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9 16:15
주님과 말씀 사모
본문 : 마가복음 10장 21절∼22절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라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세상에는 여러 교파들이 있습니다. 이 교파에는 이 장점이 있고 또 이 단점이 있고 또 저 교파에는 저 장점이 있고 저 단점이 있어서 교파마다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단점을 우리는, 남의 장단점으로써 자기 장단점을 발견하라는 것이 성경이고, 또 장단점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에게 있는 장점은 절제해서 그것을 좀 차차 일반화되도록 노력을 하고, 또 자기의 단점은 그것을 길러서 보강하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야합니다.
이 세상에 과학이라는 것도 치우친 데는 좋은 성과가 나지 아시하고 다 허비와 모두 허사가 많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의 신덕을 말을 하면서 절제를 말했습니다. 절제라 말은 모든 것을 조절해서 기형적이 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이 다 체계적으로 그렇게 되어지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체계적이라 말은. 뭐 다른 더 많은 체계가 있겠지만. 우리 사람의 몸도 여러 지체이지만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고 별별 그 지체가 있는데. 그 지체는 생기기도 다 같이 생기지 안하고 또 하는 직책도 각각 다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전 교회가 체계적으로 단일 교회가 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또 자기 가정 교회나 개인 교회도 다 체계적으로 되어 있어야합니다.
잘못하면 사람은 단점은 무시해서 저버리고 장점으로만 주력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속에 원죄가 들어서 작용하는 원죄 작용의 결과입니다.
(안 들려? 안들린대요? 안들립니까? 와 안 들리노? 여기 종 치는 것이 스피커로 나가지요. 스피커로 나가지 않습니까? 스피커로 나가면 거기 가서 어떻게 끝이 울리는지 몰라도 여기 종 치는 것 종소리 들으면 힘 다 빠져 버려 그거 누가 조절하고 있어 그거? 응? 종 치는 그 종소리 들으면 힘 다 빠져. 띵 하다가 띵, 띵, 띵, 띵, 그라고 말고. 그 누가 그렇게 곡조를 짤라 맞추어? 왜 그래요? ○조사님이 해요? 본약 테이프가 그리 되어 가지고 있어? 그러면 고쳐 버려.
그거 새로. 먼저 그때 녹음해 놓은 것 안 그런데 왜 그래? 응? 치고 있어? 녹음을 하면 변동이 없는데 녹음을 먼저 해 놨는데 녹음한 테이프는 어쨌어요, 그걸로 안하고? 나는 그 치니까 만날 변해지지. 그렇츰 야만인이야? 먼저 녹음을 몇 번이나 해 가지고서 재차를 해서 녹음했으니까 녹음한 테이프 그거만 한 장 보관해 놓으면 그대로만 엠프에 걸면 될 것 아닙니까? 그 테이프 그거 누가 가지고 갔어요? 여기 대구 기도원 누가 보관했습니까? 저 작년인가 재 작년인가 해 놓은 테이프? 누가 말라 해 말라기를? 테이프로 하라 했지. 정신 빠진 소리.
되나 안되나 백 목사나 핑계되면 뭐 다 되는 줄 아는 거라. 내가 테이프로 하라고 그래 가지고, 자꾸 사람이 때리니까 안돼서 내가 세 차례인가 네 차례인가 해 가지고서 '이제 됐다 요걸로 해라.' 그렇게 까지 했는데. 남의 말 듣지 말아요. 내가 말하는 것 아니면 듣지 말아. 또 내가 하는 말도 꺼꾸로 들리게 써. 테이프로 하라 했는데 하지 말라 붙여 놓으면 하지 말라 그 말이오.
그걸 애써서 그때 만들어 쌌는데. 그래 놓고 뭐 마이크에 넣어 가지고 한 것보다, 저 밖에 여기 굴다리 밖에 종소리가 들려지는지? 뭐 대구 집회가 이번에 보니까 이 주최측에서는 아무 일하는 사람이 없는데 고 몇 사람이 들어서 좀 골탕을 쥐 먹기는 쥐 먹었어. 여기에 본 지방에서는 몇 사람이 애를 썼는데 각 지방의 교역자들은 통통 자고 있고 힘 하나도 안쓰고. 교회가 앞으로 자꾸 내려가요. 하나도 기울이지 안해. 전부 게을 했어. 게을한 종들이라. '이 게을한 종아. 나를 떠나가라.' 물리침 받을런지 몰라. 앞으로 이 진영 교회는 그 모양으로 내려가면 떨어져 내려갑니다. 이 설교는 암만 해야 여러분들 귀에는 안 들려.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이는 자에게, 참 죽든지 살든지 구원만을 바로 이루어 가기를 원하는 자에게 들려지는 그런 설교지. 게을하게 테이프나 갖다 놓고 녹음기나 갖다 놓고 해 가지고 그거 몇 가지 익혀 가지고서 앵무새 모양으로 전 하는 것 가지고 밥 먹고 놀고 쉬고 그래 하는 그런 게을한 불충의 종에게는 필요가 없어. 나는 '그 종이 그렇게 해도 저게 들리지면 이거 설교도 조그만하게 해도 저 뒤에 너무 귀가 울리는가 보다' 이랬는데 저 뒤에 안 들린다 하는 것 보니까 그 모든게 다 부조리네.) 어느 시대나 세계 교회나 개인이나 가정이나 모든 것을 보면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단점은 다른 사람들은 보기를 좋아하는데 자기는 단점 보이기를 싫어합니다. 이래서, 무대에 나가는 사람들이 전부 자기 장기 자랑만 하는 것처럼 이렇게 이 세상은 모두 다 자기 장점 자랑만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러니까, 그것이 뭉쳐서 하나가 되는 것같이 보여지지만 개인의 구원에 대해서는 다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장점은 좀 멈추고 또 단점은 좀 기르고 이렇게 해 가지고서 장단점이 차차 맞아서, 기형적으로 그렇게 계란 모양으로 기다란하게 그리 되지 말고 동글동글하게 공 모양으로 그렇게 동글 동글한 그런 구원을 이루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진영은 감정을 중요시 하고 아주 중하게 여기고. 어떤 또 진영은 논리를 중요시 하고. 또 어떤 진영은 행하는 것을 중요시 하고, 어떤 진영은 간판을 중요시 하고 하는데, 그것이 다 필요하기는 다 필요합니다. 필요하나 그런 것을 잘 조절해 가지고서 그것이 원만하게 둥글둥글하게 돼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의 단점이 장점을 따라서 가는 그런 영향도 있지만 또 장점이 단점을 따라서 심판을 받는 그런 영향은 많습니다. 섬판은 장점이 단점 따라서 심판받는 것입니다. 자라갈 때에는 혹 단점이 장점을 따라서 얼마 좀 돕는 자라가는데 도움을 입는 것도 있지만 잘못하면 그만 장점만 위주로 하고 단점은 무시해서 그것을 어디 쳐박아 버리고 보기도 싫고 자기도 돌보지 안하고 이래 버리니까 아주 그 면 그만 병신이 되기 쉽습니다.
요새 보면 불파라 하는 그런 진영들이 있습니다. 불파라, 불파라 그렇게 불파가 있고, 또 눈감고 이래 명상해 가지고서 지시 받는 지시파라 그렇게 하는 지시파도 있고, 또 방언파 하는 방언파는, 불파와 방언파 그 한 형제간인데 또 지시파 이 지시파는 단식하는 금식하는 그 금식파와 또 가깝습니다. 이런데.
금식도 좋은 것이고, 또 하나님의 지시도 없는 것은 아니고 불도 없는 것은 아니고, 또 이런 기적도 없는 것은 아니고 다 좋은 것입니다.
방언이라는 그것도 불파에 있는 것인데 그것도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의 그 심령이 가라앉아 가지고서 있는 그 심령을 좀 요동시키는데 있어서는 그것이 사람들의 주관 행위로서 목표를 주기를 '네가 이런 이런 그런 형태의 방언이 되기 전에는 네가 믿음이 없는 것이고 성신의 은혜를 못 받은 것이니까 거기까지 되도록 노력하라' 해서 그것이 되도록 노력하려고 애를 쓰는 가운데에서 그 심령이 좀 물씬물씬해지고 동해지는 일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뒷처리가 문제입니다. 뒤에 잘못하면 그것이 순전히 진리를 떠나서 주관 행위로 돌아가기 쉽습니다.
또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는 이 진리, 교리 신조. 교리 신조라는 것은 다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고 공통성 있게 된 그런 것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성경 말씀과 교리와 신조 이것을 주장하고 위주로 하는 사람들은 좋기는 좋은데 감정이 죽어서 그만, 과거에 그런 노래 가 있었습니다. '말라진 교리만 붙들고 있고 생명된 신앙은 내버렸다.' 그렇게 하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부른 노래인데.
이번에 ○○○ 목사님이 오늘 찬송을 하는데 아주 어깨가 우쭐우쭐합니다.
여러분들 보니까 참 아주 좀 어깨가 우쭐우쭐 하고서, 네, 좋습니다. 그러나 얼마 그리 치우쳐 가지 안하면 나중에 가서 잘못하면 참 외식되기 쉽고 순전히 유흥의 도가 되기 쉽습니다. 유흥의 도. 그래 가지고서 저 사람이 춤추고 이렇게 하는데, 노라리하는 데는 갈 수 없고 이러니까 한 번 모아 가지고서 흥풀이, 심령 풀이를 한 번 하고 나면 시원하시까 이제 또 가서 살림 알뜰히 살고, 또 마음에 답답하면 한 번 심령풀이 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렇기 쉬운데 그것도 다 이단들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야가 불 가운데에서도 지진 가운데에서도 폭풍 가운데에서도 여호와를 만나지 못했고 세미한 음성 가운데에서 만났다는 것이 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런 것이다, 그것이 본체가 아니고, 실상이 아니고, 그런 것이 다 실상을 찾아가기 위한 그런 방편들이기 때문에 방편으로 쓰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걸 방편으로 쓰지 안하고 그것이 실상이 되어진다면 그거는 외식이요 껍데기요 거기에는 아무런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승리하고 또 면류관 얻는 것은, 열 처녀 비유에도 보면 밤중에 그때에 신랑이 왔습니다. 그거는 비유이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의 전체에 대해서 주님 만나는 일 또 승리를 보는 일 그런 것을 다 가리켜서 말씀한 비유인데, 그런 것은 다 밤중이라. 모두 다, 참 사람이 견디기가 어려운, 피곤하고, 또 권태나고, 괴롭고, 어렵고, 참 답답하고 하는 그런 모든 어려운 가운데에 그때에 다 승리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특별한 장소에서, 환경이 정숙한 그 정숙한 환경에 거기에서 은혜를 받은 그 은혜가 언제 써 먹느냐 하면, 은혜 받기에 정숙해서 아주 고요하고 한적해서 은혜 받기에 좋은 그 자리에서 은혜 받은 은혜를 써 먹어서 결실을 하는 데에는 아주 그 은혜를 나타내고 은혜가 자기에게 와서 역사하기에 아주 정 어려운 그런 세상적인 그 강압 속에서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환난이 오든지 승리하는 그런 기독자의 승리 역사할 때에 그때 무슨 예수 믿으라고 고함을 지르는 큰 소리가 나옵니까? 또 그때에 무슨 성도들이 여러 수천 수만 명으로 모이는 그런 무슨 단체가 있습니까? 그때 무슨 배경의 무슨 풍경들이 좋은 풍경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그때에는 다 참 적적하고 고독하고 모두가 다 쓸쓸하고 참 찬바람 부는 거기에서 다 승리를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서 은혜를 받든지 그 받은 은혜를 자기는 그 미래를 두고 현실에서 고독의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고독 속에도 그 말씀을 새김질해 보고, 또 여러 가지 압력 속에서도 또 새김질을 해 보고, 또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말씀을 새김질을 해 보고 이렇게 연습을 해서, 대적들이 표범 같고 곰발 같고 사자 같은 그런 맹수성을 가지고, 아주 불미와 같은, 불미 속 불속 같은 그런 흑독성을 가지는 그럴 때에 우리가 가서 승패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때도 좀 연상도 하고 명상도 하는 것을 많이 연습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는 기분 좋고 흥분 좋은 그런 것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찬송도 이렇게 아주 기분 좋고 흥분 있게 하는데 이거는 아주 입문 중의 입문입니다. 아주. 아주 초보의 입문이오. 거기에서 얻은 힘 가지고, 언제든지 그런 장소에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신앙생활 하리라고 생각했다가는 판판이 다 실패되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집회에서 무슨 강사의 설교가, 설교하는 그 설교를 듣고서 거기에서 어떤 감동이 됐든지 어떻게 됐든지 했으면 그것을 가지고 잘 보존하려고 그렇게 애쓰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은 다 내어 놓고 다만 고 진리 말씀만 가지고 자기가 갑니다. 진리 말씀을 가지고, 분주한 데에서도 그 말씀을 자기가 고요히 명상을 하든지 차차 능숙하게 되면 눈을 뜨고 생각하든지 그 진리의 말씀을 생각할 때에 그 진리 말씀을 생각하게 하시는 성령의 감동 역사가 진리 말씀을 생각하게 해서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자기는 한적을 만들 수가 있고, 또 외로운 그런 가운데에서도 아주 평안하고 그렇게 참 하나님의 그 사랑의 품속에 있을 수가 있고, 아주 어떤 무서운 기압 속에, 또 어떤 난제를 만났을 때에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해서 그 명상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 현실을 이기면 됐습니다.
또 이기면 또 그 다음에 또 해서 이기고 이기고 해서 자기가 성경을 읽고 기억한 말씀이나 듣고 사람에게 배워서 기억한 말씀이나 그 말씀과 말씀 안에 있는 영감, 또 자기가 이미 받아 가지고 있는 주님의 그 대속의 공로, 주님의 공로와 말씀과 또 영감 이 셋을 어디서든지 자기 현실에,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만나게 되는데 현실 안에서 이 셋을 사모하고 이 셋을 사모하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사모만 하면 그것이 문을 여는 것이요. 또 거기에 거리낀 것을 정리하는 것이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되면 이 세 가지 능력이 와서 그 현실을 옳고 바르게 잘 해결해서, 참 그 현실에는 하나님도 계시고 그 현실에는 마귀도 관련되어 있고 또 이 사람도 판련되어 있고 온 세상들이 관련되어 있는데 관련되어 있는 거기에서 이 셋을 자기가 영접해서 이 셋의 증거하는 그 증거를 받아 그 힘으로 인해서 그 현실을 해결 지어서 하는 그것이 우리가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현실마다 그냥 지내 보내지 말고 현실에 이 셋을 새김질하고 사모해 가지고서 이 셋에게서 나오는 힘 그 힘을 가지고서 그 현실에 관련된 모든 것에게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 올바른 관계. 마귀에게도 올바른 관계를 맺고 죄에 대해서도 올바른 관제를 맺고, 사람에게 대해서도 올바른 관계를 맺고, 모든 사물에 대해서도 올바른 관계를 맺는 요 생활로 현실을 통과하게 하는 이런 것을 지극히 작은데서부터 연습을 해 가지고서 앞으로는 온 나라가 온 세계가, 온 전 교계가 다 달라들어도 요 방편 가지고서 거기에서 나오는 힘을 가지고 모든 대외에 있는 것을 때릴 것은 때리고 안을 것은 안고 당길 걸 당기고 물리칠 것을 물리치고 끊을 것은 끊고 맺을 것은 맺고 모든 올바른 관계를 맺는 그 일을 다 숙달해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작은 현실이 어디 있을까만, 작은 현실이라 말은 평범한 현실이, 평소에 있는 평소적인 그런 평소의 현실이 다 작은 현실이겠습니다.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명상하는 그 말씀 속에 예수님의 피공로가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그 말씀이 우리에게 먼저 와서, 피공로로 말미암아 그 말씀이 우리에게 왔지만 이제는 말씀 안에 예수님의 피공로도 있고 또 성령의 감화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말씀을 새김질하면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 환하게 밝아지고 대속과 나와의 어떻게 관계가 맺어져 있는 그 관계를 자기가 새롭게 깨닫게 되고 또 그럴 때에 성령의 감동도 그 일을 보조해서 잘 돕게 해 주고 또 진리도 잘 돕게 이렇게 해 줍니다. 그러니까, 성령과 진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이렇게 증거해서 이렇게 잘 우리에게 보호해서 길러주고, 예수님의 대속은 또 성령과 진리를 우리에게 소개해 가지고서 이렇게 연결을 바로 가지도록 그런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좀 한숙한, 좀 고요한 정숙한 그런 시기를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목회자들이 다 그것을 하고 싶어 원하지만 차차 차차 자기가 커지고 해 놓은 일이 많고 이라면 자기가 정숙한 그런 고요한 시간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어서 이 일에 분주하고 저 일에 분주해 가지고서 이렇게 날뛰다 보면 껍데기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흥사 끝이 좋은 일이 없습니다.
부흥사 끝이 결과가 좋은 일이 없고 부흥사 끝에는 반드시 패전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좀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했으면 자기가 좀 새김질을 해서 마음 가운데에 고요히 묵상하고 명상하는 일이 있어야합니다. 지난번에 공부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그 사람에게 모든 일이 형통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새김질해서 그 말씀을 새김질함으로. 그 말씀을 묵상함으로 그 말씀을 명상함으로 인해서, 그 말씀을 명상함으로 인해서 그 말씀이, 차차 더 깨달아지고 더 느껴지고 심각해지고 또 말씀과 자기와의 관계가 더 긴밀히 견고히 맺어지고 또 거기에서 말씀으로 인한 소원이, 말씀의 소원이 자기 소원이 되어서 소원이 차차 새로워지고 강해지고 거기에 대해서 말씀과 자기와 일치되는 그 역사를 하려고 할 때에 담력이 생겨지고 거기에서 생기가 생겨지고 하는 그것이요 말세에 꼭 올바른 성신의 감동입니다. 올바른 성신의 감동이오.
그래 성신의 감동이 뜨겁다 또 뭐 이렇다 저렇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심령이 가라 앉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심령을 한번 좀 철렁거려야 되겠다 하는 것이지 암만 출렁거려 봤자 그 안에는 생명은 없습니다. 알겠소? 암만 출렁거려 봤자 생명은 없습니다. 마구 뛰고 굴리고 땀이 버쩍 나고 아무리 떠들어 봤자 그 안에는 생명은 없습니다. 또 앞으로 승리의 생활을 이루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미한 음성에서 여호와를 만났다고 그렇게 계시한 거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요히 자기가 묵상하고 또 묵상할 때에 그 말씀이 내기에 더 환하게 밝아지고 또 새로워지고 그 말씀이 차차 그 범위가 넓어지고 그 말씀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해지고 또 그 말씀과 자기와 동행해서 일치되고져 하는 소원이 생겨지고 또 그를 그렇게 단행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자기 속에서 나오고 하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입니다.
그 성신의 감화는 고만 나왔다가 한참 떠들고 나면 간 곳이 없습니다. 날아가 버리고 없어. 아가서에 보면 그 사랑하는 자를 표현하기를 '노루와 사슴과 같다' 이랬어. '노루와 사슴과 같다' 노루 사슴은 무슨 소리만 한 마디 들으면 껑충 뛰어 가지고서 그만 달음질 쳐 버리면 어디 가 있는지 모룹니다.
이러기 때문에, 당신에게 조그만치라도 거리낌이 뭐 있으면 그만 당신과 우리와는 그 거리가 심히 멀리 되는 그것을 아가서에 가르쳐서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 목사님이, 나는 그 사람을 만나지를 못했는데 책 써 놓은 것을 좀 보니까 그 분이 그 면을 발견을 해서 했읍디다. 그라고 또 ○○○ 목사님이라고 순교했습니다. 삼각산에 그 기도원을 경영하다가 순교했는데, 그 목사님이 그 신령한 데 대해서 발견한 그런 것이 나타나 있고, 아주 위대한 교리 학자들도 주님의 신령한 영면에 대해서는 깜깜하게 어두운 그런 학자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성령의 은사가 곧 진리 은사요 진리 은사가 성령의 은사인데, 이 서로 거리가 멀어 가지고 모순되어서 어떤 사람 쓴 교리와 신조로 치우쳐 있고 어떤 사람들은 영감 역사에 치우쳐 있고 이래 가지고서 이 모순의 폐단을 일으키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이 말씀을 자기가 어쨌든지 새김질을 해야 됩니다. 새김질을 해 가지고서,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옥토에 뿌린 씨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옥토에 뿌린 씨는 어떤 뿌린 씨인가? 그 밑에 - 이 비유기 때문에 그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서 그 실상을 찾게 하는 그런 비유지 비유라는 것은 언제든지 실상보다는 더 희미한 것이요 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유라 하는 것은 그 실상에 비슷한 것이지, 조금 다른 것은 비슷한 것이지. 그 씨 뿌리는 비유에 옥토에 뿌린 씨는 길바닥의 해를 보지 안한 것이 옥토에 뿌린 씨요, 또 돌짝밭의 돌의 해를 보지 않는 것이 옥토에 뿌린 씨요, 덤불의 해를 보지 않는 것이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이러니까, 옥토에 뿌린 씨는 그 씨가 옥토를 먹을라고 할 때에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옥토는 심기워진 그 씨가 독차지 했소. 심기운 그 씨가 독차지 했어. 독차지 했어. 돌밭은 돌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씨가 쫓겨나 버렸고, 또 길바닥은 딴딴한 것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씨가 거기에서 쫓겨나 버렸고, 또 덤불 밑에 있는 그 씨는 그 덤불이 그 땅을 다 차지했기 때문에 이제 그 씨는 또 거기에서 다 패전하고 나와 버렸옵니다. 아무것도 결실이 없었습니다.
이런데, 옥토는 자 덤불의 방해도 없지, 돌밭의 방해도 없지. 또 길바닥의 단단한 방해도 없지, 그 세 가지만이 아니라 모든게 없다 그 말이오.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도를 가리켜서 씨라고 비유했고 또 그 밭은 우리의 심령을 말한 것입니다. 넓은 범위로 말하면 자기 전체지만 우선 하나 좁은 범위에서 넓게 새김질하지 안하고 좁은 범위에 말하면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을 자기가 받은 바의 도, 성경을 읽어서 자기가 들은 그 성경 말씀이든지. 읽어서 자기가 성경 말씀을 들었든지 또 자기가 사람에게 들었든지 뭐 눈으로 보고 읽어서 알았든지 어쨌든지 자기가 접촉한 그 하나님 말씀, 자기가 접한 하나님의 그 말씀 말이오. 접한 말씀은 사람을 통해서 접할 수도 있고 또 눈으로 봐서 접할 수도 있고 귀로 다른 사람에게 들어서 접할 수도 있습니다. 어짜든지 자기가 접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서 씨라고 비유한 것입니다.
비유했는데, 그 들은 바의 말씀을 이 딴딴한 길바닥에, 사람들이 밤아서, 길바닥의 단단한 것이 밟아 버려서 그 해를 받아서 그 씨가, 씨는 하나님의 도인데, 하나님의 이 구원 도리인데, 이 구원 도리가 많은 사람들이 밟은, 많은 사람들의 지나간 그것으로 인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이 거기에 심기워지지를 안해서 헛일했습니다.
또 돌밭에는 심기워지기는 심기워졌지만 돌이 방해를 해서 그 말씀이 결실을 못 했습니다. 또 덤불 밑에 뿌려진 것은 덤불이 방해를 해서 결실을 못 했습니다.
다 헛일이오. 이 말은 건설 구원에 관한 말씀인데 건설구원을 다 실패했다 그 말이오. 건설구원을 다 실패했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나 그 말씀을 세상 수많은 인간 생애, 인간의 걸음, 다시 말하면 세상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말로 말하면 세상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화를 하나님의 말씀이 이용해서 먹으면 참 세상은 이 하나님의 도의 밥인데. 이 세상 문화를 척척 들여 가지고 꿀떡 떠 넘겨 삼키면, 온 세상을 다 넘겨 삼키면 살이 뚱뚱 찌고 참 강건해지겠는데 그렇게 하지 못 하고 이 세상에게 하나님의 도가 배척을 당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걸어가고 살아가고 주장하고 깨달아 가고 말하고 하는 그런 모든 그것이 한 말로 말하면 세상이고, 세상 지식, 인간의 지식이고 세상 지식이고 또 세상 건설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그런 것이 그 사람의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차지할 것이 없다 그거요. 그라면 청일이라. 제가 온 세상을 다 차지해도 그 사람 마음을 하나님이 차지할 것이 없어. 세상이 다 차지했기 때문에 아 그 사람이 '목사지만 책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언제 방송 나왔는데 보니까 '책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만 권가지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읍니다. '만 권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또 책 모으는 거기에 또 유일한 재미를 가지고서 책을 모았다. 그 책 모으는데 일편단심. 일생 동안 책 모으는데 전력을 기울였다하며 자기 입으로 발표를 해요. 천하 책을 다 모았으면 그것이 무슨 효력이 있을건가? 내 속에 결론짓기를 '그 헛수고 많이 했다.' 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비판이 좁은 비판인지 몰라도.
그것이 마음 다 차지했다 말이오. 여러분들, 똑똑히 회개해요.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이 사람 사상 저 사람 사상 천인 사상 만인 사상, 요새 신학자는 어떤게 유력한 신학자인가 하니 뭐 두 사람의 신학 사상을 알면 고마침 큰 학자, 그 보다도 세 신학자의 사상을 알면 그만큼 대신학자, 열 신학자의 신앙 사상을 알면 이제 더 대대신학자 이래서, 신학자들도 이 사람은 유일한 재료를 가졌는데 - 몇 시간 전에 했지. 우리가 유한한 재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료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 가지고서 언제 뭐 이 신학자 그거 알아 볼라고 거기 쓰고 저기 쓰고 다 나누어 쓰고 나니까 나중에 남은게 없어. 하나님 말씀이 차지할게 없어. 우리 ○○○ 목사님 독서 많이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목사님의 마음을 차지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예? 아시오? 요새 말하기를 '아, 독서의 취미를 붙여서 독서의 힘을 을려야 한다. 독서를 습관화 시켜야 된다.' 그래 독서 좋기는 좋습니다. 만, 독서가 좋아도 산 글을 읽는 독서라야 좋지 산 글을 읽을 수 없도록 만드는 그거야 죽이는 독서지 무슨 소용이 있소? 우리가 자꾸 귀넘어 듣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나는 한 말을 합니다. 한 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안 되어 있다는 걸 내가 환하게 알기 때문에, 자꾸 허탄한 것을 알게 아니라 하나라도 하고 지나가 자 하나라도 하고 지나가야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하는 말입니다.
길 가 뿌린 씨는 어떤 것이냐 하면 하나님의 도를 받기는 받았지만 벌써 마음을 이미 인간 지식이 그 마음을 차지하고 있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도, 들으니까 '누구는 이런 말했는데 누구는 도덕가도 이 말 했는데' 인간이 한 말을 '아, 성경에 그 말 했나? 아무 학자도 그 말 했다. 아무 철인도 그 말 했다.
아무 시인도 그 말 했다.' 이러니까 아. 아무 시인이 한 말과 같은 말 했구나.' 성경 말씀은 우주를 없는 가운데 에서도 만들고 앞으로 불로 사뤄서 바짝 태워서 없앨 수 있는 능력있는 말씀과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말한 그까짓 지걸거리는 말과 같은가! 네가 네 지식에 네가 속았다! 이것이 길가 뿌린 씨입니다. 여기 학자들 많이 있지. 여기 남반에 학자들 많이 있고 여반에도 학자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정신차려야 합니다.
세상은 그게 세상이오. 그거 천 사람이면 천 사람 사상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천 사람 생애가 따로 있습니다. 아무리 못나도 그 사람의 전기를 기록할라면 몇 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러니까 억만인이면 억만이면 그 사감의 전기가 얼마나 되는데 제까짓게 무슨 힘을 가지고서 다 그것을 다 열람할 것입니까? 어때요? 바른 것은 몇 개나 있어요? (하나) 그것도 참 지혜요. 지혜의 말이오. 쉬우나. 알고 나면 쉽지. 알고 나면 쉬워 모를 때는 몰라요.
나는 이 전국에 부흥사로 다닐 때에 그때에. 지금 한 그러니까 이십 년 전인지 될 때에 그때에 다니면서도 서울에 ○○○ 교회에 가 가지고서 전화를 할 건데 내가 전화 다이알 돌릴 줄을 압니까? 전화 다이알 돌릴 몰라. 그거 하면 되는데 어찌 하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인제 그 집에 전화 있는 집에 가 가지고서 그 일 하는 아가씨가 있어서 아 아가씨 이거 와서 좀 전화 하나 좀 돌려 달라 이러니까, 그래 전화를 말하니까 전화를 돌려. 그래 가지고 알고, 전화 그것도 안 배우니까 몰라. 모르니까 몰라요. 어떻게 어려운지 혼자 이것을 이래 하는 것이가 저래 하는 것이가 암만 연구해야 모르겠어. 할 수 없이. 그 선생님한테 물어서 이제 좀 이 전화 좀 걸어 달라 해 가지고서 내가 통화는 내가 했지요. 그러고 나니까 내가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 '이거 어찌 하노? '하니까 '요리 요리합니다.' 하니까 일 분 안 되어서 확 배우고, 배우고 나니까 그만 다 아는 것인데.
옳은 것은. 바른 깨달음은 하나뿐이다. 삐뚤어진 것은 천 명 있으면 삐뚤어진 것이 천 개 있고 만 명 있으면 삐뚤어진 것이 만 개 있다. 이러니까, 삐뚤어진 걸 다 알아 가지고서 삐뚤어진 이 가운데 들지 안한 것이 옳다 그래 아는 길이 하나 있고 옳은 것 하나 알아 가지고서 천이나 만이 나 옳은 것 요거 아닌 것은 다 삐뚤어졌다 이래 아는 것 있으니까 어느 것이 질러 가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인간을 만들었어. 이 말씀이 인간의 지혜와 총명을 만들었어. 이 말씀이 인간의 입술을 만들고 웅변을 만들었어. 전자계산기가 아무리 옳다고 해도 전자계산기를 사람이 만들었어. 사람만 못해.
누가 말하기를, 어떤 대학교수라. 내가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러니까 아 이 정치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요새는 지금 청년 시대요 소년 시대라 말하기 때문에, '그래도 사람들 통계에는 좀 나이가 익숙해서, 좀 노숙해야 잘 안다 하던데 정치가들을 총 책임자 정권자를 젊은 사람을 내놓으면 안 되지요. 그래도 나이가 좀 든 사람이라야 되지요.' '아. 지금은 콤퓨터 세상이 되어 놔서 그런 것 상관없습니다.' 그래 말해요 '그러면 그 나라의 정권자라면 그 나라를 그 흥망을 지배하는 그렇츰 참 그 주체가 되는 사람인데 그러면 사람보다 콤퓨터가 낫다 말이오?' 내가 이러니까 이러며 버물거리기 때문에 한참 가다가서 그만 그래 그 사람이 입이 쑥 들어가 버려.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한 말씀이 내 말이 혹 있는지 모르나 그래도 제가 하는 대로는 성경 말씀을 다 그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구는 내가 다 소개를 내가 못 해도 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은 지식을 두 가지 지식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으로 둘로 나눌 수가 있다 하는 젓도 큰 말이오. 그런데, 하나님의 지식이나 사람의 지식이 나오기는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천국을 건설하는 지식이요, 사람 지식은 속이고 속는 지식이라. 성경이 말했어. 이거는 다 폐해지고 없어질 것들이라 했어. 또 이거는 세상을 만드는 지식입니다. 인간 지식은 세상을 만드는 지식입니다. 세상을 만드는 지식인데, 세상은 어떻게 할런지? 그 세상을 만드는데. 인간 지식이 다 이렇게 멸망시키는 지식이라 하면 버쩍 떠들 터이니까 한 고비 살짝 돌려 가지고서 그렇게 말하는데, 어쩌든지 인간 지식은 세상을 만드는 지식입니다. 이 말은 틀려요 안 틀려요? 인간 지식은 세상을 만드는 지식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인간 지식은 다 폐해진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세상은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끝납니다. 또 성경이 말하기를 세상은 죄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또 말을 했습니다. 종합하면 자기네들이 알 것이오.
이러니까, 두 가지 지식이 있으니 우리는 유한한 짤막한 그런 아주 극히 제한되어 있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만 알라고 해도 자본이 모자란다 세상 지식을 알라 해도 자본이 모지라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을 알라고, 하나님의 지식만 알라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의 지식은 '그까짓 켸켸묵은 지식이 세상 번쩍거리는 지식이 좋다' 해 가지고서 이 세상 지식. 사람의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보다 훨씬 높이 평가해 가지고서 사람의 지식을 아는 데에 전심전력 기울이고,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에는 그까짓 거 하나 상식적으로, 상식적으로, 그것도 세상에 있는 지식이기 때문에, -인간 지식 가운데에 한 사람이 말해 놓은 지식이기 때문에 그것도 그저 지식 중 하나로서 그렇게 그것도 상식으로 알아 둬야 된다. 그런 정도로 평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의 지식이 보배다 이렇게 평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에 전심전력 기울여 가지고서 나는 소자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만 전부를 다 기울여서 전공을 하겠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게 한해서 말이지 그 나머지기 사람들은 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오.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데에 연구하는 방편이 몇 가지 있다 했지요? 몇 가지 있다 했소 연구하는 방편이? 하나님의 지식을 전공할라 하는 사람들이 전공하는 방편이 몇 가지 있다 했어요? 두 가지. 하나는 알고 행하고 알고 행하고 알고 행하고, 요 방편 쓰는 사람 하나 있고 하나는 알고 행하는 데에 보조학이 있어야 되겠으니까 이 보조물을 좀 구비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서 인간 지식을 그 보조학으로 이래 가지고서 이렇게 인잔 지식 하나님의 지식 자기 또 실행하는 것 이 세 가지를 가지고서 이렇게 하나님의 지식을 연구해 나가는데 거기에는 위험성이 많아요. 위험성이. 나서기는 다 같이 나섰는데, 이 길을 걷는 이 방편 취한 사람 열명 나섰고 저 방편 취하는 사람 열 명 나섰는데 나중에 종착점에 가보니까 어느 편이 많습니까? 예? 그 편을 취하는 사람이 많고 이쪽 편을 취하는 사람들은 가보니까 몇 사람 안 왔어. 몇 사람 안 왔어. 다 어디로 빠져 버렸는지 어디로 빠졌지요? 음녀의 미혹에 빠졌습니다. 또 어디 빠졌소? 음행의 포도주에 빠졌어. 지금은 제가 모르겠습니다. 만 왜정 말년까지는 우리 한국에 제일 광문 다학을 한, 제일 다독한 학자가 채 필 근 목사가 제일 다독했다 그렇게 말을 합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참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뒤에 그 분이 신신학 평양 정통 신학을 이북에서 왜정 말년에 계승을 하는데, 평양 정통 신학에 제일 처음 신신학교장이, 아따 또 이름이 없다. 누구입니까? 송 창근, 옳지. 우리 이 ○ 목사님, 독서를 많이 해서 그런 거 잘 알고 있어요 이런데 지금 내가 지금 오늘 말하는 소리, 하나 딱 때렸는데 요걸 '주여 주의 말씀이라' 하고서 딱 거머쥐고 이제 거머쥐면 그게 다 이제 이용이 돼 가지고서 그놈을 먹으면 살이 뚱뚱 쪄 가지고서 참 아주 진리의 역사가 될 건 데 이제 만날 그놈 가지고 이라면 헛일이오. 그 송 창근 박사가 되고 그 다음에 채 필근 박사가 이세의 교장이 됐는데, 그분이 독서를 그렇츰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든지 하나님 말씀이 떠나 버렸습니다. 떠나 버리니까 그분이 집회하는데 한번 가 봤어요 저게 ○○ 교회 집회 한다 해 가지고서 우리 교인들 다 데리고 '이 박사가 와서 설교하니까 한번 가 보자'하고서 그래 갔습니다. 가보니까, 새벽 기도에는 보니까 우리 말고는 세 사람인가 네 사람인가 앉았어. 낮으로는 몇 사람이나 앉았는지? 그래 설교 하는 것 보니까 그거는 뭐 요새 주일학교 학생들도 그보다는 십 배 낫습니다. 일 배 낫은게 아니라 십 배 낫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또 어떻게 하든지 해서 하나님 말씀을 받는 그것이 뭐이냐? 이제 씨뿌림을 받은 거와 마찬가지인 것을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뭐 설교에 들어서나 자기가 읽어서 알아서나 또 자기가 보고 알아서나 어쨌든지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알았으면 그거는 씨를 받았습니다. 이 복음의 씨를 받았소 이 지극히 큰 능력의 이 말씀의 씨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없는 가운데 모든 걸 창조하신 창조의 그 능력과 공력이 있는 그 말씀의 씨를 우리가 받았다 그거요.
이랬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이번에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금 씨를 많이 받는데, 하나님 말씀을 받는데, 여기에서 길가의 방해를 받는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가 들어서 듣기는 들었지만, 듣기는 들었지만 이 마귀라는 놈이 자꾸 이 인간 지식을 자꾸 갖다 주고 이 세상의 이런 물건 저런 물건 다 갖다 주니까 고만 이 마음을, 내 마음을 그게 차지하니까 하나님 말씀이 차지할 그런 기회가 없어. 그 말씀을, 자, 세상 인간들의 모든 지식과 인간들의 이력, 인간들의 행위, 인간들의 전기, 인간들의 모든 걸어간 그 모든 방편 그런 것이 내 마음을 다 차지해 가지고서 만물박사가 돼 버렸어. 그만 거 다 알고 이래 가지고서 그게 내 마음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을 차지 할 그런 기회가 없어요. 그게 길가 뿌린 씨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차지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돌이 차지했어. 들이 차지한 것은 뭐라고 배웠습니까? 돌이 차지한 것은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말씀을 들었지만 하나님 말씀 들은 것은 내비두고서 내가 이래야 좋겠나 저래야 좋겠나? 이거 해야 되겠나 저것 해야 되겠나? 내게 대한 문제 이 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되노 저 내 문제를 어떻게 해야 되노? 이 내 아들을 어찌해야 되노? 이 내 친구를 어찌 해야 되노? 이 내 원수를 어찌 해야 되노? 이 내 대적을 어찌 해야 되노? 내 사업을 어찌 해야 되노? 나 나, 나 이놈이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고 하나님 말씀은 차지할 여가가 없는 것이 그것이 돌밭에 뿌린씨 입니다.
지난 번에 여기에서 이 말씀을 증거했는데, 그때는 세밀하게 아주 광대하게 증거를 했습니다. 우리가 실지로 생활해 나갈라 하면 그것이 다 들추어 나오는데 그것보다도 실제 살라 하면 더 많이 들추어 나옵니다. 또 덤불 밑에 뿌린 씨는 이 세상 물질과 세상 사건들, 이 세상 사건들이 처음에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움직임이 들어서 내 마음 다 차지하니까 하나님 말씀이 차지할 여유가 없지. 또 내가 차지했으니까 하나님 말씀이 내마음을 차지할 그런 여유가 없지. 이 세상이 내 마음을 다 차지했으니까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을 차지할 수가 없으니까, 여러분들, 종자 쳐 놓고 땅 안 먹고 성장되는 종자 봤습니까? 아, 땅을 안 먹고 성장하는 종자 봤소? 지식으로 듣는 사람들은 아니까, 구경하는 것이야 한 번 하면 됐지 두 번 보면 권태 나지 들을게 뭐 있는가? 이 말씀을 자기가 복음으로 살아서 이 말씀으로 자기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이 말씀의 가치와 이 말씀 능력, 이 말씀 자체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 번 만나니까 좋지, 두 번 만나면 좋고, 세 번 만나니까 더 좋지.
어때요? 신혼부부가 이제 처음 만나니 좋아요 두 번 만나니까 더 좋아 요 세 번 만나니 더 좋아요? 만날수록 좋습니까? 제일 처음이 좋습니까? 자 경험 있는 사람 한번 대답해 봐요. 어때요? 내 경험에는 자꾸 만나는게 좋데요 그렇지 안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그 말씀은 주님의 사진판이라고 할 수 있고, 주님이 문서로 나타난, 주님이 나타난 문서, 주님을 나타내는 문서라고 할 수 있고, 막바로 내가 진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말씀이 막바로 주님을 나에게 소개하는 이 소개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곧 주님을 소개해. 주님은 이 말씀으로 나에게 나타나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내게 악수할 때에 이 말씀으로 악수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뭘 주실 때에 이 말씀으로 주십니다. 주님이 나를 위험지에서 건져낼 때에 이 말씀의 손으로 건져냅니다. 우리를 주님이 인도하실 때에 이 말씀의 뭘로 손으로 가지고서 우리를 인도 하십니다.
이러니까, 이 말씀이 이렇게 영원히 우리가 상대해서 모시고 기뻐하고 좋아하고 살 수 있는 이 말씀이니까 이 말씀을 한 번 만나면 좋아해야 될 터인데 아예 이 말씀은 안다 이러니까 그만 졸음이 온다 그 말이오, 졸음 오는 것이, 자, 이 말씀이 나타날 때에 이게 누가 나타나는 것이라요? 주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금은 내가 그것을 말하지 안하지만 서도, 이제 그만침 했으니까 다 되어서. 그 전에는 제가 언제든지 설교할 때에는 '이 시간에는 주님이 어떤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서 오셨습니다.' '오셨습니다.' 하는 건 주님이 이 말씀을 지금 주님이 증거한다고, 나는 주님의 입술도 되고 주님의 나팔이 되는지.
주님의 입술이겠지요. 주님의 지체지요 말하나 내가 말하는 것은 주님이, 내 안에서 말을 해서 말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고 주님 없는 내 말로 안 하려고 내가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오시는데, 주님에게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주님 오시는데 꾸벅, 꾸벅 졸면서 (저 ○집사 원기동 저 ○집사 아니가? ) 뭐 주님이야 오시든지 말든지, 구주야 오시든지 말든지, 뭐 그 정도야 오시든지 말든지, 오거나 가거나 '내게 무슨 상관있어?' 하고서 꾸벅 꾸벅 조는 사람이니까 주님이 오실 때에 뭐라 했습니까? 조는 사람 좋아했소? 조는 사람 좋아했습니까? 안 좋아 했어. 안 좋아했어요 깨어 있으라 하지 안 했습니까? 그런데. 지금이, 지금이 그때라. 지금 깨야 그때 깨요. 지금 못 깨는 사람은 그때 못 깹니다. 요것도 자기네들이, 자기네들이 실생활과 실지를 비교해 보면 변화가 되어지고 여기에서 잠이, 잠이 물러갈 것이고, 자기가 참 깨달을 대로 깨닫고 자기가 바로 자기를 정평하고 정가할 수가 있을 터인데 도무지 그 정평 정가를 안한다 그 말이오. 덤불 밑에 뿌린 씨는 덤불이. 이 세상이 다 마음을 차지했다 말 아니오. 자, 이 비유에 다른 해석이 있습니까? 차지했지.
옥토에 뿌린 씨는 이 말씀 들은 말씀이, 본 말씀이, 읽은 말씀이 이 말씀이 그 마음을 차지하고 다른 것은 아무도 차지를 못해. 다른 것은 근방에 오지를 못합니다. 아무도 안 와. 이 말씀이 마음을 독차지했어. 독차지한 거기에서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있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거기에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있다고 말했소,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는 이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해야 됩니다. 뭐 사업이 몇분지 일 차지하고 가정이 몇분지 일 차 지하고 또 자기 무슨 지위가 몇분지 일 차지하고 이렇게 뭐 차지할 것이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해야 완전 성공을 한 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 그것도 우리가 좁 한 번 생각해 봐요 그러면, 내 마음을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는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따져 나가요 그러면, 자기가 그 한 시간을 두고 말하면 요 시간은 내 마음을 누가 차지했는가 고렇게, 고런 기계가 있으면 고거 하나 사면 싶어요. 돈이 어북 비싸도 사면 싶어요. 내 마음. 내 마음 고것을 무슨, 콤퓨터가 요새 예민하다 하니까 콤퓨터로 어떻게 해 가지고서 내 마음 한 시간 지나고 난 다음에는 내 마음은 돈이 차지한 것이 몇분, 또 친구가 차지한 것이 몇 분, 일이 차지한 것이 몇분, 말씀이 차지한 것이 몇분. 고것을 정확하게 고렇게 딱 심사해 가지고서 고렇게 발표를 해 주는 고런 콤퓨터인가 뭐 전자계산기인가 있으면, 그거 있으면 나 백 만원이라도 사겠습니다. 백만원이라도 사겠소 천 만원이라도 내가 빚을 내어도 내가 현재는 천 만원 돈이 없지만 천만 원이라도 내가 그거 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살 마음 없어요? 살 마음 있소? 그러면 한 시간 살고 난 다음에 한 시간 그러면 내 마음을 무엇이 차지했는고 한번 계산을 한번이라도 좀 내달라 하는 계산 내 주는 그런 제산기가 있으면 그 참 천만 원이라도 사겠소.
이 정확지도 못하는데도 뻐뜩 생각할 때에 계산해 보면 전부 마음은 어만게 다 차지하고 있어요. 하나님 말씀이 차지한 것이 적어. 이런데 저 산에나 어디 가 가지고서 기도하는, 기도하는 그것이 거기 간다고 기도가 뭐 더 잘될 것은 아니고 또 거기에는 모든게 불편하고 집에서는 모두가 편리하게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집에서 기도하는 기도가 잘되는 것 같은데 제산을 대 봐요. 계산을 대 봐서, 보자 내가 집에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도가 나를 차지한 시간과 또 거기 갔을 때에 하나님의 도가 나를 차지한 시간과 비교를 해 보니까 비교가 어림도 없어. 산에나 그런데 간 것이 훨씬 많이 차지했어요.
이러니까, 고만 판단이 나기를 '아무래도 그라는게 낫다.' 또 사람들 만나면 이제 제일 손해 간게 뭐이냐 하면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이차지 해야 될 터인데.
이 마음을 하나님 말씀이, 도가 차지하지 못하고 고만 이래 놓으니까, 하루 종일 사람으로 더불어 둘씬둘씬 이라다 보니까 마음은 전부 이 사람, 저 사람, 이 건 저 건이 다, 세상이 차지해 버리고 말았고 하나님 말씀은 내 마음을 하나도 차지하지 못했으니까 하나님 말씀은 빼빼 말라 가지고서 골케 골케 해 가지고서 고만 시들어 가지고 있다 말이오. 이하다가 나 그만 그 말씀을 쫓아내 버려요 이라다 그 말씀을 쫓아내 버려요 이 말씀을 잊어버린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들어서 잊어버리고 들어서 잊어버리고 하니까 우리에게 무엇이 결실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해서, 그러면 우리는, 몸은 외부요 마음은 내부인데, 마음이 몸을 다스리고 옳은 마음의 지배를 받는 것인데, 우리는 그래도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고 분담이 있고 우리의 지위가 있고 있으니까, 우리가 맡은 책임도 있고 또 우리의 의무도 있고 우리가 또 분담한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그 모든 내 위치라 하는 것을 그것을 잘 갈당하려고 하는 데에는, 첫째 마음이 들어야 되고, 둘째로는 몸이 들어야 되고, 마음, 몸 이것 이 들고, 이제 그 다음에는 생명이 있어야 되겠고, 시간이 있어야 되겠고 살아 있으니까 뭐, 죽으면 안 되지만 죽으면 끝나 버리지만 그 마음과 몸이 모든 것 다 하는데, 마음을 하나님 말씀만 생각해서 하나님 말씀에게 다 바쳐서 하나님 말씀만 내 마음에 가득 찼고. 하나님 말씀만 내가 사모하면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 안에 들어 와서 계시게 되고, 또 내가 다른 걸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을 물리쳐 버리면 잊어버리면 하나님 말씀은 쫓겨 나가야 되고 이런데, 하나님 말씀만 우리 마음에 하루 종일 모셔서 스물 네 시간 그렇게, 잘 때도 모시고 이렇게 이래 하면, 하나님 말씀은 깨어 있을 때에, 안 잘 때에 모시면 잘 때는 절로 모셔져요. 그건 여러분들이 경험해 보면 알 것이요. 깨어 있을 때에 하나님 말씀을 하루 종일 모셨으면 잘 때는 하나님 말씀을 잘 모셔요 혹 그게 신경으로 가다가 돌변되는 무슨 그런 돌발적인 사고가 있기는 있지만 별 그런 일 없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만 모시고 있으면 그 사람이 '저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 말씀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만 사모하고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만 사모하면, 자, 직장은 어짜고? 사무는 어떻게 하고? 또 장사는 어떻게 하고? 가정 생활은 어떻게 하고? 이게 문제라 그 말이오. 이게 문제 이니까. 마음에는 있지만 그게 안 된다. 그래서 계산을 대 봤어요.
계산을 대 보니까 아무래도 사장 되는 것보다 목사 되는게 낫다. 의사 되는 것보다도 목사 되는게 낫다. 대사업가 되는 것보다도 목사 되는게 낫다. 왜? 목사 되는 것은 하나님 말씀만 자꾸 사모하고 기도하고 이라는 데에 다른 폐단이 안 나오거든. 그거 폐단이 없다 말이오. 자꾸 하나님 말씀만 자꾸 사모하니까 그러니까 밥 잘 주지 옷 잘 주지 대접 잘하지 또 자꾸 기도만 하면, 다른 사람은 기도할라 하면 장사가 안 되고 기도할라 하면 직장에 탈이 나고 이라는데 자꾸 기도를 할수록 이제 대접이 더 좋습니다. 기도를 할수록 대우가 좋고 하나님 말씀만 자꾸 사모하면 대우가 더 좋고 이러니까 '이 목사직이 그 지장이 적으니까 그게 제일 낫겠다.' 이렇게 한번 제산 대 본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참 그 목회자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은 성경을 보고 싶지만 성경을 하루를 보는 날이면 큰 낭파가 나는데, 기도를 만일 하루 종일 기도 했다가는 그 장사가 들통이 나고 큰 낭파가 납니다. 목사는 그런게 없다 말이오 자꾸 기도할수록 좋고 성경 볼수록 좋고 이제 이러니까 다른 직책보다도 이 직책이 낫다 그렇게 그 결산을 내려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목사도 그래요. 평신도도 그렇고. 자. 하나님 말씀만 자꾸 생각하면 그러면 그 교회에 대해서 정치는 누가 하고? 설교는 누가 준비 하고? 또 평신도가 그리 하면 자기 의무와 책임과 그 모든 분담된 그런 것은 누가 하고? 이 문제가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문제요.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하나님 말씀만 사모하고 싶고 하겠지만 서도 이것 때문에 하지를 못해요. 아, 하루 종일 하나님 말씀만 자꾸 생각하고 그 말씀만 새김질하고 또 그 말씀을 또 연구하고 또 그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으로 더불어. 자꾸 또 말씀에서 그 말씀으로 말씀으로 자꾸 이렇게 확대해 나가고 깊이 들어가는 자꾸 말씀만 이래 생각하고 그라면 어쩔라고? 그라면 다른 일이 낭파되기 때문에 그 일을 못 한다는 그런 어려운 문제가 사람들에게 자꾸 일어납시다. 또 마귀라는 놈은 '네가 그리만 해 가지고서 네가 예수 믿는 최면술에 걸렸다. 너는 광신이다. 저 사람은 아주 예수에 미쳐 가지고서 아무 이성을 다 잃은 이성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자꾸 그런 문제가 일어난다 말이오.
이제 말씀만 사모하면 말씀 안에 누가 있지요? 말씀 안에 영감이 있습니다.
말씀 안에 영감이 있어. 또 영감 안에 누가 있습니까? 영감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셔요. 그 양반이 삼위일체 하나님 그 양반이 영감으로, 그 양반이 영감으로 진리를 보냈습니다. 영감이 나왔는데 나오고 난 다음에 그 이름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그 진리가 나왔는데 사람들이 알기에 말씀이라 그랍니다. 하나님 말씀이라 그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에서 엿새 동안에 모든 이 세상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창조했지요? 말씀으로. 말씀이.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뭘 보냈는데 말씀이 됐습니까? 영감 보냈는데 영감 보냈는데 영감이 나와서 뭣 됐소? 진리 됐소. 진리가 나와서 뭣 됐습니까? 말씀, 우리에게 발표하기를 말씀이라고 발표했지요.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모든 존재를 창조하실 때에 당신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당신이 진리로 창조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당신의 뜻으로 창조하셨는데, 다시 말하면 당신의 마음, 영감으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영감으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자, 내가 말씀만 사모하니까 내 안에 말씀, 진리, 또 영감, 하나님, 그분 와서 내 안에 와서 계시니까 나는 무엇 됩니까? 나는 뭣 돼요? 나는 무엇 됩니까? 나는 성전이 됩니다. 나는 성전이 됩니다. 이것이 성전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도들이 기도하기를 '주여, 나로 하여금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이. 주의 것인데, 주의 것이 주의 것으로 살지 안하고 주의 것이 주의 것 아닌 것으로 살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 패망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제 주님의 것이니 주님의 것이 주님의 것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것이 주님의 것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종이, 주에게 팔렸으니까 주님의 종이, 이게 실상인데, 주님의 종이 주님의 종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성전이 주님의 성전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지체가 주님의 지체로 살게 해 주옵소서.' 자, 주의 말씀이 오면 우리가 주의 성전됐고, 주님의 지체 됐고 주의 것 됐고, 주의 종 됐고, 이러니까, 이제는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그분의 사심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랬는데,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만 사모하게 되면.
사모하게 되면 그다음에, 하나님 말씀만 자꾸 사모하고 명상하고 이라면 차차 차차 나는 들어가서, 골방으로 들어가 가지고서 하나님은, 말씀이 내 마음에 있어서 나를 주장하고, 말씀은 영감이 주장하고, 영감은 하나님이 주장하니까 이제 내 안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말씀 안에, 영감 안에 하나님. 그 영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감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감이요 예수님의 영감입니다.
그러면, 말씀만 사모하게 되면 그 사람 속에 누가 모든 걸 주장합니까?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장하시니까 하나님께서 혹 혼란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착각하겠습니까? 실수를 하겠습니까? 없습니다. 이러니까,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볼 것은 보게 하고 안 볼 것은 안 보게 하고, 할 것은 하게 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에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라도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 만침은 세밀하지 못하고 철저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자기 안에 제시면서 이제는 자기를 주관하니까 자기라는 그 자기가 과거에는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은 자기 단독이 무슨 일을 처리했는데, 이제는 말씀만 새김질하고 자꾸 말씀을 사모하고 하는 사람은 이제는 자기 일을 누가 맡았습니까? 하나님이 맡았습니다. 하나님이 맡았어.
이것이 이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겠다 내 짐을 지고 내 멍에를 메고 내 짐을 져라'하는 이것이 다 그런 이런 저런 다른 각도에서 말씀하나 그 중심은 똑같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리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직장은 어떻게 하고? 그러면, 직장에 대해서도, 당신이 그 직장, 어떻게 세밀한 관직이라면 관직의, 그 관직의 상관 위에 상관 있고 상관 위에 상관 있고 상관 위에 상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상관은 누구입니까? 최고의 상관은 누구지요? 대통령이 최고의 상관 아닙니까? 그 상관 위에 상관은 누구입니까? 상관 위의 상관은 주님이십니다. 주님.
내나 말씀을 사모해서 내 안에 제시는 그분이 그분이오. 그분이 모든 것의 상관이기 때문에 그분이 모든 것을 다 능하게 잘 하십니다. 그러기에, 그때에,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만 우리 안에 모시고 있을 때에 이 말씀이 우리를 거머쥐고 지배하고, 이 말씀 안에 영감이 또 같이 해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진리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깨우치는, 진리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영감이 나와서 진리 됐고 진리를 우리가 받아 가지고서, 문서 진리를 받아 가지고 우리가 사모하는데, 그러면, 그 진리가 우리에게 직접 역사할 때에는 뭘로 역사 합니까? 영감으로 역사합니다. 영감으로 역사해요.
이러니까, 영감, 영감이 와서 진리가 됐고 또 진리가 우리에게 와서 내 주해서 이렇게 사모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있을 때에는 그 진리에게서 영감이 나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접해 가지고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시켜요.
그러니까, 이제 그 사람이 자기 직장을 아무리 잘 감당한다고 해도 성신의 감동대로 감당하는 것 만침 그렇게 세밀하게 철두 철미하게 흠점 없이 온전히 감당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자기 안에 이 말씀을 사모하고 이 말씀만 내주 해서고 모든 것을, 이제 주님의 말씀만 사모하고 주님의 말씀만 모시고 이렇게 주님을 모시고 사는 이 생활은 자기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다 맡기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라' 그 말은 너 할 일다 내게 맡겨라 그말입니다. '너 할일 다 내게 다 맡겨라.' 우리가 요걸 믿어야 됩니다. 너 할일을 다 내게 맡겨라.
맡기면 밥 먹을 때는 밥을 안 먹고 어쩔라고? 맡기면 그 영감이 밥 먹을 때 밥 먹으라 하고, 또 잘 때 자라 하고,가라 할 때 가라 하고, 아무것이 만나라 할때 만나라 하고, 전부 그분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 돼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요것이 참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사모하게 되면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다 차지하게 되면 말씀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 몸도 차지합니다.
이래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했으면 그는 주님이 내 마음을 다 차지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를 다 차지했습니다. 내 영은 벌써 다 차치하고 있소. 내 영은 다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내 영은 하나님과 언제든지 동행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은 실족이 없습니다. 후회할 일이 없소. 이렇게 주님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계시고 진리가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을 때에, 내 영은 먼저 차지했고 진리와 영감과 주의 공로가 차지를 했습니다.
주님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가 내 마음을 차지해서 내 마음을 그 셋이 책임을 맡고 그 셋이 주관할 때에 중생된 영에게는 다시는 삐뚤어짐이 없습니다. 죄를 범함이 없다 말은, 삐뚤어짐이 없습니다. 중생된 영에게는 삐뚤어짐이 없어.
실수가 없어. 자기 의무나 책임이나 본분이나 모든 그 사회나 윤리나 도덕이나 이 모든 인간이나 만물에게 대해서 하나도 실수함이 없어 죄를 범하지 않는다 말은, 중생된 영이 죄를 범하지 않는다 말은 중생된 영은 자기 의무를 행하지 안하고 동결돼 있다 말이 아니고 이제 잘못함이 없다 말이오. 삐뚤어짐이 없다 그 말이오. 죄를 범하지 않는다 그말은 삐뚤어짐이 없다 그말입니다. 삐뚤어짐이 없다는 것. 비뚤어짐이 없으니까 모든 것 다 바로 하는 것 아니겠소? 이젠 영은 삐뚤어짐이 없는데 그 영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을 했는데, 우리의 마음 이것이 중생된 영을 영접하면 좋지만 중생된 영을 세상하고 간음하느라고 배척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중생된 영, 중생 된 영이 간청을 해가지고서 하나님이신 성령과 진리가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함께 해 가지고서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올라고 애를 쓰십니다.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올라고 애를 씁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문을 두드리라 문을 두드리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은 나는 너로 더불어, 너를 통해서 네게 대한 하나님의 내 뜻, 네게 대한 내 사명을 다 하겠다. 네게 대한 상 사명을 내가 너를 통해서 다 하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는다 그 말은 너는 나를, 힘입어서 네게 대한 내 뜻, 네게 대한 내 명령, 네게 대한 내 요구, 네게 맡겨진 하나님의 맡기신 일, 영생이 치는 일 그 일을 나의 도움을 입어 가지고서 다 하게 된다. 이라면 이게 완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마음 안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사모해서 이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는 것이. 말씀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면 진리가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는 것이요, 영감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 차지하니 당신의 것 된 것을 당신의 전지전능으로 실수 없이 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 노릇 하는 줄 아시고, 세상살이를 살고 있는 줄 아시고, 가정 가진 것도 다 아시고, 우리 직장 가진 것도 다 아시고, 우리가 어떤 본분이라는 것도 다 아시고, 당신이 지어놓은 것을 당신이 배정했는데 당신이 모르십니까? 이렇게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 안에서 역사해 가지고서 모든 일을 흠 없이 다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믿음으로 행치 안한 것은 죄라.' 자는 것이나 밥 먹는 것이나 코든 움직임이 믿음으로 하지 안한 것은 다 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안한 것은 죄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 피동으로 하지 안한 것은 다 죄라 그 말이오. 하나님께 피동으로 하지 안한 것은 다 삐뚤어진 것이라 그말입니다. 망한 것이라 망할 것이라.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하지 안한 것은 다 삐뚤어진 것이라.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하지 안한 것은 삐뚤어진 것이니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된 것은 다 삐뚤어지지 안하고 바로 됐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을 말씀이 독차지를 했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삐뚤어짐이 없고 모든 일이 바로 되기 때문에, 어떤 면으로 바로 되느냐? '백 배 얻는다.' 사람에게도. 사람은 열이 만수라. 그렇게 숫자를 가지고서 그렇게 상징적으로 제시한 일이 있다 그 말이오. 그래 백 배라는 것은 사람의 만 수가 백입니다. 사람에게 대해서도, 네가 사람에게 대해서도 삐뚤어짐이 없이 원만하게 사람에게 대해서도 완전 행위를 할 수가 있다. 사람에게 대해서도 완전 행위를 할 수가 있다.
그다음에는 마귀입니다. 육십 배, 육십 배라는 것은 마귀 수는 육 수인데,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목욕 갈 때에도 이렇게 머리 씻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섯, 여섯 그놈 할까 싶어서 여섯 일곱 이래 가지고 여덟, 여덟은 이제 제 팔일이 주일이오. 새 세계이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서, 이래서, 그걸 잊어버리고 할까 싶어서 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그리고 되게 급하면 하나 둘 셋, 거기에서 그치지 넷에도 잘 안 간라합니다. 여섯에는 안 갈라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육 수 하고는 싸웁니다. 이런데 육십은 마귀 수인데 마귀에 대해서 하나도 삐뚤어짐이 없이 마귀에 대해서 지나친 것도 없고 환영한 것도 없고 배척한 것도 없고 마귀에 대해서도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마귀에 대해서 하나도 잘못함이 없다.
삼십 배라, 하나님은 삼 수인데, 이제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잘못함이 하나도 없이 다 바로 할 수 있다. 그 밑에 죽 말한 것을 보면 길바닥, 또 돌짝 밭. 덤불 밑, 하였으니 그 말한 그것도 다 관련이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도록.
영감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도록. 영감이 우리 마음 차지하면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하고? 영감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면 이 가정에 대한 의무와 책임은 어떻게 하고? 영감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있으면 이 복잡한 사업은 어떻게 하고? 여러분들, 그 모든 세상에 지식이라 하는 것과 모든 지혜라 하는 것과 움직임이라는 것을, 그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권하고 있습니다. 주권하고 제시면서 이러 저러 하는데, 그렇게 모든 것을 복잡해도 잘 처리하시는 분이 내 안에 계셔서 내 주인이 돼 가지고서 나를 붙들고 움직인다면 그 실족함이 뭐 이 있겠습니까? 요것 믿는 것이 문제인데 요것 참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마음을 옥토에 뿌린 씨, 요것을 꼭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제가 진주 성경 학원에 가니까 최 상림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이 있는데, 제가 그때 진주 성경 학교 할 때에 경상남도에 모든 목회자 될 사람들은 그해 성경학교에 왔었는데, 그때 뭐 신학교 가는 사람들은 없고 성경학교 갔는데, 성경학교 학생들이 온 것을 보니까 그 산 학생들이 있어. 믿음이 산 학생들이 있어. 산 학생들을 보니까 전부 남해 학생들이요, 남해 부근에 있는 학생들이라, 보니까, 그 학생들은 전부 최 상림 목사님의 신앙의 영향을 다 받아 가지고 있더라 말이오. 그 사람들만 살았어. 나머지기 뭐 학생들은 다 죽었어.
죽었어, 뭐. 아무 생기가 없어, 그때 보니까.
그래서 내가 그때에, 그때는 왜정 말년이요. 말년이기 때문에 '이제 이 보자.' 그때 신사 참배가 나기 전입니다. 나기 전인데, '최 상림 목사님이 어떤 목사님인고 보자.' 하고서 기다렸습니다. 이러니까 다음 주간에는 최 상림 목사님이 오신다 이라기 때문에 아주 고대하고 기다렸소. 기다렸는데, 그 목사님이 오는데 보니까 얼굴이 꺼무티티리 하이 수염이 씨커머이 난 사람이 거무티티리하이 아주, 아주 그렇게 뭐 참 아주 초범같고 불량자 같이 그래 생겼어요.' 아무 매력 있게 매초롬하게 생기지를 안 했어요. 이랬는데, 이 목사님한테 갔습니다.
가서, 감히 제가 들어가지 못하지만 들어가 가지고서 '목사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그 부근에서 온 학생들이 다 신앙이 보니까 다 힘이 있는데, 목사님, 그 비결이 뭡니까?' 이렇게 말해 놓고 '하나만 답해 주십시오. 목사님의 요절이 뭡니까? 목사님의 표어가 뭡니까? 목사님이 무슨 성구를 당신의 성구로 삼고 있습니까?' 이러니까 그 목사님이 '그. 좋은 걸 물었어. 좋은 걸 물었어' 이라면서 '옥토에 뿌린 씨' 이래 말 해, '옥토에 뿌린 씨.' '내 표어는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평상 옥토에 뿌린 씨를 생각해 난 그때 그래도 그 말 몰랐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기억만 내가 하고 있어. 기억만 하고 있는데, 차차 차차 살아 가 보니까 '옥토에 뿌린 씨 옥토에 뿌린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을 다 차지한 것이로구나. 그렇게 그 목사님은 내 마음은 하나님의 도가 다 차지하고 돈도 가족도 친구도 죽음도 죽음에서 살아나는 생명도 아무것도 차지하지 못하고 내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도, 영감과 진리만 차지하게 한다 하는 요것이 그분의 평상 소원이요, 평생 목적이요, 표어로구나.' 지금 자꾸 살아 갈수록 그 어른의 말씀한 것이 새로워져요. 그분은 순교했습니다. 그분은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이기고 순교했소.
그때에 제가 보니까 어떤 목사님 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큰 교회를 맡아 가지고, 도시 교회를 맡아 가지고 있고 이러니까, 그분은 좀 아주 졸 까라진 말을 하고서, 좀 좀 아주 뭐 말을 하면 차 단지 같이 말을 하면서 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인데. 이 최 상림 목사님이 혹 예배 볼 때도 찬송하며 고만 뭐 이러구 이러구 쌓고 찬송을 하니까 보면 좀 비웃는 같애. '저 경거망동하게 저렇게 하는가?' 이라는데 그분은 막 이렇게 막 이래 울렁 울렁 이래 하는데 그 겉에만 울렁울렁하지 속은 굉장한 사람이오.
그래서 그 ○ 목사님은 그 언제 학생들이 한번 우 갔다 오면서 막 활기가 있고 이래 와요. 오는데, 그때 그 목사님이 거기서 권위가 제일 있었는데 그 활기가 있어 와. '어디 갔다 오십니까?' '아, 우리 ○ 목사님 댁에 갔다 왔습니다.' '예, 그래요? 어찌 갔읍디까?' 나는 비슷하이 그만 알았다 말이오. '어찌 갔습니까?' 나는 그때 산따로야. 그 밑에서 아주 찌그리기지 뭐 그 뭐 아무것도 아니야. 이랬는데, 그래 '어째 갔읍디까?' 이러니까 말을 하기를 '우리 ○씨들, ○씨들만 다 오이는 회를 해서 이 학생 가운데 ○씨만 다 모았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썩은 냄새가 푹 났기 때문에 '아이구야, 그거 뭐 그거야 뭐 몇 닢 푼치 안된다 까짖거. ○씨가 뭐 하나님 앞에서 무슨 존재가 있을 것이고?' 그라더니만 나중에 보니까 신사 참배 다 실패하고, 다져 버리고 실패해 버렸소.
그분은 옥토에 뿌린 씨를 평생 생각해요. 그 평생 표어가 '아! 내 마음은 아무것에도 주지 않겠다. 내 마음은 진리와 영감만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다른 데 내가 빼앗기지 않겠다.' 요것만 가지고 있으니까 그는 참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었어. 그분이 성경 가르치는데, 다른 사람들 성경 가르치는데 그 가르치는 걸 지금 보면 엉망이라. 배울게 하나도 없어. 사람 죽이는 것뿐이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분은 출애굽기를 가르쳤는데 출애굽기 교안을 간단하게 해 가지고 가르쳤는데 그분 가르친 것은 믿어 갈수록 '아멘 아멘. 참 그분이 깨달았다 깨달았다.' 그 분이 출애굽기 가르치는데 그래 출애굽기 그분에게 배워서. 제가 출애굽기 깨달은 것은 그분에게 배워서 깨달음이 훨씬 발라졌고 훨씬 크게 도움을 입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성경 배운 것은 성경 바로 깨닫는 데 전부 어둡게 삐뚤어지게 깨닫게 하는 것을 삐뚤어지게 가르쳐 놨기 때문에 이것 바로 깨닫는 데 얼마나 힘이 들어요. 방해가 되고 말았어.
이러니까 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후회 없이 바로 했지, 또 교회에 대해서도 바로 했지 그분의 그 일화에 들으니까 남해에는, 남해 교회들은 참 인색합니다. 여기 남해 교인들 많을 거라. 물질에 인색해서 그 남해 교인들 얼마나 절용 절식하는 일을 잘 조절을 하든지, 경제에 대해서는 박사입니다. 그러니까 그 남해 사람들은 논 너 마지기만 있으면 대학 다 시켜요. 자녀 대학을 다 시켜요.
육지에서야 뭐 논 너 마지기야 그까짓 거 무슨 재산입니까? 논 너 마지기면 자녀들 대학을 다 시켜요. 아주 경제에 밝습니다.
이런데, 그 교회에서 최 상림 목사님을 어짜든지 보니까, 노회가 보니까 최 상림 목사님이 발언권이 세고 이래 있거든. 이러니까 최 상립 목사님 모시라고 얼마나 단합을 하고 애를 쓰고 했든지 구하는 자에게 준다고 최 상림 목사님이 그 맥혀 들어갔다 말이오. 맥혀 들어가. 끌려 들어갔어.
인제 최 상림 목사님이 부임하게 되는데, 최 상림 목사님이 척 부임할 때에 여름에 부임했는데. 여름에 가니까 예배당에, 이 여름에 더운데 모두 예배당 가니까 이 일군들이 모두 웃통 턱 턱 벗어 놓고서 그 전부 승판에 모두 누워서 쉬 더래요. 쉬는데, 인제 쉬는 것이 어떻게 그처럼 사람 이 많이 모여드냐 하면 '아무것이 일군은 장로님 일군은 예배당에 가서 쉬고 우리 집사 일군은 못 쉬나?' 인제 예배당에 가서 쉬는 것이 권위라. 쉬는 것이 권위라. 이러니까 너 나 이렇게 자꾸 이라다 보니까 고만 여름에 더울 때는 그 급한 일군들은 전부 다 쉬는 장소가 예배당이라. 이래 놓으니까 꽉 쉬고 있어요.
이래서 이 최 상림 목사님이 뚱뚱하이 힘이 셉니다. 그래 가지고 몽둥 이를 가지고 와 가지고 고만 마구 드러누워 있는 것을 막 두드려 팼어. 마구 두드려 패니까 어쩔 줄도 모르고 일어나 가지고서 이 어떤 놈이 때리느냐고 어떤 놈이 때리느냐고 이렇게 시비를 붙을라 해도 보니까 거무티 티리하이 뚱뚱하이 이래 놓으니까 하이구야 이거 힘이 센갑다 싶어서 고 만 도망을 쳐버렸어. 그래 놓으니까 이 남해 교인들이 '우리 일군을 두드리다니' 입을 삐쭉 삐쭉 거리며 목사가 가면 쪼물쪼물 해 가지고서 꼼짝을 못 하게 하는 교회이니까. 이제 '목사가 우리 일군들 모욕을 주니까 바로 우리 모욕 준게 아닌가? 보자.' 이렇게 인제 하고 있는데, 또 보니까 예배당가에 전부, 소 먹이는 소죽기, 소 먹이는 소죽기를 여름에 인제 바쁘면 풀 못 베고 하니까 그것 가지고서 죽쒀 먹여 가지고 농사 바쁠때 지을라고서 모두 다 가에 뺑 돌아가며 세워 놨는데. 인제 '장로님 새초도 갖다 세우는데 우리는 못 세울게 뭐 있느냐?' 서로 세우는게 권위라. 이래 놓으니까 뻥 돌아가며 세워서 창문이 하나도 없어. 뺑 돌아 세워서. 가만히 있다가서 '보자' 하고서 '언제든지 소나기만 오너라.' 하고서 그래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가서 소낙비가 올 때 가 가지고서 낫을 가지고서 막 끊어서 온 마당에 전부 다 파흩었어. 전부 다 파흩어 버리고 했는데 그래 놓으니까 자 비 오는데 그거 어떻게 할 수 없고 단박 다 삶아 먹이지도 못하고 전부 이 폭 다 떠 버렸다 말이오. 다 썩혀 버렸어. 이러니까 마귀에게 대해서 육십 배 열매를 맺었어. 육십 배 결실을 맺었어. 그거 마귀 운동 아닙니까? 만들었다 말이오.
이라는데 또 인제. 그렇지만 속으로 '참자.' 권위 있는 목사님이니까 이제 보조나 많이 받기 위해서 떡 말하기를 '목사님. 우리 교회는 이제 목사님을 모셔도 우리가 주머니 끈 헐 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논을 사서 다 이래 놔서 뭐 그 논에 있는 수곡만 하면 목사님 대접은 넉넉하기 때문에 주머니 끈 끄를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좀 모자라는 것은 우리 교회에 경비를 쓰는 이 경비에 대해서 좀 노회에 보조만 받아 가지고 오면 얼마만 되면 그 돈 이자만 하면 우리 주머니끈 하나도 끄를 것 없이 우리가 다 그렇게 지낼 수 있는데 목사님 요번에 가시거들랑 어짜든지 좀 보조를 많이 받아 가지고 오십시오.'내나 그래 가지고 모은 돈이라. '보조를 많이 받아 가지고 오십시오.' 이러니까, 최 상림 목사님이 아무 말도 안하고 고개를 끄덕 끄떡 이러니까 알았다 그 말이오. 알았다 그거요.
그래 가지고서 노회에 가서 노회 부담금을 서로 안 하려고 자꾸 붙는데, '아 우리 교회에서 부담금 얼마를 하겠다.' 논이 몇 마지기니 그 논 다 팔면 그 부담금 될 수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부담금 얼마 하겠다.' 부담을 떡 하고서 가 가지고서 뭐 집사들 장로들한테 말할 것도 없이 그만 논을 싹 팔아 버렸어.
헐케 팔아야 다 팔지. 싹 팔아 가지고 부담금 싹 내 버리고 이러니까, 이제는 뭐 자기네들이 주머니끈 안 끄를래야 안 끄를 수 있습니까? 논 있는 거 톨톨 팔아 다 없애 버렸는데, 논 다 팔아먹었는데. 그래 가지고 남해에 신앙들이 굉장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에 이긴 사람들 중에는 그 ○○교회의 교인들이 제일 많이 이겼는데, 그때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남해 부근에 있는 교회들이 제일 많이 이겼습니다. 남해 부근에 있는 사람들 신앙이 제일 나아서 다 신사 참배를 제일 많이 이겼어. 많이 이긴게 전부 최 상림 목사님의 그 영향이라 말이오. 그 신앙의 영향이었어.
그래 가지고 신사 참배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서 이래 있으면서도. 다른 데 신사 참배하는 사람들은 다 동방 요배 다 했습니다. 황거 요배 라고서 일본의 동쪽에 천황폐하가 있으니까 '천황폐하 보고서 경례' 이라면서 절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절 다 했어요. 다하고 그 사람들은 안 했어. '아, 벌써 수천리 되는 데에 거기 있는 사람에게 여기서 절한다는 것은 벌써 그를 신격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성경에 인간에 대해서는 절하라, 한 것이 신에 대해서 절하라 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신격화시켜 가지고 할 수가 없다.' 이래가지고서 동방 요배 황거 요배라고도 하고 동방 요배라고도 합니다. 그걸 안 했습니다. 안 하는 사람은 지지리 고문과 고행을 만났소. 그러나. 그 동방 요배를 거의 다 했습니다. 감옥에 든 목사님들 가운데서도 동방 요배는 거의 다 했소. 속에 들어가 보면 다 하고 이제 안한 사람은 몇몇이 안 했습니다.
안한 그 사람들은 어디서 실수하는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은 잘했는데 동방 요배 안한 것은 잘했는데, 신사 참배 안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신사 참배는 안 했지만 동방 요배 한 사람들을 '이거는 내나 큰 똥만 똥이고 짧은 똥은 똥 아니가? 너거는 조그만 죄는 죄 아니가? 동방 요배 했기 때문에 그것도 우상 숭배가 아니냐?' 이래 가지고서 말을 안 했습니다. 신사 참배 안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너거는 다 속화되고 너거는 다 더러워졌기 때문에 너거는 상종할 수 없다고서 말을 안 했다 말이오. 절교를 해 버렸어. 절교하고 자기네들끼리 모여 가지고서 이게 교파를 만든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러니까, 그 동방 요배 안한 것까지는 잘했지만 그만 거기에서 너무 그것을 위주로 하나님 잊어버리고 고만 자기네들이 주가 돼 가지고 나가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넘어 트리게 하기 위해서 ○○교회가 실족을 많이 했소. 실수 많이 해 가지고서 ○○교회 그때 모두 다 ○○교회 교인들을 이쪽에 있는 교인들은 참 이렇게 존경하고 다 ○○교파에서도 아주 존경했습니다. 존경하고 이렇게 했지만 존경하고 그들을 부러워하고 존경하고 이랬지만 그분들이 치우쳐 실수해 나가니까, 치우쳐 나가니까 그들의 행위에서 하나 둘 실족하는게 생겼다 말이오.' 실수하는게 생겼어. 하나 둘 실수하는 것이 생기니까 이쪽에서는 안심을 했어. '아. 그들이 저래 나가는 것이 잘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저래 실수하는 것 보니까 그 비뚤어진 건가 보다.' 이래 가지고서 그때 그만 ○○교파에서 ○○교회를 그렇게 여기지 안하고 그만 그렇게 '뭐 너거나 우리나 같다.' 이렇게 동등으로 생각하다가 그 다음에 ○○교파가 차차 올라가니까 ○○교회는 또 깔보고 내리 보고 이렇게 됐던 것입니다.
그때에 그렇게 독실한 신앙가들이 어디서 나왔느냐? 최 상림 목사님의 그 신앙의 여파에서 생겼더라 그거요. 내가 이 말을 증거하는 것은 뭣 때문에 하느냐 하면, 그분의 표어를 가서 물었어. 아마 다른 사람은 그런 걸 물은 사람이 없을 거라. 그때 내혼자 가 가지고서 최 상림 목사님이 고요히 있을 때에 표어를 물으니까 '나는 옥토에 뿌린 씨 이것이 나의 표어입니다.' 이래요. 지금 생각하니 그분이 옥토에 뿌린 씨, 자기 심령에 진리와 영감 외에는 용납지 안했으니 그분이 참 잠근 동산이라. 신부의 방이라. 주님만 모시지 다른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한 그분이시라. 그러기 때문에 그분에게서 나온 영향이 컸습니다. 진리가 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가지고서 이 말씀을 자꾸 마음에다가 새김질해서 이 말씀만 자꾸 생각하면 사업은 어짜고 직장은 어짜고 할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자꾸 새겨서 이 말씀을 새기면 이 말씀을 성신이 깨닫게 해 주십니다. 깨닫게 해 주시고. 이 말씀대로의 소원을 가지게 되고 이 말씀대로의 소욕을 가지게 되고, 이 말씀대로의 이제 행동 계시를 하게 되고, 이 말씀이 평강과 담력과 위로를 주시고, 이 말씀이 그 일을 행동하게 하시고 이렇게 자꾸 이렇게 함으로써, 이 말씀을 모셨는데 나중에 보니까 성령 모셨고, 이 말씀과 성령을 모셨는데 나중에 보니까 주님이 자기 안에 주인이 돼 가지고 자기는 성전되고 주님은 자기 안에 왕이 돼 가지고서 역사하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한 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버리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는 벌이 있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경만 하고 말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속였습니다. 이래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상품같이 말씀 들었으니까 요 말씀 가지고 설교 한번 하면 교인들이 은혜 받아서 이제 생선도 좀 사 가지고 오겠다, 은혜 받으면 또 돈도 연보도 졸 많이 하겠다.
아 요 말씀 가지고서 전달을 하면 이제 그 댓가가 의복도 오겠다, 대접도 오겠다, 연보를 많이 하게 되겠다, 이라면 교인들도 하나 둘 더 오게 되겠다, 요렇게 해 가지고서, 자, 말씀을 상품처럼 자기를 위해서 팔아먹는다고 하면 그것이 뭐 입니까? 그것이 뭣이겠소? 악한 세대. 악한 세대. 그것이 속은 악한 세대라 말이요. 악한 세대. 속은 악이 가득 찼어. 속이 자기중심 자기 위주, 사욕이 가득 찼어.
열심이 소용 있는 줄 압니까? 부러워하는 것이 그게 소용 있는 줄 압니까?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시몬이라는 사람이 마술을 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빙자해서 마술을 해 가지고서 대인기를 끌어서 그 사마리아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분을 신같이 여기고 그분의 말이라면 절대 복종하는 그런 아주 시몬입니다. 시몬인데, 이 사람이 빌립이 가서 전도하는 전도를 듣고 이제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해 가지고서 이제 예수님 믿어 가지고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제가 이제까지 마술 전하던 것이 그것이 내나 예수교라고 이렇게 접을 붙여 가지고서 예수교를 이용해 먹을라고서 이렇게 지금 하고 있다가 사마리아가 전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그 사도들이 갔습니다.
베드로가 내려가 가지고서 그래, 사마리아에 가 가지고, 가보니까 전도는 받아서 예수님은 믿기는 믿지만 역사적인 성령은 한 사람도 받지 못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전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역사적인 성령, 역사적인 성령,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는 그 영감은 받았지만 역사 영감은 받지를 못했어. 이렇게 활동해서 전도하고 이렇게 자기가 변화되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런 변화 역사적인 영감은 받지 못한 것을 보고서 베드로가 안수하니까 모두 변화의 영감을 받고 역사의 영감을 받아서 모든 사람들이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시몬이 '이제 됐다. 이제는 빌립의 전도만 가지고는 참 신통치 못했었는데 이제 이 베드로 사도가 와 가지고서 전도하는 데에 영감 받게 해서 영감 받으니까 사람들이 변화가 돼지고 하니까 이 베드로에게 안수하면. 영감 받는 이 권능을 얻기만 얻었으면 내가 이제는 사마리아는 완전히 차지해 가지고서 과거에 마술로 점령했던 것 이제는 튼튼하게 예수교를 빙자해 가지고서 점령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서 베드로에게 갔습니다. 돈을 한 뭉텅이 가지고 가 가지고서 말하기를 '이 돈을 드릴 터이니까 나에게 당신이 안수하니까 영감 받는 그런 권능을 나에게 주시옵소서.'하고서 간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베드로가 그 시몬에게 대해서 한 말이 '네가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 그 말은 죄에 매여 있다 그말입니다. '매여 있다. 네 속에 악과 독이 가득 찼다. 악독이 가득 찼다. 그러기 때문에 이 도에는 참여하지도 못하고 이 도에서는 또 받을 것도 없다. 요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 따라 다니면서 얼마나 열심히 수종들었습니까? 빌립 전도할 때에 뒤에 따라 다니며 얼마나 봉사하고 얼마나 수종했습니까? 열심이 많았소. 아주 열심히 수종했어. 수종하고, 빌립은 그걸 모르니까 베드로가 올 때에 '아 이 시몬 이분을' 소개하면서 '이분이 참 우리도 전하는 데에 힘을 많이 쓰고 협조를 많이 했습니다. 아주 훌륭한 일군입니다.' 또 베드로가 전도할 때 거기 보면 열심히 다니면서 수종들었습니다.
열심히 수종들었어. 수종들었는데, 이제 베드로는 눈이 밝아서 알았다 그거요.
알아서, 뭘 가지고 폭로가 됐느냐 하면 돈을 가지고 하라 할 때에 '네가 돈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살라고 이와 같이 말을 하니까 네가 돈과 같이 함께 망하리라' 이래 말씀하시면서 해석하기를 '네가 불의에 매였다. 네 속에 악독이 가득 찼다. 네가 혹 회개하고 기도하면 이런 일이 이르지 안할 것이라,' 얼른 그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몬이가 있다가서 과거에 삽비라와 아나니아의 사건도 알기 때문에 그만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빌면서 '살려 주십시오. 나를 위해서 기도해서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해서 이런 일이 내기에 이르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이랬는데 그 뒤에 기도의 간청을 했으니까 베드로가 기도를 해 줬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연보 잘한다고 우리는 일군이라고 그렇게 속단하면 안 됩니다.
제가 진주 성경 학원에 갔을 때에 어떤 강도사라는 사람이 와서 강도를 하는데 나는 그때 강도사라 하기 때문에 목사 참 후보자이니까 아주 하늘같이 봤습니다.
그런데, 참 강도사는 강도사요. 그 강도사가 설교를 할 때 그런 설교해요.
'교회에 열심이 없어 교회 일할라 하면 뒤에 춧 돌 같이 달아 매여 가지고서 방해하는 그 사람이 교회를 해치는 것보다도 교회에 열심있게 날뛰는 그 사람이 교회를 더 많이 해칩니다.' 하는 그 설교를 했어요. 그 말 내가 똑똑히 지금 기억하고 있어요. 그분이 참 강도사는 강도사요.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종이라. 아마 뼈저린 무슨 느낀 일이 있는 모양이라.
이래서 우리는 교회에 열심히 일하는 것이 좋고, 교회 일하는 데에 하지 말라 해 가지고 하는 것이 안됐지만 그 둘이 다 있는 것을 잘 알아서 심사하지 안하면 우리는 실패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일하는 그 사람 치료하기가 더 어렵다 그 말이오. 열심히 일하는 사람 치료하기가 더 어려워요. 민첩하고, 목회에 대해서도 민첩하고 교인들도 잘 모우고 민첩하게 목회를 하는 그 사람 가운데 삼가 조심할 사람이 있다 그거요. 그것이 시몬이와 같이 복술을 가지고서 사람을 끌어서 사람이 많이 끌려오는 수도 있다 그거요.
요는 그것이 소속이 불의에 소속하지 안하고 주님에게 소속해야 돼요. 소속이 주님에게 소속해야 되지 세상에 속해 있으면, 불의에 속했다 말은 세상에 속했다 말이오. 그 사람이 '네가 하늘나라에서 멀지 않다.' 주님이 말씀 했어. '아, 네가 하늘나라에서 멀지 않다.' 하늘에 속한 사람이 있고 세상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람은 의에 속한 사람이오. 그 사람의 소속이 어딘가 그것을 봐야 됩니다. 소속이 어딘 가 그걸 봐야 돼요. 아무리 목회 잘해도 소용없어. 아무리 부흥회로 일시 사람을 막 혹하게 만들고 막 뒤비지게 만든다 해도 그것도 소용이 없어. 그 사람이 어디 속했나 설교를 들어 보면 세상에 속했는지 천국에 속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속을 찾아 봐야 되고. 그다음에는 속에 악이 있는지 속에 선이 있는지. 그 사람이 참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는 그것이 있는지, 속에 하나님 중심인 그 선이 있는지. 자기중심이나 민족 중심이나 국가 중심이나 돈 중심이나 뭐 이든지 그것은 똘똘 뭉쳐서 결론을 지으면 자기중심입니다. 자기중심이라는 악이 속에 있는지 그것을 살펴 봐야합니다. 있으면 저는 하나님의 도의 원수요.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요. 양의 도적이오. 절도요. 강도요. 이리요. 하나님의 종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살펴 봐야합니다.
이러기에 그 사람이 보자 그 사람이 보기를 중요시하기를 외부에 나타난, 이 외부에 나타난 이 세상적인 그것을 중하게 여기나? 그것을 중요시 하나? 그 사람이 하늘나라를 중요시 하나? 그 진리와 영감을 중요시 하나? 그 사람이 어디다가 가치를 두느냐? 우리가 이것을 살펴야 합니다.
이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속에 알맹이는 전부 다 자기중심, 종교 말년이 되면 그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도 그것 됐습니다. 신령한 이스라엘의 종교 말년에도 그것이 알맹이 됩니다.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중심. 지금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인데, 지금 너나 없이 교역자나 평신도가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위해서 내가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내기에 이용을 당하도록 하는 이 꺼꾸로 되는 이것이 되어지는 세상이라고 했으니까 요거 좀 심각하게 살펴봐야합니다.
뭐 저거 교회에 이런 통지, 무슨 기독교 연합회 무슨 선교회 무슨 선교회가 어떻게 수가 많은지. 선교회 선교회 이렇게 말하는데, 그 선교회라고 하는데 '그 선교회 본부가 어덴고' 해서 가 보면 남의 집에 간판만 하나 붙여 놓은 것 있고 또 통지만 그래 해 놓았지 옆에 가서 찾아도 모릅니다. 옆에 가서 찾아도 그게 없어. 그 몇 사람이 그렇게 이제 발기를 했느냐? 보니까 두 사람이 한 것. 세 사람이 한 것. 어떤 사람은 혼자 했어요, 혼자. 그래 가지고서, '이러니까, 여기에 선교비 보내라.' 이래 가지고서 또 아주 큰소리를 떵떵 해서 어떨 때는 그 협박에 넘어 가기 쉬워. 자, 그것 이 전부 속에 들여다 보면 자기 운동입니다. 자기 운동. 전부 자기중심 운동이오. 전부 십자가의 원수의 운동이라 그 말이오. 우리가 이것을 봐야 됩니다.
제가 십자가의 원수의 자리에 가 서서 있으면 십자가는 원수고 십자가의 원수는 한편이 됩니다. 자연히 개는 개로 모이고 소는 소로 모이고 제 동무 제 찾아 지내는 것은 필연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속하지 안한자가 하나님의 대적을 알지를 못합니다. 악이 중심되어 있는 자가 악이 중심되어 있는 자를 대적하지 못합니다. 친구로 화합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 중심으로 되지 안하면 자기가 이 악의 중심의 대적을 모릅니다. 대적을 몰라요.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다.' 참. 지금은 내용은 자기중심, 외부는 세상 위주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이거 뭐 다 속은 그런데 겉은. 누가 성자고 누가 뭐 악인인가? 겉은 꼭 같소. 전부 겉으머리 말로 발라 맞추고 이 수단 방법으로 하고 하는 그 겉은 다 번들번들 해서 전부 이 낯짜구는 꼭 같다 그 말이오. 외형은 꼭 같애. 외형은 꼭 같으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됐기 때문에 표적을 구해. 표적 구하는 사람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 그것이 예수교인 줄 알고 만족히 있는 사람들은 다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 들이요.
거기에서 튀어 나서 '이 겉으머리 간판은 이렇지만 속에 알맹이는 어느 것이 진짜인지 나는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서 갈급을 가진 사람들이 비로소 표적을 구합니다. 갈급을 가진 사람들이 비로소 표적을 구하요. 다, 천사의 말도 다 알 수가 있고 올바른 교리와 신조와 다 신학적으로 다 알 수 있고 다 알 수 있는데, 이 속에 중심이 악인지 선인지. 그것이 하나님을 위함인지 예수교를, 저를 위함인지 도무지 어떻게 장식을 잘해 놨는지 이것을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으로 무엇을 좀 표를 보였으면 좋겠다 그것이오.
○○○교회가, ○○○교회가 그렇게 많이 왕성된 것이 그것이 나는 그 내용의 실제는 모릅니다. 만 그것의 간증이라는, 간증이라고 그 글을 써서 책에 써 내놓은 데는 보니까 별스러운 간증이 없어요. 별스러운 간증이 없는데, 거기에서 지금 말하는 것을 좋은 것 말하는 것입니다. 금식 기도 하는 것을 좋은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좋은 것 하나 선포했기 때문에 그 값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 같아요. 금식 기도를 그들이 선포하고서 금식 기도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 금식 기도 하는 것을 하나님이, 지금은 참 밥을 굶고 금식 기도를 해야 될 때입니다.
이러니까 그것 했으니까 하나님이 좋아할 것 아니겠소? 또 그리고 거기에는 표적을 구해요. 표적을 구해서 자꾸 이적을 구하고 자꾸 그라는데, 이 적을 구해서 요만한 이적이 있으면 그 이적난 것을 온 교계가 다 알아요. 그 ○○○교회 진영이 다 알아요. 여기에 가도, 그 요만한 이적이 나면 그 이적이 '이런 이적이 났다, 이런 이적이 났다.' 이적이라 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랑을 해요. 하나님이 이런 일했다 저런 일을 했다 하니까 이제 '○○○교회는 이적 행하는 교회라.' 모든 사람이 다 인식을 가질수 있을 만침 그 이적을 다 드러냅니다. 드러내서 자랑을 해요.
발표를 해요. 그 이적을 발표하는 것이 하나님 하신 일을 발표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모두가 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누가, 말이야 천사 같이 누가 못해? 설교야 천사같이 못해? 교리와 신조야 누가 신학자같이 못해? 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주장을 하나 안 하나 그것이 문제다 하는 것이 모든 말세의 교인들의 의문이 가득 차가지고 있는 것이 말세의 교회입니다. 의문이 가득 차 가지고 있는 것이 말세의 교회요.
이러니까, 말세의 교회들이 이거 뭐 여기에서는 불이 제일이다. 저게는 뭐 방언이 제일이다. 저거는 뭐이 제일이다. 방언 하는 그것도 이제, 방언 하는 것도 아 방언이 없는데 다른 데 방언이 있으니까 그거라도 그런가 싶어서 따라가 보는데, 방언 그것을 과연 제가 그것을 하려고 해 보니까 되어지거든. 와 가지고 자꾸 이래 한참 그러니까 세가 고만, 세가 너무 곧아서 빨리 할라 하면 세가 구불라 따라가지 못해. 세가 따라가지 못하도록 하면 그 고개가 넘으면 방언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고개만 넘으면 방언이 돼요. 그렇게라도 해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간절히 심신을 기울이는, 그 '하나의 방편을 기울이는 것인데 좋은 방편을 연구했어. 그러나. 방언의 진짜는 그것은 아닙니다.
오순절 방언은 그 후 방언과 좀 다른 방언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이 방언을 말하기를 일만 마디 방언이 한 몇 마디 깨닫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서 그렇게 말했고, '예언하기를 힘쓰고 방언하기를 힘쓰지 말아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언이라 말은 뭐이 예언이냐?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 주는 것이 그게 예언이라 말이오. 미래사를 말하는 것이 예언이 아니라. 그 오순절 방언은 어떤 것이 오순절 방언이냐 하면 오순절에는 한마디, 한 나라 방언으로 설교를 하는데 그 설교를 여러 각국 사람들이, 그 설교를 알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무슨 말로 전하든지 그 전하는 것을 알아 듣는 그 능력이 방언의 능력입니다. 또 자기가 무슨 말로 하든지 자기 하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 이해가 되도록 하는 전해서 이해시키는 능력있는 그것이 방언의 능력이요, 또 자기가 이해를 하는 것이 방언의 능력이오. 그것이 방언의 능력입니다.
이래서, 모두 다 세상이 이래 돼 놓으니까 의심에 가득 찼습니다. 이 지금 이십 세기의 성도들은 의심에 가득 찼소. 이번에는 여기 모이니까 여기는 많이 모였소. 오늘 학생들 다 갔습니까, 인제? 예? 새벽에 갔어? 잘했어. 와서 좋아하고 갔는가? 고생하고 갔는데. 갈 때 좋아해? 좋아해요? 마음에 미안해요.
그 몇 시간 참석하겠다고 막. 학교 선생들은 야단을 치고 이래 쌓는데도 쫓아와 가지고서 그래 고생을 하고 가는게 아름다워요. 이렇게 모여서 이래 하는데, 지금 이제 서울에서는 무슨 집회를 한다고 해도 안 모입니다. 안 모여요. 이제는 안 모이니까 마구 돈을 들여 가지고 선전을 많이 해서, 한번 집회할 때에 선전비가 얼마든다더라? 오억 들었다 하더나? 내가 그말 들었는데 그말이 바로 맞아요? ○목사님 그거 잘 알 건데. 아니야. 그 좋은 거야 나쁜게 아니야. 내가 나쁘다 하는게 아니라. 지금 좋은 재료인데, 좋은 인재인데, 이 전환만 되면 큰 인물로 지금 쓸 수 있는 좋은 도구인데, 지금 딴 데 때는 늦었는데 얼른 지금 한 군데 기울이라 그 말이오. 그 누가 안 알고 있어요? 먼저 빌리그래함 목사 왔을 때는 선전비가 얼마 들었다 했지? 얼마라더라? 고 정확한 숫자가 아니면 말하지 마이소. 나중에 도로 공박을 당할라.
그런데, 이래 가지고 많은 돈에 선전을 이래하니까 모든 회의 가진 사람들이 자 이거 세계의 어떤 운동이다. 이렇다.' 막 이래 가지고 말을 하니까 거기 가서나 의심을 풀까 해 가지고서 온다 그 말이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온다고 해도 안 갑니다. 가 봐야 아니라 그거요. 이러니까, 표적을 보여 돌라 그 말이오. 표적을 보여 돌라. 표적을 보여 돌라. 표적을 보여 돌라 하는 잣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기 때문에 고 표적을 보여 돌라 하는 것으로서 그렇게 말씀을 해 놨습니다. 너무 속에는 악이 중심이지. 껍데기는 음란이라 말은 번쩍거리는 그 세상을 취하기 위해서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기 위해서, 왕도 음행하고 자기도 음행하고 종도 음행하고 전부 음행하고 못난 것들만 음행 못 했어. 못난 것들만 음행 못 했어. 못난 것들은 음행 자치에 포도주만 먹고 취했어. 세상을 차지도 못 하고 세상 차지하고 싶기만 차지하고 싶고서, 세상 차지하자는 그런 사상에만 그저 피동돼 가지고서 그런 소원만 가지고 있다 그거요. 계시록에 그렇지 안했소? 그거 우리가 보고서 참 아멘을 가져야 됩니다.
이러니까 이 종교 이스라엘 말년도 연마에 연마를 가하고, 시련에 시련을 가하고, 연구에 연구를 가하고. 마술에 마술을 가하고, 조화에 조화를 가하고 방편에 방편을 가한 것이기 때문에 겉으머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번들번들하고, 다 번들번들한데 그 속이 어떤 가 모르겠다 그 말이오. 속이 어떤고. 속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그까짓 거는 암만 잘해 봤자 도매금이다. 다 잘한다. 그까짓 거 보고는 우리 따라가지 못하고 의문이 우리 속에 가득히 찼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 이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표적을 보기를 원합니다.
이래서 얼마 전에 그 ○○○에 ○○○장로가 표적이 나타났다 그래 가지고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뭐 설교가 좋아서 따른 것이 아니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의문을 막 가지고 있습니다. 의문을 가져. 지금 많은 사람들이 막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의문의 모든 의심을 풀어 주는 것이 뭐이냐? 의심을 풀어 주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도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진영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설교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을 좀 보여 돌라 그 말이오. 이것을 좀 보여 돌라. 모두 다 잘하니까 뭐이 뭐인지 도무지 모르겠어. 너무 껍데기는 꼭 같이 꾸며 놨기 때문에 모르겠다 그거요. 이것이 종교 말년의 상태입니다. 종교 말년의 신앙의 교회 형태들이오.
이런데 그 ○○○씨가 '여기에서 이적이 나타났다.' 이적이야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옳다. 그 ○○○장로님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는 구나. 같이 하는 증거는 인간이 할 수 없는 병이 낫았으니까 그게 증거 아니냐?'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이 우리 교회 어떤. 장로 한 분이, 그분은 와도 진짜 장로가 아니라.
거기가서 장로 받았어. 거기 가서 장로 안수 받았어요. ○○○씨 한테 가 가지고서 장로 안수를 받았는데, 그래 그분에게 안수해 돌라 하니까 눈을 만지는데, 기압술이 있어. 눈을 만지는데 거기다 기압술을 넣어 놓으니까 막 눈이 빠지는 것같이 아프더래요. 이래 가지고 나중에 일어나 보니까 눈이 벌거이 피가 모여 가지고서 이렇게 되어졌어.
그걸 눈으로 죄를 지어서 그렇다. 눈으로 죄를 지었다. 회개하라. 이래 가지고서 협박을 해 가지고서 회개를 시키고 이러니까, 그때 그것 있었고, 또 병 낫는 그런 표적이 나타나니까 그것 보고서 사람들이 많이 따랐습니다. 따라 가지고 그때 한번 집회하면 이 말 안에 금이 한 말씩 들어 왔다. 한 말씩 이래 차고 이래 가지고서 굉장한 자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가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은 알았습니다. 그 속에 소속이 뭐이며 중심이 무엇이냐? 그가 지금 노리고 있는 그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그런 것을 설교 말씀에 자꾸 나온다 말이오. 그게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소. 자꾸 이래 나오기 때문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대번에 알아요. 대번에 알아. 저도 가서 반 시간 듣고 난 다음에 '이거는 이 사탄의 도다. 아니다.' 반 시간 듣고 와 버렸습니다.
그때 뭐 ○○교파에 속한 교역자들만 그리 기울어지지 안하고. 몇 기울어지고, 기울어진 것은 모든 사람이 주목을 하고. 이 주목을 해서 모두 그렇게 모욕을 주니까 안 가고 기울어지지 안했지만 다른 진영에서는 목사 장로들이 그리 기울어진 목사 장로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랐습니다. 이래 가지고 저도 '아 갑시다. 아주 진리입니다.' 자꾸 이렇게 말을 하는 소리 많아도 저는 가 가지고서 '보자' 하고서 반 시간 보고서 와 가지고서 그저 그것이, 그거는 뭐 많이도 못 가고 몇 해만 가면 그 결말이 다 나올 것이라, 그 진상이 나올 것이라고 말을 하고서 그때 제가 있는 서부 교회 교인은 거기에 가 가지고 미혹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랬는데, 거기에는 표적을 말하기를, 모두 다 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표적을 말하기를 그래했어. '자, 여기에 앉은뱅이 일어난 사람 없습니까? 이라면 일어나 가지고 '나는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거짓부리라 그 말이오.
거짓부리 거짓부리라도 앉은뱅이 일어났다고 하니까 막 박수를 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 옆에 사람이 있다가 아, 저 사람이 아무 데 있는 사람인 데 앉은뱅이인데 일어났다고 자꾸 사람들 중에 그런 거짓말 증거에 모든 사람들이 다 혹해 가지고서. 그 표적이 나온 것을 보고서 모든 사람이 혹 해 가지고서 막 일어났다 말이오, 막. 이러니까, 오늘은 표적을 구하는 시대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시대. 이러기 때문에, 지난번 제가 교역자회 때에 그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이 모든 교회들이 전부 껍데기는 번들 번들하게 꼭 같이 외부는 꼭 같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껍데기 보고는 따라 올 사람들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들이 전부 다 마음이 가라앉아 가지고 있다. 이래 가지고서 교회가 선지가 오래 되면, 자연히 아들 놓고 딸 놓고 자꾸 커지니까 오래되면 교인 수는 늘어지지만 속에 생명 역사는 없다.
이러니까 모두 교회들은 어른 아이 없이 전부 의심이 가득 차 가지고 있다.
미국 같은 나라도 의심이 가득 차 가지고 있다 이 말세가 되니까 전부 의심이 나. 껍데기는 다 훌륭하니까. 속에 하나님이 속에 역사하는지 안하는지, 암만 자기가 그래도 하나님을 찾아서 향해서 가고 하나님에게 속하고 싶고 하나님의 그 구원을 받고 싶어 하지 인간 보고는 따라가기 싫은 것이 인간들이라 그 말이오. 이러나, 전부 껍데기에 좌우되는 거지 어느 것이 숯까마귀인지 암까마귀인지 모르는 것 모양으로 도무지 알지를 못하겠다 말이오. 이러니까, 표적을 구하는 시대가 됐으니까 표적을 행해라 그렇게 말했소. 표적을 행해라.
공연히 얼마 전에 교리와 신조만 가지고, 말만 가지고서, 노우트 몇 권 만 가지고 자꾸 이래 울궈먹는 사람들이 이제 아무 기도 하지 안하고 영감 없어도 된다는 이걸 가지고서 이렇게 해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이 없다 말이오.
표적이 없으니까 표적을 아주 적대시 하고 표적을 이단시 했습니다. 표적을 이단시 했다 그거요. 벌써 표적 행했다 하면 '헤이구 그 거는 유치한 교회요 시시하다.' 이렇게 아주 못 쓰게 평가했습니다. 못쓰게 평가했소.
이러니까, 차차 차차 자기가 그 하나님의 증거로 모두 다 표적을 해서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우고 문둥이도 깨끗하게 하고 또 소경도 보게 하고 또 이렇게 모두 이런 기적을 다 행했지만 행한 사람들이 '아이구 이것은 아주 유치한 신앙이요 이것은 다 속화된 것이요 이거는 다 지저분한 것들이니까, 이제는 깨끗한, 정선된, 이 신사 참배를 이긴 참 깨끗한 승리의 이 도인들은 다 그런 것은 하지 안하는 것이니까 이제 교리와 신조 만 가지고 날 뛰는 것이니까' 이런 것이 수치인 줄 알고 그것을 다 무시해 버렸다 말이오. 무시해 버렸어.
이적이나 기적이나 하는 것을 무시해 버렸다 말이오. 그래서 그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등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그런 사람들이 그 교파에서. 신학교에서 이적이니 표적이니 그런 것은 옛날 사도들에게 있는 거지 지금 시대는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까지 가르쳤습니다. 이상하게 한다고서 그런 말을 듣고서, 제가 들은 것은 아니고 여기에 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그 집회하는 데에 환자들이 많이 나았소. 환자들이 많이 낫고 하니까 거기 가면 병 낫는다는 것이 소문이 나 가지고서 뭐 집회를 하니까 그만 환자들만 앞에 가득 찼고, 그 환자들은 밤새도록 누워 자면서 그만 거기 앉아 가지고 드리 배기니까 환자들만 그 앞에 있고 성한 사람들은 저 변두리로 집 밖에, 이 예배당 밖에 있어야 되지 안에 있을 수가 없어.
그런데, 하루밤에 설교를 할라 하니까 암만 설교를 해도 설교가 안 나오고, 입이 막혀서 설교가 안돼요. 설교가 안 되고. 그런 일이 없었는데 설교가 안돼.
그래서 설교를 하다가 중단을 하고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설교를 못 하게 하시니까 내가 설교를 하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기도하라.' 하고서, 통성으로 기도하라고 모두 기도를 시켜 놓고 강단에서 기도를 하는데. 강단에서 기도를 하면서, 내가 그렇게 기도하니까 내게 영감이 와 가지고 깨닫게 하는 것이 있었어요.
고때 같이, 비좁아서 강단에 사람들이 올라와 가지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기도한 사람 가운데 제가 그때 같이 있는 사람 두 사람이 기억납니다. 하나는 ○○○목사님의 사모님 ○○○ 집사님이 거기에 있었고 또 거기에 ○○○ 집사님의 부인, 아따 그 이름이 뭣고? ○○○, 또 '내 이름은 잊어 버렸는갑다' 그래 가지고 섭섭하게 ○○○씨 생각지 말라고요. 아는 이름 도 자꾸 잊어버려져. ○○○ 씨가 거기에 참예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아지기를 '이러니까, 이거 육체의 병 고치는 예수교로만 모든 사람에게 오인이 되어지고. 이제 사람을 고치는, 사람 병을 고치는 이 신령한 기독교인 것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께서 이런 것입니까? 그러면 내가 그때도 안수하는 일은 별로 안했어요. 안수는 안하고 이제 설교하고 나서 이래 통성으로 기도하면 환자들이 다 많이 나았어요.
이랬는데, '이제는 병 낫기 위한 기도는 안하고 안수하는 것도 안하겠습니다.
이것이 잘못이라면 이 시간 주님이 말씀을 주시는 것으로서 제가 깨닫고 이다음에는 말씀만 증거하고 이 이적이니 표적이니 하는 그런 것을 상대로 삼아서 강조하지를 안하고 이제 그것을 위주로 하지를 안하겠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당장 말씀을 주시오. 말씀을 주시는데, 그 날 밤에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의 말씀을 주시오. 주시는데, 그날 밤에 열 처녀의 말씀을 증거해 가지고 그날 밤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큰 변동이 일어났어요.
그러고 난 다음에 그만 그것을 무시해 버리고 다 고만 그래 나왔는데. 가만히 몇해 전부터 생각을 하니까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다.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실, 그것도 하나님이 이 진영을 당신이 주관하고 있는지, 이 설교를 당신이 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알게 뭣고? 예수님 당시도 예수님의 설교도 듣고 설교 믿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설교하시고 난 다음에 표적이 나오니까 그 표적 보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는데, 이 표적을 이것을 위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괜찮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너무 강하고 억센 사람들이, 권위 있는 사람들이 '이 표적은 그것은 지저분한 것이고 표적은 이 시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도 시대 옛날 시대이지. 초대시대 것이지 지금은 표적이 필요가 없고 말씀이 필요가 있다.' 이렇게만 말하고 그저 보이지 안하는 영감만 필요하다, 영감도 보이야지? 다 너도 영감 받았다 나도 영감 받았다 하니까 그것도 안 보이고, 표적을 무시하니까, 그런 권위 있는 학자들이 그러니까 표적을 주장하다 가는 참 정말로 몰려 가지고서 꼼짝을 못 하겠다 그 말이오.
이래서, 그런 필요성을 느껴도 그것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얼마 전에 제가 대구에 집회를 하면서이던가, 아니 거창 집회 할 때인가 하면서 '아무래도 이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야 되는 것이니까 하면서 그 표적에 대해식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그 집회 준비할 때에 표적에 대해서 기도를 하고 이랬었는데 그 집회에 표적 나타난 것이 우리 교회만 해도 한 칠십 몇 개가 나왔소. 칠십 몇 개의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도 여기에서도 표적이 나타났는데 우리는 표적 나타나면 이것이 수치스러운 것인 줄 알고 표적 하면 입을 삐쭉거리면서 '또 유치한 소리 한다. 표적 그까짓게, 사람 변화가 제일이지. 사람 변화 받아야지 뭐 육신의 병 낫는 것 그까짓 것.' 삐쭉거리고 이러니까 아예 병 나은 사람은 큰 죄를 지은 것 같아서 고만 병 나은 사람 속으로는 좋지만 이 집회애 와 병 나았다 그런 소리는 부끄러워 말 못 하게 됐다 그 말이오.
이게 하나님의 도를 가졌어! 복음을 잘못 받아 가지고서, 잘못, 스승된 자는 받을 심판이 크다.' 잘못해 가지고 이 오인을 시켰더라 그 말이오. 아 그래 가지고 여기에 와서, 저 버드나무 깽군에 어떤 사람 그 사람이 창수인가 뭣이', 내장염이라든가 뭐 내장이라 뭐이라 이래 가지고서 의사가 말하기를 '이제 그 창수는 끊어내야 되는데 잘 수술하면 살는지 안 살는지 모르는데 이제 아무 날 수술합시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날이 뭐이냐? 집회 오는 날이라. 집회 오는 날이니까 그 사람 병원에 돌아다니며 하도 약도 많이 쓰고 이래 놓으니까 '아이구, 죽으면 죽고 이제 접릎나 가 가지고서 집회나 참석하고 그래 고만 죽으면 죽고 그만 그랄란다.' 죽을 요량하고 왔다 말이오. 와 가지고 석기도 오지도 못했어. 오지도 못하고 저게 버드나무 강변에 있으면서 그때 그 스피커가 갔든지 안 갔든지 그거는 모르겠어요.
이런데 거기에서 있으면서 멀리 바라보면서 그저 집회의 소식이나 듣고 이라는데 저도 지나 가니까 '여기에 이런 환자가 드러 누웠습니다.' 이래서 들어가면서, 한번 지나가면서 한번 기도해 준 일이 있었어요. 있었는데 그분이 그래 누웠다가 나중에 차차 차차 일어나 가지고서 끝에는 집회 참석했어요.
○○○ 권사님. 어디 있어요? 손 들어 봐. 그 사람 마지막 집회 좀 참석했어요? 참석했대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 그랬다가 마지막에, 집회 마지막에 참석했어, 참석했는데, 병원에 가니까 '아이구, 이상 하요. 수술할 것 없습니다. 다 나았습니다.
다 나았다 해서, 사형 선고 받은 사람이 그만 다 나았다 하니까 바로 고 만 배 타고 나가 버렸다 말이오. 배 타고 나갔는네, 그렇게 그거 나았지만 그 사람도 '집회가 가지고서 신령한 은혜로 사람 병은 못 고치고, 신령한 은혜로 사람 병은 못 고치고 육신의 병 그것만 고치고 와 가지고서 뭐. 그래 할까 싶어서 겁이 나서 나았다 소리를 못 해요, 부끄러워서. 또 우리도 말하기를 '그 까짓 거야 그까짓 거야.' 뭐 ○○○ 교회 같으면 막 책자에 나오고 끝장했을 건데.
이러니까, 이 죄를 지었다 그말이요, 죄를 지었어.
이러니까. 그 사람들 조차도 그 나은 것이 부끄러워. 아. 집회 와 가지고서 창수 구멍 뚫어지고 죽는다 하는 사람이 당장 가서 창수가 나아서 그렇게 놀라게 나은 그것이 부끄럽다 그 말이오. 아 부끄러운 것. 수치스러운 일을 했으니까 부끄러우니까 항상 다녀도 큰 소리를 못 해요. '저거 집회 가 가지고서 육신의 병만 고쳐가지고 왔다. 신령한 병은 못 고치고 육신의 병만 고쳐 가지고 왔다.
이렇게 천한 사람으로 이래 보고 있으니까 그 사람 이 못 배겨서 다른 교회로 가 버렸어. 다른 교회로 가 버렸어, 우리 ○○ 목사님, 요게 와 가지고 여기 천막에 드러누웠는데 고름을 빼낸 것이 몇 달 재냈어. 계속 빼냈어. 이래 청량리 교회 바짝 말렸어. 돈 자꾸 치료해줄라 하니까, 장 고름이 줄줄 줄줄 장 나와요. 옆구리에 고름이 나와 가지고 여기 대롱을 대놓고 장 이래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왔소. 와서 내가 가 가지고서, 그때 조사님이지? 목사님 됐던가? 우리 ○○ 목사님 안 보이네 어디 있는고.
나는 저게 이마가 훌떡 벗겨진 양반이 있기 때문에 우리 ○○ 목사님인가, 눈이 어두위 자꾸 이랬더만 자세히 보니까 아니로구먼. 어디 숨어 있노? 이랬는데, 아 목사님, 이번에 집회 왔소?' '와서 누워서라도 참석하려고 왔습니다.' 저 천막이라 조 천막. '아, 누워서라도 참석을 하십시오 지금도 고름이 계속 나와요?' '예.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랬는데 그만 그 집회하고 나서 고름 바짝 말라 버렸다 말이오. 바짝 말랐는데, 그래 금요일날 갈 것인데 안 갈라 하고 나한테 옆에 사람 있다가 말하기를 '야, 그 그렇게 누런 고름 난 그게 옆구리 창난 것이 아물고 나았으니까 그 목사님한테 그런 감사한 소리도 하고 그런 소식도 전하고, 지금 병에 대해서 걱정하는데 나았다 하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느냐? 가 가지고서 좀 얘기도 하고 그래 찾아보고 가거라.' 이랬다고 왔어요.
와도. 와도 부끄러워서 나한테 잘 못 와. '에이구, 신령한 병이나 고쳐야 되지 육신의 병 그것 고쳤다고서.' 그라면서 '육신주의, 육신 덩어리 육신 덩어리' 이렇게 할 터이니까 부끄러워서 그래, 어째 옆에 사람이 권해 쌓아서 왔어요. 와 가지고 '어째 됐노?' 이러니까, '참말로 바짝 말랐나?' '예. 바짝 말랐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없습니다. 바짝 말랐습니다.
그것만 해도 뗘들면 굉장할 것인데, 그거 하나님이 했소 사람이 했소? 그거 하나님이 하셨습니까 사람이 했습니까? 믿음이 없는 세대에 믿도록 하기 위해서 표적을 보여 주시는 것인데 그 표적을 수치로 딱 감춰 놓은 그 죄값이 누구에게 돌아 갈란지? 그걸 말하지 않는다 그 말이오. 그래야 '아, 그게 과연. 그 설교를 듣고 그랬으니까 그 설교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종의 설교로구나. 그 진영에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구나.' 이것을 사람들이 보고 알면 쭉 따를 것인데 이걸 가려 놓고 있다 그 말이오. 이 죄 값을 받아야 돼요.
또 목사가 그라면, 목사가 그라면 뭐 하기를 '아따 목사님 자기 권능으로 무슨 병 나은 것같이 자기 자랑 한다.' 또 요놈의 마귀란 놈이 요렇게 탁 말하니까 목사도 또 시험에 들어서 그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제가 한 것같이, 뻑 제자랑같이 여겨져서 또 말을 못한다 그 말이오.
심장판막증인가 그 판막증은 한국에서는 뭐 치료가 안 된답니다. 요새는 지금 뭐 기술 제휴가 되어 되는 줄 몰르지만서도 치료가 안 되는데. 작년인가 그 학교 선생이 그 학생이 하도, 참 귀여운데 그 병 때문에 문제다 해서 그 선생들이 의논하고 또 방송국에도 의논하고 신문사에도 외논하고 이래 가지고서, 이걸 신문도 하고 방송도 가지고서 모두, 그날 모두 회의를 모아 가지고서 이 보조를 받아 가지고 이 학생을 미국으로 지금 수술하러 보낼라고서 그렇게 딱한 그날이 월요일이라. 거창 집회 가는 날이라 그 말이오. 접회 가는 날인데 요 학생이 있다가서 '아이구 내가 뭐 죽으면 죽고 살면 살지 하나님이 사랑하니까 당신의 뜻대로 하지 당신이 좋게 해 주시는데 나 오늘 집회 안 가고 그것 하겠다고, 내가 미국 가서 수술 받겠다고 내가 안한다.'이라면서 그 판막증 앓는 학생이 갔다 그 말이오. 집회 왔어, 아 집회 왔다가서, 집회 왔는데 고만 밥맛이 있고, 고만 몇 시간 있으니까 밥 맛이 있고 기운이 나고 이래 가지고서 지금까지 꼼짝 없이 주일학교 반사 잘 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왔을 걸? 그런데, 여기 하나님이 같이 하는 것을 도무지 해 주지 안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번에도 내가 기도를 그래 합니다. 이거 모두, 이번에 하나님이 말씀을 주셔서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하는, 그 마태복음 12장 말씀 이가? 예? 12장 말씀이요? 우리 ○ 목사님 지혜 총명 참 있어. 성구 모르면 저 양반한테 가서 물으면 다 딱딱 바로 가르쳐 준다 말이오. 이런데, 이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그거요. 한 가지 부족한 것. 고것만 착 고치면 참 날아가고 뛰어가고 큰일 하겠는데. 이 말씀에서,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니 내게 깨달야진 것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기 때문에, 속은 악이고 겉은 다 이 세상주의라. 고 말씀과 꼭 같거든. 제 눈으로 볼 때에 나나 너나 할 것 없이 교회라 하는 것은 전부 속에 제 중심이오. 목사도 제 중심 장로도 제 중심 모두 제 중심이라.
어디 한군데 보니까 큰 기도원을 지어 놨다고 이라는데 기도원 지어 놓은 장로를 내가 만났소. 그 기도원 참 짓기 힘들었습니다. 돈을 뭐 삼억을 들여서 기도원을 지었다 하든가 이랬는데. 기도원 짓는테 삼억 들여서 지었다 하는데 거기에도 아마 몰려 나간 것이 한 일억이나 그거는 어디로 싸져 나간 것 같고, '그래. 그것 지었으면 얼마 어떻게 잘 지었습니까? 한 군데는 춤추는데.
한군데는 춤추는 데, 한 군데는 또 도야지 잡아 가지고서 개나 뭐 도야지 고기 잡아 가지고서 회식하는 데, 또 한 군데는 뭐 하는데 또 예배드리는데 그래 몇 군데 이래 해 놨데요. 이래 해 놨는데, 그래 주일날 되면, 주일날이나 다른 날 되면 장로님들이 다 우 올라오십니다. 장로님들이 올라오시면 도야지 한 마리 잡고 가서 탁주 한 말만 받아 가지고 오라고 이랍니다.
이래서 그 집사님이 '아이구 장로님들, 제발 술일랑 잡수지 마십시오, 좀 술까지 잡수시고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먹고 못 하는 게 있는가? 그런 소리 하지마. 암말도 말고 집사는 장로들 시키는 대로 할 일이지. 가서 받아 가지고 와.' 그래서 술 한번인가 받아 줬다 하든가, '내 술 심부름은 안할랍니다.' 하면서 술은 안 받아 줬다 하든가, 그래 가지고서 술 받아 다 먹고서 이래 하는데.
그 기도원 짓는 것도 그 속에는 더다 보면. 그래 가지고 이 사람은 뒤에 그것 가지고서 지금 뭐 호텔 만들라고, 이 사람은 요리 돌려 빼 가지고서 돈벌이 하려고, 일이 어떻게 그런 꿈을 꾸고 자기 꿈을 가지고 집이 고약하게 우습게 돼 가지고 있대요, 돼 가지고 있기를. 그것은 표가 나지만 이것 참 익숙한 도적은 도적질을 해도 표가 안나요. 안 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것 보면 무슨 전도협회 무슨 회 무슨 회 막 이래 가지고서 전부 그런데 그 속에는 전부 그것 가지고서 제 사다리 만들어. 저 올라 간 사다리. 이래 가지고 자기를 유명하게 만들고, 그래 가지고 자기 집중으로, 자기 인기 집중을 시킬라고서 이와 같이 하고 있는, 속에는 보면 다 내 나 네나 모두 다 새카맣게 전부 자기중심 악독이다. 속에 악이 가득찼다. 독이라는 것은 자기중심, 모든 것을 자기 위해서 하려고 하는 이것이 자기중심이오. 독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 전부를 다 이용해서 자기를 위하도록 하는 것. 모든 사람을 자기 위해 점령하는 그것이 독입니다.
이런데,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이러니까. '아, 악하고 음란한 세대 이러니까, 모두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다 자기도 그렇게 연극할 줄 알기 때문에 알기는 알지만 자기가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지 안하시고 하나님을 만져 본 일도 없고 접촉해 본 일도 없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러니까 사람 말만 듣고 껍데기만 꾸며 놨지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지 하는 것을 체험하고 경험하고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이 궁금한 의문 중의 의문이 말세의 오늘의 한국 교회요 세계 교회입니다. 세계 교회요.
이러기 때문에, 지난번에 교역자회에서 제가 할 때에,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의문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 이제까지는 표적을 죄 짓는 것같이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늘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표적이 없으면 하나님의 도를 사람들이 인정치 안한다. 이 하나님의 도가 아귀의 도가? 인본의 도가? 그것은 이제 나타나는 표적을 가지고서 사함들이 인정을 하려고 지금 이렇게 헤매고 있기 때문에 표적을 행하는 사람이 돼져라.' 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표적 행하는 사람이 돼져라.
이러니까, '아이구. 목사님 자꾸 표적을 너무 강조하고 이라다가는 나중에 몰립니다. 참말로 정말로 이단으로 몰립니다.' 인자 그랬는데, 이제는 이제는 꼼짝 안 하요. 그 뭐 내 발 아래 꽉 밟았어요! 표적을 말한다고 이단으로 모는 그거는 아예 내게 속에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일이지 그것은 아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도 아무리 능한 설교를 하시고 이와 같이 했지만 표적이 없으니까 아무도 안 믿었는데 풍랑을 잔잔케 하니까 그 표적 보고서 '참으로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모든 환자들이 낫는 걸 보고 '참으로 하늘에서 오신 분이시다' 아, 너희들이, 죄인의 소리를 듣지 안하고 의인의 소리를 듣는데 내가 나면서 눈먼 봉사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나면서 눈 먼자의 소경을 너거는 하나도 띄우지 못했는데 내 소경의 눈을 띄웠는데 그분이 하늘에서 안 하고서 마귀에게서 왔다고 그렇게 생각하느냐?'그 자신이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표적을 보여서 오늘은 사람들의 의심을 모두 다 깨뜨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도를 그들이 참 받아들이는 이런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증거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순복음 교회서 표적을 행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표적을 행하는데 거기에서 표적이 그렇게 많이 나타난 것이 아니지만 표적이 뭐 많이 나타나나 적게 나타나나 나타난 것은 나타난 것 이지 뭐이요? 그 집회에서 표적 하나만 나타나도 하나님이 이 집회에 같이 하셨다는 증표아니요? 그런 것 아니오? 이러니까 깐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서 증거를 해야 되는데 이것을 큰 죄인 줄 알고 숨겨 뒀다 그 말이오 옆구리 창수가 뚫어져 가지고서 그날 여기와서 집회 말씀이나 듣고 죽겠다고하는 그 사람이 ○○○ 권사님의 식구요. 그 이름이 뭡니까? 뭐 뭐라 해도 들리지 안하는구먼. 사람이 아주 뚱뚱하게 아주 잘 생긴 사람입니다.
이런데, 또 말 들으니까 뭐 어디도, 반대를 하기 때문에 내가 그래 말했소.
여러분들 속지 맙시다.
어떤 사람이 귀신 들린 사람이 있는데, 귀신 들린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 귀신 들린, 그 귀신 들려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귀신을 쫓아내 주십시오.'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고 이래 할 때는 청산유수의 기도를 내나 네나 똑 같이 한다 그 말이오. 꼭같이 하는데 '귀신이 나가구로 좀 기도를 해 주십시오.' 이러니까 제가 귀신 나가라고 기도했다가 귀신이 안 나가는 날이면 이건 큰 수치를 당할 터이니까 '뭐 그런 육뎅이 소리를 하고 있어? 하나님의 진리만 깨달으면 그런 거야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지.' 이라면서 그렇게 귀신을 나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이 귀신을 나가게 하실라면 나가게 하실 수 있으니까 귀신나가게 해 달라고, 이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 할 때는 하나님이 들으셔야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앞에 껍데기로 기도할 수가 없고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나님이 들어야 되겠다 해서 하나님께서 들어 달라는 그런 간절한 기도가 되지만 그거 없이 기도할 때는 우리 마음의 기도가 간절이 없어도 될 수가 있다.
이러니까, 표적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제일 최고를 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안 믿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표적이기 때문에 최고의 것은 아니지 만 그래도 표적이 나타나야 될 때는 나타날 수 있도록, 귀신이 쫓겨 나가야 될 때에는 쫓겨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어쨌든지 우리 기도에, 우리 설교에, 하는 일에 함께 하시는 이것이 증표로 나타나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된다는 거. 함께 하시는 것이 뭐 표가 안 나타나면 함께 하시는지 안 하는지, 너도 함께한다 나도 함께한다, 너도 정통 나도 정통, 네 가 제일 내가 제일, 전부 다 이라는 판이니까 이것을 모르니 하나님의 표적이 나타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돼야 우리의 망령이 회개가 된다. 우리의 게을이 회개가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표적이 나타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표적이 필요 있을 때에는 나타내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된다 그렇게 제가 선포를 했습니다. 그랬는데, 어떤 목사님 있다가 '아. 과연 그 사람이 병이 들었는데, 그래서 몇 달 다른 것 이래, 의사 대도 안 되고 이래서 기도를 이렇게 하는데, 그래 그 병을 낫게 해 돌라고서 기도를 했더만 그 병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라는 목사가 나한테 왔소. 그래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그러면 목사님, 내 후배이기 때문에, 요 만할 때부터 키웠기 때문에, 내가 그래서 말했어. 목사님, 그라면 기도 할 때에 그것을 그 문제를 두고 기도할 때와 그 문제를 두지 안하고 평소에 기도할 때와 하나님 앞에 간절함이나 또 하나님이 들어셔야 되겠다는 그참 소원이나 하는 것이 같더나, 좀 다르더나?' 물었소.
같더나 다르더나 물었어. 다르겠습니까? 같겠습니까? 다르다 그 말이오. 달라.
하나님이 안 들으시면 '아이구 이 목사는 권위 없다.' 이랄 터이니까, 하나님이 그렇다고 해서 다 낫아야 되는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나 하나님이 들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낫아야 될 때 내가 믿음 없는 기도하니까 안 들어 주는 수도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이 들으시고 표적을 나타내서 필요하면 표적을 나타내고, 표적을 나타내지 안하고 또 그저 더 큰 표적을 나타낼라면 더 큰 표적을 나타내고 이렇게 하도록 우리는, 어쨌든지 우리 기도나 설교에 하나님이 직접 와 가지고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려는 요 마음은 가져야 됩니다. 이거 안 가지면 안 됩니다. 이것 안 가지면 헛일이오. 여기에 대해서 관심 안 가지기 때문에 외식자들이 나습니다. 자기가 어떤 뭐 무슨 짓을 하고라도 그냥 설교나 이래 줄줄줄줄 해댄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는 그 표적이 나타나기를 구 하는 우리들이 돼야 되겠고, 또 우리가 표적 중에는, 표적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나타나야 됩니다. 나타나야 되는데, 표적에는 병이 낮는 그런 것도 표적이요, 바다가 잔잔하게 되는 것도 표적이요, 또 차를 타고 가는 사람 이 차멀미 안 나게 하는 것도 표적이요. 배를 타고 가는데 배멀미 안 나는 것도 표적이라 그 말이오.
내가 ○○ 신학교 다닐 때에 그 어떤 장로님이 자기 교회에 집회 해 돌 라고서 청해서 같이 배를 타고 가는데, 가는데, 그 장로님은 언제든지 거석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저 배만 타면 게워서 죽을 지경이라. 죽을 지경 이 돼 가지고서 내려 가지고는 고생을 하고, 언제든지 배를 타면 죽을 지경이오. 이런데, 내가 떡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아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제 토하고 그런 일을 안할 건데 와 기도를 안했는가?' 이랬는데 '암만 기도해도 안 됩니다. 기도해도 안됩니다. 이래 놨다 말이오.
이래 놨는데, 그 장로님이 전도사님인데, 장로님하고 나하고 둘이 딱 배를 타고 같이 가는데 이거 내게 딱 부담이 돼 놨다 말이오. 부담이 돼 놨으니 이제 내가 단고 가도 배멀미해서 게우는 날이면 그 뭐 목사님 기도 하면 된다하니 기도해 주십시오 했을 것이고 기도하면 된다 했는데 기도해도 그리 돼 버리면 고만 그 집회는 헛 일이라. 그 집회는 헛일이라. '하이고 뭐' 그때 내가 조사님이오.
'조사님이나 내나 꼭 동둥이 다 별수 없다. 내나 하는 재판 외식 재판 하거나' 그럴 거라 그 말이오. 하나님이 와서 역사하는게 안보이니까 그 사람이 뭐 얻겠소? 이러니까 그런 문제가 없으면서 배 타고 가면서 '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 주시옵소서.'하면 그만, 그만 하면 기도하면 다 됐고고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랄 것인데 아 이 문제가 딱 걸려놓으니까 이 기도가, 등뼈가 타더라 그 말이오. 이래 가면서 기도하는, 척 하지는 안하고 이래 눈 감고 이래 가지고, 이래 쉬면서 가고 얘기하면서 가도 속으로는 그게 등뼈가 지금, 등이 탄다 그 말이오. '주님이여. 같이 가면서 이 멀미 앓으면 이 사람이 이번 집회에 은혜 받지 못할 터이니까 어짜든지 이 멀미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참 그 기도의 제목이 없을 때보다 기도를 더 간절히 하게 되더라 말이오. 간절히 하게 됐소. 그 간절히 한 바에 그 사람이 참 꼼짝도 안 하고서 무사히 갔어. 떡 말하기를 아! 요번에 무사히 왔습니다.' 떡 가서 저거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요번에 강사 목사님하고 내가 같이 오니까 나는 배에서 그렇츰 고생을 하는데 그 목사님이 기도 한번 하고 나더만 그만 배멀미를 안하고 무사히 잘왔다.' 아 이러니까 들장 뭐 초판에 교인들이 막 꺼꾸러졌다 말이오. 은혜를 받았소. 그 표적을 보고 그런 것 아니겠소? 그래 됐다 이거요. 그때 은혜가 많았습니다.
진해 가 가지고서 집회 할 때에 그랬는데, 그래 또 이제 올 때도 또 같이 온다 말이오. 갈 때도 같이 가니까 배멀미 안 했는데 올 때 이거 배멀미인가 이래 해 가지고서 토하면 또 안되겠다 말이오. 올때 또 들이 타는 거라 올 때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해야 되겠다 말이오. 기도를 했는데, 올 때까지 아무 일 없이. 내렸다 말이오. 내리고 난 다음에는 '할렐루야' 하고서 이제는 숨을 좀 쉬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그 표적이 나타나기를, 나타나는 이것을 무시하지 말고 나타날 때 되면 나타나기를 원하는 이 사람이 돼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외식이 차차 차차 제거되고서 하나님을 향해서 가는 이 걸음이 바로 되게 되더라 그거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이제 하나님 앞에 내가 그것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 와서 이제, 내가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구하는데 당신이 들을 것은 듣고 안 들으실 것은 안 듣기 때문에 내가 구하는 것은 '무슨 병이든지 다 낫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어 '다 낮게 해 주옵소서. 하나도 없이 다 낮게 해주옵소서.' 그랬어.
내가 보니까 저 미국서 몇 분이 오셨는데, 오신 분의 그 말을 들으니까 '아 나는 이런 이런 신병이 있어서 그래 왔고 왔고 모두 보니까 신병이 있어서 왔으니까 전부 표적을 보기 위해서 왔다 그 말이오. 그분들에게 표적이 와서 그분들이 요번에 병이 척 낫고 가는 날이면 이제 '이 진영은 진리의 진영이다.
하나님이 같이 하는 진영이다.' 아 이라며 그분들이 힘을 내서 신앙생활할 것이고 그 교회가 부흥이 될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런데 와 표적이 필요가 없겠습니까? 이래서. 그분들 을 줄도 모르고 나는 기도를 했는데, 그분들이 그렇게 온 걸 말을 들으니까 그렇게 왔어요. 왔으니까, 이번에 이제 무슨 병이든지 하나님께서 낫아 주셔서 월요일 것은 다 낫아 주실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기도했어. '낫아 주셔서 필요 있고 없는 것은 그 뒤 문제이고. 열 문둥이 가운데 아흡 문둥이는 낮아도 다 도망쳤으니까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낮아 주신 주님이 아니십니까? 그때와 지금과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게 낫아 가지고 뒤에 어찌 되는 것은 뒤 문제고 우선 나옴으로써. 하나님의 도가 이렇게 어지럽게 돼 가지고서 모두 다 이것 저것 껍데기는 다 같고 속에는 딴판이니까 어느 것이 하나님의 도인지 모든 사람들이 의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을 깨뜨리기 위해서, 당신의 복음을 위해서 당신이 역사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이라 말이오.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여러 가지 표적을 행하시고, 어떤 데는 여기에는 표적을 안해 주시겠다' 그렇게 말씀한 데도 있고, '이제 표적을 했으나 너거에게 표적 행한 것을 내가 다른 데서 행했으면 그들이 다 구원 얻었을 터인데 너거들에게 표적행한 것은 다 헛일했다.' 그렇게 말씀도 했습니다. 표적을 했다고 해 가지고서 결론적으로 믿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믿는 것은 결론적으로는 이제 주님의 택하신 자라야 되고, 피공로를 입은 자라야 되고, 성령과 진리가 역사를 해야 되는 것이지 그리 안하면 알맹이가 안 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나. 표적도 제일 일학년에는 필요하거든요. 일학년에는 필요해요.
이학년에는 필요가 없어. 일학년에는 필요해. 표적은 믿지 안하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예언은 믿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음란하고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내가 표적은 많이 했다.
표적이라 말은 하늘로부터 오신 것을 나타내는 표적이요. 이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는 그런 표적이지만 '이제는 내가 너희들에게 줄 표적은.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 말씀을 하시고 결론을 지웠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요 나의 그 삼일 동안 고기 뱃속에 있었던 그것은 무엇을 표적한 것이냐?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삼일 동안 땅속에 있다가 부활하실 그것을 나타낸 표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제 이 표적 중에 제일 큰 표적은 뭐이냐? 표적은 어제 말씀하신 대로 '죽고 사는 이것,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리는 이 표적이 최고의 표적이니까 이 표적의 입문을 하기 위해서 이번에 모든 병든자도 낫게 하는 이 표적을 주옵소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음란하고 악한 세대가 많은 표적을 보고도 도무지, 변동 없는 세대이니 여기에는 이제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 요나의 표적이 뭐냐?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된다는 그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여기에서 원하는 것은 일학년 표적인 모든 병이 다 낫는 것으로써.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이 운동을 하시고, 하나님이 이 집회를 주관 하시고 하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기 위해서 껍데기 육신의 병을 고치시고, 속에 알맹이 표적은 뭐냐 하면 여기에 오기 전에 있던 옛사람이 다 죽어서 장례지내고 새사람으로서 되어진. 죽고 사는 그 기적이 나타나야 여기에서 이제 완전 성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러므로, 여기에 온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그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해서 이제부터는 두 가지로 죽는 자 되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해서 진리와 성령으로 사는 이 사람들이 되는 이 일이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그것이 최고의 하나님의 기적이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뭐요? 오전 예배요 오후 예배요? 예.
그러면 기도합시다. 네, 기도합시다.
우리를 택정하신 대로 중생시켜 부르시고, 이곳을 영원 전 주의 구속을 위하여 마련하시고 구속을 입히시는 역사를 연일 증거해 주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말씀과 영감은 주의 피공로로 인한 선물임을 저희들이 압니다.
주님의 피의 공로의 역사와 주의 피의 공로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신 영감의 은혜 역사와 진리의 능력 역사가 우러 전부에게 충만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능력 역사 안에서 주님이 친히 역사하심을 저희들의 어린 심령이 볼 수 있도록 모든 육체의 껍데기 질병을 이 시간 다 치료해 주시옵소서.
이것으로 저들이 증거 받고 확신을 가지고 이제 오신 성령을 부인하지 안하고 오신 성령과 진리를 영접하고 주님의 피의 권능의 역사를 저들이 영접하여 완전히 주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죽는 자 되고 주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산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를 일으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