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같이 깨끗하게 살자

 

1986. 8. 17. 주일오후

 

본문:로마서 6장 12절∼23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은 죄가 그 죽을 몸의 왕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왕이 돼 가지고 있는 것은 어떻게 그 백성이 왕을 항거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의 옛사람은 죄가 왕노릇을 벌써 하고 있습니다. 죄가 왕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어서 중생된 새사람이 된, 새사람으로 살면 첫째 아담에 속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죽음이 되고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 됩니다.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으로 살면 죄가 왕노릇을 할 수가 없고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으로 살면 죄가 왕노릇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들은 죄가 왕노릇을 하기 때문에 이 왕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종교 창설자들이 그렇게 죄를 벗을라고 애를 썼지마는 결국은 죄의 종이 되고 말고 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이 자기 위한 대속인 것을 깨닫고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자기 것인 것을 확실히 믿는 이 믿음의 사람이 됐을 때에는 둘째 아담의 것이 됩니다. 그러면 죄가 우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다 죽기는 죽을 몸입니다. 죽을 몸인데 죽기 전에 죄가 왕노릇하는 그 왕권 밑에서 심신이 죽는 사람도 있고 왕권을 벗어나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죽을 몸으로 사는 사람은 죽을 몸이 다시 부활해 가지고 영생하게 됩니다.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우리 몸의 욕심 따라 살면 그만 우리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 됩니다. 몸의 욕심 따라 살지 안하고 진리와 성령을 따라 살면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죄가 왕노릇을 못 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우리의 모든 지체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그 도구로 사용하면 죄에게 바치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모든 지체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지체로 행동하게 되면 우리 지체는 죄에게 바친 지체가 돼 버리고 맙니다. 그라다가 즉시 회개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으면 그만 거게서 벗어나서 의의 병기가 되고 둘째 아담에게 속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택자들은 죄의 왕권 밑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힘을 쓰면 둘째 아담에게 속할 수 있고 힘을 안 쓰고 이 고기덩어리 좋아하는 대로 제 마음 좋아하는 대로 살면 첫째 아담에게 속해서 죄의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의 종 되고 또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성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기 욕심과 자기 고기덩어리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지 안하고 그것을 꺾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면 의의 병기도 되고 하나님 종이 됩니다. 또 자기 욕심 고기덩어리가 원하는 그대로만 살게 되면 우리는 죄의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이 자신에게 타일러야 됩니다. 자신을 이거 강제로 뭐 형벌해도 안 되고 고기덩어리를 아무리 형벌해서 밥을 굶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놈이 죄를 지으니까’ 어떤 사람은 죄 지으니까 `이놈 손이 자꾸 죄 지으니까 손을 끊어버려야 되겠다.’ 손을 끊어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성기가 죄를 지으니까 이거 끊어버려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양도천 목사는 거세를 해서 병신이 됐습니다. 그래도 그분이 죄는 없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거 가지고 암만 소용이 없습니다.

없고, 다만 죄를 벗어나는 데에는 자꾸만 타일러야 됩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의 도리를 가지고 타이르고 또 죄의 값이 어떻다는 거, 의의 값이 어떻다는 거, 또 세상은 뭣하는 세상이라는 것, 또 사람이 죽으면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받는 거, 또 영원 무궁세계에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와 하늘나라가 있는 거 이런 것을 자꾸 말해 줘야 됩니다. 자꾸 말해 주면 이제 그 자신이 깨달아 성화가 되고 이 고기덩어리도 성화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을 아끼지 안하고 ‘이 고기덩어리 이놈 죄만 짓는 놈’ 하면서 고기덩어리를 미워하고 고행에 붙이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팔이 죄를 지으니까 팔을 끊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범죄하거든 팔을 끊어버리라, 눈을 빼버리라.” 하는 그 말은 그 범죄하는 것이 끝까지 고치지 안하면 빼버리는 게 낫다 하는 결론적으로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꾸 타일러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껴서 잘 달래서 타일러야 되고, 자기 고기덩어리를 아껴서 잘 타일러야 됩니다.

그러면 새벽기도 나올라 할 때 새벽기도 안 나올라 하면은 그걸 쳐서 고문과 고형을 줘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꾸 달래야 됩니다. ‘네 육체 네가 오늘 아침에 피곤해서 안 가지마는 안 가면 오늘 너는 이 한 시간은 죽는 시간이요 너는 지옥을 마련하고 구원 이루지 못한다’는 것, 또 ‘네가 새벽기도 가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네가 깨닫고 용기나고 의롭게 살아서 영생얻고 네가 고기덩어리 네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되면은 영원한 멸망을 받는 것이니까 어느 게 좋으냐’고 자꾸 밝혀 가면서 타이르면 그것이 잘 듣습니다.

이래서 기독교는 강제의 도가 아니고 전부 타이르는 도요, 또 감화 주는 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쁜 일 하는 걸 형벌 주는 것보다도 그를 감화적으로 도를 전하고 지도해야 되고 또 자꾸 타일러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정에 호주되는 사람이나 또 어머니되는 사람이나 그런 사람들이 옛날 그 과거 동양식 그런 식은 더러워서 버려야 됩니다. 그 식은 ‘웅변은 은이요 무언은 정금이라’ 말 안 하는 게 제일이라 이라니까 동양에 있는 도덕가나 학자는 말 안 하고 ‘음’ 이래 가지고 그저 하루 내 말 안 하고, 결혼했으면 부부 평생을 말 한 세 번 하거나 네 번 하거나 그따위 행세합니다.

그런 거 가지고는 다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동양은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기독교는 그런 거 아닙니다. 그저 호주라면 가족이 듣든지 안 듣든지 하나님 말씀 가지고 자꾸 타일러, 안 들어도 자꾸 말해야 됩니다. 자꾸 ‘이라면 죄가 되고 이라면 의가 된다. 이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면 망한다. 영을 따라서 살면 영생한다. 이라면 하나님의 축복이 온다. 너를 믿고 너를 의지하고 네 힘으로 살라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지기 때문에 네까짓 게 힘이 암만 있어도 하나님의 축복만 못하다. 그러니 결국은 망하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고 뜻을 맞춰서 그분의 축복을 받아야 되지 딴거 가지고 안 된다.’ 자꾸 이래 말을 많이 해야 됩니다. 말을 많이 해야 돼.

말을 많이 하되 쓸데 없는 말은 안 하고 쓸모 있는 말만 자꾸 많이 해야 됩니다.

얼마든지 많이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의 자손은 슬기롭습니다. 슬기롭고 그거는, 의인되고 죄인되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마는 우리가 자꾸 그렇게 함으로써 차차 죄에 대한 그 인식이 확고해지고 의에 대한 인식이 확고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나 자기 몸에게 대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자꾸 타이르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또 설교록도 부지런히 읽고, 재독을 부지런히 듣고, 또 말씀과 들은 설교 말씀을 자꾸 눈감고 새김질 해 보고 그래 가지고 그 말씀과 이 세상 것과 비교해 보면 하나님 말씀이 무한히 탁월한 것을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한참, 우리가 한참 이렇게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생각하고 보면은 세상 거 욕심냈던 것이 미친 짓 했고 어리석은 짓 했고 해서 쭉 돌아섭니다. 그러나 그만 그렇지 안하면 마귀 이놈은 자꾸 우리에게 부절히 계속해서 자꾸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미혹을 주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새김질하지도, 눈감고 생각하지도 안하니까 판판이 그놈한테 떨어질 수밖에 더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재독이 필요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보니까 그분이 좀 살아볼라고 애를 쓰는데 자기 형도 전도사고 자기도 전도사인데 둘이 왔습니다. 왔는데 보니까, 차를 타 가지고 내릴 때도 보니까 귀에 레시바인가 그것이 꼽혀 가지고 있고 또 서로 나한테 만나 가지고 이야기 할 때만 뭣을 요래 딱 꺼서 그렇지 항상 꼽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 말씀 가지고 항상 그 말씀을 듣고 설교 듣고 그저 계속 그라니까 딴거 생각할 여지가 없어. 그러니 그 악령 악성 이놈이 거기 있어봤자 얻어먹을 것 없고 빠짝 마른다 말이오. 그놈은 이 마귀말 듣고 살찌고 죄 먹고 살찌고 이라는데 자꾸 그랄 여가 없으니까 그놈이 마르지 않습니까? 하나 낫으니까 새사람되고 살이 찐다 말이오.

우리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도우시니까 무릇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따라서 과실을 맺으며 항상 청청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재독을 듣든지, 새김질하든지, 뭐 일을 하면서도 항상 하나님 말씀은 늘 듣고 연결하는 그 버릇을 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손으로는 일을 합니다. 지금 몸으로는 쟁기를 가지고 논을 갑니다. 논을 갈면서도 레시바는 귀에다 떡 끼워 가지고 설교는 이래 들으면서 갈고 있습니다.

들으면서 갈아도 잘 갈 수 있습니다. 들으면, 들으면 그 지혜와 총명이 까랑까랑하지, 정신이 까랑까랑하지, 몸이 정기가 있지 이래 놓으니까 쟁기 가는 것도 잘 갑니다. 또 일하다가 손가락 끊기지 않습니다. 그저 다른 거 생각할 때에 그때 어두워져 가지고 끊기지 하나님 말씀 생각하고 자꾸 이래 그래 기도하다가 끊긴 사람이 없습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이 말에는 예수님이 어떻게 죽어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예수님 같이 그말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은 죄를 없애기 위해서 죽었고, 죄를 범하지 안하기 위해서 죽었고, 의를 행하기 위해서 죽었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기 화친하기 위해서 죽었습니다.

또, 살아난 것은 우리를 죄의 몸이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의로운 새사람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그말이오, “예수님같이” 그말이오, 예수님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병기라 말은 전쟁하는 도구를 가리켜서 병기라 그랍니다. 의의 도구. 병기라 말은 군사 병자 그릇 기자, 그러니까 군사에 쓰는 무기로 삼으라 그말입니다. 죄하고 싸우고, 마귀하고 싸우고, 사망하고 싸우고, 자기 욕심하고 싸우고, 자기 주관하고 싸우고, 이 모든 자기 생각하고 싸우고, 왜? 하나님의 뜻대로 할라 하니까 그놈이 방해하니까 싸우는 그런 도구로 삼아라 그말이오.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드리라.

그러면, 이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자기 지체가 의롭게 하여 하나님에게 드려 하나님의 종이 될라고 애를 쓰고 또 자기 자신과 지체를 죄에게 드려서 죄의 종이 되지 안할라고 애를 쓰는 그 일을 우리가 하면 말입니다, 우리가 하면.

우리가 자기 자신과 자기 지체를 의의 병기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릴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나님의 생각대로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까? 또, 죄에 드려서 불의의 병기가 돼 가지고 죄의 종이 될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죄의 종이 되고, 죄의 종이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죄의 종이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되며 하나님의 종이 되는 데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자, 죄의 종이 되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되지요? 제 생각, 제 욕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몸의 욕심, 제 육신의 욕심, 새벽기도 여러분들이 나온다고 손은 들어도 한번도 실행 못 하데요, 보니까. 손 드는 것은 낮으로 들 때에는 삼천 수백 명이 들었지마는 새벽에 나온 사람은 칠팔백밖에 안 됩니다. 이 나머지기는 다 약속해야 안 된다 말이오.

왜 안 됩니까? 몸의 욕심 그놈이 들어서 ‘좀 더 누워자자. 내가 엊저녁에 늦게 누워잤다.’ 또 나는 가고 싶은데 몸의 욕심 그놈이 들어서 남편에게, 남편의 몸의 욕심 그게 들어서 ‘아, 가지 말고 누워자자.’ 또 나는 갈라하는데 그 어린아이 몸의 욕심이 엄마 누워자자 젖 먹고 누워자자 자꾸 요라니까 요리 꼬이고 조리 꼬이고 안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욕심대로 살면 죄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욕심대로 살면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그런데 14절에,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아 하나님의 종 될라고 이렇게 애를 쓰면, 이렇게 힘을 쓰면 14절에,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됩니다. 불택자들은 죄의 주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석가모니 같은 그런 사람이 그렇츰 위대하고 그렇츰 힘을 썼지마는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공자 맹자가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톨스톨이가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뭐 진시왕도 나폴레옹도 그런 사람 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불택자들은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죄의 종에서 벌어나지 못했다 말은 첫째 아담의 자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은 벌써 죄의 종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의 종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둘째 아담의 자손이 돼야 되지.

이러니까,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되는 것은 어찌 되느냐?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의 공로를 설정한 것을 나 위해 설정했다. 그 공로는 내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사죄로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율법을 다 행했다, 하나님과 화친된 자라. 나는 안 했지마는 예수님이 내 대신 행했기 때문에 내가 행한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는 이것은 내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 내것만 주님의 것이요 주님이 대신 행한 거는 내것이라.’ 이러니까 내것 이것을 주님을 내것 삼으니까 내것은 주님의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내 남은 심신 이것을 주님의 것으로 알아 주님에게 바쳐 살면 이것이 둘째 아담의 지체가 됩니다. 둘째 아담의 것이 됩니다. 그러면 죄가 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왜 주관치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요 말이 어렵습니다. 법 아래 있지 안하고 그 말은 하나님의 공심판 그 율법 아래에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심판 율법 아래에는 예수님이 대신 행했기 때문에 그 법에서는 벗어나왔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가 아니고 둘째 아담에게 속한 자입니다.

둘째 아담에게 속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을 했으니 둘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을 죄나, 마귀나, 사망이나, 하나님의 공심판이 와 가지고 건드리지 못합니다.

말 못 해요. 말하면 하나님의 공심판이면 얼마나 두려운 심판입니까? 하나님의 공심판이 말할 때에 ‘야, 거기 좀 섰어.’ `왜 섰어?' `너 좀 심문할 게 있어’ ‘없어' 이라면 하나님의 공심판이 `이놈이 어떤 놈인데?' 하면서 달라들면 `왜 나를 뭣 때문에 하는 것이야?’ ‘너 좀 심판할 게 있다' `나는 심판 받을 게 없어. 나는 심판 받았어. 심판을 한번 받지 두 번 받나? 한번 받아 내가 심판에 통과됐는데 무슨 문제야?’ 이라면 ‘이놈이 무슨 놈인데 이런 권리 가지고 이런 소리 하느냐?’ ‘네가 그러면 하나님의 공심판을 받았나?' `받았다!' `통과했나?’ ‘합격으로 통과했다. 백점으로 통과했다!' `그래? 네가 뭐인데?' `예수님이 내 대신해서 다 받았어. 내가 받은 거라. 이러기 때문에 내것 이것은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대신 받은 것은 내것이야!’ 하면 하나님의 공심판이 그 앞에 꼼짝을 못 합니다. 마귀도 죄도 사망도 꼼짝을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법 아래 있지 안하고” 하는 것은 칫째 아담에게 속해서 하나님의 공심판 아래에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니라” 예수님이 대신 행하신 대속의, 대속해 가지고 우리를 공짜배기로 주신 그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예수님이 내 대신 해 가지고 공으로 줬으니까 공으로 준 공짜배기 아래 있다 그말이오, 공짜배기 아래 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예를 들어서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모르고 짓다가 만일 깨닫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입고 ‘나는 예수님의 공로를 입었으니 나는 죄 없는 자다, 의로운 자다, 하나님과 화친한 자다. 그런데 다만 내 심신은 내 대신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님의 것이고 내 심신은 아니다.’ 자기 심신은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은 자기 것이라고 딱 작정하면 그때부터는 죄와 사망이나 마귀가 침노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그라니 ‘아, 뭐 죄짓고 나서 또 그라면 되지 않느냐?’ 이라면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그걸 알고 난 다음에 계획적으로 그와같이 하니까 그 죄는 무슨 죄입니까? 그 죄는 무슨 죄지요? 고범죄.

따라합시다.

고범죄! 고범죄!

고범죄는 알고 짓는 죄가 고범죄입니다. ‘요렇게만 대속만 입으면 죄짓고는 그만 죄가 없어지고 이러니까 요거는 죄를 아무래도 짓고 나서 그라면 안 되느냐?’ 요렇게 생각하는 요거는 알고 범하는 고범죄기 때문에 고범죄는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고범죄는 어떻게 합니까, 사함 못 받으면? 고범죄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저 ○선생 한번 대답해 봐. 고범죄는 어떻게 해야되지? 고범죄는 회개를 해야 돼.

고해 가지고는 사함 못 받아. 회개를 해야 돼. 고범죄는, 고범죄는 고쳐야 된다 말이오. 고범죄는 고쳐야 돼. 고치기 전에는 그 죄가 용서 안 돼요.

이러니까, 법 아래 있으면 죄가 왕노릇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면 죄가 왕노릇하지 못한다는 요 도리를 굳게 잡으십시오. 그저 아무나따나 예수 믿으면 되는 게 아니라 예수 믿는 것은 논리의 도입니다. 논리가 정연해야 돼. 논리로 따져야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그저 아무나따나 중얼중얼 기도한다고 하나님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얼중얼 기도하는 거 하나님이 싫어하시요. 하나님은 성경 말씀 가지고 따지는 걸 좋아하십니다. ‘자, 성경 말씀에 이렇고 이러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따져서 ‘자, 하나님 말씀해 보십시오. 이러면 이거 이 기도는 들어야 되지 않습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이래 따질 때에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이래 세웁니다. 뭐 그래도 ‘안 돼.’ 이라다가 딱 대기 따지면 `그래 그러면 네 말이 맞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따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따지는 것을 기뻐해요.

나도 따지는 걸 좋아합니다. 따지는 걸 좋아해서, 우리 ○○○조사님은 그때 여기 설교를 한번 시키는데 여게서 라오디게아 교회 설교를 하면서 그때 말하기를 ‘우리는 따져야 된다’ 해. `따져야 된다.' 이 따지는 인간을, 천 명 만 명을 만나도 따지는 인간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따져야 된다 하는 그말에 어떻게 내가 그만 반해놨는지 혹해서 ‘그러면 너 전도사로 보내겠다.’ 온 총공회원들이 다 반대하는 걸 전도사로 세워 가지고 그래 저 ○○교회 전도사로 보냈는데 내가 지금 동곳을 빼게 됐습니다.

이거 보냈는데 이거 뭐 될까 해도 어북 세월은 지나갔는데 아무 효력이 없어.

그래 내가 있다가 ‘너 때문에 내가 이제 모든 총공회원 앞에 머리 숙이게 됐다.

너 나는 따진다고 이래 그 소리를 했는데 네가 말뿐이로구나. 네가 정말로 따지나? 매일 따져봐라. 교회가 벌컥벌컥 안 붇나? 네가 따지기를 안하는구나.’ 내가 이래 가지고 아레 좀 만나 가지고 야단을 쳤어.

우리는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우리의 법전입니다. 요 법전 가지고 무슨 일 해도 요 법전으로 따져보고 ‘아, 든든하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너 그거 왜 그랬어?’ 성경 딱 대면서 ‘성경에 당신이 이렇게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이 성경대로 해 보십시오.’ 좋아하십니다. 알겠습니까? 나는 아레 말 들었어. 변판원 전도사님이 거창에서 순교했는데 제일 멋진 순교한 사람입니다. 그랬는데 그 말 들으니까 처음에 인민군한테 잡혔더래요. 인민군한테 잡혔는데, 잡혀 가지고 인민군이 있다가 ‘너 십이 사도 외워봐라. 십이 사도 이름을 말해봐라.’ 십이 사도 이름을 다 못 댔거든. 그래 발길로 탁탁 차더니마는 ‘이놈의 새끼 십이 사도 이름도 모르는 놈의 새끼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발질로 차서 쫓아보냈다 말이오. 그래 나왔어. 나오고 난 다음에 그때부터 십이 사도 이름 외우고, 또 십이 지파 또 이름 외우고, 또 대선지 소선지 이름 외우고 이래 다 이랬는데 그 다음에 저게 구덤터재 또 잡혀갔다 말이오. 잡혀가 가지고 하나 하나 물으니까 딱 말하니까 말해, 칼로 찌르며 ‘이놈의 새끼 뭐한다고 그런 거 외우고 있노?’ 또 하면 또 딱딱 외우니까 ‘뭐한다고 외우고 있노?’ 또 `이 말씀 외우나, 이 말씀 믿나?' `믿습니다' 또 외우고.

일곱 번인가 얼마인가 칼로 찔렀는데 그래도 자꾸 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자꾸 들이대니까 나중에 ‘이놈 뱃 속에는 뭐이 있는고 뭐이 들었는갑다. 보자.’ 하면서 뱃구멍을 이만치 도렸어. 이만치 도려 가지고 그래 죽으니까 내버리고 갔습니다. 그 같이 잡혀 간 사람이 옆에서 안 죽고 어째 묶여 가지고, 같이 묶여 가지고 땅에다 총을 놔 죽였는데 고거 안 죽었어. 안 맞았어. 그래 가지고 시체 속에 엎드려 있다가 그 소식을 뒤에 전달해서 우리가 그 뒤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따져야,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 말씀을 얼마나 익혀야 되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그 장생골 가 가지고 하나 작정한 거 그것입니다. 주님이 “기록되었으되” 한번도 당신이 말하지 안하고 “기록되었으되” 하는, 나는 지금 다른 사람하고 말할 때에 “기록되었으되” 말은 안 해도 “기록되었으되” 성경에 여게 이렇게 기록했다 하고서 말을 해야 될 터인데 성경에 무식해서 다 외운 거 다 잊어버렸어. 잊어버려 놓으니까 이거 새로 외워야 되겠어요.

이래서, 무슨 말을 하든지, 누구를 대하든지, 무슨 일이든지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이러니까 이래 한다’ 이래야 참 튼튼하고 안심이 되겠는데 그걸 할라고 요새 지금 성경 읽는다고 자꾸 해도 이 성경 읽을 여가가 없어. 왜? 몇 절 읽으면 그만 거게 뜻이 너무 재미 있고 뭐 하니까 그 한 절 읽고 그 뜻 새기다 보면 두 시간 세 시간 가 버리고 또 한 절 읽고 난 다음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기가 막히고 또 재미가 있으니까 고만 생각하다 보면 세 시간도 가고 그만 네 시간도 가고 가 버리고 나니까 양산동 가봐야 성경 한 장도 못 읽어요.

지금 우리는 성경은 참 우리에게 보배입니다. 성경은 말이요 우리에게 자, 이 성경은 우리의 길이야. 성경은 우리 눈의 길이오. 눈이 요리 갈까요 저리 갈까요? 혀가 요리 갈까요, 조리 갈까요? 내 마음이 요리 갈까요? 내 마음이 지금 어떻게 행해야 되느냐, 어떻게 움직여야 되느냐 하는 것을 똑 바로 가르쳐 주는 것이 신구약 성경이라.

이러니까 실은 신구약 성경 없으면 우리는 소경이요, 우리는 벙어리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우리 눈이요, 귀요, 코요, 입이요, 우리의 모든 수족이요, 우리의 모든 권능이요, 우리의 의요,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런즉” 15절에,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우리는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아래에 있으니까 죄짓고 또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죄 짓고 회개하고 이라면 되니까 죄 암만 지어도 되겠다’ 그렇게 할 수 있으리요.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죄를 지을 수 없는 거라. 잘못하면 이렇게 은혜 아래 있으니까 뭐 죄 암만 지어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 자멸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말입니다.

“너희 자신을,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내가 종으로 드려 가지고 다른 사람, 어떤 사람에게 순종하든지 내 순종을 받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거 아닙니까? 내가 죄가 들어서 죄 시키는 대로 하면 내가 죄의 종 되는 거 아닙니까? 별수가 없는 거라 그말이오.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죄 시키는 대로 해서 사망에 이르고, 죄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뭐입니까? 자, 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까? 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누구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지요? 누구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까? 자기 욕심, 자기 마음 그놈 시키는 대로 하는 거.

번연히 망할 줄 알지마는, 망할 줄 알면서도 죄 그놈이 시키면 이제까지 죄 짓던 욕심, ‘야, 그렇지마는 한 잔 먹어보자.’ `아, 그렇지만 오늘 놀러 한번 가 보자.’ ‘아, 그렇지만 테레비 한번 봐 보자.' `그렇지만 저 기생집에 한번 가보자’ ‘그렇지만 춤추러 한번 가보자' `그렇지마는 저 간부한테 한번 또 재미가 있으니 가보자’ 그거 다 하고 싶어서 욕심이 하는 것이라 말이요, 욕심이.

그래 가지고 그것으로써 망합니다.

“죄의 종이 되어서 사망에 이르고,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순종은 하나님에게 순종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의 이 뜻에 순종하면은 의에 이른다. 하나님의 진리 순종에 종노릇하면은 의에 이른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는 본래 죄의 종이더니” 우리가 과거에 죄의 종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의 종이라. 죄가 하는 대로 하고 죄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죄가 가자 하는 대로 가고 오자 하는 대로 왔습니다. 아무리 이거는 안 된다 싶어도 죄 그놈이 ‘야, 이말 해라.’ 하면 죄 시키는 대로 말했지, 죄 시키는 대로 날뛰었지, 죄 시키는 대로 걸음 걷지, 죄 시키는 대로 행동했지, 과거에 우리가 그렇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다 그렇던 사람이라. 이거 우리 몸에 꽉 배 가지고 있지 안해요? 이 몸에 배 가지고 있는 거, 몸에 배 가지고 있는 놈을 탈색할라 하면 쉽지 안해요.

내가 이번에 거창 집회 가서도, 집회 가서도 사람의 눈이라 하는 건 귀한 것입니다. 영안이 되면 밝히 띄어져요. 그 집회 와 가지고, 집회 와 가지고 모처럼 먼데 있다가 떡 만나 놓으니까, 그 집회 와 가지고 죄짓는 그런 인간들이라.

죄짓고 또 집회 와서 참석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은혜 한내끼도 받지도 않고 신세가는 그런 인간들이 있더라 그말이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본을, 성경을 표본으로 한 이 표본을 마음으로 순종했다 말이오. 성경 표본, 뭐 인간 표본이 아니고 성경에 말한 그 본떼 보이는, 성경이 말해서 본을 보이는 그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그러니까, 자꾸 순종하니까 죄 그놈이 내놓습니다. 자꾸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죄 그까짓 놈이 못 견뎌요. 게워 내트려요.

요나를 고래가 삼켰지마는, 요나를 고래가 삼켜 가지고, 꿀떡 삼켜 가지고 조금 있으면 녹아버립니다. 녹을라 하는데 그 속에 자꾸 또굴또굴 거기서 녹지 않는다 말이오. 거기서 ‘하나님이여, 내가 아무리 고기 뱃 속에 들었고 물 수십 길 밑에 들었지마는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이 내게 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이 물이 이 고기가 나를 삼키지 못합니다.’ 자꾸 하나님 믿는 믿음이 있으니까 고래 제까짓 놈이 견딜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왝 토해 버렸다 말이오. 토해 버리니까 얼마나 세게 토해 버렸는지 저 육지에 훅 떨어져 버렸어. 육지에 떨어지면 그거 또 털퍽 해 죽을 건데 죽지도 안하고 그래 가지고 저 니느웨 성에 가서 전도하지 안 했습니까? 이와같이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만 되면은 사망도 죄도 마귀도 아무도 삼키지 못합니다. 근방에 오지도 못해요. 우리 피난처라. 우리 피난처는 뭐입니까? 우리 피난처가 뭐이요? 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몇 개요? 세 개. 피, 성령, 진리. 우리 피난처라. 이 셋만 같이하면 천인 만인이 네 곁에도 엎드러져도 이 셋과 하나 되어 있는 자는 이 재앙이 네 근방에 오지 못한다 했어.

그러니까, 왜정말년에 그 신사참배에 대해서 교회를 막 쓸었어요. 일본 교회는 확 다 삼켜버리고 한국 교회는 몇 만 남고 다 삼켰습니다. 이래도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함께 하는 사람은 이 죄와 마귀와 사망 그런 것들이 다, 일본 권세가 꼼짝도 못하고 해하지도 못하고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신사참배 반대하고 예수 믿는 거 주장하고 저거들이 암만 해봤자 그까짓 거 아주 띠끌같이 생각하고 이렇게 지내도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했다 말이오. 6 5 때도 그랬어요.

앞으로 인제 천하가 불이 타고 우주가 다 불탈 때에 그때도 피와 성령과 진리와 셋이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 불이 근방에 가지를 못합니다. 이라니까 어디로 갑니까?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갑니까? 어디로 가? ○○○선생 한번 말해 봐.

어디로 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피난갑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다 옮겨. 안 옮기고 뭐 불 가운데 있으면 탑니까? 안 타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 있었지만 타지 안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있었지만 삼키지지 안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피와 성령과 진리와 그 사람들도 하나였었소. 오늘도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인 사람은 세상에 어떤 혹독한 공산주의라도 그 타지 안해. 어떻게 공산주의의 맹수 같은 그런 독종 속에 들어가도 삼켜지지 안해. 이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보여 준 것입니다.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의의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그 좋지 않습니까? 죄에게 종돼서 죄의 종 되는 것보다도 의에게 드려서 의에 이르는 의로운, 의로운 눈이 되고, 의로운 귀가 되고, 의로운 코가 되고, 의로운 입이 되고, 의로운 손이 되고, 의로운 발이 되고, 의로운 몸뚱이가 되고 이러니까 그 속에서 나오는 건 의로운 행동밖에 안 나와. 전부 하는 행동이 거기는 의밖에 안 나와. 말도 하면 의만 나오고, 행동만 해놔도 그것도 전부 의만 만들어 놓고 의 외에 딴게 없어.

“의인은 살리라. 의인은 살리라.”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라” 거게는 사망도, 배고픈 것도, 시기도, 질투도, 미움도, 죽음도, 병드는 것도, 곡하는 것도, 아픈 것도 없이 참 좋습니다. 이별도 없이 영원히 잘 살 수 있어요. 좋은 세계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과거에는 우리가 죄의 종이 됐을 때에는 의 그까짓 거야 뭐, 의 그까짓 거는 한닢푼치도 안 되는 것으로 알아서 의를 말해도 하나님이 예수님의 대속을 말해도 ‘그까짓 거’ 이랬지마는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되고 나면은 뭣을 그까짓 거 합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되면, 의에 속하면, 의에 속하면 뭣을 그까짓 거 시뻐 봅니까? 죄를 시뻐 봐. 천하 죄 뭉텅이 그까짓 거는 볼 것도 없어. 닥치지 못해.

이제 이렇게 죄에 대해서 멸시하고 천대하고 그까짓 거 한닢푼치도 안 여기고 죄가 뭐 천하 사람이 다 그 죄에게 삼키워지고 그 죄에게 종이 되고 천하 인간을 그 죄가 다 심켰다 할지라도, 그 사망이 삼켰다 할지라도, 그 환난이 삼켰다 할지라도 의의 사람은 그런 거는 눈도 깜짝하지 안하고 그까짓 거 멸시해요, 무시하고. 거게 대해서는 자유해요.

“너희가 그때에는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이라” 그러면 죄대로, 죄 좋아하는 대로, 욕심 좋아하는 대로, 고기덩어리 좋아하는 대로, 저 좋아하는 대로 암만 해봤자 결국은 사망 아닙니까? 여러분들 이 세상에 날마다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날마다 죽는 사람 많는데 그 죽는 사람이 왜 죽느냐? 저 하고 싶은 대로 한 값으로 다 죽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안 죽느냐?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니까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안할 것으로 갈아입어야 될 것이고, 약한 것이 전능을 갈아입어야 되겠고,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을 갈아 입어야 되겠고” 이거는 헌것을 새로 거룩한 성화해 가지고 변화시킬라고 그래 벗는 것입니다.

육체를 벗어도 두 종류야. 어떤 사람은 지옥 가기 위해서 벗는 사람, 어떤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시공을 초월한 신령한 몸으로 이제 변화받아서 성화받아 갈아입기 위해서 벗는 사람이라.

“그러나 이제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하나님의 은사는 뭐입니까? “법 아래 있다 은혜 아래 있다” 했는데 하나님의 은사는 뭐이지요? ○○○집사님 한번 대답해 봐. 하나님의 은사는 뭐이지?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지 뭐. 영생은 영생인데 은사가 뭐인데 은사는 영생이라, 은사가 영생이라? 은사가 영생된다 그말이오. 은사가 영생 아니라. 그래. 이제 법 아래 있지 안하고 은혜 아래 있다. 은혜 아래 있다 말은 예수님의 대속해 주신 대신해 주신 그것을 입는 그것이 은혜요, 그것이 은사입니다. 예수님이 대속해서 우리에게 공짜배기로 주는 그것은 다 영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따라합시다.

죄의 값은! 망하고 죽는 것이요! 은혜는! 영생과 행복이니라! 죄의 값은 망하고 죽는 것이요! 은혜는 영생과 행복이니라!

우리가 십계명에서 하나님보다 무엇이든지 더 두려워하고, 더 높이고, 크게 생각하고, 더 사랑하고, 더 사모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에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뭐 사람이나, 짐승이나, 돈이나, 사업이나, 자신이나, 어떤 거라도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이 있으면 망하고 죽고, 알겠습니까? 망하고 죽고, 땅위에 천상천하에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크게 귀중히 여겨 대접하면 영생과 행복입니다. 요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땅위에 어떤 피조물이라도 그것에게 내 생사 화복이 달린 줄로 아는 자는 우상 섬기는 자니 망하고 영원히 죽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그것이 생명과 행복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금생과 내세에 다 생명과 축복을 받습니다. 이러니까, 죄 지으면 망하고 죽고 의는 생명과 평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계명, 하나님이 자신에게 대해서나, 자연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해서나, 국가에 대해서나, 시대에 대해서나, 어떤 것에 대해서라도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을 가지고 당신의 뜻이 있어서 당신 뜻대로 모든 것을 운영하고 계획하는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우리는 거게 따라가면서 구원 이룰 것뿐이지 하나님이 하시는 거기, 비오면 비 피하고 농사짓고, 또 이제 가물어서 비 안 주면 물을 져다 부어가며 또 농사짓고, 하나님 하시는 데 따라서 우리가 살 일이지 하나님 하시는 일을 불만 불평하는 그것은 망하고 죽고 하나님 하시는 것을 당신이 하시는 그 역사에 우리는 따라서 움직여 살아야 되겠다 하는 자는 영생하고 축복받고, 또 넷째로 주일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안하고 주일날은 전부 다 쉬고 자기 몸도 깨끗하게, 의복도 깨끗하게, 정신도 깨끗하게 해 가지고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 와 가지고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기까지 해 가지고 대속해 주신 이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진정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겨 마음에 감사하고 기도하고 또 주님이 말씀을 사람을 통해서 가르쳐 주실 때에 그 말씀은 다 하나님 섬기는 말씀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씀이니까 ‘이 말씀 잘 들어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사람 되겠다’ 하고 요렇게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날은 집에 돌아가서도 그 말씀을 새김질하고 그 말씀 모르는 사람들에게 돌아다니면서 새김질해서 가르쳐 주고 하루 종일 그렇게 한 사람은 주일을 잘 지킨 사람이니까 네가 거룩한 사람이 되고 복을 받고, 그날 주일날 일하고 돌아다니고 ‘오늘은 주일날이지마는 직장에 가야 되겠다’ ‘오늘 나는 주일이지마는 물건은 팔아야 되겠다' ‘오늘은 주일날이지마는 서로 계약을 맺어야 되겠다’ `오늘은 주일날이지마는 시험을 쳐야 되겠다’ ‘오늘은 주일날이지마는 공부를 해야 되겠다' 하는 자는 주일을 어기는 자이니까 그다음에 결말은 뭐입니까? 뭐이요? 하나? 망하고. 또? 죽고. 망하고 죽고 하는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걸 단단히 기억을 해요.

또, 다섯째로는 네 부모에게 불효하면 망하고 죽고, 네 부모에게 효성하면 영생하고 축복받고,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라.

또, 네가 사람을 사랑하고 위하고 봉사하면 영생하고 축복받고, 네가 사람을 미워하고 해치는 그런 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은 그것은 망하고 죽고 이거 틀림이 없어요. 천 인이나 만 인이나 그렇습니다. 이게 계명이라.

네가 남의 남자나 남의 여자나 탐을 내고 음욕을 품으면, 음행을 하면 망하고 죽고, 네가 이성면에 깨끗하게 살면 영생하고 축복받고, 남자와 여자가 깨끗하게 칠계명을 지켜서 음행하지 말라 하는 그 계명을 지켜 음행을 안 하고 깨끗하게 지키면 축복과 영생하고, 음행하면 망하고 죽고, 음행은 그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 음행을 못 해도 음욕을 품고 아주 마음에 음욕이 불일듯 일어나면서 서로 좋아하고 사귀고 자꾸 이라는 건 전부 음행이기 때문에 그거는 망하고 죽고, 또, 팔계명에 네가 남의 것을 도적질하지 안하고 네가 정직하게 살면 생명과 축복을 받고 네가 남의 것을 도적질하면은 망하고 죽는다. 도적질하면 망하고 죽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주님을 위해서 도적질할 때가 닥쳤는데 도적질 안 하고 정직하게 살면 영생하고 축복받고, 또, 네가 이웃을 해할라고 거짓말, 어떻게 거짓말을 잘하는지. 나는 거짓말은 내가, 내 머리를, 여러분들이 내 머리 세뇌할라 해야 못 해. 내 머리를 씻을라 해야 못 씻어. 내 머리는 고게 딱 판박이 박혀 가지고 있어요. ‘남자보다 여자가 거짓말 많이 잘한다. 여자들이 거짓말 잘한다.’ 이거 여반은 많은데 여반들이 듣기 싫지마는 여자들이 거짓말 잘해. 감쪽같이 거짓말합니다. 여자들 거짓말 잘해요.

남자보다 더 잘해요. 남자는 거짓말을 하되 여자만치는 못해. 거짓말하는 자는 망하고 죽고 정직하게 괴로워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말만 바른 말만 하는 사람은 영생과 축복받고 이게 성경이라, 성경.

내가 점심 먹으면서도 어떤 사람에게 말했어, 그 거짓말에 대해서. 내가 언제 신문에 보니까 어떤 학생이 그 자기 목사님이 지금 원수가 잡을라고 애를 쓰고 찾아 다니는데 그 목사님이 있는 곳을 그 학생은 안다 그말이오. 아는데 그 학생을 붙들어 가지고 ‘네가 말해라’ 이라니까, 모른다 하면 될 터인데 모른다 소리도 못 하겠고 가르쳐 주도 못하겠고 이러니까 말하라 고문하니까 내가 아는데 모른다 소리도 못 하고, 거짓말이 되기 때문에 못 하고, 가리켜 줘서는 안 되겠고 이러니까 내가 당신 손에 죽었으면 죽었지 내가 거짓말 할 수도 없고 가르쳐 줄 수도 없으니까 그 자리에서 죽었어. 그 신문에 나왔읍디다, 신문에.

지금부터 한 십 몇 년 됐어.

이런데, 요새는 거짓말을 뭐 예사롭게 거짓말 합니다.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돼야 ‘내가 거짓말 안 하겠다. 죽어도 거짓말 안 하겠다.’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되면 자기 행위가 깨끗해집니다. 왜 깨끗해집니까? 거짓말 안 할라하니까 금방 거짓말해야 될 그 일을 하고는 거짓말 안 하면 안 될 거고 이라니까 거짓말을 안 할라 하니 행위가 자연히 깨끗해집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망하고 죽고, 거짓말 안 하고 옳은 말 참된 진실한 말만 하는 사람은 영생과 축복입니다.

이웃 것을 이웃의 무슨 물건이나, 무슨 남종이나, 여종이나, 아내나, 소나, 나귀나, 무릇 무엇이든지 이웃 것을 탐을 내는 사람은 망하고 죽고 이웃 것을 탐내지 안하고, 그것은 저거 것이고 이거는 내것이니까 그 사람들은 그거 가지고 잘 살고 나는 이거 가지고 잘 살고, 이래서 남의 잘사는 것을 보고서 축복을 하고 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니까 축복받아서 영생하고 잘 살고, 뭐 성경에 환하게 했기 때문에 망하고 흥하는 것이 환하지 않습니까? 따라합시다.

망하고! 죽는 것과! 흥하고! 영생하는 것은! 환하게 드러나 있다!

자, 망하고 죽는 것을 이제 환하게 아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망하고 죽는 행동을 환하이 아는 손 들어 봅시다. 왜 여기는 안 드노? 망하고 죽는 것을 환하이 아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환하이 아는 사람? 똑똑히 아는 손들어, 똑똑히 아는 사람? 또 그라면 망하고 또 흥하고 영생과 축복 받는 것을, 영생과 축복받는 것을 환하게 아는 사람 한번 손 들어 봅시다, 환하게 아는 사람. 환하게 알고.

자, 이제 됐어. 망하고 흥하는 거 환하게 아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요. 망하고 흥하는 거 환하게 아는 사람. 망하고 흥하는 것을 환하이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또 죽고 영생하는 것을 환하이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이제 핑계 못 해. 인제 핑계 못 해요.

“너희들이 핑계치 못할지니라” 다 알았기 때문에 핑계 못 해. 이전 알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형을 줘도 적게 줬다면 알고 난 다음에 이제 행하는 것은 형벌이 더 커. ○○○권사님 이거 들으니까 어때요? 마음에 시원합니까, 어깨가 묵끈 눌립니까? 어째요? 어깨가 눌려? 어깨가 눌려? 가뿐 안 하고? 권사님들이 어깨가 눌린다 하면 우리는 어짜라고? 참.

자, 이제 오늘부터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지어도 이제 회개하면 된다 했으니까, 따라합시다.

네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어질 것이요! 네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으리라! 무시하고 거역하고! 배반하면! 칼에 삼키워 망한다!

성경이 다 이거 말한 거라. 어짜든지, 내가 밤에 보니까, 내가 집회를 하는데 전부 이 사람들이 똥구덩이 속에 다 빠져 가지고 있어. 똥구덩이 속에 빠져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집회 인도를 하는데 그 집회 인도를 나도 똥구덩이 속에 들어갈 거 아니라? 똥구덩이 속에 막 이래 둥둥 걷고 들어가 가지고 한참 모두 설교하고 보니까 전부 몸이고 뭐고 똥구덩이라, 똥덩어리라.

이래서, 나와 가지고 ‘이 꾸렁내나고 이 추접한 거 이거 어찌 되느냐?’ 하니까 누가 한 분 오더니만 ‘가자 내가 씻어 줄께’ 그 옆에 가니까, 물이 똑 요만밖에 안 돼요. 찰찰찰찰 요런데 밑에서 뭐 솟아올라. ‘여게 드러누워서 구불라라’ 요리 구불고 요리 구부니까 나중에 보니까 옷도 하야이 씻기고 전부 깨끗하게 씻겨버렸어. 그래 그걸 보고 ‘이거 하나님께서 오늘 설교 아마 이 말씀 하라고 이라는가보다.’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가 이제는 뭐 사업이야 뭐 실패가 되든지 성공이 되든지, 가정이야 환난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죽든지 살든지 이 모든 것보다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어짜든지 이제 죄라하는 건 다 완성히 청산하고 깨끗하게 한번 살아봅시다. 어짜든지 깨끗하게 해 가지고 정금같이 깨끗하게 한번 살아봅시다.

자, 정금같이 한번 깨끗하게 한번 살아볼 사람 손 들어봐요! 깨끗하게 살 사람? 새로 한번 더. 자, 정금같이 깨끗하게 성결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손 한번 들어 봐요! 이제 좀 됐어. 새로 한번 소리하며 해 봐. 자, 깨끗하게 살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요!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깨끗하게 깨끗하게!! 우리가 요거 소원이라.

이제는 이라면 뭐 복이 꾸역꾸역 들어와요. 우리만 복받는가? 우리 복받으면 우리 때문에 모든 이웃 사람이 다 같이 복받아요. 다 복 받아요. 어짜든지 죄 이놈이 나 망치고 다른 사람들도 다 망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죄를 안 짓고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죄를 안 지으면 고통스러워도 죄를 안 짓는 고개만 넘으면 참 평안합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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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 절제는 성공자본/ 고린도전서 9장 25절/ 880131주새 선지자 2015.12.17
1393 절제는 성공 자본/ 고린도전서 9장 25절-27절/ 1988. 1. 27.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2.17
1392 절제는 성공자본/ 고린도전서 9장 25절-27절/ 1988년 3공과 김반석 2015.12.18
» 정금같이 깨끗하게 살자/ 로마서 6장 12절-23절/ 860817주후 김반석 2015.12.18
1390 정리하고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18장 1절-24절/ 810107수야 김반석 2015.12.18
1389 정상적인 신앙생활/ 베드로후서 1장 12절-21절/ 880212금새 김반석 2015.12.18
1388 정실을 떠나라/ 창세기 12장 1절-3절/ 810121수새 김반석 2015.12.18
1387 정욕의 기도와 바른기도/ 야고보서 4장 1절-5절/ 810319목새 김반석 2015.12.18
1386 정직한 길/ 이사야 26장 1절-7절/ 840709월새 김반석 2015.12.18
1385 정치와 종교/ 고린도전서 1장 20절-21절/ 871211 지권찰회 김반석 2015.12.18
1384 정치참여 단속/ 베드로전서 3장 10절-12절/ 871218 지권찰회 김반석 2015.12.18
1383 정한대로 기쁨으로 드려라/ 고린도후서 9장 7절-15절/ 810204수야 김반석 2015.12.18
1382 정확무오의 증거/ 베드로후서 1장 1절/ 840329목새 김반석 2015.12.18
1381 정확한 성경/ 이사야 1장 18절-20절/ 880104교역자회 김반석 2015.12.18
1380 제1회 공의회회의록 김반석 2015.12.18
1379 제2회 공의회회의록 김반석 2015.12.18
1378 제3회 공의회회의록 김반석 2015.12.18
1377 제4회 공의회회의록 김반석 201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