 사람의 그 심정 가지고 하나님이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기쁨을 가져 올 수 있는 이런 심정으로 화해져야 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안하면 우리가 죽습니다! 강퍅하지 맙시다! 뭐 예사로 듣고 자꾸 꾸벅꾸벅, 말해도 졸고 그렇게 하지 말아라 말이오! 지금 어느 때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됩니다. 우리의 강퍅한 마음을 우리가 새롭게 슬기롭게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늘은 한국에 엘리야와 같은 그런 심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그런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선지자가 필요하고 그런 목사가 필요하고 그런 장로가 그런 집사, 그런 권찰. 그런 평신도 그런 반사들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