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16:19
예수님은 우리의 길
1985. 3. 18. 월새
본문 : 딤전 6:11-16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딤전6:13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딤전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딤전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그러기에. 하나님은 빛이시요, 또 그분은 생명과 복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만 안 죽는 것이 있습니다. 사망이 무엇인가? 사망은 완전이 아닌 것은 다 사망합니다. 성결하지 안한 것은 다 사망합니다. 조그마치라도 삐뚤어진 것은 사망합니다. 그에게만 생명이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만이 완전하시고 조금도 홈과 점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다 어두워져 있습니다. 지식도 어둡고 지혜도 어둡고, 지식도 하나도 바로 아는 올바른 지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올바른 지혜와 지식을 가지셨는데. 사람들이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 중에 제일 뛰어난 탁월한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은, 천군 천사보다도 탁월하고 모든 만물보다도 탁월한 것은 그 탁월된 그 방편이 하나님은 원형이시요 사람은 그 모형으로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 다음으로 온전함을 받습니다. 완전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뿐이신데 그 완전한 지혜와 지식에게 피동이 됨으로 사람들도 완전한 지혜 지식이 되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다 하나님이 지어 주실 때에 각각 종류대로의 능력을 줬지만 그 능력은 다 부분적의 능력이요 또 제한된 능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완전하신 지능을 가지셨는데 그 완전한 지능에게 사람은 모형으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서 그 완전한 지능이 연결된 그 연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오고 사람들을 통하여 그 완전한 지능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의 지능은 하나님의 지능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이 모든 피조물 위에 탁월한 하나님의 완전을 모형한, 하나님은 원형이요 사람은 그 완전을 모형한 모형적 완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한 원형 지능이요. 사람은 그로 연결되어 그에게 피동 됨으로 모형 지능이 완전한 모형 지능이 되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빛이신데 그 빛이 사람에게 와서 연결이 돼야 될 터인데 그 연결이 에덴동산에서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 연결이 끊어지기 전에는 아담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아담의 언행 심사가 완전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관리할 때에 그 관리한 것이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그 관리가 아담을 통해서 만물에게 나타나 만물 관리가 다 완전했었습니다. 하나도 흠이 없었습니다.
이랬었는데, 하나님과 관련된 이 관련을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그 사탄이 뱀의 형상을 입고 와 가지고 하와를 꼬아서 하와가 그 유혹을 받아 가지고 타락하고, 타락한 하와를 통해서 아담이 범죄 하여 타락됐을 때에 하나님과 그 관계는 끊어졌습니다. 끊어짐으로 영은 단번에 죽었고 심신은 뿌리 끊긴 나무와 같이 점차적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도 태어나는 사람이 어머니 배 안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를 받자, 창조 받을 때는 온전한 것으로 창조를 받는데 창조 받은 즉시로 첫째 아담의 그 원죄의 정죄를 받아 가지고 영은 즉시 죽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날 때에 죽은 영과 죽을 심신으로 된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게 됩니다. 영은 벌써 죽었고, 이 심신은 그 주격 영이 죽었으니까 죽은 자인데 아직까지 다 죽지 못하고 덜 죽어 있는 그것이 나 가지고 십 년을 살든지 백 년을 살든지 그 사는 것은 남은 심신이 완전히 죽는 그 죽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신자가 사는 것은 죽을 그 심신이 다 죽으면 세상이 끝나 버립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들은 그 죽을 죽어 있는, 아주 다 죽을 그 심신이 다 죽기 전에 하나님과 다시 재 연결을 가지고 살아나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심신의 기능이 현실 현실마다 살아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살아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죽는 일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은 심신의 기능이 비유건대 천분지 일은 살았고 천분지 구백 구십 구는 죽은 그런 사람들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어떤 때인고 하니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야 하는 때입니다.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됨으로서만 살아나지 연결 외에는 살아나는 길이 없습니다.
이 연결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빛에 거하신다 이랬습니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 16절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왜 볼 수 없는가?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완전이시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깨끗이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정직하기 때문에 보지 못합니다. 그 정직에 부정한 것은 닥치면 소멸되고 정죄 받고 멸망 받습니다. 깨끗에는 깨끗이 접할 수 있지 깨끗지 안한 것은 깨끗에 가면 정죄를 받습니다. 소멸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모든 면이 다 더러워졌고 썩어졌고 삐뚤어졌고 하나도 옳고 바른 것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접하면 멸망을 받는고로 하나님께서 인생을 접하지 아니하고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인간이 접할 수 없는 그 완전하신 하나님이 꺼풀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시면 인간들이 다 멸망 받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을 접해도 멸망 받지 안할 수 있는 그 사이에 조화를 일으킬 수 있는 한 꺼풀을 입고 나타났으니 그 꺼풀이 곧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신성이신 데 사람의 꺼풀 인성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독생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내 보이셨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봤다.' 너희들이 아버지를 직접 만나면, 하나님을 직접 만나면 죽기 때문에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는고로 간접으로, 그 사이에 인성을 끼워 두고, 인성의 중보를 끼워 놓고 인성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렇게 해서 온 것이 예수님이시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다.' 나를 봐서 아버지의 그 모든 속성과 신성, 또 그분의 지능, 그분의 역사 그것을 예수님을 보아서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중보자십니다.
그러기에, 만날 수 없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고 하나님을 접선해야 되겠고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되는데, 그 연결이 되지 안하면 생명이 없고 다 사망하기 때문에 연결이 된 후에 생명이 있습니다. 연결 그것이 생명입니다.
연결을 하는 데에는, 우리는 다 어두움과 같이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빛에 연결하면 어두움이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마치 어두운데 전등을 켜면 그 어두움이 쏵 그만 사라져 버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만나면 즉시 우리는 소멸됩니다.
그래서, 히브리 12장 2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니라' 이랬소.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야, 연결이 돼야 사는데, 우리 사람에게는 다 영생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짐승에게도 영생할 것이 없고 식물에도 영생할 것이 없고 생명 가진 자로서는 영생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십 년을, 오 년을, 종류대로의 그 생명을 주실 때에 그 한계를 정해서 주기 때문에 그 기간이 되면 다 죽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데에서만 영생하고 죽지 않는 일이 있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될라 하니, 우리는 어두움에 속했지 하나님은 빛이시지 이러니까 하나님과 연결되면 우리가 소멸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어둡게 되어 있는 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를 소멸시키는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오지 안하시고 피하십니다. 이래서, 신정 국가로 있는 이스라엘들이 가나안을 갈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과 같이하지 못하겠다.' 같이하는 것은 그때 하나님의 본체가 같이한 게 아니고 다만 그분의 명령이 같이했던 것입니다. '명령이 같이할 수 없다. 왜? 같이하면 너희들이 완패하고 강퍅한 자들이기 때문에 가다가 이 명령을 거스릴 터이니까 이 명령에게 너희들은 맞아서 직사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같이 가지 못하겠으니까 천사들을 보낼 터이니까 천사들이, 내가 너희들에게 베풀어주는 모든 호위라든지 그런 것을 다 내가 천사를 통해서 너희들에게 호위의 은총을 베풀 터이니까 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가까이하면 우리가 소멸됩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더러움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피하십니다. 안 피하면 망합니다.
그게 비유가 안 되지만 어떤 정직한 경관이 있다고 하면 그 경관은 모든 부정이면 다 체포해서 구류를 살리도록 구금하는 것이 그들의 직책인데, 자기 아들이 지금 곧 구금을 당할 수 있는 그런 범죄를 하고 있으면 그 자리에 그 아버지가 들어가면 그것은 정직한 경관이라면 그 사람을 수갑을 질러야 되겠고 고발을 해서 징역을 보내야 되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을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안하고 피하고 울렁거려서 지금 형사들이 오니까 이제 이 나쁜 짓 하는 여기서 도망을 하든지 해야 되겠다 그렇게 짓날려서 피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에게 불의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어오시지를 못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은 완전이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다 거룩하시고 또 깨끗하고 옳고 바르고 곧은 하나님이시요, 지극히 큰 지능으로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창조하신, 다스리신, 한 사람 머리에다가 컴퓨터 천억을 만들어 넣었다고 할 만치 그만큼 세밀하시고 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과 우리가 접선이 돼야 만물 위에 뛰어난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과 접선이 돼야 우리가 실질적으로 모든 만물 위에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수 있는 그 실력가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력가가 되는 것은 우리 자체가 무슨 실력가로 변화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통해서 모든 전능하신 지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만물 위에 뛰어 난다. 만물을 통치할 수 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 앞으로 천상천하의 모든 것이 다 내 소유로 내가 통치하고 내가 관리하고 또 그것을 영원토록 잘 보존하고 육성할 수가 있다 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실력가가 되어지는 것은 우리 자체가 이런 실력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그에게 속하고 그에게 피동 됨으로, 그로 인해서 우리가 그런 실력가의 모든 행위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금생에서 연습하는 것이고 무궁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도 인간을 초월한, 인간을 탁월한, 인간을 탁월한 지능, 사람이 모르는 일을 알 수 있고,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거, 죄 짓는 그런 일은 아니지만 천하의 불신자가 다 달려들어도 할 수 없는 옳고 바르고 참된 일을 할 수 있는 믿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그렇게 그 자체의 자체력으로, 자체의 실력으로 그런 것 아닌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께 피동 되기 때문에 그 근본이신, 그분의 완전하신 그 완전하심을 인해서 그분의 완전하심이 우리와의 연결된 그 연결을 통하여서 우리의 언행 심사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의 언행 심사는 완전한 언행 심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세계 민족 위에 뛰어 난다, 지금은 세상들이 이것을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세상은 강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약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 그들의 종류와 같은, 그들의 본질과 본성적인 그런 능력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죽이려고 애쓰기 때문에, 이 세상이 가진 지능은 하나도 가지지 안할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죽이려고 애를 쓰지 이것을 가지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세상은 뭐인데? 세상은 죄 안에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죄 안에 있다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게 전부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 소욕, 피조물 중심, 피조물 위주, 피조물 욕심으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인고로 그런 것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참된 기독자입니다.
자기 위주를 완전히 죽여 없애고, 자기중심이 완전히 없어지고 , 자기의 소욕을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인데 이 소욕은 완전히 죽여 버리고, 그래서, 이것으로 된 사람이 옛사람인데 옛사람을 완전히 죽이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그 모든 도덕이나 지능이나 사랑이나 완전의 것을 완전이 될라고 이렇게 애를 써서 하나님의 몸이 되고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이렇게 됨으로써 온전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와 접선을 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 속에 오셔 가지고, 하나님의 그 전지가 내 속에 오셔 가지고,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형체가 없습니다. 무형의 존재인 전지 하신 하나님이 내 속에 무형으로 와 계셔 가지고 내 안에서 역사 하기 때문에, 무형의 전지 자가 내 안에 와 가지고 나를 주관하니까 내가 전지의 지혜를 가지고 전능의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 속한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이 세상에 속한 일은 하나도 안하고, 사망에 속한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심판 받을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죄에 속한 것은 하나도 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의 본질과 본성의 것은 하나도 안 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다 합격으로 통과할 수 있고 하나님이 옳다 참되다 인정할 수 있는, 사망이 해할 수 없는, 사망은 어떻게 해서 사망이 되느냐? 사망의 권세는 죄입니다. 사망이, 뭣이 들어 사망시키느냐? 사망시키는 것은 죄가 들어서 사망시킵니다. 그러면, 죄 그거는 무슨 권세를 가지고 하느냐? 죄 권세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위반됐기 때문에 죄요 죄가 있기 때문에 그거는 사망하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완성하신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이 내 지혜가 되고 하나님이 내 능력이 되고 하나님이 내 거룩이 되어져야만 우리들이 이렇게 자체가 뛰어난 존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었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 가지고 우리의 지혜도 되고 거룩도 되고 완전도 됩니다. 능력도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내주 하셔 가지고 겉은 보면 사람이지만 그 사람 속에, 인간의 자기의 지능이나 이 모든 게 타락한 것인데, 하나님과 대립이 되어 있는, 대립되어 있는 이질적의 것인데, 하나님과 본질과 본성이 다른 이질적의 것인데 이질적의 것을 이것을 버리는 것이 이질적의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질 적의 것을 부인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 중의 내가 돼 가지고 내 언행 심사를 맡아 주관하십니다.
그러면, 몸이 있고, 몸 안에 마음이 있고, 마음 안에 영이 있고, 이 영 안에 하나님이 와서 계시면서 내 영을 통해서 내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내 마음에 들어오면 내 마음에 들어올 때에는 영을 입으신 하나님이 내 마음 안에 들어오셔 가지고 내 마음을 주관합니다. 내 마음을 주관하고, 내 마음을 입고, 하나님이 내 영을 입고 내 영을 입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 가지고 이제는 내 영을 입은 하나님이 내 마음을 입고 내 마음을 통해서 내 몸에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들어오셔 가지고 내 몸을 입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영을 입었고, 내 마음을 입었고, 내 몸을 입었고, 입고 내가 닥치는 모든 사물, 일이나 물건이나, 일이나 물건에게 나타납니다.
물건에 나타나면 내 손이 그 물건을 움직이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내 손 안에는, 내 손이 움직이는 안에는 내 마음이 있어서 내 마음이 손을 움직이도록 내 손을 주장하고, 내 손을 다스리고 주장하고, 그러니까, 내가 움직이는 손이 내가 무슨 물건을 이래 쥐고 움직일 때, 물건을, 사물을 관계할 때에 내 손이 사물을 관계하는데 속에 그 알맹이는 내 마음이 이 손을 관계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내 영이, 이 손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이 내 손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지체라 하나님의 몸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돼야, 하나님이 내 영에 자유 하시고. 내 영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자유 하셔서 당신 마음대로 쓰시고, 또 내 영을 통해서 하나님이 내 마음을 마음대로 쓰시고. 또 하나님이 내 마음을 통해서 내 몸을 마음대로 쓰시고, 하나님이 내 영과 마음과 몸을 마음대로 쓰셔 가지고 이 만물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소원대로 이 사물에게, 내 몸이 사물에 대해서 모든 것을 취급하시고 이렇게 관리하시는 것이 내 손대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또 내 마음대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또 내 영대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대로 관리하시는 것이 이렇게 나와 가지고 관리하실 때에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지체가 됐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움직이신다.
그러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이라 말은, 사물을 취급할 때에 육체의 소욕으로 취급한다 그 말은, 육체는 심신이 육체입니다. 심신이 위에 연결된 연결이 끊어지고, 연결 이 끊어지고 심신 이것이 독단으로 사물을 취급할 때에 이 취급은 다 사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이 심신, 불신자들은 전부 심신이 들어서 모든 사물을 취급하고 있는데 그 심신을 뭣이 주장하고 있느냐? 그 심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공중의 악한 영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 되지 안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든지 그를 주관하고 있는 자가 공중의 악한 영인 것입니다. 사탄이 주관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벌써 점령했기 때문에 주관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은 그 영은 중생 될 때에 대속을 완전히 입었기 때문에 사탄이 주관하지 못하고, 중생 된 사람이라도 마음은 예수님의 그 대속의 공로와 하나님을 영접하지 안하고, 하나님과 진리 영접하지 안하고, 자기 영도 영접하지 안하고 하나님도 진리도 영접하지 안할 때에는 이 마음이 제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예를 들면, 믿는 사람이 성경 말씀을 보면 '내가 아무래도 이거 돈이 내게 한 뭉텅이 왔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이거 가지지 마라, 불의의 재물을 취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이 재물을 취하지 안해야 되겠다' 이것이,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그 신앙 양심이 '이거 취하면 안된다' 이라는데 양심이 취하면 안된다 할 때에 누가 그러는고 하니 중생 된 영이 '이거 취하면 안된다.' 중생 된 영이 누구 명령받아 그러는가? 하나님 명령받아 가지고 '이거 취하면 안된다' 이라는데, 중생 된 영과 이 마음과 그 사이가 뚝 끊어져 버립니다. 끊어져서 이 마음이 중생 된 영을 배반하고. 양심을 배반하면 중생 된 영이 그 다음으로 배반이 됩니다. 양심을 배반하는 것이 영을 배반하는 것이니까 영을 배반하면 마음이 이제 저 혼자 있습니다. 마음과 몸뚱이 둘만 있는데 그 마음과 몸뚱이를 누가 주관하고 있느냐? 중생 된 영이 나가 버리면, 쫓겨 나가 버리면 이제 그 마음은 악령이 들어와 가지고 주관하고 있습니다. 악령이 와 가지고 그 마음을 주관하기 때문에 '아, 이거 돈을 취하면 잘 먹고 잘 입고 살 수 있는데 못 취할 게 뭐이냐? 하나님의 법에 그따위 소리하지 마라. 하나님의 법에,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아느냐?' 오만 거짓말을 다해 가지고 그 돈을 취해 버립니다.
취하고 나서 그 다음에 그로 말미암아 화를 받으면 그때에 그 취했을 때에 하나님이 공평 된 법으로 치료해서 그 사람이 아무리 숨겨도 뒤에 가서 나타나고야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아무리 문명국의 수사관이라 할지라도 그 수사관이 은밀한 죄를 그렇게 수사해서 폭로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부 세월이 걸립니다. 세월이 걸리면 수사관이 거기 착수하지 안해도 그 사건은 폭로가 됩니다.
언젠가, 그거는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취리 섭리에서 그 모든 것이 나타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일 년 만에 안 나타나는 거는 십 년 되면 나타나고, 십 년에 안 나타나는 것은 백 년 되면 나타나고, 백 년에 안 나타나는 것은 몇 천 년 되면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안 나타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영과 육이 아울러 복 받는 것은, 복 받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서 복을 받을 수 있느냐? 영과 육이 복 받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 가지고 우리의 이 영과 마음과 몸을 주관해 가지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수 있는 이것이 돼져야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복 받을 수 있는 것이 되어지지 안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복 받을 수 있는 것이 되어지려고 하면 어찌되느냐?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셔 가지고 내 마음과 내 몸을 하나님이 주관하셔야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수 있는 그런, 복 받을 수 있다 말은 하나님의 심판에 정죄 받지 안할 수 있는 거, 모든 존재에게 걸리지 안하는 거. 모든 존재가 찬성하고 환영할 수 있는 복 받을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완전한 말, 완전한 생각, 완전한 욕심, 완전한 행위, 완전한 일 그것이 돼야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죄에 대고 복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의 생각은 얼마나 범위를 보느냐? 사람이 이거 쳐다보십시오. 이만한 범위 내에서 계획하면 이게 옳다 할 것이 좀 범위를 넓혀서 이만큼 범위를 넓히면 그것이 틀린 게 돼 버립니다. 또 이것이 틀린 것 같이 보여지지만 또 범위를 넓게 보면 그게 또 맞을 수도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은 어떻게 작은 데 어떻게 큰 데, 아무리 넓어도, 시간적으로 오늘이나 내일이나 천 년 만 년 후나 후회가 없는, 잘못이 없는 이런 바른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는데, 사람들은 그 지식 범위가 달라서, 이 시대에는 이렇게 비판하고 저 시대에는 저렇게 비판하는 것이 그 지식의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그와 같이 비판과 평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달라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는 그것이 전체를 두고, 영계나 물질계 모든 존재의 전체를 다 대하고, 전체를 상대하고 영원무궁을 상대해서 흠 없는 생각을, 흠 없는 마음을, 흠 없는 행동을, 바른 욕심을 그것을 가지도록 하나님께서 자꾸 우리에게 인도하시는데 그것이 이 세상과 맞지 안하기 때문에 거기 분요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상과 맞지 아니하니까, 세상을 표준해 가지고 하는 사람들은 맞지 안하니까 '이거 과학에 맞지 않는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통계에 맞지 않는다.' 자꾸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이 세상과 대조해서 맞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세상과 맞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따른 것이 틀려서 맞지 않느냐 세상이 틀려서 맞지 않느냐? 세상이 틀려서 맞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틀려서 맞지 않기 때문에 지금 맞지 않는 것이 한 몇십 년 지나가면 맞고 지금은 잘 됐다 싶은 것이 이다음에 몇십 년 지나가면 후회가 되고 가슴을 치고,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다 옳다 바르다 맞다 한 것이 마지막 죽을 때는 다 후회가 되고, 이거 참 죽는 날을 당하고 보니까 그거 다 후회가 됩니다.
자기 기분대로 한 것도 욕심대로 한 것도 자기 지혜대로 한 것도 다 후회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것은 하나도 후회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는 후회되는 것이 적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산 그것은 죽을 때는 후회되는 것이 적고 말씀대로 한 것이 죽을 때에는 '그게 바로 됐다. 잘했다. 내가 그렇게 살 것을' 다 이렇게 돼집니다. 그보다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면 이제 후회가 세상대로 산 것은 후회가 더 많이 돼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더 많이 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산 것은 심판대에 갈 때에는 '야, 그거 다행이다 다행이다' 이렇게 느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는 것은 그것은 뭐이냐? 짧은 범위에서, 당신 시키시는 대로하는 그것이 좁은 범위에서 보면 그것이 틀리다 맞다 이럴 것이 많이 있는 것은 인간들이 틀린 것이고 그 범위가 좁아서 그런 것이지 우리가 이 현실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에만 딱 명중됐다고 하면 이것은 전체에 대해서, 전체의 사탄도 '아, 그 일은 잘됐습니다.' 찬성할 수 있고 원수도 만물도 모두가 다 환영하고 찬성하고 하나님도 옳다 바르다 해서, 하나님의, 전지자의 판단에서 '그거는 바르다, 네가 모든 존재에게 대해서도 너는 바로 했다" 할 수 있는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길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축복해 준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렇게 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가 옳은 것을 시발만 하면 당신의 그 무한하진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협조하실 수가 있습니다. 협조해 줄 수가. 우리가 바른 거 옳은 것을 찾아 시작해 가지고 모자라는 건 당신이 얼마든지 부담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삐뚤어진 것을 원하고 할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은 거기 동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참하면 하나님이 범죄요. 하나님이 동참할라 하면 그걸 멸해야 되니까, 멸하지 안하면 범죄요. 안 멸하면 또 동참 안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우리 마음에는 지혜의 분자가 있고, 능력의 분자가 있고, 감정의 분자가 있고, 모든 기억의 분자가 있고, 또 비판의 이성의 분자가 있는 것인데, 이것은 마치 피아노 옥타브와 같습니다. 피아노 옥타브가 있는데 그 옥타브는 되어 있지만 이것을 기술자가 이래 쳐야 뭐이 되어지는 것인데, 옥타브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다 그런 것입니다. 이런데, 하나님이 와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바로 치면 여기서 바른 모든 역사가 나올 수 있고 악령이 치면 다 삐뚤어진 역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우리의 이 심신은 색깔이 없는 무색이라, 아무 색깔이 없는 무색의 존재라. 이런데 마귀로 침범하면 마귀로 물들고 하나님으로 침범하면 하나님으로 물든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을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도구가 되고,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도구가 되고, 마귀에게 드리면 죄의 도구가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오셔 가지고 나를 주관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 언행 심사가 돼야 될 터인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언행 심사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언행 심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언행 심사가 아니오. 과학이 인정하는 언행 심사가 아니오. 모든 세상에 인간들이 알고 있는 그 이치에 맞은 언행 심사가 아니라 말이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대로 내가 하는 그 언행 심사는 누구에게 많으냐? 전지자에게 맞습니다. 전능자에게 맞습니다. 완전자에게 맞습니다. 주권자, 지극히 큰 능력자에게 맞습니다.
심판자에게 맞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언행 심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어 오셔 가지고 나를 주관하실 때에는 내 언행 심사가 완전자 그분이 보실 때에 완전한 언행 심사가 되어지니까, 인간은 이해 못 해도 완전한 언행 심사가 되어지니까 그 언행 심사는 하나님이 협조할 수가 있다 말이오. 하나님이 협조할 수가, 하나님이 동행할 수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복을 내리신다는 말은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협조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전능자가 협조하니까,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난다는 것은 세상의, 썩어질 세상에서 권세 많이 잡는다 그 말 아니오. 하늘과 땅의 것이 모두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완전한 나라에서, 완전 세계에서 완전한 것들로 다 건설할 때에 그 완전한 것의 위에 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로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지혜로도 제일 위에 가고, 능력으로도 제일 위에 가고, 깨끗으로도 제일 위에 가고, 참된 것으로도 제일 위에 가고, 거룩으로도 제일 위에 가고, 곧은 것으로도 제일 위에 가고, 바른 것으로도 제일 위에 가고, 사랑으로도 제일 위에 가고, 자비로도 그렇고 모든 면이 제일 위에 갑니다. 제일 으뜸이, 제일 위에 가니까 그게 뭐이냐? 그분의 것이라 말이오. 그분에게 피동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된다 말은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에게 피동으로만 되어진다는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공과에 대해서 그걸 가르쳐서 말씀해 놨는데, 우리가 뛰어 나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해 주는데 에는 우리의 언행 심사가 하나님이 동행할 수 있는 언행 심사가 돼져야 하나님이 동행하지, 동행할 수 없는 언행 심사는 동행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켜 행하라 그 말은 그걸 우리가 완성하라 말이 아니고 네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시작해라 그 말이오. 시작해라. 시작하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완전히 준공을 일으키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벨이 택하기를 바로 택해 가지고 했으니까 아벨은 죽은 지가 얼마요? 아벨은 죽은 지가 지금 한 육천 년 다 돼 가지 않습니까? 육천 년이 다 돼 가지만 아벨의 피는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피를 들고 하나님께서 일하기 때문에 아벨은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순교 당하신 당신의 신앙은 지금도 일하고 있다 말이오. 그 신앙은 지금 내 속에서도 일하고 있어요. 여러분 속에서도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고 있는 건 우리에게 강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일하고 있는 것은 '아, 그는 어떻게 가장 가까운 것이, 그때 사람들이 많지 못했는데, 동태 형제간, 같은 부정 모혈로 되어 있는 동태 형제간, 동부 동태, 씨가 다른 게 아니고 씨도 같고, 동태 동부의 형제 간인데도 거기서 하나님을 중심 해서 그 생활하는 것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그 형제의 생활과 대립이 됐을 때에 거기서 타협하자고 몇 번 말이 있어서 그 형이 동생에게 물론 간구도 했을 것이고 타이르기도 했을 것이고 오만 거 다 했지만 죽어도 진리는 양보하지 안했다. 죽어도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 안했다. 또 불의로 더불어 타협하지 안했다.
그러기 때문에, 불의와 타협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 위주, 중심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생활하는 가인과 마찰이 될 때에 생명을 뺏겼으면 뺏겼지 거기서 양보하지 안했다' 그 신앙이 오늘 우리 속에서도 역사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머리를 숙일 때마다 '아벨 속에서 역사 하시던 그 능력을 나에게도 주시옵소서. 내가 아벨과 같이 그렇게 구별되어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야 일 이 되겠는데,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야 되겠는데 들어오시게 되는 데에는 당신이 들어올 수 있어야 오지 들어올 수 없으면 못 온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도록 하는걸 가리켜서 말하기를 성전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이라, 성전이라.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라 그 말은 하나님이 들어와서 계실 수 있도록 만들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들어와서 계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뭐입니까? 성전이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세 가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 세 가지를 말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다른 말로 말하면 회개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회개. 이제 주의 말씀을, 말씀을 범하던 자가 이제 범하지 안할려고 하는 그것이 회개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안하던 자가 지키는 것이 회개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회개, 또, 하나님께, 자기는 마귀에게 피동 되고 피조물들에게 피동 됐는데 이제 하나님의 영감에게만 피동 되는 것, 영감을 소멸하던 자가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영감에게 피동 안하던 자가 영감에게 피동 되는 그것이 영감 회개라 말이오. 영감 회개, 말씀 회개, 영감 회개.
그 다음에는 만물과 하나 되고, 하나님과 하나 되지 안하고 언제든지 살기는 사는 거 같지만 하나님은 멀고 돈과 하나 되고 인간과 하나 되고 그 다음에는 마귀가 하나 돼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하나 되고 하나님과 하나 되지 않는 이것을 회개해서 이제는 만물과 하나 되지 안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돼 가지고 만물을 취급하고 만물을 상대하고, 만물에게 대해서 나와 하나님과 하나 돼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주관해서, 손은 내 손이지만 이제 당신이 당신 마음대로 내 손을 쓰시고, 내 혀는 내 혀지만 당신이 내 혀를 당신 소원대로 내 혀를 쓰니까, 당신이 내 혀를 써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만물에게 말하니까 그 말은 전부 생명이요 다 살리는 일이 된다 그거요. 이것이 이제 하나 되는 회개. 갈라졌던 것이 하나 되는 회개.
이 피동의 회개, 또 내가 순종하는, 순종의 회개, 지킴의 회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회개, 영감에 순종하는 회개,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피동 회개, 피동 회개가 제일, 최고 절정의 회개인 것입니다. 당신이 내 눈을 당신 마음대로 해. 내 눈을 내가 암만 보고 싶어도 당신이 못 보게 하면 내가 못 봐. 이러니까, 당신이 내 눈을 사용하고 싶은 대로 사용하니까 당신이 내 눈을 통해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내 마음을 통해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내가 생각도 당신이 주관하니까 나는 완전히 자유라 하는 건 완전히 죽여 버리고 박탈돼 버리고 아무것도 없고 당신이 나를 주관하시고 자유 하시는 이것이 이제 삼대 대속 중에 최고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면 내 마음이 깨끗하고 내 몸이 깨끗하고 내 영이 깨끗하고 내가 깨끗해지니까 하나님이 내 속에 들어와 계신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다 말은, 이 세 가지로 성전 짓는다 그 말은 나를 깨끗케 한다는 말입니다. 성전을 짓는 것이 뭐이냐? 성전 짓는 것이 다른 말로 하면 뭐이라요? 예? 회개. 네, 성전 짓는다는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회개라 그 말이오.
회개를 어떤 면으로? 사죄 면으로 회개, 칭의 면으로 회개, 화친 면으로 회개. 이 세 가지 면으로 회개해서, 당신이 들어올라 하면 내게 멸망 받을, 내 마음이, 당신이 내가 더러워 있을 때 들어오면 내 마음이 완전히 멸망해 영원히 사망돼 버리고 말기 때문에 들어오기 전에 당신이 자꾸 문을 두드리면서 '네 마음을 깨끗이 하라.' 자꾸, 어떻게 깨끗하게 하겠습니까? 사죄, 주님의 공로가 아니면 깨끗하게 되지못합니다. 주님의 공로를 입으면 돼. 공로를 입기를 어떻게 입는가? 나만 주의 것 돼 버리면 주님의 공로는 내 것 돼 버려요. 주님과 나와 바꾸면 돼 버려요. 내가 내게 있는 돈주면 그 물건은 내 것 안 됩니까? 암만 계약했더라도 내가 돈 안 주면 그 물건은 내 물건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전 지어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내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거처할 수 있도록 하라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무슨 말인고 하니 회개하라 그 말이오. 회개하라 그 말을 또 다른 말로 무슨 말이냐 하면 너를 값을 내라. 너를 다 주님의 것을 삼아라. 너를 주님의 것을 만들어라. 그러면 주님의 공로가 네 것 된다. 그러면 너는 그 공로로 인해서 깨끗해진다. 그러면 주님은 네 안에 오셔 가지고 너를 맡아서 주관하게 된다. 이래서, '나의 언행 심사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내 마음대로 하나도 하지 못하고 언행 심사를 맡아 주관하셔서, 주님이 완전히 주관하셔서' 이러니까, 제일 처음에 우리가 주의 것이 되고 내 것이 이제 내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 되고, 그 다음에는 주님께 복종하는 주의 종이 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주님의 성전이 되고. 주님의 성전이 되면 그 다음에 나는 주님의 지체가 됩니다.
주님이 나를 주관, 주님의 지체가 되고. 주님의 지체가 되면 이제 그 다음에는 주님이 나의, 내가 주님의 몸이 된다 그 말이오. 주님의 몸이 되면, 그러고 나면 이제는 나는 주님하고만 서로 상대해 가지고 주님만이 나의 배우자라 말이오.
주님만이 나의 상대자라. 주님 외에는 나의 짝이 없어. 주님 외에는 동행할 자가 없어. 이렇게 될 때에, 이래 가지고 주님과 동행해 가지고 가정을 사랑할 때에, 부부를 사랑할 때에, 자녀를 사랑할 때에 그거 다 영생이요 바로 돼지는 것이지 주님 떼 놓고 이래 하는 것은 다 죽이는 역사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전 짓는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할려고 자꾸 애를 쓰는 것입니다. 다음에 또 계속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