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14:26
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이다
본문 :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수많은 길 중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수많은 길속에 들어 있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곧 내 길입니다. 예수님은 내 길인 것을 우리는 언제나 생각하고 예수님으로 걸어가야 됩니다. 예수님으로 걸어가지 안하면 그 걸음은 다 헛됩니다. 수많은 길속에 하나만 되어 있는 내가 걸어갈 길이 있으니 그 길은 곧 예수님이십니다. 땅 위에는 수많은 이치가 있고 수많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뜻 속에. 수많은 이치 속에 내가 살아야 할 이치는 예수님이십니다. 땅 위에는 수많은 생명들도 있고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거짓부리의 수많은 생명 속에 하나님이 지으신 수많은 생명들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생명 속에 내 생명은 예수님이십니다.
이는 성신의 감동이라야 알게 됩니다. 또,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알고 계속 생각하는 자. 계속 이대로 사는 자 그자에게 알아지게 됩니다. 그것은 다 이 길도 무한함을 가지고 있고 이 진리도 무한함을 가지고 있고 이 생명도 무한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한한 사람들이 그 무한을 측량 못 합니다. 말을 해도 모릅니다. 계속 이렇게 알고 이렇게 지식하고 처음에는 '아, 성경에 이래 말하니까 이렇단다' 하고 그렇게 자꾸 알고 또 생각하고 또, 그대로 행동하고 그런 사람이 될라고 할 때에 자체가 서서히 조금씩 변화돼 나감에 따라서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그 말은 주님의 이 성경 말씀대로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자꾸 이렇게 하면 그리 하는 가운데에서 '참 내 제자가 되고' 한 것은 그리 되면 너희들이 차차 차차 변화된다 한 것입니다.
자기가 변화된 것을 그것을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어떤 곤충이든지 동물이든지 식물이든지 사람이든지 자체가 생겨지기 시발한 것도, 자체는 지금 생겨지기 시발해서 생겨지고 있고 또, 거게서 차차 차차 자라고 있고 이래도 자체를 모릅니다. 앞으로 어떤 종류의 나무든지 그 나무가 될라고 그 나무의 종자가 생겨집니다. 종자가 생겨지면 그 종자 생겨지는 것을 그 나무가 모릅니다.
종자가 다 생겨져도 그 자체가 모릅니다. 그 종자가 나서 차차 차차 크게 되면 그 자체가 압니다. 나무들도 상호 협조가 있고 상호 식물적인 도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나무가 다른 나무를 침해하지 안할 라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멀리 있어도 그 경계를 지켜서 다른 나무를 침해하지 안할라고 힘을 들여서 굽혀서 그 나무에게 침해가 되지 않는 쪽으로 가지가 벋어 나갈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만일 그 나무가 가지가 한테 섞였다면 힘있는 데까지는, 그 나무를 침해하지 안할라고 어서 자라서 그 나무를 벗어 나갈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짐승들에게도 이런 본능이 있고 모든 식물들에게도 그들의 자연이 있습니다.
짐승도 처음에 사람과 같이 암수의 배합으로 그것이 잉태되기 시작해도, 잉태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정한 법칙대로 뭐 그것이 열흘 만에 나오는 것도 있고 사 개월 돼 나오는 것도 있고 십 개월 돼 나오는 것도 있는데, 사람은 십 개월에 나가고 소나 말은 십 개월에 나가고 개 같은 것은 이 개월 이면 나옵니다. 닭 같은 것은 이십 일일이면 나옵니다. 이래도 그것이 자랄 때에 모릅니다. 만일 짐승으로 나왔다 해도 모릅니다. 사람으로 출생됐다 해도 모릅니다. 이것이 차차 차차 자라면, 처음에는 제가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르고 그저 생명과 본능만 있어 가지고서 뭣 이 배고파도 울고 뜨거워도 울고 추워도 울고 아파도 울고 그런 것밖에는 모르는데, 그게 차차 먹고 자라게 되면 이제 자기 밖에 있는 모든 상대방을 차차 알게 되고 또, 자체를 알게 되고 그게 가능하게 되면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알고 유익이 되는 것도 알고 또, 알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해가 오지 못하도록 방지하고 유익이 오도록 모든 것을 계획하고 이렇게 해서 나중에는 차차 그것이 사회면이나 도덕면이나 그런 면까지 알아서 자기 발등의 불을 끈다 그렇게 말합니다. 비로소 자기 일을 자기가 하고 자기의 인류성이나 사회성이나 윤리성이나 도덕성이나 그런 면까지 차차 자기가 관찰해서 해가 되는 거 유익이 되는 그런 것을 자유 선택해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것이 자라고 있으나 자라고 있는 자체도 모르고 자기와 상대되어 있는 것도 모르지마는 그게 차차 차차 자라서 가면 압니다. 자라서 가면은.
어머니 뱃속에 잉태됐다고 하면 그것이 그 자체가 모릅니다. 어데 있는 지도 모릅니다. 뭐 어머니도 모르고 어머니 뱃속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또, 어째서 사는 것도 모릅니다. 그저 그 속에 열 달 동안을 잘 지내면 그다음 에 아이가 돼서 나옵니다. 나오면 제가 절 아는 줄 압니까? 모릅니다. 차 차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대로 그것이 한 아마 일 년 지내면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어머니를 알게 될 것이고. 어머니 알아도 처음에는 그저 늘 검은 옷을 입고 와서 자기 어머니 노릇을 했으면 어머니 아니라도 뭐이든지 검은 것만 보면 반가워 할 것이고 아무리 어머니라도 흰 옷 입고 오면 아무런 반가워하지 안하고 오히려 놀랄 것입니다. 그러다가 차차 차차 자기에 대 한 지식, 상대방의 지식 , 이 지식이 차차 자라 가지고서 그렇게 사람 구실을 하는 거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도는 다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은 이는 다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에서 천지야 되어져라 하니까 천지가 되어졌고, 또, 바다와 육지가 나누어지라 하니까 나누어겼고 공중에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됐고, 바다야 생물을 내라 땅아 모든 생물을 내라 이러니까 그 식물들도 모든 어류들도 다 생겨진 그 말씀이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영감으로, '이렇게 되라. 네가 믿어라. 믿으면 영생한다. 믿으면 죽은 것도 살아나고 살아난 건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 말씀, 내나 영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과 꼭같은 내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하신 분도 같고 또, 나타난 말씀의 권위도 같고 또, 그 말씀이 역사해서 이루는 그 결과도 꼭 같습니다. 같은 권위를 가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말씀하신 대로 다 되는 것입니다.
되는데. 창세기 l장에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습니다.
말씀으로 지었다는 말은 이치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치로 짓는데 이 이치를 누가 선포했는고? 이치를 선포하신 분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래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모든 것을 지었는데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는 고 말씀은 제이위 성자를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이고 하나님 이 말씀으로 천지를 지었다는 그 말씀은 이치입니다. 말씀이라는 하나님이 이치인 그 말씀을 가지고서 그 만물을 지으셧습니다. 그 말씀과 꼭 같은 우리에게 계시된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창조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신데, 일차로 창조 한 것은 엿새 동안에 창조하셔서 그것은 다 변동될 것들이요, 또, 그것은 영원성이 없는 것들입니다. 영원성이 없고 불변성이 없고 일시 있다가 없어 질 거 또, 변동될 저 그런 것들이지마는 이번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타락후에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은 변동될 것을 짓지 안하고 영원히 변동되지 아니한 것들 영원히 죽지 안할 것들,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것들. 영원히 보존될 것들, 다 완전한 것들 이런 것들을 창조할려고 나타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땅에게 말하기를 땅아, 모든 식물들을 내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땅 그까짓 게 무슨 풀 한 포기라도 낼 수 있습니까? 못 냅니다. 하나님이 땅에게 식물들을 내라 말씀하셨을 때에 이 땅은 그대로 순종한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시고 땅을 통해서, 흙을 통해서 모든 식물 이 초목들을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땅을 만드신 이도 주님이시요, 땅에게 모든 각종 씨 맺는 채소와 모든 식물이 초목들을 내라 할 때에 내졌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은 너의 길이시다' 말씀하신 이 말씀도, 길이라고 하시니까 이 길로 걸어갑니다. 예수님은 나의 길인 것을 알고 예수님으로 걸어갑니다. 예수님으로 걸어간다 말은 예수님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나의 진리라, 여러분들의 진리라, 우리 진리라, 예수님은 우리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내가 지킬 진리요, 내가 지킬 진리요, 내가 행할 진리요, 내가 살 진리요, 내가 걸어갈 진리라, 내 진리라, 내가 지킬 진리라 이렇게 말씀했으니까 진리인 줄 알고 지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라, 예수님은 나의 생명이라,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예수님과 떨어지면 생명 뻘어진 것이요, 예수님과 연결되면 생명과 연결된 것인 이것을 우리가 우리 지식으로 그럴게 해석합니다.
'생명이 끊어지면 죽는다. 생명이 있으면 산다. 아, 그 사람이 생명이 끊어졌다.
생명이 다시 돌아왔다. 생명이 잇겼다' 이와 같이 말하는 거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라고 하나님이 선포하셨는데, 예수님을 우리의 생명으로 알고 '예수님과 끊어지면 나는 죽는다. 예수님과 잇기면 나는 산다.' 요런 그저 유치하고 요런 어린 지식으로 요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고 예수님 밀어지지 안할라고 애를 쓰면 그것이, 마치, 어머니 뱃속에 밴 아이가 그 법칙대로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게 자꾸 자라서 나중에 사람이 돼 나옵니다. 처음에는 뭐 개가 잉태된 개 새끼나 사람 새끼나 배암 새끼나 닭 새끼나 처음에 잉태됐을 때의 고것은 꼭 같습니다. 다르지 안해요. 꼭 같애요. 사람이 되는 아버지의 그 정충을 현미경으로 보면 꼭 뭐 물벌레나 배암이나 닭이나 모든 정충은 꼭 같습니다. 꼭 같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라기를 사람 속에서 자라면 사람되고 개 속에서 자라면 개 된다 그거요. 이것이 그 안에 있으면 그게 잉태 됐으니까 자라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 말씀 대로 내가 지식하고, 내가 인정하고 또, 내가 믿고. 또, 바라보고 또, 내가 모든 것을 거게다가 다 맡겨 놓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이라면 그런, 가운데서 차차 차차 사람이 되고 짐승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점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점 변화됩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것이 일단 타락해서 변질됐고 변질된 그것이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다시 또, 성화됩니다. 하나님이 지어 놓은 것이 나쁘게 변질되고 변질된 것이 또, 좋게 하나님을 향하여서 변화되는 걸 가리켜서 성화된다 이랬습니다.
이렇게, 이미 처음 아담에게 속한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고 인정하고 고대로 행하고 자꾸 이라니까 그런 가운데에서 타락으로 변질 된 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성화되고 하나님으로 향하여 성화된 것이 점점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꼭 모형이 되어져서 그렇게 예수님과 같은 자가 된다 해서 내 제자가 된다 이랬습니다. '내 말에 거하면 너희가 참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과 꼭 같은 자 돼 간다 말이오. 제자 되면, 하나님 말씀을 알고 고대로 고 말씀 안에서 살았는데, 말씀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았는데 말씀대로 사니까 자체가 변화되고 변화되고 나니까 그 진리를, 내나 말씀대로 산 그, 말씀인데 또, 새롭게 더 압니다. '진리를 알지니' 그러면, 진리 무슨 진리 안다 말이오? 진리 안다 말은 '내 말에 거하면' 하는 그 말을 또, 새로 압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천층만층도 더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니까 더 알아지고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니까 또, 더 알아지고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니까 더 알아지고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그 지식도 죽는 날까지 그 지식이 자꾸 정확합니다. 무한히 자랍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이 유한한 것이 무한을 입어서 점점 무한화되어 가는 것이니까,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을 그것을 제가 알고, 계획해서 자라가는 것 아닙니다.
다만 거게 믿고 복종하면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뭐 이런 비천한 것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그 지식이 자라가는 것도, 국민학교에 들어가는 학생이 뭐 책보따리를 가져가 봤자 뭐 압니까? 뭘 갖다 놓고서 보니까 똑 낫 모양으로 요래 해 놓은 걸 요거 '기역' 하니까, '기역' 하니까, '기역' 하면 '기역이 뭐입니까?' '기역이 뭐입니 '기역이 기역이지.' '기역이 뭘로 되는 것입니까?' '기역이 기역으로 된 것이지.' '기 이 뭐입니까? 뭐 하는겁니까?' '기역은 네가 기역으로 알면 되지.' 아주 이거 허무한 거 같지마는서도 그 길 외에는 한글을 배워 나가는 길이 없습니다. 한글을 배워 나가는 길이 없소. 한글 배워 나가는 길은 그저 '기역' 하면 '기역' 이래 기역이라 하고, '이거 어째서 기역입니까?' '고만 너는 기역으로 알고 기역으로 기억해. 나중에 요래 있는 걸 보거들랑 기역이라 해.' 저는 그 연관을 모릅니다. 기역이라, 또, 니은이라 이래 가지고서 이제 자음을 다 알고 그다음에 인제 또, 모음을 알고 그래 가지고 모음과 자음이 둘이 붙여지면 또, 뭐이 된다는 걸 알고 이래 가지고서, 또, 그래 가지고 한글 알고 나니까, 한글, 한글과 한글을 붙여 가지고서 '이거는 사람이라' 하면 '사람이 뭐입니까? ' '사람이란 걸 배워. 사람이라는 게 있어.'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배웠는데, 보고서 '이게 사람이다.' 인제 그라면 나중에. '이게 사람이다' 하면 그 실상의 종류를 나중에 만날 때에 이게 사람이다 이거는 개다. 그저. '개가 뭐입니까?' '개라고 배워. 개가 있다는 걸 알아.' 그러면 나중에 가지고서 개를 실물로, 학교에 설비가 좋은 학교는 개를 만들어 놓고 '이게 개다.' 개의 껍데기를 벗겨 가지 고 개같이 만들어 '이게 개다.' 개 없는 나라에서는 개 모를 거요. 우리나라는 개를 알지마는 앞으로 개를 못 키우게 한다면 아마 십 년만 못 키웠으면, 못 키워서 그 나라에 개를 십 년만 안 키면 개가 뭐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개 그걸 낳아야 될 거라 말이오.
우리나라에서도 뭐 사슴 하지마는 서도 사슴 못 본 사람은 지금 동물원이 있으니까 사슴을 보지 모르면 사슴 껍데기를 만들어 가지고 죽은 사슴을 이렇게 만들어 '이게 사슴이다' 이렇게 가르치면 알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 학교의 가치가 그 모든 실물로 되어 있는 교재가 많다 적다.
또, 실물로 되어 있는 죽은 교재가 있는 학교보다는 실지로 살아 있는 생존한 교재가 있는 그런 학교가 좋다. 그 설비가 굉장히 뭐 범위가 넓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도 이렇게 뭣이든지 알아 나가는 것도 그래. 알아 나가는 것도 제가 하나씩 둘씩 순서대로 그저 기억해 나가야 알아지고 인정해 나가야 알아지고 자꾸 그래 알아져 나가면 나중에 가서 그것이 지식이 되고 또, 그것이 모든 학문이 된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없는 게, 자기에게 없는 건데 하나씩 받아 들여야 될 것을, 하나씩 받아 들여야 되고 하나씩 믿어야 되고 하나씩 순종해야 될 것을 그것을 따져 가지고 순종하면 뭐이 되고 어째야 순종하느냐 이것을 하지 말고 그저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먹으라 하면 먹고 하지 말라면 안 하고 하라면 하면, 그대로 순종하면 이 말씀 자체가 우리를 만듭니다. 또, 성령의 능력이 만듭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가 변화가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라 했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했으니까 이대로 받아 들여요. 이대로 받아들이고 '아, 예수님은 내 길이다' 그 말은 '내가, 이 세상에서 천 인 만 인이 걸어가는 길이 다 있는데, 별별 길들이 많은데 내가 걸어가야 될 길은 예수님이 내 길이다' 요렇게 그만 인정하고 예수님이 내 길이다 그 말은, 예수님이 내가 걸어갈 길이다, 예수님이 나의 살아갈 길이다, 예수님이 내가 행하여 갈 길이다 걸어가야 될 길이다 요렇게만 알면 돼요. 알고, 그러면, 예수님을 내 길이라고 했으니까 예수님으로 걸어가는 것이 뭐이냐? 예수님으로 길 삼는 것이 뭐이냐? 예수님으로 길 삼는 것은 예수님은 지난밤에 말한 대로 다섯 가지, 예수님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대속의 피를 주셨고 우리에게 대속을, 세 가지 대속을 주셨고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이가 둘이 있고, 또, 이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입혀주는 이가 둘이 있고, 또, 이 세 가지 대속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주는 이가 둘이 있고 또, 이 예수님의 대속이 되어져 가게, 예수님의 대속물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되어져 가게, 예수님의 대속이 되어져 가도록 하는 이가 둘이 있어. 예수님의 대속이 되어져 간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죄가 되어져 간다는 말입니다. 죄 없음이 되어져 간다는 말입니다. 칭의가 되어져 간다는 말은 의가 되어져 간다는 말입니다. 의가 되어져 가는 거는 어떻게 의가 되어져 갑니까? 영감대로 살면 의가 되어져 갑니다. 의가 되어져 갑니다. 또, 하나님과 한덩어리가 되어져 갑니다.
이렇게 자꾸 그래 그저 무조건 순종하고 그와 같이 자꾸 행하니까, 하나님이 하라하는 대로, 먹으라는 건 먹고 먹지 말라는 건 안 먹고 이렇게 하면 된다 말이오. 사람의 타락도 '이거는 먹지 말아라 죽는다' 이라니까 '뭐 그 까짓 거 먹는다고 죽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죽는다 했는데 먹으니까 죽었다 그거요.
하나님이 이것은 먹어라 하는 대로 먹으면 산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렇게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첫째 알려주는 이가 있고 또, 우리로 하여금 이 대속을 인정하도록 하는 이가 있고, 이 대속에 접하도록 하는 이가 있고, 이 대속의, 대속을 입도록 하는 이가 있고 이 대속으로 살도록 하는 이가 있고 이 대속화돼서, 이 세 가지 대속과 나와 같아서 나는 없어지고 이 세 가지 대속이 내가 되어지는 이 되게 하는 일꾼이 둘이 있으니까 그 일군 둘이 누굽니까? 뭐입니까? 녜, 영감과 진리입니다. 성령님이 이 일 하러 오셨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준 신구약 성경 말씀이 이 말씀이 이 일을 하고 있다 말이오. 말씀도 전능의 존재요, 성령도 전능의 존재요. 이러니까. 없는 가운데서 우주를 창조할 때에 내나 이 진리인 말씀이 지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이렇게 전능한 능력을 가진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믿고 '아, 전능한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 그렇게 믿어라더라.' 믿고. 전능한 능력을 가진 이 말씀인 것을 믿고 자기가 이 말씀을 대하면 이 말씀이 자기에게 전능의 역사를 해 줍니다. 이 말씀은 거짓말이라 이렇게 아는 자에게는 이 말씀은 그에게 거짓되게 아무 소용없이 거짓된 말씀이 됩니다. 이 말씀이 거짓된 것이 아니고 제 자체가 거짓되기 때문에 이 말씀을 상대함에 따라서 자꾸 거짓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길이라 했기 때문에, 그저 또, 알고 들어가면 또,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들어갑니다. 길이라 했으니까, 내가, 천 인 만 인은 다 각각 제 길이 있습니다. 천인만 인이 갈 길이 따로 있어요. 이 사람은 이 길 저 사람은 저 길. 하나님이 정해 놓은 길이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가야 되는 것이니 그것이 자기의 길이요 자기의 도요, 자기의 도입니다. 자기의 길이라 말이오. 자기의 도요. 그것이 자기의 진리요, 그것이 자기의 생명이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우리의 진리요, 우리의 생명인 이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주님을 나의 생명으로 주님은 나의 진리로, 주님은 나의 길로 요렇게 알고 인정하고 요대로 살면 예수님은 나의 길이 돼 주시고 예수님은 나의 진리가 돼 주시고 예수님은 나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면, 그리 되면 뭐이 되느냐? 아버지에게로 가게 됩니다. 아버지에게로 가서 아버지와 나와 만나 가지고서 하나 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근원 없는 게 없는데, 자기의 근원이, 근원이 없는 거 없습니다. 모두 근원으로 인해서 생겨졌다 할이오. 모든 거 생겨진 근원이 있는데, 우리 사람들도 다 각각 자기가 생겨진 자기 근원이 있습니다. 자기가 생겨진 자기 근원이 있는데,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다는 말은 아버지를 명 가지를 포함해서 아버지라고 말했다 했지요? 일곱 가지.요 일곱 가지를 언제든지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을 믿으면, 첫째로, 자기 근원에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샘물도 샘물 근원과 떨어지면 그 떠다 놓은 물은 말라지지 않습니까? 우물에 서 떠다 놓은 불은 말라졌지마는서도 근원과 연결되어 있는 그 샘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뭣이든지 다 근원이 있는데, 원인이 있다 그 말과 한가지 말이오. 그 사람이 기뻐하는 그 기쁨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그 기쁨의 원인이 깨져 버리면 그만 그 기쁨도 깨져 버립니다. 그 사람의 근심의 근원이 있습니다. 근심의 근원이 있는데 그만 곤원이 탁 깨져 버리면 그 사람의 근심이 다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 사람와 고통도 근원이 있습니다. 우리의. 근원이 있다 말이오. 내가 생겨진 근원이 있으니 내가 근원으로 찾아가야 내가 나를 찾아 가는 것이고, 근원을, 근원을 가까워져야 내가 내게 가까워지는 것이요. 근원과 붙어 있어야 내가 든든한 것이지 근원과 떨어지면 마르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근원과 떨어지면 말라. 나무가 뿌리와, 뿌리와 끊겨지 나무는 반드시 마르고 맙니다. 이런데 그 뿌리와 끊겨진 것이 그 뿌리 와 연결되는 것을 가리켜서 접붙인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근원에 접을 붙이면 그만 그 나무가 죽을 것인데 살아난다 말이오. 접붙여 주면 살아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내, 우리라 하는 것은 전체를 우리라 하지마는 우리의 근원이라 내 근원이라, 우리의 근원이요 내 근원이라. 내 근원이 다 합해서 우리의 근원이 된다. 우리의 근원아 그것이 나중에. 가서는 내 근원 이 됩니다.
대아가, 개아가, 개인이라는 개아가. 개인이라는 개아가 큰 내 인 대아가 되고 대아가 정말로 되면 그 대아 그것이 곧 내 개아가 됩니다. 내 개아. 개인 내가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인제 그게 바로 된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나의 근원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믿는 것이 내 근원을 자꾸 찾아가서 근원과, 자꾸 근원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근원 속으로 들어가는 것.
또, 예수님이, 사랑이 수없이 많지마는서도, 많지마는서도 나를 사랑하는, 나를 영원히 사랑하는, 완전히 사랑하는, 나를 영원히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랑은 하나뿐이오. 나를 사랑하는 사랑은 사랑은 하나뿐이지 여럿이 있는 것 아닙니다.
마귀들이 이 사랑 저 사랑 말하지마는 다 그것은 나를 참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 거, 형제가 사랑하는 거. 부부가 사랑하는 거, 친구가 사랑하는 거 그 사랑은, 그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근원은 아닙니다. 진짜 사랑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떨어져 버리면 소용없어.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 끊어져 버리면, 하나님의 사랑 이 그것을 통해서 나타나지.
이런데,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요, 아버지의 보호를 찾아가는 길이요, 아버지의 길러 주심을 찾아가는 길이요, 아버지가 나를 책임져 주심을 찾아가는 길이요, 아버지가 나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은혜로 주시는, 은혜로 주시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요, 나에게 영원히 평강과 기쁨을 주실 그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라. 그 아버지가 하나님이라. 하나님 아버지라.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니까, 이 길보다 더 좋은 길이 없고 이 길 외에는 다 사랑을 찾아가도, 예수님 외에는 사랑을 찾아가도 참사랑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자기를 속이는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것이 사랑 찾아가는 것이오. 자기가 예수님 믿는 거 외에 무슨 가족끼리 부부끼리 사랑하니까 이 사랑이 좋은 줄 알지마는, 사랑을 찾아간 것인 줄 알지마는 나중에 그 사랑을 찾아서 그 사랑을 찾아가는 그 사랑은 마지막에는 사랑의 정반대인 미움이 봉착되고 맙니다. 미움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거는 여러분들이, 암만 말해 봐야 도가 된 것만침, 그 사람이 성화된 것만침 알지 아무리 말해도 몰라. 그러니까, 자꾸 알도록 이래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받아서 자꾸 생각하고 자꾸 그대로 외워요. 자꾸 외우고, 예수님은 나의 길 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안하면 아버지에게로 갈 자가 없다, 아버지는 나의 근원이시다, 아버지는 나를 보호하실 이시다, 아버지는 나를 기르실 이시다, 아버지는 나를 책임지실 이시다 아버지는 나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주시는 분이시다, 아버지는 나를 영원히 평안하게 해 주실 분이시다 자꾸 이렇게 말을 하고 또, 이렇게 행동하는 가운데에서 차차 변화가 되어져 나가는 것이지, 변화가된 것만치 알지 그걸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의 길이라, 예수님은 나의 진리라, 또, 예수님은 내가 지킬 진리라, 내가 아버지 찾아가는 진리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내가 아버지 찾아가는 진리라, 예수님 믿는 것이 아버지가 정해 놓은, 정해 놓은 유일의 법칙이라. 또,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생명이라 이런 것을 자꾸 외워 가지고서 자기가 지켜 행하면 차차 자기가 변화된 것만침 알아지게 됩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된 것만치 또, 그 진리를 새로 압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알지니 또,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그래 그렇게 알면은 이제 그 진리가 나를 붙들고 나로 하여금 그 진리대로 살도록 그렇게 능력이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요것을 언제든지 잘 기억을 합시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