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주일

 

1986. 11. 3. 새벽(월)

 

본문:히브리서 4장 1절∼2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여게 여러번 읽는데,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을 여러번 했습니다. 3장 18절, 바로 그 전절인데, 그 전절, 3장 18절이 3장 끝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러면 안식에는, 안식일이라 정한 것이 그 안식이 현재에 있습니까 미래에 있습니까? 현재에 있지 안하고 미래에 있습니다. 그러면 일차 안식에 안식할 그 세계는 이 우주 안에 있었고 우주를 말했고, 땅과 바다와 공중, 이 공중 이 모든, 이 셋은 합해서 이 우주입니다.

이 우주를 첫째 안식을 잘 지켜서, 첫째 안식할 그 규례를 잘 지켜서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합격이 됐다고 하면 우주를 다 하나님이 주셔 가지고 이 모든 것을 정복하고 통치하고 이렇게 주관하고 마음대로 이렇게 저의 소유로 사용할 수가 있었는데 그들이 안식에 들어가는 이 안식일을 주신, 안식일 주신 알맹이는 행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행했습니다. 알맹이는 행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행했습니다.

그러면 껍데기만 행한 것은, 그들이 껍데기 행한 것은 에덴동산에 있으면서 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 있기는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기는 있었지마는 알맹이는 뭐이냐 하면은 알맹이는 네 가지를 지키라 했는데 한 가지는 지켰지마는 세 가지는 지키지 안했습니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 먹었지, 또 동산을 다스리라 했는데 다스리지 안했지, 지키라 했는데 지키지 안했지, 다스리고 지켰으면 제가 동산에 배암이 들어오지 못하게도 했을 것이고 또 다스리라 했지 다스림을 받으라 소리는 안 했는데 배암에게 다스림을 받았다 그말이오. 배암이 시킨 대로 했으니까 다스림 받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알맹이 넷을 지키면, 지켰으면 이 우주를 하나님이 주셨을 터인데 그만 그 지키지 아니함으로 우주는 빼앗겼습니다. 우주를 누구에게 빼앗겼습니까? 배암. 배암은 마귀가 두터쓰고 나온 것입니다. 배암을 이용해 가지고 나왔지 배암이 그런 거는 아니고 마치 마귀가 지금도 사람을 이용해 가지고 이렇게 역사하는 것처럼 배암을 이용하고 배암은 거기 이용당해 가지고 그 도구로 이용당했지 속에 일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얼마 전에 공부했는데 이 마귀가 모든 피조물 중에 어떤 것이든지 마귀는 제가 종으로 이용을 할 수가 있습니다. 종으로 이용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우주 안에 있는 지구상에 있는 것은 마귀가 뭐 대통령도 이용할 수 있고, 왕도 이용할 수 있고,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이용할 수 있고, 짐승도 이용할 수 있고, 이 물질도 이용하고 모든 것 다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왜 이용하게 됐느냐? 이용하기를 언제부터 이용하게 됐느냐? 이용하게 된 그 때는 에덴동산에 아담 하와에게 이 모든 것을 다 우주의 모든 물질계 안에 있는 피조물을 줬는데 아담이, 하나님이 안식 세계, 안식 세계 그들의 안식 세계는 이 우주를 안식 세계로 상속받기로 했는데 이 우주를 받을 수 있는 이 우주를 받을 수 있는 이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준비를 안식일날 해야 되는데, 안식일날 하라는 것은 안식일이라 하는 그날 일 안 하고 노는 게 안식일이 아니고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모든 준비를 갖추는 날이라고 해서 안식일이라 했는데 그 사람들도 껍데기 안식을 지키는 껍데기만 했지 속에 알맹이는 하지를 못했다 말이오. 알맹이 안 한 거는 그 안식일날 하나님이 명령하신 거 네 가지를 지킬 수 있는 그 능력을 얻어야 될 터인데 거게 대해서 관심이 없어서 다 실패했습니다.

왜 요것을 자꾸 내가 강조하느냐 하면은 일차 안식에 사람들이 껍데기만 지키고 알맹이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일차 안식에서 안식 준비를 못 하고 마귀에게 뺏겨 버렸습니다. 안식에 들어가는 세계를 마귀에게 뺏겼습니다.

어떻게 뺏겼느냐? 마귀는 그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이 네 가지 지키면 주신다 이란 그 네 가지를 자키지 못하게 했고 아담 하와는 마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네 가지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네 가지 지켰으면 영원히 아담 하와의 것이 될 터인데 아담 하와가 이 네 가지를 미혹받아 가지고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아담 하와의 것이 되었던 이것이 마귀 것이 됐습니다.

이래서 우주 안에 있는 것은 마귀가 다 이걸 주장하도록 이렇게 돼 가지고 있었는데 만일 예수님이 도전하지 안했었으면 이것은 영원히 마귀의 것이 됩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도전하셔 가지고 예수님이 마귀를 이긴 이후는 이제는 마귀는 예수님에게 정복을 당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는 영계도 마귀의 영계가 안 되고, 영계에서는 범죄해서 영계에서 쫓겨 나왔고 이 영계와 물질계 그 사이 높은 위치에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 도전해 가지고서 승리해서 이 우주에서 쫓겨나왔습니다. 우주에 쫓겨 나와 가지고 지금 예수님의 종으로서 이 세상에서 예수님에게 이용을 당하고 예수님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가 지금은 우리에게 대적을 하되 능력을 가지고 대적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요만한 정도로 네가 사람을 시련해라, 연단해라.’ 또 ‘사람에게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시험해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내에서 하지 그 범위를 넘어서는 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은 “사람이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나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하지 안한다” “그는 미쁘사 사람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그는 마귀에게 사람이, 그 사람이 전심 전력만 기울이면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정도내에 있는 시험을 하지 그 사람이 감당을 못 할 그런 시험은 하지 못하도록 하니까 못 했습니다, 그전에는 뭐 예수님이 승리하기 전에는 제 마음대로 했고 제 주장대로 했지마는.

그래, 또 “시험을” “감당 못 할 시험을 닥칠 때에도 하나님께서 미리 피할 길을 내사 감당하게 하셨다” 그러면 피할 길을 내서 감당하게 하셨다. 그게 피할 길 냈다 하는 것은 뭐입니까? 피할 길은 뭣이 피할 길입니까? 여기 반사 선생님들, 피할 길은 뭣이 피할 길이지요? 피할 길은 성경 읽고 기도하고 또 자기가 미리 자꾸 연습을 하면은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 보고, 기도하고, 자기가 자꾸 연습해 보면 나중에 그 시험 닥칠 때는 이겨버린다 그말이오.

예를 들면 앞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예수 못 믿구로 믿지 마라 이랄 때는 그것이 제가 제 주장으로 주권으로 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범위내에서 하고 있습니까? 시키시는 범위내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이 공산주의자들이 ‘예수 믿으면 죽인다’ 이렇게 하니까 그거 예수 믿는 거 반대하는 것 같지마는 내나 주님이 그것을 시켜 가지고 예수를 어느 정도 믿느냐 하는 것을 연단시키고 연습시키고 연성시켜서 그의 실력대로 무궁세계에 보응하실라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그러면 이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찔러 죽일라고 예수님을 내놓으라고 이렇게 할 때에 그 피할 길은 어떤 것이 피할 길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피할 길을 어떻게 주셨습니까? 피할 길이 뭐입니까? 성경을 자꾸 읽어서 성경 진리를 깨닫고, 또 하나는? 기도를 하고, 또 하나는? 연습을 해봐야 돼, 연습을.

연습을 어째 연습해요? 저 천막 안에 굴에 앉아서라도 또 예배당에 앉아서라도,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너 이놈 이렇게 예수 믿는 걸 내놔라’ 이렇게 시험하는 걸 저 혼자 자문 자답을 해봐요. 자문 자답을 해보고 저 혼자 그래 해 봐요.

‘그러면 이렇게 되면 어찌 되느냐?’ 그렇게 되는 데에 처음에는 겁이 나지마는 몇 번 기도하고 이라면은 뭐 나중에 가서는 뭐 ‘이미 죽을 생명인데 주를 위해서 죽으면 가치 없는 늙어 병들어 죽을 생명 주님과 진리 위해서 죽으면 얼마나 가치가 있지 않느냐? 또 그뿐 아니라 참새 한 마리도 주님이 허락지 안하면 땅에 떨어지지 안하는데 제까짓 것들이 암만 그래 쌓아도 우리의 생명을 털끝만치도 제가 일 분도 주권할 수는 없다.’ 요걸 딱 믿는다 말이오. 요거 믿는 사람은 그게 조롱해 봤자 웃는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하면 피할 길 내는 것입니다.

이래 일차 안식에 안식 준비는 알맹이와 껍데기 있는데 알맹이는 준비 안 하고 껍데기만 준비해 가지고 그만 실패했습니다. 알맹이는 그때는 네 가지라. 네 가지 사람들이 준비해 가지고 잘되면 우주를 주기로 했는데 우주를 그만 뺏겨버려 우주는 악령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세상의 과학들이 지금 우주를 다 차지하지는 못했지마는 우주를 저거 마음대로 저거 힘만 있으면 우주를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도 있고 달에도 별에도 가고 이래 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지금 우주 생활이요 우주 활동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게 아니고 그거 전부 마귀 작용들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학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마는 과학의 주인은 마귀가 과학의 주인이 돼 가지고 그걸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차 안식을 잘 지켰으면 이 소망 되는데 잘못 지켜 실패해서 하나님께서 이차 안식을 지키도록 주실 때에는, 이차 안식을 지켜서 이차 안식 세계에 들어가도록 해 주셨는데 이차 안식 세계는 육체의 이스라엘,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까지의 그때의 이스라엘 나라들은 다 이차 안식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차 안식에 속한 사람들인데 이차 안식도 껍데기만 지키고 알맹이를 지키지 못해 가지고 다대수가 다 멸망을 받았고 이제 알맹이 지킨 사람들은 그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래서 4장 10절, 히브리 4장 10절에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간 자는” 그러면 들어간 자, 들어간 자가 있기 때문에 “들어간 자는” 했습니다.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자기 일을 쉰다 이라는데 이 사람들이 전부 잘못 깨닫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쉬시니까 하늘나라는 아무것도 일 안 하고 있는 나라라. 하늘나라는 일 안 하고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쉬셨다 말은 뭘 쉬셨느냐? 창조를 쉬셨다 말이오.

창조를 쉬신 것은 인제 쉬어 가지고 또 한다는 그게 아니고 “창조를 쉬셨다” 창조를 끝마쳤다, 이 끝마쳤다 이래 놓았는데 “쉬셨다” 이것도 번역하는 사람들이 잘 몰라서 이거 지금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쉬셨다 이랬는데 쉬셨다 한 것을 창세기 2장에는 보면 쉬셨다 말도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지으시는 일이 다 끝났다, 다 이루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요 쉬셨다 말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일이 다 이제는 끝마쳤다 이랬으면 좋을 건데 요거 쉬셨다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미혹을 받게 됩니다. 요거 히브리어로 기록해 놓은 건데, 히브리어로 기록했는데 히브리어는 옛날 고전어입니다. 그때에 지금으로부터 사천여 년 전에 세상에 있던 옛날 말 고전어라. 옛날 말이라.

옛날 말이기 때문에 미개한 말이니까 그 말의 종류가, 지금은 예를 들어서 ‘문’ 하면 문에 대해서 한 몇십 가지 말이 있어. 문을 뭐 우리 나라 말에도 문을 뺄쫌하이 열어라, 조금 더 열어라, 적게 열어라, 문을 살며시 닫아라, 매 닫아라, 뭐 문을 잠가라, 뭐 별별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지만 처음에 말은 ‘문’ 하면 다 됐다 말이오.

지금 새들이, 새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새가 그렇게 사람 모양으로 방언이 많은 게 아니라 몇 가지 말밖에 없어요, 몇 가지 말. 몇 가지 말 있는데도 그 말은 꼭 같은 말이요, 보면. 짹짹짹짹 이랍니다. 짹짹 해도 새소리를 많이 들은 사람은 압니다. 짹짹짹거리면 ‘저게 무슨 저희들이 원수인 맹수가 와 있구나. 배암이 와 있나, 저게 무슨 독수리가 와 있나, 무슨 새저리가 와 있나? 저의 적이 왔다고 지금 고함을 모두 지르고 있구나.’ 고거 알 수 있습니다.

또 새소리 들을 때에 ‘저거는 지금 저거끼리 좋아서 짹짹거리고 있구나’ 그걸 또 알 수가 있다 말이오. 또 할 때에 ‘저 아마 새끼가 지금 없어 새끼를 찾고 있다’ 그 알 수가 있어. 몇 가지 말은 알 수가 있어요. 좀 경험해 보면 알 수가 있어. 저도 새 소리 몇 가지는 알 수가 있어요. 그러면 ‘저 뭣 때문에 아마 저라고 있다’ 이거 모양으로 이제 새들은 미개하기 때문에 ‘짹’ 하는 거 가지고 여러가지 말을 하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원어라 하는 것은 그렇다 말이오, 옛날 말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말을 이리도 할 수 있고 저리도 할 수 있고 이렇게 번역은 얼마든지 여러 수십 가지로 할 수 있어. 수십 가지로 있으니까 어떤 사람은 저쪽 구석에 번역으로 하고 어떤 사람은 이쪽 구석으로 번역하고 이라니까 그 번역하는 것이 내나 영 그렇게 틀린다 말이오.

틀리는데, 이걸 모르고 그 원어를 가지고 막 날뛰는 사람은 이 원어 모르는 사람에게 기합을 줍니다. ‘이 원어에 이렇고 저렇고’ 원어에 이렇고 하는데 거게 기합을 당하면 안 돼요.

내가 그렇게 기합을 좀 당했어요. 기합을 좀 당했는데 나는 원어를 모르거든.

당했는데, 내가 하나 알기는 ‘이게 미개어고 야만어니까 이거는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는데 이게 뭐인가 이거 지금 원어 하는 사람들이 기합을 주고 이 고자세를 해 가지고 이라니까 이거 저거 교만한 것으로 저거가 빠져서 그 엉쿠렁이에 빠져서 다 사망을 하고 있지 그 모르는 사람은 손해 없는데 아는 사람이 손해 본다.’ 이래서, 그래 인제 제가 고려신학교 들어가니까 쏘마란 말이 있고 싹스란 말이 있고 두 말이 있어요. 싹스라 말은 부패성이라 말이고 쏘마라 말은 그 몸이라 말이고 이리 어찌 됐지, 아마. 그랬는데 전부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요” 이래 있지 않습니까? 육체의 생각은 사망인데,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라는데 그 육체라는 그 원어가 싹스라.

나는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라” 그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부패성의 생각은 사망이라’ 이라는데 그 부패성의 생각이 사망이 아니고 육체는 육체인데 그 부패성이라고 말하니까 내가 원어를 모르니 막 나는 우겨대니까 그만 나는 우겨박힐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신학교에서 가니까, 나는 내치 돌아다니면서 설교하기를 육체를 부패성으로 보지 안하고 육체를 이 고기덩어리로 봤다 말이지요. 타락한 고기덩어리로 이래 봤는데 이라니까 자, 박윤선 목사님 그 교장도 그리 말하지, 그 모두 교수들이 다 그렇게 말하지, 원어 학자들이 다 그렇게 말하지, 이래 놓으니까 나는 꼼짝을 못해, 내가 깨달은 게 옳기는 성경 전부 보면 옳은데 이거 그렇게 말하니까 어짤 수가 없다 말이오.

그래 우리 사위된 ○○○목사가 그때 고려신학교에 다녔어요. 다녔는데, 그 사람은 제게 은혜를 받아 가지고 늘 이렇게 다녔었는데, 그래 내가 그 사람에게 물어봤어.

‘야,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육신이라는 그 말이 있는데 그 육신이 원어가 싹스가 쏘마가 그걸 좀 알아봐라.’ 이라니까 그 원어를 잘 모르지마는 그때 사전을 찾아 가지고 이래 보니까 육신이 싹스로 돼 가지고 있다 말이요, 싹스로. 싹스로 돼 가지고 있어. 그 사람들이 그걸 몰랐거든. 싹스로 돼 가지고 있어.

그래 내가 있다가, 그만 그때 고거 보고 난 다음에 뭐 호통을 쳤어. 어데 싹스를 부패성이라고 해석을 하느냐? 그러면 예수님이 부패성 되어 온 것이라 말이냐?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육신 그거 원어가 뭐꼬?’ 이라니까, 이 사람들이 뚜르르 가 가지고 보니까 싹스거든. ‘그러면 싹스가 부패성이라면 예수님 이 부패성 돼 온 것이 예수님이라 말이냐?’ 이래 놓으니까 얼마나 야나지게 쥐박혔소? 꼼짝을 못 하고 당장에 그만 그 신학교에 싹스라 말이 싹 쓰러져 없어버려. 싹 없어져버려 싹 고쳐졌다 말이오.

이렇게, 여러분들이 뭐 공연히 대학 못 다닌 사람은 막 대학에 들어가면 뭐 있는 것같이 야단을 지기는데 눈을 깜짝거리며 좀 생각해 봐요. 생각해 보면은 뭐 대학도 별것 아니고 또 그뭐 신학도 별것 아닙니다. 자꾸 그만 기합에 눌리지 말아요. 그러니까 예수 한 분이면 다 돼요. 이러니까 기합에 눌리지 말고 조심스럽게 이렇게 정신차리면 됩니다. 그래서 속담에는 ‘사람이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뺏기지 말아라’ 그런 말이 있어요.

이렇게 일차 안식에서 그분들이 껍데기만 지키고 알맹이 지키지를 못해서 실패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평안하게 살기만, 에덴동산에 평안하게 사는 거, 에덴동산에 평안하게 사는 그거는, 이 안식일날 에덴동산 평안히 놀고 살고 있는 것은 껍데기 지키는 것입니까 알맹이 지키는 것입니까? 그건 껍데기 지키는 것이라 말이오.

알맹이 지키는 거는 그날은 에덴동산에 있으면서 일이 바쁘다 그말이오. 뭐? 세 가지. 자, 이 선악과 안 먹도록 해야 되지, 또 이 동산을 자기가 뭐 다 운영을 해야 돼. 다스려야지. 자기가 운영을 해야 되지, 다스린다 말은 자기가 운영해야 된다 말이오. 또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야 되는데 그만 이 세 가지를 하지 안하니까, 세 가지 가운데 뭘 하지 안해, 뭘 처음에 안 했습니까? 뭘 처음에 하지 안했소? 지키지 안한 거 했어. 순서는 다스리는 거 먼저 있지마는 아담 하와가 안한 것은 지키지 않은 것이라. 지키지 않으니까 이 배암이 들어왔거든. 배암이 들어오면 ‘이놈 어디 들어오노?’ 쫓아내 버려야 되는데 들어오는 걸 용납했다 말이오.

그라니까, 들어와 가지고,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두번째는 뭐 했습니까? 두번째는 뭘 범했소? 다스리는 거 범했다 말이오. 다스리면 배암이 뭐라 하면 배암을 호통을 쳐서 배암을 이래라 저래라 그럴 건데, 자, 배암에게 피동됐소 배암이 하와에게 피동됐소? 배암에게 피동, 다스리는 거 안 했다 그거요.

그라고 난 다음에 셋째는 뭐 됐습니까? 먹지 말라는 선악과 먹었다 말이오. 죄라 하는 게 요래 들어옵니다. 차차 차차 요래 들어와.

이랬는데, 이차 안식일 주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일차 안식을 줄 때와 이차 안식을 줄 때에 약속하신 안식 세계가, 안식 세계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안식 세계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자,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 여기 어제 모두 뭣 했어? 다릅니다, 달라. 다른 사람은 왜 손 안 들기를 왜 손 안 들어? 달라.

이차의 안식일에 안식 세계를 준 것은 우리가 받는 안식 세계와 다릅니까 같습니까? 같습니다. 같애요. 요걸 자꾸 구별해야 마귀에게 틈을 탈, 마귀의 유혹 받지 안해요. 이걸 모르면,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 그뭐 암만 그래도 건설구원은 다 헛일입니다.

안식 세계는 이차 안식일을 준 그들의 소망이 되어 있는 안식 세계나 삼차 안식 안식 세계를 주신 이 소망의 세계나 같은 세계입니다, 같은 세계.

같은 세계인데, 그러면 일차 안식 세계에 들어가도록 안식일을 줬는데 다른 것이 뭣뭣 다르냐? 안식 세계가 다릅니다. 맞습니까? 내가 지금 말하는 게 맞습니까? 안식 세계가 다릅니다. 일차 안식일에서 성공해서 소망하고 들어갈 수 있는 안식 세계와 이차 안식일 주실 때에 성공해서 안식 세계에 들어갈 그 안식 세계와 안식 세계가 다릅니다.

일차의 안식 세계는 이 우주 안에 있었고 또 이차의 안식 세계는 영계에 있습니까 우주 안에 있습니까? 영계에 있습니까 우주에 있습니까? 우리 ○○○장로님? 인제 자꾸 시험을 쳐서 인제 좀 커 나가야 되지 그래 ‘뭐 예수 믿는 거 쉽다’ 예수 믿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 믿는 게 쉽다 이래 가지고 그러니까 놀며 믿어도 된다 그거요. 자, 인제 뭐 어제 종일 배웠으니까. 영계에 있어.

자, 영계에 있다고 대답했는데 그거 빵점입니까 백점입니까? 백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손 놓고. 빵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빵점이야, 빵점. 나는 빵점. 빵점, 왜 빵점이라? 우주와 영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입니다. 알겠습니까? 우주와 영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 에베소서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 있어요. 우주와 영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가 이차 안식에 준비 잘해 가지고 들어가는 그 안식 세계입니다.

그러면, 일차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이 약속을 주신 것과 이차 안식에 들어가는 안식의 약속을 주신 것이 소망이 다릅니다. 안식 세계가 다르요. 안식 세계가 다르고, 안식 세계가 다르고 또 다른 것이 뭣이 다릅니까? 일차 안식에는 대속의 이 길이 없었는데, 대속의 길이 없고 제 단독이 하도록 했는데 이차 안식에서 이 대속의 길이 마련됐습니다.

왜? 일차 안식에는 그때는 마귀도 없었고 죄도 없었고 이런 미혹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힘으로써 그저 깨어서 해 나가면 되지마는 이차 안식에는 벌써 마귀가 점령을 해 가지고 이래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힘을 써봤자 이미 다 첫째 아담이 범죄한 그 죄에 동참해 가지고 다 정죄받아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 이차 안식 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정죄받아 가지고 죄 아래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죄를 벗을 수 있는 이 대속의 길을 열어 주지 않으면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 그말이오. 이래서 대속의 길을 열어 준 것이 일차 안식과 이차 안식이 다릅니다.

대속의 길을 열어 줬는데 그러면 우리와 그들과 같은 대속의 길을 열어 줬는데 그들의 대속의 길과 우리의 대속의 길이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다른 점이 뭐이지요? 그들은 예비, 예약적 예표적 대속을 주셨고 우리는 완료되고 완성된 대속을 우리에게 줘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꼭 대속은 같은데 그들은 예약이요 예표의 것이요 우리는 이미 완성된 그 대속을 우리에게 줬기 때문에 그들은 미래에 있는 대속을 바라봤고 우리는 이미 대속이 완료되어 있는 그 대속을 우리가 입고서 구속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다른데, 그러면 이차에 그 안식을 준 안식의 껍데기는 뭐입니까? 이차 안식을 주실 때에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준비하는 데에 껍데기는 뭣이 껍데기입니까? 녜, 일하지 안하는 것이 껍데기입니다. 알겠습니까? 일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안식에 일하면 죽였습니다.

일하지 않는 그것은, 일하는 데로 기울이지 말고 전부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차 안식을 준 거게다가 막 기울여서 그리 막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 쏟으라고.

그리 전심 전력을 기울여 쏟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데 헛김이 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일하지 말라 하는 건데 헛김이 새지 못하라 하니까 헛점 안 새는 그것만 야단치고서 이리 기울이는 일을 안 했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해가 돼요? 이차 안식 줄 때 그들이 외식으로, 일차 안식과 같이 외식으로 망한 것은 껍데기만 행했지 속에 알맹이를 행하지 안했다 그거요. 껍데기 행한 거는 뭐입니까? 이것은 안식일날 이 모든 이런 일 못 하게 하는 그것만 저희들이 지켰지 속에 알맹이는 일을 안 하고, 뭐 하라고 일 안 해? 일을 그런 일을 하지 말고 딴 일 하라 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이차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이 준비, 안식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요소들과 지식과 능력과 그 모든 준비들을 갖추어서 받는 것이 이것이 그 안식일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날 이차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모든 구비 요소의 은혜를 받는데 내가 표현하기를 종자적으로 받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거 인제 종자적으로 받는다. 그러면 성경에도 그걸 인용을 했소. 씨종자로, 씨라 이거. 그러면 우리가 중생된 것은 하나님 말씀의 씨로 됐다. 씨로 됐다 말은 이 세상에서 된 요것이 무궁세계에 이렇게 얼마든지 커나간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자, 우리가 산에 가면은 우리 양산동 산에 소나무 큰 거는 내 아름으로 한아름 이래 되는데, 이만치 벌어지게 한아름 되는데 이제 그 소나무가 어데서 나왔습니까? 솔씨에서 나왔다 말이요, 솔씨. 솔씨는 조그만하지 않습니까? 솔씨는 조그만하지마는 솔씨 속에서 그 큰 나무가 나왔어요.

이러니까 이제 그 큰 나무로 말하면 솔씨에서 나온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 이 안식일은 무궁세계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그 모든 실력을 갖추는 그 실력을 안식일날 종자적으로 받는다 그말은, 씨종자적으로 받는다 그말은 작지만 그 모든 요소가 거기 다 들어 있다 그말이오.

이제 한아름 되는 이 나무가 가지도, 가지가 뭐 한 우리 발로 말하면 한 댓 발 기단한데 댓 발 기단한 그게 솔씨 속에 들었었소 안 들었었소? 들었었습니까 안 들었었습니까? 거게 든 게 이와같이 자꾸 이래 커지니까 이래 되지, 속에 요 속에 들었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안식일을 주시는 것은 안식 세계에 들어갈 모든 준비에 구비 요소가 씨종자적으로 그 속에 지금 안식일날 들어 있기 때문에 그걸 받아야 된다 그말입니다.

이런데 이 사람들이 외식으로 껍데기만 하고 알맹이는, 그 알맹이 가지도록 하기 위해 ‘껍데기 가지지 마라’ 껍데기 가지지 마라 그말은 알맹이 가지라 그말인데 껍데기 안 가지는 거게만 애를 쓰고 알맹이 가질 줄을 몰랐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그거는 하나님이 말씀하셨지마는 그들에게 들려지지 안하고 알아지지 안했는데 그만 다 몰랐습니까 아는 사람은 알아 가지고 알맹이 준비를 해서 이차 안식 약속에서 안식 세계에 들어간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있는데 왜 그 사람들은 바로 알고 외식으로 껍데기 준비 안 하고 알맹이 준비를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알맹이 준비 안 하고 껍데기 준비해 가지고 멸망을 받았습니까? 그게 어디 있습니까? 왜 그 사람들은 알았는데 왜 몰랐습니까? 자, 요것만 알면 오늘 아침에 그만 끝나요. 그 사람들은, 들어간 사람들은 알맹이 준비하라 하는 것인 것을 알았는데 멸망받은 사람들은 알맹이 준비하는 것을 몰랐다 그말이오. 왜 몰랐습니까? 녜, 믿음을 화합지 안했다 하는 그게 아주 요지인데 그래 가지고는 잘 모르겠는데.

믿음을 화합지 안해 그렇습니다. 믿음을 화합지 안한 건 안 해 그렇습니다.

그말이 딱 들어맞기는 맞았어. 그렇지만 그 해석을 해야 돼.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왜 속에 알맹이를 깨닫지 못했을까? 껍데기만 깨닫고 알맹이를 깨닫지 못했을까? 오늘도 성경 말씀이 이렇게 놔서 오늘도 내나 그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주일을 지키면 주일, ○○교회서는, ○○교회서는 감리교에서 온 사람이 그 사택 지을 때에 열심을 내 가지고 막 자기가 돈을 내 가지고 이래 짓는데, 지으니까 또 시기를 한다 그말이오. 지으니까 시기를 해 가지고 ‘저게 열심히 내는데’ 요래 시기해 가지고 요래 있다가 보니까 문을 단다고 막 가 가지고 좋은 문을 맞춰 가지고 이래 오는데, 자기딴에는 이거 주일날 모두 교인들이 있을 때에 또 이거 문 싣고 들어가면은 ‘아이구, 이 좋은 문이다.’ 칭찬 받을 줄 알았는데 요것들은 딱 요거 딱 그걸 알고 있다 말이오.

주일날 문을 떡 싣고 들어오니까 ‘아, 왜 주일날 이래 문을 싣고 들어옵니까?’ 이래 놨다 말이오. 이라는데 그 ○목사님은 그걸 보고서 왜 주일날 문을 싣고 들어왔느냐고 이 소리를 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못 하고, 그 사람이 있다가, 그 사람이 아직 감리교에서 왔으니까 교리를 못 배웠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요걸 잘 소화를 시켜 줘야 되지 안 되겠거든. 이러니까 암말도 안 하고 ‘주일날 싣고 오면 안 되는데요’ 그라고, 그러니까, 이거 당장 가지고 나가라고 이라니까 그 사람이 가지고 나갔다 말이오.

그거 가지고 나가 가지고, 또 그 사람은 가지고 나가니까, 말하기를 ‘나는 이걸 감리교에서 와 놔서 이거 주일을 이래 지키는 줄을 몰라서 지금 이랬으니까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잘못 했습니다.’ 이라면 다 될 것 아닙니까? 이런데 그거 저거 못 쓴다고 기어코 팔았대요, 그거. 좋은 문을 팔아 버렸어, 안식일 주일 이거 범한 이런 문을 달면 안 된다고.

그거 좋은 거 같지마는 나는 볼 때에 ‘악질이 너거가 악질이다’ 볼 때 속에 악이 들었다 그말이오. 그거 시기라.

시골에서 어떤 교회에서 한 사람이 항상 그 목사님 옷은 그 사람이 장 해 주고 그 사람이 재산이 있고 하니까 이렇게 하는데 ‘아이구, 목사님 옷을 장 저분이 장 하고 있는데 나도 목사님 두루막을 하나 해 드렸으면 좋겠다’ 싶어서 두루막 할라고 오 년인가 얼만가 벌어 모았어요. 오 년인가, 아주 그러니까 거지라. 오 년인가 벌어 모아 가지고 명베 두루막을 하나 했다 그거요.

명베 두루막을 하나 해 가지고 떡 드리니까, 그라니까 그만 이 왕집사가 막 시기를 해 가지고 어떻게 이래 가지고 그만 그 사람을 뭐 나타나지도 못하구로 어떻게 뭐 이리 조아대고, 이리 조아대고, 일방으로 아니라 뭐 복합적으로 말이오.

이리 가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막 이래 가지고 공격을 해 재끼니 그 사람이 견디지를 못해, 그만. 견디지를 못하고, 그 목사도 그 두루막 입었다가는 그 교회 쫓겨 나가야 돼, 그 사람이 연보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인데. 이래서 목사도 그 두루막을 입지도 못하고 두루막 한 그 사람 교회 오지도 못하고 그래 가지고 이래 했어요. 자, 그러면 그게 뭐 선이요 뭐이요? 이제까지 목사 해 준 것이 그것이 선이요 악이요? 자기 중심이라.

그렇게 하다가 치리받은 집사 하나 있는데 그 집사가 별명이 호랑이 집사인데 그 집사를 아는 사람이 여기 있는데 알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그거? 들어 봐요, 아는 사람? 저 양반은 장 저래. 몰라요? ○○○교회 호랑이 집사를 몰라요? 모릅니까? 손 들어야지, 그라면. 왜 잊어버려? 그 집사가 교회 제일 대가리로 잘했습니다.

이랬는데 어느 교인 하나가 그래 놓으니까 막 시기하고 이래 가지고 이래 해서 오종덕 목사님이 당회장이라 말이오. ‘조게 순전히 악을 가지고 제 중심으로 하고 있었다’ 이래서 그걸 ‘네가 그래 가지고 그 사람에게 불량한 소리하고 과격한 말하는 그거는 잘못했다. 치리를 받아야 된다.’ 이라니까, 치리받아야 된다 하니까 치리 안 받는다고 이래 가지고, 그라니까 오종덕 목사님도 고집이거든. 또 그때 권위가 있는 때다 말이오. 딱 이 대중 앞에서 치리를 딱 했다 말이오.

치리하고 난 다음에 그 사람 교회 나왔습니까 안 나왔습니까? 자, ○○○권사님? 예? 나왔어? 몰랐습니다. 삼 년 안 나왔습니다. 알겠어? 삼 년 안 나오다가 삼 년 후에 그뒤에 나왔습니다. 삼 년 안 나왔어. 그거 내가 거게 대해서 어찌 알아? 그런 건 내가 세밀히 알고 있어요. 뭐 내 기억은 그런 건 단단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적이 되는 것은 뭐 단단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 가지고 ○목사 지금 이동 운동을 할라고, 이동 운동 할라고 지금 뭣 때문에 왔는지 모르지만 ○○○집사님이라고, ○집사 손 한번 드시소. 저기 와 앉았네? 손 한번 들어 봐요. 우리 ○조사님 어머니야. 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거 때문에 왔는지 내가 모르지마는 ○목사 이동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동 운동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지금 거기서 뭐 못 견디고 그래 가지고, 또 하나 수집사 남집사 한 분은 막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은 지금, 거기 안 간다고. 내가 이 교회 안 온다고, 나는 저 교회 간다고. 이래 가지고 오전은 뭐 또 거기서 보고 오후는 또 거창읍에 ○○교회서 예배 본다 하던가? 그래 지금 막 쐐기를 틀고 있습니다.

쐐기를 트는데 그 내가 다 알거든. 이래 놓으니까 ○목사 이동할라 하는데 ○목사 절대 이동 안 합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지금 이동 안 합니다. 이동 안 하고 안 되면 ○○교회 깨지든지 말든지, 그런 건 깨져 버려야 되지, 잡탱이 깨져 버려야 되지 안 된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안팎에 눈이 있어 가지고 껍데기와 속의 알맹이를 봐야 됩니다. 그 모르면 안 돼.

내라도 말이지, 나 같으면 ○목사가 아니고 내가 거기 있었으면 내가 그랄 거야, 그랬으면. ‘아, 수고했습니다. 이거 오늘 애는 많이 써서 문도 좋은 거 해 가지고 왔는데 그러나 이거 주일을 지키지 안해 놔서 하나님 앞에 칭찬은 못 받겠습니다.’ 떡 그라고 ‘수고했습니다. 문 지어 놓고 칭찬은 못 받겠습니다.' 이래 놓고 난 다음에 주일 지키는 것을 살살 가르쳐 주면 ‘아이구, 이거 거석합니다.’ `아, 괜찮애.' `아이구 그래도 안 되겠습니다.’ 그래 제가 ‘아이구 이 문 새로 해 가지고 오겠습니다.' 이럴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이지 마구 쫓아내 가지고 주일 범했다고, 인제 돈을 내 가지고 그리 집을 지으니까 시기가 나 가지고 이라다가 ‘됐다’ 싶으니까, 자, 그게 악합니까 이 주일 지키는 걸 배우지를 못해서 열심히 주를 위해서 한다고 연보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그게 악합니까? 하나님은 어느 사람을 축복할까요? 어느 사람을 축복해요? 여러분들, 하나님은 제사를 기뻐하지 안하고 뭘 기뻐했어? 하나님은 자비를 기뻐하신다 했어, 자비. 알겠습니까? 사랑 없는 그 세계의 행동은 전부 자기 중심, 악으로 나온 그거는 뭐 하는 체 해도 그게 전부 율법 지키는 것이요 악한 것입니다.

이래서, 거기도 보니까 주일날 껍데기로 지키는 사람들이라, 껍데기로. 자, 둘째 안식일을 알맹이로 지키는 것은 뭐입니까? 안식일 노는 게 아니라. 물론 노는 거는, 노는 거는 놀기 위해 노는 게 아니고 이 안식일날 알맹이를 지킬라 하다 보니까 껍데기 노는 일은 제대로 된다 말이오.

알맹이는 뭐입니까? 알맹이는, 요거 알아야 우리가 지금 구원 이루어져요.

알맹이는 예수님의 모형 예표 예약으로서 짐승의, 짐승의 생명, 짐승의 피 가지고, 짐승의 생명과 짐승의 피를 가지고 자기의 이 세 가지 죄, 죄, 또 불의, 불의는 자기 주장대로 하는 거 불의, 또 하나님가 불목된 거 요 세 가지를 짐승으로, 자기가 이 세 가지 잘못한 것을 짐승에게다가 전가시켜서 맡겨 가지고 짐승이 내 대신 죽어야 내가 안 죽는다 그말이오. 짐승이 대신 안 죽으면 내가 죽어야 돼.

이러니까 짐승을 대신 죽임으로써 자기에게 이 세 가지 죄, 세 가지, 죄하고 불의하고 하나님과 원수된 거 이 세 가지를 대신하는 짐승으로 이랬는데 그 짐승은 누구의 모형이며 누구의 예표입니까? 예수님의 모형이요 예수님의 예표요 예약입니다.

이랬는데, 자기에게 뭘 사람하고든지 주님하고든지 불목이 있으면은 반드시 불목죄를 짐승에게다 전가시켜서 짐승이 죽어야 된다 말이오. 짐승이 죽어야 그 불목이 없어지지 죽지 않으면 없어지지 안해요. 또 불의가 있으면은 그것도 짐승을 잡아 가지고 이제 번제를 드려야 돼요. 또 죄가 있으면 짐승을 잡아 가지고 무슨 제를 드려야 돼요? 속죄제 속건제를 드려야 돼요.

이러니까, 이래 가지고 자기에게 있는 죄를 짐승에게 다 부담을 시켜서 자기에게는 자기가 아는 대로 죄가 하나도 없이 준비해야 되고 다른 사람이 보는 대로에 죄가 하나도 없이 요렇게 깨끗이 준비를 요렇게 한 사람은 짐승의 피 가지고 그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모든 합격을 했다 말이오. 합격을 했어.

합격을 했는데,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합격을 했는데 그 합격의 완성은 언제 됐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실 때에 비로소 완성이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이 일 하는 거는 알맹인데 이 일 안 하고 일만 안 하고 있었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때는 짐승의 피로서 자기의 죄, 불의, 불목 이 세 가지를 짐승에게 부담시켜 짐승이 죽었는데 오늘 우리는 우리의 세 가지를 누가 부담하고 누가 죽었습니까?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부담하시고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알겠습니까? 죽었으니까 이것을 오늘 우리 믿는 것이 우리 알맹이 준비요.

알겠습니까? 이 사실을 믿어서 예수님이 나를 죽으심으로써 해방시켜 자유해 주신 이것을 믿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나는 자유했다. 이 자유를 믿어야 되고, 또 예수님이 온갖 하나님의 입법을 다 완행했고 완수, 완전히 지켰기 때문에, 완수하셨기 때문에 이 완수하신 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칭의라 말이지요.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인간과 원수, 모두 원수된 것을 예수님이 대신 이걸 짊어지시고 죽었기 때문에 모든 원수를 대신해서 대속 제물, 화목 제물로, 화목 제물로 예수님이 죽으신 그 대속을 내것 삼음으로써 예수님은 죽었고 나는 살은 요것을 믿어서, 이 주일날은 어떤 일 하느냐? 주일날은 이와같은 이 모든 이 세 가지 죄의 종류 있는 것을 예수님의 피에 완전히 고해 가지고 아주 자기 양심으로 생각해 볼 때에 죄가 예수님에게 부담시키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볼 때도 부담시키지 안한 게 없고, 완전히 부담을 다 시켰고, 부담을 다 시켰고, 부담을 다 시켰고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우리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거기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죄 때문에 갇혔으니까 죄를 예수님이 완전히 담당하셨고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이행했고 하나님과 화친되고 이것이 이 세 가지가 내것 됐으니 나는 누구 것 됐습니까? 예수님의 것.

요것이, 이 세 가지는 내 것 만들고 나는 주님의 것 된 요것을 다지고 다져서 주일날 요것이 완전히 다져져 가지고 주님의 세 가지 공로는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이 되는 요 일이 이제 자기 양심으로 아는 대로 ‘요 확실히 했다.

요렇게 했다.’ 확실히 결정을 지워서 확실히 믿어질 수 있는 요 일이 주일날 결정되면은, 결정되면 요게 대한 능력이 옵니다.

주님의 세 가지 능력이 우리에게 사죄의 능력, 화친의 능력, 칭의의 능력 이 세 가지의 능력이, 우리가 받아 가지고 주일날 이걸 받으면은 엿새 동안에 죄 없이 살 수 있고 의롭게 살 수 있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떨어지지 안하고 화친으로 살 수 있는 이 생활이 된다 그거요.

그러면, 엿새 동안 이 생활 할 수 있는 그 재료를 언제 얻습니까? 주일날 얻어.

주일날 얻는 건데 주일 잘 못 지키면 헛일이요. 그러기 때문에 늘 ○○○목사님은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 무슨 날입니까?’ ‘주일날입니다.' `주일날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이 어느 시간입니까?’ ‘예배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막 받거든요.

요 시간에 받아 가지고 이와같이 하는 것인데 이제 자기가 주일날 완전히 주님의 대속은 내것 되고, 나는? 주님의 것 되어, 주님의 것 되니까, 나는 주님의 것 됐으니까 나는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것이니까 주님의 뜻대로 써야 되지 않습니까? 주님의 것이니 이것을 월권으로 내가 쓰지 말고 주님의 것이니 나는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쓰시고 주님의 대속은 내것이니까 이 대속 이 세 가지는 권능이 있어. 이 세 가지는 전능의 권능이 있어.

이러니까, 이 능력을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에 자기 생활 하는 것이 뭣이 자기 일 하는 것입니까? 엿새 동안에 자기 일 하는 것이 나는 주님의 것으로, 영육은 주님의 것으로 사는 것이 나 할 일이요, 종이니까 거기 팔렸으니까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는 것이 나 할 일이요, 또 주님이 대속하신 이 세 가지, 이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이제 사는 것이 나 할 일이라 말이오.

이 일이 주일날 할 수 있도록 요 준비가 다 완료가 돼 가지고 이제 주일에 요거 완료해서 주님이 이 능력 줄라 했으니 그 능력 받아야 돼. 주일날 이 능력 받아 가지고 완료해 가지고 이제 월요일날 새벽이 되니까 ‘요이 땡’ 해 가지고 요날부터 주일날 하나님에게서 약속하고 작정하고 결정하고 모두 요렇게 모든 것이 다 완전히 구별돼 가지고 있는, 구별된 그대로의 생활을 월요일날 합니다.

월요일날 하니까 힘써 하다 보니까 사람이 피곤해 가지고, 내가 피곤하다 말은 고기덩어리가 피곤하다 말이요 심령이 피곤하다 말이요? 심령이 피곤하다 말이요.

피곤하니까 비틀비틀거리거든. 비틀비틀거리니까 또 좀 양식을 먹여야 되겠다 말이오. 그러니까 삼일 예배가 시작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삼일 예배는 ‘야 또 삼일 예배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지 안 되겠다.’ 시작했습니다.

또 삼일 예배에 은혜 받아 가지고 또 이렇게 하고 보니까 오일이 되니까 또 삼 일 안 됐습니까? 또 비틀비틀거린다 말이오. 또 오일 예배를 드려 가지고 또 은혜를 보태 가지고 그 허기를 면하게 하고, 그래 가지고 주일 준비해 가지고 하고 그래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사람을 구원해 보면 알아요. 이 새벽기도도, 오늘 아침이 월요일 아침이가? 오늘 아침에 제일 많이 나왔네. 저 많이 나왔어. 오늘 아침에 요래 나왔는데, 나왔는데 어제 양식을 먹으니까 힘이 나니까 오늘 아침에 나왔는데 오늘 아침보다 내일 가면 좀 빠져요. 내일 되면 또 빠져요, 월요일날보다 좀 빠져요. 화요일 되면 더 빠져요. 수요일 되면 더 빠져버려.

수요일날 밤에 와 가지고 또 은혜를 받으면은 또 월요일과 같이 또 내나 목요일날 아침에도 그래 돼야 돼. 그런데 대개 월요일 아침만 못하거든. 이래 가지고 또 수요일날 밤에 은혜 받고 나면은 목요일날 아침에는 조금 힘이 있는데 금요일날 아침에는 조금 또 힘이 빠지고 금요일날 밤에 또 은혜 받아 가지고 그러면 토요일날 아침은 좀 힘이 있고 이래 가지고 준비해 가지고 이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사람들 권찰 일 해 봐야 돼요. 권찰 일 해 보면은 그 학생들이나 모든 식구들이 그렇게 주일날 은혜 받아 가지고 월요일날부터 차차 차차 식어져서 이제 토요일날 되면 확 식어지는 것을 느껴본 사람 손 들어 봅시다, 그거 느껴본 사람, 식구들 그래 느껴본 사람. 못 느껴봐요? 나는 느껴봤어요? 여러분 못 느껴봤어, 다? 다 느껴봤지 왜 못 느껴봐.

이러니까 자, 오늘 믿는 사람들이 지금 안식일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주일날로 변경한 건데 셋째 안식일이 변경된 주일입니다. 이름을 바꿨다 말이오, 주일이라 이라는데. 속에 알맹이도 바꿔졌고.

이러니까, 오늘 주일을 우리가 안식일로 받았는데, 오늘 주일날 준비해 가지고 무궁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데 무궁 안식 세계에는 이 우주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가 사는 무궁 안식 세계는 이거 뭐 이거 나무 있고 풀 있고 이런 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있어, 있어. 있어. 하늘과 땅이, 우주와 영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거든요.

통일되는데 지금 있는 이거 이대로는 있지 않습니다. 이거 다 새로 불타 가지고 새로 다 개조됩니다. 개조돼서 이제 모든 수목이나 그런 것도 다 영생하는 것으로 다 완전히 만물이 새롭게 된다. 새롭게 된다 말은 새로 창조한다 말 아니고 이제 창조된 그거 완전히 다시 가공을 해 가지고 완전히 새롭게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지금 신약 교회들은 이 안식에 들어가는 준비가 뭣 때문에 준비 실패해요? 뭣 때문에 이 안식 세계에 들어가는 이 세계 준비가 실패가 되는가? 뭣 때문에 실패되는가? 일차 사람들은 일차 안식에는 뭐 하다 실패했지요? 외식.

자, 외식으로 실패. 이차 안식은? 소리를 따라해요. 일차 안식은? 이차 안식은? 그래 따라 하지 말고. 일차 안식은 외식으로 실패했고 이차 안식도 외식으로 실패했고 삼차 안식은 또 뭘로 실패합니까? 외식으로 실패해요, 외식으로 실패.

요걸 회개해야 돼요, 오늘까지 외식으로 실패한 사람들. 주일날 일 안 하면 되는데 주일날 지금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우리가 입어야 돼요. 그러면 대속은 내것 되고, 주일날 내것 되는 걸 그거 새롭게 해야 돼. 내것 되고, 또 나는 주님의 것 되고.

이래서 새롭게 하는 거 이게 뭐이냐? 어데서 그런 걸 보여 주느냐? 이것도 말이지요 여리고성을 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올 때에 요단강 한가운데서 돌 열두 개를 짊어져다가 가운데 포개 놓고서 이제 한 바퀴 빙 돌고 난 다음에는 ‘이래 가지고 뭐 넘어가겠느냐? 여리고성이 넘어가겠느냐?’ 이럴 때에 뭘 보면 힘이 나와요? 돌 보면 힘나요.

‘돌, 저 돌 우리가 요단강 저렇게 물 내려가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에 건너가면 된다 하기 때문에 건너오니까 물이 양쪽으로 다 이렇게 갈라져서 지금 우리가 육지로 오면서 저 돌 그 안에서 다 짊어지고 온 것 아니가?’ 이라니까 그만 망각성을 가지고 잊어버리는 인간인데 이거 잊어버리지 안하고 ‘또 그렇다’ 그래 가지고 거게서 새롭게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일날 우리가 자꾸, 나는 주님의 것 됐고 주님은 내것 됐고, 이게 몇 번 바꿨습니까? 몇 번?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번 바꿨소? 세 번 바꿨어요.

이걸 여러분들이 기억해요. 이거, 봐. 어제 ○목사님 물으니까 모르네요. 몰라요.

이거 처음 배웠거든. 처음 배웠어.

다른 데 교계에 나가면 ‘그 무슨 소린가?’ 주님이 우리하고 몇 가지, 바꿨다 소리 몰라. ‘바꾸기는 뭘 바꿔? 주님이 대속했지.’ 바꿨다는 것도 모르고 뭐 받고 뭐 주고 바꿨다 하는 것도 모르고, 그러기 때문에 믿는 것이 헛일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주님의 것 내것 됐으면 내가 주님의 것 돼야 됩니다.

주님의 것은 내것 됐고 내것은 내것이고, 자기 것은 자기 것으로 항상 자기는 자기 것으로, 자기가 자기 것으로 있으면은 예수님의 대속이 자기 것 됐어요 안 됐어요? 저 ○집사님? 어? 뭐라 해? 대답해 봐요. 자기가 자기 것으로 있으면 주님의 대속이 자기 것 됐어요 안 됐어요? 안 됐어? 안 된 게 똑똑히 안 돼야 돼요. 안 되면 ○집사 주님의 것이라 자기 것이라? 제맘대로 못 해. 그러니까 만날 예수 믿어도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믿을라 하고 있어. 이거 전부 예수를 꺼꾸로 믿고 있다 말이오.

이제는 주님이 내 생각도 마음도 뜻도 욕심도 소원도 성질도 당신의 것이니까 당신이 당신의 뜻대로 살리지 나는 내대로 쓸 권리가 없어. 내대로 쓸 권리가 없어야 주님의 대속은 완전히 내것이 된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이 일을 주일날 하고 다질 때에 권능이 오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 오늘 나온 사람 내일 아침에 더 나와요. 나오고 안 나온 사람은 전화로 해 자꾸 전도해서 전화로 해 가지고 내일 아침에 많이 나오게 해요. 믿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건 새벽기도 나오라 하는 그게 전도라.

처음에 나오니까 무슨 말인지 모른다. 처음에 나왔는데 뭘 알 거라? 제가 썩어질 공부도 학교 처음에 들어가면 뭐 압니까? 자꾸 배워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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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3 악한 농부/ 마태복음 21장 33절-46절/ 1974. 11. 24. 제47공과 선지자 2015.12.04
2512 안식일/ 히브리서 4장 4절-11절/ 1978년 42공과 43공과 선지자 2015.12.04
2511 안식일과 주일/ 히브리서 4장 1절-2절/ 861102주후 선지자 2015.12.04
2510 안식일과 주일/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 861019주일오후 선지자 2015.12.04
2509 안식일과 주일/ 히브리서 4장 1절-13절/ 861024금새 선지자 2015.12.04
2508 안식일과 주일/ 히브리서 4장 1절-13절/ 861022수야 선지자 2015.12.04
» 안식일과 주일/ 히브리서 4장 1절-2절/ 861103월새 선지자 2015.12.04
2506 안식일과 주일/ 요한계시록 1장 9절-10절 / 1974. 9. 1. 제35공과 선지자 2015.12.04
2505 안식일과 주일/ 히브리서 4장 1절-16절/ 861025토새 선지자 2015.12.04
2504 안팎에 눈/ 사도행전 8장 6절-8절/ 860319수새 선지자 2015.12.04
2503 앉은뱅이 병고침의 표적/ 사도행전 3:11절-16절/ 790814화후집회 선지자 2015.12.04
2502 앉은뱅이의 표적/ 사도행전 3장 1절-10절/ 820825수야 선지자 2015.12.04
2501 앉은뱅이의 표적/ 사도행전 3장 1절-13절/ 1982년 35 공과 선지자 2015.12.04
2500 새알고 실행한 만치 변화/ 요한복음 6장 41절-58절/ 19861119수새 선지자 2015.12.04
2499 알고 인정 소망 행함/ 요한복음 11장 40절-44절/ 840328수새 선지자 2015.12.04
2498 알려 주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 망함/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870301주새 선지자 2015.12.04
2497 알맹이 사랑과 껍데기 사랑/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880722금야 선지자 201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