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2 15:31
하나님을 아는 지식
본문 : 로마서 1장 17-25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우리 안믿는 우리 사람들 중에 안믿는 사람, 택함을 입지 않은 사람들과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데 성경은 택함을 입지 않은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약간 말해 놓은 것이 있지만 대부분은 택한 자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택함을 입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까지도 택한 자들을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상대해서 사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상대치 않고 하나님을 빼놓고 어떤 것을 상대하든지 상대하면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서 버리시고 그렇지 않으면 진노하십니다.
어떤 좋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상관치 아니하고 그것을 상대하면 실은 그것이 우상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그 택한 백성들은 불택자와 근본 하나님이 지으실 때도 달리 지으셨고 또 날 때도 그러하고 또 세상에서 사는 것도 판이하고 또 심판받는 것도 그러하고 무궁세계도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안믿는 사람과 자기와는 아주 종자가 다르고 또 생활도 다르고 거처하는 거처도 다르고 속도 다른 것입니다. 다만 이목구비 수족으로 외부의 것만 비슷하지 아주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이 면 다 같은 사람으로 이렇게 생각해서 안믿는 사람들을 따라서 믿는 사람이 생각하고 살려고 하는 이런 미혹을 많이 받습니다.
그것은 어디서 그렇게 미혹을 받게 됐는고 하니 하나님이 일반적으로 신자나 불신자나 모든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다 지었기 때문에 지음받은 그 형상이 같으니까 그렇게 같은 줄로 알고 이렇게 생각을 해서 실패를 합니다. 사람은 지음받기 전에 하나님의 예정이 있고 또 예정이 있기전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또 지음받은 후에 하나님의 간섭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음받은 모양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택자나 불택자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지만 그것만 같지 지음을 받기전에 예정한 그 예정도 다르고 또 하나님의 목적도 다르고 또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후에 섭리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관리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안믿는 사람들이 그 행위를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에 그 행동하는 것을 참고로는 삼을 수 있지만 그와 같이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들의 능력도 택자들의 능력과 능력이 다르고 또 지혜도 다르고 성공과 실패도 다릅니다. 잘살고 못사는 것도 아주 다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성공을 택자들이 택자들의 성공도 그들의 성공과 같은 성공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주 판이합니다. 또 그들이 실패하는 그런 실패와 같은 실패가 택자들의 실패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주 잘못입니다.
아 그들의 실패와 우리 실패가 다르고 그들의 성공과 우리 성공이 다르고 그들의 능력과 우리 능력이 다르고 그들이 잘난 것과 우리가 잘난 것이 다르고 그들의 지혜로운 것과 우리 지혜가 다릅니다. 그들의 배경과 우리 배경이 다르고 그들의 목적과 우리 목적이 다르고 그들의 성공과 우리 성공이 다릅니다.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불택자들의 그것을 압니다.
그것을 알아서 이것이 저들로서는 성공이라 한다 실패라 한다. 그들의 능력이라 한다 그들의 무능이라 한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이렇게 가지고 살다가 세상으로 끝내 버리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 받아가지고 하나님이 없는 그 어두움의 세계로 몰려가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것을 상대했기 때문에 이래된다.
그들이 이것만 알고 이것의 근원도 결과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으로 만족하고 산다. 이런 것을 택자들은 알 수 있습니다. 택자들은 불택자의 그 지능을 알 수 있고 그의 생애는 알 수 있고 그의 시종결과를 알 수 있지만 불택자들은 택자의 것을 전혀 모릅니다. 택자의 그 근원도 모르고, 종말도 모르고, 결말도 모르고, 택자들의 지능도 모르고, 승패도 모르고, 화복도 그들은 전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분들이 말하기를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도라 그렇게 생각을 하고 택자들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권능이라 그렇게 평가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무슨 평가든지, 비판이든지 또 내가 욕심을 품는 것이든지 그것을 안믿는 사람을 표본으로 삼아 가지고 하는 것은 아주 이것은 옛사람이 하는 것이고 아주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서 저 사람이 저렇게 지혜로우니 나도 저런 지혜를 쓰자. 저런 사람이 저렇게 행복스러우니 나도 저런 행복을 갖고 싶다. 저 사람이 저런 사람들이 저렇게 존영하니까 나도 저런 존영을 받고 싶다 해가지고 전부 껍데기로 불택자를 표본으로 삼아가지고 불택자와 같은 평가를 하고 불택자가 가치있다는 것은 가치 있다 불택자가 가치없다는 것은 가치 없다. 불택자들이 부러워하는 것은 자기도 부러워하고 불택자들이 싫어하는 것은 자기도 싫어하고 이러니까 믿는다는 이름만 가졌고 믿는 모양만 가져 믿는 편에 서기만 섰지. 그 사람은 순전히 안팎이 불신자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고 확정을 짓고 사는 것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가치도 평가할 때에 불택자들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과 꼭 같이 불택자가 믿는 사람을 평가하는 그대로 믿는 사람중에도 그렇게 인간 가치를 평가하는 그 사람은 믿으나 세상사람입니다. 그들은 멸망할 것을 보고서 가치로 여기지만 택자들은 멸망치 안할 영원하고 온전한 그것을 가치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욕심품는 것도 내가 지금 이 욕심을 품는데 불택자들, 안 믿는 사람들이 욕심 품는 그 욕심과 내 욕심이 같으나 다르나 좀 비교해야 됩니다.
그들이 가진 욕심과 같은 욕심이라면 그것이 멸망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욕심가져도 괜찮고 자기는 그런 욕심을 가져도 그것이 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싫어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 불택자들이 싫어하는 그 싫어함인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싫어함인가 그것도 당장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희로애락이 그만 주님과 같은지 선지사도들과 같은지, 성도들과 같은지, 불신자와 같은지, 불신자와 희로애락이 같다면, 욕심이 같다면, 비판이 같다면, 평가가 같다면 그 행위가 불신자지 뭐 될 것입니까? 그러니까 성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이 무엇이 두려운 것이냐. 하나님이 버려두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나님이 버려두는 것이 두렵소. 그까짓것 온 천하 사람들이 다 버려둬도 그까짓것 상관 없습니다.
뭐 저주하며 어쩔 것이며 정죄하면 어쩔 것이며. 훼방하면 어쩔 것입니까 온 천하가 어떻게 한다해도 그것을 참고로 삼아서 하나님께서 짐승을 통해서도 당신의 교훈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불택자를 통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하는 것이 혹 자기에게 필요있는 주님이 그를 통해서 하는 말씀인지 모르기 때문에 참고로 삼고 살피기는 하지만 그것이 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그것이 큽니다. 24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에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여 버려두사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그 밑에 26절 이하에 보면 남녀를 말했으니까 그 남녀 이성생활을 이 위에 갖다가 버려두사 한 것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 아닙니다.
이성생활은 하나 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이지 그까짓것 다가 아닙니다. 여기에 버려두는 것은 그 하나님이 그를 버려 뒀으니까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서로 욕되게 한다 저희몸을 피차에 서로 욕되게 한다. 욕되게 한다 그 말은 무가치하게 이용하고 무가치하게 대우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용하고 대우하기 때문에 무가치하게 대우하고 무가치하게 이용하는 것인가 저희 몸이라 말은 고기덩어리 만을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은 있는지 없는지 몸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몸이라면 몸안에 다 담겼습니다. 몸 안에 마음도 담겼고 마음안에 영도 담겼고 담겼기 때문에 중생됐으면 영 안에 하나님이 또 거기에 담겨 있다하면 좀 모순된 말이지만 하나님이 내주해 계십니다.
그러니까 몸이라 말은 그의 전체를 말하는 것이요.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한다.
어떻게 하기에 그 사람을 욕되게 한다 서로 욕되게 한다 서로 천대한다 그 말입니다. 서로 천대한다 서로 천대하고 서로 무가치 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무가치하게 이용하고 또 천대를 하다니 사람은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하게 지음받은 것이 사람입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사람이 정복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은 사람이 정복할 수 있습니다. 천군천사도 마지막에는 정복하고 만물도 정복해서 만물을 저희 것을 삼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이요. 이런 것이 사람입니다. 또 다스리게 한다 모든 피조물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복종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위치에 있는 것이 사람인데 이런 위치에서 서로 피차 교재하고 이런 위치자로 서로 대우하고 그 나라의 일국의 그 정권자 왕이라면 저 나라에서도 왕이 왕으로 서로 대우해야 될 터인데 그 왕이 아주 말단 사람같이 대우를 받으면 그것이 큰 모욕 아닙니까 저 나라 사람이 저 나라 왕이 이 나라 왕을 아주 그 천한 사람같이 그렇게 대우하면 그것이 큰 모욕입니다. 그러면 그 국민이 다 분히 여길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그 왕을 그 왕이 욕되게 하고 이 왕도 또 저 왕을 그래하고 왕이 왕을 왕으로 그렇게 대우하지 않고 아주 천하게 대우할 때 그것을 이 왕이 서로 욕되게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 모양으로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영계 천군천사나 이 우주나 뭐 일월성신 이 모든 어떤 것이든지 다 그것을 자기 것을 삼을 수 있고 자기가 그것을 또 다스릴 수가 있어. 통치해서 그것이 으레히 통치하고 복종을 하고 이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간이 이 위치에서 살지 못하고 모든 피조물 아래 있어 피조물 아래 있는 것으로 제가 스스로 피조물 아래 기어가고 피조물보다 천한 자가 되어지고 무능한 자가 되어지고 또 모든 사람도 피조물보다 천한 것으로 대우하고 대우를 받고 이래서 꺼꾸로 되가지고 이 모든 것을 정복해야 될 터인데 그것들에게 정복을 당합니다. 하루의 생활도 이러니 자기보다 밑에 있는 자기가 정복할 그것에게 정복해서 정복을 당해서 그것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 예수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은 다 내비두고 믿는 사람들이 하루종일 일하지만 돈에 팔려서 일하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자는 그 돈에게 정복을 당한 사람입니다. 물질에 정복을 당한 사람이요. 물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물질이 울라면 울고 웃으라면 웃고 성내라면 성내고 행투를 부리라면 부리고 원수를 품으라면 원수를 품고 이제 그것에 시키는 재로 하지.
그것에 종이 되지 그것에게 정복을 당한 것이요. 일생동안 돈을 위해 산 그 자가 돈에게 정복을 안 당했다고 할 수 있소. 돈에게 정복을 당한 자지. 누가 자기를 다스리고 있소. 돈이 다스리고 있지. 그것이 몸을 서로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천해졌다 그 말이요. 이것이 본 지위에서 타락한 것입니다. 원죄로 인간이 본 지위에서 타락해서 천해져서 온 세계 사람들은 지금 물질 그 원자 그것도 물질입니다. 원자에게 지금 정복을 당했고 일류는 원자에게 정복을 당했습니다. 과학에게 정복을 당했소. 과학은 물질입니다. 그것이 김일성이가 과학적 영도자라고 공산주의가 과학적 그들은 제일 높은 (순이가 ?)과학적 영도자 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물질에게 정복을 당했다 그 말이요. 물질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그 말입니다. 공산주의를 영감도리에 굳게서지 안한 사람은 무엇인지 모릅니다.
저거들이 불신자들이 공산주의가 무엇이라고 암만 해석해봤자 공산주의의 정의는 못 내립니다. 모릅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저거 아는대로의 그런 것 만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버리두어서 그들이 몸을 서로 욕되게 한다 천물로 살게 됐다 그 말이요. 천물로 인간을 취급하고 천물로 취급당하고 저도 천물로 취급당하고 천물에게 이용을 당하고 인간이 천해졌다 그 말입니다. 그랬는데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우리 위해서 모든 부요를 지극히 높은 그 높음을 다 내어 놔 가지고서 그렇게 음부의 고통까지 당하지 안하면 구속할 수가 없었던가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말하면 본 지위에서 타락한 인간을 본 지위에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본 지위에 회복시킨다 그 말은 하나님 다음 위치에서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 위에서 피조물을 정복하고 모든 피조물을 제것을 삼고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왕노릇, 그 말은 영계나 물질계 천군천사나 피조물을 통치하는 자 된다 그 말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주시는 구원이요. 회복입니다.
교회의 위치요. 그러므로 교회는 만물위 하나님의 몸으로 만물안에 하나님의 충만으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그 충만 역사가 교회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내여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주님이 버리면 그만 천해집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러요. 다시는 후에는 쓸데 없어 밖에 내어 버려 거름에도 쓸데없다 그 말은 거름은 불택자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불택자는 하늘에 속한 자들을 기루는 데에(퇴비입니다 거름이요. 거름에도 쓸데없다. 불택자로서 쓸모 없는지라. 택자가 택자의 택자로서 변질되면 그 생애가 변질되면 불택자 같은 이용물도 안되.
그것은 거름에도 쓸데없고 밖에 버려 사람에게 밟힐 것 뿐, 천할 것 뿐이라.
믿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정복을 당하지 않고 피조물에게 정복을 당하고 하나님에게 다스림 받지 않고 피조물에게 다시 인간에게 다스림 받든지 돈에게 다스림 받든지 권세에게 다스림 받든지 무엇에게 지식에게 다스림 받든지 다스림 받는 그것 그것이 한없이 천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천한 줄 모르고 그것을 부러워 합니다. 그것을 부러워합니다. 그것을 부러워하는 제가 잘난 줄 압니다.
제가 큰 줄 압니다. 한없이 불쌍하고 비참하고 가련한데 그것을 몰라 왜 모르는가 하나님이 버려두셔 모르지. 왜 하나님이 버려 뒀을까? 제가 하나님을 버리니까 하나님이 그를 버려뒀지 그만 하나님이 버려둔 증거가 무엇인가 버려둔 증거가 어떤 것이냐 버려둔 것은 22절에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이제는 그것이 버려둔 것입니다. 버려둔 것이 스스로 지혜있다 하는데 그것이 왜 그것이 스스로 인간에게는 지혜가 없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그것만 지혜인데 왜 스스로 지혜있다 하며 우준하게 된다 스스로 지혜있다 하느냐 그것은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집니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지니까 이제 제게 지혜가 있는 줄 압니다. 그런고로 사람의 마음이 허망해지면 그것이 벌써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허망하여 진 것.
사람이 진실을 떠난다 그 말이요. 허망이라는 것은 진실을 떠난다 그 말이요.
진실은 어떤 것이냐 몸을 못이면 못을 꼭 쳤다 그 말이요. 무엇이 실질적이라 그 말이요. 실질적, 그것을 따지고 따지고 따져서 이 처음에는 이렇다 저렇다 백가지로 말했지만 차차차차 따져 들어 가니까 마지막에는 두 가지 뿐이라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렇습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다가 마지막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할 때에 중단하면 진실이 없는 자입니다. 그것도 헛된 자요.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지 둘 일 수가 있나 어느 것이든 참은 하나 뿐인데 그 둘 중에 가려 가지고 아 이것이다 하는 참에 도달할 때 그것이 진실입니다. 그것이 없단 말이요. 그 사람에게 그것이 없어. 그만 허허 벌판이라 이래도 좋다 저래도 좋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무엇이든지 이것의 종결인 하나에 도달해서 아 이것이다 이것은 뭐 인간이 뭐라하든지 무엇이 뭐라하든지 뭐 하나님 앞에도 꿈쩍도 없다 할 수 있는 자기대로는 틀림없이 마음에 안정이 되고 확정이 되어지는 이것이 도달하는 그 성격을 가진 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것이 없이 그 중간에 가다가 그만 흐리멍텅하게 나가기 싶습니다.
더 가기 싫어 뭐.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고 그것이 무엇이냐 속에 진실의 힘이 약한 자입니다. 그것이 벌써 헛된 것이요. 그런데 허망은 무엇이냐 그것은 제가 이제는 옳다 인정합니다. 옳다 인정을 하요. 그것이 더 죽은 일이요. 자 이래야 옳으냐 저래야 옳으냐 어떤 사건이 하나 있다면 그 사건에 대해서 열사람이면 열사람이 다 열가지 말합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이러니까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다 되는가 보다. 그 사람은 다 헛된 사람이요. 아니다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지 어떻게 그렇게 열 사람이 다 말한 그것이 다 맞겠나 안 맞아 아니다. 자꾸 비판을 해서 그냥은 암만 그 말 들을라 해도 안심은 되지도 않고 안심이 되지 않고 그렇다고 인정할래야 인정이 안되고 이러니까 자꾸 제 지식대로 비판하고 평가하고 또 대조하고 모든 것을 참고하고 자꾸 이러니까 하나씩 나온다 그 말이요.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확실히 아니다. 열이 말한 하나 이것은 확실히 아니다. 그러나 아홉 이것은 어느 것인지 모르겠다 안심이 안되. 또 따져 들어가 이러니까 이것 아니다. 이래서 자꾸 거짓을 벗겨내고 뱃겨 내고보니까 마지막에 뱃겨 들어가다 보니까 피곤합니다. 벗겨 들어가 보니까 피곤해서 아이구 모르겠다 어라 어떻게 그렇게 알 수가 있느냐 그것이 진실의 힘이 약한 자요. 또 들어갑니다.
들어가니까 둘이 되니까 뭐 이만하면 정통이다 이만하면 정통이다 이만하면 바로 깨달은 것이라 이것이 옳다 이러면 진리다 안심되지 안해. 거기에서 그 둘이라고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고 이럴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이냐 진실의 힘이 강한 것입니다.
거기서 그만 두는 그것은 진실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그것까지 와도 더 나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김형동목사님이 나는 직접 못 들었는데 그 학생들이 그 배운 학생들이 말을 합디다. 어떤 학자를 말하면서 그 사람의 그 저술한 책을 보니까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이 학자는 이렇게 말하고 저 학자는 저렇게 말하고 모두다 이렇게 말하는데 본인은 뭐냐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말하는데 이것은 다 정통으로 인정하고 있다. 너는 무엇이냐 저 말하는 것은 없더라 그 사람은 진실이 없는 사람이라. 그 진실이 없다는 그 말은 그 분이 했단 말 못들었고 그것을 논평하면서 그러니까 자기는 무엇인지 그것이 없으니 자기가 인정하고 있는 것 그것은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말한단 말 들었는데 그 말을 들을 때 그 때 참 기뻤습니다. 내가 그 분을 만나기 전이요. 나는 만나지 않고 그 분을 존경을 했습니다. 내가 그 분을 만나서 머리 깍은 것 아니요. 그 분 알기도 전에 고신하고 싸울 때에 그 때 고신에 대한 다시 말을 더 안하고 다시는 그들에게 대해서 이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말하지 않겠다 하는 단정을 지우고 난 다음에 단정지운 그 날 내가 머리 깍았습니다. 그 후에는 그들에게 대해서 말하지 안했어. 그전에는 욕을 얻어 먹어도 자꾸 말을 했었어. 그래서 그 분을 내가 만나기 전 그 분을 존경했고 중간에 듣는 말로 존경했어. 그 때 그 피난 육이요 피난 와가지고 창녕에 있는데 창년에 있는 교인들이 왔어요. 우리 서부교회에 와 가지고 그 분을 소개해서 그런 분이 있는가 나 존경했고 또 그 분들이 가 가지고서 제 말을 많이 해서 존경해서 그 성락구씨 압니까 여러분들 압니까 성락구씨 그 누님 이름이 무엇이지 성, 성집사 그 가족들 그 가족들이 다 유력한 분인데 그 분들이 그게 왕래하면서 소개를 해 가지고서 그 분도 알고 나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그 말을 한단 말을 들었어. 이것이냐 저것이냐 둘이라. 다른 것은 제거했어 둘인데 둘인데 그것을 두고서 그만 이만 하면 됐다 하는 그 자는 진실이 약해서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 자입니다. 자기가 삐뚤어지게 깨달았다 할지라도 아이다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아니지 둘일 수가 있나 하나지. 하나가 되기까지 노력을 해가지고서 자기 힘으로 삐뚤어지게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에 도달하고 난 다음에야 이것이다 그것을 자기 지식으로는 더 연구할 수 없이 자기 지식으로는 모든 면으로 연구해도 인정이 될 때에 아 이것이다 하는 그것을 단정을 짓고 안심을 하는 그 자가 삐뚤어지게 알았다 그것은 삐뚤어지게 알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진실이 있는 사람입니다.
진실은 이런 것이요. 허망하여 진다 헛되어 진다 그 말은 하나님이 버려두니까 하나님이 버려두니까 첫째가 무엇이냐 그에게 진실이 없어집니다. 헛되어져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따져 들어가는 것 없어. 하나에 도달하는 그것이 없어.
없는데 그래 놓고 망령이라. 망령되다 그 말은 이제 그것을 인정을 하고 됐다고 알고 돌아 다니면서 사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마음이 점점 옳은 데를 찾아나가겠소 그 마음이 어찌 되겠습니까 어두워져.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이제는 마음이 미련타 그 말은 둔하다 그 말이요. 마음이 둔해져 버렸어.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자꾸 파고 들어가고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끼인 것이 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은 진리십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만은 하나님은 진리와 하나 되어있소.
이러기 때문에 진리에 접선했으면 하나님을 만났어 진리를 떠나서 하나님을 만날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하나님을 향하여 들어가는 것이 진리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중간에 가다가 마니까 그 사람의 마음이 이제는 헛됩니다. 비었단 말이요. 알맹이가 없어. 이제 그것을 옳다고 인정을 하고 팔아먹고 써 먹는다 그 말이요. 망령되. 그러면 그 마음이 점점 둔해져버리요. 둔해지면 이제는 어두워졌다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세상과 같아졌다 그 말이요.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이제는 이제는 하나님 뚝 떨어진 제 주관을 지혜를 삼습니다. 제 주관 가지고 과거도 미래도 다 생각하요.
제 주관 과거보다도 제 장래에 대해서 어떻게 행복되고 뭘 욕심내고 뭘 취하고 무엇을 귀중히 여겨야 된다는 그것을 제가 제 주관가지고서 모든 것을 경영하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소원합니다. 그것이 스스로 지혜요. 스스로 지혜.
하나님으로 피동된 미래관이 아니고 자기 주관대로의 미래관이된 그것이 스스로 지혜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이제는 아주 참에게는 떠난 아주 어리석게 되버립니다. 아주 참에게선 떠났다 그 말이요. 거짓이라 그 말이요. 거짓인데 거짓이 살아가지고 움직여 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거짓이 살아가지고 움직여서 자꾸 죽는 일 하기 때문에 우준입니다.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웠느니라. 이러니까 하나님이 버려두면 그만입니다. 이 버려둔다는 것이 버려둔다는 그것이 버려두는 것이라.
자기가 그 마음이 벌써 진실을 떠나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버려두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그러니까 자꾸 멸망으로 달립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21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는 이곳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 이것으로만 전진입니다. 이것으로만 전진이지 이것 버리면 이것 버리는 것이 하나님 버리는 것이요. 그만 하나님 버려둡니다. 벌써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위반된, 제 사욕을 가지고 제 욕심을 제 마음에 생각나는대로 제 욕심대로 제 생각나는 대로 제 욕심대로 그것을 싸울줄 모르고 자기 욕심나는 그 욕심을 달성해 볼려고 날뛰는 그 사람 벌써 버린지 오래 되어 가지고 벌써 어두움에 속해가지고서 하나님의 진노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버려서 얼마동안 지나가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멸망이라 그 말이요. 하나님의 진노의 행위는 멸망 벌써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멸망받은 그 일을 하나님에게 그래서 용서를 받는 것은 그 멸망받은 것은 이미 받았지만그 멸망으로 인해서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이 가로막혀 있는 그것을 용서받는 것입니다. 진노만 멸망이요. 그것이 왜 그런가 자기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보여줍니다. 자기 마음의 구조가 꼭 같다는 것은 하나님이 알리는 것이요. 또 모든 만물을 보아서 그의 영영한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버림당하느냐 그 지금 여러분들이 이것을 알려고 하면 일년도 좋고 몇 달도 좋습니다. 버려두기는 어떤 것이 버려두는 것인가 그 하나님의 진노는 어떤 단계에서 오는가 버림받은 것이 무슨 순서를 거쳐 그리 됐는가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깨닫고도 하지 안했기 때문에 왜 영화롭게도 감사치도 아니하는 그런 인간이 됐는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경건치 아니함, 불의, 이것이 종자입니다. 이것이 씨입니다.
불의를 가지고 진리를 막는 이것이 원 종자요. 그러면 경건치 안한 이것 갖다 이것으로 무성해서 자랍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스스로 자기를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전부 자기가 자기 속이지. 하나님은 자기에게 속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자기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안 속이면 다른 사람은 자기를 속이지 않습니다. 자기 속이는 것은 자기밖에 자기만 자기를 속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암만 속여 들어와서 천하가 속이고 밀고 들어와도 자기가 자기를 속이지 아니하면 그 속이는 다른 사람이 속이는 그것은 근방에 오지를 못합니다. 튀어나갑니다. 오늘 아침에는 권찰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