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2 06:07
■ 예장 통합측의 ‘천주교(로마카톨릭) 영세’ 인정에 대한 논평
2017. 9. 22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서문)
다음의 □ 안에 글은 ‘교회와신앙’의 2017년 9월 21일자 기사이다.
아래의 기사에 보면 예장 통합측의 102회 총회에서 천주교(로마카톨릭) ‘영세’를 인정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하여 논평을 결론적으로 하자면 천주교(로마카톨릭)의 영세는 우리교회의 세례와는 완전히 다른 이종교의 예식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닌 마리아교이다.
둘째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에 대한 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로마카톨릭)의 영세를 우리 교회가 인정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교회와신앙 기사)
예장통합… 마술 요가 금지, 영세는 세례와 동일 임보라 목사와 이용도 목사 건은 다음 총회로 미루기로 2017년 09월 21일 (목) 10:14:43 양봉식 기자 sunyang@amennews.com
【 <교회와신앙> : 양봉식 기자 】 예장통합이 교회 내에서 ‘마술’과 ‘요가’ 행위를 하는 것을 금하기로 했다. 또 로마교회(천주교)의 영세는 세례와 동일한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총회 2일째인 19일 저녁 회무처리에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대위)의 연구보고를 받고 이 같이 결의했다.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이용도 목사 건은 다음 총회로 미뤘다. 8개 교단이단대책위원장 연석회의 진용식 목사가 제출한 ‘임보라 목사의 이단적 경향 판단 및 요청의 건’과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 전명구 목사가 제출한 ‘이용도 목사에 대한 이단성 시비에 관한 자료 요청’이다.
이단 옹호 언론으로 규정된 <교회연합신문>과 <크리스천투데이>에 대한 재심은, 93회기에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두 기관에 대해 이단옹호언론으로 규정될 만한 내용이 분명이 있었으나 단순히 의결정족수 문제만으로 재심을 요청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결정족수 문제가 있는 결의의 효력유무를 판단하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보아 판단을 유보했다. 1. 교회 안에서 ‘마술’ 금지 : ‘매직 가스펠’, ‘다른 복음’ 될 개연성 커 이대위는 교회 내에 사용하고 있는 마술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교회 안에로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단호한 결론을 내렸다. 이대위의 연구보고서에 마술에 대한 연구보고서에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경에도 없는 ‘매직 가스펠’(마술 복음)이 단순히 전도의 수단을 넘어서 마술이 ‘목적’이 되고 주관심사가 되는 조짐에 따르는 교회 안팎에서의 마술시행여부에 대한 혼란 · 우려 · 질문이 목회 현장에서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며 “마술에 관련된 성구는 약 100개 정도인바, 성경 전체를 통한 결론적 메시지는 매우 부정적이다.”고 밝혔다. 또한 “초기교회 바울은 마술을 ‘육신의 일’(갈 5:19-21)로 분류했으며, 마술 불승인은 2세기 중후반의 초기교회 훈련집인 디다케(Didache)에서도 반복되었다. 중세교회 초반가지는 마(요)술을 시행하지 않았다. 파데본(Paderborn)의 독일회의는 785년 마술을 명시적으로 불법으로 간주하였고, 이 법을 로마제국 샤를마뉴 대제는 확인하였다. 비잔틴 제국의 동방정교회는 마술을 미신으로, 9-10세기에 서방 라틴 기독교는 마술을 이교로 취급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초기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악마의 능력을 완전히 패배시켰다는 신앙적 신학적 이유 때문에 마술을 믿지 않은 것으로, 계몽시대는 합리주의와 경험(실증)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회 안팎의 프로그램의 선교활동에 ‘마술복음’은 매우 위험한 함정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 위험성에 대해 보고서는 첫째는 복음의 수단으로 ‘재미 있는 복음’으로 전할지 모르지만 마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손재주나 도구들을 사용하여 인간의 눈속임을 통한 감탄과 재미를 유발하기 위해 고안 개발한 것이라 아무리 수간이 좋고 훌륭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참된 복음 전도 목적이 거짓 수단사용을 정당화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전도 방식은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이지 거짓속임수를 통한 화려하고 매력적인 수단들을 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직 가스펠’이야 말로 바울의 강하게 저주했던 ‘다른 복음’(갈 1:6-7)이 될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둘째, 문화의 본질인 죄인이 만든 것 일뿐임을 연두에 둔다면 문화이기 때문에 교회가 따라갈 게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늘 문화의 참과 거짓을 구별, 평가, 비판하고 새로운 방향 곧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제시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참 진리이신 에수 그리스도를 신앙, 교육, 선포, 실천하는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인간이 눈속임을 위해 만든 마술(그것이 오락, 흥미와 문화영역에 머물던)을 어떤 경우에도 교회 안에 가져와선 안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2. ‘요가’ 참여 금지 : 힌두교의 간접전도… 종교적 수행방식 이대위는 요가에 대해 “요가라는 용어 자체가 힌두교의 간접전도를 초대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요가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참여 금지할 것을 밝혔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요가는 그 차제가 종교적이며 철학의 체계를 가지고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식을 바탕으로 철학체계 세우고 있으며 국내에 요가는 요가학파는 <요가 수트라>가 근본 경전을 절대자의 최고선을 인정하고 있으며, 범신론적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을 지향하며 ‘해탈’을 얻고자 하는 종교적 수행방식이라는 것. 그러므로 요가는 건강증진과 마음의 수양을 위한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힌두교의 종교 의식 가운데 하나라는 것. 연구보고서는 △요가의 운동법, 호흡법, 명상법 등은 신과의 신비적 합일에 이루는 해탈에 도달하는 것이 요가 수행법이다. △요가는 신인합일을 목표로 삼는다. △요가 사상은 자력구원을 주장한다. △예수님을 요가 수행자라고 주장한다. △요가는 대표적인 뉴에지 운동이다. △요가는 전형적인 영지주의이다. △요가는 윤회설을 주장한다. △요가의 사상은 연금술과 샤머니즘 사상까지 포괄한다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요가는 심지어 교회와 기독교인의 일상에까지 침투되어 있음을 개탄했다. 요가 강습을 알리는 광고가 교회 홈페이지에 실리기도 하고 교회의 문화센터에서 요가 강의가 개설되기도 한다면서 “미국에서는 이미 기독교인 요기들이 이른바 ‘크리스천 요가’로서의 ‘홀리요가’(신성한 요가)를 수행함에 있어서 만트라 요가에서처럼 ‘옴’이라는 소리 대신 ‘아멘’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색체를 배제하기 위해 그들은 요가라는 말 대신 ‘높낮이 팔굽혀펴기’로 변경하여 부른다고 한다.”면서 이러한 영향을 한국교회가 받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보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연구보고서는 결론으로 “어떤 경우에도 요가가 교회 안에 들여오거나, 어떤 형식으로든 요가를 지원하거나 관여해서도 안 된다.”며 못 박고 “교회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요가의 참여를 금해야 할 것이다.”고 보고했다. 3. 로마(천주교)교회 ‘영세’ 인정키로 이대위는 로마(천주교)교회에서 받은 영세를 기독교에서 세례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로마(천주)교회의 영세를 인정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에 비록 로마교회가 문제가 있더라고 고대교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칼뱅은 로마교회의 각종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들이 참된 교회가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로마교회를 교회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들 가운데 세례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로마교회가 개신교의 성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직(사제)계급의 전통에 의존하는 그들의 한계요 딜레마이다. 개신교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로마교회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성례 이해가 고대 교회 전통에 서 있는 우리 개신교회의 성례 이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안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들의 영세를 인정하는 것은 성례의 성립과 성례의 효과를 구분한 고대교회의 성례 이해의 전통임과 동시에 ‘만인사제설’을 외치며 탄생한 개신교의 정체성에 걸맞은 올바른 태도”라며 영세를 인정하는 것에 결론을 내렸다. |
(논평)
1.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닌 마리아교
천주교(로마카톨릭)는 마리아를 예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천주교(로마카톨릭)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하나의 이종교로서 마리아교라 할 수 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천주교(로마카톨릭)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로 마리아를 세운 것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마리아를 사랑하는 것이 되며, 예수님을 경히 여기고 마리아를 중히 여기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천주교(로마카톨릭)는 기독교가 아닌 마리아교이다. 다음의 그림이 이에 대한 증표 중에 하나이다.
2.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에 대한 표
(행10:47-4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성령을 받은 자에게 그 표로 주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셨다.
그러면 성령을 받는 것은 무엇이며?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무엇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1) 성령을 받음
(행10:47-4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성령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며, 예수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다.
① 보혜사 성령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함께 거하시고(요14:16-17),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는(요15:26) 것이다.
② 주의 성령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신다. 이것이 성령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2) 물로 세례를 줌
(행10:47-4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성령을 받은 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 하셨다. 그러면 물로 세례를 줄 때에 형식은 어떠한가?
(행19:1-7)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사도 바울이 세례 요한의 침례를 받은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저희가 듣고 믿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성령을 받음 즉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즉 머리에 물로 안수하는 물세례를 주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받은 자에게 세례 요한의 침례 즉 물에 잠기는 형식으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주라
(행10:47-4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셨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사죄의 구속<롬5:6, 골1:22>, 칭의의 구속<롬5:8, 빌2:8>, 화친의 구속<롬5:10, 엡2:15-16>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엡1:7) 죄 사함을 받은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않고 사는 믿음,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믿음, 화친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과 동행으로 사는 믿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보혜사 성령이 임하심과 주의 성령이 임하심)을 받았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받은 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것이다.
(결론)
예장 통합측은 2017년 9월 102회 총회에서 천주교(로마카톨릭)의 영세를 인정키로 하였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비록 천주교(로마카톨릭)가 문제가 있더라고 세례를 주는 고대교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례의 성립과 성례의 효과를 구분한 고대교회의 성례 이해의 전통임과 동시에 만인사제설을 외치며 탄생한 개신교의 정체성에 걸맞은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천주교(로마카톨릭)가 세례를 주는 고대교회와 연결이 되었는가? 교대교회의 세례는 성경에 말씀하는 대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러나 천주교(로마카톨릭)는 기독교가 아니라 마리아교가 되었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얻는 성령을 받는다. 그런데 천주교(로마카톨릭)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마리아를 우상숭배하고 있다. 그러면 성령을 받을 수 있겠는가? 천주교(로마카톨릭)의 성령을 받지 못하는 영세가 어떻게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받은 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것과 동일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천주교(로마카톨릭)의 영세를 우리 교회가 인정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다. 그렇기에 예장 통합측은 천주교(로마카톨릭)의 영세를 인정하기로 한 것을 즉시 철회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포하는 바이다.
(첨부)
● 이단의 세례
이단들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줄 것이다. 그러면 이단은 무엇인가?
(고후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하는 것이 이단이다.
(계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이단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단적 세례이다. 즉 이단에게는 우리가 받은 성령이 아니라 다른 영 곧 세 더러운 영 곧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귀신의 영(계16:14-14)을 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단에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거짓 세례를 받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이단에게서 세례를 받은 것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런 것은 성경적 세례는 우리 교회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엡1:3-14)으로 세례를 받은 자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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