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4 13:24
원죄와 본죄를 회개하고
1986. 2. 16. 주일오후
본문:출애굽기 33장 1절∼1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 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니라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오전에 원죄 회개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원죄는 사람이 허물과 실수가 있지마는, 모든 잘못 된 게 다 죄이지마는 이 원죄와 본죄와는 다릅니다.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위주로 또 그분에게 피동으로 이 세 가지를 회개하는 것이 원죄 회개인데 이 세 가지 죄를 회개한 자에게 허물과 실수가 있어도 그런 것은 사소한 일이라 차차차차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물이 없으면 고기가 절로 없어지고 숲이 없으면 맹수가 없어지는 것처럼 이 원죄가 없어지면 본죄는 차차차차 말라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원죄는 하나님 중심이 자기든지 어떤 피조물 뭐 국가나 민족이나 인류나 뭐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중심 위주 거기에 피동되는 이 세 가지가, 하나님 외에 딴 자기나 나라나 개인이나 가정이나 문화나 물질이나 어떤 위주 중심이 되든지, 또 그것에게 따라서 움직여지는 피동이 되든지, 이 원죄를 범할 때는 즉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지으신 이 우주와 영계에는 하나님이 제일 머리시요 왕이 돼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 외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모든 주권자 이 자가 있으니까 하나님의 집에 왕이 둘이요 머리가 둘이요 주권자가 둘이기 때문에 이 둘은 반드시 시비가 일어나지 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원죄를 범할 때는 하나님에게 실수나 잘못이나 하나님을 섭섭하게나 뭐 순종에 모자라는 것이나 그런 것이 아니고 막바로 하나님하고 대결되는 왕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오전에 요한계시 18장에, 거게 그거는 상징으로 말한 것인데, 여인은 남편이 없으면 과부인데, 피조물은 하나님이 그의 짝이 되어 주지 안한다면 그는 짝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거기 말하기를 나는 과부가 아니라 여황으로 앉은 자이기 때문에 근본부터 나는 남편이 없는 자다 하는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짝이 아니고 나는 자존자와같이 독립으로 살 수 있다 하는 그 자라는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 중심 위주 그에게 피동되어서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속해서 사는 이것을 버려 버리면 하나님과의 일대 일의 사람이 됩니다. 일대 일의 나라가 되고 일대 일의 그 모든 개인이 되고 가정이 되고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일대 일의 맞서는 대적이 되어지고, 또 그러면 그다음으로 악령과 죄와 사망이 와 가지고서 그 사람을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심을 바꾸어서, 뭐 연약하고 실수가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또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 원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마귀와 죄와 사망이 가까이 오지를 못하고,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가 그 사람과 동행하기 때문에 그 일어나는 것은 다 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내가 너거 자손들에게 약속한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도록 내 사자를 보내서ㅡ천사를 보낸다 그말입니다.
ㅡ내가 천사를 너거와 동행시켜서 무사히 가 가지고 모든 가나안에 있는 그 토종 칠 족속을 다 그들이 범죄했기 때문에 몰아내고 너희들을 그곳에 거주하도록 그렇게 해 주겠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과 같이 가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 백성의 대표 그 모세가 ‘어째 그렇습니까? 주님이 함께 안 가신다면은 사자들, 천사하고 우리가 같이 가 가지고야 우리가 뭘 하겠습니까?’ 그것을 모세가 근심하고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라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 목이 곧은 백성이라ㅡ교만하다 말입니다ㅡ목이 곧은 백성이라. 내가 순간이라도 너희들과 같이 하면 너희들을 같이 가다가 도중에 너희들을 고만 거기서 진멸을, 완전히 싹 전멸이 돼서 하나도 종자가 없이 전멸을 할 터이니까 내가 갈 수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진멸하겠다.’ 이랬어. 다 진자 멸할 멸자 하나도 남김 없이 싹 진멸을 하겠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다른 데서는 죄를 범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혹 죄를 범하면은 몇백 명이 죽고 몇천 명이 죽고 몇만 명이 죽었지 이스라엘을 전멸시키는 일은 하지 안했습니다. 그러나, 전멸할 때에는 언제인고 하니 원죄를 범할 때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진멸하시는 그런 일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그 소리를 듣고 모세와 백성들이 다 세수도 안 하고, 그렇게 뭐 지금 모두 이십세기의 이 화장품이나 모든 몸의 장식하는 것이 그때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식이 그때에서 근원이 돼 가지고서 뻗쳐 나와서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코걸이, 귀걸이, 또 팔걸이 오만 전신에 이렇게 해서 장식을 했는데 이 소리를 듣고 난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장을 다 하지 안하고 그렇게 모든 큰 수심을 가지고서 다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이제 너거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잘 꾸며 가지고서 저만 좋게, 저만 아름답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다 저거를 나타내고 저거를 좋게 하기 위해서 하기 때문에 그런 단장품을 다 제해 버리면, 단장품을 너거에게서 완전히 끊어 버리면 내가 어떻게 할 것을 너희들에게 보이리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통회를 하면서 하나님 중심 위주로 살고 그에게만 피동되는 것으로 살지 안했던 그 죄를 아주 깊이, 마음 깊이 회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만 다 백성들이 자기가 보기 싫었습니다. 자기가 보기 싫고 그래서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를 보지 안하고 자기에게 화장이니 단장이니 귀걸이니 코걸이니 그런 게 하나도 보이지 안하고 그만 지금 하나님이 저희들과 같이 하지 안하면은 애굽에서 나온 경험대로 하루도 가지 못하고 전멸 할 수 있는 그런 적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라고 그 인도자 모세는 장막에서 좀 거리가 떨어지게 하나 회막을 쳐 놓고 그 회막에 가 가지고서 모세는 거게서 유하면서 거게서 거처하면서 하나님하고 교제하고 이라니까 이스라엘 중에서도 참 마음에 가슴 아프게 여기고 하나님의 진로를 생각하고 어짜든지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나야 되겠다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 자기 숙소인 그 장막에서 자지를 안하고 거게서 거리 먼 회막에 가 가지고 거게서 밤을 세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렇게 지냈었습니다.
그라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그 회막 앞에 갑자기 구름 기둥이 나타났습니다.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에 낮으로는 구름 기둥이 인도를 했고 밤으로는 불 기둥이 인도했을 때에 그 인도를 따라서 가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고 대적하는 일이 많았어도 그런 것들을 다 무사히, 오히려 대적하는 것이 없는 것보다 더 결과적으로 유익이 됐지 해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이들이 이렇게 자기네들만 꾸밀 줄 알고 하나님은 거석하고 그만 단장으로 사치로 이렇게 기울여졌을 때에 하나님의 구름 기둥이 없었습니다. 불 기둥이 없었습니다. 없어지고, 구름 기둥 불 기둥이 없어져도 그들은 뭐 겁낼 것 없이 지금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서 그런 거 모두 광야에서도 잘 살고 어려움 없이 사니까 그만 잔뜩 사치로만 늘어 가지고서 그렇게 지내던 때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없어도 아무 염려하지 안하고 그저 등따시고 배부르고 잘 사니까 그렇게 안심을 하고 살았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무리 타일러도 안 되고 이러니까 ‘너거끼리 가거라. 사자만 보내지 나는 가지 못한다.’ 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다가 너희들이 너거 중심 너거 위주로 하는 일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는 거게서 너희를 탁 그만 전멸시키는 그것이 내가 하나님이지 내가 그걸 안 하면은 하나님이 그 의를 거스리는 그런 죄를 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할 수 없으니, 너희들과 같이 가면 너희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니까 결국 너거들을 구원하는 게 아니고 너희들을 진멸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 사자만 보내고 나는 같이 가지 않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라다가, 그 말을 백성들이 듣고 참 마음에 심히 두려워하고 통곡하면서 단장품을 다 제하고 단장물을 다 제하고 이렇게 그들이 겸손히 애통하는 것을 보고 그래 그만 구름 기둥이 와서 지키지, 모세와 하나님이 사람끼리 서로 대화하는 것 모양으로 이렇게 서로 친밀히 대화도 하고, 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할 길도 가르치시고 이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원죄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 두 가지입니다. 원죄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피해서 상종하지를 안하고 멀리 피해서 계시든지 우리와 같이 계시게 되면 우리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지 안하시면 아무리 사자들이 와도, 하나님의 사자들이 와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지 안하시면 마귀와 죄와 사망은 언제든지 같이 합니다. 마귀와 죄와 사망은 거게를 피하지 안하고 마귀와 사망은 그들을 침노하게 되기 때문에 마귀와 죄와 사망이 침노하면 그 사람은 당장은 멸하지 안해도 모든 일이 마귀의 이용물이 되고 죄의 이용물이 되고 사망의 결과를 맺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나 죽은 것이요 그 결과에 생명에 속한 일이나 구원에 속한 일이 하나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사랑하시는 사랑의 종류가, 말하자면 한 서너 종류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동무와같이, 동무와같이 이렇게 사랑하시는 그런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동무와같이 이렇게 사랑하시는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의 단계에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땅치 안한 일이 있으면은 하나님이 그만 같이 하지 안하고 냅둬버립니다. 냅둬서, 하나님이 그에게 뭐 은혜도 베푸시지 안하고 저는 저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그만 이렇게 서로 나눠져 버리고 맙니다.
또, 그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마치 부모와 자녀와 같은, 부모와 자녀의 사이와 같은 그런 사랑을 가진 그런 수준에도 있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그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징계도 하고, 또 이렇게 권유도 하고, 종아리도 깔리고 하는 것 모양으로 그렇게 이리 저리 어려움을 당해 가지고서 그 사람을 회개시키는 그런 역사를 합니다.
그러나, 제일 높은 사랑은 무슨 사람인고 하니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부부의 사랑입니다. 이 부부의 사랑은 그것은, 원죄를 회개하고 주님과 이와같이 가깝게 결합이 됐다가, 주님 중심으로 주님 위주로 이래 살다가 이제 그 중심을 바꿔 버리면은 그것을 가리켜서 마치 그 아내가 남편을 두고 정조를 변해서 간부로 더불어 사귀는 거와 같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그저 친구 정도의 관계를 가진 사람도 있고, 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그래 가진 사람도 있고 주님으로 더불어 신랑과 신부의 그런 관계인 최고의 은혜의 위치에 있는 그런 신앙 수준도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차차차차 밑에서부터 우리가 신앙으로 회개해 올라가서 참 이제는 원죄를 회개해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위주,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이것이 되어져야 정상적으로 이제 성도의 본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게 될 때 여게서는, 친밀하다는 말은, 그 이스라엘은 친구정도의 사랑에 있지 안했고, 부모와 자녀와 같은 그런 정도의 사랑에 있지를 안했고,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이 부부 정도의 최고의 사랑을 가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만족했습니다.이스라엘은 하나님 없으면 한시라도 살지 못할 줄 알았고 또 하나님 없이는 일보라도 걸어갈 수가 없는 줄 알아서 꼭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입어야 하고 하나님이 동행해 주셔야 되지 동행해 주시지 안하면 살 수 없다는 요런 감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처음 인도해 내 가지고 광야로 이래 올 때는 참 만족을 했습니다. 만족하다가 광야에 와 가지고 그들이 이 망령과 패역을 부려서 하나님이 걱정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광야에서 다 죽어 버리고 여호수아 갈렙만 가나안을 들어갔지 나머지기 사람들은 들어 가지를 못하고 유아들과 거기서 생산된 사람들만 갔습니다.
그때에 그 한 토막인데,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대속을 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짝이 되는 그 짝의 그 수준의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 성도들을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남편으로, 또 세상을 간부로, 성도를 신부로 이렇게 한 것은 비유가 아니고, 하나 예화가 아닙니다. 그게 실화입니다. 그게 실상이고 인간들이 부부라 하는 것은 그 사실을 계시해 보이기 위해서 이 형식 계시로 부부 제도를 하나님이 내신 것입니다. 그것을 에베소서 5장에 보면은 밝히 나타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부부라 말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짝이라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 부부라 말하면 그만, 육을 가진 육적 이성 부부와같이, 성부부와같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게서 오해를 하기도 하고 또 그 설교를 많이 하지도 못하고, 그 설교해야 귀에 들어가지도 안하고 다 바로 들려지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육이 없습니다. 또 우리의 중생된 새사람은 그것은 영의 사람이요 인격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이 타락 후에 생겨지고 껍데기 사람이지 그거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짝이라 그말은, 성도는 하나님만을 상대로 해서 산다 하는, 상대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이제 부부라 그렇게 말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만 상대라 말이오. 하나님만이 짝이라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만 상대하고, 능력만 상대하고, 약속만 상대하고, 권능만 상대하고, 은혜만 상대하고, 인도만 상대하고, 하나님의 사랑만 상대하고 순전히 하나님만을 상대하고 딴것은 피조물을 아무것도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오.
그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것이 이 정상적인 기독자입니다.
이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니까 하나님이 거게 나타내기를 단장물을 제하니까 하나님이 노를 풀으시고 그들을 다시 긍휼히 여기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를 하셨다 하는 것으로서 한 끄트머리 한 각도를 우리에게 보여 줬습니다.
보여 준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가 원죄를 회개치 안하고 범하고 있을 때에는 원죄 범하고 있는 자, 아직까지 예수를 믿지 않는 자, 예수를 믿어도 아직까지 초보에 있는 자, 그런 자는 그렇지마는서도 신앙 생활을 하는 자는, 그러기에 하나님은 성도들이 후퇴는 대적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앞으로 저게서 오는 전진적인 범죄는 하나님이 용납하나 후퇴적인 범죄는 용납하지 않는다 그말을 하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그 사람이 죄를 열 가지 짓다가 또 앞으로 아홉 가지 짓고 , 또 아홉 가지가 여덟 가지, 다섯 가지, 두 가지, 한 가지, 이렇게 점점 회개하는 그런, 회개해서 죄는 줄어지고 의로 전진한 그런 범죄는 하나님이 이해하고 용납하지마는서도 그게 하나 짓던 것이 둘 짓고 둘 짓던 것이 셋 짓고 이렇게 점점 죄악으로 뒤로 물러가는 그런 것은 하나님이 노여워하시고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여게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실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건강한 걸 보고서 기뻐했고, 또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존대받는 것을 보고 기뻐했고, 그들이 또 아름답게 단장을 꾸미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장식으로 꾸미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꾸미는 것을 기뻐하고 평안하게 사는 걸 기뻐했지마는서도 이렇게, 기독자들이 원죄를 범할 때에는 하나님이 전체가 미운 것입니다. 이것이 친구의 사랑과 부자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나의 그 모형적으로서 땅위에 부부의 이 사랑이라 하는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그 독특한 밀접한 그 사랑을 알리기 위해서 하나의 계시 도구로 하기 위해서 계시 이용물로 그 형식이라는 부부 제도라 하는 것을 하나님이 내신 것입니다.
다른 사랑보다도 부부의 사랑은 그거 다릅니다. 친구의 사랑은 그 사람이 아무리 밉상스럽게 한다고 할지라도 이성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성이라는 건 이치 이자, 그 감각성 말이오. 비판성, 이성을 넘어가지 안하고, 그 나쁘게 하면 권유할 만한 여유가 있고, 또 그것을 용서할 만한 여유가 있고, 참을 만한 여유가 있고 그렇지마는서도 부모와 자녀의 그 사랑은 그보다 또 다릅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랑은 삐뚤어졌으면 이해할 수가 없고 용서할 수가 없고 참아 기다릴 수가 없고 그대로 덮어 둬 둘 수가 없는 것이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그만, 나무라다가 안 되면 매를 때려고라도 이렇게 그만 그거는 좀 여유가없고, 여유 없이 급속히 서두는 것이 부모와 자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뜨겁고 사랑이 책임을 지는 그것이 적극성으로 책임을 많이 지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자녀는 서로 바꾸어 가르쳐야 되지 제 자녀를 제가 못 가르친다’ ‘그거는 욕심이 많기 때문에 바꾸어 가르쳐야 되지 제 자녀 가르치면 매로 그만 우겨대고 말지 가르치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남의 자녀를 가르치는 자가 누끈누끈하게 유유하게 그렇게 욕심이 강하게 없기 때문에 그걸 잘 조화 있게 가르칠 수가 있다 그말입니다.
그것보다도, 부부의 사랑이라는 거는 그보다 다릅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자식이 미운 일을 해도 자식이 그래도 밥 잘 먹으면 좋고, 건강하면 보기 좋고, 또 자식이 막 구질구질하게 떨어진 옷 입어도 그저 따뜻하게 옷을 입고 있으면 좋고 이렇지마는서도 부부의 사랑에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거 부부의 사랑이라는 것은 벌써 그 사랑이 딴데로 바꿔질 때는 밥 먹는 것도 밉상이고 웃는 것도 밉상이고 건강한 것도 밉상이고 또 얼굴 예쁜 것도 밉상이고 단장 잘한 것도 밉상이고 뭐 성하게 다니는 것도 밉상이고 어짜든지 막 죽으면 죽으면, 그렇게 극성 있게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부부의 사랑이라 그말이오. 그것을 여게 지금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지금 하는 것은 일체 보기가 싫고 이스라엘이 곤고하고, 병이 들었든지 죽을 지경이든지 배가 고파 쫄쫄 매든지 이렇게, 이스라엘이 망쳐지고 비참해지는 그것이나 마음에 좀 시원할까 그게 아닌 거는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특별히 이거 부부적인 그런 사랑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라다가, 그들이 단장물을 버린 것은 이제는, 단장한 것이 뭐이냐 하면은 저 보일라고 아름답게 보일라고, 또 세상에 아름답게 보여 누구에게 아름답게 보일라고, 뭐 사회에 어떻게 할라고 하나님 버리고 다른 무엇에게 잘 보일라고, 높이 보일라고 인정받을라고 아름답게 보일라고, 거게 가 가지고 뭐 솜씨 있게 활동할라 하는 그게 전부 미워서 죽이면 싶다 그말이오. 이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은 공평스러워서 그분에게 가까이 갈수록이 죄를 용납지 않습니다. 더 형벌이 큰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대속함을 받은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원죄 회개를 하지 안하면 하나님이 그만 보지 안하고 피하는 것이 하나 있고, 피하면 서서히 망합니다. 하나님이 피해 가면 뭐 천사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피해 버리니까 그 사람을 주관하는 것은 마귀가 주관하지 죄가 주관하지 사망이 주관하지 하니까 망할 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두면 망할 것,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을 한 자는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고통스러워서, 두고, 버려 두고서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은 잊어 버릴래야 잊어 버릴 수도 없고,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고 있느냐? 축복을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요 원죄를 회개하지 안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분해서 코가 깨지기를 원합니다. 코가 깨지면, 죽지만 안하면 대가리 깨지는 것도 원합니다.
그리 안 하면 다리가 끊어져 병신 되는 것도, 하나님이 이렇게 모질받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안 됩니까? 너무 세상이 더러워져서 그걸 이해를 못 할지 모릅니다. 옛날은 정상적인 부부라고 하면은 아내가 남편만 보고 이라면은 아내의 똥도 곱고 아내 쭈그러진 것도 곱고 아내가 기운 없는 것도 거석하고, 전체가 책임을 다지고 모든 게 다 동정이요, 모든 게 다 이해요, 모든 것 잘해 보려는, 이렇지마는서도 고 정조라 하는 고것이 탁 바꿔졌을 때에는 그거는 미워서 어떻게 죽여야 저걸 모질받게 죽이고 저걸 야나지게 죽이고 어떻게 할까, 괘씸한 마음이 가득 있는 것이 그것이 강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 정상적인 부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래 단장품 그거 제하고 이거 뭐 그만 이래 가지고 실쭉하게 해 가지고서 그만 모두 다 시들어 가지고 근심 걱정에 파묻혀 밥맛이 없고 밥을 못 먹고 이래 가지고 이와같이 지금 실쭉하게 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배반했던, 다른 피조물 중심 위주 거게 피동되었던 이것을 돌이키는 걸 보고 그때 하나님께서 이제 그 하는 태도를 보고 당신이 돌아서서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을 그들의 인도에 인도자로 주고, 구름과 불 기둥은 성령의 인도를 상징한 것입니다.
모세는 또 구별해서 회막을 다시 치고 거게 가 가지고 이와같이 거처하고, 장막은 저 먼데, 이스라엘 전체가 장막을 해 놓고서 거게서 육십여만 명이 거기서 살고 있고, 여게서는 회막을 꾸며 놓고 모세와 특수한 사람들만 거게 와 가지고서 기도를 하고 이와같이 있을 때에 이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세나 모든 사람들을 보고 노를 풀고서 이제 하나님께서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그 인도자를 보내시고, 또 하나님께서 모세로 더불어 이스라엘에 대해서 의논하기를 마치 사람이 사람으로 더불어서로 대화하는 것같이 그렇게 대화를 하고 해서 이스라엘이 그때 거게서 다시 회복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원죄를 회개하고 본죄를 회개하고 이렇게 회개하고, 또 그 교회를 인도하는 인도자가 회개하고, 인도자와 교인들이 한꺼번에 회개를 하면 지금도 그때와 같습니다.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교우들을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진리가 인도하십니다. 성령과 진리가 인도하시고, 아예 그만 회개하지 안하면은 하나님께서 인도를 버려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 뜻인지 뭐인지를 모른다 말이오.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그 백성들도 하나님의 인도를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의 사자도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를 알아서 하나님이 이것을 좋아하신다 이것은 싫어하신다,하나님이 오늘은 이 교훈으로 권면을 한다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명령하라 한다, 또 하나님은 이거 하라 저거 하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종에게도 말을 해 주고, 하나님의 종이 말할 때에 또 교인들은 그 명령을 받아서 잘 순종하는 이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 서부교회를 하나님이 지금은 불쌍히 여겨서 착수를 하시고 있는데, 그 중에는 이 원죄를 회개하고 본죄를 회개하고, 회개할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마는서도 여게 대해 아직도 원죄나 본죄나 그런 것을 회개할라고 그런 것을 생각지 안하고 고정적인 그런 죄를 계속 짓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말씀으로서 오늘 오전에 우리가 회개에 대해서 했는데 오후도 회개입니다. 어짜든지 이번 기회에 회개를 톡톡히 해야 될 것입니다. 해서, 우리가 한 사람도 하나님의 징계로 멸망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아서 그렇게, 하나님이 같이 해 주시면 다 됩니다. 안 될 게 없습니다.
‘내야 한 푼 없는 무일푼의 거지인데 내가 뭐 성공하더란대도 무슨 성공을 하겠느냐?’ 아닙니다. ‘나는 글자 한 자도 배우지 안했는데 내가 성공하더란대도 무슨 출세를 하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무식해도 천하 인간을 다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당장 줄 수가 있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또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학교에 가 가지고 일학년 또 고등학교 대학 무슨 대학원 이까짓 것 안 해도 하나님이 즉시 당장에라도 천하 인류를 통치하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하나님이 주실 수가 있습니다. 한 푼도 없는 자에게 온 세계의 재물을, 재정권을 그에게 다 맡겨서 그분이 다 후려 잡고서 다 가질 수도 있게 하실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래도 금번에 회개를 우리가 깨끗이 해서 한 사람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안하고 다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되기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도 하고 또 저도 기도합니다. 아무리 징계를 줘 봤자 징계를 줘도 그게 죽어도 모릅니다. 죽어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회개를 해야 되지, 그게 죽어도 모릅니다.죽어도, 그속에 악령이 들어서 욕심을 품어 놓으면 제가 죽어도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거는 인간이 욕심이라는 그 악령의 온갖 욕심을 가지고 와 가지고 우리를 꼬우는 그 욕심을 인간이 버리지 못합니다. 이기지 못합니다. 이게 번연히 죽을 줄 알고 이것 때문에 나와 내 가정과 모든 게 다 사업이 다 망한다 해도 못 버립니다. 그거 못 버립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거게서 돌이켜 주셔야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우리 자신도 이 기회에 회개하도록 애를 쓰고 또 서로서로 회개를 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우리가 다 회개를 하므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바로 되도록 그렇게 이번에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뿐만 아니고, 다른 진영은 내가 모르겠는데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회들은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그런 것이 보여집니다. 그런 동시에 어떤 교회는 더 타락해 가지고 어두워지는 교회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얼마 안 가서 어두워지는 교회는 거게는 아주 어두워져 가지고서 그렇게 허무하게 절단나는 것이 나타날 것이고, 또 되는 교회는 자꾸 돼서 올라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부산이 제일 그 운동이 제가 볼 때에는 강하게 되어 있고, 그다음에는 대구가 그다음으로 이차로 되어 있고, 서울이 제일 뒤떨어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산이 살아야 대구가 살고 부산과 대구가 살면 서울이 살겠다 이래서 총공회가 살아나면은 한국 교회가 다 힘을 얻어 가지고서 새로와지겠다 하는 그것을 제가 보기 때문에 그걸 위해서 기도하고 또 여러분들에게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이 모세가 회막문에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화하는 거와같이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저에게 서로 대화를 해서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저에게 깨닫게 해 주시고 인도하는 것을 제가 자꾸 봅니다. 요 근경에 제가 설교하는 것은 한번도 제가 성경 보고 그렇게 생각한 것 아니고 나에게 성경을 보라 하고 설교를 하라고 해서 고것을 내가 가지고 자꾸 설교를 할 때에 그 설교 한번 시작하면 어떤 거는 한 달도 가고 뭐, 내나 그 설교지마는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요 말씀에서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고 하니, 하나님이, 원죄를 그것을 회개하지 안하고, 본죄 짓는 것은 그것은 이런 저런 실수가 있다 할지라도 원죄를 범하는 걸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고 섭섭해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산 거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종이요 주님이 당신의 성전으로 사서 세운 것이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수족노릇으로 살아야 되고, 주님의 몸노릇으로 살아야 되고, 주님의 신부로 주님만이 짝을 삼아 가지고, 그분만 짝하지 돈도 내가 짝을 해서 안 되고 사람도 짝을 해서 안 되고 가족도 짝을 해서 안 되고 아무것도 짝을 해서 안 되고 하나님만이 내 짝으로서, 그분만 상대한다 말이오.
짝이라 말은 둘이 요라면 짝 아닙니까? 하나님만을 상대한다 말이오. 하나님만을 상대하는 우리가 되면은 하나님으로서는 그걸 만족하고 나머지기 뭐 어떤 무능이나 무지나 어떤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까짓 거는 하나님이 서서히, 당장 고쳐서 주십니다. 요 죄를, 원죄 고친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원죄를 고쳐야 할 터인데 원죄를 예수님의 대속으로 고침을 받은 자가 이렇게 다시 원죄를 범하고 다른 중심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언행 심사의 전부를 다 밉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잘되면 더 밉상으로 보고 고울수록이 더 밉상으로 봅니다. 먹는 것도 밉상이고 입는 것도 밉상이고 사는 것도 밉상이고 그저 병이 들어서 골케골케 해 가지고 그렇게 막 쪼그라지고 망해지고 이래야 하나님은 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켜 질투라, 미워하는 하나님이라, 하나님의 이름을 질투라 했어. 하나님은 극히 미워하실 줄을 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회개를 하지 아니함으로써 고생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우리가 무엇이 잘되는 것은 그렇게 미워하기 때문에 그게 잘될 리가 있습니까? 잘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참 애통하면서 스스로 회개하므로서 단장물을 제하고 자기 꾸밀 줄 모르고, 자기 생각할 줄을 모르고, 자기에 대한 문제를 생각할 줄을 모르고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잘못 했나’ 하는 이것만으로 돌아설 때에 하나님 마음은 돌아섰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으로 우리가 돌아서야만 하겠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본죄에 대해서 하나를 말하겠습니다.
민수기 25장 1절로부터 13절까지에 보면, 이스라엘이 모압을 통과해서 갈라고 할 때에 모압이 대적을 하면서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대적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적 할 때에 그들은 이스라엘을 대적하지마는서도 이스라엘은 대적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대로 가게 되고 형통하게 됐고, 또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이 도리어 이스라엘에게 유익이 되지 해치는 것이 하나도 없이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전폭을 도우시니까. 이래서, 모압 왕 발락이, 아무래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에 저 이스라엘은 대항할 수가 없다. 저 이스라엘을 대항할 수가 없는데 이스라엘이 저렇게 세력을 가지고서 밀고 오면 우리는 다 전멸될 터이니까 아무래도 이스라엘을 어떻게 대적을 하든지 딴데로 삐끌트려 보내든지 해야지 그리 안 하면 우리는 전멸하는데 이 문제가 큰 것이다 해 가지고서 아무리 대항해 봤자 대항도 되지도 안하고 대항해 봐도 저거만 자꾸 손해가지 상대방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도 손해가지 안하니까 하나 꾀를 내기를, 발람 선지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예언도 하시고 발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니까 발람을 청할려고 했습니다.
발람을 청해 가지고, 너에게 우리나라의 재물을 많이 줄 것이고 우리나라의 제일 높은 지위를 주고 할 터이니까 네가 와 가지고서, 네 기도는 하나님이 잘 듣는다고 하니까 이제 이스라엘을 안 되도록 좀 하나님 앞에 기도해라 그래서 발람이 갔었습니다. 가 가지고 아무리 이스라엘을 저주할려고, 저주하는 기도를할려고 해도 그 입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지를 못했습니다.
못 하고, 나중에 발람이 하다 하다가 안 되니까 이제 모압 왕 발락에게 하나꾀를 냈습니다. 꾀를 내기를, ‘이스라엘은 그들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백성은 대적만 하면 망한다. 그 백성은 환영을 해야 되고 그 백성은 대적만 하면 망하니까 대적하지 말아라. 애굽이 그렇츰 세계에 그때로 말하면 강대국이지마는서도 이스라엘을 대적하다가 그 참혹하게 전체가 홍해 바다에서 다 매장돼 다 죽고 말았다.’ 그러나, 발락이 ‘아무래도 이스라엘이 이리 통과하면은 우리는 전멸될 것이기 때문에 저 이스라엘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될 터인데 할 길이 없느냐?’ 이라니까 발락이 마지막으로 말 한 마디 한 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뭐 강한 세력으로 대항한다고 해도 대항할수록이 그들은 더 잘된다. 저주를 할수록이 더 잘된다. 무슨 뭐 어떤 무기를 가지고서 어떤 군력을 가지고라도 대항하면 대항할수록 그들은 더 잘된다 그들은 도무지 해할 수가 없다. 그들을 해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만 지으면 하나님이 대번에 뚜드려 깨서 없애 버린다. 그 죄 짓게 하는 것 외에는 없다’ 요걸 살짝 말을 해 줬다 말이오.
말을 해 주니까, 모압 왕 발락이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이스라엘을 범죄케 할 수가 있는 것이냐?’ ‘네가 아름다운 여인들을 잘 꾸며 가지고서 저 이스라엘 진 근방에다가 음식 가게를 차리라. 음식 가게를 차려 가지고서 어짜든지 맛있는 음식을 해서 그 내음새가 그리 날려가도록 이렇게 가까이 음식을 이렇게 해 놓고 그저 그 사람들이 오거들랑은 막 오라 해 가지고서 그저 공으로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을 자꾸 먹이라.’ 이러니까 음식을 자꾸 먹이니까, 이 사람들이 오니까, 자기를 대접하니까 뭐 이거 철없는 이스라엘들이 그것도 모르고 설렁설렁 가 가지고서 맛있는 것 먹고, 또 맛있는 것 먹고 보니까 또 아름다운 여인들도 있고 하니까 여인들 하고 농담도 하고 이래 차차차차 이래 가지고서 고만 여인들과 사귀어서, 여인들과 사귀게도 되고 가까이 하게도 되고, 그라다가 이 여인들이 이제 음식만 다른 음식만 주는 게 아니라 저거 우상에게 절한 그 제물을 설설 먹이기 시작 했어. 이건 제물 주는 것 모르고 맛있으니까 자꾸 먹습니다.
맛있으니까 자꾸 먹고 이라니까, 그 사람들 음식 먹은 것은 죄가 아니지마는서도 우상의 제물 먹은 것이 죄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거 먹고 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이제 둘째로는, 그 모압 여인들이 아주 아름답게 단장을 해 가지고서 자꾸 이렇게 꼬우고 이라니까, 자연히 사람인지라 그 모압 여인들의, 젊은 여인들의 아름다음에 대해서 자꾸 이래 친근히 하니까 차차차차 정이 들고 이라나 그래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범죄하지 안하고 이라는데, 그다음으로는 ‘지금 당신들은 무슨 신을 섬기요? 당신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그모스 신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섬깁니다. 이러니까 우리도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터이니까 당신들도 우리의 신 그모스 신을 그래 섬기고 서로 이렇게 다 이 신도 섬기고 서로 이렇게 섬겨서 그래 신 섬기는 것으로 서로 교제를 합시다.’ 하고서 그모스 신을 섬기는 그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습니다. 그라고 나니까 죄를 둘 범했습니다.
그라고 나니까 벌써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서 그들을 붙들기 때문에 저희들이 견딜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마지막으로 범죄한 것는 모압 여인들과 음행했습니다. 이 세 가지 죄를 범했습니다.
그라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 죄를 범한 것을 당신이 보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질병을 줬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병을, 온역이라는 병을 줬습니다. 염병이라는 병을 줬는데, 그 병을 줘 가지고서 그만 이스라엘을 막 드러눕힙니다. 장질부사라 하는 그걸 가지고 막 드러눕히는데, 그러니까 자꾸 죽어 들어갑니다. 얼마나 죽었느냐? 하루 이만 삼천 명이 죽었으니까 이틀이면 사만 육천 명 죽고, 하루 동안에 이만 삼천 명, 이만 삼천 명만 죽은 게 아니고 하루 동안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 자꾸 이와같이 죽어 나가니까 이것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 참 모압 왕 발락은 자기의 목적 달성이 됐습니다. 이 범죄케 하는 요거 가지고서 달성이 됐습니다.
그럴 때에 거게 아론의 자손,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보니까,ㅡ모세가 모두 회중을 데려다 놓고 너희들이 미혹의 식물을 먹고, 또 제물을 먹고, 그다음에는 그모스 신에 너희들이 절을 하고, 또 너희들이 여인으로 더불어 음행하고 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이 진노해서 이스라엘에게 염병이 들어와 가지고 이렇게 막 모조리 죽어 들어가니까 이게 어째 되느냐?’ 이렇게 이야기하고 의논하고 지금 온 이스라엘은 지금 마구 진동을 하고 지금 통곡을 하고 야단을 지기는 데도, 이스라엘 남자 하나가 모압 여인을 한쪽 머리는 이 야단을 지기고 있는데 이스라엘 남자가 모압 여인 하나를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가는 걸 봤습니다. 장막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서 그 비느하스가 그 뒤를 따라들어갔습니다. 뒤를 따라들어가니까, 둘이 들어가 가지고서 거기서 내나 음행하는 걸 보고 당장에 고만 창을 가지고서 위에서 남자와 여자를 한 창에 꿰어 버렸습니다. 위에서 내리 꿰뚫으니까 한 창에 그 남녀가 꿰였습니다. 꿰이니까 그 비느하스가 그 남녀를 창에다 꿰어 가지고 어깨에 울러메고 진으로 들어갔습니다.
진으로 들어갈 때에, 민수기 25장 13절에,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미워했다 말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미움을 미워했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그렇게 우상 제물 먹고, 또 우상 제물 먹고 난 다음에 우상 섬기고, 또 모압 여인으로 더불어 음행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미워하심같이, 하나님이 미워하심같이 비느하스가 그것을 미워해서, 분해서 창에다 한 남녀를 찔러 가지고 어깨에 메고 오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그 죄악을 이 비느하스가 미워하는 그 미움을 인해서 하나님의 노가 풀렸습니다.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 하여」 「질투하여」 미워서, 그게 너무 분하고 미워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하고 분을 푸시고 그때부터 염병을 제거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여게서 무엇을 우리가 가르침 받아야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은 만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아무도 해할 자가 없습니다. 해하면 해하는 것이 해할수록이 유익이 되어지고 대적하면 대적할수록이 강성해지고 이라니까 이스라엘을 해할 자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해할라 하면 해하는 것이 도로 유익이 돼지고 이스라엘을 아무도 해할 자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고, 이러니까 모압 족속들이 뭐 이스라엘을 조그매 대항하면 큰 손해가 가지 자꾸 이라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이러니까 그를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을 망칠까 이렇게 연구하다가 발람 선지를 청해 가지고서 발람 선지가 기도도 할라 해야 기도를 못 합니다. 하나님이 금하면 못 합니다.
못 하는데, 이스라엘을 망치는 그 방편이 뭐이냐?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면 망한다,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면 망한다. 범죄를 어떻게 하게 할 수가 있느냐? 그들이 지금 광야에서 내나 이런 속된 음식은 먹지 안하고 깨끗한 성결한 음식만 먹기 때문에 이 속된 음식, 술이니 뭐 이거 뭐 우상 섬기는 이런 것 뭐 잡탱이 이런 거석하면 코에 냄새가 쿡쿡 나고 하니까 구미가 댕기고 이럴 터니까 그래 가지고서 그 부근에서 음식을 이렇게 하면 올 터이니까 오거든 공으로 자꾸 대접해라. 음식을 대접하고 난 다음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자꾸 친근히 해라.
친근히 해 가지고서 그들을 너희들이 섬기는 그 신을 그들이 섬기도록만 만들고 그 여인으로 더불어 음행만 하게 되면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만 바로 진멸해 버리고 만다. 자꾸 계속해서, 원죄 범한 거와는 같지 안하지만 이 본죄 범한 것을 가지고서 그만 진멸을 할 터이니까 그게 제일 방편이다. 이래서, 그래 가지고 이스라엘을 하루 죽은 것이 이만 삼천 명씩 죽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 여게서 우리가 배울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원죄를 회개해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하나님 께 피동되는 이 일을 하면은 이 사람은 하나님이 같이 하기 때문에 죄와 사망과 마귀라는 것은 근방에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본죄 범하는 이 본죄도 이것도 다 회개하고 원죄와 본죄를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이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죄와 본죄를 회개하면은 천하가 다 달라들어 해 할라 해도 해 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나 그들이 원죄를 범하지 안할라고 했고 본죄를 범하지 안할라고 했을 때 원죄와 본죄를 범하지 안하는 그들을, 느부갓네살 왕이면은 그때는 또 천하에 제일 통일한 왕입니다. 아무리 왕이지마는서도 그 왕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해할라고 해 봤자 해가 됐습니까? 해할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더 존귀해졌지, 다리오 왕이 그렇게 그 국부의 왕이지는서도 그가 아무리 다니엘을 해할라고 했지마는 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다니엘을 위하는 것이 되고 말았지 해 되지 안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같이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 백성된 우리들이 원죄를 회개하고, 원죄를 회개하고, 원죄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르쳐 보이소. 원죄가 몇 가지입니까, 원죄가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이것은 하나님에게만 피동 안 되고 피조물에게 피동되는 것이 원죄요, 하나님 위주가 아니고 피조물 위주, 국가 위주나 사회 위주나 가정 위주나 자기 위주나 다 같습니다. 또 하나님 중심이 아닌 피조물 중심 그것이 원죄기 때문에 그 원죄를 다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이 동하라면 동하고 정하라면 정하고 하나님과 피동되고 이렇고 원죄를 회개하고, 또 우리가 이런 저런 허물이나 실수나, 죄 지은 것이 있으면, 예수님의 피가 있기 때문에 즉시 고해서 회개를 하고, 원죄와 본죄를 회개한 자는 어떤 피조물이라도 축복만 했지 해하지 못한다는 걸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령은 이렇게 원죄와 본죄를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을 해하는 길이 없습니다. 방편이 없습니다. 범죄케 하는 것 외에는 하는 길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이 옆에 것 이런 것을 가지고서 돈을 보여서 돈 가지고서 우리를 꼬와서 범죄케 하고 또 이런 사업 가지고서 범죄케 하고, 또 남녀의 이성의 그런 유혹을 가지고서 범죄케 하고 이렇게 범죄케 하는 이밖에는 우리를 삼킬 수가 없고 우리를 망칠 수가 없기 때문에 범죄케 할라고서 우는 사자와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했습니다. 우는 사자와같이.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믿음에 굳게 서라. 너희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보고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는 이 원죄와 본죄를 회개하는 그런 사람이 되면은 마귀는 해하지 못하지마는서도 마귀는 우는 사자와같이 너희들을 삼킬라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찾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죄를 회개했을 때에는 아무것도 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회개한 다니엘을 어떻게 해했으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어떻게 해했습니까? 우리가 원죄를 회개하고 본죄를 아는 대로 고해서 즉시즉시 회개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발을 씻겨 줄 때에 베드로가 있다가 ‘내 발을 씻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내 발을 씻지 안하면 너와 나와는 상관이 없다' `몸도 다 씻어 주옵소서.’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깨끗해진다' 그말은 우리가 매일 생활할라 하면 매일 생활에는 죄를 짓는다 그말입니다.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매일 생활하다 보면은 이런 실수 저런 실수 하기 쉬우니까 그때 그때 실수한 것을 주님에게 고하고, 자꾸 무슨 일이 나면은 위에 전주를 사귈라고, 또 무슨 상관을 사귈라고, 또무슨 사장을 사귈라고, 남편을 아부해 가지고 죄를 지어가며 사귈라고 그런 칙칙한 더러운 짓을 하지 말고, 어짜든지 원죄와 본죄를 회개하고 당신에게만 딱 매여 있으면은, 사회고 국가고 이 단체고 기업체고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요것만 회개하고 있으면 마귀는 요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서 요렇게 저렇게 오만 방편으로 꼬와서, 식물로 꼬왔고, 또 남녀 이성의 미로 꼬왔고, 또 다른 신을 섬기는 그것으로 꼬왔고 이래 꼬와 가지고서 범죄했을 때 그들이 절단났지 범죄 외에는 망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자기가 매일 언행 심사에 실수했으면 즉시 회개하십시오. 실수했으면 즉시 회개하고, 원죄와 본죄를 요것을 회개하고, 원죄는 회개하면은 그것이 잘 동하지 않습니다. 원죄를 회개하면은 그것이 자꾸 그렇게 실수 잘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중심 위주,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하나님께 피동 요걸 딱 작정하고 나면은 가끔 가다가 실수가 있지 그 일을 범죄하는 게 아니라 말이오. 그러니까 요걸 딱 작정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매일 생활 가운데서 우리가 언행 심사로 잘못된 실수된 것이 있으면 고것을 회개를 하고, 회개하고, 그라면 다 치료되는 것이지.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방편인데, 이 방편은 이니고 ‘내가 이 사업이 무너지게 됐으니까 이 자본주에게 가 가지고서 교섭을 해야 되겠다. 내가 이 상관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니까 이제 상관으로 더불어 손을 써아 되겠다. 내가 지금 이거 뭐 가정에서 분란이 일어나니까 이 남편에게 주일을 범해도 굴복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해야 되겠다.’ 뭐 어떤 위치, 어떤 사건 무엇이든지 그래 됐을 때 일이 나면은 원죄와 본죄가 뭐 있느냐, 요거를 살펴서 요걸 딱회개하고 딱 거머쥐고 가만히 섰으면은 아무도 해하지 못하는 것이오. 요것으로 방편을 삼아 가지고서 요렇게 할 때에 결국은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도 살고 저도 영광되고 성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살 수 있는 절대적인 권능이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쓰지 안하고 그렇게 믿음을 떠나서 천하고 멸시받는 그것은 반드시 소금이 맛을 잃었기 때문에 약속하신 대로 그렇게 짓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게서 보면, 이 이스라엘을 달리는 해할 수 없고, 해하는 것은 범죄케 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범죄케 할라고 이런 모든 공작을 꾸며 가지고 범죄했을 때 이렇게 망했으니, 우리의 영의 생활이나 물질의 생활이나 어떤 것이든지 ‘누가 해했다. 누가 해했다, 누가 날 대적한다.’ 대적을, 성도들은 대적을 죄 외에는 대적으로 삼지를 마십시오. 어떤 사람을 통해서 나를 범죄케 해 망하게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대적하지 말고, 그 사람도 죄에서 사로잡혀 가지고서 그와같이 죄의 도구가 되어 가지고 그와같이 하는 것이니까 우리의 적은 죄뿐입니다. 죄뿐이오. 죄만 없으면 마귀 그놈도 못 오는 것입니다.
마귀와 죄와 사망 이 세 가지가 죄인데, 그런 어떤 것이 있어도 그 모든 우리에게 실패라는, 해독이라는 그 문제는 죄 그놈이 끌고 들어오기 때문에 죄 그놈만 정리하면 해독이라 하는 거는 저절로 말라 가지고서 그것이 유익이 돼 버리고 맙니다. 죄가 마르면 유익이 됩니다. 죄가 마르면 유익이 됩니다. 범이 삼킬라 하니까 무섭지마는서도 범이 내게 잡혀 가지고서 그러면 범 한 마리 잡으면 돈이 얼마입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대적일수록이 우리에게 큰 수입이 있는 것이지 절대 해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해는 원죄와 본죄의 이것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요것을 회개하면 우리에게 해독되는 것은 다 물러가게 되고, 우리가 정상적으로 그분의 짝이 돼 가지고서 그분만 상대하고 그분만 믿고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면 우주는 다 내것입니다. 천하 만물은 내것입니다. 절내 내게 해하는 것은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너희 것으로서 너를 위해서 있다고 말씀한 이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요.
그런고로, 우리가 요 믿음에 입각해 가지고서, 오전에는 원죄, 오후에는 본죄의 하나를 들어서 잠깐 말했는데, 여러분들이 더 한번 참고를 할라고 하면은 마태복음 24장 28절에는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하는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죄가 있으면 마귀와 사망이 몰려 듭니다. 마귀 그놈은 죄 먹고 살고, 사망 그놈은 죄 먹고 삽니다. 죄 없으면 마귀와 사망이 죽어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와 사망은 죄를 만들어 내고 그것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 모인다’ 이 말은, 주검이 있으면 독수리가 그 송장 파 먹을라고 오는 것처럼 죄가 있으면 죄를 먹을라고 하는 마귀와 사망이 온다 그말입니다.
또, 로마서 6장 23절에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 죄의 댓가는 사망입니다. 죄가 있으면 그거는 그 댓가는 사망이 이거는 하나님의 지공 심판이기 때문에 면하지 못합니다. 죄 있는데 어떻게 사망이 안 갑니까? 죄 있는 데는 죽는 거와 망하는 것 외에는 딴것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은 사망이 가는 것은 하나님의 공편된 심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 있는데 사망 안 보내면 안 됩니다. 죄가 있으면은 하나님도 사망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마귀도 쫓아내지 못합니다. 마귀를 쫓아내면 ‘하나님은 공편된 하나님인데 내것인 죄가 이 사람에게 있는데 왜 나를 쫓아 냅니까? 이게 내것이 있기 때문에 이게 내 사람인데.’ 꼼짝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를 두고는 마귀와 사망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4절에 보면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 계셔 주님을 사모하고 생각하고, 주님이 내 마음에 떠나지 안하고 내 생각에 떠나지 안할 때는 전부 생명과 형통이요, 성장이지 못 옵니다.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 옵니다. 요거 여러분들, 베드로가 주님만 그 속에 있을 때에 쩌벅쩌벅 물 위로 걸어갔고 물 속에 빠질 때에는 주님을 잊어 버린 그때입니다.
‘생각하고 잊어 버린 무슨 그게 그럴까?’ 아니오. 모든 전부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 3장 13절에서 30절까지는 그 세 청년의 기록이 되어 있고, 6장 1절로 부터 28절까지는 다니엘이 기록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때 보십시오. 느부갓네살 왕이 ‘네가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이 불미 속에 집어 넣는다’ 절 안 한다 하니까 ‘그 불미를 더 몇 배나 뜨겁게 해라. 뜨겁게 해라, 그리 안 하면, 네가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저 역사를 시켜서 다 옆에 힘센 역사들, 군졸들이 와 가지고 이거 묶어다가 저기 던져 넣으라.’ 하고서 했을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네가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안하면 불미 속에 던져서 죽인다.’ 그럴 때에,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죽일 자가 누구입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죽이는 것이 누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죽입니까? 이 세 청년을 죽일 자가 뭐입니까? 그때 우리가 비판하기 어렵다 말이오. 착각하기 쉽다 그말이오.
그러면, 이 세 청년을 죽일 자는 누구며 이 세 청년을 살릴 자가 누구입니까? 죽일 자는 누구입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죄. 이 세 청년이 죄 안 지으면 절하는 게 죄 아닙니까? 죄 안 지으면 죽인다. 죄 안 지으면 죽인다 하지마는서도 이 청년은 들을 귀가 있어 가지고 안다 그말이오. 우상 숭배 죄 안 지으면 너는 죽인다 하지마는서도 그 세 청년을 ‘우상 숭배의 죄를 지어야 죄가 날 죽이지 죄 외에 날 죽일 자가 없다. 내가 범죄하지 안 할 때에 느부갓네살 왕 네가 날 죽일 줄 아느냐?’ 담대하고 웃었습니다. 그럴 때에 죽이는 자가 누구냐? 죽이는 자는 죄입니다. 죄를 범하면 저는 두말할 것 없이 죽어 버립니다. 죄를 범하지 안하는 그것이 그 사경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청년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다니엘도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네가 한 달 동안만 기도하지 말아라. 그리 안 하면 네가 죽는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그 모든 사람들이 죽일라고 모의해 그런 걸 알고 다니엘을 살릴라고 애를 썼습니다. 하루 종일 한 달만 네가 기도하지 말아라. 그러면 지금이라도 내가 말하면 살리고 죽이지 안할 터이니까’ 디니엘을 살릴라고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그렇게 애를 썼습니다. 애를 쓰면서 다니엘에게 그렇게 ‘내가 죽어서는 안 되니까 어짜든지 이 한 달 동안은 기도를 멈춰 가지고서 네가 죽지 말고 살아라’ 이렇게 디리오 왕이 다니엘을 살릴라고 하는 그것이 다니엘을 죽일라고 하는 그말이라는 것을 들을 줄 알아야 된다 말이오. 다니엘은 그런 줄 알았어. ‘나를 살릴라고 이렇게 왕이 애를 쓰지마는서도 왕이 애를 쓰는 것은 나를 죽일라고 애를 쓰는 것이다. 왕이 나를 살릴라고 애를 쓰는데 살릴라고 애를 쓰는 것은 기도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면 산다고 나를 살릴라고 애를 쓰는데, 나를 살릴라고 왕은 애를 쓰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실상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기도하는 것은 자기 보기에는 죽는 것같지마는서도 사는 것이요, 기도 안 하면 사는 것같지마는 죽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이렇게 판단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중심해서 온 세상이 망한다고 해도 이거 망하는 게 아니고 성공이다. 온 세상이 성공한다고 해도 이것이 하나님 법에 비출 때에 이것이 망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착각하지 안하고 언제든지 바로 비판해서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 어린 신앙을 버립시다. 옛날 어린 신앙을 버리고 지금은 이제 일어서서, 이 성경대로 또박또박 걸어서 날마다 기적과 축복을 자꾸 보고, 기적과 축복을, 내야 빈손 쥐고 이랬는데 내가 뭐 하겠느냐? 빈손이라도 좋습니다. 내가 일자 무식인데 무슨? 일자 무식이라도 대통령도 하나님이 대번 만들 수가 있습니다. 뭐 요셉이가 무슨 공부했습니까? 그 사람 공부하지 안했어.
‘거게서 뭐 자습을 했다.’ 자습이 무슨 필요 있어?' 요셉이는 자습 안 했어? 공부 안 했어. 요셉이가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이 됐지마는서도 역사에 없는 제일 명관노릇했습니다. 그게 뭐냐? 요셉이는 딴것 안 했어. 다른 공부 아무것도 안 했어. 하나님이 동하라면 동하고 정하라면 정하고 고것만 공부했어. 딴거는 공부 못 했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다 된다 하는 고것만 공부했어.
오늘도 그겁니다. 겨자씨 믿음을 말하는 것은 뭐이냐? 우리 현실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들어서 고대로 행하면 사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인 그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말은 이행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이 나와 같이 안 할 수가 있습니다. 같이 안 할 수가 있어. 바다에 심기우라 하면 바다에 심긴다는 그거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고 뜻을 찾은 데에 하나님의 권능이 동행을 해 줘야 된다 그말이오.
동행할라 하지만, 그 뜻대로 행하기는 행하지마는서도 속에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이 우상을 가득히 만들어 가지고 원죄가 가득해서 원죄가 들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행하는데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동행할 수가 있소?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한 데는 전지 전능이라.
만능이라, 이것이 우리가 성경 보고 깨달은 진리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쨌든지 성령은 왔습니다. 생명은 왔습니다. 우리의 살 길은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가지시고 역사하십니다. 지체하지 말고 다 일어서서 빨리빨리 원죄와 본죄를 회개하고 참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얼마든지 받아서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