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단순

 

1986. 4. 3. 목새

 

본문:창세기 13장 1절∼14절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 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음이러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너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 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 아브람과 롯은 우리의 두 믿음의 조상을 계시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한 역사를, 역사라 말은 사기라 말입니다. 국사니 뭐 교회사니 하는 그 사기를 말합니다. 한 역사를 기록한 것만이 아니고 그 역사로써 우리 예수 믿는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계시입니다. 계시인데 그런 것을 가리켜서 특별 계시 중에 있는 형식 계시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형식 계시기 때문에 형식으로 나타내 주신 도리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도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걸어가는 이치인데, 어떻게 우리가 살아가야 되느냐, 어떻게 우리가 마음을 움직여 가야 되느냐, 우리 몸을 움직여 가야 되느냐, 사건을 처리해 가야 되느냐, 경영을 해 가야 되느냐, 또 소망을 가져 가야 되느냐 하는 그런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길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도리라.

길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어떤 것이라도 우리가 볼 때에는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되나, 어떻게 내가 살아가야 되나, 내가 지금 어떻게 하루 하루 살아가야 그 향방이 바로 되고 삐뚤어지지 않겠나, 그것을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모든 길을 가르치고 있는 이 도리로 가지고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난밤에 복잡한 말 하다가서 중단을 했습니다. 이번에 양성원 학생들이 다음 주간이 성경 공부하는 주간인데 그 성경 공부하는 주간에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연구할 과제를 내 줄 그 과제가 여게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보는 그 눈이 좁은 사람도 있고 넓은 사람도 있고, 그것을 가리켜서 요새 말로는 시야가 좁다 넓다 그렇게들 말합디다. 보는 면이 좁고 넓다.

여게 서울 수도원에서 온 분들 여기 있습니까?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시이소.

그라면 갔구먼. 저 삼층에 있는가? 엊저녁에 조금 다른 소리로 가지고서 기도하는 분이 있던데 그분들이 그분 아닌가 내가 했는데. 그분들이 아닌가? 수도원에서 두 분이 와 가지고 여기 와서 한 일주일 동안 와서 있겠다고서 이랬었는데 제가 여게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고 이래서 갔는지 와서 들을 것이 없어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가르치는 것이라 이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 하나 예를 든다면 삼십 팔 년된 병자를 낫았다,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나았다 하는 그 한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오랫동안 병신된 자를 낫아 주셨다. 참 능력 있는 분이다. 그렇게만 깨닫는 분도 있겠고 또 나도 이렇게 몸에 병 있는 것을 나아야 되겠다 그렇게만 또 깨닫는 분도 있겠습니다.

육신의 병 낫는 것을 소망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 마음의 병 있는 것을 소망하는 사람도 있겠고, 자기에게 있는 인격의, 사상의, 주의의, 모든 지식의, 각종의 병 있는 것을 깨닫고 치료 받을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고, 또 자기의 모든 신관이라든지, 신관은 하나님을 보는 걸 말합니다. 신관이라든지 구원관이라든지 또 이 세상이라는 재세관이라든지 그런 것을 조직 신학에서는 어떤 사람은 관이라고도 하고 또 론이라고도 합니다. 인생론 뭐 구원론 그런, 거기 대해서 논리한다 말입니다. 여러 가지 면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일면을 보는 사람도 있고 여러 면을 보는 사람도 있고 얕이 보는 사람도 있고 깊이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보는 면이 좁다 넓다, 보는 면이 얕다 깊다, 또 보는 면이 짧다 길다. 그거 다 다른 말입니다.

짧은 것은 일시만 보는 것이 짧은 것이겠고 거기 대해서 영원을 보는 것은 그거는 또 긴 것이 되겠습니다. 또 얕은 것은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얕은 것이고 거기서 시작해서 마음으로 보는 것, 또 그보다 더 깊은 것은 그의 양심으로 보는 것, 양심으로 보는 것보다도 더 깊은 것은 또 하나님의 계약으로 보는 것, 그보다도 더 깊은 것은 영감으로 보는 것. 이래서 보는 면이 각각 다르겠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차차 변화돼 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미 믿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이라면 하나님의 도에 근본 시발인 족속 아닙니까? 시발한 족속인데,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면, 이미 믿은 유대인이면 믿는다고 하면은 진리를 알고 진리대로 순종하는 게 믿는 것 아닌가? 진리대로 순종하는데 또 순종한 그것이 한 껍데기 더 들어가면 예수님의 제자되는 그 껍데기가 있고 예수님의 제자되는 데에서 또 한 껍데기 더 들어가면은 이제 진리를 아는 껍데기가 있고 또 진리에서 더 들어가면 자유하는 그 알맹이가 있다. 그렇게 첩첩이 있는 것을 성경에 많이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구들은 사람들이 다 필요 없는 성구로 생각을 하고 이거는 그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니까 이것은 뭐 종이가 있고 먹이 있으니까 그래 써 놓은 것이지 이거는 뭐 그렇게 없어도 되고 그렇게 필요치 않다. 또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 하는 그런 것도 이거 너무 지나쳐서 말쟁이 말 같지 이거 무슨 실효성이 없고 실상성이 없다. 그래서 다 그런 성구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이 좋아서 외우기만 외우지, 외우기는 다 그런 성구들을 잘 외우고 있지마는서도 실지로 그 말씀을 자기가 실효가 있도록 그 실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사데 교회야 너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네 행위에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면 사람이 사는 데는, 행위구원을 얻는 데는 온전에 도달하고야 거게서부터 행위구원이 좀 이루어지는 것이지 온전치 못한 것은 안 된다.

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여져라.

그것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나? 그것도 하나의 그저, 사람들이 하도 교만하니까 이 교만을 꺾기 위해서 ‘네가 이렇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온전해졌느냐 거룩해졌느냐? 그러니까 너는 아직까지 미달자가 아니냐? 이러기 때문에 미달자인 줄 알고 겸손해라.’ 사람을 겸손케 하기 위해서 그 으뜸을 꺾어서 누르기 위해서 그거 있는 것이지 그거 실지로 우리에게 해당된 그런 복음은 아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을 가져서, 또, ‘한 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이런 것도 보는 층어리가 여러 층어리가 있습니다. 거게는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두 사람이 있었다. 있으니까 안 믿는 사람은 다 버림을 당하고 믿는 사람은 데려감을 당한다. 그랬는데 또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안 믿는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에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한다.

또 이래 깨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너는 또 그렇게 말하느냐? 그것은 신구약 성경은 구속받은 성도들에게만 주신 말씀이지 불신자에게 주신 말씀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범위를 신자들 범위 내에서 버려둠을 당하는 거와 데려감을 당하는 그 종류를 찾아야 되지 안 믿는 사람들에서 그렇게 넘어나가는 것은 하나님이 가르치신 그 범위 밖에 가 가지고서 제맘대로 지금 정한 것이기 때문에 헛되이 위로를 받기 쉽다.

또, 열 처녀 비유에서 다섯 처녀는 멸망받았고 다섯 처녀는 구원 얻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또 성경에 말하기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다 구원을 얻으리라 이랬으니까 예수 믿는 자는 다 구원 얻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요 예수 믿지 않는 자는 슬기 없는 다섯 처녀다 또 이렇게 합니다.

그러면, 좀 더 따져 들어갈라면 그러면 다 같은 처녀요 다 같이 신랑을 소망했고 또 등은 가졌고 모든 거 다 가졌고 또 그 불을 켜되 밤중에 불이 꺼져 버렸지 그 초저녁에는 불이 까무락까무락 있기 때문에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한 것은 쓰여 있었더라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니요? 그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 그거는 뭐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래 가지고, 성경에 난해절이 많습니다. 아주 성경에 난해절이 많은데 난해절 그것이 난해절이 아니고 다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해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난해절은 한 절도 없습니다. 우리가 깨달을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 그 성경을 기록한 것도 다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기록했어.

사람이 기록했다 하면은 눈이 둥그럴 것인데. 녜.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렇게 말했는데도, 사람이 붓으로 기록했지 하나님이 붓 들고 기록하지 안했습니다. 전부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이런데 성경은 사람들이 기록했기 때문에 또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이 기록했는데 그 기록이 정확 무오하게 기록됐습니다. 정확 무오. 바르고 확실하고, 무오라 잘못됨이 없다. 그릇 오자 뭐 그릇됨이 없고 잘못됨이 없다. 정확 무오하게 사람이 기록했기 때문에 또 깨닫는 것도 정확 무오하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해절이라 하는 이것은 왜 사람들이 난해절이 됐느냐? 난해절이 된 그것은 아직까지 도달할 데에 도달하지를 못하고, 이 등산하는 사람이 천 메타에 올라가면 환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을 구백 메타밖에는 안 올라가 가지고서 자꾸 이러니까 ‘이거는 없는 것을 공연히 한 말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무슨 기이한 소리를 해 가지고 제 인기를 끌라 하고 하는 말이지 이거는 실상 없는 일이다.’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은 네가 천 메타를 올라가야 볼 걸 천 메타를 올라가지 안했기 때문에 보지 못하니까 천 메타를 올라가도록 네가 애일랑은 쓰지 안하고 자꾸 이런 것은 없는 것을 공연히 말했다고 ‘어데 있느냐? 보라. 보라. 어데 있느냐? 보라. 보라.’ 암만 봐야 없습니다. 그거는 ‘네가 지금 아직까지 올라간 높이가 천 메타가 안 됐기 때문에 그런데 천 메타만 올라가면 보여진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 양성원 학생들에게 연구할 제목을 낼 것은 그것입니다.

네가 성경을 읽으면서 외식에 관한 것을 말씀한 것을 기록하라. 고것을 제목을 내 주고 일주간 동안에 신구약 성경을 열심히 기도하고 열람하면서, 열람해 가지고 외식이 여게는 무슨 외식이 있다 여게는 무슨 외식이 있다 해서 그 장절을 기록하고 종목을 기록하도록 그래 할 것입니다. 과거에도 성경공부할 때에 다 그렇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이제까지 모르고 평생 눈을 뜨지 못할 그면은 자기가 비로소 눈이 열려져서 그 눈에 눈이 떨어질 것입니다. 인제 그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저 뭐 이제까지에 모두 다 공통되어 있는 그런 주석을 자꾸 알아서 외어 봤자 항상 그것은 묵은 둥치, 칼빈 선생이 말해 놓은 것은 벌써 묵은 둥치입니다. 묵은 둥치에 잎이 핍니까? 묵은 둥치에 잎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묵은 둥치에 잎이 있소 없소? 묵은 둥치에 꽃이 핍니까? 예? 묵은 둥치에 꽃이 피요? 묵은 둥치에 열매가 엽니까? 잎도 꽃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그러면 묵은 둥치는 필요가 없구먼. 녜, 묵은 둥치는 묵은 둥치로 필요합니다. 그러면 묵은 둥치에 새 움이 나면, 새 움이 나면 거기에서 잎도 펴고 꽃도 펴고 열매도 맺는 것입니다.

묵은 둥치는 묵은 둥치로 필요하고 중요하니 거기에서 새 움이 나 가지고서 새 잎이 펴야 됩니다.

옛날 칼빈 선생이 세상을 다룬, 세상을 다룬 시대와, 세상을 다룬 시대와 오늘 이십세기에 벌써 세상을 다루는 것이 아주 천지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는 뭐 원자니 전자니 하는 것은 생각도 못 했었는데 요새는 국민학교 일학년 안 되도 원자를 알고 전자를 알고 거게 대해서 일반 상식을 알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때는 하루 동안에 온 세계를 불로 태운다 하는 말을 다 말쟁이다 거짓말이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을, ‘거짓말 제일 많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 무슨 책이냐? 신구약 성경이 거짓말이 제일 많이 기록되어 있다’ 하는 것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관찰했습니다.

왜? 그것만 해도 하루 동안에 태운다 했는데 하루 동안에 암만 막 천하 사람이 한마음 한뜻이 돼 가지고 막 불로 사룬다 해도 못 태울 터인데 이거 태울 수가 있느냐? 이랬지마는서도 원자의 힘이 발명되고 난 다음에는 이거는 하루까지 가지 않는다, 가지 않고 이거는 뭐, 태울라면 몇 시간이면 다 태워 버린다 하는 것이 지금 왔으니까, 이 성경 말씀이 뭐 한 모든 말해 놓은 것은 다 이거 미래사를 말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걸 말해서 초인간적인 지식이다. 그런데 실상으로 보니까 그대로 이루어지니 이거는 도저히 사람의 말이 아니다, 이거는 초인간적인 절대자의 그분의 지식이다 하는 것을 은연중 더듬어 알아 가지고 이제 평가가 높아지게 됐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모두, 이런 성구들이 다 무용의 성구가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거 또 시편 저자들이 말하기를 ‘날 살펴 보십시오. 내게 흠이 있습니까? 내가 뭐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뭐, 밝은 눈으로 보고 똑똑히 심사를 해 보십시오. 내게 무슨 그릇됨이 있습니까? 흠이 있습니까?’ 이렇게 해 놨다 말이오.

해 놨는데, 이러니까 이런 성구들도 모두 주석가들이 주석을 하면서 그게 너무 많이 있으니까 뭐라고 해야 되느냐? ‘이것은 사람 쳐 놓고, 타락한 사람 쳐 놓고는 자기가 흠이 없는 그런 사람 된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범죄하지도 안하고 죄가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 이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난 회개한 믿는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에 다른 사람이 일반인들이 범하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모든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그런 말은 아니다.’ 이런 성구들은 다 무용한 성구들입니다. 이래서 난해절이 많고 무용한 성구가 많습니다.

이러면, 이런 데도 이런 분들이 다, 시편 기자가 자기의 완전을 말을 했으니까 이것을 어찌 되느냐? ‘그것도 난해절이다. 난해절이다.’ 또 좀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 쳐 놓고는 완전하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이런데, 그런 게 다 조작배기 해석이라. 거짓말이라. 거짓말이라 말이오. 이는 정말 완전한 자를 말한 것이요, 정말 완전한 자를. ‘나는 완전한 자입니다. 내가 무슨 흠이 있습니까?’ 이 사람은 곧 하나님의 대속의 그 계약을 인해서, 계약으로 인하고 대속으로 인해서 완전한 대속을 받은 새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 새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이 새사람은 흠과 점이 없습니다. 완전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거게 대해서 성구가 또 무슨 성구가 있느냐 하면은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 말은, 자기의 힘으로 자기대로 됐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자는 반드시 넘어진다 그 말입니다.

이런데, 그것이 자기로 된 것이 아니고 순전히 공짜배기로,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은혜로 주셔서 공짜배기로 주신, 순전히 은혜로 받은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리 만들어 놨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만들어 놓은 사람 이 사람은 흠도 점도 없고 완전합니다. 하나님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백 가지 의사 가운데 한 의사도 다른 의사가 없습니다. 꼭 같은 의사입니다. 또 이 사람은 꼭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이 구속의 은혜를, 구약이라도 그때 다 예약적으로 구속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의 그 완전성을 찬양하고 영광성을 찬양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약에도 에베소 1장에,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함이라.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함이라 말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하는 게 아니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얼마나 잘 만들어지고 온전히 만들어졌든지 모든 존재들이 볼 때에, 이것 보니 참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 그것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그것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거게 나타나고 있다. 그분의 한 이력이 그 영광을 나타내고 있다 하는 그 말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어떤 사람이 동리에 가니까 그 사람을 아주 욕을 굉장히 합니다. 또 어떤 사람 하나를 말하니까, ‘그렇습니까?’ 고만 모든 사람들이 벌벌 떨고 ‘아이구, 그렇습니까, 어데서 오셨습니까?’ 뭐 어떻게 친절히 환영하고 존경을 하고 이렇게 참 적극 옹호를 하고 보호를 하고 이렇게 하는지 그만, 그래서 그 간 사람이 말하기를 ‘아마 이 사람의 아들인가 보다. 그 사람 말만 하니까 막 그렇게 존대를 하고 위하고 또 그 사람 말하는 사람까지 대우를 하고 위하고 이라는 거 보니까 아마 그 사람이 이 사람의 저거 아버지든지 아마 그런가 보다.

아버지인가 보다.’ 이렇게 보면서 아버지라도 그 아들이 자기 부모지마는서도 그 부모 찾아온 사람이라고 이렇게 마구 귀하게 여기고 존대를 하고 이렇게 하나 그거 참 효성 있는 아들이다’ 이렇게 봤다 말이오. 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동리에 사는 사람 중에 제일 말단의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가서 동네 사람 만나니까 그 다음 사람은 만나니까 그 사람보다 더 하고, “ 장로님 이거 못 알아 들으면 헛일이야. 이거 못 알아 들으면. 이거 지금 내가 껍데기 벗길라고 지금 야단치고 하는 건데 껍데기 벗길라고 하나님께서 지금 이와같이 하고 있는데 껍데기를 안 벗기면 헛일이라 그 말이오. 껍데기를 안 벗기면.

이번에 연구 과제가 뭐이냐 하면은 외식 껍데기, 껍데기를 네가 여게는 무슨 껍데기 말했다. 껍데기 말했다. 이거는 껍데기 말했다. 이거는 알맹이 말했다. 그 알맹이와 껍데기를 좀 여러분들이 성경을 보고 좀 살펴보라 하는 것을 연구 제목으로 낼 것입니다. 그뭐 다른 거 공부하는 그런 거 다 못 해도 좋아요. 이런 것만 하면 그만 그 사람 그만 교역자로 내 보내도 저 혼자 고만 샘을 파 가지고 얼마든지 어데 가도 뭐 성경 다 알 수 있고 아주 위대한 목회를 다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만나니까 그 사람 또 더 그렇습니다. 또 만나니까 더 그렇습니다. 더 그렇습니다. 더 그래. ‘아까 그 사람 내가, 아들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들이 이렇츰 많지는 안할 거고’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또 나이 많은 사람 만났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아들은 아니겠고 벌써 이 사람이 한 칠십이나 됐었는데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아들은 아닌가 보다. 그거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있노?’ 이제 그 사람들을 보니까 그 본인을, 찾을라 하는 그분을 만나기 전에 모든 사람을 보니까, 그 모든 사람을 보니까 자기가 찾아볼라고 하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로구나. 그 사람 만나기 전에 그만 겁이 나고 말이지 겁이 나고 두렵고 존경되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다 존대를 하고 귀중히 여기고 고만 그분만 말만 하니까 전심 전력을 다 기울여 가지고 이와같이 대접을 하고 이렇게 할라고 하는가? 그러면, 이런 것이 그 사람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 말이오. 이거 무슨 말인 줄 알겠소?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 사람의 마음씨를 나타내고 있다, 그 사람의 이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성질을 가진 사람이며 어떻게 행위를 했으면 어떤 이력을 했으며 그 사람이 어떤 공력이 있는 사람이며 어떻게 희생한 사람이며 어떤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이들을 보고서 다 알 수 있다. 알 수 있다.

그거 모양으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는 것은 그 말입니다. 우리를 만들어 놓은 것을 모든 존재들이 보고, 그분이 만들어 이 사람이 이런 거 보니까 그분은 이런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그분이다. 그분이 만들어 놓은 이 사람의 이 사랑을 보니까 그분은 이런 이런 사랑을 만들 수 있는 그분이다. 이래 가지고서 그분의 완전함을 알 수 있도록 이렇게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런 것도 이제 그저 말이 좋아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려 함이라 이라지 그 속에 뜻은 하나도 생각지 안하고 모르는 사람으로 지나가기 쉽다 그 말이오.

이것을 이번에 오늘 아침에 읽은 이 말씀을 읽고서 왜 그런 말이 나왔느냐 하면은 요게 롯은 외식하는 믿음의 조상이요 아브라함은 진실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제 그 다음에 주욱 보면 전부가 다 그런 것이 기록되어 있어요.

여게 8절에, ‘우리는 골육이라’ `우리는 골육이라' `우리는 한 골육이라' 그러면 뼈와 살이 한 조상에서 나왔다 말입니다. 한 조상에서 나왔다 말이오.

숙질간이니까 한 조상에서 나온 사람들 아닙니까?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나나 너나’ ‘네나 내나' 네나 내나와 나나 너나와 같습니까 다릅니까? 네나 내나 다투지 말자. 나나 너나 다투지 말자. 이거 같습니까 다릅니까? 예? 이게 다르다고 생각해 봐요. 이거 다른 사람 있어요, 이거? 나나 네나 또 너나 내나 이거 같습니까 다릅니까? 녜, 같애요? 이 모두 이거, 똑똑히 말도 구별 못 하는 모양이라. 이러니까, 인제 여기 다 말하니까 뭐 같다고 같습니다 하는 사람 소리가 둘인가 하나밖에 안 났다, 보니까.

‘나나 너나’ `너나 내나'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녜, 없고.

그러면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똑똑히 들어요.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뻐뜩 들어 봐요. 외식쟁이들. 외식쟁이라. 이거 이렇게 다릅니다. 나나 너나와 너나 나나와, 우리의 모든 범사가 ‘나나 너나’ 할 때에는 그것이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로 들어가서 그 방편이 알맹이 진실한 방편이고 ‘너나 나나’ 하는 데에는 그것은 마귀 방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방편은 나나 너나고 마귀가 주는 방편은 너나 나나입니다.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다투지 말자' `내 목자나 네 목자나’ ‘내 목자나'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속해서 생명에 속했고 ‘네 목자나’ 하는 것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우리 생활이 다 그렇습니다. ‘내 목자나’ 내 목자가 안 싸워야 되지 `왜 네 목자가 싸우노? 네 목자하고 내 목자하고 싸우지 말아라.’ ‘내 목자와 네 목자가 싸우지 않도록 하자’ 하는 거와 그게 천지 차이라 그 말이오. 차이가 있어.

그래, 이 아브라함이 말이지요. 아브라함과 롯이 다릅니다. 다른 것은, 엊저녁에 네 가지를 말했는데 사람이 모든 번민 고통한다는 것이 그것이 이 네 가지를 작정하지 못해서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다. 자기에 대한 문제, 또 모든 사람에 대한 문제, 또 자기의 모든 현실에 대한 문제, 또 성패에 대한 문제 이 문제 이것을 확정짓지 못한 데에서 사람들은 번민 고통을 하고 있다. 그것을 지난밤에 말했습니다.

롯은 참 바쁜 사람입니다. 어떻게 바쁜가? 나를 어떻게 해야 내가 복될까? 어떻게 해야 복될까 이래 가지고서 이라니까 자기에게 대한 그 연구가 또 모든 각도가 복잡합니다. 자기에게 대한 각도가 요 각도도 있고 자기 대한 요 모도 있고 저 모도 있고 하니까 이게 복잡하다 그거요.

이랬는데, 아브라함은 아주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뿐이오. 내가 이래야 영광스러워지느냐 존귀해지겠느냐 뭐 어떻게 되겠느냐 그걸 생각지 안하고 그저, 나는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이라. 나는 하나님만 위해서 있고 나는 하나님만 따를 사람이라. 나는 하나님을 좇을 사람이라. 하나님을 따를 사람이라. 나는 하나님을 따를 것뿐인 사람이라. 나는 하나님을 높일 것뿐인 사람이라.

이라니까, 아브라함은 무슨 일 닥쳐도 여게서 ‘요래야 유익되겠나 조래야 유익되겠나?’ 이러니까 복잡한데, 복잡한데 복잡한 거 다 집어 던져 버리고 ‘나는 요게서, 요게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위할 수 있느냐?’ 하나님 위하는 거 하나뿐이라.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하는 거 고 하나뿐이라. 하나뿐인데, 자기에 대해서는 거게 도달해야 요 알맹이가 되어지는 것인데, 알맹이가 되는 건데 알맹이를 내놓고 나오니까 그 껍데기는 여러 수백 수천이 됩니다.

여러분들, 옳은 것은, 옳은 것은 그 무엇에 대해서든지 거게 대해서 옳은 것은 몇이나 됩니까? 어떤, 예를 들어 물건이라면, 우리 한국 말로 말하면 말이지요.

어떤 물건이 있는데 그 물건에 대해서 정명, 옳은 이름. 그 물건에 대해서 옳은 이름은 몇 개나 되겠습니까? 하나? 하나? 거게서 틀린 이름은 몇 개를 만들 수 있습니까? 틀린 이름은 몇 개 만들 수 있습니까? 두 개? 수없이. 만 개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요. 만 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틀린 이름은 만 개도 만들 수 있어요.

옳은 이름은 하나뿐입니다. 이름은 하나뿐이라.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이제, 사건에 대해서, 고 사건에 대해서 똑바로 처리하는 길은, 고 사건에 대해서 바른 길은 몇이나 되겠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이거 잘 가리키는데, 아는데, 그러면 거게 대해서 잘못하는 틀린 길은 몇이나 있을 수 있습니까? 수없이 있지. 수없이 있어.

이걸 알고 살면 살기가 수월하고 편하고 좋은데 요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서 자꾸, 옳은 이치 하나인데 옳은 이치 하나 외에 삐뚤어진 이치를 자꾸 많이 말하니까 심히 복잡하다 그거야. 그래 가지고 사람들을 꼬와서 넘겨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옳은 지식이기 때문에 요 옳은 지식만 알아 놓으면 이 세상에 거짓말 지식 삐뚤어진 지식을 마귀란 놈이 막, 아마 책을 놓으면은 지금 우리 이 집채, 이거 집이 어북 크다 하지마는서도 이런 거, 이런 거 아마 몇십 개가 될란지 몇백 개가 될란지 몰라.

몇백 개가 될 것입니다. 그 제까짓 게 암만 대가리가 좋다 해도 그놈 다 열람할라 하면 눈이 빠지든지 대가리가 세든지 할 것입니다. 그거 다 알 필요 없어.

하나님의 지식만 알면 돼.

여러분들, 한 사건에 옳은 이치는 몇이라고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그러면 요거 알았습니다. 요거 외에 거는, 요거 외에 이 이치 저 이치, 저 이치 이 이치 하는데 만일 만 가지 이치를 말합니다. 만 가지 이치를 말하면 그것 다 아는 사람 됩니까 모르는 사람 됩니까? 어떻게 아는 사람 돼? 요것만 알았으니까 나머지기는 ‘틀렸다 틀렸다’ 만이면 만 틀렸다. 만도 틀렸다. 천도 틀렸다. 억도 틀렸다. 다 틀렸다. 틀려. 틀려. 그 틀렸다 말이 바르요 어떻소? 틀렸다 말이 바로 안 것이요 바로 모른 것이요? 바로 안 것이라 말이오. 요렇게 조렇게 요렇게 조렇게 자꾸 말하니까 뭐 어떤 박사, 이 박사도 있고 저 박사도 있고 이런데.

그래 인제 그러면 그것을 ‘이 사람은 이래 하고 저 사람은 저래 한다’ 그까짓 거 뭐 그랬거나 저랬거나 그거 알 게 뭐꼬? 도매금으로, 요거 하나가, 요게 옳기 때문에 요거 외에 거는 다 틀렸다 이라면 됐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거 모양으로 롯은 자기에게 대해서 심히 분망하고 복잡했습니다. 아주 분망하고 복잡했어요. 이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하니까 번민 고통인데 이 아브라함은, 나는 주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떠나든지 거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하는 것이다. 그분을 위하는 것이라.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 그분을 존귀히 하는 것이라. 내라는 존재는 그의 것이요 그분을 위해 있는 것이라.

예수님의 대속이 그거라 말이오. 나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것 되지 안했소? 주님의 것이오. 또, 그러면 행동은? 주님의 종이요. 내 위치는? 성전이요, 하나님 모시는 성전이요. 또 나는 그라면 어떻게 움직일까? 그분의 지체요. 그분의 몸이요. 그분의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요. 뭐 암만 뻗어 나가도 문제가 없다 그 말이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에게 대해서 하나로 결정했습니다. ‘자기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나?’ 자기를 복되게 할 일이 어떻게 복되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롯은 복잡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라니까 이렇게 둘이 시비가 났을 때도 롯은 굉장히 복잡했을 거요. 이라면 삼촌이 이래 됐고 도의에 예의에 뭐 짜다라 이랬는데 아브라함은 그저 여게서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까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주님 한 분을 상대로 하니까 단순하게 됐습니다.

또, 그 다음에, 이제 인간에게 대해서는, 인간의 이 모든 가족들이, 가족들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목자들이 와 막 불룩불룩하면서,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이렇지 않습니까? 그 많은 목부들이 다 달라들어서 발언을 하지 가족들도 발언하지 주장하니까 이 롯이 얼떨떨해 가지고 뭘 들을지 모르겠다 말이오. 이래야 되겠나 저래야 되겠나 그만 이 말 듣고 보면 이래야 되겠고 저 말 듣고 보면 저래야 되겠고 어째야 될지 모른다 그 말이오.

아브라함은 단순했습니다. 모든 여론에 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하는 요 하나로 결정했습니다. 이러니, 그래서 우리는 뭐이라요? 우리 총공회는 지금, 일반 노회나 총회들은 어떻게 결의해요? 어떻게 결의해요? 종다수 결의해요.

다수를 좇아 가지고 결의해요. 우리는 어떻게 해요? 예?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의 진리를 따라서 결의해요. 억만 명이 막 이리 주장한다 해도 진리가 아니면 ‘노우’ 나는 이거 뭐 영어로 노우라 하던가 뭐 이런데 `노우’ 여러 억만 명이 말해도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말하면은 한 성구에서 말해도 그걸 인정을 합니다. 이러니까 단순해.

아브라함은 이 수많은 거짓말 많은 이 세상에서 이 말 저 말 이게 거짓말이가 저게 거짓말이가, 이게 큰 거짓말이가 작은 거짓말이가, 이걸 조사를 할라 하니까 그놈은 뭐 공부도 얼마나 머리 썩혀서 다 해도 보니까 아직까지 백분의 일도 못 했습니다. 해 봤자 또 그렇습니다. 이건 단지 하나님의 뜻, 수많은 인간들이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그분의 뜻 하나만 나는 작정하고 그분의 뜻 고것을 인정하고 그 외에 그는 전부 다 부정하기로 작정했다 이라고 당신의 뜻 하나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분에게 물어 가지고서 그분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고것만 딱 가지고 이라니까 저는 이거 했는데 롯은 이렇고 저렇고 여러 수백 가지로 생각했지마는서도 아브라함은 인간의 수많은 의사 가운데에 그거 다, 다 무시해 버리고 하나님의 의사 하나만을 찾을라고 애를 썼다.

또, 소돔 뜰에는 물도 좋고 꼴도 많고 풀도 많고 이렇지마는서도 여기 가나안에는 발간 자산이라. 푸른 산이라 이러니까 이거 문제다. 이거 가질라 하면은 삼촌을 배신해야 되겠고 또 목자들은 이거 없이 그러면 풀 없는 자산으로 가는 날이면 탈이 되겠고 뭐 근심 걱정 되게 많습니다.

이래서, 오늘 사람들도 자기의 나가는 그 길에서 수많은 조건들이 있는데 그 조건이 머리가 요만한 사람은 조건이 요만침 몇 개 되고 머리가 많아서 배운 것이 많을수록이, 배운 것이 많을수록이 시야가 넓을수록이 이럴수록이 조건이 많습니다. 거게 해당된 조건들이, 구비 조건들이 많아요.

조건들이 많으니까,이거, 요게는, 점포를 낼라 하니까 요게는 요 조건은 맞는데 인도가 멀어서, 교통은 편리하지마는 사람이 적게 다니니까 요거 안 됐다. 또 요게는 모두 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가고 퇴근하는 사람들은 적게 가니까 출근하는 사람은 뭐 사 가지고 가나 퇴근할 때 사 가지고 가지. 그러니까 사람은 많이 다니기는 다니지마는서도 조건이 안 됐다. 막 조건 조건 찾아 가지고 참 명철하게 하고 있지마는서도 아브라함은 그걸 생각지 안해. 아브라함은 그거 조건이 필요 없어.

조건이 필요 없고 주님이 요게 하라 하면 요게 하고 조게 하라 하면 조게 하고 요게 있으라 하면 요게 있고 조게 있으라 하면 조게 있고. 당신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개별까지 주권 섭리하시는 그분이 생사 화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요게 있거라 조게 있거라 그분에게 배워 가지고 그분이 요게 있거라 조게 있거라 이라면 되는데 그분 떠나 가지고 이놈의 조건들을 막 찾을라 하니까 많은데 롯은 여러 조건을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여기 물이 좋습니다.’ 주인 보고. ‘물이 좋습니다. 여기는 풀도 많습니다. 여기는 또 평지입니다. 또 저게는 발간 자산입니다. 발간 자산입니다.

거게는 풀도 없습니다. 물도 없습니다. 비탈에서 양 소 구부러져서 다 죽습니다.’ 뭐 조건들이 많다 말이오.

조건들이 많은데 아브라함은 그거 다 보지 안하고 하나님이 요게 있으라 하나 조게 있으라 하나, 요게 있어야 당신이 축복하겠나 조게 있어야 축복하겠나 그게 문제지 딴거는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단순합니까? 단순한데, 다 소돔 뜰 가고 나니까 아브라함은, 목축업을 일 년에 비 두 번밖에 안 오는 가나안에 발간 자산, 자산이라 말은 붉을 자자 뫼 산자 풀이 있으면 자산이라 않고 청산이라 하지. 풀 없는 것을 자산이라 한다 말이오. 자산인데, 그 자산을 택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지 뭐 축복 없으면 안 된다.

이랬는데, 자산 택하고 나니까 자산에 뭐이 있었습니까? 이사야. 몇장이고? 사십 구장이가? 옳지. 성경 잘 알아. 이런데 너는 병이 하나 있어. 뭐꼬? 보수성이 모자라. 지지성. 계속성. 알겠어? ○○이 보면은 생기기를 말이오. 내가 고거 보고 희망을 보고서 있는데 요 광대뼈가 요게 좀 톡 불거졌어요. 요 광대뼈 불거진 거는 상쟁이들은 말하기를 좀, 의지가 강하다 이라는데 그거는 보고 있는데 도무지 내가 말했는데 너 요거 꼭 지켜라 그래도 눈물 흘리며 말하고도 고만 그 뒤에 못 지켜.

그래, 이사야 49장에 보면은 자산에도, 자산에 푸른 초장이 있다. 어떻게 할 때에? 매인 자 놓이라. 매인 자 나오라. 흑암에 있는 자야 드러나라. 진리대로 사는 자에게는 자산에 푸른 초장이 있다. 진리대로 사는 그 걸음은 빨간 붉은 산, 비도 없고 물도 없고 다 이런 산이지마는서도 거게 초장이 있다. 사막에도 생수가 솟아오른다. 이게 인제 세상이 모르는 알맹이라. 이것 보고 사는 자는 외식이 아니고 진실한 자인데 이거 보지 안하고 껍데기만 보고 사는 다 외식자라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 어짜든지 권찰들이 이 구역 식구들을 지도하면서 지도하는 것을 가르쳐 줘도 자꾸 외식으로 롯의 자손으로 자꾸 걸어가고 있다 말이오. ‘야, 그러니까 그 조건이 이러니 참 이렇다 저렇다’ 실컷 그 마귀하고 얘기하다 보면 ‘그래. 너는 할 수 없다. 너는 이사를 가야 되겠다. 그 조건이 그렇게 좋고 여게는 이러니 이사를 가야 되지 않겠는가? 이제 이사를 가야 되겠다.’ 그 조건 좋은 데로 가야 되겠다 말이오. 조건 좋은 데로 가고 여게 있는 거 저 서면으로 가야 되겠고 또 뭐 어데로 대연동으로 가든지 어데로 가 가지고 가야 되겠고.

이제 아브라함 자손은 그게 아닙니다. ‘야, 조건 좋지마는서도 롯을 생각해라.

네가 그리 가는 것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나 여기 있는 게 가까워지나, 네가 또 그리 가는 게 하나님이 기뻐하겠느냐 여기 있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느냐, 또 어떤 게 하나님과 가까워지겠느냐, 어떤 것이 하나님의 진리를 더 듣겠느냐 더 배우겠느냐, 네 신앙이 좀 어느 게 올라가겠느냐? 그걸로 결정해라.’ 이거 미련합니다. 그걸로 결정해라.’ 뭐이든지, 뭐이든지 ‘너 봐라, 너 예수 믿는 데에 예수 믿는 것이 좀 유익이 되겠나 손해가 되겠나? 믿음이 좀 더 생겨지겠나 믿음이 조그매라도 흐려지겠나?’ 그거 하나만 자꾸 봅니다.

야, 조건 암만 실컷, 조건 실컷 말합니다. ‘이렇고 이렇고 거기는 조건이좋고 여게는 이렇고 이렇고 조건이 나쁩니다.’ 실컷 듣고 있다가서 말하기를 ‘야, 너 거기 가는 것이 하나님의 도를 들어서 네 믿음이 그리 가는 것이 믿음이 나아지겠나 여기 있는 것이 나아지겠나 그걸 좀 생각해라. 그거는 어떠노?’ ‘그거야 암만 해도 멀리 가면은 말씀도, 새벽 기도도 못 나오고 뭐도 못 나오고 이라면 좀 안 되질 것 아닙니까?’ ‘그러면 너는 네가 가는 것은 롯의 자손이냐?’ 믿음의 자손, 롯도 믿음의 조상이요 아브라함도 믿음의 조상이니까 ‘너는 그라면 롯의 자손이냐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평소에 가르쳐 놨으면 돼.

가르쳐 놨으면 떡 물으면은 ‘예, 뭐, 어짤 수 있습니까? 롯의 걸음은 걸음이지요.’ ‘그러면 롯의 걸음은 뒤에 어찌 됐지? 다, 사람 망하고 물질 망하고 다 망하지 안했느냐? 그러면 너도 그대로 뒤에 다 망하려구먼.’ 그러면, 그만 말 다 됐어.

척 스미스 목사 그분은 명철해요. 말하는데, 사람들이 뭐 자기 앞 길에 대해서 이랄까 저랄까 물으러 오는 사람이 꽉 찼대요. 자꾸 물으면 오는 사람이. 아마 나보다 더 많은 모양이라. 물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데, 많은데, 물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데 그거 다 말해 줄라 하면 그 사람 하나 말하다 보면 그만 딴거 다 못 하고 헛일해.

그래서, 비서를 세워 놨대요. 비서를 세워 가지고서, 그래, 비서한테 물으십시오.

가면, 비서한테 가면 비서가, 또 비서가 말 안 한대요. 테이프를 줘요 테이프. 고게 대한 설교한 테이프를 딱 주니까 그 테이프 요거 가지고 가서 그러면 녹음기에 한번 틀어 보십시오. 그거 틀면 다 해결돼 버리요, 그만. 그래 가지고서 이제 이 테이프 줘라. 일호 테이프 줘라. 이호 테이프 줘라. 삼호 테이프 줘라. 이 테이프만 주지 말을 안 한답니다. 그분이 그렇기 때문에 큰 부흥을 일으키고 다니고 있다 그 말이오.

이래서, 롯은 모든 복잡한 생활 조건들을 찾을라고 했지마는서도 아브라함은 단순했어. 하나님의 축복이면 된다. 축복 하나만. 이라면 축복받겠나 저라면 축복받겠나 축복받는 고것만 할라 하니까 마음 편치 양심 편치 수월하지 모든 사람 원수돼서 대적하지 안하지. ‘너희들이 다투고 시기하고 피를 흘리는 데까지 이르러도 얻지 못한다.’ 시비하고 또 살인하고 피 흘리고 미워하고 이렇게 해도 얻지 못한다. 얻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라 했습니까? 얻지 못하는 건 무슨 까닭이라 했소? 구하지 안한 까닭이라.

하나님에게 다, 하나님께 얻을라 하면, 아브라함은, 야, 이거 목장 잘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셔야 된다 축복에 있다. 이 하나만 가지고 있는데 롯 이거는 물이 좋아야 되고 언덕이 평탄해야 되고 또 암석이 없어야 되고 뭐이 어째야 되고 뭐 어떻게 조건이 많은데 그거 다 치워 버려라, 네가. 하나님이축복 주실 수 있는 요 길로만 가면 된다. ‘아, 미련한 게’ 그러기에,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도라.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도이지만 인간들이 배암 지식으로 볼 때는 미련하지마는서도 구원 얻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다 해 주는 것이라. 이런데 구역장들도 이걸 가지고서 목회를 하면은 쉬운데.

연보 많이 하라 하는데 이 서부교회서는 연보하지 말라 합니다. 내가 요번에 분교 연보할 때도 ‘연보 많이 하지 마라. 자꾸 공연히 헛되이 허영으로 하는 거 있거들랑은 도박 연보 못 하게 해라. 이렇게 없는 돈이 이거 많이 하면 많이 주겠지. 빚을 내 가지고 자꾸 연보하는 그런 거 하지 마라. 도박 연보하지 말고 허욕 연보하지 말고 미신 연보하지 말고 허망 연보 하지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단지 너는 뭐이나? 자꾸 말씀대로 지켜서 행해라 믿음 지켜라.’ 믿음 지키면 뭐이 나옵니까? 믿음을 지키니까 뭐이 나오지요? 믿음 지키니까 뭐이 나와요? 예? 자꾸 또 그리만 말해. 믿음 지키면. 예? 믿음을 지키면. 그래.

기적과 축복. 믿음을 지키니까 또 하나님이 그만 씨와 양식을 자꾸 줍니다. 믿음 지키니까 씨 주고 양식 줍니다. 씨와 양식 주니까 씨와 양식 주는 거, 씨 요거는 심고 양식 요거는 내가 먹고. 또 그라고 나니, 그라고 나니까 또 씨와 양식을 더 많이 줍니다. 많이 주니까 또 많이 심고 많이 먹고. 또 많이 줍니다.

그러니까, 자꾸 이래 가지고 성경에 약속하기를 네가 씨를 심고 양식은 먹고 이라면은 더 주고 더 주고 더 줘 가지고서 너 의의 열매가 가득하도록 하기 위해서 함이라 이랬으니까 이 방법을 가르쳐 주면은 부도도 안 날 터인데.

마누라도 그래요. 마누라 어리석은 마누라는 여보 어짜든지 이거 좀 요게도 쓸 일 있고 조게도 쓸 일 있고 자꾸 이것만 자꾸 말하니까 남자가 바짝 말라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안 되겠다.’ 이 아내가 이래 쌓으니까 횡령도 해야 되겠고 도박도 해야 되겠고 거짓말도 해야 되겠고 또 뭐한 남자는 제 이름을 당좌 수표를 빌려 주고 또 소고기라도 몇 근 사 가지고 와야 마누라가 또 입이 벙긋거릴 것이고 이라니까 망하는 거라 말이오.

그저, 그 아내가 말하기를 남편에게, 여보 부자 방망이를 가져야 돼요. 부자 망방이, 그러니까 자꾸 믿어요. 믿어요. 당신이 믿기만 하면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믿고 나니까 ‘뚜드랑 땅’ 믿고 나니까 그 다음에 씨와 양식이 벌컥 나오니까 또 씨는 심고 또 양식은 먹고 나니까 또 ‘뚜드랑 땅’ 하고 또 믿으니까 또 씨와 양식이 나오고 씨는 심고 양식은 먹고 또 뚜드랑 땅 하니까 또 씨와 양식이 나오니까 또 씨는 심고 또 양식은 먹고 이라니까 나중에는 씨가 한 되 나오더만 두 되 나오더만 한 말 나오더만 열 섬 나오더만 자꾸 양식도 많이 나오고 자꾸 많이 나옵니다. 이게 예수 믿는 이치인데 이렇게 간단하게 하지는 안하고 ‘뭐 있고 뭐 있고’ 자꾸 그라다 자꾸 많이 오면 뭐 먹을 것도 있고 입을 것도 있고 꽉 찼는데 말할 게 뭐요? 이거 예수 믿는 것이 이렇게 단순한데 아브라함은 그 길을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모든 이런 모든 지상 현실의 조건, 지상 현실의 조건 그것을 초월한 하나님의 주권 섭리의 축복이 있는 그것을 바라봤다 그 말이오. 이제 인간들의 수많은 시시 비비의 인간의 그 다대수의 여론 그거보다도 하나님의 뜻인, 하나인 하나님의 뜻 고거 찾을라고 애를 썼어. 백 개를 찾아 가지고 백 개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한 개 비위 맞추는 게 쉽지 않소? 얼마나 쉽소. 내가 이래야 될까 어째야 될까? 내가 이런 내가 돼야 될까 저런 내가 돼야 될까? 내가 좀, 학자도 학자도 돼야 되겠고 내가 박사도 돼야 내가 장관도 돼야 되겠고 내가 부자도 돼야 되겠고 사장도 돼야 되겠고, 아따 복잡하다. 복잡한데 이제,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존귀케 하는 자만 되면 돼. 그거 하나만 되면 돼.

또, 이 성공을 할까 저 성공을 할까? 이 성공을 할까 저 성공을 할까? 모든 성공, 이 성공을 해야 되겠고 저 성공도 해야 되겠고 한데 그 복잡한데 다 치워 버리고, 어라, 성공과 실패는 주님에게 맡여 버려라. 내가 할 게 뭐 있나? 주여 내 성공 실패 당신에게 맡깁니다. 나는 모르기 때문에 어떨 때는 가난한 게 성공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부자가 성공될 때도 있기 때문에 나는 그걸 모릅니다. 당신에게 맡겼습니다.

맡겼기 때문에, 맡기니까 주님이 떡 가난을 줍니다. 가난을 주면서 가난을 주면서 ‘아나’ `예,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뭐, 가난이 왔는데 뭐이 감사?’ ‘이거 내가 성공이기 때문에, 내가 성공 달라 안 그래 합디까? 성공 달라 했으니까 이 가난 주신 이게 성공이기 때문에 가난 주시겠지요. 이거 나는 가난 이게 내가 성공인 줄 압니다.’ 이라니까 하나님이 됐다 됐다 말이오. 또 덜컥 부자를 줍니다. 부자를 주니까, 주면서, 주니까 ‘감사합니다.’ `왜 감사하냐?' `성공 주니까 감사 안 합니까?' `이거 부자가 됐으니까 성공이가?’ 아니, 부자거나 뭐이거나 당신이, 당신에게 맡겼기 때문에 당신 주는 게 성공인 줄 알았기 때문에 이제 ‘이 부자 주면 그게 성공이요 가난 주면 가난이 성공인 줄 내가 알았습니다’ 했다 말이오.

지난밤에, 지난밤에 말씀한 가운데에서 우리가 아는 것. 아는 것. 내가 내 주관으로 아는 거 외에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거 있고 내가 인정하는 거 인정 속에 하나님이 인정시켜 주는 거 있고 또 내가 행하는, 내가 행하는 거 외에 하나님이 와서 일해 주시는 거 있고, 고걸 받아야 된다 그 말이오. 고걸 받아야 알맹이를 받았고 성공이 되는 것이지 그 외에는 다 외식이요 껍데기라.

그러니까, 이게 잡아 보면 말이지 이거, 이거 좋은 닭이 왔습니다. 닭이 왔습니다 이래서, 좋은 닭이 왔다고 쌓아서 그래서, 그거 좋은 닭이 왔어? 보자 하고서 잡아 가지고서 마당에다 놓으니까 물로 뿔뿔 기어 들어갑니다. 물로 기어 들어가.

이거는 좋은 닭이 왔다 해서 좋은 닭이 왔는데 껍데기 보면은 다 그게, 모르는 사람은 닭인가 오리인가 모르겠는데 물에 갖다 놓으니까 물로 기어 들어가. 된 거 같은데 휘떡 뒤집어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여게 양성원 학생들 신학 대학을 졸업한 사람 뭐 모든 신학을 졸업한 사람 모두 와서 있는데 이래 있지마는서도 여기 와 봐야, 와 가지고 뭐 진리 진리 하지마는서도 나중에 보면은 딴 종류라. 진리는 인간보다 높는 것입니다. 예? 진리는 인간보다 훨씬 위에 있소. 인간의 억억만 배가 아니라 인간보다 지극히 높은 것이오. 진리보다 영감은 더 높으요. 영감보다 하나님은 더 높으요.

이런데, ‘진리 진리’ 네가 정말로 진리를 원하나 보지마는 원하는 거 보고 자세히 들어다 보니까 가짜라. 가짜로, 진리를 돈만치도 귀하게 여기지 안하고 진리하고 두 군데 있으면 진리 던져 버리고 돈 따라갈 그런 사람들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걸 몰라 그래.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그 사람이 왔으면 요걸 좀 배웠으면 되는데 아마 엊저녁에는 왔었지? 그런데 여게 어데 수도원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여기 양성원 학생들이 여기 왔는데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그저 새벽 기도에 이래 나오고 이 성경 또 가르칠 때 조금 하라 하는 거 하고 이렇게만 하면 참 쓸모가 있을 것인데, 목사 산태가 났는데 정말로 참 목사는 어떻게 귀한지 정금보다 귀한데 하루 종일 찾아다녀야 참 목사를 찾지 못할 만침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이 외식을 다 벗어 버려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믿는 사람들이 필요 없는 성구를 많이 말했는데 필요 없는 성구는 전부 난해절입니다. 필요 없는 성구는 전부 난해절. 난해절은 그 성구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다 모르고 이해를 못 한다 그거야. 그 성구가 우리에게 진짜라. 우리가 바짝 생명을 내놓고 힘을 쓰지 안하면 안 될 그런 성구는 다 제해 버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수월하게 평안하게 이래 믿어도 되는데 이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저거 우리를 괴롭게 한다 해 가지고 그 사람 이제 잡아 죽일 거라. 괴롭게 한다고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진실하십시오. 진실하지 안하면 이 도에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완전히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완전히 죽여 버리십시오. 산 제사로 드리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매일 삼십 분 기도 빠지지 말고 기도합시다. 빠지면 헛일입니다. 얼마나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어려운 일 있는지 모릅니다. 기도한 사람은, 지금 고생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때 평안할 것이고 지금 예비적으로 기도 안 한 사람은 그때 고통당할 것이고,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수월하게 기름 준비 다 했는데 그 슬기 없는 다섯 처녀는 기름 준비에 수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예? 슬기 있는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 둘 중에 어느 처녀들이 기름 준비에 수고를 많이 했습니까? 예? 어느 처녀가? 어느 처녀가? 슬기가 있는 처녀가 힘을 많이 썼다 말이지? 수고를 많이 했구먼. 또 다른 사람은? 꺼꾸로라 꺼꾸로.

미련한 처녀가 지금, 신랑 왔다 하지 기름 없지 사러 가라 했으니까 막 달음박질쳤을 거라. 막 급하게 가 가지고 문을 뚜드리고 야단이 났을 거라.

이렇지마는서도 아무 아직까지 필요 없는데 그때 설설 기름 산 것이야 무슨 힘이 들었겠어? 누가 힘 들었겠어? 누가 힘 들었어? 미련한 처녀가 힘이 더 들었지.

이러니까, 예수 믿는 거는 그거라. 미리부터 예비적으로 하는 것은 수월하고 평안하고 그때 임시 닥쳐 그래 하는 사람들은 죽을 지경이라. 지금부터 기도하라 하니까 뭐 이거는 된 것 같지마는서도 그때 이제 너 예수 안 내놓으면 죽인다 할 때 그때 안 내놓고 할라 하는, 순간의 고 몇 시간 고통이, 하루 삼십 분 미래 위해서 기도하라 하는 거 십 년 한 거보다 그게 더 고통이 더 심하고 힘이 더 듭니다.

이러니까, 미리 예비한 자는, 기독교는, 예비한 자는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예비 안 한 미련한 처녀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이런 걸 자꾸 똑똑히 그 진리를 깨달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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