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산다

 

1988. 5. 31. 화새벽

 

본문 : 고린도전서 15장 35절-39절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이 교훈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활에 대한 것을 이 씨종자로 비유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이 혈육 있는 육체 모든 종류의 육체를 가지고  부활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첫째로, 부활은 자기가 죽지 아니하면 부활 못 한다 하는 것을 씨가 땅 속에  심어지면 그 씨가 보이는 씨는 죽어집니다. 보이는 씨는 썩어집니다. 보이는  씨는 다 썩어지고 거기에 아주 보이지 않는 그 생명이 어데 들어 가지고 있는고  하니 고 종자의 눈이라는 그 눈 속에 들어가지고 있어서 고 생명이 고 씨를 다  죽여서 다 삼켜 먹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눈 그것을 눈 속에 든 생명이 눈 그것을 통해서 눈을 크게 키워  가지고서 눈이 트고 움이 나고 그 다음에는 밀이면 밀이 자라게 되고 또 다른  것이면 다른 모든 증자들이 자라게 됩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말씀하신 것인데 사람이 그라면 여기 씨종자로.

비유한 것은 무엇을 가리켰는가? 자기가 행동하는 그 사랑의 행동, 그 사람의  행동을 씨종자로 비유했고, 또 심는 것은 그 행동을 행하는 것을 심는 것으로  비유했고, 또 심기워지는 밭은 자기의 현실을 가리켜서 비유한 것입니다.

 사람은 현실에 행동하는 그 행동을 가지고, 현실의 행동하는 행동을 가지고  다시 살아서 자라나는 그 사람과 행동이 되어집니다. 다시 살아서 자라는 사람과  기능을 할 수 있는 그 기능이 자라납니다. 그러면  사람과 기능이 자랍니다. 사람은 그 현실을 풍해서 그 사람이 살아나고그  사람이 장성해 갑니다. 그러면 그 현실에 행동하는, 그 현실에 그 사람이  행동하는, 현실에 그 사람이 행동하는 그 행동을 가지고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사람이 자라져 갑니다.

 그런데, 그 행동할 때에, 행동할 때에 그 행동에, 그 사람이 행동을 현실에서  하는데 현실에서 하는 그 사람의 행동에 생명이 있으면 그 현실에서 행동하는 그  행동을 통하여 영생하는 사람이 자라갑니다. 그라나, 그 씨종자에 생명이 없는  씨가 있으니 보기는 꼭 같아도 생명이 없는 씨가 있는데 생명 없는 씨는 현실을  통해서 행동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영원히 죽습니다. 영원히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사람은 씨종자는 밭에다가 땅에다가 심는 그것으로서 자라는 씨도  있고, 살아 가지고 자라는 씨도 있고 죽어서 썩는 씨도 있습니다. 씨종자에  생명이 있는 것은 밭에다 심으면 그것이 다시 그 속에 있는 생명이 자라 가지고  커단하게 자랍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심으면 자라고 생명이 없는 것은 심으면  썩습니다.

 우리가 이 현실 이 생활 가운데서, 현실 행동 가운데에서 생몄 있는현실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은 영생으로 자라게 되고 또 생명 없는 현실 행동을 하면은 현실  행동을 통해서 영원히 죽어집니다.

 이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현실을 꼭 만나서 통과 하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현실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자기가 닥쳐 가지고서 현실 행동 현실 생활을 하는데 꼭 같이 현실 생활  행동을 하지마는 하나는 영생이 이루어지고 하나는 영원한 멸망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다 같이 이 현실 생활을 사람들이 하지마는, 전인류는 현실 생활을  하고 또 현실 생활에서 현실 생활로 현실 생활로 이렇게 현실 생활을 계속해  가지고서 일생을 끝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 생활을 할 때에 이것이 씨종자를 땅에 심는 것과 꼭같은 것인  것을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현실 생활을 누구나 다 하는데 그 현실  생활을 할 때에 생명 있는 씨와 생명이 없는 씨, 씨도 처음에는 생명이  있었지마는 삶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여기 모두 시장에 파는 고추들은 찌기  때문에 생명이 찌여서 다 죽었습니다. 그런씨는 땅에 심으면은 썩어 버리지 움이  나고 자라지를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류들이 현실 생활이라는 생활을 다 하는데 현실이라는  거는 밭과 땅과 같다. 또 행동을 이런 행동 저런 행동 하는데 그런 거는  씨종자의 종류와 같다. 이런 종류 저런 종류 각종이 있는것처럼 같다.’   그런데, 그 씨종자 속에 생명이 있고 없는 것이 있으니 생명이 있는것은 꼴  자기가 현실 행동 생활을 할 때에 진리로 하고 영감으로 하고 예수님의 피로  이렇게 하는 것 고것이 예수님의 피로 하는 것인 피와 영감과 진리가 속에  있으면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곧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으로 완전히 하나님과 연결이되고 또  영감과 진리의 행동으로서 그 산 생명이 생명 행동을 하는것입니다. 진리는 누가  진리로 사는고 하니. 중생된 새사람이 진리로 살고 영감으로 삽니다. 중생은  누구로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으로 합니다.

 그러면, 사람은 철실을 통해서 영생도 이루고 영원한 멸망도 이루고 둘 중에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 생활할 때에 속에 생명이 있어서 그  생명이 있는 자는 영생을 이루고 생명 없는 자는 영원한 멸망을 이룹니다.

 그 현실에서는 작은 분자의 아주 뽀스래기 그 영생과 사망을 이루어서 그것이  일생 동안 뿌스러기와 같은 그런 영생을 이루어 영생이 모아. 가지고서 장성한  영생을 가진 사람도 있고 실려 있는 기능 있는 그 영생 아주 기능 있는 실력  있는 사람으로 아주 그런 사람도 되어지고, 또 현실을 통해서 자기는 생명 없는  행동으로 하면은 뽀스래기 죽음 그것이 차차차 주 모아가지고서 완전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 생활이 마치 비유컨대 씨종자를 땅에 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씨종자는 땅에 심기워지기는 하나님이 다 법칙을 정해놨기 때문에 현실  만나지 안하는 사람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이 생활을 행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할 때에 그때에 생명이 있는 사람의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생명 없는 사람의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생명 있는 사람의 행동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그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그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생명 없는 씨는 썩는 것처럼 자기는 한 시간 생활 행동할 때에 이 속에  생명 없이 한 시간 행동 했으면 그 한 시간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 한 시간을  통한 사람도 죽었고 인격도 죽었고 기능도 죽었고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한 달 동안을 생활 하는 데에 생명 없는 생활을 한 달 했으면 그 한 달 동안  행동한 그 인격도 죽었고 사람도 죽었고 기능도 죽었고 완전히 죽습니다.

 또 그 사람이 하루든지 한 시간이든지 한 달이든지 그 현실 생활을 할 때에  생명이 있는 그 현실 생활 하면, 진리대로 현실 영감대로 현실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칭을 받은 그대로의 행동을 하면 고 행동한 고 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영생하는 참사람이 이루어지고 참사람이 자라 되고 참사람의 기능인 완전한 기능  곧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작아도 전지의 지혜 전능의 능력 완전의 사랑의 기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현실 행동을, 현실 생활, 생활이라면은 행동이요 행동이라면  생활인데 모르기 때문에 자꾸 이렇게 구차하게 말합니다. 현실 행동, 현실 생활  그잣을 통해서 영원히 멸망하고 영원히 영생하고 하는것이 이루어지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현실 생활 하는 그 현실 생활이 보배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합니다.

만일 생명 없이 산다면 현실 생활을 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현실 그 생활을 안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 순서로 자꾸 세월이 자는 데 따라서  우리 현실이 되어지기 때문에 현실 행동 현실생활을 안 할 수 없습니다.

 현실 행동 현실 생활을 하는 데에 생명 없는 현실 생활 현실 행동하면은 영원히  멸망 받습니다. 고 자기의 그 인격도 고태 한 것은 완전히 멸망으로 죽습니다.

고 사람도 죽습니다. 고 기능도 죽습니다. 그래서 죽어 죽어 죽음을 주 모아  가지고 마지막에서 영멸을 받고 마는 것이 일반 사람들인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그 행동하고 생활 하는 데에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 속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수도 있고 생명이  없는 그 죽음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현실 생활에 사람들이 살면서 죽음으로 살면 영원히 멸망입니다. 다시  그거는 찾지 못합니다. 고 인격도 영원히 멸망했고 고사람도 고만치는 멸망했고  고 기능도 고만치는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기가 생명 생활  생명 행동을 하게 되면은 현실 행동 고 생명 행동한 고 사람도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영생하는 사람입니다. 고것이 참사람입니다. 고것이 새사람입니다.

고게 완전한 사람입니다. 고 기능도 완전한 기능이요 완전한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씨종자가 현실을 다 통과하는 것, 땅에 심는 것, 땅에 심는 걸  통해서 생명 없는 것은 완전히 썩어버리고 생명 있는 것은 다시그 생명이  자라서, 속에 있는 생명이 자랍니다.

 생명이 커 가지고서 나중에는 커단하게, 조그만한 씨를 심었는데 그게 크게  됩니다. 쪼그만한 씨 싸라기 동가리만한 그 씨를 심었는데 뒤에 가서 나무가  다섯 아름 여섯 아름 그 몇십 길 키가 크고 그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이렇게  현실 생활을 통해서 그 참사람이 그렇게 위대하고 크고 사람의 인격이, 그  사람의 가치가, 사람의 기능이, 사람의 영광과 존귀가 지극히 커질 수도 있고  커지지 못하고 아주 멸망에서 멸망으로 자꾸 완전히 멸망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에서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이렇게 말했는데 이거  뭐인가? 우리가 요 현실 생활에서, 현실 생활에서 안팎이 죽으면 삽니다. 현실  생활에서 껍데기가 죽는다는 것은 껍데기 우리의 사람의 기능 또 사람의 그 행위  그 모든 행위 기능 그것이 희생을 하면은 이다음에 살아납니다. 희생하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희생을 하니까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없어지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이 행동할 때에 그 행동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하여 없어지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것이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현실 생활에서 자기가 죽고 예수님으로 살면  영생합니다.

 죽는 것은 생명 없는 거는 죽고 생명으로 살면 살아나는데 그 현실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죽을 수 있는가? 현실을 통해서 죽은 사람이 죽습니다. 죽은  사람이 죽습니다. 현실을 통해서 옛사람이 죽어야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현실을 통해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는 이 말씀은 우긱가 현실 행동에서  죽어야 삽니다. 자기가 죽어야 자기가 삽니다.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이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옛사람으로 죽는다 말은 현실  생활에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다시 말하면 자기의 악, 자기 중십 자기 위주  자기 본위 그게 뭐인데? 악인데.

 악이라니? 악령의 감화로 자기 속에 자기 중심인 원죄인 악성으로, 악습인  이제까지 악령과 악성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마귀적이요 또 원죄적인, 자기 중심  자기 위주적인 이 행동을 한 것이 그 악한 행동입니다. 악한 행동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면은 연습했기 때문에 고걸 가리켜서 있습이라 말합니다. 세 번 했으면  더 연습했기 때문예 짙은큰 악습입니다. 네 번 했으면 더 큰 악습입니다. 습  자라 말은 익힐 습(習)자, 악령 악성으로 한 행동을 한 번 하고 또 연습해서 두  번 하고 또 연습해서 세 번 하고 자꾸 이렇게 한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악습인데  자기 현실 생활에서 옛사람으로 살면 고거는 완전히 죽습니다. 그 사람이  옛사람으로 현실 행동하면은 완전히 고 행동한 것은 죽어 버립니다. 다시는  살아나서 행동 못 합니다. 완전히 죽어 버립니다.

 사람들이 현실 생활에서 자기를 부인해라, 자기를 죽이라, 자기를 현실에서  죽이고 꺾고 뽑고 누르고, 요놈이 일어나는 것을 일어나지 못하도록 꺾고 뽑고  누르고 요렇게 하면 고거 뭘 누르느냐?  자기 중심을 누르고 자기 중심인 이 악령, 하늘에서 쫓겨난 악령 이놈의 감화를  죽이고. 또 성질. 악성, 인간의 원죄,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그것이  악성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악이라고 합니다. 악성,  인간의 본성이 악해졌습니다. 그러면 자기 중심의 자기 위주의 이 악성, 또 그  행동을 한 번 두 번 해 버릇 하니까 자꾸 늘어 나갑니다. 고 자기 중심의 행동을  해 갈수록이 자꾸 그것이 연습이 되니까 자꾸 늘어갑니다. 악습이 자라갑니다.

악습이 자라가고 악성이 자라가고 악령이 이제 제게 와 가지고 자꾸 권위 있게  자꾸 역사하게됩니다.

 요게 뭐이냐? 자기 아닌 자기인데 자기인 줄 압니다. 자기 아닌 자기인데  자기인 줄 알고 요것이 자기 참자기를 죽인 원수인 자기인데 요것을 자기로 알고  착각을 합니다. 요 마귀란 놈이 자꾸 어리석은 사람의 심신을 괴우기 때문에  꾀여서, 꾀여져서, 그것에게 꼬여져서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자기 원수를 자기로  알고 자꾸 자기로 삽니다. 이래서,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대할 때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옛사람, 그 사람을 완전히 죽이는 옛사람 고것을 칭찬을 해 주면  좋다 합니다. 그놈을 꺾으면 싶어합니다. 내가 어제 어데 갔다 왔는데 가니까  거기에 보니까 아들은 악령, 악성. 악습이 더 강하고 아버지는 좀 약해서 그거  하면 망할 줄 알기 때문에 아버지는 자꾸 화평을 할라고 이렇게 자꾸 하는데 그  아들은 뛰 하게 해 가지고서 그걸 가지고서 제 힘으로 알고 장기로 알고 삽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사람을 접해 보면 그 악령, 악성, 악습 고걸로 된것이 옛사람  자기입니다. 자기를 죽인 자기입니다. 자가 아닌 자기입니다. 자기 원수인  자기입니다. 고 자기인데 옛사람 자기 그놈이 자기인줄 알고 그놈을 죽이면  영생으로 살아나게 되는데 그놈을 키우면 좋은줄 알고, 이래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영과 인간 본성  인간성과 그 모든 버르징이 그것을 칭찬을 해 주고 높여 주면 좋아합니다. 그걸  꺾으면 모두 싫어합니다. 그런데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한다’ 그놈이  죽어야 현실 네 행동에 그놈이 죽어야 영생으로 살아나지 그놈을 안 죽이고 그놈  대로 살면 영원한 멸망을 받습니다.

 ‘죽지 아니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겠고’ 네가 현실 행동에서 인생이 지극히  존귀해지느냐 지극히 천하게 멸망되느냐 하는 것은 현실 행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현실 행동하는 사람이 멸망하는 사람으로 현실을 살 수도 있고 영생하는  존귀한 사람으로서 현실을 살 수도 있으니 현실 생활에 생명이 들어 있으면은  영생하고 생명이 없으면 영원히 멸망받는다.

 이것을 또 나와서 애기를 해서 다시 말하면 죽으면 살고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한다. 네가 현실 생활에 꼭 죽어야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아나지, 멸망할  사람이 죽어야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고 자라가지 멸망할 사람들 현실에서 네가  죽이지 못하면 네게는 영생하는 사람은 죽고야 만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죽느냐 사느냐 멸망하느냐 구원하느냐 하는 것은 현실 네  생활 곧 행동에서 고 옛사람을 죽이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성도 죽이고  또 모든 속성도 죽이고 그런 버릇도 죽이고 고렇게 작용을 운동하는 시동을 걸고  있는 악령 고놈을, 악령 고놈을, 나로 하여금 내 중심 내 위주로 살 마음이 자꾸  강하게 만들고 또 그게. 더 뜨겁게 만들어져 가지고서’ ‘에이 죽어도 나는 내  중심으로 살겠다, 내 위주로 살겠다, 내가 과거에 하던 그 버릇대로 해  보겠다,’ 요렇게 해가지고서 인간들이 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고 현실에서는 꼭 죽는 생활해야 사는  생활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현실이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현실에서 죽이면,’ 죽은 자 사망에 속한 자,  옛사람 그놈을 죽이면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되고 옛사람 그놈으로 살면 고것은  영원히 죽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일생을 통해서 죽고 죽고 마지막에는 제까짓 게 안죽을라고  떠들어 쌓아도 마지막에는 송장이 돼서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산 사람은 그 사람은 그 죽음이 없습니다. 다른 볼 때에는  죽는 것 같지마는 그는 그로써 마치 누에가 허물 벗는 저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시공의 제한을 받는 이 모든 혈육의 것이 변하여서  신령한 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어제 우리 초상 나서 쳤다 말을 듣고 내가 뒤에 보고를 들었는데 그렇게 죽고  난 뒤에 보니까 아주 그 얼굴이 화평하고 세상을 뜰 때도 아주 뭐 아무 거석  없고 아주 화평하고 그렇게 그 모두 다 뒤에, 그거 썩기는 썩는 것이지마는  그래도 영육이 결합돼 있기 때문에 그 나타나는 그게 표가 된다 그거요.

 안 믿는 사람은 죽을 때에 보면 그 사람이 고통을 합니다. 믿는 사람은 잘 믿는  사람은 죽음이 일생 동안 중에는 제일 기쁜 시간입니다. 제일 기쁜 시간이라,  그거는 왜? 완전히, 장애하고 방해하는 옛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그 사람이 현실에서 옛사람 죽이는 취미와 새사람으로 살아난 그  기쁨으로 현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은 마지막에 완전히 옛사람을 완전히 죽여서  없애 버리고 새사람으로 완성하는 그 시간이 제일 기쁩니다. 죽음의 시간이 제일  기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의 시간 중에도 자기가 새생명에 강한 영감 강한  진리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 마지막에 순교 생활이기 때문에 순교 생활이  그것이 최고의 기쁨이 되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인 것입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순생에서 기쁘고 또 순교에서 기쁩니다. 순생에서 기쁘다 말은 무슨 말인가?  순생이라 말은 죽을 순(殉)자 살 생(生)자, 죽고 사는 것으로서 기쁩니다.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은 살리는. 고것이 순생생활입니다. 그것이 산 제물로  드려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현실에서, 현실에서는 내가 나 할 일이 뭐이냐?  현실에서는 죽이고 살리는 것이 나 할 일이다. 주님은 무슨 일하시나? 현실에서  내가 나를 죽이는 일에 도우시고 내가 나를 살리는 일에 도우십니다. 주님도  죽이고 살리시는 일로 내게 역사하시고 나도, 현실에서 죽이고 살리는 이 생애로  내가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죽이는 건 뭣 죽이는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버릇, 나쁜 그 악의 버릇, 마귀의 유혹 받은 버릇, 마귀의 유혹 받은 그  모든 성격, 마귀의 유혹 받은 악령의 유혹 그놈을 죽이고 그것이 죽이라.

순이라. 죽을 순(殉)자, 순. 또 생이라. 이제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라.

 그러면 요 한 시간, 요 한 시간에 요 죽을 놈 요놈을 살면은 영원히 그 시간 산  사람이나 인격이나 그 기능은 완전히 죽습니다. 그런데 고 현실에 죽일 자를  죽이고 죽은 자를 죽이고, 죽은 자 그거는 옛사람 그거는 죽은 자인데 지금  죽어가고 있다 말이오. 죽어가고 있는 건데 죽은 자를 죽이면은 영생하는 자로  살아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살고 있는가? 살고  있는가? 죽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자꾸 죽은 자가 자꾸 죽고 죽고 죽고  죽어 완전히 다 죽어 버리고 맙니다. 죽은 자는 죽는 일을 하는 것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안 믿는 사람의 생활이오.

 믿는 사람의 생활은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죽은 사람으로 죽어가는 생활도  할 수가 있고 죽어가는 사람을 죽여서, 죽어가는 사람의 생활을 죽여 버리고  영생하는 사람의 생활로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아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마다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살린다. 자기를 꺾고  자기를 기른다. 자기를 뽑아 버리고 자기를 심은다. 이 현실인 것을 깨닫고  ‘뽑지 안하면 심지 못한다. 꺾지 못하면 살아나지 못한다. 죽이지 못하면은  자라가지 못한다.’ 이러니까 자기 현실에서 꺽는 재미, 뽑는 재미, 죽이는  재미, 자기 현실에서 다시 심는 재미, 또 살리는 재미, 자라는 재미 이 재미가  성도의 재미인 것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말했습니다. 날마다  죽노라. 단언코 말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다 그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많은 무슨 말이지요? 여기에 남반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무슨  말이야? 나는 날마다 살아난다 그말이오. 나는 날마다 살아난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자기 죽이는 일을 당할 때에는 슬픈 듯하고 잠깐  근심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죽여 놓고 난 다음에는 기쁩니다. 새사람으로  살고 난 다음에는 기쁩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처음에 맞이할 때는 고통이고 그  현실을 새사람으로 살아서 죽일 자를 죽이고 살릴 자를 살리면은 한없이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생활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  생활은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현실에서 자기를 죽이는 거, 이거는 뭐 간단하게 쉬운  것입니다. 알기 쉬운 것이오. 고 뭣이든지 다 그렇지 않소? 사업하는 사람도  현실에서 실패를 죽이고 성공으로 살아나면 그래 가지고 자꾸 성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거는 그것대로 또 성공이 되어지는 것이오. 자기가 그 현실에서  잘못 안 것을 잘못 뻐뚤어지게 안 것을 죽이고 바로 안 것을. 그것을 살리면은  그래 가지고서 바른 것이 전부 살아나는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은 뭐 풀이 살아나는 것도 그러하고 지식이 살아나는 것도 그렇게  인격이 살아나는 것도 그렇게 모든 행위가 살아나는 것도 그렇고 기능이  살아나는 것도 다 그렇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산 것 있고 죽은 것 있으니 산 거는 뭐이냐?  진리대로 된 것이 산 것이요 성신의 감동대로 된 것이 산 것이요, 또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것들이 산 것입니다.

 처음 사랑의 행위를 가지라 그말은 자기는,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었으니  대속을 입고, 대속을 입은 증거는 뭐이냐? 대속을 입은 증거는 대속 운동을 하는  자라. 대속을 입은 증거는 대속 입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

대속 입은 행동이 뭐인데? 대형으로 삐뚤어진 걸 없애는 그 운동, 대행으로 옳은  것을. 건설하는 운동, 대화친으로서 화목을 이루는 그 운동, 예수님이 대신 했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의 공로로 살아났으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신 하는  고것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요 고것이 빛의 행동을 하는 것이요 그것이 낙원  생활이요 생명과실을 먹는 것이라.

 고러면, 인생이 기독자가 제일 이 세상에서 좋은 곳이 낙원인데 거기에는  죽음이 없고 근심이 없고 근심이나 고통이나 걱정이나 원망이나 시기나 불만이나  불평이나 그런 것이 없고 항상 기쁘고 감사하는 그 생명이 충만한 것이 낙원  생활인데 낙원 생활은 무엇으로 가야 낙원으로 들어간다 했습니까? 낙원에  들어가서 낙원 생활은 무엇하면 낙원생활에 들어간다 했지요? 대답해 봐. 대답해  봐요.‘이기는 자는’ 하지 안했소?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낙원에 생명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신다.

 이기는 자, 이기는 자가 뭐인데? 이기는 자가 뭐입니까? 처음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이 이기는 자라.

 처음 사랑의 행위가 뭐인데? 제가 한 게 아니고 다른 사 람의 삐뚤어진 거 대신  형벌, 삐뚤어진 형벌을 제가 책임지고서 그 사람을 거기에서 구출하고 또 대신  행해 가지고 그 사람을 건설시키고 또 대신 화목의 제물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고 모든 것으로 더불어 화친하도록 이래 만들어 나가는  이것이 처음 사랑의 행위라그말이오.

 그러면, 이것이 뭐이냐? 다른 말로 말하면 소금 생활이라. 이것이 자기가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로 자기가 녹으면 영생합니다. 그러면 낙원 생활합니다.

 기독자가 제일 평안한 생활 하는 것이 어데냐 하면은 처음 사랑의 행위입니다.

기독자가 제일 평안한 생활하는 것이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말입니까? 현실  생활에서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리는 것입니다. 사는 것입니다. 죽일  자를 죽이고 살리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가 살인  현재요 구인 현재 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현재요 사람을 살리는 현재입니다.

현실에서 자기 죽일 자를 죽여야 그 속에 깊은 속에서부터 평강이 올라옵니다.

살릴 자를 살려야 평강이 올라옵니다..

 인간은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껍데기로 제 성질 제 맘대로 하면 좋을 줄 알고  죽일 자로 삽니다. 죽일 자로 살면은 자기 속에는 지옥입니다. 자기 행위도  지옥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도 지옥입니다. 자기 하는 모든 일도 지옥입니다.

전체가 망합니다.

 또 자기가 죽일 자를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행위 하면은 처음에는 행위 할  때는 그 자기 거석하니까 뽑기가 얼마나? 자기 성질 뽑고 자기 주장 뽑고 자기  욕심 뽑고 자기 위주 뽑고 자기 중심 뽑고 할라 하면은 얼마나 힘듭니까?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자기 꺾는 재미를 자기를,  주장하는 그 주장 암만 해 봤자 멸망 받습니다. 소용이 없어. 옛사람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나폴레옹이 안 썩었소 뭐 그 히틀러가 안 썩어? 다 소용없어.

이러니까 그거는 자꾸 그만 하루 지나면 죽었고 또 이틀 지나면 죽었고 제까짓  놈이 암만 거석해도 며칠 지나면 죽어버리고 만다 말이오.

 이러나, 고걸 죽일 자를 우리는 현실에서 꺾어 죽여 버려. 고놈을 죽여 버리고  새사람으로 살기만 살면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생애에 아주 평강과 취미는 죽이고 살리는것이 이것이 기독자에게  천국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뽑고 심으고, 예레미야 1장에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나님 말씀은  모든 열방과 열국을 파멸하며 파괴하고 또 건설하고 뽑고 심고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쓸어서 자기가 깨닫고 현실에서 죽이고 살립니다. 현실서는 죽일  자는 완전히 죽여 버릴 수 있고 현실에서 다시 죽지 안하는 영생하는 자로 이제  자기가 성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어야 살겠고’ 하는 거 죽어야 삽니다. 현실에서 죽음이  없으면, 현실에서 스스로 자기가 죽이지 못했으면 수입을 절대 없습니다.

현실에서 자기 죽이는 거, 그러면 사람이 사업을 하든지 무얼 하든지 거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자기 죽이는 일 살리는 일 요것을 기억하고,  자기가 무슨 회사에서든지 경영하는 것이든지 어떤 데에서 ‘나는 현실마다  내가 죽이고 살리는 요 수입이 내 수입이다’ 하는 걸 생각하고서 고 시간에  죽일 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고놈을 죽이면, 회사 사장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고놈을 현실에서 죽이면 회사가 살아나고 사원들도 다 그거  살아납니다. 또 영감과 진리와 이 대속으로서 살아난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되면  저 좋고 남 좋고 다 살아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면 전체가  살아나고 옛사람으로 살면 점점 죽습니다.

 그거 크게 커지면 좋은 줄 알아도 크게 커지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자꾸  커지면서 죽어지는 거 있고 작아지며 죽어지는 거 있고 어짜든지 죽어지기는  죽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반사들은 공과를 꼭 외우고 요 공과대로 자기가 생활을 하도록, 실천해서 고  생활 하도록 해 봐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실행하는 가운데서 깨달아지는  그것이, 자기가 실행함으로서 깨달아져 나오는 그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말합니까? 여기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이소. 그게 뭐이요? 자기가 공과대로  실행을 함으로서 거기에서 깨달아진 체험과 경험의 지식 그것을 뭐라고 하지?  자기 지식? 다른 말로. 여기 남반에서. 뭐? 자기 진리? 젖. 젖. 음식 먹어  가지고서 소화해서 제일 처음에는 영양되고 그 다음에는 기름되고 피되고 나중에  가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서 젖이 돼 나오는 것입니다. 그거 그렇게 자기 경험  체험 그 지식은 그거는 뭐이냐? 젖이라. 그걸 어린 아이에게 그거 먹여야 되지  그냥 음식 먹이면 체해서 죽어요. 이러니까 자기가 실행하지 안하고 하는 그런  것을 가르치면 헛일이라.

 실행을 못 해도 실행할 소원을 가지고서 자꾸 실행하는 애를 쓰면은 사람이  완전자는 없어. 이러기 때문에 실행하기를 원하고 실행하기를 시작하고  실행할라고 애를 쓰면은 가르칠 만한 그런 것이 자꾸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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