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중요한 것

 

1985. 11. 3. 주일오후

 

본문 : 요한복음 8장 31절∼40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제 본문대로 해설만 하겠습니다.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다 예수님 믿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려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저 이름만 믿는다고 하고 예배당에나 왔다갔다하는 그거로써 다가 아니고 "내 말에 거하면" 이 말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신구약 성정 말씀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으로 자기의 생애를 삼으면, 자기 활동을 삼으면 하는 말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이 말씀대로 살면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은 이 말씀대로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는 것이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요, 세상에 수많은 지식들이 있지마는 그런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지 안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신구약 성경 말씀이 말씀 곧 하나님의 지식인데 이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는 것이 주님의 말씀에 거하는 것이요, 또 이 말씀대로 자기의 모든 언행 심사를 하는 것이 이 말씀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지식도 이 말씀대로의 지식, 또 자기 행동도 이 말씀대로의 행동, 그러면 자기의 소원하는 것이나 뭐 비판하는 것이나 평가하는 것이나 언행 심사의 전생활이 이 말씀대로 되는 것을 가리켜서 내 말에 거하면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말은 예수님과 같이 된다 그 말입니다.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말은 예수님과 같이 되고 하는 말인데 어떤 면으로 같이 되는가? 그 뒤에 보면은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은 예수님은 일반인과 달리 성부와 성령이 그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성전이 바로 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성자시요, 또 성부가 예수님 안에 계셨고 성령이 예수님 안에 계신 그것이 예수님이 일반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또 예수님은 어떻게 됐는가? 예수님이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또 무슨 뭐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 단독으로 이래 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성령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렇게만 했지 예수님 단독이 말에나 행동에나 생각에나 뜻이나 이런 것을 단독 한 일이 했고 순전히 아버지가 속에 계시면서 주장하시는 아버지의 뜻대로 언행 심사를 했고 아버지의 뜻대로 한 것이 곧 성령님의 언행 심사, 성령의 뜻대로 그와 같이 한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행동이든지, 마음의 행동이든지 몸의 행동이든지 예수님은 행동할 때에 예수님 당신이 자기를 주장해 가지고 행동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은 전부 아버지가 주님 안에서 말씀하는 그 말씀이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 나왔고, 또 예수님께서 어떤 그 전신으로 행동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 모양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아버지와 성령이 내주하시면서 행동하는 그 행동에 피동뒈 가지고 행동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안에는 성부와 성령이 같이 계셨고 또 성자도, 그러니까 당신이 성자기 때문에 같이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말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내 지식을 삼고 이 말씀대로 내가 행동하게 되면 그 결과로 뭣이 이루어지는고 하니 성부와 성자와 우리에게는 성령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말씀대로 행하는 그 사람 속에 와서 계시게 됩니다. 고걸 가리켜 말합니다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말은 그 말입니다.

하나 인용해 본다면은 요한 2서에, 요한 2서 9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는 이 성경 교훈 안에서 살지 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말씀대로, 이 교훈대로 살 때에 아버지가 그 사람 속에 거하실 수 있고, 예수님도 그 사람 속에 거하실 수 있고, 그러면 성부와 성자가 거하실 수 있고 성령은 어찌 되는가? 성령은 진리의 영이 성령이기 때문에 진리대로 행했으니까 성령은 곧 진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가 이 말씀대로 사는 자 속에 거하시게 된다 그 말입니다. "교훈 안에" 내나 주님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그러고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은,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말을 지키리니" 주님 말씀 안에 있다 그 말입니다.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희에게 와서 "우리가' '우리가 저희에게 와서' 그 말은 여게 우리라 하는 것은 복수인데, 우리가 하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를 가리켜 말합니다.

'우리가 저희에게 와서 거처를 저희와 함께 하리라 거처를 저희와 함께 하리라' 이러니까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자,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참 내 제자가 된다는 요 말은 무슨 뜻인고 하니 참 제자된다 말은 예수님과 같이 된다 말인데, 예수님과 같이 된다 말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성부와 성령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언행 심사를 주장하시고 예수님은 그에게 피동돼서 언행 심사한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거하면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고, 우리가 와 가지고 거처를 저와 함깨 하리라. '우리가 저희에게 와서' '우리가 저희에게 와서' 말씀대로 행하면 '우리가 저희에게 와서' 이 우리는 누구 누구를 가리켜서 우리라고 말합니까?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를 가리켜서 우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1장에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지을까? 이 성부, 성자, 성령이 모여서 의논해 가지고서 어떻게 사람을 지을까 할 때에 우리 형상대로 짓자 하는 고 우리 고것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를 가리켜서 우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저희에게 와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말씀대로 행하는 고때에 고 사람에게 와 가지고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같이 동거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 21절에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이 하실 모든 일을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시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으로 내 지식을 삼고, 또 주님의 말씀대로 내 언행 심사의 생활하는 것을 가리켜서 "내 말에 거하면" 고렇게 말했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거 안 하면 안 됩니다. 요걸 안 하면 안 돼요, 그래. 예수 믿는 방법을 마귀란 놈들이 성경이 가르쳐 놓은 대로 요대로 하지 안하고 다른 방법을 어떻게 많이 내놨는지 기가 막합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혹혹한다 그 말이오. 뭐 기독교 영화를 꾸며 가지고서 그 영화 그것으로써 예수 믿는 그 방법 구원 이루는 방법을 할라고, 또 이 세계는 지금 별별 게 돌아다닙니다. 예수 믿는 걸 그림을 그려 가지고 마구 그림을 그려 가지고 사람을 보면 혹하게 해서 그 그림을 그려서, 그림을 보고서 예수 믿는 일을 할라고 하는 그런 일 하는데 그게 전부 사람들을 미혹해서 진리를 혼돈시켜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걸 똑똑히 알아서 해야 되지, 그러면 우리가 성부를 영접해야 되겠고 성자를 영접해야 되겠고 성령을 영접해야 되겠고 그 삼위 일체 하나님을 우리가 영접해야 되겠는데 영접하면 우리가 성전이 됩니다. 그런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우리가 영접해야 그분이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고로 우리를 원수들이 해하지도 못하고, 또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어떤 것이 뭐라 한다 해도 그까짓 것 문제가 없이 다 그것을 정복하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인데, 그러면 성부와 나와 동행하도록, -성령이 나와 동행하도록, 성자 주님이 나와 동행하도록,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도록 할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느냐? 요거 다른 변동이 없습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제자 된다 말은 주님과 꼭 같이 된다 그 말이오. 주님과 꼭 같이 된다 말은 이것은 뭘 가리켜? 다른 성경에 보면은 뭘 가리켰는고 하니, 말에 거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요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졌을 때에, 요 말씀대로의 행동을 가졌을 때에, 요 말씀대로의 사람이 될 때에 고때에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는 고 사람 속에 계시고 고 사람과 거처를 같이 한다 이랬습니다 또, 무슨 말 했는고 하니 '내가 사랑함으로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을 나타내리라 했어 주님을 나타낸다. 그러면 주님이 누구를 나타냅니까? 당신이 지금 구속 역사를 하시는데 당신이 하시는 일을 누구를 통해서 나타낼란지 당신 한 분만 이 복음 운동을 하고 인간 구원 운동을 하지 인간들은 아무도 못 합니다. 한 분만 하는데, 그분이 인간 구원 운동을 혼자 하는데 인간 구원 운동을 혼자 하시면서 박가를 통해서 나타내 할 건가, 이가를 통해서 나타내 할 건가, 목사를 통해서 나타내 할 건가, 주일학교 학생을 통해서 나타내 할 건가, 누구를 통해서 나타낼 건가, 제가 아무리 천하에 유명한 목사가 돼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뭐 교인이 수천 명, 수만 명, 수백만 명이 돼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또 천하 사람들이 그 설교를 듣고서 마구 감탄을 해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다만 요거 법이기 때문에 요거 변동을 못합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러면 제자되고 하는 그것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지마는 이제 다른 성구를 이제 읽어 본 대로 요한 2서 9절에도 보니까 '고라면 성부와 성자가 성령이 와서 같이 거처하겠다' 또 요한복음 14장 23절에도 보면은, 우리가 와 가지고 같이 거처하겠다, 또 이 계명을 지키는 건 이 말씀 지키는 건데, 말씀을 지키면 내가 그를 사랑함으로써 나를 그에게 나타내겠다, 내가 하는 일을 전부 그 사람을 통해서 다 하겠다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요런 말이 변동이 없는데, 요것이 예수 믿는 방법인데 예수 믿는 방법을 요걸로 하지 안하고 다른 걸로 해 가지고서 뭐 요새 별별 게 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해야 될까 이래 가지고 요새는 또 뭐 성경 공부한다고서 그 뭐 교회마다 성경 공부한다고 야단이고, 또 지금 라디오 방송 설교를 해야 인기가 끌려서 교인들이 모여든다. 또 방송 설교 인기 끌기 위해서, 교인들 모우기 위해서 그래 하고 그런 수단도 좋지마는 그 안에 자기가 그저 말씀에 거하면,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서 성경 공부하는 것도 좋고 뭐 라디오 방송 설교하는 것도 좋고, 전도하는 것도 좋고. 설교하는 것도 좋고, 또 목회하는 것도 좋고 오만 거 좋은데 무슨 일을 하든지 말씀대로의 지식과 행동을 가졌을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그 속에 와 가지고 그를 지배한다 말이오.

참 내 제자가 된다 말은 예수님은 당신이 능동적으로 행동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당신이 능동적으로 뭐 이렇게 하고 싶다고 하고, 저렇게 하고 싶다고 하고 당신 마음대로 해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게 한 번만 있었어도 예수님은 대속하지 못하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죄인이 돼 가지고 죽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일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않는 일이 한 번만 있어도 고게 죄가 되기 때문에 멸망을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피동되지 안한 털끝만한 행동도 없었습니다. 고것이 예수님이시라 말이오.

"참 내 제자가 되고" 그 말은 예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일체가 예수님 안에 들어 계시면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와 같이 하니까 껍데기는 성자 하나뿐이지마는 속에 알맹이는 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그 속에 다 계시면서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나타냈다 말이오. 인성을 통해서 나타내니까 예수님이 하는 일은 전부 하나님 아버지가 하는 일이요, 성자가 하는 일이요, 성령이 하는 일이라. 이래 가지고 '내가 한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아버지의 말이다. 성령의 말이다. 내가 증거하는, 내가 증거하는 게 아니라 삼위 일체 하나님이 증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참 내 제자가 된다 말은 요게 된다 그 말입니다. 요거 외에는 방편이 없어.

그러기에, 요새 목회를 하고, 뭐 목회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끌까, 이제 끄는 방편을 할라고서 여게는 불이 있다 여게는 예언이 있다, 여게는 지시가 있다, 또 뭐 별별 수단 방법을 씁니다. 별별 수단 방법을 써, 이러니까 그 수단 방법이 마귀란 놈이 다, 하나님이 내놓은 똑 바른 요 방편 요 하나뿐인데 요 방편을 놔두고 다른 방편을 자꾸 이렇게 쓰니까 사람들이 고만 다같은 좋은 방편인 줄 알고 그거 쓰다 보니까 또 교인들이 하나씩 둘씩 또 미혹 받는 사람이 모여든다 말이오. 마귀의 또 보내는 사람들이 온다 말이오. 모여 드니까 요거 됐다 싶어서 그 방편을 쓰니까 나중에 가서 일이 안 되니까 그 방편만 자꾸 열심히 더 씁니다. 이래 놓으니까 참된 기독교는 천 리 만 리 자꾸 멀어집니다.

이러니까 "참 내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되고"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 "참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같이 되고,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냐?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만 당신의 지식이지 그의 딴 지식을 하나도 가지지 안했습니다. 당신의 힘은 하나님의 힘만 당신의 힘으로 삼았지 딴 힘 가지지 안했습니다. 당신의 움직이는 거는 전부 성부와 성령의 피동으로만 움직였지 단독이 능동으로 움직인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능동으로 움직인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혹 이 잔을 아버지의 기뻐하시면 떠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새로 수정했습니다. 이러나 내 뜻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이면 그 뜻대로 하시란 말입니다 이래서 당신의 그 능동이 안 될라고 다시 그것을 재수정을 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참 내 제자가 되고" 이 말에는 예수님과 같은 지식, 예수님과 같은 사상, 예수님과 같은 소원, 예수님과 같은 욕심, 예수님과 같은 움직임, 예수님과 같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라. 주님은 아버지의 형상 입었습니다. 주님은 아무 형상도, 주님은 꼭 아버지의 형상을 본받았습니다.

이런데, 참 내 제자가 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삼위 일체가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우리 안에서 계셔서 우리를, 나를 주관하실 때에 우리는 성전이 됩니다 우리는 성전이 됩니다. 우리를 주관하셔 가지고 움직일 때에 우리는 주님의 지체가 됩니다. 주님의 수족이 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주님의 몸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생명이 되시고 주가 되시고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성전이 됩니다.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진리를 알지니" 하는 말은 진리를 만나게 된다. 진리를 만나게 된다. 진리를 영접하게 된다.

그러면 위에 "내 말에 거하면" 하는 말은 하나님 말씀 아닙니까? 알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했지 안해요? 알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했는데 "진리를 알지니" 알아야 행하는데 뭐 행하고 난 사람에게 또 뭐할라고 "진리를 알지니" 말합니까? 여게 "진리를 알지니" 하는 이 말은 진리를 영접한다 그 말입니다. 진리 영접한다.

진리를 영접한다.

그러면, 내 말에 거한다는 그 말은 진리가 아닌가? 녜, 고게서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은 성경 말씀이오. 성경 말씀대로요. 주님이 말씀하신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오. 하나님 말씀이오. 이 말씀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 이 말씀은 문서로 만들어 가지고서 이와같이 말입니다. 말인데, 이 말 속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 진리를 말하는 것은 내나 이 진리대로의 말씀이지요. 진리대로의 말씀이지마는 요 말씀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대로의 말씀이라니? 진리가 이 말씀으로써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이렇게 계시된 것이오. 말씀 안에 진리가 있는데 진리는 참된 이치인데 이 진리는 없는 가운데서 영계와 물질계를 만들기를 진리가 만들었습니다. 다른 이가 만든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내가 이 모든 만물을 창조했다' 그 말은 예수님이 창조하신 것 아니오. 예수님은 진리에게 명했고 진리가 이와 같이 창조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창조했지 예수님이 친히 만물을 창조하신 것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명령하신 분이요 진리는 실지로 우주 만물을 창조한 시공, 시공의 능력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하는, 요 진리를 영접한다, 진리를 맞이한다 하는 말인데 진리를 영접한다, 진리를 맞이한다 요 말은 이제 전지 전능의 이 독자적 전능의 능력을 가진 요 진리를 네가 영접하게 된다. 요 진리가 네 진리가 되고 요 진리를 네가 모셔서 진리와 동거 동행하게 된다 그 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은 진리의 능력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의 능력이 너를 자유케 하리라. 성부의 능력이 있고 성자의 능력이 있고 성령의 능력이 있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능력은 진리에게 명령하고, 알겠습니까? 진리에게 명령하고, 진리는 그 능력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시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 만물을 지을 때에, 만물을 지을 때에 성부, 성자, 성령은 이 진리를 명했고, 진리를 명했고 진리가 와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진리는 뭐인가?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영감이 나와 가지고, 하나님에게서, 성령에게서 영감이 나와 가지고 하나님에게서 영감이 나왔다면은 성신의 감동이 나와 가지고 그 감동이 진리가 됐습니다. 감동에서 진리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진리가 나왔고 이 진리가 모든 만물을 창조했는데 진리가 또 나와 가지고 뭣 됐는가? 진리가 나와 가지고서 문서 계시가 됐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진리를 맞이해야 진리의 능력이 너희들을 자유하게 된다. 자유하게 한다. 자유할 수 있다.

그러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가 자유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자유하는 것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자유하는 거는 어떻게 자유하는 것입니까? 자유라 하는 것은 제 맘대로 하고 제 좋은 대로 하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제 뜻대로 하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자유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자유가 뭐인가? 악령대로 하고 싶고 악성대로 하고 싶고 악습대로 하고 싶습니다. 자기 주장대로 자기 위주로 하고 싶고, 또 악령을 따라서 하고 싶고, 악령에게 복종하고 싶고 또 자기 중심으로 살고 싶고 하는 것이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이라.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를 말하면 그 사람들이 원수로 알고 달라듭니다. 그러나 마귀의 말은 잘 듣습니다.

왜? 테레비는 보면 그렇게 재미가 있어 눈방울이 또록또록한데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그런가? 그거는 악령의 감화가 재미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또 악령의 감화가 재미가 있고 자기 위주,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참 괴롭고 힘들고 싫지마는 제 중심으로 제 위주로, 제 하고 싶은 대로, 제 욕심대로 하는 것은 어떻게 재미있고 좋은지 된 줄도 모르고, 잠 오는 줄도 모르고, 나중에 몸살 나 가지고 죽을 둥도 모르고 해댑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대로 하고 싶은 것이 저의 소원이요, 제 소원대로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자유입니까? 우리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자이기 때문에 중생된 새사람은 어떤 것을 소원하는가? 피를 입고 살고 싶고, 피를 입고 살고 싶고, 피의 대속을 입고 살고 싶다 말이오. 대속을 벗지 안하고 대속을 입고 살고 싶고, 대속을 나타내고 싶고, 대속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고 싶고, 또 영감으로 살고 싶고, 진리로 살고 싶고, 우리 자체의 본질과 본성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된 우리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는 피대로 살고 싶고, 진리대로 살고 싶고, 영감대로 살고 싶은 그것이 우리가 소원하는 것입니다.

자유케 하리라 그 말은 요 세 가지대로 산다 그 말입니다. 주님의 피로 살 수 있고, 영감으로 살 수 있고, 진리로 살 수 있다. 너희가 자유하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렇게 예수님의 피로 살고, 소원대로, 피로 우리가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 힘이, 생명이 피요 영감이요 진리기 때문에 피와 영감과 진리대로 살고 싶은데 암만 살고 싶어도 우리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주여, 주님의 피를 벗지 안하고 주님의 피를 입고 주님의 피, 대속을 입었으니까 사죄로 살고 칭의로 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게 해 주옵소서.

영감대로 살게 해 주옵소서. 진리대로 살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이렇게 실컷 기도해도 현실을 만나 버리면 그만 푹 쓰러지고 헛일한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현실을 만나도 뭐 조금도 요동치 안하고 쭉 그래 살고, 어떤 사람은 소원은 하기는 하는데 현실을 만나면 고만 그 생활 못하게 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소원 조차도 하지 안하고 만날 소원도 그저 교회 와도 항상 소원이 악령, 악성, 악습의 그놈의 소원을 가진 사람 있고, 이제 진리와 성령과 주의 피의 생활을 원하기는 원해도 능력이 없어 가지고서 그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소원만 할 뿐 아니라 고대로 척 사는 사람은 자유하는 사람이고 그대로 살라고 하다가 그만 마귀와 죄가 와 가지고 살지 못하게 하니까 할 수 없어서 그것에게 끌려 가지고서 죄를 지은 것은 죄의 종이 됐기 때문에 원하는 자유대로의 영감과 진리와 주의 피대로는 살지 못하고 원치 않는 죄 그놈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에 죄에게 패전해 가지고 죄의 종으로 살게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의 대속의 이 사죄를 벗지 안하고 사죄 입은 자로 살고, 또 칭의를 입은 자로 살고, 하나님과 화친한 자로 살고,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고, 영감대로 살고, 성경 말씀대로 살고 이렇게 살고 싶기는 살고 싶은데 이렇게 살고 싶다고 해도 능력이 없어서 살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사는 자는 어떻게 해야 삽니까? 무슨 능력으로 삽니까? 무슨 능력으로 삽니까? 요거 좀 어려운 것이오. 무슨 능력으로 살지요? 무슨 능력으로? 이렇게 살라고 하면은, 자유할라고 하면 자유 생활, 우리 하고 싶은 대로, 영감대로 살고 싶고 영감대로 하고 싶은 대로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살고 싶은 대로 진리대로 살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대로 살고 싶은 이대로 살고 하는 이 자유의 생활을 할라고 하면은 뭣이 이렇게 자유 생활 하게 해 주십니까? 예? 진리. 거기 진리 안 해 놨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했다 말이오. 그러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면 되는데 이 진리는 뭣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진리는 성경 말씀을 진리라고 하지 안하고, 성경 말씀은 진리의 껍데기입니다. 알겠습니까? 진리가 인간들이 접할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 말씀이요, 말씀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면, 말씀대로 행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일체가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를 주님 안에 삼위 일체가 계시는 것처럼, 성부 안에 성자와 성령이 계시고, 성령 안에 성부와 성자가 계시고, 또 성자 안에 성부와 성령이 계시고, 삼위 일체는 상호 내주합니다. 성부 안에 삼위 일체가 계시고, 성자 안에 삼위 일체가 다 계시고, 성령 안에 삼위 일체가 다 계십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가 진리대로 행하는 그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대로 살라고,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질라고, 이래서 자꾸 성경을 읽어 가지고서 성경 지식과 내 지식이 일치될라고. 일치된다 말은, 내 지식온 처음에는 배암의 지식이라.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 우리의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 세상 지식은 다 마귀 지식인데 이 지식을 다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을 삼을라고 이렇게 애를 쓰고, 또 말씀대로 내 언행 심사가 될라고 애를 쓰고 요렇게 요 지식과 행동이 요 말씀대로 될라고 말씀대로의 지식, 말씀대로의 언행 심사 행동 요것을 요렇게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목적이 뭐이냐? 그렇게 애쓰는 것은 뭐 할라고 그렇게 애씁니까? 애쓰는, 고렇게 애쓰는 목적이 뭐인지? 목적이 뭐인지 여러분들이 알아야지. 자꾸 이거, 내가 이 말하는 것을 빨리 안 하면 언제 이 짧은 시간에 그래 막 쭈 대도 자꾸 뭐 설교 길다고 쌓아니 또 이걸 느릿느릿하다가는 되지도 안할 터이니까. 자, 그러면 이렇게 말씀대로 이렇게 행하는 것.

"내 말에 거하면" 주의 말씀대로 거하는 것이 그것이 몇 가지입니까? 말씀대로 거하는 것이 고것이 크게 말하면 몇 가지입니까? 자,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크게 말하면 몇 가지입니까? 두 가지라고도 할 수 있고 녜, 세 가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라는 말은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지는 게 하나 있고, 말씀대로의 행동 가지는 것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뭐입니까? 말씀대로의 사람, 말씀대로의 자기가 되는 것 요것이 내 말에 거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요렇게 하는, 요 하나님 말씀으로 내 지식을 삼고, 말씀대로 내가 언행 심사의 행동을 하고, 이 말씀대로의 내가 될라고 이렇게 애를 쓰는 그 목적이 뭐입니까? 요대로 하는 목적이 무슨 목적이요, 무슨 욕망으로 그와같이 하는 것입니까? 녜.

"참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같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요걸 이렇게 가르쳐도 요걸 구별 못하면 어떻게 행동을 하겠습니까? 이라기 때문에, 내가 그전에 여기 OO교파에 있다가 나올 때에 나와 같이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같이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이제 서울에 OOO목사님이 나와 좀 가깝고 OOO목사님이 나와 좀 가깝고, 부산에 어떤 목사님 한 분이 나와 가까운데 그 사람이 그저 나와 가깝기 때문에 그 사람을 그래도 신앙의 동지라고, 같이 나갈 동역자라고 이렇게 생각을 해 가지고서 얼마 동안 같이 지냈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목회를 하는데 자기 교회에 된 일이 있으면 나한테 와서 묻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런 사건이 생겼는데 내가 이렇게 이렇게 처리를 했습니다. 그래 어떻습니까?' 처리하고 난 다음에 사후에 와서 묻습니다. 처리를 이래 해도 저리 해도 당장 고장 나는 것 아니오, 그러면 내가 그때 그랄 때에 '아, 그래요. 혹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말해 놓으면 그 사람이, 말하면 '아이쿠 그게 옳습니다. 이게 또 잘못 됐구먼.' 열 번이면 열 번 오는 대로 처리한 것이 다 틀렸고 맞은 것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은 나하고 갈려져서 그 사람 딴 데로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거 뭐 예수 믿는 이 도를 이렇게 아무나따나 고만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이래 하고 지내니까 이 생활이 도무지 구별이 없다 말이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이러니까 팔방 미인으로 사는 것은 저도 수월하고 다른 사람도 다 좋아하고 '저 사람은 참 아주 뼈 없는 사람이라, 모배기 없는 사람이라, 좋은 사람이라.' 이러나 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요대로 살라 하면 전부 적이 됩니다. 전부 적이 돼요. 말 한 마디 할 때도 그것을 자 암말도 안 하고 그 말하다가 말을 하면 서로 안 될상 싶으면은 그저 거기서 찬성도 못하겠고 반대도 못하겠고 그저 암말도 안 하고 그러면 그만 화제를 달리 바꿔셔 다른 말 하든지, 그리 아니니 허허 예예 뭐 이래 이래 둘둘 지날 수밖에 없지 말씀대로 하면 마구, 말씀대로 하는데 다 마찰이 된다 말이오. 삐뚤어진다 말이오. 이렇게 살지 안하면 안 됩니다. 녜.

이러기 때문에, 뭐 이걸 바로 깨달아야 살지 깨닫지 못하면 살겠느냐 그 말이오.

이런데 예수 믿는 이치를 말하면 모두 듣기 싫어하요. 요 절대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 내가 어제도 어떤 사람이 성경을 연구하는 그걸 와 가지고 말하는데 그 참 기가 탁 차서, 기가 막히는 일이라. 자꾸 사람을 미혹시키는 마귀는 쉴새 없이 역사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종들은 역사 하면 커녕 마귀의 일꾼이 돼 가지고 자꾸 그 역사만 하고 지내니 이게 예수님의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

내가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노아 홍수 때와 꼭 같이 될란지 몰라요. 참 믿는 사람이 별로이 없이 기본구원만 얻었지 건설구원 얻어 사지고 가는 사람이 몇이 안 될란지 모른다 그 말이오.

"내 말에 거하면" 하는 것은, "내 말에 거하면" 하는 것은, 요것은 자기가 요거 세 가지를 말하는 것이오. 자기라는, 자기 마음을 요래 쓰고 정신을 요래 쓰고 성질을 요래 쓰고, 내라는 사람이 요 말씀대로 되고 내 행동이 요 말씀대로 되고 내 지식이 요 말씀만이 내 지식을 삼고 요 말씀 외에 딴 지식은 그걸 내가 부인하고 요 말씀대로의 지식을 삼을라고 애를 쓰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 말씀대로 살라고, 말씀 안에 거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오, 요게 말씀 안에 거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라.

"내 말에 거하면" 요 말씀대로 살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내 제자가 되고" 제자된다 말은 선생님은 예수님을 말씀하니까 참 내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 당신이 말했기 때문에 당신 제자되니까 당신과 꼭 같은 자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 말이오. 당신과 꼭 같은 자되는 것을 말하니까 당신은 온유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거룩하니까 온유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거룩하다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인지, 그라면 끝이 없다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 되면은,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님에게 대해서 정의를 내리면 어떻게 내려야 될 건가? 성경 말씀에 보니까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일체가 이제 와서 거처를 같이 한다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은 예수님은, 당신은 성자시지마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가 예수님 안에 와서 계시는 고것이 일반인과 다른 특수입니다. 또 이제 성부와 성령이 예수님을 주관하시고 예수님은 한 번도 당신 마음대로 말 한 마디도 못 해 봤고, 생각 하나도 당신 마음대로 생각 하나 못 해 봤고, 당신 뜻대로 한 것 하나도 없고, 뭐 당신 소원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이나 생각이나 주장이라 하는 거는 털끝만치도 해보지 못하고 전부 피동이라 말이오. 전부 피동됐어. 그것이 예수님의 특수성입니다. 안에는 자기가 자기 안에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성부와 성령이 예수님 안에 주인공이 됐고, 예수님은 당신 주장이나 주관대로 한 번도 하지 못했고 전부 성부와 성령 주관대로만 거게 피동돼서 해 왔고, 자기를 비어, 자기를 비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입었다 말이오. 당신 주장대로 하나도 못 했지, 자기를 확 비어 버리니까 공이라 말이오. 아무것도 없고 전부이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죽으라면 죽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이 일을 했다 그 말이오. 이것이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것은 요렇게 말씀 안에 거하면은 무슨 결과를 맺느냐? 말씀 안에 거하는 요 일은 차차차차 예수님의 제자가 되나니 차차차차 나는 부인해서 나가고, 나는 부인해서 없어지고, 삼위 일체 하나님만 인정해서 영접하게 되고, 내 주장이나 내 욕심이나 내 자율이나 내 뭐 취미나 내 마음의 움직임이나 내 몸의 움직임이 내대로 움직이는 거는 하나도 없고 이제 이 삼위 일체의 주님에게 따라서 피동되는 사람이 된다. "참 내 제자가 되고" 요런 사람이 된다 말씀하는 것을 가리켜서 "참 내 제자가 되고"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알지니" 위에 "내 말에 거하고" 하는 것은, 말은 내나 진리 아닙니까? 말 보고 행한 것 아닙니까? 말 보고 행했는데 말 보고 행하면 진리를 맞이하게 된다 그 말이오. 요거 똑똑히 구별해.

말 보고서 말대로 행하면 진리를 영접하게 된다. 말은 진리 아닙니까? 말이 진리지마는, 말은 진리지마는 진리의 외모가 말이요, 외형이 말이요, 외형의 이 말씀을 보고 고대로 행동하면은 고 행동하는 가운데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영접하게 된다 말이오. 진리를 안다 말은 진리를 맞이 한다 말이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맞이 하게 된다. 진리를 영접하게 된다.

진리 영접하게 된다 하는 그 말은, 그 진리는 무슨 진리인데? 진리를 영접하게 되는데 그 진리는 너희들을 자유케 한다. 그 진리는 원수 앞에서도 대통령 앞에서도, 마귀 앞에서도, 또 독침 앞에서도, 공산주의 앞에서도, 사형 앞에서도 온 천하의 대적 앞에서도 이제 영감대로 진리대로 주의 피대로 자기대로 살 수가 있다. 그대로 살 수가 있다. 어떻게 해서? 네가 영접한 진리는 모든 만물을 다 창조한 능력이기 때문에 그 능력이 너를 능력 있게 도와 주기 때문에 그 진리가 너를 도우니까 네가 자유하게 된다 하는 이 말씀이오.

이 방법으로 예수를 믿어야 되고, 이 방법으로 도리를 알아야 되고 자꾸 성화돼 나가야 되지 이 방법 외에 인간들이 조작배기로 만들어 놓은 구원 얻는 방법을 많이 해 놔서 마구 사람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어째 보면 교인 수가 자꾸 늘어 나가니까 이거 참 남한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뭐 교회가 돼지니까 공산주의가 못 오겠다 이래 싶은 그런 때도 껍데기로 돌아다녀 보면은 교회가 여기도 서고 저기도 서고 막 이래서니까 그러겠다 싶으지마는 속에 내용을 들어가서 보면은 탄식이 돼서 하나님 앞에 그런 기도가 나오지 안할 수가 없어. '주님이여' 벌써 벌써 삼사십 세 되는 이 노년에 있는 이 사람들 보지 마십시오. 이거는 내나 그들이나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전부 하나님이 노해서 이 진멸을 할 수밖에 없는 참 맷정만 쓰고 전부이 하나님을 이용해 먹을라 하는 이 거짓부리 이런 것들뿐이지마는, 나도 그렇고 모든 목사도 다 그렇고 모든 평신도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것들, 중간반이라든지 또 유치반이라든지 이런 어길 것들은 보면은 이는 거짓부리가 없이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의 말씀이 생명인 줄 알고 그들이 어려움이 있어도.' 어린 것들이 그렇게 뭐 지금, 먹을라 하면 배 고픈 때는 환장을 하는 데도 그 주일날 시장 봤다고, 그게 주일날 시장 봤다고 안 먹으니까 부모가 있다가 '조놈의 새끼 좀 배가 고파 봐야 알지. 그래 너 오늘-고거 꺾을라고-오늘 이거 전부 주일날 다 시장 본 건데 너는 오늘도 안 먹을래?' 의례히 그라면 배 고프면 먹지 싶어 그랬는데 '안 먹을래' 하면 암말도 안 하고 이게 밥만 꼭꼭 집어 먹고 이래 가지고 있다 말이오. 이라니까 '요놈을 어찌 꺾어서 요걸 버르장이를 고쳐야 되지' 해서 고다음에는 쌀도 주일날 팔아 가지고 와서, 저 보는데 쌀도 주일날 떡 팔아 가지고 오고 밥을 한다 말이오. 밥을 하면은 이거 아침을, 보니까 아침을 안 먹어.

또 점심을 안 먹어. 또 저녁을 안 먹어. 애가 터진다 말이지. 이러니까 할 수 없어 '저놈이 얼마나 견디는가 보자' 그래 가지고 또 보니까 그 이튿날 또 그 쌀 가지고 밥하니까 또 안 먹어. 안 먹으니까 이제 마지막에는 할 수 없어서 다른 쌀 갖다가 밥을 해 줍니다. 어린 것들이, 그렇게 배 고프면 뭐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막 거머닥칠 건데 주일날 시장 봤다고, 주일날 산 물건이라고 안 먹는 이것이 우리 주일학교에 꽉 찼다 말이오. 우리 주일 학생들 얼추 그래 다 그래요. 중간반 일 이후 학생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이게 하나님의 노를 풀고 이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그거 뭐 조그매 돈만 좀 유익이 있어도 고만 주일을 범하고 거짓말 하고 말씀을 어기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수지는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놓고 찌끄러기 있는 그런 거 가지고 사람 보기에 예수 믿는 척 이래 하는 이게 주님 앞에 진노만 쌓지 내용을 들여다 보면은 공산주의로 이거 막 때려 부숴서 이걸 바짝 부숴 가지고 콩가루를 만들어서 전부 하나님의 그 분의 소원 성취를 풀어야 되겠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수밖에 없다, 이거는 뭐 아마 백의 백이 공산주의로 싹 쓸어서 콩가루를 만들 것이다. 이렇게 보여지고, 이제 주일학교 학생을 보면은 좀 소망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이 학생들을 보십시오' 이것들 덕택을 볼라고 '이 학생들을 보십시오 이런데, 이북에야 이런 일 있습니까? 남한에 그래도 이것들이,' 내가 저 아래도 보니까 새벽에 여기서 다섯시에 마치고 저 양산동 차를 타고 가니까 저기 가서 보니까 저거 형제가 똑 요맹씩한 것들이 셋이 손을 잡고서 이래 가지고서 그 깜깜한데 이렇게 새벽 기도 나온다고 나와 매 내가 어떻게 고맙고 기쁜지 눈물이 나와요. '하 저것들이 저 뭐 안다고, 뭘 안다고 저게 새벽에 저렇게 캄깜한데 저거 무서운 줄도 모르고 저래 나을꼬?' 보니 이 골목에도 그게 나오고 저 골목에도 그게 나오고 그래 이런 것들을 볼 때에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가 나오지.

여러분들 여게서, 자, 사십 세 이상 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사십 세 이상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 사십 세 이상 되는 사람들 한번 손 한번 들어 봐요. 사십 세 이상, 퍼뜩 한번 들어 봐요. 우리는 죽어야 마땅해요. 알겠습니까? 우리는 죽어야 마땅하고 공산주의가 막 싹 가루를 만들어야 마땅합니다.

여러분들이 양심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뭐 예수를 믿는가? 진리대로 믿습니까? 자기를 찍어서 믿습니까, 정말로? 주님의 제자가 됐습니까?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을 삼습니까? 이 세상의 배암의 지식 가지고서 다 거석하고 뭐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의 피, 놀림거리로 생각하고서 제 지식대로, 실지를 당하면 제 지식대로 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말할 때는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말하고, 말할 때는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말하고 실질에 써먹고 행동 할 때는 제 지식대로 행동하고 이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노엽게 한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 외에 하나님을 노엽게 한 자가 없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는 이스라엘에게 다 있다 하나님을 격노케 한 자가 누구뇨? 하나님을 촉분 지른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 외에 딴 사람이 없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회개를 하고 바로 믿읍시다. 뭐 돈 문제 때문에 염려하지 마십시오. 돈의 주인이 그분이오. 온 세계의 금은이 내 것이라 했습니다.

금도 내것이요 은도 내것이라 했습니다. 회사도 내것이요 모든 나라도 내것이요 당신의 것이라 했습니다. 당신의 것인데 그런데 대해서 염려할 게 뭐입니까? 염려하지 맙시다. 염려하는 게 믿지 않는 것이라. 뭐 굶어 죽거나 맞아 죽거나 어찌 되거나 그거는 당신에게 맡겨 놓고, 이라면 거지가 되거나 이라면 우리가 못살면 하나님의 복음이 가리워지지 않느냐? '가리워지는 것도 상관없다. 그런 염려하지 말아라, 야. 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봐라.' 이것을 당신이 요구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우리가 말씀대로 이렇게 살라고 애를 쓰는 것, 내 말에 거하는 것, 내 말에 거하는 것이 몇 가지가 주님 말 안에 거하는 거라 했지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가? 뻐뜩 들어 가리켜 봐, 뻐뜩 들어. 녜, 이 세 가지. 이 세 가지가 주님 말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가 되도록 애를 써요, 우리가 이 세 가지 될라고 그저 자꾸 성경 말씀을 보고서 이 현실을 당하면 배암의 지식은 요렇게 하라 하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요렇게 하라 하고, 배암의 지식대로 하면 아무 파란이나 환난이나 손해가 없고 하나님 지식대로 할라면 온 세상과 대립이 되기 때문에 큰 환난이 나겠고 어떻게 할꼬, 막 이리 쌓다가서 '죽어도 할 수 없다. 하나님 지식대로 해야 되겠다.' 요 사람이 승리지마는 대개는 보면은 그만 세상 손해 안 보기 위해서 제게 희생 안 당하기 위해서 배암의 지식대로 하는 일이 많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잘못해 그러면 또 회개를 해요. 그랬으면 즉시 반성해서 회개하고 '주님이여 내가 배암의 지식대로 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고 또 새로 시작해요. 시작해서라도, 단번에 시작해 가지고서 한 사람도 좋지마는 백 번만에 시작해 가지고 한 사람도 괜찮습니다. 만 번을 새로 패전하고, 만 번을 패전하고 만 한번째 시작해 가지고서 승리해도 좋습니다. 그것도 더 좋소. 주님은 더 불쌍히 여기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 이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 무엇인가?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되는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 그랬거든. 예수님이 그랬거든.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게 제자 아닙니까? 그렇고, 또 하나는 당신 뜻대로 하나도 하지 못하고 전부, 내주하신 하나님에게 피동돼서 하나님에게 완전히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해 버리고 하나님이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살고 그분에게만 피동된 그것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삼위 일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나를, 언행 심사를 삼위 일체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이것이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거라 말이.오. 참 제자. 우리가 이 언행 심사로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건 예수님의 제자될라고 그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러면 제자가 되면 뭐 할 건데? 제자가 되면 뭐하노?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영접하게 된다. 진리를 영접하게 된다. 아, 아까, 말에 거하면 말 그게 진리 아닌가? 말의 진리와 진리와 다르다 그 말이오.

말의 진리는 진리가 외형을 가져 가지고, 진리가 외형을 가지고 사람들이 읽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고 이렇게 그 진리를 팽개칠 수도, 이 말씀을 팽개칠 수도 있고 배반할 수도 있지마는 진리는 그리 못 해요. 진리의 외형은 말씀이요, 말씀의 외형은 성경이요 이제 진리의 외형을 보고서 고대로 행하니까 진리 진짜를 영접하게 된다. 진리를 영접하게 된다. 진리를 알게 된다. 진리를 맞이하게 된다.

진리를 영접하게 된다 진리가 네게 들어와 가지고서 진리와 너와 같이 행동하게 된다 그러면, 그 진리가 뭐인데? 아, 그 진리가 뭐인데? 그 진리는 어떤 진리냐 하면은 너를 자유케 하는 진리다. 너를 자유케 하는 진리다. 독침 앞에서도 말씀대로, 공산주의 앞에서도 말씀대로, 뭐 일본 나라의 일본 정부 앞에서도 말씀대로,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 가운데서도 말씀대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말씀대로, 뭐 고문과 고형을 해서 가죽을 벗기고 불로 태우고 뭐 어떻게 해도 말씀대로, 말씀대로 하는 것은 말씀 배반치 않는 것만 말씀대로 하는 게 아니라 말씀을 배반치 않을 뿐만 아니라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이 말씀대로 하는 거라.

말씀대로 하는 것 그러니까, 그 불란서의 전도자 건토나라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하도 복음 전도 열심히 하니까 이제 왕이 불러 놓고서 이거 네가 전하지 말라고 이라니까 '안 전할 수가 없습니다' 이래 전하니까 형벌을 되게 했다 말이오. 불을 몸에다가 불을, 저 막 누망탱이를 만들어 기름을 쳐 가지고 불로 태워도 그래도 복음을 전하고, 그래도 기뻐하고, '이놈 네가 그래도 지금 뜨겁지 안하냐?' 기쁘고 즐겁다.

감사하다 하고. 감사와 기뻐만, 즐거워하니까 이놈을 도무지 찡그리고 고통을 줘야 될 터인데 고통을 못 주니까 '뭘로 고통을 줄꼬?' 이래 가지고 오만 거 뭐 화침질을 해도 고통이 없고 항상 감사하고 기쁘고. 그 사람 세계가 다르다 그 말이오. '아, 주님이여 이 천한 죄인이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서 내가 주를 위해서 고생하고 주를 위해서,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이런 일을 어떻게 나에게 하십니까?' 이제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여 어떻게 나를 이렇게 만물을 구속하는 제물로 삼으십니까?' 이 감탄해서 그라는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주님이 원망했다고 그렇게 한다 말이오. 원망했다고 그 해석을 그래 해요. 원망했다고. 원망하면 그만하면 죄인데 우리를 구속할 수가 어찌 있겠소? 주님의 심장을 안 봐 그런 거라.

이러니까 그분은 그렇게 하니까 마지막에는 '이놈은 아무리 해도 감사하지 못하도록, 기뻐하지 못하도록 할라 하면 안 된다.' 안 되니까 마지막에는 '이놈 모가지를 끊어 보자. 그래도 그라는가?' 모가지를 끊어 버리니까, 그때 숨이 떨어지니까 이제 그것으로 끝났으니까 뭐 싸움을 이겼으니까 할 필요가 없다 말이오. 끝났다 말이오, 이것이 뭐이냐 하면 자유 하는 것이라. 왜 내가 공산주의 앞에서도 담대할라 하는데 내가 담대하는 그게 자유지. 공산주의 앞에서도 말씀대로 내 마음대로 내 주장대로 영감대로 진리대로 주의 피공로대로 하고 싶은데 하는 것이 자유지. 고문과 고형 가운데서도 기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고 싶은 그것이 내 소원인데 그대로 하는 것이 자유지. 뭐 눈을 빼고 혀를 짜르고 어떻게 해도 그런 가운데서도 그저 기쁘고 즐겁고 하니까 낯이 밉상스러우니까 낯을 확 그려서 뭐 이래 버려도 찌그려 가지고 피 나온 그 낯도 또 기쁘고 즐겁고, 또 그 속에 마음에 기쁘고 즐거운 것을 금할 수가 없다 말이오. 그게 자유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 자유를 우리가 얻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자유를 얻는 이것은 이 진리가 와 가지고 이와같이 하는 것이니까, 진리가 와 가지고, 그 사람 속에는 그러면 그 사람 속에는 지금 진리가 들어 가지고 그 사람을 어데서든지 영감과 진리와 피의 대속대로 자유합니다. 자유 하는데, 그러면 자유하니까 그 사람 속에는, 그 사람 속에는 누가 들었습니까? 그 사람 속에는 뭐이 있습니까? 뭐이 있소? 뭐이 있소? 그 사람 속에 뭐이 있소? 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그 사람 속에 뭐 몇이 있는고. 셋 있어? 진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아니오. 진리가 같이 하니까 진리하고 성령하고는 떨어지지를 못합니다. 이제 진리가 영감이요, 영감이요, 진리는 성령이 책임 맡았어. 그래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 이랬습니다.

진리의 영이라. 이랬기 때문에 이제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의 능력이 그 사람을 자유하게 하니고 배후에는 몇이 있느냐? 셋이 있습니다. 셋이 뭐 있습니까? 성령과 성자와 성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가 고 가운데 있다 그 말이오. 이래서 '내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와서 우리가 너와 거처를 같이 하겠다' 요 말하고 맞소 안 맞소? '거처를 같이 하겠다' 이러니까 고 안에 삼위 일체가 지금 요렇게 하는 사람 속에, 진리가 그 사람을 붙들고 벌써 역사할 때에는 그 속에 삼위 일체가 그 속에 계셔서 삼위 일체가 이 진리에게 호령하고 진리는 삼위 일체의 명령을 받아서 고대로 이 사람을 붙들고 이제 자유하게 한다 그거요.

그런데, 주님이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말씀하시기를 '내 계명을 지키는 자는 내가 그를 사랑하여서 내가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내가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내가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는 이 말씀과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과 다릅니까 같습니까? 요 같소 다르요? 예? 같습니까?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하는 고 말씀과 주님이 나를 '내가 너를 통해서 나타내겠다' 하는 그 말씀과 꼭 같은 말 아닙니까? 같은 말 아니오? 그 자유가 내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인데 고대로 주님이 나타내는 것 아닙니까? 주님이 하시는 역사, 주님이 하시는 역사는 이 세 가지 역사인데 고대로 나타내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제일 중요한 게 뭐이냐 하면은 "내 말에 거하면" 하는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요것만 하면 성경 연구도 요게 좋고 자기 구원 이루는 것도 요게 좋고 이런데 막 다른 방편을 써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꾀어 가지고서 절단을 낸다 그거야. 여러분 지금 성경 공부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지식을 뭐 알아야, 하나님의 지식을 알아야 그대로 하지요.

이러니까 "내 말에 거하면" 하는 주님의 말을 알라고 지금 성경 공부를 하라고 지금 오전에 강조를 했다 그 말이오. 공부해서, 해 가지고서 '내 말에 거하면' 내 말에 거한다고 하신 주님의 요 말씀을 성경을 읽어 가지고서 알 수 있고, 요 말을 알고 난 다음에 뭐하는 것입니까? 거하는 것 고대로 사는 것, 고대로 되는 것 말이오. 요 말씀대로 되는 것 말씀대로 되는 것이 세 가지라 그 말이오. 요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말씀대로의 행동을 하고 말씀대로의 사람되는 고것이 뭐이냐 하면 이 말에 거하는 것이라. 이 말 안에 거하는 것.

그러면, 뭣 됩니까? 그러면 이제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내 제자가 되고 참 내 제자가 되니까 이제 삼위 일체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셔서 주관한다 말이오. 그러면, 그라면 뭐이냐 하면 "진리를 알지니" 이제 진리가 와 가지고서. 영접해서 이 진리의 능력이 와서 그러니까 자기 안에는, 다른 사람 보기에는 다 같이 예수 믿는 사람 같지마는 자기 안에는 삼위 일체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 주장권을 가지고서 주장을 하고 있고, 삼위 일체 하나님이 주장을 하고 있고, 삼위 일체 하나님의 심부름은 누가 합니까? 삼위 일체 하나님이, 그러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이러면, 제자가 되면은 그 사람 안에는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내주하여 계십니다. 내주해서 주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라면 삼위 일체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고 그 사람 속에서 능력으로, 능력으로 역사하는 그 능력의 이름은 뭐입니까? 예? 예? 예? 여게 한번 대답해 봐요. 삼위 일체 하나님이 그 속에 있는데 그 속에 역사하는 그 능력의 이름은 뭐입니까? 진리? 진리? 진리? 진리? 진리를 진리는 이제 왜? "내 말에 거하면" 말도 진리인데 진리라면? 말은 이 진리의 외형인데 외형으로 영접해 가지고 속에 알맹이 진리를 영접하니까 이 진리는 전능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이 능력이 우리를 붙들고 세상을 이기게 하신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요렇게 똑똑하게 요렇게 안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내 말에 거하고' 하는 요거 없으면 헛일이오. 제가 암만 일등 부흥사가 돼도 소용 없습니다. 뭐 목회를 해서 교회가, 우리 교회도 장년반이 수천 명이고 유년반 중간반하면 뭐 수만 명이지만 수만 명 아니라 수십만 명이라도 아무 소용 없소. 자기 구원은 꼭 "내 말에 거하면" 요게 돼야 됩니다. "내 말에 거하면" 요게서부터 이제 이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하니까 내 말에 거할라 하는 고게서 능력을 영접하는 것이오.

내 말에 거할라고, 주님의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질라고, 주의 말씀대로의 행동을 할라고 주의 말씀대로의 사람이 될라고 애쓰는 요게서 우리 능력이 필요 있지 요것만 노력을 하고 나면은 그다음에 참 내 제자가 되면 삼위 일체 하나님이 와 가지고 나를 주장하고 내주해 계시고, 그라면 삼위 일체의 심부름군이 있습니다.

삼위 일체의 심부름군이 있어. 삼위 일체가 잡아 부리는 심부름군이 있어 삼위 일체가 잡아 부리는 심부름군, 능력 있는 심부름군이 있는데 그 심부름군의 이름이 뭐입니까? 진리. 그러면 우리는 어데서든지 자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래도 이런 데서야 기뻐할 수도 없다 할 때에 기뻐할 수도 있고, 이런데서야 담대할 수 없다 할 때에 담대할 수가 있고, 이럴 때는 이 진리대로 말할 수 없다 할 때에 말할 수 있고, 이런 때는 거부하지 못한다 할 때 거부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리 된 사람은 앞으로 단군 신사가 이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를 사랑하므로 이래 가지고 쭉덩이 알곡을 나타냅니다. 뭐 지금 내가 정통이고 뭐 그래 쌓아도 마지막이 되면 정통 서로 하라 할 것이오. 정통, '내가 정통인데 네까짓 놈이 정통이냐? 내가 정통이다.' 이래서로 제가 정통이라고 싸우지마는 마지막에 그때는 정통이 막 길 가에 나자빠졌습니다. 나자빠져 가지고 아무도 정통 하지 말라 하는 사람 없어. 그때는 정통 자유로 할 수가 있어 정통을 자유로 할 수 있어. 이제 단군 신사 참배 올 때 그때는, 그때는 뭐이냐? 모두 '아, 정통 좀 이리 오라' 하면 어이이 나는 싫다고 도망칠 것이오. 그때에 단군 신사 참배가 오든지 뭐 오든지 그때 하나님 말씀대로 자유하는 그것이 능력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오.

그 준비는 오늘에 "내 말에 거하고" 내 말에 거할라 하면 그분의 말을 알아야지.

그러기에 성경 공부를 해야지. 성경 공부한 대로 성경 공부로 자기 지식을 삼고 요대로 하나씩 둘씩 해서 자꾸 연습을 해 가지고서 요 말씀대로의 행동이 요 말씀대로의 사람이 자꾸 되어져 가는 요게 성공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에누리가 없습니다 뭐 이리 둘러대고 다른,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요 한 길뿐이지 딴데 이리 가도 되고 저리 가도 되고 그런 길이 없습니다. 이외에 다른 방편으로 말하는 건 전부이 배암이 와 가지고서 우리를 꾀우는 것이오. 목사가 줘도 꾀우는 것이요, 신학 박사가 줘도 꾀우는 것이요, 다 꾀우는 것입니다. 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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