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2 14:59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
본문 : 갈라디아서 6장 1절∼10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지니라
여기에 자랑할 것이 남에게는 있지 않고 자기에게만 있다.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 있지 아니하리니' 하는 이 자랑이라는 말은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드러내고 나타내고 사람들에게 보이고 하나님에게 보이고 이렇게 드러내고 나타낼 것이 자기에게만 있지 다른 이에게 있지 않다. 그러면 자랑은 누구를 자랑하는고 하니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인데 자랑하는 자는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주를 자랑하라 이랬는데 여기 자랑이라는 말씀은 드러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그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나 예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나 그 예수님의 원하시는 그 일을 자기가 이루어 나타내는 것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보고 듣고 접촉하는 데에서 깨달아지는 거기서는 자기가 깨닫고 자기 할 일을 알려 주는 것이니까 자기가 보고 듣고 접촉하는 거기에서 고칠 것이나 또 할 일이나 또 책임이나 그런 것이 다른 이에게 있다고 생각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쉬운데, 자세히 살펴서 어디서든지 만일 남에게 나쁜 점이 있으면 그 나쁜 점을 우리는 서툴히 생각하고 남에게 나쁜 것이 있으면 저 사람에게 나쁜 것이 있으니 저 나쁜 것을 저것은 안 된 것이다. 밉다, 나쁘다, 고쳐야 되겠다.
이렇게 보는 데에서 전부 정죄할 것은 남에게 있고 보는 데에서 자기가 보이는 것을 인해서 정죄 할 것은 남에게 있고 또 고칠 것은 남에게 있고, 미운 것은 남에게 있고, 더러운 것은 남에게 있는 것으로 이렇게 우리는 바로 이 껍데기로 직감하기 쉽습니다.
껍데기로 바로 직감하기 쉬운데, 그렇게 네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의무와 책임을 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또 자기가 과거에도 그 못된 습성 가지고 구원을 실패했는데 그 습성을 버리지 안하고 내나 그 습성으로 죽는 날까지 계속 계속하다가서 망하는 그런 것을 본다든지, 또 외식을 본다든지 인간이 어리석게 복술 꾀를 써서 이렇게 하는 그런 것을 본다든지 이런 것을 볼 때에 그 잘못으로 되어 있는 정죄할 것이 '참 저거는 나쁘다' 정죄 할 것이 바로 볼 때에 남에게 있고, 또 '그 사람이 저것을 고쳐야 될 건데' 하는 그 고칠 것으로 생각해지는 것이 남에게 있고. '참, 저 일은 밉다. 아주 미운 형이다.' 미운 것이 남에게 있고. 또 '저는 참 불쌍하고 가련하다' 그 불쌍하고 가련한 것이 남에게 있고, '저 사람이 일생동안을 저런 버릇을 아무 소용없는 저 버릇을 계속해서 무슨 그걸 또 계속하고 계속해 가지고 그래서 일생을 망치고 만다' 이렇게 우리는 바로 직관 직감으로 바로 보고 바로 느끼는 이대로 해서 모든 사람을, 사람이나 물건이나 모든 것을 이렇게 눈을 뜨면 건너다만 보여집니다. 눈을 뜨면 건너 다만 보여지지 눈을 뜨면 자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안 보고 건너다만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육안이 무엇이든지 착 눈을 열면 그만 자기 아닌 상대만 보이는 것처럼 이것이 습성이 돼서 그 마음의 눈을 가지고 볼 때에도 이렇게 남이 먼저 보여지는 것이 그것이 일반 타락한 자의 본성이요 습성입니다.
이러니까 네가 건너다 보지 말고, 네가 스스로 자기를 살피라. 네가 너를 봐라.
남을 보지 말고 너를 보고 또 남이 보이면 남을 보는 그것을 인해서 그와 같은 면으로 너를 살펴서 보는 그런 자가 되고 남만 보고 공연히 남이야 이렇든 저렇든 어떻다 할지라도 네게는 실은 적극성 있게 관련 없는 것인데 건너다 남만 보고 데 자신은 보지 않는, 그러면 너는 남을 볼 자는 한 분이 있는데 남을 볼 자는 한 분뿐입니다. 남을 볼 자는 한 분뿐인 것은 당신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는 흠과 점과 주름 잡힘이 의례히 없고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를 보지 안하고 자기 아닌 남, 당신이 지은 것 모든 것을 이렇게 보시는 거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오 하나님 외에 다른 이는 먼저 자기 보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인데, 자기를 보아서 참 자기에게 홈과 점이 없으면 그 면에 대해서 흠점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그것을 서서히 고치는 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자기를 온전케 하지도 안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고칠 그런 자격이 없는데 남을 보고 그것을 판단하고 하실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신데 잘못하면 우리가 하나님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거와같이 그렇게 대리 행사를 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을 판단하지 말라 그말은 이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을 심판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를 판단하지 안하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거기에 또 다른 말씀을 보면 '네가 남의 눈의 티를 보고, 그 티를 보고, 흉을 보고, 그 티를 보고 정죄하고 티를 보고 미워하고 티를 보고 참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렇게 말하는 자야 그 티로 인해서 너는 지금 타락했던 자요 너는 또 지금도 아직 악령과 죄악의 침노를 옛사람의 그 침노를 받고 있는 자이기 때문에 네가 남에게 있는 그 티를 발견하거든 그 티를 발견한 그것은 네가 건너다보니까 그 티가 보였으니까 그 눈을 가지고 그 마음의 눈을 가지고 그 지혜를 가지고 이제는 너를 살피라. 너를 살피면 들보만한 것이 나올 것이다.' 들보만한 것이 나온다 그 말은 다른 사람은 다 자기보다 깨끗하다 하는 그런 말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자기가 아무리 건너 다 봐도 그렇게 세밀히 내부까지 보지 못하지만 자기에게 대해서는 내부까지를 다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건너다보는 것보다 자기를 보면 몇 배 더 보이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 눈에 건너다 봐서 보이는 것은 그것을 인해서 너를 살피는 그 방편으로 그 종류를 그 면으로 살피면 네가 건너다 봐서 보여지는 그것 몇 백 배 몇 천 배 네기에 있는 것이 네가 보여 질 것이다. 그래서 네 게 있는 그 들보를 정리하고 처리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형제의 것을 자세히 보고 티가 있으면 그것을 뽑도록 그렇게 해라. 사람이 건너다 보는 남을 보는 것은 남을 보기 쉬운데 남을 보기 쉬운데. 남을 보는 것은 자기가 자기 보는 것보다 아주 희미하게 보이고 아주 소량으로 보이지나 그 사람이 남을 보는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를 그 면으로 살피지 아니하면 그만 자기는 그 속에 그걸 가지고 자기를 살피면 티보담 들보 집을 짓는데 들보 그 들보야 얼마나 큽니까? 티보다 들보는 얼마나 크지만 큰 걸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에 실패를 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각각 자기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랑 할 것이라 말은 나타낼 것이 그말인데 뭘 자랑한다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라. '자랑하는 자는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주를 자랑하라' 그렇게 여기 자랑하란 말을 잘못 하면 뭐 이거 좋다고 자랑하는 그런 것으로서 간단하게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자랑한다는 거는 자랑하는 것은 좋아야 자랑하지요 하기는 이러니까 자기의 것은 아무리 나타내 봤자 더러운 것뿐이지 아무것도 없으니까 주님을 나타내라, 주님을 선전해라, 주님을 선포해라 주님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줘라 하는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보여 줄 것이 나타낼 것이 뭘 보여 주고 나타낼 것입니까?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다 그말은 나타낼 것이 나타낼 그 본체가 나타날 그 요소가 자기에게만 나타낼 게 있고 자랑할 것이 있다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타내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를 증거한다 나를 증거한다 나를 나타낸다 나를 모든 사람에게 소개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랑할 것이 주님만을 자랑하라 주님만을 나타낸다 말입니다. 주님만을 증거하지 어떤 사람을 증거하는 것도 그 사람이 주님과 이렇게 가깝다, 그 사람이 이렇게 주님화 됐다, 그 사람이 주님의 은혜를 이렇게 입었다 그 사람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됐다. 어짜든지 우리는 주님만을 자랑하지 나타내지 딴 거는 나타내고 자랑하면 다 심판 받고 다른 사람 죽입니다. 더러운 것은 나타내면 다른 사람이 더러워지지 좋아질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 자랑하는 자는 그 말은 아야 자랑하는 자는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주님을 자랑하라 하는 그 말씀을 전제로 두고 이렇게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살피면 자랑할 것이 남에게 있지 안하고, 왜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 저랄까 하는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하느냐 하는 것이 네게 있다 저 사람이 저렇게 했으면 좋을 건데 왜 저렇게 안 할까 저렇게 했으면 좋을 건데 하는 것이 네게 있다. 네가 그렇게 해야 된다. '저 사람에게 저렇게 나쁜 점이 있다' 나쁜 점이 있는 것이 살펴보면 그 점이 네게 있다. 이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고칠 것도 자기에게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역사할 것도 자기에게 있고, 노력할 것도 자기에게 있고 모든 증거 할 것도 자기에게 있고, 남에게 있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요것도 확실히 작정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타락해 가지고 마귀가 준 사망하는 법칙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사망하는 법칙은 언제든지 자기는 보지 안하고 남을 봅니다. 타락한 자는 전적 다 부패한 죄 뭉텅이기 때문에 죄 뭉텅이기 때문에 사람은 보면 죄만 보이지 딴 거는 보이지 안하는데 눈을 뜨고 보면 자기는 보이지 안하고 상대방만 보여 진다. 상대방만 보여지기 때문에 안 믿을 때의 안 믿는 사람 전부는 다 그러하다. 상대방만 보여 진다. 모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자기에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이렇게 할 것이 다 상대방에게만 있고 자기에게는 있지 안하고 이러나 이제 구속을 받은 후에 사는 방법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자기가 남에게 대해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그것이 자기에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 이렇게 친절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겸손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화평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희생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부지런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좀 진실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좀 정직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것이 전부 자기에게 있지 남에게 있지를 아니한데 타락한 그 못된 습성이 들어 가지고 멸망 받는 그 방편을 우리가 지금도 잊어버리지를 못하고 버리지를 못하고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육안으로 보는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나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나 이 모든 보는 것이 그만 본능적으로 습관적으로 턱 갖다 보면 남만 보지 저 볼 줄은 모른다 그 말이오.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나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에 남만 보지, 자기 볼 줄을 모르는 이것이 멸망받는 그 방편입니다. 안 믿을 때에 쓰던 방편이요 그 방편인데, 우리는 어떻게 봐야 되느냐? 척 볼 때에 남을 보지 말고 육안으로도 남 보지 말고 저를 봐라.
그러면, 우리는 지금 죽는 날까지 고쳐 갈 사람이지 잘된 것은 그것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앞으로 향하여 달려가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바울은 고쳐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쳐 놓은 그거는 보지 안하고 앞으로만 달음질합니다. 고칠 것만 보고 지금 달음질한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안으로도 보면 이 중생된 새사람으로 천국 갈 사람 들은 세상에 사는 것이 다 만드는 기간이요, 고치는 기간이요, 잘못된 것을 전부 고쳐서 그것이 멸망하지 않도록 하는 기간이요, 또 모자라는 것을 채워서 보충하는 기간이라. 만드는 기간이요 보충하는 기간이라. 이러니까, 육안으로도 볼 때에 대번 처음에 보이는 것이 내게 무슨 보충할 것이 없느냐, 내게 무슨 고칠 것이 없느냐, 내게 만들 것이 없느냐, 내게 무슨 고칠 것이 없느냐, 내가 만들 것이 없느냐 이것을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자기에게는 참 고칠 것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고칠 것이 있는 면이 있으면 그 면을 자기는 고칠 것이 없도록 고치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고칠 것이 있으면 그 면을 고치도록 그래 시작을 해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도리어 큰 화를 일으킨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남을 보지 안하고 육안으로도 우리는 전부 고칠 사람이 자꾸 많으니까 여러분들이 분별하지 못하기가 쉽겠는데 우리는 전공이 뭐입니까? 우리는 전공이 무엇을 우리가 할 사람들입니까? 우리 할 일은 뭐이요? 제일 처음이 우리 할 일이 뭐입니까? 우리 할 일은 고칠 일이오. 우리 할 것은 고칠 일이라. 제일 첫째가 우리는 고칠 것이 우리가 시급합니다. 고칠 것이 우리 할 일이요 또 두번째는 뭐입니까? 모자라는 것을 보충해야 될 일입니다. 모자라는 것, 남이 모자라는 것보다 내게 모자라는 것이 지금 먼저 당면한 일이기 때문에 이게 문제라 말이오. 모자라는 것을 둘째로는 보충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또 셋째로는 뭐인고 하니 하나님이 지금 얼마든지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을 주시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를 받는 것이 우리 셋째로 할 일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육안으로 봐도 이 세 가지를 자기에게서 보고 자기부터 먼저 이것을 갖추는 것이 그 사람이 알속 있는 사람이지 저는 지금 멸망 가운데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 멸망 가운데 있다고 그렇게 걱정하고 날 뛰는 것이 어리석다 그말이오. 육안으로도 먼저 자기 보고, 또 마음의 눈으로도 자기 보고 이래 자기 봐서 자기에게 대한 이 일을 고칠 것이나 모자라서 보충할 것이나 지금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이나 이 세 가지를 자기부텀 살펴서 보고 자기부텀 실속을 차려서 이 구원부텀 이루고 그라고 난 다음에 영육의 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이룰 수 있고, 자기 구원을 이루면 그게 남의 구원을 이루어 주는 것입니다. 그게 왜 남의 구원을 이루어 주는가? 자기 구원을 이루면 그것이 신덕이 됩니다. 믿음의 덕이 돼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본을 보여서 양식을 먹여 주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 고치면 남이 고쳐진다. 그래서 먼저 고치는 사람이 목자요 먼저 고치는 사람이 목자요 뒤에 따라서 고치는 사람이 양입니다.
양떼. 이러기 때문에 목자가 먼저 가면 양떼가 뒤에 따라 온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육안으로나 마음의 눈으로나 먼저 떡 뜨면 자기부터 보는 이것이 천국 사람이요, 멸망할 마귀가 감동시켜서 멸망할 사람은 눈을 육안을 떡 떠서 보면 다른 사람만 보이는 것이라. 마음 눈도 다른 사람만 보이는 것이라. 그것은 멸망하는 그 사망의 방편이기 때문에 사망의 방법을 버리고 그 사는 방편 곧 마음의 눈이나 육의 눈으로 뜨면 자기부터 먼저 보는 그것이 그만 좋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처음에 그렇게 안 되니까 그렇게 안 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네가 남이 먼저 보이니 남이 먼저 보이니 그게 나쁘다 남을 먼저 보는 그것이 나쁘다. 그게 나쁘지만 내가 남을 보는 그것을 버리고 남을 보는 그것을 먼저 자기 보는 것으로 보는 그것이 그게 참 어렵기 때문에 그걸 대번에 고치지 못하니 남을 보는 너로서는 이제 너로서는 네 정도에서 먼저 남을 보는 너로서는 이렇게 해라. 어떻게? 남을 보아 그에게 네가 티만한 것이 고칠 것이 모자라는 것이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이 티만한 것이 보여서 아, 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요런 은혜를 받았으면 좋을 건데, 또 요런 것을 고치면 좋을 것인데 요런 것을 보충했으면 좋을 것인데 그렇게 보여지거든 좋다, 보여지거든 좋다 그렇게 너는 지금 그 방법을 버리지 못하고, 그 버릇을 그 생활 방법 그 버릇을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니 그 습성을 네가 가지고 있을 때에는 네가 남에게 티 만한 것이 보이거들랑 그거 보고 그 티에 대해서 저 사람 이것이 고쳐진 이걸 고쳤으면 좋겠다 고치는 그 일을 내가 착수하려고 고치기를 원하고 고치도록 권유하고 그런 일을 하지 말고 보충할 것을 보고 이제 보충 거기에 네가 먼저 착수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될 거기에 네가 착수하지 말고, 그것을 가지고 네가 다시 이제는 그걸 보였으니까 보인 그걸 가지고 네가 도로 돌아서라. 보인 그거와 같은 것을 이제는 네게서 찾아라. 네게서 찾으면 들보만한 것이 나올 것이다. 그걸 찾으면 네가 진실되게 찾으면 남을 아무리 본다고 하여도 그트머리 나타난 것만 보이지 참으로 못 봅니다.
사람들이 이십 세기의 과학이 발달되는 것은 마귀 지식이 발달되는 것인데 이 망할 거 세상 지혜가 없어질 지혜가 발달되는 것인데 그것이 발달되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잘 꾸몄는지,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도 주님이 그들을 묘사하기를 그랬습니다. 회칠한 무덤이라. 껍데기는 아주 회로 싹 발라 놨기 때문에 이게 참 아주 깨끗하고 좋다. 이렇지만 속에는 송장이 들어 있는 무덤이다, 너거가 이와 같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표현하기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말은 껍데기는 뭐 민족을 위한다, 국가를 위한다, 남을 위한다 또 하나님을 위한다 하지만 자기를 위하는 방편이 능해서 능한 방편을 쓰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이 몰라서 저 사람 참 남만 위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 어떤 어리석은 어린 사람들은 돈을 자기 위해서 돈을 상관하고 자기 위해서 권세를 하고 이렇지만 서도 아주 고급의 인간 지혜 있는 자는 자기를 위해서 자기 명예나 자기 영광이나 자기 존귀 모든 사람이 자기를 숭배하고 존대하도록 하기 위해서 큰 수입을 원해서 하는 것이지 민족이라 하는 민족 운동하는 자도 보면 그 속에 자기 들어 있고 이래서 모두가 다 이렇게 자기를 위하는데 어리석고 천한 것이 떡이 있으니까 남에게 떡 있는 것을 저를 위해서 떡을 뺏들라고 떡을 뺏들어서 저 위해서 떡을 뺏드는 일 하지만 그 자보다도 떡을 주면서 떡보다도 더한 그 사람의 마음을 자기가 홀칠라고 자기의 모든 그 사람의 숭배하고 있고 존경하고 있고 그 사람의 사모 대상을 하고 있는 그것이 자기가 되기 위해서 떡은 뺏들지 않고 떡은 주면서 지금 하는 방편이니까 아주 고등 술책,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고등 방편을 사용하는 것이지 해부해서 분석하면 전부 자기중심이라 그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전부 자기중심 자기 위주인데 아주 남 위주인 것처럼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어떻게 묘하게 껍데기를 싸 가지고 요게 만들어 놨는지 아무리 봐도 그 사람은 성자요 성녀요 또 그 사람은 아주 하늘나라만 위해서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세히 들여 다 보니까 음녀라. 그 악하고 음란이라. 음란이라 말은 남녀 이성의 음란이라 말은 그 다음에 결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음란이라는 근본은 뭐이냐 하면 사람이 하나님하고 짝이 돼 가지고 살아야 될 사람이 하나님과 짝되지 못하고 세상하고 짝된 그것을 가리켜서 음란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소욕을 둬 가지고 하나님과 진리를 자기가 모셔서 하나님으로 부자되고 진리로 부자되고 이래 가지고 썩지 안할 신령한 것으로 부자될라고 하지 안하고 말은 그라지만 그 소욕은 전부 세상에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나라도 큰 한번 그런 기회가 지나갔는데 8.15 해방이 되고 나니까 모든 안 믿는 사람들이 다 참 저 사람들은 인격자들이요 저 사람들은 다 하늘에 소망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라. 다 사욕이 없고 모든 간교가 없고 거짓이 없으니까 저 사람들에게 이 나라를 맡겨서 건국을 저 사람들에게 맡기고 이 나라를 저 사람들 이 통치하도록 해야 되겠다 이제 껍데기 보고는 땅에 있는 것은 욕심내지 안하고 진리만 욕심내고 참만 욕심내고 하나님만 욕심내고 참 인격자로 알았다 말이오. 참 인격자로 알고 이랬는데 그렇게 그분들에게 맡기자 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했습니다.
거창도 주남선 목사님이 거석했는데 국회의원은 주남선 목사님을 세워야 된다 주남선 목사님이의 딴 사람 할 이가 없다. 이래서 모두다 국회의원 출마했던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주남선 목사님 하니까 모두 말하기를 '아, 주남선 목사님이 하신다면 우리는 다 내놓는다, 다 양보한 다, 그 어른이 하면 제일 잘한다.' 이렇게 의논이 됐으니까 내가 그때 웅양 교회를 시무 할 때입니다.
웅양 교회를, 넷 교회를 시무한 때인데 그때 웅양 교회에 주남선 목사님이 거기에 와서 일 년 행사를 하실라고 오셨는데 그때에 ○○○집사님이라는 집사님이 지금은 장로 됐소? 몰라요? 와 그 가족들인데 몰라? 그분이 올라오디만 말하기를 '목사님, 목사님 빨리 내려갑시다.' 나하고 그 주 목사님하고 그 교회 집사님들하고 이래 앉았습니다. 나는 그때 조사입니다. 그랬는데 '빨리 내려갑시다. 빨리 내려갑시다.' 이라면서 지금 모두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사람들이 다 '주남선 목사님이 하실라 하면 우리는 다 양보한다. 아무래도 주 목사님이 해야 이 건국 도상이니까 이 건국을 잘해서 우리나라가 행복스러워지지 주 목사님이 하셔야 된다.' 모두 이래 가지고 주 목사님이 출마만 하시면 전부 다 양보한다고 그렇게 의논이 됐습니다. "빨리 갑시다, 빨리 갑시다." 이라니까 그래 주남선 목사님이 암말도 안 하고 계시요. 암말도 안하고 계셔. 그러니까 대답을 도무지 안하셔요.
그러니까, 설명이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전도하는 것인데 전도하는 것을 다 국회의원도 그러하고 모든 이 권력을 다 믿는 사람들이 잡아야 이 전도가 싹싹 돌아가고 돼지지 않겠습니까?' 이게 주를 위함이 아니냐고 마구 설명을 이렇게 해 재끼는데 주남선 목사님이 아무 말도 안하고 계시요. 그래 내가 있다가서 '우리의 나라는 진리의 나라지 세상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건설할 나라가 아니고 우리는 주님의 피에 대속함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건설해야 될 이 건국할 건국의 나라는 따로 있으니까 그 건설하다가 그거 내비 두고 그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데 죽은 자는 죽은 자를 장사하라고 그건 다 저거들이 할 수 있는데 그거 우리가 할 일 아니다.' 이라니까 주남선 목사님 암말도 안하고 앉아 계시요. 그래 가지고 그때 나도 조사가 됐으니까 벌써 생질은 아니고 많이 죽었다 말이오. 그 사람들은 막 역설을 하고 이리하고 나는 그저 슬슬 이라면서 대항적으로 말하지 안하고 이래 있으니까 이라니까 주남선 목사님이 있다가서 '집사님, 백 조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는 그러합니다. 나는 그것을 못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사명 받은 게 따로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하나님 앞에 역적이 됩니다. 나는 그거 못 합니다.' 요렇게만 단정을 지워서 딱 끊어버렸다 그라니까 삐쭉거리며 거기서도 또 미움을 받았어. 거창서도 미움을 받았어.
미움을 받아서 '꼭 백 조사 고게 들어서 그렇다' 이래 가지고 그 뒤에 공산주의자들에게 뚜드려 맞고 가니까 그 사람들이 꼬시다 꼬시다 그 청년들이 꼬시다 하고 말하기를 아, 지금 토벌대 대장이 대구에 있는 김장로님이지, 대구에 있는. 다 잊어 버렸오? 대구에 있는 김 장로님이 토벌대 대장 아버지라.
거기에 와 있었어. 이러니까 그 장로님이 이 소식을 듣고 아주 분개하사는데 지금 조사님만 허락만 하시면 그 장로님이 토벌대 대장에게 말해 가지고 조사님을 두드린 열 다섯 그 토벌대를 처벌하겠다고 그렇게 말합디다. 그라면서 여기 그때 찬양대도 하고 했는데 뭐이지 그 사람이? ○○○뭐했오 그때? 그 사람 저거 매부, ○뭣 이지 무슨 ○○인가 ○○○인가 그렇습니다. 그분이 애를 써서 자꾸 그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어짜든지 조사님 한 말만 떨어지면 그거 다 처리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내가 그것을 허락 안 했습니다. "내가, 그들이 나를 때리지만 주님이 때릴 일이 있어서 때리는 것이지 저거가 때리지는 못한다. 이런데 내가 만일 맞을 것이 없으면 그 억울하게 때렸으면 잘못인데 '그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까 내가 갚으리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갚아 주시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담당하시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인계하시기를 원하지 그 토벌대 대장에게 내가 인계시키기 싫다, 그 장로님에게 부탁하기 싫다. 이 큰 일을 일개의 토벌대 대장에게 부탁해서 만유의 대주재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하실 일을 그 빈약한 자에게 내가 부탁하기 싫다." 이래 놨디만 서도 그만 전부 삐쭉거리면서 '아. 냅두라 냅두라' 막, 이라면서 냅두라 뭐 그게 당시에 자기가 맞아 죽든지 말든지 뭐 저런 사람 말할 필요가 없는 데 공연히 우리가 달아 가지고 이래 말했다고 화를 내고 이래 쌓습디다.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그것도 하나님이 하셨어.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 참 잘했는지 그들의 말을 꼭 거절했습니다. 거절했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그 사람들 이 제주도로 갔어. 제주도 가 가지고 일을 하다가 왔는데 열다섯이 가 가지고 열 네 명은 다 거기서 직사해 버렸어. 직사하고 한 명이 와 가지고 직사했다고 와서 보고를 해요. 그라니까 안 믿는 불신자들 이 있다가서 나는 몰랐는데 '열다섯이 가 가지고 전부 그게 속은 빨갱이다. 그런데 아 저 예수 믿는 예수에 미쳐 가지고 있는 예수 미치광이 저거 지금 예수만 아는 그 백영희가 억울하게 두드려 맞는 걸 보는데 억울하게 두드려 맞아도 가만있는 거 보니까 하나님 안 계신다.' 모두 다 하나님 없다고 저 백지 가짜 하나님 믿고 저거 다 헛 일한다 이랬는데 다 죽고 나니까 '그래 하나님이 참으로 계시기는 계신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이렇게 꾸며서 속은 다 자기중심이요. 겉은 모든 이 번쩍거리는 세상을 상대하고 있는 이런 참 외식하는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때는 잘못하면 외식 중에 제일 큰 외식이 어디서 뿌리가 돋혀 나오는고 하니 외식의 종자가 어데 있는고 하니 외식의 종자가 자기 취급에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안이나 마음의 눈을 떠 가지고 건너 다 보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전 방편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 방편으로서 건너다보기 쉬우니 아야 그 방편을 고치고, 자기의 눈은 항상 '보자 내 행위에 무슨 잘못된 것이 없나?' 자기를 살피고, 또 자기의 마음도 '내 무슨 성질이나 속에 사상이나 주장이나 소원이나 욕심이나 이런 것이 내가 무슨 이 세상 소원 세상 욕심 이런 게 없느냐?' 그렇게 자기를 살피는 것이 먼저라야 되는 것이니까 이것을 하도록 어서 돌아서야 됩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그게 돌아서는 것 남을 보는 것을 자기 보는 것으로 돌아서는 것이 그게 회개요. 그게 회개인데, 방편 회개요 행위 회개인데 돌아서는 것이고. 그리 못하거든 남을 봤거든 남을 봤거든 남을 봐서 티만한 것이 발견되거든 네게는 들보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연해 가지고 너를 살피는 것으로서 결론을 지워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해 가지고 스스로 속이지 말라. 자기가 자기를 속이지 말라. 오늘 아침에 지금 말씀하려고 하는 것은 목적은 요 말씀인데 지금 위에 해석하다가 그만 시간이 많이 가서 못하는데 그 결론만 짓겠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마라" 6절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그러면 스스로 속이는 게 뭐냐? 우리가 자기를 속여서 자기를 속이는 일, 자기를 망치는 일, 자기를 해하는 일 전부 자기가 들어서 자기를 망치지 다른 사람이 우리를 망칠 수가 없습니다. 마귀도 우리를 망치지 못합니다. 죄도 우리를 망치지를 못해. 사망도 우리를 망치지 못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해하지 안하면 사망도 자기를 통해 가지고 자기를 죽이고. 마귀도 자기를 통해 가지고 자기를 망치고 죄악도 자기를 통해서 자기를 망칩니다. 자기가 그것들에게 죄의 종이 안 되고 마귀의 종이 안 되고 사망의 종이 안되고 하면 자기를 해할 자 없습니다.
이런데 다 자기가 자기를 망치는데 자기를 망치는 그 종자가 자기를 망치는 그 시발이 어디서부터 자기를 망치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데 거기에서 자기 망치는 일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말라 그말이오. 하나님을 업신여긴다는 것은 무엇을 업신여기느냐? 하나님은 소경이 아니고 하나님은 더듬는 소경이 아닌데 하나님을 소경으로 아는 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앉은뱅이가 아니신데 하나님은 여기만 있고 저게는 없고 하나님의 개별 섭리를 하나님께서 모든 이 주권 섭리를 이걸 무시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라. 업신여기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영감 역사와 하나님이 모든 면을 주권해 가지고 하시는데 이분의 역사를 업신여기고 이분의 선포한 계약을 업신여기고 이분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이분이 친히 작용하고 활동하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증거할라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지 말라.
하나님은 아무리 내가 깊은 속에 들어 가 가지고 혼자 있어도 하나님은 벌써 거기에 와서 같이 계십니다. 나와 같이 계십니다. 또 내가 벌써 내게 대해서 이랬으면 좋겠다.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아무리 자기가 잘되도록 참 자기를 위해서 좋은 방편을 연구했다 할지라도 내가 연구하기 보담 주님은 내게 대해서 먼저 연구하시고, 먼저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데 그분을 접하지 안하기 때문에 자꾸 어두워진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하나님을 피할 도리가 없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 우리가 갈 수가 없고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생각을 가지신 그 생각을 가지시지 안한 데 내가 생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생각가진 것을 내게 대해 생각 가진 것에 백분의 일 아니라 천분의 일도 못되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 하나님의 활동을 업신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업신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권세를 업신여기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대한 사랑에 세 밀한 관심을 업신여기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의 말씀을 업신여기지 말자 그말이오. 이 말씀은 천하가 다 달라 들어봤자 그까짓 이 말씀에 어림도 없습니다. 이 말씀이 천하 그거를 엿새 동안에 만들었습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 하나님이 쉬지 안하고 역사하는 걸 업신여기는 것. 하나님의 눈이 우리를 감촉하고 하나님의 눈은 번개같다 하나님의 눈은 번개 같다 해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시는 것을 업신여기는 것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내게 대해서 내 억억만 배도 더 되게 나 위해서 역사하시고 계시는 것, 그러기 때문에, 안보에 대해서 고 치는데 대해서도 나를 행복되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내게 대해서 의무와 책임이나 본분에 대해서 세밀히 잘 감당하는데 대해서도,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이렇게 세밀하게 하고 계시는데. 이분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망합니다. 그게 뭐이냐? 스스로 속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네가 너 속이는 것이고 네가 너 망치는 것이지 딴 게 없다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높이 두려워 모시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너를 모든 피조물들이 위엄있게 두렵게 만드는 일이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것이 나중에 보면 하나님 사랑은 전부다 하나도 섞임 없는 너만 사랑한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 위한 것이 너 위한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 높이는 것이 너 높이는 것이 되고 만다. 네가 하나님의 눈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하나님을 벗어나지 못 하는데 네가 공연히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행동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우실래야 너를 도우실 수가 없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다 저버리고 무시하는데 하나님의 계약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를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네게 손을 대지 못한다. 네가 아무것도 못하는데 포도나무에 포도나무 가지가 그 가지를 해하는 해충이나 무엇이 온다고 해도 포도나무 가지 제까짓 거는 그것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농부가 와야 되지. 네가 네게 있는 모든 해독을 너는 아무리 벗을래야 벗지도 못하고 대항하지도 못한다. 주님만이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의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너 치료하는 것이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너 치료하는 것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모든 원수가 너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품 안에 들어서 하나님의 안보를 네가 받는 것이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를 속이는 부랑자 거짓말쟁이 이 마귀란 놈이 주는 것 같지만 제까짓 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데, 하나님의 모든 무한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부요를 받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의 부요를 받는 것이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절대자의 안보를 네가 입는 것이요,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모든 것을 잘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무시하기 때문에 자꾸 멸망 받습니다.
이번에 가서 받은 이 말씀을 계속해서 새김질해서 놓으면 안 갔던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놓지 말고 이 말씀이 나를 지키도록 자꾸 됩니다. 지난밤에도 혹은 산에 기도하러 계속해서 이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뭐이 있습니까? 말씀 이 우리 안에 떠나지 안하고 있으면 무엇이 있습니까? 네 주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시요. 말씀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갈려고 해도 이 몸이 안 가면 안 됩니다. 몸을 타고 마음이 다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진리를 타고 다니시기 때문에 진리를 영접해야 하나님이 내 맘 안에 오십니다. 이러니까 진리를 버리지 안하고 진리를. 내 마음을 진리가 다 차지하도록 이리하면 그 진리가 내 마음을 차지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주님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만유의 대주재이신 주님이 나를 당신의 것을 삼으셔 가지고 당신의 전지전능 가지고 날 위해서 섭리하니까 잘될 것 아닙니까? 이번에 받은 바 이 말씀을 놓지 말고 이 신앙생활을 쉬면 안 됩니다. 벌써 어제 우리가 왔는데 어제 왔는데 어제 올 때와 오늘과 다르다 말이오. 어제 올 때와 오늘과 달라서 벌써 결심도 식어지고 사람도 식어지고 그 원수에게 꼬이져 가지고 이제 다 버리고 풀어져 버렸다 말이오. 다 풀어지고, 낡아져 버렸다 그말이오. 새로 또 새로와지게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전에도 많이 말했지만 새가 뭐인지? 하나님의 이 도리를 받았는데 내게 대한 새는 어떤 새인가? 내게 대한 새는 돈벌이 새인가 남편 새인가 아내 새인가 자녀 새인가 학문 새인가 자기의 무슨 욕심의 새인가 무슨 취미의 새인가? 그 새가 내게 받은 바 이 은혜를 어떤 것이 뺏들어 갔는가 그놈 원수를 알고 그걸 단속을 해야 되지 단속 못 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까짓 것 암만 그놈 친해봤자 자기 망하는 것 늙는 것 쇠해지는 것 더러워지는 것뿐이지 아무 유익 없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