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6 14:11
■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의 ‘부활복음’을 반증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서론)
이 글의 제목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부활’이다. 이 글은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속의 완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다.’라는 주장에 대한 성경적 반증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엇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인가?
-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죄에 대한 구속이다.(엡1:7)
- ‘성령의 인치심’은 믿는 자에 대한 구속의 보증이다.(엡1:13)
- ‘예수님의 부활’은 성령의 인치심에 대한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다.(엡1:19-20)
그러므로 ‘구속’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에만 적용해야 한다. 그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는 우리 죄에 대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인지 그 총론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이에 대한 각론은 본론에서 논설한다.
(본론)
1. 예수님의 십자가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 죄를 사하시는 것이 구속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 1. 연약한 죄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육신의 연약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을 교리용어로 ‘사죄의 구속’이라 말한다. 2. 죄인 된 죄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치 아니하는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을 교리용어로 ‘칭의의 구속’이라 말한다. 3. 원수 된 죄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을 교리용어로 ‘화친의 구속’이라 말한다. |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에 대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시는 구속을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죄에 대한 구속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단번에 완전히 이루셨다. 그렇기에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가 주장하듯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속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로 구속이 완성이 되었다고 주장하면 비성경적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라고 말하는가? 그런 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성경대로 명확히 알지 못한 까닭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3. 예수님의 부활’에서 논설할 것이다.
2. 성령의 인치심
(엡1:13-14)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엡1:7)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신 것이다. 그러니까 구속 받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에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 즉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의 구속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
‘그 안에서 또한 믿어’는 우리의 ‘믿음’을 말하는데 곧 예수님의 구속을 힘입어 사는 것을 말한다. 즉 사죄의 구속을 힘입어 죄 짓지 않는 자로 살고, 칭의의 구속을 힘입어 의로는 자로 살고, 화친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구속에 대하여 성령이 그 구속을 보증하시는 것이다.
●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 1.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시는 보혜사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힘입는 자에게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보혜사 성령이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죄의 구속을 성령이 보증하시는 것이다. 2.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보혜사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힘입는 자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보혜사 성령이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칭의의 구속을 성령이 보증하시는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보혜사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힘입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보혜사 성령이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화친의 구속을 성령이 보증하시는 것이다. |
3. 예수님의 부활
(엡1:19-20)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고 하셨다.
그러면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가? 그것은 곧 앞에서 언급한대로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이다.
●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믿는 우리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셨으니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이것이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다. 1.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육신의 연약한 자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생기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2.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3.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가 성령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하나님)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신다. 이것이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다. 즉포로된 자가 자유를,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됨을, 눌린 자가 자유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호 구속 받은 우리가 그 구속을 힙입어 사는 믿음으로 살 때에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어떤 것을 우리로 알게 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죄를 사하시는 구속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죄에 대한 구속의 완성이라고 말하면 비성경적이다.
(벧전1:3-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 말씀만 보면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다음의 말씀과 같은 도리이다.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예수님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 죄에 대한 구속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우리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다.
(결론)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하셨다.
● 우리의 구원 1. 하나님의 긍휼하심 (엡1:3-5)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2. 중생의 씻음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엡2:1)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이것은 예수님의 구속이다. 3. 성령의 새롭게 하심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그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이것은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다. (엡1:19-20)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이것이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다. |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①하나님의 긍휼(하나님의 사랑)과 ②중생의 씻음(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③성령의 새롭게 하심(성령이 인시심 즉 구속의 보증)이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중생의 씻음에 해당되고,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에 해당된다.
그렇기에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의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속의 완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다.”라는 주장은 비성경적이 된다. 얼마만큼 비성경적인가?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믿는 자에게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셨다. 행2:38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피 공로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즉 부활의 능력이 되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베푸신다.
그런데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의 주장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이 구속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면서 부활을 강조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것이 약화되게 된다. 즉 우리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비성경적 교리가 된다. 그렇기에 춘천한마음교회(김성로)의 ‘부활복음’ 주장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이단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총론)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이며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인지 성경을 근거해서 알아보았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죄에 대한 구속이다.(엡1:7)
- ‘성령의 인치심’은 믿는 자에 대한 구속의 보증이다.(엡1:13)
- ‘예수님의 부활’은 성령의 인치심에 대한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다.(엡1:19-20)
그러므로 ‘구속’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에만 적용해야 한다. 그런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는 우리 죄에 대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기 때문이다.
- 2017. 4. 6. 선지자문서선교회 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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