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의 방향에 대한 제언

2007.05.16 11:23

선지자 조회 수: 추천:

이름 : 중선     번호 : 10
선지자선교회 게시일 : 2002/01/24 (목) PM 11:31:28  (수정 2002/05/21 (화) PM 02:06:43)    조회 : 527  

■ 중국선교의 방향에 대한 제언      
                                                             인보라

중국선교는 한국교회에 주신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지상명령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순종만이 요구된다, 중국 선교는 한국교회가 침체와 쇠퇴의 늪에서 붙잡고 일어서야 할 마지막 사명이다. 중국 선교가 마냥 한국 교회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지나가면 한국교회가 중국선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의 마음의 문이 닫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중국 선교를 수행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이 기회를 잡으면 한국교회는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이 기회를 놓치면 두번 다시 이런 기회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교회는 중국선교를 수행 할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동시에 약점도 많이 갖고 있다. 자신을 알고 중국 선교에 임하면 주님께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다. 세계 선교의 일환으로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에 임할 수 있다. 세계 여러 피선교국 가운데 하나의 나라로 치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세로는 절대로 중국 선교에 성공할 수 없다.

중국의 인구가 세계의 1/4이요, 세계 미전도 족속의 1/2이 중국에 있다 해서가 아니다. 중국선교는 우리가 적당히 하거나 얕잡아 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선교사나 여러명 파송하고, 선교비나 적당히 보내주면 되는 것으로 치부해서는 큰 코 다친다. 중국선교는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선교 역량을 다 동원해도 감당하기가 버겁다. 세계 곳곳에 선교를 해야 한다. 그러는 중에 중국선교에 한국교회의 선교역량을 총동원 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선교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선교가 언제 까지고 한국교회를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함부로 달려 들수도 없다. 중국인의 만만디를 우리는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빨리 빨리 는 중국선교에서 한국교회가 극복해야 할 우리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 빨리 빨리병 을 치유받지 못한 채 중국선교에 임하면 한국교회는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 엄청난 자원을 손실 당하고 어려움에 빠질 것이다. 중국 선교에 임하는 한국교회는 무엇보다도 이 빨리 빨리 의 못된 성질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만함이 가득찬 가운데 중국선교를 바라보고 있다. 교만한 사람은 넘어지게 되어있다. 교만한 마음을 갖고 중국선교에 임한다면 한국교회는 중국 선교에서 크게 낭패를 당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과대망상증을 하루 속히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자신의 실상을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선교에 임하는 한국교회에 있어서 시급한 문제는 선교의 방향과 전략이 수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의 이우가 있다. 중국이 오랫동안 페쇄되어 있어서 중국과 중국교회와 중국 선교의 실상을 바로 접해 볼 구가 없었기 때문이요, 또한 여기에는 중국선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둥국 선교를 충분히 연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략보다 열정이 앞서는 한국인의 성격도 여기에 일조를 하였다.

중국 선교는 믿음이나 헌신만 갖고는 감당 할 수 없다. 어느 나라의 선교나 마찬가지 이지만 특히 중국 선교는 믿음과 헌신은 물론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가 없이는 중국선교에 승리할 수 없다. 중국 선교에 있어서 무엇이 지혜인가? 중국 선교의 방향을 바로 잡아 선교를 수행하는 것이 지혜이다. 필자는 중국 선교의 방향을 운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필자는 중국선교 전문가가 되려고 마음을 먹고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 있지, 아직 중국선교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외람되게 굳이 중국 선교의 방향에 대한 제언을 드리는 것은 한국교회의 한 지체로서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소원하기 때문이요, 아무도 공개적으로 이런 분야에 대해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선교는 은밀히 해야 한다. 그런 점을 춤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마음도 답답하다. 왜 그런가? 이제 곧 중국 여행에 대한 제한 조치가 풀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중국 선교에서 한국교회들이 범할 시행착오나 실책들은 중국 선교에서 지불해야 할 수업료와는 전혀 상관없이 한국교회의 실책으로 주님께서 책임을 물으실 것이기 때문에 외람됨에도 불구하고 중국 선교의 방향에 대한 제언을 드린다.

중국 선교의 대상을 조선족 위주에서 한족과 소수민족으로 전환해야

한국교회에서 중국 선교하면 조선족 선교 곧 교포 선교를 떠올리게 된다. 그럴 만큼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는 조선족 선교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연변지역에 한국 선교사들이 몰려 있다. 연변의 한국선교사 수를 200명이라고도 한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 정부 종교국에서 파악한 선교사만 250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종교국이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선교사까지 포함한다면 500명이라는 설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변에는 약 1만 명 정도의 교인들이 있다. 그리고 연변의 조선족 교회들은 거의 다 삼자 교회이다.

지금도 연변은 한국선교사들이 포화 상태에 있다. 심지어 어떤 선교사는 연변에 있는 한국 평신도 선교사들 을 상대로 성경 공부를 하려고 하는 분도 있다. 그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사로서의 자질이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연변을 비롯한 동북 삼성의 조선족을 위해서 한국 선교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조선족 교회들이 지도자들의 부족으로 선교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조선족에게 필요한 선교사는 전도하는 선교사 보다는 조선족 교회를 섬길 교회지도자 교육에 헌신할 선교사가 필요한 것이다. 지도자 교육도, 목회자 교육과 처소교회 설교자 교육이 필요하다. 이 일을 위해서 무한정 선교사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잘 가르치고 훈련을 잘 시킬 수 있는 선교사가 필요하다. 인격적으로 조선족 교회가 본받을 만한 선교사, 조선족만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자신도 주안에서 말씀으로 변화되는 선교사가 필요하다. 조선족 교회를 강건한 교회, 자립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로 세우는데 도움이 될 선교사가 필요하다. 동북 삼성의 조선족을 상대로 하는 선교는 곧 포화 상태에 빠진다. 이미 그러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조선족을 정말 동족으로 사랑한다면, 조선족 교회들을 주안에서 형제로 간주한다면, 조선족 선교에 대한 무분별한 열정을 자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조선족과 조선족 교회를 살리는 일이요,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다. 만약 이러한 제안을 거부하고 조선족 선교에 무분별하게 뛰어 들어 종래의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주님의 준엄한 징계가 있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조선족 선교를 계속하다 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미 조선족 선교의 현장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선교비를 앞세운 교회와 교인 쟁탈전, 선교비를 앞세워 조선족 교회를 자본주의 공해로 오염되게 하는 짓, 기존의 교회 조직들을 서푼어치 선교비로 분열시켜 놓는 일 등 말로 다 할 수 없다. 한국에서 그렇게 못된 짓들을 했으면 됐지 중국에 원정가서 까지 교포들을 상대로 못된 짓을 계속해야 하겠는가? 한국교회의 선교비를 앞세운 추태로 조선족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심령은 변질되어 가고 있다.

그토록 순수하고 열정적이던 조선족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을 돈으로 말미암아 종교 장사꾼이 되게 만드는 죄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주님은 반드시 그런 사람들과 그들을 파송한 교회에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조선족 선교를 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전도이다. 물론 조선족이 중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의식구조가 상당히 중국화 되어 있다. 그럼에도 동일한 언어와 문화의 공유 등은 선교에 별 장애를 느끼지 않게 한다. 그러나 한족과 소수민족을 선교하려면 중국어를 습득해야 하고, 소수민족어를 습득해야 한다. 더군다나 중국인의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하고, 소수민족의 문화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부단한 노력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한족과 소수민족 선교를 기피하고 조선족 선교에 매어 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족 선교로는 결단코 면류관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중국 선교에서 선교의 대상을 조선족에서 중국 선교에서 선교의 대상을 조선족에서 중국 주류민족인 한족(94%)과 100만 이상의 55개 소수민족(6%, 조선족은 중국 인구의 0.17%에 불과하다)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붙잡아야 할 중국 선교의 사명은 바로 한족 선교와 소수민족 선교이다. 한족선교는 한국교회가 선교역량을 총동원해도 감당하기 힘든 대상이다. 그렇기에 한국교회는 중국 한족 선교를 붙잡아야 한다. 한족 선교에 헌신한다면 한국교회에 주님이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부흥도 허락해 주실 것이다. 필요한 인적인 자원과 물적인 자원도 주실 것이다.

중국 한족의 복음화를 한국교회의 두 어깨에 맡겨주신다면 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한국교회들 간에 큰 갈등 없이 중국 선교를 감당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중국내 소수민족 선교는 한국교회가 적격이다. 한족들과 소수민족 사이는 좋지 않다. 그러나 소수민족들과 조선족 사이는 아주 좋다. 그 결과 중국 소수민족들은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고 있다. 소수민족어를 배우고 (물론 소수민족들도 공식적으로는 표준 중국어인 북경어를 할 줄 안다.

그러나 효과적인 소수민족 선교를 위해거는 소수민족어 까지도 습득하는 것이 좋다) 소수민족들의 문화를 배우고 적응하는 것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 선교를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한족과 소수민족을 중국 선교에서 주요 선교대상으로 삼는다면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는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세계 선교사는 물론 하늘 나라 기념책에도 분명히 기록될 것이다. 편하지만 파멸의 길을 택할 것인가? 어렵고 힘들지만 영광의 길을 택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꾸물거리지 말고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중국 선교의 목표에 대해 수정해야

중국 선교(복음화)에서 중국교회로 21세기에 세계선교의 주역의 역할을 감당하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선교는 주님의 명령이기에 목표가 뚜렷해야 하고, 목표 설정이 바로 되어야 한다. 중국 선교의 목표는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의 중국 선교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알고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알고 한국교회의 중국선교에 대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목표가 잘 세워져야 그에 도달하는 계획들도 효과적으로 수립 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복음화이다. 중국이 복음화되면 한국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끝나는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에 대한 사명은 거기서 완성되지 않는다.

지상명령의 성취와 관련하여 중국 선교의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물론 중국을 복음화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중국 교회로 하여금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되도록 섬겨야 한다. 주님은 중국교회를 21세기에서 세계 선교의 주역으로 쓰실려고 하신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21세기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될 줄로 확신해 왔었다. 그러나 아니다. 한국교회는 21세기에서 세계 선교의 조역이지 주역은 아니다. 물론 이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괴로운 일이다. 필자도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프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임에 어찌하랴!

21세기 중국에서 기독교가 왕성하게 일어나리라는 것은 한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세계유수의 선교학자들의 견해이기도 하다. 물론 선교학자들의 말이나 리서치로 미래를 단언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조사는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외에도 중국교회가 21세기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될 만한 요인은 많이 있다.

①중국인은 세계 어느 곳이든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화교라는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동남 아시아 같은 경우는 그 지역에 토착화 되어 화교들이 경제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까지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한국인도 세계의 왠만한 지역에는 다 있다. 그러나 수적으로 중국 화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②언어 습득력이다. 중국인은 한국인 보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 습득률이 빠르다.같은 노력을 하면 중국인들이 한국인 보다 토플 성적이 뛰어나다.

③중국과 중국교회의 저력이다. 중국은 21세기에 경제적으로도 세계 굴지의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교회의 영적인 저력은 21세기에서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지금 중국교회는 약 5,000만 이상의 성도를 섬기고 있다.

2,000년에는 적어도 7,300만 이상으로 성장하리라고 예측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도 50만개 이상으로 성장하리라고 예측되고 있다. 물론 이 숫자는 가정교회를 주로 한 것이다. 중국교회의 저력은 삼자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교회에 있다. 중국 가정교회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중국교회를 선교하는 교회, 21세기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중국교회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삼자교회 보다는 가정교회가가 21세기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될 것이다.

가정교회들의 당면 과제는 지도자 교육과 훈련이다. 이 일을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한다. 삼자교회 신학교에 가서도 강의하라! 복음저긴 신학을 강의하라! 복음적인 신학을 강의하라! 그러나 더울 한국교회가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은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들의 교육과 훈련이다.(조선족 가정교회가 아니라 한족과 소수민족 가정교회를 말한다.) 중국 가정교회들은 지금 스스로 지도자 교육과 훈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헌신이 필요하다. 특히 교제도 한국이나 서구에서 이미 사용하던 교제를 그대로 사용하지 말고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들의 수준에 맞게 수정해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이 일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다. 중국 가정교회들과 교제하고 그들과 협력하여 이 일을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한다. 중국 가정교회들로 하여금 든든히 서 가고, 중국을 복음화하며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되도록 선교하는 교회로 중국 가정교회를 섬겨야 한다.

단독 선교에서 협력 선교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국교회가 단독으로는 잘하지만 협력은 잘못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선교에서는 단독 선교에서 협력 선교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단독으로 선교에 임하기에는 중국 선교는 너무나 엄청난 지상과업이다. 중국은 한 나라라고 하기 보다는 거대한 대륙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교회 단독으로 중국선교를 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누구와 협력하여 선교해야 하는가?

먼저 한국교회 끼리 협력 선교를 해야 한다. 현실은 전혀 협력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중국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거의 협력을 하지 않는다. 그 이우는 정보의 노출과 같은 보안상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한국인의 협력하지 못하는 성격이 작용하고 있고, 한국에서의 선교비의 조달과 관련되어 있다. 슬픈 일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최소한의 영역에서라도 협력 선교를 실시 해야 한다.

그래야 협력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살 수 있다. 단독으로 선교에 임하기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는가? 필요한 수업료는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지불하지 않아도 될 수업료까지 지불해야 할 만큼 한국교회 선교 재정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 단체들끼리 협력해야 한다. 물론 지금 줄국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약 15개의 선교 단체들이 격월로 중국 선교를 위한 기도회로 모이고 있다. 좋은 일이다.

보다 긴밀한 협력이 요청되고 있다. 선교단체들 간에, 교단의 선교부까지도 협력해야 중국 선교를 효율적으로 감당 할 수 있다. 어려움이 크지만 한국교회 선교단체들과 교단 선교부들이 이루어내야 할 과업이다. 화교 교회들과 협력해야 한다. 아시아에 있는 화교들은 그 출신 지방이 다 다르다. 그러기에 화교 교회들과 협력하여 그 출신 지방에서 사역을 하면 효율적으로 선교를 감당할 수 있다. 화교 교회들이 지금 본국 선교를 감당 할만한 능력이 있는가 물을 수 있다. 본국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화교 교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연약한 교회도 있다. 능력이 있는 화교 교회와는 직접 협력하여 선교를 하면 된다.

연약한 화교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섬겨야 한다. 그리고 화교를 대상으로 하는 선교도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선교의 열매로 맺어지는 화교 교회로 본국 선교를 감당해야 하며 그들과 협력하여 중국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 세계적인 화교 교회 조직이 있고, 각 나라마다 화교 교회조직이 있다. 그 조직들과도 협력관계를 맺으면 중국 선교에 있어서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서구 교회들과 협력해야 한다. 비록 서구 교회들이 많이 쇠퇴했지만 그들의 중국 선교 노 하우는 엄청난 보화이다. 선배를 존경하고 섬기면 그들이 많은 댓가를 지불하고 쌓은 노 하우를 전수 받을 수 있다. 서구 교회들의 선교에 대한 노 하우와 중국선교에 대한 노 하우를 전수 받으면 한국 교회의 중국 선교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그리고 아직도 서구교회의 선교의 저력은 대단하다. 그들과 협력하여 중국 선교를 수행하면 한국교회는 명 코치를 만난 선수처럼 기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서구 교회와의 협력은 한국 교회의 중국 선교에서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선배를 존경하고 선배의 노 하우를 전수 받는 것은 지극히 지혜로운 일이다. 서구교회들과의 협력은 기존의 국제적인 선교단체들과의 협력으로 수행될 수 있다. OMF 등 많은 국제적인 선교단체들이 있다. 그들과 협력하는 것이 중국 선교에서 여러모로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역할 분담을 잘해야 한다. 중국은 너무나 넓은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막연히 중국 선교를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이며 현실성이 없는 일이다. 이것은 마치 세계 선교를 한다면서 툭정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를 선교지로 삼는 것과 같은 일이다. 세계 선교의 비젼은 가져야 하지만 특정지역에 그 비젼을 심어야 한다. 중국 선교에 대한 비젼은 좋다. 그러나 중국의 한족, 또는 소수민족 중에 선교의 대상을 선택해야 한다. 한족을 선교의 대상으로 정했다면 한다. 중국에서 어느 지역의 한족에게 선교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소수민족을 선교의 대상으로 정했다면 어느 민족을 선교의 대상으로 정했다면 어느 민족을 선교의 대상으로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연구와 현지 조사를 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그 언어를 습득하고 문화에 적응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한 소수민족을 붙잡고도 한 교단이나 선교단체가 평생을 씨름해야 한다. 선교사는 중국 선교 현지에 뼈를 묻을 각오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 선교에서는 큰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지역으로 볼 때 중국을 4등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역의 선교 정보를 수집하고 선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즉, 동북지역, 서북지역, 화동지역, 서남지역 등이다. 동북지역은 북경시, 천진시, 하북성, 산서성, 내몽고, 요령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으로, 면적은 186만평방Km이고, 인구는 약 2억 2천백만 정도 된다. 언어는 내몽고를 제외하고는 북경어를 쓴다. 서북지역은 내목고 일부분, 신강 위구르 자치구, 창해성 감숙성, 영화 회족 자치구 등이다.

면적은 약 340만 평방Km 이고 인구는 8,650만 정도 된다. 이들 중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회교 및 불교를 믿고 있고 20개 이상의 소수민족이 흩어져 살고 있고, 대부분이 미전도 부족으로 남아 있다. 화동지역은 산동성, 하남성, 안휘성, 강소성,절강성, 복선성, 상해시, 호북성 등이다. 면적은 111만 평방Km이고 인구는 4억 6천 5백만이다. 허드슨 테일러에 의해 복음을 받은 절강성과 강소성은 중국의 예루살렘이라 할 정도로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고, 하남성은 중국에서 가정교회가 가장 많고 활발하다. 이 지역의 기독교인은 중국 전체의 80%가량 된다. 서남지역은 서장 자치구, 사천성, 운남성, 귀주성, 호남성, 광동성, 광서성 자치구, 해남도 등이다. 면적은 296.4만 평방Km 이며 인구는 약 3억9천2백만 정도 된다. 이 지역에는 4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고, 특히 운남성은 23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소수민족의 선교애 사명이 있는 분들은 이곳을 선교의 대상으로 택하면 좋을 것이다.

산발적 선교에서 총력선교로

중국 선교는 너무나 거대한 과업이라 한국교회가 산발적인 선교로는 도저히 그 일부라도 감당하기 힘들다. 한국교회는 이제까지의 산발적인 선교에서 총력 선교로 그 방행을 전환해야 한다. 산발적인 선교로는 선교한다고 말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 중국 선교에 한 몫을 감당 할 수는 없다.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총력선교란? 중국선교를 위한 모든 기회와 방법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중국 선교를 수행하는 것이다.

모든 선교의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하나님은 중국 선교를 수행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회를 한국교회에 허락하고 계신다. 당장 활용 할 수 있는 것이 컿내 거류 조선족 동포들을 선교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미 이 사역을 수행하는 선교단체들과 교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재한 조선족 선교를 위한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 사역을 하고 있다. 뜻이 있는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이 힘을 합쳐 품안에 들어온 그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 사랑의 집(몇 곳이 있다.) 사역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공단에서 조선족 교포들과 중국인 노무자를 위한 선교 사역도 시행되고 있지만 미약한 상태다.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동남아에 있는 공장들에 취업자 나온 중국인들에 대한 선교의 기회가 있는데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정보에 의하면 중.소 국경에 위치한 도시들에 조선족 교포들이 나오고 있다. 그들을 상대로 선교할 수 있는 기뢰가 열려져 있다. 북한선교 같은 경우도 구호만 외치지 말고 지금 즉시 실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다.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 는 지금 북한 임업 노무자들이 작업장에서 풀려나와 있다. 작년 12월 초에 얻은 정보니까 지금도 유효할 것이다. 북한 선교에 뜻이 있는 분이라면 단기간에 걸쳐 북한 선교의 교두보를 마련 할 수 있는 기회이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진정 중국 선교에 뜻이 있고 헌신하려 한다면 중국 선교를 수행할 기회는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반드시 있다.

우리가 포착하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 그리고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 하나의 기회를 잡아 활용하면 또 다른 기회와 연결된다. 처음부터 모든 여건이 조성된 다음에 중국 선교를 하려 하면 부지하 세월이고 때는 지나가고 만다. 여건이 조성되기 전이라도 조그마한 가능성이 보이는 기회라도 포착되면 활용하라 그로 인해서 더 나은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중국 선교에 비젼이 있는 선교단체와 교회 그리고 선교 헌신자들에게 포착되는 기회는 중국 선교를 명하신 주님이 주시는 것이니 놓치지 말고 활용해야 한다.그래야 주님이 또 다른 기회도 주신다. 중국 선교를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지만 중국 선교를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이 있다. 모든 선교단체나 교회가 같은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전문인 선교도 있고, 프로젝트 선교도 있다. 보안상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방법은 많이 있다. 주님이 성경에서 명백히 금하신 것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하라. 특정한 방법만이 중국 선교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자신이 하고 있거나 선호하는 방법만이 중국 선교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중국 선교의 방법을 모르면 배우라. 국제적인 선교단체에서 배울 수도 있고, 국내의 건실한 선교단체에서 배울 수 도 있다.

이미 선교에 참여한 선배 선교사뜰에게서 배울 수 있고, 중국 선교 전문가에게서 배울 수도 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 선교의 길이 있고 방법이 있다. 선교에 대한 훈련을 받고 어느정도 언어 훈련이 되어 있으면 중국에 가라. 그리고 3년 정도 중국인이 되어보라. 신뢰할 만한 중국인을 사귀어 보라. 영향력 있는 중국인과 친구가 되라. 그러는 가운데 선교의 기회를 찾게 되고,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어떠한 방법도 소홀히 하지 말라.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주눅들지 말고 중국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수업료 없이 배울 수 있는 귀한 것은 없다. 중국 선교를 위한 수업료를 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라. 한국 교회의 선교역량을 중국선교에 총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중국 선교에 총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중국 선교의 과열이 우려될 수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선교의 과열은 조선족 선교에 대해서는 아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세계 각국에 2,000~3,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장한 일이다. 그러나 기왕에 하던 세계 선교는 계속해서 수행해야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의 선교역량을 중국 선교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 교회가 중국 선교를 감당 할 수 없다. 그만큼 중국 선교는 엄청난 과업이다. 한국교회가 생각하는 것 보다 중국 선교는 더 중요한 일이고, 힘든 일이다. 힘이 분산되면 작은 일은 할 수 있어도 큰 일은 하기 힘들다. 중국 선교는 한국교회가 선교역량을 총동원하기를 요청하고 있다, 나는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에 선교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에 선교역량을 총동원 하는 것이 세계 선교와 주님의 지상명령 성취에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일이라고 확신한다. 비록 중국 선교에 한국 교회의 선교 역량을 총동원 해서 헌신하는 것이 여러 나라에 선교역량을 분산하는 것 보다 빛이 덜 날지 모르나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한국 교회의 선교 투자요 헌신이라고 확신한다. 이 확신은 필자 개인의 확신일 뿐 아니라 여러가지 조사와 중국 선교 종사자들과의 면담에서 얻게 된 결론이다.

중국 선교의 장애물을 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국교회는 중국 선교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얕잡아 볼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을 알고, 중국인을 알지 못하면 백전백패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10년은 그들 가운데서 살아 보아야 중국인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멋 모르고 덤볐다가는 크게 다친다.

여러가지 조사들에 의하여 중국인의 특성을 추출한 것이 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인은 다음의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중국인의 특성은 중국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서 넘어야 할 산이다. 이 산을 넘어야 중국 선교는 성공 할 수 있다. 이 산을 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마치 중국을 정복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한족에게 동화되어 버리거나, 코피터치고 쫓겨난 역사상의 민족들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산을 넘으면 한국교회는 중국 선교에서 하나님과 세계 선교사에 기억될 찬연한 선교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를 수행함에 있어서 넘어야 할 산, 즉 선교의 장애 요소인 중국인의 특성은 무엇인가?

민족 우월주의 곧 중화사상이다. 중국인들은 타민족에게 대한 뿌리깊은 우월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 중국이라 부르며 한족만이 문화민족임을 자처하고 다른 민족은 남만, 북적, 동이, 서융 등 오랑캐로 불러왔다.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 사역에 임할 때 한족을 먼저 존중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중국 선교는 발붙일 곳이 없다.

중국 국민들의 현재 생활이 우리만 못하다고 해서 그들을 업신여겨서는 중국 선교는 실패한다. 그런데 중국에 선교 여행차 다녀갔거나 선교사로 온 사람들 가운데는 역으로 자기 문화에 대한 우월감에서 한족인 중국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는 어느 문화가 낫고 못하고가 없다. 다만 문화는 서로 다를 뿐이다. 우리 눈이나 가치 기준으로 한족들을 평가하지 말라. 유구한 문화적 전통과 역사를 가진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중국 선교에 임해야 중화사상을 넘어 그들에게 접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과 복음 안에서 깊은 교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시건방진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을 마음으로 부터 사랑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말과 행동을 통하여 그들의 존경을 획득해야 한다. 중국인들의 마음 속으로부터의 존경을 획득하는 것이 민족적 우월주의를 극복하는 첩경이다. 중국인들은 도교사상과 농경사회의 영향으로 하늘에 순응하는 사고가 농후이다. 이것은 체념적이며 숙명적이며 소극적인 성격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런 의식구조가 진인사대천명 별 수 없다 는 말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절대악의 개념이 없고 절충, 융합적이어서 수많은 침략을 당하면서 얻어졌던 수많은 사상들을 융합,절충하여 중국의 것으로 만들어 왔다. 이러한 순응성에 길들여진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죄와 구원의 복음을 증거할 것인가? 종교 혼합주의에 빠지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상황화 할 것인가?를 모색해야 한다. 이것은 중국의 문화권이 죄책감의 문화권 이 아니라 부끄러운 문화권 이라는 데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중국인들이 체면을 중요시 하는 것도 그들의 문화가 구미와 같은 죄책감의 문화권 이 아니라 부끄러움의 문화권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문화권이 죄책감의 문화권 인지 부끄러움의 문화권 인지를 아는 것은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을 상황화 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죄책감의 문화권 에서는 죄와 그 형벌에서의 구원을 주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부끄러움의 문화권 에서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씻어주시고 감춰주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성경에는 에수그리스도가 죄에서의 구세주이실 뿐 아니라 부끄러움에서도 구주이심을 증거하고 잇다. 중국인들에게는 우리의 모든 부끄러움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부끄러움을 감춰주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역사적 요인과 자연적 여건으로 인해 물흐르듯 살아가기 때문에, 만사에 조급히 굴지 않으면 일처리등에서도 지나치게 느리다. 그들의 만만디적 사고방식은 외래적인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면면히 흐르는 전통을 쉽사리 변하지 않게 하였다. 만만디 는 중국 선교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선교의 장애 요소이다.

만만디 는 성격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양파이론에 의하면 문화의 핵에 해당하는 것이다. 만만디 는 그들이 다섯살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전수받은 것이다. 이런 의미게서 중국 선교에서 그들을 공략 할 수 있는 유일한 아킬레이스건은 경험이다. 경험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를 만나게 하면 그들은 요지부동의 전통적인 의식구조에서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이다.

중국인들은 경험에 약하다. 가정교회들이 중국에서 그렇게 강력하게 부흥되고 성장한 것은 풍부한 그들의 간증 때문이었다. 간증은 그들이 주님의 복음과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증거이다. 정교회와 그 성도들은 그들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만 증거한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하여 증거 하였다. 심지어 그들을 박해하는 동산주의자들도 그들이 생활로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주께로 돌아온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만만디로 무장된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첩경은 선교사 자신이 복음과 말씀을 연구할 뿐 아니라, 준행하여 얻은 경험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말씀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케 해야 한다. 그러면 만만디의 껍질을 깨고 중국인들도 주님 앞으로 나아 올 것이다. 그때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신다. 마음을 열고 주님 앞으로 나아 올 것이다. 그때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신다. 마음을 열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중국인들을 주님의 성령이 변화 시키실 것이다.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변화될 것이다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교지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현실의 일상적 생활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저절로 인간을 현세적이며 유물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중국의 종교는 어디까지나 재앙을 떠나며 복을 구하기 위한 기구나 주술에 지나지 않았고, 중국의 도덕이나 정치 사상 속에는 사람으로서 육체적,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온갖 것들을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인간의 사후의 문제에 관한 종말론을 받아 들이기 어려웠다. 여태까지 중국인들은 지나치게 체면을 따지는 민족으로 알려져 왔으나 오히려 한국인에 비해 더욱 현실적이며 체면을 따지지 않는다. 그런 경향은 젊은 세대로 갈수록 더울 두드러진다. 이것은 중국 선교에서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다. 삼자 애국운동과 중국 교회협의회도 현실적인 이유로 한국교회와 교류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이익을 포함하여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어야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인들에게 선교하려면 절대로 선교비를 앞세워서는 안된다. 선교비를 앞세워 중국 선교에 임하면 결국 한국교회는 그들의 현실적인 요구인 딸라 만을 갖다 바치고 선교의 열매는 결코 맺지 못할 것이다. 결단코 선교비를 앞세워 중국 선교에 임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

중국인들은 판단이나 추리에 있어서 보편적인 것보다도 개별적인 것, 특수한 것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보편적인 것보다도 특수한 것을 중요시 하는 사고방식은 특수한 것의 극단적인 형태인 개별적인 것을 중시하는 양태로써 나타난다. 개별적이고 구체적 지각만을 신뢰하는 중국인은 그 법칙적 기준을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사실, 즉 선례에서 구하려고 한다. 과거의 생활이 중국인의 심리에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전통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있고, 고전 특히 시경, 서경, 춘추, 역경, 예기 등 5경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이러한 중국인들에게 그들의 행동과 심리적 안정감의 근거로서 성경을 오경과 어떻게 대체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상술한 중국 선교의 장애들은 선교를 가로 막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주님의 지상명령을 가로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난감한 문제들이지만 주님께는 중국선교의 장애를 극복할 길이 있고, 방법이 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문인 선교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중국은 개방은 되었어도 창의적 접근지역임에 틀림없다. 목사나 선교사의 신분으로는 중국에 들어갈 수 없고 공개적으로 선교를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둥국 선교에서 전문인 선교의 극대화가 요청된다. 목사 선교사가 중국에 간다해도 전문인 선교의 형식으로만 가능하다.

전문인 선교는 목사 뿐 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가능하기에 선교사 자원을 충원한다는 차원에서도 전문인 선교가 절실히 요청된다. 전문인 선교는 전문가 선교사가 있고, 전문가 형태의 선교사가 있다. 전문가 선교사는 제대로 된 전문인 선교사이다. 전문인은 어떤 특정 분야의 자격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전문가 선교사는 고도의 기술을 갖고, 그 기술(직업)을 갖고 선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전문가 선교사는 고도의 기술을 갖고, 그 기술(직업)을 갖고 선교하는 사람이다. 전문가 선교사는 평신도일 경우가 많다. 이와는 달리 전문가 형태의 선교사는 공인된 자격증은 없다. 기술상 전문가는 아니다.

대충 배워서 선교 전략상 전문인 선교사가 된 사람이다. 전문가 형태의 선교사는 목사 선교사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인 선교는 네 그룹으로 분류한다.(전문인 선교사를 Tent-Maker라는 의미에서 T라는 약자를 사용한다.) T1, T2, T3, T4 T1은 선교사라고 부르기 어려운 형태이다. 스스로나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고 선교사라고 부른다.

국내의 직장이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해외에 투자하는 경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선교를 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그들은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을 수도 있고, 무장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으나, 선교 훈련은 안 받고 산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의 다 실패한다. T2는 국내에서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선교를 위해 해외 근무를 자청해서 가는 경우이다. 그들을 자녀교육 희생등 댓가를 지불하고 나감에도 선교의 열매는 적다.

전 세계에 수천 내지 수만명이 됨에도 전문인 선교사로서 가장 많이 실패한다. 그들이 헌신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것은 선교를 위한 시간 사용이 부자유하고 선교보고에 대한 책임이 없어서 선교 열매에 대한 부담을 안 갖게 되기에 열매가 적다. 뛰어난 선교사도 감독을 받아야 한다. 특별한 사람은 몇 사람 없다. 우리는 항상 용서받은 죄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숙고끝에 새로운 형태의 선교를 발굴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T3이다.

T3은 스스로 선교를 위해 사업체를 세운다. 선교사들은 그들을 파송한 모교회가 있고, 안수를 받기도 하고, 안 받기도 한다. 모교회의 선교비 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팀사역도 한다. 공산권, 회교권 선교사역에 적합하다. 선교사가 전문 기술이 있으면 사업을 도와줄 수 있다. 그 사업체 울타리 안에서 목사, 전도사들이 선교사역을 수행한다. 3개월에 35명을 전도해서 세례를 준 사례도 있다.

T4는 사회사업이나 개발단체 등 프로젝트 선교이다. 선교사들은 합법적으로 들어가고 신분이 보장되는 상태에서 봉사사업을 하면서 선교사역을 수행한다. 그러나 융통성이 떨어지는 것과 그들이 시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눈물을 머금고 그냥 철수해야 한다. T2가 가장 많고 실패도 제일 많다. 창의적 접근 지역에 가장 적합한 것은 T3이다. T3형태의 전문인 선교에 대한 연구와 실제적인 모색이 활발하게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안을 유지하는 가운데 관심이 있는 선교단체와 선교 헌신자들 간에 성공 사례와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 전문인 선교와 아울러서 비지니스 선교에 대한 시도도 해 보아야 한다. 비지니스 선교란 전략상 사업을 하는것이 아니라 선교비를 자금하기 위해서 선교팀의 일부가 선교지에서 사업을 하는 팀 선교이다. 피지에 비지니스 선교팀이 파송되었는데 처음에는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선교팀이 와해되었다가 지금은 사업도 본 궤도에 오르고 부분적으로 다기 팀 선교를 하고 있다. 앞으로 원래대로 팀을 회복하여 팀 자체내에서 자급자족하며 선교사역을 수행하려고 한다.

비지니스 선교는 중국 선교에 엄청난 선교비가 소요됨에 비해서 한국 교회가 그것을 다 감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기에 한국 교회가 시도해 보아야 할 새로운 선교 형태이다. 지금 비지니스 선교를 위해 훈련하고 있는 팀이 있다. 물론 그들이 중국 선교에 헌신한다는 계획이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선교가 성공한다면 중국 선교에서도 시도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앞으로 더욱 개방되고 자본주의가 유입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선교 형태이다. 비지니스 선교는 사업을 담당하는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사업을 하여 팀의 선교비를 자급 자족하고, 다른 팀원들은 각자 맡은 바 선교사역을 수행하는 것이다. 성공만 한다면 본국의 경제적인 지원 없이도 능히 선교를 수행해 나갈 수 있다.

국내 어느 선교단체에서는 이 비지니스 선교를 위한 훈련을 벌써 2기째 시행하고 있다. 그들은 선교 헌신자들 중에서 현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30명을 엄선하여 명 코치의 지도 아래 막노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일류 사업가가 되는 훈련을 실제로 받는다.

훈련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 그 훈련은 일류 기업체 임원진이 받고 싶어 할 만큼 실제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이다.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그런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선교에 헌신하다면 틀림없이 비지니스 션교를 확립해 놓을 것이고, 중국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지니스 선교는 앞으로의 중국 선교에서 반드시 채용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하고 새로운 선교 형태라고 사료된다.

교회 식민주의에서 토착교회의 설립으로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여러 교파를 심었듯이 한국교회들이 중국에 교파를 이식하려 하고 있다. 교파를 이식하려는 것이 교회 식민주의이다. 중국은 어떤 동류의 식민주의든자 다 배격한다. 그리고 중국교회가 따라야 할 교회의 모델은 한국 교회나, 서구 교회가 아니라 신약성경에 증거하고 있는 교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 삼성의 어떤 곳에는 이미 한국의 교단이 이식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어찌 천인공노할 만행이 아닌가? 한국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만 100개가 넘는 교단들이 교계를 혼란시키는 것도 부족해서, 중국에 까지 원정을 가서 그 못된 짓거리들을 또 하려고 하는가? 한국 교회는 중국에 복음만 증거하라! 교회의 형태는 중국인들 스스로 정하게 하라! 중국인들은 신중국이 설립되기 전부터 훌륭한 자생교회 조직이 있어 왔다. 지방교회와 예수가정이다. 예수가정은 중국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신중국의 수립으로 예수 가정이 많이 와해되었지만 그 맥을 이어 중국에는 가정교회들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적합한 가정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해주면 된다. 중국에다 한국교회의 지교회나 한국교회 교단을 이식하려는 야욕을 버릴 때에만, 중국 교회는 한국 교회의 중국 선교에 대한 동기를 의심하지 않고 한국교회와 협력할 것이다. 주님의 관심은 교회에 있는 것이지, 교단에 있지 않으시다. 8.교류의 대상으로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에 대한 균형과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교단적으로는 대부분 삼자교회와 교류한다. 공식적인 교류의 상대가 중국교회협의회 밖에 없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삼자교회와 교류하면서 마치 중국선교를 다 하고 있는 양 착각하지 말라, 삼자교회는 그 수에 있어서도 중국교회를 대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삼자교회는 복음적인 교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협한 교회이다. 공식적으로 정치와 타협한 교회가 중국 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의 진정한 교류의 상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선교 전략상 그들을 교류의 상대로 삼을 가치가 한시적으로 있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삼자교회와의 교류를 중단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중국과 교회문제로 관계를 현겅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만 의례적인 수준 이상으로 깊은 관계를 맺지는 말라.

삼자 애국운동 또는 중국 교회협의회의 체면을 살려주고 그들이 원하는 딸라를 좀 갖다 주라. 그들에게 갖다 주는 딸라는 하나님께 바친 헌금을 중국선교를 위한 수업료로 지불하는 것이니 아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비용일 것이다. 그러나 수업료를 너무 많이 지불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한국교회가 중국 삼자교회들과 진행시키는 일들을 보면 수업료를 과도하게 지불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 수업료는 한국교회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개인의 돈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 하나님의 돈이다.


하나님이 그 돈의 사용에 대해서 감사하실 날이 있음을 기억하고 삼가 근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돈을 갖고 가정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의 개인 용돈과 축재하는 일에 주어도 좋은 일인지 하나님께 여쭤봐야 할 일이다. 그들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준 선교비가 가정교회들을 박해하고 흡수하는 자금으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에 모골이 송연해질 뿐이다. 복음적인 교회나 선교단체 그리고 선교사들은 가정교회와 교류하고 있다. 가정교회와 교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삼자 교회 지도자들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하지 말라. 진리가 아닌 일로 쓸데 없는 사단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것은 만용이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한국 교회는 중국 가정교회와 깊은 유대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은밀하게 그들을 여러모로 섬기고 도와야 한다. 삼자교회와의 관계는 공개적으로 해도 상관없지만, 가정교회와의 교류와 협력은 절대로 보안을 지켜야 한다.

보안이 무너지면 가정교회는 큰 화를 당하고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공개적으로 중국 삼자교회와 교류를 하고 있는 단체들은 그대로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 그러나 의욕적으로 프로젝트를 확장하지는 말라. 현상유지가 좋다. 그리고 삼자 애국운동이나 중국 교회협의회를 부추겨 가정교회들을 흡수하거나 간섭하려고 하지 말라. 가정교회를 도와주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두라.

가정교회와 교류하며 협력하는 선교단체들과, 교단들을 모르는 체 내버려 두라. 서로가 상대방의 영역을 존중하고 자기 사역을 하면 유익함도 있을 것이다. 2년 전에 중국에 가서 삼자 애국운동과 교류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중국에는 가정교회가 없다는 망발을 하였다. 하나님께 심판 내지는 징계를 받을까 두렵다. 거짓말은 마귀가 사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의도와 동기가 의심을 받는다.

가정교회와 교류하며 협력하는 교회와 선교단체, 선교사들도 삼자교회와 교류하는 측을 매도하지 말라. 상호 간섭하지 않는 것이 양측에 도움이 된다. 9.선교의 원동력의 고양에 관심을 기울이라 선교의 전략과 노하우가 아무리 훌륭하고 선교의 방향 설정이 아무리 잘되었다고 해도 선교의 원동력이 저하되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한국교회가 지금 가장 심각하게 대처해야 할 문제는 한국교회 선교의 원동력의 저하이다. 지금은 그동안 쌓아 놓은 자원을 사용하여 그럭저럭 지내왔다. 그러나 쌓아놓은 것을 곶감 배먹듯 빼먹으면 얼마 안 가서 거덜나고 만다.

거덜난 다음에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중국 선교는커녕 한국교회가 자신의 몸도 건사하지 못할 것이다. 절망적인 현실을 직면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괴롭다고 현실을 외면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교회는 지금 양적으로만 침체 내지는 쇠퇴에 빠진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한국교회의 영성이 급전직하에 있다고 하는 점이다. 급전직하 떨어지고 있는 선교의 원동력이 회복되어야 한다. 단순히 선교의 원동력이 현상유지로 회복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21세기를 감당할 수 있는 선교의 원동력 심령의 부흥이 임해야 한다.

물론 부흥이 한국교회가 노력한다고 해서 임하는 것은 아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 하나님이 부흥을 주신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하나님이 부흥을 주실 수 있는 자세를 취할 수는 있다. 한국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은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부흥을 구해야 한다. 역대하7:14 처럼 회개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부흥을 구해야 한다. 부흥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주여! 부흥을 주시옵소서! 나의 심령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우리 한국교회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부르짖어야 한다. 부흥은 단지 교인들 몇 명 더 늘고, 헌금이 많이 나오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부흥은 우리 한국교회의 사활이 달려 있는 문제이다. 한국교회가 중국 선교를 감당하는 것도 부흥에 달려 있다.

한국교회에 부흥만 임한다면 중국 선교는 한국교회가 그 일익을 충분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한국교회가 그 동안 추종해 온 서구 교회들이 간 그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살려면 부흥이 임해야 한다. 개 교회가 살려면 부흥이 임해야 한다. 우리 목회자들이 심령에 부흥이 임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래야 민족 복음화는 물론 중국 선교를 감당하고 세계 선교의 지상명령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