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3 20:30
시험과 우리가 가져야 할 소원
1979. 10. 11. 목새
본문 :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이라는 것은 이런 형편 저런 사정 자꾸 바꾸어 가면서 믿 음 지키기 어려운 그런 형편을 총칭해서 시험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시험은 꼭 고통스러운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평안한 것도 말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그런 사정을 총칭해서 시험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믿음은 손종인데 이 순종을 고통스러워도 순종하기가 어럽지마는 또 너무 평안해도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곤란스러워도 순종하기가 어렵지마는 너무 풍부해도 또 순종하기가 어렵다 그 기요.
그러기에 어쨌든지 이 믿음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데에 그 어려운 순서 를 하나님께서 자꾸 줍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순종을 점점 갈수록 쉽게 해 주시지 아니하시고 순종하기가 어렵도록 자꾸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이 어려운 것은 너무 좋아서 어려운 것 너무 나빠서 어려운 것 내가 보지는 않았는데 말 들으니까 주석에 겨울보다 여름에 는 더 잘 썩는다 이것 모양으로 사람들이 믿음을 지켜 나가는 데에 어려울 때 보다는 좋을 때에 더 잘 썩는다. 오뉴월에 더 잘 썩는 거 모양으로 형편이 좋을 때에 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순종을 하기가 더 어렵다 더 속화되고 타락되기 쉽다. 그렇게 그런 뜻으로 말했다고 그 대단히 그 옳은 말 했습니다. 시험은 이 시험인데 우리 믿는 사람은 신앙 생활을 해 가는 자기의 앞 길은 계속 시험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혹 세상에서 속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와 같이 내가 어떻게 해서 어느 정도 이 기반이 딱겨지고 좀 모든 것이 준비가 되면 이제는 좀 평안하고 수월할 때가 오지 않겠나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신앙 생활에도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교역자도 그 사람이 벌써 교역자의 틀이 잡혔으면 볼일 다 보았습니다. 교역자 그 사람이 틀이 잡히면 벌써 그 사람에게 기반이 딱겨졌단 말이요. 기반이 딱겨졌으면 그 참 그다음에는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또 평신도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도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이 벌써 터가 딱겨졌으면 그 사람대로의 그 사람대로의 그 윤곽이 잡히졌다 그 말이요.
그 사람대로의 틀이 잡 혀졌으면 벌써 성장은 없습니다. 거기에서 벌써 중단되고 있지 성장은 없습니다. 그걸 비유하기를 교역자는 언제든지 그 처녀성을 가져야 되 지 처녀성이 없어지고 늙은 노파 모양으로 되어지면 희망 없다 하는 것 이 하나의 비유로 그렇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자기 앞에에 계속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까지 시험이 있으리라 하는 것을 잊어 버리고 사는 것이 그것이 다 이렇게 틀이 벌써 윤곽이 잡혀졌고 기초가 다 잡혀졌고 이러니까 이제는 거기에서는 아무런 조급할 것이나 염려할 것이나 떨 것이나 두려워할 것이나 이렇게 삼 가할 것이나 노력하는 이런 것이 없어도 될 만치 그렇다 그기요. 그러 면 그다음부터는 별수 없이 게을해지고 또 방탕하기 쉽고 또 속화되고 타락하고 부패하고 그렇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실 때에 자기에게 죽는 날까지 쉴 수 없도록 하나님이 일을 시키시는데 쉴 수 없도록 자꾸 보다 깨끗하게 보라 깨끗 하게 보다 낫게 보다 바르게 보다 참되게 보다 거룩하게 보다 의롭게 보 다 정확하게 보다 공의롭게 보다 사랑으로 보다 인자로 보다 화평으로 이렇게 점점 지난해 보다 금년에 좀더 낫고 금년보다 명년에는 좀더 낫 고 어제보다 오늘은 좀더 보다 보다 낫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향 하여서 섭리하시는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오루막을 올라가는 사람이 벌써 고개를 다 올라 갔으니까 그다음 부터는 내리 바탕이니까 수월합니다. 그거 모양으로 이 신앙의 생활 이 세상에서 고개를 넘는 그런 일이 있다고 세상일 같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일이 없는 것입니다. 고개가 마지막 세상을 떠날 그때가 자기 일생 동안 신앙 생활하기에 제일 어려운 때입니다. 제일 어려운 때고 믿음 지키기가 제일 어려운 고도의 시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 생활은 자기가 몰라 그렇치 하나님께서는 좀더 고상한 그 어려움을 좀 고상한 어려움을 또 알기 어려운 사이비한 어려움 을 여간 보아서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을 여간해 가지고는 그걸 시험인 줄 모를 만한 그런 그 어려움을 이렇게 자꾸 어려움에서 어려움으로 이런 면으로 저런 면으로 점점 어렵게 어렵게 이렇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 하나님이신데 이것을 모르고 죽기 전에 자기가 어느 정도 무엇이 되면은 그다음에는 수월하리라. 이 세상 사람이 아 돈을 내가 얼마를 모아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수월하겠지 사람을 어느 정도 지금 협박해 놓으면 수월하겠지 그것은 끝이 있는 생애입니다. 이렇치마는 우리는 끝이 없는 성장을 가지는 사람이고 끝이 없는 배움을 가지는 사람이고 끝이 없는 연단 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앞에는 이 시험이 계속된다 하는 요것을 명심하고 우리 가 시험을 찾아야 합니다. 시험이 왔지마는 그 시험을 하나님께서는 나 를 계속적인 시험 시험으로 점점 시험에서 시험으로 시험에서 시험으로 쉬운 시험에서 어려운 시험으로 낮은 시험에서 높은 시험으로 나타난 시 험에서 은밀한 시험으로 이렇게 고도의 시험으로 나를 연단하시고 인 도 하신다는 요것을 명심하고 그면 지금이나 그전보다 신앙 생활하기가 뭐이 어렵노 지금 이전에 보다 목회하기가 뭐이 어렵노 이렇게 어렵다는 이 전제 속에서 자기가 현실을 왜 어려우냐 이걸 찾아가는 자기에게 닥친 그 시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치 안하면 이 시험은 자기가 타락해서 일반적으로 나가면 시험인 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알지도 못하고 또 자기가 믿음을 떠났지마는서도 믿음을 떠난 것을 알지 못 할 만치 그렇게 사이비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삼가 듣고 지키면 오늘날 아 신구약 성경 이야 우리에게 벌써 근 이천년 전에 주었는데 한목 주었는데 신구약 성경을 한목 주었는데 뭐 우리에게는 오늘날 준 것이 뭐 있겠소 오늘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난번에 한 날에 괴로움이라는데 대해서러 우리가 많이 배 웠습니다. 오늘이라 그 말은 이제 이 현실 당장 현재 당장 현재에 지금 이 시간에 이 시간에 주님이 나에게 명하는 거 있다 그 말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을 한목 나에게 다 말하겠습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 가운데에서 이 시간에 네가 이것 지키라 하는 기 있다 그기요.
그런고로 그것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계명이지 모든 계명을 다 자 기에게 주신 것이지마는서도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현실을 주시지 안하면 그 계명은 자기에게는 한번도 하나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시요. 그러기 에 그 기회가 같은 기회는 한번 밖에는 없는데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데 그래도 그 계명을 그 계명을 이번 지키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 버리지마는 또 하나님이 그 계명을 내나 그 다음에도 지킬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몇번이든지 주실 수도 있고 다시 한번 더 안 주실 수도 있고 이 러기 때문에 앞으로 주실 수 있다고 하면은 주신다면 다행이지마는서도 그래도 불행중 다행이지마는서도 주시지 않는다면 그면은 완전히 진공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면은 완전히 자기의 심신의 기능으로서는 마비 돼 버리고 만다 말이요. 전신이 다 그 건강하지만 손 가락 하나가 마비 가 돼 가지고서 이것은 놀리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 어느 부분인가 자기 에게는 심신의 기능은 마비되고 만다 이기요. 우리 앞에는 시험이 계속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어제보다 오늘 신앙 생활하기 어렵다는데 작년보다 금년에 신앙 생활 하기 어렵다는데 뭐이 어려우냐 그렇게 전제로 두고서 자기가 어렵다는 그것을 알고 왜 어려움을 찾아야 어려움을 알지 찾지 안하면 그 어려운 것을 모르고 그전 내나 신앙 생활한 그대로 참 젊은이의 신앙 젊은 이의 신앙은 성장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성장없는 것 이제까지 하던 신앙 정도 그것만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철야하는 것 하나 가지고서 신앙 다로 어떤 사 람은 자기네들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뭐 자비나 이 그 화평이나 화평 화목 하나 한거 가지고 신앙 다로 어떤 사람이 뭐라하든지 꾹 참는 것 이것 하나 가지고 신앙 다로 연보 하나 연보하는 그것 하나 가지고 신앙 다로 자기는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는 그것으로 신앙 다로 그것만 다라면 그 사람은 기형으로서 온 전신은 크지 안하고 팔만 크는 사람 다리만 하나 크는 사람 온 전신에 팔만 한 열대발 되어 병신 아니겠소. 그 기 형이라고 돈 버리나 할까 그것 누가 온전한 사람이라고 그 사람 어디 쓰 여지겠소. 구경거리나 되지 비유컨데는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자라 신 앙이 자라간다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신앙이라는 것은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된 것이 신앙인데 하나님과 자기와 둘이 합해 가지고 되어 지는 것이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과 자기와 합해지는 것 하나님과 자기와 합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억만분의 일이 합해졌고 그 다음에는 억만분에 한 천이나 만이나 합해졌고 차차차차 합해져서 하나님과 자기와 합해진 것은 많고 합해지지 안한 것은 비유컨덴 열이 있다가 그 다음에는 차차 줄어지기까지 하면서 열이 하나님과 자기와 합하지 안하고 하나님과 자기와에 맞지 안하고 서로 하나님과 자기와 삐뚤어져 있는 것이 그것이 열되었다가 아홉 되었다가 여덟 되었다가 다섯 되었다가 이 제 넷 되었다가 셋 되었다가 둘 되었다가 이렇게 점점 삐뚤어진 것이 이 것이 고쳐져 나가는 것이라 그 말이요. 삐뚤어진 것이 이러니까 죽는 그 시간까지 그 믿음이 자라가는 것 믿음이 자라간다 말은 순종이 더 정확해 간다 그 말이요. 순종이 하나님과 자기와에 더 맞아져 간다 그기 요.
이러니까 하나님과 자기와 더 맞아져 가니까 맞아져 가니까 맞아져 가는 것을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자꾸 요면이 틀렸으면 고면 틀린 것을 알 수 있는 현실을 주시고 또 자기도 모르는 저면이 틀 리는 것을 또 알 수 있도록 현실을 주시고 자꾸 이라기 때문에 자기에 살아 있는 그 동안은 자꾸 믿음의 잡것을 제하고 믿음이 점점 온전해지 도록 믿음이 온전해진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 이 점점 일치되어 간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움직임과 자기 움직임이 점점 일치되어 간다 그기요.
이러니까 죽는 날까지 일치가 된다고 해서 다 되느냐 안됩니다. 영 원히 되어도 다 못되 이러니까 무한을 향해서 나아가는 우리들이기 때문 에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안되니까 이 시간에 이 시간에 내가 지 금 고칠 것 이제까지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에서는 딱딱 시간을 지켰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딱딱 지켰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딱 딱 지켰는데 다음 시간을 주었는데 아 이 준 이 시간에는 그만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무엇을 주었는지 그것도 찾지 못했어. 그러니까 행하지 못 하지 아 이 시간에 내가 신앙 생활하기가 이전보다 어렵다고 하는데 그 면 이 시간에는 어려우면 이 시간에 무엇 때문에 어려우냐 자 그 시간에 어려움데 점점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에 따로 새 것을 지키라고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하나 지키라고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 시간에 주셨는데 그 시간에 이제까지 자기가 지키던 하나님의 뜻을 총총 다 지켰습니다. 지 켰으면 그 시간에는 믿음이 됐습니까 안됐습니까? 어찌 되었소? 믿음이 됐소 안됐소? 여반에 정 윤오 씨 ( )이것 설교 듣는 것도 자기가 실행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이 아주 다릅니다. 실행하는 사람에게 실행을 할라 하니까 그 주체적으로 그것을 배워야 되는데 구경하는 사람은 구경하는 사람은 그 실질적인 그런 것을 들으면 재미가 없어. 거짓말 들어야 되지. 거짓말을 듣고 되느냐 안되느냐 이래 구경하는 것은 어떤 어떤 이렇게 그저 거짓말이나 안될 헛된 말이나 이런 말이라야 그 들을 만한 재미가 있지 그 하나라도 이룰 수 있는 그 순서를 말하면 재미가 없고 듣기 싫다 그기요. 그 설교 듣는 것 보면 그 사람이 신앙이 앞으 로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습니다. 저는 껍디기 신앙이다 저거 는 그 덩덕궁 신앙이다. 저거는 공연히 신앙같지마는서도 파고 들어가 면 하나도 몰라 하나도 바로 이루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있어. 그 설교 들을 때에 거기에 대한 이치를 낱낱이 듣지 못하면은 언제든지 종전 신 앙 생활만 하요. 이 시간에 지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을 행하라 하는데 이제까지 신앙 생활한 열 가지 그것만 장하요. 열한 가지나 나왔는데 열 가지 그것만 합니다. 그러면 열한 가지 열한 가지 열한 채 열한 가지가 나왔는데 종전 열 가지만 하니까 한 가지 이것은 하지 못하지 안했소. 또 그 다음 열두째 말하는데 내가 열 가지 그것합니다. 이제 백째가 나왔는데 열째 그것 열 가지 그것만 장 하요. 이제 만 가지 순서가 나왔는데 다 안하고 이제 열 가지 장 그것만 하요.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인 줄로 이렇게 알고 있지마는 실은 완전히 신앙을 배반한 사람이라 그기요. 그 사람은 왜그러냐 자기의 여생이 전부 시험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잊어 버린 사람이라 시험이라는 것을 잊어 버린 사람은 자기는 여생에 죽는 날까지 새것 새것 자꾸 새로워지고 새것 지키고 새것 행하고 전부 새걸음을 걸어서 이제까지 한번도 걷지 안한 새 발자국을 걸어서 가는 이 행인 행인이 만날 걸어 갔던 거와 걸어갔던 거 자 길가는 행인이 이제 걸었던 그 자리는 다시 걷소 안 걷소. 여 저저 아까 저 이름이 뭐이지 대답해봐( ) 길 가는 사람이 길 가는 사람이 그 자리에 와 가지고서 말이 안 들리니까 조울라지 뭐. 그 이름이 요새 뭐인고 ( ) 요새는 뮈이야 제자리에서 ( ) 장 이래 디딘 디딘 땅만 디디면 걸어 가요 안 걸어가요? 어때 제자리 걸음 옳지 제자리 걸음 이래 보지 평생 걸어 보지 앞으로 가는가 제자리 걸음 안되. 우리는 (길가는 ) 길을 가는 행인이요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뇨 이러면 행인이라면 이므 밟았던 땅은 두번 안 밟아야 앞으로 전진하지 이므 보았던 그 환경은 점점 안 보이지고 안 보이면 새것이 보여져야지 신앙이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그면 어떤 사람은 평생 섯는자리 그 자리에서 서 그 자리 걸음 그 자리 걸음 이것만 걷고 있소.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묘하다 합니다. 아주 신앙 생활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렇지마는 실은 성장은 없습니다. 실수가 있어도 제자리 걸음을 걷지 안하고서 앞으로 전진하 는 사람들이 되어야 된다 그기요.
전진 어찌 합니까? 이 시간에 주 님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 있고 또 그 다음 시간에 알려주는 것 있고 또 그 다음 시간에 알려주는 것 있고 이 시간에 깨닫게 하는 것 고 다음 시간에 깨닫게 하는 것 자꾸 깨닫게 하는 것이 있고 이 시간에 행하게 하는 것이 있고 그 다음 시간에 행하는 것이 있어 늘 행하는 것 3 가지 44 가지 45 가지 그것만 뱅뱅뱅뱅 도는 것 그것만 하는기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그 집에 살고 그 직장에 살고 그 사람들끼리 살아도 자꾸 하나님의 뜻이 시간마다 변해져 변해진다는 요것을 알 때에 자기가 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요 순종이 어렵다는 것 갈수록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
이러니까 오랫동안 예수 믿은 가운데 멍하니 바보가 되 예수를 오 랫동안 믿을 수록이 사람이 바보가 되고 멍한이 이거는 참 부동적인 반 석같은 인물 좋은 면에서 그런 기 아니라 아무런 감각이 없어. 비판도 감각도 온전히 몇 가지 것 뿐이라. 그것은 죽은 자입니다. 신앙 생활을 바로 하면 굉장히 예민해지요.
굉장히 예민하고 굉장히 민첩하고 이래 서 보이는 이 껍대기 이 계명 속에 껍질 한껍질 두껍질 셋껍질 자꾸 해 서 현재 보는 여게서 내일것 까지 한목 보고 한목 보고 맹년 것도 한목 보고 여게서 죽을 때까지도 한목 보고 영원까지도 한목 보고 여기서 한목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이 벌써 믿어 가수록이 둔해지거들랑 그 사람이 예수잘못 믿었다고서 여러분들이 판정을 하십시요. 하나님을 닮아가는데 하 나님이 그라면 바보란 말이요 천치라 말이요 둔하다 말이요 예수를 잘못 믿었소.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 생활은 가면 갈수록 어렵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시험이 끝나지 안해. 점점 시험이 높아져 시험이 높아져야 승격이 되지 높은 시험을 치룰 라면 실력이 있어지야 되지 이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사다리 올라가는 거와 같습니다. 자꾸 올라가는 기라. 자꾸 올라가는 것 길을 걸으면 자꾸 걸어 가라하는 것.
이러기 때문에 더 신앙 생활을 하면은 이제 모르는 기 없소. 모든 인 간에 마음에 심리 구조 요런 것 저런 것 오만 것을 다 보았다 그 말이요. 오만 것을 다 봐 단 두 사람이 사는 데도 두 사람이 사는 데도 인간 의 심리 천도 만도 억도 넘은 것을 다 보았다 그기요. 오늘 요랬다 저랬다 세모 베기 되었다가 내모 베기 되었다가 납작 되었다 동글 동글 되었다가 길쭉했다가 삐뚤어졌다가 요랬다가 오만 것 다 본다 그기요.
이러니까 고게 마추어 살아야지 자 이러니까 암만 말해도 못 알아 듣 지 그 사람 말은 저는 장 한 가지만 보고 있는데 이걸 말하는데 억울한 말 한다하고 애모 한말 한다하고 앞으로 곧 닥쳐서 낭파될 것도 말하면 억울한 소리한다고 애모한 소리한다고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 데에는 앞으로 가면 갈수록 자꾸 그 어려움이라는 시험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함으로 시험을 점점 계속해 줍니다. 뭐 할라고 믿음을 연단시킬라고 믿음을 연단시키다니 하나님에게 순종을 정선 시킬라고 순종을 점점 정선해서 순종이 점점 깨끗하고 깨끗하고 깨끗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순종하는 데도 잡탱이가 열 가지 썩겼다가서 그다음 아홉 가지만 썩기면 더 깨끗하지 열가지 썩긴는데 아홉 가지 썩기면 더 깨끗 한 것이지 5 가지 썩기면 더 깨끗하지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더 깨끗하 지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완전히 깨끗한 것이지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 과 나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하나됨이 절정인데 이제 최 종인데 이렇게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하나 되고 하나님의 움직임과 내 움직임이 하나 된다. 이라면 이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계속 이 온전이 됩니다. 그면 하나님의 뜻과 내 뜻 이것은 하나님과 내 뜻이 이제 지금 합해졌습니다. 합해졌는데 백분지 일이 합해졌소. 이 몇일 신앙 생활 하니까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백분지 이가 합해졌소. 얼마 되니까 백분지 삼이 합해졌소. 합해지니까 뭐입니까 내 뜻은 삐뚤어지 고 더러운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바르고 깨끗한 것이기 때문에 요것이 되는 데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요. 보다 보다 보다 깨끗한 것 보다 바른 것 보다 옳은 것 요 소원이 있어야 된다 말이요. 유일한 소원 단일 소원 요것이 있어야 된다 그기요.
이러니까 유일에 것이 뭐인데 하나님에 나타낸 하나님의 뜻 그것이 진 리인데 하나님의 뜻이 진리인데 그것은 완전 무결하지 이러니까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집중 되어서 하나님의 뜻 하나만을 소원하는 다시 말하면 진리를 소원하는 참을 소원하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을 소원하는 내가 어 떻게 보다 옳은것 이것보다 더 좋은 기 없느냐 보다 좋은 것 보다 좋은 것 보다 옳은 것 보다 참된 것 보다 깨끗한 것 보다 거룩한 것 보다 진실한 것 보다 좋은 것 이기 있어야 됩니다.
이런데 번연히 둘이 나왔는데 이것보다 이기 좋은데 좋지마는 옳고 좋지마는 이러면 밥통이 떨어지니까 옳고 좋지마는 이라면 죽은 목숨같이 산 목숨같이 야단을 만날 것이기 때문에 보다 좋지마는 그러면 교회서 쫓겨나야 되기 때문에 내가 땅 위에 보이는 것을 보다 좋은 참된 것보다도 천하게 여기기 때문에 너는 땅에 속한 자라 필요없어 하나님 찾아가지 못해요. 나 그런 목사 많이 봤습니다.
옳기야 그기 옳지 조사님 말한 그기 옳고 주장하는 것이 그기 옳기야 옳지 옳은 줄 알지마는 우리가 옳다고 다 할 수가 있느냐 옳다고 다 할 수 가 있느냐 옳지마는 그렇게 하면은 당장에 교회서 쫓겨나야 될 것이고 그라고 부터 밥통이 떨어져야 될 것이고 그 목회자는 이라면 어찌 되는 가 그렇게 자기 입으로 나한테 말한 목사들 여러 수십명 수십명입니다. 지금 다 이래 가지고 있소. 그러나 목회의 성공이 없어. 그대로라 모 든 것보다 소원이 단일 소원이라 그 말은 이제 진리에 자기 소원이 있는 데 진리에 소원이 있는데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여려가지 소원을 맺는기 있지 나무로 말하면 뿌리같은 소원 나무라면 가지같은 소원 이 것이 유일한 소원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 소원에 협조 보조가 되는 이런 좋은 소원을 가진 것이지 유일 소원 그 손해 보면 그 까진 기 무슨 소원 있겠소. 또 이런 소원 저런 소원에 일하는 것 같지마는서도 유일 소원 여기에서 다른 데 나가서 유일 소원 이것이 지금 커 나가고 이것이 발표되 나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사람이 참에 소원하는 이것이 성신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성령 훼방 죄가 어떤 기 성령 훼방 죄인고 하니 고 옳은것 참된 것 바른 것 고것을 알고 고것을 알고 자기나름대로의 그것을 알고 고것을 버리는 고것이 뭐냐 성령 훼방 죄입니다. 그것 사함 못 받습니다. 그것 고치야 되지. 사람이 모든 시험을 이기는 것도 여기에 있고 또 자기가 점점 보다 깨끗해지는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짜든지 여려분들이 살 때에 보다 좋은 것이라도 얼렁 따라 가십시요 원수가 주장해도 보다 그 기 옳거들랑 머리 숙이고 그기 옳다고 따라 하십시요. 평생 소원이 평생 소원이 하나님의 뜻이인 행동에 사는 말이요. 행동에 사는 평상 소원이 하나님이 주신 그 진리에 목표를 두고서 고것을 향해서 보다 진리에 가깝고 보다 진리 이러면 그걸 향해서 가는 요 소원 가진 사람은 자기가 닥치는 현재 어려움 닥치는 이 어려움을 보니까 요 어려움을 닥치고 보니까 좀더 바른 걸 깨달았고 좀더 옳은 것을 깨달았고 좀더 곧은 걸 깨달았고 어제거는 보니까 그거는 어제거는 보니 오늘 그만 못하니까 어제것은 ( )왜 그것이 나에게 점점 오는 그 현실에 어려움을 통해서 ( )되었더란 그 말이요. 그것 생각한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옳은 것을 원하는 그 자가 아니면 시험도 자기에게는 다 범법이요. 세월도 범법이요 일생을 살아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 것이 없으면 옳은 것은 그 옳은 것 참된 것 그것 한 가지 말인데 그 옳다는 것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뜻 고 진리 참된 것 고것을 원하는데 그것을 원해서 그것을 때문에 있다 그것은 내 재신보다도 내 아 가족 에 문제 되어도 가족이 깨어져도 옳은 걸 볼 수 있다. 내 위신이 절단나는데 옳은 걸 볼 수 있다. 내 권위가 더 박살 됐으면 됐지 그 옳은 걸 그거는 버릴 수 없다. 이기 있었더라면은 바리새교인과 서기관과 제 사장들이 예수님 팔지 안했습니다.
오늘도 믿는 사람 가운데 뭐 옳은 걸 원한다고 하기야 하지 옳은 거 안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살인 강도도 옳은 거 원하는데 옳은 걸 원하지마는서도 원하면 보수가 어느 정도 원하느냐 내기에 손해갈 것 하나도 없으면 원하느냐 돈이 조 금 손해가도 원하느냐 네 전 인격이나 네 모든 명예가 조금 손해 가도 원하느냐 네 친척이 다 이제 끊어져도 원하느냐 마지막에 목숨보다도 옳 은 걸 원하는 사람이라야 순교를 하지 믿음을 지키지.
그러기에 기독자의 신앙 생활에서 행동 제일 머리가 되요. 옳은 걸 원하는 거 옳은 걸 원하는 거 목표가 여기 있으면 실수 암만해도 관계없어 실수 암만해도 그 사람이 언젠가 돌아오요. 이렇지마는 제가 사람 보기에 성자 성녀의 생활한다 할지라도 옳은 것이 자기의 최고의 소원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 그 사람은 환경과 주위에 따라서 변해집니다. 별수 없이 팝니다.
그런고로 소원을 우리가 바로 새울 것 소원을 여러가지 가지지 말고 소원을 하나만 가질 것. 하나만 뭐 아무거라도 하나 아니요.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고 소원을 내 소원으로 삼아서 하나님이 소원하신 그걸 내 소원 삼아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내 소원 삼아서 하나님의 진리를 내 소원을 삼아서 요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다른 말로는 또 성령에 소욕이라 이랬소 하나님이 욕심내는 고 욕심을 내 욕심으로 하나님이 너희 안에 소원을 주사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라 그 사람 속에 벌써 하 나님이 소원하는 그 소원을 자기 소원으로 삼고 있으면 그기 벌써 하나님이 그 속에 와서 계시는 것이요 소원만 있으면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물리치는 것이 하나님 물리치는 것이요. 이것을 소원으로 자기 소원 으로 가지고 이 일을 이룰라고 하면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그 일이 성취 시키시요. 예수 믿어도 바보같이 예수 믿으면 바보가 되. 비판이 바보가 되지 평가가 바보가 되지 경영이 바보가 되지. 이러니까 하는 행동이 전체 바보라 말하는 것도 바보 지도도 바보 그면 그 밑에 사 람은 전체가 바보가 돼버리고 만다 그 말이요.
그러면 기형적인 사람 그 신앙 생활에는 이 과학도 그것이 이 세상에 서는 과학이 제일 예민합니다. 고기 철저하요. 조그만치라도 위반 이탈 되면 고 안됩니다. 이치에 딱 맞아야 물리에 고것도 이치에 딱 맞아야 되. 안 맞으면 안되. 비슷하게 맞으면 비슷한 그 성과가 나오지 그것보다도 그것보다도 영은 더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이 뭐 과학이란 이런 것으로 칭량할 수도 없는 세밀하고 고귀하고 정확하고 한 말로 말하면 깨끗한 것입니다. 깨끗한 것.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 마다 그에 깨끗하심 같이 자기를 깨끗게한다 하니까 그 사람 지식에 따라서 아 때가 없는가 보다 깨끗이란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일치된다 하나님의 뜻과 자기와의 일치된 뜻이 깨끗이요.
하나님의 움직임과 자기 움직임이 일치된 것이 깨끗이요. 자기라는 인격과 하나님의 신격이 요것이 같아서 하나님의 신격에 모형이 돼야 깨끗한 것입니다.
그면 그기 그리 쉽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새는 소원에 대해서 말하는데 소원을 이거 바꾸어야 됩니다. 소원 이 바로 되어야 되지 소원이 지금도 헛된데 소원이 있으면 혓일입니다. 소원이 바로 되야 되지 소원이 바로 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무얼 소원합니까? 큰 교회를 소원을 합니까? 사례 많은 것을 소원을 합니까? 자기가 큰 부흥사 되기를 소원합니까? 설교 잘하는 사람되기를 소원합니까? 뭘 소원합니까? 위대한 개혁가가 되기를 소원합니까? 위대한 신학자가 되기를 소원합니까? 뭘 소망합니까? 하나님의 뜻 진리 진리와 일치되는 자기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는 그걸 소원합니까. 고 소원이라면 모든 것 다 거기 있소. 그것 외에는 최고의 혁 명가 개혁가가 신학자가 부흥가가 설교가가 될라고 해도 그것은 잡것입 니다. 그건 잡것이요.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이 일치 하나님의 움직임과 자기 움직임이 일치 하나님의 신성과 자기의 인격성이 하나 되서 그 모형 움직임은 일치될 수 있어 본체는 일체가 안돼도 한 십분 기도하고 권찰회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소원을 바꾸어야 되요. 이것이 바꾸어야 됩니다. 바꾸면 진리가 그를 책임집니다. 진리의 인도를 받을수가 있어 우리가 진리를 찾을 필요가 없어. 온 진리를 버리지 안하면 되지. 성경을 평생 배워야 다 못 배웁니다. 요것 둘만 바꾸어 놓으면 둘만 바꾸어 놓으면 성경과 저와 같애. 중심과 소원만 바꾸어 놓면 저절로 되요. 중심과 소원만 바꾸어 놓으면 저절도 됩니다. 중심과 소원을 바꾸어 놓지 안하면 노트 백권을 가졌어도 백권 고것 뿐이지 그다음에 없소. 또 노트백권 그것만 가지면 뭐 됩니까 앵무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