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3 13:45
삼대절기
1985. 11. 23 토새벽
본문:출애굽기23장 14절∼17절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 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육체의 이스라엘은 우리 신령한 이스라엘의 그림자요 또 거울이라 그렇게 하셨습 니다. 그림자를 가지고 본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 거울 가지고도 자기를 잘 찾 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이스라엘의 짧은 한 토막을 살펴 보면 그 요셉에 게는 하나님께서 참 동행하셔서 외부에는, 외부에는 모든 환난이었으나 그 내부에 는 심히 환영과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 요셉이만 그런 게 아니고 요셉이로 말미암 아 그에게 소속한 그 이스라엘 족속 전체가 다 그때는 애굽에게 존대도 받았고, 아주 참 귀한 대우를 받았고, 또 환영을 받았고, 협동을 받았고 그 모든 일들이 다 형통해졌었던 것입니다. 그라다가 그후에 차차차차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존대를 받는 대우가 자꾸 변해졌고, 또 환영도 변해졌고, 또 서로 협동해 주는 협동도 변 해졌고 그 모든 다 일들이 그러니까 형통치 안해졌습니다. 우리가 그 토막을 우리 의 거울로 삼아야겠고 또 그것을 우리의 그림자로 우리가 삼아서 진리를 찾아야 겠습니다.
요셉은 그는 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를 구하고 거기 대해서 참 주력을 하고 전심전력을 기울인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셉 자신도 외부적으로는 감 당키 어려운 그런 그 외부를 만났지마는 그럴 때마다 그것보다도 그 넘치는 하나 님의 위로와 동행을 그가 늘 체험하고 살았습니다. 바울이 간증하기를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은 모든 그 핍박의 박해가 큰 것보다도 주님의 위로는 더 넘친다 이랬 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 이하에 보면은 그가 보디발 집에 갔을 때에 여호와 하나 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 주인 이방인도 ‘요셉이 섬기는 그 신이 요셉과 함께 한다’ 왜? 그의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하다 이랬습니다.
형통하다. 이래서 요셉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와 전부를 다 위임을 시켰을 때에 그 위심시킨 일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축복하시고 그 모든 일이 다 잘 형통해지 는 것을 보고 그를 자기 가정의 총책임자로 그렇게 세웠습니다. 또 그가 뭐 만난 일이 그 보디발 아내로 만난 일도 참 그 심히 어려운 시험인데 그럴 때도 그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늘 기다려서 그 어려운 시험을 자기로서는 이겼습니다. 자기만 이겼지 다른 사람 들은 그걸 아무도 몰라줬고 그 억울함을 당했지마는, 또 그가 감옥에 갔을 때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그 모든 일들이 형통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평소 생활에서 자기는 무엇을 준비했느냐? 자기가 살고 있는 외부적인 모든 세상과 또 그것을 창조하신 자기의 여호와 하나님과를 잘 구별해 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셨을 때에 외부적으로 어떤 뭐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 도 그것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크기 때문에 그는 어데서나 이제 신앙 경험과 체험에서 강하고 담대함을 얻었습니다. 어느 지경에 이를지라도 하나님만 나와 함 께 하시면 문제 없다. 그러기에 자기 외부적으로 어떤 뭐 이런 저런 어려움이나 변동있는 그것을 걱정하거나 겁내지 아니하고 그저 하나님과 자기와의 이렇게 떨 어질까 혹 하나님 없이 자기가 살까 하는 거게 대해서만 두려워하고 늘 조심했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분의 모든 일이 형통했고 또 그분이 애굽을 가서 그렇게 고직에 있을 때에도 그는 가진 모든 자기의 소유라면 여호와 하나님 한분 뿐이고, 또 그분의 모든 지능이라면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고, 또 그분의 모든 형통과 성공이라면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라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동행하기를 늘 구했습니 다. 그분이 말마다 할 때에 하나님이 자기와 동행하는 것을 늘 말했습니다. 말할 라고 한 게 아니라 그 말하는 그런 토막들을 보면 자기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면에 제일 자기는 조심하고 거게다가 전 신경을 기울여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것이 자연적으로 나타난 말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바로에게 처음에 등용될 때도 그 말이 대답이 그랬고, 또 자기를 죽일라고 하던 형제들을 만났을 때도 그 가 그렇게 관용성이 있고 이해성이 있고 관대한 그것도 뭐 다른 데서 온 것 하나 도 없고 그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고 면을 살피고 함으로서 그 모든 일 들이 다 되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만 그렇게 존대받는 게 아니 고 요셉이가 살아 있는 동안뿐 아니고 요셉이가 죽고 난 다음에도 오랫 동안 이 스라엘은 애굽에 있으면서 참 대존귀함을 받았습니다.
그라다가 차차차차 애굽에서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그 대우, 요셉에 대한 참 사은 의 그 모든 행위가 차차차차 빈약해졌고 대우도 성글어졌고 협동도 없어졌고 그 라고 난 다음에는 차차차차 애굽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하는, 처음에는 대우가 없다가, 나중에는 환영이 없다가, 나중에는 협동이 없다가, 나중에는 또 배척이 있 다가, 나중에는 압박을 주다가 마지막에는 아주 남자는 다 죽일려고 하는 그런 큰 전멸의 박해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살펴볼 때에 그 원인이 어데 있는가? 그 원인은, 우리는 지나간 남 의 일이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는 정확한 판단이 납니다. 우리 사람이 자기에게 가 까와질수록 어두워지고 자기에게서 멀어질수록 그 일의 비판이나 평가가 정확해 집니다. 그거는 무슨 사고인고 하니 우리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주 자기 중심이라는 그놈이 들어서 우리를 자꾸 어둡게 만들기 때문에 그러하고, 자 기를 멀리 떠난, 자기 시대보다 먼 시대, 남의 시대, 과거의 시대나 또 지역적으로 도 자기와 먼 지방, 또 사람으로도 자기와 먼 사람 이렇게 자기와 먼 데는 모든 것이 그래도 좀 정평 정가에 가깝지마는 자기와 가까와지면 자꾸 그만 어두워지 고 그래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기가 아닌 자기,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원수가 내 안에 있어서 그것이 모든 것을 나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어 두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점 나중에 그런 박해까지 이르렀으니 그 원인이 어데 있는가? 이래 살필 때에 우리는 그 정평을 하고 정가 를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에게는 몰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형통함을 받고 대우받은 것은 요셉이 그 신앙 행위의 영향이라고 우리는 말하지 안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자기에게는 공로가 없는데 뭐 때문에 애 굽에서 그렇게 대우를 하고 존대를 했겠습니까? 야곱이 죽었을 때에도 그들이 칠 십 일 동안이나 온 애굽이 애곡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 된 것이 요셉이 때문에 그 렇다는 것을 우리가 확정 지울 수가 있고, 그러면 요셉이 때문에 그리 됐으면 요 셉의 어떤 점에 대해서 그리 됐던가 하는 것을 우리가 정확히 찾아볼 수가 있습 니다.
그것은 다 요셉이 여호와 하나님과 자기와 같이하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이해 주시는 여기에다가 중심을 두고 함께 해 주시기를 자기는 원했고, 그것만 으로 자기는 모든 해결 지워 나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차차차차 신앙 경험하고 체험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사는 생애에는 무슨 참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늘 경험하고 체험이 자라나왔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이 어려움도 문제가 없는데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면 나는 절단 난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이라야 자기를 돕고 자기의 모든 것을 해결 지워 줄 수 있다는 그 면을 바라봤고, 또 실지로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셔서 모든 문제 가 오히려 큰 해가 큰 유익이 되는 그런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어떤 환난 중에라도 문제가 없다, 또 온 주위 환경이 나를 다 대적하고 공동적으로 집중 멸살을 시킬라고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보다 더 크셔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문제는 없다, 그것이 늘 그의 신앙 생 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에 총리 대신 될 때에도 그는 뭐,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서 애굽 나 라를 어떻게 잘 정치를 할까, 자기가 어떻게 유력한 그런 정치가로서 명예를 남겨 둘까, 또 자기가 맡은 그 일에 대해서 실수 없이 잘 할까 하는 그런 데에 요셉은 신경을 쓰지를 아니한 것이 보여집니다. 그는 단 그저, 할 때도 하나님이 나와 함 께 하셔야 된다. 이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겠느냐,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 이 나를 떠나시겠느냐, 혹 내가 하나님을 잊어 버렸느냐, 나 혼자 날뛰느냐, 하나 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내가 움직이느냐, 그러면 이 일에는 내가 이렇게 하면 하 나님이 나와 동행을 계속하시겠느냐,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동행이 나를 떠나시겠 느냐 고게만 전중심을 기울이고 촛점을 두고서 고렇게 요셉이는 살았습니다. 그러 니까 그분이 뭐 정치학을 공부하지 안한 그런 사람이지마는 아주 그는 실수 없는 자기의 맡은 행정을 했었습니다. 자기 뿐만 아니고 그 영향으로써 자기에게 소속 한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상관도 없는 애굽 사람들에게 그렇게 환영을 받았고 존 대를 받았고 모든 일이 형통해졌고 협동을 받았고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차차차 변해 가지고서 이스라엘을 전멸을 시킬라 고 하는 데까지 그렇게 변해져 버렸느냐? 너무도 백 팔십도로 그렇게 변해졌습니 다. 그 변해진 그것을 또 살펴보면 이스라엘들은 요셉과 생활이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그럴 때에 자기네들에게 환영이 되면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그런 거 는 잊어버리고 자기네들이 무슨 좀 잘나서, 인물 잘난 자는 내가 인물이 잘났기 때문에 이렇게 대우한다, 또 지혜 있는 자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말 잘하는 자는 내가 말을 잘하니까 이렇게 됐다, 내게는 뭣이 어때 그렇다, 전부 자 기의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이 되어졌다고 이렇게 영광을 자기가 따서 자 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아, 내가 어떤 것을 본받아 가지고 이래 했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점점 자기에게로 돌아갔고, 또 자기를 믿고 의지 했고, 자기를 가지고서 모든 일을 할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구별된 백성으로 하니님과의 관계는 끊어 버리고 점점 애굽과 같은 그런 사람들이 돼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결말은 그렇게 참혹하게 됐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생명이 없는 실상이 없는 이런, 교리 이 신조, 이 지식만 가지고 우리가 지금 썩은 생활을 하고 참 귀한 기회에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는데, 다만 그들의 대조적인 그 시작과 결과를 볼 때에 그것을 뭘로 우리가 판정을 지워야 되겠느냐? 그 원인을 판정을 우리가 바로 정확히 판정을 해야만 우리의 남은 생애가 실패되지 안하겠습니다.
그래서 지난 밤에도 말한 것같이, 그들이 하나님을 찾았을 때에 하나님 한 분으로 그 모든 일이 다 형통해지고 존귀해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먼저 제가 나타났고, 그 다음에는 뭐 민족이 나타났고, 그 다음에는 저거 수단으로써 애 굽하고 친밀히 되어지니까 그래 되는가 해서 그들의, 성경을 읽어보면,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그 아주 애굽과 친밀해서 마지막에는, 처음에는 애굽을 멸시했다가 나중 에는 애굽에게 머리를 숙이고 아부한 일을 했고 거게 들어 붙었고, 또 애굽이 하 라 하는 대로 복종하면 될 줄 알고 복종도 했고 오만 노릇 다 했습니다. 하니님 떠난, 하나님을 잊어버린, 하나님 잊어버린 것 고 외의 것은 애굽에서 지낼 때에 뭐 일등으로 그들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썼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처세하는 모든 것을 처세술이라는 그런 책도 나왔는데 그런 것도 읽어보면 이 처 세하는 그 처세에 대한 아주 장점은 이스라엘들이 다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결 과가 그렇게 참혹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그 원인이 뭐인가? 그들은 단지 요셉과 대조되는 생활은 요셉은 하나님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하나님을 놓지 안할라고 하나님과 떨어 지지 안할라고 이렇게 한 것이 그들과 대조적이고 그들은 하나님은 뒤로 두고서 인간적으로 애굽하고 어떻게 해결해 가지고서 할라고 하는 그것이 그들의 생활이 었습니다. 그러면 요셉과 전이스라엘이 대조되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한 것이 요셉 은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힘을 썼고, 또 이스라엘은 하나님은 잊 어버리고 애굽으로 더불어 동행하고 인간으로 더불어 함께 할라고 애를 쓴 그것 으로써 확실히 판정이 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기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이와같이 하셨다는 그것을 우리가 확정을 지우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되겠습니다. 또 자기에게 무슨 죄를 지어 가지고서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무슨 형통 이나 좋은 일이 왔으면 이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지 안했기 때문에 세상으 로 온 것, 세상으로 왔다 말은 악령으로 왔다 말이요, 악성으로 왔다 말이요, 모든 악한 그 습성들로 온 것이니까 이것은 다 하나님께로 오지 안했기 때문에 화근이 된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지 안한 것은 아무리 축복이라도 화근인 것 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또 자기가 신앙 생활을 지켜서 하나님의 그뭐 동행은 못 할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것을 피해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명령 하시는 것을 자기가 지킨다고 지켜 가지고서 그 일이 무엇이 좋은 결과가 왔으면 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왔다 하는 것을 판정을 지우고 하나님에게 감사와 영 광을 돌리는 일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런데, 오늘은 우리가 여게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지를 못했고, 또 여게 대해서 확고한 체험이 없습니다. 자기가 무슨 별 굴곡이나 그런 파탄이 없고 그저 거게는 아무런 평범하게 이렇게 일생을 지내가는 그것보다는 큰 환난에 빠져도 오히려 거게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자꾸 자기가 만나지고, 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는 하나 둘 해결 받아 보는 그런 신앙 경험과 체험이 있어야 되겠 습니다.
얼마전에도, 지금은 우리의 사색하는 각도가 바꾸어져야 하겠다, 우리가 목회하는 이 모든 각도 이 처세하는 그 방편이 바꿔져아 되겠다. 바꾸어져야 되는 것은 뭐 이냐? 지금은 뭐 이 자꾸 설교만 주력을 하고, 또 이 인간적인 방편, 제가 어떤, 우리 진영 목사인데 그 주보를 누가 하나 갖다 줘서 주보를 봤습니다. 주보를 보 니까 참 물샐틈 없이 모든 것을 조직을 해놨읍디다. 물샐틈 없이 조직을 해놨는데 그런 조직을 가지고서 쓰는 것도 좋기는 좋지마는 그런 조직을 가지고서 하다 보 면은 그런 조직에만 주력하게 되고, 또 그 조직의 모든 근원들은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과만 자꾸 친근하게 돼지고 거게만 자꾸 상대해서 내가 대우하게 되기 때문 에 하나님과는 자기도 모르게 차차차차 멀어지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 한번 그런 말 했습니다. 교역자회 때에, 이런 것 하면은 하나님 과 멀어지기 쉽다. 그런 것을 지금 찾고 있는 분들이 우리 진영에 좀 다 고등 지 식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에 많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그 결과를 볼라고 보고 있 습니다. 그 결과가 어찌 되나 보자. 지금은 형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 과가 어데까지 형통해질 건가? 저는 생각하기를 분명히 그는 인간의 수단 방법으 로 이와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수준까지는 도달하지마는 초인간적인 무 엇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시작한 것이 대단히 미약하고 허무하지마는 그는 인간으로 무엇을 할라고 하지 안하고 하나님으로라야 된다 하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으로 뭘 할라고 이래 하니 심히 빈약하고 허무한 것 같지마는 그는 끝이 없이 자라가서 앞으로는 반드시 초인간 적인 무엇을 그가 가질 것이다 그렇게 저는 보고 지금, 내가 일찍 죽으면 못 볼 터인데, 한 몇 해 동안에 빨리 돼서 내가 그것을 보고 죽을 수 있도록 그렇게 됐 으면 좋겠다 해서 어제도 그것을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이여 아무래도 지금 때가 급하니까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 준다고 했기 때문에 이거 저주가 아닙니다. 주님이 왜 우리를 사랑치 안하시 고 왜 이렇게 주님의 사랑이 뜨겁지 않습니까? 우리는 버린 자식입니까? 주님의 징계도 빨리빨리, 축복도 빨리빨리 이렇게 징계와 축복을 빨리 섭리해 주시옵소서.
만일 징계해서 안 되면은 꼬꾸라져서 죽을 때까지도 징계를 해 주시고 회개하면 은 즉각 그 징계로 말미암아 상한 상처를 다 치료하시고 배나 축복하셔서 하나님 이 축복하시는 것을 자타가 환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하는 그것으로써 하나님 앞에 계속 기도하다가 그래 끝을 마치고 내려왔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 뭐라고 쌓아도 남한에는 기독교의 전성기라 고 볼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전성기라고 볼 수가 있고 기독교의 그 전부기라, 기독교가 전부로 썩어가고 있는 시기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외부에는 아주 전 성기지마는 내적으로는 전부 썩었습니다. 뭐 교역자라 해도 전부이 제 욕심 다 차 려 가지고 전부 예수 믿는 것을 자기 육의 성공하는 방편으로 삼고 있지 내야 어 찌 됐든지 하나님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그것으로써 삼고 있는 사람 이 별로이 없습니다. 내야 어찌 됐든지 당신의 뜻만 이루시옵소서 하는 그런 사람 은 없고 목회를 요래 할까 조래 할까 해 가지고서 전부 제 실속 이거는 알뜰히 차립니다. 뭐 하나로부터 열까지 다 차립니다. 그 뭐 하나도 빠지지 안하고 고것 만 딱 챙겨서 고게만 기준하고 고게만 중심해 가지고서 고것만 다루고 있지 하나 님이 나를 세우셨으니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나 안 이루어지나, 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느냐 안 하시느냐 거게 대해서 살피는 눈은 완전히 소경이 돼 가지고 멀어져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눈을 뜨자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금은 청산 유수의 설교보다도 뭐 이제 아, 그 교회가 이런 방편을 썼기 때문에 그 교회가 갑자기 커졌다, 또 그는 방송 방편을 썼기 때문에, 또 어떤 정권 을 거머쥐고 이렇게 정치 바람을 탔기 때문에, 뭐 별별 일 다 있습니다. 빌리 그래 함은 그 운동, 그 운동은 보면은 정치의 바람을 탔어. 정치의 바람을 탄 것이 아무 리 유명해도 노아 홍수를 이기지는 못합니다. 인간을 초월하지는 못합니다. 인간 의 모든 세력이 절단날 때에 그게 절단나지, 모든 인간의 모든 그 정권의 세력이 절난날 때에 그때에 하나님 한 분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단계에 들어설 때에 하나 님의 도우심이라 하는 것은 입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래서, 요셉이 그는 자기가 그저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런 이름으로 만족하지를 안했고 자기 하는 일에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나 안 해 주시나 이것을 자기가 보 고서 동행 안 해 주면 그는 죽을 지경입니다. 그 온 세상에 뭐 형제간들이 그렇게 죽일라고 구덩이 집어넣고, 또 상품으로 팔아서 애굽으로 종으로 팔려 보내고 이 래도 그는 눈을 깜짝거리고 보고 있는 그 주시가 뭐이, 뭐를 주시하고 있느냐, 뭘 보고 있느냐? 세상이 어찌 하는 그거는 그는 상관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 께 하시느냐, 하나님의 도움이 있느냐 고게만 자꾸 눈을 뜨고 봤습니다. 이래서 한 번 두 번 경험 했기 때문에 그는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당할 때에 그렇게 놀라지 안하고 어려워하지를 안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셔서 어려운 그것보다도 뛰어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자기에게 나타난 것이 자꾸 경험되고 체험됐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세상에서 어려움이 오면 ‘아, 하나 님의 도우심이 또 오겠다.’ 바울도 그 생활했습니다. ‘세상에 모든 박해가 큰 것보다도 더 하나님의 위로가 더 넘쳤다, 또 사자가 나를 엉크려서, 엉크려서 나를 삼킬려고 입을 벌리고 내게 달라드는 그보다도 더 크신 주님이 내 곁에 서셔서 사자의 입에서 나를 구원하셨 다.’ 그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는 거게만 눈을 뜨고 있었고, 세상이 잘되는 거게 대해서 눈을 뜨지를 안했고, 또 세상의 도움을 받아 가지고 인간들의 수단 방법을 써 가지고서 뭣이 형통한 그런 것은 신앙의 사람들은 눈을 뜨지 안합니다. 요셉이도 거게 눈 뜨지 안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거게 눈 뜨지를 안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거게 눈 뜨지를 안했습니다. 아, 세 상하고 어떻게 해 가지고서, 어떤 방법 써 가지고서 그들은 어떻게 성공했다. 세상 방편과 힘을 가지고서 성공한 그런 것을 아예 그들은 안전에 두지를 안했습니다.
안전에 두지를 안했고 다만 하나님이 자기와의, 크고 작고 간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셔서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동행하심으로 거기에 구원이 된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함께 하심, 하나님이 위로 그것만을 눈 뜨는 그것을 봤어.
오늘 우리 진영에서 그런 수단 방법 가지고 지금 아주 교회들이 부흥하고 있는 것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대로 가면은 마지막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 님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 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진영뿐 아니라 우리 한국에 이렇게 대교회를 이루었다, 대교회를 이루었다, 대교회 이루는 그 대교회 주력의 방법마다 다 그게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는 대로는 다른 사람들은 훼방을 하지마는 ○○○, 서울에 ○○교 회는 그들은 그렇게 대교회가 된 그 원인이 처음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 이 는 정치의 바람을 타고서 됐다 이렇게 사람들이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내부에 들 어가 보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그들이 내가 한 번 잠깐 그 설교하는 그것을 테이프를 누가 갖다 줘서 들어봤는데, 보니까 그들은 서 로 만나면 말하기를 인사하기를 ‘오늘도’ 뭐라 하더라? `하나님의 기적이' 예? 아마 내가 고걸, 그 뭐 인사가 있어요. 그들이 만나면 인사하는 것 누가 들어봤어 요? 예? 예? 기적? 아, 기적이 인사던가? 예? 뭐? 구원? 구원 아니오. 하나님 기 적이라. 인사하면서, 서로 만나면 인사하면서 아, 인사하면서, 떡 절하면서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을 기적을 만날 것이라고, 하나님의 기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말 해.
기적이 있다던가 기적을 만난다던가 그게 인사요. 인사하는 인사가 기적이라.
그러니까, 거게서 뭐 금식 기도원이라는 데서 나오는 말도 전부 그들이 써놓은 그 잡지에 보면은 기적 소개라요. 전부 기적 소개. ‘이런 기적이 있다. 저런 기적이 있다.’ 그 너무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하는 이때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기 적을 주장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셔서 오십만 교인이랍니다, 오 십만 교인. 뭐 찍해야 몇십 명 그리 안 하면 한 이삼백 명 교인을 데리고 있으며 할 말이 없으니까 ‘성경에 벌써 대교회 주의는 성경적이 아니다. 한 이삼백 명이 그게 성경적이다.’ 이걸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신문에도 내고 그렇게 잡지에까지 써낸 것도 내가 봤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너는 평생 그래라 하나님이 딱 정해 놓고 고 입으로 항복을 하기까지 하나님께서 만들 것입니다. 아, 예수님은 그 때 당시에 그뭐 모인 것이 사나이 수만 해도 오천이나 모였다 했으니까 아이까지 모이면은 얼마 되겠소? 그때 수로서는 그 수는 초시대입니다. 그 시대는 그런 게 뭐 십분의 일도 모인 일이 없었습니다, 그 시대는. 지금은 뭐 오백 만이니 오십 만 이니 하는 거는 다 보통 아닙니까? 지금은 몇천 만이 모이는 것이오. 그래야 지금 이 시대를 초월한 게 되겠습니다.
그랬는데, 그런 것을 조롱하고 훼방하면서 그 뭐 흠점을 잡았는데 다른 사람 발표 해서 뭐 제사다 뭐이다 그거 또 뭐 죽은 사람이 또 뭐 안 죽고 살아난다 뭐 어짠 다 했다 그래 가지고서, 말하다 보면은 그런 수도 있을 수가 있지요. 그래, 그런 거는 다 그런 뭣 때문에가 아니고 흠을 잡을라고 해도 그 자기 사욕으로 더러운 걸로가 아니고 전부, 흠을 잡혀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를 행해서 다 흠이 잡혔지 다른 거는 아니었습니다. 또 제서 문제도 넉넉히 그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훼방을 하고 좋은 그런 거는 본뜨지 안하고서 전부 엉뚱한 본을 떠 서 서울에 그 우리 진영에도 좀 큰 교회들은 다 그 본 다 뜨고 있습니다. 아무 데 뭣을 해 가지고 어떻게 되는가? 인간들의 수단 방법 그것은 다 쓰고 있습니다. 다 쓰고 있고, 기적은 그때 말하니까 반대를 했소. 그 반대한 자에게는, 그자에게는 기적이, 자기 목회에는 기적과 표적이 하나도 나타나지 안하기를 원하면 안 하기 를 원하다고 하나님 앞에 작정을 하십시오. 그 가증스러운 입술들인 것입니다.
다윗이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이런 것 저런 것 없이 다 이래 했지마는 세상을 떠날 때는 그분에게 마찰된 것을 낱낱이 솔로몬에게 말했어. 솔로몬은 어리기 때 문에, 솔로몬은 위인이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다윗이 세상을 뜰 때에 열왕기상 2 장에 보면은 네가 누구는 어떻게 하고 누구는 어떻게 하고 그 범위를 말해서 그 범위를 넘어갈 때는 그는 어떻게 처리하고 그는 죽여 버리고 그는 용납지를 말라 고 이렇게 해서 그 처리할 것을 낱낱이 유언을 하고 떠났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자기가 대립하는 그런 입장에 서는 사람, 보면 압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을 팔아 먹고 있느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느냐, 하나님 한 분으로써 모든 전부를 삼고 그 수단이나 방법이나 그래 하고 있느냐, 모든 인간들의 잡탱이의 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끌어 들여 가지고서 그것을 지금 수단과 방법으로 능력으로 삼고 있느냐 판단해 보면 압니다. 어느 거냐 알 수 있 다 그말이오. 왜 모릅니까?
우리는 오늘이 어떤 때냐? 하나님이 자기의 하는 일에 자기 사적 일이나 공적일 이나 자기의 하는 일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를 우리가 전심으로 구해야 되겠고, 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기 전에는 그 위로 받고 안심하고 만족하는 그런 망령되고 태만한 짓을 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환하게 자기가 보고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 신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이 보이지 안하면 자기는 ‘하나님이 나 와 함께 하시지 아니하니까 나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안하는 원인이 어데 있느 냐?’ 이걸 찾는 데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 신다.’ 함께 하시는 걸 보고야 비로소 안심하고 이제 ‘내가 지금 함께 하시는 요 하나님을 놓지 말고 요 하나님과 동행해야 되겠다.’ 또 자기의 매일 매일 당 하는 일들이, 큰 일들이 많이 당하지 않습니까? 당할 때에 ‘아, 이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기적이 와 가지고서 역사해 주느냐, 하나님의 기적이 있나 없나?’ 이래 가지고 기적이 없으면 ‘하나님이 나를 멀리 떠났다’ 하나님 떠났 으면 다이기 때문에 ‘하나님 멀리 떠났다.’ 자기에게 하는 일에 기적이 나타날 때에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내 언행 심사가 이라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함께 하시는 것이 이제 나타났다, 기적이 나타났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요 하나님을 내가 놓지 않겠 다.’ 고 하나님을 놓지 아니하고 동행해서, 동행하면은 하나님이 자기하는 일에 동행하는 것이 마지막에는 자기만 볼 뿐 아니라 자기는 오래 동안 봤지마는 마지 막에는 보디발도 봤습니다. ‘아, 그 요셉과’ 여호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 므로 그 일이 형통해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주인 보디발도 요셉이가 섬기는 그 하 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함께 하심을 보고 모든 것을 요셉에게 다 전권을 줘서 맡겼는데, 맡기고 난 다음에 모든 일이 다 형통해지니 그 하는 일 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봤다 이랬습니다. 이방인 보디발 대장이 봤습니다.
우리는 내적으로 내증이 있어서 자기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내증이 남은 몰라 도 자기만 아는 대로의 내증이 자기에게 있어야겠고 있으면 그 하나님을 놓지 말 고, 또 해서 자기 외증으로 자기 외부의 무슨 사건들이 생겼는데 하나님의 기적이 함께 하셔서 그 역사에 자기도 볼때 ‘아, 이거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다.’ 하 나님의 기적이 자기와 함께 하는 것을 자기가 보고 그 하나님을 놓지 말고, 자기 만 볼 게 아니라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보고 ‘아,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밤낮 부르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이 함께 하시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줄 때 에 말세에는 복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도 보면은 전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서 그들이 믿었지 예수님이 그런 설교, 예수님보다 더 설교를 잘하겠습니까? 예수님보다 설교 더 잘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설교를 암만 했지마는 안 믿었습니다. 누가 믿습니까? ‘당신이 하늘로부터 오신 자인 것을 뭘 보고 우리가 믿겠습니까? 우 리에게 믿을 수 있는 표적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말하지 안했습니까? 그래서 죽 은 자가 살아나고, 또 그 귀신 들린 자가 나가고, 병신이 낫고 이랬기 때문에 ‘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는구나.’ 이것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믿었습니 다.
지금 이 말세지말을 당한 때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에게 대해서도 제일 중요한 게 뭐이냐? 어데서든지 나와 함께 하시면 문제 없다 하는 요 지식을 확고히 가져 야 되겠고, 또 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하는 요 확실한, 확신을 가질 만치 증거를 자기가 자꾸 받아야 되겠고, 또 지금은 함께 하지 않는다, 지금은 함께 하 신다, 함께 하시고 안 하시는 요것을 자기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요것을 우리가 갖추어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 요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중요한 일인데 이 일을 우리가 등한히 하고. ‘이 일 그리 하면 낭파된다.’ 낭파돼서 낭 파돼 봤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고 함께 하시는 증거가 나타나기를 원하 고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원하고, 아, 그라다가 징역가면 징역 가고 잡혀 가 죽으면 죽지 그거 염려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구 하지 안해야 한다는 그것이 순전히 귀신 말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안 하느냐 여게다 중심을 두고 ‘아, 하나님 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기만 아는 대로 ‘아, 요게는 하나님이 요 깨달음을 주셨다, 요 마음을 주셨다, 요 힘을 주셨다, 요 담력을 주셨다, 요 위로를 주셨 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속에서는 내증이 있어야 될 것이오. 하나님이 자 기와 함께 하시는 요것을 자기가 확실히 경험하고 체험해야 될 것이고, 그러면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그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말고 그 하나님과 동행해.
‘요라니까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더라. 내게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이 내 안에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하는 역사가 있더라. 하나님의 역사가 내 안에 있더라.’ 있 는 고것을 자기가 증거를 삼아서 고 방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은 계속 하나님 의 같이 하시는 증거가, 남은 몰라도 자기 속에서 증거가 있을 것이요, 요 증거가 떨어지면 나는 죽었다. 요 증거가 없으면 하나님과 나는 멀리 떠났다. 이래 가지 고서 이분 찾을라고 애를 쓰고, 찾을라고 애를 쓰니까 ‘주님 어데 갔습니까?’ 찾을라고 애를 쓰니까 `내나 주님이 내 곁에 있더라’ ○○○목사님이 그때 큰 불을 일으켰는데, ○○○목사님의 책에서 보니까 ‘하나 님이 없어서, 하나님을 잊어 버려서 하나님 찾을라고 애를 써 울부짖고 보니까 내 나 하나님이 내 곁에 서셨더라.’ 그때에 교회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때 교회 그 거 눈이 어두워 그걸 몰랐소. 이랬는데, 교리 신조 신학자들이 다 죽여 꺼꾸러 트 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 참 산 불은 다 꺼져 버렸어. 또 그분이 말하기를, 다른 데서 찾아보지 못할 말을 내가 한마디 봤어, 그 보니까. ‘세상에 있는 이런 형통과 모든 세상에 있는 이런 모든 물질이나 이런 모든 성공을 하면은 기뻐하는 사람은 다 땅에 속한 사람이요. 육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깨닫지 못하던 하나님의 한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천금만금을 얻는 것보다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영의 사람이다.’ 다른 신학자들의 말에 그런 말을 듣지를 못했어. 경험과 체험이 없어. 다, 깨달은 사람들은 깨달았지만 깨달은 사람이 깨달은, 깨달아 가지고 말해 놓은 교리와 신조만 거머쥐고 있지 그 깨달은 사람들의 영감은 다 뺏겨 버리고 그거는 상관하지 안해. 글만 가지고 있어. 글만 가지고 교리와 신조만 지식만 가 지고,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아. 아니오. 그런고로 우리는 이 거짓부리 에서 실상으로 빨리 발을 옮겨 디뎌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살고 하나님 떠나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 세상이 다 달라들어서 죽일라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사자가 해하지 못했습니다. 불이 해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환경이 다 그를 매장 매장 몇 번이나 매장했지마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요셉은 형통했습니다. 모든 선지 사도들의 하는 일을 눈을 뜨고 자세히 보면은 그들의 행전은 다 이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행했다는 사도행전이라 이렇게 있는데 그 사도 행전은 신앙 행전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신앙 행전이라. 신앙 생활에는 이 런 순서로 나아간다. 그래서 성령의 행전이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증거는 이거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행하는 것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복 음에서는 잘 보지 못합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교훈만 말했지 이라면 이리 된다 그 증거를 말 안 했지만 여게는 다 ‘요라니까 요리 됐다 요라니까 요리 됐다.’ 자 꾸 그게 기록이라. 요라니까 요리 되고 요라니까 요리 되고, 거기는 전부가 다 하 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전부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 저렇게 하셨다 동행했지 마는 다른 성경에는 그는 교리와 신조만 많이 말해 놨지 하나님이 동행한다는 그 런 증거를 말해 놓은 것이 아주 없지는 안하지마는 희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가 내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문제 없다 하는 요 신앙을 꼭 가져야 앞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지 그것이 아니면 못 이 길 것. 또 하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나 안 하시나 하는 그 흔적을, 그 증거 를 내가 똑똑히 보고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지금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안 하신다 하는 요 증거를 자기가 잡는 요것을 확고히 가져야 되겠고, 또 하나는, 아, 하나님이 나뿐 아니라, 나뿐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모든 사 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기적이 나타나서, 기적이 나타나서, 아, 하나님을 그렇게 멸 시하는 파사 나라에서, 파사 나라에서 하나님이 다니엘과 동행하는 것이 한번 사 자 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환하게 모든 사람 에게 보여지니까 그 나라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복음이 가뜩 찼던 것입 니다.
이러니까 이 말세에는, 히스기야 왕이 해산할 기약이 이르렀으나 해산할 힘이 없 다고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때에 그는 말하는 말이 무슨 말이냐? 이제까지에 하나님을 부인, 부인, 모든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부인해 나왔는데 자기는 하나님을 섬겨 나왔으니까 이제는 부인 부인으로서 가득 차서 하나님은 부인을 당하고 있는 이 세대에 하나님을, 믿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믿는 자의 하나님으로 나타날 수 있는 때를 당했다, 믿는 자의 하나님으로 나타날 수 있는 기회를 만나 기는 만났지마는 믿는 자의 하나님으로 당신이 나타날 수 있도록 내가 믿는 믿음 이 약하다, 그러기 때문에 ‘해산할 힘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이사야 선지에게 말하기를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다 부인하고 전부 말이 복음 전하고 말이 역사하고 아주 수단 방법이 역사하고 마귀의 깊은 수단, 높은 그 고등 술책, 마귀의 고등 술 책이 지금 목회를 하고 있고, 마귀의 고등 방편이 목회하고 있고, 가장 예수 믿어 서 자기의 물샐틈 없이 자기를 위해서 위주하는 것은, 위주하는 것은, 돈보다도 뭐 이 세상의 뭐보다도, 출세하는 것은 예수 믿어서 목회하는 게 제일이다, 목사되는 게 제일이다. 이래 가지고서 지금 목사들이 누구보다도, 땅의 것도 하나님 앞에 지 혜 받은 것을 그 지혜를 가지고서 자기 위해서 사용하지, 또 하나님의 이름을 파 는 것도 사용하지, 또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가명을 쓰고 나서 가지고 이래 하지, 이라니까 오늘 하나님에게 이용당하는 세대가 아니고 하나님을 이용해 먹고, 하나 님 위주 중심이 아니고 자기 위주 중심으로 살고 있는, 자기 위주 중심으로 가뜩 찼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으로써 가뜩 찼고, 모든 세상 방편으로써 최고도로 발 달해 가지고 가뜩 찬 세상이니 이 세상에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나타날 것인 가?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으로, 인간 모든 수단이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으로, 자 기를 위하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하나님 위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지능으로 모든 세상 것을 다 포기해 버리는 것으로써 이 자의 하나님으 로 지금 나타날 때입니다. 이 자의 하나님으로 나타날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자의 하나님으로 나타날 때가 됐는데 우리도, 이 자의 하나님으 로 나타날 때가 됐는데 우리에게는 뭣이 탄식입니까? 세상 지능을 내가 믿고 의 지하고 바라보는 이것을 포기할 힘이 없습니다. 완전히 포기할 힘이 없습니다. 이 것이 우리에게 탄식입니다. 하나님의 지능만이 나와 함께 하셔서 된다는, 하나님의 지능만이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이것이 우리에게 빈약합니다. 하나님의 지능만 이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이것이 빈약합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이것이 빈약합니다.
이 세 가지가 빈약해서 하나님 일도 이루지도 못하고 우리도 낭파되고, 앞으로는 어떤 일이 올 것이냐? 이 세 가지를 찾아 가진 자를 높이 드실 것이고, 이 세 가 지가 없는 자를 완전히 진멸해 버릴 것입니다! 진멸해 버릴 것입니다! 완전히 진 멸해 버릴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포부입니다! 하나님의 분 개입니다! 진멸해 버리므로 당신의 분이 풀릴 것이고, 하나님만이 위주로, 하나님 의 지능만을 자기의 지능으로, 모든 세상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 자의 하나님으 로 나타나기를 소원하고 소원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제 계십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시니까 오직 이 세 가지 가진 자만이 해와같이 빛날 것이 고, 이 셋을 무시하는 자는 완전히 진토와 같이 세상에게 짓밟혀서 공산주의의 것 이 될란지 모릅니다. 제가 공산주의 앞에서 ‘예, 나는 공산주의와 나는 무신론을 주장하겠습니다. 나는 무신론 정치를 인정하고 내가 무신론 정권 하에서 그저 하 나님은 내가 종교로 믿던 중에 믿을랍니다.’ 그리 안하면 안 믿게, 예수 안 믿는 다고 제 입으로 항복할란지 모릅니다. ‘예수를 안 믿겠습니다. 나는 예수를 안 믿겠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의 정치에 따르겠습니다.’ 아, 나중에 단군 신사가 와 가지고서, 단군 신사가 닥쳐 가지고 단군 신사에 제주까지 마실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 오늘에는 우리가 요거 우선 어서, 어서 찾아야 됩니다. ‘내가, 내가 정 말로 세상에 있는 지능을, 세상 지능, 마귀의 지능을 내가 소망하나 안 하나, 이것 을 내가 급하면 내쓰나 안 쓰나, 급해도 내쓰지 않느냐, 아주 요긴한 때도 내쓰지 안하느냐, 이것이 백 프로 효력이 있을 수 있는 고런 기회에도 이걸 내쓰지 안하 느냐, 이것을 내쓰지 안하느냐, 하나님의 지능만을, 미련한 것 같으나 하나님의 지 능만을 내가 바라보고 의지하고 이것만을 내가 내쓰고 이 지능만을 내가 바라보 느냐?’ 이리 해서 하면 이렇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는 데, 내적으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아는 대로에 내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와 동행해 가지고 하나님의 기적이 내게 나타나느냐, 내 마음에 기적이 나타나서 내 게 없던 마음이 생겨지느냐, 없던 각오가 생겨지느냐, 없던 소원이 생겨지느냐, 없 던 담력이 생겨지느냐, 내게 소망이 바꾸어지느냐, 나는 과거에 땅의 소망만 가졌 는데, 이제는 이것 저것 다 돌아보지 안하고 이제는 주님 한 분에게만 소망 뒀어.
물샐틈 없이 제게 대해서 요런 거 조런 거 촐촐 잘합니다. 잘 합니다. 세상 방편 가지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거는 예수를 이용해 먹었소. 복음을 이용해 먹고, 전도를 이용해 먹고, 목회를 이용해 먹고, 예, 그것 때문에 환난으로써 멸망을 받 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가, 20장으로 22장, 23장에 보면은 그것을 똑똑히 밝히 가 르쳐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뭐 할 때입니까? 세 가지, 세 가지 연습해서 숙달해 가지고 세 가지가 내게 확고하게 서지도록 지금 할 때입니다. 뭐입니까? 우리가 참, 급하 면 엄나무 붙잡는다 말이 있습니다. 급하면 엄나무 붙잡는다. 엄나무는 가시가 숭 숭한 것이오. 떨어져 죽을 판이면 뭐뭐 가시가 숭숭해도 거머쥐지 어짤 것입니까? 이거 모양으로 내가 평소에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지능을 믿고 의지하지 안했지 마는 내가 ‘보자, 내가 세상 지능을 믿고 의지 하느냐, 하나님의 지능만 의지하느 냐?’ 하나님의 지능만 의지한다고 하다가 다급한 일이 와 가지고서 세상 지능이 라야 요 일은 해결된다 하는 급한 때가 오면은 세상 지능을 붙잡습니다. ‘요번만 세상 지능 쓰고 그 다음에 또 하나님’ 세상 지능 퍼뜩 쓰면 해결돼 버려요.
요게서 내가 정말로 하나님의 이 구속을 받아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우리의 중 생은 예수의 피로 중생됐고 영감으로 중생됐고 진리로 중생된 것이 이것이 우리 입니다. 이랬는데, 내가 이 세상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마귀가 준 수단과 방법, 세상 방법, 세상 지능, 세상 지능을 내가 어느 정도 뽑아 버렸느냐, 어느 정도 부인하느 냐, 급해서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세상 지능은 내가 다시 잡지 못하는 사람이냐, 세상 지능은 완전히 내가 이제 부인하고 이것은 버렸느냐, 세상 지능 십분지 구, 하나님의 지능 십분지 일, 이렇게 다 종합을 시켜 가지고서 내가 믿고 있느냐, 내 가 반은 어찌 되며 반은 어찌 되느냐, 내가 세상 지능을 그라면 내가 얼마나 가졌 느냐, 십분지 일이나 가졌느냐, 하나도 없이 내가 부인하느냐? 부인했으면 하나님 께서 그렇게 원하는 자에게는 세상 지능이 자기에게 와서 ‘아, 네가 지금 세상 지능을 요때 봐라.’ 쓸 수 있는 고럴 때를 환경을 만들어 줘 가지고서 ‘아, 내가 세상 지능을 쓰고 있구나.’ 고렇게 세상 지능을 자기가 쓰고 있는지 하나님의 지 능만을 쓰고 있는지 하는 것을 살펴서 세상 지능을 쓰지 안하고 포기할라고 하는 자에게는 세상 지능을 포기할 수 있는 지능을 줘서 자꾸 깨닫게 하실 거고 자꾸 경험하고 체험해 가지고, 우리가 앞으로 모든 것 오기 전에 땅 위에 있는 모든 세 상 지능을 하나도 상대하지도 말고 쓰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까짓 것을 있다고 인정도 하지 말고,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세상 지능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 이 되어지려는 것이 이것이 지금 오늘 급선무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지능만을 내가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의 지능만을 내가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의 지능만을 의지할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지능만을 의지할 수 있 는 기회를 줘 가지고서 의지할라 하니까 힘이 들지마는 죽어도 하나님의 지능을 의지하고 의지하고 숙달시켜 가지고 하나님의 지능만을 이는 의지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되어지는 요 두 가지가 갖추어지고, 난 다음에는 ‘내가 누구 중심이냐?’ 이 중심 문제를 가지고서 최종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오늘에는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서 이 세 가지에 대해서 바로 잡는 것이 중대한 문제고, 그러면 그 증거는 뭘로 할랍니까? 그렇게 됐는지 안 됐는지 하는 증거는 뭘로 볼 것이오? 증거는 뭐이오? 첫째는 뭐이오? 내증이라 자기 속에 증거가 있어야 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속에 증거가 있 어야 돼. 이 증거를, 증거를 보고야 이 믿지 이 증거 없이는, 자기는 부인해야 될 터인데, 증거 없이 속으로는 엉망진창의 여러 수십 가지 마음을 다 먹고 이래 가 지고서 진짜는 다 그리 기울이고 나면 껍데기, 시간 되면 해서 하나님 말씀 증거 하는 요거 가지고서, 제가 볼 때도 판정하면 거짓부리라 환하게 볼 것이고 양심은 볼 터인데, 이거 가지고서 예수 믿는 줄로 아는 이런 데서 있는 것은 우리가 자멸 하고 자망할라고 지금, 멸망을 기다리고, 뭐 기다리고 있습니까? 멸망 기다리고 있 어. 이 세 가지가 해결 안 됐으면 멸망이라. 이 세 가지를 해서 바로 됐나 안 됐 나 하는 것은 내 속에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내 속에 와서 역사해서 다른 사람은 못 봐도 내 속에 역사하는 걸 내가 볼 수 있고, 내증을 볼 수가 있고, 내증 만 볼게 아니라 내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기적이 와 가지고서 역사 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나만 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볼 수가 있고, 이제 이 증거가 나타난 때에 우리는 안심을 해야 될 터인데, 이 증거도 나타나지 안하 고 저 혼자, 홀아비가 방 안에 앉은 거 모양으로 저 혼자 말하고 저 혼자 인정하 고 저 혼자 그 평가하고 저 혼자 인정하고 이런 거짓부리의 참람된 행위를 버리 고 우리가 이제 진실된 신앙으로, 이 세 가지가 우리는 주력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런 사 람들이 그 불미 속에, 불 속에 집어넣는다 해도 뻥긋뻥긋 웃으면서 하는 것은 그 들은 체험과 경험과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확신이 있었어. 왜? 그들은 별 사람 입니까? 그들의 환경과 우리 환경과 그들의 배경과 우리 배경이 꼭 같습니다. 이 러니까, 아! 아무래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너거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당신 이 내게 세상 떠나라 하면 떠나고 불에 타라 하면 탓지 불 세력에, 불에 들어가도 불 세력이 태우고 뜨겁게 한다는 거는 정한 이치지마는 그것도 우리 하나님이 함 께 하신 데는 상관 없다. 우리 하나님만이 나를, 불 속에 들어가도 우리 하나님만 이 나를 주관하시지 열도가 나를 주관하지 못한다. 열도가 사람을, 만물을 주관한 다는 것은, 불에 들어가면 뜨거워지고 타진다는 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 게 전 확고한 통계의 지식이 돼 가지고 있어도 그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게 내게 주권 못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권한다.’ ‘아, 불에 들어가도 그 불 이 주권 못 해? ‘불에 들어가도 뜨거워지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이요 타 죽는 것 도 하나님의 주권이지 하나님이 주권으로써 뜨겁지 않게 불에 타지 않게 하시면 은 그것 못 한다.’하나님의 주권을 이렇게 믿었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는 걸 믿었기 때문에 그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우습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암만 그래 도 왕이 말하는 우상에게 절하지 안할 줄 아십시오.’ 우리는 지금 이것이 문제입 니다. 이 세 가지가 문제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내게 표적과 기적이 없으면 나는 껍데기로 거짓을 하고 있는 줄 압시다. 안에 있 는 내 속에 내증이든지 외증이든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나만 알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볼 수 있도록 나타나지 안하면 이것은 다 외식이요 하나님과 동행 하지 않는 증거다 하는 것을 표준을 두고서 여게까지 나아가도록 우리가 이것을 표준해 가지고 신앙 생활하고 모든 주의 일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