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20:06
소금과 빛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16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러 시간 계속 거듭거듭 증거했으니까 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거 가지고는 그것만 가지고는 유익이 안 됩니다. 알고 있는 것은 실행을 이루지 못하고 실상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은 심판만 받는, 자기를 정죄하는 율법이 되지 다른 효력은 없습니다. 또 그러고 아무리 사람이 총명이 있고 모든 지식이 통달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제가 실험을 해야, 실제로 행해야 알아지지 행하기 전에는 알아지는 길이 없습니다. 일반 지식과 다른 것은 이 지식은, 다른 지식은 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속한 지식이요 사람 보다 그 이하의 낮은 지식이지만, 이 지식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한 능력의 지식입니다. 사람보다 그 가치와 실력이 무한히 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정해 주신 법이, 알고 행하면 다시 안다 이랬습니다.
알고 그대로 실행을 하면 실행함으로 다시 참 알아집니다. 그라고 나면 그 아는 것이 '지행이 합일이라' 아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하나지 둘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알면 행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참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른데, 알고 행하면 그 다음에 행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알게 되는 그것은 참 아는 것인데, 참 알게 되면 아는 대로 실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이 요게 대한 이 진리를 무슨 이 시간 감동을 받을라고 하는 생각을 전혀 가지지 마십시오. 내가 오늘 저녁에 이 말씀에 무슨 감동을 받겠다. 감동을 받을 그런 생각 가지지 말고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들어서 확고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 깨달은 것을 자기가 어느 한적한 시간에 가 가지고 자꾸 이 말씀을 깨달은 것을 또 새로 자기가 새김질하고 새김질하고 하면 자기 속에서 뜨거운 힘이 나올 것입니다. 뜨거운 힘이 나올 때에 계속하면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될 것이요, 이 말씀대로 실행할 그 능력이 나오고 또 실행할 수 있는 현실을 한번 만나고 싶고 또 현실을 만날 때에 대로 실행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설교들을 때에 감동받고 은혜받는 그것은 하나의 그저 피동되는 것이고, 다른 이에게 피동되는 것이고, 자기 속에서 나오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설교할 때에 감동되는 것은 이 진리를 깨닫는 데에 도와 주는 그 역할뿐이지 실행하는 데는 아무 힘없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들어 깨닫고, 자기가 혼자 마음을 써서, 힘을 써서, 자기 의 목숨을 써서, 자기의 그 각오를 써서 이렇게 이 말씀을 자꾸 새김질을 하면 이 말씀 새김질 할 때에 이 말씀에서 능력이 나와 가지고 자기 마음에 충만해 가지고 이것이 이제 의지로 넘어가고, 의지에서 실행으로 옮겨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치를, 여러분들이 알지만 굳게 잡기 위해서, 다시 말합니다.
"세상의 소금이니" 하는 이 소금이라 말은 비유인데,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도 가지지 못한 기독자의 특수성을 가리켜 말하는데, 이 소금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과 또 성령의 감화 감동과 진리, 진리는 내나 영감이 진리요 또, 예수님의 대속이 내나 영감이요 진리요 그 하나이나 우리에게 좀 알기 쉽도록 구별해서 그와같이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의 감화 감동과 진리 이 셋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죽은 영이 뭘로 다시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아났느냐 하면 이 세 가지 가지고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신의 감동과 이 진리 이 셋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서 영생하게 됐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중생된 영의 힘은 무슨 힘인가? 예수님의 대속의 힘이요 영감의 힘이요 진리의 힘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양식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에게 영생하는 이 생명에게 힘을 주고 이 생명을 자라게 한다 그말입니다.
"소금이니"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사는 우리들이니, 예수님의 대속이라면 사죄를 입고 살고 칭의를 입고 살고 하나님으로 더 불어 화친을 입고 사는 거, 화친은 뭘 말하는고 하니 하나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인데, 그 원형을 닮은 모형,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야 하고, 또 영감으로 살아야 하고 진리로 산다면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로 사는 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우리 생활은 이 세 가지로 사는 것이 우리 생활이요, 이 세 가지 외에 다른 생활은 자기가 세계를 다스리든지 어떤 재벌가가 되든지 어떤 예술가나 과학자가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것은 자기 생활이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 생활은 대속으로,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돈벌이도 하고 태짐도 지고 정치도 하고 또 과학도 또 하고 예술도 하고 그것은 이 세 가지 생명이, 우리가 생명이 있으면 생명이 길도 가고 일도 하고 또 사람도 만나고 소리도 내고 노래도 부르고 뭐 하지 않습니까? 그 모양으로 산 사람은 이것 저것 다 할 수 있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예수님의 대속과 성신의 감화와 진리의 힘이 우리 힘이 돼 가지고 이 힘으로서 세상 모든 일을 합니다. 장사도 하고 농사도 하고 모든 거 다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새생명으로 사는 것이요, 죽을 사람이 사는 것이요, 영생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그렇게 산 생활은 전부 영생입니다. 하나도 안 죽습니다.
이래서, 소금으로 살면 하는데, 여게는 소금으로 살지 못하면 그것을 여게 말해 놨습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짜게 할 수 없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거는 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 짜게 못 합니다.
한번 맛 잃었으면 그만이지 그러면, 소금의 맛은 간인데,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사는 것이 우리 생활인데, 그러면 이 세 가지로 살기를 언제 사는가? 사는 것은 현실에 삽니다. 현실에. 현실에 사는데, 이 현실에 자기가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를 가지고 현재에 살았으면 그 사람은 이 소금으로 산 셈입니다. 소금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소금으로 살았다. 그러면, 영감으로 살았고 진리로 살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았습니다.
또, 만일 우리가 현실에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살지 못했으면 이 소금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소금이 맛이 변했습니다. 변질됐습니다. 우리가 영감과 진리와 주의 대속으로 살지 못했으니까 변질됐다 말이오. 변질 됐으면, 맛을 잃으면 변질됐으면, 다시 짜게 하지 못한다. 현실에 자기가 이 세 가지 우리, 생명의 근원으로 살았으면 이는 참 가치 있는 것인데, 만일 살지 못했으면 그것은 소금이 변질된 것이라. 기독자가 변질된 것이라 영감으로 살지 안했기 때문에 변질됐고, 진리로 살지 안했기 때문에 변질됐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지 안했기 때문에 변질됐다. 변질된 것은 다시는 짜게 하지 못한다, 요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는 요 세 가지로 사는 것이 현실에서만 세 가지로 살지 미래에 이 세 가지 암만 가지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또 과거적으로 암만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그거는 자기와 상관없고, 과거 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현실에 살기 위해서 거기에 하나의 보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실상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 사는 그 실상의 생활은 현실에 되기 때문에 현실에 이 세 가지로 살지 못했으면 그 현실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 현실을 살 때에 요 세 가지로 살지 못하고 새생명으로 살지 못하고 변질된 사람으로 살았다 그 말이오. 다시 타락한 사람으로 살았다 이거요. 타락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다시 짜게 하지 못한다 그말은 다시 반복은 없습니다. 다시 반복은 없습니다. 다시 또 이 시간에, 이 시간에 요 세 가지로 살지 못했으면 내라는 이 생명은 변질됐습니다. 그 생명이 변질되고 생명을 버렸기 때문에 나는 생명이 떠났으니까 나는 변질 되 사람으로서 이 한 시간을 살았습니다. 변질된 사람으로 한 시간 살았기 때문에 이 변질된 사람으로 한 시간 산 이 생활을 다시 영감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이 생명 생활을 다시 회복할 수가 있느냐? 절대 회복할 수 없다 그말입니다. 절대 회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짜게 못한다 그말입니다. 다시는 이걸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변질되지 안하고 기독자로서 정상의 사람으로 사는 거, 에덴 동산에 사람이 변질됐는데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완전히, 원상 복구한 것이 아니고 참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정상적인 사람을 우리에게 만들어 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영감과 진리가 왔고, 영감과 진리 때문에 우리가 살아났기 때문에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된 요 참사람, 온전한 사람,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 현재에 살면 어찌 되며 살지 못하면 어찌되느냐? 살지 못하고 그 현실에서 요 세 가지로 살지 못했으면 그만 쓸 데 없다 이랬습니다. 이 세 가지로 살지 안했으면 제가 천하를 움직이는 일을 했다 할지라도 저는 못 쓸 일 했다 그말이요. 못 쓸 일 했다. 쓸 데 없는 일 했다. 못 쓸 일 했다. 못 쓸 일을 했다.
그러기 때문에 밖에 버리운다. 밖에 버리운다 말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진다는 말이요, 지옥간다 말이요, 이 생명 세계서 떠난다는 말입니다. 생명 세계에서 떠나, 하나님 중심인 세계에서 쫓겨 났다 그 말이오. 하나님 중심인 세계에서 쫓겨 났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이거는 이제 천물 되는 것뿐이다 이것은 참사람에게 천물 되어 가지고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모든 존재에게 천대받는 자유없는 종노릇한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안 되는 걸 말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러면 이 현실에서, 요걸 꼭 잡읍시다. 요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말고, 우리가 기도 제목 가운데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살자 하는 것으로 말하지 안했습니까?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는 것은 어떤 게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는 것이냐 하면 사죄를 입고 사는 것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는 것인데, 사죄를 입는 것은 주님이 문서 계시로 우리에게 주신 이 문서 계시를 범하지 아니하는 것이 사죄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문서 계시를 범하지 않는 거, 또 칭의를 입는 것은 뭐이냐? 이것은 문서 계시와 영감에게 피동되는 것을 가리켜서 칭의라 그래. 우리가 칭의를 입은 그 칭의로 사는 것은 영감으로 사는 것이요 진리로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화친으로 사는 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그 원형과 꼭 같은 모형으로 사는 것이 화친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참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오. 중생된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요, 영생하는 생명을 가진 자가 사는 것이니 영생하는 자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면 한 현실을 살았으면 산 그 생애는 어떤 생애냐? 그 생애는 쓸모 있는 생애다. 쓸 일 했다 못쓸 일을 하지 안했고 하나님에게와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거는 참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했다. 그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에서 뭐 이것 저것 무슨 일이 큰 일인 줄 알고 더듬어 다니지만 이것 저것 돌아다니면서 무슨 일 해야 큰 일할까, 어떻게 해야 좀 큰 일 해 볼까, 좀 유명해질까? 다 그거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로서는 제일 큰 일이 무슨 일이냐? 현실에 이 세 가지 소금으로 사는 것이 제일 큰 일입니다. 소금으로 사는 것이 자기에는 천상 천하에 제일 큰 일입니다. 또 자기가 소금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에게와 모든 피조물들에게 제일 필요한 일을 했습니다. 제일 필요한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밖에 버리운 반대로 이제 안으로 기어들어옵니다. 중앙으로 들어옵니다. 이래서 하나님 한 분을 중심 삼은, 하나님 한 분을 중심 삼은, 하늘과 땅에 것이 통일된 무궁세계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인데, 하나님 한 분으로 중심 삼은 이 나라에 네가 하나님 중심으로 기어들어 온다 하나님 중심의 이 세계로 들어와서 네가 하나님의 중심에게 속하니까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그 중심 인물이 된다 피조물들에게는 중심이 되어지고 하나님에게는 이 중심되신 하나님에게 소속하게 된다. 이 얼마나, 지극히 고귀한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 한 분을 중심한 하나님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에게 소속해서 하나님에게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밟히는 반대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렇게 존귀함을 받게 된다 왜? 그 평가적으로 그 가치가 있고 쓸모가 있고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그와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현실에서 주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영감과 진리대로 산다는 이거 이 이상 가치 있는 일이 없고, 이 이상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일이 없고, 이 이상 피조물들에게 존대함을 받는 일이 없습니다. 이걸 자꾸 새기고 새기고, 이래서 '나는 세상 소금이라 소금이 맛 잃으면 쓸모 없고 밖에 버리고 사람에게 밟힌다. 소금이 만일 제 맛을 지니면,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가지고 현실을 살았으면 이는 참 천상 천하에 나로서는 제일 필요하고 요긴한 쓸모 있는 일 했다' 그러면 이거는 하나님에게도 필요한 일이요, 피조물들에게도 필요한 일이요, 나에게도 참 할 일을 했디. 이것은 그 안으로 하나님 중심인 그 세계로 향해서 자꾸 들어가게 된다. 이러니까 모든 피조물들이 다 존대하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했으니까 요 말씀을 여러분들이 알고 우리가 자꾸 새깁시다. 자꾸 새겨요. 기도하러 가 가지고 자꾸 이 말씀을 새깁시다 오늘 저녁에 제가 증거할라 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다 시행하리니 하는 요한복음 14 장에 있는 이 말씀을 증거할라고 요 강단에 여기까지 와 가지고 오늘은 이거 기도에 대해 가르쳐야 되겠다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기도를 하는가, 기도하는 데 대해서 모두 잘 모르기 때문에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야 되겠다 이랬는데, 아무래도 그것도 또 새로 시작하면 또 요거 언제 시작할란지 모를 터이니 이미 좀 배워 나가 던 요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 해서 또 시작을 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소금으로 살면 세 가지 보배로운 결과를 맺고 소금에 변질이 돼 버리면, 변질로 살면 너는 세 가지 말할 수 없는 비참한 결과를 맺게 된다 하는 그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또, 그 다음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이라 그말은, 또 빛이 또 뭐 인가? 빛이 내나 그겁니다. 빛이 뭐이냐? 세상은 깜깜 어두운 세상이라 했는데, 세상을 어두움으로 말한 것은, 세상은 예수님의 대속주가 없기 때문에 희망이 없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대속주의 이 대속의 공로가 세상에게는 없기 때문에 세상은 이 사망과 저주 아래에 멸망 가운데 있는 것이지 이것은 다 사망 아래 있다. 사망 아래 있다. 저주 아래 있다 영원한 멸망 아래 있다. 멸망 뭉텅이라 그 말이오.
세상은 어두움으로 말한 것이 사망 뭉텅이라, 멸망 뭉텅이라, 전부 사망 덩어리라, 멸망 덩어리라, 저주 덩어리라 그 말이오. 그러면, 그거 왜 그러냐? 이것은 거기에 빛이 없다. 빛이 없는 것은 빛은 뭐이 빛인가? 빛은 예수님의 대속이 있어야 되는데 대속이 없지, 거게는 조물주 대 주재자 주권자이신 그분의 뜻이 뚜렷이 있는데 그분의 뜻이 없고 마귀의 뜻이 점령을 해 가지고 있지, 거게는 하나님이 입법해 놓은 하나님의 입법은 없고 전부 마귀가 법을 내 가지고 있는, 타락한 사람들이 마귀 감화를 받아 가지고 사람들의 그 두뇌와 또 이 모든 경험 체험과 모든 역사를 종합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이 종합 지식, 그것은 전부 위로 하늘에서 내려운 지식이 아니고 뱀의 지식인데 이 지식만 가득 차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깜깜한 세상이라 이 깜깜한 세상인데,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 말은 너희들은 멸망에서 해방시켜서 자유와 구원을 줄 수 있고 생명을 줄 수 있는 예수님의 대속을 너희들이 받았고, 대속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는, 대속을 이렇게 위임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임받아 가지고 있으니까 너희들이 이 대속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면 다른 사람이 살게 된다.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라' 하는 그 말은 뭐이냐 하면 전해 줘서 받으면 영생하고 다 해방되고 다 자유하는데 이것을 전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빚졌다 하는 것을 항상 말해. 죽도록 하고도 빚졌다고 말 하는 것은 다 전하지 못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 말은 우리가 진리는 아닙니다. 우리가 진리는 아니요, 우리가 영감도 아니요, 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도 아닙니다.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입었고,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모시 그 이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고, 영감으로 우리가 살아났고 영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줄 수가 있고, 진리를 우리가 힘 입었고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가리켜서 세상 빛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소금이라 말이나 빛이라는 말이나 꼭 같은 내용과 뜻을 가지고 이제 발표하기를 적용되는 데가 다르기 때문에 발표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 세 가지라 말입니다. 이 세상은 깜깜 어둡다. 이 세 가지가 없고, 하나님의 뜻인 진리가 없고 인간의 자율뿐이고, 또 성신의 감화가 없고 악령의 감화만 있고, 이제 '불신자 속에 공중의 악한 영이 그 속에 주관하고 있다' 에베소 2장에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우리는 성신이 주관하고 있는데 불신자 속에 악령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도 악령이 주관했다 성령이 주관했다, 성령이 주관하면 우리 속에 빛이 있지만 악령이 주관할 때는 우리는 어두운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대속이 없기 때문에 이는 사망과 저주와 하나님과 원수된 그 자리에 서서 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은 어둡다, 우리를 빛이라 이래 말했습니다.
요거 알고.
그 다음에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한다' 그말은, 숨긴다 말은 다른 사람이 덮어 가리워 숨기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덮어 가리워 숨기는 게 아니고 제가 숨는 그런 성격의 것을 말합니다. 제가 숨는 거, 제가 아무리 숨을래야 숨지 못한다 그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제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런 증거를 하든지 저런 증거를 하든지 저는 두 가지 증거 중에 어떤 증거라도 하나 하기는 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중생된 기독자들은 이런 것으로 모든 사람 앞에 증거로 나타나든지 저런 것으로 증거로 나타나든지 네가 증거로 나타나고야 말지 증거로 나타나지 안할 수가 없다 그말입니다.
그거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천하 사람들이 다 저주를 하고, 훼방을 하고, 막 빼앗 먹을라고 어떻게 한다 해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살았으면 반드시 그는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서 '보라 예수를 저래 믿으니까 보라.' 아, 다니엘 저거 자꾸 하나님, 하나님 그리 쌓더니만 사자 구덩이에 넣어서 인제 마지막 죽어 버렸네 했는데, 죽은 가운데서 쑥 올랐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요대로 이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안하고 영감으로 진리로 그렇게 죽든지 살든지 망하든지 흥하든지 요대로 사는 그것을 모든 사람이 다 보고 '저 사람 저래 예수 믿어 가지고 너무 지나치게 믿어도 망한다' 모든 사람이 망한다 하면 됩니다. 망한다 해서, 이제 예수 때문에 망하고, 진리 때문에 망하고, 영감 때문에 망하고,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망하다. 저 사람 다 예수 때문에 망했다' 이라고 나면 모든 사람이 '저 예수 너무 지나치게 믿어 망했다' 이라고 난 다음에 '모두 다 망했지? 봐. 다 망했지? 다 망했습니다.' '봐라' 높이 버뜩 들어 가지고 올리는 것이 다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다 십자가의 도라 죽고 사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망하고, 진리 때문에 망하고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망하고 흥해지는 것이 기독교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얻지 믿지 못하는 사람은 못 얻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래서, 네가 잘못 믿으면 저렇게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아, 그 사람은 잘못 믿은 가운데도, 잘못 믿은 가운데도 요렇게 잘못 믿은 사람 있고, 요리 꼬부라지게 잘못 믿은 사람 있고, 또 조래 빼쪽히 잘못 믿은 사람 있고, 잘못 믿은 것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잘못 믿은 종류대로 반드시 자기에게 그 보응이 와 가지고 '아, 그 사람은 그래 믿더니만 저렇게 됐구나 저래 믿더니 저래 됐구나.' 네가 그것을 그렇게, 믿으면서 성경에 말한 대로 보응을 받지 안할라고 애를 써서 '성경에 이라면 망한다 하지만 나는 안 망하겠다' 네가 아무리 힘을 써 봤자 그 증표를 나타내지 안할 수가 없다. 숨기우지 못한다 하는 말이 그 말이오. 숨기우지 못한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잘못 믿으면 그 사람은 참 세상에서 비참하게 되는 거, 잘못 믿으면서, 잘못 믿으면서 제가 비참하게 안 될라고 암만 애써 봐도 숨기우지 못한다 하는 그말이 그 말이오. 잘못 믿으면서 잘못 믿은 그 보응을 받지 안할라고 제가 암만 날뛰어 봐도 안 받을 수가 없다. 또 바로 믿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복받지 못하도록 암만 매장을 하고 어떻게 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드신다. 아무도 가루지 못한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고,
또, 말했습니다. 사람이 둥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안한다. 말 아래 두 지 않는다.
등경 위에 둔다. 이 말은, 말 아래 두면 그 빛이 가리워지지 않습니까? 빛이 가리워지지 않습니까? 빛이 가리워지는데 주인이 그 등경 위에 두고 말 아래 두지 안합니다. 말 아래 두지 안하고 등경 위에 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네가 빛이 있는 것만치 빛이 적게 있든지 많이 있든지 네게 빛이 있는 것만치 드러난다. 사람들이 네 빛을 몰라 준다고 원망 불평 말아라. 사람이,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빛은 빛이 아닌 것도 빛이라고 오전을 해 가지고 광고를 떠들고 막 이렇게 전달해 가지고 세계가 울리게 암만 이리 쌓아도 하나님이 까뭉케기 때문에 빛 아닌 것이 드러나지는 못한다. 또, 네게 빛이 있는데, 네가 빛을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이 매장을 시켜서 빛이 나타나지 않는다 저 사람이 덮어 가루고 방해해서 빛이 나타나지 않는다. 네게 있는 빛이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가리워지리라고 그런 생각을 가지지 말아라. 주인이 아무리 다른 사람들 이 말 아래 둘라고 애를 써도 주인이 이렇게 등경 위에 높이 든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에게 있는 빛은 하나님이 드러내기 때문에 그 빛을 아무도 방해하고 가룰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가루지는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이 빛에 속한,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에 속한 생애는 크든지 작든지 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드러낼라고 하기 때문에 그거는 드러나지 감추어지는 법이 없고, 또 아무리 다른 사람이 감출라 해도 감추지를 못하고, 또 이 빛이 아닌 것을 자기가 아무리 드러낼려고 해도 그거는 어두운 것이기 때문에 어두운 뭉텅이가 암만해 가지고 어두움이 이 방안에 꽉 찼다고해서 그 어두움이 크다고 해 가지고 빛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두움이 가득 찼다고 빛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 어떤 사람이 시를 지었는데, '흑암아 외쳐라. 흑암아 고함을 질러라 막 호령을 쳐라. 흑암아 외쳐라. 조그만한 반딧불은 춤춘다.' 반딧불 은 제 마음대로 놀지 흑암이 천하에 가득 찼더란대도 반딧불은 그거는 제 마음대로 놀지 하나도 제재받지 않습니다. 빛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그 빛이라 하는 것은 어두움을 이깁니다. 어두움은 이 방안에 꽉 찼는데 성냥개비 딱 켜고 나면 빛, 조그만한 거 그거 붓 안 있습니까? 그것도 이라면 뭐 어디든지 가면 어두움이 척척척척 물러가고 다 깨집니다.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생활은 세상이 막지를 못합니다. 아무것도 막지를 못합니다. 요거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세상이라지를 못 해 어떤 게 세력이라도 그러기 때문에, 역사는 다 기독교가 이겼기 때문에 그 박해 중이지만 기독교는 점점 흥왕해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저거도 다 우리의 밥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이 세 가지 빛의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몰라 줄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 앞으로 주의 일할 사람들,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데, 내가 이 좀 실력이 있는데 날 교역자로 등용해 주지 않는가? 세상에는 운동할 필요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는 그게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등경 위에 높이 들기 때문에 그 빛은 아무도 말 아래 두지를 못합니다. 등경 위에 조물주가 두기 때문에 방해하지 못합니다.
그리해서 '온 집안 식구에게 비취느니라' 요게 깊은 진리를 말씀했습니다. '온 집안 식구에게 비취느니라' 등불은 하나인데, 등불은 하나인데 요 등불 하나 떡 켜고 나니까 온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환해졌습니다. 등 불 하나 켜고 나니까 온 방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환한 빛 속에 있습니다. 환한 빛 속에 있어 빛덩어리가, 어 이 사람도 보니까 환하이 밝고 저 사람도 밝고 다 밝습니다. 전부 빛 속에 있어. 빛 속에. 너 한 사람의 빛으로 말미암아, 너 한 사람의 빛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네게 분담시켜 준, 네게 속한, 네게 책임된 사람의 숫자가 많든지 적든지 너 한 사람의 빛을 바로 하게 되면 네게 속한 모든 것은 다 빛 속에 살게 된 다 영감 속에 살게 된다, 진리 속에 살게 된다. 예수님의 피공로 속에 살게 된다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을 요한계시록 1장에 말씀했는데, 일곱 별은 일곱 교회 사자를 말하고,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 땅 위에 있는 교회를 말하는 것인데 교역자와 교인의 비밀 교역자 너 한 사람이 빛으로 살면 온 교인은 다 빛 가운데 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온 교인을 빛으로 화 시킬라고 애를 쓰면 힘이 드는데 남 고칠라고 하면 힘이 드는 것인데 네가 빛으로 살면 그 온 방안에 있는 사람, 네게 속한 자는 전부 다 빛 속에서 살게 되고 빛으로 화해지게 된다 요것을 요게 말 해 준 것이 큰 뜻입니다.
그래 가지고, 또 그 다음에 해석하기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빛은 저 하나뿐입니다. 너 빛의 그 생활, 너 빛을 보고, 네 빛을 보고, 네 빛을 보고, 네가 진리를 어떻게 가겼으며 영감을 어떻게 가졌으며 예수님의 공로를 어떻게 가졌으며 어떻게 이 세 가지를 네가 보수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네가 이 세 가지를 어떻게 힘 입는 것을 다른 사람들 이 보고 너 하나가 완성됐을 때에 거게 속한 자들이 다 완성이 다 돼서 모두 다 빛 가운데 살게 된다. 그렇지 않습니까? 등불 하나 떡 켜 놓으니까 이 사람도 빛 속에 있고 저 사람도 빛 속에 있고 온 방안은 빛 속에 다 있지 않소? 빛, 환한 빛깔 속에 살지 않습니까? 산다.
그런데, 네가 목표를 어디 둘 것이냐? 사는데 '그들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네 착한 행실을 보고' 착한 행실을 보고, 착한 행실이라 하면 요 착하다 하는 것을 일반적 세상 단어 사전에서 착하다 하는 그 해석에 맞추지 말고 요 성경 해석은, 성경 단어는 성경에서 해석을 가져야 됩니다.
요 착하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인데, 네가 하나님 중심에, 진리 생활도 하나님의 중심 생활 영감 생활도 하나님 중심 생활,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중심 생활, 네가 하나님 중심 생활하는 것을 그 모든 자들이 다 보고 그들도 빛 가운데 있을 뿐 아니라 그거 다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된다. 그들이 아, 저 보고 하나님의 영광 돌리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영광 돌리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뭐 모든 존귀을 두고, 하나님께 소망 두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이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게 아닙니까? 너 하나 바로 됨으로 모든 사람이 다 바로 될 수 있다. 이러기 때문에, 나 하나로서 네게 속한 모든 자를 바로 할 수 있다는 요것을 중점으로 해서 요게 제일 그 중요한 중점이 어디 있는고 하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면 너 한 사람으로서 네게 속한 사람들이 다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사람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 된다.
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의 비밀을 네가 이제 기록하라. 그러기에, 이 비밀이라 말은 알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알기 어렵다는 말이오. 교역자 하나로 온 교인이 다 죽을 수 있고 교역자 하나로 온 교인이 다 살 수 있으니 교역자 하나로 온 교인이 다 살 수 있고 다 죽을 수 있다. 구역장 한 사람으로서 온 그 구역이 다 살 수도 있고 죽을 수 있다. 이것이 세상이 모르는 비밀이다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내가 어떻게 하면 존귀해 질까? 존귀해지는 것은 소금으로 비유했습니다. 내가 존귀해지는 길은 이 소금노릇하는 거 외에는 다른 게 없습니다. 또 내게 속한 자를 내가 어떻게 하면 이거 내게 속한 자들을 구원을 시킬까? 이제는 자기가 존귀해지는 것이니라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이것들을 바로 구원하는 그 방편을 가리켜서 빛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사람을 구원하는 방편은 빛으로 가리켰고, 자기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자기가 존귀해지는 것은 소금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니 요 뜻을 단단히 깨닫고, 자꾸 새기고 새겨서, 나무 밑에 가서 새기니까 속에 힘이 나습니다. 또 소망이 나옵니다. 하니까 또 절망 아니고, 절망이 깨져 버리고 소망이 나오고, 또 비겁이 깨어지고 담대가 나오고 안 될 거 없어. 모든 거 다 돼. 아, 저 사람 보고 탄식하고 저거 보고 탄식했는데 그거 보고 탄식할 게 아니라 나만 되면 되니까 문제가 뭐 있겠습니까? 나만 되면 되니까. 다른 사람 시키는 것보다 제가 하기는 쉽지 안해요? 이래서, 소금을 말하는 것은 네 자체가 존영해질라면 맛 잃은 소금, 변질된 소금으로 말고 네가 정상적인 소금으로 살아라. 소금으로 네 현실을 현실을 통과해라. 그러면 그거는 너는 쓸모 있는 사람되고 점점 중앙으로 모셔들이고 모든 존재가 널 이렇게 존귀케 이렇게 존영하게 만든다 존영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네 구원을 이룰려거든 세상에서 소금노릇하고, 네가 다른 사람을 구원할라거든 빛노릇 해라. 이 소금노릇하는 것도 빛노릇하는 것도 다 그거라.
이것은 다른 사람이 뭐 시대가 나쁘다, 시대가 나쁘다, 환경이 나쁘다, 위치가 나쁘다, 우리 민족이 나쁘다, 나쁜 국가에 태어났다, 환경 이 나쁘다, 이웃이 나쁘다. 친척이 나쁘다, 교인이 나쁘다 할 게, 아니라 네 주위 환경에서는 너의 옳은 것을 조금도 침해하지 못한다 옳은 것을 침해하지 못한다. 너희의 또 삐뚤어진 것을 온 세계가 덮어 가리워 줄라 해도 가리워 주지 못한다. 여게는 다 절대성 붙은 역사들이요, 다 설계들이요, 모두 다 통치들이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소금이라는 뜻, 빛이라는 뜻을 잘 새기면서 어짜든 지 잊어버리지 말고 그저 매일 매일 이런 말씀은 자꾸 새기면서 우리를 자꾸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이 말씀을 새겨서 이 말씀을 모두 새겨 가지고 이 말씀으로 말미암은 힘, 이 성구든지 저 성구든지 어느 성구든지 이 성구로 말미암아 나에게 힘이 나고 힘이 났을 때에 그 사람이 참사람이요, 이 진리와 영감과 피공로로 인해서 내게 힘 이 났을 때에 그게 참힘이요, 내게 총명과 지혜가 생길 때에 참지혜와 총 명이요, 그럴 때에 내게 희망성이 있는 것이 그게 참희망이요, 그때 그 사람으로 일할 때에는 실수가 없고, 그게 전능자라 그게 전능자라 그 힘이 뭐이냐 하면 그게 전능의 힘이라. 내 힘이 아니고 진리의 힘이 전능의 힘이요, 영감의 힘이 전능의 힘이요, 십자가의 대속의 힘이 전능의 힘이요, 그게 전능이라. 하나님의 힘이라. 그러면 내가 하나님으로 사는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거게는 실족이 없습니다.
또, 그라면 그짓 하면 만날 그라면 그것만 생각해 가지고 다른 일 못 할라고! 여러분들이 해 보십시오. 그걸 잊어버리고, 그걸 잊어버리고, 영감으로 이래 좀 있다가서 '아, 이거 세상 일 이거 좀 너무 안 해서 안 됐으니 좀 해 봐야 되겠다.' 영감 끝에 영감을 둬 두고 세상 일을 생각하면 굉장히 명철합니다. 마구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막 해야 되겠다 이랬는데, 조금 하고 나면 어두워서 그만 어떻게 할 용기도 안 나오고 희망도 안 나오고 소망도 없고 뭐 아무 판단도 없고 그만 흐리며 깨 버려. 그런데 이 일을 하면, 이 일을 하면 옆에서 '너 그 일 하다가 망한다, 망한다' 했는데 일은 몇십 배 합니다. 몇십 배 해요 그러면, 사람이 영감이 왔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참으로 영감이 충만했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는 털끝만치도 빠주는 일이 없습니다. 실수하는 일이 없습니다. 자기 할 일을, 자기 할 일을 남겨두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몇 배하게 돼요.
그런고로 우리는 진리의 힘도 전능의 힘이요, 영감의 힘도 전능의 힘이 그 예수님의 피의 능력도 전능의 힘이요, 이러니까 아, 이 세 가지 능력은 영생입니다. 죽음이 없어요.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데, 이 세 가지 능력을 하나님이 공으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살지 안하고 저주받은 거, 마귀에게 꼬여 만날 그놈 가지고 하면 나중에 하고 나면 헛일이고 헛일이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일생을 뭐 분주해서 이 분주 저 분주 열심히 살지만 마지막 딱 숨이 떨어질 때면 아이구 모두 다 헛일했다.
솔로몬은 그래도 생명이 있을 때 깨달았지만 다 모두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서 마지막 죽을 때에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내가 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노? 내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때사 뭐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어짜든지 이 세 가지 능력은 영생하는 능력이요, 전능하는 능력이요, 전지한 지혜, 이것은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하나님과 연결됐으므로서 그의 것을 가지고 내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는 것이라.
내가 내 손으로 하지만 실은 하나님 이 나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신거라. 그러기에 내가 말하지만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입을 통해서 했기 때문에 실은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 나는 당신의 뭐, 기계가 됐는가, 마이크가 됐는가, 스피커가 됐는가, 지체가 됐는가 모르지만 하나님이 하셨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여게는 사망이 없고, 하는 행동까지 전부 영생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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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도 빠지지 말고 어짜든지 나와야, 새벽 기도를 나와야 진리를 배웁니다.
이 기회 놓치면 못 배워요. 어짜든지 새벽 기도 나와서 배워서 자꾸 정신이 깨 가지고 있으면, 자지 말라 하는 거는, 자기가 깨 가지고 있는 것과 자는 것을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한 진리라도 꼭 잡아요. 자꾸 들어서 하지 말고, 설교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실상으로 실행을 해 가지고 아는 그 진리를 알아야 돼요.
그래야 자유가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