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 바디메오

 

1987. 2. 23. 새벽 <월>

 

본문:마가복음 10장 49절∼52절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이 소경의 육체의 된 이 형편을 주님께서 계시 기관으로 삼아 신령한 이스라엘 된 우리들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셨읍니다. 이러니까 육신적인 그 계시를 우리가 신령한 것으로만 바꿔서 깨달으면 맞보기로 깨달을 수가 있읍니다. 육신의 바디매오를 계시 기관으로 삼아 가지고 신령한 바디매오된 우리들인 것을 깨달으면 다 됩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 아침으로서 이 교훈이 끝나게 될 것 같은데, 육체의 바디매오의 당한 그 모든 일은 우연히 당한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영원 전 예정하시고 때가 되매 창조하시고 섭리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계시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기관으로 주님이 쓰셨읍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는 그 면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증거하겠으니까 이제 잘 깨달으면 되겠읍니다.

손가락으로 모두 다 헤아려 보십시오. 첫째, 이 바디매오는 모든 면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모든 면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이와같이 신령한 우리들은 믿음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것을 첫째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무엇을 믿음이라고 합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따라서 성경 말씀대로 하면 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게 믿음이오.

믿음으로 바디매오와 같이 우리들이 불쌍하고 가련한 자 된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믿음으로 가르친다 말은 성경 말씀대로 하면 우리들이 참 불쌍하고 가련한 자인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홍포 입은 부자가 그가 세상 지식대로 하면은, 그거는 믿음이 아닌데. 세상 지식대로 할 때에 그 사람이 불쌍하고 가련합니까 가장 행복되고 구비합니까? 어떻습니까, 홍포 입은 부자가? 어때요? 불쌍하고 가련합니까 아주 모든 것이 구비한 행복된 부자입니까? 가련하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봐요. 홍포 입은 부자가 세상 지식으로 볼 때에 불쌍하고 가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홍포 입은 부자가 세상 지식으로 볼 때에 불쌍하고 가련해요? 부족함이 없는데. 꺼꾸로 생각했구만.

자, 성경 지식대로,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비판한다면 홍포 입은 부자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까 행복된 사람입니까? 성경 지식대로 말하면 홍포 입은 부자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인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녜, 요걸 알아야 된다 말입니다.

믿음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 자기가 되어 있는 것을 아는 것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신 그 믿음의 제 일호입니다. 이해가 돼요? 성경 말씀을 따라서 비판하고 평가한다면 불쌍하고 가련한 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 계시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게서는 누구든지 자기의 신령한 눈이 열려서 참 주님을 어데든지, 겟세마네 동산이든지, 심판대든지, 골고다든지, 무궁한 하늘나라든지, 어데든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그 믿음의 일호는 믿음으로 자신이 거지되고 불쌍하고 가련한 자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알다니? 세상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신구약 성경 말씀이 가르침을 따라서 비판해 보니까 자기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인 것을 아는 그것이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것인 것을 아는 것.

요 진리가 맞습니까? 요 진리가, 믿음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 믿음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라 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이 지식인 신구약 성경 지식 가지고 자기를 비판하고 평가해 보니까 모든 게 불쌍하고 가련한 참 비참한 자라 하는 이것을 믿음으로 자기가 비참하고 가련한 자인 것을 아는 사람이라. 그게 이해가 됩니까? 일호가 이해가 되면 딴거 다 주욱 이해되기가 쉬워.

이것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는 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제 일호라 그말이오. 일호가 없으면 이호 삼호가 없어져요. 있을 수가 없어. 일호.

둘째로는 자기가 이렇게, 비참하고 가련한 자인 이걸 알아야 되지 이것 모르는 자는 소용 없어. 홍포 입은 부자가 그렇게 모든 것이 구비하지마는 가장 못났고 불쌍하고 천한 인간이라 그말이오. 왜?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세상 지식 가지고 볼 때에는 그 사람이 아주 “나는 부요하여 나는 부족함이 없다 떠들지마는 실상 네가 가련하고 눈 멀고 벌거벗고 가난한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했어.

알지 못하다니? “네가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하는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 라오디게아 교회가 무슨 지식으로 보니까 그래요?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보니까 그래.

홍포 입은 부자, 뭐뭐 잘났다 하는 이 모두 부자라 하는 것들 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면 벌거벗고 있어요, 다.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자기를 비판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으로 보면 내가 부자냐 가난한 사람이냐? 하나님의 지식으로 보면 내가 잘난 사람이냐 못난 사람이냐? 하나님의 지식으로 보면 내가 등신이가 내가 똑똑한 사람이냐?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자기를 비판해 봐야지 그까짓 놈의 인간 지식 가지고 비판해서 이렇게 올라가도 나중에 가서 하나님 지식 가지고 심판하지 인간 지식 가지고 심판하지 안하기 때문에 인간 지식으로 아무리 높아봤자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알아들려요? ○○○이 저거 엄마 알아들어? 알아들려? 아멘이 돼? 아멘이 돼야 돼. 그래.

일호가 이거요, 일호. 두번째는, 이렇게 불쌍하고 가련하게 된 이유가 어데 있느냐? 그 불쌍하고 가련하게 된 원인이 어데 있느냐? 둘째로, 그 원인이 어데 있읍니까? 보지 못하는 거, 이것도 믿음으로 보지 못한다 말이요, 믿음으로.

믿음으로 보니까 자기가 보지 못했다 그말이오. 믿음으로 보니까 자기가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 그말이오. 믿음으로 보니까 자기는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

믿음으로 보다니? 성경 말씀 가지고 따져 보니까, 하나님이 말씀하는 그 말씀을 가지고 보니까 자기는 참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이요,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이 된 이유는 자기가 보지 못해 그렇다.

성경 말씀대로 모든 전부를 다 봐서 이거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도 보고, 성경 말씀대로 자기도 보고, 성경 말씀대로 인간도 보고, 성경 말씀대로 천국도 보고, 성경 말씀대로 세상도 보고, 성경 말씀대로 현실도 보고 이래 봤으면 자기는 가난하고 불쌍한 자가 아니고 참 부자가 됐을 터인데 이 성경 지식대로 자기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 됐다 말이오. 성경 말씀대로 보지 못한 것을 가리켜서 믿음으로 보지 못했다. 고거 잘 또 기록해. 둘째, 믿음으로 보지 못했다.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다 말이오.

믿음으로 보지 못했다 그말은, 믿음으로 보지 못했다 말은 성경 말씀대로 자기를 보지 못했다 그말입니다. 그 말이 맞아요? 믿음으로 보지 못했다는 말이 성경 말씀을 따라서 자기가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 성경 지식으로 보지 못했다는 그말이 믿음으로 보지 못했다는 말과 맞습니까? 맞아야 돼요.

그라면 또 셋째로는 무슨 믿음을 가졌읍니까? 셋째로는, 그 사람이 다른 데 있지 안하고 집에 들어가서 뭣 있거나 어데 구걸하고 돌아다니거나 분주하게 다니지 안하고 길에 앉았읍니다. 예수님 기다리느라고 길에 앉았어. 믿음으로 길에 앉았어. 믿음으로 길에 앉았어.

믿음으로 길에 앉았다는 것은 믿음으로 길에 앉은 거는 뭐입니까, 믿음으로 길에 앉은 거? 저 ○○○집사님, 믿음으로 길에 앉은 거는 뭐이지?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의 지식대로 비판하니까 길에 앉은 거, 하나님의 지식대로 비판해서 길에 앉은 거, 하나님의 지식대로 비판해 가지고 길에 앉은 것은 뭐이지 한번 대답해 봐요? 그 믿음이 뭐이지? 그 믿음이 뭐이지? ○○○씨? 그 뭐인가 내가 잘 못 알아듣겠다.

길에 앉았다는 것은 우리는 행인이요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행인이요 나그네요.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이 그말이오. 우리는 지금 길 가는 사람입니다, 길 가는 사람. 찬송가에 그 찬송 있지요? ‘나는 길 가는 나그네니’ 하는, ‘나는 길 가는 나그네니' 하는 찬송이 있지 안해요? 성경으로 보니까, 성경 지식으로 보니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 본향이 아니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사갈 사람인데 지금 이사를 가고 있다 말이오. 지금 이사를 자꾸 가고 있어. 행인이라 말은 지금 걸어가고 있다 그말이오.

믿음으로 길에서 예수님 만날라고 지금 고대하고 앉았어. 요 믿음. 믿음으로 길에 앉은 사람이라야 돼, 길에 앉는. 믿음으로 길에 앉은 이 믿음을 가져야 돼요. 길에 앉아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이 믿음을 가진 것이라야 된다 말이오. 그것도 이해가 돼야 돼요.

그러면 넷째로는, 길에 앉았는데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는, 언제나 오실까 예수님을 만날라고 지금 그 길에 앉았다 말이오. 예수님 지나가면 만날라고, 예수님이 그리 잘 다니시기 때문에 예수님 만날라고 지금 기다리고 있어. 예수님 만날라고 기다리고 있는 거, 믿음으로 예수님을 고대하고 있는 거.

믿음으로 예수님을 고대하고 있는 거 이것은 성경 지식대로 예수님을 고대하고 있어야 돼. 그냥 이 길에 가 쭉 뻐드러져 앉았는 게 아니고, 성경대로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고대해고 앉았는 것인가 하는 그 고대가 있어야 된다 그말이오.

예수님은 눈에 보입니까? 보이지 안하는데 자기 양심을 통해서 주님 만날라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 길가에서, 이 천국 가는 노정에서. 천국 가는 행인으로서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는 이 길에서 예수님 만나기를 지금 고대하고 있어.

예수님 만나는 것은 형체를 가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예수님 만날라고 기다리고 있읍니까 영적으로 양심으로 예수님을, 믿음과 양심으로 예수님을 만날라고 기다리고 있읍니까? 믿음으로 예수님 만날라고 하고 있는 것은 신앙 양심으로 예수님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그거요.

또 그 다음에 뭐입니까? 다섯째로는, 이제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 하는 소리를 들었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 하는 소리를 들었어. 믿음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어. 이제 성경 말씀대로, 성경 지식을 따라서 자기가 성경대로 이렇게 하고 보니까 예수님이 지금 지나가신다.

성경대로 보니까 ‘지금 내 마음이 자꾸 조금씩 밝아지고 양심에 하나님의 도에 가까워져서 자꾸 주님과 가까워지고 요것이 주님 만나는 것이라.’ 하는 그 성경 도리가 가르치는 주님이 어떤 주님이라 하는 것을 자꾸 성경을 보니까 이제 알쏭알쏭하게 나타난다 말이오. 성경을 읽으니까 주님은 이러한 주님이라 이러한 주님이라 자꾸 성경으로 믿음으로 이제 “주님이 지나가신다” 하는 그런 소문이, 소식이 들린다 말이오.

성경을 보니까 성경으로써 ‘요것이 지금 주님이 내게 가까워진다. 요것이 주님이다.’ 주님에게 대한, 주님에게 대한 지식, 주님에게 대한 지식, 주님에게 대한 그 모든 지식이 차차 차차 자기에게 성경을 보니까 자꾸 열려지면서 주님이 차차 차차 가까워지고 보여진다 말이오. 주님이 차차 차차 알려진다 그말이오.

주님이 차차 차차 알려져. 주님을 자꾸 만나게 된다 그말이오.

이렇게 다섯째인데, 성경을 보니까 주님이 알쏭알쏭해지고, 주님이 알쏭알쏭해지고 또 성경 보니까 주님이 ‘요게 주님을, 요라는 것이 주님 만나는 것이다. 주님이 이런 분이다.’ 자꾸 주님이 자꾸 자기에게 가까워진다 그말이오.

성경을 보니까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 하는 것이 가까워지고, 성경 보니 ‘아이고, 성경 보니까 나는 주님하고 나하고 천리 만리 멀구나.’ 자꾸 성경을 봐서 자기가, 성경을 봐서 자기가 하나씩 둘씩 자꾸 고쳐서 요래 거석하니까 이제 주님과 자기와 시작할 때보다는 지금 거리가 많이 가까워졌다 그말이오.

성경을 자꾸 보니까 주님이 알랑알랑 보여. 성경을 보니까 ‘주님이 요런 주님이로구나. 또 주님은 이런 주님이로구나. 이러니까 나는 주님을 정반대해서 주님을 맞이한다 하는 내가 주님을 주먹으로 쥐박고 주님을 영, 주님을 못살게 했구나.’ 그것도 깨달아지고 ‘아이구, 내가 이 잘못했읍니다.' 이런 걸 차차 차차 고치고 이라니까 주님과 자기와 가까와지는 거, 차차 주님이 자기에게 이제 좀 아름아름하게 보여지는 거, 좀 더 성경을 자꾸 읽고 이와같이 해 가지고 회개를 하고 보니까 주님이 이제 좀 멀기는 멀지만 뚜렷이 보여지는 거 이것이 이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이 이제 너에게 가까이 온다” 주님이 가까와진다는 요 가까와진다는 이 소식을 듣는 것, ‘주님이 가까와진다’ 하는 이 소문을 듣는 이 믿음이 있어야 돼요. 알아듣겠읍니까? 그것을 깨달으면, 아까 물으니까 모르는데, ○○○선생 이거 알겠어요? 믿음으로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 하는 그걸 자기가, 소경은 육신의 귀로 들었는데 오늘 우리들은 믿음으로 들으니까 무슨 귀로 들어야 돼요? 무슨 귀로 들어야 돼요? 양심의 귀로 들어야 돼요. 양심으로 자기가, 양심으로 자기가 자꾸 성경을 읽고 보니까 양심에 ‘이제는 이렇게 하는 게 주님과 가까와지는 것이다.’ 자꾸 그렇게 성경을 읽고 자기가 회개를 하니까 양심으로 자기가 볼 때에 주님과 자기와 차차 차차 가까와진다 말이지. 양심으로 주님과 자기가 가까와지는 걸 자기가 느껴졌다 그말이오.

여섯째로는, 이제 그 뭘 했읍니까? 여섯째로는 그 바디매오가 뭐 했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르짖었다 그말이오. 그 바디매오는, 육체의 바디매오는 육안으로 보고, 육안으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거 보고 막 고함을 지르고 이렇게 했는데 신령한 이스라엘 된 우리들은 바디매오가 예수님 지나가는 것을 보고 고함을 이렇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호소를 했는데, 오늘 우리는 뭘로 호소를 해야 됩니까? 뭘로 호소를 해야 됩니까? 오늘 우리는 보기는 양심의 눈으로 봐야 되겠고, 양심의 눈으로 봐야 되겠고, 양심의 귀로 봐야 되겠고, 우리가 부르짖는 것은, 우리가 부르짖는 것은 뭘로 부르짖어야 됩니까? 우리가 부르짖는 것은 뭘로 부르짖어야 돼요? 믿음으로 부르짖어야 돼요. 믿음으로 부르짖어.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면 나는 되고 긍휼히 여기시지 안하면 안 된다. 우리가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면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주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시지 안하면 안 된다 하는 요 믿음 가지고, 믿음으로 주님에게 자꾸 긍휼히 여겨 달라고 우리가 입으로도 말하고 마음으로 말하고 진정 소원으로 하고 간절함으로 주님 앞에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구하는 우리가 돼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때에 그는 입으로만 말했지마는 우리는 영으로 말해야 되고, 마음으로 말해야 되고, 우리의 몸으로 말해야 되고, 우리 양심으로 말해야 되고, 이와같이 간절함으로 주님의 긍휼을 우리가 호소하는, 긍휼을 호소하는 그 호소가 있어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는 뭐이냐 하면은 우리는 기도로 해야 된다 말이오.

알겠읍니까? 바디매오는 막 고함을 질렀지마는 우리는 이제 영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양심으로 고함을 질러야 되는데, 우리는 고함을 질러야 되는데 그러면 고함을 어떻게, 고함을 질러야 되는데 어떻게 고함을 지릅니까? ○○○집사, 손 들어 봐요. ○○○집사 안 보이는데, ○○○집사가 안 보이요. ○○○권사님, 좀 가서 잡아줘야 돼요.

바디매오는 입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렇게 했는데, 오늘 우리는 어떻게 호소해야 돼요? 마음을 다하고영은 다하고 있으니까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고함을 지를까요 어떻게 해요? 우리는 기도해야 돼요. 알겠읍니까? 우리는 기도해야 돼.

양심으로 기도해야 되고,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고, 이 육체로 기도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예배당에 오든지 그리 안 하면 자기 침소에서든지 하나님 앞에 꿇어서, 꿇어 앉아 가지고 하든지 뭐 무릎이 아프면 나중에 그냥 앉아하든지 주님에게 간절히 호소하는 기도가 있어야 된다 그말이오. 그 바디매오는 입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기도가 있어야 돼.

기도는 물론 입으로 하는 기도도 기도지마는 입으로 하는 기도보다도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의 그 정성으로 하는 기도, 간절한 소원으로 하는 기도 이 기도가 있어야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일곱째로는 무슨 문제가 나왔읍니까? 이것도 믿음이라. 믿음으로 일곱째 뭐 나왔어? 뭐 나왔어, 일곱째는? 일곱째 뭐 나왔어? 일곱째는 방해하는 세력 나오지 안했는가, 방해하는 세력? 방해하는 세력이 나왔다 말이오. 믿음으로 방해하는 세력을 볼 줄 알아야 돼. 믿음으로 방해하는 세력이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믿음으로 방해하는 세력이라니? 믿음으로 방해하는 세력은 뭐이요? 이제 인간으로 보면은 내가 그럴 때 살살 내게 대해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나를 위하는 사람도 있고 있는데, 주님을 지금 만나 가지고 소문 듣고 지금 막 주님에게 부르짖고 있는데 부르짖고 있으니까 부르짖지 못 하도록 한다 말이지.

‘이라면 너무 안 되니까 좀 쉬어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또 ‘산에 있으면 병 나고 큰일 나니까 좀 따뜻한 온돌에 와 가지고 좀 방에 좀 쉬십시오.’ 또 이제 단식하는 사람에게는 ‘큰일 납니다. 안 먹으면 안 됩니다.’ 자꾸 와서 또 먹으라고 조아대고 또 먹으라고 해 쌓으니까 자꾸 그 먹고 싶자 먹으라 하니까 먹는다 그말이오.

먹으라고 하지, 또 방에 와서 놀라 하지, 그만 이제는 그만 하고 좀 산에 기도하지 말라고 하지. 이렇게 다 성경 말씀으로 보니까 그 사람이 내가 주님 앞에 호소하는 것을 방해하지, 육적으로 말하면 잔뜩 생각하는 사람이라 말이오.

알겠소? 믿음으로 성경대로 보니까, 성경 말씀대로 보니까 그 사람이 내가 주님 만날라고, 지금 주님 만날라고 하는 데에 방해지기는 사람이지 육적으로 보면은 아주 위하는 사람이고 많이 위하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믿음으로 이제 나의 호소를 방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방해하면서 ‘잠잠하라’ 이렇게 방해하는 사람, 이 믿음으로 방해하는 사람을 우리가 발견을 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방해하는 사람을 발견해야 돼.

믿음의 눈으로 방해하는 사람을 알아야 돼. 믿음의 귀로 방해하는 사람을 알아야 돼. 신앙 양심으로 보니까 이 사람이 내가 주님 지금 만날라고 호소하는 데에 여게 대해서 방해하고 있다. 믿음의 귀로 들으니까 방해하고 있고, 믿음의 눈으로 보니까 방해하고 있다, 믿음으로 보니까 방해하고 있다. 믿음으로 보니까 방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며칠 후면은 내가 이제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정죄받아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누가 예수님을 제일 많이 생각하고 위했읍니까? 누가 했어? 베드로가 했다 말이오.

베드로가 “아이구 선생님, 이런 일을 멀리 하십시오. 이런 일을 당하지 안하도록 선생님이 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죽을 것입니까? 십자가에 죽을 게 뭐 있읍니까? 그들이 해를 주면은 주님의 능력으로 한번 말하면 그거 다 절단나 버릴 것인데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라는 거 그거 예수님을 생각해 했읍니까, 예수님을 미워서 그랬읍니까 예수님을 사랑해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그랬읍니까 예수님을 해치기 위해서 그랬읍니까? 자, 그 베드로가 예수님을 해하기 위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어. 예수님을 위하느라고 그랬지.

예수님을 위했는데 믿음으로 보면, 믿음으로 보면 성경 지식으로 보는 건데 성경 지식으로 보면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했읍니까 해쳤읍니까? 해쳤어. 예수님이 보고 뭐라 했읍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야단쳤다 말이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이 보시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해치는 것을 봤지 믿음으로 보지 안하고 육적으로 보면은 그 모든 제자 중에 베드로가 제일 예수님을 위하는 사람 됐지, 안 그렇습니까? 위하는 사람인데 믿음으로 보니까 지금 하나님의, 성공할라 하는데 성공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탄이라 그말이오. 오늘 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 말이오. 요 믿음으로 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을 발견을 할 줄 알아야 되지 그것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맞습니까? 맞아요?

그러면 또 여덟째로 뭐라요? 더 심히 부르짖어. 심히 부르짖어. 이복순 집사님이 산에 가서 기도하고 오다가, 그때는 날아다녔어요. 얼마? 얼마에 내려왔어? 팔 분 만에, 사 분 만에 내려왔다던가 뭐 얼마, 내가? 얼마 걸렸지? 얼마 걸렸어? 사 분? 거기서 사 분 걸렸어요. 나는 거기서 올라고 하니 삼십 몇 분 걸리요. 삼십 몇 분 걸리는데 사 분에 왔어. 날아왔다 말이오.

날아왔는데, 날아왔으니까 이제 그만, 그라다가 고만 이놈 이래 냅뒀다가는 큰일 나겠다 해서 하나님이 그만 손을 떼 버리니까 뚜그르 구불러 가지고 이 척추뼈가 두 군데가 뿔라졌어, 척추뼈가 두 군데가.

바로 엉치 위에 거게 뿔라지면 그거 큰일나는 건데 요 위에 줄줄 내려오다가 요 마지막에 대롱뼈 요 있는 데 그게 뿔라져 툭 튀어 버렸지, 중간에 또 두 개 또 이리 하나는 이리 튀어 버렸지 하나는 이리 튀어 버렸지 세 군데가 뿔라졌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내가 있다가 만나 가지고, 인제 좀 집에서 조리를 하고 그래 좀 병원에도 가도 그래 좀 치료하라고 이래 내가 그래 말했다 말이오. 병원에 가 안 낫아요. 내가 한번 물어 봤어요, 그래. 병원에도 가고 그라라니까 ‘기도하러 갈랍니다.’ `그래 가지고 기도하러 가?’ 인제, 이라니까 간대요.

간다 해서 ‘그거, 병원에 가 가지고 좀 가서 물어 보기도 하고,’ ‘물어 보나 안 보나 뭐 이리 툭 튀어 나왔는데, 뭐 보나 안 보나 툭 튀어 나왔는데 이거 뭐 보나 안 보나 그거 병원에 가 보나 뭐 뿔라지고 튀어나온 거는 다 환하게 보입니다, 이래. 만져보이소.’ 이래, 내가 만져보지는 안했어. ‘여기 만져보이소’ 지금 이렇다 해서 만져보지는 안하고 `그렇츰 많이 다쳤어요?’ 뭐 되게 아파 못 견딘대요.

그래서, ‘그러면 병원에 가 좀 치료 좀 하지.’ 이라니까 ‘저는 그만 인제 또 내 병은 내가 처음에 병 들었을 때에 거기서 낫아 주셨으니까 먼저 치료해 준 병원 양산동 산으로 가겠읍니다.’ 양산동이라고 내가 지었는데 지금 양산동 산인데 그 양산동이라 하는 이름은 무슨 뜻인고 하니 양이란 양자 뫼 산자 양산이라, 양무리의 산이라. 양산. 양이란 양자 뫼 산자, 그 양산이라 했는데 내가 양산동이라고 말했는데, 그거 내가 양산동이라고 했는데 무슨 이름인가? 내가 요새 생각하니까 양떼들이 모이는 양이란 양자, 염소 양자 말이오. 양 양자, 양이란 양자 뫼 산자 양산이로구나 그래.

양산동으로 간다 해. 그래 내가 ‘그래 병원은 바로 찾았어. 병원은 바로 찾았어.

거기 가서 낫아야 옳지, 거게서 병 났으니까 거게서 나아. 그 때린 것도 주님이 때렸어. 만일 그대로 냅비두면은, 사 분에 내려왔으니까 마구 그 까풀막을 새벽에 내려오면서 막 뛰어 뭐 날아왔다 말이오.

이래 놔서 그 사 분에 내려와도 무사히 내려왔으니까, 목표가 어데 있느냐? 그럴 거야, 목표가. ‘이제 내가 삼 분 만에 내려오면은 삼 분 만에 내려오게 해 주실 것이다.’ 나중에는 ‘일 분 만에 내려오게 해 줄 것이다.’ 이라면 일 분 만에 내려올라 하면 그거 그 발자국 떼 가지고는 못 올 것이고 저 어데 까풀막에 바위든지 위에 올라가 가지고 훅 뛰어서 이 밑에 훅 날아와야 될 터이니까 훅 뛰어오면 박살나 뒈질 거라 그말이오. 이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거라. 알겠어요? 이게 하나님 시험하는 거라.

이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자기 옳은 방편을 써야 되지 하나님을, ‘이러면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다, 이러면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다.’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너를 붙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하지 않게 해 주시리라” 하는, 그래 하라 하니까 주님은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그거 시험하는 것인 걸 예수님이 알고 시험하지 안했거든.

그랬는데 그때에 그렇게 갈라 할 때에 나는 처음에 ‘가지 말고 병원으로 가지’ 하는 거, 나는 알기는 알아요. 알기는 알면서 뭐라 하는고 보자 하고 이라니까 그리 간다 해. ‘병원은 잘 찾아갔어. 거기 가야 해결이 될 거야.’ 그런데 그때 ‘그라면 안 되니까 올라가지 마십시오.’ 거기 사람 모두 그랬을 거라. ‘올라가지 마십시오. 지금 여기 좀 누웠어야 되지 그거 됩니까? 저 좀 누웠다가 가십시오.’ 자꾸 이라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모든 사람들이 꾸짖으면서 ‘잠잠하라’ 하는 그것이라 말이오. 알겠읍니까? 영적으로 그거라.

맞습니까? 저 ○○일보 기자, 맞아요? 맞아요? 이 해석하는 게 맞아? 맞아 맞아.

고거 깨달아야 돼. 맞아. 그 방해하는 자를 알아야지. 방해하는 자. 요 믿음의 눈으로 보면은 그게 방해하는 자라 말이오.

그때 내가 붙들면 붙들어요. ‘아, 그리 말고 병원에 치료하십시오. 좀 누우십시오.’ 자꾸 이렇게 하면은 그게 뭐이냐 하면은 떠들지 말고 잠잠하라, 이제 주님을 막 부르고 지금 호소하는데, 호소하는데 호소하지 말라고 하는 그 방해물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알겠소? 요걸 알아야, 믿음으로, 믿음으로 나를 방해하는 자 믿음으로 나를 돕는 자, 어떤 사람이 나를 책망을 합니다. 아주 야나진 책망을 하요. 책망을 하면서 잘못했다고 아주 보츨바릅게 말합니다. 아, 잊어버렸다. ○○○씨? 손 들어 봐. 왜 거기 앉았어, 이 앞에 오지 왜? 성경 공부 요번에 하더니마는 시험에 들었어. 성경 공부하니까 그 교만해지면 마귀돼요. 성경 공부할수록이 자꾸 오그라져야 됩니까 성경 공부 할수록이 쭉 뻐드러져야 됩니까? 자, 성경 공부를 바로 하면 오그라집니까 뻐드러집니까? 성경 말씀을 공부해서 뭐 초등강 고등강 다 하고 나니까 이제는 허리가 쭉 펴이는 게 쭉 뻐드러집니까, 마치 뭘 비유할꼬? 딱 오그라지는 거, 딱 오그라지는 거, 그만 벌거지 뜨거운 데 갖다 넣어 놓으면 죽자면 어째요? 쭉 뻐드려져 죽어요 오그라져 죽어요? 예? 딱 요래 오그라져 죽어 버려. 성경 말씀을 자꾸 공부하면은 사람이 오그라지는 게 정상이요 뻐드러지는 게 정상이요? 뻐드러지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쭉 뻐드러졌다 말이오. 내가 성경 공부를 초등강 고등강 하고 나니까 쭉 뻐드러진다 말이오. 그게 정상인가 딱 오그라져 버리는 게 정상인가? 오그라지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오그라지는 게 정상이야, 오그라지는 게 정상. 알겠어? 잘못하면 초등강 고등강 하고 난 다음에 그만 잘못하면 성경 공부하고 난 다음에 쭉 뻐드러지기 쉽다 말이오. 뻐드러지면 그 성경 공부 잘못했어. 성경 공부할수록이 하나님을 점점 보고 자기를 보니까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요 딱 오그라지는 그것이 성경을 바로 공부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지식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그렇지 안해요. 바로 성경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딱 오그라져 버려.

여덟째는 뭐라 했지? 더욱이 부르짖어. 부르짖어. 더욱이 부르짖는데 이복순 집사는 말이지요 그래 놓으니까, 가만히 얘기를 해. 나한테 와서 얘기를 하는데 거게 올라가기를 뭐 암만 막 어떻게 아프고 거석한지 못 올라가서 가다가 눕고, 가다가 눕고 누워 가지고 그래 사 분 만에 오던 사람이 가 가지고 가다가 눕고 가다가 눕고 그래 가지고 만당에 올라가요. 올라가요.

‘그럴 때는 좀 쉬어 가지고 올라가지. 그라면 며칠 좀 조리 좀 해 가지고 올라가지.’ 하면 그거 호소하지 말라고 잠잠하라 하는 것이요 도와주는 것이요? 잠잠하라 하는 것이요 도와주는 것이요? 잠잠하라 하는 것이라.

내가 슬그머니 그래 봤어요. 그라니까 그래도 간다고.

갔다와서 인제 얘기를 해요. 몇 분 누웠다가 올라가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자기가 거기서 오는 차에 타고 올라 하면은 기다려야 되는데 ‘내가 지금 이래도 내가 꼭 과거에 주님이 낫아 주셔서 내가 걸어다녔는데 내가 지금 이거 내가 잘못해 가지고 이러니까 내가 기어코라도 요거 굴복을 시켜야 되니까 걸어가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그 양산동 기도실에서 이 팔송까지 걸어오는데 뭐 아파 죽을 지경이더래요. 걸어오는데 아파 죽을 지경인데 그러나 막 속에다 막 힘을 써 가지고 막 결심을 써 가지고 그래 가지고 공동묘지 지내서 왔더래요. 오고 나서 보니까 훨씬 나아졌어. 이제는 보니까 어북 쩌벅쩌벅 걸어진다 말이오. 제법 걸어져.

그래 자꾸 주님에게 호소하면서, 그라니까 뭐 기도를 많이 했을 거라. 나을 때 많이 했을 거라. ‘주여 주여’ 아프면 `주여 주여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자꾸 이래 쌓는데, 나도 요새 건강이 좀 돼지니까 그전만 좀 복이, 건강된 것이 복이 좀 적은 거 같애. 왜? 그전에는 여기 내려올 때에 여기 내려오면 구불러질까 싶어서 그냥 안 내려와. ‘주여, 붙들어 주옵소서. 낙상되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붙들어 주옵소서.’ 요 낙상되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하는 그 계속이 끊어지는, 그 말하자면 찰나도 순간도 끊어지는 새가 없었는데, 지금은 그 말하고 오지마는 오다 보면 몇 자국씩 그만 그냥 와 버렸어. 이러니까 겉은 좋은데 속으로는 안 됐다 그말이오. 주님을 두고 평가해 보면은 주님께 대해서는 손해라, 내가.

그랬는데 그래 가지고 나았어요. 지금은 인제 어제도 와 가지고, 보니까 자주 오르내려요. 뭐 보이기를 퍼뜩 왔다가 퍼뜩 왔다가. 그라면서 이제는 그 만당까지 올라가고 내려가는 데 대해서는 하나도 그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무엇이 힘 쥐인다는 그런 것이 없다고. 인제 심지어 그뭐 작지도 다 치워 버리고, 그때는 작지 짚고 뭐 가다가 누웠는데 다 치워 버리고 인제 훌훌 날아다녀.

지금은 몇 분에 내려와요? 지금 사 분에 내려와요? 사 분에 내려오다가 더 빨리 내려올라 하다가 절단났으니까 그 한번,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한 번 징계 받았으면 뒤에는 두 번 징계 안 받아야 돼요.

그러면 지금 어찌 내려올 건가? 힘은 있지마는 조심해서 ‘이거 구불러져 가지고 욕 돌릴라?’ 조심을 해야 돼요.

그거 구역장이 그래 가지고 뭐, 믿음으로 가지고 주의 은혜라 이래 자랑하다가 턱 그만 척추뼈가 세 군데나 뿔라져 버렸어. 밑에도 뿔라졌지 위에 툭 이렇지 나와 버렸지 이쪽으로 나와 버렸지 이래 돼 버렸는데 그라니까, 그거 내가 말했어. ‘인제 이 집사님이 그 식구들 이 집사님이 열심히 하니까 믿으면 된다 해 가지고 이래 하다가 그것들 다 무너졌다. 인제는 아마 그 구역 식구들이 실쭉하이 다 죽어갈 걸.’ 알아요. 그만 믿음이 그만 다 푹 다 죽어 버렸어.

다 죽고 ‘아이쿠, 권찰님 봐라. 그렇츰 그래도 금방 절단나는 거.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면 그랬겠느냐?’ 이거 미련하게 이것들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면 그랬겠느냐?’ 하나님이 그란 줄을 몰라요. 하나님이 그란 줄을 알아야 해석이 되는데 하나님이 그란 줄을 모르니까 ‘믿어서 하나님이 붙들어 줬으면 안 그럴 건데 그렇지 않지 않느냐? 그 공연히 하나님 하나님 핑계댄 것이지 가짜다.’ 이거 그만 그 말은 안 해도 그런 지금 속에 시험에 들어 가지고 모두 믿음이 실쭉해요.

그래 내가 그걸 말했어. ‘인제 요번에 그래 구불러진 통에 식구들 믿음이 다 절단났을 건데’ 내가 이렇게 말했어. ‘절단났을 건데.’ 이라니까 자기도 깨달아지거든.

어짜든지 이래 가지고 이래, 완전히, 치료도 안 했는데 척추뼈도 다 들어갔지, 이리 튀어나온 것도 들어갔지 여게도 들어갔지 여게도 다 꼿꼿해졌지 인제 그만 다 생생하게 깨끗해졌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이제 식구들이 다시 힘을 얻었다 말이오. 힘을 얻어 가지고 ‘이래 믿으면 된다.’ 이래 가지고 그 힘을 회복을 했어요. 이러니까, 그것은 잘못해 가지고 교인들을 시험에 들게 됐다 말이오.

이다음에는 ‘하나님이 뭐 이라면 도와 주시겠지’ 그거 그런 게 아니라. 그거 믿음이 아니오. 믿음은 ‘이라면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다’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하나님에게 순종이 믿음입니까? 순종이 믿음이라. 요거 잘 구별해야 돼요. 순종이 믿음.

예수님께서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리면 뭐 신성이 하나님이시니까 물론 뛰어내릴 수 있지마는 그 뛰어내려오면 하나님이 도아 주실 거다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피동이 아니고 뭐입니까? 하나님에 피동이 아니고 뭣 돼지요? 저 안경쟁이? 피동이 아니고 뭐이요? 뭐라 하노? ‘하나님이 도와 주실 거다’ 하고 예수님이 뛰어내렸으면 고거는 피동입니까 뭐입니까? 능동이야. 피동이 아니고 능동이야.

예수님 당신이, 당신 주장으로 당신이 능동이 돼 가지고 당신이 원인이 돼 가지고 움직였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시험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도와 주시리라 그런 생각하고 하는 거 다, 하나님께 피동으로만 살 일이지. 예수님이 피동할라 하는 데에 피동 안 하고 능동으로 하도록 하는 그런 시험이 많이 있었지마는 능동으로 하지 안했기 때문에 이겼다 그거요. 알겠소?

우리는 믿음으로 내가 주님에게 호소할 때에 방해물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믿음으로 내가 호소할, 내가 호소할 때, 주님에게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호소를 할 때에 영적으로 나에게 방해하는 자가 누구냐 하는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 하도 내가 말해 쌓아니까 인제 알아요. ‘그만 오늘은 좀 쉬십시오’ 이래 쌓다가 또 이라면 `이거 주님 앞에 벌받을지 모르지마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되는지 모르지마는.’ 인제 그래요. 그거 아예 하나님 거역하는 건 줄 알고 자꾸 방해해요. 그런 사람, 내게 가까이 있는 사람이 많이 그래 말해요, 많이.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족들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자꾸 그래 말해.

그라는데 그게 내 하는 일에 돕는 일이라요 방해하는 일이라요? 저 ○○○집사님? 모두 가족들이 ‘몸은 약한데 자꾸 새벽기도 나오고, 뭐 산에 기도하러 가고 자꾸 그래 쌓네. 몸 좀 주의를 하고 좀 그라십시오.’ 자꾸 새벽기도 나가는 것도 ‘그거 너무 자꾸 몸이 피곤한 것 같은데 그라다가 고장 날라고, 오늘 새벽에는 좀 몸이 되게 피곤하니까 좀 쉬어 가지고 나가십시오.’ 그렇게 말하면 그거 돕는 것이요 방해하는 것이요? 방해하는 것? 방해하는 것이야. 거게 붙들리면 안 돼.

마구 ‘잠잠하라!’ 잠잠하라 이랄 때에 잠잠하라 이라니까 이 소경은 거게서 막 더 마구 부르짖었어. 그게 몇째지? 여덟째가, 부르짖은 것이? 여덟째 부르짖은 거.

더 부르짖어. 그럴 때에 ‘오, 예,’ 그냥 말하면 또 그 사람 그 삐꿀 터이니까 `예, 고맙습니다.’ 해도 속으로는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왜 나 지금 주님 만날라 하는데 만나지 못하구로 방해하느냐?’ 요걸 믿음으로 요걸 알아야 된다 말이오. 알겠읍니까? 믿음으로 방해하는 자를 알아야 돼.

믿음으로 방해하는 자를 알다니? 성경대로 해석을 하면은 방해하는 자라 그말이오. 알겠어? ○○○씨 알겠어? 믿음으로 방해하는 자를 알아야 돼.

믿음으로 방해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래 호소했어.

시간 너무 많이 갔어. 그라면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인제 그라면 요거대로 찾으면 돼요. 여덟째도 믿음으로, 아홉째도 믿음으로, 열째도, 열한째도 믿음으로, 열둘째도 믿음으로 이래 가지고 나가 봐요. 그 열둘째까지인가 열세째까지인가 나가요. 그래 가지고 이제 고거는 여러분들이 찾아 나가면 될 거라 말이오.

그래, 그러기 때문에 육신의 지식 가지고 보는 것과 성경 지식 가지고 보는 것과 견해가 그 해석이 일치됩니까 정반대됩니까? 정반대되는 걸 알아야 돼, 정반대되는 거.

성경 지식 가지고 언제든지 비판해야 되지 마귀란 놈은 육신의 지식으로 해석해라. 육신의 지식으로 해라. 육신의 지식으로 해석해서 위하는 것은 성경 지식으로 말하면은 절단내는 것이라. 요걸 알아야 돼요. 그라면 누가 나를 위하는지 나를 해하는지 그걸 알 수가 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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