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8 20:00
소금
본문 : 막 9 :48∼50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어제 아침에 소금에 대한 세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여기 세 가지로 소금을 말씀했습니다. 사람마다 불로 소금치듯 한다. 또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소금이 좋은 것이나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그렇게 소금에 대해서 소금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뭐인고 하니 너희 속에 소금을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이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화목은 두 가지 화목은 화목이 있는데 하나의 화목은 그것은 서로 죽이고 죽는 화목입니다. 죽이고 죽는 화목, 그거는 무슨 화목인고 하니 사람끼리만 화목하는 화목입니다.
또 하나는 사는 화목이요 살리는 화목이니 이 화목은 하나님을 중심해서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목이 되었기 때문에 인간과 화목되는, 화목하는, 화목된 이 화목이 산 화목이요. 또 살리는 화목입니다. 이 화목을 하려고 하면 녹아지는 소금이 되어야 이 화목이 되어지지 녹아지는 소금이 안 되고는 이 화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금이, 소금이 되어가지고 소금이 되어가지고 이 화목을 하도록 해라. 네가 소금되기 전에는 이 화목을 가질 수가 없다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많은 부요와 영광과 존귀를 다 소금으로 사용했고 소금으로 사용했고 나는 자꾸 소곰 그전에 우리 시골에서는 소금이라하면 소곰 그런데 여 소금이니까 자꾸 말이 안 맞아서 자꾸 이랬다 저랬다 이래 합니다.
그런걸 그만 나는 그래 이거 이제까지 사투리를 써 놓으니까 각 뭐 인자 내가 가리 늦게사 표준말을 배울라하니까 힘들고 또 표준말도 그게 안 변하면 하지마는 배우면 또 헛일로 또 변하고 변하고 이 싸니까 뭐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이 단어 이거 표준말로 쓸라고 거다 신경을 쓰다 보면은 그만 증거하는 진리가 또 잊어버리고 혼돈이 된다 말이오. 그 신경이 그리 가니까 딴데 안가서 그런데 여러분들이 알기만 하면 그만 사투리든지 뭐이든 진리에만 정신을 두고서 그래 증거하면 좋겠는데 어떤 사람은 요새 유행어 표준어 그거 안됐다고 그만 아이구 그 사람 영 무식한 사람이 뭐 알겠노? 그거 모르니까 예수 믿는 도리야 어찌 알겠노? 이래 가지고 고만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 말이오. 그 ○○○목사님이라고 지금 아미동에 가서 목사 노릇하고 있는데 그분은 그거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가 가지고 다시 돌아올라고 암만 하지마는 지금 우리 진영에 와야 교회를 맡을 수가 없어. 교회 맡으면 배척을 당할터이니까 벌써 그 만침 신령한 차이가 있었다 이거요. 그래서 못 오고 맙니다. 그때 올라고 한 두 달 동안 사면을 하고 여 와 가지고 있었지마는 안됐소.
여러분들이 표준어를 쓰는가? 요새 인자 자꾸 발전돼 나가는 한글 박사들이 연구하는 자꾸 그 새로 변경해서 내놓는 그런 말에 안 맞다고 여러분들이 생각지 말아요. 다 영어로 또 다 말하고, 또 인자 독일어도 말하고 일본어도 말하는데 뭐 한국말로 알아들을 만침 사투리 말이나 무슨 말이나 그래 알아들으면 되는 것이지 그 한 마디 가지고서 진리를 내 들이는 그런 외식자가 어디 있소? 있기를 그 내가 지금 오늘 아침에도 자꾸 소금 나 소곰인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소금이니까 소금하다 보니 소금이라해야 되겠다. 거다 신경을 쓰니까 진리를 증거하는데 많이 손해가고 복잡하다 이거요.
그런 것은 여러분들 손해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내가 그 말하는긴데 여러분들이 그만 뭐 표준어든지 사투리든지 뭐이든지 그 진리만 가득 찼으면 그 진리만 알아 들으면 되는 것이지 우리가 뭐 표준어 배우러 왔나? 어데 어학을 배우러 왔나? 뭐 그런 생각을 가지면 되나 그렇게 못났다 그 말이오. 고렇츰 폭이 좁아서 똑 빈대 속 한 가지라 실나끈 한 가지라. 어떻게 좁은지 선이 굵어야 됩니다. 선이 굵어야 돼.
이러니까 미치광이 말이라도 빛의 성인들은 가려 쓸 말이 있다 그 말은 어찌하든지 쓸 말 있는 거기나 들으려고 생각하지 그뭐 잘못된 말 그런거든 필요없다고 해야 될 터인데 꼭 표준어라야 되지고 그러니까 그 탈이다. 그걸 여러분들이 고치지 내가 고치야 된다. 내가 고칠라하니까 고칠 수는 있지마는 거다 신경 두다보니 그만 딴 게 그 좀 모지래지지 여러분들 그 고치도 뭐 듣는 것이니가 한번만 똑 마음만 고쳐서 그렇다 해 버리면 다 될 거라 이거요.
여게 소금을 세 가지로 말씀했는데 하나는 이 비유입니다. 하나는 소금이 녹아지는 것처럼 소금 생활 소금 생활해야 된다. 그 말씀입니다. 소금은 그게 녹아지는 것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간을 가지고 녹아져야 되지 간 없이 녹아지면 아무 소용이 없어. 짜운 간을 가지고 녹아져야지 또 소금에는 다른 맛이 하나도 없고 짠맛 하나뿐입니다. 짠맛 하나뿐인 그것이 소금이요.
또 녹아져야 소금 맛이 다른데 간하는 것이 그게 소금 아닙니까? 이 비유인데 우리는 영감과 진리 영감이라면 하나님의 감화니까 하나님과 진리 하나님과 진리로만 우리가 되어 있어야 되고, 하나님과 진리화 된 이것으로만 되어 있어야 되고, 또 이것으로만 되어 있는 이것이 그 이것으로 희생을 해야 되지 녹아져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백분지 일이 하나님화 됐고 진리화 됐으면 그것이 녹아지면 효력을 백분지 일 밖에는 효력이 없습니다. 되어 있기를 백분지 일밖에는 안되어 있기 때문에 되어 있기를 백분지 일밖에 안되어 있기 때문에 짜기를 이 소금은 다른 소금에 비해서 짜기는 짠데 백분지 일 밖에는 안짜다.
그러나 백분지 일 밖에는 안짜면 그 소금이 백말이 녹았으면 일반적으로 짠 그 소금이 몇 말 녹아야 될 것입니까? 예. 몇 말 녹아 될거요. 여 대답해봐. 저 예.
얼마 예. 열 배. 예. 허 한말 아니야. 한말 그말을 참 못알아 듣는 것 같애.
그래 놓으니까 그래 놓으니 수월하기는 수월해.
(오종덕) 목사 와 같이 한 번 그 하나 가르친걸 어제 가르치고 오늘 가르쳐도 또 잊어버렸으니까 또 모르니까 또 새로 가르치는 것이니또 내일 가르쳐도 그래 모르니까 또 새로 가르치는 것이지 뭐 그 몇 가지만 평생 가르쳐도 항상 새로 가르치고 남으니까 가르치는 것을 배우면 또 새거 가르쳐야 되고 새로 가르쳐야 되고 더 힘이 들터인데 (오종덕) 목사님이 한번 가르친 것 가르치고 나면 또 잊어버리니 또 가르쳐야 되고 되고 항상 교안 준비 하기야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거 한 가지입니다. 이 소금은 일반 소금보다 짜기를 백분지 일밖에는 안짜.
그러면 일반 소금 한말을 넣으면 될 그 김치에다가 이 소금을 몇 말 넣어야 됩니까? 몇 말 백 말 넣어야 돼지. 백 말 넣어야 된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얼마나 변화가 됐으며 또 진리대로 얼마나 그 사람이 회개를 했든지 하나님과 진리로 성화된 것만치 그 사람이 희생을 하면은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된 것이 하나도 없으면 그 사람은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희생한다 할지라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을 하나님화 시키고 진리화 시키는 그게 인제 구원되는 것인데 하나님과 진리와 한덩어리 되어서 하나가 되어가지고 고만 그 사람이 진리로 변화 돼 버렸고 하나님으로 변화가 되어서 또 하나님 닮았고 진리같은 요런 사람이 되어지는게 구원인데 이 구원은 안된다 이거요.
그 본인이 하나님화 진리화 되지 아니한 사람이 자기가 암만 희생을 해봐도 희생을 함으로서의 그 희생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화 진리화는 하나도 안 됩니다. 구원은 하나도 안 됩니다. 그럴 것 아니겠소. 아 소금 간이 하나도 없는게 암만 녹아 봤자 그 녹는다고 짜질 턱이 있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라 그말이오. 비유라 이거요.
이러니까 자기가 하나님화 진리화가 되어갈 수록 그가 희생할 때에 효력은 더 나타납니다. 아무리 진리화 하나님화 됐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희생 하나도 안하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짠 소금이라 할지라도 그 소금 한 근이 한 근 그대로 있고 조금도 근수가 줄어지지 안했으면 그 짜운 것이 다른데 번져 나갔습니까? 안 나갔습니까? 하나도 안 나갔지요.
그거 모양으로 우리가 희생하지 안하면 이것이 녹아지지 안하면 내가 희생한다 말은 내가 손해 본다 말입니다. 있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이오. 줄어진다는 것이오. 쓰여진다는 것이오. 그것을 가리켜서 녹아지는 것이라.
녹아진다는 것은 자기 가지고 있는 것이 쓰이지는 것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 지는 것 자기 가지고 있는 것이 줄어지는 것. 다만 얼마라도 줄어졌으면 쓰여졌으면 감해졌으면 이런 것을 가리켜서 녹아졌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진리화된 것이 없이 녹아져 봐도 아무 소용없고 구원 역사가 아무 소용이 없고 또 그 사람이 하나님화 진리화가 진리화가 아무리 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녹아지지 안하면 소용 없다. 그 사람이 희생을 해서 주지 안하면은 소용이 없다. 그것을 그 성화가 번져 나가지는 않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구원 운동 복음 운동은 어떤 운동인가? 화목 운동입니다.
화목 운동 화목이라는 것은 이것과 저것이 둘이 벌어져가지고 있다가 원수된 것은 이것과 저것이 둘이 서로 배치되 사는 이게 원수 아닙니까? 또 화목은 이 서로 원수돼 있던 것이 차차 가까워져 가지고 서로 하나가 되어서 이것은 오른쪽 것이 왼쪽 것하고 합하고 왼쪽 것은 오른쪽과 합해서 그러면 오른쪽과 왼쪽것이 하나가 돼 가지고 마치 여게 있는 이 어떤 붉은 물이라 할까. 붉은물하고 여게 있는 물은 색깔 없는 흰물하고 둘한테 이래 타니까 그만 빨간, 다 붉은 물이 돼 버렸습니다.
그 모양으로 하나님은 완전이 있고 인간에게는 그런게 하나도 없는데 없는 인간과 하나님과 이렇게 화합되지니까 하나님의 완전이 인간에게 물이 들어서 인간이 완전화 되어졌다 그말이오.
이렇게 해서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화합되는 것이라 화합 또 진리와 인간이 화합되는 것. 그 사람의 지식과 모든 행동이 진리와 화합되는 그것이 구원이요. 또 그 사람의 인격이 하나님의 신격과 서로 이렇게 교제가 되어가지고 결합이 되어서 하나님의 신격과 그 사람 인격이 결합이 되어서 그 사람 인격이 하나님의 신격과 같은 그런 신격화 된 그것이 구원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둘을 한테 합하되 강제로 끌어다 합하는게 아니고 둘이 함께 합하되 서로 좋아서 이렇게 화목적으로 화평적으로 그 원하는 자원적으로 이렇게 합해지는 이것이 뭐이냐? 화목이라 그말이오. 여게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이라." 이 화목은 우리가 이 구원 운동하는 그것이 화목인데 이 구원역사를 위해서 "네가 녹아져라." "네가 녹아져라." 네가 아무리 녹아지지 안하면 그 구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돼 가지를 않는다. 또 네가 아무리 녹아진다 할지라도 네가 구원을 이루지 못했으면 암만 녹아져 봤자 그것도 소용없다.
그러므로 네가 자체가 구원을 이루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네가 녹아져야 된다. 그러면 내가 먼저 구원을 이루어야 되겠으니까 내 구원을 이루는데는 어찌해야 되느냐? 내 구원 이루는데도 녹아지는 거다. 네 구원이루는데도 녹아지는 것이요. 구원이룬 네가 다른 사람에게 그 구원을 전달해 주는 것도 녹아지는 것이다.
녹아짐으로 네 구원 다른 사람 구원이 되지 녹아지지 안하면 네 구원도 다른 사람 구원도 되지를 않는 것이다. 이 화목 역사는 화목 역사는 네가 소금을 네 속에 두고서 화목 역사를 해야 되지 소금 없이는 화목이 안 된다. 소금 없이는 화목이 안 된다. 희생이 있어야 되지 희생 없으면 안 된다. 녹아지는 것이 있어야 되지 녹아지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 요것을 말합니다. 이 소금을 여 하나 말했소. 내가 한 가지 말 한 소금이 이 소금입니다. 우리가 이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의 원수가 어떤 것이 기독교의 원수냐 하면 안녹아질라하는 것이 기독교의 원수입니다. 희생 안 당할라 하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의 원수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손해 안 볼라 안 볼라 하는 것이 기독교의 원수입니다.
자기 가지고 있는 것을 안 쓸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원수입니다. 자기의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지지 아니하려면 고것이 기독교의 원수입니다. 자기 가지고 있는 목숨도 없어지지 안한 사람 고게 원수요.
네, 십자가의 원수가 어떤 것이 십자가의 원수냐? 소금 안 되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녹지 않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라 그말이오. 녹지 않는 것이 쓰여지지 안 하려고 하는 것. 없어지지 아니 하려고 하는 것. 희생하지 안 하려고 아니 하려고 하는 것. 녹아지지 안 하려고 하는 것 그거 다 한말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십자가는 어떤게 십자가이냐?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녹아지는 것 쓰여지는 것 없어지는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어떻게 하라고 하나님과 진리를 저와 하나되게 하려고 하나님과 진리를 원수하고 하나되게 하려고 하나님과 진리를 옆에 다른 사람하고 한되게 하려고 그러니 뒤에서 쓰여지는 것 녹아지는 것 희생되어 지는 것 없어지는 것 그것이 전부 녹아지는 소금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자타의 구원을 소금처럼 녹아지는 희생하는 이거 없이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것은 그 십자가가 없이 구원 이룰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마귀가 미혹을 주는 안일주의요 세상 주의입니다.
그런데 이 소금으로 살아라. 이 소금으로 살지 안하면 어떤 소금되어 지느냐? 어떤 희생되어지느냐? 그는 지옥불에 가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불로 녹아지는 소금된다. 형벌로 녹아지는 소금된다. 고통으로 녹아지는 소금된다.
그러면 고통으로 녹아지는 소금이 되면 차차 차차 고통으로 당하면 이제 나중에 가서는 그만 고통 당할대로 당하고 나면 난중에 고통당할 것도 없어지로구먼 또 고통도 자꾸 심하게 당하면 나중에 고통이 연단이 되어가지고 그 면역성이 생겨져서 고통이 면역성이 생겨져서 고통도 처음에 당할 때는 고통이 되지마는 두 번, 세 번, 백 번, 천 번 당하면 면역성이 생겨져서 고통이 없어지지 않겠나, 적어지지 않겠나, 줄어지지 않겠나. 이것을 밝히기 위해서 거기는 불이 꺼지지 않는다.
꺼지지 않는 것은 태울 것이 있어야 꺼지지 않지 않습니까? 꺼지지 않는다 그말은 태울것이 계속 있다 그말이오. 거기는 고통을 줄 것이 천 년 만 년 억만 년 지나가도 고통 줄 것이 계속 있다 그말입니다. 또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그말은 그것이 고통을 당해서 없어지지도 않는다. 거기는 고통을 당하되 그 고통이 면역성이 면역성이 생겨지는 면역성 그 사람이 아픈 것도 만일 나환자가 아픈 그 뼈골 쑤시는 아프면 그것을 이 성한 사람이 갑자기 당하면 그 사람 아프기 전에 죽어 버립니다. 너무 아파서 죽어버리요.
그렇츰 아픈 도수가 높지마는 자꾸 조금씩 더 아프고 계속해 아프니까 그 사람이 견뎌나는 그것이 그런 것을 가리켜서 면역성이 생겼다 그렇게 말합니다. 또 술을 먹으니까 한 잔 먹으니까 그만 취해서 정신 없었는데 자꾸 먹는 버릇하니 난중에 가서 열잔을 먹어도 한 잔 먹은 것 만침밖에는 안취해진다 말이오. 면역성이 생겨서 그렇다 말이오.
그런 말이니까 지옥을 받는 형벌의 그 형벌의 면역성이 생겨지느냐? 그것을 가리켜서 꺼지지 아니한 불로 그렇게 팔팔하는 것입니다. 꺼지지 않는다는 그 불이 안꺼지는 것은 와 안 꺼집니까? 탈기 있기 때문에 꺼지지 않지요. 탈기 있기 때문에 꺼지지 않지요. 만일 탈기 없는 그 사람 고통 줄 것이 없으면 그 고통의 불이니까 고통 줄 것 없으면 탈 석유가 없는거와 마찬가지 입니까? 불이 꺼질 것 아니겠소. "꺼지지 않는다" 하는 그말은 면역성은 없다. 영원무궁토록 고통을 당해도 첫 시간 당한거와 꼭같다. 또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그러면 고통을 당하면 마지막에는 없어질 것 아닌가? 또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런 고통으로 영원히 희생합니다. 영원히 녹아진다 말입니다. 영원히 녹아지는데 녹아져도 없어지질 안 해. 녹아져도 그게 딴데로 가는게 아니고 녹아져도 제게 있기 때문에 없어지지 안 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녹아지면은 없어질 요게 그것이 딴데로 번져나가. 그 진리가 딴데로 하나님이 와가 자꾸 번저 나간다 말이오.
이렇게 지금 화목의 소금이 안되면 지옥불에 소금이 된다. 요것을 기억하십시오.
화목의 소금이 안되면 지옥불의 소금이 된다. 화목의 소금이 되면은 녹아지니까 손해가니까 화목의 소금이 되면 소금이 되면 자꾸 소금 하니까 이 또 소금 그리 신경이 가니까 이제 또 엇갈리고 힘이 적어 화목의 소금이 되면 물 한 그릇의 그 수고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 어린 아이 하나를 이렇게 한 번 데리고만 와도 그 상을 잃지 않겠다. 또 그것이 막바로 나를 영접한 것이 된다.
이러니까 이 화목의 소금은 얼마나 값이 비쌉니까? 화목의 소금의 댓가를 물 한그릇 떠다준 것도 그것은 결단코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잃지 않는다. 아 물 한그릇 떠다 주는데 희생이 얼마나 듭니까? 얼마나 녹아지요. 고 녹아짐은 아주 극히 적은 양을 말했는데 고렇게 적게 녹아지는 그것도 하늘나라의 상급 하나도 잃지 않는다. 하늘나라 가면은 물 한그릇 떠주는 그만한 수고도 그만한 희생도 상급을 결단코 네가 잃지 않는다 요렇게 말씀합니다. '상급을 결단코 잃지 않는다.' 또 어린 아이 옆에 아이 주님이 옆에 있는 아이 있으니까 그 아이 하나 이리 데리고 왔습니다. 이래 데리고 안으면서 데리고 오니까. 그 희생이 많소 안 많소. 그 교회에 오자고 먼데 있는 아 그 교회에 오자고 먼데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오면은 희생이 많지요. 수고가 많지요. 그렇지마는 옆에 섯는 아이 '아나 이리 오너라.' '보자 요리 온' 그것이 무슨 수고가 크겠습니까? 응, 고만한 수고.
고것이 사람을 주님 앞으로 영접하는 고것이 고만한 수고 고것도 그것이 막바로 나를 영접함이다. '나를 너희들이 환영함이라.' "나를 영접하는 자는"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시나니" "나를 영접하는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나니" 고거 조금 데리고 오는 고기 뭐이냐? 주님을 영접한 것이 되어져서 고것이 주님 앞에 고 영접한 값을 받기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줍니다. 권세 이러니까 화목의 소금은 주님과 친밀해지지 또 하늘나라 권세를 얻지 또 상을 받지 내가 기초 됐더니마는 여 상준다고하지 안 했소. 주님 영접하니까 주님과 친밀해 지는 것 아니겠소. 그 상을 주지 친밀해지지 또 하나는 뭣준다 했소.
연습하면 예.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줘.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줘. 이 화목의 소금은 이렇츰 가치가 큽니다. 이런데 지옥불의 그 소금은 그는 참 형언할 수 없는 괭장하고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이런데 소금 하나 또 더 남았소.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화목의 소금의 기회를 잃어 놓으면은 네가 다시 화목의 소금의 이 기회를 얻지 못한다. 나는 네가 화목의 소금이 될 수 있는 고 기회를 놓쳐 놓으면은 다시는 화목의 소금으로 네가 녹아지지는 못한다. 고것을 여 단정을 지워놨습니다. 화목의 소금으로 녹아지는 고것이 변질됐으면 녹아지는 그것이 녹아지는 기회를 잊어 버렸으면 맛을 잃었으면 변질됐으면 기회를 잊어버렸으면 화목의 소금으로 녹아지는 고런 기회를 잊어 버려서 화목의 소금으로 녹아지는 기회 녹아지지 못하고 기회를 보냈으면 다시는 고 양은 화목의 소금으로 녹아질 수는 없다. 어떻습니까? 단단히 기억합시다.
세 가지 소금. 자 첫째. 첫째. 우리가 할 일이요. 첫째 화목의 소금 또 둘째 우리가 할게 뭐이요. 둘째 소금이 맛을 변하면 다시는 짜게 못한다. 요거 또 셋째는 뭐이요. 지옥의 소금 우리가 이렇게 생각해.
첫째 우리가 생각할 것이 화목의 소금이 돼자. 둘째는 이 화목의 소금될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얻지 못한다. 둘째 맛잃은 소금. 셋째는 그리되면 어찌되느냐? 영원한 지옥의 불의 소금이 된다. 이것을 자기 표어 같이 해서 어데서든지 기억할 수 있도록 단단히 기억하고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새벽기도 나오지도 안하고 그만하면 됐다고 하니까 저거는 저거대로 구원 얻었지.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대로 저거가 지혜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보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등신이라 합니다. 모르면 거기 대해서 관심이 있겠소? 모르면 모르는데 모르는 일 다른 사람들이 이래 하니까 저사람 바보라 하지요. 그러니까 새벽기도에 다 나와야 될터인데 참 탈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