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8:22
절제는 성공 자본
1988. 1. 27. 수저녁
본문:고린도전서 9장 25절∼27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다음 주일 가르칠 공과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9장 25절로 27절.
제목, ‘절제는 성공 자본’ 요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장 25절 서론.
사람은 누구나 전투와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긴 자는 영광이요 진 자는 수치요, 또 이긴 자는 상전이요 진 자는 종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않는 영원한 것을 얻고자 함입니다.
본론.
첫째, 이길 준비는 모든 절제입니다. 모든 절제에서 승리와 성공이 있고 절제 없이 성공과 승리를 생각하는 사람은 재료와 기술 없이 건설할려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절제는 운전 기사가 차에 대한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과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기에 대한 모든 기계를 조종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아무리 잘 가고자 할지라도 바로 조종 안 하면 가지도 못하고 큰 사고 납니다. 절제 없는 사람은 사고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째, 우리 전 생활 절제는, 첫째 자는 것, 둘째 먹는 것, 세째 입는 것, 네째 거처하는 것, 다섯째 일하는 것, 여섯째 쉬는 것, 일곱째 말하는 것, 여덟째 마음 쓰는 것, 아홉째 생각하는 것, 열째 행동, 열 한째 노는 것, 열 두째 동무 사귀는 것, 열 세째 독서, 열 네째 오락, 열 다섯째 취미, 열 여섯째 운동, 열 일곱째 시간, 열 여덟째 힘에 알맞는 것, 열 아홉째 보는 것, 스무째 듣는 것, 스물 한째 쓰는 것, 스물 두째 공부, 스물 세째 욕심, 스물 네째 두려워하는 것, 스물 다섯째 웃는 것, 스물 여섯째 성내는 것, 스물 일곱째 슬퍼하는 것, 스물 여덟째 간 큰 것, 스물 아홉째 안심하는 것, 서른째 열심하는 것,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조심하여 잘 조절한 학생은 복있는 위인이 됩니다. 예수님만 잘 믿으면 모든 절제는 잘 됩니다.
문답에, 첫째, 성공과 승리의 준비는 무엇이뇨? 답에, 절제입니다.
둘째, 절제 없이 성공과 승리를 원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답에, 조종 없는 비행기 조종사와같이 사고 인물입니다.
세째, 우리 생활 절제 몇 가지를 배웠느뇨? 답에, 삼십 가지 배웠습니다.
네째, 모든 절제 완성법이 무엇이뇨? 답에, 예수님 잘 믿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학생들에게 그저 주입을 시켜서 그들 상상 부대 속에 기억 부대 속에 이 진리가 들어 있으면 장성하고 필요 있는 때와 환경과 주위를 만나게 되면 생각이 나서 저희에게 생명의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사 선생님들은 지금 알려고 애를 쓰면 알 수 있습니다. 애를 쓰지 안하면 잘 모릅니다. 그러고 애를 써도 가만히 고요히 눈을 감고 양심을 써서 생각해 보고 또 나중에는 자기가 이런 저런 행동하면서 생각하고 그래서 이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계속 자기 마음에 모든 소원을 이 말씀을 깨달을라고 원하는 거게다가 붙여 놓으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알려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렇지 안하면 모릅니다.
제목에, ‘절제는 성공의 자본이라’ `절제는 성공의 자본이라' 뭐 인내는 성공의 자본이라, 또 사람들이 열심을 내는 것은 성공의 자본이라 많은 말 하지마는서도 그런 거는 알기 쉽지마는 절제는 성공의 자본이라는 이 뜻은 알기가 아주 어렵고 또 여게 대한 뜻을 깨닫고 이렇게 모든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은 많지를 못합니다.
성공이 절제 없이는 안 되는 것, 절제는 자기가 할려고 하는 성공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되는 것이며 또 기술이 되는 것이며 또 노력이 되는 것입니다. 재료 있고 기술 있고 노력하면 못 할 것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 데도 재료 있고 기술 있고 노력하는 힘 있으면 됩니다. 뭐이든지 다 됩니다. 전쟁도 승리하는 데는 승리할 수 있는 재료 있고 이길 수 있는 그 지혜 있고 또 노력하면 다 승리합니다.
승리나 성공이나 모든 것은 거게 대한 절제를 바로 하나 안 하나 하는 데에서 승리와 패전과, 성공과 실패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생들에게 이 절제란 말을 그들에게 설명을 해 준다는 것보다도 절제라는 것을 그 마음 속에다가 주입을 시켜서 마치 돌에다가 글자를 각하는 것 마찬가지로 그이들 마음 비에다가 절제는 성공의 자본이라 하는 것이 마음에 박히도록 하면은 그 선생은 성공입니다.
언젠가 그 아이에게, 스무 살 먹어서든지 오십 살 먹어서든지 뭐 팔십 살 때든지 자기에게 필요할 때에는 이 말씀이 그를 구출할 것이고 자기가 실패해서 심히 탄식하고 우울 가운데 빠졌을 때에는 이 실패는 여게 대한 절제가 없어서 실패했다 하는 것을 그 사람이 깨닫고 늦게나마라도 자기의 성공과 승리는 절제에 있다 하는 것을 깨달으면 늦게라도, 마치 농부가 모종을 시기를 늦게 심으면 정상적인 수입은 없지마는서도 그래도 다소나마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 비유로 말해 놓은 것입니다. 사람이 집을 지을라고 할 때에 재료 없이 또 기술 없이 또 자기가 노력하는 노력 없이 집을 지을라고 암만 해 봤자 집은 안 지어집니다. 재료만 없어도 안 지어집니다. 거게 대한 기술이 없어도 안 지어집니다. 또 재료와 기술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가 노력하는 노력이 없으면 또 지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재료와 기술과 노력은 어떤 것이뇨? 그것이 막바로 절제라 하는 것입니다.
또, 운전 기사가 그 차를 자기가 다 전권을 맡아 가지고서 이렇게 운행을 할 때에 그때에 절제 안 하면 저 죽고 거게 탄 사람들 다 죽입니다. 비행기 조종사도 다 그러합니다.
그 절제라는 것은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에는 없는 것을 갖추어야 됩니다. 만일 휘발유가 없으면 휘발유를 갖추는 것이 그것이 절제입니다.
또, 그 사람이 운전대를 잡고 오른쪽으로만 틀면 되는 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틀면 안 된다. 또 왼쪽으로만 틀면 되느냐? 그것도 안 됩니다. 오른쪽으로 틀 만치 틀고 왼쪽으로 틀 만치 틀고 또 속도를 낼 만치 내고 또 아무리 정지를 한다 할지라도 정지도 적당하게 정지해야 되지 정지를 지나치게 해 버리면은 차가 꺼꾸로 도로록 구불러 가지고서 다 죽습니다.
이 절제라 말은 모든 것을 조절한다, 조종한다, 모든 것을 다 적합하게 알맞게 구비한다 하는 그런 내용을 가진 단어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가정에 식구를 위해서 밥을 지을 때에도 밥짓는데 이 사람은 밥만 맛있게 잘 지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간을 생각지 안했습니다.
일곱시에 밥은 먹을 터인데 밤새도록 잠 안 자고 한시에 밥을 해 놨습니다.
그러면 또 그거 틀렸습니다.
또, 밥을 하느라고 성의 기울였지마는서도 일곱시에 먹고 모두 일할 터인데 열 두시 돼서 밥하면 그 일 다 낭패입니다. 그런 것도 시간이 늦어도 안 되고 일러도 안 되고 꼭 알맞는 고 시간을 맞추는 고것이 시간에 절제입니다.
또, 그 밥을 하는 데도 물도 많이 부어도 안 되고 적게 부어도 안 되고 안 부어도 안 되고 또 늦게 부어도 안 되고 일찍 부어도 안 되고 모든 일이 이렇게, 어떤 한 가지 일을 이룰라고 하면은 거기에 관련된 것이 숫자가 적으면 가치가 적고 관련된 숫자가 많으면 가치가 큽니다.
그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 못 하겠네. 이거 메꿔 놓으면 여게 터지지 저거 또 메꿔 놓으면 여게 터지지. ’ 이래 가지고서 ‘아이고 못 하겠다' 이거 하면 저거 삐뚤어지지, 이 사람 가 가지고서 서로 의논해 놓으면 저게 터지지 저거 붙들어 놓으면 이게 터지지, 그러니까 항상 낭파되고 난 다음에 뒤에 바쁘게만 날뛰는 그런 사람은 절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예, 어떤 사람은 미리부터 모든 일에 그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도, 여게 말하기를 마음 쓰는 것이라 했어, 마음 쓰는 것. 우리가 언제든지 웃으면 좋은 줄 알아도 아니요. 웃을 때는 웃어야 되고 또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할 때는 안 해야 되고 침묵을 지킬 때는 침묵을 지켜야 되고 성을 낼 때는 성을 내야 되고 또 꾸중할 때는 꾸중해야 되고 칭찬할 때는 칭찬을 해야 되고 높일 때는 높여야 되고 책망할 때는 책망해야 되고 이 모든 일이 다 그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 알맞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가져야 되지 그것을 찾아 가지지 안하면 다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절제라는 것은 모든 일에 자기가 할라 하는 그 일에 관련된 열 가지나 스무 가지나 백 가지나 관련된 것을 낱낱이 다 발견해 가지고 ‘요 일을 하는데 며칟날은 요 일이 어떻게 뒤비지겠다. 요 사람하고 지금 손을 잡았는데 요 사람에게는 어떤 사람이 관련 있어 가지고서 그때에 어떤 사고가 나겠다. 어떤 배신이 나오겠다. 어떤 불신이 나오겠다. 어떤 사욕이 나오겠다. ’ 이제, 자기가 하는 일에 관련된 것이 백이든지 열이든지 스물이든지 그것의 종류 필요한 구비 요소를 다 아는 그것이 지금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은 조절이 안 됩니다. 그것 다 알고 난 다음에, 그러면, 여게 대해서 양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 먼저 될 것이냐 뒤에 될 것이냐? 시간은 어찌 해야 되느냐? 시간 조절, 양 조절, 또 종류 조절. ‘이거는 열 가지만 있는데 필요 없는 것이 하나 왔다. 더 왔다. ’ 좋은 시계라도 좋은 시계에 보석 부속품이 하나 외에 것이 그 안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면은 그것 때문에 시계는 안 갑니다. 그게 거칠어서 안 갑니다. 많이 있으면 좋은 줄 알아도.
이러기 때문에, 이 절제라 하는 것은 조절이기 때문에 먼저 뭣뭣이 필요한지 거게 대해서 있어야 될 것은 다 있도록 해야 되니까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그것은 있도록 구비하는 것이 절제요. 또 필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은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절제요. 또 거게 있기는 있어야 되는데 그 양이 알맞아야 되는데 그 알맞는 양 외에 것은 없애버리는 것이 절제요. 알맞는 양이 모자랄 때는 보충하는 것이 절제요. 시간도 늦어도 안 되고 일찍 해도 안 되고.
이러니까 우리 생활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두시고 마귀를 내놓고 미끄러지게 이렇게 방해하는 것, 방해하는 것은, 마귀가 방해하는 것은, 예수님이 승리하고 난 다음에는 택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구원을 잘 이루도록 협조하지 방해는 없습니다.
협조인데 방해 같습니다. 무엇이나 모자라면 그것 때문에 일이 안 되도록 낭파를 지웁니다. 낭파를 지우면 낭파가 지면 그때사 ‘아, 내가 요 면을 생각지 안했구나.
나는 내가 모두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지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 내가 기도가 모자랐구나. ’ ‘내가 이 일은 다 됐는데 내가 고것을 회개를 안 했다’ 자기가 회개 안 한 것, 하나님에게 부탁 안 한 것, 하나님이 자기에게 ‘언제 그말 하던 그말 내가 잊어버렸다’ 영감을 소멸한 것, 또 자기는 마음을 단속 안 해 가지고서 마음을 벌로 쓴 것, 입을 단속 안 해 가지고서 입을 벌로 쓴 것, 또 할말 그때 고 말을 꼭 해야 되는데 고 말 안 해서 그만 낭파된 것, 이거 뭐 우리 생활이 백 가지 천 가지가 다 이게 주 합해 가지고서 우리 구원 성공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 구원 성공을 일단 정신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이렇게 이 구원에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 해야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자기 볼 일 보고 하고 싶은 대로 욕심대로 다 살고 남은 찌끄러기 몇 가지 그거 가지고서 구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거는 참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이 구원이 뭐인지도 모르고 멋모르고 벌로 덤비는 사람입니다.
이 구원은 돈벌이 하는 것만이 구원이 아니오. 이 구원은 하나님이 입법한 그 입법에 걸리지 않는, 이러니까 다른 그 방편 가지고는 할 길이 없어. 고만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이 가 하면 가 하고 나 하면 나 하고 하나님에게 절대 복종하는 이 일을 연습하고 연단받아서 방해가 암만 있어도 복종하고 나중에 이래서 죽음에서나 생명에서나, 바쁠 때나 틈날 때나 복종하는 요 한 가지를 배워 가지고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이 돼 가지고 하나님이 동하면 저도 동하고 정하면 정하는 요 연결만 되면 우리 구원 성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떨어져서 자기의 독립성, 자기의 독립력을 가지고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지극히 큰 구원을 이루는 거는 완전자와 연결돼서 완전자에게 피동됨으로써만 이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이 구원이라는 것이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공과 승리의 준비는 무엇이뇨? 절제입니다. ’ 절제라 하는 것은, 이제 그 서른 가지를 말했어, 서른 가지. 서른 가지가 아니라. 서른 가지 말하는 것은 삼천 가지도 넘습니다. 삼만 가지도 넘고, 그거 우리가 또 그만치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뭣이든지, 예를 들면은 여게 첫째가 보니까 ‘자는 것’ 해 놨네, 자는 것.
자는 것 이것도 잠을 늦게 자도 안 되고 일찍 자도 안 돼, 그만. 늦게 자도 안 되니까 그러면 일찍만 자면 좋으러구만. 일찍 자도 안 되고 늦게 자도 안 되고, 많이 자도 안 되고 적게 자도 안 되고 알맞게 자야 되는 것,
우리가, 여게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 하는 요것을 뜻을 똑똑히 깨닫고, 이기는 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은, 내가 새벽기도를 이제 나가서 아무래도 평생 처음 만나는 첫날을 만나 가지고, 첫날 첫시간이 새벽 시간인데. 첫날 첫시간을 이 험악한 세상, 사기, 협잡, 거짓말, 사이비한 유혹의 갈래길이 가득히 찬 참 험한 세상에 오늘 하루해 내가 발을 내디디면서 걸어가야 되는데 이 길은 역사에 있는 사람들이 하루도 옳게 걸어가는 사람이 예수 밖에는 한 사람도 없다. 이렇게 어려운 길이다.
조물주 심판주가 볼 때에 ‘오, 너는 오늘은 옳게 걸었다. ’ 하는 그 자욱이 하나도 없는 것이 세상에 살고 간 인생들인데 이 세상에서 내가 오늘 하루 동안 내 언행 심사, 내가 경영하는 것, 소원하는 것, 욕심하는 것, 웃은 것, 성낸 것, 운 것, 기뻐한 것, 슬퍼한 것, 담대한 것, 이거 뭐 우리 하루 행동하는 것이 열 가지 스무 가지 백 가지가 아닙니다. 저는 몰라도 그렇게 가지 수가 많습니다.
이런데, 이것을 주재이신 하나님의 뜻에 알맞는, 하나님의 뜻은 진리인데 진리에 딱 들어맞게 할라고 하니 그분의 심판에 걸리지 안하도록, 영원히 가도 후회가 없도록, 모든 피조물을 대해도 하나도 송사받을 것이 없도록 이렇게 온전한 한 자욱 한 자욱을 걸어가는 데에는 얼마나 어렵다 하는 것을 그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 만에 하나도 섞일까 말까 합니다.
모두 사는 것은 오늘 생활에, 돈 하나만 보고 ‘돈 하나에 대해서 어찌 되느냐?’ 자기 욕심 하나만 보고 `내 욕심에 지금 어찌 되느냐? 내가 소원하고 있는 그거 어찌 되느냐?’ 각각 제 사욕대로, 저는 좋아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심판밖에 안 되는 그 사욕대로 그거 하나를 보고 일생 동안 달음질 하면서 그것 될듯 될 때는 그거 되면 좋아하는 것, 그 참 진리에서 천리 만리 억만리도 거리가 멉니다.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죽은 다음에, 아주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죽은 다음에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다 살아납니다. 물에 빠져 죽은 것도 살아난다 했고 불에 화장한 것도 살아난다 했고 뭐 토장한 것도 다 살아납니다.
살아나는데, 살아나 가지고 그 사람들이 세상에 살 때에 자기가 어떻게 행동했나? 마음 행동, 말 행동, 정신 행동, 몸뚱이 행동, 모든 행함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심판받아 가지고 영원한 보응을 받아서 무궁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그네 세상이요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하룻밤이라 이랬어. 잠깐이라 했소. 다음 세계는 영원 무궁합니다.
영원 무궁세계에, 우리는 한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가지고서 심판받아 가지고 무궁세계에 가는 이 사실을 모르고 항상 세상에서 살 것만 생각하고 제 욕심을 위해서 달음질치고 전심 전력 기울이다가 욕심대로 되면은 웃고 또 안 되면 거석하고, 네 욕심대로 실컷 소원 성취 다 됐는데 고것은 다 됐으니까 행복이냐? 마지막 하나님이 부를 때에는 소원 성취 못 된 사람보다 된 사람은 그만치 고통이요 그만치 번민이요 그만치 마음에 비관이요 분격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은 참 귀중한 세상이요 영원 무궁을 좌우하는 원인이 되는 짤막한 토막이기 때문에 영원 무궁에 있어서 이 세상이라는 짧은 토막이 제일 귀중한 토막이라. 왜? 이것 가지고 영원 무궁의 좌우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렇게 중한 이 세상이라는 이 나그네 세상 짧은 이 기간이라.
그런데, 여게는 우리가 한번 죽어 가지고서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는데, 우리가 죽어 가지고서 우리가 살던 그 요소를 전부 다 살려 가지고서, 내가 젊을 때에 가졌던 손도 다 그거 살려 가지고 하나님 심판 앞에 가서 행동록에 기록된 대로 심판받는다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아는 자는 말할 게 없어. 하나님은 거짓말을 안 하십니다.
하나님은 털끝만치도 그에게는 거짓이 없습니다.
이 심판받는 이 사실을 깨닫고 평생 처음 만나는 오늘 하루 해를 어떻게 지금 살아서, 오늘 하루를 바로 살면 우주보다 가치가 크고, 오늘 하루를 바로 살아서 의를 이루었다 하면은 우주보다 가치가 크고 오늘 하루 동안에 내가 말 한 마디라도 잘못 한 것 행동 하나 잘못 한 것 있으면 그것을 뒤에 변상할라 하면은 내가 일생 번 걸 다 뚜드려 뭉쳐도 안 된다는, 이 조물주가 지금 당신의 법을 세워 놓고 그대로 판단하고 계약 세워 놓고 영원을 이렇게 심판해서 공정된 심판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역사하실 이 비밀을 모르고 살면 그만이지. 성경에 모르는 자는 모르는 그대로 심판받고 아는 자는 아는 그대로 따져서 심판받는다 이랬습니다.
이러기에 그걸 아는 사람은 자기가 처음 만나는 이 하루를 하나님 앞에 아무래도 이 날을 부탁 안 할 수 없고 의논 안 할 수 없어서, 자기가 예배당에 안 와도 그러면 첫시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 한 절 보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눈 감고 ‘주님이여, 오늘 하루 해를 나에게 주셨는데 이 날이 나에게 복이 되면 무한히 복되고 이 날이 나에게 참 수치가 되면은 무한한 수치가 되는 것이니 주님이여 이 날을 나를 바로 살도록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 그분에게, 자기가 주님에게 거리낀 게 있으면 그런 것을 거리낀 걸 그때에 다 청산해서 자복하고 용서받고 사유받고 자기가 앞으로 모를 것은 당신에게 부탁해서 ‘나는 모르나 당신은 다 알고 계시니까 어떤 일이 있든지 이 일에 대해서 나를 지도하시고 간섭하시고 붙드시고 도우셔서 바른 길을 가게 해 주옵소서’ 하는 것으로써, 다른 일 하기 전에 그날 아침에 제대로는 다 생각할 것 생각하고 부탁할 것 부탁하고 의논할 것 의논하고 자기가 아는 대로는 그 문제를 다 주님하고 의논해서 해결짓고 이라고 나면은 밥먹는 시간이 늦어졌든지 뭐 일이 늦어졌다 할지라도 이라고 나면은 마음이 거뿟하고 개운하고, 그라고 보니까, ‘오늘은 그만 기도 다 하고 보니까 출근 시간이 늦어서 오늘 지각하게 됐네’ 그러면 그거 절제했습니까 못 했습니까? 그거 절제했소 못 했소? ‘못 했다’ 그러면, ‘이거 내가 너무 오늘은 늦게 일어나 가지고서 늦게 시작했으니 잘못 됐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되겠다. ’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 날라고, 그러면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일찍 일어나니까 찍해야 잔 것을 계산 대 보니까 세 시간밖에는 안 잤습니다. 이거 테레비를 열 두시까지 보고 난 다음에 누워 자니까 한시, 두시, 세시에 깨야 자기의 기도할 것 다 하는데 그라고 나니까 자기 출근 시간이 늦었어.
이라면, 그러면 그 사람 아침에 깨서 세시에 깨 가지고서 기도할 것 다 했으니까 그 사람 절제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절제 했소 안 했소? 절제 안 했습니까? 어데가 절제가 안 됐습니까? 자는 데 틀렸소.
‘안 됐다. 이러니까 내일 저녁에는 또 좀 더 일찍 자서 열시에 자 보자. ’ 열시에 자 보니까 열 한시, 열 두시, 다섯 시간 잤습니다. 다섯 시간 자니까 아침에는 괜찮고 일할 때 괜찮지마는 되면은 낮에 가니까 피곤해 가지고서 나중에 그래 하다 보면은 안 됩니다, 낮으로 잘 시간도 없고.
이러니까, ‘어라 안 됐다. 이거 또 절제가 좀 모자랐다. 절제가 모자랐다. ’ 열시에 잘 게 아니라, 그러면 어째 자야 됩니까? 아홉시에 자야 되겠습니다. 아홉시.
아홉시 자면은 열시, 열 한시, 열 두시, 한시, 두시, 세시, 여섯 시간 자니까 여섯 시간 자면 건강한 사람이면 여섯 시간 자면은 그만하면 족합니다. 이제 좀 건강치 않은 약한 사람은 더 이상 자야 되지마는서도.
이렇게 해서 자꾸 이 절제합니다. 요 보니까 요게 모자라서 안 됐다. 조게 모자라 안 됐다. 요리 치우쳐서 안 됐다. 조리 치우쳐서 안 됐다. 이라다 보니까 마지막에 보니 자꾸 모든 면에 절제해 나가다 보니까 전부 뭣이 다 제거됩니까? 뭣이 차차차차 제거되고 뭣이 차차차차 없어지고 뭣이 차차차차 자꾸 이렇게 구비하게 됩니까? 뭣이 없어지고 뭣이 구비하게 됩니까? ○ 집사, 필요 없는 거는 자꾸 없애지? 그렇지 않아? 필요 없는 거는 자꾸 없앱니다. 필요 없는 거는 없애고 필요 있는 건 구비하고,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의 전 생활이 물샐틈 없이 이래 있는 그 사람이라야 만가지에 성공을 하지 제가 절제라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람 부는 대로, 형편 되는 대로, 친구 가자 하는 대로, 친구들 말하는 대로 따라서, 이 사람 좋다 저 사람 좋다 해 가지고서 팔방미인 모양으로 이래 가지고는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또 그래 하다 보니까, 사람에 대해서 또 이거 너무 냉정해서 사교가 없으니까 안 되겠다. 또 사교를 해야 되니까 사교도 멋지게, 시간도 절약하고 그러니까 모든 걸 연구 연구 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 두 시간 같이 데리고 앉아서 얘기하는 것보다도 한 십 분만 얘기해도 그 상대방도 좋고 나도 좋고 피차에 사교가 다 되도록 이러니까 자꾸 연단 연단 연마 연마해서 모든 것이 다 온전하고 구비해서 부족함이 없는 이 생활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 생활은, 마음 하나 잘못 써 가지고서 일생을 망칩니다.
자기 성공이 자기 마음 쓰는 데 마음 절제에, 자기 성공이 마음 절제에, 공부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뭐 이 정치를 하든지 뭘 하든지 신앙 생활하든지, 신앙 생활 그것이 마음 절제에도 속했고 잠 절제에도 속했고 먹는 것 절제에도 속했고, 이거 고만 맛있다고 먹어 놨더니마는서도 그만 소화불량을 일으킵니다.
이거 맛있다고도 많이 먹어도 안 되지, 또 맛있는 거 먹었더니마는서도 그게 또 좋지 못한 게 돼 가지고 뭐 모처럼 떡을 만나 놓으니까 떡이 맛있어서 실컷 먹고 보니까 그만 밤새도록 그 속이 안 됐더니마는서도 그 이튿날에 밥 맛이 없어.
이라고 보니까 기운 없어서 그만 설설 흐려지고 말았다 말이오. 그건 성공 못 해.
이러니까, 맛있다고 먹을 것도 아니고 맛없다고 먹을 것도 아니고, 먹는 것도 절제해야 되지 입는 것도 절제해야 되지 노는 것도 절제해야 되지 동무 사귀는 것도 절제해야 되지, ‘이 동무는’ 그러면 동무 사귀는 데에 자기 신앙에 방해하는 그 동무를 자꾸 사귀는 것이 절제요 그 동무는 사귀지 않는 것이 절제요? 않는 것이 절제라. 모든 면에 절제하지 않는 자는 좋은 날을 보지는 못한다. 성공은 없다. 금생에도 성공 없다. 내세도 성공은 없다.
예수 믿는 일뿐 아니라 이 세상 일도 그 사람이 ‘내가 이 일을 하는 데에는 여게 관련된 것, 여게 관련된 것을 헤아려 보자. ’ ‘내가 지금 대통령 출마를 할라 하는데 여게 관련된 것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걸 생각해 보니까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어.
자기가 사람에게 말 한마디 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그것이 암이 돼 가지고서 사고를 일으켰습니다. 또 자기가 이러니까 사람 좋도록 할라고 다른 사람 좋도록만 자꾸 이라다 보니까 그만 자기 할 일 못 해서 자본이 모자라 또 헛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거게 관련된 모든 구비 요소를 다 깨닫고 그 구비 요소 전부를 다 조절해서,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되고, 일찍 앞서 나와도 안 되고 너무 늦게 나와도 안 되고, 고게 또 많아도 안 되고 조게 많아도 안 되고, 이 전부는 다, 양이나 종류나 질이나 시기나 또 색깔도 요 색깔 조 색깔 다 이래 있기 때문에 모든 일에 거게 구비 요소가 하나 둘이 아니라 열 가지 스무 가지 서른 가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가 발견하고, ‘내가 이 일 하는 데는 보자. 이 일 하는 데는 여게 구비 요소가 몇 가지나 되느냐?’ 고걸 딱 발견하고, ‘그러면 이래 되는 데는 나는 지금 여게 대해서 구비 요소가 어떠냐?’ 자기 목적하는 그 일에 대한 모든 구비 요소들을 보니까 없는 것이 태반이나 되고 필요 없는 것들이 많이 있고, 어떤 것은 많아서 폐단되고 어떤 것은 적어서 폐단되고, 이런 것 모든 것을, 내가 어떤 일이든지 성공과 승리를 할라 하는 데에는 거게는 필요 있는 구비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을 종류로 갖춰야 되고 또 그것을 적당하게 다 조절을 해야 되고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거게만 힘을 쓰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인데 이거는 힘쓰지 안 하고서 자꾸 제 욕심대로 강행할라고만, 어떻게 힘만 쓰면 되는 줄 알고, 욕심만 부리면 되는 줄 알고, 배짱만 부리면 되는 줄 알고, 남하고 싸움만 잘 싸우면 되는 줄 알고, 어리석어.
이러기 때문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 또 사람이 살 때에 자기가 아무리 열심을 낸다 할지라도 향방 없이 달리면 안 된다. 자기가 뭣을 목적하고 사는지 그것을 알아야 되지. 뭘 목적하고 사는지! 이 사람은 돈을 목적하고 사는지, 권세를 목적하고 사는지, 지위를 목적하고 사는지, 행락을 목적하고 사는지, 창기 모양으로 다른 사람 좋아하는 걸 목적하고 사는지, 뭘 가정을 목적하고 사는지, 뭘 목적하는지! 인간은 목적을 하나밖에 못 합니다. 고렇게 만들어 놨어. 목적을 이리저리 두 가지로 목적이 되면은 그 사람 가는 걸음은 두 가지 걸음입니다. 이리 한 번 이리 한 번 그렇소. 그 사람 목적이 서이면은 그 자기 전 생애는 세 쪽으로 나눕니다.
이거는 성공이 못 됩니다. 꼭 하나만 하도록 하나님이 정해 놨소.
이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 목적이 날마다 변해지요. 주위 환경에 따라서 변해지요. 이걸 가치로 보다가 저걸 가치로 봐.
그러니까, 이거는 뭐 아무런 속에 알맹이 없고 또 목적도 없고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뼈 없는 사람이라. 무골호인이라. 뼈 없는 사람이라. 그게 무슨 성공을 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무엇인가 하나로 목적 딱 해놓고 그 목적을 위하여 모든 것을 그 목적 달성하기에 유리하도록 모든 것을 조절 다 합니다. 이리 하면은 썩어질 면류관을 얻든지 썩지 안할 면류관을 얻든지, 여게 보면은 안 믿는 사람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도 그 사람이 만일 정권자가 될라 하면은 그 정권에 대한 필요한 요소를 전부 자기가 발견 다 해 놓고 그 요소를 다 구비하고 그 모든 요소 하나하나를 다 따져서 다 조절해 가지고서 고것이 완성되면은 정권은 저절로 와. 안 할라 해도 저절로 와, 그것만 해 놓으면.
그래서, 속담에 말하기를 ‘숲을 기르면 범이 생기고 물을 채우면 고기가 생긴다’ 그말이 있어. 이거는 퉁퉁 비어서, 보니까. 비기를 한, 예를 들어서 백 가지 필요한데 한 두서너 가지밖에는 안 된 이 불구비한 불충분한 이 사람이 두서너 가지 이거 가지고 자꾸 이거 하니까 저 망하고 남 망하고 폐단만 돼지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래서, 여게 간단하게 해 놨는데 이걸 가서 읽을라면 얼마나 많이 읽어야 요 진리를 깨닫습니다. 요 하나만 해도. ‘절제는 성공의 자본이라’ `절제는 성공의 자본이라’ 요것만 이래 가지고 요 진리를 깨달으면 무슨 성공이든지 다 할 수 있어. 다 할 수 있어.
‘그러면 목사님은 그래 그렇지마는 성공 못 하는가?’ 그런 땅에 있는 성공 아니라.
나는 예수 믿는 성공할라 하고 있어. 예수 믿는 성공은 원청 어려워. 어려워서 이 성공은 원청 어려운데 그래 성공이 돼 가.
뭐 이 교인 많은 게 성공됐는가? 교인 많은 게 내 승리 아니라. 내 성공은 하나님 앞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하룻밤 나그네 같은 세상 것 가지고서 잘 했으니까 무궁세계의 것 너에게 맡기겠노라’ 이 음성을 듣는 그게 성공이기 때문에 그를 향해서 지금 간다고 가기는 갑니다.
이래서, ‘우리 전 생활 절제는’ `전 생활 절제는, 자는 것' 이 우스운 소리요, 자는 것. 자는 것 이것 조절 못 하면 헛일입니다. 나는 제일 어려운 게 뭐이냐? 자는 것 먹는 것 요 두 가지를 내가 못 하고 있어.
자는 것, 자는 것는 꼭 여덟시에 잘라 했는데 여덟시에 잘라고 해 놓고 여덟시에 자 본 일이 별로이 없어. 여덟시에 자 본 일이 별로이 없는 것은 내가 굳게 서지 못해 그래. 이 사람 사정에 저 사건에 이래 가지고서.
김현봉 목사님은 여섯시에 자는데 여섯시에 자는 일을 언제든지 자유했어요. 나는 잠자는 데 자유가 없어. 잠자는 데 자유가 없기 때문에 고만치 모자란 거라. 내가 언젠간가 이제 자는 데 자유가 있을 것입니다.
여덟시에 딱 잘 터인데 내 전면이 다 정리가 안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덟 시간 잘 권세가 있어야지? 자고 싶어도 못 자는 거라. 모든 게 정리 돼 있어야 되지. 정리가 안 돼 있으니까.
사람이 조그만한 자유라도 그 사람이 ‘오늘은 산기도 갑시다’ 하는 데도 산기도 가는 그거야 하루 뭐 잠깐 오전 갔다 오는 거야 누구든지 가지 싶으지마는 안 돼요. 그 가는 것이 그 사람 벌써 그 생활에 모든 일이 정리가 돼 가지고 있어야지 정리가 안 돼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거라. 정리 안 된 사람이 가면은 그 뒤에 오전 산기도 갔다 오면은 큰 폭발해 탈이 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거 참 자유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조절해 가지고서 자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복있는지 모릅니다.
자는 것, 먹는 것, 먹는 것도 이거 시간 맞춰야 되는데 시간이 잘 안 맞지. 또 먹는 것도 그래서, 먹는 것도 어떨 때는, 나도 일정하지 안해요. 내가 변하는 사람이야. 어떤, 사람 말 들으면 ‘아무래도 좀 많이 먹어야 되겠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되겠다. 억지로 먹어야 되겠다 또 이렇고, 또 어떨 때는 ‘아이구 많이 먹어서 탈이니까 좀 적게 먹어야 되겠다’ 적게 먹어야 된다 할 때는 또 많이 먹고 싶어 안 되지 많이 먹어야 된다 할 때는 또 먹기 싫어 안 되지. 이러니까 이 먹는 것도 언제든지, 이러니까, 그 음식에 대해서 자는 데 대해서 자기 입는 데 대해서 이런 거, 의식주 이게 몇 가지 아니지만 요것만 딱 절제해 가지고 확정을 지우고 단정을 지우고 변동없이 요 네 가지가 변동 없으면 그 생활에 다른 면에 절제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이것이 원 강령적인 문제기 때문에.
세상에서 잘난 사람 모든 사람, 내가 보기에는 자기가 자는 데 절제한 사람은 김현봉 목사님 한 사람밖에는 못 봤어요. 한 사람밖에 못 봤어. 그래 내가 말 듣기는 김효순 권사님이 아무리 거석해도 아홉시는 잔다, 아홉시에 꼭 자는 그 일을 할진대야 참 김효순 권사님이 아주 위인이 됐지마는서도 그 일 잘 못 할 걸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 대개 아홉시에 잔다 그거지, 아홉시에 꼭 잡니까, 김효순 권사님? 아홉시 꼭 잡니까? 한 달에 삼십 일이면 삼십 일 꼭 아홉시 잡니까? 몇 번이나 잡니까, 아홉시에? 반 잡니까? 반 정도, 반 정도 그것도 장하구먼요.
이러니까, 이런 데에서 우리가 ‘이거는 이래야 되겠다’ 이거는 이래야 되겠다 작정해 놓고 그렇게 할라고 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렇게 하면 큰 성공의 수입이 있고 또 그렇게 못 하면 어찌 됩니까? 못 하면 자기의 연약성을 깨닫고 나는 이렇게 연약한 자다. 이렇게 연약한 자기 때문에 내가 이 범사에 벌로 날뛰어 가지고는 큰일난다. 자꾸 이렇게 절제해 본 사람은 점점 자기를 단속하고 단속해서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참 놀랠 만치 그렇게 모든 면에 대해서 구비한 사람이 되어집니다.
이래서, 이 절제하는 가운데에서 자기의 연약성도 깨달을 수 있고, 방종성도 깨달을 수 있고, 줏대 없는 환경 주위에 따라서 노는 창기와 같은 그런 자기란 것도 깨달을 수 있고, 허영과 허욕의 사람인 것도 깨달을 수 있고 뭣이든지 하나 옳게 바르게 하자 하는 여기에서 모든 옳은 것은 막 나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이거 모든 일을 바로 해 보자 하는 절제하자 하는 이거 하나를 가지면 모든 것이 다 되고 자기가 절제하는 이것 없이 형편 되는 대로 살아가자 하는 사람이면 벌써 볼일 다 봤어. 썩을 대로 다 썩었고. 다시 변화가 돼야 되지 그대로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요 공과를 외우고 반사들이 이제 자기가 깨달아서 ‘하’ 자기가 실제로 뭐이든지 한번 절제, 내게 필요하니까. 요 내게 필요한 것, 나는 먹는 건 요라고 자는 건 요래하고 또 의복은 내가 요 정도로 입고, 나는 이제 그거는 하나 해 놨어. 옷은, 내가 언제 그전에는 있을 때 그만 내가 검은옷 아니면 흰옷 그만 두 가지 이래 입었었는데 부산 오니까 자꾸 너무 딱딱해 보이니까 안 되니까 밤색 양복을 해 가지고서 안 입을라 해도 자꾸 너무 딱딱하다 쌓고 자꾸, 그때 그만 속화가 돼 버려. 그거 그때 나왔으면 괜찮은 건데.
이래 가지고 뭐 덜룽덜룽 이라니까 한번은 ‘넥타이 사러갑시다’ 갔다 말이오.
가니까, 그때 그 해운대 갔던가 동래 갔던가? 거게 가서 거게서부터 넥타이 하나 살라고 보니까 알롱달롱한데 요거는 요렇고 그러니까 요것도 거석하고 안 맞고 마음에 안 맞아서 그날 저녁 때 내내 집사님 두 분하고 이와같이 같이 이래 다니면서 해도 안 돼.
그래 내가 그날밤에 혼자 와 가지고서, 이거 내가 완전히 내가 미친 자다. 그 자꾸 그것 때문에 그러니까 그것뿐 아니라 옷도 다 그러니, 그런 것 때문에 그러니까 아예 이거 작정해야 되겠다. 이제 그만 옷은 검은 것 흰 것, 여름에는 흰 것 겨울은 검은 것, 이랬는데, 이 오리털 뭐 하는 그거는 다 그래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지마는서도 검은 것 아니면 흰 겁니다. 이래서 제가 이 검은 것 흰 것 할라 하니까 또 그거 맞출라 하니까 힘이 들어요, 힘이 들기는. 들어도 검은 옷 입을라고 작정은 합니다.
이래서, 그래 인제 옷을 이거 그 쓰미오리라 하는가 그뭐 이거 단추 잠그는 학생복 모양으로 이래 단추 잠그는 거 그걸 내가 하나 만들어 놨는데 그거 입으니까 또 자꾸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꼭 그거 입어 놓으니까 똑 공산주의 김일성이 같고 등소평이 같고 영 안 됐습니다. 입지 마이소. 이래서 그만 못 입고 있는데 그래 내가 입기는 입을 겁니다.
이래서, 그래 그만, 왜? 귀찮다 그말이오. 모든 그런 것 때문에 자꾸 시간 낭비가 귀찮아. 색깔이 하도 이 세상에 색깔이 변해 쌓으니까 그거 따라 할라 하면 시간 없겠어. 그만 검은 것 아니면 흰 것, 검은 것 아니면 흰 것 그만. 이렇고, 인제 음식도 말이지요, 음식도 이거 그만 절제해야 되는데 그거 좀 해보니까 참 좀 거석해. 뭐 뭐 뭐 뭐, 그래 누가 말하기를 밥하고 또 고기하고 채소하고 과일하고 그 삼분지 반으로, 서이 반으로 하면 된다 이라는데 그래서 그만 그 간단하게 그래 지금 그만 작정을 하고 하니까 뭐 별미 요런 거 조런 거 그런 거 할라 하니 끝이 없어.
그라고, 요새 나는 밥을 적게 먹을라 하는데, 그래 어데 책에 보니까 장그릇이 밥그릇 되고, 장그릇이야 종바리 아닙니까? 장그릇이 밥그릇 되고 또 밥그릇은 채소그릇 되고 또 뭐 이래 놨어. 이랬는데, 그거 야 지혜 있는 사람이다. 이래서 요새는 내가 밥을 좀 적게 먹으니까 기운도 있고 좀 몸도 가볍고 훨씬 좋아요.
인제 이거 뭐인가, 이제 이거 절제라 하는 걸 가만히 하나 생각해 보니까 절제 이게 뭐인가 참 이거 묘한,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놨는데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승리를 원하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 이 절제를 생각해 보니까 이 절제가 어떻게 묘한지. 이 절제만 하면 뭐이든지 우리가 절제를 해서 딱 들어맞으면 고거는 그만 성공이요 평강이요 고건 완전이라.
이러니까, 어짜든지 요번 학생들에게는 절제를 가르치고, 우리가 뭣이든지 할라 하면은 그것만 할라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뭣이든지 할라고 하면 그것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거기에 관련된 필요 요소가 열 가지인지 스무 가지인지 그걸 다 그런 종류가 많으니까 그 종류를 다 발견해 놓고, 발견해 놓고 ‘내 성공에는 요거는’ 약을 짓는 약국에 저울 가지고서 요거는 얼마 달고 얼마 달고 얼마 달고 넣는 거와 마찬가지로 ‘내가 구비하게 이 일을 하는 데에는 백 가지 이 요소가 다 필요하다. 백 가지 요소가 있어야 되겠다. ’ 백 가지 요소가 있어야 되는데 ‘요거는 몇 푼짜리어야 되고 요거는 몇 푼이어야 되고 요거는 얼마 되고 요거는 얼마 되고’ 그 양을 다 계산해 가지고 고 양대로 해서 고렇게 절제해 가지고 모든 걸 조절해서 이렇게 맞춰 가지고 나갈라고 하는 거게 눈이 떠 가지고서 고렇게 하는 사람이면 그 물샐틈 없이 성공은 필연적이지.
이러니까, 일방적 지식을 가지지 말고 우리는, 내가 지금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저녁에 자는 데에도 있고,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식구들이 모여 가지고서 재미 있는 이러니 저러니 쓸데 없는 이야기하는 거기에도 있고,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내가 하루 종일 근무하는 가운데서도, 하루 종일 아침부터 근무할 때에 벌써 모든 생활 전체에서 다 절제 절제 절제 해 가지고서 다 이렇게 조절해 가지고 나니까 마지막에 자는 거는 필연적으로 여덟시에 자게 되고 자고 나니까 아침에 일어나니 뭐 암만 많이 잔다 할지라도 세시나 세시 반이나 이래 일어나니까 그때 일어나니 새벽기도 안 나가고는 멀거니 앉았을 수 없다 말이오.
또 이런데, 그래 일어나고 나니까 구들막이 따뜻하니까 ‘아직 시간이 아직까지 한 시간 남았다. 한 시간 남았다. ’ 이라면 또 그거 어찌 됩니까? 그래 따뜻한 구들막에서 자고 싶어 누워 자면 그거는 뭐이야? 그거는 절제하는 겁니까? 그거 절제하는 거요? 절제 안 하는 거라.
이러니까, 이 절제 절제 이것을 외워 가지고서, 이 절제를 혼자 연구해서 자꾸 이래 가지고서 어짜든지 우리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언제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아시아에 수영 그 참표한 사람 이름이 뭐꼬? 그 사람 이름이 뭐이지, 여자? 최가? 그만 뭐 최가인데 내가 그 사람 그거 테레비 나오는 거 보고 은혜 받았어요.
왜? 보니까 저거 선생이 그 사람을 붙들고, 꽉 붙들고 잠도 제 맘대로 못 자게 하고 밥도 제 맘대로 못 먹게 하고 꼭 음식도 가려서 똑 알맞게 먹이고 잠도 거석하고 전 생활을 그 사람이 딱 설계를 해 가지고서 고게 딱 맞춰 이래 놓으니까 세상에 뭐 시집살이는 그런 시집살이 없고 이래 가지고 이래 맞춰 가지고서 이제 참표 따고 난 다음에 그가 하는 말이 ‘나는 이 수영에 대해서 다른 사람은 이 수영을 하라 소리는 내가 평생 안 하겠다’ 고라고 나서 그 사람 그만, 참표하고 난 다음에 그것 그만 탈퇴해 버리고 말았어. 사면하고 말았어.
그런 일도 하나 하는데 그렇게 모든 일에 절제해 가지고서 조절해 가지고 이래야 되어지는 것인데 하물며 하늘나라의 그래 하나님의 아들 되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너무 우리는 이거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서 예수 믿어서 건설구원 이루는 것은 아무나따나 된다는 이런 생각 가진다는 것이 어리석소.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이 무슨? 자, 평생 처음 만나는 첫날 만나 가지고 주님하고 의논하지 안하는 그거야 그 하루 생활 뭐하겠소? 찍해야 제 욕심대로 살았지, 제 감정대로 살았지, 제 주장대로 살았지, 제 성질대로 살았지, 제 직업대로 살았지, 제 지식대로 살았지 그것이 하나님입니까? 그게 뭐이냐? 하나님이야. 제가 하나님이라.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에 합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아무래도 새벽에 나와 가지고서, 여기 못 나와도 첫날을 만난 이 험악한 세상에 내가 오늘 첫날 발자욱을 떼 놔 가지고 하루를 걸어가는 데는 별별 일이 있을 터이니까 이 일을 당신에게, 날 사랑하는 전능자가 있으니까 그분에게 도와 달라고, 전지자가 있으니까 그분에게 부탁하고 묻지 안하고 어떻게 우리가 걸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 험한 자기의 앞길이요 자기 성패에 큰 것이 있다는 걸 깨닫는 사람은 첫날 첫시간 하나님하고 의논해서 해결짓기 전에는 안심을 못 합니다.
자, 한번 따라합시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이제 그만 익혀요. 절제 절제 절제 막 자꾸 절제 절제 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절제라는 이 뜻을 깨닫고 이래 가지고 ‘자, 이 일 하는 데는? 여기는 어떤 절제가 필요하나?’ 절제라니? 뭣뭣이 필요한데 절제해? 여기 뭣뭣이 필요한지 그걸 알아야 절제를 하지! 그래. 이 일을 성공하는데는, 내가 새벽기도 하나를 성공하는 데는, 내가 설교 하나를 성공하는 데는, 내가 오늘 출근을 제 시간에 지각 안 하고 제 시간에 가는 이거 성공하는데는, 무슨 큰 성공이나 적은 성공이나 가치가 더 있는 거나 덜 있는 거나 그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거게 대한 구비 요소들이 있으니 구비 요소부터 먼저 발견해 가지고 그 구비 요소를 자기가 깨닫고 그 구비 요소를 어떻게 조절 해야되고 조정을 해야 되나? 이래 나가야 우리 앞에 성공이 있지 이거 없이는 성공 못 합니다.
자, 천국가는 구원 성공할라 하는 사람이 첫날 첫시간을 눈 뿌시시 뜨면서 ‘오늘 돈이 어찌 되지?’ 돈 받을 것, ‘그 물건 어찌 팔지?' 첫시간부터 돈으로써 마지막 잠들 때까지 돈으로 생각하는 그게 무슨 구원을 이루겠소? 무슨 구원 이뤄, 이루기를? 그거는 돈의 종이라. 돈의 종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돈을 탐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했습니다.
자기를 생각해 보면 ‘내가 보자. 하루 종일 뭣이 날 지배하고 있었노? 뭣에게 종노릇 했노? 하, 돈 하자 하는 대로 돈 때문에 종노릇 했다. 그러면 돈이 날 구원 할 것이가?’ 보니까 마지막 떠날 때에 돈 그놈이 저를 도와 줄 줄 알지마는서도 마지막 떠날 때는 돈 그놈이 냉정스럽게 싹 끊어 버리니까 ‘하이고 돈아 돈아’ 하지만 돈이 무슨 소용 있어? 안 도와 줘.
이러니까, 이렇게 게을부리지 말고 어짜든지 요새 새벽으로 나와 가지고, 새벽으로 나는 이 설교를 하나님이 주시는데 이 설교를 누구를 보고 주는가 그래 싶어요. 하기는 박사들은 오면은 더 못 듣거든. 또 석사들은 더 못 듣고. 학사들은 더 못 듣고. 대학 공부한 사람들은 더 못 알아 들어. 주일학생이 잘 알아 듣고.
그거 참 이상해.
‘설교를 잘못해 그렇지’ 아니, 설교 잘못해 그런 게 아니라. 주님도 그랬어요. 지혜 있고 통달한 자들은 못 알아 듣고 어린 아이들은 다 알아 듣거든.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새벽기도 나와야 뭘 알지. 알아야 근심도 되고 걱정 되고 욕심도 나지.
몰라 놓으니까 소원될 것도 없고 못 해 봤자 걱정될 것도 없고 심판받을 것도 아무 걱정될 것 없고, 우리 안에 도야지가 잡혀 가 죽을 그걸 모르니까 그저 옆에 흥정하고 있는데도, 흥정하고 있는데도 저는 사료 주니까 좋아서 터불터불거리고 또 작은 놈이 먹을라 하니까 툭 나발대로 뚜드려 내뜨리고 저 지금 잡으러 왔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래 살면 멸망하는 고 시간까지 편하기야 편치마는서도 그것이 뭐이냐? ‘인생이 존귀하지마는서도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과 같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새벽기도 나와야 되겠다는 분들 손 한번 들어봅시다. 나와야 되겠다는 분들. 보자 저 우리 ○ 집사님 손을 들었나 안 들었나? ○ 집사님 손을 들기는 들었는데, 들기는 들었지만 내일 새벽에 나올 용기는 없습니다. 그만치 약합니다. 내일 아침 나오겠어? 몰라 나올까? 못 나오지 싶으다. 한번 나와 봐요.
내일 아침에는 어짜든지 한번 나와서, 이 진리를 어짜든지 배워야, 이 진리 배우면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되면 참된 기쁨과 평안으로 평안해지고 참된 지능이 나오기 때문에 세상 일도 성공이요 하늘나라도 성공이오.
예수 잘 믿으면은 어짠다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어째요? 모든 민족 위에 찌끄러기 된다 했소 머리된다 했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
세상도 성공 영원 무궁도 성공인데 왜 이 일 안 하고, 이 일을 주시려고 주님이 하나님 사람되기까지 하셔 오셔 가지고서 이렇게 하셨는데 우리가 참 마귀 이놈한테 꼬여 가지고 어리석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