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지 힘쓰면 세 가지 된다

 

1984. 9. 7. 금새벽

 

본문: 베드로후서 1장 5절∼9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8절에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너희에게  흡족하게 있으면 주님을 아는, 주님을 아는 그 일이 점점 견고해지고 온전해지고.

또 그래서 주님을 어떤 분이신 것을 알게 되고. 또 좋은 성과를 이룰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잘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 있으면 소경이 되지 안하고 모든  것을 넓게 길게 이렇게 깊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이 여덟 가지 힘쓰는 것을 말했는데 여덟 가지  면으로 이렇게 힘쓰지 안하면 그 사람은 소경이 된다. 그래서, 뭣이든지 그만  현실만 상대하기 때문에. 현실은 자기의 미래의 모든 것과 거의 모든 것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종류적으로나 그 현재라 하는 것은 모든 것에  연관성이 있어서 꼭 고 핵과 같이 그렇게 되어 있는 중요 한 것인데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 그 자기의 현재로 인해서 영원 장래도 연관성 있는 생활 할 수  있고, 또 여덟 가지가 자기에게 구비하게 되면 현재로 자기의 장래가 뭐 길든  안하지마는 자기의 장래가 십 년이 됐든지 오십 년이 됐든지 칠십 년이 됐든지  그 자기의 모든 장래와 다 온전한 연관성을 가지게 되고, 또 종류적으로도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 자기의 현재에 있는 부딪혀 있는 그 종류로써 그밖에 수많은  종류들이 있는 그 종류와 연관성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범위  좁게 요 현재라는 범위 좁게 요만한 범위 내에서 살지 안하고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 요 조그마한 자기 현실은 시간적으로는 영원 장래까지 요게 연결돼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요 현실에 영원 장래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되기  때문에 고 현실에서 영원 장래를 내다보면서 거게 맞추어서 살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더 좋아지지 나빠지지 않는다, 또 시간적으로 요 현재라는 요 현재는  자기가 난 지가 뭐 오 년이 됐든지 십 년이 됐든지 칠팔십 년이 됐든지간에  자기의 모태에서 잉태될 때에 또 그 전에 하나님이 자기를 하나님 목적 안에  두신 거게까지. 과거로서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안에 자기가 있었던 그  목적 안에까지, 미래로서는 영원 장래까지 요 현실에 연관성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니까, 근시자가 안 되고 원시자가 된다,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여' 길게 보지 못한다. 그러면, 사람이라는 것이 요게  하나의 자기가 만드는 감옥인 것입니다. 자기가 만드는 감옥이 돼서 자기가  현재만 보고, 현재만 보고고 미래에도 요 현재가 현재에 어떻게 하면 미래에 내가  평안하고 복되며 현재를 어떻게 하면 미래에 모든 실패와 고통이 오게 되느냐, 또  현재를 어떻게 하면은 지나간 과거를 그것을 다 유익 되도록 그렇게 할 수  있느냐, 현재를 어떻게 하면 과거의 모든 그것이 다 내게 해를 주게 하느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은 베드로는 자기가 과거에 주님을 세 번 닭 울기 전에 모른다고 그런  일을 그런 행위를 한 일이 있었는데, 요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 고 현재에서  자기가 과거에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저주하면서 그렇게 배반한 그 과거가  이 현재에 연관성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과거의 그것이 이 베드로에게 손해를  보이지 못하고 유익을 좋다. 어떻게 유익을 줬느냐?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니까  베드로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그것이 항상 생각나서 죽을  때까지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는 자기는 그 주님을 배반한 그때에 주님이  베드로를 향하여 보고 있는 그 주님의 눈초리가 항상 생각나서 그저 닭만 우는  소리를 들으면 늘 우는, 통곡하는 그런 후회를 하고 다시 거게서 다져서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이랬기 때문에. 전설에 말 들으면 베드로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다른 사도들은 다 십자가에 그저 못 박히고 또 곤봉에 맞아서 순교할 때에는  곤봉에 맞아서 순교하고, 나무에 달려 순교할 때에는 나무에 달려 순교하고, 또  이렇게 저렇게 모두 다 박해를 당해서 순교했지마는 순교할 때에 자기가  죽게되는 그 고난을 조그마치라도 즐겁게 할라고 하지 안하고 더 무겁게 할라고  나는 지금 십자가에 바로 못 박하는 것은 감당 못하겠으니까 이미 나는 사형을  당하는 것이니까 나를 꺼꾸로 못을 박아 달라고서 그렇게 요청을 해서 베드로는  그때에 꺼꾸로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순교를 시켰다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과거를 베드로는 참 자기에게 유익되게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여덟 가지가 있으면 과거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모든  것이 유익이 되도록 현재를 움직이게 되고 또 자기의 미래의 어떤 원수가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이 여덟 가지를 힘 쓰면 미래를 환하게 보기 때문에  현재를 가지고서 모든 미래를 다 해결짓는 그런 생활이 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여덟 가지를 힘 쓰면 시간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잘 보기 때문에 현재를 과거와  미래에 유익되도록 이용을 하지 손해가도록 그렇게 이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여덟 가지에 힘 쓰지 안하면 눈이 어두워서 참 아주 고 일시 그것만 보지,  시간적으로 미래 과거나 또 공간적으로고 자리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자리  감옥에 들어 있는 사람이 감옥 안의 그것만 생각하면 실패합니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 감옥 밖에 나갈 거, 감옥 밖에 나가 가지고서 모든 사람들의 여론. 모든  사람들이 비판하는 거 평가하는 거, 모든 사람들과 관계와 대우 그것을 생각할  때에 그때에 감옥 안에 있는 자기 생활을 바로 조절해서 바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다 눈이 밝아서 그런 것이고 또 종류적으로도 다 그런 것입니다. 자기는  요 감옥이면 감옥 요 종류만 볼 게 아니라 감옥 밖에는 넓은 세계도 있고 또 '아,  아무것이가 진리를 인해서 감옥에 갇혔을 때에 어떻게 했다, 그는 어떻게  승리했다, 어떻게 주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어떻게 실족하지 안했다' 하는 그런  모든 이 다음의 수많은 사람들의 여론이라는 것과 또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서 어떻게 살았나 하는 그 모든 것이 평가될 그런 것과 이런 것을 자꾸  보기 때문에, 현실에서 눈이 밝으니까 요 현실과 연결되는 미래도, 과거도, 또  공간적으로도, 이 뭐 동서남북의 모든 공간적으로도, 종류적으로도 이 종류. 이건  저 물건. 이 종류, 사람, 만물, 천군 천사, 또 불신자. 하나님 모든 종류에 대해서도  관련성을 잘 봐서 이것을 현재라는 것을 거기에 잘 맞도록 이래 하기 때문에  현재를 가리켜서 자기의 신앙 생애의 열쇠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열쇠라.

과거의 문제를 다 해결할, 과거의 잘못된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과거의 또 잘된  그것도 잘. 그 잘된 그것도 잘 이용을 할 수가 있는데 요 눈이 어두워 놓으면은  과거에 잘된 그것도 도리어 그것이 화가 될 수가 있고 또 눈이 밝으면 과거에  잘못된 그것이 도리어 베드로와 같이 복이 될 수도 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눈이 밝아야 되는데, 이 여덟 가지를 힘쓰지 안하면 눈이  어두워서. 심령의 눈이 어두워서 모든 걸 비판하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심령의 눈이 어두운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는 현재만 보고 살고 또  자기는 육덩이만 보고 살고 또 인간면만 보고 살고 또 금생만 보고 삽니다.

금생에 딱 맞추어 살면 영원한 장래에는 다 패전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금생에도 맞추고 천국에도 맞추고, 심판에도  맞추고 또 죽음에도 맞추고, 부활에도 맞추고 모든 그 전부를 다 이렇게 구비해서  견제해 가지고 요렇게 관계성을 맺어 가지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그 생활하는  것을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볼 때에 '저 사람 와 뚱단지 같은 저런 생활할까?'  이해도 못 할 그 생활 하나 그 사람은 과거, 미래, 공간적으로서 현장 모든 널리  천국. 이 우주, 모든 영계까지 다 연관성을 가지고 또 전체적으로 자기만 아니라  모든 사람, 만물, 심지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그 존재, 하나님에게까지 다 연결을  시켜 가지고서 그 모든 것을 하기 때문에 하나도 후회할 것 없이 바로 하게 된다.

이것은 눈이 밝아야 되지 눈이 안 밝으면 모른다.

 소경이 그리 가면은 처음에는 길이 평평하게 좋다가 낭떠러지가 있어서  떨어져서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는 그런 길도 있을 수가 있고, 또 현재에는 아주  길이 좁고 험하지마는 조금만 지나면 대로가 쭉 널려서 아주 평안한 그런 길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눈이 어두워 놓으면 그걸 모른다  말이오. 현재 더듬어서 걸리는 것은 다 피하고 자꾸 좋은 것만 찾아가니까 지금은  평안하고 좋지마는 그게 나중에 어디로 결과적으로 미쳐 갈란지 모른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육신의 눈이 멀면 그 사람이 자기의 향방의 방향을 요량하지  못하고 지척을 분별하지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더욱 더  그러합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우면 자기 몸이 다 어두워지고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다 어두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과도 관련되어  있고. 마귀와도 관련되어 있고, 모든 인류와도 관련되어 있고, 만물과 관련되어  있는데 거게 대해서 깜깜하게 모르기 때문에 자기는 모르니까 바로 할 수 없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 눈이 밝아진다 그것을  말했습니다.

 또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 여덟 가지 힘쓰는 것이 나중에 보니까 뭐인고  하니 예수님을 아는 일에 힘씀이 되고 말았다 그 말입니다. '이런 것이 있어  흡족한즉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는 자가 된다.'  그러면 그렇게 이 여덟 가지 힘 쓴 것이 예수님을 아는 일에 힘씀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오. 이 여덟 가지 힘썼는데 여덟 가지 그것 힘썼는데 나중에 보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지식이 점점 정확해지고 넓어지고 발라지고 깨끗해지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된다 말이오.

 예수님을,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바로 알면 하나님에게 맡기지 자기를  맡기지 안 할 자 없고. 하나님에게 자기를 부탁하지 안 할 자 없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안 할 자 없고. 하나님에게만이 복종하는 그 생활을 하지 안 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 입으로는 하지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인간을 의지하고 인간에게 맡기고 자기가 자기를 책임지고  그런 소경 놀음을 하고 전적 멸망받는 그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더 알기를 원함은' 우리는 지식 중에 제일 큰 지식이, 제일 큰  지식이요 근본 지식이 무슨 지식인고 하니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만 아는  것입니다. 주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어떻게 생겼는가? 주님의 그 모양은 없습니다. 어떻게 생겼는가 말은 주님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가, 뭐 눈코가 있는 주님이 아니고, 주님은 형이 없습니다.

주님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것은 주님이 어떤  본질과 본성과 속성을 가졌으며 그 뜻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는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는 지식이 제일 근본 지식이요 그 다음에  알 것은 자기를 아는 지식이 다음에 건설 지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지식,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자기를 바로 알면 모든 만물을 바로 알게 되고, 자기와  하나님과 자기와 만물을 바로 알게 되면 거게 대해서 자기 행동이라 하는 것은  바로 하게 되고 그 모든 것은 영광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조직 신학이라는 그 조직 신학에는 신관이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관.

하나님을 어떻게 보느냐? 신관이라, 하나님을 어떻게 보느냐?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 하는 그 신관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계시를 어떻게 보이셨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게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쳤느냐 하는 그것을 아는  것이 순서의 첫째이고 그걸 알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신구약 성경이 가르쳐 주신 것인데 가르쳐 주신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또 성경을 보면은 자기는 어떤 자인가. 이래서 성경은  거울이라 이랬소. 거울을 보면은 자기 얼굴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구약  성경을 보면은 자기가 어떤 자라는 것이 환하게 거게 나타나고 있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이 계시해 보인  것이 뭐인가, 계시에 대한 지식이 제일 중요합니다. 왜? 계시에 대한 지식이 제일  중요한 것은 계시에는 첫째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모든 인간과 만물에 대해서 가르친 게 있기 때문에 제일 귀하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가르쳐 주는 그 지식만 암만 가지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 실존에  대해서는 실존에 대한 지식이, 실존에 대한 그 실존의 지식의 제일 중요한 것은  뭐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내가 참 어떤 자인가? 자기가 자기를 모릅니다. 자기가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은 원망, 불평, 시비, 미움, 모든 투쟁 요것만 가득 차 가지고 지옥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그게 뭐이냐?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다 합당한 그 현실에 보응을 주고 계시는데 자기가  자기를 모르기 때문에 내게 왜 이런 일이 닥쳤는가, 또 모든 나쁜 것의 불행의  원인이 자기인데 자기가 불행의 원인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불행만 보고서  원망을 합니다. 또 모든 행복의 원인도 자기입니다. 행복도 자기가 만드는 것이요,  불행도 자기가 만드는 것이요 지옥도 자기가 만드는 것이요, 천국도 자기가  만드는 것이요, 영광과 존귀도 자기가 만드는 것이요. 수치와 멸시도 자기가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은 주님을 아는데에 게으르지 않는  자가 된다 이 여덟 가지 힘 쓴 것이 주님 아는데에 힘 쓴 것이 되고 만다  그말이오. 이 여덟 가지 힘 쓴 것이 주님 아는 일에 힘 쓴 것이 된다 그러면, 주님  아는 일에 힘 쓴 것이 뭐이냐 하면은 나중에 보니까 자기 아는 데에 힘을 쓰는  것이 된다. 주님 아니까 자기 알게 됩니다. 주님과 자기 아니까 모든 인간을 알게  됩니다. 주님과 자기와 모든 인간을 알고 보니까 모든 만물도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여덟 가지 힘쓰는 것이 모든 것을 바로 아는 일에 힘씀이 된다.

 사람들은 앉아서 성경을 연구하면서 신학 박사가 될라고 뭐 이렇게 애를 쓰면  신학 박사라 하면 다 아는 줄 알아도 그 신학 박사가 그저 이제 그만 하면은 좀  성경을 연구하게 됐다 연구할 수 있다, 그만하면은 무엇을 자기가 스스로 좀  연구해서 알 수 있다. 깨달을 수 있겠다, 이렇게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그것이지 그게 그만 한문 글자 모양으로 넓을 박(博)자, 다 안다는 그 말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앉아서 책상 위에서 성경만 보고 사람들이 중얼거려서  말하는 그 말만 듣고 배워 가지고서 자기가 모든 것을 바로 알겠다고 하는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오.

 그래서, 여러분들 학습 세례와 세례 문답 할 때에 성경 연구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뭐이라고 여러분들 배웠습니까? 말해 봐요. 예? 몰라? 아, 성경 연구하는  법이 제일, 성경 연구하는데 제일 좋은 법이 뭐이냐 하는 것을 학습 문답 세례  문답 전부 다 했는데 다 잊어 버렸어? 몰라? 예? 아는 대로 행하는 것이 성경  연구법에 제일 좋은 법이라고 하지 안했어요? 자, 이거 지금 이 시간 물을 때에  속으로 다 알고 있는 사람 손 들어 봐. 알고 있던 사람 손 들어 봐. 알고 있었던  사람 다 손 들어 봐  이러니까, 여반이 암만 중얼 중얼해도 천국 가 보면은 내나 천해져 버려요. 요새  여자 세계가 되는데 세상이 꺼꾸로 되니까 여자의 세계가 되고 남자는 전부 여자  말 안 듣는 남자가 있는가 하니까 다, '자기 마누라 말, 뭐이든지 무조건 마누라  말만 듣는 사람 이리 나서시오' 하니까 다 나서거든 한 놈만 안 나섰더래요. '너는  마누라 말 안 듣나' 하니까 '우리 마누라가 여럿이 가는데로 가지 말라 하더라.'  그러면 그놈은 더 듣는 놈이라. 이거 타락해서 그런 것입니다. 타락해서. 자,  남자가 여자 말 들어 가지고서 제일 처음에, 제일 처음에 손해 본 것이 뭐이야?  ○○○이가, 뭐꼬? 선악과 먹어서 뒈졌지. 그리고 또 그렇다고 어떤 남자들은  말이지 저는 밥을 똥이라고, 똥을 밥이라고 하면서 그리 쎄워 대 가지고 '이게.

이게 밥이다.' 똥을 밥이라 하는데 마누라가 있다가 '아, 그거는 밥이 아니고  똥입니다' 이라니까 똥이라고 나한테 순종 안 한다고 몽둥이로 두드리고 하는  그런 개 같은 그런 남자도 있어. 여기도 그런 것들이 있어. 그런 거 다 회개해야  돼. 그까짓 거 남자면 쑥덩이 남자인가? 남자라는 뜻을 똑똑히 알라면 그는 모든  일에 다 원만성 가지고, 원만성 독립성을 가지고 인간으로서는 독립성을 가져서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소속이 되고 자기를 따라올 수 있도록 복의 근원이 되고  머리가 될 수 있는 그것이, 그 위치를 가리켜서 남자라 말하는데 남자가 뭐인지도  알지 못하고 힘만 가지고 날뛰는 그런 거 있어.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씀이 됩니다. 앉아서 암만 책상  위에 앉아 가지고서 성경을 연구하고 암만 해 봐야 하나님이 뭐인지 알아서, 뭐  입으로야 잘하지. '신관은, 누구가 신관은 누구는 하나님을 이렇게 봤다 누구는  하나님을 이렇게 봤다.' 그거 많이 알면 그것이 신학 박사요. 그거 암만 알아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바로 알라고 하면은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이것이 주님을 연구하는 일의  열정 열심이라 그말이오. 이 여덟 가지에 열심을 내는 것이 주님 연구의 열심이라  그거요.

 또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또 열매 맺는 사람, 자기를 위해서 좋은  결과.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고. 그게. 오늘의 결과는 내일이 아닙니까? 오늘의  결과는 내일이 아니오? 젊을 때 결과는 이제 늙어서가 아니오? 세상 결과는 영원  무궁한 내세가 아닙니까? 이러니까, 결과가 좋아진다 그말이오. 자꾸 미래에  결과가 좋아지도록. 결과가 좋아지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욕심을 부리고 오만  결심을 하고서 온갖 애를 써 봤자 그거는 다 방편이 틀리기 때문에 안 된다  그말이오. 좋은 열매, 자기로서 현재보다 미래 영원 장래가 점점 좋은 그런 결과가  맺도록 네가 할라거든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써라.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은 열매 맺는 일에 힘쓰는 것이 된다 이 여덟 가지  힘쓰는 것이 주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쓰는 것이 된다. 이 여덟 가지 힘쓰는 것이  눈이 환하게 밝아지도록, 모든 것을 전체를 잘 볼 수 있도록 눈이 밝아지도록  힘쓰는 일이 된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여덟 가지 힘쓰면 몇 가지를 힘쓰는 것이 된다고 배웠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힘쓰는 것이 된다고 배웠습니까? 오늘 아침에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은 몇 가지 힘쓰는 일이 돼 가지고서 잘 알고 가지게  된다 했습니까? 자, 몇 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이래 뻐뜩 들고 가리켜  이래, 이래 들고. 여기 남 반도 뻐뜩 들어요. 손가락 손을 쭉 펴 봐요 ○○○  목사님. 모본이 돼야지. 이게 뭐이요 이래 가지고. 오토바이는 잘 타더니만. 이래  봐요, 이래 이래. ○○○ 목사님, 이래 봐요. 이래 쭉. 이래야 다른 사람이  '아이구야, 우리 ○목사님 손을 이래 드니 나도 이래 들어야 되는구나' 이렇지.

이래 들면 그러니까 남의 모범이 될라 하면 되다고. 되.

 자, 오늘 아침에 이 여덟 가지를 힘쓰면 몇 가지 힘쓰는 일이 된다고, 아는 사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새로. 또 우리 ○ 목사님 요래 든다. 하 그거 좀 좋은 거  아니라. 아, 등대라.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 하기 때문에,  아, 이거야 내가 손 드는 것도 이자 요만치들면 '아이구 목사님 저래 드니까 아마  저래 드는 것이 제일 좋은 가보다 나도 저래야 되겠다' 이럴 것이고 또 이라면  '야, 이거 손 들 때는 이런 일은 막 이래 드는가 보다 와 저래 들까? 하나님에게  대한 일이요 구원에 대한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것도 빛을  보이고 본을 보여야 되겠다 해서 이래 드는구나' 그만 들어, 들어 버리지. 새로  한번 들어봐요. 여덟 가지 힘 쓰면 몇 가지 힘 쓰는 일이 됩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옳지. 장로님, 우리 ○○○ 장로님도 ○○○ 목사님도 잘 안다.

보니까, ○○○ 장로님도 보니까, 요래 들었어? 예? 요래 들었어 요래 들었어?  옳지 요래, 이래 막 드는구나. 팔이 짧아 그래. 키가 작아 팔이 짧아. 있는 대로 다  들었어.

 자, 이제 이 셋으로 이래 든 사람 손 들어 봐. 셋으로 이래 든 사람. 여기  여반에는 안 든 사람 많아. 바보라. 몰라. 그러니까, 몰라 놓으니 그래 놓으니  예수를 못 믿어. 암만 믿어 봤자 헛일이오. 어제 아침에 말하지 안 했소? 자기 한  사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가 바로 되면 모든 만물이  다 자기 위하는 것이 되고. 자기만 바로 되면 자기에게 관련된 것은 다 행복되게  잘되게 되고, 자기가 바로 되면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는 다 하나님이 그걸 멸하셔  버리고, 이러니까, 자기에게 모든 문제가 다 달린 것을 어제 아침에 증거를 했다  말이오. 어제 아침에 창세기 12장 1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증거하지 안했습니까?  오늘 아침에 이 여덟 가지만 힘을 쓰면은 첫째 주님을 아는 일에 힘씀이 되고  또 자기의 좋은 결과를 맺는 일에 힘씀이 되고, 또 눈이 환하게 밝아지는데에  힘씀이 된다 하는 것을 여게 기록해 놨다 그말이오 한번 더 읽어볼까요?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첫째로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주님을 아는 일에 그게 열심이라. 그 열심이 주님을 아는  일에 열심이 된다 그말이오. '않고' 또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열매를 자꾸 많이 맺어. 열매를 자꾸 맺는 일이 된다 그말이오. 그거 힘쓰는 것이  열매 맺는, 자기의 좋은 결과를 맺기 위해서 힘쓰는 일이 된다 그거요. 또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이러니까, 이거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니까 이것을 힘쓰는 자는 눈이 환하게 밝아 가지고 멀리 전체를 다,  미래 과거 다 알고, 공간적으로 우주를 다 알고, 또 영계까지 다 알고, 자기로부터  모든 인류 만물, 하나님. 전체를 다 환하게 보고 알게 된다 그말이오. 그렇게.

본문에 그래 기록돼 있지 않아요? 이러니까, 이 세 가지를 힘을 써야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이걸 가리켜서 팔 덕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여덟  가지 면으로 힘쓰는 거 요 힘쓰는 거는 내일 아침이나 언제 시간 있으면  말하겠습니다.

 여덟 가지로 힘쓰는, 여덟 가지 면으로 힘을 쓰면은 이제 세 가지 열심히 힘쓰는  일이 된다. 하나는 주님 아는 일을 힘쓰니까 주님이 점점 알아지고 점점 똑똑히  알아지게 쉽고, 또 자기를 위하여서 열매 맺는 것. 그러면 좋은 결과, 자꾸 좋은  결과를 맺는 일에 힘쓰는 일이 되기 때문에 점점 좋은 결과를 맺는다. 좋은  결과를 맺으면은 농부되신 아버지는 자꾸 열매를 많이 맺도록 자꾸 북돋워 준다  했지요. 또 이 여덟 가지를 힘을 쓰면 힘 안 쓰면 소경이고 원시 못 한다  했으니까 힘쓰면 눈이 밝고 멀리 보게 된다 그말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 세 가지.

여덟 가지를 힘쓰면 이 세 가지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리석어. 학개서 2장에 보면은 선은 그 선  하나 있다고 모든 것이 선해지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악은 하나 있으면 모든  악이 다 연결돼서, 악에는 모든 악이 다 연결됐기 때문에 악 하나 가지면 모든 악  다 가진 사람이 돼 버리고 말이요. 선은 하나 가져도 하나 그것뿐이지 선 하나  가졌다고 모든 선을 다 가진 것은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선은 고 개별적이요 죄는 전부 연관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꺼꾸로라. 선은 하나 선 해 놓고 '하나 이거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이제 복이  되겠지.' 선 하나 해 놓고 이거 하나로 전부가 다 의롭게 하나님이 인정해 줄 줄로  이렇게 알고. 죄 짓는 것은 '요 하나만 죄 짓지 뭐 다른 죄 내가 지었나?' 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죄는 그 죄 하나로만 생각하고서 많은 죄 연관 있는 죄를 생각지  않기 때문에 꺼꾸로 생각하는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여덟 가지만, 힘쓰면 이 세 가지 힘쓰는 일이 된다. 세 가지에  힘쓰는 일이 되고, 세 가지를 힘 쓸라고 사람들이 애를 쓰기는 쓰지마는 세 가지  그것만 할라고 애를 쓰니까 돼집니까? 여덟 가지 하면 세 가지 그거는 저절로  되는 건데. 고 세 가지는 저절로 되는 거라. 하나님 아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 또  좋은 결과 맺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 또 심령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 뭐 저절로 돼? 이 여덟 가지만 힘쓰면 그 세 가지는 저절로 됩니다.

그런데, 이 여덟 가지를 힘 쓰지 안하고 고 세 가지 그것만 되도록 알라고 애를  쓰니까 안된다 그거요. 헛일이라, 방편이 틀려서.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새벽기도 나오도록 해요. 권찰님들은 자기 구역에 속한 사람들  새벽기도 나오도록 자꾸 권면해요. 나와서 배워야 알아야 되지 모르면 모릅니다.

일생 동안 목사 노릇을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있습니다. 구원이 뭐인지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참 너무 이 진리를 모르고 또 진리를 모르면  자꾸 배워야 될 터인데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못 가르치고 자기가 꺼꾸로 알고  있는 거 바로 알면 교인들에게 배척 당할까 싶어서 거기 가지도 못하게 합니다.

이러니까, 그거 이리라 말이오. 이리. 양을 잡아 먹는 이리. 여러분들이 정신차려서  뭐 새벽기도 나와야 될 때 나오지 안하고 이게 뭐입니까? 다 나오면 여기  뻑뻑하게 차는데 이래밖에 안 나오니까 그 사람들은 뭣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그리고, 어짜든지 기도의 줄을 끊지 마십시오! 인내가 중요합니다. 계속해야  돼요. 계속하지 않으면 성과를 못 봅니다. 계속을 해야 됩니다. 계속 힘써야 돼요.

힘에서 힘이 나옵니다. 힘 쓰면 자꾸 힘이 나오고 고만 힘 안 쓰게 되면 자꾸  가라 앉아 버리고 말아요. 그러기에 있는 자에게는 더 주어서 풍성하게 하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도 빼앗아 버린다 했습니다. 힘을 안 쓰면 있던 힘도 다 없어져  버려요. 하나님이 뺏들어 버려. 힘을 쓰면 자꾸 더 하나님께서 힘을 줘서 더 많이  힘 쓸 수 있도록 되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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