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3:25
원죄회개
1986. 2. 16. 주일오전
본문:베드로후서 3장 8절∼9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우리의 잘못을 대속하기 위해 죄 없으신 주님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죄 없으신 의로우신 주님이 고난을 받으셨음으로 우리 죄인들이 대속도 받았고 또 회개도 하게 됐습니다. 이어서 오늘도 계속 주님의 이 대속의 은혜를 받고 깨달은 의인들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인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사랑의 징계하는 그런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루가 천 년 같다고 말씀하신 것은 부득이 이 일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의인들이 죄인 구출 위해서 어려움당하는 것과, 또 회개하지 아니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 징계하시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여게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하루가 천 년 같은 그 심정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죄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하시는 징계는 징계지마는서도 그 징계를 그 어려움을 받는 걸 볼 때에 주님의 그 심정은 심히 아프시고 해서 하루가 천 년같이 그렇게 마음에 지루감을 가지십니다. 또 죄인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의인이 대속의 그 고난을 받지 아니할 수 없으나 의인들이 대속을 위한 그 고난을 받을 때에 그 고난 받는 시간이 주님의 마음에는 심히 안타깝고 지루한 그것을 여기 심정을 표시했습니다.
천 년이 하루 같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렇게 의인들이 애매히 대속의 고난을 당하고 죄인들이 자기의 회개의 치료를 위해서 징계를 받지마는서도 이 세월이 자꾸만 지나가고 아무 효력은 나타나지 아니하니까 벌써 그 사람이 정한 시간이 지나서 나이가 늙어졌고 죽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안했는데 아직도 회개하지 안하고 있으니까, 육칠십 년 지나가는 것이 효력의 회개는 안 되고 세월만 지나가니까 주님에게는 그 천 년이 하루같이, 긴 세윌이 날아가듯이 날아가고 회개는 안 되니까 안타깝고 의인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그 면은 너무 세월이 지루한데 그렇게 대속의 어려움을 당하고 징계를 받아도 회개의 효력이 나지 안하고 세월은 벌써 다 지나가고 마는 것을 볼 때에 천 년이 하루같이 신속하다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나타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주의 약속이 더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마는서도 참 주님의 재림은 더디다, 또 주님의 재림은 말만 그렇지 없는지 모르겠다, 또 회개케 하기 위해서 했지 실상은 없다.’ 이런 악령의 유혹들이 많이 있지마는서도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렇게 주님이 회개하기를 기다려서 이렇게 참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지 재림의 심판이 없거나 인간에 죄의 보응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한 없는 자비와 용서로 우리를 대하시지마는서도 일단 시기가 지나가면 하나님은 지극한 공의로 죄에 대해서는 멸망, 의에 대해서는 영생으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에, 늘 말씀하시기를 옛날 육체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을 자꾸만 미련케 가질라고 강퍅하게 가질라고 그 의로운 일에 불의한 일에 대해서 감동되는 그 감동을 무디게 할라고 애를 써서 멸망한 거와같이 너희들은 하나님의 이 생명의 도를 들을 때에, 읽을 때에, 감동을 받을 때에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할라고 하지 말고 자꾸 예민하도록 네 마음을 해서 슬기로운 자가 되도록 해라 그렇게 권고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2절로 24절까지에 보면 우리 인류 시조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음으로 거기에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선악을 규정지우는 것이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중에 일위와같이 사람들이 선악을 규정지우게 되었으니 ‘그들을 동산에서 쫓아내자’ 하고서 동산에서 쫓아냈습니다. 자유의 동산에서 쫓겨났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동산에서 쫓겨났고 하나님의 축복의 동산에서 쫓겨나서 그때부터 땅을 파는 그런 고난이 생겼고 또 여인은 여인으로서의 고통하는 일이 생겼고 남자는 남자로서의 고통하는 일이 생겼고 인간과 인간이 원수가 되었고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이 원수가 되었고 이 토지와도 사람이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과 사람도 그 사이가 원수가 되어졌던 것입니다.
이래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원수가 됐습니다.
원수 됐는데, 선악과 먹은 후에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같이 됐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동산에서 쫓아내자 하고서 쫓겨난 그다음부터 사망과 고난이 인생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중 하나같이 됐다는 말씀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는 일체인 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모든 선악 규정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거슬리면 악이 되고 하나님과 일치되면 선이 되는 그것이 올바른 처사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처럼 완전자가 아닌데, 사람이 하나님처럼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모든 선악을 규정하는 자가 되었으니 악이 악의 중심으로 악의 위주로, 악을 좋아하면 선, 악을 싫어하면 악 이렇게, 온전치 못한 것이, 완전치 못한 것이, 완전한 위치에 있어 가지고서 완전자 자체 중심으로 위주로 모든 존재들이 살아야 다 영생과 평강을 누리기 때문에 이렇게 완전자는 완전자 중심 위주로 하지마는서도 모든 것에 미약하고 또 벌써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던 것이 배암의 꼬임을 받아 가지고 ‘네가 이 선악과를 먹을 때에는 내가 하나님같이 된다’ 하는 고 유혹에서 하나님같이 될라고, 하나님될라고 제가 선악과 먹고 난 다음부터 벌써 선악의 판단을 제 중심 제 위주로 판단하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자’ 하고서 그다음부터 모든 존재와 원수가 되었고 심지어 아담과 해와까지도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과도 원수가 되고 그때부터 여인은 여인으로서의, 먼저 범죄했기 때문에. 고통이 심했고 남자는 그다음에 따라 범죄했기 때문에 고통이 심해서 행한 대로의 그 고통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봉독한 말씀에, 회개하여서 이 멸망을 받지 않기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원하시는 이 회개를 우리가 해야 하겠는데 오늘 그 회개에 대해서 우리가 성경을 살피면서 이 회개로 하나님의 노를 풀고 하나님의 이 징계를 벗어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돼야 되겠다 하는 것이 오늘 말씀을 증거하게 된 동기입니다. 이것은 제가 한 삼 일 전부터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에 오늘 주일은 회개에 대해서 증거를 해서, 가까이 닥치고 있고 우리가 또 현재에 당하고 있는 이 모든 하나님의 징계 곧 재앙들을 피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오늘 말씀을 증거한 동기입니다.
그러기에, 이 인류가 멸망받게 된 원인이, 하나님이 아닌 완전자가 아닌 자가 완전자와같이 모든 사물 인인 관계에 처리를 하는 요것이 인간의 근본 원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원죄를 회개하지 안하면 자기가 이런 저런 어떤 죄를 회개하고 의롭게 사는 거 같지마는서도 실은 뿌럭지를 파보면 그것이 다 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죄는 무슨 죄가 원죄냐? 원죄는 하나님처럼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는 이것이 원죄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완전자라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할 수 있습니다. 완전자라면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 하는 것이 선이요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죄 중에 첫째로 근본되는 죄 이 죄를 회개해야 되니 이 죄는 어떤 죄냐? 이 죄는 모든 사람들이나 물건이나 일들이나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모든 존재에게 대할 때에 자기 위주로, 자기를 위해서,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표준해 가지고 이와같이 하는 요 죄를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요것을 회개하지 안하면 다른 그런 죄를 회개한다고 해도 그런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는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보다도 자기를 해하는 것은 자기에게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죄 하나가 해독이 더 큽니다. 공연히 다른 사람들의 죄를 가지고 야단지기지마는서도 천하 인간의 죄를 똘똘 뭉친 그 죄의 해독보다도 자기에게 있는 자타가 알고 있는 그 보편의 죄 하나 그것이 자기에게는 해독이 큰 것입니다. 또 자기에게 자타가 아는 죄 그 전부보다 다른 사람이 모르고 자기만 알고 있는 그 죄 하나가 해독이 큽니다. 또 자기가, 다른 사람은 모르고 자기만 알고 있는 그 죄 그 전부보다 큰 죄가 있으니 그것은 무엇인가? 자기가 모르고 짓는 그 죄가 해독이 더 큽니다. 그러면 자기가 모르는 그 죄 그 모든 것보다 제일 해독이 큰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곧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죄악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것으로 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의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취미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정신대로, 자기 성질대로, 자기 기분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계획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좋고, 자기 위해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는 그것은, 창세기 3장 1절 이하에 내려보면 그 결과는 무엇을 만드는가? 첫째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 중심인 나라에 하나님 중심 외에 딴 중심이 생겨졌으니까 그것은 그 나라의 왕이 둘 아닙니까? 둘이 생겨졌으면 하나님과 왕이 셋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사람은 막바로 그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립해서, 대적해서 싸울라고 나서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보다 강합니까? 안 됩니다.
그러기에, 그 결과는, 자기의 모든 소유와 원수가 됩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것은 그거는 만고에 내 통장 안에 넣어 놨으니까 이거는 내 돈이다 하는데 그 돈이 자기를 망치는 원수가 됩니다. 이것은 내 회사니까 하니까 자기 회사가 자기를 망치는 것이 됩니다. 자기의 직장이라면 그 직장이 자기를 망치는 것이 됩니다. 자기의 동산 부동산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능, 그거 다 자기의 소유 아닙니까? 자기 소유가 들어서 자기를 망치는 원수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요게서 똑똑히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다음, 범죄한 그 후부터는, 아담 해와에게 전적 복종하고 위하는 것이 되어 있던 것이 전부 아담 해와의 대적이 됐지 대적 안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담 해와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분만 기쁘게 영화롭게, 그분만 존귀케, 그분에게만 속해서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에게만 연결되고 피동되고 그분만이 자기의 배우자로 자기의 짝으로 삼아 가지고 이렇게 살 때에 하나님의 지으신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됐고 그의 것이 된 것이 인류 시조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후에 고린도전서 3장 21절 이하에 또 발표하시기를 우리가 하나님 중심인 하나님 위주인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일들이, 모든 운동들이, 모든 힘들이 이것이 다 네것이 되어서 네가 통치하고 네 주권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되어지리라 하는 것을 계약으로 맺어 주셨습니다. 내나 그것이 옛날 있는 계약이요 다시 한번 재선포해서 강조한 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소유와 원수가 되었고, 아담 해와는 그렇게 단 둘이 친밀 했지마는서도 아담 해와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다음부터,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하니까 ‘하나님이 내게 준 여인 그것이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책임이 없습니다. 그때부터 서로 책임 전가를 하고 대적이 됐던 것입니다. 또 여자에게 말하니까 ‘배암 그가 들어서 나에게 그렇게 했습니다’ 배암과 원수됐고 토지도 원수됐고 전부가 다 원수됐습니다. 하나님과도 원수가 됐습니다.
하나님과 원수되고 사람과 원수되고 소유와 원수되고 모든 만물과 원수되고 다 되고 마지막에는 자기 주격인 영, 영이 자기인데, 자기와 원수됐습니다. 자기와 원수되고, 악령 악성 악습이 자기를 죽인 원수인데 원수가, 그것이 자기처럼 가장을 해 가지고서 심신의 주격의 위치에서 심신을 지배하고 영은 죽어서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행동이 전혀 없는 무와 같은 존재로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만히 살펴보고 ‘요 사건은 내 중심으로 했다 요거는 나를 위해서 했다’ 고럴 때에 반드시 쪽발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쪽발로 걸어가라 두 쪽으로 걸어가라 했는데 여게서 ‘이것은 하나님 중심이겠느냐 내 중심이겠느냐? 그리 아니면 돈 중심 이겠느냐, 국가 중심이겠느냐, 민족 중심이겠느냐, 이십세기의 문화 운동 중심이겠느냐, 전인류 중심이겠느냐, 어떤 행락 중심이겠느냐, 내 욕심 중심이겠느냐, 정말로 완전하신 이 하나님 중심이냐?’ 반드시 거게서 두 길이 있으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안하고 피조물 무엇이든지 그거 중심으로 한 것이면 고걸 하고 난 다음에 고대로, 제가 기억 못 하면 기록해 놓고 기다려야 됩니다. 해 놓고 뒤에 보면은 일 년 만에 혹은 이 년 만에 혹 십 년 만에 혹은 이십 년 만에 반드시 그것이 자기를 죽였고 하나님과 원수 만들었고 인간과 원수가 되었고 ‘모든 소유와 모든 존재와 원수의 결과를 맺은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원치 안하는 모든 전체에 불행 오는 것을 찾아 들어가면 원인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하나님 배신한 그것이 원인이었지마는서도 그 원인을 찾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마귀가 혼돈시키니까 찾지 못하고 중간에, 하나님이 자기를 망치는 도구로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의 무기인 도구를 보고서 ‘네가 날 망쳤다. 네가 내 원수다. 네가 했다.’ 사람과 모든 피조물과 사건들에게, 사업들에게 이렇게 복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거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 하나님의 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몽둥이에 맞아 가지고서 전멸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멸망이라 하는 것은 계속해서 ‘화불단행’ 이라 ‘화라 하는 것은 단번으로 끝나는 거 아니다. 화에서 화가 화에서 화가 자꾸 꼬리를 물고서 자꾸 들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외형만 보고서 통계를 맞춰서 그렇게 발표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요사이도 뭐 평신도는 다 냅두고 교역자 중에, 교역자들 가운데에 어떤 교회는 지금 그 교회가 재미 있게 나갔었는데 그 교회가 일이 나 가지고서 그 교역자가 요번 공회 때에 이제 이동이 될 것입니다. 이동이 안 되고 거게 냅두면은 쫓겨나가 버립니다. 들어내 버립니다. 결국은 들어내서 그가 거기 있지를 못해요. 왜? 하나님이 들어내니까 인간이 어찌 거기 있겠습니까? 그런 교회가 여러 교회가 있습니다.
어제도 어떤 사람하고 전화를 해서 말하기를, ‘그 사람은 요번 총공회 때에 이동을 하든지 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을 고쳐 줘야 되지 고쳐 주지 안하고 자꾸 형편의 앞길만 열어 준다고 해서 되는 거는 아니다. 그 속에 살해하는 독이 그 속에 들어 있으니까 그 독을 뽑아서 치료를 해 줘야 되지 치료를 해 주지 안하면 안 된다’ 이랬는데 내가 그라니까 그분도, 전화하는 상대방도 말하기를 ‘녜’ 처음에는 못 알아 듣고 둥둥둥거리더마는 나중에는 `녜, 그렇습니다’ ‘그렇다니 뭐이 그렇다는 말이냐?' `그 사람은 그런 데는 민첩합니다.’ ‘뭐이 민첩해?' `자기가 교회는 목회 냅두고 어떻게 하면 내 가족을 위할까 하는 요 가족 위하는 것은 요 모퉁이로 살며시 위하고 저 모퉁이로 위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하는 것도 보이지 안하고 위하지도 안하는 척 하면서 자기 가족을 중심으로 위주로 해 가지고서 하는 고런 꾀는 민첩하고 날카롭습니다.’ 그래 내가 있다가 ‘고거다. 고걸 고쳐 줘야 된다. 그 사람은 다른 면으로는 그게 없는데 꼭 물질 가지고서 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총공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시 다른 데로 이동시켜 주면 그 사람에게 금치산령을 내려서 다시는 그 교회 경제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든지 다른 사람이 관리하고 그저 하나의 고용 목자로 그 목회를 고용 목자로 하고 그 교회에 다른 거는 다 권리를 줘도 경제권이라 하는 것은 가지지 못하도록 해야 그 사람이 앞으로 마귀 시험에 끌려서 이렇게 망치지 안하고, 저 망하면 교회 망하고 교회 망하면 저 망하고, 망치는 일을 하지 안하지 그거 안하면 안 된다’ 하니까 그 사람이, 전화받는 상대방이 대답이없었습니다. 엉뚱한 소리만 자꾸 합니다. 자꾸 하고 그래 있습니다. 그라다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좀 더 생각해 봐라. 내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데 좀 더 생각해 봐야 된다’ 하고서 끊었는데 이튿날 전화가 왔읍디다. 전화가 와서 ‘과연 이제 목사님 말씀을 내가 듣고 오래 궁구하는 가운데서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두 사람은 의견을 일치를 봤습니다. 앞으로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대로 실시가 될 것입니다. 또 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망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망하느냐? 주님을 위하지 안하고, 주님은 완전자신데, 완전을 위하면 완전을 위하는 것은 완전이 되는 것입니다. 옳고 곧은 것을 위하면 옳고 곧은 것을 위하는 것은 옳은 것이 되고 곧은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렇지 안하고 자기를 위하는 이런 일을 해서, 장로를 세워도 ‘요 장로를 세우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주님의 교회에 유익이 되겠느냐, 주님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겠느냐?’ 고것은 생각지 안하고 ‘요 사람을 장로를 내면 요거는 틀림없는 내 자식과 같고 내 사람이기 때문에 요거 장로 내놓으면 요거는 내 사람이니까 장로가 내 사람되면은 이 교회는 마음대로 거머쥐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원죄가 그와같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웃습니다. 하나님이 털끝만한 것도 당신이 주권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그런 수단 방법을 가지고 그 사람 하나 제 사람 만들었으면 된다고 하는 고 자에게는 하나님이 꼭 고 사람을 뒤에, 세운 목사와 대립이 되구로 해 가지고서 고 사람이 배척해서 배척을 당합니다.
언제 여기 목사가 교회에 어려움이 있어 장로하고 대립이 되고 이렇다고 하기 때문에 내가 첫말에 말하기를 ‘그걸, 그 장로를 누가 세웠느냐? 제가 세웠습니다. 내가 세운 장로가 날 그렇게 배척을 합니다.’ ‘네가 세웠기 때문에 널 배척하지 다른 사람이 세웠으면 널 배척하지 안하지, 그 장로 세울 때에 너를 위해서 장로를 세웠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장로로 하여금 어떻게 하겠느냐? 그 장로로 하여금 너를 절단내도록 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성경에 나타내 놓은 하나님의 지공법이 아니냐?’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늘 죄를 회개하는데,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하나님과 나하고 친밀히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히 됩니다. 또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과 나와 친밀히 되니까 하나님의 적 곧 나를 해치는 자들이, 빛이 오면 어두움이 물러가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와 하나 되면은 나를 해할 자는 다 쫓겨서 달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원수가 방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내 힘으로서는, 내 실력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다 공짜배기로 주시는 은혜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나는 하나밖에는 못 할 터인데 하나님은 억만을 했으니까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고차원의 것을 하나님이 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라, 공으로 주신 것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모든 행사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또 하나님께서 내가 잘못 저질러 놓은 그 모든 것을 내가 회개하니까, 고치니까 잘못 저지른 댓가는 예수님이 그것 때문에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대형이 그것을 다 책임지면 그만 그것으로 해결돼 버립니다. 천하 인간이 다 뭐라고 말해도 당신이 그 형을 책임졌기 때문에 지공 심판에서 이 사람의 이 잘못을 예수님이 대형했기 때문에, 형벌을 받았는데 한 죄에서 형벌을 받았으면 그 죄는 없어지는 것이지 형벌을 받아도 그 죄를 그 뒤에 책임을 지울 수 없고 형은 남아 있지를 않는 것입니다. 잘못이 다 해결이 돼지지 또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축복을 하십니다.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아무리 축복한다고 해도 축복을 할 만한 그런 무슨 거리가 있어야 되지 거리가 없으면 되겠느냐, 아무리 불이 있다 해도 섶이 있어야 불이 커지지 탈 섶이 없는데 무슨 큰 불이 되어지겠느냐?’ 이런 논리를 많이 하면서 ‘뭘,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도 축복할 거리가 있어야 되니까 하나님이 축복할 거리가 있어야 되니 이런 사업도 시작하고 저런 사업도 시작하고 모든 것들을 좀 번거로이 시작해 놔야 뭐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비유컨대는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없어서 파출부를 다닙니다. 식모로 갈라 해도 식구 많으니까 가도 노상 들어서 밥해 줄 수 없고 하니까 이제 여게도 가 가지고 그 시간에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바짝 일해 주고 품받는 것. 파출부하는 일은 나중에 가서 골병이 듭니다. 이렇게, ‘그거야 뭐 파출부하는 이까짓 거야 축복받아 봤자 무슨 축복이 올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파출부로 가 가지고서 일하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 사람이 그걸 하면서 조심 있게 신실하게 진실하게 할라고 합니다. 아무리 진실하게 할라고 해도 그 주인이 있다가 생각하기를 ‘그 사람 일은 신실하게 한다’ 그것으로 끝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마음을 주장하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신실하게 하니까 그 사람의 가치를 좀 봐라’ ‘이 사람은 무얼 좀 시켰으면 좋겠다’ 이래 가지고, 파출부면 여자 아닙니까? 파출부로 시작해 가지고서, 그 사람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더 높은 위치에서 그 사람이 등용되게 되고 등용되게 되고 등용되게 되니까 여장관이 돼 버렸습니다. 여자 장관이 돼. 국민 학교도 안 나온 게 여자 장관이 돼. 이 세상에서도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얼마 전에도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은 국민 학교 뭐 사학년밖에 안 했다 하는데 그 사람이 지금 내무국에서 뭐한다 하더나? 뭐 중앙청에서 뭘하고 있다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나라에서는 노니다수라고 길바닥에 나선다는 노니다수라는 그 도가 있는데 그 도는 있는 것 다 없애 버리고 길바닥에 나서 가지고서 그 날 자기에게 닥친 일 알뜰히 충성되게 하면 거게서부터 나서 가지고라도 그 나라의 제일 대가리도 될 수 있고 어떤 제일 재벌가도 될 수 있고 어데든지 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무례한 일을 하지 말아라. 욕심을 품지 말아라. 자기 닥치는 자기 분수의 일을 하면서 진실되게 충성되게 하면은 인간 이상의 어떤 혜택이 있어 가지고서 그렇게 된다. 그 혜택을 바라는 그것이 노니다수라는 도가 있어서 한창 그것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니까, 그 파출부가 나중에 가서 장관이 됐어. 파출부가 장관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파출부를 여황으로 앉히면 뉘가 뭐라 하겠소? 여황으로 앉히면 뉘가 반대하겠소? 못 합니다.
이 사람은 이거 아무것도 없어 가지고서 찍해야 자본이 한 천 원밖에 안 되니까 돈 천 원 가지고서 뭐 계란을 팔았다 그리 아니면 생선도 썩은 거 그런 거 싼 거 그걸 가지고서 반태기에 이고 다니면서 팔았습니다. 파는데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축복하시면 그 사람이 반태기 장사에게 다른 사람의 응원이 있고 협조가 있지, 하나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죄를 회개하니까 그 사람이, 인간의 무능은 죄가 들어서 무능하게 만들고 무지는 죄가 들어서 무지하게 만들고 인간이 멸망을 자취하는 멸망은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게 들어 가지고서 멸망을 자취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위주 자기 중심 그거 없지 또 그것이 자기 생각 그런 것 없지 이라니까 모두 다 하나님을 따라서 하니까, 하나님을 따라서 생각하니 그 생각이 전지요 하나님을 따라서 행동하니까 그 행동이 전능이요 전지 전능이 그 사람과 함께 하는데 나중에 반태기 장사가 그거 하다 보니까 이거 해야 되겠고 또 이거 하다 보니까 또 저거 해야 되겠고 자꾸 하도록, 하나님이 그 자체를 온전케 해 주시지, 또 하나님이 그에게 전체 응원을 해 주시지, 모든 피조물들이 다 응원을 하지 이라니까 잠시 동안에 한국의, 세계의 갑부도 될 수가 있다 그말이오. 경제로 하면 세계의 갑부도 될 수 있어.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그의 명령을 네가 순종하면 그분이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리라’ 그것이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잠시 잠깐 동안에 될 수가 있어. ‘너’ 이랬으니까 너거 자손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고 ‘너’ 를 했으니까 그거는 단수니까 자기 당년에 그렇게 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렇게 될 수 있는데 사람이 다 일방적으로 그 길로만 인도하지 안하고 이제, 그렇게 되는 사람에게는 온 천하를 다 얻어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다 뛰어나는 경제와 문화와 정권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보다 큰 것이, 억억만도 더 큰 것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제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더불어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예수님이 산 그생애는 인간이 볼 때에 어리석은 하나의 낙오자라고 봤고 그는 무능자라고 봤고 아무 중심 없고 뼈대 없는 사람이라고 다 그래 봤지마는서도 ‘이는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이러기 때문에, 이런 길이 있으니까 이렇게 신앙에 입각해서 사는 사람들은 땅의 그런 것을 보지 안하고, 베드로가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물과 고기와 배를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이제 ‘사람 취하리라’ 하는 사람 수입 사람 성공에 착안을 해 가지고서 그는 출발했던 것입니다. 사람 성공에 천하를 얻는 것보다도 자기라는 사람 성공하는 것이 위대하고 또 온 천하를 어떻게 구원하는 것보다도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구원해서 참 사람 만드는 것이 그것이 수입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간 개조에 자기가 착안을 해서 착수를 하고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어리석다 미련하다’ 하지마는서도 이것을 해서 그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주일 학교 반사라든지 중간반 반사라든지 권찰이든지 하는 분들이 깨달은 분들은 ‘미련하다. 저거 아무 유익 없고 공연히 헛된 일 왜 저래 하는가?’ 생각하나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그는 사람, 사람을 개조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수입에 자기 수입으로 삼고 착안해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마지막에 순생도 하고 순교도 하고 다 바치지마는서도, 명예나 무슨 다른 사람에게 뭐 칭찬이나 공로나 땅의 더러운 이익 이런 걸 위해서 반사노릇을 한다든지 중간반 반사노릇을 한다든지 권찰노릇을 한다든지 목회를 한다든지 장로를 한다든지 하는 이런 사람들은 마지막에 ‘심은 대로 거두리라’ 네가 땅엣 것을 소원하고 그거 했으니까 성공하면 땅엣 것 성공하고, 땅엣 것 성공하니까 예수님에게는 받을 것이 없어. 예수님이 그것 때문에 피 흘리신 것이 아니라. 이러니까, 일생 동안 살다가 마지막 세상 떠날 때에 나는 세상에 돈은 성공했지마는서도 신앙 성공은 하지 못했다 하고서 마지막에 가슴치면서 울면서 가는 것이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산 그 결과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요한계시 18장 4절로 10절까지에 보면은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도들아 그 가운데에서 나오라. 그 가운데에서 나오라.
그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했으니 빨리 나와서 그들의 멸망에 같이 참여하지 않도록 하라’ 아무리 구속받은 사람이지마는서도 죄 가운데에 빠졌으면 죄를 칠 때 그도 같이 쳐야 되지 어떻게 안 칠 수가 있겠습니까? ‘거게서 빨리 나오라’ 그라면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준 대로 주고 그가 행한 대로 갑절이나 갚아 주고 또 그가 이런 것 저런 것을 섞어서 혼합시킨 그대로’ 혼합을 좋아하는 인간이니까. 이것 저것 혼합을 좋아하는 인간, 옷도 얼룽덜룽 혼합을 좋아합니다.
사람들도 이 사람 이 말 저 말 거짓말 참말 이래 가지고 혼합시켜서 그런 거라야 취미하지 꼭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은 재미 없다고 친하지도 안할라 합니다. 이렇게 ‘섞인 것을 좋아하는 자에게는 섞은 것으로서, 배나 섞어서 섞인 것 가지고서 골탕 쥐먹고 죽도록 그렇게 해 놔라. 섞은 것은 섞어 주고 자기를 영화롭게 어떻게 사치했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이랬습니다.
요한계시 18장은 말세의 예언인데, 예수님의 재림 때에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하다 했습니다.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하다. 이러니까 그 관영한 죄악에서 네가 멸망하지 안할라 하거든 거게서 나오너라 네가 나와야 멸망하지 안하지 다 망하는, 하늘까지 관영한 죄 속에 들어 있으면 너도 망하지 별 수가 뭐 있겠느냐? 거게서 나오너라.’ 그들의 죄악을 한 말로 말하면 ‘그가 자기 중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행한 것이 자기 중심으로 했고 모든 사람에게 받는 것이 자기 중심으로 했고 사람으로 더불어 관계한 거, 여수 거래한 거, 모든 것은 정의 진리 참이라는 것이 없고 막 혼돈시켜 가지고 사람을 어지럽게 만드는 그것이 저희의 생활 방편이라. 그래 가지고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사치스럽게 자기를 아름답게 꾸민 자기 중심이라. 그러기 때문에 거게서 나오너라. 이 죄악이 하늘까지 관영했다. ’ 그런고로 하루 동안에 멸망이 이를 터인데 저는 말하기를 ‘나는 과부 아니다. 나는 여황이다. 나는 여자는 여자이지마는 나는 과부가 아니고 여황이다.’ 상징적으로 말했습니다.
과부가 아니라 말은 인간은, 피조물은 하나님과 짝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과 짝이 돼서 하나님은 창조주요 피조물은 하나님의 대상돼 가지고 피조물은 하나님만 상대하고 이렇게 살아야 될 것이 피조물인데, 거게 말하기를 ‘나는 과부가 아니라’ 하나님 상대가 없어졌으니까, 하나님 상대 버렸으니까 이제 저는, 말하자면 참된 짝을 잊어 버렸으니까 상징적으로 말하면 과부인데 ‘나는 과부가 아니라 여황으로 앉은 자다’ 나는 근본부터 어떤 상대가 있어 가지고 살 자가 아니고 나는 내 자력으로 가지고 살 수 있는 자다 이렇게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다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너에게 하루 동안에 멸망이 이르러서 다 전멸되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죄악도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죄악입니다.
오늘은 이 원죄를 우리가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면 망합니다. 제가 아무리 온 천하를 점령해도 제가 제 주인이 되었으면 망합니다.
제가 저를 주장하면 망합니다. 제가 저를 중심으로 하면 망합니다. 제가 저 좋은 대로 하면 망합니다. 제가 저 기쁜대로 하면 망합니다. 제가 제 욕심대로 하면 망합니다. 제가 제 취미대로 하면 망합니다. 제가 제 꾀대로 하면 망합니다.
이것 때문에 멸망받는 것을 예수님께서 오셔 가지고 우리를 구속하실 때에, 빌립보 2장 5절 이하에 보면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그는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지마는서도 동등될 걸로 여지기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서 하나님에 대해서 종의 위치에서 종의 형상인, 또 사람의 모양을 입고 죽기까지 복종했다 이것이 우리 구속의 첫열매인 걸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 절대 피동이지 능동이나 자기 독행하는 일이 없는 것이 우리 주님의 대속의 방편이었습니다.
이랬는데, 우리가 이렇게 타락한 것을 구출해 가지고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이것으로서 살아 가지고 완전히 멸망해서 희망 없게 영원히 멸망받아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당신이, 다 같은 하나님의 본체지마는서도 아버지 중심 아버지 위주로 그에게만 피동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대속의 길을 열어 가지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시, 사망에서 생명의 세계로 복구됐으니까 우리가 사는 것은 자기 중심인, 자기 위주인, 어떤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인 요걸 회개해야 됩니다. 요걸 회개하면 하나님과 친합이 되고 요거 회개하지 안하면 하나님과 원수됩니다. 요걸 깨달으십시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이 ‘한 달 동안만 너거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아라’ 요렇게 말을 할 때에 다니엘이 ‘예, 그러면 한 달 동안 그래 하겠습니다.’ 하면 사자구덩이에 던지움을 받지 안했을 터인데 다니엘은 거게서, 내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오늘까지 살았는데 고라면 요 다리오 왕 중심이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해서 다리오 왕의 말을 듣지 안하고 하나님 중심 위주로 하다가서 사자구덩이에 던지움을 받았습니다. 던지움을 받았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에 그까짓 게 문제 없이 그는 승리하고 완전히 복구를 하고서 자기를 죽일라 하는 원수들에게서 구출을 받았던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그가 다리오 왕이 말한 대로 했다면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다리오 왕 중심이 됐으면 저는 두말 할 것 없이 죽습니다. 고걸 여러분들이 읽어보면은, 다니엘이 그때 그렇게 해서 사자구덩이를 통과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는 승리를 하지 못했다면은 다니엘이 살 길이 없습니다. 살 구멍은 없습니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이 무슨 일이든지 닥칠 때에 이러면 이거 하나님 중심이냐 왕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인류 중심이냐 국가 중심이냐 내 가정 중심이냐 네 중심이냐 어떤 중심이라도 ‘이것은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내 구원 잘 이룰라고 민족이 망하는 것도 못 본다 해서는 안 되겠다. 나보다 민족이 크지 않느냐?’ 이래 생각해 가지고서 그런 외통에 몰렸을 때에는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이래 하는 것보다도 인류를 구원할라 하면 이렇게 해야 되니까 인류 중심으로 이제 해야 되겠다’ 썩은 자입니다. 제가 인류 중심으로 하면 저도 망했고 인류도 다 망해 버리고 맙니다. 저 한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그와같이 했을 때에 저도 살고 그 민족도 국가도 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자기대로는 다 한짐됩니다. 우리가 갈래길을 딱 만나서 ‘여게서는 하나님 위주냐 피조물 위주냐, 하나님 중심이냐 피조물 중심이냐, 하나님에게 순종 피동이냐 어떤 피조물에게 피동이냐’ 요 둘이 갈래길이니까, 고 갈래길에서, 뭐 저 사람 ‘너거 가정에서 그러는 그거야 뭐 그거 찍해야 그거 공장장이 말하는 거, 공장장 말하는 거야 그렇게 어길 수 있지 않나? 나는 지금 장관이기 때문에 대통령 명령 어기는 것이 어렵지마는 그까짓 거야 어렵지 않지 않느냐?’ 네가 대통령 명령 어기는 그거나, 그거 직공이 공장장 명령 어기는 그거나, 오늘 조그만한 아이가 이제 자기보다 큰 아이가 있다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그 명령 어기는 것이나 제 힘에는 다 한짐이 되고 한 힘이 되고 다 한짐에 빡빡한 것이다.
어데서든지 이 갈래길 있을 때에 너 좋도록 하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인간 좋도록 하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너거 가정 좋도록 하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네 직장과 사업 좋도록 하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전인류 좋도록 하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이러면 이 인류 좋아하는 거야 얼마나 큰 것 같지마는서도 고게서 내가 죽고 살고 나와 관련된 것이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 것인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 생각 가지고서 이거는 하나님의 뜻은 위반되지마는서도 요렇게 해야 뭐 내게 유익이 되고 하겠다 하는 고것이 반드시 조만간에 저를전부 망치고, 그게 들어서 저를 망치고 망치고 망쳤고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것을 망쳤다는 것을 제가 깨닫지 못하면 마지막에 지옥이나 가서 알든지 그리 아니면 불택자든지 택한 자라면은 마지막에 죽을 때에 그때사 후회하고 죽고 마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요 원죄를 회개합시다. 원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원죄는 하나님 중심할 것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중심하는 거 저나 뭐 어떤 것이나, 피조물 중심 위주하는 고것이 원죄요, 선은 하나님 중심 위주가 요것이 선이 되는 것입니다.
본죄라 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을 버리고서 피조물 중심, 자타의 피조물 중심, 돈이든지 뭐이든지 직장이든지 이십세기 과학이라 자기는 지식 중심으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오만 거 머리 싸 짜매고 하지마는서도 그것도 가치가 이 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 중심이 되면은 그것이 새끼를 낳아 가지고서 행동하는 것은 전부 본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원죄는 인류 시조 때에 그 중심 바꾼 것이 원죄요, 그 다음에 본죄라 하는 것은 중심 바꾼 자가 행동한 모든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다 본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요것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목회를 해도 제 중심이 딴데 있으면 망합니다. 압니다. ‘네가 왜 힘을 잃었느냐?’ 힘 잃은 것은 그 중심이 딴데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지 안하고, 위주가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렇게 따르지 안하고,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은 하나입니다. 진리 위함이 하나님 위함이요 영감 위함이 하나님 위함이요 하나님 위함이 영감과 진리 위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예 우리가 하나님 중심 위주가 아니면, 하나님 중심 위주가 뭐인가? 그것이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하는 것이요 성신의 감화대로 하는 것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대로 하는 것이니 이것을 위하고 이것 중심으로서 여게 피동된 게 아니면 네가 네 가정을, 네 자신을 뭐 네 상대방을, 애인을 너 뭐 상대를 어떤 걸 위한다 해도 고것은 전부, 네 부모와 형제와 뭘 위한다 해도 고것은 네가 들어서 그를 죽이고 망쳐 버렸다 하는 결론이 조만간에 나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전은 우리가 이 원죄 이것을 회개합시다. 중심 이 죄를 회개치 안하면 안 됩니다. 이 중심을 회개치 안하면 하나님과 나와 적입니다.
마귀와 나와는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나를 대적하는 능력이 됩니다.
악령의 능력은 나를 돕는 능력이 됩니다. 악령이 도우면 뭐합니까? 악령이 돕는 것은 죄짓는 일 도우지 악령은 의를 행하는 데 돕지 못합니다. 악령이 나를 도우면 죄를 자꾸 잘 짓도록, 많이 짓도록, 크게 짓도록, 깊이 짓도록, 요동치 못하게 짓도록, 그것이 악령의 도움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인 은혜는 없어지고 자꾸 마귀가 꼬와서 미혹받아 가지고서 자멸하는 것만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징계만 자꾸 받으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잘못 하니까 잘못한다고 자꾸 꾸중하고 이라니까, 징계를 하니 안타깝지 않습니까? 맞아서 벌써 징계 한번 받고 몇 해 가지 또 한번 받으면 몇 해 가지 징계 한번 받고 가면은 삼 년 사 년 가지 그래도 그거 죽이지 안하고 깨닫도록 할라고 하니까 그 징계가 대번에 가면은 못 깨달을 터이니까 세월을, 오랜 세월을 지내 가 가지고 그게 깨닫도록 할라 하니까 벌써 징계 몇 번 받으면 몇 해 지나가 버리니까 그만 아이가 늙어져 버리고 늙어진 것이 이제 죽어져 버리고 하니까 얼마나 뭐 할 수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원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과 나와 하나됩니다. 원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과 나와 하나됩니다.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면 그분은 지극히 크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면은 첫째 유익이 무엇입니까? 마귀란 놈이 달아납니다.
죄가 달아납니다. 사망이 달아납니다. 근방에 오지를 못합니다. 그거는 다 어두움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면 빛이 나와 같이 하기 때문에 어두움은 나에게 가까이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동행하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니 하나님이 내 지능을 당신의 지능으로 내 지능을 살려 가지고서 내 지능이나 내 지능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능으로 움직이니까 그 지능이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창조했는데 그 지능이 창조해 놓은 만물을 이리 저리 자유할 수가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원죄를 회개해서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면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해 주시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그게 다 은혜라 축복이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기사로 되어지는데 축복과 기사로 되어질 때에 ‘축복을 할 만한 거리가 있어야 되지 뭐 하지’ 거리가 필요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거들랑은 빈손 들고 ‘내가 뭘할꼬? 아무것도 없고 다른 사람이 날 시키지도 안하는데’ 그라거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하십시오.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그라면 예배당에 와 가지고서 이 마당이나 쓸까?’ 마당 쓰는데 다른 사람이 그것도 못 쓸구로 하면 또 저게 길을 쓸고 길도 쓰는데 못 쓸게 하거든 공동 변소에 가서 공동 변소 소제를 하십시오. 아무도 하지 말라고 금하지 않는 일을, 않는 그 옳은 일, 죄되지 않는 일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거게서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발전시키고 진출시켜서 성공 못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울을 갈 때에 어데서만 서울 갑니까? ‘꼭 서울을 갈라 하면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야 서울된다’ 북쪽에서고 남쪽이고 서쪽이고 상관이 없습니다. 서울로 가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라도 서울만 향해서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어떤 처지와 입장에 있어서 자기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요 믿음 지키는 요 일, 원죄를 회개하고 원죄 회개하고 난 다음에 기회 있는 대로 본죄를 설설 회개해서 회개, 죄 요놈만 회개하면은, 죄의 값은 사망인데 망하는 거와 죽는 것은 다 없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는 원죄 회개하는 요거부터 하고 오후에는 또 계속하겠습니다. 오전에는 원죄 회개.
원죄 회개는, 자기가 뭘하든지, 사업을 해도 이 사업을 하면 보자 하나님이 좋아하시겠느냐 싫어하시겠느냐? 이 사업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느냐 욕이 되겠느냐? 이 사업을 하면은 내가 하나님 섬기는 일에 지장이 없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자유가 있겠느냐? 하나님 중심 위주로 모든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방편을 취할 때에 그 경영을 하나님 중심 위주로 경영하고 또 뒤에 평가할 때도 하나님 중심 위주로 평가를 하십시오.
요 원죄만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기적과 축복으로 우리는 세상도 평안하게 살 수 있고 무궁 세계도 영광스럽게 살 수 있고 모두 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도 보내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고 또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피조물의 형상을 영원히 입기까지 하신 이 사랑의 하나님이 전지 전능자요 창조주요 대주재자요 주권자인데 이분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 우리가 이미 보았고 이분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까 이분의 사랑을 믿고 이분이 말씀한 대로 회개하고 이분 중심으로 살면 그것이 곧 생명입니다. 그분 중심으로 사는 그것이 생명의 원동력입니다. 그분 중심으로 움직이면 그것이 곧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습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들어와서 나 아닌 나, 나를 죽인 나, 가장하고 오는 거짓부리 나, 내 마음과 몸의 기능을 완전히 죽일라고 오는 나, 이것을 자기로 착각하고 오늘까지 미혹받아 죽고 있는 것이 저희들인데 인간 스스로는 여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것을 적으로 삼지를 못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의 능력과 이로 인한 성령님의 감화 감동과 이로 인한 진리의 능력이 와서 우리 속에 옛사람을 완전히 죽여 주시고 자기 아닌 자기를 확실히 깨닫고 자기를 망치는 모든 원수,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사욕 자율대로 사는 이것이 자기를 죽이는 악령 악성 악습의 장난인 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제는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이 자기인 것을 깨닫고 참 자기로 사는 저희들이 되도록 이 능력이 우리를 감동시켜 주시고 소생시켜 주셔서 일으켜 힘을 주시옵소서.
또 처음으로 나온 많은 형제를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들은 이제 주님의 자녀로 돌아왔사오니 주님이 장중에 잡으시고 은총 아래 품어 주셔서 저희들의 모든 사정과 처지를 다 간섭하시고 아시고 책임지시고 인도하사 평강 가운데서 나그네 생활을 잘하여 영원을 준비하는, 영육이 복받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언제든지 주님의 도우심의 기적과 축복을 바라고 사는 저희들이 되려고 삼가 주님을 모시고 살게 하여 주시고,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하는 사랑하는 종들에게 끝까지 주를 따라 이 걸음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