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1 21:38
가정교회
1980. 2. 17. 주일 오전
본문: 엡 5:22 -3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가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가진 가정을 성경대로 스스로 건설할 의무와 또 자기에게 관련된 남의 가정 건설에 협조할 의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시발은 개인인 교회와 다음으로 가정교회 사회교회 세계교회 역사교회로 이렇게 확대되어 자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 순위가 되는 자기 개인이 하나님의 교회가 되어지는 이 일이 바로 되지 아니하면 모든 교회에 관한 것은 다 실패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대속으로 죄 없는 것이 특성이며 또 의로운 것과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 특성이요 본질이요 본성이요 생명과 지능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라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 하나님과 결합되어 진리대로 되어 있고 진리대로 사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고로 그 결과는 진리대로의 결과를 맺는 것입니다. 순위적으로 가정 교회보다 개인 자체의 교회가 바로 되는 이 일에 제일 주력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가정교회입니다. 이 시간 봉독 한 말씀은 가정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정교회의 시발은 남녀 부부 결혼으로 시발하는 것입니다. 이 부부 결혼으로 시작되는 가정교회의 특수점은 결혼하기 전에는 개인의 건설구원이 되는 것이지마는 결혼한 후로부터는 두 사람이 합하여 건설구원, 성화구원, 기본구원 외에 있는 모든 구원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두 사람이 합하여 한 육체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 육체가 된다는 것은 부부의 정혈로 한 생명이 난다는 이것을 말씀함이 아니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영 구원을 받았고 심신으로 된 육체의 구원 이것을 이루어 가고 있는 현 단계입니다.
그런고로 '두 육체가 합하여 한 육체가 된다'는 이 말씀은 결혼한 이후는 그의 심신 성화의 구원이 개인적으로 되지 아니하고 두 사람이 합하여 한 심신 구원을 이루어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두 부부 중에 어느 한 사람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아니했으면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그 남편이나 아내의 그 성화도 온전치를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순서는 남편은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아내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남편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면으로는 아내에게 머리의 위치를 가지고 모든 일이 아내보다 탁월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남편은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아내는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이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면을 가리켜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무나 따나 먹고 입고 자녀 낳고 평안하고 덜 평안하고 이렇게 사는 것은 모든 생명 가진 짐승들과 곤충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것만으로써는 인간 생애는 아닙니다. 이것을 초월한 하나님으로 인하여 사는 이 선 이상에서부터 참된 생애 성도의 영생하는 생애가 이루어집니다.
그런고로 먼저 남편이 하나님에게 아내보다 앞서 모든 성화가 이루어져 가고 아내는 떨어지지 않고 뒤따라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을 따라 성화 된 자체나 행위는 자기의 주로 된 것을 알고, 자기의 구주가 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이렇게 세워 주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듯 그 남편에게 순종하는 이것이 가정교회가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는 남편은 가정 성공, 가정교회의 성공, 가정 구원의 성공은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적으로는 일 위 이 위를 다툴만한 구비함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 남편이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 이것이 절대성 있는 거같이 절대성은 안 되지마는 절대성을 가진 것만 가진 거같이 이렇게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남편이 된 거기에서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서기는 섰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내가 이 남편에게 그대로 복종하면 온전한 가정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거기의 교회의 성장 번성으로 자녀가 이어 가정교회가 자라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하시기를 여기에 남편이 아내에 대한 의무를 말씀했는데 그리스도께서 택한 자들의 모든 사죄면 칭의면 하나님과의 관계면 이 세 가지 면을 그리스도께서 책임지고 완성한 것처럼 남편은 이 세 가지 면으로 아내의 완성을 책임지고 아내는 이 세 가지 면으로 남편이 완성케 하려할 때에 복종하기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복종하는 것으로 이 가정교회가 완성되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이 가정교회가 완성된 가정을 이제 말씀했습니다. 이 가정교회가 구성되어 나아가는데 있어서 성경에서는 여러모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절로 6절에 보면 가정교회가 이루어지는 데는 시발이 대개는 아내에서 아내에게서 시발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순종성과 청감성이 예민하게 되어있는 여성이라 여성이 도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남성이 여성으로 인하여 도를 받게 되는 이런 순위가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남편이 믿지 아니하고 아내가 먼저 믿으면 이것이 가정교회가 이루어지려고 시작한 것이니 아내 된 사람은 그 남편에게 말로 전하는 그 전도로서도 남편이 회개하는 그런 일들도 있지마는 대개는 아내가 남편에게 전도하는 전도로 듣는 사람은 적고, 그 아내가 범죄하기를 두려워하고, 의에 거슬리지 아니하려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그 뜻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영원한 지옥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 은혜와 그 축복과 그 도우심으로만 인생살이는 평온해지는 이것을 자기 자체의 행동과 사상으로 남편에게 보여, 외모의 단장도 남편을 위하여 인간의 사회를 위하여 단정하게 하지마는 그보다도 자기 속에 인격이 하나님의 신성을 닮아 흠 없는 인격으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가려는 이 면을 주력하는 데에서 그 남편은 그의 인격에 감동되어 인격의 의심이 물러가고 그의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에 비취어져 자기를 반성하게도 되고 하나님의 이 복음의 도를 인정하게 되어져서 차차차차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진다고 했습니다. 온 가정이 믿지 안하고 아내가 혼자 믿는 사람 믿는 가정 또 어린 자녀들이라도 하나 믿기 시작했으면 이 사람은 그 가정의 제사장 위치 선지자 위치 작아도 왕의 위치 생명의 도화선의 이 줄로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과 약속에 대해서 두려워 떠는 언행심사와 자체가 하나님의 그 신성,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속성적인 이런 사람이 되어져 가는 데에 주력을 할 때에 자기로서 구원시킬 가정이 구원이 되어지는 것을 베드로전서 3장 1절-6절 이하에 말씀해 놨습니다.
다음에는 사도행전 10장 1절로 5절까지에 보면 고넬료의 가정은 그의 부부와 그의 자녀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종업자들 그 전부가 하나님 앞에 시간을 정해놓고 가정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고넬료가 알려서 온 가족들과 온 종업자들이 하나님 두려워 두려움을 알고 두려워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곧 인간을 아끼고 인간을 동정하고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인간에게 유익을 끼치는 인간을 위하여 노력하는 이것과 범사를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져 나가는 이 세 가지 면이 온 소속 식구들에게 충만했습니다.
이럴 때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인간을 구제하는 것과 하나님으로 의논하는 이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천사를 보내서 역사 한 이 역사가 유태인 외 이방인들에게 생명의 도가 전달된 종자입니다. 이것이 시발이었습니다. 이 고넬료의 가정은 온전한 가정이 이루어져 그 가정교회가 온전해졌을 때에 이 생명과 구원은 넘쳐서 우리 모든 이방인들에게 넘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가정의 한 사람으로 되어있는 호주는 자기로 인하여 가족 자기를 인한 모든 종업자 전 소속 식구들이 무엇보다 하나님이 두려우시며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하나님이시며 여기에 모자라는 모든 부분을 하나님으로 기도하고 의논해서 능히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 전서 3장 7절로 8절까지에 보면 가정에서 이 부부의 신앙이 바로 되지 안 했을 때에는 기도가 많은 제재를 받아서 방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비로소 하나가 되어졌을 때에 거기에는 다른 탈선케 하는 자극이나 충격이나 이런 것들을 받지 아니하고 정상적인 궤도에서 정상적인 그 가정에게 주신 단일궤도를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부부의 교회가 바로 되지 안 하면 다른 모든 신앙 행위가 바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되어 있지 않는 그 남편의 신앙으로 인하여 아내의 신앙행위는 바로 되지 않습니다. 바로 되어 있지 않는 아내의 신앙행위로 인하여 남편의 신앙행위도 바로 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눌 수 없는 둘로 하나의 육체적인 건설구원을 이루어져 가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7장 14절에는 보면 남편으로 인하여 아내가 거룩해지고 아내로 인하여 남편이 거룩해지는 서로 남편은 아내에게 거룩의 도움을 주고 아내는 남편에게 거룩의 도움을 주는 이 거룩하게 되어지는 이면을 주력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그 자녀들도 깨끗함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정교회는 돈보다 권세보다 무슨 가난 부요보다도 거룩의 빈부를 이것을 주로 삼아서 주력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돈을 여간 가난해도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거룩은 풍부해야 하고 권세나 지위나 영광이나 몸의 건강이나 다 필요하지마는 보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거룩을 주어 그로 인해서 거룩해질 수 있는 이 면에 주력하여 이 면에 유익을 주는 이 일을 주력하는 그것이 가정을 건설하는 데에 요긴함이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열왕기하 4장 1절로 7절에 보면 가정교회에 그 호주가 일찍 죽었을 때에 남은 가족은 의지하던 호주가 죽었으니까 그 남은 가족을 어떻게 할까 하여 그 남은 가족들이 우선 생활의 어려움을 인하여 돈을 향하고 권세를 향하고 직업을 향하고 인간을 향하는 그 모든 방편은 다 패전하는 것이요 다만 그 가족은 거게 보면 기름을 팔아서 빚도 갚았고 생계가 유지됐습니다. 이거는 하나의 상징으로 보인 것입니다.
알뜰히 믿던 가정이 남편이 죽어지든지 아내가 죽어지면 그 여러 가지로 애로가 많겠는데 그럴 때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해결을 지울려고 하는 그 남은 가족은 반드시 실패로 돌아가고 그 남은 가족들의 살 길은 기름장사로 사는 길이 유일의 가정유지와 건설의 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름 장사라 말은 그 죽은 남편이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아내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부모가 살아 있을 때 보다 성신의 감화 감동의 이 진리와 영감으로 사는 이 면을 한 사람이 없어졌으니 남은 사람이 그 만큼 더 힘을 써서 이 면이 손상 없이 이루어질 때에 그 남은 가족의 행복은 여전히 건설해 가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또 열왕기하 4장 8절로 37절에 보면 수넴 여인은 그 가정교회에서 지내 다니는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하나님의 종으로 대우하고 집을 지을 때에 그분이 유숙할 그 기도의 곳을 짓고 언제나 하나님의 사자로 대접해서 그 가정은 가정교회를 성공했습니다. 그 대접하는 것이 아내가 먼저 생각을 냈고 그 다음에 남편과 뜻이 합하여 둘이 합해 한 마음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종을 대우했고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종으로만 대우했지 인간적인 그런 정실 관계로 대우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가정은 그 면으로 특색을 가지고 가정교회를 잘 이루었습니다.
그러기에 권찰이나 교역자나 은사교권에 있는 분들은 교인이 대접할 때에 요 면을 잘 살펴서 그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대접은 물리치고 어떤 사람의 대접은 받고 어떤 사람은 접하고 어떤 사람은 만나는 것을 거절하고 이렇게 하는 것은 상대방의 구원을 위주로 해서 가지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 8절 이하에 보면 사르밧에 있는 그 한 과부의 가정교회에서 하나님이 보내서 엘리야를 3년 반 동안 모셨습니다. 거기에서 늘 의식주를 대접하고 모셨습니다. 그러나 그 과부의 집에 엘리야가 내왕하며 대접을 받았지마는 하나님 보시기에 남녀 이성 면이 깨끗하고 흠이 없었을 때에 거기에는 하나님의 기적이 역사 했습니다. 의식주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그는 하나님에게 크게 영광을 돌렸고 하나님의 복음에 크게 이바지가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가정교회에 대해서 많은 가정들을 참고해서 거울삼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입니다. 창세기 37장과 39장에 보면 이런 아름다운 가정이었지마는 큰 축복을 받은 가정이었지마는 그 가정의 형제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단합되지 안하고 하나님 중심의 자녀와 하나님 중심을 반대해서 시기하는 자녀와의 이 둘로 나뉘어져서 결국은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가정은 그 자손이 다 망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런고로 교회는 개인교회 다음에는 가정교회 그 다음에 우리 서부교회라는 교회 같은 이 사회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위적으로 깨끗한 교회가 이루어지지 안 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노아의 방주 배 안에만 있었던 거와 같이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인데 이 교회가 바로 되지 안 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그 속에 담겨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