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14:25
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이다
본문 :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OOO목사님 어디 계십니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엊저녁에 그 설교를 했는데 자꾸 이 도를 삼가 안 듣기 때문에 고만 그런 증거자가 되기 쉬운데 그라면 그 결실이 없습니다. 그 세상 사람들이 이종교가들이 다 그래 찾고 있는데 그 인간의 의지 가지고는 안 된다, 의지보다 더 강한 것이 생각이다. 의지보다 더 강한 것이 상상이다, 그. 생각이다 이래 생각하는 데 사람은 세상에 왔다가 뭣인가 하나 중요한 거 하나 유명한 거 하나 하고 가야 된다, 그런 꿈을 가져야 된다, 옛날 성경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 다 유명한 꿈꾼 사람들이 있는데 그 모두 성경에 기록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런 포부와 목적을 가졌기 때문에 성공했다 하는 그런 말은 그것이 다 하나님께서 떨어져 가지고 하는 그런 말이 되기 때문에 그게 아닙니다.
그거 자꾸 다른 외서를 많이 보는 모양인데, 언제 내가 한번 나는 그거 잘 듣지 안하는데 그때 어째 하나님이 나에게 들려 줘서 들었는데 그 불교인입니다.
불교인이 내가 이름은 말하지 않겠는데, 불교인인데 그 사람이 박사가 서른 둘이라요. 박사, 박사 학위가 서른 둘이라. 그런데 논문 박사가 열 셋이고 또, 뭐 나머지 박사가 열 아홉이라든가 이래 가지고 서른 둘인가 돼요. 그래 서로 대화하면서 그 박사님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이 박사 학위를 이렇게 서른 둘이나 받았습니까? 그래 그분이 박사 학위로서는 세계에 서 제일 숫자가 많대요. 우리 한국에 있지마는, 물으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박사 학위 서른 둘 가지게 된 동기가 내가 세상에 났다가 무엇인가 하나 유명한 것을 하고 유명하게 돼 가지고 가야 되겠는데 뭐 유명한 일 뭘 하나 할까 이렇게 생각을 가지다가 박사 그 학위를 좀 세계에 좀 한번 톱을 해보겠다 이래 가지고서 그거 착수를 했다고. 해 가지고, 그래 '그러면 지금 박사 학위가 몇이나 됩니까?' 이라니까 '서른 둘입니다.' 서른 둘인데, 열 셋은 논문 박사고 열 아홉은 뭐 명예박사고 이래서 서른 둘을 가겼다고, 그러면 현재로서는 박사 학위로서는 제일 많이 가졌다고서 그래 말합디다. 하는데, 그것이 다 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헤매서 내가 무엇으로 유명해질꼬 하는 그게 다 인간의 주관이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말을 언제 어떤 팜프렛트가 왔는데. 그 사람이 그 뭐 찐소리를 더러 했는데 그중에 하나는 '사람은 꿈이 있어야 된다. 꿈이 없으면 안 된다.' 이래 꿈 말을 기독교에서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그 꿈을 이루어 가는 거 아닙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모르는데 영원불변의 정확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보여 줘서 그 계시를 따라서 우리가 가는 것이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 가지고서 뭐 이것 되리라 저것 되리라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다.
그거 다 헛된 말입니다.
그라면 자꾸 어지러워지고 개척 교회 할때는 모두 그런 소리를 잘 듣고 이래 하지마는 나중에 그런 소리가 들어 가지고서 속에 박혀 놓으면 하나님의 진리를 넣어 주기가 아주 힘들어서 안 됩니다. 있으면, 있었으면 여기 있었으면 그걸 들을 건데 먼데서 한 그저 한 시간도 두 시간도 아니고 혹 내가 두 시간 설 때도 있지만 한 시간 밖에는 안서는 데도 한 시간 서는 그것을 바라고 먼 데서 와 가지고서 그렇게 기다리고 고데하는데 여게 있으면서도 그 뭐 안 들어 그런 소리 들으니까 아직까지 도를 모른다 그 말이오. 아직까지 도를 아직까지 잡지를 못했어요. 못해서 그런데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없고 또, 간 모양이지? 그런데. 엊저녁에 물었어.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오 층에 네 사람이 지금 거게 현재는 거처하고 있어요. 이래서 물었소. 물으니까 몰라. 뭐인지 그러니까 소리만 듣고 돌아다니는 거라. 소리만 크게 하면 그런 거 같고. 그러니까 땅에 속한 말을 하면은 잘 들리지마는 하늘에 속한 말을 하면은 저희들이 못 듣던 말이요 처음 듣는 말이기 때문에. 또, 옛사람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옛사람에게 좋은 설교를. 옛사람을 죽이는 설교니까 들리지 않는다 그 말이오. 한 사람에게 물으니까 뭐인가 잡지는 못하는데 세상 사람이 하는 그 세상 말 같더라 고런 말만 해요.
우리가 진리를 잡고 진리에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듣고 깨닫지 못하면 그거 다 앞으로 바람이 불 때 다 날라갑니다.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그 사람. 말씀을 듣고 고대로 할라고 해 볼 때에. 말씀을 들을 때에는 잡탱이가 많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거게서 제 주관이 그 말씀을 듣기 때문에 삐뚤어진 것이 많으나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비뚤어진 그것이 자연히 수정이 돼지고 차차 차차 올바르게 가집니다.
이 모든 발명가들이. 이 모든 과학 말이오. 발명가들이 책상 위에 앉아서 논리적으로 연구를 합니다. 혼자 자기가 생각으로 눈 감고 이러나 저러나 이래도 생각해 보고 저래도 생각해 보고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연구를 해 가지고 아 요거는 틀림없이 된다, 요거는 된다. 틀림없이 된다 하고서 발표를 한 사람은 나중에 가서 큰 수치를 당합니다. 그러니까 발표 안 하고 틀림없이 된다 하는 고 발명을 해 놓고서 되는가 안 되는가 실지로 실험해 보자 하고서 고것을 실험을 합니다. 실험을 해 보니까 안 되거든. 자기 하는 대로의 이치로는 딱 맞는데 실험해 보니까 안 된다 그 말이오. 그러면 실험해 보고 안 되니까 암만 이치에 맞아도 실지로 안 될 것이라 말이오. 이래 가지고 그거 와 안 될까? 실험해도 안 되는데 고걸 이치로는 연구를 해서 발명을 했는데 실제로 실험하니까 실지로는 안 된다 그거요. 안 되니까 그 사람이 고민에 빠집니다. 고민에 빠져 가지고 이 논리로는 되는데 실지로는 실험을 해 보니까 안 되니까 논리와 실험이 같지 안하니 이거 어쩐 연고냐? 논리와 실험이 틀린 고 점을 발견하면은 그만 즉시 그 일에 대해서 발명을 해 버립니다. 신발명을 해 가지고서 고 발명가가 돼 가지고 일이 됩니다.
그러나 고 실험하지 안하면 모르는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고 도리를 깨닫고 자기가 상상적으로, 고 상상이라 하는 것은 이성이 들어서 이렇게 비판하고 판단하는 건데 이성적으로 그렇게 아무리 자기가 맞았다 할지라도 실지로 행하지 안한 사람은 실험 연구를 안 하는 사람과 같아요. 논리 연구를 하고 실험 연구하지 안하는 사람과 같애. 논리 연구하고 실험 연구하지 안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다 헛된 소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실행하는 것이 실험하는 것이라. 실행을 해 보면 자기가 상상적으로 상상적으로 한 그것이 틀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의지 결심도 좋지마는 그것도 믿음의 의지라야 되지 하나님을 따라서 의지를 세운 것이라야 되고. 또, 상상도 제 주관적 상상은 다 죽이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계시해 주신 계시해 주신 그 계시대로 생각한 것이라야 되지. 그러니까 전부 믿음의 의지요, 믿음의 상상이라, 일음이 아니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을 똑똑히 알면 될 건데 그걸 모르고 이 세상일대로 하기 때문에 그만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건 이거는 참 세상에 종교가 여러 뭐 백이 아니라 아마 여러 천이라고 미신까지 종교 유사 단체들을 다 말하면 여러 천도 넘을 것인데 그렇게 되는 그것이 다 뭐이냐? 그것이 인간 자기 주관 생각대로 된 것입니다.
그런 걸 총 말해서 사상이라. 그 사상집이라고, 오십인 사상집이라 백 인 사상집이라 그 사람들의 사상이 있고, 그 사상보다 더 그 뿌리 깊은 것이 철학이고, 철학보다 더 뿌리 깊은 것이 이종교들입니다. 암만 그래도 그것은 다 사람을 어지럽히는 것뿐이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하는 사람이 하나는 인본이요 하나는 신본인데. 여기 목회자 될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이 설교할 때에 어떻게 해야 이 모든 사람들이 잘 알아듣고 그 이해를 하고 은혜를 받을까, 어떻게 해야 이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까, 은혜를 받아서 어떻게 해야 나를 인정해 줄까? 이래 가지고 설교하는 그 중심이 자기 사람, 다른 사람 요 둘이 중심이 되면은 고거는 인본주의라 하나님은 같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설교에 대해서 노하십니다.
제일 처음이 바로 되는 것이 뭐이냐? 설교할 때에 사람들이 이해 하나 안하나 하는 그런 것은 생각도 안 하고 다만 내가 하나님의 그 전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전하라고 하신 그 하나님의 뜻 이것을 전해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이거 증거를 할까 두려워서 그분이 증거하고자 하는 증거, 그분이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저 하시는 그것을 찾아서 거게 맞나 안 맞나, 설교하면서 그분의 뜻에 맞나 안 맞나, 그분이 지금 말씀을 하고 싶어 하는 그 말을 하느냐 하는 이것을 그분을, 위를 보면서 위에 그분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서. 그 다음으로 이거 바로 전달을 해서 이 전달을 사람들 이 이해를 하고 납득을 해야 될 터인데 하는 고것은 고 다음으로 가집니다. 그런 사람이 있고, 하나는 생각지 안하고 그 교인을 먼저 생각을 하고서 거게 어짜든지 알아듣도록 받도록 하기 위해서 그걸 중심으로 하고 하나님의 비위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는 그런 사람 되기 쉽습니다. 그걸 내가 아침마다 말하는데 그게 잘 야 들어가는 모양이라.
그게 자기라는 그 막을 걷어 버려야 되지 자기라는 수건을 벗지 안하면 그게 안 들어간다 그거요.
이 다음 공과인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 아버지에 대해서 일곱 가지를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아버지는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존재케 한 창조주 하나님, 지금도 대주재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요, 주권적으로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홀로 섭리하시는 주권 개별 섭리의 하나님이라. 이 하나님을 가리켜서 아버지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함축해서 이래 말을 한 이 단어기 때문에 이 단어를 자기가 새길려면 얼마나 힘이 들고 많이 새겨야 깨달을란지 모르는 이것인데 그냥 이것을 마구 넘겨 삼키면 다 설사해 버리고 마니까 헛일입니다.
여기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근원을 말합니다. 나의 근원, 나를 창조해 주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아버지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이 아버지는 일반적 아버지가 있고, 이 아버지가 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 된 것이 첫째 아담을 통해서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첫째 아담을 통해서 우리를 낳아줬습니다. 우리를 창조해 줬습니다. 또, 둘째 아담을 통해서 우리를 낳아 줬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담을 통해서 낳아 주신 것은 이것은 다 온전치 못하고 변동될 것들이기 때문에 선악과 먹어 가지고서 그것이 그만 변질돼서 하나님과 끊겨져 버리고 본 인생이라는 그 만물 위에 뛰어난 주인 위치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 지위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말합니다.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낳아 주신 것은 이는 영원히 변동치 않을 영생할 하나님이 완전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 완전한 아들 된 것이 둘째 아담을 통해서 우리를 낳아 줬습니다.
이래서 야고보서에 말씀하시기를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느니라 각양 좋은 은혜와 상급이 다 빛들의 아버지로 말미암아 나타나느니라' 말씀하시고,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아 주셨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창조의 첫 열매로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아 주셨다 이거는 둘째 아담이 낳은 걸 말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이 길이라 하는 것도 뭐 해석을 할라면 얼마든지 많은데 여러분들이 이걸 자꾸 한 번 배우면 알아야 되지 그거 하나 해석할라 하면 또, 설교가 안 됩니다. 세상에는, 요 길이요. 예수님이 왜 요 말씀을 했는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거는 저희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그 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을 존재케 한 그 창조주를 찾고 있고 대주재를 찾고 있고 모든 것을 주권한 그런 분이 있지 얻겠느냐 해 가지고서 그분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의 그 심령이 어두워지고 밝은 데 따라서 다르나 석가모니가 찾는 것도 그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분을 찾았어. 그분을 찾고, 또, 어떤 사람이 저 깨끗한 물가에 가 가지고서 손을 비비는 사람이 그 사람이 뭐 그 물이 복 주리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그거 비는 거는 아닙니다. 아주 또, 어두운 사람은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처음에 그걸 시작한 사람들은 그게 아니고 뭐인가 그 인간 이상의 뭣인가 그 실력을 가진 어떤 존재가 있겠는데 그 존재가 어데 계실까 이래 가지고 저 높은 하늘 저 별에 저게 계시지 않을까, 환하이 달이 밝으니까 나보다 높은 존재하신 그분이 저 달세계 저게 계시지 안할까, 해세계에 계시지 안할까, 이 물이 출출 흘러가니까 이 물이 깨끗하게 흘러가는데 물가에 여기 계시지 않을까? 그게 물을 그 섬기는 거 아니오. 또, 자기 마음에 이상적인 이 그저 삼 합수 사 합수 이거는 네 군데 물이 합해지고 세 군데 물이 합해지고 이 합수되는데 여게 뭐 계시지 않을까? 또, 돌이 커다란 바위돌이 이 서부 교회 예배당만한 큰 돌이 하나 섰으면 야, 조금 엄하고 좀 위엄스러운 마음이 나니까 여게 내가 나보다 능력 주신 근본이신 그분이 계시지 않을까? 그 돌을 보고 하는 거 아니오. 돌을 보고 하는 거 아닙니다. 돌인데 그게 위엄스러운, 또, 어떤 사람은 그러다가 무슨 숲이 보니까 있는데 뭐 어둠컴컴하게 그게 뭐인가 무서운 마음이 듭니다. 무서운 마음이 있는데 여게 귀신이 없을까, 이 귀신이 귀신이 그게 사람보다 능력이 많지 않을까 그래 가지고 그 장소를 찾는 게 물을 찾는 것 이고 돌을 찾는 것이고 산을 찾는 것이고 달을 찾는 것이고 별을 찾는 것이지 그것이 복주는 거 아니고 그게 인생보다 크신 분, 모든 만물을 존재케 한 그분이 있지 않을까, 그분을 찾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이를 찾는 것입니다.
아데미에 가 가지고서 그들이 보니까 바울이 가보니까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긴다, 그거는 뭐인가 그 신을 꼭 잡아서 이렇다 하지는 못하지마는서도 뭐 그런 분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찾는 것이 다 사람들이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철학자보다 더 눈이 밝아서 철학이라 하는 그거는 파고 들어가 봤자 끝을 봤기 때문에 이거는 아니다. 철학에 들어가다가 나와 가지고 도로 이 종교를 찾은 그 사람들이 다 이종교가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자니 노자니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하나의 철학가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의 상상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그 철학을 찾은 철학가요, 석가모니는 철학가보다 탁월한 그 사람은 종교가입니다.
종교가인데 그 종교가그것이 다 사람이 자기네들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이 모두 이종교들이요. 기독교는 그게 아니오. 기독교는 그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어 놓으시고 난 다음에 인생들에게 이렇다 하는 것을 하나님 이 가르쳐 주신 대로 그 가르쳐 주심을 받는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계시 종교라. 모든 이종교는 진화 종교라. 자꾸 세월이 감에 따라서 자기네들이 생각이 깊어지고 하니까 하나 둘 생각해서 하나씩 점점 연구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점점 진화돼서 점점 전진되고 또, 변화돼서 나간다고 해 가지고서 진화 종교라 그렇게 합니다. 기독교는 진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를 진화 종교로 알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 기독교는 정반대인 그런 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철학도 진화요, 과학도 진화요, 과학보다 탁월한 것이 철학이요. 철학 보다 탁월한 것이 이종교라. 암만 그래도 똘똘 뭉쳐도 그거는 한덩어리라. 그거는 땅에서 솟아 오른 것이요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라.
그러면. 기독교는 그런 거 아니오. 위에서부터 우리에게 열어 주시는 그 계시 종교기 때문에 그 인간이 내가 뭐 이래 생각하는 거, 아니라 위에서 이 말하는데 자꾸 들어 가는거라. 들어서 배워서 나에게 알려줘서 그러면 문서를 가지고서 우리에게 듣고, 초대에는 초대에는 무슨 환상으로 보였고 뭘로 보였고, 이래 하다가 나중에는 그것을 문서로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 게 주었고, 문서로 기록한 그 문서를 가지고서 자기가 문서와 같은 사람이 되어지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성신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성신의 감동의 영감과 같은 자가 되어지면 하나님을 직접 만나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직접 연결을 받아 가지고 나가는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요 전에 조직 신학을 공부할 때에 그 조직 신학을 공부하면서 기독교에 대해서 점진적 종교라 이라기 때문에 단어를 내가 급하게 내가 전화를 해 가지고 고쳐서 그 점진적 종교가 아니다. 점계적 종교라 해라. 점계적 도라 그렇게 해야지 점진이라 이래 말하면 그것은 나중에 파고 들어 가면 딴게 되고 만다 그렇게 말해서. 그랬더니마는 그 다른 학생들이 잘 못 알아듣지마는 목사님은 참 아주 좋은 단어를 말씀하셨다고, 그 점계적이라고 하자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일곱 가지로 아버지. 첫째가 뭐입니까? 나를 낳아 주신 아버지, 낳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도 좋지마는 하나님 아버지, 성경에는 하나님 아버지 이래 놨습니다. 하나님이신 곧 너의 아버지 이래 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없는 가운데서 존재케 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분을 찾아 가는 데에는, 그러기 때문에 인생이 자기를 존재케 하신 분을 이제까지 찾은 사람이 없습니다. 기독교 외에는 찾은 사람이 없습니다. 기독교가 찾은 거 아니라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지었다 이래 말씀하셨기 때문에 거게서 말하니까 듣고 알았지 그 뭐 우리 인생들이 안 거 아니라. 석가모니는 그거 알라고 애를 썼지마는 다 잘 모르고 헛일하고 말았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를 없는 가운데서 존재케 하신 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에는 예수님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만날 수 없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자기의 근원을 근원을 만나지 못한다.
아버지에게로 올 자 없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 없다. 예수님이 뭐인데?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찾아오는 길을 통하지 않고는 못 온다.
아버지를 찾아오는 이치에 딱 들어맞지 않고는 못 온다. 그 아버지와 한 덩어리가 딱, 결합되는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고는 안 된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진리다, 나는 길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나를 낳아 주신 아버지 또, 둘째로는 뭐이지요? 나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하시는 그분을 만나야 그. 사랑을 받을 터인데 그 사랑과 접할 수가 예수님이 아니고는 접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접할 수가 없어.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또, 셋째로 뭐입니까? 나를 잘 영원히 보호해 주시는 보호해 주는 보호 하는 것이 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보호 안 하면 그만 없어 버리면 깨져 버리면 기르지도 못한다 말이오. 그 안보의 하나님.
또, 고다음에? 나를 길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또, 다섯째는? 나에게 모든 것을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내게 필요한 것이 내가 필요한 것이 우리는 뭐인지는 몰라요. 우리는 뭐 밥이나 옷이나 뭐 이런 거 건강이나 이런 거만 있으면 될 줄 알지마는서도 내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것 중에 우리가 아는 것이 많습니까? 모르는 것이 많습니까? 모르는 것이 뭐 억억만 배도 더 되. 그런데 그분의 그 이 수많은 필요한 것을 공으로 주실 그분에게 만나는 데에는 예수님이 아니고는 만날 수가 없어. 뭐 이걸 다 알면 세상에 사람들이 이런 말 저러 말 하는 그런 말 다 지저분하게 다 사람을 죽이는 말이라 그 말이오. 저거가 인간이 생각하면 뭐 생각할 것이오? 그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또, 여섯째는 뭐입니까? 책임. 그래, 우리를 영원히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좀 순서가 바꿔졌다.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또, 그 다음에 우리를 영원히 평안과 그 쾌락을 주시는, 쾌락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요 일곱 가지. 나를 책임져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고것이 그라면 그 요번에 말하는 대로는 고것을 여섯째로 했지요? 그랬지? 여섯째로 했는데 고것이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는 그보다도 더 그 책임져 주시는 게 먼저입니다. 고 오 호가 책임져 주시는 것이고, 고 다음에 육 호가 은혜주시는 것이고, 고 다음에 칠 호가 우리를 쾌락케 하시는 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 일곱 가지를 얻는 데에는 일곱 가지를 만나서 가지는 데에는 이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 일곱 가지를 만나게 하는 길이라. 이 일곱 가지를 만나게 하는 길이라.
그러니까, 요것도 일곱 가지를 만나게 하는 길이라 요랄 때에 요렇게만 알면 요것이 일방적 지식이요, 아무 형적이 없고 종적뿐이기 때문에 넘어 지기 쉽다 말이오. 아무리 이게 앞으로 키만 크고 몸집이 없으면 부러져요. 옛날 그런 말이 있어 도토라지, 도토라지 작지를 잡으면, 도토라지 작지를 집고 다니면 안 늙고 안 죽는다 하는데 도토라지 작지를 잡으려고, 도 토라지 지금 키울라 하면은 뭐 크기도 전에 똥똥하이 고만 요만해 버리고 그만 안 커. 이런데 삼 속에 있는 도토라지는 보면은 이거 삼과 같이 키가 크기 때문에 키가 더 커 이제 그 놈은 몸 풀 만큼은 되는데 이래 놓고서 그걸 작대기를 받쳐 놓고 키우면. 안 받치면 그만 바람만 불면 꺾어져 넘어가 버려. 키만 크고 몸통이 가늘기 때문에.
그와 같이 우리가 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찾아가는 길이다. 예수님은 길이다.
이것만 알면 돼. 길이다 하면은 그걸 그전에 많이 말했는데 이번에도 이 말씀 같애. 길이 이 세상에는 천도 만도 넘습니다. 사람은 이 길 가야 된다, 저 길 가야 된다, 어떻게 그 모두 이종교가 그 다 길 말하는 것이라. 그 모든 사상들이 다 길 말하는 거라. 공산주의의 사상. 민주주의 사상 이거는 사상이지 이거는 철학 축에 못 가는 것입니다. 이 사상들이 많으니까 그것은 다 길들이라, 또, 종교들도 길들이라, 미신들도 길들이라. 이 길인데, 이 길이 수많은 길이 많이 있기 때문에 천인 만인이 다 이 길 가고저 길 가고 다 가는데 그 한 길만 되는 고 길은 예수님이시라 그 말이오.
요걸 알고 나면 요걸 알아서 이 도를 다 통해서 다 알고 나면은 그 외에 딴 길이 없다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많은 길을 알고 난 사람은 예수 믿는 요 길이 참 보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오다 가다가 예수를 믿도록 해 가지고서 전도 받아 가지 고 예수 믿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진주를 찾다가 보화를 찾다가 이거 그 진주를 찾다 만난 사람 있고, 오다 가다가 보니까 보화를 만난 사람 있고 그 믿는 사람이 두 종류라. 이런데 어째 알았든지 알았으면 있는 거 다 팔아 가지고서 그 진주를 사고 보화가 있는 밭을 샀다. 그 마태복음 13장 44절 이하에 말씀을 그래 해 놨다 말이오.
이런데, 이렇게 수많은 길이 있는 것을, 좀 거석한 사람들은 그래. 저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렇게 뭐 오다 가다 만난 거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길을 찾다가 만났습니다. 제가 예수 믿지 안하고 그 술도가 할 때에 그저 이상한 사람만 지나가면 내가 붙듭니다. 붙들어 가지고서 와서 좀 쉬어 가지고 가시라 하고 술을 대접하면서 그 사람이 뭐인가 해 가지고 뭐 도를 얼마를 많이 드는지, 여기 보천교니 뭐 시천교니 뭐 태극도니 뭐 하는 거, 불교니 하는 그런 거. 유교 그런 거. 모두 다 랄이 들었습니다. 들어도 잠시 들으면 그만 끝이 막혀 버려.
들어보면 끝이 없는 거 그 사람들이 중간에 속고 있지 그 말을 들어 보면 그거는 구멍이 막혔기 때문에 들어갈 곳이 없어. 이래 가지고 중이라고 만나면, 제일 보니까 중이 제일 낫아. 그 중을 만나 가지고서 이걸 뭐 한 번 만나서 또, 재이고 또, 듣고, 또, 그 다음에 또, 따 종 오면 재이서 듣고 이래도 나중에 가 보니까 그게 전부 허무한 것이 고 속 에 '구멍이 들어갈 구멍이 없어. 이래 들어가 보니까 말이죠.
이래서, 다 그러다가 그래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예수님 믿고 난 다음에 고 다음에 예수 믿은지 일 주일이 안 됐는데 안식 교인이 왔어. 안식 교인이 와 가지고서 안식교가 제일이라 하기 때문에 고 안식교한테 그때 책을 내가 사기를 상당히 많이 샀습니다. 그때는 양식이 비싸서 그 나락 한 섬이면 언간한 소 한 마리 샀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쌀값하고 소값하고 달라요. 요새는 소는 뭐 얼마나 가는지. 아마 한 백여만 원 갈 것이고 쌀은 헐하지 않소? 그런데 그 소 한 마리 값을 샀어. 그 사람 만나 가지고 책을 말이오. 샀는데. 사 가지고서 그러다가 그때 나는 예수를 믿지를 처음에 한 주일 갔다 와 가지고서 한 이틀인가 사흘인가 지나고 난 다음입니다. 그때 앉아서 성경을 자꾸 이래 보고 앉았으니까 그 사람이 전도하러 들어왔어. 들어와 가지고서 성경을 봐 쌓으니까 이 술도가 하는 사람이 성경 보고 앉아 있어서 '그 책이 무슨 책입니까?' '이게 예수님께서 보는 성경책이라' 이라니까 그래 그만 딱 들어붙으면서 그 사람이 말해 주는데 아 그럴 듯 해. 그래 가지고 책을 샀습니다. 그 책을 샀는데 그 안식교의 책 그 책을 샀는데 그 책을 못 쓸 거도 있고. 또, 성경 사전이라는 책은 그때 하나 샀는데 그 책은 좋은 책을 샀어요. 지금도 효력이 있습니다.
그래, 이렇게 이 도가 여럿이 심히 이도 저도 찾다가서 도를 찾은 사람이 있고, 또, 그렇지 안하고 예수교를 만나고 난 다음에도 다른 도를 좀 봐야 됩니다.
다른 도. 그 불교라 하는 그런 걸 자꾸 이래 좀 봐야 돼요. 불교나 뭐이나 그런 것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거 알아야 되지 이것도 진리고 저것도 진리고 종교 통일로, 뭐 기독교는 뭐 천주교나 또, 이 감리교나 이런 교파나 저런 교파가 다 하나이니까 예수교는 전부 한 덩어리다 하는 그 사람은 아직까지 길의 갈래길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를 망칠 새끼 양들이오. 또,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울 그 모든 종교 단체입니다. 앞으로 기독교는 모든 종교와 다 통일됩니다.
기독교와 이 땅에 있는 종교는 다 한 덩어리가 될 것이고 참된 기독교만이 대적이 될 것입니다. 성경대로 한 것만이 대적돼.
지금도 성경 말씀을 이 성경대로 이렇게 할라 하면은 싫어 그래. 이래서 요새는 성경이 얘기 성경이라고 있는 그 얘기 성경이 제일 많이 팔립니다. 일본 나라에도 그 번역한 걸 보니까 고만 내가 요전에 그 성경이 좀 떨어 져서 일본 말로 난 거 분 고분 고고분을 이렇게 두 권을 사 가지고 오라 했는데, 그 모든 성경들이 모두 요새 이 개화가 돼 가지고서 모두 얘기 성경같이 그렇게 모두 자꾸 돼 나가요. 이러니까 이 참된 기독교가 자꾸 없어집니다. 믿는 교인들 수는 많아지지마는서도.
이러니까, '길' 하면 길이 수많은 길 가운데에 하나만 되는 이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그 길이 예수님이시니까 얼마나 보배입니까? 또, 이치도 수억 억만의 이치도 넘어. 복된 이치가 요리 가야 복이 있다, 조리 가야 복이 있다 종교마다 다 인간의 행복의 길을 찾는 이치입니다. 그런 수많은 이치 가운데에 내가 진리라 그 말은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바른 이치는 예수님이라 그 말입니다.
또, 그 말씀은 이 하나님 아버지라 하나님이라 그게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나님 붙인 것은 하나님의 본체를 말한 것이고 하나님의 본체를 말한 것이고. 예수님 말한 것은 하나님 본체에서 대속의 책임을 지고 나신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성령님은 하나님이시지마는 대속을 우리에게 완성시키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체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길은 예수님 만이가 참된 이치요, 또, 참된 이치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참된 이치는 하나님의 뜻이 참된 이치기 때문에 그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본체에서 이것이 피조물로 구원 얻는 길이다 하고서 창조주가 피조물의 구원되는 고 길을 정해 놓은 길 고것이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이시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6장 27절에는 내가 너희들에게 영생하는 양식을 주겠는데 나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바니라 그래. 인침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요 길만이 사는 길이라. 그러기 때문에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 얻는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으로만 구원 얻습니다.
내가 진리라. 또, 내가 생명이라. 생명이라 말은 이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이라 그 말이오. 연결. 생명이라는 것은 연결이라는 말입니다. 생명은 연결되면 살고 떨어지면 죽어.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 그것이 생명이라는 그 말도 자꾸 들으니까 쉽지마는서도 그 생명이라.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라 하는 그 생명을 내가 고려 신학교 다닐 때도 그때까지 그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그 말을 몰랐어요. 못 들어요.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다.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다.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진 것이 그것이 사망이다 하는 그것을 OO 교파에 뭐 그 외국에 유학 하고 온 그런 강사들도 그런 교수들도 다 거게 대해서 몰랐어요. 그걸 아는 사람은 그때 OO교파에서는 OOO목사님이 그것을 알았습니다.
알고 나중에 와서 고것을 발표가 똑똑하지는 못해도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요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이 그것이 사망이라 하는 그것을 OOO 목사님 한 분이 그것을 찾았고 말을 했지만 그 말이 그렇츰 권위 있지를 안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부인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니까, 예수님은 이 일곱 가지로 되어 있는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아버지 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일곱 가지를 해 주시는 하나님의 본체시라.
일곱 가지 해 주는 하나님의 본체신데 본체이신 하나님이 우리 에게 일곱 가지를 해 주시는 그 일곱 가지를 해 주실 하나님을 찾는 그 길은 예수님이라 그 말이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예수님이요,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고 길이 예수님이요,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고 참된 이치가 하나님이요,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고 이치로 이 하나님 자체가 정해 놓은 그것이 예수님이시라 그 말이오.
'내가 생명이라' 하나님 아버지와 인생이 연결되는 고 연결되는 고 연결이 예수님이시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가리켜서 증보자라 그렇게 말랍니다.
중보자라.
예수님을 믿는, 어제 재독을 들어 보니까 '믿는 믿음 위에서 하라 그렇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는데 그 사람이 장사하지 안하고 예수님 믿습니다. 예수님 믿는 일을 그 사람은 장사에서 예수 믿는 일 하고, 공부에서 예수 믿는 일 하고, 또, 노동일 하는 사람은 노동에서 예수 믿는 일 하고 그 전부 예수 믿는 일이 아니면 다 죄라 그 말이오. 믿음으로 행치 안하는 거는 죄라 그 말은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한 거는 다죄 라 그 말입니다.
순종하지 안하는 거는 죄라 그 말입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거는 다 죄라 그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 믿는 것을 가리켜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 했는데, 예수님 믿는 것이 그게 옳은 길 가는 것이요, 예수님 믿는 것이 옳은 이치를 이치대로 사는 것이요. 예수님 믿는 것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라. 예수님 믿는 것이 이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요 찾아가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찾는, 찾아가고 있는 이치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만나 가지고서 결합되는 한 덩어리가 되는 이 결합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믿는 것을 몇 가지로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봐요.
예수님 믿는 거 저 뒤에도, 저게는 둘로 말했나? 이라는 (둘) 사람도 있고 이라는 (셋) 사람도 있고 이라는 (다섯) 사람도 있고 어느 게 맞은지. 자, 이게 맞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이 셋으로 하면 맞는 사람 손들어 봐. OO 집사님 와 이래 들었다가 와 손 내려? 다른 사람 보니 모두 안 들은 것 보니까 안 됐다 싶어서 그래. 그라면 소용없어. 이래 믿는 사람 다 이거 헛일이오. 안 돼. 이래 믿는 게 바르다 말이오. 이래 가르쳤다 탈이요. 이래 다섯 가지로 가르쳤어.
다섯 가지. 믿는 것이 다섯 가지를 행하는 것이라. 다섯 가지, 뭐? 문서 계시대로 행하는 거. 문서 계시대로 행하면 그 사람이 문서 계시대로 천분의 일을 행하면 천분지 일의 영감에 도달해. 문서 계시를 통해서, 문서 계시는 영감 계시의 길잡이라. 문서 계시 영감 계시대로 행하면 그 다음에 예수님의 피를 만나게 돼. 예수님의 피는 세 가지. 사죄와 칭의와 화친 이 세 가지.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우리 에게 성령이 왔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인해서 우리에게 이 문서 계시인 이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러면 성령님과 진리가 뭐하러 왔는가? 예수님을 우리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연결시키기 위해서 증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의 성령과 물과 피 이 세 가지를 말했는데 이 세 가지는 하나인데, 그러면 피를 증거하기 위해서 성령과 진리가 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문서 계시의 진리의 말씀과 또, 영감과 주님의 피의 이 세 가지, 사죄 칭의. 화친 이 다섯 가지로 살라고 하는 고것이 다섯 가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고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 아버지 일곱 가지의 내게 필요한 것을 나에게 필요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 있는 요 일곱 가지 필요 한 것을 내가 찾는 것은 요 일곱 가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것이 찾는 것이요, 요 일곱 가지로 살라고 애를 써서 일곱 가지로 사는 것이 만난 것이요 하바님과 결합된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마암지 않으면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느니라' 이러니까, 요걸 낱낱이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아버지라 하는 거는 이 아버지란 무엇인고? 아버지라는 그 뜻은 성경에 일곱 가지차 그 근원을 말씀하신 것이니까 일곱 가지 근원, 나를 없는 가운데에서 존재케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 또, 나를 존재케 해 준 나를 사랑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영원히 사랑하시는, 이 사랑도 그렇기 때문에 하나 밖에 없어. 이 사랑.
인간사랑 그러면 죽으면 끝나 버리는데 그뭐 사랑이 됩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또, 나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나를 길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또, 고 다음에 또, 뭐이요? 다섯째?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 다음에 여섯째는? 나에게 영영히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일곱째는 뭐입니까? 이래 가지고 우리를 영원한 쾌락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러면, 이분에게 가는 길은 예수님뿐이라. 이분을 찾는 바른 이치는 예수님뿐이라. 이분과 딱 연결을 시켜 줄 그분은 예수님뿐이라. 생명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생명이라 말은 무슨 말이오? 다른 말로 말해? 연결, 요걸 알아야 돼, 요걸 알아야 돼 모르면 안 돼. 생명이라 말은 연결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가도 이런 말이 있지 안해.
그 엊저녁에 들은 그런 설교 들으면 벙벙하이 어지러워지기 쉬워요. 그런데 고걸 그 시간이 있으면 요리조리 말해서 따져 들어가면 '아니라 이게 순 마귀말 했구나' 이렇게 돼져야 이제 아는데. 그걸 그 개인 데리고 가르칠 수 없고 설교 말씀을 자꾸 들으면 그거 알고 요걸 알아야 되지 그거 모르면 안 된다 그거요.
여러분들이 여기는 이렇지마는서도 딴 데 나가서 얄궂은 설교 들을 것 같으면 철학이니 뭐이니 그만 전부 뭐이 이종교니 뭐 주 두루 섞어서 말해 놓으면 뭐인지 모른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이렇다 하지만 나중에 가 놓으면 오만 시험이 다 달라 들터인데 그 시험을 이겨야 될 터 인데 시험을 모두 이기지 않으면 지식은 지식의 시험보다 세상 지식을 다 이겨야 이 지식이 서는 것이지 못 이기면 서지 안해요.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를 똑똑히 아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와 가지고서 저 그때 저 군인으로 온 사람이 그 철학을 말하는데 그때 그 사람이 아주 철학으로는 유명한 사람인데 와서 철학을 말해. 그 철학 말하는데, 이 기독교를 아는 사람은 철학 그걸 늘을 필요가 없어. 그 허무한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 말 한 마디면 다 정죄 다 돼 버려. 한 마디면 정죄가 다 돼 버려요. 그 정죄가 되면 마귀란 놈은 요리 삐틀러트리고 조리 삐틀트리지마는 서도 고 정죄의 속에 파묻쳐 죽고 말지 그까지 살아나가지를 못한다 말이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불교 가운데는 참신 대가리가 누구냐 하면 참신 대가리가 여게 그 O중이라고 O스님이라고 O스님이라고 여게 그 OO (O씨의 외삼촌이시지? 그 사람이 저 참신 스님이라. O참신 스님인데 그분이 누군고 하니 평양 갑부의 맏아들이라. 평양 갑부의 맏아들인데 그때 그 평양 갑부는 자기 땅을 삼십 리까지는 자기 땅만 밟아서 갈 수가 있다 하는 그 사람이라. 그러니까 평양 시내는 다 그 사람이 거의 다 점령 다 했어요. 이랬는데 그분의 맏아들이.
OOO 집사가 그분의 딸인데 딸들 내가 그때 말 들어 보니까 다 예수 믿기는 믿어요. 믿는데, 말 들어 보니까 딸마다 피아노가. 그때는 피아노 없을 때라.
딸마다 피아노가 모두 열 대 이상 돼. 딸마다고 피아노 뭐 요런 종류의 피아노.
피아노 열 대 이상 가지고 있는 그런 아주 부자라. 이런데 그 부자들이 그만 그거 다 치워 버리고 젊을 때 인생이 다 허무하다 하는 걸 버려서 다 치워 버리고 아내도 버리고 고만 자녀 낳아 놓으면 이거 문제라 해 가지고서 자녀는 안 낳고 다 그라고 살림 다 거석해 가지고서 그 불교에 넣어 버리고 그만 그래 가지고 중이 됐어. 중이 된 그 사람은 참신 중이라. 참신 중이라 말은 명상 중이라 말은 눈 감고 그 불교가 뭐인가 깊이 깊이 생각해서 연구하는 그 참신 중인뎨, 그 사람은 인제 어데든지 그만 불교에만 가면 그 사람 모셔 놓고 이래 가지고 섬기고 이래 참신만 하도록 이래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나중에 서부 교회 묘지에 묻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내가 몇 번 만났어. 만나 가지고 만나 가지고 말하는데 말하는 데 그걸 요 너머 있으니까 '요거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 그러다 보니까 말하다가 보니까 딱 막혀 버리고 막혀 버리고 자기 불교라 하는 게 허무 하고 이거 하나의 추상이고 추론인데 아무런 끝이 없고 속에 참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 이러니까 그래도 고 사람이 또, 와서 또, 만나고 한 서너 번 만났어. 서너 번 만나 가지고 서너 번 만나서 하나님의 도에서 깨달아. 깨지니까 그분이 이제 나중에는 이래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에 죽을 때 와 가지고서 여기 와서 자기 생질이지, 자기 생질 집에 와 가지고 말하기를 그래서 거게 있으면 여기 교회 나오고 이라면서 '내가 죽어도 절로 기별하지 연락하지 말아라.' 연락하면 중들이 와 가지고 굉장하고 막 저거 스님이라고 굉장할 거라 말이지.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연락을 못 했습니다. '연락 하지 말아라. 그라고 날 이 서부 교회 교회 묘지에게 묻어 달라.' 그는 회개하고서 믿었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것은 그런 무슨 전국에 제일 높은 스님을 만나도 얘기를 하며 그게 아니라는 걸 그걸 환하이 아니까 그 너머 있다 하는 것을 말해 진서 그게 설복을 안 당해야 되지 지식은 지식과 싸우는 것인데 세계에 자기 지식을 이길 수 있는 지식 있으면 자기는 큰소리 못 해요. 그런데 언제 그 지식에게 패전되면은 그 사람이 뭣 될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이런데 이 걸 이 진리를 배워도 예사롭게 배우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내가 어제 어데 가 말하고 어제 내가 누구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을 말을 하니까 자기 뮈 뭣이 목사고 뭐 오빠들은 목사고 다 이런데, 그래 이 그 사람은 특별히 다른 진영에 그 진영에 안 가고 여게 와서 예수를 믿어요.
그래 예수를 믿는데 '나는 여게 믿는데 그 어떠냐?'이래 말하니까 그게 말하기를, 그 목사가 있다가 말하기를, '잘 갔다. 우리 한국에 이거다.' 이라면 이라더래요. 그란다고 좋아서 그러며 나한테 와 가지고 그 말을 해. 며칠 전에 뭐 와 가지고 그래. 또, 그라고, 자기 가족이 믿지 안 하는데 아주 간고한 사람이 믿지 않는데 예수 믿게 됐다고 그거는 또, 딴 사람이라. 믿게 됐는데 그 뭐 우리 목사가 뭣이 어떻고 우리 교회가 어떻고 이래 쌓으며 은혜를 받아서 잘 믿더래요. 믿는데 그래 우리 목사보다도 큰 목사가 있는데 부산에 백 목사라.
내나 가보니까 내나 무슨 교회 나가느냐 하니까 잠실동 교회 나간다 하더래요.
양사방 돌아다니다가, 이제 돌아다녀 찾아다니다가 그 잠실동 교회가 가지고 거기서 안정하고 이제 예수 믿는다고 이라더래요.
요 도를 알면 요 도의 길을 알면은 거석한데, 길을 모르면 나중에 어느 미혹에 들는지 나중에 모릅니다. 요 일곱 가지라 하는 요것을 요래 배웠지 마는 일곱 가지를 연구하면 그 속에 세계가 다 들었다 말이오. 또, 다섯 가지도 연구하면 그만 그 외에는 사는 길이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난번에 회개의 스무 가지 하는 그런 것도 자꾸 배워서 그게 간추린 거 같지마는서도 세제가 그 안에 다포함 다 돼 버렸어. 그러니까 하나님의 도를 잘 듣고 자꾸 깨달으려고 애를 쓰지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니라. 그렇게 그 뭐 간단하게 해서 알아지는 거 아닙니다.
이러니까, 새벽 기도를 빼지 말고 나와야 듣지. 알아야 예수를 믿지, 모르면 예수를 믿지 못해. 모르는 사람에게는 큰소리를 못해. 예수를 믿어서 바로 깨달은 사람에게는 주먹으로 때려 줘서 매차리로 깔려 줘서 깔리고 이래 하지마는서도 이거 깨닫지 못한 자에게는 조그매라도 가다 눈만 이래 조금 이래 눈만 떠도 눈 흘긴다고 삐꾸고 돌아날까 싶어, 삐꾸고 돌아날까 싶어 그저 뭐 예 예 예 예 이라고 있지마는서도 그런 거나 높여서 두려워 그런 거 아니라 말이오.
하나님 외에 두려운 게 어디 있습니까? 왜정 말년에 사람 죽인다고 막 이래 쌓고 이래 하는 데도 '너거 천조 대신 국기 가져 오라. 내가 너거 앞에 불 다 사룰께,' 뭐 그 겁도 안 나는데 뭐 그 뭐 그런 사람을 겁을 내 가지고 아, 예예 예예 합니까? 그 사람 죽일까 싶어서, 나 때문에 걸려서 그 사람이 죽어질까 싶어서 그렇다 그 말이오. 진리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지 진리를 모르면 헛일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