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할 일

 

1981. 11. 28. 토새

 

본문 : 디도서 1장 1절 - 4절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절 하반절에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우리는 그런줄 알면서도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 이 구주가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또 믿는 이 믿음이 자꾸 흐려져 갑니다.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은 점점 믿는 사람들에게 사람 되어가고 인간 중에 위대한 사람 되어가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과의 그 거리가 생겨지게 생겨지는 그런 타락한  인식이 자꾸 우리에게 옵니다.

지금은 어떤 때인고 하니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 우리 구주  하나님이라. 우리 구주 하나님 곧 우리 구주 하나님 우리 구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리스도 예수시라 하는 것을 자꾸 기억하는게 좋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있는 설교를 교인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세상도 그분이 만들었고 그분이 만들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또 이 땅의 주인이고 이 세상을 만들기 시작해 그분이 홀로 계셔서 이  세상을 만드셨고 세상은 그의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그의 것이라. 이 기독교의  구주는 창조주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자꾸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자꾸  모의해집니다. 어떻게 종교 통일이 됩니까? 이종교는 우리 구주가 창조한 것  중에 하나요, 창조하신지 오랜 후에 창조된 것이 재창조되고 재창조돼 가지고  섭리 중에서 만들어져 나온 것인데 어떻게 지으신 분과 지음을 받은 것들이  같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잘 기억해야 되고.

4절 하반절에 보면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우리는 모든 것을 상대하되 참것과 참이라는 말은 여기는 온전이라는 말인데  참것과 또 일시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참것과 일시의 것, 우리는  무엇이든지 참것을 소망하고 마련해야 됩니다. 기쁨도 찬미도 참기쁨 권세도  참권세 행복도 참 행복지식도 참지식 일시의 지식인데 피해될 것은 다 참이  아닙니다. 폐해질 것들은 참이 아닙니다.

2절에 보면 "영생에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느니라" 영생. 우리는 영생하지 못하는 사람 속에 있는 일시적인 것을  영생으로 바꾸어 가지고 또 영생을 마련하기 위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생성을 가진 것이 아니면 우리의 참것은 아닙니다. 또 없어질  것이라면 참것은 아닙니다. 다 그것은 그림자와 같은 것이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들도 참아들 부요도 참부요 기쁨도 참기쁨 영광도 참영광 고생도  참고생 영원한 고생이 참고생이지 수치도 참수치 영원한 수치 영광도 참영광  영원한 영광이 참영광이지 이 일시의 것과 참의 것을 언제든지 구별해서 우리는  참에 속한 것을 마련하는 사람들이요. 또 영생에 속한 것을 마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일시의 것 저주의 것 진노의 것 사망의 것 이런 것들을 다 참의 것을  만드는 기회가 지금입니다. 또 영생의 것을 만드는 것이 지금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졌든지 행위든지 소유든지 뭐 어떤 실체든지 또 무슨 영광에 속한  것이든지 참과 일시의 것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도  참과 참의 것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참의 것과 참의 것 아닌 것, 영생의 것과 영생의 것 아닌 것 이것을  기억해야 되고 우리 구주는 하나님이신 것을 이것을 우리는 자꾸 되풀이해서  우리 속에 꽉 베이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의 이 마음과 몸의 요소라는 것은  이것은 지음을 받을 때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지마는 이것이 어떤 것으로  감염이 되느냐 이래서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덛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물이 드느냐? 마귀 물이 드느냐 악령의 물이 드느냐 악성의 물이 드느냐 그  악습의 물이 드느냐 그것 화 되느냐 악령 악성 악습화 되느냐 성령과 믿음화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꾸 되풀이 해봐요.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 주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라 그분이 짓지 안한 것이 없다. 그분이 세상을  지으셨다. 세상은 그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시다. 모든 생명이 그에게만 있다.

그가 모든 것을 심판하신다. 만왕의 왕이시다. 만주의 주시다. 모든 존재는  그분에게 지음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자꾸 이래서 불교나 뭐 유교나 요새 무슨 도가 많은 이종교가 많은데 그것과  우리가 믿는 이 도와 그 구주와 우리 구주와의 이 근본, 다른 것을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되는데 그만 예수님은 인간화 됩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점점 커져가고  예수님의 신성은 자꾸 흐미해져 갑니다. 또 그렇지 안한 사람은 예수님의 신성은  뚜렷해지고 예수님의 인성도 뚜렷해가기는 가는데 신성과 인성, 양성 일위가  자꾸 흐미해져 갑니다. 자꾸 이단화되어 가고 자꾸 속화돼 갑니다.

오늘 아침에는 지금 이 설교는 이거는 말하지 안했는데 여 있기 때문에 이것을  너무 흐미해서 지금 말합니다. 참것 거짓의 것 참것 그림자의 것 참것 일시의  것, 그러면 산 것 죽은 것 하나님 안에 있는 것 하나님 밖에 있는 것, 자꾸  이것을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우리가 구별해야  됩니다. 우리를 거룩한 사람이라 거룩한 물이라 거룩하다 이말은 틀림이 없는  구별을 정확산 구별을 가지라 그말이오.

지난밤에 증거한 말씀을 다시 증거합니다. 요 잘 영감이 없으면 몰라요.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사도라는 이 사도는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명을 맡긴 그 직책을 가리켜서 사도라 이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도가 아니냐, 우리는 사도로 통한 사도라는 그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선 사도입니다. 사도로 통한 사도입니다. 사도의 터 위에 있는 사도입니다.

열두 사도는 사도의 원형이라면 우리는 이 사도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사도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원형적 사도는 문서계시를 기록한 일을 했고 모형적  사도인 우리는 문서로 기록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도 전하고 전할 수  있고 써서 줄 수도 있고 뱃겨서 줄 수도 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록한  것은 원본이고 우리가 기록한 것은 사본이요 증거입니다. 그 차이만 다르지  다른거 없습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그 사명 전해 가지고 뭘 하는데 전해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만드는 사명교회가 뭐인데?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하여 자기가 하나된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되는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 안에 있는 것이 교회요, 이 공로  안에서 진리화된 것이 하나님화된 것 하나님 된 것 아닙니다. 하나님화 돼도  영원히 피조물입니다. 이는 본체적으로 하나님화된 게 아니고 감화적으로  역사적으로 하나님화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그 교회나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과 진리와 그 사람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그렇게 신인양성일위는 안됐지마는 신인양성일행 같이 움직이는 일행이  된 것인데 그것은 뭐인고 그게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지체니 기름부음의 지체다.

기름부음의 지체라니 대제사장에게 속한 대제사장의 지체라, 대선지의 지체라,  대왕의 지체인 왕이라, 대선지자의 지체인 선지자라, 대제사장의 지체인  대제사장이라 그리스도의 은혜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은 제사장 만드는 일이요, 선지자 만드는 일이요, 왕 만드는 일인데  그리스도 예수라 하면 그리스도라고 기록된다면 그리스도 예수라 하면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기 전 하나님 목적을 정하실때 하나님 목적이  자존하신 존재 다음에는 제 이위로 존재한 것이 무엇입니까? ○○○목사님. 예  제 이위 존재가 하나님 목적입니다. 제 일위는 전부 자존들이요.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그리스도 자존하신 말씀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 그말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도 이름을 말하기를 속사도 또 우리는 말하면 속속사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신약에서 표현하는 술어로 말하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값주고  사서 우리를 그리스도인 만든 우리를 사도에게 속한 모형적 사도를 만든  속사도를 만든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의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라. 그리스도 예수는 영원 전 자존하신 이 하나님에게서부터 도성인신까지의  과정을 표현할 때에는 그리스도 예수라 표현하고 예수 그리스도라 표현할 때에는  도성인신으로서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이 공로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제사장  선지자 왕이 이렇게 조성되는 이 과정을 표현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 할 일은 그리스도의 그 구원을 이루는  것이 우리 할 일인데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우리 할 일이라니 우리  자체가 제사장 선지자 왕되는 것이 우리 할 일이요. 모든 사람을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할 일이라. 이 일은 어떻게 해서 되는가? 하나님의  도로 인해서 된다. 하나님의 말씀의 도로 인하여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이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데 이 방편 이 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좀 어렵습니다. 좀 아는데.

그러면 제사장은 뭐인가 제사장은 뭣 하는긴가 제사장은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양심을 써야만 겨우 깨달아지지 이것을 자꾸 이렇게 그  한쪽으로 이래 나가면 그만 멀리 나가기 때문에 너무 이 절정에 속한 것을  말하기 때문에 그 하나 말하면 저 아주 발치 발단에 저 말단에 가면 뭐인지를  몰라 이러기 때문에 자꾸 요 안에서 뱅뱅 돌며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사장 선지자 왕은 이 그리스도의 은혜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하나님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만들어질 때에도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것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편리하도록 알맞도록 만들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쓰이지도록  만들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하나님께 피동으로  만들어져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제사장을 만드는 데에는 종이 아니면 만들어지지를 않습니다.

예 종이 아니면 만들어지지를 않습니다. 종이라니 하나님께서 우리 구주이신  하나님게서 우리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영이라니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으로 만들어집니다. 순종 뭉퉁이입니다. 그분의  뜻대로 만든 뭉텅이 입니다. 그분에게 편리하게 만들어진 뭉텅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 요거 잘 알아야 되요. 그분이 이 세상에서 무궁을 두고도  무궁에 가 가지고 무궁세계 가서 쓰여질 것을 영원무궁세계가서 영원히 쓰실  것을 이 세상에서 만듭니다. 이걸 어떻게 제조하는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뭉텅이를 자꾸 만들어 갑니다. 순종 뭉텅이입니다. 하나님이 요래 써 보시고  저래 써 보시고 하나님이 써보신 쓰신 고 뭉텅이 입니다. 하나님이 쓰신  뭉텅이요. 하나님이 쓰심으로 만들어지는 뭉텅이요. 쓰심으로 만들어진  무텅이요. 순종으로 만들어진 뭉텅이요.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진 뭉텅이요.

하나님을 위한 뭉텅이요. 하나님에게 편리한 뭉텅이요.

이러기 때문에 요 뭉텅이의 제조는 종 외에는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종 외에는  이걸 만드는 방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요게 깨달아져야 되요 이거 쉽게 아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가서 많이 기도하고 하면 알아질 것입니다. 요 종으로만  만들어져야 되요.

그러면 종으로 만들어지면 어느 정도 종이 될 것인가? 어느 정도 종이 될것인가?  그것은 종이 된 정도만침 어느 정도 제사장이 될 것인가? 그말입니다. 어느 정도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왕이 될것인가? 어느 정도 종이 된것만침 어느  정도 당신의 것이 된 것만침 어느 정도 당신에게 편리하게 당신이 편리하게  만들어져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만침 필요하게 만들어진 것만침 그의 것이 된  것만치 그에게 피동된 것만침 그에게 쓰여진 것만치, 그것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당신이 마치 종을 잡아 부리듯이 종을 잡아 부리듯이  당신이 구속받은 우리를 요렇게 조렇게 쓰시고 또 시키시고 또 요 고생하는 걸  만드시고 또 겸손하는 걸 만드시고 교만한 것을 꺽으시고 온유한 것을 만드시고  불의를 모두 그 꺽을 불의를 꺽는데 쓰는 또 의를 건설하는데 쓰고 당신이  요게도 쓰고 조게도 쓰고 어데 우리를 요게도 써보고 한 번 써 보면 고게  되어집니다. 또 조게도 한 번써 보고 만 번 써 보면 만 번 쓴 그 만 쓴대로  되버립니다. 만 번 순종 했으면 순종한 고것대로 됐습니다. 한 번도 순종 안  했으면 순종으로 된것을 하나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부활하지마는 제사장 선지자 왕으로 된 것은 하나도 된 것은 하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왜 땅 위에 고렇게 만드는 데에 만들어 지지를 안했으니가  요거는 종으로만 만들었는데 종이라니 그분이 쓰시는 대로 쓰이지는 게  종입니다. 그분의 유익을 위해서 그분 위해서 쓰실 때에 쓰이지는 게 종입니다.

그분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 종입니다. 요 종으로만 요걸 만드는데 종이  아니고는 만들지 못하는데 그러면 종이 한내끼도 되지 안한 그 자는 피로 값주고  산 종의 노릇을 하나도 안한 그자는 만들어지는 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체가  종으로 살았으면 산것만침 만들어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일직부터 예수 믿는 게 늦게 믿는 것보다 믿는 데에는 한 가지만  그분이 필요한데 한 번만 쓰인 것보다 만 번 쓰인 게 낫고 만 번보다 십만 번  쓰인 게 낫고 그분에게 유익하도록 그분 위해서 그분 위해서 많이 쓰인 것이  그분 위해서 그분을 많이 위한 것이 여러번 위한 것이 요모 조모 위한 것이 여러  군데 위한 것이 그것이 여러 군데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 말을 다 할라 하면 한이 없는건데 종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이 은혜 그리스도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라 하니 또  그리스도의 형상은 종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고것만 기억하시고  여러분들이 잘 세기십시요. 종이 아니면 그리스도의 형상은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인 종노릇을 하려고 하면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노고가  있습니다. 수고와 고생이 있습니다. 왜 뜨거운데 당신이 쓰시면 뜨거울기고  차운데 쓰시면 차울 것이고 갑갑한데 쓰시면 갑갑할 것이고 도 멸시 천대에  쓰시면 멸시 천대 될 것이고 그러기에 우리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접한 모든  종류의 인간의 고생이나 인간의 수고라 인간의 영광이라 존귀라 종류있는 대로는  당신이 어데다가 쓸런지 모른다 그말이요. 어데다가 쓰실런지 몰라 이러기 때문에 주님만날 처소가 어디인지 내 앞으로 남은 길이 혹 고난일런지  평안일런지 뭐일런지 모른다 그러기에 종이라 지난밤에도 말하는 종 말은 못해도  움직이는 종 그건 짐승이겠고 말도 움직이도 못하는 종은 도구 불집께 젓가락  밤낮 수저를 받아 먹다가 수저를 저 집에내 던지서 똥구덩이 집어 내던졌다고  수저가 불평을 합니까? 그대로 던지져 있지 예 실은 그대로 되는 것인데 되는데  우리 구원은 주관 구원이기 때문에 건설구원은 주관 구원이기 때문에 그러게  되는데 고것을 합당히 여긴거와 거기에서 불편을 해서 벗어난 것과 당신의  종으로 쓰이지는 걸 벗어난 것과 종을고 쓰이지는 것과 다르다 그말이오. 이거는  영감이 아니면 느끼지지를 못해.

이러니까 우리는 고난을 각오해야 됩니다. 어데 쓸런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기에  요걸 굳게 잡아야 되요. 아! 나는 종인데 종인데 이 종이 복된 것은 이 종이  복된 것은 무엇 때문에 복된가 그리스도의 이 구원을 이루기 때문에 복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때문에 복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제사장 그  기름부음의 하나님 기름부음의 이 역사를 우리에게 하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사도됐고 사도들로 인해서 우리가 된 우리는 그분과 같은 그분의 형상 그분의  원형이요 그리스도는 원형이요.

우리는 그분의 모형으로써 제사장 선지자 왕된 이것을 종으로만 돼 종이 아니면  안돼. 종이 아니면 하나님이 쓰시질 안해. 당신의 피로 영원히 삿어. 영원히 산  것 산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당신이 쓰셔. 당신이 쓰시지 안하면 이것이  이루어지질 안해 이 종이 이루어지지를 안해요. 종으로 가지고 이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만드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하면 아 무궁세계에서  이면에 나를 제사장으로 쓰실려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 알아야 됩니다. 갇힌데  감옥에 갇힌데 감옥에 갇힐 때에는 감옥에 갇힌 것의 제사장 감옥에 갇힌 것의  제사장 감옥에 갇힌 수없는 그것들에게 영원한 내가 제사장이 되겠구나! 거서  제사장 노릇을 잘해야 제사장이 됩니다.

그런고로 어데서든지 우리가 당하는 모든 형편은 공장인줄 알아야 합니다.

처소인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형편은 마구 좋아서 못견디는  고것도 좋아 못견디는 그게 우리의 것 아니요. ○○○목사님 잠들어 잠 오는데  잠오면 저 ○○○목사님 뒤에 뚝 떨어져 목사가 뒤에 뚝 떨어지면은 배척  당합니다. 안 깨달으면 이거 이 그리 껍데기 있게 껍데기 아니요. 이 도를  모르면 안 돼.

이러니까 우리 지금 서부교회가 양을 버리고 어서 질로 들어가야 된다 하는 것을  말한 것을 이걸 깨달아지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천하에 제일 영광있는 자리에  있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당장 줄려면 당장 줄 수 있소. 제일 천하에 제일  영광된 자리인 것도 그것이 내 직책 아닙니다. 그것이 내 영광 아닙니다. 그것이  내 것 아닙니다. 다만 나는 거기에 머물고 사는 내 처소인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거처하고 있는 처소 내가 거처하는 방과 같에 내가 거처하는 방과 같애  거서 뭣 하는고 거기에서 거서 뭣합니까? 하는 일이 뭐입니까? ○○○거기에서 제사장 만드는 것, 선지자 만드는 것, 왕 만드는 것, 거기에서  그거 합니다. 직장에 들어 갔느냐 그것 합니다. 시집을 갔느냐 그것 합니다.

장가를 갔느냐 그것 합니다. 서로 친구끼리 사랑하느냐 사랑하는 그런 처소라 그  가운데서 그거 하고 있소. 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이룰려면 어떻게 해야  이룹니까? 그것은 무슨 뭉텅이입니까? 그것은 무슨 뭉텅이지요. 순종 뭉텅이  하나님 위하는 뭉텅이 하나님의 뜻대로의 뭉텅이 이러니까 한말로 말하면 종, 종이 아니면 이거 만들어지지 안해 종이라야  만들어지지 이렇게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면으로 여러면으로 이렇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려 하면은 여러면에 쓰이지야 되지 여러 면으로 만들어져야 되지  여러 면으로 그것이 여러면으로 한나님에게 필요해야 되지 여러면으로 하나님을  원해야 되지 여러면으로 하나님에게 쓰여져야 되지 여러면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지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면 안 이루어집니다.

이리되면 우리가 이 어리석게 네 주관대로 이 악습 이대로 좋은 자리라 좋은  처소에 갖다 놓으면 좋은 처소라고 거기에 미혹받아 가지고 고만 거기에 들어  붙어버립니다. 저 살 곳 아니고 퍼득 지나갈 곳인데 좋은 처소에 갖다 놓으면  그거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그 처소나 저 처소나  그거는 네가 잠깐 지나가는 것인데 너할 일은 따로 있고 네가 만드는 것이지 아  좋은 처소를 줬다고 이래 가지고 그 처소인 줄도 모르고 그게 자기 기업인 줄  알고 그것이 자기 것인 줄 알고 야단을 지깁니다.

좋은 처소를 줄 때에 나는 여관집에 들었다. 좋은 처소에 들을 때에 나는 잠깐  있다가 지나간다 여기에서 할 일 있다 좋은 처소에 이것 저것 구경하다 보니까  할 일 못 해 버렸다. 좋은 처소가 좋거나 아름답고나 뭐 구결할 필요가 없어. 그  처소에서 나 할 일 하고 또 나쁜 처소 그것도 나쁘다고 그거 구경할 것 아니고  불평할 게 아니고 나 할일 하고 그러면 나쁜 처소 좋은 처소 그것을 누가 그렇게  평가하는가 그것이 땅에 속한 인간이 평가하는 것이지 하늘에 속한 인간은  평가를 안해 똑 같애 이것도 위험성 있고 저것도 위험성 있고 이것도 이 요소  있고 저것도 이 요소있고 똑같애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나갈 때에 그러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우리가 시험에  듭니다. 좋은 것을 당할 때에도 거기에 들어 붙어서 시험 당하는 것 어려움  당하면 거기에서 어리석게 오해해서 낙망해서 실패 당하는 것 이거 다 위험성  있어.

그러면 아 저 사람은 저 사람은 번적거리는 처소 주니까 거기에 들어 붙어  가지고 지금 꼼작 못하고 있다 그것도 불쌍하요. 그 된 줄 알았는데 안됐소  불쌍하요. 있는 것 같으나 가난한 자입니다. 저 사라은 또 험한 처소지마는 실은  그 밤송이 속에 알밤이 있듯이 속에 참 좋은게 들었는데 그걸 몰라서 지금 그  불평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구원 이루어 나가기에 아무리 고생이 어렵다 할지라도 안  믿는 사람들이 지옥에 가서 고생하는 그 고생과 비교해 보면은 그 뭐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녜 우리가 이 구원 이루어 나가면서 고생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예수님 없이 지옥에 가 가지고 영원히 고생 당하는 그 고생에 비교해 보면은 그  고생만은 못 합니다.

그 우리가 주님을 따라 갈 때에 십자가에 고난을 당할 때에 예수님의 이 주신  예수님의 구원 아니면 영원한 지옥에 고난 당할 것 아닌가 지옥에 고난과 우리  고난 좀 생각해야 됩니다. 예 좀 비중을 달아 봅시다. 내가 또 아무리 내가  아무리 고생을 한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 위해서 고생한 거와 또 이 비중도 한 번  달아봐야 합니다. 양쪽에 비중에 달아보면은 내게는 너무 주님이 후하게 하셨고  너무 나는 불충이고 너무 그 거기에 대해서는 너무 은혜로운 것이요 너무 평탄한  길을 줬습니다.

또 양쪽 고난 지옥의 고난 주님이 나 위해 고난 당한 양쪽보고 또 우리 고난이  또 무슨 고난입니까. 고난은 이 영원히 사망시키는 영원히 고생시키는 영원히  비참하게 가련케 하는 이 감옥 속에서 이 원수의 진 속에서 우리를 멸망시키는  원수의 이 적진 속에서 거기에서 벗어나온 고생입니다. 벗어나오는 고생이요.

전적 속에 포의된 데에서 우리가 그게서 벗어나오는 고생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인도를 따라가려고 하면은 고생된 거는 세상줄을  끊는 연고입니다. 세상 줄을 끊기 때문에 끊는 고생이요. 전쟁할 때에  공산주의의 그 첩첩히 쌓인 그 적진 속에 포의된 거기에서 그 포의망을 벗어나게  하려고 얼마나 고생이 있겠습니까. 벗어나는데 고생이 없겠습니까. 좀 이것도  전쟁 안해 본 사람도 좀 상상도 해 봐야 되지 적진 속에서 벗어나는 그  고난입니다. 그 고난과 같은 고난이요.

이 모든 사망에서, 저주에서, 멸망에서, 없어질 것에서, 썩어질 것에서, 약한  것에서, 악령에게서, 악성에게서, 거기에 속해 있던 그것이 거기에서 벗어날  그걸 그 원수의 그 망을 벗어나기 위해서 원수의 진을 벗어나기 위한  고생입니다. 이것 느껴집니까. 전쟁을 안 해본 사람들은 느끼지지 못할런지  모른데, 나는 전쟁 안해도 그 전쟁 속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좀 상식이 되고 또 안  있어도 이래 말만 듣고 상상을 해 봐도 그 전쟁할 때에 그 여러분들은 잘 나보다  더 많이 봤을 것인데, 그 모든 역사에서든지 또 월남전이나 6.25전이나 그런  전쟁에서 보면은 원수 속에 원수의 포의망 속에 들었을 때에 그때 그 벗어날려고  얼마나 고생합니까. 안 벗어나면 죽기 때문에 안 벗어나면 죽기 때문에 생명  내놓고 지금 있는 생명을 그들에게 뺏기는 생명이니가 이미 그들에게 뺏기는  생명이니까 그들에게 뺏기는 것보담은 생명이 있는 데까지는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해서 예수 믿는데 어려움 당하는 것은 이  원수의 사망의 진에서 벗어나는 이 고난이요. 이러기 때문에 희망있는  고난입니다. 또 이 벗어나 가지고 아군의 진 속에 아군의 진 속에 뛰어들어가는  것. 아 벗어나기는 벗어났다마는 와 아군의 진 속에 들어가야 할 터인데 얼마나  남았나 아직도 이십리나 남았다 그 가운데는 지금 보초망이 얼마나 있다 뭐  언덕이고 들경이고 물이고 상관없이 이렇게 노력을 해 가지고 애를 써 가지고  아군의 그 진 속에 아군의 그 부대 속에 쏙 들어가면은 그때부터 턱 자빠질  것입니다.

아마 그 들어가는 데까지의 얼마나 고난이 있겠소. 우리의 고난은 이렇게 주님이  쓰시는 대로 쓰이지는 종, 큰 값에 팔렸고 이 종은 이것은 값없이 공연히  고생하는 게 아니라 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이 큰 일을 이루는 일인데  이랬는 데는 당신이 이렇게도 여기에도 써보고 저게도 써보고 이래 써봐야  써보는데 거기에서 잘 쓰여졌어야 무궁세계에 고면에 쓰일 수 있다 말이요.

이렇게 시킬 때에 고면에 순종했어야 무궁세계에 고면에 고런 것을 시킬 수 있다  말이오. 이 세상은 무궁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궁을 만드는 것 이러기 때문에  별별 일 있어. 우리에게 어려움을 닥친다 그말이오. "하늘나라 가려면 고난을  많이 겪어야 할 것이니라" 사도행전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고난이 오는데 아무리 고난이 와도 지옥에 있는 고난보담은 낮아  아무리 내가 주를 따라가는 고난이 많아도 주님이 나 위해 고난 당하는데  하나님이 나 위해서 희생한 그만은 못해! 까짓거 갖다가 억억만분의 됩니다.

그는 무한이요 나는 유한인데 또 이 고난이 무가치한 고난이 아니라 기필코  기필코 해야 될 고난입니다. 기필코 겪어야 될 고난이라.

왜 원수의 적진 속에서 내가 안 벗어나오면 거서 멸망받는데 벗어난 것만침은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이 됐고, 욕된 것이 영광된 게 됐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이 됐고, 혈육의 신령한 것이 됐지마는 안 벗어난 것은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택한자의 요소가 벗어나지 안한 것은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요.

이것을 가르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무슨 사망, 둘째 사망 이걸 둘째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망에서 벗어난 자는 이미 망할 것이 이미 죽을 것이  내놓고 각오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요리하라 조리하라 하면 한 번  따라가기가 고난스러워도 있으면 죽을 것이니까 그 순종하다가 죽으면 되는기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여기에서 탈정 나는 고난이요. 주님의 이 영생 속에 생명 속에  들어가는 고난이니까 이 고난을 겪을만 합니다. 또 이 고난이 세상에서 정권하나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그 뭐 생명이 죽는 생명 내 놓는 일 몇 번이나 이래  하는데 (김대중)씨가 그 정권 잡기 위해서 죽을 고비 몇 번이나 넘겼습니까. 그  죽을 일을 한다 그말이오. 잘못했기 때문에 실패만 안 합니까.

이 세상 일도 정권 하나를 잡으려고 해도 자기가 몇 해를 좀 명예스럽게  영광스럽게 살려고 해도 머리가 바짝 마를 만침 병이 들만침 이렇게 노력 있어야  되는데 노력이 있어야 성공을 하는데 제사장을 만드는 이 일에 노력이 없이  될긴가요. 고생없이 될긴가요. 세상 모든 영광 이거 위해서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한 번, 두 번, 열 번, 스므 번, 날마다 생명의 위험성을 무릎쓰고 해서  성공이 있다 또 아주 지루하고 지리한 그런 고난을 통해 가지고 성공이 있다.

하물며 내가 제사장 선지자 왕 이 성공을 하기 위해서 이것 되기 위해서 당하는  고생이니 수고니 이 수고와 고생에 비해서 이루어진 결과는 그거는 측량  못할만침 커지니까 얼마나 기쁩니까. 이것을 깨달으면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 피곤치 아니해야 진짜지 피곤하면  가치없는 것입니다. 잊어버렸어 벌써 옛사람으로 돌아갔어.

우리의 이 구원은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인데 이 구원을 이루는 방편은 종  외에는 없어. 이 구원이 뭐인데 한 분 당신의 것으로 당신의 당신에게 필요한  것으로, 당신에게 요긴한 것으로, 당신에게 당신이 쓸 수 있는 것으로,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당신에게만 예 예 예 예 순종하는  것으로 요걸 만들기 때문에 종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종으로 살  때에 큰 값을 내고 삿습니다. 어데걸 삿는가 저 멸망 구덩이 속에 빠져 있는  것을 샀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독침 앞에서 공산주의 그 모든 고난 앞에서 또 이 세상  십자가의 모든 그 어려움 앞에서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해야 될 것, 이거 뭐이냐?  그리스도의 형상 만드는 그 큰 일을 하기 위한 고난입니다. 이 일을 만드려고  하니까 당신이 당신의 이 그리스도 형상이 그리스도의 형상이 뭐하는건데  당신에게 무슨 관련 가진긴데, 이러기 때문에 당신으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요게서 지금 요거  요것은 요 처소를 주는 것은 요게서 당신 시키는 대로 요게서 당신이 필요한  대로 요 처소를 주신 것은 사형을 주신 사형이라는 요 처소 사형이라는 그것이  내가 죽는 게 아니라, 사형 그 사형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는  처소라, 고것 땅이라, 고 장소라, 공장이라. 이러니까 요게서 당신이 요게  요런데에 쓰시기 위해서 당신이 나 요것 만들었으니까 요게서 당신이 쓰실 수  있는 대로 쓰이지도록 되어지는 고것이 종이라야 되지 이러니까 이것이 큰 희망있는 고생이라 큰 희망이 이쓴 고생이라 또 이것이 죽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큰 희망을 달성하는 방편이라. 또 고난을 당해봤자 지옥에서  영원히 당할 것이 당할 그자이니까 지옥에서 요거 당할 그 자인데 거서 나와  가지고 당하는데 거기에 있는 고난을 그런 고난 받을 자들을 건져내 가지고  희망없는 그 큰 고난 받을 자를 희망있는 조그마한 고난 받게 했으니 기쁘지  피곤치 않지, 또 날 이런 구원을 거기에서 건지는 이 구원 주시기 위해서 당신이  그 댓가 낸 걸 생각하면은 그 큰 댓가를 내서 했는데 큰데 내가 한 걸 내가 주를  위해서 요만한 댓가를 못낸 것이며 이 큰 댓가를 내 가지고 나에게 이 준걸 내  좀 값이 비싸고 어렵다고 내가 가지고 배반할긴가 할 수 없다 그말이오.

고난에 대한 지식을 또 이것이 실상 사기고 보면 나그네 세상에서 모든 사망의  줄에서 끊는 고난이요.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 줄 끊는 연고라 거기에서  거기에 매인 줄 그거 끊을라 하니까 원수의 진에서 벗어날라 하니까 당하는  고난과 같은 고난이니 아무래도 가다가 말아도 죽어도 가야 될 길이지 안 갈  수는 없는 길이라, 안가고 있으면 절단이라 죽어도 가야 될 길이라 그말이오.

또 죽어도 이 생명이 진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죽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어도  생명이 진안에 들어가기까지는 내놓고 가다가 가야 되겠다 이거요 또 이 고난이  큰 희망을 이루는 그 고난이기 때문에 한 고난 한 고난에서 영원무궁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가는 이 고난이니 희망있는 고난이라 그말이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일본 있을때 그때는 사람들이 이 모자를 집어 째 가지고서  지금 모자 쓰는 것을 그 유행이 됐었습니다. 그래 나는 그때 돈이 없어서 거  까지는 공부를 못하고이 사각 모자 쓴 사람들이 참 부러웠는데 이 사각 모자 쓴  사람들이 모자를 쓰되 사각 모자를 막 주 뜯어 가지고 막 집어서 이래 가지고  썼는데 그게 뭐이냐? 아! 저 사람은 지금 대학에 다니는데 대학을 해 가지고  저렇게 장래의 성공을 위해서 대학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고생을 하는 사람이라.

이래서 사각 모자 쓰고서 이 사각 모자 떨어진 모자를 쓴 거는 그 떨어진 모자를  쓴 것이 어떻게 매력있고 모든 사람들이 뭐 좋아하고 매력있어 보이는지, 일부러  새 모자를 찢어 가지고 사 가지고 뜯어 가지고 그래 씁니다. '나는 이렇게  희망있는 영광있는 이 희망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 모든 헐벗고 굶주리고  나간다.' 하는 것이 헐벗고 굶주리는 게 영광이라 그말이오.

하물며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이 영광된 직을 이 직이 얼마나 큰 직인데 무슨  직인데 여러분들 제사장을 가서 자꾸 성경을 찾아보면서 제사장이 뭐인가 연구  해 보십시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그 사이에 조화를 붙이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예 중보자라 말이오. 하나님도 제사장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모든 것 가지고 피조물도 어떤 것이든지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게를 가지고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광된 그리스도의 형상 제사장 내가 제사장이 되기 위한 고난이요. 이  큰 희망을 가진 고난이요, 내가 제사장 노릇을 하는 고난이라. 제사장이 내  자체가 제사장 되는 고난이요, 제사장 노릇을 하는 고난이라. 선지자가 되는  고난이요, 선지자 노릇을 하는 고난이라.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내가 왕 내  자체가 왕이 되는 되기 위한 고난이요. 왕노릇을 하는 고난이라. 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영원한 통치야! 이러기에 우리가 우리 차제가 어떤 구속을 받아 어떤 자인 것을, 어떤 희망이  있는 자인 것을, 이 희망을 이루는 데에는 어떤 방편으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이루는 데에는 어떤 노고가 있다는 것 이 노고는 큰 노고를  조그마한 노고를 우리에게 바꿔 줬습니다. 이 노고는 죽음에서 벗어나오는  노고입니다.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노고입니다. 이 노고는 영원무궁의 무궁토록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영광과 존귀의 이 희망을 달성해 나가는  노고입니다. 파괴적인 노고요 벌받는 노고 아니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깨달아 그래 스웨덴부르크가 말하기를 하늘나라에 가  보니까 입신해 가보니까 명상 많이 한 사람이 제일 봉사 많이 했고, 구원 많이  이루었고, 성공 승리 많이 했더라 명상은 눈감고 생각한다 그말이오.

주님과 우리와 모든 피조물 사이에 이 무한함을 무궁함을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이 다 사랑 역사인데 이 무한함을 자기가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니가 마음이 불이 나온 그 불이 영감이요 우리 속에 사람의 힘입니다.

그게 사람의 참 사람의 힘이요.

이러니까 그래 가지고 하니 앉아서 말해도 큰 성사요 큰 역사요. 생각해도 큰  역사요. 움직여도 큰 역사요 이것이 승리입니다. 깊이 깊히 생각하지 안하면  몰라요. 생각해서 요게서 입각해서 하는 그것은 무한의 연결되서 무한한 결과를  맺지마는 그것 떼놓고 제 인간 혼자 이 천하의 인간의 있는 모든 방편 모든 지혜  지식 다 뚤뚤 뭉쳐 가지고 움직이 봤자 팥이 솥 안에 든 팥은 삼기도 솥 안에  있어 솥 안에 있어 그 암만 해 봤자 사망의 테두리 속에 있는 것 그까짓거  아무리 되풀이 해봤자 많아 봤자 적어 봤자 가치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한 십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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