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3 13:44
삼대절기
1985. 11. 22 금야
본문:출애굽기23장 1절14∼17절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 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이 미개할 때는 알기 쉬운 이런 방편으로 가르쳐 주시고 차차 우리의 심령이 성장함에 따라서 하나님이 좀 구체적으로 구비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전면적입니다. 그러기에 신약에 이 언어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그런 계시를 가지고 거게 대한 진수를 깨닫지 못할 때는 구약에 형식을 가 지고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그것으로써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서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또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 전이라고도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전이라면 우리 몸에 대해서 어떻 게 성전이 되어 있는가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이 문서로 기록한 한 언어 계시로 만 가지고는 모릅니다. 구약 시대에 형식으로 하나님의 성막이라든지 성전이라든 지 거게 있는 그 구조나 또 내부나 그 분담된 모든 직책이나 그런 것을 연구할 때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하나님의 성전이 되겠다 하는 것을 우리가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유월절은 육체의 이스라엘에게 제일 큰 절기입니다. 그 다음 절기는 오순절 절기요 그 다음 절기는 장막절 절기입니다. 유월절 절기가 제일 큰 절기입니다. 또 신약 시대도, 이 유월절 절기가 계통적으로 내려오다가 유월절 한 가위날 세상 죄를 지고 갈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설정 했습니다. 이 설정한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는 어느 면이나 부족할 게 없이 다 은혜가 충만히 와서 기다리고 있지마는 깨닫지 못해서 은혜의 궁핍함을 우리가 당하고 있습니다.
이 유월절에 대해서 늘 요새 증거하고 있는데 오늘 밤에도 아무래도 또 이 말씀 을 증거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재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세상 에게, 세상에게와 모든 만물에게와 하나님에게 이렇게 존대를 받느냐 천대를 받느 냐, 또 모든 일에 성공을 하느냐 실패를 하느냐, 또 평안이냐 환난이냐, 죽느냐 사 느냐 하는 그 문제가 우리에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유월절에서 여게 대해서 정확 히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뭐, 이 세상에 하도 거짓말이 많기 때문에 뭐 귀에 걸면 귀걸이 뭐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과같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자꾸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아니하는 정확한 그 말씀을 책임 맡고 있습니다. 정 확한 말씀을 책임 맡고 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죽고 살고 성공하 고 실패하고 행복을 누리고 화를 받고 하는 거게 대해서 정확한 말을 우리는 해 줘야 됩니다. 그 방편이나 거게 대한 이치가 정확해서 그대로 하면 다 하나님의 축복과 성공이 되고 거게 삐뚤어지면 다 실패하고 망하는 이런 정확한 말씀을 우 리가 증거하지 안하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는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성경이 있지마는 성경만 보고는 잘 깨닫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이 많기 때문에 바로 깨달아서 뉘든지 알기 쉽도록 그렇게 우리가 살아 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그것이 설교입니다. 만일 길을 잘못 가르쳐 주면 그 사람 의 영육이 망하는 것은 잘못 가르친 그 사람이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아야 합니 다. 그러기 때문에, 스승된 자들은 받을 심판이 많다고 했고 또 받을 상급도 굉장 히 많습니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요새도 늘 증거했는데 오늘 밤에도 증거하는 이 말씀을 만일 이대로 틀리고, 이대로가 아니고, 여게서 뭐 십분지 일이라도 이대로가 아니 라고 하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여러분들의 가르친 대로 한 실패가 있으면 그것은 나는 영원히 그것을 배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저 말만 하고 마 는 것이 아니고, 또 일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서,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그거는 참으로 미친 행위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밤에도, 저는 확신을 가집니다. 과거야 어찌 됐든지 현재로부터 미래적으로 망하고 흥하고 죽고 살고 평안하고 고생하는 것은 요게 틀림없이 기인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도 에누리 없습니다. 만일 조그마치라도 삐뚤어진 말을 했다든지 과장을 했다든지 또 거기에 있어야 할 것을 빼고 증거했으면 거게 대한 심판은 제가, 받을라고 하나 안 하나 받습니다. 받을 줄 알고 심판 받지 아니할 말씀을 증 거합니다. 앞으로 망하지 안할라면 이대로 해야 될 것이고 이대로 안 하면 천인이 고 만인이고 다 망하고 죽습니다. 에누리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백성은 육체의 이스라엘의 구약 교회가 있고 신령한 이스라엘의 신약 교회가 있습니다. 구약 교회에서 된 일은 언제나 신약 교회의 그림자라고도 말씀 을 했고 또 거울이라고도 말씀을 했습니다. 구약 교회를 봐서 신약 교회를 잘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교회보다도 신약 교회는 더 실상적이요 더 확고하다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고센 땅에서 살 때에 참 심히 존귀함을 받고 영 광을 받았고 형통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아무 그렇게 받을 만한 그 원 인이 없었지마는 의인 요셉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 을 다 간추려 놓고 도리 진리만 지금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자기를 대우하는 모든 환경들이 자기 대우가 차차차차 없어집니다. 좀 지나가면 형통이 없어집니다. 좀 더 지나가면 큰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좀 더 미련을 지기고 있으면은 사망이 옵니다. 이거 변하 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띄워 놓고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하면 우리는 그 간추려서 붙들기가 어려운데, 그러기 때문에 늘 이 말씀을 자꾸 읽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이 애굽에서 참 형언 못 할 만치 대우를 받았습니다. 대우 받던 것이 차차차차 대우가 좀 성글어졌습니다. 대우가 성글어지다가 나중에는 멸시를 했습니다. 형통치를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환경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이 왔습니다.
그 어려움을 지나고 나니까 나중에는 그들에게 죽음이 왔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뭐인가? 하나님 잊어버린 까닭입니다. 하나님 잊어버리면 자기에게 오던 대우가 성글어집니다. 길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오래 있으면 모든 자기의 가는 길이 형 통치를 못하게 됩니다. 더 미련을 부리고 있으면 큰 고난을 당합니다. 더 미련을 부리면 나중에는 죽는 일이 생깁니다. 요게 이스라엘이 닥친 고 순서를 내가 말하 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환영받았던 것은, 야곱도 노경까지 벌판이 생활했고 노경에 회 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요셉이가 일찍부터 하나님을 찾고 놓지를 안했습니 다. 하나님을 잡고 놓지를 아니했습니다. 한 사람 요셉이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아니한 그 결과의 대우는 그들에게 존대가 왔고, 또 모든 협조와 응원이 왔고, 모 든 일에 형통과 평강이 왔고,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는 다 생명이 충만했던 것입니 다. 그랬었는데, 이 망령된 이스라엘이 요셉의 그 조심하는 공적을 모르고 하나님 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전멸의 학살에 도달하기까지 됐던 것입니다. 요것이 우리가 기억하기 쉬운 정확한 하나님의 영원한 법칙입니다.
하나님을 잊으면 대우가 없어지고 하나님을 찾으면 대우가 생겨지고, 하나님을 잊 어버리면 모든 일이 형통치를 못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모든 일이 형통하고, 하나 님을 잊어버리면 고난이 오고 하나님을 찾으면 평안이 오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죽음이 오고 하나님을 찾으면 생명이 돌아오게 되는 것이 이것이 변할 수 없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불변의 진리입니다.
이것을 예사롭게 지나갈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자기의 현실과 맞춥시다. 만일 나에게 내가 생각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우하고 존귀히 여겨서 대우하거들 랑 내가 하나님과 가까워진 그 결과라고 우리는 의심 없이 확정을 가져야 됩니다.
만일 나에게 무슨, 다른 사람의 대우가 성글고 협조가 없고 이럴 때에, 오늘까지 우리는 그럴 때는 그 애매한 사람에게 원수를 품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그렇게 된다 하고서, 자기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거기에서 생겨진 것인 것을 모르고 하나 님이 도구로 쓰시는 그 모든 사람들이나 환경이나 장소나 그런 것들에게 대해서 우리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비했던 우리들입니다. 이러니까 그 일이 좀체 물러가 지 안하고 점점 우리는 자꾸 더 심해서 마지막에는 헤고날 수 없어서 이거 죽지 도 못하고 살자 하니 또 살지도 못하고 이렇게 참 죽을 만한 그런 곤욕에 빠지고 마지막에는 죽고 망하는 거게까지 도달한 그런 경험을 우리가 얼마든지 가졌습니 다.
이래서, 오늘 밤에 요것을 단정지우고 싶습니다. 하나님 잊어버리면 대우가 없어지 고, 모든 인류와 만물의 협조가 없어지고, 그 다음에는 고난이 오고, 죽음이 온다.
하나님 잊어버리면. 잊어 버렸던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을 찾아 갈급하고 하나님 을 찾으면 없던 대우가 오고, 없던 모든 인류와 만물의 협조가 오고, 없던 그 모든 평강이 오고, 그저 생기에 넘치는 그런 일들이 생겨난다 우리가 요것을 경험해 봅 시다. 자기에게 하나님을 잊어 버림으로써의 오는 거 네 가지를 내가 말했고. 하 나님을 찾음으로써의 오는 거 네 가지를 말했으니까, 자기에게 하나님을 잊어 버 림으로써의 네 가지 온 것이 있다고 하면, 한번 시험해 보자, 잊어버리면 네 가지 온다고 하고 거기에서 그 네 가지를 달리 아무리 해결 지울라고 애를 써도 안 되 고 아예 집어던져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 찾으면 정반대 로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되고 네 가지 좋은 것이 온다고 했으니 이게 진리인 가 진리 아닌가, 이 말이 공연히 입에 발린 말로써 아무나따나 하기 좋은 말로 하 는 말인가, 절대자가 책임지고 요 일대로 이루는 요 권위있는 진실한 말인가 한번 우리가 시험해 봅시다. 시험해 보면 점점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질 것이고 점점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어떤 면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최고의 기관이라도 최고의 기관마다 그 기관 위에 하늘의 기관이 계시니 곧 그리스도 주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조그만 한 가정에서라도, 어떤 가내 공업이라도, 어떤 조그만한 관공서라도 전부 다 그러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은 없는 가운데 지었습니다. 지은 것을 당신이 지금도 혼자 통치하고 계십니다. 혼자 주권적으로 모든 것을 다 개개를 다 섭리하시고 관 리하시고 혼자 친히 직영하시고 계십니다. 아무도 손 못 댑니다. 사람이 볼 때에 는 이런 게 저런 게 하는 거 같지마는 그것은 주님이 도구로 쓰시고 이용하셔서 하지 마귀도 아무것도 땅 위에 권리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를 설정하시기 전에는 마귀가 세상 임금이었지마는 지금은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예수님이 다 가지셨습니다. 아무도 주권하지 못합니다. 당신 혼자 주권하 시면서 이런 거 저런 것을 이용해서 이런 거 저런 것을 관리하시고 섭리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을 이용했으면 그 사람이 하 는 줄 알고, 자연을 이용해서 하시면 자연이 하는 줄 알고 하나 자연도 어떤 피조 물도 아무도 손 못 댑니다. 오직 당신 혼자 주권 의지대로 주권 능력대로 고대로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이 다 떠납니다. 잊어 버렸던 하나님을 찾으면 모든 좋은 것이 다 돌아옵니다. 뭐 목회자든지 사업가든 지 자기가 요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아, 나는 분명히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의 결과를 내가 받고 있다. 나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했다고 했지마는 내게 온 결 과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 결과를 내가 받고 있으니까, 그러면 이제, 그 설교한 말씀에 따라서, 잊어버린 결과를 받고 있으니 하나님을 찾은 결과가 내게 오기까 지 내가 하나님 한번 찾아봐야 되겠다.’ 찾아보십시오. 찾아서 찾은 자에게 모든 좋은 것이 오는 것이 오지 안하거든 찾기를 잘못 찾았으니까 하나님에게 기도하 고 좀 더 정확히 찾아보십시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찾았는데 이 일이 안 된다면 신구약 성경은 다 불타 버려야 되고 하나님은 정죄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시는 하나님이 아 닙니다. 하나님에게는 불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고 해서, ‘나는 찾았는데 찾은 자에게 온다고 하는 모든 대우나 환영이나 협조나 형통이나 평강이나 성공이 내게는 오지 않는다. 이러니까, 이렇게 잊으면 화요 찾으면 복이라는 이 말이 틀렸다’ 이렇게 망령을 부리지 말 고, 내가 하나님 찾음이 뭣이 잘못됐으니 여게다가 총 책임을 지우고서 하나님을 바로 찾을라고 노력하는 그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사람 입니다. 찾아보십시오. 찾고저 하는 사람은, 여게 입각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자기에게 칭찬하는 사람은 보기가 싫을 것입니다. 칭찬하는 사람 에게는. 듣기 싫다, 나를 유혹시키는 원수야! 마귀야! 듣기 싫다! 하루 종일 돌아다 니다가 책망하는 말이 들리면, 어데서 들리면 깜짝 놀라서 얼른 쫓아가 가지고 ‘뭐입니까?’ 책망하는 걸 물을 것입니다. 왜? 자기는 지금 바로 고쳐 볼라고 애 를 쓰는 사람이니까 자기에게 잘못됐다는 그것을 말하면 얼마나 기쁜 소식이며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여게 대해서 내 주관 방편이 잘못된 데에서 고장이 났지 하나님의 객관의 계시 방편에 틀림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되면 주관 방편에 더듬어 가지고서 다시 수정하고 수정해서 그 수정이 바로 됐을 때는 어느 때인고 하니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이 모든 만물로 환영을 해서, 멸시 천대하던 것이 다 환영하고, 이제 반대하던 원수들이 다 협조를 하고, 모든 일이 다 우연히 자연히 다 평안으로 다 바꾸어지고 성공으로 바꾸어지는 그 일이 되거든 ‘아 이제 하나님 찾는 일이 바 로 됐는 갑다’ 하고서, 그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을 찾는 일이 바로 되지 못했다는 것을 책임을 거기다 지워 놓고 바로 찾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돼야 망하지 안합니 다.
둘째로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잊어버리고 피 없는 곳으로 가면 망합니다. 하나 님의 피로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이 우리로 더불어 약속 세운 이 피를 잊어버리고, 양의 피를 잊어버리고 피 없는 곳으로 가면 죽습니다. 피 없는 곳으로 가면 망하 는 게 아니라 죽습니다, 고만. 거기는 생명 문제요. 피 없는 곳으로 가면 죽습니다.
이스라엘이 피를 버리고 피 없는 곳으로 가면 그는 피 없으니까 장자 재앙에서도 죽을 뿐만 아니라 장자의 재앙에 제가, 그 위에 재앙 받은 먼저 난 자들이 있고 제게는 닥치치 안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애굽 사람들에게 그는 다 멸살을 당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리석은 말 같고 허무한 말 같으나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 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피를 잊어버리면 사망입니다. 피를 잊어버리면 사망입니다.
피를 잊어버리면 피 없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피 없는 곳으로 가면 애굽 에 소속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피를 잊어버리면 피 없는 곳으로 가고 피 없는 곳으로 가면 애굽에 소속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라면 죽습니다. 그때는 양의 피지마는 오늘은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허무한 거 같으나 예수님의 피는 능력 있습니다. 그러기에, 경험하지 안한 사람들은 다 거짓말로 여깁니다. 체험하 지 안한 사람들은 다 거짓말로 여깁니다.
피를 잊어버리면 신앙이 죽든지, 인격이 죽든지, 사업이 죽든지, 명예가 죽든지, 권 세가 죽든지, 자기의 직장이 죽든지, 자기의 모든 행복이 죽든지, 자기의 고기덩어 리의 생명이 죽든지 어쨌든지 죽습니다. 피는 생명에 관계되는 것입니다. 피를 잊 어버리면 죽습니다. 뭐이든지. 여게는 뭐 여게는 환영이 없다 여게는 형통이 없다 그런 거 아닙니다. 여기 피는 생명에 관한 것이오. 피를 잊어버리면 죽습니다. 피 를 잊어버리면 저는 피 없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 없는 곳은 전부 사망뿐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 방주 밖에는 사망뿐인 거와같이 이 세상에는 피 없 는 곳은 다 사망뿐입니다. 비유 아니오. 피 없는 곳은 사망뿐입니다. 예수님의 피 를 잊어버리고 피 없이 살았으면 제가 어데까지 영광스럽게 살았다 할지라도 전 부는 사망입니다. 사망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피 없는 곳에는 사망입니다. 피 없는 곳에 있는 자는 애굽에 속한 자가 됩니다.
애굽에 속한 자. 피를 잊어버리면 세상 사람됩니다. 여러분들. 피를 잊어버리면 세 상 사람 돼요, 피 잊어버리면. 피를 잊어버리면 속화됩니다. 피 없이 언행 심사 한 거, 피 없이 생각한 거, 피 없이 사색한 거. 피 없이 궁구한 거, 피 없이 계획한 거, 피 없이 소원한 거, 피 잊어버리고 내 언행 심사의 어떤 것이든지 전부는 사망 입니다. 사망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살펴보십시오. 과거 생활을 뭣이든지, 피 없는 시간에 생명이 있었는가, 피 없는 장소에 생명이 있었는가, 피 없는 움직임에 생명이 있었는가, 피 없는 배움에 생명이 있었는가, 피 없는 노력에 생명이 있었는 가, 생명이 없습니다. 전부 죽습니다.
피를 찾을 때에 우리는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피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 의 보호 안에 있는 것입니다. 피 안에 있을 때에 아무 근심이 없습니다. 피 안에 서, 피 안에서 계획한 거, 나는 사죄를 받았다, 나는 칭의를 받았다, 나는 주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결합을 가졌다. 이 피 안에서 소원하고, 피 안에서 말하고, 피 안에서 계획하고, 피 안에서 경영하고, 피 안에서 말하고, 피 안에서 노력한, 피 안에서 한 거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다 살았습니다. 그는 죽은 것이 하나도 없습 니다. 다 삽니다. ‘능력 있도다 주의 피’ 그 찬송 지은 사람이 자기가 피에 대 해서 체험을 하고 한 것입니다. 피가 있는 곳은 생명 있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피가 있는 곳에, 피 안에 있을 때에 전지 전능 완전자와 연결이 딱 돼 가지고 있 습니다. 피는 전지 전능자와의 연결이 피입니다. 피만 있으면 전지 전능자와 나와 는 연결돼 있습니다. 피를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연결을 끊을 자가 없습니다. 전 능자에게 연결돼 있는데 어떤 피조물이 해하겠습니까? 이거는 공연한 궤변의 말 이 아닙니다. 호리도 가감이 없습니다. 겪어 보십시오.
피에 대해서는 아무런 우리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피에 대해서는 노력 필요 없 어. 믿으면 됩니다. 주님이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주신 것을 믿고 이 대속 을 받은 자로, 대속을 입고 있는 자로 살면 됩니다. 이 대속을 벗어 버리지만 안하 면 됩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속에 생명이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릴 것이요 그는 영생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기이합니다. 이는 우리 주관이 아 니오. 우리에게 있는 주관 행위 아닙니다. 우리 주관 행위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세 가지 대속을 주신 것은 우리 주관으로서 믿는 것뿐입니다. 믿는 것뿐 이오. 이럴 때에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은 순전히 이거 는 객관 역사입니다. 객관 역사. 객관 역사요.
우리는, 이 피를 자기가 입고 있고 이 피를 벗지 안하는 이것은 우리 주관 행위입 니다. 주관으로 그래 합니다. 주관으로 예수님의 피공로를 벗지 안하고 피공로를 입고 있는 거 우리 주관 행위입니다. 주관 행위 무슨 힘이 있습니까? 힘 없습니 다. 주관 행위입니다. 주관 행위를 할 때에 초자연의 무한하신 객관의 능력의 역 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봐야 합니다. 체험해야 됩니다. 그 능력이 와 가지고 나 를 붙들고 세상을 이기는 것을 구경을 해야 합니다.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세상 을 호령칠 때에 세상이 입을 다물고, 그 능력이 와서 붙들 때에 불 가운데 돌아 다녔지마는 불 냄새가 나지 안하고, 그 능력이 왔을 때 사자 입을 막아서 사자가 입을 벌리지 못한 그걸 체험해야 됩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요.
예수님의 이 피를, 살을, 우리가 먹을 때에, 이거는 내 주관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은 우리 주관 행위요. 내가 믿음으로 먹고, 내가 소망으로 먹고, 피를 생각하고 또 깨닫고 생각하고 또 믿습니다. 깨닫고 생각하고 또 믿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 속에 내게 없는 객관 역사가 와 가지고서 내 심령 속에 역사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볼 것입니다. 이 보이는 것이 그것이 희미한 자에게는, 희 미한 자에게는 사자의 입을 봉하는 것을 자기가 볼 것입니다. 불 가운데 있으나 불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볼 것입니다. 어떤 맹혹하고 어떤 맹혹의 세력이라도 내 주관 행위로 피 안에 있을 때에, 내가 그 피에 감격해서, 피로 말미암아, 피의 것이 내가 됐을 때에, 피의 것이 내가 됐을 때에, 피의 것이 내가 되었을 때에, 피 의 소유가 내가 됐을 때에, 피의 종이 되었을 때에 그때에 나는 피조물인데 전능 자의 수족이 된 것을 여러분들이 볼 것입니다. 전능자의 지체가 돼, 내가 공연히가 아니라 내가 전능자의 지체가 되고 나는 전능자의 몸이 된 것을 볼 것이고 전능 자가 나를 통해서 당신이 역사하시는 것을 볼 것입니다. 체험 없으면 안 됩니다.
경험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피를 잊어버리면 사망입니다. 벌써 피 잊어 버렸으면 저는 땅에 속한 자이지 하나님께 속한 자는 아닙니다. 피 잊어버리면 그 시간 피 잊어버리자 즉시 땅에 속한 자입니다.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피난한 자 들은 다 죽었습니다. 오늘 기독자들은 그런 어려운 일 있으면은 그만 피 속으로 들어오는 것만이가 구원의 길인데 그만 피를 잊어버리고, 허무한 거 같으나 예수 님이 나를 대속하신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입은 것을 자기 주 관으로 믿어. 믿고, 인정하고, 대속 받았기 때문에 나는 사죄 속에서 살아. 칭의 속 에서 살아. 나는 하나님과 친결된 자로 살아. 자기 주관 행위요. 그러면 측량 못 할 객관의 능력의 역사가 자기에게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것을 구경할 것입니다.
이 구경을 해야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하시는 것을 자기가 체험하고 경험을 해야지.
말세에는, 지금부터는 기적 없는 설교를 하나님이 듣지 않습니다. 표적이 없는 설 교를 듣지 않습니다. 왜? 마귀도 연구할 대로 연구했고 성도들도 닳을 대로 닳았 기 때문에 이제 안 믿는 사람도, 김일성이도 예수 믿는 설교를 하라 하면은 옛날 초대 교회의 속사도, 속사도 교부들보다 설교 잘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예수 믿 는 데 대한 모든 상식이 그때에 예수 믿는 속사도들보다 예수님께 대한 상식이나 모든 교리나 신조가 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이기 때문에 말도 듣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무신론자도 청산유수의 설교를 다 할 수 있고, 이종교가들도 기 독자의 설교를 하라 하면 다 할 수 있고, 이제 이종교나 종교들이 전부 기독교와 같은 비슷비슷한 전부 이렇게 다 기독교화돼 가지고서 외형을 가지고 있으니까 무슨 설교를 듣고 따라갈 것입니까? 여러분들 설교 듣고 따라가지 마십시오. 표적 이 없으면 가짜인 줄 아십시오. 진짜 아닙니다. 나도 표적 없으면 가짜요.
하나님이,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도 그랬고 모든 집사들도 그랬고 모든 성도들도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에 다 표적과 기적이 따랐습니다. 암만 말해도 안 들었습니다. ‘많은 기적들과 표적들을 나타내니 많은 사람들이 믿더라’ 믿을 때 마다 다 그랬습니다. 개인들도 저 예수 믿어 가지고 성경에 말한 대로 객관의 능 력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해 주는 것이 없으면 ‘나는 가짜 예수꾼이다’ 정죄하 십시오. ‘나는 가짜 예수꾼이다. 내가 공연히 예수 믿는다.’ 성경에는 성경대로 믿을 때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역사해서 뉘든지 볼 때 ‘아,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과연 하나님이 저런 하나님이로구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사도행전인데, 오늘은 성경을 기록할 그때의 모든 교회들과 지금 다릅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금년이 백주년이라고 하는데 백주년 전에 처음에 우리 한국에 복음을 전해 왔을 때 그때의 교회와 지금과 영 다릅니 다. 그때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게 뭐꼬?’ `예수 믿는 게 뭐인고 봐 라.' `너거가 말하지마는 뭘 보고 하나님 있는지 없는지 알겠나?’ ‘하나님이 있 는가 없는가 봐라’ 하는 볼 수 있는 그런 증거를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까지 자던 잠을 깨서 다시 똑똑히 예수를 믿읍시다. 자기에 게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자기 내적 변화시키는 일을 자기에게 해서 자기가 놀랄 만치 ‘이는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내 안에 와 가지고 역사하셨다’ 하 는 내적 역사가 보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외적 무슨 자기 하는 행동에 하 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같이 해 가지고서 기적이 나타나든지, 그리 아니면 무슨 병이 낫든지, 그리 아니면 하는 사업에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든지 뭐인가 사람 이 하지 않는 하나님이 하시는 그게 나타나야, 내가 바로 믿는다 하는 걸 인정해 야 되지 되나 안 되나 세월만 보내고 자꾸 이렇게 지나가는 이것만이면 예수 믿 는다고 알고 있다가는 다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과거에 왜정 말년에도 그렇게 많 은 사람이 믿었지마는 하나님이 약간의 시험을 보내니까 전부 다 낙제하고 말았 습니다.
우리가 뭣 때문에 이럽니까?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하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맞습니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그 명 령을 지켜 행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축복하셔서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축 복을 내리신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않다,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는다, 꾸어 줄지라도 꿀 것이 없다, 모든 일에 축복하신 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해당돼 있습니까,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없어 밖에 버려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지금 당면돼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겁니까? 둘 중에 어느 겁니까? 하나님의 축복입니까, 쓸데없어 버림당해서 사람에 게 멸시 천대받는 이것이 우리의 당면한 현실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 모 든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는 이것이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현실입니까? 어느 것 입니까? 냉정스럽게 판단합시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 고 생각하는 평신도나 교역자 손들어 봅시다. 아, 들 수 있으면 드십시오. 왜 안 들어, 들지? 또. 받고 있지 왜 못 받는다 말입니까? 나도 받고 있습니다. 왜 못 받 아요, 못 받기를?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천대받고 있다는 것을 자 기가 생각하는 사람, 손은 안 들어도 나는 이렇다 하는 것을 그거 느끼면 자기들 이 다 알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내 개인으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신 자의 그분의 능력이 약속대로 내게 와서 이루어지지 안했으면 나는 가짜인 줄 알고 회개를 합 시다.
이래서, 저는 오늘 종일, 종일이라 하면 좀 거석하지마는 빌기를 그거 빌었습니다.
‘주님이여, 세월이 빠른데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성도들 다 죽습니다. 징계도 빨 리빨리 축복도 빨리빨리, 빨리 징계하고’ 징계 안 하면 우리가 회개 안 됩디다.
나는 경험해 그래. 징계 안 받고는 회개가 안 돼. ‘사랑하는 자에게는 징계를 주 신다 했는데 왜 징계를 안 줍니까? 징계를 줘서 회개하면 즉시 징계 주기 전보다 도, 당신 능력 있으니까 완전히 회복을 시키고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고, 징계해도 회개 안 하거든 죽기까지 징계해서 죽여 버리든지 어짜든지 회개를 해야 되지, 고 쳐 이래야지 세월만 지나가면 어찌 됩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래 기도합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주여, 나에게 축복 주실 만한 뭐 그런 것이, 축복 주시지 못할 만한 것이 뭐 있거든 내가 못 깨닫거든 그 면을 징계를 줘서 병이 들든지 어짜든지, 당장 직장에서 모가지가 떨어져 내려오든지 어짜든지 무슨 징계든지 징계를 줘서라도 내가 고칠 기회에 고치고 가야 되지 못 고치고 어정어정 세월만 보내면 어짭니까? 어떤 징계라도 나에게 줘 가지고서 나 로 하여금 고쳐서 죽기 전에 당신의 권능과 당신의 축복을 내가 똑똑히 보고 받 아서 이렇게 한번만 지나가면 없는 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가야 안 되겠습니까? 당신이 날 위해서 피흘려서 구속해 줬는데 내가 이 구원 이루지 못 하면 당신 한 일 헛일 아닙니까? 어짤라고 이라고 있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하 나님 앞에서 독촉을 하고, ‘징계를 회개하거든 즉시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배나, 회복시켜서 축복으로 갚아 주시고, 회개 안 하면 어데까지든지 징계해서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데까지 해서라도 회개하고 가야 되지 이와같이 있다 가면 어짭니까’ 하는 것을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해서 발 벗고 나서 가지고 이 제 준비 해야 되지 뭐 때는 얼마 남지 안했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우리가 피를 떠나도 아무 표 없고 피 안에 있는 줄 알아도 아무 표 없고 하는 것 은 하나님께서 성전 밖 마당으로 내어던져 버린 게 아닌가 합니다. 성전 밖 마당 은 상관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는 측량하지 말아라 벌써 세상에게 내어줬다’ 이랬습니다. 우리가 그라면 죽는 게 낫지 살아 있으면 뭐 할 것입니까? 공연히 주 여 주여 부르고만 있으면 뭐 할 것입니까? 우리가 피를 떠나면 즉시 안 죽어도 죽은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 있으며 완전히 죽어 멸망했다 이랬습니다. 가나안 간 거는 하나도 없었어. 여호수아 갈렙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나 우리의 매일 매일의 언행 심사 생활에서 내 이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을 살리지 못하고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은 다 매일 매일 솔빡 솔빡 전부 몰사해 가는데, 몰사해 가는데 밥만 먹고 지내면 그까짓 거 뭐 할 것입니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는 땅의 것을 보고 살지 않지 않습니까? 이런데 피를 벗어서 전체 가 전멸이 되는 생활이지마는 하루 종일 혀로 죽을 일을 하고 마음으로 죽을 것 만 마련했고 몸뚱이로 죽을 일만 해도 죽은 줄을 모르고 죽은 거 한 줄도 모르니 까 우리는 벌써 감각 없는 자 아닙니까? ‘실상은 죽었도다, 살았다는 이름은 있 으나 실상은 죽었도다’ 사데 교회가 아니고 뭐입니까? 우리 주관이 느끼든지 못 느끼든지 예수님의 피를 잊어 버렸으면 죽었습니다. 예 수님의 피 밖에서 살면 벌써 애굽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입니다. 거게는 죽음 외 에 딴거는 없습니다. 그런고로, 지금이라도 우리가 피 안으로 들어갑시다. 피 안에 만 생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피로 바른 그 문 안에 거게만 생명이 있었지 밖 에는 전부 사망입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만 생명 있지 밖에는 전부 사망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거는 우리에게 그림자로 보인 것입니다. 그는 그림자요 우리는 실상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 이 대속 밖에는, 대속 밖에는 생명은 없 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없습니다.
공연히 우리가 세월만 허비하고 목사라는 이름만 가지고 죽이는 일 죽는 일 하지 말고, 그저, 죽든지 살든지 당신이 그라면 우리의 생명을 부르든지, 땅에 있으면 뭐 할 것입니까, 있기를? 개인도 하나님의 초자연의 기적이 없으면 나는 죽은 자 요 버린 자이기 때문에 내가 죽은 줄 알고 내가 피 밖에 피를 벗고 지금 날뛰고 있는 줄 알고 주님의 능력과 기적과 역사가, 객관의 능력의 역사가 내게 와서 할 수 없는 것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그분이 와서 척척 해 가지고 되어지는 그 일 이 내 눈에 확실히 실감되기까지 우리는 피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세째로, 양의 고기를 먹지 안하면, 양의 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을 겸하여 먹지 안하면 우리는 애굽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양의 고기를 먹지 안하면 우리는 피 난할 영양을 얻지 못합니다. 실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잊어버린 하나님 찾고, 잊어버린 피를 찾고, 예수님의 피와 살로 양식 삼는 요거 는, 요 세 가지는 객관의 은혜입니다. 객관의 은혜. 이 세 가지는 객관의 은혜로서 내 주관이 이 세 가지를 가졌을 때에 내 힘이 아닌 객관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내게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는 객관의 능력이 역사해서 초자 연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아무래도 하나님 찾아야겠고, 예수님의 피를 찾아야겠고, 양의 고기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에게 이 객관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 고 역사하는 것을 우리가 체험합시다.
우리가 다, 과거에 교역자회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표적을 일으켜 서, 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하지 안하면 말세에 하나님의 도를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가 없다, 지금은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야 될 때요 하나님 의 표적이 역사해야 될 때라’ 이것을 말하니까 교역자들 가운에 여럿이, ‘만일 그라면은 많은 환자들이 와 가지고서, 많은 환자들을 메어다 놔 가지고 환자들이 거게서 죽으면, 죽으면 나중에 가서 고소도 당할 것이고 또 그래 놓으면 그거 큰 이제 큰 폐단이 일어날 터이니까 그 문제는 어떻게 할라고 자꾸 지금 표적이니 그런 걸 말할랍니까?’ 이라면서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거야 내가 오 라 한 거 아니고, 하나님이 낫아 주시면 나을 거고 안 낫아 주시면 못 낫는 거고 그렇지 뭐, 그러면, 그걸 그렇다고 해서 고소당하면 또 뭐 내가 저지른 거 아니니 까 고소당하면 또 징역 가는 거고 또 징역 가서 또 죽으면 죽는 거고, 당신 뜻 이 루다가서 뭐 죽으면 죽는 거고 그렇지 그까짓 거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랬는데,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가 구원 이루는 표준을, 구원 이루는 표준을 입술로만 찔찔 말하면 이것이 구원 이루어지는 것이라, 말만 하면 이루어 지는 것이라, 그저 형식으로 이렇게 예수 믿는 형식만 가지고 주일이나 지키고 속 으로는 엉망의 죄악을 범해도, 하나님의 계명을 다 마구 삼켜도 그저 예수 믿는다 는 이름만 있으면 된다는 이것으로써 우리가 표준을 삼았기 때문에 이 표준이 아 주 이것은 참 생각도 못할 만치 아주 백 프로 틀린 줄 압니다. 이 표준이 백 프로 틀렸습니다. 이 표준을 완전히 바꿉시다.
평신도도 예수 믿는 자기에게 하나님의,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이 자기 사업에도, 자기 가정에도, 자기 심령에도, 자기 목회에도, 자기 행동에도, 자기 거처에도, 어 쨌든지,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을 믿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의 도우심과 축복을 내가 믿는데 암만 믿어 봐야 그분의 도움과 축복이 내게 없는데 내가 뭘 믿을 겁니까? 믿는 걸 치워 버리든지, 예수님을 부인해 버리든지, 다른 사람은 예 수 믿어 효력이 있는데 내게는 효력이 없으면 내가 예수를 부인해 버리든지 내가 예수 믿는 것이 가짜라 그렇다든지 뭐이든지 하나 규정을 지워야 될 거 아닙니 까? 예수님이 없어 그렇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하십시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고, 전부 인간 운동으로 뚤뚤 뭉쳐 가지고서 구석 구석마다, 권찰이라도, 반사라도, 교역자라도, 장로라도, 뭐 부흥사라도 모두 다 그 속에는 전부 자기 사욕이라는 우상이 들어서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가 뜩가뜩 쌓여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머리에 예수를 발라 가지고 이라기 때문에 하 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안 올 수 없는 것입니다. 네가 예수 믿는 표를 내놔라 보 자. 비쩍 말라 가지고서 빚만 지고서 부도만 내고, 남의 돈만 헐어 내고 도둑놈만 돼 가지고 있는데 무슨 예수 믿는다 말이오! 예수 믿는 표를 내놔라 보자! 예수가 너거 도둑놈 만드는 게 예수냐! 너거를 도둑놈 만드는 게 예수냐! 남의 돈 떼 먹 게 하는 것이 예수냐! 빚 뭉텅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예수냐! 남한테 욕 얻어먹게 하는 것이 예수냐! 예수는 그런 예수냐! 치워 버려라! 그런 예수는 더러운 예수다! 세상이 욕하면 욕 얻어먹지 우리가 어짤 거요? 우리가 이 가짜를 치웁시다. 가짜 를 치우고 참된 진실한 신앙으로 일어섭시다.
성경에 당신이 된다고 말씀한 일이 왜 우리에게는 안 됩니까? 성경이 거짓말이겠 습니까? 우리에게 고장이 있는 것입니까, 성경에 고장이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고 장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고장이 있지 그분에게 고장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내나 오늘까지 그 성경 가지고서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얼마든지 경험하지 않습니까? 하루를 믿으면, 하루를 믿으면 당신의 기적이 하루 내 하는 일에 동행해 주십니다. 일 년을 믿으면 동행해 주십니다. 우리가 당신의 초자연의 능력의 축복이 올 수 있는 일을 할 때에 즉시 그분의 도움이 우리에게 온 것을 볼 수 있고, 도움이 떠나기 전에 내 마음은 팔방 미인으로, 눈에 보이는 대로, 생 각나는 대로, 한 시간도 내 마음이 일정하지 못하고 양사방 창기 모양으로 돌아다 니며 이래 해서 내 마음이 벌써 부서지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축복이 따라서 헐 어진 것을 우리가 뭐 부인할 수가 없고 얼마든지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개인이든지 목회자든지 우리에게 초자연의 능력, 성경에 말한 대로 당신의 축복이 실지로 오기를 기다립시다. 안 오면 무슨 고장 났으니까 이 고장을 고치도 록 해야 되지 안 온데도 그냥 꾹 참고, ‘원 이래 예수 믿는 것이라.’ 예수 그래 믿는 거 아닙니다. 성경에는 보니까, 다른 거 냅두고, 다른 데 있는 거는 교훈이기 때문에 모르는데 사도행전은 예수 믿는 행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 수 믿는 사람들이 행해 나간 것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의 행동을 기록해 놓은 것이 사도행전이라. 거게는 전부가 기적과 축복이 답뿍답 뿍 쌓였어. 회개가 답뿍답뿍 쌓였어. 하나님과 동행이 답뿍답뿍 쌓였어. 그게 예수 믿는 거라. 다른 데는 교훈만 말해 놨고 거게는,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된다 하는 것 을 기록해 놓은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된다 하는 걸 기록해 놓은 것이 사도행전이오. 다른 데는 예수 믿는 거, ‘예수는 이렇게 믿어야 되고 이렇게 믿어야 되고’ 이렇게 교훈만 해 놨지, ‘요렇게 믿으면 요리 된다, 요렇게 믿으면 요래 된다’ 그게 별로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면 실지로 어떤 흔적이 나타 나느냐 하는 거는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참 예수를 믿어서 우리가 어쨌든지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고 해 가 지고서 우리에게 잘못 된 거 있으면 고쳐 가지고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같이 하는 것을 확실히 내가 봤고 믿어져야 공산주의 독침 앞에서도 담대히 우리가 증 거할 수가 있고 공산주의가 아무리 남침해도 기쁘고 즐겁게 사드락 메삭 아벳느 고같이 우리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도를 증거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무슨 세상을 이기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고 ‘축복을 안 줄라면, 축복을 안 줄라면 징계를 주 시옵소서. 축복이나 징계나 둘 중에 하나를 주십시오. 축복 안 주실라면 징계를 주십시오. 징계 줄 일이 없으면 당신이 축복 줘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따 집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따지는 기도 해야 되겠습니다. 따지는 기도. 출애굽기 32장에 볼 때에 모세는 하나님에게 따지는 기도 했습니다. 따지는 기도 할 때 하 나님은 즉시 그 기도 들었습니다. 따지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당신은, ‘나로 더 불어 변론하자’ 따지자 말입니다. 따지자. `내가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당신이 축복 줘야 되지 않습니까?’ ‘아, 네가 이렇고 이렇고 잘못 됐으니까 그걸 고쳐 라’ ‘아, 그렇습니까? 내가 이렇고 이거 이거 내가 잘못된 거 고쳤습니다. 주십 시오.’ 이게 변론입니다.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