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1 21:19
1988. 1. 10. 주일오전
본문:마태복음 15장 21절∼28절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오늘 봉독한 말씀에 이 가나안 여인과 주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여인이 자기의 안타까운 소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왔을 때에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몇몇 어려운 순서를 닥치게 됐습니다. 그때에 이 여인은 그 어려운 순서를 잘 통과했는고로 저의 소원이 주님 앞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도 주님 앞에 온갖 소원을 가지는 우리들이 이 여인과 같은 이런 방편을 가지고 대하면 소원을 다 이루어 주심을 받을 수 있고 이 방편을 취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우리의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를 못합니다.
주님이 이 여인에게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28절에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이 여인이 주님 앞에 ‘네 믿음이 크다’ 하는 이 칭찬을 받은 그 믿음을 가진 그것으로써 그 소원이 주님 앞에서 다 이루어 주심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이방 여인입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오신다는 그런 소문을 듣고 나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예수님께서 그 앞으로 지나가십니다. 많은 무리들과 제자들과 함께 지나가시는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고함을 지르니까 예수님께서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고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십니다.
옆에 제자들이 들을 때에, 그렇게 큰 소리로 죽자 살자 부르짖는데 예수님은 대답 한 마디도 안 하고 그저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는 것이 너무도 답답하고 또 좀 냉정스럽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미련할 수 있을까, 미련하지 안하면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무시할 수 있을까, 그 말 한마디 해서 뭐 안 된다든지 된다든지 가라든지 이렇지 자기 보고 그렇게 부르짖는데 한 말도 없이 그저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보여지니까 그 제자들이 답답해서 예수님에게 와 가지고 ‘선생님 저 여인이 저렇게 부르짖고 호소하고 고함을 지르고 저라고 있는데 무슨 대답이든지 한 마디 해서 보내는 게 좋지 않습니까?’ 이렇게 떡 말했습니다.
그라니까, 주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나를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에게 나를 보냈지 딴데 나를 보낸 줄 아느냐?’ 고함을 지르십니다.
이라자 여인은 이제 가까이 와 가지고서 이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와 가지고 절을 하면서 부르짖기를 ‘주여 나를 도우시옵소서’ 이랬습니다. ‘나를 도와 주십시오. ' `주여 나를 도우시옵소서. ' 이라니까,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자녀에게 줄 떡을 취해서 개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냐?’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여인이 그 말에 대해서 대답을 ‘옳소이다. 옳소이다. 개도 주인에게 속한 것이니까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그 부스러기를 먹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들어 보시고 칭찬하면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 하신 그 즉시로 그 아이는 완전히 나았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지금 보이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라 그렇게 말했고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에게 아버지가 보내셔서 내가 왔지 딴데 보냄받아 온 것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를 보냈지 이방인들에게 보낸 것이 아니다. ’ 이 말씀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대로,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대로 예수님은 이방인인 그 가나안 여인에게는 보냄을 받지 안했다, 상관이 없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또, 그때에 이방 사람들은 다 개로 하나님이 짐승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타락한 것은 사람이 육체가 되었다 할 그때부터 사람은 타락한 그 수성 가진, 모양은 사람 모양이지마는서도 그 모든 속성은 짐승의 속성으로 다 완전히 변질됐다 그렇게 해서 이방을 짐승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온갖 땅에 있는 짐승들이 가득히 거게 보자기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베드로야 이것을 잡아 먹으라’ 이랄 때에 ‘이 속된 것을 내가 먹지 않습니다' 이라니까 그 보자기가 올라가고 다시 내려오고 해서 세 번 그런 거듭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이 짐승을 보자기에 달아내리고 잡아먹으라고 하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환상 가운데 봤기 때문에.
조금 있으니까 밖에서 ‘누가 베드로를 찾습니다’ 이라기에 물으니까 저 이방 사람이 와 가지고서, 이방 사람 고넬료의 가정에서 사람을 보낸 이방 사람이 와 가지고서 베드로를 찾는다고 이렇게 말을 해서, 이스라엘 백성이요 하나님의 사도인 이 베드로가 이방 사람으로 더불어 그렇게 교제하는 것이 그것이 마땅치 않다 하는 그런 관념을 딱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 소리를 듣고 주저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빨리 가 봐라’ 이랬습니다.
이래 ‘빨리 가 봐라’ 할 때에 그때에 생각하기를 ‘보자기에 짐승이 내려왔는데 그렇게 나에게 잡아먹으라 했는데 이방 사람이 나를 또 찾아오고 또 가라 하고 이라니까 무슨 뜻인지 가 봐야 되겠다’ 하고 내려가니까 이방 사람 고넬료라는 사람 집에서 보낸 사신인데 그가 말하기를 ‘우리 주인은 의로운 사람인데 예배 가운데에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가지고 욥바 시몬의 집에 보내면 베드로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사람을 청해다가 네가 하나님의 도를 듣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라 그렇게 말씀을 해서 우리가 보냄을 받아서 왔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환상 가운데에서 본 것을 생각하니까 ‘오, 이방은 오늘까지 짐승으로 취급했는데 잡아먹으라고 이렇게 하더니마는서도 그것이 이방인에게도 이 복음을 전해 가지고서 복음에 삼키워져서 이 생명에 삼키워져서 구원을 얻게 하시는 이것을 계시로 보였구나. ’ 그렇게 깨닫고 가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방 개척 사도 바울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이방 개척 베드로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이방 개척 스데반이라 하는 사람들도 다 신앙에서 그렇게 견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인식이 이방인은 다 짐승으로 그렇게 하나님이 취급을 했고 또 그렇게 이스라엘도 여겼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방인으로 더불어 같이 먹는 일이나 같이 이렇게 앉아서 대화하는 일이나 이런 일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여인이 주님에게 가니까 ‘자녀의 줄 떡을 취해서 개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냐?’ 또 ‘내가 이스라엘에게 보냈지 다른 데 내가 보냄을 받지 안했다' 또 아무리 그렇게 부르짖어도 대답 한 마디 없고 그저 무시하고 지나가시는 그런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그랬는데, 이 여인은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 대답하지 안하고 하신 그 자기를 무시하는 거, 자기를 심히 무시하고 또 ‘이방에 보내지 안했다’ 하는 그것은 `나는 이스라엘에게 보냄받았지 이방이 내가 무슨 상관 있느냐?’ 자기를 아주 배척해서 자기는 상관없는 자로 배척해 버리고, 무시하고 멸시하고 배척하고, 또 개라고 이렇게 하는 말로 들려졌으니까 개로 자기를 말할 수 없는 그렇게 모욕을 하고 모독을 하는, 멸시와 또 배척과 이 모욕 이 세 가지를 이 여인은 진뜩 당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예수님에게 아주 이 세 가지 이것을 참 말할 수 없이 그 여인은 예수님에게 당했습니다. 멸시당하는 일, 배척하시는 일, 또 개라고 이렇게 모욕하는 일 이 일을 당했습니다.
당했을 때에 이 여인은, 그렇게 이 세 가지 당한 것을 여인이 있다가 ‘내가 이 소원인 딸 자식의 병을 낫지 못했으면 못 했지 이렇게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은 내가 못 견디겠다. 또 아무리 내 소원, 이 딸 자식의 병을 고치지 못할지라도 이렇게 나를 아주 괄시하고 배척하는 이런 일이야 내가 견딜 수 없다.
또 나를 이렇게 개로 취급하는 아주 모욕과 모독을 하고 하니 이것이야 내 소원을 포기했으면 포기했지 견디지 못하겠다. ’ 이럴 터인데, 그 여인은 ‘옳소이다.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할 때에 주님이 ‘네 믿음이 크다' 이랬으니 그 믿음이 크다는 그 믿음은 뭘 가지고 했는가? 자기가 딸을 낫게 해 달라는 그 소원, 그 소원은 주님밖에는 해 주실 이가 없다는 것, 주님밖에는 해 주실 이가 없다는 그것을 자기가 소망하고 주님에게 그렇게 와 가지고서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었는데, ‘네 믿음이 크다’ 이 말씀은 네가 소망하는 소망, 네가 소욕하는 소욕 그것은 너를 멸시 천대하는 멸시 천대보다 그 소욕과 소망이 크다. 멸시와 천대에게 부딪혀서 깨지지 안하고 그 소욕 소망은 멸시 천대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게 상관없고 나는 어찌됐든간에 이 소원만 이루어야 되겠다. 네 소원은 멸시 천대받은 그것보다도 더 크다.
또, 너를 배척해서, 내가 이스라엘에게 보냈지 이방에 내가 보낸 것이냐? 너에게는 상관없다. 이렇게 배척하는 그 배척보다 네가 소욕하는 소욕이 크다. 네 소욕은 배척을 능가했다. 능히 이겼다. 배척을 능가했다. 너 멸시 천대를 능가했다.
너를 말할 수 없는 모욕과 모독을 했는데 그 모욕에 피동되지 안하고 모욕 그런 것을 무시할 만치 모욕보다 네 소욕하는 것이 크다.
이래서, 네가 이 은혜를 받는 데에 방해자가 너를 무시하는 무시가 왔고 배척이 왔고 모욕이 왔는데 이 세 가지 이 방해물이 있었는데 세 가지 방해물을 네가 다 꺾어서 다 깨트려 정복하고 너는 소원하는 그 소욕을 이룰라고 하는 그 소원 소욕이 크다 그것을 말을 했습니다.
또, 그가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 또 자기의 자율, 모든 세상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그 지식, 부르짖는데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는 것, 또 이스라엘에게 보냈지 이방에게 보내지 안했다는 것, 또 개로 이렇게 취급하는 것 이것은 그들의 지식이고 그들의 선입적 관념이고 그들의 기존 지식 모든 세상으로 통계돼 있는 지식입니다. 통계돼 있는 지식.
그러면, 이 지식대로 그는 예수님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했고 배척을 받았고 모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저희들이 환하게 알고 있는 공통 지식대로 그들은, 분명히 공통 지식대로 모욕받았고 멸시받았고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 이 여인은 ‘옳소이다. 나는 진정 이렇게 무시를 받아야 할 자이며 배척을 받아야 할 자이며 짐승 취급을 받아야 할 자입니다. 당신은 만유주 크신 하나님이시요 나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만 아니라 이것으로써 말할 수 없는 나는 이렇게 참 짐승과 꼭 같은 인간이요 나는 배척을 받아야 될 인간이요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 될 인간이로소이다. ’ ‘옳소이다마는' 자기는 그와 같은 멸시 천대 배척 무시를 그렇게 당하는 그것을 지당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 자기의 지식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견해대로 볼 때에 ‘이야 틀림없는 모욕이요 멸시요 천대요 배척이다’ 자기 지식대로 그렇게 그는 환하게 무시요 멸시요 배척이요 모욕입니다. 그럴 때에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 자기를 알아 ‘나는 참 그런 사람입니다’ `옳소이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는 요것이 그에게, 믿음이 크다 말은 저의 깨달음이 크다 말입니다. 저의 깨달음이 크다. 또 믿음이 크다 말은 네 소원은 땅에 지저분한 거, 네 인간의 모든 주관, 관념, 체험, 경험, 모든 ,자율 모든 이런 지식을 완전히 발 아래 밟고 무시하는 이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크다’ 또, 네가 이렇게 어려움의 방어선이 있지마는서도 어려움의 방어선에게 막혀지지 안하고 이런 것들 꿰뚫고, 이런 것들을 밟고, 이런 것들을 능가한, 너무 그 소망이 자기의 소욕이 크기 때문에, 이 소욕이 크기 때문에 이까짓 거 뭐 당하고 그런 게 보이지 안하고 모든 자율 주관 기존 지식대로의 멸시 천대 무시당하는 이런 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멸시할 수 있는 강한 소망, 이 강한 소망을 가진 것을 주님이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셨고, 또, 자기네들 지식대로의 ‘이거는 분명히 무시 배척 멸시 모욕이다’ 모욕인 줄 아는데 ‘모욕이다’ 이럴 때에, 나를 어떻게 이렇게 모욕을 할까, 분하다가 아니라, 분하다가 아니라 ‘옳소이다. 나는 진정 이런 사람입니다. ’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그런 자인 것을 확실히 바로 깨닫고, 뭐 처음에는 소원이 커서 그랬지마는서도 그것보다도 진정 자기는, 진정은, 실상은 그런 인간이라 하는 자기를 정평 정가했을 때에 요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평가라 해서 주님이 네 믿음이 크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랬는데, 또 믿음이 크다 하는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제자들이 ‘아, 저렇게 고함지르는데 좀 말해 보내십시오. ’ 예수님이 그 여인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 여인에게 들어 있는 이 믿음을 자랑하고 그 여인의 소원을 이루어서 그 여인으로 하여금 만인간에게 구원의 도리를 선포해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님이 전지자인데, 그 여인을 만든 이가 주님이시요 예정하신 이가 주님이신데 거게 와 가지고서 공기 모든 걸 다 당신이 주관하고 계시는데 여인이 고함지르는 것을 예수님이 못 들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무시하고 그렇게 바보로 취급했습니다. 인간으로 취급했습니다.
못 들은 게 아니오. 예수님은 그 여인의 속에 숨어 있는 그 신앙을 발표하고 그 여인의 소원을 완성하되 소원만 완성될 게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동류에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소원을 완성시키기 위한 그 목적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못 들은 척했기 때문에 못 들은 게 아니라 예수님은 더욱 더 깊이 듣고 깊이 새기고 있는 것인데 인간은 그 내용을 모릅니다.
또,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다’ 그말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이스라엘인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나를 보냈는데 ‘딴데 보낸 거 아니다’ 그말은 네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내가 너한테 보냈지 딴데 보낸 게 아니다, 내가 너한테 왔다 이 말이지마는서도 인간들의 지식 가지고 들을 때에는 이는 완전히 배척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들려졌습니다.
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 내가 이 은혜, 모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이 다 더러운 거짓된 이 인간을 참사람으로 만드는 이 은혜를, 이 은혜를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에게 줄라고 왔는데 이걸 어데 개에게 주겠느냐, 택함을 받은 너에게 줄라고 가져왔는데 네것인데 네게 주지 어데 주겠느냐 이렇게 주님은 말씀하시지마는서도 그 말을 듣는 인간 지식 인간 귀로 땅에 속한 자가 들을 때에는 정반대로 그렇게 들려졌습니다.
정반대로 그렇게 들려져도 그는 그런 것을 능가하고 자기를 깊이 반성해서 그런 죄인인 것을 알았고 이런 장애물이 있되 그 소망이 요동치 안하고 그런 모든 것을 다 극복하고 난 그런, 그런 것을 탁월한, 그런 것을 초월한, 그런 것을 승리한 이 소원을 가진 것을 주님이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을 향한 사람은 요 순서를 가지면 택한 자는 소원을 이루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소원을 이루는 것은 보이는 소원도 있고 보이지 않는 소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는 소원보다 보이지 않는 소원을 더 크게 여기고 그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기도> 감사합니다. 가나안 여인의 사실을 들어 가르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가나안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신 그 평가하신 그 평가, 가나안 여인이 땅 위에 온갖 방해물이 있었지마는서도 그런 것을 다 능가한, 그런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큰 소원인 이 소원 그것을 우리도 이 소원을 가지게 하시고, 온갖 무시와 멸시와 천대를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도 진정코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음을 받을 수 있는 자인 것을 깨달은 그 깨달음 우리에게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것을 다 이겨서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긍휼을 확실히 바라보고 요동치 않는 믿음 이 믿음을 저희들에게 가지게 하사 온전히 부인하고 주님만을 소망하는 이 소망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