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은혜


선지자선교회 1985년 10월 2일 수새 

 

본문 : 로마서 6장 12절-14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어제 아침에도 증거를 했는데, 우리는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이 참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한 것이라야 우리가 힘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가다가 좀 어려움이 있을 정도의 길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  걸음은 어떤 조건이든지 그런, 주님의 명령하신 명령과 규례가 그저 힘 들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그런 때도 있지만 생명까지도 내놓지 않으면, 자기의 기업을  내놓지 않으면, 자기의 소유를 내놓지 않으면 자기 몸을 내놓지 않으면, 자기의  생명까지도 내놓지 않으면 그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그런 어려운 단계도 오는  것입니다.

 대개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신앙생활을 할 때에 어렵지 안 하는  때는 그때는 연습하는 때요 준비하는 때요, 밤중같이 최고로 지키기 어려운  그때가 그 계명 지킨 결정이 나는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은 다, 있는 것을 다 바쳐야 계명 생활에 그 조건 조건으로  부분 부분으로 성공을 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성공 못 한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에는, 우리가 주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너는 이 계명을 지켰다. 너는 이 계명은 지켰다 너는 이 계명은 지키지 못했다'  지켰다고 인정받는 그 계명들은 다 그 계명을 지키면서 참 자기의 전부를 다  희생하고 지킨 계명들이라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평소에는 뭐 이렇게 믿어도 저렇게 믿어도 그렇게 별 이해  문제와 생사 문제와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다 성경에 말한 대로 그대로 지킬  수가 있지만 마지막에 큰 이해 문제나 자기의 고락의 문제, 괴롭고 즐거운  고락의 문제나 또 생사의 문제나 그런 것이 있을 때에는 그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으로 그렇게 깨달은 그 깨달음 가지고, 진리를 아는 거 가지고는  지켜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럴 때에는 이 는 성경 말씀이라는 것을  확실히 자기가 깨닫고.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 말씀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성경 말씀 어기는 것이다' 확고히 자기가 알고 '나는 이렇게 해야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인데 내가 생명이 아까와서 성경 말씀대로 못 한다.' 자기가 알고 못  하고, 또 행하는 것도 내가 생명이나 기업이나 소유나 고락의 큰 문제가 있지만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내가 이와같이 지키면 하나님이 여기에 대해서  의심 없이 책임을 져 주시고 함께 해 주신다 하는 것이 믿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우리는 확고히 정확히  알아야 돼지지 그저 그것을 정확히 알지 안하고. 또 중간에 가다가 이렇다  저렇다 벙벙하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으로서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설교를 하는 사람도 그런 사람은 실행이 없는 사람이라는 증거고, 또 그렇게  듣는 사람도 예수 믿어서 하나님 말씀 들어 가지고 실행하려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실행하는 사람과 실행하지  안하는 사람. 또 자기가 실행함으로 효력을 본 사람 효력을 보지 안한 사람이  다릅니다. 설교할 때도 다르고 설교를 들을 때도 다릅니다. 설교하는 사람도  그것이 효력이 없는 정확하지 않는 그런 증거를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가다가. 만일 이리 저리 하다가 말해 놨는데 그 사람이 그 말씀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나중에 가서, 처음에는 했지만 서도 좀 가다 보니까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이거면 저게 아니고 저거면 이게 아니고 두 길 있는 게 아니고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고 마지막에는 하나로 결정이 돼야 되는데 내가 이리  지금 가르치는 것이 이건가 저건가 결정이 안 되니 이러면 사람들을 미혹 주는  것만 되고 말지 사람들에게 하나 단일 길, 하나만 되는 이 단일 길, 진리로 듣는  사람들이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을 미혹에 들이는 사람이 되지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걸 알기 때문에 무책임한 그런 말 할 수가  없고,   또, 듣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러면 그래 실행을 해야  되겠는데 마침 막상 실행을 하려고 보니까 끝이 없습니다. 실행하려고 보니까.

처음에 시작은 했지만 이라면 이런 문제가 닥치는데, 이 문제가 닥치는데 이  문제 닥쳤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만 가다가 길이 막혀 버리고.

실행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 설교 말씀을 들으니까 자기 갈 길이 끝까지  확정이 안 돼지니까 사람들은 그 설교를 들음으로 고민을 가지는 것이오. 실행을  하는 사람은 고민을 가지는 것이오. 이거 뭐 도무지 이 설교 말씀을 듣고는,  고민뿐이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 길이 확정이 되지 안하니까 이거 참  고민스럽다' 이러니까 그 설교를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또 거짓부리는  그것을 꼭닥꼭닥해서. 이렇게 된다. 가면 이 모퉁이가 있다. 이 돌이 있다. 이  냇물 건너는 게 있다. 이 사이 있다' 이걸 똑똑히 말하는 것처럼 이렇게 가는  신앙 걸음의 노정을 똑똑히 말하면 '에. 까다롭다. 그만 너무 잔소리 많고  까다롭고 뭐 콩 팥을 이래 쌓아니까 귀찮다' 그자는 외식자입니다. 그자는  신앙생활 안 하는 자요.

 대개 설교를 들을 때 '아. 너무 설교가 길다' 하는 그거는 아직까지  기본구원이나 얻어 가지고 있는 자이지 실행을 하려고는 하지 않는 자요. 실행을  하려고 하면 '아, 그렇게 내가 살라고 하니까 그럴 때는 어째야 되느냐? 어째야  되느냐? 어째 고라면 그 다음에 뭐이 나오느냐! 이걸 듣고 싶어서 몇 번  말할수록 더 좋고. 또 말을 할수록 자기에게는 아, 한번 깨우쳐 주니까, 내가  한번 실지로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나 없나 걸어갈 수 있나 없나?  자기를 자꾸 시험해서 이래 보니까. 옆에서 말하니 자기를 한번 다져 보기에  필요하니까 자꾸 그 말을 말해 줄수록 좋고 또 자기도 혼자라도, 다른 사람 말  안 해 주니까 자기 혼자라도 가만히 일을 하면서든지 눈을 감고 있으면서든지  '내가 이대로 신앙생활 할라 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겠느냐? 아, 무슨 일이  닥치겠다. 그러면 그때는 어찌 돼야 되느냐? 그럴 때는 어찌 되느냐?' 그때  어떻게 되느냐 하는 거기에 대해서 설교가 가르쳐 주지 안해 버렸으면 '그  다음에 어찌 되느냐 그만 답답하고 망망하고 사람들은 거기서 기절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아, 그럴 때 이렇게 하라더라 요래 요래  자꾸 말하니까 그대로 졸졸 따라 나가니까 죽는 데까지도 안심하고 담대히  나아가서 순교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그 길이 있으면 사람은 확정  되고 힘을 얻고, 가다가 지체하지 안하고 그 걸음을 더욱 달음질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2절로부터 4절까지에 있는 말씀은 다 어려운 말씀인데, 이게  우리 실행의 전부라고 하는데,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건데, 이 말씀에는 우리  신앙 성공이, 신앙 성공이 불가능하다 하지 안했고 신앙 성공은 다 가능하다, 다  신앙 성공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해 놓고. 할 수 있다, 너만 하면 할 수 있다  이래 말해 놓고, 그 다음에 결론 지우기를, 어떻게 해서 할 수 있느냐? '죄가  너희를'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게 되는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니까 죄가 나를 주관하지 못하니까 나는  죄에 상관없는 사람으로 죄를 이기는 사람이 되지요.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죄가 너를 주관치 못하게 되는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이는' 그 다음에 해석이 나  옵니다. 왜 주관치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법 아래 있지 않다 말은 법에 속하지 안했다. 법에 속하여 있지  않다. 네가 법에 해당되어 있지 않다. 네가 이 법에 대해서, 하나님의 법은 이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든 법칙, 하나님의 모든 율례 하나님의 모든  규범, 모든 규율,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인데 법 아래 있지 않다 그 말은  법에 속하지 안했다, 법에 대해서 너는 당사자가 아니다. 법에 대한 본인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법에 대한 본인이 아니다. 왜 본인이 아니냐? 법에 대해서  내가 당사자가 되어 있는 내인데 예수님이 대신. 내 대신 당사자가 되어 가지고  당신이 내게 대한 법을 담당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담당하셨는고로 나는 법에  대해서 아무 담당이 없다 거기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아니다. 나는 책임이 없다  그말입니다.

 법 아래 있지 않다. 그러면. 은혜 아래 있다, 그 말은 공짜배기 아래 있다  주님이 대신 법을 지켜 주셨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이 대신 해 주신, 그 대신 해  가지고 나에게 공으로 주시는 그 공으로 주심을 받는 거기에 내가 해당되어  있다. 거기에 내가 당사자가 되어 있다 거기에 책임자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법에는 책임자가 아니고 은혜에 책임자다 법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자가 되지  안하고 은혜에 대해서 상대가 되어 있는 자다 내가 법에는 당사자가 아니고  은혜에 대해서 내가 당사자다 나는 은혜에 속해서 은혜와만 관련되어 있다  그렇게 여기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말씀을 보면 전부 위에 죄나 이런 모든 불의 이런 것 들이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도록 이렇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대신해 주셔서 이런 것들이  주관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 말씀은 고래 돼 가지고 있습니다. 주관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거 왜? 우리가 그런 법을 다 지킬라고 하면, 마귀를 이긴다든지 죄를  이긴다든지 사망을 이긴다든지 그런 것을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가 하려고  하면 다 실패한다. 모든 사람들은 다 실패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신  담당해 주심으로, 예수님의 대신 담당해 주신 그 은혜로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서 아무 패전이 없이 죄를 완전히 이겼코 사망을 완전히 이겼고 마귀를  완전히 이겼고 승리자가 된다 이렇게 말해 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만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마귀 이기는 것도 다 예수님이  이겨 주셨고 죄 이기는 것도 대신 이겨 주셨고 사망 이기는 것도 대신 이겨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상관이 없다 그 말입니다. 상관이 없다. 이랬는데, 다른  성경에 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성경에 하는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요한계시 2장 23절에는 보면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겠다' 이게 있기 때문에, 이 성구 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은혜 아래  있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하는 이 성구만 보면 다 됐으니까  염려할 거 하나도 없이 다 돼 버렸는데, 또 이 계시록 2장 23절을 보니까 각  사람의 행위대로 하나 점이 갚아 주신다 했으니까,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준다  했으니까 이거 또 우리가 행해야 되는 게 또 나왔다 그 말이오. 어느 데는  보니까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책임 없다, 다 주님이 대신했기 때문에 너거는  공짜배기로 받으면 된다 이래 놓고, 여기에는 또 각 사람의 행위대로 다 갚아  주겠다 하나님이 그라니까 또 행위 없으면 또 안 되는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부담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데는 우리에게 부담이  없다 예수님이 다 부담하셨다, 또 어떤 데는 너희들이 각각 부담이 있으며  부담한 대로. 부담을 잘 했으면 상이 있을 것이고 부담을 못했으면 이 제 그때  벌이 있다 또 우리에게 부담을 시키니까 이게 또 문제라 그 말이오.

 그뿐 아니라 야고보서 2장 26절에는 보면 말씀하시기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또 이래 놨다 말이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뭐  율법에 대해서 상관 없다고 말해 놓고 이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그러면, 이 믿음이 뭐인지를 좀 알기가 어렵다 말이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또 믿으면 '주님이 다 대신해 주신다 이래 놓으니까 이것이 이리  말하면 이렇고 저리 말하면 저러니까 이 모순 속에 있어 가지고 번민을 우리가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번민을 완전히 해결을 지워야 됩니다.

 그저 어쩌든지 예수 믿는 말씀을 세밀히 말해서 실지로, 실제로 구원 이루는  실상을 말하면 그만 좁니다. 어쩌든지 실상 말하지 안하고 공짜배기, 도둑놈  모양으로, 노름쟁이 모양으로 공짜배기를 미신쟁이 모양으로 막 공짜배기로 이래  된다 하면 눈이 뜨여 가지고 하. 기쁘고 즐겁고 하지만 '실지로 하는 데는 네가  요래야 된다' 하면 그만 귀신이 그만 졸게 해서 그만 졸고 못 알아듣는다 그  말이오. 실행하는 사람들은 그 실제가, 실지에 해당되지 안한 공중에 뜬 말 하면  그런 말은 그만 듣기가 싫어. 그만 좁니다. 아무 뭐, 그거 들어 봤자 그거  실지로 행하는 데는 아무 해당 되지 안하니까 소용없다 이라지만 또 실행하지  안하는 사람들은 실행은 필요 없고 이와같이 둥 떠서 그만 얼른벌떡 얼른 서판에  그만 이렇다 저렇다 이래 해 가지고, 콩이냐 팥이냐 가리기 전에 그만 대중으로  이렇다 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소망을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실지로  따져 나가면 그만 싫어한다 그 말이오.

 따져 나가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따져 나가는 거.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빌라델비아 교회는 따겼다, 따져 나갔다, 구별해 나갔다, 따져 나갔다 그 말 한  마디에 내가 매력을 느껴 가지고 ○○○선생을 내가 조사님으로 보내.

조사님으로 나는, 그때 다른 사람들은 다 반대하는 것을 조사님으로 그때 등용을  했습니다. 왜? 네가 따지는 걸 알면 됐다. 콩팥이냐 옳고 그른 거, 이거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 따진다는 것이 들어 따지지 않으면 죽는다는 그  따지는, 따져야 된다는 그것만 네가 잡고 있으면 너는 너도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제가 등용을 했는데, 요새 보니까 아주 흑암 교회가  조금씩 빛을 봐서 차차차차 생기가 나서 살아나는 것으로 그렇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는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심판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행한 대로 갚음을 받으려 함이라' 선악간에 그리스도 심판 앞에서 다  행한 대로 다 갚아 갚음을 받는다 이러니까 이거 '은혜아래 있기 때문에  너희들은 죄와 마귀가 너를 주장하지 못한다' 이랬는데 또 여기서는 행한 대로  갚음받는다 하니까 이 문제가 또 딴 문제가 돼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아,  하나님의 은혜로 다 대신 담당해 주셨기 때문에 너 희들은 하나님의 공짜배기로  받으면 된다 이 말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행한 대로 갚는다  하면 그만 근심 걱정하고 그만 재미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은혜로 받는다 하는  설교는 들으면 재미가 있고 기분이 좋고 이렇지만 행함을 말하면 그만 머리를  내흔들며 '에 듣기 싫다. 잔소리 많다' 하고 안 듣는다 말이오. 그러나 그것도  성경이오.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음을 받는다 그라기 때문에 이것이 성경에  모순이고, 좀 모순같이 보이고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 거기에다가 마가복음 9장 23절에는 보면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 이래  놨다 말이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 이 모순을 한테 주 종합해 놓으면  여기에 해결이 될 것이라 그 말이오. 아. 행한 대로 갚는 다 이러니까 우리가  짐을 짊어지는 것인데, 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는 거 보니까  믿으면 어떤 능력이 와 가지고 해 준다는 것이 여기에 밝혀지고 있다 그거요.

 또 보니까 마태복음 14장에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갔는데, 29절 이하에 보면 물  위로 걸어갔는데, 물 위로 걸어간 거 보니까, 언제는 물 위로 떠벅 떠벅  걸어갔는데 언제는 푹 빠졌거든. 물 위로 떠벅떠벅 걸어갔는데 언제는 푹  빠졌다, 그러면. 걸어갈 때는 어째 걸어갔더냐? 걸어갈 때도 내나 그 행동이고  빠질 때도 그 행동인데 걸어갈 때와 빠질 때와 다른 게 뭐꼬?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적게 믿는 자야.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 하였느냐' '네,  믿음이 적으니까 조금 걸어갔다가 빠졌구나. 의심하는 거 때문에 빠졌구나.

의심이 들어서 행하지를 못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거 게서 또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들을 종합해서 보면,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면 남은 거 있습니까? 그라면 남은 거 뭐  있습니까?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했으면 뭐 남은 거 있소  우리에게? 없지 일아요? 전부 다하지 안했어요? 다해야 영생을 얻는다 또 이래  놨거든요. 그런데 또 성경에 말하기를,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면 된다고 이래 놓고 또 성경에 말하기를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다 또  이래 놨다 그 말이오.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수 없다 이러니까, 사람은 암만 힘을  다 써도 안 되고 또 그 사람이 무슨 지능이 특출하다 해도 소용도 없다, 인간의  지능 가지고 안 된다 또 이래 놨다 그거요. 이게 또 이게 또 모순입니다.

 자꾸 이라는 것이 뭐이냐? 그러면. 이 모순에도 걸리지 안하고 저 모순에도  걸리지 안하고 있는 길 그것이 우리의 생명길이라 말이오. 모순투배기인데 이  모순에도 보면 걸리지 안하고 저 모순에도 걸리지 안하고 모두 다 안 된다는  말씀을 다 통과해 가지고 그 다음에 된다는 그것을 찾아 가지고 우리가 걸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러면,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데, 또 우리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했는데. 있는 걸 다 해야 된다고 했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또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게 뭐인가? 그것이 하나만 하면 다 맞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켜 계명을 지킵니다. 이걸 다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계명을  지키는데. 계명을 지키는데, 계명을, 계명을, 있는 힘을 다해서 계명을 지키는데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된다. 다해서 지켜 도 안 된다, 다해서 지켜도 안 된다,  그러면, 또 다해서 지켜도 안 되면 어짜는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다해서 지켜도 안 되는 데 믿으면 된다. 다해서 지켜도 안 되는데 믿으면  된다. 믿으면 된다고 했으니까 그 믿음이 뭣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가? 자기가  믿음으로 다해서 지키고 믿음으로 다해서 지켜도 그 일은 안 되는데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인간이 다해서 지켜도 안 되는데 다 하면서 하나님이 대신  해서 해 주실 것을 믿을 때에, 인간의 힘 다 기울여서 하나님이 해 주시기를  바랄 때에 하나님이 은혜로 해 주신다 이래 되면 성구에 거리낌이 있습니까?  아무 성구도 정죄 하지를 못하고 거리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은, 그러면, 예수님이 대신해 주셨습니다. 대신  모든 것을, 우리 대신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 행해 주셨습니다. 대신 행해  주셨는데, 대신 행해 주신 것이, 우리의 구원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있는데  기본구원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다 해주신 것이, 다 해 주시는데 대해서 우리가  기본구원을 얻는 데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기본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이 대신 해 주신 것을 우리가 받을 수 있다, 기본구원에 대한 것을  예수님이 대신해 주신 것을 받는데 대해서는 무슨 조건이 무슨 조건이 붙어  있습니까? 조건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건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기본구원에  대해서 주님이 대신해 주신 데 대해서 우리가 그 대신해 주신 은혜를 받는  데에는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받는 데에 조건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기본구원에 대해서는 조건이  없습니다. 중생도 조건이 없고, 사죄 칭의도 조건이 없고. 하나님과 화친으로서  영생하는 새생명 받는 것도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는 몰랐는데, 그분이 줘서  받고 난 다음에 우리가 알았지 받기 전에는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조건이 없습니다.

 없는데 건설구원에 대해서는 주님이 은혜로 주시기는 주시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건설구원에 대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건설구원에 대해서는 조건이  있는데 어떤 조건이 있습니까? 건설구원에 대해서는 조건이 있는 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죽도록 충성해라 이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면, 죽도록 충성하라는 조건이 있는데. 죽도록 충성을 하면  되느냐?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된다. 죽도록 충성해도 안 된다 왜 안 되느냐?  너희들은 다 유한한 자인데 너희들이 지금 구원 얻는 것은 유한한 거 가지고는  구원이 안 된다. 유한한 것은 언젠가 끝이 되기 때문에 유한한 것이 구원이 안  되고 무한이라야 되고 또 일시의 것은 안 되고 영원이라야 된다. 전부 영원한 거  완전한 거 무한한 거 영원한 거, 무한한 거, 완전한 거. 변치 않는 불변하는 거  영원히 죽지 않는 것. 전부 영원입니다. 영원이요 다 불변이요 완전인데 우리가  죽도록 힘써 봤자 영원과 완전과 불변은 만들 수가 없는 우리들이다 하는  말입니다.

 만들 수 없으면 뭐 하려고 우리에게 있는 힘을 다 들이라고 합니까? 너희들이  있는 힘을 다 들여, 원해서 있는 힘을 다 들이고 있는 것을 다 들 여도 안 될  그때에, 너희들이 있는 것을 다 들여서 원할 그때에 내가 해 주지. 너희들은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안하고 하나님 앞에 공짜배기로 달라고 하는 그것은, 그것은  하나님을 종으로 잡아 부리는 것이요 심부름 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것은 제 힘으로 다 하고 안 되는 그것을  도움 구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지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안하고  주님을 심부름군으로 시키는 일은 주님이 안 하신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인간이 기본구원은 아무리 힘써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하나님께서  알기도 전에, 알기도 전에 줬습니다. 이거는 알 수도 없고 죽어 있기 때문에  줬지만 건설구원은. 이미 기본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기본구원을 얻어 가지고 있으니까 알 거는 알 것만치 알아 가지고 있고, 또  너희들이 깨달은 거는 깨달은 저만치 깨달아 가지고 있고. 너희들이 그거 소원할  것만치 소원하고 있고, 또 그것을 이루어지기를 원할 것만치 이루어지는데,  너희들이 원하기를 뭐 십분지 일이 원하면, 원하면 그 십분지 구가 반대하기  때문에 그런 자에게 주지 못한다. 십분지 구가 원하면 그 자에게 줄 수 있나?  십분지 구가 원할 때에 그에게 줄 수 없는 것은 십분지 구가 원했지만 십분지  일이 원치 안하기 때문에 원치 안하는 것이 십분지 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준다는 것은 그 것은 강제이고 무례가 되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소원하는 것이  되지 못 하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 그러면, 너희들이 십의 십이 다 소원을 할  때에, 십의 십이 다 소원을 할 때에 그때에 너희들이 할 수 없는 걸 내가 해 줄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이렇게 해서  영생을 얻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는 이  승리를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저 십분지 일만 원하고 십분 지 구는 싫다, 십분지  구가 원하고 십분지 일은 원치 안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주실 수가 없다.

너희들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십의 십이 다 하나도 반대되는 거 없이 전체가 다  원하면. 네 전부가 원함이 되면 내가 너희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다 해 줄 수  있다. 그러면, 너희들이 원하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네 전체가, 네 마음, 생명,  힘, 뜻, 성품, 네 전부가 반대하는 거 하나도 없이 전부가, 전원이 원하면 내가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반이 원하든지 십분지 구가 원하든지 백의 구십 구가  원한다고 할지라도 백의 일이 원치 안할 때에 내가 해 준다면 그 백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강가 강제이고 무례가 되기 때문에, 네 소원도 안하는 걸 내가  강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인간에 자유성에 틀렸다 말이오. 인간에  자유성이 있는데 자유성에 백분지 일이라도 '나는 반대한다' 이라 면 그걸  반대하는 것을, 반대해도 이쪽에 눌려 놓고 해 버리면 그 자유성에 백분지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거슬리는 죄가 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전폭적으로 원하면 내가 다 공으로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소원하는 것이 전폭이 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소원하면 이루어 줄  수 없다 하는 것을 이 계약한 것인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주겠다 그말은  네가 전폭적으로 다 소원하면 생명이 승리하는, 면류관이라 말은 저 구라파  지방에서는 경기를 하면 면류관을 씌워 줘요. 그때는 면류관을 풀로 만들어  면류관을 씌워 주는데. 면류관이란 거는 승리한 자에게 면류관 씌워 주는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 준다 말은 생명이 승리한, 생명이 승리한 그 승리를  너희에게 주겠다. 생명이 승리했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이 하나님과 연결이  승리한 승리.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승리한 승리 그 승리를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죽도록 충성하라 말은 무슨 말인가 하니, 네게, 죽으면 다 끝나는 것  아닙니까? 죽으면 끝나는데. 네게 있는 것 다 해서 충성하라. 다해서 생명  승리를 너희가 원해라. 다해서 생명 승리를 원해라. 그러면 이거는 백 프로  소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네 자유성에 백 프로가 다 소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 소윈을 이루어 주겠다. 그러나 백분지 일이라도 소원하지 안하는 부분이 있을  때에는 내가 해 줄 수가 없다 하는 그 조건부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무조건의 은혜요, 건설구원은 조건부의 은혜라.

그러면. 조건부의 은혜인데. 조건부 은혜는 무슨 조건이냐? 다 은혜로 해 주기는  다 은혜로 해 주는데 조건이 붙었다. 무슨 조건이냐? 이제는 네가 중생됐고.

중생된 네가, 죽었던 네가 살아났기 때문에 이제는 자유성이 다, 자유성을 가진  자가 살아났기 때문에 네 자유성을 무시할 수 가 없다. 네 자유성을 살려서.

네가 죽어 있을 때는 네가 아무 소원도 못 하기 때문에 은혜로 다 살리지만 네가  죽은 자가 살아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 인간의 자유성, 주님이 주신 자유성을  절대 보존을 해 가지고 네 자유성 백 프로가 다 소원하면 내가 공짜배기로 다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네가 백 분지 일이라도 원치 안하는 게 있을 때에는 원치  안하는 그것이 원할 때까지 나는, 기다리면서 자꾸 다 원하도록 내가 조력을  하겠다. 원하는 조력을 하겠다 이것이 성신의 감화주는 것이오. 원하는 조력  하겠다. 성신의 감화로 전폭으로 원하도록 만들고, 또 사람들을 통해서 전폭을  원하도록 만들고. 전폭이 다 원하도록 이렇게 다 만드는 그 역할을 하겠다. 그래  가지고 전폭이 원할 때는 내가 계약한 대로 싹 내가 계약 이행을, 내가 대신  해서 다 해 주겠다 이것이 이 조건부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폭이 원하는 것은. 전폭이 원하는 것은, 마음도 원하고 또목 숨도  원하고 뜻도 원하고 힘도 원하고 우리의 성품도 원하고 우리의 구속 받은 전  인격 영육 전부가 다 원하는 이 소원이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공으로 다 해 주겠다. 그러나 원하는 가운데서라도 네가 전폭이 원하지 안하고  원치 안하는 부분이 있으면 내가 너희에게는 해 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신앙생활 해 나갈 때에 무엇이 되지 안하고 그런 그것은  그것은 뭐이냐? 우리가 전폭으로 원하지 안하는 그 부분이 있을 때에 그게 다  지체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전부가 원할 때에는 담박에 전부가 다  원해집니까? 전부가 원해지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백분 지 오십이 원해질  때에는, 백분지 오십이 원해질 때에는 하나님께서 완성을 주지 안하시고 자꾸  전폭이 원하는 데까지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자꾸 협조해서 이렇게 해 주는  것은 그거는 뭐이냐 하면 우리에게 완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받은 증거를 주는  것입니다. '아, 하니까 된다 된다' 자꾸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은 어디  있느냐 하면 우리가 전폭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다 지킨, 신구약 육십육  권의 도리를 완전히 하나도 빠지지 안하고 완전히 지키기를 당신이 원하십니다.

완전히 지키기를 다 원하시고, 또 완전히 지키도록 해 주실라고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완전히 지키기를 원하고 완전히 지키도록 해 주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소원을 하는 데에는 우리가 전폭이 원해야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은 마치 자기 힘으로 하니까 되고 안 하니까 안 되는 거와같이,  사람이 볼 때는 순전히 제 힘으로 해서 되는 것같이 되는 그런 순서와 방편을  통해 가지고 이루어지 게 된다. 그러면, '아 이거는 내가 했지' 모르는 사람은  '내가 했지' 할 만치 자기 힘으로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되는, 자기는 그렇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가 힘들여서 그렇게 하면 그것은 뭣이 되느냐?  하나님이 해 주시도록 자기로 할 일 하나님 이 해 주시도록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기 의무와 책임, 은혜받는 의무와 책임을 자기가 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은혜받는 의무와 책임을 하는 것이지 그것이 그 일을 성공한 실상은, 실력은  아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힘을 기울이지 안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해  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이런 부분 은, 이런  부분은 그 부분이 다 기울일 때에 해 주시고, 조 부분 그러니까 우리는 무한한  요소로 분자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분자가 전폭 신앙 가질 때에 그걸  이루어 주시고 또 조 분자가 전폭 신앙을 가질 때에 이루어 주시고 이렇게 자꾸  우리의 신앙이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어제 편지가 ○○○선생에게서 왔는데, 그 사람에게 주경 신학을 하라 이래  했었는데, 어제 보니까 편지가 왔어. 와서, '거기서 배우는 것하고 여기서 배운  것하고 모순이 되는데 이거 어찌 됩니까?'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을 하고,  하나님의 또 예정에 대해서, 예정과 인간과 모두 자유 의지에 대해서 해결이 안  되고 배운 거와 좀 다릅니다. 하는 것을 말을 했어. 그래서 내가 그걸 보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왜? 이제. 이제 이렇고 저렇고 하는 그것을 자꾸 절정에서  요라면 이렇고 조라면 저러니까 이거 모순되다, 모순을 발견했기 때문에 일치가  나올 수 있다 말이오.

 그래서 내가 언제 편지하기를 '이제 됐다. 됐으니까, 네가 배울 때에 이거는  모순이다 모순이다 이러니까 여기에 '배운 거와 거기에 배운 거와 다르다 하는  그것을 네가 발견해 가지고 그걸 단단히 발견하고 보면 나중에 가서 여기서 배운  게 옳다 하는 그 결말을 너에게 알려 줄 터이니까 이제 단단히 고걸 발견해라'  여기서는 가르쳐도 이런가 저런가 모르는 데다가, 근방에. 저 지금 백 리 끝에  가 있는 일을 여기 지금 발자욱을 떼 놓도 안한 사람에게 '가면 이런 일 있다  저런 일 있다' 하니까 귀찮게만 들려지지 도무지 마음에 기쁘지 안한다 말이오.

제가 걸어가 본 사람은 '아, 거기 가 가지고 내가 방황하고 지금 어디로 갈 줄  몰랐는데 이제 들어 보니까 그때는 요리 가는 길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으면  기쁘고 즐거울 건데, 걸음마도 안 하는 자에게 자꾸 '가면 길이 이런 노정이  있다, 저런 험로가 있다 저런 두려움이 있다, 그런 위험한 강이 있다' 뭐 이래  말을 해 쌓아니까 '아 귀찮다, 듣기 싫다.' 제가 가는 자라야. 가면서 어려움을  겪어 본 자라야 그 건너가라 하고 하면 기쁘고 즐거울 터인데, 행함이 없는  자에게 행함이 없는 자에게 행해야 된다는 설교는 큰 짐이 되고 귀찮은 것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실행하는 자에게는 행함이, 행함이 되는 설교가 아닌 설교는  듣기가 싫어. 그런 소리 하면 번민뿐이지, 내나 세상 말이나 꼭 같은 말이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는 것은 꼭 정확히 알아야 됩니다. 정확히 알아서  요러냐 조러냐, 이래도 '모든 학자들이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저렇게 말하기도  하니까 이것도 저것도 된다' 그거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신앙을 다 실패하고  맙니다. 요거면 요거고, 꼭 따져서 뭐이든지. 요거는, 죽어도 그거는 해야  된다는 그걸 확정을 지우는 그 길을 걸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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