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3 20:29
시험준비와 승리
본문:야고보서 1장 12절~15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성경은 다 기록할라면 온 세상에도 모자라는 많은 양을 간추려서 신구약 육십육 권에 다 기록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받는 사람들, 참 깨달을라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가지고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간추려서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성구에 거게 대한 분석을 할라고 하면은 책이 그 두꺼운 책이 몇 권도 모자라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 보고 바로 깨닫기가 좀 힘듭니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다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자기 지식이나 명철 가지고 깨닫겠다고 하는 교만한 자들은 제가 아무리 신학박사의 이름을 몇 개를 가지고 있어도 진리는 절대 깨닫지 못하고 껍데기만 줄줄 훑고 마는 것입니다.
여게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시험하지도 아니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잘못됨에 빠져서 실패하도록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실패하도록 하는 하나님이 아니요, 또 어떤 자에게 실패하게 하는 그 피해를 당하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간추려 말했기 때문에 우리 말로 한 말로 가지고는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실패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실패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으로 사람을 시험치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은 사람을 실패하도록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또 “사람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는다” 그말은 사람에게 실패를 당하지도 않는다 그말입니다. 실패를 당하지도 않는다. 실패케 하지도 아니하시고 또 사람에게 실패케 함을 당하지도 아니하신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어떻게 실패하느냐?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함이다. 자기 욕심에 꼬임받아 가지고, 자기 욕심 그놈에게 꾀임받아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망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하는 말입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함이라” 그말은 인간이 망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서 망하게 된다. 하나님도 사람을 망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또 어떤 것에게 하나님은 실패케 하는 그런 것을 당하지도 아니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실패케 한다. 나를 망하게 한다.’ 그렇게 생각지 말아라. 사람이 실패하고 망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다, 자기 욕심에 끌려 가지고 실패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라고 나서,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욕심 그놈이 자기를 꼬와 가지고, 자기 욕심에 뭐 돈 욕심, 명예 욕심, 안일 욕심, 행락 욕심, 어떤 이런 더러운 욕심, 뭣이든지 욕심 그놈이 자기를 꾀워 가지고 자기를 망치는 것이지 하나님이 망하게 하시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심 그놈에게 꼬여 가지고 자기에게 망할 일만 자꾸 하게 되는데 욕심은 어떤 것이 욕심이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성령의 소욕 외에 욕심을 가지면 가진 것만치 삐뚤어진 일을 하게 되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욕심을 가지면 가진 것만치 삐뚤어진 일을 하고, 또 “죄가 장성한즉 사망 낳는다” 삐뚤어진 일을 한 것만치 그것이 나중에 가서는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망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12절에는, 지난번에도 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그말은 시험에 지지 안하고 시험을 이기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말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그말은 시험에 자기 신앙 생활을 중지당하지 아니하고 계속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다시 말하면 시험을 참는 자 복이 있다 그말은 시험을 이기는 자는 복이 있다.
아무리 자기 신앙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있어도 그 방해로 인해서 자기 신앙 생활이 중단되지 안하고 패전하지 안하고 계속 승리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그 시험하는 그 건에 대해서 하나님이 ‘너는 옳다. 너는 이겼다.’ 너는 이겼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너는 이겼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그러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이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있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는 데에는 무조건 믿으면 됩니다. 무조건 믿고, 택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습니다. 택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것은 뭐 차이가 없이 꼭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사랑을 해 주시고 이렇습니다.
그러면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에 대한 계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의 계약이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계약이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계약은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 주시고 또 우리를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시켜 주시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기본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을 입은 것도 꼭 같습니다. 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것도 꼭 같습니다. 이것은 뭐 우리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같고,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이나 베드로나 우리나 하나님의 대속을 입은 것과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것은 꼭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천층 만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 하나도 안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다가 배반하는 사람도 있고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이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차이는 천층 만층도 더 됩니다. 그 층어리는 얼마나 있으냐? 고린도전서 15장에 가 보면은 그 층어리가 많다는 것을 거게 말씀해 놨습니다. 세상에서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그 사람의 영광과 존귀와 실력은 천층 만층이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세상에서 사람이 천층 만층 되는 것보다도 하늘나라에 가면은 하늘나라에 간 사람들 중에 그 층어리는 천층 만층이 아니라 그거는 측량 못 하게 뭐 억억만 층도 더 되고 뭐 억억억억억억억만 층도 더 됩니다. 그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다 지옥 가지 안하고 하늘나라 다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하늘나라 간 사람들은 심히 많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간 사람들은 꼭 같은 행복을 가지게 되느냐? 영광을 가지게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하늘나라 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하늘나라 가고 하늘나라 가 가지고 영광이나 존귀나 실력이나 그 나라의 대우나 이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한 그 사랑대로 갑니다. 사랑 하나도 없으면 그 나라에 대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나라에 가 가지고 영생을 가졌고, 또 늙지 안하는 몸으로 부활을 했고, 또 그 나라의 먹을 거 입을 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거는 있지마는 그 사람의 실력이라든지, 또 모든 인류나 만물이나 하나님에게 대우를 받는 대우라든지, 권세라든지, 지위라든지, 사업이라든지 그런 것은 천층 만층입니다. 그거는 뭐 층어리가 한없이 있습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 층어리가 많기 때문에 그 대우 층어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비유컨대 먼지만치 사랑했더란대도 사랑한 거게 대한 대우는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결단코 상이 없지 않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받는 것은 우리가 힘 안 써도 받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안 받을라 해도 받아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에 받고자 하든지 말든지 모르든지 감사를 하든지 말든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는 다 기본구원의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것은 하나도 사랑 안하는 사람도 있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 구비하게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랑, 하나님을 사랑하는 차이는 그 차이가 심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은 심히 차이가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시험을 이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시험에 진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에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거 사랑할라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을 이긴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시험에 진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사람입니다.
시험을 이긴 사람은 그 시험에 대해서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네가 이 시험에서는 시험을 이겨서 나를 사랑했다.’ 인정함을 받았다 말은 사랑했다 하는 것을 인정을 하십니다. 인정하는 것은 그 결실을 맺고 난 다음에 인정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 일이 다 결말이 다 났으면 하나님을 사랑했다 안 했다, 시험을 이겼다 졌다 하는 그것이 판정난다 그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뭣을 약속 하셨는고 하니 약속하신 것은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했는데, 생명의 면류관 약속했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생명이라 말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결합된 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생명의 면류관 얻는다 그말은, 면류관은 승리라 말인데, 재독을 많이 들은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인데 하나님하고 자기하고 결합된 결합이 승리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결합된 그 결합을 뺏기지 안하고, 그 결합을 던져 버리지 안하고, 그 결합의 손해를 보지 안하고, 그 결합이 파괴당하지 안하고, 그 결합이 성공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결합이 성공한 것을 가리켜서 생명의 면류관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결합이 성공했으니까 전능자와 결합이 성공했다 말이요,전지자와의 결합이 성공했다 말이요,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을 가지셨는데 완전한 사랑과 결합이 성공했다 말이요, 하나님은 완전자요 전지 전능자이신데 그분하고 나하고 결합이 돼서 하나가 된 그 일을 성공했다.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할라고 세상에서 악령들이 방해하고, 또 죄가 방해하고, 사망이 방해하고, 마귀의 세상이 되어 있는 이 세상이 방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되는 이것이 성공인데, 하나될라고 애를 쓰는데 하나되는 이 일을 하나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가 몇이 있는고 하니 넷이 있습니다. 마귀가 있고, 죄가 있고, 사망이 있고, 이 세상하고 이 넷이 들어서 방해를 합니다.
다른 말로 ‘악령’ 하는 것은 마귀를 말하고 악성 악습은 죄를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을 달리했으나 악성 악습이라 말은 죄라 말이고, 또 이러기 때문에 세상 마귀 죄 사망 이 네 가지가 들어 가지고서 우리하고 하나님하고 한 덩어리 된 것을 깨뜨릴라고 애를 씁니다. 우리하고 하나님하고 하나된 것을 깨뜨릴라고 애를 씁니다. 깨뜨릴라고 애를 쓰는 데에 깨진 사람은 패전했고 깨지지 안한 사람은 하나님과 결합이 성공됐다 그말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 복이 있다” 말은 하나님과 하나된 이것을 이 네 가지가 들어서 깨뜨릴라고, 이 결합의 사이를 벌어뜨릴라고, 하나님하고 뚝 떨어지게 만들라고 이렇게 하는 이런 일을 당할 때에 “참는 자 복이 있다” 암만 그래도, 어떤 고난을 줘도, 어떤 고문과 고형을 줘도, 어떤 어려움을 줘도 하나님과 자기와의 하나된 요것을 내 주지 안하고 그대로 참고 견디고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복이 있다 그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 얻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시험을 이기면은 어떻게 되는가? 여게 보십시오. 요한계시 3장 10절인데 내가 읽을 터이니까 듣기만 하십시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한다 말은 시험 안 닥치게 한다 말 아니오. 면하게 한다 말은 시험에 낙제되지 안하고 그 시험을 이기게 한다 그말입니다.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온 세상에 이 시험이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시험을 다 받습니다. 이 시험을 다 받는데, 이 시험에 이제 지면 비참하게 되고, 영원히 비참하게 되고 이 시험을 이기면 영원히 영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네가 굳게 잡아” 뭘 굳게 잡아? 하나님과 너와의 이렇게 결합 되어 있는 이것을 굳게 잡아서 아무에게나 뺏기지 말아라. “뺏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이 시험을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되게 하리니’ 자, 손가락으로 꼽아 보십시오. “성전 기둥이 되게 하리니” 기둥, 성전 기둥이 된다 말은 하나님의 교회의 주동이 된다는 말입니다. 성전 기둥이 된다 말은 하나님의 교회의 주동된다 말이오. 하나님의 교회는, 교회는 하나뿐인데, 교회는 하나뿐인데 그 교회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통치하는 그 통치권을 다 가진 것이 앞으로 교회가 됩니다. “교회의 기둥이 되고” 교회의 제일 주동이 되고.
또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 또 쳐 보이소.
“하나님의 이름” 그러면 몇입니까? 둘.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그라면 몇입니까? 셋.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그라면 몇 가지입니까? 네 가지. 네 가지를,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것은, 그러면, 성전 기둥되고, 또 하나님의 이름, 또 새 예루살렘의 이름, 예수님의 새 이름, 이 네 가지가 이긴 자의 위에 이 이름을 기록했다 그랬습니다. 이름을 기록했다 말은 우리가 알아듣기 쉽도록 자꾸 이렇게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인데, 이름을 기록했다 말은, 예를 들어서 여게, 뭐 그거 비유는 안 되지마는 이 프랑카드를 이래 들고 이래 쭈욱 갔는데, 가는데 이것은 무슨 ‘○대통령의 지금 운동이라’ 하면 그거 제일 세력 있겠습니다. 또 ‘이것은 누구의 그 운동이라’ 이름이라 말은 운동이라 말입니다, 운동.
그러면 하나님의 운동, ‘이거는 이 사람은 이 사람이 아니고 이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의 역사다.’ ‘새 예루살렘의 역사다' “예수님의 새 이름” 예수님의 새 이름은 지금은 어린 양으로 우리를 대속하지마는 이다음에는 하늘의 것과 땅에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 계시는 그분의 역사라. “이는 성전의 기둥이라” 그러면 그 영광이 어떠한 것은 여러분들은 지금 좀 지식이 어려서 거기 대해서 모르는데,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무슨 이 모자를 하나 쓰고 있습니다. 모자를 하나 쓰고 있는데 그 모자에 모표에 붙이기를 ‘이는 바로 대통령의 특령을 받은 자라.’ 대통령이 하는, ‘대통령의 특령이라’ ‘이거는 대통령의 특령이라' 이렇게 그 모표를 붙였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바로 대통령의 전권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을 다 가지고 쓰는 것이 그 사람이라는 그런 일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모두 모자에 모표가 뭐 이런 것 다 붙지 않습니까? 그게 다 뭐이냐 하면 그 어데 속했으며 또 그 모표 붙인 자는 어떤 권력을 갖고 있고 어떤 행사를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모표를 붙이고 뭐 간판을 붙이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데, 이기는 자는 네 가지 그 새 이름을 그 위에 썼다. 이 네 가지가 그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다. 이건 네가 사람으로 할 게 아니고 이건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의 역사다. 만왕의 왕의 역사다. 이는 교회에 제일 주동 역사다.’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하늘나라의 이 영생하는 그 천국,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 통일된 나라가 하늘나라인데 하늘나라 속에 중앙청이 뭐인가? 하늘나라 속에 제일 중앙청이 뭐인가? 중앙청은 새 예루살렘이 중앙청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중앙청 이름이라, ‘이것은 중앙청 역사다’ 그러면 그가 하늘나라의 중앙청 세력을 그가 가졌고, 또 하나님의 세력을 그가 가졌고, 만왕의 왕의 세력을 그가 가졌고, 교회의 주동 세력을 그가 가졌다. 이 세력을 그에게 준다는 것을 여게 기록한 것입니다. 이런데 이 시험은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시험합니다. 이 시험을 치르지 않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는 이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과 그렇게 결합 됐는데 이 결합된 그것을 배암이 와 가지고 하와를 꼬우니까 하와가 배암의 꼬임에 빠져 가지고 그만 하나님을 배반해서 하나님과 결합이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떨어졌는데 그래도 하와가 그래 가지고는 아직까지 계약을 아담과 했기 때문에 지금 의문 가운데 있었는데 요 아담이 하와가 와 가지고 알랑알랑 하면서 그라니까 요 하와의 꼬임에 빠져 가지고 그만 하나님의 계약을 어겨 가지고 아담까지 하나님과 결합이 떨어져서 이 부정모혈로 나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싫어하는 죽음을 당하는 것이 왜 당하느냐? 그것은 하나님과 끊어졌기 때문에 당하게 된 것입니다. 왜 끊어졌느냐? 우리 인류시조 아담이 잘못해 가지고 끊어졌습니다. 아담이 잘못해서 끊어졌음으로써 그 자손들을 다 이 사망을 받게 됐습니다.
아담이 대표해 가지고 이 시험에 낙제하니까 아담의 자손이 다 전멸을 당했는데, 전멸당한 가운데에서 둘째 아담이 오셔 가지고 이 시험을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도전해 가지고 이 시험을 이겼습니다. 이 시험을 이겨서, 택한 자들을 대표해서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택한 자들은 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시험을 이기고 있습니다. 시험 이긴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대신해 가지고 이 시험을 이기게 해 주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 시험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이겨 주셨음으로써 이 시험을 이긴 사람들은 지옥 가지 안하고 다 하늘나라에 갑니다. 이것이 기본구원입니다.
하늘나라 가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큰 힘 들여서 이 시험을 대신해서 이겨 주셨는데 우리가 이제 시험을 이기느냐 안 이기느냐? 이렇게 큰 힘 들여서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을 이것을 어느 정도 중하게 여기느냐? 어느 정도 간직하느냐? 이것을 시험하는 것이 우리의 시험인 것입니다.
이래서 심판이 둘입니다. 공심판은 예수님이 대신해서 이 시험을 다 이기도록 해 주셨고, 공심판 다음에 그리스도의 심판이라는 사심판이 있는데 이 사심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영원한 지옥의 멸망을 피해 나온 사람, 거게서 구출돼 나온 사람,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돼 나온 사람 중에, 구출돼 나온 모든 사람들 중에, 그러면 하나님의 이 구출해 주신 이 구출을 어느 정도 보존하고 있느냐?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느냐? 이 구원을 어느 정도 귀중히 여기고 있느냐? 이 구원을 얼마 정도 천하게 여기고 있느냐? 그것을 시험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을 향해서 하는 시험인데 우리가 지금 받는 시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시험은 예수님이 받은 시험을 우리가 받고 또 첫째 아담이 받은 시험을 우리가 받는데 첫째 아담이 받은 그 시험과 같은 시험인데 그 시험은 공심판을 향해서 시험받은 것이기 때문에 심판에 지니까 멸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공심판에서 구출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영원한 멸망을 피해서 하늘나라 백성이 됐습니다. 하늘나라 백성이 됐는데, 하늘나라 백성된 자로서 ‘네가 하나님하고 결합한 이 결합을 이제 은혜로 받았는데 이 결합을 네가 어느 정도 가치로 여기고 어느 정도 이 결합을 네가 보존하느냐? 어느 정도 이 결합을 보수하느냐? 어느 정도 이 결합을 네가 중하게 여기느냐?’ 하는 그것의 시험이 지금 우리의 시험인 것입니다. 우리 시험은 이 시험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이 구원, 지옥을 면하게 된 이 구원을 그 사람이 하나도 가치 있게 여기지 안해서, 예를 들어서 돈 백 원하고만 관계 있어도 돈 백 원 차지하고 ‘뭐 까짓 거, 이 구원이야.’ 예수님의 대속은 벗어버리고, 또 죄를 지을 대로 짓고. 또 백 원짜리 그렇지마는 천 원짜리가 오니까 하나님과 연결을 버리는 사람, 억만 원짜리가 와도 안 버리는 사람, 생명이 끊어질 판이니까 이제 버리는 사람, 또 생명이 끊어져도 안 버리는 사람.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았는데 이 사랑을 내가 어느 정도 간직하느냐 하는 그 시험이 우리의 시험입니다. 그 시험을 해 가지고 이 간직한 간직의 차이가 사람 사람이 천층 만층도 넘습니다. 그 간직한 차이대로 무궁세계에 대우를 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시험은 뭐이냐? 우리의 시험은 영원한 하늘나라의 대우를 좌우하는 것이 우리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에 떨어지면은, 하늘나라 가기는 갔습니다. 간 거는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 가지고 하늘나라 갔지, 또 하늘나라 가 가지고 영광이나 대우나 존귀나 있는 것은 제가 하나님을 사랑한 그 가치대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 사람한 것이 하나도 없으면은 하늘나라 가기만 갔지 거게서 대우나 영광이나 권세나 그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나그네 세상인데 이 세상에 사는 거는 뭐 때문에 살고 있느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두 가지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는 것은 뭐 때문에 사느냐? 두 가지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두 가지.
하나는 뭐? 이 시험을,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이 시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안 하느냐 이 시험인데 이 시험을 네가 어느 정도 준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력을 네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력을 네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나 하는 그 시험이 우리의 영원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은 부득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의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준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시험 준비요, 또 시험 준비 해 가지고 하나님을 어느 정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시험해 보는 그 시험이 우리의 시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둘이라 하는 거는 뭐인가 하니 이 시험을 준비하는 일 하나와 또 시험을 준비해 가지고 이 시험에 떨어지지 안하고 이 시험을 이기는 것과 이 두 가지가 우리 할 일입니다.
그러면 열심히 준비해 가지고 시험에 이기면 그것이 막바로 하늘나라의 영광과 존귀가 되고 이 세상에서 준비를 해 가지고 시험에 떨어지면 하늘나라 가 가지고 영광이나 존귀나 권세나 그런 것은 하나도 없고, 다 없어지게 되고, 다 뺏기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우리를 피로 대속하시고 이 세상에 두고 하나님께서 살게 하시는 것은 이 두 가지 준비를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두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일 소원하시는 것은 뭐냐? 준비 잘해 가지고 시험 당했을 때에 이기는 거 그것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그러면,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 시험을 이긴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주님을 배반하는 것은 어떤 게 배반하는 것인가? 이 시험에 진 것이 배반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을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하는 것은 네 가지를 네가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네 가지 무엇인가? 네 가지는 곧 예수님의, 네 가지 하면 복잡할 것이니까 세 가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이 공로를 네가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을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신구약 성경 법칙인 이 진리를 네가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하는 이 세 가지 시험인 것입니다.
우리 준비는 무슨 준비인고 하니 ‘어떻게 복잡해도 이 세 가지 사랑을 내가 변치 않겠다. 아무리 어려움을 닥쳐도 이 세 가지 사랑을 변치 안하겠다. 아무리 위협과 협박과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 세 가지 사랑을 내가 배반치 않겠다.’ 하는 그것이 우리의 준비입니다. 그러면 준비하고 난 다음에는, ‘그러면 네가 이 세 가지 사랑을 배반하나 안 하나 보자’ 하고서 이제 그 시험이 옵니다.
시험이 오는 것은 자기가 준비한 거,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대속,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를 네가 사랑하나 귀중히 여기나, 영감을 귀중히 여기나, 진리를 귀중히 여기나? 귀중히 여기는 데는 네가 얼마만치 귀중히 여기나? 돈 백 원만치 귀중히 여기나, 천 원만치 귀중히 여기나, 만 원만치 귀중히 여기나, 억만 원만치 귀중히 여기나, 모든 물질보다 귀중히 여기나, 네 몸 다음으로 귀중히 여기나, 네 몸보다 더 귀중히 여기느냐, 네 생명보다는 다음으로 귀중히 여기느냐, 네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느냐? 요것을, 우리가 매일 매일 현실 닥치는 것은 요거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험해서 ‘네가 요것보다 저것보다’ 요렇게 시험해 가지고, 그러면 자기가 그 시험에 그것보다 주님의 이 세 가지를 사랑했으면 그만치 하늘나라 대우가 있고, 자기가 세상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대속을 받았지마는 세상에 지낼 때에 요 세 가지를 사랑한다고 하지마는 자기에게 조그매만 손해가 닥쳐도 그만 이 세 가지 사랑을 버려 버리고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세 가지 사랑을 버린 그 사람은 하늘나라 가기는 갔지마는 하늘나라에 대우해 줄 리가 없다 말이오. 대우해 줄 리 없고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요.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의 시험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냐?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요 말을 듣고 성경을 읽어 보면은 성경에 막 기록해 놓은 것이 전부 이걸 막 기록해 놨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신의 감화 감동을 소멸하면 하나님을 미워해서 버리는 것이고 성신의 감화 감동을 버리지 안하고 성신의 감화 감동을 사랑하고 지키면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사죄를 사랑함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죄짓지 않는 죄 없는 자로 사는 거, 의로운 자로 사는 거,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된 자로 사는 거 요것을, 요 세 가지를 또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죄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칭의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하고 이렇게 친밀히 결합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이 셋을 합해서 한 말로 말하면 대속의 피공로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알겠습니까? 한 말로 말하면 대속의 피공로라 말이오, 대속의 피. 예수님의 대속이라 해도 되고 예수님의 피라 해도 되고 내나 한 말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 하면은 세 가지 대속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대속을 말해도 사죄, 칭의, 화친의 세 가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대속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영감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오.
아무리 주님을 제가 입술로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현실에서 예수님의 피공로를 벗어버리면 주님을 사랑한다 말이 거짓말이요, 영감을 버려 버리면 주님을 사랑한다 말이 거짓말이요, 진리를 버려 버리면 주님을 사랑한다 말이 거짓말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은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다시 말하면 이 세 가지를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하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그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가 누군고 하니 악령이 방해하고, 죄가 방해하고, 사망이 방해하고, 이것들을 가리켜서 세상이라 말합니다.
알겠습니까? 이것들을 합해서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방해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 다리오 왕이 다니엘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까 사랑치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사랑치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리오 왕이 그게 세상이요, 마귀요, 죄요, 사망의 군데인데 그렇게 해도 다니엘은 거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변하지 안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변하지 안한 것이 뭐인가? ‘아무래도 나는 죽어도 기도한다.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도 기도한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변치 안한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책임지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 이거 뭐 많이 복잡한데 여러분들이 잘 들으면 그만 성신이 대번 가르쳐 주는데. 내가 기도하기를 그것도 기도했어요. 늘 그거 기도해요. 왜? 내가 아무리 청산유수의 말을 해도, 천하 말을 다 한다 하더란대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신의 감동이 가서 이거 내가 전할 때에 방언의 능력이 역사해야 되고 듣는 저희들에게도 들어 깨닫게 하는 방언의 성령의 역사가 같이 해야 되지 성령 역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니 여러분들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러면 자, 이제 필요한 걸 말했는데,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이제까지 말했는데 몇 가지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몇 가지 말했습니까? 몇 가지 말했습니까? 저게는 손가락 다섯 들고, 또 손가락 다섯 든 사람 들어 봐. 서이 든 사람 틀렸어. 다섯 가지 든 사람 맞았어, 다섯. 이제 분석을 하니까 다섯 아니요? 뭣뭐? 사죄, 칭의, 화친, 또? 그 다음에 넷째는 뭐입니까? 영감. 그 다음에 다섯째는? 진리. 나눠 말하면 다섯인데 뭉쳐 말하면 셋이라 그 말이오. 사죄, 칭의, 화친 이 셋을 가리켜서 한 말로 뭐라 합니까? 피공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라 이렇게 말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나누면 다섯 가지요 모으면 세 가지인데, 하나님에게는, 뭐 하나님에게는, 아주 공부 많이 해서 박사 스물셋 가지고 있는 사람 내가 들어 봤는데, 박사 스물셋 아니라 백 박사를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어. 아무리 천하의 미남도 그까짓 것도 소용 없어. 천하 미인도 소용이 없어. 병신이라도 상관 없어.
귀머거리라도 상관 없어. 누운뱅이라도 상관 없어. 문둥이라도 상관 없어. 그런 거 상관 없어.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은 요거 다섯 가지 가진 사람을 원합니다.
요 다섯 가지를 가진 사람. 요 다섯 가지를 가진 사람. 뭉쳐서 말하면 세 가지 가진 사람. 요 다섯 가지 가진 사람.
아무리 뭐, 죽인다 해도, 그 기름가마에 삶아도 죄 없는 사람, 죄 안 짓는 사람, 의로운 사람, 하나님 배반치 않는 사람, 감옥에 갖다 넣어도, 공산주의가 끌고 다니면서 어떻게 고문과 고형을 해도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예수님의 대속을 버리지 안하고 대속을 보수하고 있는 사람, 영감대로 사는 사람, 진리대로 사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께는 필요합니다. 그 사람 외에는 다른 게 필요 없어요.
알겠습니까? 하나님에게는 고관대작도 필요 없습니다! 그거 다 하나님이 줬기 때문에 오늘이라도 대통령을 하나님이 확 뺏들어 버리면 금방 대통령 뺏기요. 오늘이라도 생명 끊어 버리면 또 코르륵 팩 하고 뒈져요. 아무 소용 없어요. 알겠습니까? 뭐 세계 강대국의 대통령도, 부자도, 사장도, 미인도, 미남도, 박사도, 학위도, 뭐 총장도, 아무것도 하나님께는 필요 없어요. 하나님은 다 필요 없어. 그거 다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불로 싹 사뤄 버리면 한목 다 사뤄지고 맙니다.
주님에게는 요 다섯 가지만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다섯 가지만 필요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준비는 무슨 준비냐? 이 다섯 가지를 강하게 준비해서 이 다섯 가지는, ‘온 세상이 일어나고 바다 물결이 산 위에 넘쳐도, 뭐 막 창검의 전쟁이 일어나도, 어떤 고문과 고형이 일어나도, 온 천하를 내게 준다고 해도, 어떤 미남이 와서 막 꼬운다고 해도, 어떤 미인이 와서 꼬운다고 해도, 어떤 뭐 어떤 행복스러운게 와서 한다 해도,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요 세 가지를 내가 내어 주지 안하고 요 세 가지를 내가 가진 자가 되겠다.’ 하는 요것이 우리 준비입니다. 요 준비.
준비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다 가졌습니다’ 해도 사람들은 거짓부리기 때문에 그 가진 걸 안 가졌다고 하면, ‘나는 가졌는데 안 가졌다고 합니까?’ 억울하다 할 것이고, 이러니까 하나님은 그 시험을 해야 저도 알고 남도 알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다섯 가지를 가졌다고 하면은 ‘보자, 너는 얼마나 가졌느냐?’ ‘나는 요만치 가졌습니다. 요 꿀밤만치 가졌습니다.’ `오냐, 꿀밤만치 가졌느냐? 그러면 꿀밤만치 가졌는가 보자.’ 꿀밤만치 가진 것을 시험할 수 있는 시험에다 들어얹습니다. 들어얹으면 꿀밤만 하면은 그 시험에 통과되는데 꿀밤만 못하면 시험에 떨어집니다. ‘아, 너는 꿀밤만 못하다. 꿀밤만침 시험을 못 했다.’ 또 ‘나는 이 집채만치 준비했습니다.’ `오, 집채만치 준비했어?' 그러면 집채만치 준비한 그 준비를 저울에 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 집채만치 준비했으면 그 시험을 이길 수 있고 그 시험을 닥쳐도 자기 준비한 것을 뺏기지 안할 수 있을 만치 그만한 어려움을 줍니다. 그 어려움을 줘도 그때에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준비한 것이 깨지지 안하고 그대로 남아 있으면 이것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 줍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뭣이 필요한고? 세상 학문을 다 가진 거, 온 세계에 제일 일등되는 과학자, 아무 필요 없어. 당신은 필요 없어. 왜? 일등되는 과학자라도 그자가 죄 오면 죄짓고, 또 의를 뺏길 때 되면 의 뺏기고, 또 의 내 줘 필요할 때는 의 내 주고 하는 그런 자가 필요 없고, 또 하나님 배반할 때는 배반하는 그런 자가 필요 없어.
세계에 제일 되는 일등 과학자라도, 일등 정권자라도, 일등 제벌가라도, 일등 미남이라도, 일등 미인이라도, 일등 대학자라도, 일등 제일 예술가라도 하나님은 소용 없어! 하나님께는 요거 다섯만 필요합니다. 알겠습니까? 요거 다섯만 필요합니다.
요 다섯만 필요하기 때문에 요 다섯을 준비하도록 항상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역사하시고 시험하고, 준비하고 난 다음에는 ‘보자, 준비가 어느 정도 됐나?’ 이게 되지도 못한 것이 준비된 줄 알고 있을 때에 그 준비한 것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한 가지 시험을 닥치면은 그만 툭 떨어져 버리고 말면은 ‘아, 나는 이거 준비가 안 됐구나. 나는 없는 자로구나.’ 이래 가지고 반성해서 새로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하고서 지금 끝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했는데 준비한 것을 시험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준비한 그 준비 이상으로 시험하면 우리가 낙제가 되겠습니까 합격이 되겠습니까? 낙제되지요. 우리가 준비한 것만치 시험을 한다면 우리는 합격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합격할 수 있지요.
이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에는 우리 준비한 것만침 시험하고 자기가 이 준비됐다고 자기가 인정하는 것만치 시험합니다. 알겠습니까? 자기가 준비됐다고 인정한 것만치 시험합니다. 그 이상을 시험하지 안하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는 준비도 되지 못한 것이 준비됐다고 알면은 그 시험해 가지고 아닌 것을 알려 줘야 되겠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험하는 것은 감당치 못할 시험은 오지 않습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은 오지 않는다 말은 우리 준비할 기간에 준비했으면 준비한 사람은 다 합격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그런 시험을 주는데 제가 준비할 때 준비 안 했으면 떨어진다 말이오. 준비 안 했으면 떨어지지만 준비한 자는 떨어지지 않고 준비한 자는 다 승리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미쁘셔서,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 돼서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자기 준비한, 준비한 이상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한다. 그러면 준비는 자기가 실상 준비 아니라 제가 준비 된 줄 아는, 자기가 인식하는, 자기가 인식하는 그 실력 이상을 시험하지 않는다. 자기가 인식하는, 인식하고 있는 그 정도의 시험을 하신다.
왜? 그러면 인식하는 정도의 시험을 하시는데 자기는 없는 것을 있다고 잘못 인식한 사람은 시험에 다 떨어지고, 자기 인식하는 것이 실상으로 그 시험의 준비 실력과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면 그 사람은 다 합격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라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감당케 하신다” 그말은 앞으로 시험이 닥치면 시험이 올 그 전에, 시험이 닥치기 전에 “피할 길을 내사 감당케 하신다” 피할 길을 낸다는 요 뜻의 해석을 누가 아는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가지고 한번 말해 주십시오. “피할 길을 내사 감당케 하신다” 피할 길이 뭣입니까? 요것도 어려운 해석입니다. 요것도 여러분들이 주석을 가서, 칼빈 주석 나는 못 봤습니다, 아직. 안 봤는데, 여기 대해 안 봤는데 칼빈 주석도 보고, 박윤선 목사님 주석도 보고, 흑기 주석도 보고, 밸코프 주석도 보고, 어드만 주석도 보고, 유명한 학자들, 뭐 우리 한국의 그 표준 주석도 보고 다 보라 그 말이오. 요거 잘못 알면 안 돼요.
피할 길을 준다 그말은, 시험이 오기 전에 피할 길을 준다 그말은, 시험을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준다 그말은, 시험을 닥칠 그때에 피할 길을 준다는 그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거게 대해서 성신의 감동을 줘 가지고 고게서 ‘요리요리 하면 이긴다’ 하는 그 준비 준다 말이오, 준비.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준비를 줘요.
그러면 지금 오늘 우리가 하루 삼십 분 기도 하자 하는 이것이 다른 교회들에서는 말하지 안하고, 일반은 말하지 안하고 그라는데, 우리는 이 삼십 분 기도 하자 하는 그것은 다른 교회는 말하지 안하고 달리 기도하지마는 우리는 삼십 분씩 기도하자 요렇게 하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요것이 우리 앞에 닥칠 시험을 피하도록 하는 피할 길을 주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지금 삼십 분 기도 하는 것은 피할 길로 자기가 준비해 가지고 피하는 것인데 삼십 분 기도 하지 안한 사람을 피할 길 준비를 못 해 가지고 실패할 사람이라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천지를 다 줘도 필요 없어요. 하나님은 온 천하 이 지구 땅덩어리 다, 어떤 사람이 예를 들면 비유를 하면 지구 땅덩어리를 다 하나님에게 다 바쳐서 ‘하나님이여 이거 지구 땅덩어리를 내가 바쳐 드립니다.
이거 하십시오.’ 하면 하나님이 족하다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만족 안 하겠습니까? 만족 하겠습니까 만족 안 하겠습니까? 지구 땅덩어리를 하나님께 갖다 바치면은 하나님 만족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만족 안 합니다. 만족 안 해.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것은 무엇을 갖다드릴 때에 만족하겠습니까? 뭣을 갖다드릴 때에? 이 다섯 가지를 죽어도 내놓지 안하고, 생명에서도, 감옥에서도, 고문과 고형에서도, 또 이런 뭐 가난에서도, 이런 모든 면직에서도, 저런 박해에서도, 어떤 데서라도 이 다섯 가지를 내놓지 안한 그것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은 제일 당신이 좋아하시고 이 사람을 제일 높이 드십니다. 왜? 이 사람이 쓸모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면 하나님의 모든 걸 다 맡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것 다 맡기면은 그 맡긴 그건 어떻게 통치할라고?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그 모든 것을 무식쟁이가 하나님의 맡긴 것을 다 어떻게 관리하겠소? 하나님이 천상 천하 걸 다 맡겨 줘 봤자 관리를 못 할 터이니 어떻게 관리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면 어떻게 관리하겠습니까? 어떻게 관리하겠소? 한번 생각해 봐요. 어떻게 관리해요? 관리할 수 있어요 없어요? 이 다섯 가지 있는 사람은 우주와 영계를 그 사람에게 다 맡겨 주면 그것을 다 통치하고 관리할 수 있는 그 실력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 손들어 봐요. 있어요, 있어.
뭘로 합니까? 뭘로 합니까? 사죄를 지키니 죄가 와서 방해 못 하지, 칭의를 지키니까 그는 의로우니까 아무도 송사하지 못하지, 하나님하고 결합되어 있지, 성신의 감동대로 하니까, 성신의 감동대로 하니 그만하면 우주와 영계를 통치할 실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주와 영계를 성신의 감동대로 하니까 우주와 영계를 바로 통치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요 오묘 요것을 하나님께서 간단 명료하게 우리에게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다섯 가지를 준비하고, 이 다섯 가지만 어떤 것에게도 뺏기지 안한다면은 천상 천하는 내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오. 하나님은 나를 붙들고 일하십니다. 알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날마다 살고 있는 동안에는 일 년을 살든지 십 년을 살든지, 뭐 몇십 년을 살든지, 우리의 사는 동안에 우리 할 준비는 뭐입니까? 우리 할 준비는 뭣입니까? 몇 가지 준비할 것이 우리 준비입니까? 다섯 가지 준비할 게 우리 할 준비라. 다섯 가지 준비할 게 우리 준비.
또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이런 어려움 저런 어려움, 이렇게 내 마음이 끌릴 수 있는 이런 미혹 저런 미혹, 이렇게 좋은 거 저렇게 좋은 거, 이런 두려움 저런 모든 어려움, 이런 고난 저런 행복스러운 거 저런 재미있는 거, 그 모든 좋은 거 나쁜 거 오는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뭐 할라고 그런 일이 닥칩니까? 뭐 할라고 닥칩니까? 그거 뭐입니까? 그게 시험입니다. 알겠습니까? 시험입니다. 무슨 시험입니까? ‘이 다섯 가지를 네가 가지고 있나 없나, 이 다섯 가지를 뺏기나 안 뺏기나? 이 다섯 가지를 보존하나 안 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궁세계에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늘과 땅의 것을 다 맡기고 온 세상도 다 맡기고 모든 걸 다 맡겨서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길 수 있는 실력가의 그 실력은 뭣이 그의 실력입니까? 어떤 실력을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모든 걸 다 맡겨 주십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이 다섯 가지 실력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십니다.
앞으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될 터인데, 통일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처럼 올바로 관리하고 경영하고 또 그것들을 기르고 다스리고 잘 행복스럽게 할 수 있는, 모든 피조물을 행복되게 잘 다스리고 거느리고 복되게 할 수 있는 그 실력은 몇 가지 가지고 그 모든 걸 할 수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다섯 가지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렇게 보배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지금 배우기는 배우는데, 기도를 하십시오.
요번에 십팔일로부터 십구일까지 논다고 하는데 그때는 다 집어던져 버리고 가서 한번 굶고 요것을 산에 가서, 배고픈 것이, 배고픈 것이 생각나지 안할 만치 이것을 연구해 가지고 깨닫고, 배고프거든 얼른 밥 먹으십시요, 가지고 갖다가. 밥 갖다 옆에 놓고 배고프면 밥먹고 또 연구하고, 그 연구 하면서 이 연구가 깨달아지니까 뭐 밥먹을 생각이 없고 자꾸 좋고 좋고 깨달으니까, 이 깨달아지거들랑 밥먹을 생각 없거든 밥먹지 말고 자꾸 생각하십시오. 생각하다가 나중에 시간되거든 오라 그말이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땅위에 수많은 준비들은 다 썩어진 걸 준비하고 승리를 해도 썩을 면류관을 얻는 것이요, 저희들의 준비는 주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영영한 근본을 준비하고, 완전 영원 전지 전능을 준비하고, 썩지 않는 영생하는 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 하는 이 사실을 주님이여 영감으로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이를 깨달은 자마다 소유와 몸과 생명을 아낌없이 다 투자했습니다! 투자하지 못해서 갈급하고 어떤 일이 와도 이 다섯 가지를 양보 없이 그대로 사수하는 이 신앙 생활을 다 하고 있어 원하고 원하는 것이 순생 순교 생활인데 깨닫지 못함으로써 땅의 이 모든 썩을 것들을 탐하여서 영원한 것을 뺏기는 불쌍하고 가련하는 이 마귀 미혹에서 주께서 다 구출해 주시고, 영감으로 구출해 주시고, 진리로 구출해 주시고, 주님의 피가 이를 구출해 주시옵소서.
오늘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이제 주님을 깨달았사오니, 사망 가득찬 세상에서 생명의 길을 *찾았사오니8 생명의 주를 모시고 생명의 주의 슬하에서 모든 염려와 걱정 *없이* 주님에게 모든 걸 구하여 해결받고 평안하게 이 세상을 뿍뿍 승리로 걸어가는 저희들되게 하시옵소서.
이들을 구원 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더욱이 인간 구원하는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