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참는 자

 

1986. 9. 7. 주일오후

 

본문:야고보서 1장 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모든 성경은 증거하기를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그 말씀을 근거하여 믿을 때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은 역사합니다.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잘못 알고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아무리 똑똑히 안다 할지라도 안 믿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온갖 은혜는 택한 자들이 하나님께서 계약해 놓으신 이 계약의 말씀을 바로 알고 이 계약에 의지해서 ‘계약이 이렇기 때문에 내가 계약대로 내가 이렇게 순종 실행을 합니다’ 그렇게 믿고 순종하는 이 온전한 믿음을 가졌을 때에는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대해서 계약하신 대로 이행을 안 해 줄 수가 없습니다. 또 부득이 해 주는 게 아니라 이행해 주시기를 심히 소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나 믿는 것이나 이래 의지하는 것이나 모든 일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고 하니 하나님의 계약을 똑똑히 알고 이 계약을 근거해서 이 계약, ‘하나님의 계약이 이랬다’ 꼭 계약을 들고 나서야 됩니다. ‘계약이 이러하다' 계약을 꼭 근거하고, 그다음에는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어떤 게 믿는 것인고 하니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가리켜서 믿는다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똑똑히 알아서 하나님의 법대로 바로 알고 그대로 하면 하나님이 해 주신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실행하는 데에는 변동을 못 합니다. 그거는 다른 병이 붙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안다고 해도 ‘목사님 설교가 이렇게 하시더라, 어느 책에 보니까 이렇더라.’ 그 아는 것이 하나님의 이 계약의 말씀을 근거해서 알지 안하고 그저, 아무리 그 목사님이 성경 말씀대로 바로 했다 할지라도 ‘목사님 설교는 성경대로 바로 했으니까 내나 목사님 설교가 성경 말씀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믿음은 큰 일을 추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설교를 들을 때에 이 말씀이 계약대로냐 계약대로 아니냐 그것을 먼저 따져야 됩니다. 따져서 계약대로라면 ‘이는 목사님이 우리에게 소개해 주셨는데, 소개해 주신 이 사실은 성경에 기록한 계약대로다, 하나님이 우리로 더불어 계약한 요 계약대로다.’ 하는 그것을 똑똑히 알고 믿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계약하신 것은 우리가 계약대로 시행하면 당신도 계약대로 시행해 주시기로 계약한 것이기 때문에 요거는 하나님이 계약을 이래 했기 때문에 나는 요 사실을 인정하고 실행한다’ 그러면 그만 다 됐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능치 못함이 없다 하는 것은 실행한 그 사건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고 다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약을 근거하는 이것을 따지지 안하고 그저 설교 말씀을 따라서 또 다른 사람이 얘기한 걸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의 요게, 성경 요 기록한 하나님의 계약이다. 하나님의 계약이다.’ 하는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계약이다' 하는 거게다가 딱 근거를 두고 ‘요거 하나님의 계약이니 내가 요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요렇게 해 주시기로 계약한 것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믿습니다. 인정합니다. ‘계약에 요랬다’ 그렇게 인정을 하고 그만 그대로 실행을 하면은 그 문제는, 그 조건은, 그 부분은 다 됐습니다. 눈에 보이게 된 것을 보지 안했다 할지라도 상관 없습니다. 그거는 벌써 다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똑똑한 신앙을 가져야 되지 그렇지 안하고 그저 사람 말 듣고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은 그 사람은 다 외식하는 사람이요 평소 좋을 때는 이 말씀대로 하지마는 인간이 승리하지 못할 그 어려울 때에는 다 낙심하고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설교 들은 것은 꼭 요 성경이냐 성경 아니냐 하는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에서 나온 성경 해석은 곧 성경입니다. 성경에 나온 것은.

그러기에 이렇게 따져 들어가는 사람은 시험에 안 듭니다. 여호와의 증인이고 뭐 어떤 이단이 와도 이렇게 모든 것을 구별해서 따져서 예수 믿는 사람은 온갖 시험이 와도 그런 시험을 다 잘 통과합니다.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뭐 앞으로 공산주의가 오든지 이 국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해도 꼼짝도 안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됩니다.

지금 본문을 또 오전과 같이 해석을 합니다.

“시험을” 하는 요 시험은 이 세상에서 뭐 취직할라 하면은 시험을 치뤄야 취직이 안 됩니까? 또 한 자리 올라갈라 하면은 시험을 치뤄서 합격이 돼야 올라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시험치뤄 가지고 합격되면 올라가고 또 낙제되면 내려가고 그런 것입니다.

요새는 나는 공무원 시험 그런 걸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말 들어 보니까 뭐 제일 말단에 뭐 아주 사소한 그런 시험은 팔급 시험을 치뤄 가지고 올라가면 칠급, 칠급에서 올라가면 또 육급, 육급에서 올라가면은 오급, 또 오급에서 올라가면 사급, 사급에서 올라가면 삼급, 뭐 삼급 되면은 서장급이라든가 뭐 그렇고 인제 그 위에, 삼급에서 올라가면은 이급, 일급은 나는 뭐인지 모릅니다.

일급은 뭐입니까? ○장로님, 일급 시험에는 뭣이 일급 시험입니까? 시험은 없습니까? 그래도 그뭐 시험 일급이 되면 일급될 만한 뭐 자격 시험이 있겠지.

인정 시험입니까? 정권자가 인정하는 그 시험입니까? 그런 것 다, 어쨌든지 시험을 치뤄서 합격이 되면 자꾸 올라가고 그 시험에서 떨어지면 이제, 삼급 시험에서 떨어지면은 저는 사급으로 가야 되고, 사급에 떨어지면 오급으로 가야 되고 자꾸 이래 또 떨어져 내려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사는 전생활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준비 생활이고 하나는 준비를 잘 했나 안 했나 하는 것을 시험하는 시험이고, 준비 생활 시험 생활 요 두 가지로 평생을 걸어갑니다.

준비해서 시험쳐 가지고 올라가고 올라가는 사람, 준비해 가지고 시험쳐서 떨어져서 내려가고 내려가고 하는 사람. 내려가면 한없이 천해지고 올라가면 한없이 존귀해집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그저 얼렁뚱땅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욕심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배짱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꾀를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꼭 실지의 나라입니다. 조금도 가감이나, 외식이나, 거짓이나, 수단이나, 방법이나, 꾀나 그런 것 없고 꼭 실상이 이루어져야 되는 정확한 나라입니다.

시험을 준비는 언제 준비하는가? 시험 준비는 현실에서 합니다. 우리는 현실 외에는 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현실 외에는 그건 다 소용 없는 것입니다.

준비도 현실에서 해야 됩니다. 지금 이 시간 예배 보는 이것도 여기서 준비입니다. 또 준비면서 또 일면으로는 시험입니다. 지금 예배 보는 여기에 시험에 합격되는 사람도 있고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고, 또 여게서 예배 보면서 앞으로 큰 승리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고 게을을 부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언제든지 현실은 준비하는 현실이요 시험을 치르는 현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시험 문제는 무엇이냐? 시험 문제는, 예수님의 피공로는 세 가지입니다.

사죄, 칭의, 화친. 예수님의 피공로를 잘 받아 강직하고 있나 이 피공로를 예사롭게,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주셨는데 이 대속의 공로를 그렇게 크게 여기지 안하고 자기의 생명만치도 여기지 안하고 세상의 물질만치도 여기지 안한 그런 것은 다 그것은 마귀에게 꼬임받은 저주받을 행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큰 힘 들여서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 주셨는데 이 대속의 공로는 이는 참 측량 못 할 만치 큰 보배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을 이 대속을 가지지 안한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이 공심판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속의 공로를 버리느냐 이 대속의 공로를 버리지 안하고 대속을 입고 대속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행위를 하는, 그러면 대속을 자기가 모시고, 이 대속이라 하는 것은 우리 말로 하니까 대속을 입는다 하니까 옷 입듯이 우리가 입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마는 이 대속은 우리보다 무한히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대속을 모시고 사는 사람 있고 이 대속을 그만 집어던져 버리고 사는 사람 있고 그렇습니다.

시험은 ‘네가 대속을 모시고 사느냐? 또 네가 영감과 진리로 영생하는 생명을 얻었는데 영감과 진리대로 순종하여 영생하는 생명이 네가 사느냐 죽을 생명이 사느냐?’ 우리에게는 생명이 둘입니다. 생명이 둘인데 안 믿을 때와 같은 그 생명,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육의 생명 그 생명이 다 죽은 생명이요 죽을 생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과 진리와 대속의 공로로 살아난 이 생명은 전부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이러니까 네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서 영생하는 너를 키우느냐, 기르느냐? 죽을 생명으로 살아서 너를 점점 죽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죽을 생명으로 살면 자기의 마음과 몸의 기능이 죽습니다. 하루 살면, 하루 살면 그만치 죽었습니다.

일 년 살면 일 년 산 것만치 제 심신의 기능은 죽었습니다.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으면 하루 살았으면 그만치 기능이 자랐습니다. 영생하는 생명으로 자랐습니다. 십 년 살면 오십 년 살면 그만치 자랐습니다. 저는 오십칠 년을 살았는데 얼마나 어찌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나 칠십칠 년이나 육십오 년 그래서 이 시험은 무슨 시험인고 하니 네가 하나님의 공심판을 면하게 된 예수님의 대속을 네가 모시고, 이 대속 밑에서, 대속을 모시고, 대속의 슬하에서, 대속의 무릎 아래서, 대속의 은혜 아래에서 네가 사느냐? 또 너를 영생시킨 영감 순종 진리 순종 이 영생한 자가 사는 영생 생명 생활하는 그 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는 그 시험입니다. 그 시험은 언제 치르느냐? 꼭 현실에서만 치릅니다.

치르는데, 이렇게 살라고 할 때에 이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대속을 벗어버리라.

대속을 배반해라.’ 또 `영감을 배반해라.' 영감 배반은 영감대로 안 살면 영감 배반이 됩니다. 과거에 살아놓은 것은 그대로 있지마는 영감 배반이 됩니다. 또 진리를 자기가 진리대로 살지 안하면 진리 배반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대속과 영감과 진리를 배반하라고 하는 이 원수들이 옆에서 자꾸 배반하게 만듭니다. 꾀우다가 안 되면 나중에 협박을 하고서 강제를 가지고 우리들로 하여금 이 세 가지를 벗도록 할라고 애를 씁니다.

어떤 자가 그라느냐? 악령이 그러합니다. 우리 속에 자기 중심이라는 원죄 악성 그놈이 들어서 자꾸 그래 합니다. 악습, 자기 중심의 모든 버릇 이것들이 그러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이 세상하고 뚤뚤 뭉쳐서, 이 세상은 마귀의 것이 됐기 때문에 마귀의 부하가 된 세상하고 악령하고 악성하고 악습하고 또 이것들에게 이제 이용을 당하고 있는 모든 활동성은 뭐냐 하면은 죄 사망입니다.

그러면 죄하고 사망하고, 죄는 악성 악습은 죄를 말합니다. 죄하고 사망하고 세상하고 악령하고 뭐 이런 것들이 뚤뚤 뭉쳐 가지고, 나는 예수님의 피공로를 모시고 피공로에 합당한 사람으로 영감대로 진리대로 이렇게 살라고 하는데 이 네 놈이 들어서 우리를 이렇게 살지 못하도록 꾀우다가 안 되면 협박도 하고 어떨 때는 고문과 고형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어떨 때는 죽이기도 하고 그랍니다.

순교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은 죽이면서 이렇게 살지 못하게 그렇게 해도 죽었으면 죽었지 이 세 가지를 배반치 않는 거,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를 배반치 않고 요대로 사는 사람이 다 순교자입니다.

그러면 순교는 어떤 사람이 하느냐? 그러면 순교는 이 세 가지를 배반치 않고 살기 위해서 그 생명이 다문 하루고 열흘이고 한 달이고 십 년이고 좀 덜 살고 죽게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다 살 대로는 꼭 다 삽니다. 하나님이 생명 한정을 해놨기 때문에 병도 그 생명을 기한 전에 끊지 못하고 원수도 끊지 못하고 자기가 자살하는 것도 끊지 못합니다.

딱 기한이 돼야 자살하면 자살하지 기한되기 전에는 자살할라 해도 자살이 안 됩니다. 자살할라 하는 것이 도로 독약을 먹어도 살아나고, 또 목을 매 달았는데 다른 사람이 와서 끌러줘서 살아나고, 돌을 달고 물에 다 빠져 버렸는데 그 빠지는 걸 다른 사람이 보고 그걸 기계로 가지고 기어코라도 건져서 살려냅니다.

생명이 끝나는 시간이 되기 전에는 죽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미 생명이 다 돼서 생명 끝날 시간이 됐을 때에 그때에 병들어 죽는 사람 되지 아니하고, 또 아파 죽는 사람 되지 안하고, 늙어 죽는 사람 되지 안하고, 암만 늙어도 말이오. 꼭 ‘네가 세 가지를 내놓을래 안 내놓을래? 안 내놓으면 죽인다.’ 그래 가지고 싸우다가 이 세 가지를 내놓지 아니할라 함으로써 죽음 당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살 대로는 다 살고 이 세 가지 때문에 죽은 사람이니까 이 세 가지를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이 사람은 진리를 생명보다 더, 영감을 생명보다 더, 예수님의 대속을 생명보다 더 귀중히 대우한 사람이라 해서 그 사람이 제일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교한다고 해서 자기가 살 생명을 덜 살고 죽는다는 요런 미혹을 여러분들이 받지를 안해야 됩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믿으면 마귀란 놈이 우리를 조롱하지 못 합니다. ‘너거가 암만 뭐 불 가운데 넣어도 주님만이 내 생명을 거둬갈 수 있지 주님 외에는 아무 놈도 내 생명을 거둬가지 못한다. 천하 사람이 다 달라들어도 안 된다. 불에 태워도 안 된다. 사자구덩이 집어넣어도 안 된다.’ 주님이 생명을 끝나게 해야 되지 끝나게 하지 안하면 피조물들이 암만 죽일라고 달라들어도 죽지 않게 하는 그분이 더 능력이 크기 때문에 피조물이 다 달라들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요걸 단단히 믿으십시오.

이 시험이라는 것은 ‘요 세 가지 내놔라’ 요렇게 원수들이 내놓으라고 할 때에 그때에 내놓으면 시험에 진 사람입니다.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낙제가 됐습니다.

내놓지 안하면, 대속의 피공로의 생활, 영감 생활, 진리 생활을 그때 내놓지 안했으면 이 세 가지 생활을 어떻게 한 것입니까? 어떻게 한 것입니까? 계속한 것이지요. 계속한 것 아닙니까? 이 세 가지 생활을 계속하면 그 사람은 승리한 사람입니다.

“시험을 참아라” 요 참으라 말은 무슨 말이지요? 참으라 말은 중단하라 말입니까 계속하라 말입니까? 계속하라 말입니다. 요걸 기억해요. 계속하라.

“시험을 참아라” 마귀, 죄, 사망, 세상, 인간의 원죄 본죄가 막 달라들어 가지고 어떤 위헙 협박 어떻게 좋은 것을 주면서 꼬운다 할지라도 “시험을 참아라” 그것들이 너를 시험에서 떨어뜨릴라고 할지라도 너는 거게 떨어지지 말고 계속해라 그말이오. 참으라 말이 무슨 말이라요? 계속하라, “참아라” 계속해라 그말이오. “참아라” 계속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참아라” 계속해라.

“복이 있도다” “복이 있도다” 무슨 복이 있습니까? 본문에 무슨 복이 있습니까? 생명의 면류관 얻는 복이 있습니다. 거기 있지 않습니까? 그 밑에 있지요? 무슨 복?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복이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 면류관은, 면류관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입니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생명이 승리했다 말입니다. 생명이 승리했다 말.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생명의 면류관 얻는다. 생명이 승리한 승리를 얻는다.

생명이 승리한 승리를 얻는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생명이 승리한 승리를 얻는다.

그러면 생명이 승리한 승리라니? 생명이 뭐이 생명입니까?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된 그 연결이 생명입니다. 알겠습니까? 생명이 승리한 승리를 얻는다 그말은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된 연결이 끊어지지 안하고 그 연결이 계속해서 연결이 승리했다 그말입니다. 연결이 승리했다. 그러면 그것을 가리켜서 “복이 있도다” 하는 이 복을 말합니다.

그러면 복 중에 천하를 차지하는 복도 있고, 우주를 차지하는 복도 있고, 영생하는 복도 있고, 영계를 차지하는 복도 있고, 뭐 세상의 왕이나 대통령되는 복도 있고, 부자되는 복도 있고, 또 시집가고 장가 잘가는 복도 있고, 따뜻한 재미있는 가정을 만드는 복도 있고 막 세상에 복 꽉 찼습니다.

이 지구 땅덩어리뿐만 아니라 이 우주를 차지하는 복도 있고, 영계를 차지하는 복도 있고, 그런데 복 중에 제일 큰 복이 무슨 복입니까? 무슨 복이라요? 생명의 복. 생명의 복이 뭐인데 생명의 복이 그렇츰 큰 복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된 복.

마태복음 4장에 보면은 셋째로 천하 만국의 영광을 보이면서 “천하 만국과 이 영광을 다 네게 주겠다. 내게 절 한번 해라.” 그렇게 할 때에 예수님께서 이 천하를 얻는 것, 천하 영광을 얻는 것보다 더 좋은 걸 하나 말했는데 뭘 말했습니까?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를 홀로 섬기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경배하고 하나님 섬기라 말은, 하나님 경배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제일 자기의 좋은 것으로 모시고 가진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삼는 것은 우주와 영계를 다 차지한 것보다 큽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아서 하나님과 자기와는 한덩어리라. 사상도 같고, 뜻도 같고, 마음도 같고, 사랑도 같고, 의견도 같고, 소원도 같고, 행동도 같이 해요. 한덩어리, 하나님은 머리고 우리는 몸으로서 하나님하고 한덩어리가 되는 것.

그러면 이것이 복중에는 제일 큰 복이요, 권능 중에는 제일 큰 권능이요, 지혜 중에는 제일 큰 지혜요, 부자 중에는 제일 뭣이 제일 큰 부자입니까? 여러분들, 제일 큰 부자가 누구입니까? 제일 큰 부자가 누구요? 제일 큰 부자가 하나님이십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제일 큰 부자요.

큰 부자인데 생명의 면류관 얻어서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연결이 떨어지지 안하고 연결이 하나돼 가지고 있으면 자기는 몇째가는 부자입니까? 둘째가는 부자라.

둘째가는 부자. 능력은 몇째가는 능력입니까? 둘째가는 능력이야. 요걸 똑똑히 알아요.

그러니까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복은 무슨 복인데요? 이 복은 생명의 면류관 얻는 복입니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데 생명의 면류관 이 복을 얻을라고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시험을 참아야 됩니다.

여러가지 세상이 달라들어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모시고 영감과 진리대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대로 요렇게 살라고 할 때에 살지 못하게 온 세상이 방해합니다. 마귀, 죄, 사망, 우리 악령 악성 악습 이 모든 것이 와서 방해를 합니다.

그들은 나를 방해하고, 방해하는 건 왜 방해하느냐? 방해하는 것은 이 세 가지 버리고 저하고 하나되자고, 이 세 가지 버리고 저하고 하나되자고 이렇게 자꾸 꾀우다가 뭐 협박을 주다가 이렇게 하는데 우리가, 그들은 피와 성령과 진리를 배반하라고 우리에게 달라들고 우리는 배반 안 할라고 달라들고 이라다가 만일 배반을 안 하면 누가 이겼습니까? 누가 이겼습니까? 악령 악성 악습, 죄 사망 마귀 세상 이거는 우리로 하여금 세 가지 내놓으라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내놓으라고 그들은 조아대고 나는 안 내놓고 그대로 가지고 살라고 하고 이라다가 만일 그 현실에 내가 내놓지 안하고 그 세 가지를 입고 살았으면 지기는 누가 졌어? 내가 졌습니까 세상과 마귀와 사망과 이 모든 원죄 본죄가 졌습니까? 뭐이 졌습니까? 마귀 세상이 졌습니다.

그러면 나는 승리했습니다. 승리했으니까, 진 자는 누구의 종입니까? 이긴 자의 종입니다.

저 ○○○집사? 진 자는 누구의 종이라고요? 누구의 종? 저 똑똑하기는 천하에 제일 똑똑한데 그런 말은 잘 못 하는 거라. 이긴 자의 종이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돼. 이긴 자의 종. 그러면 세상이 우리 종, 마귀가 우리 종, 사망이 우리 종, 죄가 우리 종, 원죄 본죄가 우리 종, 그러면 종이 상전에게 순종합니까 상전이 종에게 순종합니까? 종이 상전에게 순종해. 그놈 그라면 그다음에 우리가 잡아부릴 대로 부릴 수가 있다 그말이오.

자, 그라다가 그놈이 와서 꾀우고 협박을 줄 때에 우리가 그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내놓으면 누가 이겼습니까? 마귀가 이기고, 또? 세상이 이겼고, 또? 죄가 이겼고, 또? 사망이 이겼고, 또? 원죄 본죄가 이겼고, 자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종이 됩니까? 사망과 죄와 마귀와 또 악령 악성 악습의 종이 돼 버리고 말지요.

이러니까 이것이 말이요, 세상을 이기면 새상이 내것 되고, 마귀를 이기면 마귀가 내 종 되고, 이 모든 존재의 이 모든 것을 다 내가 이기면은 내것되고 내가 지면은 내가 그들의 종이 되는 이 큰 시험이라 말이오.

그러면 이 시험은 싸움입니다. 그들은 세 가지 내놓으라 하고 나는 세 가지 안 내놓을라 하고 이런데 이 싸움입니다, 이 싸움. 이게 시험이라. 그러면 내놓으면 나는 시험에 떨어졌고 안 내놓으면 나는 시험을 이겼습니다.

시험을 이기면 복있는 사람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있다” 시험을 참으라 말은 무슨 말이지요? 시험 닥쳤을 때 가만히 있으라 말입니까 시험을 참으라 말은 이제 종전에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았는데 그 살던 생활을 계속하라 말입니까 계속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말입니까? 잘못하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알기 쉬워요. 참는다 그말은 계속을 못하구로 협박도 주고 꾀우기도 하고 뭐라고 한다 할지라도 네가 거기 꼬이지 말고 네가 계속을 해라 그말입니다. 그것들에게 피동되지 말고 요동치 말아라 그말이오.

“참는 자는 복이 있다” 복이 있는데 이 복은 생명의 면류관 얻는 복입니다.

생명의 면류관 얻는 복은, 생명의 면류관 얻는 복은 무슨 말인고 하니 생명이 승리하는 복받는다 그말이오.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입니다. 생명이 승리하는 복을 받는다. 생명이 뭐인데? 하나님하고 너하고 둘이 결합된 그 결합이 승리한다 그말이오. 결합이 승리한다.

그러면 결합이 승리를 하면 하나님하고 나하고 한덩어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한덩어리 되니까 그보다 더 큰 복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돼야 이 면류관을 얻습니까? 언제까지에 얻습니까? 여게 보면 그다음에 해석해 놨습니다.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이것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이것에 옳다” 이것은 뭘 가리킵니까? 시험 당하는 시험. 시험 당하는 시험.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이제 ‘네가 이 시험을 이겼다’ 하는 그 인정을 받은 후에, 그러면 인정을 받은 후에는 그 현실에 싸우는 싸움이 승패로 끝난 때입니까 끝나기 전입니까? “인정함을 받은 후에” 하면은 끝난 뒤에 말합니까 지금 싸우고 있는데 말합니까? 끝난 후입니다. 알겠습니까? 끝난 후.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이제 이기고 진 것이 판정났다 그말이오. 판정났으니까 너는 이겼다.

그러면 너는 졌다. 이것이 판정이 되고 난 다음이라야 됩니다. 그러니까 시험을 닥치면 여러분들이 끝까지 이겨서 그것이 판정이 나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신사참배 같으면 신사참배 그것도 끝날 날이 있고, 또 인민군이 왔을 때도 그게 끝날 날이 있고, 자기에게 옆에 사람이 ‘야 너 지금 나하고 죄짓자.

죄짓자.’ 자꾸 남자가 와서 죄짓자, 여자가 와서 죄짓자, 친구가 와서 죄짓자, ‘나 지금 이래 하는데 네가 여기 말 한 마디만 거짓말 한 마디만 해 주면 같이 갈라 먹는데 내가 이 거짓말 하는데 너도 있다가 그말이 맞다. 그거 거짓말 아니다. 요말 한 마디만 해 주면 이 둘이 갈라먹을 수 있는데 이제 이거 좀 거짓말 한 마디만 해 달라.’ 이랄 때에 그때 그거 시험입니까 시험 아닙니까? 그때 거짓말하면 예수님의 피와 진리와 영감을 배반하는 것입니까 지키는 것입니까?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때 배반치 안하고 ‘나는 거짓말 할 수 없다’ 그라면 이기는 게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런데 그 일이 이제 그만 끝이 나 버렸습니다. ‘거짓말 해 달라. 해 달라. 거짓말 해 달라.’ 자꾸 이라다가 이제 그만 그 사건이 자나가 버렸다 말이오. 안 그렇습니까? 사건이 끝났지요? 사건이 끝났으면 이제 끝날 때까지 자기는 거짓말 안 했으면은 승리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승리했습니다.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옳다 인정하심 받은 후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그런고로 여러분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자꾸 요 지금, 요새 저 양산동에 어떤 처녀가 거기 금식하러 가고 혼자 있겠다 하는데 내가 못 가구로 했어. 왜? 거게 아무도 없는데 그래 놓으면 요놈들이 요 먼데서 보고 ‘저 처녀 하나 있다’ 엿들어 가지고 사람이 있는가, 없으면 밤에 가 가지고 닥쳐 가지고 그만 ‘죽인다’ 이랄 거라. `너 지금 나한테 정조 허락지 안하면은 너 죽인다.’ 자, 그럴 때 ‘아이고 할 수 없다. 죽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않느냐?’ 하고서 자기의 결백성을 내놔서 칠계를 범하면 이겼습니까 졌습니까? 졌어. 그라는데 말이지, 그래 해도 뚜드려 맞아도 꼭 정조를 지키고 성결을 지킵니다. 지키니까 나중에 그라다가 지키면은 하나님이 와 가지고 그놈을 쫓아보내든지 누가 오든지 해 가지고 구원해 준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놈 그만 도망가 버렸습니다.

도망가 버리고 그때까지 자기가 죄를 안 지었으면, 안 지었으면 승리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그러면 승패가 결정났습니까 안 났습니까? 그러면 인정하심을 받은 뒤입니까 아닙니까? 인정하심을 받은 뒤라 말이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뒤에” “후에” “후에” 요거 기억해요. 여러가지 시험이 있어. 시험이 있는데 여러분들 이 처녀들은 어리석어. 처녀들은 하나님이 예정된 그 예정이 있는데 예정된 남자는 딴데 못 갑니다. 알겠습니까? 예정된 여자도 딴데 못 가요. 좀 배짱을 가지라 그말이오.

여기 지금 뭐 ○○○집사님의 얽박이 따님, 지금 여기 사요 딴데 갔소? 여기 지금 현재 없지? 그런데 말이오. 세상에 그렇츰 무서운 사람 없어. 얼굴이 막 빡빡빡빡 얽고 굉장해요. 굉장해요.

굉장한데 나는 생각하기를 ‘저거는 평생 시집 못 갈 것이다’ 이랬는데 아, 대학 졸업맡은 놈이 말이요, 대학 졸업맡은 놈이 인물도 훌륭하고 부자집이고 또 양반이고 이랬는데 그놈이 딴데 그 미인들 짜다라 많아도 안 할라 하고 꼭 거기 장가 올라 해. 그게 장가 올라 하는데 자기 가족들에게도 보이면 가족들도 또 그 처녀 그 처녀가 좋다 한데요. 가만히 보니까 빠끔빠끔 얽은 데 전부 복이 들었다고 이라면서 영 뭐 다 좋아 한다고. 그래 가지고 지금 아이 낳고 잘 삽니다. 나는 그거 보고 참 놀랬어. ‘하나님의 예정은 예정이다’ 예정이 돼 놨으니 세상에, 아, 그거야 꿈에 볼까싶어 겁이 나는데 그래도 그 사람이 제일 좋다고 차지해요.

이러니까 공연히 어리석지 말아요. 처녀들은 제게 결정돼 놓은 것은 아무 계집도 못 뺏들어 갑니다. 그거는 내 신랑 되고 말아요. 이러니까 아예 탱탱 탱궈요.

탱궈서 ‘너 예수 잘 안 믿으면 나 안 할란다. 나 신앙의 자유 안 주면 안 할란다. 나 예수 믿고 새벽기도도 가고 산기도도 가고 그렇게 전도도 하고 반사노릇도 하고 그렇게 하면은 하고 그리 안 하면 안 할란다.’ 탱탱 탱궈도 하나님이 내게 딱 정해 놓은 것 같으면 그게 꼼짝 못하고 그래도 한다고 딱 해 가지고 달라붙어 가지고 결혼한다 그말이오.

이런 것인데 이걸 모르기 때문에, ‘이거 내가 비위 서끌리면, 그만 안 한다 하면 어짤꼬?’ 안 할라 하면, 하나님이 예정 안 된 걸 네까짓 게 암만 붙어서 정조 다 줘 봤자 소용 없어. 안 되고 말아요. 이러니까 처녀들이 깨끗한 정조를 그 나쁜놈한테 다 뺏겨버리고 결혼도 못 하고 말이지, 그란 거 많아요. 첫사랑 쳐놓고 결혼 한 사람 없어요. 첫사랑은 다 몸만 뺏기고 더럽히기만 더럽히지. 다 헛일했다 말이오. 총각도 그래요, 총각도. 뭐 자기 아내를 하나님께서 얼챙이 만들어 놨으면 얼챙이에게 장가갑니다. 딴데 못 가요, 하나님 정해 놓은 거는.

얘기 하나 할까요? 옛날 몽달이 총각이 한 사십여 세 되는 게 장가도 못가고, 그때는 장가 못 가면 머리를 따고 있습니다. 지금은 뭐 총각인지 뭐인지 그 표가 안 나요. 이래 놓으니까 장가 못 가면 사십여 세 돼도 요만한 열두서너 살 먹는 장가간 초립동이들이 ‘여보게’ 하면 `예' 해야 됩니다. 그때는 동양 법이 그래요. 이러니까 이 장가를 못 가서 어떤 점쟁이한테 말하니까 그 점쟁이도 또 맞는 점쟁이 있어요. 귀신 점쟁이 말이요, 저거하고는 한덩어리니까.

점을 하니까, ‘지금 너거 아내될 사람을 지금 낳아놓고 미역국 먹고 앉았다.’ 이라거든. 어떻게 부애가 나는지, 지금 마흔 몇 살 먹는데 인제 낳은 거 그거 언제 키워 가지고 장가 갈 것이라? 부애가 나서 그 어데냐고 물어 가지고 ‘그만 찔러 죽여 버리리라, 그라면 죽여 버리리라.’ 그래 인제 살살 물으니까 ‘아무 데 있다’ 이라거든. 갔다 말이오. 가 가지고 보니까 참 미역국 먹고 앉았는데 계집아 하나 낳아 놓고 있거든. 그래 그만 가 가지고 그만 들짱 그만 칼로 가지고 꽉 찔러 배 있는 데를 꽉 찔러 버리고 도망을 쳤다 말이오.

쳤는데 그래도 장가를 못 가고 이래 있다가 열두 해가 됐는데 마침 어데 뭐, 그래도 장가는 가야 되겠다 해서 장가를 갔는데 장가가서 첫날 저녁에 열두 살 먹은 거 조그만한 거 어린아이를 데려다 놓고 이래 가지고 이게 인제 이거 장가가서 아내니까 그 만지기나 보자 하면서 몸뚱이를 살살 이래 어린아이같이 다뤄 만지니까 아, 이거 배 있는 데 막 흉터가 커다란 게 있거든. ‘이 흉이 어짠 일이냐?’ 우리 어머니가 아이 낳고 미역국 먹을 때에 어떤 몽달이 총각놈이 와 가지고 칼로 찔러버리고 가서 그래 그렇다고, 그렇다고서.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배필은 딴데 못 갑니다. 공연히 벌로 덤비기 때문에 지금 실수만 하고 천하게 보입니다. 어짜든지 배짱을 내십시오. 총각도 배짱내고 처녀도 배짱내요.

그라면 하나님이 배필해 준 거라야 그거 더러우나 좋은 거나 그게 좋은 것이지 딴것 취하면 결국은 다 불량만 되고 말아요.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이에 대해서” 이것에 대해서 “옳자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님이 요렇게 세밀합니다. 주님이 말이요, 이거 밀감이가? 밀감나무 이거 하나를 만드는 데도 우리가 모르는 데 요 세포가 여러 천도 만도 넘습니다. 그렇게 세밀하게 만드신 이요. 그렇게 세밀하게 만드신 분이신데 그분이 우리만 못하겠습니까? 이러니까, 딱 시험해 봅니다. 현실마다 ‘내가 생명을 바쳐서 너를 사죄, 칭의, 화친을 줬는데 이 대속을 네가 중하게 여기나 안 여기나? 보자.’ 자꾸 시험합니다. 또 시험하고 또 시험하고, 시험해서 백 원 놓고 시험해서 백 원보다 대속을 더 귀하게 여기면은 한 층 올라가고 억만 원보다도 대속을 더 크게 여기면 억만 원보다 큰 거 주고 대속을 이 세상에 생명보다 대속을 크게 여기면 생명보다 큰 거 주고 자꾸 시험쳐 가지고 올라가는데, 이 대속을 낫게 여기면 자꾸 올라가고, 영감과 진리를 크게 낫게 여기면 자꾸 올라가고, 영감과 진리와 대속보다도 이 세상에 돈을 낫게 여기면 푹 떨어지고 지위를 낫게 여기면 푹 떨어지고 이래 가지고 가정도 망치고 이혼도 하고 다 불행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여기 “주께서” 그러면 주는 누굽니까? 주는 누굽니까? 주는 부처입니까 석가모니입니까 뭐 공자입니까? 주는 누굽니까? 주는 누굽니까? 하나님? 주는 누굽니까? ‘예수님’ 하면 `하나님' 다 돼요.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예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요 또 사람이십니다. 알겠습니까? 여기 ‘주 하나님’ 주 하나님이라 해도 되고, 모르니까 `주님' `하나님' `주 하나님’ 이래 말하지마는 ‘예수님' 하면 벌써 하나님 다 들어갔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면은 우리는 뭐이라요? 우리는 복수인데 누구하고 복수라요? 주님하고 복수요.

“주께서” 이 말은, “주께서” 하는 말은 하나님이라 해도 되지마는, 예수님이라 해도 되고 이런데, “주께서” 하는 그말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행복과 평강을 책임지신 책임주라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요 주라 말은 내 전부를 책임지신 분이라 그말입니다.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니? 자기는 누구인데? ○집사? 자기는 누구인데? 자기는 누군데? 졸면 헛일이라. 암만 열심내도 예배볼 때 졸아서, 요 말씀의 능력이 가서 ‘아멘!’ 딱 ‘아멘!’ 요 말씀을 깨달아서 ‘주여, 아멘!’ 요게 돼져야 성령의 권능이 갑니다. 그리 안 하면 성령의 권능 안 가. 이 지식에는 안 돼. 지식에는, 감동이 돼야 성신의 능력이 가는 것이지 감동 없는 데에는 성신의 능력이 가지 않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이 자기는 누구인데? 자기는 누구인데? 예수 믿는 사람인가요? ○집사?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기는 누구인데? 뭐라 하노? 저 바보네, 영. 자기는 누구인데?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자기는 누구인데? 모르나? 뭐라 해? 속에서 버물버물 해 가지고 할라고? 그라면 애매해 못써요.

시험칠 때 말이지, 시험칠 때 모르니까 그만 희미하게 그만, 이리이리 슬슬슬슬 그 근방에 가도록 이래 그려 놓습니다. 그놈은 나는 성질이 싹 그어 가지고 열 십자를 가로 열십자를 딱 찍어 버립니다. 애매하면 못써. 아니면 아니지 애매하게 이래 가지고 그라면 엄버무려서 ‘이거 아마 비슷하게 썼으니까 맞은가보다’애매한 자는 그걸 득점을 주는데 다른 사람은 똑똑한 사람은 딱 작대기를 그어 가지고 정죄를 해 버려요.

“주께서” 주님은 하나님이시요 예수님이십니다.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을 받는 것입니까 사랑을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님이 사랑을 받는 사랑 말합니까 주님이 주는 사랑을 말합니까, 저 뒤에? 저 뒤에? 주님이 주는 사랑을 말한 것이리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잘 든다. 틀렸어!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러니까 이것은 주님이 사랑을 받는 사랑을 말한다고 아는 분들 손들어 봐요? 인제 옳게 들었네. 저 뒤에도 바로 들어. 똑똑히 들어요, 인제. 바로 들었어. 주님이 사랑을 받는 사랑이라 그말이요.

그러면 주님이 받는 사랑이면 누가 사랑하는 것입니까? 인간이 사랑하는 것이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주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그말이오. 사랑치 안하면 헛일이오.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속하신” 이 약속은 신구약 성경 가운데 있는 것인데 이 약속은 무슨 약속인고 하니 이 약속은 하나님의 전부를 내것 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약속? 이 약속은 하나님의 전부가 내것 돼요.

나는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몸이 되고, 신부가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 되고, 하나님의 제사장 되고, 선지자 되고, 왕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이렇게 되는 이것이 계약돼 있는 것이라 말이오.

이 계약은,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계약이 있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한 계약이 있다 말이오. “네가 나를 사랑하면 이렇게 이렇게 해 주겠다” 하는 그 계약이 있고 또 하나님께서 너에게 “내가 너를 이렇게 이렇게 사랑해 주마” 하는 그 계약이 있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계약이 있고 또 우리에게 하나님이 사랑을 받는 계약이 있어요. 받는 계약이 있는데 “네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면 내가 이거 주겠다. 이렇게 사랑하면 이거 주겠다.” 이 계약이 있어.

요 계약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이 약속은 그라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받으시고 당신을 사랑해 주는 자들에게 약속입니까 당신이 사랑해 줄 자들에게 약속입니까? 또 모르네.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이 약속은 어떤 자에게 약속한 것입니까? 모든 신자에게 다 약속한 것입니까? 이 약속은 모든 신자에게 다 약속했습니까?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한해서 약속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한에서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약속이 뭐인데?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니라” 하나님하고 영원히 결합되는, 한 결합되는, 약속대로의 이 결합 성공을 얻게 된다, 결합 승리를 얻게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요걸 자꾸 읽어 봐요. “시험을” 인제 알겠습니까?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라면 그 해석이 됩니까?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그러면 이것은 시작입니까 중간입니까 끝입니까? 끝이야. 끝에. 그러면 처음 이기는 것이요 중간에 이기는 것이요 최후까지 이기는 것입니까? 최후까지 이긴 것을 말한다 말이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이것에” 하는 것은 그 현실 현실마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요 현실에, 요 현실에 해당된 그 전투를 승리한, 승리했다고 인정되는 그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알겠지요?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이제 환하게 알겠습니까?

그러면 자, 하나만 더 하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를 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지 못하도록 할라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지 못하도록 할라고, 어떻게 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못 얻습니까? 마귀 죄 사망 어짜라고요, 그래? 시험에 지는 것이 뭐인데? 시험에 지는 것이 뭐입니까? 시험에 지는 것이 뭐이지요? 알기는 아는 모양인데, 시험에 지는 자는 주님을 사랑치 않는 자라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시험에 진 자는 주님을 사랑치 않는 자입니다. 주님을 사랑치 않는 자.

주님을 사랑치 않는 자가 뭐인데? 뭐 어떻게 하는 게 주님을 사랑치 않는 것인데? 세 가지를 집어던지면 주님을 사랑치 않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세 가지를 죽어도 내주지 않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알겠습니까? 자, 처음에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했습니까? 처음에는 누가 사랑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당신이 생명까지 다 버려서 세 가지 대속을 했지요, 또 우리를 사랑함으로써 성령에 완전 순종을 했지요, 또 진리 순종을 완전히 했지요.

이러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이 세 가지 주느라고,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주실라고, 이 세 가지 우리에게 주실라고, 이 세 가지 주실라고 주님이 얼마나 힘을 썼습니까 죽을 만치 힘을 썼습니까 가난해질 만치 힘을 썼습니까? 죽을 만치 힘썼습니까? 죽을 만치 힘썼으니까 됐습니까? 이 세 가지 주시기 위해서 죽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세 가지 주시기 위해서 죽었어. 이 세 가지를 주시기 위해서 죽었어.

당신이 생명을 다 내놓음으로 이 세 가지를 줬고, 하늘의 부요를 다 내놓음으로써 이 세 가지를 줬고, 모든 인간에게 멸시 천대 받음으로써 이 세 가지를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큰 힘 들여서 주셨는데 이 세 가지를 이 세상이 와 가지고 내놓으라 내놓으라 한다고 내놓으면은 그 사람 주님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안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안 사랑하는 사람이지요.

이 세 가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이 세 가지 하신 걸 생각하고 이제 세상에서 뭐 협박 꾀움, 온 세상도 주고 별별 꾀우고 협박을 해도 이 세 가지를 안 내줘, 죽어도 이 세 가지 안 내주면은 그 사람 주님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주님을 사랑치 않는 사람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이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 세 가지를 뺏기지 안하고 내주지 않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어떻게 협박을 받아도 어떻게 좋은 걸 줘도 어떻게 꾀워도 이 세 가지를 내가 내주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어떻게 어려움을 당했을지라도 이 세 가지를 내줬으면 그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인제 알겠지요? 주님을 사랑하는 게 어떤 게 사랑하는 것이라는 걸. 그러면 사랑하는 그자에게만 이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면, 처음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실 때에 큰 힘 들여서 큰 자본 들여서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냐? 주님의 피공로를 받은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요 성령과 진리로 영생하는 새생명을 받은 사람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우리가 주님의 사랑 받았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뭐입니까? 주님의 사랑을 지금 받을 것이 우리 할 일입니까 주님의 사랑은 다 받았으니까 이제 이 사랑을 깨닫고 이 사랑에 감격해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될 차례입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해야 될 차례입니다. 알겠습니까?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주님 사랑하면 다 되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차례인데 주님을 사랑하기를 어떻게 사랑해야 됩니까? 조그매 땀날 만치 사랑할까요, 피곤할 만치 사랑할까요, 괴로울 만치 사랑할까요, 배고플 만치 사랑할까요, 생명이 끊어지는 생명까지 다 바치고 온 세상 다 바치고 다 바쳐서라도 주님을 사랑할까요? 다 바쳐 사랑해야 되겠습니까 천만 원어치만 바쳐 사랑해야 되겠습니까? 어째 사랑해야 되겠습니까? 자,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주님을 사랑할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녜, 다 바쳐 사랑하지요. 그러면 가만히, 다 바쳐서 사랑한다고 지금 것 다 내놔요? 다 내놓으면 자살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주님을 사랑할라면은 이 다 내놓지 안하면 안 될 그럴 때에 내놔야 되지 지금 내놓으면 자살 행위라 그말이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사랑함으로 생명을 내놓는 거, 주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소유를 내놓는 것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내놓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함으로 내놓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는 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게 어떤 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밥을 안 먹고 굶는 게 주님 사랑하는 것인지? 산에 가 앉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항상 기도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주님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간단하게 한번 대답을 해 보십시오.

녜, 어떤 시험이 와도 이 세 가지를 내놓지 안하고 항상 이 세 가지를 모시고 있는 것이 주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요 세 가지를, 죽일라 해도 안 내주고, 때려도 안 내주고, 감옥에 갇혀도 안 내주고, 이혼한다 해도 안 내주고, 사업이 절단난다 해도 안 내주고, 아무 어떤 일 한다 해도 ‘내가 요 세 가지는 내 줄 수 없다.’ 요 세 가지 모시고 사는 그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돈이 절단나도 요 세 가지는 내주지 않은 사람은 뭣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돈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요. 자기 목숨을 내놓지 안하면은 이 세 가지를 내놓지 안 할 수 없을 때에 이 세 가지 내놓지 안할라고 자기 목숨이 끊어진 사람은 뭣보다 주님을 사랑한 사람입니까? 생명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확정짓고 예수를 믿어요. 죽기 전에 하나님하고 나하고 한덩어리 돼야 됩니다.

주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말한 것은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속에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 모양으로 주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주님 안에 있어서 주님하고 우리하고 어쨌든지 죽기 전에 한덩어리 돼야 됩니다. 한덩어리 돼 가지고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요것을 결심해. 요것만 하면 돼요. 요것만 하면 돼요, 뭐. 요것만 하면 하늘과 땅은 내것이오. 모든 피조물은 내것이오.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전부는 내것입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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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0 시험/ 야고보서 1장 2절-8절/ 801127목새 선지자 2015.11.23
2809 시험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 요한계시록 2장 10절/ 871101주새 선지자 2015.11.23
2808 시험준비와 승리/ 야고보서 1장 12절/ 860914주후 선지자 2015.11.23
2807 시험준비와 승리/ 야고보서 1장 12절-15절/ 860914주전 선지자 2015.11.23
2806 시험과 우리가 가져야 할 소원/ 야고보서 1장 2절-4절/ 791011목새 선지자 2015.11.23
2805 시험생활 전투생활/ 마태복음 4장 3절-11절/ 860806수후집회 선지자 2015.11.23
2804 시험승리/ 야고보서 1장 2절-4절/ 791013토새 선지자 2015.11.23
2803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장 2절-4절/ 880424주전 선지자 2015.11.23
» 시험을 참는 자/ 야고보서 1장 12절/ 860907주후 선지자 2015.11.23
2801 시험의 목적과 준비/ 마가복음 9장 21절 29절/ 880929목새 선지자 2015.11.23
2800 시험의 성격/ 창세기 22장 1절-19절/ 810211수야 선지자 2015.11.23
2799 시험준비/ 마태복음 4장 8절-11절/ 860808금새집회 선지자 2015.11.23
2798 신고함 제도/ 야고보서 2장 12절-13절/ 850830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23
2797 신년 첫 새벽/ 고린도후서 4장 16절-18절/ 890101주새 선지자 2015.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