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07:46
준비할 것 두 가지
1984. 2. 10. 금야
본문: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온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 지라 그 후에 남온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왜?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 하는 그 날과 그시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과 재림의 시를 시만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 아닙니다. 여기에 그 날과 그 시는 우리의 구주가 되신 이 주를 자기의 주가 되고 또 자기 주를 아주 빼앗기게 되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하는 것과 또 주님에게 배척을 당하는 이런 일은 일생에 몇십 번이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재림은 한 번 뿐입니다. 언제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잊어버리는 그 때가 언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난 자이니 진리와 영감으로 계속 살고 있으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 처녀는 열 처녀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총칭해서 비유한 것입니다. 또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예수심을 자기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을 가리키고, 또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에게 배척을 당했습니다. 구주에게 구주님에게 버림을 당한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신랑으로 이렇게 비유한 것은 우리 구주가 되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여기에 신랑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구주라는 말은 우리의 금생과 내세 영원을 책임지신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질 때에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악령이 가득찬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지 아니 하시면 우리는 멸망만 마련하지 구원은 하나도 마련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서 자기대로는 사람으로서 성공을 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자인을 한다 할지라도 실상은 멸망입니다.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이 어째 예수님을 믿든지 믿음의 행위야 뭐 어떻게 허무하다 할지라도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늘나라는 갑니다. 하늘나라는 가되 영생만 하고 있지 영광은 하나도 없어서 구원을 얻되 벌거 벗은 구원을 얻는다, 불 가운데 있는 그런 구원을 얻는다, 하늘나라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능자가 우리를 책임지시면 전지자가 우리를 책임지시면 모든 것에 주인이 되는 대주재자가 우리를 책임지시면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홀로 주권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면 우리는 모든 면이 만족하고 부족한 면이 조금도 없게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구원 준비를 할 때에 인간의 요소로 구원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전능한 진리의 능력으로 구원 준비가 되고 전지전능의 완전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금을 불로 연단해서 순금되는 것 보다 성도들을 세상애 있는 동안에 그 사람이 육성되어 있는 그 자기의 인격이나 또 길러 가지고 있는 자기의 모든 기능이나 자기가 행동한 모든 그 이력 그 전부를 하나님이 심사하실 때에 하나님과 진리와 그 초 자연의 능력으로 된, 피조물이 어떻게 해할려고 달라 들어도 해할 수 없는 그 온전한 것으르 이루어진 것만 남고 인간의 의지나 각오나 뭐 명예심, 이런 욕심, 저런 담력, 배짱, 민첩 어떤 것으로 했든지 하나님과 진리로 되어 있지 안한 그 모든 것은 다 견디지 못하고 마귀에게 굴복을 하도록 하는 그런 어려움을 우리에게 닥치게 하십니다. 그것을 비유해서 금을 연단하는 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되면 인간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된 것은 다 꺾어지고 굴복당하고 다 변질되고 맙니다. 하나님으로 된 것만 남습니다. 그래서 불로 금을 연단하면 잡것은 다 없어지고 순금만 남는 거와 같이 이런 어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이 구별하실 때에 인간으로 된 것은 다 없어지고 하나님으로만 된 것 그것만 남아 있는 것이 마치 불로 금을 연단해서 다른 잡철은 다 타고 순금만 남아 있는 것보다도 더 깨끗하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된 것만 남아 있다 하는 것을 가리 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신랑으로 비유한 것은 우리를 책임지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비유했는데 이 하나님이 자기의 신랑되셔서 자기의 구주가 되셔서 자기의 모든 것을 책임짐으로 인하여서 된 것만 남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비유는 간단하지마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은 구주를 영접하지 못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이의 생활에 그의 사람을 기룬 것이든지 자기의 온갖 기능을 기룬 것이든지 자기의 행위를 건설한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그것이 이 신랑 구주로 말미암아서만 불타지 아니할 것 멸망받지 아니할 것을 마련 할 수 있는 것인데 신랑을 맞이 못하고 배척당했다 그말은 구주가 책임을 지지 아니하시고 그 자는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 하시고 책임을 지지 아니하니 이 사람은 기본구원은 얻었지마는 건설 구원, 성화 구원, 영광 구원 하늘나라에 실력 구원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다섯 처녀들은 천국 갈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쳤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천국 갈 사람들이 아니고 지옥 갈 사람들이다' 이렇게 꺼꾸로 해석을 해서 '아 우리 택한 사람들은 다 천국 갈 사람들이다. 뭐 우리 택한 사람들은 다 주님을 구주로 다 영접하는 사람들이니까 뭐 다른 염려 없다' 이렇게 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마음을 푹 눅이고 아주 낙관하도록 이래 가지고 구렁텅이에 빠뜨리도록 하는 이것이 오늘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의 일입니다. 그러기에, 야고보서 2장에 스승이 된 사람은 하나님 앞에 심판을 많이 받는다. 또 상급도 많이 받고 심판도 많이 받습니다. 바로 가르쳤으면 상이 클 것이고 잘못 가르쳤으면 하늘나라에 벌은 없지마는 그가 상을 받을 수 있는 상을 다 삭제 해 버리니까 저 하나는 잘 믿었다 할지라도 다 헛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같이 천국 갈 성도라 할지라도 구주를 영접 못한 사람은 하늘나라 가서 참 불쌍하고 가련하고 땅 위에서 구주를 영접할 때마다 영접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영광의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주를 영접하고 못 한 것이 어데 그 원인이 있느냐 하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그 원인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미리 기름을 준비했고 슬기 없는 다섯 처녀는 미리 기름 준비는 하지 안하고 기름이 필요 할 그때에 기름을 옆에 사람더러 좀 나눠 달라고 했습니다. 이 기름은 나눠 줄라고 하면 너도 실패. 나도 실패 다 실패니 이 기름은 나눠 줄 수가 없는 기름이라 그렇게 여기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옳습니다. 이 기름은 나눠 줄라고 하면 그 기름이 바싹 없어져 버립니다. 나눠 줄 수 없는 기름입니다. 그런고로, 믿는 사람이지마는 미리 기름 준비한 사람은 영광의 구원을 얻고 시기 시기마다 주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하고 그래서 구원을 잘 이루고. 미련한 신자는 주님을 영접할 시기 시기마다 다 주님을 영접하지 못해서 건설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기름은 뭣 하는 기름인가? 이 기름은 신랑이 오기를 밤중에 오는데 밤중에 신랑이 올 때에 등불을 들어야 신랑을 맞이하지 등불 안 든 사람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밤중은 무엇으로 비유한 것인가? 제일 어려운 때 어떻게 어려운 때? 요거 알기 쉽게 말하니까 꼭 잡고 놓지 마십시오. 어렵기는 두 가지 어려운 때입니다. 두 가지 어려운 때. 제일 두 가지가 아려운 때를 가리켜서 밤중이라. 낮에는 이 두 가지가 하나도 어렵지 안한 때가 낮이요 밤이 차차 차차 짙어지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차차 차차 어려워지는 것을 어려워 지는 것을 가리켜서 어두움이 짙어져 간다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어려움 이것이 밤중인데 두 가지 어려움을 당할 때에 두 가지 어려움에게 지는 사람은 등불을 들지 못한 사람입니다. 두 가지 어려움에 지지 안하고 두 가지 어려움을 이긴 사람은 등불을 든 사람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어려움은 어떤 어려움인가? 이 두 가지 어려움은 하나는 바로 아는 등불이요 삐뚤어지게 바로 알지 못하게 하는 삐뚤어진 잘 못 아는 어두움이요, 바로 행하는 등불이요 잘못 행하는 어두움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성령과 진리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준비는 이 성경 육십 육 권 도리를 가지고 '내가 어떻게 이 기름 준비를 잘 할까? 어떻게 해서 그 환란 때에 내가 환란에게 지지 안하고 환란을 이기는 사람이 될까?' 요것을 알기 쉽도록 지금 말해 줄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란은 무슨 환란이냐? 과거에 신사 참배 환란도 있고, 6·25 환란도 있었고, 또 주일날 나라에서 투표하는 그런 어려움도 있었고, 또 갑자기 계엄령이 내려서 밤 예배를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어려움도 있었 그 또 개인에게는 남편의 어려움도 있었고, 아내의 어려움도 있었고, 직장 어려움도 있었고. 친구 어려움도 있었고, 애정 어려움도 있었고 뭐 그 어려움이 많이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간추려서 말하면 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두 가지만 조심하면 우리는 그것을 잘 준비할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그 어려움을 단단히 준비해 가지고 이겨야 되겠다' 하는 결심을 가졌지마는서도 이렇게 준비해야 될까 저렇게 준비해야 될까? 그 성경에 보면 준비해야 되는 것이 백도 천도 넘으니까 어떻게 준비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그만 몰라서 복잡해 가지고서 어려움의 그 준비를 바로하지 못해 가지고 실패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어려움을 두 가지로만 똑똑히 단정을 지우십시오. 하나는 바로 알기 어려운 어려움입니다. 한 어려움은 바로 알기가 참 어려운 어려움입니다. 바로 알기 어려운 어려움. 자기가 현실을 만냈을 때에 '이렇게 할 까 저렇게 할까? 이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내가 지금은 말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내 마음을 이렇게 쓸까 저렇게 쓸까? 이 사람을 영접을 할까 배척을 할까? 이 사람의 요구를 자부를 할 까 내가 같이 동행을 할까?' 이것입니다. 바로 알기 어려운, 바로 알기 어려운 어려움 그것이 밤중입니다. 제일 바로 알기 어려운 것이 앎의 어려움입니다. 그것이 지혜와 지식의 어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어려움. 또 하나 어려움은 내가 알기는 바로 알았다 할지라도 바로 행하는 것이 힘듭니다. 그래서 바로 행하기가 제일 어려운 그때가 제일 어려운 사건을 만냈을 그때가 바로 행동하기가 제일 어려운 그때가 밤중입니다 온 전국이 다른데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 구디 집어 넣는다고 하는 그런 일을 닥쳤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는데 참 기도할 수 없도록 딱 돼놓으니까 그것도 밤중입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앞에 놓고 사정을 합니다. '내가 몰라서 그러니 네가. 내가 명령을 해 놨으니까 네가 기도하면 사자 구디 들어 가지 안할 수 없으니 한 달 동안만 기도하지 말라'고 그 왕이 신하에게 하루 종일 사정을 합니다. 그럴 때에 바로 하는 것은 '암만 그래도 나는 기도해야 됩니다.' 하는 그것이 바로 행하는 것이고 또 '암만 왕이 말해도 기도는 해야 된다.' 요렇게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고 바로 행하는 것인데 아주 어렵습니다. 그게 그때로 말하면 밤중입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그때에 등불을 들었습니다. 왕이 그렇게 사정을 해도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안다는 것은 그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데리고 앉아서 삐뚤어지게 생각하고 삐뚤어지게 행하도록 할라고 하루 종일 달라 들었습니다. 또 나중에는 바로 알고 바로 행하는 일을 못하도록 강압도 했습니다. 그 강압이 뭐이냐? 할 수 없다 그라면 너는 사자 구덩이에 너는 죽여야 된다. 이런 강압을 했습니다. 그래도 나니엘은 그때에 등불을 들었습니다. 그때에 '아 하나님 앞에 기도는 죽어도 해야 되지 죽는다고 기도 안 할 것인가?' 하는 요것이 바로 안 것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기도를 못하게 꾀우고 달래고 강압을 하고 사자 구디에 집어 넣는다고 어떻게 협박을 하고 해도 '기도는 해야지' 이것이 바로 행한 것입니다. 막바로 그것이 다니엘이 당한 일은 밤중이오. 밤중에 이것을 거부하고 기도를 하는 다니엘의 행동과 그렇게 판단한 판단은 그것이 바로 등불입니다.
그러면 모든 때, 다 이와 같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기름 준비하는 것은 영감과 진리의 능력을 준비하는 것인데 그것을 알기 쉼게 말하면 바로 아는 실력. 어떻게 사이비해서 참 바로 알기 어려운 것이라도 자기가 바로 아는 바로 판단하는 지혜 지식. 또 아무리 어려워도 바로 행하는 능력. 그것이 성령의 능력이요 진리의 능력이요 그것이 성도의 실력입니다. 그러면 그 실력 준비하는 것인데 이 준비를 우리는 하는 것이 기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실력 준비를 언제 하느냐? 우리는 현실이라는 그 현실에서 산 이 실력 준비를 합니다. 다른 데서는 못합니다. 이 현실에서만 실력준비를 합니다.
바로 아는 데는 인간에게 배워야 하고 또 하나님에게 배워야 하고, 또 바로 행하는 데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아야 되고 하나님에게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인간에게 도움 받는 것 가지고는 받기는 받지마는 그것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에게 도움 받는 것만으로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
바로 아는 것을 그 바로 아는 지식을 배워서 차차 차차 하나 알고 둘 알고 셋 알고 이러니까 바로 아는 지식이 점점 장성해 갑니다. 그런데 바로 알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아는 것이 없으니까 바로 배워야 되겠습니다. 바로 배우기를 누구에게 배우는가? 제일 처음에는 사람에게 배웁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에게 배웁니다. 사람에게 배우고 하나님에게 배웁니다.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성경 기자들이 우리에게 기록해 줬기 때문에 신 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가 배우고 또 읽고 또 설교를 듣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가르침받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가르침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가르쳐 주시는 그 배경은 됐지마는서도 이것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언제 가르침을 받느냐 하면 자기가 현실을 만냈을 때에 그 때에 '아 성졍 말씀을 배워 보니까 이리 이리 성경 말씀대로만 이리 하라더라' 그렇게 성경 배운 지식이 자기에게 알리고 그 다음에는 성신의 감화가 자기에게 알립니다. 그 현실에 이걸 이렇게 알아야 되나 저렇게 알아야 되나? 이렇게 판단해야 되나 저렇게 판단해야 되나? 내가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이건 어떻게 해야 될지 어떻게 해야 바로 하겠노? 하는 그것을 자기가 현실에서 현실을 당했을 때에 분명히 성신의 감화가 진리를 통해 가지고서 '요렇게 하라'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됩니다. 다 깨닫게 됩니다. 누구든지 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요렇게 해야 요 바로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고 깨닫게 됩니다. 고럴 때에 자기가 '아 성신이 자기를 자기 양심을 통해서 감동시켜서 가르쳐 주시고 성경 말씀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요렇게 해야 바로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고 나면 그만 그대로 되는 줄 알아도 알면 원수가 둘이 있습니다. 원수가 반드시 옆에 둘이 붙어 있습니다. 원수가 둘이 붙어 있는데 어떤 원수가 붙어 가지고 있느냐? 바로 하도록 알려 주는 바로 하는 이치를 자기가 깨달았다 할지라도 바로 하는 이치대로 하지 못하도록 할라고 삐뚤어지게 아는 대로 하지 못하고 삐뚤어지게 하는 그 이치를 옆에서 자꾸 가르쳐 주면서 '이래 해야 된다. 이래 해야 네가 살림 살이도 손해 안 가고 집 구석도 안 망하고 가정 불화도 일어 나지 안하고 사업도 잘되고 친구들도 너거 좋아 하고서 이래된다.' 요렇게 자꾸 옆에서. 분명히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은 요렇게 하라고 했는데, 옆에서 사람들이 가족들이 친구들이 자꾸 들어서 '이래야 된다 이래야 된다' 자꾸 말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유혹의 마귀라 이랍니다.
유혹의 마귀. 유혹의 마귀. 그런데 그 유혹의 마귀는 고거는 이름을 가리켜서 학마라 그렇게 합니다. 학마. 따라 합시다. 학마. 학마, 배우는데에 방해하는 마귀입니다. 그게 들어서 삐뚤어지게 자꾸 가르쳐 줍니다. 삐뚤어지게 '이래야 된다 이래야 된다' 삐뚤어지게 가르쳐 줍니다. 그래도 그 말을 듣지 안하고 '아무래도 요래야 바로 되는 것이다.' 요랄 때에는 그 다음에는 강제를 가져옵니다. 강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알라 하면 '너 그라면 가정에 이혼이 생긴다 가정이 망한다, 사업이 망한다, 너는 직장에 모가지가 떨어진다. 상관이 너는 당장 쫓가 낸다. 이렇게 되면 지금 재산이 절단 난다, 네 생명이 절단 난다, 감옥에 들어간다, 사형을 받는다.' 뭐 오만 협박 다 합니다.
오만 협박 다 해. 다니엘의 사자 구디 들어 가서 들어 가서 죽는 거와 같은 그런 죽음의 협박도 옵니다. 그래 그 두 원수가 옆에 있습니다.
그러면 요 두 원수를 이겨야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을. 내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놈이 꾀울 때 '암만 네가 꾀워도 천하 인간이 다 말해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요대로 해야 되지 안 된다! 그걸 부인해서 그 말 안 듣는다' 이래 버리변 나중에 강제로 달라 들어요. 강제로 가지고 '너. 오냐. 그러면 그렇게 네가 하면은 어떤 어떤 큰 일이 날 줄을 모르느냐?' 이렇게 위협과 협박을 줍니다. '뭐 죽어도 나는 요게 옳다고 나는 단정 지었다.' 이라면 그놈이 이제 집니다. 그래 가지고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을 자기가 영접하는 것입니다.
고때에 자기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지식이 있고, 옆에 마귀가 가르쳐 준 지식이 있고, 마귀가 주는 협박이 있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고 도와 주시겠다고 우리에게 사기를 돋구어 주시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하는 그 사이에 끼여 가지고서 요래 있다가 '이래 볼까 이래 볼까' 하다가 그 때에 그만 '아이고 예수님도 좇지마는서도 이 말을 안 듣고 하면은 내가 큰 낭파 되겠다' 해서 그만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이 그 시에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버리고 요대로 하면 그것이 신랑을 버리고 간부에게 넘어 가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때에 그걸 딱 취해 버리면 주님은 낯이 벌거이 해 가지고서 배척을 당해서 큰 수치를 당하고 그만 거기에 서 배척을 당하고 그만 나서게 됩니다.
또 행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고때에 내가 바로 알았으니까 그 다음 바로 행할 것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바로 알고 그 다음에는 바로 행할라고 하니까 바로 행하는 그것을 하지 못하게 '그리 하지 말아라. 네가 이렇게 해라.' 삐뚤어지게 잘못 행하는 것을 자꾸 옆에서 가르쳐 줍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유혹, 유혹 자꾸 유혹이 옵니다. 삐뚤어지게 행하도록 자꾸 권유하는 유혹이 옵니다. 그래도 그말 듣지 안하고 내가 바로 행할라 하니까 나중에는 강제에 협박이 옵니다. 무력을 가지고 달라 듭니다. 무력을 가지고 달라듭니다. 그래도 바로 행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인고 하니 주님에게 배워서 한 지식과 지혜 실력을 하나 갖추었고 또 그것이 주님에게 능력을 받아 가지고서 하나의 실행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로 배우는 것은 현재에 주님이 '요렇게 하면 옳다' 할 때에 고때에 '예 하고' 받아 들이야 그게 주님에게 배우는게 되어지지. 그때 지내고 난 다음에 아무리 옳다 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또 그때에 어떻게 행할라 할 때에 주님이 '요렇게 행하라' 하시는 대로 나는 '요렇게 행하겠습니다' 하고서 고때 행해 버려야 그것이 주님 앞에 능력을 받는 것이지 다른 때는 소용이 없습니다. 지내가고 난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어 이러니까 우리는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바로 배워서 바로 아는 실력을 하나, 한 현실에서 하나, 두 현실 지내가면 바로 아는 지식을 둘, 열 현실 지내가면 바로 아는 것을 열 지식을 또 행하는 것도 한 현실에서 행할 때에 내 힘으로 행할 때에 내 힘을 다하면 내가 내 힘 다 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모지라는 것은 누가 보충해요? 누가 보충을 해요? 주님이 보충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지래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대속주가 책임을 지시고 그것을 보충하십니다.
이러니까 무슨 일이든지 사람들은 볼 때에 쉽다 어렵다 하지마는서도 끄트머리가 어려운 것은 속이 쉽고, 겉이 쉬운 것은 속이 어렵습니다. 속이 어려운 것. 이거 참 사람들이 그걸 말할라하면 시간이 많이 가는데 겉이 쉬우면 속이 어렵고 속이 쉬우면 겉이 어렵습니다. 겉이 어려운 것보다 겉이 쉬운 그것이 넘어지기 쉽다 말이오. 그 속에 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래서 한 현실에 자기가 주님이 바로 가르쳐 주시는 대로 그대로 '녜, 그대로 내가 긍정합니다.' '바로 가르치는 그대로 나는 알고 그대로 지식 합니다.' 하면은 그 지식 배웠소.
꼭 현실에서만 배워야 됩니다. 다를 때 성경 많이 배우고 현실에 하나님께서 요래하는게 옳다 하니까 그때는 어려움이 있으니까 그만 쉬이 해 지내고 난 다음에는 잘하고. 설교는 잘하지마는서도 현실에 주님이 요래야 된다 할때 삐죽거리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거짓부리요, 주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또 바로 안 대로 딱 행할라고 하니까 자기 힘으로써 껍디기로는 껍디기를 했으면 알맹이 못한 알맹이 그것을 하나님이 채워 주시고 또 껍데기는 알맹이는 하지만 껍데기를 못하니 껍데기 못한 것은 껍데기를 당신이 채워 주시고 이래 가지고 능력을 줘 가지고서 그걸 온전케 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 현실에서 우리는 새로운 온전한 지식 하나와 새로운 온전한 새 능력 하나를 받아서 새 지혜 지식을 주님에게 받고 새 능력을 받아 가지고 하나를 준비해서 그만침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또 그 다음 현실에도 또 갖추고 그 다음에도 또 갖추고 또 갖추고 또 갖추고 갖춥니다. 갖추니까 자꾸 실력이 쌓여 갔습나다 한 사람은 자꾸 주님에게 능력도 얻고 지혜 지식도 얻어 가지고서 한 현실에 자꾸 얻어 가지고 자꾸 이제 실력있는 자가 되어집니다. 한 사람은 그 현실에 누구 말을 듣겠느냐'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에게 속하겠느냐? 할 때에 그 때에 세상아 협박 주고 꾀우는 꾀움에 넘어 가든지 협박 주는 협박에 넘어 가든지 해서 그 때에 하나님이 가르치신 것을 살짝 배반하고 요 세상이 가르치는 것을 딱 받아 들이고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안하고 세상이 하는 대로 그대로 딱 해 버리면 그것이 주님 배척한 것입니다. 그것 주님 배척. 그러니까 열 현실에서 주님을, 열 번 배척한 자도 있고, 열 현실에서 어렵지마는 주님을 열 번 영접한 자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이렇게 많은 배척을 당해도 꾹 참으시고 이래 계시다가 마지막에는 이제 주님을 영접하느냐 안 하느냐? 주님에게 배척을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마지막 최고의 시험으로 떡 어려움을 떡 하나님이 만들어 냅니다. 그래 내면 이제까지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가르침. 천하가 가르치는 것보다도 다 부인하고. 주님 가르치는 것만 또박또박 배워서 자기 지식을 삼고 주님에게 능력만 얻어 가지고서 하나 하나 능력만 자꾸 이렇게 채워서 실력을 삼고 요렇게 한 사람은 그 지식의 실력과 행함의 실력이 있으니까 어려움이 왔지마는 그것이 문제가 없습니다.
차차 차차 거기에 서 경험하고 실험 해 가지고 실력을 얻었으니까 그 예비 시험에 공부를 잘한 학생은 실제 시험을 칠 때에 뭐 얼마나 좋고 얼마나 웃습니까 기쁩니까? 그래 시험 칠 때 보면 준비 안 하는 학생들은 마구 그때사 지금 뭐 조아 대니라고 빠짝 눈이 빠꿈하게 돼 가지고 야단을 지깁니다. 돌아 다니며 운동이나 하고 이와 같이 놀기나 잘 놀고 이라다가 시험 치는 시간이 되면 그만 푹 죽었습니다. 그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시험 치는 시간에 그저 뻐뜩 그만 뻐뜩 한 시간 시험 치는 것 십 분이면 다 써 버렸다 말이오. 십 분만에 다 해 버리고 그래 나가서 공도 제혼자 가지고 놀고 제 혼자 운동기구 가지고 뛰 다니며 놉니다. 그 실력 있는 사람은 시험 칠 때 그때 아주 기쁘고 즐거워 평안하고 세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어려움이 있을 때 그 어려움은 밤중인데 아주 밤중인데 이 밤중은 무슨 밤중이라 했지요? 무슨 밤중? 바로 알기 어려운 밤중. 또 하나는? 바로 행하기 어려운 밤중. 이 두 가지 어려움의 밤중이 왔는데 이제까지 주님에게 딱 딱 배워 가지고서 바로 알라 하니까 알지 못하게 방해하고 자꾸 이렇게 할 때에 그것을 늘 이겨 나갔으니까 항상 이겨 나갔으니까 문제 없습니다. 이러니까 밤중에는 최고로 바로 알지 못하도록 할려고 최고로 삐뚤어진 것을 가지고서 삐뚤어진 사이비한 삐뚤어진 걸 가지고서 자꾸 '이래야 된다 이래야 된다' 최고로 그것을 주장을 하고 또 삐뚤어지게 하도록 할라고서 강제를 가지고서 이렇게 위협을 하고. 그러니까 그때에 어둡게 하는 그 마귀의 세력이 강합니까 약합니까? 예? 밤중에는 어둡게 하는 세력이 강하요 약하요? 강합니다. 또 미리부터 낱낱이 그것을 이겨서 하나님께 착착 배워 가지고서 바른 지혜 지식 바른 능력을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실력이 강합니까 약합니까? 강합니다. 저 마귀 저놈도 강하지마는 이 성도도 강하다 말이요. 강했는데 자 이제까지 과거에는 이 성도가 이겨 나왔습니까? 져 나왔습니까? 계속 이겨 나왔습니다. 계속, 이겨 나왔으니까 까짓 것 문제가 없어. 척 이겨 버립니다.
이제까지 져 나온 자가 그때 이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없습니다.
이러니까, 밤중을 주는 것은 주님이 성도들에게 너무 배척을 많이 당해서 너무 배척을 많이 당해서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배척을 많이 당해서 섭섭하고 섭섭하고 분하지마는서도 참고 참고 견디고 있다가 이제 주님을 많이 배척한 자는 당신이 발로 탁 차서 배척하기 위해서 지금 밤중을 주는 것입니다. 또 어려웠지마는 어려웠지마는 주님을 영접하고 영접한자는 주님이 어려움에서 높이 들어서 당신이 그 성도를 영접해 주시기 위해서 밤 중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밤중은 무엇 때문에 옵니까? 믿지 안 하는 그 창기같은 그런 신앙을 가진 자를 어떻게 하기 위해서 옵니까? 그런 자를 배척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또 그 어려움은 뭣 때문에 옵니까? 어려워도 계속 신앙에 정조를 지킨 정절 부인과 같은 그 성도를 높이 들어서 대우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환란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두 가지 실력이라. 요 두 가지 실력이라는 것을 단단이 잡으십시오. 그러기에 쪽발로 걸어가야 되지 쪽발로 안 걸어 가면 실패합니다.
요 두 가지 실력 요 두 가지로만 또 알고 가십시오. 다른 것 복잡한 걸 말하면 그만 마귀 시험에 들어서 헛일이라. 바로 아는 것. 이 사람에게 대해서 '아 이 사람에게 대해서는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어떻게 해야 바로 하는 걸까? 어떻게 말해야 바른 말을 하는 걸까? 이 사람에게 교제를 끊는게 바로 하는 걸까? 교제를 가지는 것이 바로 하는 걸까? 이 사람하고 장사를 동업을 하는 것이 바로 하는 걸까? 동업 안 하는 것이 바로 하는 걸까?' 이러니까 바로 알고 바로, 행하면 됩니다. 이러니까 바로 아는 실력, 바로 행하는 실력. 요 두 가지 실력을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배우는 것이오.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은 그 현실을 딱 당했을 때 네가 요랄래 저 랄래? 할 때 하나님이 가르치는 대로 '아 하나님이 요렇게 하는 것이 옳다' 가르쳐 줄 때 나는 '녜 내가 그렇게 받아서 지식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단정을 짓고 확정을 지었습니다.' 하는 그것이 현실에 그 확정 지우는 것이 하나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영원한 실력이 됩니다. 또 현실에서 요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할 때 요렇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아무리 삐뚤어지게 하도록 할라고 꾀움이 오고 바로 하는 것 하지못 하도록 협박이 와도! 죽어도! 요대로 바로 합니다! 하고서 현재 현실에서 딱 바로 했으면 그것이 행함의 능력을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기름은 두 가지 실력을 준비하는 것이라. 바로 아는 실력 바로 행하는 실력 이 두 가지 실력을 마련하는 데에는 마귀가 두 마리 있다.
마귀가 둘이 있다 마귀. 마귀가 사람을 통해 있습니다. 하나는 학마 학마, 바로 배우는데에 배우지 못하게 하는 마귀 학마. 하나는 바로 행하는데 하지 못하게 하는 행마, 행마, 학마, 행마, 요 두 마귀는 딱 옆에 들어 붙었습니다. 요 붙어 있는 요것은 네가 정말로 하나님에게 옳다 인정하고 그에게 배우는 자가 네가 마귀인가? 우리 군졸 인간에게 배우는 자냐? 인간에게 배우고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이 현실에서 결정됩니다. 인간의 힘을 얻는 거와 하나님의능력을 얻는 것은 그 현실에서 결정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두 가지 실력을 기를 것.
요게는 반드시 삐뚤어진 것을 주다가 기어코 안 받으면 그 다음에는 바로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강제로 누르는 요 두 가지 우리에게는 전투가 있기 때문에, 요것을 가리켜서 데모데전서 6장 12절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얻으라' 이랬습니다. 그게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일려고 하니까 모든 일거로 할 때 나는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 그 일을 기어코 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그런고로, 두 가지 실력, 또 두 가지 마귀 또 밤중은 이 두 가지로 제일 어려운 때. 등불은 제일 두 가지로 하기가 어려운 때인데 두 가지 옳고 바르게 알고 행하는 것 요것 등불입니다. 그런데 이 밤중은 평소에 주님을 잘 섬기고 대접한 자를 주님이 높이 들기 위해서 밤중을 줬고. 평소에 주님을 배척하는 그런 자를 주님도 마지막으로 배척해 버리기 위해서 밤중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란은 잘 믿는 성도를 존영하게 하기 위해서 환란이 오는 것이고, 한란은 거짓부리로 믿는 그런 자를 낙제에 떨어뜨려서 이제 건설 구원이 없다는 것을 저와 다른 사람이 환하게 보고 벌거벗은 자라는 것을 드러 내기위해서 하나님이 환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현실에서만 하나님에게 배울 수 있고 늘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요 현실에서만 얻읍시다. 요렇게 착 착 얻어서 실력을 길러 가. 성도의 실력이 뭐입니까? 성도의 실력이 뭐인가? 천하 사람이 다 달려 들어도 이랄까 저랄까 몰라. 온 천하 사람이 다 '옳지' 요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하니까 모두 요래 요래하는데 요래도 되고 저래도 되니까 요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요래 알아도 되고 저래 알아도 된다. 그렇지마는서도 바로 아는 거는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예? 하나 뿐입니다.
그러니까 천하 사람이 바로 알기 어려운, 바로 알지 못할 때에 그 때에 바로 아는 사람이 최고의 등불을 가진 사람입니다. 천하 사람이 다 바로 행하지 못하고 죽기를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는데 그때에, 왜정 말년에도 신사 참배 안 하고 신사 참배 안 하고 돌아 다녀도 아무도 잡는 사람도 없고 돌아 다니며 자꾸 실패 안 하고 신사참배 반대하고 다녀도 아무 상관 없는 그 사람이 이제 실력 있는 사람입니다. 아 6·25때도 인민군 속에서도 강단 한 번도 비우지 안하고서 설교 말씀하고 부흥회하고 하나라도 뭐 그들이 죽인다고 해도 꼼짝 안하고 이렇게 하는 그 실력 있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에 준비해야 됩니다. 입술로 가지고 하늘나라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느니라.' 녜 이러니까 속에 능력이 있어야 되지 입술이야 다 제가 정통이고 다 잘 믿지요. 그러니까 그 실력은 현실에서 꼭 마련 해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 갑시다.
광고 합니다. 삼십분 기도 후에 저 삼 층에서 지난 주일 설교 재독이 있습니다.
또, 지금 기도록에 등록 된 사람은 사천 육백 오십 이명인데 남은 사람들 남은 가족들 전부이 등록 시키십시오. 자기 집에 한 대엿살 먹는 아이도 와 가지고서 등록을 하고 와 가지고 꼭 와가지고서 제 이름을 그래도 그게 알아. 아 대여섯살 먹는 것이 와 가지고서 알아 가지고서 알고 그걸 알아서 택하기는 택했는데 글을 잘 못 써. 이러니까 요 좀 써도 도장도 찍어 달라고, 암만 도장을 찍어야 힘이 있어야지 막 이래 가지고 찍어야. 그러니까 찍어 달라고. 요래 가지고도 꼭꼭 기도하러 옵니다. 기도하러. 공연히 힘든 나무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힘 없는 나무는 부러집니다. 기도록에 기록하지 아니한 분은 나갈 때에 일 층에서 기록할 수 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삼십 분 기도 후에 자유로 돌아 갑시다.
이제 두 가지. 마귀도 두 가지. 우리가 준비할 것 두 가지. 밤중도 두 가지 때문에, 창기같은 자는 버리기 위해서. 정절 부인 같은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 들기 위해서 두 가지! 두 가지! 두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