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원수 악

 

1984. 8. 15. 수새벽 

 

본문: 시편 1편 4절∼6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게 악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근본적인 악인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근본적인  악인은 예수님의 구속을 입지 안한 사람들은 전부 악인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입지 안한 사람들은 원죄와 본죄 아래 있기 때문에 전부가 다 자기 중심의  사람으로 멸망을 받았고 또 영원히 멸망받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지 안한 사람으로서는 악인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영도 악이요  마음도 악이요 몸도 악이요 전부가 악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이든지 그렇지 안하면 다른 피조물, 무슨 국가 중심 사회 중심 인류  중심 또 가정 중심 무슨 중심이든지 그것은 다 악입니다. 하나님 중심만 그것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은 중생되면 그 영은 악에서  벗어났고 또 성화된 것만치 그 심신은 악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게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하는 이 악인은 불택자 불신자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 택자로서 영은 중생됐지마는 그 심신의 모든 생활이  악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안 믿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안 믿는  사람은 의례히 멸망에 빠지기 때문에 말할 필요도 없고 다만 택함을 입고 중생  돼서 믿는 사람으로도 그 심신의 사상과 행위가 악이 되면 그 사람은 망하게  됩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 겨가 제가 중량이 없기  때문에, 무게가 없기 때문에 환경의 바람이 불면 환경을 따라서 그는 뭐 동풍  불면 서로 날아갈 것이고 서풍이 불면 동으로 날아갈 것이고 그거는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은 그것은 속에 무게가 없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 생활 속에는 전능한 능력도 없고 전지한 지혜도 없고 또  영생하는 생명도 없고 그 속에는 가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실력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다 환경과 주위에 따라서 그는 멸망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여게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하는 요 바람이라는  것은 바람이 불면 그 겨. 쌀 겨, 덩겨라 말이요, 딩겨, 딩겨. 껍데기. 증발하고 난  다음에 꺼풀 벗겨진 그걸, 비늘 벗겨진 것 껍데기 벗겨진 것 그것, 알맹이 없는  그런 걸 겨라 하는 것인데 그거는 바람불면 다 날아갑니다. 그와같이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무엇이든지 해 놓은 것은 자기 중심으로 경영한 것이라든지. 행동한  것이라든지. 일을 해 놓은 것이라든지. 저축을 해 놓은 것이라든지. 준비해 놓은  것이라든지 뭐 무엇이든지 자기 중심이 되어 있는 거게는 절대성이라는 절대성,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영생성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 안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뭐 그거는 결국은 다 망하고 맙니다. 세상이  망 할 때에 그거는 다 따라서 망합니다. 바람 불면 그거 다 날아가는 것처럼  세상이 망할 때 그도 망하고 세상이 늙어질 때 그는 늙어지고 쇠해질 때  쇠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마는 사람들이 모두 어느 구멍으로  다 들어가 가지고 죽느냐?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 죽느냐? 전부 뭐 잘나고 못나고  하는 그 사람의 마음의 기능이나 몸의 기능이나 그 모든 기능이 악이라는  구멍으로 들어가 가지고서 다 죽습니다. 그런데 또 사람들은 악 그것이  자기에게는 제일 요긴한 줄로 그렇게 생각하고 악을 도모해서 그래 삽니다.

 개인도 악을 도모하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자기중심으로  산다 그말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전부 제 중심으로 살기에 비위도 제  비위를 맞도록 할라 하고. 취미도 제 취미를 맞도록 할라 하고, 또 사람들의 살고  움직이는 것도 전부 자기를 중심해서 자기에게 맞도록 이렇게 행동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멸망을 취하는 것과 구원을 취하는 것이 그게 다릅니다. 그 사람이  자기에게 어째 됐든지 하나님에게 어찌 되느냐 이렇게 하나님 중심, 하나님  중심은 좀 멀고 힘드니까 그렇지 안하면 신구약 성경 도리를 줬기 때문에 '이  법칙대로 살자' 이 법칙 중심을 하면 그 다음에 차차 들어가면 하나님 중심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나 내나 생각할 것은 사람이 접촉을 할 때에, 말을 하든지  행동하든지 그 사람이 무슨 경영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마음이나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이나 어떤 것이든지 벌써 그 사람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되거든  아예 그 사람을 조심해서 멀리 해야 되지 거게 피동되면 자기도 망합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그 말은, 자기 중심으로 말하는 말, 자기 중심으로 행동하는  행동, 자기 중심으로 경영하는 경영 그런 것을 우리가 조심해서 거게 가담하지  안하고 피해야 되지 거기 끌려 들어가면 죽습니다.

 자기 중심은 어떤 거냐 하면 모두 자기 위하면 좋아하고 자기 좋아하며  좋아하고, 사람들을 거석할 때에 자기에게 끌어 붙이려고, 자기 위하려고 하는,  우리 지금 총공회 산하에서 교역자 있는 사람들 불만 불평 부리는 사람들 보면  전부 그게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중심으로서 그저,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어떤 사람만 모이겠습니까? 자기 중심의 사람이니까 간교한 사람만 그  사람에게 모입니다. 간교한 사람만 그 사람에게 모이고 간교하지 안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대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나 경영하는 것이나.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그 사람  중심의 사람, 하나님이야 어찌 됐든지 진리야 어찌 됐든지 하나님이야 뭐  섭섭하든지 진리야 어찌 됐든지 고 사람 좋도록,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거짓말도 하고 반거짓말도 하고, 또 이래 가지고 그 사람에게는 또 그렇게  말하다가 그 사람 아니고 또 딴사람 만나면 그 사람에게 가 가지고 또 그렇게  합니다. 제가 이 갑이라는 사람에게 간교한 말해 놓고. 이 말을 하고 이 말이  인제 또 뒤에 가서 저 사람에게 갈지 모르니까, 을의 말을 갑에게다가 간교하게  말해 놓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얼른 또 갑이 을에게 말할까 싶어서 을에게  말하기 전에 제가 또 가서 을에게 가 가지고 또 그런 말 합니다. 을에게 가  가지고, 아, 그 사람이 이렇고 이래하더라' 이래서, 간교한 자를 가리켜서 마귀의  자식이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제일 간교한 것이  뭐이었습니까? 배암이었습니다. 간교한 것.

 그러기 때문에, 이 간사한 것 간교한 것 이것을 잘 살피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벌써 간사한 그 간교의 간교성이 있으면은. 간교성이 있는 사람이 배암의  지혜를 받았기 때문에 민첩하기는 민첩하고 날쌔고 눈치 싸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다 자기 중심으로 되기 때문에 전부가 멸망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아무리 수단이 좋고 언변이 좋고 또 열심이 있고 또 슬기롭고  아주 활동성이 있고 아무리 해도 자기 중심의 사람이면 하나님은 다 선을 그어  놓고서 고게 회개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끼리 살면 그 사람이 아주 똑똑하고 잘 났고 민첩하고 지혜롭고 하는  거 같지마는 그 사람이 결과는 망하고 맙니다. 자기만 그렇지 자손이 잘 안 돼.

또 모든 게 잘 안 돼. 이러기 때문에 망하고 맙니다.

 그게 왜 그러냐? 자기 중심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중심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처음에 만드실 때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들었는데 인류 시조 해와가 간교한 배암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네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 게 뭐 있느냐? 참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하더냐?  하나님 중심으로 살 게 뭐이냐? 네 중심으로 살지' 이라니까 이 해와가 '아, 내  중심으로 살면 나 좋은 거니까 내가 하나님 좋구로 할 게 뭐 있나? 나 좋구로  하지' 이래 가지고 유혹받아 가지고 멸망받은 것이 인간의 멸망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을 멸망시킨 그 유도 작전. 인간을 멸망시킨 작전이 뭐이냐? 간교  가지고 했고, 간교 가지고 했고. 또 간교로 꾀울 때에 망하기는 뭣 때문에  망했느냐? 하나님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자기 좋도록 자기 중심으로 하는  그것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기에, 벌써 그 사람이 간사라는 그 간교를 그걸  회개치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아무리 자기가 진실하고 위대하고 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자체가 아무리 간교를 떠났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간사한-사람 간교한-사람을 모르면 자기는 넘어지고야 맙니다. 인간이  넘어진 것이 간교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또 인간이 망한 것은 자기 중심으로  망했습니다. 간교는 어데서 나오느냐? 간교는 자기 중심의 사람이 간교가 나오지  자기 중심이 아닌 사람은 간교를 할 수 없습니다. 간교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그저 자기가 자기 중심으로 해야 한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들어붙어 가지고서 자기 사람이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지마는 자기 중심이  되면 자체가 망하는 것인데 온 천하가 다 자기에게 들어붙어도 자기는 멸망이라  그말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자기를 잃어버린 거는 어째 자기를  잃어 버렸는가? 자기는 하나님 중심이라면, 하나님 중심의 사람은 참자기인데  자기가 땅의 것을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을 잃어버리고, 자기 중심의  사람 그게 내나 옛사람인데, 자기 중심의 사람이 그게 옛사람이오. '자기 중심의  사람으로 바꿔졌으면 온 천하를 얻어도 너는 다 손해봤다. 그러기 때문에 땅의  것을 취하기 위해서 자기 중심으로 살지 말아라' 하는 그말입니다. 이자기 중심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 중에 제일 큰 죄가 무슨 죄냐? 제가 지금 한 이십 칠 팔 년에 전에  ○○교파에 있을 때에 전국 학생 신앙 운동 할 때에는 언제든지 새벽 집회는  제가 인도했습니다. 인도했는데, 그때에 내가 증거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데. 온 천하의 죄가, 온 천하에 가득 찬 죄 온 천하에 가득 찬 남의 죄 전부가  자기를 해하는 것보다 자기 죄 하나가 자기를 해 하는 것이 더 해독이 크다 그걸  말했고, 또 온 천하 사람이 다 아는 자기 죄 전부보다, 자기 죄 전부보다 자기만  알고 있는 자기 죄악 하나가 해독이 더 크다. 또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만 알고  있는 자기 죄 그 전부보다 자기가 모르는 자기 죄 하나가 해독이 더 크다 그걸  말했고 자기가 모르는 죄 모든 죄의 해독보다 자기 중심의 해독이 더 크다  말했습니다.

 자기 중심이라는 이거는 아주 완전히 멸망받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합니다. 그만 장로 가운데도 그게 왜 이거 삐득삐득 하느냐 하면은 자기 중심대로  안 한다고서 그랍니다. 자기 중심대로 안 하는 목사 자기 중심대로 지금 안  한다고서 삐득거리고, 자기 중심대로 안 한다고서 삐득 거리는 장로, 모두 다 그  장로나 목사나 전도사나 권찰이나 집사나 반사나 그걸 살펴보십시오. 그것이 뭣  때문에 삐득거리고 섭섭해하느냐? 자기 중심.

 그러기 때문에,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관찰할 때에, 진찰할 때에 제일 첫째  진찰이 이 사람이 하나님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라면 미치괭이라도,  미치괭이라도 하나님 중심이라면 그 사람이 큰 과오를 범하지 못 합니다. 그저  하나님 중심이라면 그 사람이 자기나 다른 사람에게 훼방받고 자기가 천대받으면  받았지 무슨 해를 끼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의 사람은 자기가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그 사람이 큰 화를 만들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교역자도 그렇고 평신도도 그렇습니다. 자, 첫째 그 사람을 심사하는  것이 교역자라면 교역자를 심사할 때 '저 교역자가 보자 설교를 잘하나 못 하나'  그런 거는 다 껍데기요, 아주 껍데기. '저 사람이 하나님 중심이냐 자기 중심이냐'  그것부터 진찰해야 됩니다. 하나님 중심이라면 그 사람이 여간 모든 것이  잘못되고 실수가 있고 모든 게 부족하다 해도 그 사람을 사망으로 끌고 가지는  안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모든 것이 민첩하고 구비하다 할지라도 중심이 자기  중심이라면 자기 위주라면 그것은 민첩하고 훌륭한 걸 다 가지고서 사람을  죽이는 그 일을 하고 자기 죽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무서워할 것은 자기 중심의 사람을 제일 무서워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지금 휘떡거리는 게 저거 뭣 때문이냐? 저게 자기 중심이라  하면 그것을,-형제를 사랑하는 게 뭐이냐? 자기 중심인 그 사람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계명대로 그 사람에게 하게 되면은 그 자기 중심을 찬양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자기 중심에게 마찰이 되겠습니까? 뭐이 되겠소? 예? 어떡게 돼요?  자기 중심의 사람과 마찰이 됩니다. 마찰이 되면은 그 사람이 싫어하고 또 대적이  되고 서로 충돌이 있지마는 그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라. 어쨌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 전체는 자기 중심을 죽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하려는 것이 영감 전부요 하나님 말씀 전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접할 때에 자기 중심이라는 그것을 알면 벌써  내가 자기 중심으로 사람을 딿지 안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면은 당장 마찰이 옵니다. 마찰이 오고 대번에 대립이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하는 그 말은,  의라는 말은, 의가 뭐이 의인가? 의는 하나님의 중심이 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이 의인데, 하나님 중심이 의라니?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을  입은, 주의 피에 팔린 주의 것인 줄 알고 주를 위해서 하는 그것이 의인입니다  다른 거는 의인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그 사람이 민첩해도 자기 중심이라는 그거 있으면  간교해서 자기가 자기 꾀에 빠지고 자기는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인 사람은 그 사람이 민첩하지를 못 하고 능하지를  못하면은 무엇을 못 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 돕습니다. 자기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인 사람은 모든 것이 부족해도 그 부족한 것을  하나님이 돕기 때문에 마지막은 성공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 중심이라는 것, 말도 자기 중심, 행동도 자기중심 이거는  뭐 어떻게 날랜지 눈 깜짝새도 아니오. 찰나도 아니오. 언제든지 따라붙습니다.

따라붙어. 따라 붙어서, 요 속에 자기 중심이라는 그 악 그것이. 악이라는 것은 세  가지 악으로 되어 있는데, 영의 악. 또 성질의 악, 또 모든 행동의 악 그것이 악령  악성 악습입니다. 그 악이라는 것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어 있는 사람은 벌써 그게 자기가 아닌데 자기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민첩한지. 말을 해도 자기가 조심하면은 '아,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내가  말해야 되겠다' 이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시작해서 하다 보니까 한 마디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두 마디 튀어 나가는 것은 그만 자기 중심의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중심에서 자기 중심으로 간다는 것이 이것이 공중에다 가 수천  근 수천근 중량 있는 쇠를 달아 놨는데 그 쇠가 끄내끼가 끊어지면은 지금  이렇게 달려 가지고 위로 올라가던 그 쇠뭉텅이가 끈이 끊어졌으면은 끈이  끊어져 가지고 내려가는 게, 자꾸 위로 올라가다가 끈이 다 떨어지면은 그게  올라가던 것이 내려올라면은 시간이 걸립니까 당장 내려옵니까? 당장 내려와요.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은 진리와 성령님과 십자가의  대속의 피의 공로의 이 사랑의 구원의 줄에 붙들려 가지고 위로 올라가는 것  붙들려 올라가기 때문에 거기서 끊어지면 즉시 그만 타락으로써 자기 중심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자기 중심으로 변질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을 들을 때, 말할 때 '저 사람이 저 말이 자기 중심이냐, 저 행동이 자기  중심이냐?' 아무리 민첩해도 그 민첩한 것을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 쓰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대악인이오. 악이 큰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뭐 이 세상에서 지위가 그 사람이 어떠냐 권세가 그  사람이 어떠냐 실력이 어떠냐 지식이 어떠냐 재산이 어떠냐 언변이 어떠냐 이런  것만 인간의 자격으로 쓴다 말이오. 이것을 인간의 실력으로 씁니다. 이것을  인간의 실력으로 삼는 그것이 벌써 멸망 가운데 있는 자들이 그걸 실력으로 삼지  그걸 실력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뭐 자기 중심이든지 뭐 민족  중심이든지 국가 중심이든지 물질 중심이든지 가정 중심이든지 무슨 중심이든지  그 사람이 돈이 있으면 큰 사람이라, 지식 있으면 큰 사람이라, 권세 있으면 큰  사람이라. 지위 높으면 큰 사람이라 똑똑하면 큰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것이 전부 마귀가 주는 미혹입니다.

 그걸 가치 있게 가치로 이래 여기니까, 그걸 가치로 여기니까 외나 참 가치로  여길 것을 가치로 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마귀란 놈이 '이게 가치다 이게  가치다' 하니까 사람들이 거게 그만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게 가치다' 그걸로  가지고 평가합니다. 교회서도 그걸로 평가해 가지고 장로 만들고 집사 만들고  교회의 왕 노릇 하는 것도 그게 왕 노릇 하고, 교회에서도 존경받는 것도 그  가치를, 그것을 가치로 삼아 가지고 그것을 근거해서 사람을 평가하고 비판하기  때문에 그게 전부가 다 멸망이라 그말이오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운다' 이러니까, 주님 재림 때에는 이렇게 교회가 왕성돼서  많지마는 그게 전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어린양과 반대되는 어린양과  반대되는 게 뭐입니까? 한 말로 말하면 어린양과 반대 되는 거는 어떤 게  어린양과 반대되는 것이오? 자기 중심의 것은 다 어린 양과 반대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든지 뭐이든지 우리가 가치를 정할 때에 제일 일호의 그 사람의  가치를 정할 것이 뭐입니까? 일호가 뭐입니까? 예? 지식입니까 돈입니까  권세입니까 인물입니까 언변입니까 활동성입니까 그 사람의 뭐입니까? 무엇이 그  사람의 가치입니까? 자기 중심이다 하나님 중심이냐 거게서 가치를 제일 먼저  정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중심이라면 못나도 쓸모 있는 사람입니다.

무식해도 쓸모 있고 등신이라도 쓸모 있고 게을해도 쓸모 있고 뭐 둔해도 쓸모  있고 그 사람이 아무것도 없어도 쓸모 있습니다. 그 쓸모가 많이 없어도 그 사람  실력대로 다소라도, 다소라도 있는 것은 쓸모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의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것이 실력이 있을수록 무섭습니다.

실력이 있을수록 그 전부는 악독이요 자타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무섭다  그거요.

 그런고로, 가만히 살펴보면은 알이요. '저 사람이 보자. 마음 쓰는 것이 저게 자기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참 알기 어려워. 또 '말하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 저게  뭐이냐?' 사람은 민첩을 가치로 여기지 마십시오. 민첩을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말라 말이오. 민첩을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말고 지식을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말고, 그 사람의 권능을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말고 지위를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말고, 그 사람의 모든 용모를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말고, 언변을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말고. 그 사람의 무슨 활동성을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말고, 그 사람의 해  놓은 이력이 많습니다. 해 놓은 이력이 많다 할지라도 해 놓은 이력을 그 사람의  일호의 가치로 여기지 마십시오.

 첫째 일호는 하나님 중심이냐 제 중심이냐 요거부터 따져 봐야 돼요. 요거부터  따져 가지고 자기 중심인데 그런 것이 있으면은. 자, 자기 중심의 사람으로서 천치  바보가 있고, 자기 중심으로서 아주 모든 것이 민첩하고 도덕도 민첩하고 예의도  민첩하고 사교성도 민첩하고 사회성도 민첩하고 윤리성도 민첩하고 모두가 다  민첩하고 훌륭합니다. 구비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자기 중심의 그런 사람이  하나 있고. 자기 중심의 아주 천치 바보가 하나 있으면 어느 사람이 좀 덜  악합니까? 어느 사람이 덜 악합니까? 천치 바보가 덜 악하요. 그 사람이 덜  악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가치가 저거 가치보다 좀 낫습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이걸 모르고 자꾸 하기 때문에 어리석다 말이오.

 그러기에, 공부하는 것이라든지 모두 주일을 범해서 무슨 시험을 치는  것이라든지 그런 것이 뭐입니까? 자기 중심입니까 하나님 중심입니까? 그런데.

번연히 자기 중심인 줄 알지마는 그 사람은 그 죄를 한 개 먹어야 그게 이제  견디지 그 죄를 범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에는 알고도 자기 중심으로 가는  거를 내비둡니다. 그 길을 막지 안해. 막으면 결국 막을수록 결국 이쪽에, 자기  중심의 길을 막아서 하나님 중심으로 가라 하면은 억지로 가면은 자기 중심으로  가야 될 그 마음이 그 속에는 배나 십 배나 더 강하게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  뒤에 깊은 타락과 큰 타락을 만나게 되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자기 중심인 줄  알지마는 그걸 그대로 내비두는 수가 있고 합니다.

 그거는 왜 그러냐? 그것이 자기 중심의 것으로 갔다가 제가 뒤에 한번 코가  하나 깨지고 난 다음에 '아이구 내가 후회된다. 내가 안돼, 이래 봐야 아무  소용없구나. 이제 이걸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야 되겠다' 이럴 사람인데  그 사람을 그리 못 가구로 강제해 놓으면 그 사람이 그만. 강제로 하나님  중심으로 끌어 놓으면 그 사람이 현재는 하나님 중심으로 이래 간다 할지라도 그  속에는 자기 중심으로 가지 못한 그 미련이 속에 가득히 찼고 자기 중심으로  가고 싶은 그 욕심이 가득 찼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어떤 자기 중심으로 가느냐?  자기 코가 깨질 게 아니라 아주 대가리가 바싹 깨질 수 있는 그런 자기 중심의  길로 가기 때문에, 탈선해 가가지고서 코 깨지고 병신으로서 이래 사는 게 낫지  대가리 깨지고 다 바싹 깨져 가지고서 전체가 멸망받는 그것을 보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번연히 알지마는 그대로 허락해 두는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자기 중심이라는 이것을 아주 깊이 살펴야 됩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이러니까 자기 중심의  것은 환경을 이길 수가 없다 그말이오. 자기 중심의 것은 환경을 이길 수가 없어.

알맹이가 없다 말이오. 인간의 알맹이는 뭐이 인간의 알맹이입니까? 인간의  알맹이는 뭐입니까? 지식이 인간의 알맹이 합니까 돈이 인간의 알맹이입니까  인간의 도덕이 인간의 알맹이입니까? 인간의 알맹이가 뭐이요? 저 ○○씨, 예?  인간의 알맹이는 첫째 하나님 중심, 하나님 중심. 그 다음에 뭐입니까? 하나님  중심 다음에는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입니다. 사죄와 칭의와 화친이 뭐하는  것이냐? 이 세 가지가 뭐하는 것이냐? 하나님 중심의 것을 만드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하나님의 중심의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게  사람의 가치요 사람의 실력이요 중량입니다. 그러면 고게 있는 것만치는 환경의  종이 되지 안하고 환경에 피동되지 안 하지마는 그게 없는 것은 환경에 다  피동된다 말이오.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그 말은 환경과 주위에 피동되고 환경과  주위를 이기지 못한다 그 말이오. 이기지 못한다.

 그러면, 알곡은 바람에 날아가지 안한다 그 말은 환경과 주위에 피동되지 안하고  그는 그런 것을 다 이긴다. 어떻게 해서? 속에 무게가 있기 때문에 무게가 있는  것은 뭐인데? 절대성이 있고 영원성이 있고 완전성이 있고 불변성이 있고  영생성이 있고 참 영원히 온전성 진실성이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게 뭐인데?  하나님의 요소라 그말이오. (○○○씨, ○○○씨 병들어 가지고 지금. 차사고 한번  나 가지고 근근히 살아나고 나니까 또 새로 재독하고 있다 말이오. 소용없어. 안  돼. 그걸 크게 느껴야 되지, 지금 뭐 어리석게, 지금 뭐 그렇츰 병들어 가지고  이래 지금 이래 가지고 있다가서 병원에서 치료해 나오니까, 남편도 오래  떨어졌다 보니까 아내 그립고 아내도 멀어졌다 보니까 남편 보니까 그립고 둘이  부부 애정이라는 거게서 하나님은 뚝 멀어져 나가 버렸어. 그거 지금 생각해요.

하나님 버리고 남편 그까짓 거 사랑하면 뭐할 건고? 하나님 버리고 그까짓 아내  사랑하면 뭐할 건고? 지금 하나님과 선이 둘이 다 끊어져 있어. 정신 차려야 돼.)  사람 민첩과 언변과 지혜가 그까짓 거 아무 소용없어. 하나님 중심이 돼야 돼요.

하나님 중심이 안 되면 안 돼. 그까짓 하나님 중심이 아닌 그게 언변 있고 운동  해 가지고 아무리 뭐 사람을 뭐 대적해 봤자 소용없어. 하나님 중심 아닌 것이  무슨 총공회를 헐라고 이리 저리 암만 해도 불쌍해서 애연해서 마음에 '안 됐다'  해서 그를 위해서 기도나 하고 마음에 그 사람 멸망 길로 가는 그게 안타깝지,  그란다고 해서 하나님 중심 아닌 제 중심의 그게 훼방한다고 그 훼방이 무슨  오기는 옵니까? 그 훼방 그거는 오히려 우리에게는 참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 교회가 똘똘 뭉쳐 가지고서 만일 자기를 반대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 중심인데 인간 중심의 교회들이 뚤뚤 뭉쳐 가지고 그라면 그런 거는  기쁘고 즐거워 강하고 담대하고 그런 데 대해서 조금도 요동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라야 강한 사람이요, 담대한 사람이요,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요 죄를 이기는 사람이요, 환경과 시대와 모든 사회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노력할라 하는 것, 공산주의 독침이 와도 아주 남한을 무슨  공산주의 적화가 된다 할지라도, 또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질병에 걸린다  할지라도 뭐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 환경이라는 자기 형편과 처지라는  그것에게 피동되지 안할라고 지금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병이 들어도 어떤 병이 들어도 그로 인해서 주님에게 대한 하나님  중심, 주를 사랑하고 주께 맡겨 놓고 주를 의지하고 바라보고 주님에게 복종하는  이 신앙이 요동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어떤 일이 된다 할지라도 사죄를 벗지  않고 칭의를 벗지 안하고 화친을 벗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거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라 말이오.

 무슨 암병이 걸려도, 그러니까, 암병도 하루에 여러 번 걸려 보는 거라. 내가  암병이 걸리면 어찌 되나? 아. 그러기 때문에 항상 홍 순철 목사님에게 대해서 늘  저는 존경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그래도 주님에게 대한 것이 요동치  안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숨질 때까지 설교를 하다가. 설교를 하다가 서서  못해서 앉아서 설교를 하다가서 앉아서도 못 해 가지고서 설교하다가 중단  당해서 메여 들어가 가지고서 바로 숨졌다 그 말이오. 그게 순교자라. 뭐 그걸 혹  잘못 생각하는 사람은 '잘 믿는 사람도 암병 걸렸다.' 암병이 안 걸렸으면 그렇츰  마지막까지 주님에게 충성할 수가 어떻게 있겠소? 그게 순교자라 그말이오.

그렇지 않소? 그거나 한 가지지.

 사람을 예수 믿는다고 눈을 잡아 뺐소. 눈을 잡아 빼고 신경 줄을 다 빼니까  이제 그 사람이 지금 한 십 분이나 십 오 분밖에는 생명이 연장되지 안할 터인데  십 분이나 십 오분 연장될 그 생명 있는 거게도 끝까지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증거하고 주를 위하는 마음이 변동되지 안하다가서 변동되지 안한 그대로 딱  숨졌으면 그게 순교자가 아니고 누가 순교자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그는 우리  진영 가운데서 제일 일호를 걸었습니다. 나는 일호가 아니오. 그 사람은 참으로  우리 진영에서 제일 일호의 승리를 한 사람이요 신앙에 굳게 선 사람입니다.

 전 성수 목사님도 내가 말 들어 보니까 그랬어요. 보니까 간이 이렇게 부어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부어 가지고, 그 사람나는 지금 지금도 참  마음에 존경이 되고 사모가 돼. 간이 이렇게 부어서 이래 가지고서 이러니까 그게  아프기가 뭐 굉장히 거석하고 견디지를 못한답니다. 그래 가지고 바로 숨질 때 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몰랐어. 병원에 가서 의사들은 다 진찰을 해서 그렇다  하지마는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를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이 하고 한 번도 그  만나는 사람에게 친절함이 친절 안하지 안하고, 아픈 것으로 인해서, 아픈  걸보이지 안하고 불친절을 보이지 안하고 친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프면 저렇츰, 제가 아프면 저럴 수가 있나?' 아픈  빛깔이 하나도 안 나오고 그렇게 사랑과 친절로 화목으로 겸손으로 이라다가 딱  숨져 버렸다 말이오. 어데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나는 이번에 자복을 했어. 조금만, 하루 저녁에 한 네 시간 동안 그랬는데, 네  시간 동안 되게 아픈 꼴 한번 봤어. 네 시간 동안 요라도 못하고 요라도 못하고  아픈 꼴 한번 봤는데, 그때 봤소 아픈 꼴 봤는데 뭐 주님 앞에 달라붙어서  간구하기는 하고 이라기는 이라지마는 뭐 감사하고 기쁨이고 뭐 그런 거는  하나도 없고, 그저 주님 앞에 달라붙어서 기도하는 것뿐이지 전 성수 목사님의  그런 능력 있는 은혜는 내기에는 하나도 없더라 그말입니다. 그래 내가 얼마나  거짓부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내 생각에 그래 가지고 보니까 똑 네 시간  지나갔는데, 그래 가지고서 내 마음에는 한 시간만 더 지나가면 안 죽느냐 끝이  나지 않느냐' 그런. 그만치 내 딴에 고통스러워 했지마는 뭐 그렇게. 안 죽는 것  보면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나, 전 목사님은 그랬어.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자기 중심의 그것을, 이걸 변화시켜야 그렇다  말이오. 이런데. 다른 사람은 껍데기로 피상으로 볼 때에 '아 예수 잘 믿는데, 그  사람이 잘 믿을라면 돈도 많아지고 신체도 건강해지고 세상 모든 것 형통해지고  그래야 예수 잘 믿는 것일 건데 예수 잘 믿는 사람이 그렇게 불치병이 들어  가지고 마지막에 그렇게 참혹하게 죽는 그것이 뭐이 예수 잘 믿어 복 받은 건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

 만일 그런 병이 없어도, 생명이라 하는 것은 정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것은 정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정한 시간에는 가야 되는데 이렇게  건강해 가지고 있다가서. 건강해 가지고 생전 반성할 여가도 없고. 생명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해 볼 그런 기회도 없고 이런 것 저런 것 분주하게 이래 있다가 딸칵  끊어지면 그걸 좋아합니까? 이제 그 사람이 얼마 동안 병이 들어서 땅의 것 다  정리할 것 정리하고 회개할 것 다 회개하고 주님에게만 다 향하여서 주님에게만  매달려 가지고 주님과만 밀접한 연결이 돼 가지고 있어서 세상의 무슨 병 그런  것이 아무리 있어도 그런 거는 침노 받지 안하고 순전히 그런 병 가운데, 곧 한  오 분 있다가서 숨질 수 있는 그런 고통 가운데 있어도 말하는 것은 주님 말.

주님 증거, 주를 위함 조금도 낙망함이 없고, 조금도 불평함이 없고. 조금도  원망함이 없고 조금도 불쾌함이 없고 감사와 기쁨으로 주를 향하는 그것으로서  끝을 마쳐질 수 있는. 어떤 고문과 고행이 있어도 그보다 더 아플 거는 없어.

이대로 마쳐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끝을 완료시킨 그것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한 것입니까?  미워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고 사랑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하면은고 사람이 그때 숨이 끊어질 사람인데 평안하게 즐겁다가 딱  숨이 끊어지는 그것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복된 길이겠습니까 그렇게 아파서  주님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극도의 아픔이 와도 그때에 주를  사랑하는 그것으로 끝날 수 있는 그 현실을 준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겠습니까?  어떤 것입니까? 평안 무사한데, 잘 먹고 잘 입고 이래 권세 부리다가 털컥 떨어져  죽든지 차에 치여 죽든지 이래 죽는 것이 그게 사랑이겠습니까, 환난 가운데서  거게서 참 뉘든지 예수 믿을 수 없고 예수를 사랑할 수 없는 그런 역경  가운데에서 숨을 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게 복 있는 사람입니까?  그런데도 지금 그것을 우리 진영에서도 '그 이상하다. 예수 잘 믿는 분이 와  그럴까? 예수 잘 믿는 분들이 와 그럴까?  여게 뭐꼬? 저 ○ 집사 구역에 있던 ○○씨 부인 이름이 뭐이지? 예? 뭐?  ○○○씨 ○○○씨도 암으로 죽었다 그거요. 암으로 죽었는데. 그 암이라는 것이  뭐 의사들 말 들으면은 그보다 더 아픈 병은 없답니다. 그보다 아픈 병은  없었는데, 그 사람 병으로 생명을 일각이라도 일찍 죽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병으로 가지고 그래도 고대로 차야 되지 일찍 죽는 거 아니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렇게 참 심한 암병으로써. 가장 아픈데 자궁의 암병으로써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그래도 그 사람 얼굴에 찡그리는 꼴 본 사람이 없어. 불만 불평을  품은 것을 본 사람이 없어.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고 또 가정에 대해서, 또 낙망이  없고 언제든지 소망, 가정을 이렇게 하는 거, 자기는 떠날 줄 알면서도 가정에  대해서 소망, 언제든지 이렇게 사람들의 믿음을 돕고 이렇게 하는 일 했지 병으로  인해서 그 사람의 신앙이 흔들리지를 안했다 말이오. 그런 최고의 아픈 병으로  인해서도 그 사람 믿음이 흔들리지를 안했어. 흔들리지를 안했어. 그러니까 그  믿음을 하나님이 주시고 자랑했다 말이오.

 이래도 흔들리지를 안하는데 우리는 그 병의 십분지 일이 아픈 것만 와도  흔들립니다. 흔들려. 자 병 안 들고, 병 안 들고 건강해서, 건강해서 이 사업 저  사업 이 경영 저 경영 이런 것 저런 것 막 분주하게 건강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이 높이니까 이래 존귀해져 가지고 이래 가지고 둥둥 떠서 아주 건강함으로  이렇게 씩씩하게 이렇게 있다가 숨이 딱 지는 것이 좋습니까 얼마 동안, 오래  동안 병으로 인해서 참 땅에 있는 모든 미련이 다 끊어지고 이제는 주님에게만  소망두고 회개하지 안하고 있는 그런 게 없고 세상에 있는 무슨 죄악이나 이런  게 하나도 없이 완전히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주님을 사랑할라고 해도 너무  아파서 견디지 못하는 거게다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인간이 이길 수 없는  그런 고통이지마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더 커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마지막을 마치는 이럴 수 있는 그 사람이 복됩니까, 건강하다 죽는  사람이 복됩니까?  자, 인제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자, 건강하다가 건강하다가 숨이 딱 끊어지기를  원하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손을 안 드는데. 그러면 사람의 수명은 주님이  정해 놨기 때문에 건강하다가 회개할 여가도 없이 이래 숨지는 것보다는  어짜든지 세상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주시고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이 주셔서 그런 믿음과 그런 고통에서 천하 사람이 다 주심을  그때는 사랑할 수 없고 믿을 수 없고 바라볼 수 없고 감사할 수가, 기뻐할 수가  없는 그런 어려움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에게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을 하나님이 주셔서 그런 믿음의 사람이 돼 가지고 세상 떠나기를  원하는, 그거 원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아따, 참 모두 다 순교자다. 됐어.

순교자라. 됐어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판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비판을 바로  가져야.

 이러니까, 그게 뭐이냐? 아프기는 누가 아프요? 제가 아프지. 제가 아픈데, 아픈  거는 제가 아픈 것이고, 하나님 중심이 뭐 거게서 아픈 데로 돌아가겠습니까?  이러니까,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 중심이 변하지 아니하려는 이 준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준비입니다. 그러니까 눈도 빠져 보고 또 자기의 가죽을 벗기는, 가죽  벗기는 것도 당해 보고, 또 팔을 분지르는 것도 당해 보고, 뼈를 꺾는 것도 당해  보고  그런데, 그거 우리가 기도해야 돼요. 주사를 놔서, 주사를 놓으면 사람이  미쳐지거든. 정신이 이상해지거든. 주사 놔 가지고서 내 정신이 이상 돼 가지고서  주님에게 대해서 못 할 노릇을 하는. 못 할 행위를 하는 그런 거 할까  두렵습니다. 주사를 놓든지 약을 먹이든지 이래 가지고 내 정신이 변해서 죽게  돼서 변해지는 이런 일을 닥치지 않게 해 달라고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그거는  인간으로서 어짤 수 없는데 이런 일을 닥치지 않게 해 주시든지 어떤 약을  독약을 주사를 하고 어떻게 해도 주님을 향함이 요동치 않게 해 주시는 그  믿음을 주시든지, 제일 호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주님에게 향하여 요동치 않는 그  은혜를 달라는 그거 기도하고 그걸 안 줄 진대는 그래 가지고 변질되는 그런  일이 되지 않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자꾸 주님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어 우리는  지금 무궁세계를 두고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믿었으며 어떻게 행동했느냐?  하나님께 어떻게 했느냐 하는 이것을 지금 우리가 마련하고 가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뭐 목사 노릇하면서 자기 중심으로 가지고서 사람 만나면  속삭속삭 해 가지고 간교하게 해 가지고 그 사람 죽이고 하는데 그 죽이는  거는-간교한 것들은 간교한 것이라야 또 재미가 있습니다. 간교한 것은 간교한  것이라야 재미가 있지 간교하지 안한 사람은 '저 사람은 날 그만 배척한다.'  간교한 사람은 '날 위한다.' 이 등신아 위하는 게 아니라 널 죽이는 것이다! 이  어리석은 자야! 그런 남편 그런 아내 그런 형제 이런 게 있거들랑 불쌍하거든  칼로 말이요, 성신의 검으로 찔러서 좀 깨우치라 그 말이오. 죽구로 내두지 말고.

그까짓 그래 가지고 저거끼리 뭐 단합돼서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 건데?  그래도 늙고 그래도 죽어  그런고로 따라합시다. 나그네로 지낼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나그네로 지낼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그까짓 거 재미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 건데?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조금만 그 정력이 채여 놓으면 죄를 안 짓고 안 되고 죄를 지어  가지고 짝 이제, 정력. 하나님 위해서 할 정력 다 빼 버리고 난 다음에 그라고 난  다음에 만족하고. 그거 다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서 죽는 행위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 중심이 아닌 그것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저 자꾸 맹종적으로만 기도하지 말고 기도하러 가면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중심 뭐 다른 거 기도 못 하면 새벽마다 주는 그 말씀 가지고서, 그 날은  그거 가지고 기도해요. 오늘 아침에는 산에 가든지 여게서 하든지 그래 가지고서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내 중심 요놈을 원수로 삼아서 죽일라고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인데, 왜? 틀렸다고, 틀렸다고 나무라는데 왜 듣기 싫어? 그게 자기 중심이라  그말이오. 옳은 것을 말하는데 왜 듣기 싫어? 그게 자기 중심이라. 그저 틀렸거나  말았거나 저 좋게만 말하면 좋아하는 것. 교역자들도 어데 큰 교회 가라 하면  좋아서 벙긋거리고, 그게 벌써 자기 중심의 인간이라. 그 끝이 망합니다. 양심있는  사람들은 큰 교회 작은 교회 있으면 작은 교회 가지 큰 교회 갈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데든지 저 좋고 주님 좋은 곳 있으면은 주님 좋은 곳 가지 저 좋은  곳을 택해 가지 않는 것이 그것이 신앙의 사람들이라 그말이오. 아무리 뭣이  민첩하고 훌륭해도 자기 중심이라는 그걸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지 안한 인간은  그거는 언제 가서 무슨 재를 저질란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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