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집

 

1982. 3. 2. 총공회(화 오전)

 

본문: 고린도후서 5:1-10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졌기를 바라노라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하시면서 결혼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중에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또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여 그 마음을 나누지마는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은 그 마음을 나누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다 바치기 때문에 복이 있다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몸을 잘못하면 매일 매일 시간 시간마다 어떨 때는  이것에 기울이고 어떨 때는 저것에게 기울이고 우리는 항상 환경에 욕망을 두고  환경으로 더불어 타협하고 환경에게 가다가는 종도 되고 이것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이래서 우리의 이 마음과 몸의 힘을 산산이 참 가루같이 부수어서 이렇게 흩어서  나중에 일생을 살고 가서 보면 아무것도 모인 것이 없는 이런 가련한 사람되기  쉽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될 뿐만 아니라 태산도 티끌같이 날라 가도  마지막에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속하신 우리들에게 대해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몸의 힘을 한군데만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크게 말하면 하늘나라 더 좁게 말하면 구속하신 주님 한  분에게 다 기울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이 말씀 가운데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8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우리가 담대하여"  우리는 담대하다 말은 자기에게 상관없는 일에는 담대합니다. 자기에게 상관없는  일에야 그게 있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나라의 전쟁이  일어나도 담대합니다. 또 자기에게 관계없는 남의 집 불이 붙으면 제집에 불이  붙은 것같이 그렇게 마음이 위급하지를 안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이 담대한 이 담대함을 가지라고 하는 이  담대, 이 담대가 무엇인가? 이는 세상이 두려워 심신을 기울이는 그 세상이  두려워하는 세상이 비겁하고 조급하고 공포에 눌리는 그런 것이 없는 자 되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무슨 말씀인가? 세상은 이 세상에 속할 자연은총의 것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 돈도 몸도 생명도 모든 가정도 세상도 다 그런 것이겠습니다. 이것이  건설 안될까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심신을 기울이고  이것이 만들어지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떠들어 쌓아도 자기의 직업이 매여 있는, 주권 되어있는 그 자기의  사업에 근본 그 뿌럭지가 흔들면 당장 상이 새파래집니다. 직장이 어떻게  된다하면은 상이 새파래집니다. 자기의 어떤 사업에 정권적으로 시대적으로 딱  끝을 내리면 뭐 웃고 벙긋거리고 그렇게 하던 사람이 딱 오그라져서 상도  시커메지고 밥맛도 없고 죽을 지경입니다. 이게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이것의 건설 때문에 땅에 속한 것의 건설 때문에  발발 떨면 이런 공포와 비겁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없어졌습니다. 왜 없어졌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책임지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에게 자연은총의 것을 주시면 주신 것 그것 받아 가지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심으는 이 개조할 것 이것만 자기 할 일이지 그것은 당신이 우리가 염려하지 안  해도 주신다 했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고 주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걸 믿느냐? 오늘 믿는 신자들이 뭐  때문에 떨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떱니까? 자기의 명예가 어찌될까 위신이  어찌될까 지위가 어찌될까 직장이 어찌될까 사업이 어찌될까 가정이 어찌될까  자기 몸과 생명이 어찌될까 이런 비겁과 공포가 없는 것이 신자입니다.

또 하나님의 담대는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이미 내게 있는 것이 내게 있는  자연은총의 것이 이것이 깨질까 이게 줄어질까 적어질까 쇠해질까 나가질까 세상  건설하는 건설 못할까 비겁 건설하는 것 이것 조그마치라도 회파될까 비겁 이  세상에게 붙들려서 잔뜩 공포와 비겁되어서 그가 놀래게 하면 발발 떨고 그가  웃기면 웃고 하나님이야 뭐라 한다 해도 눈도 꼼짝거리지 안 해도 이것이  덜렁거리면 당장 기절하고 당장 변질되고 변색됩니다.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담대하고 이랬지마는 아람 왕이  편지 한 장 오니까 막 옷을 쥐 뜯고 죽을 지경입니다. 멸시하는 엘리사가 듣고서  "왕이여 무엇 때문에 옷을 찢고 금식을 하고 기절하고 죽을라 하느냐?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내라" 왕이 엘리사를 볼 때는 그거는 하나님의 미치광이처럼 하나의  낙오자처럼 봤지마는, 나아만 대장을 보냈을 때에 엘리사는 오는 것을 "문안에 못 들어온다 문안에  들어오지 말고 바로 돌아가라 돌아가면서 네가 요단강에 일곱 번 씻고 돌아가라"  마지막에 그는 나중에 와서 예물을 가지고 빌면서 예물 받아 달라할 때에 내게는  그런 것이 필요가 없다 물리칠 때에 "그러면 이 땅에 흙을 얼마만큼만 한 바리만  주면 이 흙을 모시고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이 땅에 흙을 우리가 싣고 가서  제단을 쌓고 거게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너무 담대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지금이라도 공산주의 쳐들어오면 발발 떨 것이 하나님한테는  어떻게 담대한지 성도들이여 그대들의 부러워함이 떪이 그대들의 조심함이  심신의 기울려 정성을 기울이니 무엇인가 땅위의 것이 건설되지 못할까 함이  아닌가 해 논 것이 깨질까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람은 이것이  없습니다.

거게 대해서는 담대하다 건설이 되든지 말든지 깨지든지 말든지 내게는 상관없고  내게는 거게 대해서 심신을 기울일 게 없고 다만 심신을 기울이던 것은 이미  있는 이것이 한번은 무너지는 데 현실 현실을 통해서 자기에게 생명도 점점  줄어져가고 현실 현실을 통해서 청청한 젊음도 점점 쇠해져 가고 자기에게  조그마한 물질을 이것이 써서 소모되어 가는데 이것이 소모되어 가는 이것이  무너지는 것이니 무너지는 이것이 무너질 때에 이것이 끝날 때에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서 하루의 생애가 파괴되고 줄어질 때에 이때에 이것을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인하여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에 종이 되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의 것이 되어 끝을 마치는 이 끝나는 이것이 주를 위하고 주님의  것으로 주님과 하나된 것으로써 끝나느냐?  내가 오늘 하루 늙는 하루의 이 늙음이 주님 모시고 주님 모신 하루로 주님의  영감대로 사는 하루로 진리의 법칙대로 사는 하루로 내가 호주머니의 돈 한푼이  써서 없어지는 이것이 밥 한 그릇 먹으면 없어지는 이것이 주님을 모신 밥으로  주님의 영감에 동행하는 물질로 진리의 법대로 써서 없어지는 것이 주님과  진리와 영감과 하나 되는 것으로써 끝을 맺는 요것만이 나 할 일이라.

이러기 때문에 바울은 탄식하며 간절히 소원하는 것은 하늘에서 오는 것을  덧입기를 원한다 무거운 짐 진 거와 같이 내가 탄식하며 고대하는 것은 이 죽고  썩어지는 이것이 오늘 하루의 썩어지는 이 하루가 내게 가진 이 하나의 소모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에 결합되어 그를 위하는  것으로 그의 것으로 그와 동행으로 그와 마지막 결합으로 그의 것으로 끝을  내느냐 하는 이것만이 자기의 일로서 마음이 눌려서 전심 전력은 여기에서  기울였습니다.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려는 것 없어지는 것이 진리의 것으로 끝나려는 것  이러기 때문에 세상이 와서 죽이려고 말해도 거게는 염려 없습니다. 죽이려는 데  제가 안 죽기 위해서 암만 해야 소용없기 때문에 세상에서 죽이려고 해도  죽이려고 하는 거게 대한 걱정이 하나도 없고 죽는 그것이 진리요, 영감의 것으로  끝을 만드는 요게 문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 건설과 세상의 파괴가 되는 데서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세상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입니다. 세상이 상관없소.

세상도 이 사람은 필요가 없고 이 사람도 세상은 필요가 없어.

다만 자기에게 있는 것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 세상과 악령과  죄악에 것이 마귀의 것이 죄악의 것이 사망의 것이 저주아래에 것이 자기의 것이  이것이 하나님에 것으로, 위에 것으로, 거룩한 것으로, 영감에 것으로, 끝을  마치는 요거만이 자기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요게 전심전력을 기울이는 요것  밖에 안 하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협박을 줘봤자 위협해봤자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담대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담대입니다. 이런 담대  요게 세상에서는 담대 자기의 심신은 전부가 어떻게 하면은 없어지는 이것이  하늘의 것으로 덧입어서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느냐 이 저주와 죄악에  이렇게 있는 것이 진리의 것이 되고 영감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되어지느냐 요것만이 자기 할 일이라는 것을 똑똑히 구별했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썩은 죽은 자연은총에 속한 것은 당신이 이것을 주시면 또 나는  이것을 없어질 없어지지 안 할 것으로 다시 개조하고 하늘의 것을 덧입고  하나님께서 땅의 것을 주시면 이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영원히 종결을 지우고  진리와 영감에 것으로 종결을 지우는 요거 하나만이 기독자의 심신의 전부를  기울일 일이지 요 외에는 우리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 외에는 우리 할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 속한 내 생명도 당신이 책임져 주시요 당신이 밥을 먹으라 하면 먹고  당신이 굶으라면 굶고 당신이 위생주의 하라면 하고 당신이 위생을 생각지 말고  이제 하라하면 하고 이러기 때문에 위생을 하는 사람이 급살병 전염병의 그  환자에게도 하나님이 가라 할 때에 가고 머물라 할 때에 머물고 전염병 급살병  환자에게 입을 맞추라 할 때 입을 맞추고 그에게서 나오는 피와 고름을 입으로  빨고 들어 마시라 할 때 들어 마시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에 대해서 세상이 가진 두려움 다 없어지고 거게 대해서는 담대함이  상관이 없어. "세상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 그들이 와 가지고 나를  고문을 하든지 고행을 하든지 죽이든지 내게는 상관없다. 다만 있는 거가  없어지는 것이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그에게 순종하는 거 나타날  것뿐이지 딴것이 없다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이 두 가지 담대를 가져야 됩니다. 뭐 때문에  비겁합니까? 알뜰하게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것을 건설하는 일에 털끝만치도  속해갈까 싶어서 고게 대해서는 물샐틈없이 철저하게 합니다. 대단히 능숙하고  대단히 슬기롭습니다. 대단히 민첩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기가 그 일에  민첩하고 주의 일에 민첩 안 하니까 주님은 상관이 없는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깨질려고 하면은 벌벌 떨어도 주님의 나라에 대해선 상관이 없어. 우리가 이것을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담대를 가져야 됩니다.

날마다 교체해 오는 이 교체되어 오는 우리 현실은 내가 정말 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의 건설에 대해서 이 건설에 대해서 담대하냐, 건설되고 안되고 건설되고  안되고 있게 하는 것은 당신이 있게 하시고 있는 것 없어질 때에 하늘의 것으로  변화시키는 거 이것만이 나 할 일로써 없는 것을 있게 하는 데에 공포와 비겁과  열정도 다 헛일이요 헛된 수고요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왜 유익 없는가?  땅의 것을 건설한 이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지 이거 우리 할 일 아닙니다. 땅에  것을 건설하는 거 우리 할 일 아닙니다. 땅의 것이 파괴되는 데에 파괴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우리 할 일 아닙니다. 땅의 것이 건설되는 것은 주의 뜻대로  사니 어떨 때에는 부요가 되고, 어떨 때는 가난이 되고, 어떨 때는 건강해지고  어떨 때는 쇠약해지고, 어떨 때는 올라가고 어떨 때는 내려가고, 주의 뜻대로 살  때에 그것은 당신이 주시는 것, 이런 것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인 줄 아시느니라 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법도대로 주님이  일하라 하면 일하고 자라하면 자고 당신이 시키는 대로 그것 하는 것이지  농장에서 일을 해도 돈벌이하는 것도 아니요 농사일도 하는 것 아니요. 주님이  농사지으라고 하니 짓고 이것을 통해서 내 영광을 돌리라 하니까 돌리고 이것을  통해서 축복의 하나님을 보여 주라 하니 보여주고 하는 이것이지.

다같이 한자리에서 일을 하지마는 하나는 순전히 주님을 섬기는 것으로 그분에게  순종으로 한 시간 한 시간 정력이 소모되는 정력이 진리의 것으로 영감의 것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주를 위하는 것으로 그의 것으로 거게 속한 것으로 그와 연합된  것으로 진리화 되는 것으로 연합화 영감화 되는 것으로 하나님화 되는 것으로써  이것이 끝납니다.

연탄장사도 하루종일 했는데 하나 뽀스라기 남을 것 없이 전부 이 진리화 영감화  하나님화 된 것 외에 없습니다. 전체는 땅에 속한 것 이것입니다. 이것이  한자리에서 두 여인이 매를 갈며 한자리에 누워 자며 한밭에 일하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림을 당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어디다가 전심전력을 기울일 것인가? 우리 할 일이 무엇인가?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우리 할 일은 세상 사람들이 건설을 위한 염려 노력  우리 할 일 아니요. 세상 사람들이 파괴를 방어하기 위해서 염려와 노력은 우리  할 일 아니요.

필연적으로 필연적으로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파괴가 됩니다. 늙을 때 되면  늙습니다. 죽을 때 되면 죽습니다. 늙을 때 되면 늙는데 늙는 요 늙음이 자연의  법칙을 따라 늙지 안하고 죄를 따라 늙지 안하고 땅에 늙지 안하고 하루에 늙는  요 늙음이 주를 위하는 늙음으로 주를 위하는 늙음으로 진리와 화합되는  늙음으로 영감과 영감화 되는 늙음으로 이렇게 되는 이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땅에 것은 당신이 주시는 대로 내가 만들게 염려라 당신은 나에게 주시는데  주시는 이것을 하늘의 것으로 개조해서 하늘의 것으로 덧입기를 원하는 것 요거  하나 땅의 것을 건설하는 데도 우리 할 일 아니요. 이것이 파괴되는 데 방어하는  것도 우리 할 일 아니요. 이게 건설 안될까 염려하는 것도 우리 할 일 아니요.

우리의 마음도 몸도 전 염려도 걱정도 소원도 소원도 염려도 간절도 마음도 몸도  전 힘은 전 힘 가지고 무엇할 것이냐?  무너질 장막집 이 영원한 처소로 개조되는 것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되는 것 욕된 게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 세상 것이 하늘나라의 것으로  변화되는 것 나를 위한 것이 주를 위하는 것으로 영감과 진리의 대적되어 있던  것이 영원히 영감과 진리로 하나 되어서 다시는 이별 없는 것 다시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왜 아무리 내 몸이 내 팔이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 됐어도 살아  있으면 이게 뒤에 갖다 마귀와 죄로 더불어 하나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팔이 죽을 때에 영감대로 죽었고, 진리대로 죽었고, 하나님을 위해  죽었고, 그것으로 되어서 끝을 마쳤으면 다시 이 팔은 세상이 와서 시험하지  못합니다. 죄악이 시험하지 못합니다. 요 최종 승리 요기에 우리의 심신을  기울이지 안 하면 안됩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오늘에 이런 사람들이 드뭅니다.

다 믿는다 하지마는 저들이 하늘에 소망을 가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담대하고 간 커서 매우 간 큽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는 벌벌 떱니다. 간이 콩  쪼가리 같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태산같습니다. 간이 커서 이것이 멸망할  징조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이 가졌던 이런 근심의 걱정이 두려움이 다 물러가고  여기에서 대해서 담대한 사람이 돼야 됩니다. 어떤 근심 걱정 마음에 눌러야  하느냐? 마지막 끝나는 요 끝남이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과 결합되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 요것에 우리는  전심전력을 기울이지 안 하면 마지막에 가서 벌거벗은 자들로 나타납니다.

탄식하면서 간절히 하늘에서 오는 것을 덧입기를 사모하는 것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아니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아직 땅에 것을 입고 있습니다. 땅에 것을 입고 더 좋은 거 입으려고  야단을 치지 잠시 후면 갈 터인데 하늘에 가선 자기가 벌거벗었는지 뭐  해놓았는지 일생동안 살면서 그 무슨 두려움으로써 무슨 관심으로 살았습니까?  어데다가 진액을 기울였습니까? 몇 해를 살았든지 산 하루 하루의 삶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이 정말로 둘째 죽음으로써 완전히 멸해졌는지 하루에 산 그 삶이  진리의 것이 됐는지 하나님의 것이 됐는지 영감의 것이 됐는지 영원히 진리와  이별 할 수 없는 진리와 영감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이 됐는지 어디다가 의탁하고  의뢰하고 어디다가 맡겼는지 냉정스러이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너무 우리는 외식한 것입니다. 너무 외식이 심한 시대가 됐습니다. 너무도  뻔뻔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담대합니다. 너무도 예수교를 이용해 가지고 요새는  교회 보면은 그 한 장 오는 데는 돈이 상당히 들 터인데 어떻게 편지가 날라  들고 광고가 날라들어 오든지 이것을 뭐 읽어 볼 수도 없고 하루 모으면  휴지통으로 하나씩이요. 이게 전부 이 예수 팔아먹고 이게 전부 복음 팔아 가지고  이 모로 자기를 높이고 저 모로 자기를 높일라하는 이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요한 계시 18장에 "그 멸망하는 데서 나오라 그 멸망하는 죄악에서  나오라" 한말로 말하면은 이 멸망할 죄악이 무엇이냐? 자기를 어떻게 영화롭게  하며 존귀케 하며 사치하든지 자기를 이렇게 오만 것으로 꾸며서 장식해서  아름답게 암만 꾸며 봤자 헛일입니다. 오늘은 꾸미는 게 주를 위해서 죽고  험해지는 것이 우리 갈 길입니다. 죽음으로 생명을 얻고 험한 것으로 영광을 얻는  것이 우리의 십자가의 도입니다.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사람들은 완전히 사상을 바꿔야 됩니다. 완전히 바꿔야  됩니다.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걸으면서 땅의 것만 저를 위해서 써먹어도 영원한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데 하물며 구속하신 특수 예수님의 은총까지  자기가 써먹으니 이것이 고등범입니다. 고등범 고등범죄 "그자의 당할 부끄럼이  얼마나 크겠느냐"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다같이 잠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리 바빠도 이것 작정하고 가야됩니다. 먼저 교역자들 작정해야 됩니다.

목회를 착취해 수단으로 방법으로 위치를 써먹는 것 너무도 두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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