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만 바라보고 순종하자


선지자선교회 1981년 8월 2일 주후

 

본문 : 마 14:22-3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회개에 대해서 말씀을 하려고 했는데 또 이 말씀이 필요하겠다 여겨져서 이  말씀을 장론하게 됐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된 사건을 우리에게 구원 도리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지나간 이적이라 그렇게만 생각하면 성경에  기록해 주신 본 뜻에는 미달이 됩니다.

이 말씀을 기록해 주신 것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에 있어서 구원  이루는 그 이치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구원 받는 이치입니다. 구원의  도리인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배워서 신앙생활 해 나갈 것은 또 이대로 해 나가야 구원이  됩니다. 여기에 나타나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제자들을  보내시고 제자들과 동행하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앞서 보내시고 예수님은 따로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지 안했으나 예수님은 그 풍랑 만나는  제자들을 보시고 제자들의 생각보다 앞서 제자들 풍랑 만난 그 바다 위로  가셨습니다. 이 바다에는 우리가 이 세상을 거쳐서 주님이 말씀하신 하늘나라를  갈 때의 이 세상을 하나의 모형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배 타고 건너갈 때에는 제자들만 갔고 예수님은 동행하지 아니했으나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보다 앞서 그들에게 가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이 육안으로 보기에 같이 계시지 아니하고 또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우리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고 이렇게 말씀하시고 우리  눈에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아니하는 것으로 이렇게 보여지지마는 성경에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또 기독자들이 주의 명령대로  순종하면 믿음 생활하려고 하면 이 풍랑과 같은 이 어려움을 당하기 마련이고  신앙에서 이런 환란을 겪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자기와 함께 계시고 자기에게 대해서 자기보다 주님이 더 앞서 관심을 가지시고  구출하시는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기에서 하나의 형식을 구원 도리로 영원 전 예정하신 대로 갖추어  가지고 제자들을 통해서 이 역사를 만들어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하고 또  우리가 모르지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우리에게 대한 일에  있어서 우리보다 생각을 앞서 생각하시고 우리 구원에 대해서 역사하고 계시는  것을 또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 데에 배를 타고 건너간 일이 있었고 또 베드로가  직접 물 위로 걸어서 주님 앞으로 간 일이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주님이 명하신  바다 건너로 가는 것은 우리의 단체 구원인 이 가정교회나 이 사회교회 이 교회  구원을 모형해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간 것은 개인교회가 신앙생활 하면은 어떤 일이 닥치는  것을 여기에 또 보이신 것입니다. 이 제자들이 예수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받아  가지고 명하신 그곳으로 가려고 배를 타고 갈 때에 그들이 처음에는 풍랑이  없었고 그 배가 아주 순조롭게 항해를 했지마는 차차차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가지 못하게 되고 또 배가 가지 못하게 될수록 제자들은 그 배로 하여금 항해가  잘 되도록 하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

그 형편을 우리가 자세히 추상해 보면 처음에는 풍랑이 일지 안했다가 풍랑이  일었고 마지막에는 또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이것이 교회구원 가정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데에 일어나는 이 환란을 모형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지혜입니다.

가정교회라 하는 것은 그 가족들이 신앙생활 해 나가는 그것을 가정교회라고  하고 또 사회교회라는 것은 여러 각성받이의 각 그 가정의 사람들 족속의  사람들이 한자리 모여 가지고 예배보는 이 서부교회 같은 이런 교회들이  부민교회니 하는 이런 교회들이 다 사회에 있는 한 사회교회입니다.

그러면 가정교회나 사회교회 이 단체교회가 신앙생활 해 나갈 때에 환란이 없는  때는 어떤 때가 환란이 없는 때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배 타고  건너가라는 그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서 그 제자들이 관심을 가졌고 또 같이  계시던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가라고 하시는 예수님에게 대한 관심이 그들에게는  전부였습니다.

비록 배를 타고 가지마는 예수님에 대한 생각 예수님이 배 타고 건너가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이 생각이 두 가지에만 그들의 모든 마음이나 인격은  기울어져 배 타고 바다를 건너갔던 것입니다.

그럴때는 풍랑이 없었고 그렇게 노를 저어서 배를 건너가게 되는 그 배가 바다  위로 잘 항해해 가는 그 취미에서 그만 배 노를 젖는 거기에만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하신 그 말씀도 희미해지고 예수님에게 대한 것도 흐미해질 때에  그때에 풍랑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왜? 그 뒤에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 가지고  배에 함께 계실 때에 풍랑은 잔잔한 그것이 가정교회나 사회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저희들이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한다고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우고 새벽예배를 보고 이렇게 이  신앙생활하는 교회 생활이나 또 이 사회 가정 생활을 해 나가는 가운데에서  사람들은 주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하늘나라를 가라고 절대자가 명령하신 이  절대적인 권위성을 잊어버리기 쉽고 또 그렇게 하다 되면  생활에 분망해 가지고  예수님이 예수님과 같이 계신 이것을 예수님의 형상에 대해서 사모하는 것이  차차 흐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풍랑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물론 우리가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이런 모든 경제생활 이런 생활하는 이것이 다 신앙생활이요  이것으로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우리가 이렇게 세상에서 이런  저런 생활을 하는 것은 주님이 명령하신 요단강을 건너서 이 하늘나라 갈 그  소망과 목적을 두고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장사하는 것도 천국가는 생활이요. 또 목회하는 것도 천국  가는 생활이요. 무슨 정치를 하는 것이나 이런 사업을 하는 것이나 어떤 문화를  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나 어떤 걸 하든지 그것이 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얻도록 이 구원을 위해서 명령하신 구원을 향해서 찾아가고 있는 우리의 걸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걸음을 걷는 것이 마치 이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이 명하신 바다 건너로 건너간다 하는 거와 꼭 같은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주님의 얼굴과 이 둘만을 사모하고 그들의 마음  가운데에 가득히 차 주님이 가라 했으니 기쁘고 즐거움으로 갈 때에는 풍랑이  일어나지를 안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노를 젓고 바다를 건너가는 가운데에서  그만 노 젓는 것이 그들에게 그들의 심령 속에 가득 찼고 이 행동 속에는 노  젓는 것만 가득히 찼지 그 속에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바다를 건너가고 있다  하는 이 믿음은 그만 살아져 버리고 다만 껍데기 한 의식의 행동만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신앙 의식만 있고 우리의 이 신앙생활 속에 우리라는 이  자체의 그 심령 속에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이 자기 속에 내주하셔서 같이  계시면서 역사하시는 이것을 잊어버렸을 때에 성도에게는 반드시 환란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생활에도 많이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가정생활에도  재미가 아주 있게 모든 세상 일도 남 위에 머리가 되게 이렇게 하는 것이 재미가  있고 또 해야 됩니다. 그것이 세상 빛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만 그 일에 분망하고 거기에 자기가 빠져 그 재미에 빠져 가지고  주님과 주의 명령하시는 이 믿음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에 반드시 좋은  부부에게도 싸움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이 형통한 그 가정 생활에도 반드시  사고가 생깁니다. 아주 모든 일이 재미있게 순조로와서 있는데도 갑자기 뜻밖에  어떤 사건들이 생깁니다. 이 풍랑과 같은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그 제자들은 이렇게 풍랑이 일 때에 어릴 때부터 바다에서 살았고 또 대대로  어부의 자손들이니까 바다에 익숙합니다. 이래서 풍랑이 이니까 풍랑에 대한  조치를 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쓰면서 더 노 젓고 바람을 거슬려 무사하도록  항해하는 여기에만 자꾸 마음이 기울어지니까 주님과는 멀어지고 주님의  말씀과는 더 멀어집니다. 멀어지니까 풍랑은 점점 심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구속을 깨달아 주의 것인 것과 주님을  호주로 모시고 주님을 자기의 주로 모시고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어 제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니고 주님의 소원대로 살고 제 욕심대로 사는 게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고 제 주장대로 사는 게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으로 산다는  이 사실이 그 마음 가운데에 가득 차고 그 속에 마음의 힘이 되어있을 때에는  절대로 환란이라는 것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환란이 와봤자 헤험 잘 치는 사람이  물결 오니까 수영하면서 재미있다고 더 더불더불 더 잘 되는 것처럼 재미나 있지  아무 그들에게는 환란이 되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이 갈릴리 바다를 가는 것처럼 신앙생활로 천국을 향하여  가는데에 이 환란이 일 때에 이 환란은 반드시 저들이 분망한 가운데에서 주님  없이 옛날 예수님 만나기 전에 사공 노릇하던 거와 같은 그런 방편으로 가려고만  생각하고 주님의 명령의 절대적인 권능으로 간다는 이것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잊어버리면 환란은 점점 더 심해 오는 것입니다. 심해올수록 사람들은 과거 경험  체험에 인간 수단 방법을 가지고 오는 바람을 어떻게 하든지 이겨 보려고 하는  것처럼 환란이 일어나면은 그것을 어떻게 수습해 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래 가지고 인간 수단 방법을 쓰고 또 인간들의 교재 인간들의 활동 이제까지  경험이 세상 처세 경험이 있으니까 처세에 어떤 경험 온갖 경험을 가지고 방편을  써서 노력을 합니다. 하면 할수록 기독자에게 대한 환란은 더 심해지는 것이  이것이 요 성경에서 보인 거와 꼭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풍랑이 심해지는데 배가 많이 출렁거리는데 물이 배 속으로 들어옵니다.

뱃 속으로 들어오면 물이 배 속에 들어오는 걸 보고 거기에 대한 지식이 두  가지가 있어 물이 들어오면 반드시 이 배가 바다 속에 침몰되니 우리는 죽는다  하는 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바다물이 들어  오니까 출렁거리던 배가 그렇게 띠 벌떵거리지를 안합니다. 조금 속에 물이  실리니까 무거우니까 디벌떵거리지를 안합니다. 앗다 물이 들어오니까 좋다 물 한  박제기 더 퍼부어라 또 좀 더 퍼부어라 더 퍼부으니까 배가 점점 그 아주 나무  잎파리같이 그렇게 흩날리는 그런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원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물을 퍼내 버리지 뭣 때문에  물을 퍼붓느냐 물이 들어오면 배가 깔아 앉는데 자꾸 물을 퍼붓느냐 물이  들어오니까 배가 좀 조용하지 않느냐 하는 것처럼 이렇게 주님과 주의 말씀을  떠날 때에는 세상으로 인한 여러가지 어려움이 올 때에 그때에 어려움이 오면  세상에서 어려움 되는 그 사건들과 사람들과 또 자기가 처세하던 그 방편들과  이것들이 똘똘 뭉쳐 가지고 인간끼리 해결하라는 거기에만 주력이 되어지고  주력이 되어질수록 주님과 주의 말씀과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멀어지게 되면 이제는 그 신앙생활 하던 그 가정이 전적 믿음으로 살던 가정에게  이 세상 주의가 조금씩 들어옵니다. 믿음으로만 살던 그 교회 행정이나 교회 그  모든 기관들의 움직임이 움직임에게 이제는 세상 권세나 세상 방편이나 뭣 세상  무엇이 이것이 들어옵니다.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그놈도 세상이요. 어렵게 만들어 놓고 또 세상을 가지고  교회를 해결해 주겠다고 세상 권세를 가지고 이것이 교회 들어와 가지고 교회에  어려움을 면해 주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게 들어오면 세상주의와 세상 세력으로 교회나 가정에 어려움이 올  때에 이것을 해결을 지우려고 하면 처음에는 다소 해결이 되고 편하게 됩니다.

그거는 못 들어오게 하니까 싸움이 일어났는데 그걸 용납 하나만 용납하니까  얼마동안 가정은 평안하고 얼마동안 교회는 평안하게 됩니다.

과거에 신사참배때도 그래서 모두 다 교회들이 더러워졌고 6. 25 이후에도  교회들이 더러워진 교회들이 다 그렇게 더러워졌고 오늘도 교회로 말미암아 그  어떤 어려움이 올 때에 그 교회 세상으로 해결을 지우려고 세상 권세 이런 것을  힘입어서 그와 손잡고 이렇게 날뛰니까 그 세상 세력이 교회 들어와서 주장을  하면은 교회가 좀 안온하고 무사하게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어떤 자들은 이 세상이 교회 들어와 가지고 교회를 다소라도 주장을  하니 교회가 망해지겠다 하는 자도 있고 아 그들이 와 가지고 이 교회를 이렇게  들고 이렇게 일을 하고 감사하니까 교회가 평안하지 않느냐 하는 자들도 있어서  이 견해가 둘입니다.

그럴때에 이 제자들은 배를 그 기술적으로 저어 가지고 이 풍랑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방편을 쓸수록 주님과 진리 주의 말씀과는 멀어졌고 이러니까 풍랑은  더 일어지게 됐고 또 풍랑이 더 일어지게 될 때에 저희들이 어부 노릇했기  때문에 그 어부 노릇에 모든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그것은 아 이만하면 벌써  가서 갈릴리 바다의 물이 수십 길이라 이만한 풍랑이면 이거 헤엄치는 것 이런  것 가지고는 안된다.

저희들이 예수님 만나기 전에 가졌던 모든 지식이나 관념이나 경험 그런 것은  저희를 두려워 떨게 불행스럽게 만들었지 하나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요것도 우리가 똑똑히 알아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에게 들은 말씀 예수의 음성  외에는 그들에게는 그 모든 지식이 저희를 더 두렵게만 만들었고 떨게만  만들었고 희망없게만 만들었고 이렇지 손해만 보였지 불안하게만 만들었지  유익은 하나도 주지 못했습니다.

또 저들의 수단 방법을 쓰는 것이 더 환란을 일으킨 것뿐이었지 소용이  없었습니다. 뱃물이 들어오면 우선은 편치마는 배가 침몰되면 전체가 죽습니다.

이것으로서 이 세상에 단체 교회라는 이 가정교회나 이 사회교회나 단체교회  생활을 할 때에 꼭 요 광경이 이루어집니다. 요것을 잘 명상하면서 이런 일을  만날 때마다 이 계시를 자기가 묵상하면서 살아갈 길을 자기가 바로 찾아야  합니다.

그때에 이 제자들이 주님은 찾지 아니하고 자꾸 옛날 어부로서 배웠던 수단 방법  그것만 자꾸 지금 더 활용하고 그것만 자꾸 써먹고 있습니다.

저 졸지 말고 졸음이야 오지 뭐 벌써 열두시 지나도록까지 예배를 봤어. 또 가서  먹고 나니까 또 소화 되니까 졸아 잠은 오지마는 어짜든지 이걸 이기면은 큰  연단이 되고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거 우리 가정이 잘 되고 우리 교회가 잘  되고 개인이 잘 되는 것이 여기에 있는데 참 아주 정금보다 더 노다지를 얻는 이  시간인데 가치를 생각하면 잠이 옵니까? 잠이 안 오지요. 그 하나 하나에 요게  대한 증거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놀래 있었는데 그들은 찾지 안했지마는 주님은 그 제자들보다 앞서  제자들이 이 풍랑 만나 어려운 걸 아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입장 어떠한 처지에 있어도 주님은 내게 대한 사정을 먼저 아시고  우리에게 구원하는 그 역사를 베푸십니다. 구원하는 역사를 베푸시니까 우리는 또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그 제자들만 내비두면 이들이 아 그때는 한번  큰소리 해서 바다야 잔잔하라 만유주 대주재이신 주님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건너편으로 가라 했다 호령 쳤으면 그때 예수님의 덕택으로 바다 물결이 깜짝  놀라면서 납작 엎드려서 잠잠해졌을 것입니다.

그런 그 믿음의 능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떨기만 떨었어. 이러니까 그대로 있으면  죽을거라 주님이 구원하려고 갔습니다. 바다 위로 가서 제자들이 풍랑에서 몰살할  것을 구원하시려고 이래 척 가니까 그들이 보고 아이구 물귀신 온다 물귀신 온다.

이제는 풍랑 뿐 아니라 물귀신까지 같이 와 놨으니 우리는 꼼짝없이 우리는  죽는다 그래 가지고 이제 아주 외마디 소리를 칩니다. 아 혹성을 칩니다. 이제  죽는다고 정신없이 고함을 지릅니다. 유령이 온다 유령이 온다 물귀신 온다  물귀신 온다 이러면서 고함을 쳤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또 잘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떠나고 어겨서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환란이 올 때에 만유의 대주재이신 주님이 우리 가정 신앙을 구원하고 교회  신앙을 구원해서 이 모든 환란을 다 이것을 제거하고 평탄케 우리를 구원하려고  우리 생각보다 먼저 찾아오시는 것을 우리가 또 믿어야 합니다. 먼저 찾아오실  때에 구원하러 찾아오시는 그 주님을 이 풍랑 만난 제자들이 볼 때에는 무엇으로  보여졌습니까? 구주로 보였습니까? 저희를 죽일 물귀신으로 보였습니까? 뭘로  보였소? 이 청년. 물귀신으로 보였어? 아 구원하러 오는 주님을 물귀신으로 봐.

그거 참 엉뚱이 같네.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을 그들 눈에는 물귀신으로  보여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를 떠나 세상으로 인하여 환란이 일어날 때에 어리석은  자는 환란이 일어나니 그 환란에 관련된 세상을 거머쥐고 해결을 해 볼라 하는  그 자도 신자로서는 어리석은 자요. 환란을 일으키는 세상하고 타협을 해 가지고  세상을 가정에 교회에 인본주의 세상주의를 몰아 넣으니까 우선간 좀 당분간 좀  평안이 있는 것을 평안할 것이라고 안심하는 그것도 어리석은 자 또 그럴때에 참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구원하러 오시는 이 주님은 주님과 주의 말씀을 떠난  사람들이 볼 때에는 꼭 원수같이 온다는 것을 우리가 또 기억해야 됩니다.

원수같이 오다니 그 가정이 그 교회가 이런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이제  예수님의 사자가 되는 목사님이 갑니다. 예수님의 사자가 되는 권찰님들이  구원하려고 갑니다. 이 가정에 이런 이런 사건이 있는 이런 것은 이렇게 이렇게  돌이켜서 회개를 해야 구원이 되지 이 회개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들이 자꾸  망하려고 세상으로 기들어간다.

이래서 권찰이 가 가지고 자기네들이 지금 타협하는 그런 타협하면 안되고  양보하는 그런 양보도 하면 안 되고 하나님과 진리를 떠나서 너희가 하나님과  진리 떠난 너희 내외만 재미가 있었고 너희 가족끼리만 재미가 있었고 너희  사업만 재미가 있고 돈하고 세상하고 붙었으면 재미 있었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도 배반했기 때문에 이런 환란이 일어난 것 아니냐? 예.

이러니까 이것을 회개하고 너희들이 이제 주일 안 지키면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  안 드리던 것도 십일조 드리고 또 반사 노릇 안하던 것 반사를 하고 거짓말 수단  방법 부리던 것 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신앙생활에 모든 구비  조건을 갖추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그 믿음을 지키라 이러니까 막 나서  가지고 참 목사님 남의 말은 식은 죽 먹듯이 그렇게 쉽게 하지 마십시요. 자  목사님 말씀대로 그래 가지고 지금 이 일이 어찌 될 것입니까? 얼마나 큰 낭파가  될 겁니까? 이러면서 달라듭니다.

내가 서부교회 와 가지고 그래 달라드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어요. 아예 달라들면  저도 달라들면 나도 달라들고 뒤에 가 깨지든지 말든지 하니까 달라드는 것 못  봤는데 내가 그전에 그 마산 어데서 자는데 주남선 목사님이 그날 저와 같이  있었는데 거창읍에 어떤 집사님이 그때에 그 추럭을 한대 사 가지고 해방 직후에  추럭이라 하면 지금 비행기보다 값도 비싸고 큽니다. 그때는 일군에 추럭이 두 대  아니면 세 대 있었어. 이랬는데 추럭을 한 대 이래 사 가지고 짐을 싣고 딱  가다가 마산 와서 그날밤에 잤다 말이요. 그 이튿날이 주일이라. 집사. 내일이  주일이니까 여 잘 왔어. 차는 여 세워놓고 내일 주일을 보고 월요일날 가라고  이러니까 그 자리 있다 말하기를 '목사님 지금 내일 이것이 안 들어가면 내  신세가 가는 줄 모릅니까?' 목사님 한 달이 그때 육천원이라던가 육만원이라던가  육천원이던가 모르겠어. 그 뭐 어찌 육자라 있는데 목사님 일년 월급이 다 절단  납니다. 이렇게 큰 낭파입니다.

이 소리하는데 옆에서 들으니까 어떻게 나도 젊었을 때인데 어떻게 속에 불따구  나든지 주먹으로 가지고 그만 입을 한번 쿡 쥐박을까 이러다가 암말도 안하고 뚝  이래 참고 있으니까 그래도 안돼. 그러면 안돼. 집사 김집사 그러면 큰일나  여기에서 주일 지키고 가. 주일 거룩하게 지켜야 되지 그러면 큰일나 안돼  이러니까 하 참 목사님은 내 이 사정을 모르고 이렇게 참 나와 가지고 교인  사정을 이렇게 모르고 지금 이렇게 말하니 참 답답하고 기가 찰 일이라 아 그  구원하는 주님이 오신 건데 거기에 주님이 오신 건데 오신 저희에게 참 구원으로  온 그 구원으로 온 구원의 도리는 제가 볼 때에는 망치게 하는 말과 같이  들려졌다 그거야 이러니까 코똥도 안뀌고 그 이튿날 아침에 일찌기 나서 가지고  갑디다. 가다가 중간에 가다가 그만 다 꺼 엎어버려서 그만 디뷔져 가지고 사람은  안 죽었지마는 물건 다 버려 버렸지 뭐 차 다 버렸지 신세가 버렸다 말이오.

여러분들 이걸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를 떠나면 반드시 세상이  우리를 깔봅니다. 우리가 뭣 잘났습니까? 세상이 있는 왕도 사탄의 것이요  대통령도 사탄의 것이요 세상에 속한 것은 전부 다 마귀를 세상왕이라고 했는데  세상 임금이라고 했는데 그들에게 다 붙들려서 그의 병정이 돼 가지고 하고  있는데 마귀가 뭣 때문에 우리를 침노하지 못하고 해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 모시고 진리대로 우리가 하나님 명령대로 가니까 마귀라는 놈이 손을  데지 못하고 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진리 떠나면 우리는 별 사람입니까?  이제는 마구 마음대로 짓밟아 버립니다.

제가 거창서 집사로 있을때에 거기에 유명한 아주 집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뚱뚱하이 이런데 돈도 그 교회서 제일 많고 또 사법대서 하고 인물도 잘났고 그  지방에 장자는 혼자 다 걸머졌고 아주 잘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신앙을  지키니까 이 세상이 자꾸 그런 것들을 갖다 주면서 말하기를 아 담배를 혼자  있을때는 안 피워도 그래 좀 교제할 때에는 이렇게 그 높은 사람을 교제하는데  아 담배를 그냥 안 피워도 이래 불 댕겨 들고만 있으면 안됩니까? 그 교제가  되는 건데 자꾸 이래 싸니까 나중에 가서는 그저 불 댕겨 들었다 말이오.

또 술은 자시지도 안하지마는 아 술잔만 받아 가지고 입에 먹는 척 하고 입에  댓다가 땅에 놓으면 안됩니까? 또 이래 됐다 말이오. 나중에는 주일도 이렇게  지금 큰 문제가 일어나서 이거 참 우리가 업이 열이 꺼꾸러지나 일어서나 하는  이 큰 중대한 문제인데 이거 오늘 집사님이 안 계시면 절단이 나겠는데 이거  주일 지킨다고 이래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또 주일도 살그머니 뺀다 이거야.

그럴때에 주남선 목사님이 가 가지고 아무 집사야 너 네가 지금 이 사회에서  출세를 하고 네가 양면이 되어지고 모든 것이 형통해지고 이러니까 네가 세상이  주는 줄로 알고 있느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너 이제 요새 하는 일이 뭐고?  하나님 때문에 마귀라는 놈이 지금 살살 꼬우고 있지 만일 하나님 배반만 하면  마귀가 와 가지고 널 막 짓밟아서 아주 구렁텅이에 쳐박아서 뭐 숨도 못 쉬고  죽도록 만들거라.

뭣 때문에 담배 푸는 그런 형식이라도 하며 술 먹는 자리 않노 붉은 술 붉은 잔  마시는 자를 보지를 말라 했는데 또 어짠다고 주일을 오전 예배만 보고 또  슬그머니 오후에는 예배 안 보니까 괜찮다 싶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느냐  이러니까 눈 앞에서는 예예 해도 속으로는 참 남의 사정 모르네 목사님들은  도무지 예수 믿는 조브라운 고것만 알지 이 넓은 세계를 몰라 넓은 세계야 예수  믿는 속에 부스러기의 부스러기가 이 우주와 예수 믿는 사람 속에 부스러기라 예,  예수 믿는 참 믿는 사람은 우주와 영계가 예수 믿는 사람 속에 들어가면 속에  한쪽 구석도 안 찰 것 같지요. 우주 이까짓 것 여 들어가도 안 차 우주 그거  차지해 가지고 안돼. 영계만 차지해도 안돼. 조물주를 차지해야 되지. 믿는  사람들이 참으로 간보가 작은 줄 압니까? 이러니까 공산주의가 와도 참 아이들 말로 코똥도 안뀌지. 왔거나 말거니  그까짓거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러는데 그 말씀이 자기를 구출하러 오는 건데  벌써 자기가 담배 안 피우면 안된다 해. 담배 피웠지 술 안 먹으면 안된다 해 술  먹었지 주일 안 범하면, 범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일 범하게 됐지 이것이 자기를  지금 망치는 큰 환란인데 큰 환란인데 슬그머니 따라 가니까 괜찮거든. 이것이  바다물이 배 안에 들어오는 한 가지인 것입니다.

이러는데 목사님이 그러면 안된다 그거 다 끊어버리라 그까짓거 지위고 권세고  장자 다 집어 내던져 버리고 어짜든지 주일을 착실히 지키고 그러라고 그러니까  이것은 자기를 망치는 꼭 물귀신으로 보입니다. 꼭 물귀신으로 보입니다. 하, 이  목사님 말하는 건 날 망치는 중에 완전히 망치려고 하는 것이다 이래 보일 것  아닙니까? 물귀신으로 보이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떠나서 멸망이 자기에게 임했을 때에 자기를 구출하는 구원의  길은 자기 비판과 평가로 볼 때에는 꼭 멸망하는 걸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왜?  그거는 자기가 마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모든 것을 꺼꾸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는 것은 죽는 것이라 옳은 것은 삐뚤어진 것이라 성공은 실패라 실패는  성공이라 이래 봐 가지고 그러니까 구원하는 구원은 저희에게 물귀신같이  유령같이 보여진다 이거요.

이랬는데 한번 읍에 갔다 올라 오니까 앞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 몸둥이 두  몸둥이 될 만한 사람이 그때는 택시가 없는 때인데 전기차 뿐인데 차에 떡 탔다  이거요. 어떤 사람이 탔는고 참 부자 고 점잖한 사람이 탔는가보다 이랬는데 그  뭐 요래 가지고 있어. 요래 가지고 있는데 자 그 마음에 예감이 이상해서 이게  눈도 차마 얼굴 보기에는 미안하고 알아볼 도리가 없나 뒤에서 살짝 살짝 보니까  그 집사라. 그 집사가 타고 간다 말이오.

이 집사가 가는 것이 좀 수상한데 가만히 보니까 타고 가니까 어북 이래 하고  있어. 팔을 놀릴건데 팔을 못 놀리고 있어 차마 요래 가지고 있어. 내가 살며시  들여다 보니까 포승줄로 딱 묶어 가지고 요래 딱 뒤로 해서 요래 딱 요래 가지고  안보이게 요래 묶었지마는 속에 포승줄로 그만 수갑을 탁 채었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 머리로 가서 징역 갔는데 그 뒤에 내가 어찌 됐는지 모르겠소. 내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 마귀 요놈이 살살 꼬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는 꼬우고  꼬와 가지고 하나님 보이는 데서는 못하고 집 모퉁이만 속 돌아가 가지고 하나님  안보이는 데만 돌아가고 나면은 이놈의 새끼 이제는 보자 하고 팍 꿈어 뭉쳐  가지고 디리 묶었다 말이오. 녜 압니까? 여러분들 악령이 와서 세상이 와서 우리를 꼬울 때에 일어서야 되지 꼬와 가지고  하나님 배반하고 하나님 안 보이는 데만 척 가면 그때는 이제 복수를 합니다.

그놈이 제 마음대로 제 마음대로 참 뭐 차고 눌루고 밟고 오만 똥칠하고 오만 것  달라 해서 뭐 참 진탕이 만듭니다. 나는 그런 꼴 많이 봤습니다.

오늘도 여기에서 그런 꼴 당한 사람들이 뭐 거의 다라고 볼 건데 그러니까  주님이 하도 안타까와서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고함을 지르니까 이것들이  지금 놀래 가지고 정신없이 날뛰다가 그 총 중에 누가 하나 귀밝은 사람이 있어  가지고 듣고 아 주님이 한다 주님이란다 주의 음성이 난다 이러니까 아 주님이다  이러니까 금방 놀래서 죽을 지경이던 사람이 그만 베드로는 그까짓거 뭐 풍랑  그까짓거 뭐이냐 풍랑 그까짓거 뭐입니까? 두려움도 아무것도 없어져 버리고  얼마나 좋고 기쁘고 평안했다 말이요.

자 거기에서 구원하는 것이 지금 죽겠다고 간이 녹는 판인데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담대하면 그게 구원 아닙니까? 그렇지 않소? 주의 음성 척 듣고 나니까  그렇게 평안했고 담대했고 기뻤습니다.

기쁘니까 베드로는 지금 풍랑 때문에 죽겠다고 하던 베드로가 척 말하기를 아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십니까? 나도 내 마음대로는 갈 수 없고 물 위로 걸어오라  하면 나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걸어오라 해 보십시오. 걸어오너라 퍽 일어서  가지고 더벅더벅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녜 이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상이 나를 환란 가운데에 몰아 넣으면 환란 가운데 몰아  넣을 때에 환란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주님과 주의  말씀을 점점 더 잊어버리니까 더 심해지지 그때에 나를 구원하러 오는 참 나를  구원하는 도리는 나를 구원하는 영감의 진리는 아무리 하나님의 종들이 말을  하고 선지자가 말을 해도 자기 생각에는 꼭 유령 같이만 보이지 남의 말은 식은  죽 먹듯이 쉽게 말하지마는 관심이 없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또 좀 삐뚤어지면  망하라고 저주한다고 요렇게 패역과 망령을 부리고 꼭 유령으로만 보이지 자기를  구원하는 구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때에 안 보이면 저는 더 기절되고 녹아지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이미 그렇게  됐으면 거기에서 구출되는 방법이 뭐이냐? 방법은 주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 것이요.

그럴때에 환란 왔다고 환란이 붙들려 가지고 놀라지 말고 좀 냉정스럽게  냉각기를 두고 양심을 써서 주여 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이런 일이 났으며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여 양심을 써 가지고 하나님의 자기와의  삐뚤어진 것 진리와 자기의 삐뚤어진 것을 이것을 찾게 될 때에 그때에  삐뚤어져서 당한 그 환란 속에서 자기를 구출할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발견될 때에는 담대해집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염려가 없습니다.

똑 그러고 나면 남은 가족들이 있다가 아 이러면 어쩌려고 이럽니까? 일이 낭파  됩니다. 아 되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기쁘고 즐겁다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기쁘고 즐겁다 염려하지 말아라 믿은 자로 쏙 나섭니다. 나서니까 한 사람을  통해서 가족들이 아 평안합니다. 마귀와 세상은 다 하나님이 해결 지워서  물러가버렸습니다. 이것이 가정교회 사회교회가 당면하는 그 일부분의 해결  방편을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물에 빠지면 죽는 것처럼 가정교회나 세상 사회 교회나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은 이것은 이 죄악 세상에 빠지면 죄악 세상하고 타협을 해 가지고  무슨 성공할라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아니해야 됩니다.

너희들은 세상에 빛이라고 말했습니다. 빛은 어두움과 반대됩니다. 그 빛으로  어두움을 점령해야 되지 어두워지면 어두움이 좋아해서 어두움이 저하고  친근해질 줄 알아도 저는 점점 어두움에게 삼켜지고 말지 어두움을 점령하지는  못합니다. 어두움을 점령하는 방편은 빛이 커지면 커질수록 어두움을 많이  점령합니다.

우리 기독자는 더 밝아지고 더 깨끗해지고 더 온전해지고 더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에게만 순종하는 이것이 강해질수록  세상은 나에게 정복을 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나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와 친근해 가지고 그를 내 것 삼지  못합니다. 교회들이 세상과 세상의 권세로 더불어 타협을 해 가지고 그와 손잡고  내가 하나님과 진리를 양보해서 그의 것이 되어짐으로 세상이 내 것 되고 교회가  잘될 줄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오판입니다.

그것이 들어오면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마는 마지막에는 침몰되면 죽습니다. 가롯  유다가 열두 제자 가운데에 열한 제자는 주님과 일반 그 서민 생활에서 이렇게  접촉했지만 그 사람은 세상에 높은 자리에 출입을 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출입을  하니까 제자들 가운데서도 높이 보고 이렇게 우러러 보고 또 자기도 우쭐해지고  이랬지마는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격과 같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권세를  가까이 하니까 그 권세도 권세라 하나님의 권세나 그 권세나 아롱아롱하게  쓰다가 나중에 그 권세를 하나님의 권세 대용품으로 이렇게 삼는 사람 점점 되어  가지고 이제 열두 제자 가운데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권세하고 세상 권세를  즐겨서 많이 쓰는 그 세상 부자인 것입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 그 결과는 제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지 안하고 견딜 수 없는 그 손골목으로 몰려 가지고  주님을 팔게 된 것입니다.

요것도 알기 어려운 교회가 이 세상에서 처세하기에 어려운 것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오늘 교회들이 정치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 신학교 질을 향상시키느니  뭐이니 말을 하면서 앞잡이 돼 가지고 전부 교역자 양성하는 그 신학교라고 하면  이 신학교의 종자라고 할 참 교회 교역자의 종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종자의 질이 좋게 하는 것이야 참 좋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신학생 질을  높이는 것이 하나님으로 부요하게 하고 진리로 부요하게 하고 영감으로 부요하게  하고 양심으로 부요하게 하고 진실로 거룩으로 부요하게 하려고는 하지 아니하고  인간 대갈배기에서 나온 이것만 주 가지고 이제 부요하게 하려고 성경이야  읽든지 말든지 하나님의 지식 인간 지식으로 이것을 질을 삼아 가지고 높이려고  하니까 네가 성경 몰라도 좋다 여러 각국말 하면 어학 하면 된다, 영감 없어도  사회 교제 잘 하면 된다, 너 진리 몰라도 웅변 좋으면 된다 하나님의 권위 없어도  수단 방법 있으면 된다 쉬운 말이지마는 지금은 말해도 되지마는 앞으로 이 말  하면 이것만 해도 죽임 받습니다.

이들이 이래도 무서워한 것은 바다에 빠지면 죽기 때문에 그들은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세상에 빠지면 죽는다 기독 가정이 세상에 빠지면 죽는다.

노아의 배는 물 없으면 가치 없는 것이지마는 물 속에 빠지면 그는 멸망 받는  것인데 물과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가졌지마는 물 위에 떠서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구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떨어지면 가치없는 것이요 필요없는 것입니다. 가정교회라는 것이  세상을 떠나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 있어야 가정 교회나  사회 교회가 가치의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고 성공을 하는 것이지마는 물 속에  빠져 들어가면 망하는 것처럼 세상 속에 빠져 들어가면 망합니다. 세상에 떠 있는  것이 세상과 살지마는 세상과 함께 하나님을 떠난 생활에 빠지지 안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생활에 빠지지 안하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앞세우는 생활에  빠지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 성경보다도 인간의 모든 생각 인간의 세운 이것을  앞세우는 여기에 빠지지 안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배반하는 그  세상에 빠지지 안하고 이 세상에 접하여 살면서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 생활 죄 짓지 않는 생활 의로운 생활 요 생활을 하면서 세상과 관련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이것이 사회 교회 가정 교회가 세상에서 세상이 얻지 못한  탁월한 구출을 받는 유일한 방편인 것입니다.

이러다가 베드로가 나도 물 위로 걸어가겠습니다. 나를 오라고 하십시요. 오라  하니까 베드로가 그만 바다 물 위에 떡 내려서 가지고 덤벙 덤벙 육지같이  바다물 위로 걸어갑니다. 아, 그래 걸어가는 것이 처음에도 걸어갔는데 첫자국도  걸어갔는데 두 자국은 익숙하이 더 잘 걸어가지 아 셋째 자국은 더 잘 걸어가지  얼마든지 잘 걸어갈 수가 있는데 바람을 보고 무서워함으로 물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예. 이것이 개인 신앙생활에 해당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으로 이 세상을  살 때에 바다를 바다 위로 걸어간다. 세상을 발아래 두고 세상에 빠지지 안하고  세상에 떠서 세상 위에서 걸어간다 하는 그 세상 위에서 걸어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천명 만명이 다 죄를 지어도 저는 죄 안 짓고 옆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인간 주장대로 나가도 이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순종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살아도 이 사람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나니 이것이 베드로가  바다 물 위로 걸어간 것이나 이 사람이 세상을 밟고 세상 위로 걸어가는 것이나  꼭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세상 속에 빠지지 안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나님과 동행해서 죄 짓지 않는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 위에 떠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을 발아래 두고 세상을 밟고 걸어가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초자연의  생활입니다. 초자연인의 생활.

이것이 우리에게는 가능한 것인데 이게 신앙생활인데 이렇게 신앙생활 하다가  직장에 처음에 들어갈 때에는 이래 하다가 밑에 말단 되어있을 때에는  하더니마는 계장이 되면 더 잘할 건데 그만 못합니다. 계장될 때에는 하더니마는  과장이 되니까 그만 못합니다. 아 과장 될 때에는 하더니마는 시장이 되든지 무슨  뭐 장관이 되든지 하면은 못합니다. 그거 될 때에는 어북 하더니마는 대통령이  되면 못합니다. 왜 못하는가요? 여기에서 밑에서 주위 환경에 주위 환경을 세상에  침몰되지 안하고 거기에서 떠서 탁월하게 신앙생활을 지키는 그거나 계장 자리  올라가서 지키는 그거나 과장 자리에 올라가서 지키는 그거나 어떤 높은 자리에  가서 지키는 그거나 꼭 같은 것이지마는, 같은 것이지마는 사람들이 왜 올라가면  못하게 되는가? 이유 하나는 그 지위와 직장이 자기 것이 아닌 자기 분수의 넘은 남의 것을  취했습니다. 아 제 것 취한 것이야 아 제 것이야 아무데 가도 다 제 것 있는  것이니까 염려할 게 뭐 있습니까? 학교에 일등 교사가 되는 사람이야 교사 실력  가지고 일등 교사 실력 가지고 교사 노릇 하는데 여기에서 안하면 저기서 하지  저 위에 올라가지 이렇지마는 자기 실력보다도 위에 것을 취할 때에는 그만  사람이 비겁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옥 아닌 감옥입니다.

자기 실력보다도 낮은 위치에는 자유합니다. 염려가 없소. 말라 하면 말지 내  실력 가지고 그만한 일 못 차지하겠나 이런데 자기가 걸어가고 있는 자기 위치를  생각하고 보니 바람이 겁이 나. 야 너 그러면 사장이 어떻게 말한다 전주가  어떻게 된다 그러면 너희 남편이 어떻게 한다 너희 마누라 바가지를 긁는다 너희  사업 관계가 어찌 된다 인간이 사업이 사건이 위협을 주니까 아 걸어오라 하는  이가 만유의 대주재이신 주권자이신 공간계와 시간계와 활동계와 생사계를  주권하고 계시는 이 주님이 걸어오라 했는데 물결 그 까짓거 무슨 힘있소 무슨  힘있소? 자기의 구주이신 이 하나님과 진리를 그 가치와 교제를 바라보고 그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아나 생각하거나 말거나 나는 내 신앙 지키는데 뭐 신앙의  자유인데 뭐 신앙 뭐 못 지킬 게 뭐 있나 무서워하지 안하고 더벅더벅 걸어가면  주님 앞에 가기까지 그 물결은 바다에 베드로의 발에 다 밟히게 되는 것인데  물결 보고 두려워하니까 빠져서 물은 제 위에 올라오고 저는 물 속에 들어갑니다.

꼭 요렇습니다. 이것을 쥐고 자기 현실에서 요렇게 살라고 할 때에 힘 쓰여지고  자기의 다를 기울여야 되고 기울일 때에 하나님은 이것을 받아 가지고 재개조를  합니다. 성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의 구원은 아예 두 가지 죽음 어디서든지 나는 죽는데 주님이  살려 놓으니 괜찮고 나는 죽음을 각오했는데 주님이 죽지 말라 하니까 안 죽게  되고 안 죽어 살았으니까 또 나는 죽는다 나는 날마다 죽는 단언코 말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음을, 고린도전서 15장에 바울이 "단언코 말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뭐 자살 행위입니까? 아니요. 이것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강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에서 우리가 세상에서 교회 생활할 때에 개인 교회 생활하는  것이나 단체교회 생활 할 때에 요게 기록된 요것을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로 믿어야 합니다. 요걸 믿고 굳게 잡고 요대로 해 나가야 됩니다. 해 나갈  때에 오는 거는 뭐이냐? 너 가면 죽는다 아 나는 죽음으로 살아나는 요 비결을  가지겠다 세상이 죽이면 나는 살리는 것이다. 세상이 뺏들면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모르는 이상한 비밀이 내게 있다. 요것이 십자가요 십자가의 도  요것을 깨닫고 사는 자는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 진리에서 벗어나면 다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길이 좁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되는 것 아니요. 길은 한 길 뿐입니다. 그 권에는 해결권은 한 길 뿐이요. 점과 점  사이에 가까운 것은 한 길 뿐이지 두 줄 있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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