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좁은 길

 

1986. 9. 21. 주일새벽

 

본몬:마태복음 4장 11절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우주와 영계를 통치하시는 데에 이 천사들을 다 사용해 가지고 통치를 하십니다. 하늘나라의 활동과 작용은 하나님과 천사들만 활동하고 작용하기 때문에 거게는 모든 사망에 속한, 해에 속한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가 다 생명이요, 평강이요, 영광이요, 기쁨인 것뿐입니다.

세상은 타락한 것이 생겨져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온 세상은 다 마귀가 통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는 일이 있어서 약간의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으나 그것은 근원적이고 또, 중심적인 것은 하나님이 가지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성령이 와 가지고 사람들 안에 와서 계시지 못하고 사람 밖에서 와서 계시면서 그저 사람 중심에 들어왔다가 나가셨다가 이렇게 중복적으로 역사를 했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그런 이들도 성령의 역사가 내주하실 때는 내주하시고 또 떠나실 때는 떠나고 그렇게 역사를 하다가 예수님이 오시고 난 다음부터 세상은 예수님이 승리하시므로 하나님이 점령을 하셨고 또 마귀는 거게 이용물이 되어졌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은 승리하신 예수님이 전부를 통치하시고, 통치하시는 데에 그 기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이용되고 있는고 하니 악령과 이 택한 성도들과 둘이 이용을 당하고 있습니다. 둘을 이용을 하셔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실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감과 진리의 도움을 받아 가지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고 있고, 악령은 과거에는 제가 왕노릇을 했지마는 왕노릇은 못 하고 예수님에게 종이 되어서 제한적인 이런 조절을 예수님에게 받아 가면서 세상에서 성도들을 연단시키는 일을 하고 불택자는 여전히 저가 주권해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악령은 불택자들에게는 왕노릇을 하고 있고 또 성도들에게는 예수님이 시키시는 대로 시련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택자들은 악령이 아무 간섭 없이 제 주장대로 주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택자들에게는 마귀가 왕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택자들에게는 왕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다만 불택자들에게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시키시는 대로만 그 한계 내에서 믿는 사람들에게 간섭을 하고 상관을 가지는데 그것은 뭐이냐? 그것은 다 믿는 사람들을 주님이 만들기를 원하시는 그대로 조절하는 데에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택자들은 마귀가 완전 주장해 가지고 살고 있고 그 결말은 영원한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그 신앙 행위를 조절할 때에 그 조절을 따라서 가면 한없는 그 영광스러운 구원이 이루어지고 아무리 하나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이 다섯 가지 능력, 다섯 가지 능력으로 살도록 이렇게 하시고, 또 천사들로 수종들도록 이렇게 하시고, 또 악령으로 하여금 우리를 그저 연단시키기 위해서 하나의 미혹시키는 시험하는 그런 기관으로 이렇게 이용을 하시는 그 일을 잘 받아 하면 한없이 영광스러워지는데, 그렇지 안하고 마귀가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서 유혹시키는 그 유혹에 빠져 버리면 그 사람은 잠깐만이나마 마귀에게 이용을 당합니다. 마귀의 것이 됩니다. 마귀의 것이 돼도 근본적으로 마귀의 것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회개하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패전하면 자신이 하나님이 회개케 해 주셔서 회개하면 그때부터 일어서지마는 회개하기 전에는 마귀가 얼마든지 거머쥐고 제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용할 수 있어도 불택자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그렇게는 이용 못 합니다. 제한적으로 어느 한계까지에 이용하도록 하기 때문에 그 한계 내에서는 뭐 얼마든지 이용을 해서 마구 망칠 대로 망쳐 버립니다.

그 마귀는 예수님에게 져서 어짤 수 없어 권위적으로 종이 됐지마는 항상 그 본질과 본성은 하나님의 하시는 그 일에 대해서 절대 반대적인 그 악을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나마 하나님이 제한적 권리라도 줘 가지고 ‘자유하라’ 할 때는 믿는 사람을 거머쥐고 뭐 마음대로 이래 난도질을 해서 마구 쪼아서 그래 그 시간에 뭐 전부 절단을 내고 싶지마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한을 줘 가지고 내지 못하게 해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요 다섯 가지를 지킬 때에는, 다섯 가지 능력도 한없는 능력이지마는 다섯 가지 능력 이하에서 이 모든 실무를 하고 담당하고 있는 이것이 천사들인데 천사들이 와 가지고 요 다섯 가지를 가진 자들에게 수종들어 가지고 모든 실무를 천사들이 담당합니다.

이 세상에서 초자연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그런 능력은 다 천사들의 활동인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 가지고 사자가 해하지 못한 그런 것도 다 천사의 역사를 보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고, 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들어갔을 때에 그때에 셋이 들어 갔는데 넷이 있는 거 같아서 “인자 같은 이가 있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것도 역연 천사가 그렇게 신비하게 나타나셔 가지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여러 번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라’ 하고 아브라함하고 서로 대화해서 말을 했지마는 나중에 또 나타나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보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천사가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그 형상을 가지고 나타나고 또 하나님이 나타나되 천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이렇게 지금 우리와의 연결합니다.

어째 그런가? 하나님은 지극히 크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빛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죄와 칭의와 이 화친의 예수님의 공로를 흠없이 완전히 입고 있으면은 하나님과 우리와는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는 이게 되지마는 우리가 아무리 회개한다고 이렇게 해도, 예수님의 공로를 입는다고 해도 이 공로 입은 것이 항상 우리 속에 악령, 악성, 악습의 그 옛사람의 요소가 남아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는다고 해도 입는 이것이 항상 그 흐미하고 다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으면 우리가 그 공로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도 하나님의 강한 그 빛이, 강한 거룩이 우리에게 접해도 우리가 죽지 안하고 그 강한 빛과 거룩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고 서로 이렇게 합해질 수 있지마는 예수님의 공로가 없으면 녹아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을 이렇게 아버지를 부르고 이렇게 하는데 아버지를 부르는 그 부름에 하나님이 우리를 접해 주신다고 이렇게, 접해 주심이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정도에 따라서 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 사람과의 가까운 거리가 어떤 사람은 예를 들면 만 리만치 멀고, 어떤 사람은 천 리 멀고, 어떤 사람은 백 리 멀고, 어떤 사람은 뭐 십 리 멀고, 이렇게 어떤 사람은 조금 거리가 있고 이렇게 이 거리가 그것이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정도의 우리가 성화가 됐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접하지 그 이상 접하면 우리가 녹아 죽어 버립니다.

그것을 성경에 보인 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과 그들과 늘 밀접한 동거 동행을 하는 거와 같이 보여졌지마는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날라고 모세를 불러 올릴 때에 모세를 직접 만나지 못하고 모세에게 구름으로 나타나 가지고 모세를 만났고, 또 처음에 만날 때는 하나님이 불로 나타나셔 가지고 모세를 만났습니다.

가시떨기 가운데에 불이 붙어서 그 큰 불이 있는데 그래도 그 가시떨기가 타지 안하고 하기 때문에 ‘불이 저렇게 활활 붙어 있는데도 타지 안하니 저거 좀 이상하다’ 하고서 이렇게 주목해서 보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선 자리는 거룩한 자리기 때문에 네가 신을 벗고 서라’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같이 한다는 증거를 보여 준 것이오.

그러면 그때 불이 하나님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가 깨끗한 사람이지마는 모세한테 나타날 때에 하나님이 그대로 나타나면 모세는 녹아 버리고 맙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완전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때도 하나님이 짐승의 피로서 이렇게 대속하는 대속의 그 공로를 힘입어 가지고 그렇게 서는 것입니다.

그때도 벌써 가인과 아벨이 제사드릴 때에 가인은 다른 걸로 곡식으로 제사드려서 버림을 당했고 아벨은 양의 피, 짐승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은 그것은 다 기록할 수 없어 그거 그래 기록했으나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모형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인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배암의 후손이 멸망받는다” 하는 그 계약이 무슨 계약인고 하니 여인의 후손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탄생하셔 가지고 대속주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 공로를, 예표적인 공로라도 그 공로를 입고, 하나님이 불로 나타날 때에 하나님이 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이 아니시오.

하나님은 완전하신 그런 완전한 인격자이신데, 없는 가운데서 우주를 엿새동안에 만드셨고 이런 풀 한포기를 만든 것도 이 속에 아무리 제 식물 학자가 떠들어 쌓아도 이 한 가지 속에 내용의 세포가 얼마나 있으며 이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평생 연구해도 그걸 모릅니다. 그만치 세밀하고 그만치 그 능력이 무한하셔 가지고 그렇게 하신 이분이신데, 하나님께서 가까운 불로 나타난 것은 하나님은 어두움이 없는 밝은 하나님이시라 하는 뜻으로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다가 시내산에서는 또 나타나실 때에 정반대로 깜깜한 먹장 같은 구름 가운데서 나타났습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위엄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서 나타나실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모세는 산만당까지 올라오고 또 아론은 산만당까지 올라오지 말고 산중턱에까지 올라오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라고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발치까지 올라오라, 가까이 오라.’ 이랬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모든 그 동물 가운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급하는 동물은 이스라엘 백성들 모인 그 밖에, ‘그 밖에 또 거기 모이라’ 이렇게 했습니다.

그게 뭐 한계를 정해 준 것인데, 일반 짐승보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까끗하고, 이스라엘 백성보다는 아론이 깨끗하고, 아론보다는 모세가 깨끗하고,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을 직접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모세가 본 것 중에는, 제일 가까이 본 것은 예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등을 봤습니다. 하나님의 등.

하나님의 등을 보고 하나님의 안면을 대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지극히 거룩하신 이 하나님이신데 이분과 우리와의 하나가 되면 우리가 곧 완전자가 되어지는 것인데 그분과 우리와 가까이 되는 데에는 그분은 거룩하고 우리는 더럽기 때문에, 그분은 빛이시고 우리는 비유컨대 어두움이기 때문에, 빛과 어두움이 합하면은 어두움은 없어져 버리고 빛만 있는 것입니다.

이거 하나님께서 우리를 배암에게 꼬임 받아 가지고 멸망받은 것을 멸망치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온갖 그 합법적인 이치를 역사를 해 가지고 우리를 구원한 것이 그것이 뭐이냐? 당신이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그 형을 대형해 가지고 사죄, 대행해 가지고 칭의, 대화친해 가지고 영원한 새생명을 얻도록 요렇게 하나님이 이 세 가지 공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공로는 하나님의 공심판을 통과한 공로인데, 하나님 공심판을 통과한 것은 이거는 하나님하고 얼마든지 같이 동거 동행할 수 있는 이런 대속입니다, 대속. 대신 속해서 이 대속을 입고만 있으면, 이 대속 벗고는 안 되지만 대속 입고는 하나님과 같이 이렇게 화친할 수 있는 그것입니다.

이래서 마태복음에 잔치를 열어 놓고 모든 사람들을 청하니까 그 사람들이 뭐 장사한다, 밭 샀다, 장가갔다 이래서 못 오니까 그거 다 냅두고 누구든지 데리고 오라 해 가지고 마구 울 안에서 데리고 온 이것이 뭐이냐 하면은 내나 이방인 우리들입니다, 이방인. 본 족속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라고 하지마는 그들이 듣지 안하니까 인제 이방인 우리들을 불러 가지고, 이거는 뭐 짐승 같은 우리들인데 불러 가지고 구원함으로 인해서 그 잔치에 들어왔습니다.

잔치에 왔지마는 나중에 주인이 와 가지고 잔치에 들어온 모든 손들을 대할 때에 그중에 어떤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안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예복을 입지 안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왜 예복을 입고 오지 안했느냐?’ 하고서 쫓아내 버리고 다른 사람은 용납했습니다. 그 예복이 뭐이냐 하면은 곧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안한 자들은 다 쫓아내 버렸어.

이래서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입어야 하나님과 우리와의 거리를 두지 아니하고, 그 본질에 이질적인 것이 없고 동질이 돼 가지고, 동질 동성이 돼 가지고, 동질 동성이라 말은 남자 여자 그게 아니라 성질이 같다 그말이요, 성이 같다 그말이 아니고. 성욕 성자가 있고 또 사람의 성품 성자 있고 뜻이 각각 다릅니다.

이런데,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아무 이질적인 것이 없어 가지고 이렇게 같이 만날 수 있는,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와의 아무 가리워진 것이 없이 만나지는 데에는, 만나지는 데에는 이 세 가지가 아니면 만나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만나지 못하면, 이 생명이 하나님에게만 있고 또 모든 평강이 하나님에게만 있고, 또 영원한 쾌락이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다른 데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하나님 혼자 가지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지금 이 세상에서 뭐 쾌락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비추어 나왔던 그 쾌락인데 그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변질된 것을 지금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가 어떻게 즐겁다 할지라도, 뭐 신혼부부가 즐겁다 해도 그게 다 변질된 즐거움이요, 그 즐거움의 원형의 영원히 변질되지 안한 것은 주님과 우리와 만날 때에 이루어지는 그것입니다.

‘네가 땅위에서 없어질 그 쾌락이 좋으냐? 그걸 봐서 하늘나라의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그 쾌락을 네가 깨달아라. 이 세상에서 불행스러운 것을 네가 느끼느냐? 그 불행스러운 이거는 그림자의 불행스러움인데 지옥의 불행은 그것이 원형이고 실질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행스럽다.’ 이것을 성경에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는 이 세 가지가 있어야 되고, 이 세 가지 없으면 생명은 못 만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생명은 그 사람이 가지지 못하고, 왜? 생명은 하나님하고 연결이 돼야 생명이 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생명을 가지지 못한다 말은 연결을 가지지 못하고, 생명을 가지지 못하고, 연결인데 연결이 그것이 떨어져 나와 가지고 말을 할 때에 생명이라, 생명보다 더 깊은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없으면 생명을 가지지 못하고 또 하나님은 평강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없으면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의 그 연결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쾌락이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쾌락은 하나님에게만 가졌습니다. 그러면 생명도, 평강도, 쾌락도 하나님 만나지 안하면 없습니다.

뚝 떨어져 나온 사람을 성경에 갖다 하나 보인 것은 뭐이냐 하면은 홍포 입은 부자가 이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그것만 준비하고 하나님과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안하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니까, 떨어져 나온 그거 가지고, 그거는 유한한 것이기 때문에 떨어져 나온 것은 세상에서만 가지고 있었지 세상 한계 밖에 가지고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살았을 때에는 홍포 입은 부자로 살았지마는 세상을 떠나 가지고 막상 보니까 물 한방울의 자기 욕구도 욕구가 이루어지지를 못합니다.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과 생명이 끊어진 증거요.

생명이라는 이거 여러분들이 뭐 알라면 얼마나 알아야 되는데,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가 간단하게 하나님이 알리기 위해서 고기덩어리의 생명을 준 것입니다.

고기덩어리의 생명이 끊어지면은 그 사람의 모든 작용이 헛일 아니요? 지금 여기, 이번에 뭐 아시아 게임인가 뭐인가 이래 한다 하는데, 여게 세계에 그뭐, 아시아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다 왔지마는 이 모든 선수들 그 사람들이 뛰고 굴리고 뭐 별 장기 하는 거는 누가 하느냐? 그 속에 생명이 들어서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떠나 버리면 그만 그 사람 금방 그만 송장돼 버리고 없습니다.

생명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뭐이냐? 하나의 자연계시입니다, 자연계시. 생명이 모든 작용을 다 하고 있고 생명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연결이 이 피조물에게는 모든 작용을 다 하고 있고 연결 끊어지면 다 송장되는 거와같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세 가지가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을 수 있고, 평강이 있을 수 있고, 쾌락이 있을 수 있고, 평강과 쾌락이 좀 다릅니다.

이러니까 이 셋은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변치 않는 영원 완전한 생명과 평강과 쾌락을 가질 수가 있지, 이래서 예수님이, 성경에는 토막 토막만 나와 가지고 끄트머리만 보이고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을 기뻐하나 너희들은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때 슬퍼한다. 슬퍼하나 너희 슬픔이 기쁨으로 변화해서 변할 때에는 그 기쁨을 세상이 빼앗아가지 못하리라.” 하는 그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그 기쁨을 가리켜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완전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얻는 데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우리는 얻지 못합니다. 왜?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이 죄 문제가 해결 안 되고 하나님의 율법 문제가 해결 안 돼. 칭의는 하나님의 율법을 다 우리가 완전히 걸릴 것 없이 하나님 율법을 완전 이행자가 됐습니다. 또 그러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으면 하나님과, 하나님이 무한하신 분이니까 하나님과 우리와 뜻이 맞다 해도, 사람이 부부간에 살아도, 부부간에 살아도 그 사람 부부간에 어떤 사람은 하나만 맞고 둘은 맞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그라면 부부간에 살았는데 얼굴만 빤하게 보이니까 얼굴만 서로 보기 좋지 막상 살고 보니까 속에 들어가서는 모든 게 맞지 않습니다. 맞지 안하고, 사상도 맞지 안하지, 정신도 맞지 안하지, 성질도 맞지 안하지, 부부라 하는 것이 맞을라 하면은 부부라 하는 그런 것도 한 그 세밀하게 말하면 몇십 가지라고 뭐 할 수 있습니다. 근 백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있는데 그것이 맞지 안할 때에 트라블이 생깁니다. 그게 맞지 안한 고거 때문에 트라블이 생기고 서로 분쟁이 생겨지고 또 그게 맞지 안하다가 둘이 이리이리 조화를 붙여 가지고 맞으면 또 화목이 돼집니다.

이러니까 어제인가 언제도 와 가지고, ‘부부간에 결혼했는데 서로 싸우고 닳고 이래 가지고 뭐’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 내가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그렇게 상하지 마십시오. 그거는 그렇게 싸워야 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기 때문에 싸워야 되니까, 아, 병아리도 그놈도 처음에 키워 보면은 뭐 대가리가 홀딱 다 터래기가 다 빠지도록 싸웁니다. 그래 싸워 가지고,’ 그래 싸우면 인제 뭐이 돼? 싸우면 이제 그것이 정리가 돼요. 큰 놈 작은 놈, 강한 놈 약한 놈이 정리되니까 약한 놈은 강한 놈한테 아예 질 줄 알고 피하고 또 강한 놈은 누르고 약한 놈은 눌리고 이러니까 그게 정리가 된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나중에 가서 이만치 큰 병아리때는 싸우지 안해요. 다 지위가 다 정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 싸위. ‘그것 모양으로 이 부부간도 다 그래서 그러니까 싸워 가지고 되는 것이지 안 싸워 안 되는 것이다.’ 제일 좋은 부부는 뭐이냐 하면은, 좋은 부부로 말하면 얼굴도 서로 마음에 맞지, 또 뜻도 맞지, 또 성품도 맞지, 밤에도 맞지, 낮에도 맞지, 또 사업에도 맞지, 다 맞아 놓으면 그거 못 뗍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습니다. 그러나 맞지 않는 거 있다 말이오. 맞지 않는 거 있는데 맞지 안하는 데는 안 되는 거라.

안 되는데, 맞지 안하면 슬기 있는 사람은 이제 ‘이게 좋으냐 저게 좋으냐?’ 이래 비판해 가지고 ‘아, 요게 좋다.’ 암만 남편이라도 `아내의 이게 좋다.’ 아내라도 아내가 제가 암만 고집이 센 여자라도 ‘아, 남편의 것이 맞다.’ 자꾸 옳은 것만 따라갈라 하면 잠깐 행복스러운 부부가 되는데 요 고집 가지고 있는 고거는 안 된다 그 말이오. 고집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죽겠어, 고집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면 고칠 줄 알아야 될 터인데 띵 해 가지고 있으니까 그게 항상 그거 데리고 살면 지옥을 가질 터이니까 어떻게 사람이 살겠소? 그 안에 기쁨과 행복이 있는 것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우리와 결합이 된다는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지금 자꾸 모르기 때문에 가르칠 수가 없어. 그러나, 하나님과 결합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모가 많다, 다각형의 존재라’ 이랬는데, 하나님의 가진 요소가 몇 가지나 되겠습니까? ○○○집사 한번 좀 대답해 보이소. 몇 가지나 되겠습니까? 두 가지? 하나님의 가진 요소가 열두 가지인데, 그건 속성을 말한 것인데, 그것은 이게 드러나 나타나서 한 속성에다 사랑의 속성이면 사랑 하나를 말해도 사랑에 요런 사랑 조런 사랑, 요렇게 사랑 조렇게 사랑, 사랑의 형태와 사랑의 방편과 사랑의 그 종류로 말하면 천도 만도 넘지 않습니까? 이와같이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은 수가 많다 말이오. 그 면이 다 맞아야 돼. 그 면이 다 맞아야 돼. 그 면을 다 맞춘 것이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의 대속의 화친이라 그 말이오. 다 맞춰 놨어요. 예수님의 대속을 아무리 사람들이, 성신에 충만한 사람이라도 연구해도 다 모릅니다. 이래 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입으면, “흰옷을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흰옷이 뭐이냐? 예수님의 이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입어서 네가 타락했던 그 모든 흔적이 하나도 없이 하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제일 좋은 건 하나님 만나는 건데 하나님 만나는 것이 세 가지 공로를 입어야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 만났다 할지라도 그 다음부터 움직이는 행동하는 게 있는데, 행동 하나가 있는데, 행동 하나 하나는 영감과 진리로 행동해야 되지 영감과 진리로 행동하지 안한 거는 다 전멸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꾸 요새 오랫 동안 공부하기를 이 다섯 가지를 공부했는데, 사죄와 칭의와 화친, 영감과 진리 이 다섯 가지를 공부 했는데 이 다섯 가지를 공부해도 이 다섯 가지를 지금 이 세계의 조직신학에서 이거 말하는 게 억억만분의 일도 지금 말하지 안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한한지.

이러니까, 꼭 자기가 원하는 사람, ‘내 소유나 몸이나 이런 것 돌보지 안하고 이보다 더 이 다섯 가지가 귀합니다. 이제 다섯 가지를 주십시오. 이 다섯 가지를 주시는 데에는 거게 따라서 움직이면 사지라도 가겠고, 생지라도 가겠고, 바다 속에 들어가겠고 어떻게 해도 상관 없습니다. 내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던져서, 다 바쳐서 지금 이 다섯 가지를 취하겠으니까 주십시오.’ 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이 오실 수 있다 말이오. 오면 영감이 와 가지고 밝아질 수 있어. 밝아지면은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는 와서 수종들었다” 천사라 하는 것은 옳은 일 하는 데 다 수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옳은 일 하는 거 뭐 힘으로 가지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러니까 요 다섯 가지 문제가 해결이 되면, 시험을 이겨서 해결이 되면 해결된 것만치 천사가 와서 수종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난번에 우리 장생골에 집회한 것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요. 아는 사람은 이 종 을 들고 있는 것보다도 더 확실히 보고 알고 있다 그 말이오.

그때 ‘전국에 지금 다음 주간이 제일 뜨거운 주간이라’ 그 사람들 기상대라 하는 것은 벌써 그 수백 년은, 수천 년은 아니지만 수백 년 통계를 맞춰 가지고 합니다. 그거 어데서 나왔느냐? 모든 기상대에서 연구해 가지고 발표하는 것은 수백 년 동안 그거 통계를 맞춰 가지고 ‘요럴 때는 요렇더라’ 누가 그걸 압니까? `요럴 때는 요렇더라' 모든 통계 경험을 맞춰 가지고 그래 가지고 지금 기상대, ‘내일은 비가 온다 뭐이 온다’ 이러는데 대개 맞다 말이오. 대개 거의 맞아요. 지금 안 맞는 거 있읍디까? 지금으로부터 한 몇십 년 전보다는 지금 더 확실히 맞습니다. 자꾸 세밀히 이렇게 다 계산해 가지고, 컴퓨터 계산으로 해 가지고 자꾸 이래 하니까 그게 잘 자꾸 맞아들어간다 말이오.

이 기상대에서, 우리 나라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세계 기상대가 통일됩니다.

여기서는 지금 모르는 것은 일본에서 전달받고 일본에서는 그 세계 것을 보고서 이와 같이 해 가지고 뭐 위성 안테나인가 뭐인가 그런 걸 세워 가지고 그거 받아 가지고 이래 하는 것인데, 그 주간에 ‘제일 뜨거운 주간이라’ 했는데 그 주간에 여게 있는 사람들도 더운 줄을 몰랐고 거기 있는 사람들 더운 거 하나도 몰랐어.

안 그렇습니까? 여기 간 사람들 그날 덥습디까? 그 주간에 더웠어요? 그 주간에 놀랠 만치 여름날로서 시원한 걸 느낀 사람 손들어 봐. 우리가 다 경험하지 안했소? 그게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해 가지고 역사하는 것이라 말이오.

자, 물 없다 해 놓으면 물 없다 하면 물 주시지, 또 시원하게 해 주시지, 또 좀 더울상바르면 하나님께서 가랑비를 또 이래 뿌려 가지고 또 시원하게 해. 이 작년에도 그렇게 했는데 금년에도 하나님이 그렇게 기후 조절을 하시더라 그 말이오.

이번에도 말들어 보니까 요번에 병 낫은 사람이 뭐 백육십 몇 명인가 그랬는데, 어제 내가 ○○○권사님한테 어제 내가 말 들었어. 여기 등어리 뭐 척추가 이래 가지고 꼬부라져 가지고 누운뱅이 모양으로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이래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무리 치료를 해도 안 돼서 ‘이제는 이거는 수술을 해야 됩니다.’ 수술하기로 했는데 수술할라 하는 환자가 ‘아이구, 나는 아무래도 이제 집회 갔다 와 수술하겠다.’ `이렇게 지금 이런 사람이 어데를 집회 간다고 하느냐?’ ‘내가 구불러 가도 집회를 가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집회를 갔었는데, 집회 갔다가 그만 하나님이 그 병을 낫아 줘 버려서, 뭐 치료가 뭐야? 그만 건강해졌다 말이오.

건강해졌는데, 요번에 양산동 기도하려 가 가지고 내 짐이 이래서 장골도 들라면 뭐 못 들어 이렇게 하는데 내 짐까지 뚤뚤 뭉쳐 가지고, ‘어짤라고 하느냐?’ 하니까, 내가 가지고 한다고 `아이 가지고 가기는 어떻게 자기가 가져가?’ 내가 이거 가지고 갈 수 있다고. 그뭐 하나님이 낫아 주시니까 힘이 세서 ○○권사님 짐까지 뚤뚤 뭉쳐 가지고 가져 왔더랍니다. 그말이 사실이요? 사실이면 손을 들어 다른 사람 보이구로. 이 사실이라 말이오. 요게 있는데 다 그렇다 말이오. 이 하나님이라 그 말이오! 천사가 와서 역사하면 다 돼! 이러니까 “마귀는 떠나고” 마귀는 뭐합니까? 우리 망치는 것이 마귀라. 천사는 우리 모두 옳은 걸 하는데 다 도와 주는 게 천사라.

이러니까 이제 우리가 이 시험은 세 가지 시험인 동시에 이제 다섯 가지 시험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것만 합격되면, 그까짓 거 백박사며 뭐하며 천박사면 뭐할 거라? 세계를 점령하면 뭐할 거라? 이것은 이 다섯 가지 실력이면 우주와 영계의 모든 걸 자기 것이 되는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을 참되다 인정하는 그 사람만 등용합니다. 지금 말한 걸 거짓말로 아는 자들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모조리 몰려 들어가요.

기본구원을 얻은 자들도 영만 가고 형체만 가지 그 마음이나 생각이나 이 몸뚱이는 하나님의 계약을 믿지 안하고 의심하고 잘났다 하는 자는 모조리 쓸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영원히 태워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이 택한 자들의, 여게 있는 우리들의 지금 마음도 믿지 않는 마음은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갑니다. 믿지 안한 행동한 행동은 다 갑니다. 그까짓 거 번들번들 뭐 이거 양복쟁이다, 이거 뭐 고급 장관이다, 뭐 세력이 있다, 뭐 사장이다, 떠들어 쌓아도 이 다섯 가지가 없는 자는 유황불 구렁텅이에 모조리 잿구덩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고, 유황불 구렁텅이 들어갈 비참한 자인 걸 알아야 됩니다.

이걸 거머안고 ‘아이구 좋다. 우리 남편이 제일이라,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라, 우리 상관이 제일이라.’ 야! 네가 송장인 것도 알고, 유황불 구렁텅이에, 불구덩이에 불덩어리인 줄 알아라! 이거 모르고 살기 때문에 믿음 없는 자라 말이오. 그런 거는 하나님께 필요 없어.

하나님 당신이 뭐 없는 거 없어. 땅위에 이 모든 거, ‘인간들이 뭐 빌딩 하나 만들었다, 뭐 이거 이 지구를 만들었다, 우리 또 무슨 지역에 미국을 차지했다, 영국을 차지했다, 뭐 차지했다.’ 떠들어 쌓는데 그거 찍해 해 봤자 엿새 동안에 만든 것 중에 쪼갱이라.

이런데 이런 것은 큰 줄 알고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걸 큰 줄 알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다” 하는 것을 성경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아는 사람 손들어 봐. 성경에 있다 그 말이오. 성경을 거짓말로 안 알면, 이거 참말로 알면 그게 크지. 그게 크지 이게 커요? 이런데 우리가 안 믿는다는 걸 자꾸 요래 보고, 요래 비춰보고 ‘야, 요거 안 믿는다.’ 요래 비판하니까 ‘안 믿는다' 요래 비판하니까 `요걸 믿는다' 요래 보니까 ‘요 거짓부리다’ 요래 보니까 `이거 너무 믿음이라 하는 것이 너무 허무하다’ 이래 가지고 지금, 우리가 행복이 어데 있다 했습니까? 하나님의 계약을 알고, 또 하나는 뭐이요? 인정하고, 또 하나는 뭐이요? 노력하고, 또 하나는 뭐이라? 회개, 고치는 거.

이래 가지고, 나는 전부 틀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계약의 말씀을 준해 가지고 그대로 딱딱 고치면 돼요. 고치면 뭐, 온 세상이 반대해도 고치면 세상은 내것이야. 세상 그까짓 거 내 마음대로 하지 저거 마음대로 못 해요. 이 세상에서 세상을 제 마음대로 한 사람이라야 돼.

저 마음대로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요? 세상에서 세상이 뭐라고 한다 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사람은 세상이 꺾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했으면 세상은 다해 가지고 나를 저거 마음대로 할라 하고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할라 하는데 세상이 나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했지, 그래 세상은 내 마음대로 했지, 내 마음대로 했으니까 그 사람은 세상을 점령했지

이러니까 이 좀 오늘 주일학생들에게 좀 저희들이, 뭐 시험이라 하면 뻘뻘 떱니다.

‘뭐 시험에 어떻다’ `나는 뭐 사법고시 지금 준비하고 있다' `행정고시 지금 준비하고 있다’ ‘나는 무슨 뭐 전자 무슨 고시 시험 준비' 네까짓 거 암만 해 봤자 그렇다. 그 속에 그거 하는 가운데 뭐 있어야 돼요? 그거 하는 가운데 뭐 있어야 돼? 그거 하는 속에 다섯 가지가 있어야 돼.

그거 하는 속에 다섯 가지가 있다니? 그러면 다섯 가지 가지고 그 공부할 수 있는가? 다섯 가지를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증거가 뭐이냐 하면은 다섯 가지를 범하지 안하면은 다섯 가지 가지고 있는 증거라 말이오.

이 다섯 가지 가지고, 내가 다섯 가지가 자꾸 그래 생각할라 하면은 한없어.

이러니까 다섯 가지 가지고 있으면서 공부하면서 그 범하라 할 때 안 범하면 내게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데 이거 내놓으라 할 때 안 내놓으면, 자, 내가 여기 이 다섯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다섯 가지 내놓으라 할 때에 내놓지 안하면 다섯 가지 내 속에 있소 없소? 있어. 이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거는 뭐이냐 하면 이 다섯 가지를 내놓으라 해도 내놓지 안하면, 누가 내 놓으라 해, 몇 가지가 내 놓으라 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몇 가지가 내놓으라 해요? 네 가지가 내놓으라 해요. 내놓으라 해도 안 내놔요. 안 내놓으면 이거 다섯 가지 내 속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내놓으면 있는 것 아니야? 이러니까 안 내놓으면 있는 거니까 이거 안 내놓으면서 모든 공부하면은 이 다섯 가지가 그 공부하는 자기 분야 속에서, 뭐 과학 공부를 하든지 뭐 무슨 시험 공부를 하든지 그 속에서 자꾸 자라가고 있다 말이오.

이게 자라서 이게 자, 그 사람이 시험 공부 하다가, 시험 공부 하다가 ‘이 다섯 가지를 범하지 안하면 시험 못 치른다’ 하면 그 사람이 시험 치르기 위해서 다섯 가지를 범하면, 범하면 이 다섯 가지 내놨소 가지고 있소? 내놨지. 암만 시험을 못 치르게 해도 다섯 가지 안 내놓으면 그 사람은 이 다섯 가지가 주장입니까 공부하는 그게 주장입니까? 다섯 가지가 주장 아니요? 다섯 가지가 주장이니까 다섯 가지는 속에 알맹이로 돼 있고 이 세상에 공부하는 거는 껍데기로 돼 가지고 있으면 알맹이 껍데기가 바로 됐다 그거요.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게 참 보배인데 여러분들이 벌써 이걸 넷 주간을 가르치니까, 어짜든지 이것을 여러분들이 기도했으면 막 가르칠 것이 꽉 찰 거, 있을 거라 말이오. 기도 안 하니까 이거 도통도 몰라. 이래 하는 거, 이 각도로 말하고 저 각도로 말하는 건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서 인식하라 하는 거라.

이 알아 가지고 이거 속에다 기도하고 이렇게 했으면은 가르칠 때에 학생들에게, 우리는 모르지만 성령님은 안다 말이오. ‘이 학생들은 어느 정도 안다. 뭐 있다, 뭐 있다, 요래 말해야 된다.’ 이러니까 여기서 가르친 대로가 아니라 그때 기도한 사람은 자기 학생들에게 가르칠 걸 성령이 가르쳐 주실 거라 말이오.

가르쳐 주신다, 가르쳐 주니까 자기 속에 ‘이거 가르쳐라’ 믿어지는, 자기 속에서 믿음의 불이 붙어 가지고 이래 말할 때에 학생들에게 다 그것이 돼지지만 이거는 아무것도 없이 남을 것을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알지도 못하고 ‘이렇단다.

이렇단다. 이럴 거 아니겠나?’ 이렇단다고 말은 안 해도, `이렇다’ 말해도 속으로는 ‘내가 말은 이래 하지마는 그렇다고 말하는데?’ 속에 의심이 가득찬 것이 말하니까 뭐이 믿어지겠어 믿어지기를, 여러분들! 요거 회개해야 돼요, 우리가.

오늘 아침에도 보니 그전보다 좀 많이 나왔지만 저 텅 비어있구만. 얼마든지 비고 얼마든지 고기덩어리 욕심대로 살아 봐요. 살면 뒈져요.

어제도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목사님 어찌됐든간에 내가 목사님을 배반할 수가 없고,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배반할 수가 없고 내가 그럴 수 없는데 어제 설교할 때 그만 고함을 지를 때는 그만 영 그만 완전히 그만 마음이 휘떡 뒤비지고 그만 기절해’ ‘고함 질러 뒤비지면 너는 뒈지거라. 뒈지거라, 네가. 뒈져야 되지. 고함 질러, 하나님 앞에 설교 말씀을 고함을 강하게 주장할 때에 이제 속이 뒤비지면 뒤비지는 그놈을 죽이기 전에 너는 살지 못한다.’ 왜? 그말을 못 해 주느냐 말이요? ‘뒤비지느냐? 뒤비지는 그놈 죽일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놈이 뒤비질 게 아니라 그놈 완전히 죽여 버려야 된다. 그걸 설교에서 너하고 합동해 가지고 죽여 버려라.’ 그놈이 죽고 새사람 돼야 되지 그놈은 안 죽으면 지옥불에 가요! 제 심신을 그놈이 들어서 지옥을 끌고 가는 놈이라 말이오. 그놈을 죽이지 못해! 왜? 개인 상대하면 콱 성신의 검으로 찔러서 제가 나하고 원수가 되든지 꽉 찔러 주지. 뭘로 찔러? 좌우에 날선 검, 성신의 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찔러 줘.

‘너 그라면 죽는다!’ 안 죽는가 네가 봐라. 죽으면 알지.

불쌍한 사람, 내가 볼 때 우리 교회서 참, 좀 희망 있을까 해 가지고 생각했는데 불쌍한 사람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제가 비참해도 비참한 걸 몰라요. 날마다 비참만 자꾸 쌓아가고 있다 그 말이오. 이게 내 말이요? 백 목사 말 같으면 백 목사 그까짓 거 천 마디 말해야 한 마디도 들을 필요 없습니다.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이오, 하나님 말씀. 이라기 때문에 이거 설교록에 다 기록해서 나갑니다, 나가기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번에도 공과를 외우자 이렇게 말했는데, 많이 기도 하고 나면은 하나님이 가르칠 걸 줘서 하나님이신 성령이 여러분들을 통해서 가르쳐야 되지 뭐 가르칠 거라? 여기 중간반 일이부들도 다 모두 얼마 가르치기로 했어? 중간반 일이부에 분반 공부 얼마 하기로 했지? 몇 분, 시간으로? 왜 대답도 잘 못 하노? 십오 분 가르치기로 했는데 십오 분 가르치고 또 통반으로 부장은 이십 분 가르치는데 십오 분 가르쳐도 그거 다 안다 그 말이오. 학생들도 다 알아요. 십오 분으로써 딱 준비해서 딱 가르치면 부장 뭐 한 시간 아니라 두 시간 가르치는 것보다도 십오 분 가르치는데 생명과 능력이 와 가지고 콱 역사할 수가 있어.

있으면 그 반에 학생이 다 살아나.

하나님에게 연결돼 수종들면, 살아나면 하나님께서 ‘이걸 부장 세워야 되겠다.

이걸 세워야겠다.’ 요새도 지금 뭐 아무리 이 교회 보낼라 해도 교회에 보낼 목사들이 없어. 실력가가 없어. ○○교회도 그 교회가 비어 가지고 있는데 그 교회를 누구를 보낼 사람이 없어. 보낼 사람이 없어서 이제 안 될 엉뚱이 같은 ○○○목사를 말하지만 ○○○목사는 못 가요, 지금. 지금 개척교회 지금 시작해 가지고 있는데, 개척교회, 없는 건데 개척교회 해 가지고 이 개척교회 되는 걸 봐야, 이제 나는 목적이 있어. 되는 걸 봐야 또 하나님께서 ‘봐라, 참으로 진실되게 목회하는 사람이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봐라. 지금 몇 달 됐는데 얼마 됐다.’ 이래 가지고 그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 오히려 지금 큰 교회 보내는 것보다 더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안 되고, 이러니까 할 수 없어 ○○○목사를 보냈어. ○○○목사를 보내기로 했는데 뭐 어제 서른여섯 명인가 왔습니다. 달산교회서 와 가지고, 그것 때문에 내가 요새 속에 배탈이 나 가지고 못 먹어요, 자꾸. 배가 뭐 어째서 어데서 잘못 먹었는지? 그래 가지고 내치 이래 가지고 있는데 어제 종일 뭐 한 서너 시간인가 너덧 시간인가 이거 골탕 쥐먹어. 이동할라 하면 사람 죽어요. 이 사람 저 사람 또 전화로도 내치 계속하지. 그런데 실력 있는 사람이 없어.

○○교회도 우리 진영에서 그러니까 넷째 가는 교회라. 그 큰 교회인데 거게 지금 아무도 갈 사람이 없어. 뭐 중간반 반사라도 상관 없어. 참으로 실력만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보내갰는데. 이거 ‘누구를 보내 볼까?’ 보낼 사람이 없습니다. ‘그 ○○○목사님 보내 볼까?’ 보낼 사람이 없어. 누구든지 좀 실력만 있으면 보내면 되는데, 실력만 있으면 가서 뭐라 한다 해도 그만, 설교 한번만 들으면 그만 교인들이 달라져. 이 교인들은 설교 하나만 바로 들으면 그만 사람들도 살아나고 그만 다 실력을 알아요. 이런데 이 애를 써야 되지 애를 쓰지 않는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뭐 한다고 지금 중간반 반사하고 있어? 그거 안 하고 반사 이름만 가지고 있으면서 엉뚱한 짓 하기 때문에 전부 무능한 자가 되고 말아. 어데 그 학생들 뭐 육십 명이니 칠십 명이니, 거게 다 전부 전공으로 그거 하고 있으면서? 밥 먹고 전공으로 그거 하고 있으면서 그 육십 명 칠십 명, 내내 이거, 내내 주일학교서부터 육 년 동안 길러 올라오고 밟아 올라온 그 학생들을 그것을 몇백 명을 주 맡아 가지고 인계맡아 가지고 한 오륙십 명 육칠십 명 그 출석이니까 여러분들 죽어 없어 버려도 그것은 밑에서 주일학교서 온 사람이면 그거 다 나오고 있어. 이래도 그걸 모르고 있다 말이요, 모르고 있기를? 정말로 일해, 하기를? 마음은 딴데 두는데. 마음은 딴데 어만 데 두고 고기덩어리만 시간 되면은 기계적으로 왔다 갔다 하니 거기 무슨 생명 역사가 일어날 거라? 회개해야 돼요. 하나님이 참고 있지마는 안 참아. 시간이 있으니까 엉뚱한 죄만 짓고 있다 말이요, 엉뚱한 죄. 시간이 있으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뭐, 강단에서 자꾸 큰 소리 하니까 그만 기절이 돼서 좀 조용 조용히 하면 좋겠더라고 그렇게 한대.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이 주신 큰 소리야. 나는 큰 소리 이거 없어지지 않기를 원하고 있어. 이거 없으면 나 죽는 거라. ‘주여! 내가 주님 부를 때까지 이렇게 큰 소리, 그 죄악을 보고 책망을 하고, 죄악을 보고 끊고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주장할 수 있는 이 힘을 주시옵소서!’ 밤낮 기도가 그거라. 뭐 그렇게 한다고 내가 뭐 꺾어질 줄 알아, 알기를? 서부교인들이 다 절단나 봐 내가 꺾이는가? 나 그렇지 않는 사람이라. 내가 강해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속에 역사하셔.

그러니까 전국에 ○○교파하고 다 이래, ○○교파하고 대립이 되고 뭐 지금은 세계 뭐 한국 교회가 다 이단이니 해도 꼼짝도 안 해요. 하나님이 나 좋아하는데 누가 무슨 문제가 있어?

기도하고서 오늘은 이제 ‘나도 이제 한번 힘써 가지고 한번 이 직책을, 주일학교 반사 직책, 중간반 반사 직책, 이 직책 감당하겠다.’ 이 속에 결심하고 ‘죽어도 감당하게 해 주옵소서!’ 이게 뭐 있어야 되지 아무 불이 없는데 뭐 할 거라,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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