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할 일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19일 새벽(수)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기 귀 있는 자라고 하는 것은 신앙 양심을 써서 신앙 양심 생활을. 하는 자를  말합니다. 신앙 양심 생활을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 여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하는 말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다 영생할 수 있기는 있는  자인데. 기본적으로 영생을 다 얻기는 얻은 자인데 성화적으로는 영생이 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영과 육을 가졌는데 영은 다 영생을 가졌고 이  심신으로 된 육이라는 이 것은 영생된 것도 있고 아직까지 영생 안 된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 행위를 할 때에 그 행위가 영생되는 것도 있고 영생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영생되는 것은 어떤 게 영생되는 것인고 하니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 옳다 참되다 인정을 받았을 때에 그것이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아무리 힘을 써서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온전하다  인정받을 수 없는 그런 미달의 미비의 행위는 영생이 안 되고 그만 그거는  영원한 사망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살았다는 이름 가진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우리는 심신의 기능이 다 영생할 수 있는데, 영생할 수 있고 영생하는 영생활  자라 영생을 받은 자라 이렇게.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영생을 가진 자라 영생을  받은 자라 이렇게 공심판에서는 인정받기는 받은 자인데 실상은 그 심신의  기능이 영생을 가지지 못했다 하는 그 말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 행위  한다고 다 영생되는 게 아니고 신앙 행위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을 때에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받고 참는 자 복이 있다' 여러 가지  신앙생활에 애로가 있어도 그 애로로 인해서 중단되지 안하고 애로가 있어도  계속하는. 참는 자. 시험을 당할 때에 참는 자 복이 있다. 계속하는 자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자가 복이 있다. 왜? '이에 대하여' 고 사건에 대하여, 고 현실에 대하여.

'이에 대하여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고 현실의 행위가 옳다 인정하심을  받는 그런 행위도 있고. 그러면, 인정함을 받도록 할라고 주님도 애를 쓰고 또  자기도 애를 쓰다가 그만 자기가 애만 쓰면 될 터인데 주님 애쓰는 것은 변동이  없지만 자기가 애쓰다가 그만 게을리 해 버리면 고 인정하는 데까지 도달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는 어떤 게 죄인가? 죄는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것도 죄요  또 순종함에 부족한 것도 죄입니다. 그런고로, 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건데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너는 다 영생을 법적으로는 받아 가지고 있는데  '실상은 죽은 자로다' 실상은 네가 그 심신의 기능이 그만 죽고 말았다 고걸  말합니다. '죽은 자로다.'

 2절에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남은 바라 말은 죽고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남아 있는 걸 말합니다. 남아 있는 것 아직까지 현실을  통과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 심신의 기능이 앞으로 살아날 희망이 있고 아직까지  죽지 안하고 지금 산 데에 속해 가지고 있는 심신의 기능이 있으나 현실을  통해서 영원히 죽는 것으로 결정되고 영생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바 죽게 된 것. 남은 바 죽게 된 것은 이제까지 네 심신의 기능이  다 살, 영생할 수 있는데 네가 게을리 해 가지고 영생하지 못하고 다  죽여버렸는데 아직까지 다 죽이지 안하고 남아 있는 것 있으니까 남아 있는  이거는 네가 굳게 해서 죽이지 말고 영생하도록 해라 하는 그 말입니다.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이 신앙 행위를 하기는  하지만 온전하다 인정이 될 때에 그때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산것이 됩니다. 지금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생이 되지 안하고 고 행위를 통해서, 행위 구원이기  때문에 행위를 통해서 구원이 되는 것인데 고 행위가 온전할 때에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치 안하면 영생 안 됩니다. 이 온전한 것은 그 행위의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고 고 현실 현실마다 부분적 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고 현실에  해당된 부분 행위가 온전해졌으면 전 시간까지는 다 죽었다 할지라도 요 시간  행위는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 시간까지는 영생을 다 갖추어서 참  성자와 성녀의 길을 걸어왔다 할지라도 이 시간 요 현실에 하나님 앞에 고  행위가 온전치 못하면 그만 고 토막은 다 죽어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실상은 죽은 자로다 남은 바 죽게 된 것' 아직까지 지금 미결로  남아 있는 것, 우리 미래의 현실에는 영생으로 완전히 설정될 것들을 많이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얼마 안 가지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현실에서 잘못 하면 다 죽어 버리고 말기 때문에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그러니까 남은 바 죽게 된 것. 지금  자꾸 죽어 가고 있는 그것 네가 굳게 해서 구원하도록 해라. 구원하는 데에는  행위 온전이라야. 온전 그게 돼야 그게 되는 것인데 행위 온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 실패하고 있다. 그러니까 행위 온전을 이루라 하는 그 말입니다. 행위  온전이 안 되면 그것은 구원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행위는 구원을 이룰라고 이래 하다가 하나님 앞에 이에 대하여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이랬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인정을 받은 다음에야, 온전해져야.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라."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이 승리했다  말입니다. 생명이 승리한 그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라 영생을 얻는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행위는 고 행위가 온전해져야 영생이 됩니다. 온전해지지  안한 그것도 신앙 행위지요. 신앙 행위이나 그거는 온전해질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실패하면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입니다. 죄가 뭐이냐?  요리 문답에 죄가 뭐이냐? 죄는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것도 죄이지만 순종에  미달되는 것도 그것도 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순종에 부족한 것이 죄라.

 그러기 때문에,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런고로 네가 일깨워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요 세 가지  하지 안하면. 받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지키고 또 생각하고 지키다가 못  했으면 즉시. 뭐 어떻게 생각하다가 못 생각하고 지키다가 지키지 못해서 어떤 큰  실수를 해서 천하에 제일 참 엄청난 실수를 했다 할지라도 다 실은 예수님의  대속하신 것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대로 영생을 이루고 못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즉시  회개해야 됩니다. 즉시 회개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대속함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고 사람이 일생 동안 아무 사람 보기에 언행심사에 실수가 없이 쪽  바로 그렇게 나가는데 이것은 항상 구십 구점입니다. 구십 구점이니까 뭐 사람  보기에야 성자같이 됐지만 그거 구십 구점이니 한 점이 모자라 가지고 백 점이  안 됐으니까 그거 전부 불합격이라 말이오. 구십 구점이니까 '저 사람은 성자일  것이다 구원이 굉장할 것이다.' 가보니까 아무것도 없어, 진공이라. 아, 이것은  항상 영 점이라. 제일 신앙 행위를 더럽게 하는 거라. 더럽게 하는 그게 그래도  가다가서 아주 영 점이면 영 점이고 백 점이면 백 점이라. 영 점에 푹 빠져서 죄  가운데 빠져도 또 그게 딱 회개할 때에는 또 백 점을 만든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은 다른 사람 보기에는 엉망진창의 신앙이지만 백 점이 몇 수십 개 있지만  저 사람은 구십 구점뿐이지 백 점은 하나도 없어. 백 점 하나도 없으니까 그  사람은 사람 보기에는 인정받지만 하나님께는 인정 못 받으니까 구원이 헛일이라  그 말이오.

 그래서 그 전에 여기 있다가 죽었습니다. ○○○씨라고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내가 가 가지고 대심방 다닐 때에 설교를 하기를, 권사님들이랑 다 그때 모두 다  같이 갔는데 모두 잘 믿는 사람들이오. 잘 믿는 사람들인데 내가 말하기를 이  사람이 구원을 너거보담 더 잘 이루어 가지고 있다 이랬습니다. 왜? 그 사람의  신앙생활 엉망진창이오. 뭐 괴상도 안한 행위 합니다. 그러나, 백 점자리가  뜨문뜨문 있다 말이오 백 점짜리. 지금이라도 와 가지고 만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순교당할 수 있으면 이 사람은 순교되고 다른 사람은 여기 순교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내가 그랬오. 다른 사람은 순교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을 내가 어디  가서 했느냐 하면, ○○○권찰님 왔습니까? ○○○집사님 왔오, 예, 어디 있어?  아, ○○○집사님 집에 가서 대심방 가 가지고 권면할 때 내가 그 말을 했어.

다른 이는 기억하고 있는지 몰라도. 이 ○○씨에 대한 얘길 했어. 그는 그래도  순교는 그 사람이 닥치며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다 순교 못 한다. 생명을, 주님  위해 생명을 한 번도 내 놓지 못하고 만날 그저 육백 육십 육으로, 육백 육십  육이니까 얼마나 잘합니까, 이렇지만 칠수에는 도달 안 됐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차라리 그 사람이 구십 구로, 구십 구점으로 평생 그라면서  교만만 가지고 영생에 도달 못 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어떤 실수에 팍 빠져  가지고 다시는 그 사람이 일어날 수 없도록 그렇게 빠져 가지고 이제는 참  죄인이라 하고 평생에 자기는 죄인인 것을 깨닫고 그렇게 회개하는 것 그러면,  회개한 도수가 문제지, 회개한 도수에 도달치 안 하면 안 된다는 것 요것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됩니다.

 '아 그라면 사람이 죄를 지을대로 짓고 고쳐야 되는구먼' 제가 그러면 고범죄가  되기 때문에 그것이 안 된다 그 말이오. 사람이 신앙생활 할라고 해도 자기가  실수에 빠지는 사람 또 안 되는 사람 그런 사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요 말씀하는 건 뭐이냐 하면 백 점이 돼야 되지  구십 구점이 돼도 안 된다, '너희 행위의 온전한 것을 내가 찾지 못했다' 온전해야  영생이 되지 온전치 않으면 영생이 안 뇐다 그 말이오. 그런 데 사람들은 구원  이루면 팔십 점 육십 점 칠십 점 뭐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인정받는 정도면 다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것을 박살내기 위해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살았다는 이름만 가졌지 다 죽었다 그거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이렇게 '일깨지 아니하면' 하는 건 무슨 말인고 하니,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죽게 된 것을 죽지 안하고 살리라. 살릴라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들은 것을 또 지키고  생각하고 지키다가 그만 토막이 톰박 끊어져 가지고 생각을 계속 못 하고 지키는  걸 계속 못 했으면 뭐 해야 됩니까? 회개하라. 이렇게 하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요 일을 하지 안하면, 요 세 가지를 하지 안하면, 일깨지  아니하면 하는 것은 요 세 가지를 하지 안하면, 받은 것 생각하고 들은 것  지키고. 못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중단하고 지키다 중단했으면 회개하고 요 세  가지로 자꾸 지금 걸어가야 된다 그거요. 요 세 가지로 걸어가야 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알지  못하리라' 그러니까 요래 되면 주님이. 주님이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은 주님이  도적으로 온다 말이 아니고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네 행위는 완전히 다 너와는  상관 없이 다 도적맞고 만다. 사람들이 자기 한 시간 사는 생활에 그 생활을  영원히 가져가는 생활, 뭘 도적맞습니까? 요 한 시간 바로 살면 고 한시간의  자기의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과 자기에게 속한 모든 소유 그것이 다 영생이  돼 가지고 영원한 구원이 되는 것인데 그걸 그만 도적 맞았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그 말은, 자기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는 사람, 빼앗기는 것은 무얼 빼앗기는고 하니, 빼앗긴다 말은 자기의 영원한  마음의 기능, 영원한 몸의 기능, 영원 한 소유가 될 터인데 그만 현실에 세상  욕심 때문에 뺏겼다 그 말이오. 자기를 잃는다 말은 무슨, 자기를 잃어 버렸다  말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을 그만 잃어 버렸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사람을 잃어버리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자기가, 그게 자기인 줄  알면, 그놈을 죽여야 되는데. 그게 원수인데 죽여야 되는데, 성령의 소욕 가지지  안하고 육체의 소욕으로. 하늘의 소욕을 가지지 안 하고 땅의 소욕을 가지고.

하나님 위주 중심하지 안하면 자기 위주 중심하는 그놈은 자기를 망치는 놈이기  때문에, 자기가 아니기 때문에 원수인 줄 알고 이걸 죽여야 될 터인 데 자꾸  그것을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사랑하고 있습니나. 이러니까 자기 일생 사는  생활이 전부 도적맞고 맞았다, 다 뺏기고 말았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는지 했으면. 빼 앗기든지  잃으면 온 천하를 얻고라도. 자기 잃었으면 자기는 손해다. 온 천하를 얻고라도  자기 빼앗겼으면 손해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이 이 세상 것은  소망해서 그거 얻기 위해서 하는데 어리석은 자야 네가 온 천하 얻는 것보다도  이 한 시간 네 마음과 네 몸의 기능과 네 소유를 뺏기지 않는 그것이 온 천하  얻는 것 보다 낫다. 온 천하 얻어 봤자 마지막에는 다 없어질 것이고 떠나 버릴  터인데 이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네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과 네 소유를  얻는 그것이 온 천하 얻는 것보다 낫는데 네가 얻어 봤자 부산에 제일 부자  갑부도 못 될 것이고 부산에 제일도 못 되는데 아 그까짓 것 부스러기 중에  부스러기 그것 때문에 네가 자기를 잃고 빼앗기니 어리석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도적같이 오리니 어느 때에 올란지 모른다 그 말은. 어느 때에 올란지 모른다 그  말은 그간 그 사람이 그래 허둥지둥 지내다가서 죽는 시간도 몰랐소. 아이쿠,  갑자기 죽음이 와. '아이구 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니까 어떤 사람, 내가  정만수 목사님이 그래 써 놨던가 뭐인가, 그 널 안에서 덜걱 덜걱 덜걱 한다고.

'이럴 줄 알았던들 알았던들. 던들' 알았던 들 알았던들 자꾸 이란다고, 널 안에서.

'아. 이럴 줄 알았던들 내가 이래 살지 안할걸.'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지. 사람이  다 마지막 죽을 시간에는 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럴 줄  알았으면' 다 그랍니다. 그때 후회하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와 같이 살다가 그만 어느 때에 갈란지도 모르고. 어느 때에 온다는,  자기 죽을 것도 모르고 예수님 재림도 모르고 죽음이나 재림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도 없이 그만 일사천리로 그만 일생 동안 돈만 욕심내다가 명예 욕심내다가,  지위 욕심내다가, 권세 욕심내다가 직장 좋은 것 욕심내다가, 가족 재미에, 뭐  이모든 이런 재미 저런 취미 어떤 자는 세상 과학이 성공 모두 그런 것 하다가.

'아, 내가 일등 무엇이 돼야 되지' 이래 가지고 그 취미에 날뛰다 보니까 죽을  때가 떡 왔다 말이오. 어리석은 자라.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 수고한 것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냐' 모든 게 헛돼 어리석지  말아야 돼요. 한 시간 자기의 심신의 기능과 소유를 뺏기는 것이 그것이 온 천하  얻은 것보다 손해입니다. 온 천하 얻고라도 뺏겼으면 손해요.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모든 것 뭐 다 뺏겼다 할지라도 자기가 심신의 기능과 소유를 뺏기지  안했으면 천하 얻은 것보다 유익이 더 큽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보고 있지 않느냐? 네 눈에 봐라. 네가 이걸 볼 줄 알아야 돼.

의인을, 하나님을 볼 줄 아는 것이 복있는 사람이고 둘째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고 셋째로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는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 다른 사람의 장점만 봐.

 '흰옷 입고 다니리니' 그 말은 저 사람은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그는  벗지 안하고 임고 다닌다. 아 그렇츰 어려운 시험을 닥쳐도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는 그 사람이 벗지 안하더라. 사형을 준다는 사형틀 위에서도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는 벗지 안하더라 그런 사람을 보지 않느냐? 우리가 우리 교회에는  현재에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귀로 들어도 봤고 또 눈으로 또, 볼 줄  몰라 그렇지 볼 수가 있고 볼 줄 몰라 그렇지 볼수가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나와 함께 다니리니' 다니는 것을 네가 보는데 그런 거는 보지 안하고  엉뚱한 것만 봅니다. '아, 돈 많은 사람' 어제도 우리가 어제 아침인가 와서  그랬는데,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더라? 뭐 그런데 그걸 좀 문서를 그래 둘라면  궤짝을 하나 짜면 싶으다 이라기 때문에 '궤짝 짜는데 궤짝 짜 봐야 그까짓 거  불편하다.' 궤짝 짤라 하면 그 놈 또 놓을데 자리 차지하지, 자리를 항상  차지하거든. 밤낮으로 그놈이 차지해 가지고 있으니까 방이 뭐 솔지. 이러니까,  궤짝보다는 나이롱으로 만들어 놓은 단스가 좋고 나이롱으로 만들어 놓은  단스보다는 뭐이 좋습니까? 누가 가방하네, 가방이 좋고 조그만 가방이 좋고,  가방보다 더 좋은 게 뭐입니까, 제일 좋은 게? 말해 봐. 누가 못 느껴 봤어요?  예? 가방보다 더 좋은 게 뭐요? 예? 보자기, 보따리. 맞았어. 백 점이야. 보따리라.

보따리. 보자기. 보자기 생활 그게 천한 게 아니라 최고급인 것입니다. 요새 뭐  몇십층, 뭐 백층이니 아주 공굴로 이래 가지고 하는 것 있지만 세계에 제일 주택  중에 제일 유력한, 유명하고 제일 상등 주택은 뭐이냐? 스웨덴에서 그래 짓는다  하던 가, 뭐 미국도 지금 달라져요. 자꾸 변화돼져. 영국에 그렇다던가? 모두 후진  국가들이 그렇지 외나 신사들온 모두 이거 꼬쟁이로 가지고 까치집 짓듯이  조그만하게 이래 지어서, 집이 사람에게 눌려야 되지 사람이 막 돌로 가지고,  이래 가지고 견고히 해 가지고 견고히 이래 놓으니까 그만 참 아무 집 맛이 없어.

그래 모두 집은 단층집, 또 그래 모두 목조로 지은 집 연약집 그걸 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뭘 좋겠나?' '아, 보따리가 좋겠습니다.' 어제는 ○○○씨 하고 내가  ○○○씨하고 누구하고 모아 가지고 그거 얘기했어. '좋기는 보따리가' '보따리는  꾸개져서' 그 사람은 아직까지 잘 달게 안받아 그래. '꾸개져서. 가방을 사 가지고  거기다 차착 재어 놓으면' '가방에 놔도 내나 재어 놓으면 내나 쭈그러지는 거,  또, 그라면 보따리 싸 가지고도 딱 갖다 요래 냅둬. 보따리 싸 가지고 딱 들어 두  손으로 들어. 두 손으로 들어다 딱 갖다 놓고 가만히 냅두면 하나도 쭈그러지지  안한다.' 뭐이든지 이 세상의 사람들은 어짜든지 가정에 무슨 뭐 가정 장식이라  하나 뭐이라 하나? 농 같은 그런 걸 뭐라 하노? 가구인가? 이래 가지고 마구  이래 얼룽 덜룽 이래 가지고 꽉 앉혀 놓고 그 안에 들어 앉았으면 뭐이 좋은지?  가구를 옛날 돈으로 사백만 원이면 요새 돈으로 사천만 원입니다. 사천만 원 더  되지. 사천만 원짜리를 방안에다 주 갖다 이래 넣어 놓고 이래 놓고 좋다 하는데  그게 참 돈에 계율이 들어 가지고 돈에 얼마나 압제를 받고 천대를 받았었기  때문에 이제는 돈이라고 하면 뭐이든지 다 좋은 줄 알고 그라는 것이지 외나  그런 물질 초월한 사람은 편리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게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도적같이 이르리니' 그만 세상에 있는 것 그런 것 욕심내다 보니까 언제  언제 죽을 것도 생각지 못했어. 그럭저럭 하다 보니 그만 신속 하게 날아가  버렸다, 내가 언제 오십이고 내가 언제 육십이고 내가 언제 칠십이고 언제  팔십이고 그만 이래 됐다 말이오. 나는 스물 다섯살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그때부터 달음질하기는 했다고 생각했는데, 달음질 하기는 한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부 도적맞은 거라. 뭐 그만 허둥지둥 잠깐 그것 때문에 어제도 내가  이제는 나무 심는데 내가 나무는 안 심는다. 나무 심는 건 내가 보지도 안하고  거석한다 이랬는데, 어제 가만히 또 있으니까 아무래도 가 가지고 좀 봐야 되겠고  가 보니까 또 요게 벌써 심을라고 애를 쓰는데 요래 또 내가 뭐 힘이야 없지만  이렇게 바로 섰나 어쨌나 그런 거는 또 봐 줘야 되겠고,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안봐도 잘 심으니까 안 봐야 되겠다' 이래도 또 가서 또 그걸 했다 말이오.

했는데, 저 아래는 그랬는데 어제는 그거 하면서도 기도할 걸 기도하고 성경 볼  것을 성경을 보고 자꾸 이래 하니까 양심에 가책이 안 되고 어제, 어제는 기쁨도  오고 즐거움도 오는데, 아래는 그만 그거 한다고 뭐 이라다가 그만 마음으로  가책은 자꾸 받으면서도 자꾸 그만 고래 한 시간 두 시간 일하다가 고만 하루가  지나가고 나니까 죽을 지경이라. 이러니까, 우리가 요 세 가지 버리면 참 불쌍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리니 이기는 자는' 5절에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이기기만 하면 흰옷 입는다. 흰옷 입는다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벗지 안하고 입고 살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그거는 이는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흰옷을 입고 다니리니' 흰옷을 입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입는 것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우리는 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사죄를, 언제든지 죄 안 짓고, 성령의 감화대로 살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하나 돼 가지고 산다는 이것은 인간은 할 수 없는 것이오. 하나님이 하게 해  주셔야 된다 말이오. 하나님이 하게 해 주셔야. 그러니까, 우리가 '아, 어짜든지  털끝만치라도 죄 안 짓고 살아야지. 죄 안 짓고 살아야지,' 어리석은 자야 네까짓  게 죄 안 짓고 살아? 죄 안 짓 고 살라 하는 그거는 우리 할 일 아니라. 알아  똑똑히 들어요. 죄 안 짓고 살라 하는 건 우리가 할 일 아니라.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살라 하는 그거는 우리 할 일 아니라. 그건 우리가 못 해요. 암만 할라  해 봤자 헛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만 사람들이 신앙생활 해 본 사람은 '뭐  결심만 하면 되지 작정만 하면 되지' 어떤 부흥사가 '결심해라 작정해라' 어리석은  소리. 결심이 무슨 소용 있으며 작정이 무슨 소용 있느냐? 결심 암만 여러 수백  번 해 봐야 헛일했다 그 말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 '결심도 소용없고 작정도  소용없다' 제가 지금 약 삼십년 전인데 한상동 목사님 어디 집회 갔다가서  '사람의 결심이 무슨 소용 있으며 작정이 무슨 소용 있으며 의지가 무슨 소용  있느냐' 이 설교를 듣고 와 가지고 말하기를 '아. 그런 설교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성자의 설교요 성녀의 설교다 인간의 결심이 작정이 무슨 소용  있노? 각오가 우슨 소용 있노? 인간이 암만 해 봤자 소용이 없다. 소용이 없어요.

 이렇는데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 생명책에 흐리지 않는다 그 말은. 생명 책이라 말은 뭘 가르치는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된 그 생활을 끊치지 않는다, 연결된 생활이 끊치지 안하도록,  연결된 생활이 치지 안하도록 연결된 생활을 계속하도록 해 주겠다 그 말이오.

'생명책에 반드시 흐리지 않는 다 그 이름이라 말은 그 사람의 언행심사의 행위를  가리켜서 그 이름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하나님과 연결  생활에서 끊치지 안하도록 내가 해 주겠다 하는 그 말이오.

 또, '아니하고 그 이름을' 또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아버지 앞에서 시인한다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라 말하는 것은  내가 언행심사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필요한  요소들. 하나님 아버지에게 유업으로 유업으로 선물로 받을 게 많아. 아버지 말한  것은 언제든지 그것은 유업받을 것 선물 받을 것 말하는 것이오. 내게 언행심사에  필요한 하나님의 그 온갖 유업으로 받는 그 은혜 그것을 받아야 되는데.

'시인하겠다' 받도록 하나님께 '이거는 줘라' 이렇게 인정하게 하겠다. 또 '그  이름을 천사들 앞에 시인하겠다'  이는 천사를 말한 것은 호위를 말합니다. 천군 천사의 보호. 천군 천사가, 이는  천군 천사의 보호를 받도록.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구비한 은혜를 주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걸 책임지고 다 그렇게 결재를 하겠다. 시인하겠다 말은 '이는 줘야  됩니다' 이렇게 결재를 하겠다.

 뭐하면? 어떤 자에게? 이기는 자에게. 이기는 이거는 이기는 일 이거는 우리가  해야 돼요. 이기는 일은 우리가 해야 되지만 각오나 결심이나 뭐 한다는 그런  것은 다 소용 없어. 이기는 자는 뭘 이기는 자라고 말했느냐 하면 세 가지라.

어떻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들은 것을 지키고, 생각하다가 토막나고  지키다가 토막났으면 회개하고. 어떤 사람은 생각하고 지키는 일을 쭉  계속하다가. 일 분 동안 그만 탐박 끊어져 버렸습니다. 일 분 동안 그만 생각하는  것 잊어 버 려 버리고 지키던 것 그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일 분 동안 끊어진  자나 어떤 자는 하루 끊어진 자, 십 년 끊어진 자 어제도 말했지만 우리 ○○○저  형제는, 아마 한 딴 데 신앙생활 한 이십 년 끊어졌을 거라. 한 이십 년  끊어졌는데 요새는 새벽 기도 나와 가지고 인제 한 새벽도 안 빠지는구먼 보니까.

그는 한 이십 년 끊어졌다가 이제 새로 회개해서 이었다, 말이오. 암만 오래 동안  끊어겼다 해도 이으면 되는 거라. 이으면, 그만 잇기면 되는데, 암만 또 잇겨  있다가도 끊어지면 그만이라.

 그러니까, 우리 할 일은 무어냐? 우리 할 일은 요 세 가지는 우리가 할 수 있다  말이오. 다른 거는 하지 못해. 요 세 가지만 하면 다른 것 다 해 준다 이말이오.

세 가지 뭐요? 받은 것은 생각하는 것, 생각하는데, 생각해라 네가 생각하다가서  만일 탐박 끊어지면 헛일이다 하는 날이면 우리가 못 해요. 안 그렇습니까?  생각하는 것, 아 하나님 앞에 받은 것 하나님 앞에 은혜를 생각하는 것을  끊어지면 안 된다. 끊어지면 그만 낙제다 헛일이다 이래 버리면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런데, 생각하다가 잊어 버렸으면 또 회개하고 생각하다가  잊어버린 것을, 하루 일흔 번 생각하다 일흔 번 잊어 버려도 또 일흔 번 다시  생각하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할 수가 있어. 또 들은 것을 지키어  행하다가, 들은 것을 지키어 행하다가 이거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행하다가  그만 실패해 버리고 행하다가 실패하고 행하다가 실패. 천 번을 실패해도 천 번  실패한 것을 회개해라. 일어서라. 이거 세 가지가 한테 뭉쳤으니까 우리 사람으로  할 수 있다 말이오. 이 세 가지를 우리가 할 수 있는 이 세 가지를 우리가 하면  이 세 가지를 통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주님이 다 해 주시는 이렇게  우리에게 살기 쉽게 가는 이런 길을 가르쳐 줬는데 이걸 주님이 안 해 주시면  안돼. 이러니까 요 세 가지만 하면 자꾸 돼 지요.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이기는 자가 어떤 자가 이기는 자인가? 요 세 가지를  행하는 자가 이기는 자라 세 가지를 하는 자, 뭐 어떤 것? 받은 것은 생각하고  들은 것은 지켜 행하고, 들은 것은 행하고 받은 것은 생각 하고 하다 못 했으면  다시 회개하고, 이 세 가지를 합하니까 될 수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힘쓰는 사람은 다 성공합니다. 어떻게 실력가라도  그만 힘 안 쓰고 교만한 자는 다 헛일이오. 자꾸 벌벌 떨면서 힘을 쓰는 자는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 양심 생활이 없으면 신앙 영감 생활에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신앙 양심 생활은 뭐이냐? 자기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자기야 어찌  됐든간에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고 마음이 신앙 양심 생활이라 그 말이오.

고게 없으면 안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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