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3 20:20
시험
1980. 11. 27. 목새
본문 : 야고보서 1: 2 - 8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여게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에게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그러면 이 지헤는 어떤 지헤인고 하니 온전한 기쁨을 산출할 수 있는 그런 지헤입니다.
온전한 기쁨을 자기에게 생겨지게 하는 그런 지혜입니다. 그러면 이 지헤를 가지면 온전한 기쁨을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고 온전한 기쁨을 가지게 되면 자기 현실 생활을 복되게 살되 어떤 그 피곤한과 지루함의 그런 형편을 만나도 피곤치 아니하고 지루하지 아니하고 온전한 기쁨으로 게속할 수 있기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피곤한 것도 기쁨이 없을 때에 피곤해 지는 것이고 또 기쁨은 소망이 없을 때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소망이 기쁨을 주고 또 기쁨이 피곤치 않는 그런 열심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한 기쁨은 어디서 나오는고 하니 옳바른 깨달음 이 옳바른 깨달은 이 지혜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이 지헤는 어디서 나오는가 이 지혜가 사람들에게 있는가 사람들에게는 이 지혜가 없습니다. 이 지헤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인데 이 지혜는 성신의 감화 감동의 지혜인 것입니다. 모든 선지사도 성도들의 참 말만 들어도 끔직스럽고 한 그런 모든 현실에서도 충만한 기쁨 억제할 수 없는 그런 기쁨으로 살았던 것을 우리가 봅니다. 어떤 현실도 현실이라 함은 세상이 막 달라드는 그 현실인데 어떤 현실도 억제할 수 없는 꺽을 수 없는 그런 기쁨 어떤 현실도 기쁨을 억제하거나 제재하거나 방해하지 못하는 그런 기쁨이 주님 안에 있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엘리엘리나막사박다니라고 하는 이 말씀을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집어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고통스러워서 어찌 나를 버리십니까 이렇게 참 원망 불평을 했다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은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고통스러워서 원망 불평 했다면 그만하면 다 범죄가됩니다. 흉한 아주 큰 범죄가 됩니다.
그러면 범죄로서 우리의 대속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망 불평이 아니면 말 할 수 없는 그 감탄의 에 기쁨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우하십니까 한 그 측량 못할 감사를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나를 이렇게 대우하십니가 하는 그 측량 못할 감사를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전부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해논 예언한 그대로 말씀을 하셨고 한 마디로 원하고 원하는그 대속을 인해서 말씀하시지 아니한 것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사람도 우리가 생각하면 백세에 나서 겨우 외동 아들 하나뒀는데 그것을 모리아산에 가가지고 불로 태워서 번제로 드리라는 그 말이 참 기차는 말이 아니겟읍니까 기가 차는 말입니다. 독자가 아니라도 죽는다는 건 그것이 없어진다는 그런 것은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인데 하물며 백세에 얻은 독자를 그냥 죽어도 뭐할건데 불 위에 태워 죽이라고 하는 그런 명령이 얼마나 기막히는 명령이지만은 상상 못할 만침 아브라함은 얼마나 좋았든지 그 말들은 이후 밤새껏 잠 못잤습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잠 못잔 것은 근심으로 잠못자지 아니했겠는가 하지만은 그기 아니고 밤세토록 번제를 할라면은 이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그 나무 많은데 나무까지 집에서 패서 가지고 그렇게 라만침 기뻐했습니다.
전설에 들으면 베드로도 그 부부가 예수님의 이도 때문에 박해를 당해서 십자가의 사형을 당할 때에 그때에 기뻐서 이렇게 우리가 그냥 십자가에 사형 당한다는 것이 황공해서 견디지 못하겠으니까 우리는 꺼꾸로 십자가에 못을 받아 도라 그렇게 말을 한 그런 기쁨을 가졌고 또 어떤 성도들은 참 제일 어려운 물소 가죽을 벗겨 가지고 그 안에다가 집어 넣어 놓고 공중에 달아 놓으니까 이것이 설설 마르면서 오그라지니까 사람을 졸라서 죽이는 것이니 그 전신이 피덩어리가 될 것이고 그 기막할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래 놓고 들으니까 그 속에서 한 마디씩 나오는 것이 억제 못하는 그런 기쁨에 소리만 나오고 기뻐하는 그런 소리가 끝까지 나오다가서 끝을 맺혔다는 그런 것을 그렇게 행한 사람들이 알고 이 안에는 생명의 도가 있다는 것으로 그대 도가 전해져서 믿는 사람들이 많이 (또 누가 건드리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났었습니다.
6.25때도 주 남선 목사님하고 추 순덕 집사님의 그 아버지하고 또 청도에 있는 이 장로님이라는 그 장로님하고 저 사근 아니 대평가서 설교하다가 내무사원이 와 가지고 앉아서 듣는 것을 보고 주 남선 목사님이 기뻐서 하늘 나라를 즈거하고 또 그 공산주의 자들에게 침노 받지 말고 유혹받지 말라고 그 황충이 때들이 왔다고서 이렇게 설교하는 것을 그 내무사원이 낱낱이 적고 이래 가지고 설교하고 나니까 가자 그래서 같이 끌려가서 내무서에 그 인민군들 내무서에 들어가서 말하기를 가둬 놓으면서 요놈들은 그냥 지금 죽일 것이 아니라 요것을 좀 어떻게 좀 분하니까 요 원수를 단단히 갚는 죽임을 해야 되지 그냥 죽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하고 있는 그때에 거게 노 집사라 하는 여집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여집사는 함지 나무로 만든 네모 반듯한 함지에다가 그 세분의 점심을 아주 뜨끈뜨끈하게 해 가지고서 어디 있든지 어디 구해 놨든지 갖다가 칼치를 큰 칼치를 한동가리씩 해 가지고서 점심을 해 가지고 왔습니다.
인민군들이 이기 뭐고 아 우리 목사님 우리 조사님 우리 장로님 점심 식사 가져왔다고서 이라니까 욕을 하고서 욕을 하면서 그내려놔 내려놔 보니까 아주 저거는 그때 갖다 모두 양식도 없을 뿐 아니라 다 숨겨서 참 보리도 못 얻어 먹는데 허연 여름에 쌀밥을 했지 지금은 쌀이 흔하지만 그대는 쌀이 좀 귀한 때입니다. 허연 쌀밥을 했지 이런 또 큰 칼치를 이렇게 세동가리를 했지 이러니까 시기가 나서 어 이렇게 착취해 먹고 살고 이렇게 갖다것 어이석게 한다고서 그 내려놔 그라고 두드려 보내고 이것 우리가 먹겠다 먹고 그라는데 그 안에 세 사람이 들어 가가지고서 추조사님하고 이 장로님하고는 새파랗게 갖닥서 거의 반츰 죽어서 얼마나 놀라고 겁이 났는지 게 주 목사님은 그 들어가디만은서도 십분도 안되어서 코를 드렁드렁 거이면서 누워 자 아 아 그러니까 그런기야 아야 상관도 없이 그기 그이에게 하나도 두려움이 되지 아니하고 그저 기쁨이 되고 갖닥서 이러니까 평안하니까 그 그안에 가둬 놓으니까 잠자고 계신다고 평안하게 잠을 자 이렇게 기독교라는 것은 어떤 현실이라도 그 현실을 통해서 세상이 주는 고통이나 두려움이나 슬픔 그것 보다도 하나님게서 주시는 그 기쁨과 평강과 그 능력이 있어서 그것을 능히 능가하고 남음이 있는 그런 슬픔을 능가하고 남음이 있는 기쁨이 하나님에게서 올 수 있는 것이 기독교요. 또 주는 그 심한 고통을 능가하고 능히 이기고 남음이 있는 평강을 하나님이 주시는 기독교요 또 어떻게 어려움 그 어려움을 세상이 줘도 그 어려움을 능히 이기고 남음이 있는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 속에 들었던 그 청년들도 불이 태우는 그 능려보다 그 능력을 이기고 남는 능력이 하나님께 나왔기때문에 불로 사루지 못했고 사자도 먹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인데 다 이런 기쁨이 어디서 나왔느냐 이런 기쁨이 온전한 그 깨달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온전한 깨달음 온전한 깨달음에서 나온 것인데 우리 기독자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헤를 주시고 온전한 지헤를 받아서 바른 깨달음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무슨 현실이든지 참 기쁘고 즐거워서 온전한 기쁨으로 이렇게 사는 그것이 우리 기독자의 생활이기 때문에 너희는 항상 기뻐해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렇게 이 기쁨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 생활인데 우리에게 기쁨이 없는 것은 우리 생활은 아니고 위가 벌써 침노를 받아 가지고서 비정상적인 생활로 바꾸어진 것인 것입니다. 제가 천안교회 가가지고 그때 홍 근삼 목사님이 거게 있었는데 거게 가서 집회를 하면서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온전히 기뻐하라는 이 성구를 가지고 일주간 내 계속해서 이 말씀을 증거해 줬는데 결론으로 한 말로 말하면 옳바른 깨달음에서 어디서든지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을 증거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분도 그렇게 순교적인 신앙을 가졌고 잘 믿다가 마지막에 고만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뭐 권세 문제 돈 문제 권위 문제 이런 것가지고 하다가 삼각산에 있는 그 뭐 기도원에 그 돈이 거의 자기 돈이라 이 말이 들리더니만은 그 뒤에는 어디로 갔는지 어디 가서 감추워 졌는지 도무지 지금 소식을 못 듣습니다. 사람이 신앙에서서 산다고 해서 안심 못합니다. 가다가 넘어지면 유명한 사람이 넘어지면 크게 박살이 나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끝까지 우리가 잘 되어서 처음보다 중간보다 결말이 잘 되어야지 결말이 잘못되면 헛 일입니다. 아 장사하는 것도 안 그렇습니까 수입 지출이 분주하니까 저 사람 장사 잘되는 갑다 십지만은 마지막에 결산댈때에 손해 가서 적자가 되면은 무슨 소용있읍니까 다른 사람이 볼때에는 저거 뭐 장사가 형편 없는 갑다 해도 마지막에 결말이 돈이 뭉텅 벌리 가지고 있으면 장사 잘하는 사람이지요 무엇이든지 결말이 제일이지 그 결말에 실패면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참 성공되는 결말은 시작부터 잘 시작해 가지고 옳게 시작해 가지고 옳게 시작해 가지고 중간에 잘 계속을 해야 온전한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자들은 어떤 불행이라도 그 불행을 능가할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여러 가지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을 줌으로 인간들은 다 근심 되어 지는 그 어려움인데 하나님이 거게서 근심 반대로 기쁨을 거게서 주셔서 그 근심을 이기고 기뻐할 수 있는 그 능력을 받게 하는 것이요 또 그 고통의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이런 고통은 천하에 인간들이 다 고통 이 고통을 당하지 아니할 수 없지만은 하나님이 평안의 능력을 줘서 그 고통을 이기고 고통에게 고통 당하지 아니하고 고통을 이기고도 평강이 넘치는 그런 평강을 하나님에게 받고 인간이 아무도 할 수 없는 그런 어려움을 당하게 할 때에 모든 인간은 다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 당하지만은 그 얼움을 능히 이기고 그 어려움을 다 승리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주시고 또 죽음을 주는 것은 죽음이 죽이는 데도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죽으면 큰일 죽는 것이 죽이는데 죽지 아니하고 죽이는 것이 변해서 영원한 영광의 부활을 받고 영광의 그 영생의 기능으로 승격이이 되어지고 하는 이 오묘에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현실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한 기쁨은 거게 대한 옳바른 지혜를 가졌을 때에 필연적으로 온전한 기쁨을 가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온전한 지헤를 가지는 것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 인간에게 없는데 하나님에게 구하면 온전한 지혜를 주십니다. 아 지헤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고 꾸짖지 아니하는 하나님에게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온전한 지헤를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하면 하나님이 온전한 지헤를 주실 때에 우리는 온전한 기쁨은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지혜의 깨달음을 가질 때에 어떻게 해서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지헤의 깨달음을 가질 때에 어떻게 해서 필연적으로 온전한 기쁨을 가지게 되는가 그것은 지난밤에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에 참 온전한 기쁨으로 현실을 살지 못하는 것은 그것은 병이 든 것이다 고장이 난 기다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을 만날 때에 현실에 대해서 아무 감각없이 그저 새털 같이 많은 현실이니까 이런 현실 지나가고 또 현실 오고 현실 오고 이렇게 그저 오는 것이라는 아무 뜻없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닥치면 먹고 닥치면 자고 닥치면 놀고 그저 현실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우리가 피해야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되지 안하도록 노력을 해야 되겟고 어떤 사람들은 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 현실은 자기의 욕심 어떤 욕심이든지 자기 욕심을 달성시킬 그 여기에 쓸 현실인 줄 알고 현실을 닥치면 그 현실에서 자기 욕심만 달성할라고 하는 이 현실을 알지도 못하고 자기 욕심에 사용하는 오용하는 이런 사람도 우리가 벗어나야 되겠고 그러면 이 현실은 참 무궁 무궁한 화복을 마련하는 현실인데 무궁 무궁한 화복을 마련해서 큰 화를 마련할 수도 있는 현실이요 그 사람들이 그 한 현실을 깜박 잘못해 가지고 사형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현실을 감박 잘못해 가지고 자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연히 다른 사람이 거석하니까 그 현실에 갖다가 그 사람이 말하니까 도장하나 빡 쥐어 줘놓고 그래 놓고 나중에 자기 살림살이 가다 그만 차압을 당해 가지고서 집행당해서 다 절단나게 되니까 가슴을 치닿치다 안되서 그만 자살하는 사람들 요새는 조금들한데 그전에는 갖다가 얼마 거 계해가지고서 계돈 때문에 저 구덕산에 가가지고서 자살하는 사람의 시체가 자주 자주 발견이 됐었습니다. 요새는 좀 들한데 다 그런 것이 현실을 깜박 잘못해 가지고서 참 무서운 큰 결과를 맺었다 말이오 아 현실은 내가 잘못하면은 어떠어떠한 그 큰 화를 마련할 수 있다 하는 이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야 되겟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로 인해서 근심하는 사람이 되겠소 근심하는 사람이 됐다가 아 이 현실은 어떻게 어떻게 그 큰화를 마련할 수 있는 그런 일이 내 앞에 있는 데 요것은 어떻게 어떻게 하면은 이 화를 마련치 아니할 수 있는 그 화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화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발견하고 저가 깨달앗으면 그 현실로 인해서 다시 고칠 수 없는 큰 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현실이라는 것으로 근심했던 그 근심이 그것을 방어 방어 능히 할 수 있는 그 능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근심이 변해서 기쁨이 될 것입니다.
또 이 현실은 바로 하면 이리이리하면 참 이 현실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의 선물인데 이 현실에서 이렇게 이렇게 한다면 이거는 한없는 영광의 그 결과가 맺을 수 있구나 이것을 볼때에 기쁘겟습니다. 기쁘나 막상 그 현실을 자기가 공연히 준감고 아 공연히가 아니고 고요히 눈감고 명상해서 생각할 때에 이 현실을 이렇게 하면 복이 디지마은서도 이렇게 한다는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데 되겠느냔 아 죽음을 당하는 그런 만났을 때에도 이 현실을 참 잘만하면 모든 영광스러운 순교자와 같이 선지 사도들과 같이 주님 앞에 설 때에 한없는 영광스러운 그 원인을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보이짐과 얼핏보면은 기쁘지만은 그 다음에 일하는 데는 고문과 고행이 있고 어떤 일이 있으니까 내가 그것을 능히 견디서 익일만한 그런 힘이 없으니 고민이 되겠습니다. 또 고민이 되겠어 고민이 되다가 이제 하나님이 자기를 돕는 그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는 이것을 발견하고 잡고야 기뻐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기까지 고민된 것이 이 결과는 좋지만은서도 이것을 시공하는데는 좋은 결과를 맺기 까지의 하는 데는 이는 참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 는 그 어려움이라는 그것을 당신이 발견하고 뭐 죽는기 어려움이 아니고 세포 하나도 그때에 그 사망의 세력에게 눌리지 안하고 아야 했으면 헛 일이라 말이오 그만 원한느 원하는 마으으로 원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바치는 마음이 그 고통이 뚫고 들어오지 못할 그것이 되야 될 것이기 때문에 이건 사람의 힘으로 안되 이것을 죽기까지 고민햇다가 아 참기도 하는 가운데에서 원하지만은 원이지만은서도 몸이 약해서 마음이 약해서 아 이 몸이 약해서 진액이 약해서 못하는 것을 천사를 도와 가지고서 기도를 온전히 이루워 하나님 앞에 지헤를 얻어 가지고서 하나님이 돕는 이 약속 얻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고민하신 후에 기도하고 난 다음에 기뻐서 (몰라 그라면 헛 일이라 따라와서 그 사람이 되고 그 생활할 걸 알아야 눈이 버득 뜨이지 남의 구경하면 소용 없어) 예수님께서 이제는 너희들 자고 자고 쉬라 잠깐 좀 쉬자 기쁨으로 쉬고 또 이제는 때가 됐으니 일어나 가자 기쁨으로 그 다음은 계속해서 끝을 마치는 완전히 승리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고민은 고민은 그 어려움만 깨닫고 아직까지 그 어려움을 능가할 수 있는 하나님에게 능력이 이 약속되어 있는 그 약속을 확고히 마련치 못한 미결 그 기도에 있을 때에 그런 것이고 이것이 완료된 그 기도를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은 온전한 기쁨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되는데 이것은 어디서 마련할 수 있느냐 기도에서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아니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시야 되지 하나님이 주시지 않하면 안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맞는 그 현실이 어떠한 그 성사의 결말을 흥망의 결말을 맺을 수 있는 그결말이라 하는 것도 성령의 감동이 와야 그 결말을 알 수가 있고 또 그 결말을 이루는데 가지 에는 어떤 그 실패에 무서운 그 위험에 길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성신의 감동이라야 알게 되고 또 자기가 그런 결말을 맺는데는 자기에게 능력이 없다는 것도 성신의 감동이 와야 알게 되고 능력 없는 자기에게 자기의 보증자 중보자 주님으로 말미암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런 능력이 있는 것과 능력을 글어 오는 것도 성신의 감동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도우심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 영감을 받는 것은 위가 기도로 기도로 기도하는 가운데서 나와 하나님과 이색지는 것을 내가 다 제거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해서 하나님을 따를 때에 하나님에게서 능력이 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능력의 보호를 받앗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지극히 능력의 그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들로 모르기를 원치 않는다 알기를 원한다 말씀했습니다. 요 믿음으로만 이 지극히 큰 능력은 우리에게 관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우리가 기도에서 아무 무감각한 우리들이 아주 강한 그 현실에 대해서 강한 느낌을 찾는 우리가 되야 되겠고 우리의 욕심을 달성하는 여기에 다 악용하고 말이 악용을 우리가 벗어나서 이거는 참 보배인데 이 보배 잘못쓰면 망한다 이 보배를 잘쓰면 보배라는 이 현실을 잘 쓰면 크게 성공이 된다 하는 요것도 우리가 기도에서 영감으로 깨달아 잡아야 되겠고이래 가지고 처음에는 보배라는 것 잡고 기뻐했다가 위험성 문제는 해결 됐지만은서도 이일을 달성하는 데는 어떤 그 애로의 어려움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또 근심했다가 하나님의 돕는 은혜로서 능가하고 남음이 있는 것을 잡고 난 다음에 온전은 기븜을 가져 이것으로서 온전한 기쁨을 가지면 그만 달성되는기라 기븜을 가지면 안핼래야 안할 수 없는 필연성의 본능으로 하게 되고 본능할 때 이 기쁨만 있으면 그 하는 것이 피곤치도 안하고 자꾸 갖다가 해지게 된다 이기야 벌에 꿀 저기에 꿀 계절에 그가 아 죽는 것도 모르고 자꾸 꿀을 발아 오는 역사를 하는 거와 같이 그러게 돈만보고 사는 사람이 돈이 앞에 있으니까 밥 먹을 줄도 모르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대복장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 굶고 장사는 것이 뭐이냐 소망의 기쁨이라 말이오 기쁨이니까 피곤이 다 갖다가 피곤은 능가할 수 있는 기쁨이요 소망이가 때문에 피곤치 안한기라 그래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매 거두리라 하는 말씀이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말한대로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꾸짖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기때문에 명상 많이 한 사람들이 제일 성공했더라 하는 그말은 눈감고 가만히 생각해서 하니까 눈감고 생각해서 근심 처음에는 기뻣다가 아무 무감각한 것이 명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에 아이구야 이기로구나 놀래 깨닫고 또 그라고난 다음에 또 근심으로 또 또 근심의 빠짝 갖다가 근심에 쌓여 있다가 또 기뻣다가 또 기뻣다가 또 근심에 싸였다가 모든 걸 통과하고 난 다음에 온전한 기쁨을 가져서 이제는 그 사람이 안할 수 없는기라 그 사람이 갖다가 기쁘고 즐거움으로 피곤치 안한 걸음을 북북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의 생활은 생각없이 사는 사람은 예수를 못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에서 기쁨이 나오고 생각에서 낙망이 되어지고 나는 생각에서 또 낙망이 없어지고 생각에서 또 생각에서 소망이 생겨지고 생각에서 담력이 생겨지고 기쁨이 생겨지고 생각에서 나오는 이 모든 힘을 가지고서 역사하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생각없이 벌로 덤비는 사람은 헛 일이라 목회자도 보면은 생각에 깊이 들어가지를 안하고 그저 껍데기 닥치는 대로만 발라 맞추는 맞춰 가지고 형편 되는 대로 이렇게 막 부지런히 날뛰면 덜렁 덜렁 하는 그 사람들이 대개는 외식자들입니다. 생각없이 이렇게 하면 우리가 이 교단이 갖다가 교단 등록이 되는 이것도 이렇게 되면 이것 어찌 되느냐 이리되면 이 결과가 무엇 무엇이 나올 것이며 어떤 순위가 있을 것이며 어떤 인물들이 생길 것이며 어떤 갖다가 주장들이 들어올 것이며 어떤 그때 대적들이 생길 것이며 그러면 어떤 결과가 생길 것이나 그러면 이 모든 갖다가 우리 교인들이 다 어떤 결과가 생길 것이냐 그러면 이 모든 갖다가 우리 교인들이 다 어떤 사람들이 되어지고 어떤 충격을 받고 어떤 마귀의 역사들이 들어올 것이냐 또 어떤 그 애로가 있을 것이냐 어떤 평강이 있을 것이냐 이것을 좀 생각을 해야 될긴데 생각없이 사는 그 사람들은 생각있는 사람하고 원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생각없는 사람들은 반드시 천이면 천 만이요 만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은 마귀의 것입니다. 마귀의 것이 되고 마요 그러기에 마귀하라는 놈은 기도를 막게 합니다. 기도를 막으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 직감대로 눈에 보여서 눈으로 그 보여서 간 시감되는 대로 귀로 들어서 청감되는 대로 이렇게 접촉해 가지고 촉감되 가지고 그대로 움직이고 이것을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하고 영감에게 도달해 가지고 생각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생각이 얕은 것 얕은 것만침 그 사람은 신앙이 얕은 사람이요 그 사람의 신앙 행위는 외식입니다. 생각이 깊고 깊고 그 생각이 깊고 깊고 멀고 멀고 놓으고 놓으고 넓고 넓어서 그 생각이 모든 것을 능가해서 그 생각의 넓이 속에 들어가지 안한기 없고 이 모든 것을 생각으로 다 둘러싸고 이 모든 것을 다 생각해서 능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것이 되어지는 것이요 그 생각이 없는 사람은 헛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생각은 그의 보는 것과 접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생각에서 개달아 본것을 말하라 본 것을 말하고 들은 것을 말하지만은서도 이제 영감에서 본 것을 말하고 들은 것을 말하지만은 사람들은 거짓말한다 하고 허무한 소리한다 하고 이렇게 말하기때문에 선지자들 다 죽였다 그말이오 죽였지만은 세월이 지나가니까 그대로 되어지거든 그대로 되어지니까 아이구 그분이 말한 것이 이렇게 맞았는데 그때 말할 때에 갖다가 하지 말라 하는 것을 안했으면 되는 것을 이렇게 하라 하면 될 터인데 이러니까 선지자들을 죽이놓고 난 다음에 선지자들을 죽인 자손들은 있다가 우리가 그때 있었으면 이런 선지자를 못죽이게 했을 것인데 이렇게 말하지만은서도 또 저거 시대에 있는 선지자들은 또 죽입니다. 이러기때문에 기독자들이 이 생각이 뭐인가 기도입니다 그저 갖다가 지나면 고만 뭐인지 자꾸 들이대서 주여 주여 이렇게 저렇고 우리 생각이 그렇츰 그뭐 어디 깊습니까 이거 허무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무네 눈감고 고요히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하고 나니까 거게 대해서 기도하지 안할 수 없어서 이거 대해서 이렇고 이렇고 기도를 하고 또 모르니까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고 이러니까 이 줘야 되지 안주면 안되는 거게 대해서 간구하다 보니까 고만 자기도 모르게 고함소리가 나오게 되고 또 여게 대해서 이기야 되겠는데 이기 지금 기가 차는 일을 만났으니까 거게 대해서 고함이 나오고 이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기도라는 것은 자기와 하나님과 이렇게 에 연결을 가지는 것이 이기 기도인데 잘못하면 기도하는 것 자기 입으로 나오는 그 웅월웅월하는 것을 자기 귀로 듣고 입으로 나온 것이 귀로 들어서 자기가 듣고 자기가 자기한테 말하고 자기가 한테 자꾸 요렇게 뱅뱅 뱅 돌아가는 요런 기도하는 사람있고 기도를 또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설교인지 기도인지 모를 만침 또 갖다가 기도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또 이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또 반은 자기가 듣고 다른 사람 제 서로 둘이 사람하고 자꾸 이렇게 하고 하는 기도도 있고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기도도 있고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기도요 찾아가다가 만나는 거게서 만나는 사건으로 만나는 슬픔으로 만나는 어려움으로 만나는 위험으로 만나는 희망으로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가 접선되서 이렇게 구하게 되는 이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기도 없는 사람은 실패 입니다. 보면 덜렁 거리는 그 아무나따나 덜렁 덜렁 덜렁 거리는 그기 외식자인데 그것이 들어서 어제든지 생각지 아니하고 날뛰다가서 외식자인데그것이 들어서 언제든지 생각지 아니하고 날뒤다가서 마귀에게 걸려 가지고서 마귀 놀음을 해 가지고서 그것이 교회의 두통거리를 주는 것입니다. 어제 어떤 사람이 나한테 갖다가 지나고 난 다음에 말하는데 그 강신민씨라고 저 갖다가 아주 신신학 대가리 목사가 있습니다.
그분이 뭐 갖다가 말들으니까 이 한국 기독교 뭐 뭐 그 사람이 제일 대가리가 됐다는가 대가리가 됐다는가 그 사람이고 뭐 한경직 목사니 몇몇이 갖다가 그분들 다 모두 깊은 생각없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 가지고 늘 인본주의요 세상주의요 육시주의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제 머리가 되가지고서 일을 하면은 그 안에 또 인제 여러가지 마찰이 있을 것이고 이러니까 그거는 언제 마찰이 있어도 세상하고 우리하고 마찰이 있기는 마련이기 때문에 이것이 지금 마찰을 시작하는 이 걸음이라 이 마찰을 우리가 지금 갖다가 당해야 되느냐 이 마찰은 지금은 당할 것이 아니고 아직까지는 죄가 되지 안하는 것이니까 아닌 것이니가 이 마찰은 피하고 이 마찰에 들어가지고 그때에 이제 갖다가 현저이 하나님 말씀에 위반된 것이 나타날 때 그대 마찰로서 투쟁을 해야되나 그때 지금 전쟁을 그때 시작해야 되느냐 지금 시작해야 되느냐 언제 시작해야 되느냐 시기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발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없는 예수 믿는 것이 이것이 참 한없는 영광이요 존귀인데 자꾸 이렇게 하고 하는 기도도 있고 이제 하나님을 햐아여 찾아가는 기도도 있고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기도요 찾아가다가 만나는 거게서 만나는 시간으로 만나는 슬픔으로 만나는 어려움으로 만나는 위험으로 만나는 희망으로 이래 가지고서 하나님과 접선되서 이렇게 구하게 되는 이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기도 있는 사람은 실패입니다. 보면 덜렁 거리는 그 아무나따나 덜렁 덜렁 덜렁 거린느 그기 외식자인데 그것이 들어서 언제든지 생각지 아니하고 날뛰다가서 마귀에게 걸려 가지고서 마귀 놀음을 해 가지고서 그것이 교회의 두통거리를 주는 것입니다. 어제 어떤 사람이 나한테갖다가 지나고 난 다음에 말하는데 그 강신민씨라고 저 갖다가 아주 신신학 대가리 목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뭐 갖다가 말들으니까 이 한국 기독교 뭐 뭐 그 사람이 제일 대가리가 됐다는가 대가리가 됐다는가 그 사람이고 뭐 한경직 목사니 몇몇이 갖다가 그 분들 다 모두 깊은 생각없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 가지고 늘 인본주의요 세상주의요 육신주의요 그런데 그런 사라들이 이제 머리가 되가지고 머리가 되 가지고서 일을 하면은 그들과 연결이 되어서 연결되서 그 안할라 하면은 그 안에 또 인제 여러가지 마찰이 있을 것이고 이러니까 그거는 언제 마찰이 있어도 세상하고 우리하고 마찰이 있기는 마련이기 때문에 이것이 지금 마찰을 시작하는 이 걸음이라 이 마찰을 우리가 지금 갖다가 당해야 되느냐 이 마찰은 지금은 당할 것이 아니고 아직까지는 죄가 되지 안하는 것이니까 아닌 것이니까 이 마찰은 피하고 이 마찰에 들어가지고 그때에 이제 갖다가 현저이 하나님 말씀에 위반된 것이 나타날 때 그때 마찰로서 투쟁을 해야되나 그대 지금 전쟁을 그때 시작해야 되느냐 지금 시작해야 되느냐 언제 시작해야 되는냐 시기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해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발견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없는 예수 믿는 것이 이것이 참 한없는 영광이요 존귀인데 그까짓거 제가 일생동안 죽도록 노력해 봤자 어떤 사람보면은 찍해야 그 회사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 회사 하나 가지고 있소 오늘이라도 죽으면 그만 되는 그 회사 하나 가지고 있어 어떤 사람은 죽도록 노력을 해봤자 벌고벌고 애끼고 애껴서 하나 좋은 그 빌딩하나 가지고 있서 응 어떤 사람은 죽자껀 노력해야 노력을해서 박사라는 갖다가 지위하나 가지고서 월급갖다가 한 돈 백만원 받는 박사지위 하나 그래 점령하고 있소 오늘 죽으면 그만인데 우리가 믿는 이것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이것을 다 자기의 소유로 가질 수 있어 그라면 어리석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라면 혼자 한사람의 소유 가지면 두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갖다가 두 사람이 가질 수가 있겠느냐 이런데 백지 공연히 기독자가 억만명도 넘은데 그 사람들이 다 하늘과 당을 저거것 만들 수 있다 그런 묘한 갖다가 물에 넣어도 붙도알한 묘한 거짓말이다 요렇게 사람들이 말하지만은 아니라 그말이오 여러분들 여럿이 가져도 가질 수 있는 것 말해 줄까요 여러분들 보기에 있게 햇빛을 어떤 사람은 못보는 사람 있어 해빛가지지 못한 사람 있어 햇빛을 자유로 가지는 사람있소 햇빛 못보는 사람이 있어 십년 삼십년도 햇빛 못보고 저 감옥 속에 딱 갇혀 가지고서 있는 사람 있어 응 이 햇빛은 천명 만명 억억만명이 다 자기 햇빛으로 차지해도 모지라지 않아요 그러면 자 또 하나 봅시다. 사랑을 사랑 그것이 해가 낫소 사랑이 낫소 뭐이 낫소. 예 사랑 그것은 천만명 만명이 그 사람을 가져도 다 가질 수 있어 하늘의 것은 다 그런 오묘한 것들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제일 보배지만 생명이라는 것 한 생명 그것을 가지고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접선되어서 육체의 생명도 있는 것이요 접선 딱 끊어지면 숨이 딱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영의 생명도 그런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영계와 우주의 이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활용할 수 있고 자기가 거게 대해서 다 통치할 수 있고 혼자 통치하면 둘이 통치할 수 있는가 억억만명도 통치해 억억만명이 꼭 같은 사상이 같고 주장이 같으니까 억억만명이 다하라 하는데 그기 다해 이러니까 나하라 하는 데도 그기 했고 저 사람 하라 하는 데도 했고 왜 하라 하는기 꼭 같애 소원과 의사와 지능이 같기 때문에 모든 본질과 본성이 같고 그 모든 것이 같기 때문에 이해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존귀한 영원 무궁을 찾이 하는데 이기 그렇게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 하는 이거 하나 가지고 도는 줄 압니까 이것은 기본 구원을 얻은 증표입니다. 네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는 이것은 기본구원을 얻었다 하는 그 증표요 기본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건설구원을 이루워 나가는 데는 얼마나 어려움이 있는 줄 압니까 건설 구원을 이루워나가는 데는 인간이 암만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 그러나 예수님의 피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능가할 수 있는 깨달음을 줘서 온전한 기쁨을 가지게 되고 온전한 기쁨을 가지고 온전한 기쁨을 가지니까 자기에게 있는 것 애낌 없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드려서 할 수 있어 다 드려서 하기만 하면 다 드리면 하나님이 무한한 것이 모지라는 거는 전부 다 거게 책임을 지고 인계 맡아 가지고서 다 보충을 해서 충만케 하는 이 길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생각지 아니하면 몰라요 돈도 좀 생각해 봐요 돈을 생각하면 돈 가치가 얼마나 있는지 남자에게 끌려서 정신빠진 것도 남자를 한 번 생각해 봐 그 얼마나 힘이나 가치가 있는 지 여자에게 끌려서 정신빠진 자 여자를 봄 생각해봐 예 얼마나 장구하며 얼마나 필요하며 얼마나 권위가 있는지 권세에게 끌린자 권세를 한번 생각해 봐요 응 모든 것 자세히 자세히 생각해 봐요 땅 위에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죽은 것이요 모든 것이 저주 아래 있는 것이요 모든 것이 속이는 것이요 속는 것이요 참 무가치한 것이라 생각해 보면 이런데 한번 더 생각하니까 이것 죽은 것이요 석은 것이요 무가치한 것이지만은 하나님과 연결을 시켜놓으면 이것이 괭장한 보배가 되는 기라 가정이라는 것이 하나님과 연결 끊어진 이 가정을 보면 일생동안 거게가 제가 모든 정력과 진액을 다 것다가 쓸아서 죽이는 것이라 자기의 정력 다 죽이는 것이고 자기의 모든 갖다가 일생을 다 죽여 속여 논 것이고 자리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속이고 남 편 아내 속이고 아내는 남편 속이고 부모는 자녀 속이고 자녀는 부모속이고 이렇게 영 망치는 망치는 구렁이라 그말이오 가정이 망치는 구덩이라 하이 가정이 피차에 가족 가족 했지만은서도 망치는 이 구덩이로구나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성신의 지혜입니다.
이것이 기도로 나오요 생각에서 나와 그라고 난 다음에는 망치는 가정이 그라면 이것을 버리야 되겠느냐 좀 생각하니까 좀 더 생각하니까 성신이 와서 망치는 가정인데 이것이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서 이 망치는 가정인데 이 가정이 하나님과 연결되면은 니거 가족을 영원히 영광스럽게 존귀케 할 수 있는 생명 구덩이 이다 생명이 나오는 생명구덩이이다 영광과 존귀가 나오는 구덩이이다 이기 보배로운 자족이다 이는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보배로운 이 가정이다 또 이것이 발견되 이러니까 아이고 이것 참 아주 말할 수 없는 그 망치는 것도 되고 보배로운 것도 된다 이러니까 망치는 가정이 안되야 될 터인데 이것 방어할라 하니까 내 힘이 모지랍니다. 이래서 기도합니다. 기도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서 망치지 안할 수 있다는 발결하고 난 다음에는 근심이 변해서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이 가정 이것이 보배로워서 이 가정을 통해서 한없는 영광이 되고 애비가 자식에게 한없는 영광이 되고 자식이 애비에게 한없는 영광이 되고 애비가 자식에게 한없는 영광이 되는 이 결과를 맺을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을 할라고 하니 시공이 넘어 어렵다 시공이 어려운데 이러니까 근심이 쌓였다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성령의 감동을 받고 보니까 낙망할 것이 아니라 능히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자기가 발견하고 난 다음에 하자 길이 있는 걸 발견하니까 해서 피곤하지만 마음은 피곤치 않습니다. 자꾸하고 싶다 말이오 그러니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않하게 되고서 피곤치 안하게 되 이러니까 이것이 다 명상 속에서 나오고 이것이 기도 속에서 나오고 그러기에 성신의 감화가 아니면 이것을 우리가 모릅니다. 하나님의 크심도 성신의 가화가 아니면 무한한 무한히 크심을 우리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무한한 영감을 받아야 되지 무한한 영감을 받아야 되지 이것이 당장 아는기 우선 죽을 때까지는 좋아서 좋아서 못견디는 이 가정이 망치는 영원히 망쳐서 예수님과 연결없이 세상 떠나고 나면은 원수가 모든 사람이 원수지만 저거 가족이 제일 가까운 원수입니다. 왜 남자는 아내 모든 사람이 원수지만 저거 가족이 제일 가까운 원수입니다. 왜 남자는 아내에게 니가 날 요렇게 망쳤다 남편은 아내에게 네가 날 요렇게 망쳤다 왜난중에 보니까 서로 속이고 망친 것 뿐이라 안한기 하나도 없이 이걸 누가 알겠소 성신의 감동이 오면 이걸 알 수 있다 말이오 알 수 있으니까 예수 없으면 전체는 멸망시티는 것입니다. 성경에 뭐라고 말했읍니까 예수님과 연결안될때에는 모두다 뭐이라고 했어요 데모데전서 3장에 또 피차 서로 서로 성경 말씀 떠날 때에는 서로 속이고 속느니라 속이고 속느니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전체가 속이는 것 속는 것 나는 저를 속이고 저는 나 속이고 이리 속이는 속는것 뿐이라 이 멸망을 사랑한다 하면서 멸망을 애낀다 하면서 멸망을하면서 멸망을 가정을 위한다 하면서 가정을 망치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누가 알겟느냐 말이오 성신의 감동이라야 압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 스스로는 모르고 성신의 감동이 와 가지고 가정으로 인하여서 가정이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데 대해서 멸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대해서 큰 근심 고통을 먼저 받고 이 근심에서 발동을 해 가지고서 멸망을 피하는 이 길을 발견하여 이 멸망을 피하고 난 다음에 기븜을 가지고 이 가정이 한 없는 영관의 그 희망이 있는것을 발견하고 기뻐했다가 얼핏 기뻐했다가 막상 할라골 생각하니까 근심이 됐다가 근심에서 기도로서 하나님의 능력 받아 가지고서 이제 내게 능력 주신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여기에서 한없는 기쁨을 가지고 피곤치 아니하는 이 걸음을 뿍뿍 걸어가는 것이 우리 기독자의 걸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지 않고는 이 일이 이루워지지 안하고 기도해서 인간이 성신의 감동을 변화가 되야 됩니다. 변화가 되야 되 응 그러니까 만나보면 항상 땅의 사람이나 예수 믿는 다는 것도 땅의 사람 감사도 땅의 사람 권능도 땅의 사람 욕심도 땅의 사람 모두 땅의 사람 이러기에 이 사람이 한번 육의 사람을 벗어나 영의 사람으로 한번 변화를 받은 경험이 있나 없나 하는 그것을 한번 경험한 사람 두번 경험한 사람 다릅니다. 접촉해 말해 보면 달라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어려운지 압니까 지나가야 있습니다. 기독교 사회주의 이 사회를 정화하고 어떻게 한다는 그 기독교 사회주의를 지나가야 있습니다.
기독교 정치 기독교로서 이 이 세계를 갖다 이 모든 교회를 이렇게 정치하고 그 기독교 정치가야 있소 그 다음에는 기독교 사망주의 죽는 주의 죽는 주의 죽는 주의를 지나가서 그 다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이 말하기를 너는 이매 죽었느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느니라 너를 부인하라 부인 자기를 부인하고 난 다음에 주님은 만나지는 것이고 자기를 어떻게 배기 부인합니까 그냥 부인이 자기의 부인이 됩니까 자기를 따지고 따지고 생각하고 생각해 본가 자기는 믿을 수가 없는 사람 아 자기가 원수 중에 원수라는 것을 자기가 발견하게 되 왜 과거에 잘못된 모든 것을 저질러 낸 것이 전부이 저질려 냈거든 지금도 제가 소원하고 있는 갖다 이것 주장하고 있는 요놈을 보면은 요것이 뭐냐 망칠 것 뿐이라 말이야 욕심 가진 것 중에 망할 욕심 아닌 것이 없어 원하는 것 중에 원하는 것 중에 망할 소원하닌 것이 없어 이럴 대에 비로서 자기라는 것을 원수라는 것을 발견할 때에 이거는 내가 악이로구나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원수로구나
그 다음에 자기를 발견해서 자기가 원수라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그렇게 원수라는 것을 생각하고 보니까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난중에 보니까 그 사람이 자기라 이것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 아닙니까 이래 기독자들은 성경을 통해서 명상이 없으면 안됩니다. 기도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 교단등록을 해야 되나 안되나 이것도 어짜든지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여게 대해서 확실히 가르쳐 줘야 되지 어쨌근 우리 기독자의 신앙생활은 악으로 더불어 마찰이 악으로 더불어 싸우는 생활입니다. 악에게 타업을 안해 악으로 더불어 사우는 생활인데 악으로 더불어 싸우는 넋이 지금 싸우나 또 지금까지는 백지 미리 안싸워도 될 걸 사울 필요가 없고 안싸우고 고 다음에 가서 싸우나 언제 마찰을 보나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마찰을 보나 요 다음에 마찰을 보나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마찰을 보나 요 다음에 마찰을 보나 언제 마찰을 보나 하는 그것이 문제라 그기요 그런고로 어짜든지 이번에 기도회를 시작한 이것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한 일이 저도 예수 믿은지 이후에 처음이요 이 느껴서 아매도 기도회를 시작해 가지고 해야 되겠다는 이것이 허락하고 또 하나님도 이렇게 은혜를 주고 기도하게 되는데 이 기도회에서 기도를 성공한 사람들이 앞으로 생애를 성공하고 이 기도회에 성공 못한 사람들은 앞으로 성공 못합니다. 그것은 그거는 하늘에서 하늘에서 참 잉어를 낚아 나오지 네 그거는 안됩니다. 네 참 하늘에 별을 단다 하더니만서도 이 기도회에 성공하지 못하고 앞으로 승리한다는 것은 하늘 별따는 것 한 가지 입니다. 한가지요 안됩니다. 이 기도회에서 성공해야 되요 첫째는 성공하는 것은 이 기도회에 자기가 참석을 하도록 해야 되겠고 여게 와서 참석하든지 자기 집에 가 참석하든지 산에가 참석하든지 참석을 하도록 해야 되겠고 둘째로는 이 기도회에 졸지 안하고 졸지 안하고 자꾸 생각이 또록 또록 밝아지는 이 개달음이 생겨져야 되겠고 깨달음에서 눈이 밝아져서 내가 과거에 보던 거와 달리 과거에 좋게 보던 것이 나쁜 것도 있고 과거에 나쁘게 봤던 것이 좋은 것도 있고 과거에 무가치하게 봤던 것이 가치있는 것도 있고 자기의 가치있게 봤던 것이 무가치한 것이 있고 자기의 가치있게 봤던 것이 무가치한 것이 있고 과거에는 아주 아까짓거야 싶부게 봤던 것이 자꾸 그기 강한 것도 있고 과거에는 아주 두렵게 여겼던 것이 그까짓거 아무것도 아닌 것도 있고 영 눈이 바꿔집니다. 생각이 바꿔지고 비판이 바꿔지고 평가가 바꿔지고 이렇게 우리가 되어지는 이것이 이 기도회에서 되어져야 됩니다. 차차차차 모든 견해가 바꿔져야 되요 눈이 바꿔져야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차차 지식이 바꿔지지 지혜가 바꿔지지 사상이 바꿔지지 평가가 바꿔지지 그 비판이 바꿔지지 이러니까 소원도 바꿔지고서 모두가 바꿔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생활도 차차차차 바꿔지지 이것이 성공이 자꾸 되 나가야 이 다음에 영광스러운 그 승리를 하고 이 인간 살이에 나그네 살이에서 인간 성공을 하고 세상 성공을 하고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자들은 세성 성공이 뭐이냐 하늘 나라 성공할 수 있는 자본을 마련하는 세상 거스로 성공하는 이것도 기독자의 성공 이것을 완전히 다 투자해 가지고서 영원하 무궁세계에 성공하는 이 서옹 이러니까 무궁한 성공도 있고 무궁한 성공에 자료가 되는 이 세상 성공도 있고 하는 것이니가 이제 이 두가지 성공을 우리가 가지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 살이인 것입니다. 뭐 세상에서 잘먹고 잘입는 그기 세상 사람들이 영광되는 그기 아니고 우리의 성공은 두가지 성공이니까 세상 성공을 하면은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합니다. 다 좋아하요 하늘 성공은 양면이 있어 하늘 성공은 양면이 있어서 양면이 있어서 세상 성공도 되고 하늘 성공도 제가 난 도평은 그 도평은 지금 우리 이석용 조사님이 갈긴데 이석용 조사님 오셨읍니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네 가실건데 우리 내가 난 그 도평은 아주 그 도평은 우리 백가들만 사는데 뭐 인질이 좋지를 못합니다. 인품이 좋지를 못합니다. 뭐 그 아주 고집스럽고 꼬장베기고 또 뭐 독하고 그러니까 악하고 그 뭐 그리 아주 모질박습니다. 예수 믿어도 예수 믿는 사람 하나도 안나나 있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 사엄씨라는 그 사람 하나 예수 믿고 안믿음니다. 그 어림도 없소 꼼작도 않해 그런데 지금은 물신물신해서 많이 믿습니다. 그 예수 믿으면 망한다 소리는 안해 아 떡 껍데기만 본다 말이오 내 껍데기만 봐 아 예수 믿어서 그 뭐 그 내 이름이 뭐냐 아 백영희 목사 같이 될진데야 태영 못사같이 될진대야 영익 목사같이 될진대야 영익목사 서울서 잘사는 모양이라 영익목사 같이 될진데야 영침목사 같이 될진데야 이래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서 예수 믿으면 잘믿으면 잘된다 이래 가지고서 이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설설 나옵니다. 그래서 제법 믿습니다. 그 겁데기 보는기라 그 껍데기 그 껍데기 보는데 우리가 믿어서 영원한 영광을 갖다가 얻어지는 그것을 그 사람들이 달라들면 또 괭장한 사람들이요 동지 석달에 베겨놓던 말던 삽십리를 간다는 얼대라도 뭐 이리 비유했어 그래 껍데기만 알아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예수 믿는 것은 그 하늘나라 성공을 가지고서 비참하다 그리 되지지않아요 하늘 나라 성공 세상 성공 아이구 예수 믿는 사람 참 부럽다 이렇게 되지고 또 속도 잘되집니다.
아브라함이 그와같이 성공했는데 아브라함 성공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천해졌다 했소 존귀해졌다 했소 뭐라 했읍니까 아브라함을 보고 세상 사람이 볼때에 존귀하게 봤소 천하게 봤소 와 대답안해 존귀하게 본줄 아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요 녜 존귀하게 봤습니다. 이러니까 이 아무것도 아닌데 저 왕들이 와가지고 모든 왕들이 와 가지고 아브라함한테 우리하고 돔 동맹합시다. 아 나는 개인인데 그 왕이 뭐할라고 동맹해 아이구 동맹합시다. 당신은 하나님 함께 하시는 줄 압니다. 당신도 우리 자손해하지 아니하고 우리도 당신 자손 해하지 아니하고 당신 자손하고 대대로 화친하고 싸우지 아니하도록 그렇게 우리가 동맹을 합시다. 이러면 부근의 있는 족속들이 다 화어 그랬어 망하만 그런 소리 하겠읍니가 신명기 이십팔장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다 두려워하리라 껍데기가 이런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멸시하고 천대하게 안됩니다.
마지막에 박해를 줄 때도 말이오 박해를 줄 때도 그 박해를 줄 때도 그때갖다가 믿는 사람들이 나가는 그런 걸음을 최근로 목사님은 거게서도 붙들려 감옥에 갇혀 가지고서 아침에 한번씸을 예수 믿고 구원 얻으라고 고함을 이래 세번씩 지르는데 그때는 고만 그 경찰서가 욱육거려요 이래도 그걸 막지를 못해 응 이라면서 그들이 말하기를 참 저분은 이름을 따라서 권능이라 자기 네들이 그 일본 그 순경 갖다가 형사니 이런 사람들이 가만히 봐도 곧 사형을 앞에 놓고도 기븜이 충만하고 이렇게 하니가 모든 사람들이 이는 참 이는 참 존귀한 사람들이요 위대한 사람들이다 그래 가지고 8.15 해방이 될 때에는 그분들이 이분들 앞에 전부 무릎을 꿇고 탁 엎드리 가지고서 살려주십시요 하면서 참 존대했습니다.
응 존대하고서 멸시하지를 안했어 저도 매일 와 가지고 저하고 싸우던 그 일본 사람인데 그 주임 주재소 주임인데 그 사람 갖다가 해방되니까 나한테 감히 갖다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저만침 서 가지고서 엎으리 갖다가 땅에 코가 다이고 절하면서 그저 용서해 돌라고 자꾸 이래 그 물 용서할 것있느냐고 그라면서 내가 가자 하니까 줄줄 따라 와요 그 과자집에 가가지고 과자를 한봉 사서 이래 앉겨 주면서 아들 주고 그래 예수 잘 믿으라니 이 사람이 그래 참 눈물을 흘리고 참 감사합니다. 가서 나도 예수 믿겠습니다.
그라면서 갔는데 그 뒤에 어디로 갔는지 응 예수 믿는 사람은 멸시를 당하지 않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었을 때에 천하게 걸리는 것이지 와 기독자들이 천해졌느냐 기도하지 않기 대문에 작은 것 투자해서 큰 것 얻는 이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녹아지기를 주저하고 이러니까 녹아져야 뒤에 영광스럽게 되는 것인데 녹아져야 응 그런고로 어짜든지 이번 기도회에서 첫째 뭐 성공은 저 안에 있지만은 첫째는 이 기도회에 빠지지 않아야 됩니다. 참석을 해야 되요 둘째로는 기도할 때에 처음에는 졸라지지요 자꾸 기도하고 오래동안 하루 이틀 열흘 이래 자꾸 기도하게 되면은 기도할 때에 졸우라지는 그 졸음을 이기게 됩니다. 졸음이 안오게 되 왜 까랑 까랑하이 생각이 밝아지니가 졸음이 올 수가 없어 졸음을 이기게 되고 또 그라다 보니가 난중에 기도를 하다 보니가 차차 껍데기로서는 시간이 가는 줄 몰라서 삼십분이니 하다보니까 삼십분 미만이 아니고 삼십분이 오히려 지나가게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깨달음이 하나씩 둘씩 깨달아져서 만물관이 달라집니다. 깨달아지니까 만물관이 달라져 달려져서 사람도 보는기 달라지고 일도 보는기 달리지고 세상도 보는기 달라지고 가치도 달라지고 비판도 달라지고 차차차차 뭐이 달라진다 말이오 달라지니가 자기 속에 기쁘다 말이오 뭐 과거에 안기 바로 알았느냐 지금 안기 바로 알았다 이라니가 과거에는 소욕이 이렇게 이쪽으로 기울어 졌는데 그것은 갖다가 기울어진것 다 망할 소욕으로 기울어 졌었는데 차차차 그 소욕이 아니고 이제는 참 영광스러운 존영한 소육으로 옮겨집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봐도 야 이상하다 내 견해가 차차 달라진다 내 견해가 점점 정신이 차려져서 달라진다 그라고 보니까 내 사람도 달라집니다. 활동도 달라져요 내 소원도 달라져요 이래가지고 자꾸 개달아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과거에 뭐 신앙 생활 못하던 그거는 갖다가 할 것이 없고 과거에 이기기 어렵던 좌가 이기게 되고 과거에 하기 어렵던 그것 참 그 억지로 하던 것이 하고 싶게 되고 자꾸 생활도 변해진다 말이오 이 기도에서 변화가 되어져야 하나님이 기도회를 주셔서 어떤 자가 참 믿는 자며 어떤 자가 영광스러운 자며 어떤 자가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자이며 요만침 줄자 이만침 줄 자 이만침 줄 자 이만침 줄 자 이 줄 자가 다른데 이 자격을 지 금 심사할 때에 어떤 잔가 한 그것이 여게서 나타나고 또 그 자격이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기도회가 이것 중대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한 것이 벌써 우리 진영 교회는 전부다 이 기도회를 시작해 가지고 다 이 기도회를 한답니다. 아마 이 기도회가 여게 한다는 이 기독교 신문이라 하는 이 신문들은 이상한 신문들입니다. 이거 하나님이 기뻐하는 건 신문에 안내요 우리 서부교회가 아동들이 주일 학교가 이렇츰 거석해도 사회신문에서 냈지 이 기독교 신문에는 하나도 안내요 그라면 여러분 뭐인지 알 수 있다 이기요 이제 이러면 이런 것도 아 그 주일학교가 이렇게 부흥된다 우리 우리가 무슨 갖다가 그런 명예받은 그런 썩은 그런 거는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면 아 그렇다 하니까 우리 우리도 우리 주일학교도 힘을써야 되겠다 이래서 이 살리는 운동이 일어날 터인데 사회신문 보고 왔지 기독교 무슨 이 신문이나 그런 그 보고서 온 사람 없이 안났으니까 와 가지고서 벌써 지나간 사라들이 많았다 이기야 그 큰 교회들은 다 지나갔어 지나갓지만 그 사람들이 저거 지금 예배당 지어 놓고 예배당 뭐 헌당식한다고 예배당도 조그만하게 삼십평 지어 놓고 헌당식한다고 그런 것도 심누에 다 낼 줄 아는 사람들이 이런 것은 야 사람들아 그리스챤이나 이 기독교 신문이나 지금 이렇게 주일학교가 일어나고 이런데 왜 이걸 신문에 안내노 이래 말하면 그들이 안낼 수 없을 기라 말이오 그라는 사람 없으니가 그 사람들이 다 땅에 속해서 이것 그라면은 서부교회 유명해지고 지금 남 유명해 유명해지게 해주는 것 싫다 이기요 서부교회 유명해지를 원한다면은 저주를 받아야 될 교회입니다. 아니요 유명하기를 원하는 세상에 유명하기를 원하는 것은 전부 마귀의 시험이요 마귀 구덩이 뿐이요 망하는 것 뿐입니다.
이라는 것은 이람으로서 한 교회라도 주일학교 반사들이 힘을 얻어 가지고서 또 일어날까 좀 은혜를 받알까 이래서 그런 것이지 아 지난 주일에는 저 충북에서 알지도 못하는 그 합동측 교회에서 주일학교 반사를 세 사람을 보내서 거가면 차비만 해 가지고 가면 된다 해 가지고서 차비만 해 가지고 왔는데 뭐 어디서 왔는냐 하니까 나는 모르는 교회라 그래서 여 숙소가 누추한데 이것 어찌되겠느냐 여 식당부억에 숙소를 정해 놓고 그러면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 그 식사를 자기네들이 해먹겠다고 해서 이런 것 모두다 곤로니 뭐니 준비해 줘서 그 식사를 해먹고 토요일날 오후 심방하는데 따라가고 오전 시방하는데 따라가고 아침 심방하는데 따라가고 예배보고 이랬는데 올때와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가 되 버렷어 고만 사람들이 완전히 변화가 되버리고 몇 시간 그라는 가운데에 처음 갖다가 거리가 천리 만리 먼 거시 이렇게 됐었는데 고만 몇 시간 지나고 난 다음에는 고만 우리와 한 사람이 되버렸어 그분들이 가가지고 이제 참 놀래겠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주의 피의 운동이요 인간 구원 운동이요 이것 때문에 하는 것이지 예 이런데 그런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기도회도 아 거게서 그렇게 기도한단다 이러니가 우리도 갖다가 이 시작하자 아 이래 가지고서 고만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