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절제

 

1986. 8. 30. 토새벽

 

본문:고린도전서 9장 19절∼27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요것을 잘 깨달으십시오. 우리는 자유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자유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유합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완전히 자유를 우리가 박탈당해서 하나님 한 분에게는 우리가 자유가 없고 절대 복종자요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다 자유합니다.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모든 사람의 종으로 사는데, 모든 사람을 섬기고, 모든 사람을 따라서 양보하고, 또 모든 사람을 섬겨 순종하고, 모든 사람을 높이고, 모든 사람을 위하는 이 사람으로 산다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모순될 건가? 얼마나 마찰될 건가? 사람은 자유하면 자유하는 것으로 치우쳐서 일방적이 되고 또 사람을 존중히 여겨서 종되면 그만 일방적으로 종되고 맙니다. 여게는, 자유하였으나 또 모든 사람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20절에 “유대인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하였고” 그러면 유대인들과, 율법 없는 사람과 율법 있는 사람, 또 약한 사람, 네 가지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는 빠짐이 없이 다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네 가지 사람.

유대인, 또 율법 있는 사람, 율법 없는 사람, 약한 사람 다 들어갔는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살 때에 모든 사람의 동무가 되었고,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었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이러니까, 이렇게 사는데, 이것이 세상에서는 말하기를 팔방미인이라, 말하자면 창기라, 이 사람도 좋아하고 저 사람도 좋아하고. 이래 창기로 사는데 속에 절대 정절을 가집니다. 이것이 심히 모순됩니다.

그런데 그래 가지고 살면서 자유하는데, 종노릇하고 또 모든 사람들로 더불어 다 같은 동류의 사람이 돼 가지고 사는데, 그러면 그 생애는 엉망진창의 생애인데, 그 생애는 엉망진창의 생애인데, 그뭐 말할 수 없을 참 아주 창기 생애요 그는 만신창의 생애인데 그 결과는 어떤 결과를 맺느냐? “복음에 참여하는 결과를 맺기 위해서 했다” 그 결과는 복음에 참여합니다.

복음에 참여한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복음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을 가리켜서 복음이라고 하는데 이 셋의, 셋으로 된, 이 셋의 하나에게도 모순되지 안하고 이 셋에게 정죄받지 안하고 이 셋과 하나도 배치되지 안하는 그것이라야 복음 속에 들어갈 수 있는데 자기의 이 생애한 결과는 복음 속에 들어가기를 목적으로 하고 이와 같이 한다.

그러면 바울의 그 생애가 얼마나 참 그가 외유내강의 생애요, 또 그 결과에 완전의 생애, 겉은 물씬물씬하고 속은 절대 자유하는,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자유하지 못하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종되지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자유하는 내강을 가졌고, 또 결과는 어떤 결과를 맺느냐? 그리스도의 심판은 복음으로 심판하는데 그리스도의 심판에 하나도 정죄받지 안하고 완전이라 인정받는 복음 안에 드는 이 결과를 맺기 위해서 살았다, 그러면 우리가 여게서 그 생애가 얼마나 어려우며 그 생애를 할라고 할 때에 얼마나 힘드는가? 우리가 그렇게 살라고 하면 여게서 참 많은 지혜를 얻고 권능을 얻어서 이 껍데기는 보면 절대 모순 마찰인데, 모순 마찰 대립인데 그 꺼풀을 뚫고 들어가면 절대 자유요 아무 마찰 없고 서로 한 몸, 한 사람같이 되어져서 사는 참된 그 신앙 세계, 영감 세계, 진리 세계, 모든 존재들은 다 진정 중심에는 자유를 원하는데 자유를 원하는 그 자유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라는데 바울은 이렇게 참 외유내강의, 천태만상의 사람들을 다 뜻 맞춰서 하나로 이렇게 사나 그의 목표는 어데 있느냐? 그러면 그래 가지고 그라는 그 결과가 어데 있느냐? 복음 안에 들어가는 결과라. 이것이 그의 목표요 표준이요 그의 기준이었습니다.

또 그가 이 경주를 하는데, 경주하는데 경주하는 그의 목표, 그의 표준, 그의 기준은 어떤 것인가? 이등 삼등이 아니고 모든 사람을 다 이기는, 모든 사건을 다 이기는, 세상에서 살아갈라고 하면은 천 종류 만 종류에 그 모든 실력 대결이 있고 또 대내 전투, 대외 전투 그 모든 그 전투의 생활인데, 그렇게 많은 대적들이 있는데 사울같이 백분지 일을 이겨 놓고, 백분지 구십을 이겨 놓고, 백분지 구십구를 이겨 놓고 이겼다 하는 그런 바울의 전투 승리 표준이 아니고, 승리의 기준이 아니고 완전히 다 이겨서,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이겨야 이기는 것으로 그렇게 그는 승리의 기준을 삼았습니다. 승리의 표준을 삼았습니다.

또 그가 싸우기를 어떻게 싸웠느냐? “허공을 치는 거와 같이 그렇게 싸우지 안했다” 그저 뭐 싸운다는 형상만 가지고 이렇게 대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공연히 대적과 마주치지를 못하고 대적을 정복하지 못하고, 이렇게 싸우는 형식이나, 또 무슨 제도나, 그런 무슨 시설이나, 그런 부분적인 어떻게 이기는 그런 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바울은 전투하지를 아니했고, “자기를 쳐서 복종을 시켜” 자기의 그 심신의 모든 자유가 있습니다. 마음도 자유가 있고 몸도 자유가 있고, 마음도 욕심이 있고 몸도 욕심이 있고, 마음도 힘이 있고 몸도 힘이 있는데, 있으니까 힘있는 대로는 저희들이 다 제 힘대로 해 볼라고 하고, 또 ‘네 힘하고 내 힘하고 둘이 합작하자’ 하는 것이 악령 악성 악습이요, 또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합작하자 하는데, 모든 것이 합작을 하자고 하는데, 자기의 전투는 자기 심신을, 자기 심신을 그 넷에게 복종시키는 그것이 자기의 전투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전투의 대상은 심신을 점령해 가지고 제것 삼을라 하는 그 모든 것을 적으로 삼는데 전투의 그 표준은 어데 있느냐? 이제 자기의 심신을 완전히 빼앗아서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의 것을 만드는, 영의 것을 만드는 여기에 전투의 표준을 삼고 기준을 삼았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라면서 말하기를, 또 자기가 경주하는 데에 그저 경주를 하되 경주하는 그 태도에 가치를 두지 안하고, 경주하는 또 모습에 가치를 두지 안하고, 경주하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는 데에 가치를 두지 안하고, 모든 사람이 이겼다고 찬성하는 모든 그 중론이나 공론에서 인정하는 그런 데다가 가치를 두지 안했다.

내가 달리는, 내가 달리는 것은 뭐 세상에 천태만상의 이런 가치할 만한 그런 모든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그만 그거 보고 좋아해서 내나 싸운다는 것이 결국은 보면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 그런 것들이 인정하고 칭찬하고 따르고 존대하고 하는 그것을 그 전투의 목표로 삼았지마는 바울은 그렇지 않다.

향방 없이 달리는 자가 되지 안하고, 향방, 곧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뭐 뛰든지, 굴리든지, 뭐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이 저 사람 목회에 실패했다든지, 또 저 사람은 전도도 아무것도 못했다든지, 또 저 사람은 세상적으로 경제적으로나 지위적으로나 취직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아무것도 없다고 뭐 실패 중에 실패라고 그렇게 뭐라고 하든지 나는 달음질하는 데에 기준은 어데다 두느냐? 기준은 주님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는 이것을 내가 기준으로 삼고 나는 달렸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이 다 졌다고 다 실패했다고 조롱해도 상관없고 세상이 다 추켜올려도 그것도 상관이 없어. 세상이 암만 추켜올려도 주님과 가까워지는, 주님을 향하여서 달려서 가까이 가는 이것이 아니면 가치로 하나도 치지 안했고, 또 세상이 아무리 가치 없다고 모욕을 하고 매장을 하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가까이 가게 됐으면 이것으로 만족하고 요것으로만 가치를 삼았다.

자기의 경주의 가치는 주님에게 가까이 가는 요것만을 경주의 가치로 삼았다, 또 싸움에 승리는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정복해서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에게 복종시키는 거 요것만 승리로 인정을 했다, 또 자기가 서로 경쟁하는 데에는 뭐 백의 일을 이겼다, 하나를 이겼다, 둘 이겼다, 열 이겼다 이런 게 아니라 백의 백을 다 이겨서 다 이기는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가지고 달렸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라면서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모든 일에 절제한다,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썩을 면류관이라 말은 썩을 면류관은 뭐인고 하니 이 세상에서 영광스럽다, 존귀하다, 뭐 어떻다 어떻다 다 이렇게 말을 하는 그런 것이 다 면류관입니다.

성공했다, 면류관이라 말은 성공했다 승리했다는 말인데 그 성공과 승리가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런 종류들을 다 자기의 소망으로 삼고 자기 얻어지는 수익으로 삼고 이렇게 하지마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함이라” 썩지 아니할 것이라 말은 시간과 공간과 존재에 제한받지 아니하고, 활동에 제한받지 안하고, 뭐 언제든지 영원한 거, 불변한 거, 완전한 거, 영생한 것, 전능한 것, 전지한 것 이게 아니면, 전지가 아니라도 그것은 제재받습니다. 전능이 아니어도 제재받습니다. 이런 것을 얻을라고 한다.

그러면 전지 전능, 완전, 영원 불변, 영생 이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달음질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하는 것이다, 투쟁 하는 것이다. 하는데, 그 얻고자 하는 거, 썩지 안할 거를 얻고자 하는 것인데 썩지 않을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천사들도 썩습니다.

얼마 전에 ○○○목사님이 신문쪼가리를 똑 요만한 것을 끊어 가지고 저한테 왔는데 거게 보니까 천주교 교황이 말하기를 ‘천사의 세계에도 타락도 있고, 범죄도 있고, 또 자유성도 있고, 이렇게 꼭 인간계와 같다,’ 그렇게 말을 하는 그것을 로마 교황, 바오르 교황이지? 그런데 그 교황이 그렇게 수천 명 모여 놓고 거게서 그분이 자기의 신조와 교리를 발표하는데 그렇게 했다고 요라면서 그걸 끊어 가지고 왔읍디다.

끊어 왔는데, 그러면 그 말이 틀립니까 옳습니까? 교리상 틀립니까 옳습니까? 아마 그것이 세간에 가서 많이 말썽이 있을 것입니다. 말썽이 있지만 그게 뭐 신문에 났는데 무슨 신문인지는 몰라도 그래 가지고 왔기 때문에 그래 내가 보고 말은 안 했지마는 그 교황이 그와 같이 해 가지고 온 것을 뭐 틀렸다 맞았다 하는 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계에서는, 뭐 칼빈주의라고 떠들어 쌓지마는 그게 틀렸는지 옳았는지 거게 대해서 정평 정가를 할 만한 그만한 지금 영감 지식이 없어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영감 지식이 구비를 못 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거,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그게 틀렸습니까 맞습니까? 내가 그 종이를 오래 동안 보존해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보일라고 이래 하다가 뭐 내가 여러 백번 말했으니까 보이지 안해도 되지 않겠느냐 해서 그걸 비벼 없애 버렸습니다.

그 말은 정죄 못 합니다. 틀렸다고도 못 하고 맞다고도 못 합니다. 좀 더 물어 봐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천사의 세계라 말은 현재 영계를 가리켜서 말을 하느냐? 그러면 그 타락한 천사까지 다 통합해 가지고서 그것을 천사의 세계로 보느냐? 네가 어느 것을 천사의 세계로 보느냐?’ 요것을 판정하면은 반드시 교황이 답안이 틀리게 나올 것입니다.

교황이 지금 말하는 것은 영계를 말하는 것으로 그렇게 보지마는 그 교황이 영계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거는 잘 모릅니다. 그말 한 마디에서 천주교 교황이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이 거게 확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이 조화가 있는 사람이고, 대단히 명철한 사람이고, 또 그 사람이 아주 슬기롭게 발언하는 것은 피할 곳을 생각하고 발언하지 피할 곳을 생각지 안하고 발언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 현재에 천주교 교인들은 그 앞에 다 복종을 당해야 되고 다 정복을 당할 수 있는 그런 명철을 가진 사람이라 그렇게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확지는 못한 사람이고 조화의 사람이라 그렇게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데 그분은 그렇게 말한 것이 사람이 들을 때에는 영계만을 두고서 말하는 것으로 그래 들으니까 사람들이 ‘이상하다’ 이라는데 그 사람의 피할 길을 타락한 천사라는 그 천사까지의 범위를 넣어놓고 내어놓기로 다른 사람들의 심리에서 이해하기는 영계만을 이해하도록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자기는 피할 곳은 타락한 천사까지를 포함한 천사의 세계라 그렇게 이중의 길마 말을 해 놨다 하는 것을 그것을 보고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어질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면 썩어질 면류관은 뭐인가? 자기가 세상 뜰 때에 없어질 거, 또 예수님 재림할 때에 없어질 거,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다 정죄받아서 유황불 구렁텅이로 몰려갈 그런 것들을 다 가리켜서 썩어질 면류관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썩지 안할 면류관은 뭐이냐? 썩지 아니할 면류관은 믿음으로만 되는 것인데 완전자이신 그분과 결합이 돼서 그분의 것이 되고, 그분의 종이 되고, 그분의 지체가 되고, 그분의 몸이 되고, 그분의 성전이 되고, 그분과 연결되어서 그분의 전부가 자기의 전부가 되는 이것이 아니면 다 헛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게 절제하라는 말 이것은 모든 것을 네가 조절하라, 조절하라 말은 고루 조자 절제 절자, 모든 것을 고루고루 해 가지고 거게서 많게 적게 이렇게 모든 것이 다 딱 들어맞도록 그렇게 모든 것을, 뭐라고 말할까? 모든 것을 다 분용하라, 활용하라, 모든 것을 활용하라, 모든 것을 살려서 써라, ‘몇 할’ 하는 나눌 할자가 아니고, 나눌 할자보다도 살 활자, 생활이라 하는, 활용하라, 살려서 써라.

모두 쓰는 것이 다 영생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이 다 잘 쓰면 영생되고 가진 것을 잘못 쓰면 다 사망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세밀하고 철두 철미한 조직의 나라요, 또 논리의 나라요, 평가의 나라요, 심판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전지가 심판해 가지고 전지의 입법에서 심판을 해도 걸릴 것이 없는 것이라야 거기 돼지는 것이지 전지의 율법에서 심사해 가지고 걸릴 것이면 헛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은 그이의 바라는, 심사를 받을라고, 검사받아야 되는데 검사받는 그 검사는 어떤 검사를 그는 또 표준으로 삼았는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이 삣고 깎고 억탈을 지겨서 그분이 아무리 탈을 잡고 아무리 티를 뜯을라고, 전지 전능의 입법이 아무리 흠점을 찾을라고 해도 흠점 찾아지지 안하는 그것이라야 된다. 그거라야 된다.

그러면 그것이라야 되는데 그게 뭐입니까? 그것이 곧,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이러니까 자기는 예수님의 대속이 이제 ‘나는 내가 대속한 것을 네게 준다’ 하면 돼. 당신이 준다 하면 돼요.

준다 하면 되는데, 그러면 오늘에 준다 안 준다 하는 것은 오늘에 어찌 되느냐? 오늘에 제가 현실에서 이 대속을 배척 안 하면 이 대속을 끝까지 줄 것이고, 현재에 대속을 배척하고 안 하는 데에서 다 얻어지는 건 아니지마는 대속을 인정할 때에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당신이 ‘책임진다’ “내가 아노라 하리라” “천사들과 아버지 앞에서 내가 아노라” 하리라 그말은, 마태복음 10장에 “아노라 하리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제 하나님의 공심판 앞에서 “이는 나는 모르노라” 하면 그만이라. 알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공심판에 안 가는 것도 있고 공심판에 가는 것도 있고 사심판에만 가는 것도 있습니다. 공심판에 가는 것이 어떤 것이냐? 이제 그가 예수님의 대속을 배척했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그를 공심판으로 넘겨 버립니다. 공심판에서 그를 심판하기 때문에 거기서 정죄해.

예수님이 아노라 하는 것은 이 사심판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하는데 심판에서는 상만 결정하고, 안 하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헛일이 되고 말아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두 번 십자가에 못박혀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헛일이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이기기를 원하는 자마다 절제해야 된다” 절제해야 된다는 말은 계산을 대야 된다, 모든 것을 계산해 가지고 이것을 참, 김일성이가 지금 그 사람이 이북의 모든 사람들을 다 사로잡고 있고 이북에 있는 모든 뭐 별별 과학자들이 있지마는 김일성이를 당하지 못합니다. 김일성이가 어데다가 힘을 주고 있느냐 하면 그 역점은, 그가 아주 역점으로 힘을 쓰고 그분이 표준하고 있는 것은 뭣을 표준하고 있느냐? ‘모든 일은 과학적이어야 된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김일성이의 주장이요 실력입니다. 그러면 말도 과학적으로, 정치도 과학적으로, 또 의논도 과학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는 과학이 아니면 다 부인하고 ‘과학적이라야 된다’ 그러기에 그분은 말하는 데에, 내가 언제 한번 방송을 들으니까 그분 방송하는 데에 ‘모든 것은 다 과학적이어야 된다’ 하는 그것을 그 사람이 자기가 강연할 때에 그 말을 쓰는 걸 봤어. 그래 내가 그때에 ‘김일성이가 요게다가 힘을 두고서 요걸 가지고 지금 모든 이북 사람을 사로잡고 있구나’ 그 사람은 모든 것이 과학적이어야 된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여게는, 모든 일에 절제해야 된다 하는 말은 그 과학적이란 말만이 아니오.

이 과학적이면서, 과학적이면서 또 신앙적이어야 된다. 또 물질적이면서 신령적이어야 된다. 피조물적이면서 또 조물주 창조주적이어야 된다.

그러면 창조주에 맞춰도 딱 맞아야 되고, 피조물에 맞춰도 딱 맞아야 되고, 마귀에게 맞춰도 딱 맞아야 되고, 모든 것에 맞춰도 딱 들어맞아서 아무것도 칭찬이나 하고, 찬성이나 하고, 존대나 했지 하나도 띠뜯을 거 정죄받을 것이 없어야 된다 하는 이런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 나가고 있다 말이오.

그냥 예수 믿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는 그것은 기본구원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고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 이름이라 하는 것은 해석을 하면은 주님의 운동을 말합니다.

이름이라 말은 운동이라 말인데, 주님의 하시는 그 운동을 인정하는 자라 말이오.

주님의 운동이 세밀히 말하면 어데까지 있습니까? 주님의 운동이 세밀히 말하면 어데까지 있습니까, ○○○목사님? 주님의 운동이 어데까지 있습니까? 우리 현실의 개별까지 다 있습니다. 주님의 그 주권은 개별 주권 섭리 아닙니까? 개별 주권 섭리까지 주님의 운동은 뻗쳐 나가고 있어. 주님의 운동은 뻗쳐 나가지 안한 곳이 하나도 없어. 이러니까 그 운동을 다 인정하면 된다, 그 한 말로 “믿는 자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는 주의 이름이라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넓은 범위를 다 포함해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절제하는 데에는 알아야 절제하지요. 절제하는 것은 계산을 해야 절제하지요. ‘보자’ 이게, 물론 다 행정도 다 쓸 수 있지 않겠소? 이러니까 우리가 국가 예산을 얼마를 세웠으면 그 예산을 어데 쓰느냐? 그 예산 쓰는 것이 아마 한 백은 넘을 것이고 한 천, 한 천도 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면에는 얼마 갔는데 그 면에는 뭐 얼마나 얼마 뭘로 쓰고 뭘로 쓰고 다 이래 하니까 천으로도 더 분산이 될 거라 말이오.

그런데 그 분산되는데 그게 잘못되면 안 돼요. 그게 꼭, 제일 그만한 자본 가지고는, 그 자본 가지고는 제일 그것을 허비 낭비하지 안하고 적소에 적지에 또 적시에 또 그 적건, 그 사건 적건에 딱 맞게 그걸 하면은 물샐틈 없이 요게 모든 국가에 쓰는 그 국가 예산을 그것을 잘 절제해서 그것을 고루고루 올바로 그것만 그 경제 정치만, 경제 행정, 이 경제를 다스리는 경제 행정만 올바로 한다 하면은 그 나라는 부흥됩니다, 그나라는.

이러는데, 내가 요새 보니까 과거에 ○정권 때는 그때 지금과 같은 식이 아니라.

지금은 세계에 한국이 자유합니다. 미국 나라에게 대해서도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어요. 그 자유를 얻은 것은 지금 ○대통령이 만들어 가지고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고 ○대통령이 자유를 만들어서, 뭐 언제는 미국에서 죽으라면 죽고 살면 살고 마음대로 했는데 그때 그 ○대통령이 미국의 주권하에서 피동되는 그것을 좀 탈피할라고 애를 쓰다가 그때에 큰 마찰을 당해서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당했는데 그때 영부인이 저격당하고 하는, 좀 저격당하기 좀 전입니다.

전인데, 그때에 ○○○씨가 그때에 뭐 비서실장인가 뭘로 있었던가 모르겠어.

있는데 그분이 이북에 가 가지고 아주 이북에 가서 환영을 받고 이북의 그 아주 높은 정객들과 같이 좌담할 때에 그분이 그 모든 사람에게 그 술을 한 잔씩 다 권면하고 또 말하기를 지금 이제 ‘남북이 통일되면은 ○○○씨를 이 보좌에 앉히겠다’ 그거 수상 보좌는 아니고 아주 영광스러운 통일시킨 공로자로 이렇게 자리에 앉히겠다는 그런 말까지 나오고, 그때 이북에 갔다 왔습니다.

그럴 때, 왜 그랬느냐? 벌써 이걸 자유를 너무 미국에 종노릇하는 것에서 자유로, 종에서 탈피를 해서 자유할라고 이라니까 그것을 기회로 삼아 가지고 미국과는 대립이 됐어. 미국과는 대립이 돼 가지고 아주 이래 대립이 돼 가지고 있는데 대립이 되니까 어데든지 대세에 붙어야 되지 안 붙으면 이거 절단나기 때문에 그때 ○○○이가 가 가지고 이북 김일성이하고 손을 잡을라고 거기 붙을라고 시작을 했었습니다.

이래 했었는데, 그라니까 ○○○이가 김일성하고 벌써 나중에 그라면은 이거 ○대통령은 로보트로 다 없애버리고 제가 이남은 정권을 잡아서 김일성이 밑에서 와와 같이 될 그런 일이 되니까 이제 ○대통령은 이리도 못하고 저리도 못 하고 고민을 가졌었어.

고민을 가졌는데 그때가 분위기가 어떤 때인고 하니 내가 ○○○목욕탕에 가니까 그때에 막 김일성이를 찬양하는 소리를 ‘여기서 이남에서 들을 때는 그렇지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이북은 그런 나라가 아니라. 이북은 정의의 나라요, 공의의 나라요.’ 뭐 나라라고 이북을 막 소개를 하고서 김일성이를 소개를 막 이렇게 해 재끼기 때문에 내가 목욕탕에서 ‘저 어떤 년 저 미친년이 있노? 저년이 어떤년이고?’ 내가, 목욕탕에서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그래도 그때는 뭐 잠잠하고 그 소리 해 봐야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따라가지 아무 창자 없습니다.

이랬는데 그말 한 사람이 누구냐? ○○대학 총장, 뭐입니까, 지금 뭐? ○○○입니까? 몰라요? 뭐이요? ○○○총장 아니요? ○○○총장이 그말 했었어.

그게 다 녹음이 돼 가지고 있을 거라 말이요, 지금. 언제 나온다 말이요, 나오기를.

그럴 때에 ○○○씨를 이 구미에 순회하러 보냈어. 구미에 순회하러 보냈는데, 순회하고 난 다음에 돌아왔다고 그날 담화 발표한다 하면서 이라기 때문에, 테레비가 있어야지? 그때 테레비는 ○○○집사 집에만 테레비가 있었어.

그래 테레비 준비하라 하고 내가 쫓아갔어. ‘○○○집사 집에 테레비를 보자’ 내가 테레비 보러 간 거는 다른 게 아니고 보러 간 이유가 있었어. 그래 보니까 ○○○이가 나왔는데 얼굴이 번들번들하이 살이 쪄 가지고 나왔어. ‘됐다’ 이거는 가 가지고 보니까 벌써 구미에서 한국이 이제 지금 반미 행동을 하니까 저걸 완전히 끊어 버리자가 아니고 그 사람들이 그래도 지금 환영을 하고 붙들고 있다는 환영이 있으니까 살이 쪄 가지고 왔다 말이오.

살이 쪄 가지고 왔는데 또, ○○○이 살쪄 가지고 온 거는 저게 지금 버림을 당하지 안하고 그와 친밀한 유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그걸 내가 봤고 ‘지금 인제 ○대통령이 나올 건데 ○대통령이 어떤가? 우리 이거 지금 민족이 세상적으로는 망하나 흥하나 하는 것은 ○대통령의 그 안면을 봐야 되겠다’ 하고서 보니까 ○대통령이 나왔는데 빠짝 말랐어. 그렇츰 마른 때는 없었어요.

아주 바짝 말랐어. 빠짝 말라 가지고 그때 동시에 나왔어. 담화 발표하러 나왔는데 그걸 보고 나는 손뼉을 치면서 ‘됐다’ 이랬어.

왜? 이 민족을 책임진 사람이라면 그때 밥을 못 먹을 것이고 빠짝 말랐어야 되지 그때 뛴뛴 살쪘으면 죽여버려야 돼. 소용이 없어. 그때 빠짝 말랐기 때문에 참 나는 그를 말하기를 이랬어. 이거 뭐 반대하는 사람 많습니다. ‘그는 참 국부라 할 수가 있다’ 이래 가지고 이거 때문에 나하고 반대돼서 우리 교회서 원수되고 반대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지 그 사람은 기독교는 아니고 이렇지마는 ○여사는 국모라 할 수 있고 ○대통령은 국부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두 분이 다 순국했습니다.

이런데 뭐 욕하는 사람 많지마는 역사는 지나가면 나온다 그말이오. 우리의 견해는 역사가 지나가면 딱딱 들어맞지마는 인간들이 말하는 저거 정객들이 저거가 말하고 있는 세계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보는 견해와 달라. 우리는 성경을 보고서 딱 이래 하기 때문에 정평 정가가 된다 그거요.

이런데 그때는 이 나라에서 모든 수입되는 수입을 아마 삼분지 일까지는 안 될란지 몰라도 한 오륙분지 일은 전부 미국에 그놈을 다 사바사바로 돈을 줘야, 상원들을 돈을 줘야 매수하고 또 하원 뭐인가 그 사람들을 돈을 줘야 매수하니까 돈이 그리 다 가니까 여기 국내에 쓸 돈이 없어. 이런데 지금 ○대통령이 그래 가지고 딱 그래 놓으니까 미국서도 ‘아예 이것을 지금 자유를 줘야 되고 여게서 억압을 해서는 안 된다’ 이 공평을 가질라 하기 때문에 지금 정치하기는 ○대통령 때보다 아주 좋습니다. 지금 자유로 하고 있소.

이러니까 ○대통령의 장기는 뭐이냐 하면은 이 들어오는 수입을 그런 쓸데없는 교제비로 쓰지를 안하고 전부 건설에다 쓴다 말이오. 건설에다 쓰고 또 외자를 내다가 쓰는데 내 사상과 같애요. 나는 그전에 외국에 부채가 많다고 막 떠들어 쌓을 때에 ‘저 정신빠진 인간들, 저렇게 말한다. 어찌 됐든간에 외국에 부채가’ 나는 설교를 그래 했어요.

그런데 그때 ○대통령 때 ○정권 때는 여게서 설교한 지 늦어도 이십 일 그리 안 하면 보름이면 그대로 다 시행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한 한달 이내에 반응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데, ‘얼마든지 다른 나라에서 빌려 주거든, 돈을 줄라 하거든 얼마든지 빌려 오너라. 빌려 와 가지고 이 땅덩어리를 금덩어리를 만들고 아주 편리하기를 세상에 제일 살기 좋은 나라로 편리하게 만들어라. 그러면 애민족자요 애국자다.’ 왜? 그래 만들면 저거 것이지마는 우리를 쫓아내지는 못하거든. 그렇지 안해요? 쫓아내지 못 하니까 그 편리하면 우리가 편리하게 살지 뭐. ‘어짜든지 빚을 내서라도, 저거가 땅덩어리를 가져가겠느냐? 빚을 내서라도 내 가지고서라도 이 땅을 좋게 만들고 이 모든 산을 좋게 만들어라. 만들어 놓으면 가져가지는 못하니까 결국은 우리 모가치다.’ 그거 좀 넓이 봐야 돼요.

어떤 사람은 지금 정객들은 말하기를 ‘일본 사람들 착취자들 뭐 어짜고’ 하면서 일본 사람들 욕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본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만 이 시대 사람과 달라요. 안 믿을 때도 나는 그랬어요.

왜? 그들이, 살아 보면 자, 모든 것을 지능의 사람과 무능의 사람이 같이 살면은 누가 이용 됩니까? 무능의 사람이 이용돼요 지능의 사람이 이용돼요? 무능의 사람이 이용되지? 아니오. 껍데기는 무능의 사람이 이용되는데 속은 지능의 사람이 이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통계가 ‘지자는 졸자지노예라’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의 종이 돼.

이거 여게 있는데 불이 타는데 이건 불에 타면 들어가면 죽을 줄도 모릅니다.

불에 들어가면 죽을 줄도 모르는 갓난 아이가 있소. 갓난 아이가 있고 여기 불은 있고 환하이 있는데 그 아이가 있는데 이거는 불을 뭐인지도 모르고 여기 벌거이 있으니까 자꾸 기어들어간다 말이오. 기어들어가면 살인자가 안 될라고 하면은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떻게 해요? 건져내야 돼요. 암만 미워도 건져내야 돼. ‘야, 이놈의 새끼. 거기 들어가면 타죽는다.’ 집어던져도 던져도 불 없는 데로 던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문화인과 야만인과 둘이 결합했으면 문화인이 야만인의 종이 되고 야만인은 문화인의 것을 막 얻어서 지금 얻어 수입보고 문화인은 야만인에게 뺏기지 유익 보지를 못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나는 ○목사가 흑노 해방을 가지고 말하는데 ‘너거 범위가 좁다. 사람이 백인종은 그만치 살았고 흑인종은 그만치 살았기 때문에 이제 거기 대한 상당한 보응으로서 인격 대우 가치가 달라야 된다.’ 이러나 이제 조금 들어가면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셔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제 거게 들어가면 ‘네가 스스로 된 게 아니고 하나님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감사하고 겸손히, 주님이 나에게도 안 줬으면 저렇게 야만되고 마는 건데 내게 줬으니까 내것이 아니니까 이거 있는 대로 다 잘 갈라줘야 주님이 내게 주지 그리 안하면 대끼 이놈 주인이 옮기겠다 하고서 옮기면 안 되겠다.’ 넓은 범위에서 그런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모든 거 알아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지식 뭐 철학이라든지, 과학이라든지, 신학이라든지, 도덕학이라든지, 모든 이종교라든지 모든 지식을 다 알고 그걸 이기고 나야 그 미혹을 안 받는 것이지 그 밑에 있으면 미혹 받습니다. 반대를 해도, 반대를 해도 논리가 그쪽이 나으면 논리 나은 데에는 해도 ‘그 이상한데’ 그 논리가 해결이 되기 전에는 그것을 반박을 못 하는 것입니다. 논리적 해결이 되기 전에는 반대를 못 해요, 그러면.

이러니까 이 기독교는 참된 하나님의 지식과 성령의 지혜를 자기 것을 삼아야 되는 것인데 “절제한다” 절제한다는 데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가 계산해야 된다, 계산을 해야 절제를 하지요. 그렇지 안해요? 이거 우리 자본은 한정이 있습니다. 우리 자본은 무한의 것이 아니오. 다 한정이 딱 있는데 그 한정 있는 그걸 잘 계산 대 가지고 적당한 자리에, 적당한 사건에, 적당에 물건에게, 적당한 때에 그걸 잘 배정해서 잘 쓰면 백프로 성과를 거두고 잘못 쓰면 다 헛일되고 만다 말이오. 그걸 말하는 거라.

네가 생활하는 데에 모든 일에 절제해야 된다. 아무나따나, 철야하는 자는 철야만, 내가 보니까 어떤 사람은 자꾸 돌아다니며 심방만 한다 말이오. 그래 내가 이 권사님들에게 그래. ‘돌아다니며 심방 하거들랑 저 드러눕혀야 된다.’ 그래 내가 ○○○권사님 드러누워 있기 때문에 ‘잘 됐다. 다니지 말라 하는데 자꾸돌아다니니까 드러눕혀야 될 것 아니라. 암말도 말고 드러누웠어.’ 그래 내가 거창집회 가 가지고, ○○○권사님 어데 있어요? 어데? ○○○권사님 어데 있어? 그래 거기 드러누워 뭐, ‘암만 해야 안돼. 드러누웠어.’ 그래 리어카에 실려갔습니다. 실려가도 그가 교인들 하나라도 더 참석케 할라고 이래 가지고 야단을 하고 실려갔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를 ‘암만 해도 안 나아.’ 뭐 침을 맞고 뭐 야단해도 암만 해도 안 나아. 그때 내가 언제 말했지요? 육 개월 말했던가? ‘육 개월 돼야 나아. 그전에는 안 나아. 쉬어야 되지. 육 개월 쉬어, 가만히.’ 이랬더니마는 언제 한번, 나는 그래 하고 잊어버렸어요. 잊어버렸는데 그 날짜가 돼 ‘오늘이 육 개월 되는 날이라’ 엉금엉금 기어와서 ‘오늘이 육 개월 되는 날입니다.’ 이라며 왔어요. 이래 와서 `오늘 육 개월 되는 날이라요? 그라면 안 나았습니까?’ 이라니까, 육 개월 됐다 하면서 그 자리서 나아 버렸어. 그 자리서 나아 가지고 갈 때는 서서 갔어, 걸어갔어. 그랬지? 안 그랬습니까? 들어 봐, 다른 사람이 그래 손을 들어야 알지.

그래, 그 날이 육 개월인데 와 가지고, 뭐 짚고 부축해 가지고 왔는데 ‘오늘이 육 개월입니까? 그라면 오늘 나아야 될세.’ 이랬는데 그날 그만 나아 버려. 그날 나아 가지고 갈 때는 팽팽하게 갔다 그말이오. 오늘까지 잘 살아요.

이러니까 모든 것을 절제해야 돼. 사람이 자꾸 이거 바쁘게 심방하러 돌아다니다 보면은, 겉을 보면 속이 어두워져 버려. 속만 보면 겉이 어두워져요. 이러니까 사람은 똑 양면을 가져야 됩니다.

농사 짓는 사람이 밭하고 논하고 두 종류야. 토지는 두 종류라요. 밭에서 일하면서 밭에서 일할 때에, 밭에서 일할 때는 마음 어데 가 있어야 돼요? 논에 가 있어야 돼요. 알겠습니까? 이게 저 농사 잘짓는 사람의 비결이라. 또 논에 가 있을 때에는 논에 가서 막 논 매고 이랄 때는 마음이 어데 가 있어? 밭에 가 있어야 돼요.

아이구 논에 일하면서 ‘밭이 이렇고 이렇고 한데 이거’ 자꾸, 논에 일을 하면서 마음은 밭에 가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논에 일 퍼뜩 마치고 나 밭에 가서 또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밭에 가 일하면서 밭에다 마음 착수 다 하면 안 돼.

밭에 일하면서 또 마음이 저 논에 가서 또 활동하고 계획가고 있거든.

이렇게 살면, 이걸 가리켜서 성경에 말하기를 “영물은 안팎에 눈이 있어야 된다” 했어. “안팎에 눈이 있어야 된다” 눈이 있어야 되니까 안에도 눈이 있어야 되고 밖에도 눈이 있어서 안과 밖을 다 봐야 된다 이거요. 이러니까 안팎은 그거 많아요.

이러니까 모든 것을, 우리는 자본이 유한한 자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한한 자본 이걸 잘못 써 버리면 헛일이라. 그만 잘못 쓰면 잘못 쓴 것만치 쓸 데 못 쓴다 말이오. 자기가 허비했으면 허비한 것만치 쓸 데는 반드서 못 쓰게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계산 대야 되니 ‘나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무슨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몇 가지나 소유하고 있느냐?’ 몇 가지라,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종류를 계산해 봐요. 종류를 종이에다 써 봐요. 종류를 종이에다 ‘나는 뭐 가졌다, 뭐 가졌다, 뭐 가졌다, 지식은 얼마 가졌다, 돈은 얼마 가졌다, 건강은 얼마 가졌다.’ 현재 가지고 있는 현재고를 말이오 현재고를 하나도 빠짐 없이 그 종류를 다 기록합니다. 종류를 다 기록해 가지고 이 계산 댈라고, 종류를 다 계산 대요. 그러면 이 현재에 남아 있는 그 양은 얼마나 되느냐? 그 종류의 양을 다 계산해요. 양을 다 계산해.

계산해 가지고 ‘그러면 이 쓸 곳은 얼마나 되느냐? 내가 이것을 투자해서, 이것을 투자해 가지고 쓸 곳은 얼마나 되느냐?’ 쓸 곳을 또 종류를 다 기록해요.

쓸 곳의 종류를 다 기록해요. 다 기록하고 난 다음에는 ‘그러면 여게는 얼마 해야 되노? 저게는 얼마 해야 되노?’ 그 종류마다 그 양을 계산해. 양을 계산해 가지고 내가 있는 걸 이것을 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내가 그래 놓으면, 그거 몇 가지요? 네 가지.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라면 이걸 하는 데에는 자,’ 그라면 동기가 있어야 된다 말이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주님으로 인하여 되고, 또 목적은 뭐이냐? 목적은 어데 있습니까? 목적이 몇 가지가 있습니까? 주의 것, 또? 주의 종, 또? 주님의 성전, 주님의 지체, 또 주님의 몸, 주님의 신부, 주님의 나라와 백성, 또 제사장, 선지자, 왕, 또 영광의 찬미, 주의 형상, 그라면 몇 가지입니까? 열세 가지가? 이제 이것이 우리 목적이어야 돼. 이것을 목적으로 두고 지금, 예수님으로 동기된 걸 가지고 그 목적과 결과는 이것이어야 된다 말이오. 이러면 결과가 또 이제 어떤 결과가 맺느냐? 그 결과를 생각하고 그 결과는 마지막에 종말은 말하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통과가 돼야 돼.

통과가 돼야 되는데 그러면 우리의 가진 이 모든 요소는 뭐합니까? 우리의 가진 요소가 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가진 요소가 뭣 하요? 나는 그전에, 그것도 참 필요해요. 내가 그때 아주 오래 됐는데 발동기를 부려 봤어요. 발동기, 그때는 발동기 면에 혹, 그 일 면에 발동기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 되거나 그래요.

발동기를 사 가지고 부렸는데 발동기 그때에 휘발유는 비싸고 석유는 싸요.

요라면 그 석유를 가지고 요 잘 발화를 시켜 가지고 아주 조절을 잘 해야 되는 것인데, 요새 차는 뭘로 하지? 차는 밧데리가? 밧데리 전력 가지고 그 시동을 겁니까? 뭐이, 시동 거는 거는 뭘 가지고 겁니까? 밧데리입니까? 그 밧데리 그걸 이걸 자꾸 이 시동 걸 때 잘못해 가지고 기름을 많이 넣고 작게 넣고 잘못 넣으면 그만 이 밧데리 힘 나가면 안 돼요. 밀어야 돼요. 밀어야 돼.

고거 모양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는 뭐이냐 하면은 밧데리라 말이요, 밧데리. 알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은 밧데리라. 밧데리 가지고 차가 갑니까 그거는 시동만 거는 데에 쓰이는 것입니까? 시동 거는 데만 쓰이는 거라.

우리의 가진 모든 요소 이 요소가 다 구비한데 이 요소는 뭐 어데 쓰이느냐 하면은 이거는 밧데리로 쓰이는 거라, 밧데리로.

뭐 밧데리로? 하나님하고 나하고 이것이 연결시키는 데에 쓰이는 거라. 주님하고 나하고 내 이거 가지고 연결만 시켜 놓으면 그 전지 전능이 되고 말아서 영원이 되고 만다 말이오. 이것이 기독교라. 기독교의 이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네 가지, 그다음에는 다섯 가지인데 거게 두 가지 더 해서 일곱 가지인데 이렇게 해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돼. 그러니까 이거 다 몰라도 돼요.

몰라도 되는데 어짜든지 겨자씨 믿음만 지키면 돼. 겨자씨 믿음만.

겨자씨 믿음은 뭐이 겨자씨 믿음이냐 하면은 자기 현실에서 성신의 감동이 요래라 조래라 하는 그것만 놓지 안하고 그것만 지켜 나가면 다 돼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예수 믿기 쉬운 길을 자꾸 가르쳐 놨는데 요걸 버리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말이오. 요래 보면은 다 잘살 터인데, 이라면 모두 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고 부자가 돼서 씨를 자꾸 주고 씨를 줘 가지고 이러니까 이리 되면은 일곱 가지 도둑질만 회개하면 당장 될 거라 말이오.

일곱 가지 도적질을 회개해 봤어요? 회개했으면 반드시 사장 같으면 회사가 이상하게도 봄날이 돼서 해동이 될 건데. 또 자기 직공, 남의 밑에 있는 직공으로 사는 사람이 이 일곱 가지를 회개를 했으면 반드시 그날은 주인이 환영을 하고 존대를 할 것인데.

사업하는 사람이 요 일곱 가지를 회개를 했으면은 명철해서 다른 사람보다 견해가 탁월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선견자요 또 정확한 지능자가 되기 때문에 놀며 해도, 장사하는 사람은 요거 되게 되면은 머리가 좋아서 다 거석해서 사기는 비싸게 사고 팔기는 헐하게 팔아도 자꾸 돈은 법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죄짓지 안하고 과거와 같은 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주신 것은 지능을 더 많이 준 것인데 요 지능 주니까, ‘지능을 과거에 안 받을 때에는 내가 죄를 지어야 살았는데 이 죄 안 짓고도 살 수 있다.’ 죄 안 짓고 살라고는 하지 안하고 지능을 더 주니까 ‘이만한 지능을 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면 나는 산중에 들어 있을 게 아니고 나도 도시 가면은 이거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저 사람하고 나하고 지능을 비교해 보니까 내가 이래 살 게 아니라 높은 자리에 뛰어올라가 가지고 살 수가 있다.’ 이래 가지고 하니까 하나님이 주신 지능을 뭘로 사용해요? “선지자는” 뭐라 했습니까? 뭐라고요?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친다” 주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더 주니까 요거 가지고 자기 형편으로 죄 안 짓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해 주신 것인데 요거 가지고 지금 돈벌이 하는 데 들어가니까 마지막으로 망하고 만다 그거요. 예수를 바로 알고 믿어야 돼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새벽기도 나와야 배우지 안 배우면 제까짓 게 뭐 대학에 가면 있는 줄 압니까? 학교에 가면 있는 줄 압니까? 없어. 안 돼. 무식해도 영감의 사람은 다 알 수 있어요.

어짜든지 자본 허비하지 맙시다. 자본 허비하지 말고 이제 허비한 것을 원통히 여겨서, 계산 대 보면 알아요. 계산 없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생각하라 생각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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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4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5절/ 800730수새 선지자 2015.12.17
1523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5절/ 800729화새 선지자 2015.12.17
1522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5절/ 800728월새 선지자 2015.12.17
1521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5절/ 800727주후 선지자 2015.12.17
1520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1절-25절/ 800727주전 선지자 2015.12.17
1519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25절/ 800725금야 선지자 2015.12.17
1518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25절/ 800725금새 선지자 2015.12.17
1517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자/ 야고보서 1장 21절-25절 / 1980년 31공과 선지자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