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3 20:38
시험의 성격
1981. 2. 11. 밤 (수)
본문:창세기 22장 1절∼19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신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오늘밤에 봉독한 말씀 초두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무슨 시험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영원 무궁한 세계에서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성도들에게 모든 하늘나라의 것들을 다 맡기십니다.
그때는 천군 천사들이 맡아서 일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직접 모든 것을 인계 받아 대리 통치를 하고 천군 천사들은 성도들의 수종을 들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런 저런 직책을 맡기실 그 시험을 치르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세상에서 우리 모든 생활에 이런 저런 현실을 주시는데 우리는 이 비밀을 모르고 좀 좋은 평안한 현실을 주시면 '하나님의 은혜라' 하고 기뻐하고, 조금 어려운 현실을 주시면 그만 불만 불평을 합니다.
실은 좋은 현실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 행함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신다.' 하는 표로 신임을 하는 하나의 행사입니다. 세상에서도 시험을 치러서 합격이 되면 공부를 더 시켜서 준비시켜 가지고 시험을 치고, 시험 쳐서 합격되면 또 더 공부를 시켜 가지고 시험을 치고 이래서 점점 그 배움이 전진하고 향상하도록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준비케 하시고 시험을 쳐서 합격이 되면 그 일은 끝나고 그전보다 좀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재산이라면 더 많은 재산, 권세라면 더 큰 권세, 또 영광이라면 더 큰 영광, 보배라면 더 큰 보배 이렇게 그전보다 더 크고 많은 것을 주십니다.
주셔 가지고 그것을 우리가 얼마 동안 누리고 재미를 붙이고 정을 붙이고 이러고 나면 하나님이 또 시험을 하십니다. '보자, 네가 이렇게 정들고 재미있고 좋은 것을 가졌는데 여기에 재미 다 붙이고 정붙여서 여기 쏠려 가지고 내가 너한테 말하는 것을 순종 하나 안 하나?' 그 시험을 치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그 사람이 그것에 대해서 죽고 못 사는 것 같고 아주 그것은 참 제일로 사랑하고 제일로 좋아하는 것같이 이렇게 보여질 만큼 정이 딱 들고나면 그것에 대해서 시험을 하십니다. '그것을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나님의 뜻대로 써라.' 어떨 때는 '그것을 버리라' 이렇게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대개는 사람들이 거기에 정이 들었으니까 그것을 못 버립니다. 또 그 동안 써보니까 그것이 자기에게 참 필요가 있고 요긴하니 하나님에게 바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 바친다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쓴다 말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쓰려 하니까 자기가 못 쓰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 소원대로 쓰니까 자기 소원대로는 쓰지를 못하게 된다 말입니다. 그러면 그만 사람들이 아까워서 그것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취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버리라 하시는데 안 버리면 죄가 되도록 딱 만들어 놓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사정없이 척 버려버립니다.
또 어떤 때는, 참 그것 아끼기를 자기 생명같이 아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것은 이렇게 써라' 하시면 '예' 하고 딱 순종해 씁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이 땅위에 우리를 살려 두시고 이런 저런 모든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볼 때에 귀하고 좋고 아름답고 아깝고 필요하고 요긴한 그런 것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시고 난 다음에는 어느 정도 지나면 어떨 때는 '버리라' 어떨 때는 '써라' 어떨 때는 '누구에게 줘라' 어떨 때는 '간직하라' 이렇게 골고루 우리에게 시키십니다.
처음에는 가치가 작은 것 적은 것을 맡겨놓고 이렇게도 시켜 보시고 저렇게도 시켜 보십니다. 그러면 시키시는 대로 잘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요것은 적고 작으니까, 정이 덜 들었으니까 이렇게 하지만 정이 많이 들면 어떻게 하는가 보자.' 하고 그 다음에는 더 좋은 것, 큰 것, 많은 것, 정이 더 폭 들도록 하는 그런 것을 딱 맡겨놓고 시켜 봅니다.
시켜 보면 전에는 그걸 잘했지마는 이번에는 가치가 많고 정이 많이 들어 놓으니까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려고 하니까 아까워서 안 되겠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만 '아이구, 이번에는 할 수 없다.' 그만 순종 안 합니다. 안 하면 시험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향상도 전진도 없고 다음에 재시험을 쳐야 됩니다. 그래서 얼마 동안 있다가 하나님이 또 시험을 치십니다. 그러면 이번에도 또 아까워서 순종을 못합니다. 그렇게 계속 순종을 못 하게 되면 평생 그러다가, 죽을 때까지 그러다가 합격 못 하고 재시험 치고 재시험 치고 이러다가 세상을 마치는 사람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어떨 때는 버리라 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쓰라 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누구에게 주라 할 때도 있고, 이렇게 우리 현실을 통해서 자기가 핑계할 수 없게 환하게 알 수 있도록 딱 만들어 주십니다. 만들어 주셔서 한번 시험을 쳐봅니다.
시험을 치르면 처음에는 그렇게 아까워했지마는 이제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니까 지체하지 않고 '예' 하고 순종을 합니다.
또 어떻게 정이 들어놨는지 인간이 오면 싸움을 해도, 원수가 져도 내줄 수 없을 건데 하나님께서 '내놔라!' 하니까 '예' 하고 내놓습니다. 또 그것을 자기만 위해서 썼는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현실에서 진리를 통해서, 신앙 양심을 통해서 '네가 이것은 요번에 이렇게 이렇게 써라' 하니까 아깝기 짝이 없지마는 '예' 하고 순종을 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참 아름답고 귀하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요것은 희망이 있다. 이게 어디까지 해 나가는고 보자.' 그래 가지고 다음에는 그보다 좀 나은 것을 줘 가지고 얼마 동안 있다가 또 시험합니다. 그러니까 또 순종을 합니다.
순종하면 이제 하늘나라에서는 '오, 너는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요만한 것은 맡겨도 되겠다.' 그렇게 결정이 됩니다. '무궁세계에 요만한 것은 맡겨도 되겠다.' 결정이 됩니다. 그리고 나서 그 뒤에 또 해 봅니다. 그러면 또 순종합니다. 이제는 더 크고 좋은 것 순종해서 시험에 합격이 됐습니다. 그러면 더 크고 좋은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결정이 됩니다.
이래서, 성경에 '여러 배 백 배 준다' 하신 그 말씀은 이런 말씀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시험할 그 시험의 재료를 더 크게 많게 가치 있는 것을 가지고 높은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시간 걸릴 것도 없이 퍼뜩 받아 가지고 시험 치니까 합격되니까 또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자꾸 올라갑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오만 걸 다 줘 봐도 다 됩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네가 네 소유는 그렇지마는 네 몸뚱이는 그렇게 안 할 것이다.' 싶어서 하나님께서 몸뚱이를 시험합니다. '자, 네가 이번에는 전염병 드는 그 전염병 환자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 이러니까, 소유는 잘 순종했지마는 거기 가서 전하다가는 전염병이 들 모양이니까 문제입니다. 이렇지마는 '예' 하고 그만 순종을 합니다. 가서 전염병 환자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면 감옥에 안 들어가고는 안 되는 그런 것을 시킵니다. 하나님의 계명 지키려면 감옥에 들어가야 되는 그런 일을 만들어서 감옥에 들어가는 일을 닥치게 합니다. 그러면 머뭇거리고 그럴 건데 그때도 지체하지 않고 '예' 하고 순종을 합니다. 감옥에도 그만 훅 뛰어들어갑니다.
또 아주 형벌을 많이 받아서 장기간 고문과 고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형벌 안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형벌을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지고 시험을 딱 하십니다.
그래도, 고문과 고형을 받을 그런 형편이 와도 하나님의 명령 따라서 '예' 하고 고문과 고형을 받습니다.
또 고문과 고형을 하되 자기가 있는 힘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모든 걸 포기하지 않으면 그 시험에 합격할 수 없도록 어려운 고문을 합니다. 그 고문은 하나님이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통을 주는 것이오.
이러니까, '야, 어떻게 할래?' '주님 나 위해 죽었는데 나 주 위해 죽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나도 주님 위해서, 주를 사랑함으로 고문과 고형을 당하는 것이니까 주님의 고난에 이 더러운 죄인을 참가하게 해서 고난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뭐 고문 고형 어떤 것이 있어도 척 감당합니다.
이러니까, 이제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소유도 하나님 명령대로 다 순종, 몸뚱이도 하나님 명령대로 다 순종, 그러니까 인제 뭣 남았습니까? 목숨 하나 남았지요. 이제는 생명을 딱 시험해 봅니다. '생명은 어쩌는고 보자.' 사람에게는 생명이 제일 귀하지 않습니까? 이런데 주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면 생명이 끊어져야 되고, 지금이라도 주의 계명만 어기면 문제없이 안 죽고 살아날 수 있고, 그렇게 생명을 딱 걸어 가지고 시험을 하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생명이 끊어져야 되고 생명이 안 끊어지려고 하면 순종을 안 해야 되겠고 요래 딱 만드니까 지체하지 않고 '예, 주를 위해서 목숨 버리는 게 마땅하지 않습니까?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 위해서 생명 버렸는데 나 주님 위해서 목숨 버리는 것, 이 천한 죄인이 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다니요? 일생 동안 고대했는데, 감사합니다.' 목숨을 턱 내놓습니다.
이러면 이제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일에 있어,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에 있어, 하나님 사랑하는 그 일에 있어서 세상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슨 세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 못 하게, 하나님 사랑하지 못하게 할 그런 방편이 있습니까? 이제는 몸 소유 생명 다해도 주를 사랑함에는, 주께 순종함에는 지체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이제 그 사람을 시험할 거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없어요. 이것이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긴 것이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당신 명령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 아닌 것을 위해서, 자기 아닌 것을 사랑함으로 자기를 제물로 소금으로 녹여서 봉사로 바치는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것을 세상에서 시험해 보니까 아무리 좋은 소유를 맡겨도 안심할 수 있고, 아무리 좋은 몸뚱이 맡겨도 주를 위해서 주의 계명 위해서는 상관없이, 그것이 우상 되지 않을 터이니까 안심할 수 있고, 목숨도 그럴 수 있고 이럴 때에 무궁세계 당신의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청지기 비유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불의의 재물로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에게 주겠느냐' 했습니다. 참되다 말은 영원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의라 하는 것은 죄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시 있다가 없어질 것을 말합니다.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죄 아래 있는 재물, 죄 아래 있는 몸, 죄 아래 있는 생명은 한번 죽어야 됩니다. 없어질 날이 있다 그 말입니다.
없어질 것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지 아니하는 너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완전한 그것을 맡기면 어떻게 하려고? 없어질 것도 맡겨 주니까 아까워서 하나님이고 진리고 명령이고 다 내몰라라 하고 거기만 애착을 해 가지고 하는데 영원 무궁한 완전한 것을 줘 놓으면 더 그럴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누가 참된 것을 너에게 맡기겠느냐'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음의 조상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험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모든 생활이 시험입니다. 모든 일생 생활이 전부가 시험이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도다 이 일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됐다. 합격이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룻밤 나그네 같은 잠깐 지나가는 세상에서 영원 무궁한 세계를 두고 시험을 쳐서 합격되나 안 되나, 우리 세상살이 가지고 환하게 다 판명이 돼서 나타났는데 그때 불평할 게 뭐 있겠습니까? 일시 이 세상에서 없어질 것, 두고 갈 것, 버리고 갈 것 이것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떻게 지키며,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거역하며, 그것들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거기 애정을 붙이는가 하는 요것을 시험해서 요것으로써 무궁세계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시험의 세상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영원 무궁을 두고 시험 쳐 나가는 이 지극히 큰, 참 놀랄 만한, 뭐 일류 대학에 들어갈 입학 시험 그것도 크지마는 그것은 여기다 비하면 먼지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 시험은 이 지구 땅덩어리 같으면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그런 시험은 먼지만도 못해요. 먼지만도 중량이 못합니다.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큰 시험을 치르고 있지마는 우리 심령의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심판도 모르고, 무궁세계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무궁세계의 생활도 모르고, 성경으로 영감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는데 모르니까 짐승처럼 눈앞에 보이는 것만 위주하기 때문에 이 시험을 무시하고 시험 치르려고 공부도 안 하고 오히려 시험 낙제하는 그것으로 취미를 붙이고 있으니까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 시험에 합격하려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밤마다, 내가 엊저녁에 여기 와 보니까 '주여, 어쨌든지 소유와 몸과 생명을 주님이 요구하실 때는 어느 때나, 어느 장소나, 어떤 사건에서나, 어떤 방편으로서나 원할 때는 즉시 즉시...' 막 이래 하며 손을 거머쥐고 기도를 하고 고함을 지르고 야단을 치는데, 이렇게 소원하는데, 어떤 사람은 주를 위해서 털끝만큼도 손해는 보지 않고 '예수 믿어서 무슨 덕이나 볼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참 기가 찰 일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이 일을 왜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느냐? 이것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계시입니다. 문서계시요 형식계시입니다.
여기 12절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아브라함이 백 세에 난 독자 이삭을 애지중지하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아브라함이 제일 사랑하는 것이 이삭이요, 제일 좋아하는 게 이삭이요, 제일 소망 두는 게 이삭이요, 제일 정든 것이 이삭이요, 제일 귀하게 아끼는 것이 이삭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는가 보자. 아브라함아, 이삭 잡아서 번제로 드려라.' 이러니까, '참 다른 것은 다 드릴 수가 있지마는 이것만큼은 참 하나님이 너무 합니다.' 이렇기 쉬운데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니까 즉시 '하나님께 필요 있습니까? 이삭이 하나님께 번제로 필요 있습니까?' 그리고는 그만 좋아서 잠을 자지 않고 밤에 장작을 패 놓습니다. 산에 가면 장작 많이 있는데 그럴 게 뭐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아들 이삭을 번제로 요구하시니까 장작도 산에 가서 할 게 아니라 집에서 잘 준비해 가지고 가야 된다.' 이래 가지고 밤새껏 준비하고 좋아서, 아이들 설 닥친 것 모양으로 좋아서 그러고 있다가 날도 새기 전에 안장 지워 가지고 '가자.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 산으로 가자.' 이렇게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명령이면 어떤 것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네가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고 내 명령을 복종했으니" 그 다음에 또 한번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승리한다 말입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에, 하나님이 버리라, 써라, 없애라, 누구에게 줘라, 이렇게 하나님이 명령했을 때에 그 명령을 받고 어떤 것이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순종하는 그게 무엇이냐? 그것이 그보다 하나님을 크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 명령 복종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견해가 바로 됐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기 위해서 이삭을 기르고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삭을 사랑하고 있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거느리고 있고, 하나님의 요구에 만족하도록 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 기뻐 즐거워서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참 좋아하고 사랑하고 보배로 여기는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면 바친 아브라함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브라함이 자기의 것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바친 그리고 나서 자기는 어찌 됐습니까? 하나님께서 몇 배나 갚아 줬습니까? 하늘의 별의 수와 같이 줬습니다.
바닷가의 모래의 수와 같이 줬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 하나를 바침으로써 나도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브라함의 아들이오. 이게 바다 모래 수에 비합니까? 이게 또 무궁세계에 가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병이어를 드리니까 5천명이 먹고 열두 바구니에 차도록 남지 않았습니까? 오병이어로 5천명이 먹었었는데 열두 바구니 남았으니까 열두 바구니 그것은 몇 만 명을 먹이겠습니까? 그것이 이치를 가르친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에게 바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에게 바친 것은 지극히 작은 것이 영원 무궁에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종류적으로 얼마나 확대가 되고 얼마나 번창해지는지 그 배수는 측량 못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하나 바쳐놓고 바다의 모래의 수와 같이, 하늘의 별의 수와 같이 많은 숫자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바쳐진 제물 그것은 어찌 됐습니까? 바친 아브라함은 좋고, 바쳐진 그것은 어찌 됐습니까? 그것은 불행했습니까? 천하 만민이 그것 인해서 복 받았습니다. 바쳐진 제물 자체는 천하 만민이 그것으로 인해서 복 받았어요.
바친 자는 형언 못 할, 말할 수 없는 번창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을 말씀하고, 바쳐진 그 제물 자체는 모든 존재들이 그로 인해서 복을 받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그로 인해 복 받는 복의 기관이 됩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비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몸을 바치고 생명 바치고 다 바치고 아끼지 않지요.
세상뿐인 줄 알진대야 수지 계산 맞추는데 바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깨달읍시다. 바친 아브라함은 어떻게 됐으며 바쳐진 그 자체는 어떤 것이 되어졌느냐? 어떻게 있어지며 어떤 가치 있는 것이 되어졌느냐? '아브라함아, 네가 내게 대해서 사랑하는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야 내가 너를 어떤 자인 걸 알겠다. 이러기 때문에 네 씨가 바다 모래의 수, 하늘의 별의 수와 같이 많게 하겠다. 또 그 씨 자체는 천하 만민이 그로 인해서 복을 받게 된다.'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심는 놀음입니다. 이것이 심는 장사요. 이것이 천국을 심는 것입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이것이 심는 것입니다. 이것이 씨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확정합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확실히 알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좋은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소유든지 몸이든지 생명이든지 당신이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면 이는 참 지극히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됩니다.
요구하실 때에 없어질 것 같으면 바치는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죽는 걸로, 없어지는 것으로 끝날 것이 바친 것으로 끝납니다. 없어지지 아니할 것은, '손대지 말아라.' 했습니다. 암만 바쳐도 그대로 다시 남아 있습니다. 즉시 다시 돌아와서 그대로 있습니다.
없어질 때가 아닌 것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옵니다. 그게 돌아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줍니다. 씨를 줍니다.
없어질 때가 됐으면 그것으로 성공하고 끝납니다.
확정을 지웁시다. '주여, 이제는 주님이 내 생명이나 몸이나 내 소유나 지위나 권세나 어떻게 내가 애착하고 좋은 것이라도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확실히 알면 아끼지 않고 즉시 바치겠습니다.' 요것을 확정 지웁시다. 이것이 권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