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7 10:08
여호와 목자
본문 : 시편 23장 1절∼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호와는 우리에게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도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셨고 2 장과 3장에도 4장에도 또 5장 6장에도 계속 나타나신 하나님의 이름을 '나는 여호와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구약에는 여호와로 이렇게 나타내시다가 차차 차차 말년에 가서 또 신약 시대에 와 가지고는 하나님께서 여호와라고 그렇게 이름을 나타내신 일이 신약에 와서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슨 주님과는 별다른 다른 하나님으로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바로 주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구약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그 하나님은 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역사를 하셨는데 그 하신 분이 곧 예수님이 도성인신 하시기 전에 신성으로 역사하셨던 역사입니다. 그것을 베드로전서에 '옥에 갇힌 영들에게 찾아가서 주님이 이 복음을 전파했다' 하는 이 말씀을 보고 천주교에서는 연옥설을 주장합니다.
'보라. 옥에 갇혔는데. 그 노아 때에 모두 다 순종치 아니함으로 멸망한 그런 사람들 이라 이랬으니까 그 사람들은 오래 되었으니 벌써 죽어서 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옥에 갇힌 영들에게 찾아갔다는 이 말씀은 음부에 예수님이 찾아가셔 가지고 복음을 전해서 세상에서 믿지 안하고 세상 떠난 사람들도 음부에서 예수 믿어 구원을 얻는다.' 그렇게 말하는 연옥설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 떠나서 음부에 가 가지고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가지고 구원을 얻게 되니 그 죽은 사람을 위해서 영세를 준다. 세례를 준다 이래 가지고 영세를 주고 천주교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그래 예수님의 신약 성경에 와서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구원이 없으면 무슨 영세를 주겠느냐 하는 것은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 영세 주는 것도 그들도 하나 부활의 소망을 바라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그말이지 그것을 옳다고 인정하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떠나면 다시는 구원 준비는 영원히 못 하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에 있는 동안에만 구원 준비는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사람이 세상에서 믿다가 떠나면 아무리 선지 사도가 떠나도 한 번 세상을 떠났으면 세상에는 못 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라야 같이 오지 그전에는 오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사무엘을 그 사울 왕이 복술을 시켜서 불러 올려서 사무엘이 나타나 가지고 말했으니 그게 무엇이냐?' 그렇게 묻는 사람들 내가 많이 봤습니다. 그것은 다 사무엘이 아니고 일생 동안 사무엘을 따라다니면서 침노하던 그 악령입니다. 악령이 사무엘처럼 그렇게 가장을 해 가지고 나타난 것이지 내나 마귀입니다. 내나 마귀지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만 세상에서 활동하고 세상을 떠나면 일단 낙원에 가 있든지 음부에 가 있든지 거기서 자유로 활동하지 못합니다. 이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낙원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와 가지고 생명의 부활을 받고, 음부에 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심판 시작하면 다시 사망의 부활 받아 가지고 심판 받아 영원한 사망으로 옮겨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약에 나타나신 이 구원의 하나님을 전부 여호와 하나님이라 그렇게 나타냈다가 그 후 신약 시대에 와 가지고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그런 성호를 나타낸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렇게 나타내서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약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약에 대한 존중성을 백성들에게 인식시켜서. 곧 하나님은 계약의 하나님이라 그러기 때문에 계약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계약이 없는 곳에 하나님이 없고 계약을 부인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지 못하고 계약을 준수하고 계약을 모시고 계약 슬하를 떠나지 안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은 곧 계약의 하나님인데 성부도 계약의 하나님이요. 성자도 제약의 하나님이요, 성령도 계약의 하나님인데, 그 계약의 하나님의 제일 주체성은 도성인신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을 성령님이 실질적으로 개인들에게 그 구원을 입히는 일을 책임맡고 완성을 하십니다. 도성인신 하시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 역사하신 그 하나님이 내나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고로, 왜 구약 때에 하다님께서, 창조주라는 그런 이름도 있고 자존자라는 이름도 있고 영존자라는 이름도 있고 전능자라는 이름도 있고 전지자라는 이름도 있고 그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나타났는가? 이것은 계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하나님 백성들에게 똑똑히 알리고 나타내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계약의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라.
그러면, 계약의 하나님은 나의 목자신데 계약의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면 그 결과가 어찌 되느냐 하는 것을 그 밑에 쭉 내려 써 놨습니다. 계약의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을 써 놨습니다.
계약의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어 있는데, 내가 계약의 하나님을 내 목자가 되게 하는 게 아니라 계약의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어 있는데 내가 이 목자를 배반을 합니다. 목자를 배반하기 때문에 계약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해 주시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뭐 하나님을 우리가 무슨 보수하는 것이나 또 하나님을 우리가 모시고 뭐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위할 수는 없습니다. 피조물이 조물주를 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피조물이 조물주를 배반치 아니하고 모시고 그 슬하를 떠나지 안하면 이 여호와의 은택이 우리에게 역사할 수 있지만 이 하나님을 배반하면 헛일입니다. 구약 시대도 그렇고 신약 시대도 다 그렇습니다.
이 계약의 하나님이, 계약 하나님이 계약하신 대로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의 신성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슨 구약 하나님이요, 이 성자 예수님의 신성은 성자라고 하니까 성자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과 무슨 관련이 없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이렇게 넓게 상고해 보면 내나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요 한 하나님이십니다. 신약 교회도 이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왔다.' 이랬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왔다 그 말은 구약에 계약한 그 계약을 완성하려고 계약의 주인이 왔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삼일 만에 부활한 것은 계약의 하나님이 계약해 놓으신, 처음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해 놓으신 그대로 하나. 하나 예언을 이루어 가지고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예수님으로 오셔서 이제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우리 구원을 완성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 우리 구원을 우리가 새로 구원을 만드는가? 만드는 거 아닙니다. 우리 구원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지공법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었고, 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놓은 이 구원을, 이 구원을 가지고 이 구원 얻은 자로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신 것이 부활의 구속인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구원을 얻거나 마련하거나 입거나 하는 것 아닙니다. 또 우리가 성화를 새로 우리가 만드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우리 성화를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에 만족할 만침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요구 만족으로 부족함이 없이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어 드린 이 구원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주님이 주신 구원입니다.
이런데, 이 구원을 지금 어디서 하고 있느냐? 이 세상에 사는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의 공심판은 다 통과하고, 벌써 공심판은 다 지나와서 하나님의 공심판과는 상관 도 없는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사는 사람과 두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지금 공심판에서 정죄받은 그 정죄에 본죄로 더 추가해서.
추가해서 사망을 완천히 이루는 그것이 불택자들의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거기서 옮겨졌기 때문에 그들과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가 사는 거는 무엇을 살고 있는고 하니 이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살고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자. 왕 직이 그리스도인데,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법적으로 입혀 주시고 이 대속의 공로를 법적으로 입은 자들에게 이제 그리스도의 직을, 그리스도의 직을, 제사장 직을 선지 직을 왕 직을 감당하는,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지금 우리를 장립 준비를 시키시고 장립을 받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지금 구원 기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루는 목적이 뭐이냐?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입는 것이 우리의 목적인데,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입는다 그 말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완전히 된다 그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 그 말은, 그리스도는 어디서 성공을 했는고 하니 그리스도는 예수님에게서 성공을 했습니다. 그 제사장은 도성인신 하신 예수님에게서 제사장 성공 했고 선지 성공 했고 왕의 성공을 예수님으로 통해서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으로 통해서 이 그리스도 직을 다 이루어 놓은 이 그리스도 직이 우리를 대신 했기 때문에 우리 모가치, 우리 몸인 그리스도 직이 벌써 이미 이루어져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직이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데, 이 그리스도 직을 우리가 이 현실 현실에서 그리스도 직을 가진 자로서 현실을 그리스도인의 노릇을 합니다.
제사장 노릇을 합니다. 선지자 노릇을 합니다. 왕노릇을 합니다. 이 현실에서 제사장 노릇도 하고 선지 노릇도 하고 왕 노릇도 하고 우리가 하는데, 이 현실에서, 이 그리스도 직을 감당하는 이 일도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현실에서 그리스도 직을 벗어 버리는 것도 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직을 벗는 자도 있고 입혀 주신 그리스도의 직을 그대로 입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현실에서 그리스도 직을 우리가 감당한다 그 말은 제사장 직을 감당한다 말이요 선지 직을 감당한다 말이요 왕 직을 감당한다는 말인데. 그 세 가지 직책이 무엇을 함으로서 그 세 가지 직책 이 되어지느냐? 세 가지 직책은 죄를 멸하고, 죄를 멸하고, 또 사람들을 하나님에게로 중매를 시켜서 결합을 하고, 결합해서 하나님에게 피동되도록 하고 또 하나님과 화친되도록 이래 하는 것이 그리스도 직을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안하고 세 가지 대속을 입고, 이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안하고 세 가지 대속을 입은 자로 사는 그 행위가, 행위가 바로 그리스도의 행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아니하고 이 현실에서 세 가지 대속을 입고 현실을 사는 그것이 제사장 노릇을 바로 감당하는 것이 요 선지 노릇을 바로 감당하는 것이요 왕의 노릇을 바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3장 23절 이하에 보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제사장. 선지. 왕 직이 완전히 장립 되면' 그 말입니다. 장립 되면, 제사장 직. 선지 직. 왕 직이 완전히 장립 되면, 제사장 직, 선지 직. 왕 직을 감당하는 그 권위자에게,그 권위에게 영계의 것과 물질계의 모든 것은 맡겨진다 하는 말씀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우리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사망이나 생명이나 게바나 아볼로나 그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시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맡아서 하나님이 하듯 우리가 그들에게 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충만케 하듯 하나님의 충만을 가지고 그들에게 충만케 해 주는데, 그러면, 어떤 자에게, 어떤 자에게 이 직책을 맡기느냐? 이 직책 맡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것이 된 자에게 이 직책을 맡깁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된 자에게 이 직책을 맡깁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된 자에게 이 직책을 맡기다니?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이,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인데. 그리스도가 제사장, 선지. 왕 직을 그것을 감당할 모든 권세를 가지고 이 세 가지 직책의 근본으로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에게서 나와 가지고 그분의 이 세 가지 그리스도의 직책을 잘 감당해서 일차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누구인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무슨 성공을 했는고 하니 그리스도 직을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성공은 제사장 직 성공이요 선지 직 성공이요, 왕 직을 성공한 것이 예수님의 성공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성공하신 대로 이제는 우리들을 부르셔 가지고 우리들로 하여금 이제는, 예수님이 그렇게 완전히 그리스도의 형상를 입었더랬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곧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리스도의 형상인데, 우리로 하여금 그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있다 그래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제사장 직 한 그대로, 예수님이 선지 직 한 그대로, 예수님이 왕직 한. 그대로 그대로 우리도 그 직책을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당신이 친히 제사장도 되시고 선지자도 되고 왕도 되고 당신이 친히 제물도 되시고 이렇게 하심같이 우리들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제사장이 되었으니 제사장이 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대속 받은 우리의 이 자체, 영과 혼과 몸 이것이 제물이 되어 가지고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을 바로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도 지금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속해 놓으신. 대속해 놓으신 이 완전 완성해 놓은 이 대속을 우리가 벗느냐 입느냐 하는 것을 연습합니다. 이 대속을 벗느냐 입느냐 하는 것을 연습하는데, 우리가 현실에서 벗으면 영원히 벗어져 버리고, 벗지, 안하고 입고만 있으면 예수님의 대속이 우리에게 영원히 효력 있게 역사를 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이 대속을 우리가 벗느냐 안 벗느냐? 이래서, 예수님의 대속을 어느 정도 입고 있으며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대속은 무슨 대속을 했느냐? 대속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을 했는데, 그렇게 대속한 것이 목적이 뭐이냐? 이 대속을 한 이 대속의 이용의 목적이 뭐이냐? 이 대속의 목적이 뭐이냐? 이 대속 하신 것은 뭐 하려고 대속했느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고 하나님과 화친돼서 뭐 영생만 얻게하기 위해서 한 것이냐? 아닙니다. 우리를 이렇게 대속하신 것은 뭣 때문에 대속했느냐? 우리를 대속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대속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대속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잘 살든지 못 살든지 이 세상살이를 끝내고 나면 어디로 가느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갑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합이라"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가지 안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갑니다. 예수님은 대형. 대행, 대화친의 그 대속을 이루신 그 주를 가리켜서 예수님이라 그렇게 말하고, 그 대속을 이룬 것이 뭐이냐? 그리스도인 만들기 위해서 대속을 이루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 가지고 우리가 심판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심판을 받다니?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무슨 심판을 받는다 말인가? 네가 보자. 이 제사장 직을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전히 입혔는데 제사장 직을 네가 과연 어느 정도 네가 보존하고 있느냐? 어느 정도 감당하고 있느냐? 어느 정도 제사장, 선지. 왕 직을 네가 감당했으며 또 감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을 조사합니다. 다른 것을 조사하지 안해요.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간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은 목적이 뭐이냐? 세 가지 대속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으로, 제사장. 선지, 왕으로, 제사장이라니?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 그 조화를 일으키는 중보자. 선지자라니? 하나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가진 축복을 복덩어리를 갖다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지신 부요를.
부요를 갖다 주지 않습니다. (속에 마귀를 털어 버려요. 마귀를 털어 버리면 돼.
예? 마귀를 안 털어 버리면 안 돼요. 그러면 자꾸 잠 끌고 들어오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실 때에 돈은 까끌까끌한 오백 원짜리를 주는지 그리 안하면 천 원짜리를 주는지 만 원짜리를 주는지 그래 주지 않습니다. 돈을 줘도 말씀으로 주고, 권세를 전도 말씀으로 주고 평강을 전도 말씀으로 주고 능력을 줘도 말씀으로 주고 지혜를 줘도 말씀으로 주고 그분은 모든 것을 다 가지시고 우리에게 주시는데 주시기는 말씀으로만 줍니다. 말씀을 주시니 그 말씀을 가지고 써 보니 돈이더라 그말이오. 써 보니 돈이요 써 보니 권세요 써 보니 지위요 써 보니 평강이요 써 보니 승리라. 이러기 때문에 선지자 노릇이라 하는 것은, 선지자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뜻을 피조물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것이 선지자 직이기 때문에, 이 전달은 뭐이냐?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부요를 피조물들에게 줄 때에 심부름한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것을 줄 때에 이거 말씀을 들어다가 이래라 할 때에 그라니까 돼 버려요. 저래라 할 때에 저라니까 돼 버려요. 그것이 선지자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전달해 주는 그 직책이 선지 직이요, 왕 직은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단일 통치인 통일 통치, 하나님 한 분의 단일의 의사대로 다 단일 통치가 전체가 통일이 돼 가지고 하는 단일 통일 통치 이 통치를 이것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해서 모든 피조물들을 이 통치로 통치해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을 다 간추리고 이것을 다 정리하고 관리하는 그 직책이 왕의 직책이요, 하나님의 부요로 피조물들에게 옮겨서 부요케 하는 것이 선지 직책이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난제된 문제를 다 해결하고 하나님과 화친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님의 전부가 피조물 저의 것이 되고 피조물의 전부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고, 하나님과 피조물이 밀접한 이 친밀한 친교를 가지도록 한 것이 제사장 직입니다. 그러기에, 제사장 직이 제일 귀한 직책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선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대형. 대행 대화친을 했는데 그것이 무슨 생활이냐? 뭐하려고 그렇게 했느냐? 예수님이 그와 같이 세 가지 대속을 하신 것은 제사장 노릇 하느라고 했다. 선지 노릇 하느라고 했다. 왕 노릇 하느라고 했다. 그래 가지고 예수님께서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그 왕권, 통일되는 그 왕권을 성공하셨고, 또 하나님의 충만으로 피조물들에게 충만케 해 주는 선지직을 완성을 하셨고, 하나님과 원수되고 피조물 과 피조물이 원수된 그것을 다 이렇게 화친의 화평을 이룬 그 제사장 노릇을 바로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무슨 일 했느냐? 제사장 노릇 했다. 선지자 노릇 했다. 왕 노릇 했다. 부활하신 것도 제사장. 선지자, 왕 노릇 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렇게 이 세 가지 직책을 완성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제사장 우리는 제사장, 예수님은 대선지 우리는 선지, 예수님은 만왕의 왕 우리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왕, 이래서, 우리가 심판 받는 것은 그리스도 앞에 가서 심판 받는다. 그리스도 앞에서 심판 받다니? 제사장 노릇을 심사할 것이요 선지노릇을 심사할 것이요, 왕 노릇을 심사해 가지고 어느 정도 제사장 실력이 있으며 왕 실력이 있으며 또 선지 실력이 있는가 그것을 조사해 가지고 그대로 갚으신다. 그대로 무궁세계에, 고 실력대로 제사장, 선지자, 왕 직을 맡겨 가지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될 때에 그때에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라 하는 것은 만물 안에서 만물에게 하나님의 중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교회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영광 직이 예수님이 다 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공심판을 벗어난 것입니다. 공심판을 벗어났지만 사심판 곧 그리스도의 심판인데,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예수님의 공로로 다 해 주셨지만 이것을 자기가 이 구원을 가지고 벗지 안하고, 이 구원을 가지고 벗지 안 하는 게 뭐인데? 벗지 안하는 것이 사죄를 벗지 안하고 칭의를 벗지 안 하고 화친을 벗지 안하는 것. 그거 뭐인데?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벗지 안하면 그것이 뭣 되는 건데? 사죄를 벗지 안하고 무죄자로, 죄를 멸하는 자로, 또 하나님께 모든 것이 피동되어 하는 자로, 또 하나님과 이렇게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하나님을 지존자로 이렇게 모시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슬하에서 이렇게 사는 자기가 어떤 그 어려운 현실이 와도 그 현실에서 이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안하고 이 대속을 보수하는 그것이 무엇이 되는 것이냐? 이 대속을 벗지 안하고 이 세 가지 대속을 잘 보수하면 보수한 이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안한 사죄. 칭의, 화친을 벗지 안한 그 행위는 무슨 열매를 맺는 것이냐? 그 행위는 무슨 열매를 맺는 것입니까? 그 결과가 무엇이 달성이 됩니까? 제사장, 선지, 왕 직이 달성합니다. 이러니까, 그거 하다보면 이 세 가지 직책이 달성됩니다. 이 세 가지 직책이 달성이 되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이제 조사해 가지고 '보자.' 그리스도라 말은 무슨 말이오? 기름 부음이라 말인데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 왕에만 기름 붓기 때문에 기름 붓는다 말은 제사장 직, 선지 직. 왕 직이라 말이오. 네가 제사장. 선지, 왕직을 네가 얼마나 했느냐? 심사해 차지고 그 직책을 감당한 것 만침 실력을 가졌으니 그 실력을 가진 것 만침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그에게 맡기십니다. 당신의 것을 맡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궁세계에 가서 할 일이 뭐입니까? 그 할 일에 대해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렇게 발표를 했고, 우리를 가리켜서 '나라와 제사장 삼기 위해서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렇게 말했고. '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갖다 주는 그 직책을 하기 위해서 구속하셨다.' 이랬는데, 성경을 토막 토막 보면 그렇지만' 전체를 봐서 전체를 다 파악해 가지고 체계적으로 알면 이것은 다 그대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건데 자꾸 모르고 있기 때문에 마귀란 놈이 요리 조리 꼬우니까 자꾸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루어 놓은 이 삼대 직책을 우리가 벗지 안하고 세상에서 그 직책을 하는 것으로 연습하기 위해서 세상에 뒀습니다. 이 직책으로 연습하기 위해서 뒀는데 연습한 그것이 연습뿐 아니라 실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이 직책을 한 것 만치 그것이 무궁세계에 가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왕된 것만치 그것이 무궁세계에 가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왕된 것 만침 그 나라에 왕 되고, 선지자 된 것 만침 선지자 되지 세상에서 안한 것을 그 나라에 가 가지고 별스러운 무슨 보상이나 보응이나 오리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과거 하나님의 예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예정은 과거에 있는 것인데, 하나님이 과거에 예정 다 해 놓은 건데, 예정이 어떻게 됐는지 그거는 우리는 모릅니다. 또 미래로 하늘나라에 어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를 봐서 '아, 내게 대한 과거 예정은 이리 이리 됐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현재를 봐서 무궁세계 가 가지고 나는 어떤 직책을 맡을 것이고 어느 정도의 어디서 어떻게 될 것이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열쇠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걸 왜 뭣 때문에 하느냐? 우리 예수님의 이 대속도 이루어 놓은 것을 벗지 안하면 됩니다. 이루어 놓은 것을 벗지 안하면 돼요. 부인하지 안하면 돼. 자기가 현실에서 무슨 대속을 이루는 것 아니오. 주님이 이루어 주신 것을 벗지만 안하면 됩니다. 안 벗으면 현실에서 성령의 인을 받습니다.
현실에서 사죄를 벗지 안한 사죄, 칭의를 벗지 안한 칭의, 화친을 벗지 안한 화친, 제사장 직을 했으면 제사장, 선지 직, 왕 직, 딱딱 성신의 인을 친다 말이오. 성신의 인을 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를 기다려라.' 그 인이 무슨 인이냐? 하나님의 결재라 말이오. 결재는 언제냐? 현실에서 결재합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은 얼마나 중요한 현실인지 모르는데 이 현실을 뭐 땅의 지저분한 거 좋은 거 많지만 '온 천하를 얻고도 네가 너로 사는 것을 잊어 버렸으면 헛일이다. 네가 뭐인지 모르고 옛사람으로 살았으면'온 천하를 얻어도 너는 소용없다. 또 네가 어떤 자가 될 터인데 어떤 자가 될 그걸 네가 잊어 버렸으면 너를 뺏긴 자다.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빼앗긴 것은 자기가 어떤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될라는지 모르는데 이제 그것을 현실에서 하지 못하고 세상 것 취하기 위해서 뺏겼기 때문에 '야. 세상 것 네가 암만 취해 봤자 한국 다 더 취하겠나? 한국 더 취하겠나? 또 더 취하면 이거 지구 땅덩어리 더 취하겠나? 그래 봐도 이것은 우주의 얼마나 소부분이냐? "천하를 얻어도 이 우주를 다 차지해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저는 소용이 없다." 요렇게 평가를 해서 단단히 결론을 지워 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한 시기를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아는 사람은 이 복음을 위해서 자기는 뭐 평신도로 살든지 상인으로 살든지 어디서 살든지 이 현실에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제사장의 모형, 선지자의 모형, 왕의 모형 이 모형을 입어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너는 열 고을을 차지해라. 너는 다섯 고을을 차지해라, 너는 무엇을 차지해라.' 그와 같이 자기 행한 대로 이와 같이 갚아주시는 이것을 바라보면서 준비하는 것이 슬기로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는 우리의 목자가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를 내 목자로 삼으라 말 아니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여호와는, 계약의 하나님은 내 목자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뭐 목자를 만들라 하는 게 아니오. 만들라 하는 게 아니고 되어 있는데 되어 있는 이 목자를 배반을 말라 그말이오. 이 목자를 배반을 말아요.
이것을 루터가 루터파라는 그 종교 개혁, 루터가 종교 개혁 안 했습니까? 루터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천주교에서 이 개혁교로 개혁한 사람 이 루터입니다.
칼빈은 그저 논리적으로 이런 거 저런 거 이런 편집을 해서 모든 과거의 성도들이 해 놓은 신조와 교리를 이것을 주 종합해 엮어 가지고 이렇게 체계 있게 편집한 이가 칼빈이고, 담대히 사탄으로 더불어 싸워서 개혁을 한 사람은 루터입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했습니다.
이런데 루터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말이오. 루터는. '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신데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만 안 하면 다 되게 되어 있다.
거부만 안 하면 된다.' 루터파 신조와 교리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우리가 힘쓸 것도 없다. 안 한다고 물리치고 박차기만 안 하면 된다.' 그렇게 깨달았고, 요한 웨슬레, 알미니안주의, 이 감리교주의는 '하나님과 싣람이 둘이 힘을 합해 가지고라야 되어 진다.' 이렇게 합동설을 말했고, 루터는 거부를 안 하고 환영만 하면 된다는 환영설을 말했고 칼빈은 '거부해도 거부도 못 한다 환영해도 환영도 못 한다. 하나님의 절대 예정대로 당신의 주권대로.
어떤 자가 멸망하고 구원하는 것은 당신 혼자의 주권대로 결정해서 한다.
그분에게 있다' 요것을 주장한 것이 칼빈의 주장인 것입니다. 루터는 '거부하지만 안하면 된다.' 그분도 그 깨달은 것이 이만큼 깨달았기 때문에 담대히 그 천주교를 승리했던 것입니다.
그때 천주교로 말하면 그 마지막에 신교로 개혁될라고 할 그때에 그 때는 어떻게 박해가 심했든지 한 석 달 동안에 이 교리와 신조 때문에 순교당한 사람이 십만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남은 때도 뭐 몇만 명씩 몇만 명씩은 계속 있었고 석달 동안 십만 명 이상 된 그런 가운데서 이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 루터입니다. 루터도 이런 면 깨달음이 우리와 동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어 있다. 목자를 삼을라고 우리가 뭐 교제하고 교섭하고 애쓸 게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다. 이러니까 이 목자를 떠나지 말아라. 목자를 네가 떠나고, 목자를 떠나면 이리한테 삼킬 수밖에 더 있겠느냐? 목자를 떠나지 말고 목자의 사랑의 슬하에 있거라. 목자를 배반치 말고 목자를 떠나지 말아라. 목자를 떠나지 안하면 목자가 너희에게 이와같이 해 주신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대속도 우리에게 다 이루어져 있는 대속이니까 우리가 이 대속을 현실에서 벗지 안하면 됩니다. 현실에서 아무리 세상이 달라들어서 나를 죄를 지으라고 해도 '나는 죄 안 짓는다. 예수님 죽기까지 하셔서 나에게 사죄를 입혀 주셨는데 내가 또 어찌 내가 죄를 입을 수가 있겠느냐? 나는 사죄, 죄 없음을 입혀 주셨기 때문에 죄 없는 이 예수님의 대속을 나는 벗을 수 없다.' 살아도 죽어도 고문과 고행을 해도 모든 걸 다 뺏겨도 이 사죄를 벗지 안하는 요것이 사죄를 벗지 안하고, '너는 나한테 한 번 절만 해라.' '이 하나님에게만 피동되어 살도록 의를 입혔는데. 주님이 죽기까지 복종해 가지고 이 칭의를 입혀 줬는데 내가 또 어떻게 주님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딴거에게 복종을 해 가지고 이렇게 멸망의 걸음을 걸을 수 있겠느냐? 당신에게 피동된 요 피동을 변동할 수가 없다.' 이래 가지고 그분에게만 피동될라고 하니까 다니엘도 그분에게만 피동될라 하다가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지 안했습니까? 모든 성도들이 그분에만 피동되고 환경과 주위의 인간들에게 되동되지 아니할 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박해당하고 죽음을 당했다 그말이오.
요새는 너무 공짜배기로 먹어. 이러니까 뭐 거짓부리라.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요. 아, 환경에 조그만한 탄압만 있어도 거기에 피동되고 경제 문제만 있어도. 돈만 좀 손해 가도 거기에 피동되고, 인정 문제만 해도 피동되고. 조금 무슨 직장 문제에도 피동되는데, 환경에 피동되어 번연히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 하나님의 뜻을 어겨 피동이 되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환경에 피동되지 안하고 피조물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대속하신 그분에게만 피동되는 요것을 지키는 요것이 예수님의 칭의를 벗지 않는 것이라 그말이오. 또 하나님을 모셔 하나님을 제일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위주로, 하나님에게 숭배하는 요 숭배성을 요것을 환경에서 이리 저리 몰아쳐 가지고 내가 하나님이, 지성하신 하나님에게 지공하신 하나님에게 이렇게 향하는, 하나님을 향하는 이 지성의 마음, 하나님을 향하는, 내 마음에 하나님을 내 보좌에, 내 마음 중심에, 내게 제일 하나님을 모셔 놓고 아무도 거기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만이 내 마음 보좌 상좌에는 앉을 수 있도록 요렇게 하는 요 생활을 하려고 하니까 요걸 마귀란 놈이 시기해서 뺏들라고 별별 유혹과 탄압과 고문과 고행을 해도 요것을 뺏기지 안하고 요 대속을 벗지 안한 요것이, 고 결과가 무엇을 이릅니까? 저 ○○○, 무엇을 이룹니까? 그렇게 한 것이, 그것, 그것의 결과가 무엇을 달성했습니까? 고 무엇을 달성합니까? 아, 이거 내가 참 증거를 잘못하나? 무엇을 달성했소? 여기 ○○이, 제사장 직, 선지 직, 왕 직을 달성 했습니다! 요 세 가지 달성했어. 이래서 모든 사람의 구원이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게 제사장, 선 지. 왕 직을 달성해.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면 '아. 너는 이 제사장 왕 직, 선지 직을 다 완료했기 때문에 너는 이제 무궁세계의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 직으로 네가 둥용돼 가지고 너는 이제 그 직책을 감당해야 되겠다.' '내가 언제 제사장, 선지 직, 왕 직도 한 번도 해 보지 안했는데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네가 사죄를 벗지 안하고 칭의를 벗지 안하고 화친을 벗지 안한 그것이 만 인간과 만물을 구원하는 일이다. 그것이 네가 만물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그 만물들도 다 구원하는 일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도 이미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벗지 안하고 그 대속을 내가 간직만 하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은 계약의 하나님은 나의 목자가 되어 있는데, '내 목자가 되어 있으면 목자가 지금 뭣 줬습니까? '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외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가 내 목자가 되어 있으니 이렇게 됩니다. 이 여호와 목자를 배반치만 안하면 된다 말이오. 여호와 목자를 배반치 안하는 것이 뭐이냐? 여호와 목자를 배반치 안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약을 배반치 안하는 것이 여호와 목자를 배반치 안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의 계약만 배반치 안하면 이 계약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이 말씀이 말씀이 마치 전쟁 때에 그 피상받은, 전쟁 때에 지금 전쟁에서 피상을 받은, 아주 다친 그 환자 전쟁에서 다친 환자 이거 참 죽이고 갈라 해도 안 되고 내두고 갈라 해도 안 되고 데리고 갈라 해도 안 되고, 이거 데리고 갈라 하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 힘이 드는 거와같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애먹이고 하나님의 말씀 은 우리에게 애를 먹이고 우리에게 짐덩이가 되고. 우리에게 짐덩이가 되고, 이 말씀을 지킬라 하니까 짐덩이가 되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애를 먹이고. 우리가 이 말씀 안 버리고 이 말씀 모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대접하기 위해서 골탕 쥐먹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만 떠나지만 안하면 이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는 여호와시오. 이 계약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이 너희를 든든히 세워 거룩한 자들 가운데서 업을 누리게 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이 말씀을 제가 지키느라고 골탕 쥐먹고 이 말씀을 제가 뭐 위하느라고 골탕먹는 그런 참람된 말 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우주를 지으신 능력 가지신 말씀인데 이 말씀이 우리의 혜택을 입어요? 이 말씀이 우리 혜택을 입습니까? 우리의 보호를 입습니까? 어리석게 잘못 깨닫고 보수 진영이라고 하나님 말씀을 보수한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수해야지.' 네까짓 게 보수는 무슨 보수? 네가 무슨 하나님의 진리를 보수한다 말이냐? 네가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안하면 그 말씀이 너를 지켜 주시니까 피난이 될 것이고 네가 그 말씀을 네 꾀대로 떠나 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자의 보호를 떠났지.
그러기에 '지존자로 거처를 삼는다.' 그 말은, '여호와를 거처를 삼는다, 여호와를 거처로, 지존자를 거처로 삼는다.' 이 말은 뭐이냐? 이 계약의 하나님을 자기의 거처로 삼고, 계약의 하나님을 자기 목자로 삼아서, 그러기 때문에, 이 계약을 떠나지 안한 것이 이 계약의 지극히 큰 능력의 나래 아래에 내가 피난하는 것이요, 이 계약을 내가 배반치 안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지극히, 큰 능력의 보호를 내가 환영하는 것이요, 이 계약의 말씀을 모시고 이 계약의 말씀을 버리지 안해. 만일 인민군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이 계약의 말씀을 버리라고, 자꾸 계약의 말씀을 버리라고 꾀우다가 달개다가 달기고 하다가 별별일 합니다. 이래도, 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 이 계약의 하나님이라. 이 계약 버리면 하나님 버리는 것이고 이 계약 내가 모시는 것이 하나님 모시고 있는 것이라, 이라니까, 제가 아무리 꾀어도 '이 계약은 나를 능히 든든히 세울 전능의 나의 목자시다. 내가 이 목자를 버리지 않는다 '네가 목자를 안버려? 목자 안 버려?' 변판원 선생이라고, 이 목자를 버리지 안하니까 인민군이 저 땀내기재 라 하는 그 재에 가 가지고, 다른 사람이 봤어요. 거기서 한 사람이 살아 왔어. 끌려가 가지고 다 죽고. 이 나무에다 이래, 열 십(十)자로 떡 달아 놓고 이래 가지고 칼로 가지고 성경을 보면서 그 한번 콱 찌르면서 '너 이놈. 이 말씀 지금도 믿느냐?' '예 믿습니다. 참말로 믿습니다! 이라니까 싹 뜯으면서 '이놈의 새끼' 또 한 장 내 가지고 또 그라고 온 만신창을 했소. 그래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습니다. 믿습니다! 이러다가 거기에 찔려서 그냥 안 죽으니까 이 뱃구멍을 이만침 오려 가지고 막 '이놈의 새끼 뭐이 들어 이런가?' 하면서 오려 가지고 죽였소. 그 변판원씨가 죽어서 실패입니까? 그는 성공했습니다.
잠시 잠깐 후면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같이 와서 이제 이렇게 죽음 앞에서도 여호와 하나님, 계약의 하나님을 그대로 믿고 모시고 떠나지 안했으니까 그분의 상이 지극히 클 것이오 잠시 잠깐 후면 당신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땅위의 모든 고난을 당하고 모든 것을 다 손해 보고 버리고 한 그분들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광중에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잠시 후면 볼 것이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치 마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치 안하면 천하가 다 달려들어도 해하지는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는 거기서는 죽임을 당해도 성공, 매를 맞아도 성공, 부요해도 성공, 존귀해져도 성공. 천해져도 성공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가는 그 길은 모든 것이 성공이요 생명이요 평강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의 목자이신 여호와와 이렇게 달리 생각하고. 여호와와 예수님을 달리 생각하는 요 모든 잘못된 성경 해석을 완전히 배격해 버려야 됩니다. 이래서, 구약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그분이 때가 되니까 인성을 입으시고 사람에게 나타나신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은 여호와 하나님이라 왜 여호와라 이렇게 말했는가? 여호와 목자라 했는가? 계약의 하나님인데 그 계약이 바로 우리의 목자시다. '그 계약은 문서 아닙니까?' '아니다. 문서가 아니다. 그 계약의 그 문서는, 그 말씀은 진리요, 그 말씀은 곧 전능의 독자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데 그 말씀 속에는 성령이, 하나님이신 성령이 친히 내재하셨기 때문에 겉은 진리요 속은 하나님이시다.' 이러기 때문에, 이분을 믿고 배반치 안하면 우리는 모든 것에 승리합니다.
이러기에, 앞으로 공산주의가 오든지 뭐이 오든지 준비한 사람들은 뭐, 그저 어린 신앙들 위해서 그렇게 준비한 사람들은 한번 왔으면 한번 창파에 배 띄워, 언덕을 건너 창파에 배 띄워서 이 쿨럭 쿨럭 하는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물속에 배가 들어가도 가만히 앉았으면 '네 까짓 게 암만 그래 쌓아도 나를 못 삼킨다.' 그 나중에 확 토해 내트리고 고래의 뱃속에 갔지만 요나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거기서 하나님 부르니까 그 고래가 학 토해내 버렸다 말이오. 뭣이 삼키겠습니까? 그런고로, 이렇게 참 이 세상은 다시 못 만날 호호 양양한 이 세상이요, 회망이 넘치는 세상이요. 영광과 존귀가 가득 찬 세상이요, 참으로 인기 만점의 이 세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얼마나 참 한번 하나님의 이 계약대로 믿어서 자기를 스스로 존귀케 하고 자기를 스스로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스스로 부강케 할 수 있는 이것이 오늘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지 맙시다. 우리가 이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오. 아, 다니엘이 이계명을 지켰소 이계명이 사자 입에서 다니엘을 지켰 소? 뭐입니까? 다니엘이 이계명을 지켜서 이계명이 다니엘에게 수호의 혜택을 입었소 다니엘이 이제명의 혜택을 입어서 이계명의 그늘 아래 나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사자가 해하지 못해서 혜택을 입었소? 어떻습니까? 누가 혜택을 입었소? 약자가 강자의 혜택을 입지 뭐 하나님이 인간의 혜택을 입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만 안하면 삽니다. 하나님 말씀만 모시고 배반치만 마십시오. 그 말씀 안에는 생존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