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의 길


선지자선교회 1985년 4월 14일 주일오전 

 

본문 :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여러 시간 계속했습니다. 오늘 유치반, 중간반 이부도 이 말씀을  공과로 가르쳤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이 말씀 중에 세 가지를 우리가 확정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 안에 우리가 세 가지를 굳게  잡아야 할 것을 말씀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를 없는 가운데서 낳아 주신 이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십니다.

부모가 우리를 낳아 준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으나 우리 부모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로 낳아 주실 때에 은혜의 기관으로 하나님이 쓰셔서 우리를 창조로  낳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첫째는 하나님이 나를 있게  하셨고, 나를 생겨 존재케 하는 데에는 우리 부모님을 하나님이 기관으로 쓰셔  가지고 우리를 창조해서 땅 위에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자기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첫째가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큰 역사를 베푸신 은혜의  하나님이시오 둘째로는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하나님이 낳으시는 데에 기관으로  역사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존재에 대해서는 첫째가 하나님이요, 둘째는  부모입니다.

 그러기에, 십계명에 일계명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우리에게 명하신 계명이요,  오계명은 사람에게 대해서 부모를 첫째로 둘 것을 명령하신 명령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 앞에 받은 바의 그 권리를 제 사욕대로 저를  위해서 사용하는 그런 수권자들이 많이 있음을 인해서 하나님은 그들은 모르고  사람에게, 은혜에 대해서 이 은혜가 크다 저 은혜가 크다 그렇게 모든 순위를  복잡하게 해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순위를 첫째는 하나님이시오, 그  다음에는 부모라고 이렇게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뭐 정권자,  혹은 또 자기의 지도자, 관리자, 다 양육자 중요하지마는 첫째는 하나님이요.

다음에는 부모입니다.

 우리가 첫째로 알아야 될 것은 나는 영원 자존하신 창조주이신 대주재이신  주권자이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이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내가  생겨졌다 하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어떤 사상가가 어떤 권력가가 어떤 박식의  사람이 말한다 할지라도 그런 유혹을 우리는 받지를 아니해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아 생겨진 자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또 둘째로는 우리를 현재도 사랑하고 영원무궁토록 우리를 사랑하고 참 거짓이  없는 참된 실력 있는 그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지혜도 모자라고 능력도 모자라고 또 수명도 모자라기 때문에 그 사랑은 다  일시적의 것이요, 또 모든 것이 다 제한되어 있는 제한적의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다 뒤에는 미움과 원수로 변질되지 아니하는 그런 사랑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만이 영원하고 불변하고 참되고 온전하고 권위 있는 사랑이십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사랑을 귀하게 여기고 찾고 있으나 사랑은 하나님이 가지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 뿐이요 딴것은 다 하나님의 사랑에 유혹을 붙여서 마귀가  변질시켜 놓은 모든 거짓된 사랑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이 나를 영원히 사랑하실 수 있고 또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리 부모, 형제, 가족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랑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게 하실 때에는  사랑이 되지마는 근원이신 하나님이 사랑하지 아니하실 때에는 그런 것은 다  구름과 같이 다 떠나가고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도 견고히 잡아야 됩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사랑하실 수 있다, 또 사랑하신다  하는 것을 견고히 잡아야 됩니다. 우리 가정도 하나님만이 우리 가정을 사랑할  실력을 가지셨고 또 사랑하시고 사랑하실 수 있다 하는 것을 견고히 잡아야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 가정은 호주 되는 남편이 아버지가 또 자기가 이렇게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그 장담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시험이 와서 화가 미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 화를 당하는 것은 이 절대의 주권자가  공로자가 모든 것을 창생시킨 자가 만들어서 낸 창생시킨 자가 계시는데 이분을  무시하고 헛된 것들이 사람을 유혹시키고 자기 위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멸하지 아니하시면 모든 존재는 다 멸해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징계해서 다 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간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뿐이라, 하나님만이 또 사랑을 가졌습니다.

사랑은 전지자가 아니면 가지지 못합니다. 왜 내가 알기로는 이렇게 하는 게  사랑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서 새로 똑똑히 알고 보니까 그게 사랑이 아니요,  미혹이요, 미움이 되고 만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봅니다. 전지한 지혜로 바로  알고 영원 모든 전체를 바로 알고 사랑하는 사랑이라야 그 사랑이 될 수 있고 또  전능의 사랑이라야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서 이것을 사랑한다  하지마는 나보다도 강한 원수가 그것을 깨트릴 때에는 그 사랑은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전지자 전능자라야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영원무궁자라야 사랑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모든 존재 가운데에  홀로 주권을 가지신 그분이 사랑해야 되지 주권 가지지 안한 그것은 이 사랑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실력 부족으로 참 사랑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가진 자는 완전하신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고 또 영원히 바로 옳게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실 수 있는  이 사실을 견고히 잡아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이 사랑에 대해서 요동치  안해야 됩니다. 나를 존재케 하신 분에 대해서도 변동이 없어야 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대해서도 변동이 없어야 하고.

 또 나를 여기에서 저게서 오만 현재와 미래의 영원무궁토록 나를 보호하실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나를 보호하실 이도  하나님뿐이시다. 또, 이분은 전쟁에서도 나를 보호하실 수 있고, 질고에서도  보호하실 수도 있고, 사망에서도 보호할 수 있고. 모든 악령에게서도  영원무궁에서도 나를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안보 하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견고히 잡고 요동치 안해야 됩니다.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를 그 앞에다 두고 일국의 권세를 잡은 그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구원할라고 네가 기도하는 일을 중단하면 내가 구원하겠다고 하루 종일  그렇게 사정을 해도 다니엘은 안보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만 있지 아무도 안보할  자가 없다는 것을 견고히 잡았기 때문에 다리오 왕에게 말하는 데에 요동치  안했습니다. 흔들리지 안했습니다. 말은 안 해도 '당신은 나를 안보할 실력이  없다. 비록 여기에서 사자 구덩이에서 사람들이 못 넣구로 하면 그것은 할 수  있지마는 사자 구덩이 안 들어가고도 나는 이 자리에 죽을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안보하셔야 되지 하나님 외에는 안보 할 이가 없다는 것을  견고히 잡았기 때문에 안보자를 변동하지 안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안보하는  그 안보자를 변동하지 안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지식을 가지고 이런 사람으로  행동해야 됩니다. 우리를 이제도 장래도 여기에서도 저게서도 무엇에서든지 나를  참 안보하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굳게 잡고 놓지  안해야 됩니다.

 또, 우리는 나를 길러 주실, 나를 양육해 주실 우리 영도 길러 주시고 우리의 혼,  우리 마음도 길러 주시고 우리의 몸도 길러 주시고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모든  기능과 우리의 지위나 명예나 영광이나 그 모든 것을 사망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모든 종류대로의 요소 나의 요소 또 내게 속한 자들의 요소, 또 내게 속한  모든 만물, 우리가 다 알지도 못하는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을 영원히 길러 주실  분도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십니다. 또 길러 주시고 계신 이도 아버지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르실 때에 이런 것 저런 것을 기관으로 쓰시기는 하시지마는 마치  비유컨대 엄마가 밥을 아이에게 떠먹이는 것이 엄마가 그 수저를 가지고서  떠먹이는 것이니까 엄마가 수저를 사용하는 것이지 밥을 떠 먹이는 이는  엄마입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아니고 수저가 자기를 먹여 준다고 하면은 그 아이  길러 봤자 그거 아무 희망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런 것  저런 것을 통해서 이런 면 저런 면을 우리에게 육성시키고 향상시키고  전진시키고 점점 성화시켜서 이렇게 물질계에 있는 물질면으로 영계에 있는  영면으로 모든 것을 영원히 영원히 길러 주실 분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이시라 하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이래서, 나를 내 지위나 권세나 명예 같으면 나를 길러 주실 이는 어떤 그  정권자라, 또 어떤 그 재벌가라, 또 어떤 활동가라, 나의 무엇이라 이렇게 해서  자기를 양육해 주실 분을 하나님 한 분으로 이 정하지 않는 자, 하나님 한 분만이  나를 양육해 주시는 분인데 하나님 한 분인 것을 확정 지우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양육을 받을 그런 시기마다 마귀가 와 가지고 유혹할  때에 그만 그 유혹에 빠져 가지고 시험에 듭니다. 그래서 유혹의 욕심에 빠져  가지고 다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영원히 양육해 주실 이는  아버지 하나님뿐이시다 하는 것을 우리는 견고히 잡아야 됩니다.

 자기가 무슨 사업을 하고 한다면 그 사업을 참으로 내 사업을 길러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뿐이십니다. 내가 무슨 어떤 경영을 했으면 그 경영이 금생과  내세에 점점 성장되고 향상되고 전진되게 해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신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자기가 조그만한 무슨 가계를 하고 보고  있든지 어떠한 조그만 자리에서 거기에서 자기는 수고하고 있을지라고 자기의  경영하는 거, 또 자기가 모든 책임진 거 자기가 가진 권세나 지위나 지능면이나  영광면이나 존귀 명예면이나 무엇이든지 자기를 좋은 것으로 길러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뿐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욕심이 잉태하면 죄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 낳는 것뿐이다 각양 좋은 은사와 너희들에게 유익된 모든 선물은  빛들의 아버지 하나님 한 분으로서만 너희들에게 올 수 있다 이랬습니다. 그분은  변동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나를 키워 주실  모든 무슨 면으로서든지 나를 키워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하는  것을 견고히 잡고 요동치 안해야 하나님 아버지의 길러 주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아버지 외에 자기를 길러 줄자가 있다고  자꾸 이렇게 간교하게 우리를 꾀워서 우리 속에 원죄가 자기중심인 원죄가 있고  또 사욕의 이 모든 욕심이 있는 이것을 이용해 가지고 우리를 자꾸 꾀웁니다.

이래서, 대개는 사람들이 망하기를 와 망하느냐 하면은 제가 스스로 자신을  길러가야 된다고 자기를 자기가 길러가야 된다고 해 가지고서 자기 노력으로  자기 절제로 자기 부지런한 그 근면으로 또 자기의 모든 조심으로 어떤 인간을  접촉해 가지고서 그 모든 자연들의 혜택으로 자기가 자라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를 길러 주실 분을 바꿔서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이 자기를 길러 주실 수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무엇이 자기를 길러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양육자를 바꿉니다. 자기를 길러 줄 양육자를 바꿉니다. 양육자를 바꾸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길러 주실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길러 주실 양육자를 바꾸는  데에서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때에 하나님 아버지만이 나를  육성해 주실 수가 있다고 나와 내 소유를 길러 주실 수 있다고 우리는 믿고 나갈  때에 그때에 우리 현실은 뜻밖에 하나님 아버지가 길러 주신다고 소망하는 것은  이거는 아주 어리석은 일이요, 이거는 허무 맹랑한 이거는 꿈꾸는 일이요. 현재에  나를 양육해 주실 분은 이 기관이다, 이 기관이다 이 문화다. 이 사람이다. 이  무슨 권력이다, 이 재벌이다 해서 자기를 양육해 줄 양육 주를 바꾼 거기에서  망하고 마는 것이 인생들인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날 길러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사실을 굳게 잡고 그런 미혹이 있을 하나님 아버지가 길러 준다는 것은 허무하게  보이고 피조물이 나를 길러 줄 수 있단다고 고렇게 보여질 고 때에 자기를 양육  해 주실 주를 변경하지 안하면 고 흑암을 깨트리고 거기에 하나님의 길러 주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으리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 것도 인간 이치, 마귀 이치. 마귀의 지식, 배암의  지식 인간의 지식, 인간의 경험, 체험 그런 것으로서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오고 비과학적으로 오고 비통계적으로 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세상을 믿는 사람은 통계를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이 과학을 하나님  말씀보다도 인간들이 알고 있는 그 이치를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걸 취해서 탈선돼 감으로써 하나님의 양육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것도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나를 책임져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뿐이십니다. 어리석게 그 사람이  무슨 어떤 실력가의 상관을 자기가 만났다든지 어떤 실력가의 남편을 만났다든지  어떤 실력가의 그 자본주를 만났다든지 어떤 실력가의 뭐 어떤 인간이나 뭣이나  과학이나 그런 걸 만났을 때에 '내가 요 과학만 하면 나는 살 수 있다 이 과학이  나를 책임 질 수 있다, 인간이 나를 책임질 수 있다.' 이라는 자들을 모조리 노아  홍수 때는 수많은 종류들이 자기를 책임질 수 있다고 거기에다가 주력을 하고  성심을 기울여서 다 섬겨서 이랬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  인간을 책임질 수 있지 딴거는 책임질 수 없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홍수를  내리실 때에 홍수에 매몰될 그런 것들을 다 책임자로 해놓고 노아는 하나님을  책임자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책임자로 삼은 노아는 그 모든 것을 발아래  밟고 살았지 마는 뭐 그때도 지금과 같이 이만큼 발달은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지마는 그때도 한 이천 년 동안 문화가 계속 됐었기 때문에 상당한 모든  온갖 문화나 과학이나 모든 사상, 그런 모든 연구들이 많이 발달이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자기를 책임져 줄 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모조리 홍수 속에다 매장을 시켜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계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를 책임져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이시니 내가 내  모든 것을 맡기실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분만이 나를 낳아주실 수  있지 아무도 우리를 책임져 주실 이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지식이 너무 좁고 너무  어리고 너무 경험이 없는 철이 없고 이래서 사람들이 '이것에게 맡기면 될 수  있다, 저것에게 맡기면 될 수 있다.' 해 가지고서 사람이 사람에게 자기의 일생을  영원을 맡긴다는 그런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사람은 어리석게 남편되는 사람마다  아내가 자기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 놓고 '이 든든한 남편이 있으니까 모든 거 다  맡아 주겠지.' 하고서 남편에게 맡기면은 그 남편은 저한테 맡겨 주니까 좋다고  하는 그런 무책임한 그런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살 때에 그 아내가 자기를 사랑하니까 '날 우상같이 사람하지 말아라. 나는  책임질 수가 없다.' 그 우상같이 사랑하지 말라는 그 말을 날마다 계속해서  가르치는 그런 남편이 있습니다. 그라니까 그 아내가 비로소 남편이 나를 책임질  수 없다 하는 것을 비로소 알고 그 다음부터는 행동과 태도가 달라진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책임져 주실 이가 하나님 아버지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내 모든 것을 다 안심하고 맡길 만한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십니다. 나를 맡아 주실 이가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라는 것을 나를 책임져 주실 이가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이라는 것을  요것을 알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자기를 맡기는 그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그 위에 책임진다는 것이 천도 만도  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 책임을 지우면 좋다고 하고 또 책임질 줄로  인정한다고 하면 좋아하지마는 그 천지도 모르고 철도 없는 마치 그거는  짐승같은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인생을 책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책임지지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만이 우리를  책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고 그러기 때문에 나를 책임져 주실 그분에게 내가  모든 것을 맡기니 그분에게 내가 모든 것을 맡기니까 그분 비위를 서끌려  가지고는 안 될 것이고 그분의 법칙을 어겨 가지고는 안 될 것이고 이라니까  그분의 책임져 주심을 그분이 나를 맡아 주심을 잘 해 주실, 잘 맡아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책임을 잘 져 주시도록 하기 위해서 그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아내가 남편을 존대하는 것이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고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효성하는 것이고 수하가 수상을 부하가 상관을 그분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분의 그 책임져 주심을. 그분의 양육을 그분의 안보를, 그분의 사랑을,  그분이 나의 근원이니까 근원되어 주심을 이것을 바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원수도  사랑하고 있는 대로 그 사람들이 비위를 상하지 안하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안할라고 그 사람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주인인 하나님에게  거리끼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하니까 껍데기만 보면은 그 연료나 저 연료나 다  같은 연료 같지마는 다릅니다. 그 효성이나 저 효성이나 같은 것 같지만  다릅니다. 그 충성이나 저 충성이나 같은 것 같지만 다릅니다. 신앙 있는 사람이  충성하는 충성과 신앙 없는 자가 상관에게 자기 왕에게 자기 주인에게 충성하는  거와 아주 그거는 하나는 죽었고 하나는 살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자리에서  한밭에서 한자리에서 한방에서 둘이 누워 자고 둘이 행동하고 같이 동역하지마는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해서 하나는 멸망을 받고 하나는  구원 얻는다는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책임져 주심도 변동하면 안 됩니다. 요것을 변동치 않는  자가 하나님에게 받을 수 있는 자입니다. 이래서 야고보서 1장 5절 이하에는  말씀했습니다. '너에게 모든 것이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안하시는  하나님에게 구하라. 하나님이 주시리라. 그러나 너희가 두 마음을 품으면 아야  얻을라고 생각지를 말라.' 두 마음을 품으면 얻을라고 생각지를 말라 이랬습니다.

이제 나를 책임져 주심에도 이런 형편에서도 아무리 하나님이 책임을 안 져  주시는 거 같이 보여져도 또 하나님이 책임질 수 없다고 그렇게 환경에 보여져도  나를 책임지신 그 책임자를 변동하지 안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책임을  져 주십니다. 변동하는 사람이면 책임을 져서 길러 주시면 더 커지니까 커져  가지고 변동되면은 더 높은 나무에 올라가 가지고 떨어진 자와 같아지기 때문에  박살이 되니까 아야 기르지를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견고히 잡고,  또 여섯째로는 나에게 영과 육에 필요한 거. 금생과 내세에 필요한 거, 내  소유에 필요한 거, 내 지위에 필요한 거, 내 권세에 필요한 거, 내 무대에 필요한  거, 내 책임에 필요한 거, 내 모든 쾌락에 안일에 필요 한 거 우리는 뭐 자기가  뭘로 사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조그만한 존재지마는 알고 보면 적은 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은 우주. 우주보다도 복잡한 것이 우리에게 다 연합. 연결 돼  가지고 우리라는 존재는 이상하게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극소수고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몇 가지나 되는지 아는 숫자보다도 모르는 숫자가 많고 아는 종류보다도  모르는 종류가 많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금생과 내세, 영, 혼, 몸, 나와 관련된 자에게 내 소유에게 내가  경영하는 데에 그 모든 것에게 필요한 것을 나는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거 모르는 거 내게 있어야 할 모든 필요한 것을 나에게 갓바꾸어는 줄 수  없기 때문에 내게 모든 필요한 것을 공으로 은혜로 그 무한한 것을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서 그분만 바라보면 그분이 모든 것을 다 우리에게 은혜로 주셔  가지고서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이 충만하도록 이렇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구비시켜 주실 분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하는 것을 우리가 믿는  요 믿음을 요동치 안해야 됩니다.

 마지막 일곱째로는 나를 참으로 기쁘게 해 주실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미혹을 받는 것은 기쁨도 천도 만도 억만도 넘습니다. 기쁨도  천도 만도 억만도 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은 아 이것이 주는 기쁨, 저것이  주는 기쁨 모든 기쁨을 차지하는데 그래 가지고서 기쁘다고 좋다가 며칠 후에는  죽는다고 자살한다고 구불고 야단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변함이 없는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 죽음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 영원무궁토록 빼앗을 수 없는  기쁨, 마귀가 빼앗을 수 없는 기쁨. 죄악이 빼앗을 수 없는 기쁨 이렇게 영원한  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실 이는 아버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첫째로 지금 증거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한  분뿐이 이제 말한 대로 이 일곱 가지는 우리에게 주실 수 있고 주실 권능도 있고  주시고 있다. 이외에는 아부도 여기에는 손대지 못하고 할 자 아무도 없다. 요  아버지 하나님 한 분만이 나에게 이 모든 것을 주셨고 이미 주셨고 앞으로  주시고 주실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는 요것을 요동치 말고 아버지 한  분뿐이라는 것을 굳게 잡는 요것을 첫째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러면 이 일곱 가지는 아버지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데 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 주시는 주심을  받는 길이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느냐, 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이 하나님 아버지만이 이 일곱 가지를 가지고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데 이  아버지에게 우리가 받을라고 하면은 받는 그 길이 무엇이냐. 그 길이 무엇이냐.

받는 길이 무엇이냐? 받는 길은 예수님 믿는 것 뿐인 것을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내가 길이라. 나로 말미암지 안하면 아버지에게로 올 자 없다.' 예수님이  길이시니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일곱 가지를 받는 유일한  길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도 좀 명상해야 됩니다. 이 세상에는 길이  너무 많습니다. 뭐 이리 가야 그 일곱 가지를 다 이리 가면 받는다 저리 가면  받는다, 이게 준다 저게 준다, 무책임하게 내가 준다 네가 준다. 인간들은 절  하나님처럼 여겨서 이게 준다 자기 남편을 이것 줄 수 있다고 아내가 그렇게  믿으면은 이라다가는 큰 낭파 당한다. 이 아내를 경계하면서 '나는 그런 네가  소망하는 그런 믿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나는 인생이다. 나는 생명이나 권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실력 없다. 이러니까, 나를 믿다가  왕창 낭파 당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믿어라.' 이렇게 말해 주는 것이  사랑인데 어쨌든지 저를 인정하면 좋다고 이러니까 마지막에 가서 가죽 껍데기  휘뜩 벗고 보면은 다 그렇게 '나를 속인 제일 첫째 원수가 남편 이놈 네다' '날  속인 네가 아내 네다.' 이래 가지고, 전부 이렇게 싸워서 원수의 그 복수하는  그것이 지옥입니다. 여러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정신만 차려지면 다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데 하나님 아버지만이 이를 우리에게 줄 수  있는데 이분을 만나야 되겠는데 이분을 내가 만나야 되겠는데 이분을 어떻게  찾아가야 되느냐? 이분을 찾아가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 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다' 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구주가 있고 수많은 거짓부리 가짜 구주가 있고  세상에는 수많은 가짜의 그 길이 있는데 이 수많은 길 가운데 참된 길은  하나뿐인데 하나뿐인 이 한 길을 어떻게 우리가 찾느냐 그 말이오. 이거는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 길을 찾게 하신 것은 영원 전 선택을  입었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고 우리가 중생됐기 때문에 이걸  찾았습니다. 이거 전부 하나님이 순전히 객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이런고로 가지신 분도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신데 이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도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내가 진리라 말은 가지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이신데 이분을 찾아 만나는 이치도 예수님뿐이십니다. 또, 다른  데 이치가 있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천하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래야 될 터인데 요새는 예수교라 하더니 예수 교인들이 예수 교인들이 이 길  외에 딴 길이 있다고 종교 통일을 말합니다. ○○○씨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 종교나 저 종교나 모든 종교가 다 하나이기 때문에  껍데기는 뭐 기독교 뭐 입문은 기독교라 회교라 뭐 흰두교라 또 무슨 무슨 교라  불교라 유교라 이라지마는 들어가 보면은 마지막에는 하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입니다. ○○○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남한의 기독교가 십분지 한  구가 다 이래 돼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두운 때인지 모릅니다.

 이래도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그렇게 빠지지 않습니다. 다 택함을 받지 않는  마귀의 심부름꾼으로 와 가지고서 예수 믿는 자들 많이 있습니다. 여기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가 아닌 마귀의 심부름꾼으로 와 가지고서 '나는 이래  예수 믿어도 잘된다, 나는 이래 예수 믿어도 잘된다.' 그 탈선의 길을 걸어도  잘되는 것은 그거는 가짜 예수로 택함을 입지 않은 자입니다. 징계가 없는 자는  사사로운 자식이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법을 어기면은 자꾸  징계가 오고 벌이 오고 뭐 갈빗대가 부러진다, 뭐 다리 부러진다 금방 그  너거끼리 일어나 가지고 죽는다 뭐 자신이 자꾸 이래 절단나는 것이 하나님의  택한 자 증거입니다. 안 되니 냅둬도 안 되니까 때려서 하나님이 조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인 동시에 잔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노아 때에 그 이십  억이나 되는 그런 많은 사람들은 홍수에다가 여덟만 남겨 놓고는 쏵 침몰해 죽을  때에 그들이 뭐 부르짖기를 얼마나 부르짖었겠느냐? 그때는 하나님 많이  부르짖을 것이라. 부르짖지마는 눈 찔끔 감고 하나도 상관하지 안하고 쏵 홍수로  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필요한 이 일곱 가지 외에는 없는데 일곱 가지면 인간에게  필요한 거 다 들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주실 이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뿐이십니다.

이미 우리에게 와 있는 것도 그분이 주신 것이고 앞으로 주실 이도 그 분 뿐이요,  주실 실력도 그분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분을 찾아가는 길은 예수님  뿐이오. 이분을 찾는 바른 이치는 예수님뿐이요. 내가 생명이라 하는 것은 무슨  말인고?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결합된다는 그 말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가지고서 이 하나님 아버지와 딱 들어서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은  예수님뿐이라 말이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한 것이 그것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만 이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 아버지만 가지고 계시는데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는 것을  내가 얻는 데에는 길이요 진리인 예수님 한 분으로서만 얻을 수 있지 딴 걸로는  얻을 수 없다. 예수님 한 분을 믿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다. 고거 이제 예수님 한  분을 믿는 것으로만 아버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을 만나 가지고 얻을 수가  있다.

 고 두 가지 배웠는데 그러면 셋째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 믿는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 믿는 것은 다섯 가지로 그전에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신구약 성경 문서 계시의 이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은 사람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라고 애쓰다가 또 넘어지고 애쓰다가 또 넘어지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 예수님을 믿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 아야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  말씀대로 사는 것을 저도 안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사는 것을 빙글빙글  하면서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싫어서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훼방을 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제 비위에 맞지 않아서 삣고 깎고 말씀대로 살지 안하고  죄를 지으면 좋아하고 하는 그자는 예수님을 믿을라는 자가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입니다. 배척하는 자 우리가 택함을 입은 자 가운데도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도  있고, 예수님을 믿을라고 애쓰는 자도 있고, 예수님을 믿은 자도 있고, 믿은 자는  말씀대로 행한 자는 믿은 자요. 믿을라고 애쓰는 자는 말씀대로 행할라 하다가 또  넘어지고 행할라 하다가 또 넘어지니까 자꾸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자요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는 중생된 사람이라도 저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안할 뿐  아니라 옆의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야 너무 그렇게 지나치게 믿지 마라.

과격하게 믿지 마라 너무 지나치게 예수 믿는다.' 하는 그것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막바로이 필요 한 일곱 가지를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를 배척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곱 가지를 얻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빨리  거기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내가 예수 믿어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 같이 예수  믿들 안 할란다. 너무 그렇게 지나치게 예수 믿는다, 뭐 누구는 그래 지나치게  예수 믿는다.' 이라는 그것이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자기에게 화가, 화가 마구  벼락같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한 마디에게 화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성령 훼방죄입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 할지라도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고 찬성하고 존경하고 나도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좋고 옳은 줄 알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이 돼야 되지 자기도 살지 안하고  다른 사람 말씀대로 사는 것도 훼방을 하고 저와 같이 불의에서 죄짓지 않는다고  그와 같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사람은 비록 택한 자라도 아버지를 배반하는  사람이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일곱 가지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행위에 따라서는 상당한 보응으로 조만간에 반드시 그에게는 이 일곱  가지가 없는 사람 될 것입니다. 일곱 가지 차차 차차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 믿는 교인들이 다 모두 비참하게 됩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조그만한 소국의 대통령만 자기의 아버지가 돼도 세력이 있는 데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아버지 됐는데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까? 이거 는 소금이 맛을  잃었기 때문에 쓸 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힘이 돼 가지고 있는 이  현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을라고 애를 쓰는 것은 말씀대로 살라고 말씀  어기지 안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믿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요 믿은 사람은  말씀대로 산 사람이요, 또 고게 또 하나는 자기가 말씀대로는 살았는데 말씀대로  행동은 하면서도 마음은 딴 데 있었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내가 말씀대로  행동은 하면서도 내 마음과 생각은 딴 데 있습니다. 그럴 수 있어. 이러기 때문에  내가 말씀대로 행동하는 동시에 내 마음과 정성이 주님에게 바쳐지는 성신의  감화,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아서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 이러니까 말씀대로  행하면서도 자기가 성신의 감화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탄식을 하면서 성령의  감화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예수님을 믿을라고 애쓰는 것입니다. 자기  속은 뭐 말씀대로 지금 전도는 하면서 기도는 하면서도 마음은 딴 데 있습니다.

욕심도 딴 데 있고 정신도 딴 데 있고 얼마든지 성신의 감화는 소멸하고  말씀대로는 살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말씀대로 살고 성신의 감화의 그 감동에  복종하는 그것이 되어져야만 비로소 두 가지 예수 믿는 일을 한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가 못 살면 또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기를 목표하고서  애를 쓰고 자기 마음을 딴 데 기울이지 안하고 마음과 정성을 들여서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아 가지고서 그 감화를 소멸하지 안하고, 껍데기 말씀대로 사는  껍데기와 속에는 성신의 감화되어 가지고서 사는 요 일을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예수님 믿는 일을 두 가지 한 일입니다. 이 두 가지 하는 것은 입문입니다. 이 두  가지 하는 거. 이 두 가지를 하면 뭣이 이루어지는가 하니 이 두 가지를 하면 세  가지가 이루어집니다.

 이 두 가지를 하면 주님이 내 모든 죄를 대신해서 형벌 받아 가지고 나에게  대형함으로 사죄해 주셨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지극한 심판 그 공심판에서도 너는  죄 없다 인정함을 받아서 사죄를 주셨다 나는 주님의 대형의 공로로서 나는  사죄함을 받아서 나는 죄 없다. 죄 없는 사람이다. 사죄의 공로를 받아서 나는 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기에게 믿어지게 됩니다. 이 두 가지를 하면 믿어지게  됩니다. 말씀대로 행하고 영감대로 행하게 되면은 이 사죄가 믿어지게 됩니다.

사죄는 믿어지는 그게 문제입니다. 주님은 나를 나의 형벌을 대신해서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내 죄의 형벌을 받으셨으므로 내 죄를 다 사하셔서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사죄를 받아 죄 없는 사람이라 하는 것이 믿어지는 거, 요거  믿어지면 됩니다. 요거 믿어진다는 것이 그게 그렇게 쉽게 믿어지는 게 아닙니다.

여기에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죽인다고 하는데 죽인다고 하는데 성경은 압니다.

'주님이 나를 지키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겠느냐? 주님이 날 지키신다, 나와  함께 계신다, 나를 지키신다, 전능자가 지키신 다 전지자가 지키신다, 주권자가  지키신다.' 입으로는 암만 해도 믿어지지 않는다 말이오. 믿어지지 안하니까  두려움이 많고 평강이 없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다 지는  것입니다. 이 믿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믿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말씀대로 평소에 살고 어기지 안하고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고 또 어겼으면 또  말씀대로 살라고 달라들고 영감대로 살라고 애를 쓰고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쓰고 영감대로 살라고 애를 써서 말씀대로 산 것만침 영감대로 산 것 만침  사죄가 믿어집니다. 이 사죄가 믿어지고 '주님이 나를 죄 사해서 나에게 사죄를  주셨다.' 믿어집니다. 믿을라고 한 게 아니리 믿어집니다.

 믿어지고, 또 이제 칭의가 믿어집니다. '아, 나는 아무 행함 없지마는 서도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나를 대신해서 행하셔서 하나님의 지공한 심판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법을 다 실행한 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심판에 내가 면제돼  가지고 구출돼 나왔다. 주님은 나를 대신 행해 주셨기 때문에 대신 행해 주신 이  대행이 나의 행함의 의가 됐다.' 하는 요것이 믿어집니다. 요게 믿어질 때에  믿어질 때에 마귀는 우리를 침노하지 못합니다. 요게 믿어질 때에 마귀가 우리를  침노하지 못하는 것이고 주님이 나를 대행해서 사죄가 믿어질 때에 죄가 와  가지고 우리를 농락하지 못합니다.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주님이 나를 대신해서 내가 원수된 것을 아버지 하나님과 화목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해 가지고서 하나님과 나와 화목을 시켜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는 화목이 됐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와 나는 화목됐다. 화목됐다는  요 사실을 믿는 믿어지는 거. 하나님과 나와는 하나다. 하나님과 나와는 한  덩어리다 화목이 돼서 하나님과 나와는 둘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신인 양성  일위와 같이 일위는 되지 안하지마는 나와 동거 동행의 결합이다 하는 요것이  믿어질 때에 사망이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사망이 못 오는 것입니다. 사망과  해가 가까이 못 옵니다. 그 사람은 세상을 떠났으면 영원한 생명으로 이 몸을  변화받기 위해 그렇지 다시는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 다섯 가지를 가지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니까  처음에 첫째 것 하나를 가지면 오래 동안 신강하면 둘째 것이 돼집니다. 첫째 것  가지면 나중에 둘째 것이 되어지고. 첫째 것과 둘째 것이 되어짐에 따라서 사죄가  믿어지는 믿어짐이 차차 차차 생겨지고 칭의의 믿어짐이 생겨지고 화친의  믿어짐이 생겨집니다. 이래 자꾸 이겨는 믿어지는 것이 이거는 뭐 행하는 게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다. 믿어지는 것이 어데서 믿어지느냐? 말씀과 영감에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셋째로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걸 우리가 굳게  잡고 예수님을 믿는 일 할 것, 예수님을 믿는 일을 하면 예수님은 자기의  예수님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그 이치대로 했기 때문에 그 만나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와 결합이 된다. 나는  생명이다 그말은 생명이다 그말은 하나님으로도 결합이다. 하나님으로 결합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와 그사이에 예수님이 들어서 거물장과 같이 꺽장과 같이  이렇게 꽉 찍어서 결합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십니다.

중보자.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둘이 결합시키는 둘이 한테 들어 붙여서  이래 거머 들여 붙여 가지고 다시 떨어지지 못하도록 결합시키는 것이 그것이  중보자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영은 결합을 시켰는데 영원히  떨어지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은 결합 됐다가 떨어졌다가 하는데 결합된  그분자, 결합된 분자, 결합된 요소. 성화된 요소는 다시는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늘 세 가지 배운 것을 굳게 잡읍시다 우리에게 영원히 필요한 일곱 가지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이 가졌지 땅 위에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딴 것이  가졌다고 떠들어도 믿지 말고 속지말고 유혹을 받지 마십시오. 또, 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해서 그분에게 얻게 하는 것은 예수님 한 분뿐이십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섯 가지를 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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