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 20:39
우리의 표본은 예수님
1986. 9. 8. 새벽 (월)
본문:에베소서 4장 10절∼16절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다 같이 기도 드립시다.
평생 처음 만나는 이날 첫시간을 주님 앞에 나아와서 우리의 모든 받은 은혜를 생각하여 감사할 기회와, 또 우리들에게 있는 모든 사정을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고하여 의논할 기회와, 우리의 행복에 병이 되는 허물과 실수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고하여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와, 이 망망하고 호호하고 냉정스럽고 거짓됨이 가득 찬 이 세상을 헤어나갈 때에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주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허랑방탕이나 또 게을이나 모든 고기덩어리 욕심에 따라서 첫시간을 넘기지 아니하고 깨어 주님 앞에 나오게 됨을 감사합니다.
아직도 나오지 못한 형제들을 연약함을 도우시고 그들에게 굳센 마음과 깨달음을 주사 주님은 참으로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며,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고, 우리를 사랑하사 생명까지 다 버려 사랑하시는 이 사랑을 깊이 깨닫고 주님 찾아 의지하고 바라보고 맡겨 놓고 사는, 참 갓난 아이가 어머니 품에서 염려 없이 사는 것처럼 이런 전능자의 품에서 염려 없이 평강의 여생을 승리로 성공으로만 자라갈 수 있는 이 생애를 모든 자들에게 주시고, 항상 오늘 하루 해를 지켜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현실 현실마다 승리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생애가 이루어짐으로 주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지극히 큰 영광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조그마치라도 신앙 생활 할 때에 주님이여 적으나마 이것을 귀히 보실 줄 압니다. 즉시 즉시 저들에게 효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여 주시옵소서. 베드로가 고기 잡았던 그 효력 나타난 걸 보고 그는 놀랐고 회개하여 사람을 취하는 사람으로 성화되고 이루어진 걸 저희들이 봅니다.
저희들에게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에 조그마치라도 고침이 있을 때에는 즉시 주님이 그들에게 고침에 대하여 주님이 기뻐하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고 같이 하시는 증거를 확실히 보게 하사 점점 자라서 주님에게까지 이르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이 피조물되어 땅위에 내려오셨습니다. 내려오셔서 우리 피조물들을 택한 자도 대속하시고 또 피조물들에게 속한 것들을 다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과 영원 무궁에 하나님의 지어 놓으신 그 모든 것이 우리 택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필요한 장소가 있고, 필요한 모든 생물이 있고, 무생물이 있고, 이 모든 초목의 식물들도 있고,식물, 식물이라 하는 거는 먹는 거 말고 심어서 되는 거 말이오. 화초 같은 거식물들도 있고, 우리 또 의식주에 필요한 것도 있고, 모든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만 영생하고 그런 것은 다 영생을 못 한다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영생하도록 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와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영생하도록 이렇게 만드시기 위해서 주님이 땅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이래서 “이는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내리셨던 그가” 예수님이 내려오셨다가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오르신 자니, 그러면 예수님의 신성은 그렇지마는 예수님의 인성이 그렇게 모든 피조물 위에 가는 그 위치를 가지게 됐습니다. 이는 봉사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 우리도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우리에 필요한 모든 것들도 하나님으로 충만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대형 대행 대화친의 봉사를 하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또 우리를 영원히 대속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피조물을 입으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위해서 희생하신 것은 크게 말하면 두 차례 희생인데 한 번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희생해서 대속하신 것이고 또 하나는 영원히 피조물을 입은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대속하신 그 구원을 실상으로 우리에게 주셔서 누리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봉사하시기 위해서 당신이 희생함으로 우리에게 행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두 차례, 내리셨음으로써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 우편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부활하고 난 다음에 마리아가 주님인 것을 깨닫고 하도 반가워서 만질라고 하니까 “나를 만지지 말아라. 내가 아직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내 아버지 너희 아버지에게 올라가지 못했으니까 만지지 말아라.” 하시고 그 뒤에 잠시 후에 다시 나타나셔 가지고 “이제는 나를 만져보라. 나를 잡아보라.”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때에 올라가셔서 지성소 법궤 위 그룹 사이에, 성전에서 해 놓은 그대로에 이제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 위 아버지 우편에 올라가셔 가지고 존영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2장 5절 이하에 보면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음으로써 아버지가 이것을 원하시는 대로 당신이 다 복종했기 때문에 그를 지극히 높여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만물 위에 뛰어나게 한 이름을 줬고 모든 피조물들이 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고 시인하는 이 영광스러운 영광을 가지게 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범죄한 것도 택한 자들에게 속한 것과 멸망시키지 안해도 될 모든 것들은 영원히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만물을 충만케 해서 요한계시 20장 이하에 쭈욱 내려보면은 만물을 다 새롭게 하는,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가지고 그때는 다시는 죄악이나, 죽음이나, 뭐 아픈 것이나, 시기나, 미움이나, 곡하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그런 것이 없는, 진리와 생명과 사랑과 평강으로서 영원한 그 평가의 나라가 건설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내려오셨고, 11절에 보면은 “그가 또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로 교사로” 이렇게 직책들을 줘 가지고 사람들을 모두 그렇게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나고 난 다음에 목사되는 것도 아니고 선지자되는 것도 아니고 나기 전부터 이는 벌써 선지자로 창조해 가지고 나기 전부터 그렇게 구별해서 만든 것은 뭐이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두 직분을 줘 가지고 맡긴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직분 맡은 것은 제가 남보다도 특출해서 직분 맡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이 사람은 이런 직책을 맡기고 저 사람은 저런 직책을 맡겼습니다.
여러분들이 뭐 반사노릇 하는 것도 여러분들이 잘나서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반사를 만드시고 또 만든 것만치 영원히 존영한 위치에서 봉사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래서,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예수님의 피로 구속한 자들을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봉사의 일, 하늘나라의 일은 무슨 일인가? 봉사의 일입니다, 봉사의 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슨 일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대해서 봉사하는 일 합니다. 그러면 피조물들이 다 하나님의 것으로 살고 있지마는 하나님의 것으로 사는 줄이나 압니까? 사는 줄도 모릅니다.
나는 요새 이 왼손 이거 우리 ○장로님이 그래 가지고 조금 약을 가르쳐 줘서 그거 하고 좀 나은데 안 낫습니다. 조금 낫고 안 나아요. 안 낫는데 ‘이게 뭐인가?’ 며칠 전에 내가 그걸 느꼈습니다. 내가 이 손 이거 뭐 성해도 이거 감사한 줄 몰랐고 이랬는데 이제 이 손 준 것도 감사하고, 눈 준 것도 감사하고 이걸 가만히, 주님이 주셨는데 이게 만일 없어졌으면 어찌되느냐? 없어져야 알지 있을 때는 모른다 그말이오. 사람이란 것은 강퍅해서.
눈을 준 거 귀를 준 거, 눈을 안 줬으면 이 모두 삼라만상을 보지도 못하고 깜깜하면 얼마나 기막히겠습니까? 또 듣는 것도 말이지요. 모든 것을 듣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겠는데, 이 지체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그전보다 새롭게 감사를 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이거 깨달으라고 하는가보다’ 이제는 자꾸 감사를 합니다. 여게 대해서 감사를 하면은 하나님께서 이 지체 주신 데 대해서 이 하나로 인해서 모든 것을 감사를 할 만치 감사의 그 도수에 나로서 할 만치 감사를 하면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깨끗게 해 주실 것이다 하는 그런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 인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봉사하는 일, 우리도 자꾸 자기가 자기만 위해서 하는 것은 사망의 법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자기가 자기 위하지 안하고 자기가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쳐서 봉사하는 이 일을 할라고 애를 쓰는 것만치 자기는 가치 있는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물품도 보십시오. 시장에 가면은 여러가지 물건이 있지마는 그 물건의 가치가 어데 있는고 하니 그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효력을 많이 주는 것은 가치가 높고 효력을 하나도 주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들은 가치가 없어요.
해가 되는 것들은 다 없애 불에 태워 버리고 자꾸 없애 버립니다. 뭐 필요한 것들은 자꾸 존대하지 않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 집에 사람이 죽었을 때에, 어떤 사람은 그 집에서 약을 먹여 죽이는 사람도 있고 또 죽으면 시원하게 됐다 그렇게, 겉어머리 우는 척 하고 뭐 눈에다가 침을 바르지마는 이제 실은 시원하다 이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진정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데 대해서 마음에 이 아깝다, 이거 참 원통하다, 또 이거 큰 낭패당했다.
낭패다 하는 그 낭패된 사람들, 필요로 여기는 사람, 또 세상을 떠났으니까 아까워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많은 사람이 그게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봉사라 하는 것은 이거, 하나님으로서는 제일 기뻐하시고 큰 일이 뭐이냐? 봉사하는 일인데 우리 믿는 성도들도 만드시기를 하나님께서 봉사하는 일을 하도록 만들었고, 또 이랬는데 봉사하는 일을 하지 안하고 저 좋게 할라고 하다가서 영원한 사망을 당했습니다. 선악과 먹은 것은 저 좋게 하는 것이오.
저를 지으신 하나님을 좋게 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선조니까 우리 자손들도 날 터이니까 자손들 좋게 한다든지 이런 걸 생각했으면 안 그랬을 터인데 저 좋게 할라 하는 것으로서 영원한 사망을 당했습니다.
또 예수님은 둘째 아담은 남 좋게 할라는 거, 아버지를 좋게 하고 모든 택자들을 좋게 하고 만물을 좋게 하고 남 좋게 할라고 함으로써 지극히 높은 그 영광의 자리를 점령하고 또 그 자리에 꼭 서셔야 되도록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남에게 얻는 것보다도 주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는 재미를 봐 보십시오. 또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잡아 이용하는 그 재미보다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친 봉사한 그 재미가 참 재미고 그 깊은 재미가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많이 체험을 할 것입니다.
이래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할라고 예수님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 예수님이 땅위에 오신 것도 봉사 위해서 왔고 우리를 사랑함으로 위했고,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것도 죽은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다시 피조물로 부활하신 것도 전부 우리를 봉사하기 위해서 이와같이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봉사는 이 일 하셔 가지고 우리를 멸망 가운데서 구원하신 것은 우리도 당신과 같이 봉사하는 이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여게 보십시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온전케 하기 위해 주님이 오셨고, 12절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또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이 봉사의 일을 할 수 있는 이런 인간성으로 속성으로 이렇게 변화시킨다 그말이오.
장가를 가니까 어떤 여자가 하나 시집을 왔는데 이것은 뭐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그저 항상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은 이 가족들을 이용해 가지고 나에게 유익하도록 할까?’ 하는 요것만 항상, 착취해 먹고 모든 사람을 기생충 모양으로 긁어서 제게 유익하도록 요렇게 할라고 하는 그런 여자가 하나 들어왔으면 그 가정 망합니다. 그 가정이 망해요. 그걸 고칠 수 있으면 고치고 못 고칠상바르면 집어던져 버려야 돼. 그는 뒤에 가서 그만 거석하구로.
그래도 이혼은 못 해요. 성경에 이혼은 꼭 음행한 연고 없이는 이혼 못 하게 했기 때문에 이혼 안 하지만 포기해 집어내던져. 집어내던지면 제가 돌아다니면서 고생 진뜩 하고 뒤에 돌아올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고 또 기도하고 그래서, 차차 차차 고쳐 가지고 처음에는 그런 여인이 와 가지고 남편과 가족들의 기도로 인해서 봉사의 사람이 점점 되어 가지고 그만 시집 온 그 새악시는 시아버지에게도 필요하고, 시어머니에게도 필요하고, 형에게도 동생에게도 아들에게도 뭐 이웃 사람에게도 다 그분은 다 필요한 사람이 되어져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고, 평강을 주고, 도움을 주고, 행복을 주는, 이런 여인이 돼 놓으면 자연히 존귀하게 대우가 올라갑니다. 존귀해져요.
이러니까 꼭 사람이 자기 욕심대로 자기 유익을 위해서 하면 좋은 줄 알아도 그게 자살하는 행위요, 자기 망치는 행위요, 자기 가치를 자꾸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떨어뜨리는 행위. ‘이 사람은 두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이다’ 하면은 가치가 있다가, 이 사람은 두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이 이제는 ‘한 회사밖에는 필요 없는 사람이다’ 그라면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한 회사에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하면은 실직자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에 이 봉사의, 인간의 가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의 가치라는 것은 이 봉사의 가치, 남에게 유익을 끼치고 유익을 주는 이것이 자기의 가치라는 것과 실력이라 하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몸은 봉사의 몸인데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에게 소속해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몸이 되어 가지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함이라.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어떻게 낮아졌으며, 어떻게 가난해졌으며, 어떻게 행동했으며, 어떻게 희생했으며, 어떻게 또 영원한 희생으로 부활하신 것을 우리가 깨닫고 그 사실을 인정한다 말이오. 그걸 믿는 것이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걸 아는 데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온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온전한 사람인고 하니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의 속성과 같이 지식면이나, 지혜면이나, 사랑면이나, 선면이나, 거룩면이나, 진실면이나, 의로운 면이나, 봉사면이나, 희생면이나, 이런 모든 것이 다 예수님과 같이 되어지는 그것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닮아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표본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누구를 닮아야 됩니까? 우리의 표본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표본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표본은 예수님이시오.
이러니까 뭐 사도 바울도 표본 아니요, 백 목사도 표본 아니요, 손양원 목사님도 표본 아니고. 예수님을 표본으로 삼아서 어짜든지 가다 못 가도 예수님과 꼭 같은 자가 되어질라고 하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상을 입어서 예수님의 모형되는 것이 우리의 성공인 것입니다. 모든 인격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성질적으로나 하는 거.
그러면 예수님이 제일 기뻐한 것은, 제일 기뻐한 것은 뭘 기뻐하셨느냐? 당신이 사람되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제일 기뻐하셨고 그다음에 영원히 사람의 인성으로 부활하신 걸 제일 기뻐했습니다. 이 기쁨이오 예수님의 그 기쁨은.
그러면 예수님의 이 기쁨은, 예수님의 그 기쁨은 다른 사람이 시기를 합니까 모든 피조물들이 다 좋아합니까? 좋아합니까 시기합니까? 모두 좋아합니다. 우리의 행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행복은 바로 이루면 모든 만물 원수들까지도 다 좋아하고 영원히 존대하는 이런 가치있는 구원입니다.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휼” 사람의 꼬임에 빠지면 약한 사람이라. 사람의 궤휼, 사람의 꼬우는 그 꼬움에 빠지는 자는 어린 자라. 인격이 어린 자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앞에 와서 아랑아랑하면서 간교하게 하는 그런 데에 꼬임받으면 헛일입니다. 그런 데 꼬임을 안 받아야 장성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장성한 사람은 한 쪽 말 듣고 송사 못 한다는 그런 말이 해당 안 됩니다. 한 쪽 말만 듣고도 다 송사를 합니다. 왜? 한 쪽 말만 듣고도 요 사람 말 듣고 그 모든 된 분위기를 다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딴에는 간교하게 왔다가는 책망을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을 이룬 장성한 사람 앞에는 간교한 사람이 거게 날뛰지를 못합니다. 간교한 사람이 날뛰지 못하고 그것이 오기는 와도 차차 차차 고쳐서 간교한 사람이 오랫동안 지나면 이 간교한 행위가 고쳐져서 사람이 변화되게 됩니다.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풍조라 말은 시대가 휘뜩거리는 데 시대에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다 말이오. 이런데 지금 예수 믿는 사람, 목사들 가운데서도 이런 시대가 되면 그 시대 사람 되고 저 시대가 되면 저 시대 사람 되고 그게 아니고 그 시대야 어떻게 흘러가든지 말든지 그 시대를 딱 잡아서 시대를 바로 잡고 ‘이 시대는 나쁜 시대니까 이거 나쁘니까 암만 천하 사람들이 다 공통이라도 이거 나쁘니까 하지 말아라.’ 자꾸 이래서 모든 것을 다 시대와 모든 이 풍조 이런 것을 다 바로 잡고 거게 흔들리지 안해야 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
그러면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제가 어제 깨달은 거는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투쟁을 해 가지고 완전히 승리해 가지고 생명의 면류관,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연결이 꺾어지지 안하고 연결이 성공하는 연결 성공 이걸 할라고 하면은 우리는 하나님같이 온전한 자가 되어지는 것인데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이렇게 어려운 일, 세상하고 마귀하고 죄하고 사망하고 싸워서 이놈을 다 이겨야 되는 것이니까, 그놈이 얼마나 세상 인간을 뭐 대통령도 그게 점령하고 있고 모든 사람도 점령하고 있는데 이놈을 이길라 하면 우리가 약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주님 앞에 물을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게 힘 있는 대로 한 푼어치 하면 내가 한 푼어치를 그만치 내가 너를 도와 주고, 또 백 원어치 하면 백 원어치만치 도와 주고, 천 원어치 하면 천 원어치만치 도와 주고, 네가 네게 기울이는 거, 예를 들면 네 힘의 십분지 일을 기울이면 내 힘의 십분지 일을 기울여 줄 것이고, 네 십분지 구를 네 힘을 내게 요 계명을 지킬라고 애를 써서 기울이면 십분지 구를 기울여 주고, 네게 힘이 모자라지마는 십의 십을 다 기울이면 내게 있는 십의 십을 다 기울여 주겠다.’ 그러면 우리 사람들이 가진 십의 십은 그것이 하나님의 힘의 몇분지 일이나 되겠습니까? 무한한, 억억만분의 일도 안 돼. 이런데 내게 있는 거 십분의 십을 다 기울이면 하나님이 그 무한하신 능력의 그 십분의 십 전부를 다 나에게 기울여 주시겠다. 그러니까 이것이 자라가는 것이다.
네가 조금 기울이면 내가 더 주고 너는 성공 못 할 유한한 힘을 조그매 기울이면 내가 무한한 힘을 기울여 가지고 성공하게 되고 성공하게 되게 되니까 누구든지 힘을 써서 살고자 하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자는 다 얻을 수가 있다 하는 것을 주님께서 결론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을 오늘 아침에 지금 증거할라고 이 말씀을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힘쓴 것만치 그만치 주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주님의, 예를 들면 너무 많이 말하면 안 되니까 주님의 힘을 열 가지라고 합시다.
주님의 능력의 십분지 일 받은 사람도 있고, 십분의 오 받은 사람도 있고, 십분의 십을 다 받은 사람도 있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모든 능력이나 지혜나 사랑이나 그 모든 것을 받는 데에는, 받는 데에는 어떤 것으로 받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내것을 들여서 이길라고, 내게 있는 힘 이걸 가지고 이제 그 모든 세상과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길라고 내가 힘을 십분지 일 기울이면 하나님의 힘 십분지 일 기울여 주시고, 또 내가 십분의 십을 다 기울이면 주님께서는 십분의 십을 다 기울여 주시니까 주님의 힘은 그 무한하지마는 내 힘은 쪼그만해. 쪼끄만한 거 이거 쪼끄만한 거 요거 십분지 일 기울이면 주님의 무한하신 능력의 십분지 일 기울여 주고, 이러니까 우리가 내 힘을 주님께 기울이면 그 수입이 내 힘에 비해서 몇 배나 수입이 됩니까? 녜, 무한이라 해야지 뭐. 억억억억?? 한 달 말해 봤자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지극히 작은 내 미약한 힘을 주님의 말씀 듣고 그대로 할라고 살라고 애를 쓰면 무한하신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는 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 자라간다, 자라가는 거 어린 아이가 차차 자라가지 않습니까? 우리가 자꾸 그렇게 힘써 나가면 주님의 능력 얻어 가지고 또 되고 또 힘쓰면 또 되고 또 되고 자꾸 이래 자라간다 말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밤부터 교역자회가 모이기 때문에 권찰회를 할 기회가 없으니까 오늘 아침에 권찰회 합니다. 한 오 분 기도하고 다 구역장들은, 또 반사 선생님들, 구역장들은 다 반사 선생님도 다 참석할 수 있으니까, 왔다가서 그만가도 됩니다.
와서, 왔다가, 권찰회에 뻐뜩 왔다 가도 효력이 있습니다. 왜? 왔다 가도 ‘나도 이 권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어떻게 노력을 해 봐야 되겠다’ 그라면 참석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고 그 모든 것이 준비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