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3 19:57
시험
1981. 11. 3. 화새
본문 : 야고보서 1장 13절 - 17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 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해 나갈때에 자주 어려운 일을 만납니다. 어려운일을 만날때에 우리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나를 어렵게 만든다 나를 고생시키신다.
이렇게 생각하기 쉬우나 이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해서 고생하도록 고생을 시키는 그런 일을 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애끼지 아니하시고 희생하시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대로 살아라 하는 것도 우리가 모든 멸망 길을 다 피하고 참 영과 육이 아울러 행복된 그 길로만 가도록 하시는 것이요. 또 우리에게 영감을 받는 성신의 감화나 또 성경 말씀으로 인해서 생겨진 양심이나 인도도 다 우리를 잘되고 복되고 형통하고 후회없는 참 성공과 복을 주시기 위해가지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그것을 해칠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가 확신해야 됩니다. 또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혹 어려움을 당하게 한다는 그런 말로 기록된 것이 있어도 그것은 인간의 말로 '너희가 볼때는 그렇지마는 실상 그렇지 않다' 그 말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험해서 찾는 사람이 적다 사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평탄해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랬는데 이것은 인간의 지식으로 볼때에는 그렇다 그말이오. 사실 그런것이 아닌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구불러도 난간에 떨어질 일이 없습니다. 뭐 꺼꾸러져도 죽어도 손해가 없는 그길입니다. 위험한 길이 위험치 않고 참 평탄하고 튼튼한 길입니다.
그러나 사망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실은 넓은기 아니라 좁아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가다가는 좁은 것보다도 막혀버리서 가지 못하는 길이요 또 그 길은 전체가 사망으로 되가지고 있는 길입니다 한자국도 사는 길이 없고 전체가 사망으로 되어 있는 길이요. 그러나 인간이 볼때는 그렇다 그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다니엘이 공부할때도 하나님 인도하시는대로 공부를 하니까 여러가지 애로가 있지 왕의 음식 안먹는다고 환관장이 아주 생명을 내놓고 달라 들었습니다. 네가 이러면 내가 내 생명이 끊어지니까 안된다고 이렇게 하는 어려움을 당했지마는 다니엘이 그렇지 않다고 보라고 시험에 보라고 그들보다 훨끈 공부도 잘하고 몸도 튼튼하고 얼굴도 윤택하고 그럴것을 보라 시험해 보면 될 것 아니냐 시험해 보고 난 다음에는 용납을 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자기가 우상숭배 이제까지 다른 것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포로가 되가지고온 다니엘이 또 우상 섬기다가 망하는 그길을 갈수 없다 그말이오. 우상이라니 하나님으로라야 성공이 있는 것이지 음식 좋은 것 먹는다고서 성공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암만 포로가 되와도 왕이 잡아다 놓고 공부를 시키니까 하지마는 하나님의 계명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것은 하지마는 하나님의 계명에 위반되지 안하면 그것은 자기가 좀 불편하다고 또 어렵다고 괴롭다고 힘든다고 안가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인줄 알고 죄되지 안하는 길이면 그대로 갑니다. 가다가 하나님의 나타난 그 법칙에 성문으로 글로 써가지고 있는 똑똑한 명문이 되어있는 법칙에 위반이 되면 그길은 가지 안합니다. 거서 중단을 합니다. 또 명문된 법칙이 아닐지라도 자기 속에 성신의 감화 감동이 이래서는 안된다 할때에는 그 길을 걸어가지를 안하고 중단을 하는 것입니다.
다닐엘에게 그 왕의 진미 안먹으면 안 된다고하는 그것은 그 우상제물이라 그렇게 말하나 그것은 그런지 안 그런지 똑똑히 모르겠고. 어쨎든지 양심에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요것이 요동치 안할려고 하는 다니엘에게 그들이 모두다 이래야 된다 이러니까 그들이 하라 하는 공부하지 그들이 앞으로 정객으로 쓸라고 정치인으로 쓸라고 하는 공부를 시키니 또 하기 싫어도 해야되지 이러는 데에는 이 음식먹어야 된다 안 먹으면 안 된다 해가지고 하니 하나님 바라보고 의지하는 거는 다 없애버리고 전부이 그 왕이 주는 것만을 바라보고 순종하고 의지하는 것도 그것밖에만 의지하는 것이 돼 버리기 때문에 다니엘이 아마 영감속에 다른거는 안할수 없지마는 내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커지면 커지고 작아지면 작아지지 다른 이런 그들의 방법같이 그렇게 나는 될수 없다 하는 그것이 자기속에 영감됐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문서로 인도하는 것이나 문서로 인도하는 것이나 영감으로 인도하는 것이 그 길이 다니엘에게 실패하는 길이냐? 성공하는 길이냐? 뒤에 보니까 성공하는 길 아닙니까? 그거는 믿었습니다. 성공하는 길입니다. 실패하는 길은 아니고 성공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에게 그런 여거 애로 점이 있는 그것이 다니엘에게 어려움이 됐을까 기쁨이 됐을까 여러분들이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그런 그 마찰이 생겼는데 마찰이 생겼을때에 그 마찰이 저 이름이 뭐이지 마찰이 다니엘에게 어려움이 됐고 고통이 됐을까? 기쁨이 됐을까? 다니엘에게 기쁨도 될수가 있고 고통도 될수가 있다니 그것은 다니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게 문제지요 만일 다니엘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주권섭리 당신이 주권적으로 섭리해 가지고 주권 그 섭리를 다니엘이 믿는다고 하면 이 모든 작용이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 당신이 여기에 대해서 주권을 가지신 분이신데 그분이 여기에서 여기에 대해서 내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마구 그들이 말하는대로 속에 거리낀 마음이 하나도 없이 그분이 말한 그분들이 말하는대로 백프로 거기에 따라서 응하는 이것을 원하실까 여기에서 성문 의지와 또 내 영감 의지 영 성신의 감화감동시켜 주시는 요대로 요게서 너희 식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노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있다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이런 그 방편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감동시켜주신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나는 그 음식은 같이 먹지 안할터이니까 그러면 나 죽는다. 그래 며칠동안 시험해 보십시오. 어찌 되는 고 시험해 보십시오.
이렇게 할 수 있는 영감이 자기속에 있었을때에 다니엘은 외부에서 그 환관장으로 더불어 그렇게 마찰되어지는 그 마찰이 다니엘에게 어려움이 됐겠습니까 기쁨이됐겠습니까? 다니엘에게는 기쁨이 됐는데 얼마나 기쁨이 됐겠소. 공부고 뭣이고 아무것도 없이 그거 하나가 다니엘에게는 유일한 기쁨이 됐을 것입니다. 유일한 기쁨이 됐어. 그렇지 않겠어. 유일한 기쁨이 됐지. 그 하나가 그래도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를 자기가 걷고 있다 하나님이 요구하심을 명중했다 하나님이 만족히 하신다 전능의 주권의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게 됐다 하는 것이 자기 속에 발견이 되고 깨닫아 졌을터이니까 그 다니엘 생활은 순전히 취미가 거슬려지는 고기에 자기가 세상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거기에 협동되지 안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고 독특한 고독의 걸음을 걷는 고 하나가 그 속에 기쁨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고통될 수도 있지요. 하나님이 주권도 하나님의 주권섭리도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과의 자기와의 맺어진 그 속에 세상이 비웃지마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맺어진 그 내적 그 정조 지조 약속 이것도 흐려지면 만일 그 재물 그 음식이 우상 제물이라고 했다하면은 이게 흐려지는데 이 제물 안먹을라하니까 고통이 되고 먹을라하니 또 양심의 가책이 되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계명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자기는 공연히거칠어지고 고민되어지고 이러니까 이걸 차라리 몰랐으면 좋겠다. 이 성경에 우상의 재물이라 이런걸 먹지 말라는 요런 성구 없었으면 좋겠다 싶을 것이고 제가 안먹을라하면은 큰 고통을 당하지 그러니까 그 사람은 결과적으로 먹게 되지요.
또 봅시다. 다니엘이 하나님을 이렇게 섬김으로 말미암아 그가 높아지고 커졌습니다. 커졌는데 하나님 따라서 커지고 높아지고 형통과 축복을 받았는데 그 축복때문에 그 형통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시기해가지고 다니엘을 죽이기위해 가지고 한 달 동안은 다른 신에 무엇에게든지 기도하지 안하고 그 왕에게만 전부 심신을 기울이도록 이렇게 하는 그런 어려운 행사를 하나 만들어 내가지고 전국이다 그렇게하기로 했으니 다니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나갈라고 하니까 자기는 사자구덩이에 들어가야 되는 그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그 어려움을 만나게 된 그 원인이 뭐입니까? 만나게 된 그것이 하나님 때문에 만났고 하나님이 축복때문에 만났고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 때문에 만났고 순전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법칙때문에 만났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축복때문에 만났고 하나님이 형통케 해주시는 형통 그것 때문에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축복 때문에 시기해 가지고 그렇게 했다 그말이오.
하나님 때문에 만났습니다. 그랬을때에 또 다니엘에 그러면 다른데에 기도하는 것하지 아니하고 왕에게 집중하라 하는데 기도하지 기도를 쉬지말아라.
"하나님외에 다른 것을 우상으로 섬기지 말아라"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쉬지말아라 하는 이 하나님의 지도와 법칙이 없었으면 그때 아무 거침이 없습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그것을 그만두라하는 그런 법칙이 있으면 좋을긴데 하나님께 교제하는 것과 간구하는 것을 계속해라하는 고것때문에 지금 다니엘에게 그런 어려움이 왔습니다.
그러면 그 어려움이 왔으면 하나님의 법칙이 다니엘을 어렵게 했습니까? 그 환경이 어렵게 했습니까? 환경이 어렵게 했지 환경이 어렵게 했는데 그 어려움을 안당할려면 안당할 수 있는데 왜 당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법칙 때문에 당하게 됐지.
그러면 하나님 법칙대로 당하게 됐으면 하나님의 법칙이 기도하는 걸 쉬지 말아라 하는 그 인도의 법칙이 참으로 다니엘로 하여금 망하는 길로 인도하는 망하는 길입니까? 사는 길입니까? 성공하는 길입니까? 실패하는 길입니까? 무슨 길입니까? 성공하고 살고하는 길이지 길인데, 그 길은 그게 당연히 옳은 길이고 영원히 옳기가 옳은 길이고 가야될 바른길인데 그 길이 죽는 것으로 망하는 것으로 만들기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누가 만들었어요. 하나님 만들었소.
사람들이 만들었소. 사람들이 만들지 안했어. 사람들이 만들었지. 사람들이 만들었는데 그러면 다니엘이 여기에서 고통이 되고 안되는 것은 뭘로 가지고 고통이 되고 안되겠습니까? 고통은 와 되겠습니까? 무엇때문에 고통이 되겠습니까? 그들이 사람들이 다니엘을 고통스럽게 만든것은 그들이 어떻게 하는데 다니엘에게 고통스럽게 됩니까? 고통이 됩니까? 다니엘이 안죽고 싶은 그런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서라도 살고 싶은 그 살고 싶은 생애 욕심이 있으면 그에게는 고통이 될 것입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고라도 평안하기를 원하는 그 욕심이 있으면 그에게는 고통이 될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법칙에 어기고라도 그 지위와 권세 그 현실을 그대로 가지고 싶으면 그에게 고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라도 그 무엇을 보존하고 유지하고 가질려고 하면 그에게 고통이 될것이요. 하나님의 법을 어겨 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겨 오는것은 다 죄요.
사망이요. 저주요. 그것은 완전히 멸망이라는 것을 다니엘이 확고히 인식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서 오는 것은 자기를 멸망케 하는 것이고 암만 사기 아니면 죽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 법칙을 떠나서는 자기에게 형통이나 유익이나 좋은 것이 없고 하나님의 법칙안에서만 있다는 것을 다니엘이 확실히 믿었다고 하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사는 것이나 형통한 것이나 어려운 난제가 해결되는 것이나 하는 그런 것을 다니엘이 바라겠습니까, 안바라겠습니까? 다니엘이 바라겠소, 안바라겠소. 다니엘이 고통이 되는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도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고것이 다니엘에게 있으면 그때에 고통이 올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는 우리에게 망하는 것만 오지 좋은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면 하나님의 법을 어겨 살려고 하나님의 법을 어겨 형통하려고 하나님의 법을 어겨 현재를 유지하고 보존하려하는 그런 욕심이 하나도 없으면 다니엘에게 그때 고통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그런 욕심이 없으면 다니엘에게 그렇게 만들어논 그 형편이 다니엘에게 어려움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확실히 안됩니까? 안됩니다. 그 욕심이 있으면 그것도 된다 하는 그런 욕심이 있으면 그게 깨지니까 고통이 되지지.
그러나 아야 그것은 자기에게 저주요 멸망이라는 그 지식을 확고히 가지고 멸망인줄 확실히 안다면 말씀을 어겨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 그런 소원이나 지식이나 욕심이나 그 인식이 어겨서도 좋은게 있다 어겨서도 가끔가다 좋은게 있다. 그러몀 형통이 있다. 어겨서도 좋은 것이 있다고 하는 그런 인식이나 또 그런 소원이나 그런 지식이 다니엘에게 있었다고 하면 그것을 넘어다 보지요.
넘어다 보지마는 그런것이 없다고 하면은 거기에 대한 소망이 없어지지. 거기에 대한 욕심이 없어져 거기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니까 아야 계명을 어긴밖에는 아무것도 유익한 것이 없고 계명 법칙 안에서만 있다는 그것을 확실히 믿는다고 하면은 다니엘이 그 계명을 지키기가 쉽겠습니까, 어기기가 쉽겠습니까? 불에 안들어가기가 쉽습니까? 불에 안들어가기가 쉽지.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안들어가는게 쉽지.
그러면 다니엘이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서 기도를 안한다고 하기가 쉽겠습니까, 기도를 한다하기가 쉽겠습니까? 하나님앞에 기도를 안한다고 하기가 쉽겠습니까? 그 본능적으로 어찌되겠소? 안한다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그에게 안한다는 것이 쉬울 것이요. 또 다니엘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고 주권적 섭리를 하고 계시고 또 다니엘을 사랑하시고 능치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고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시고 모든것이 그분에게 주권되어 있는 이 사시을 자기가 믿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기도 한다 해라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인도라는 그것을 확고히 자기가 믿는다고 하면은 다니엘이 그때 기도를 한다는 그말이 떨면서 했겠습니까? 자신만만이 담대히 했겠습니까? 담대히 하지 그렇게 다리오왕이 얼마동안만 기도하지 말라고 사정하는 그 사정하는 것이 마음에 자기를 참 사랑하고 동정하는 것으로 보여졌겠습니까? 미혹시키는 것으로 보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쪽바로 인도하는데 우리 복되게만 인도하는데 그 인도하는 그것이 고통이 되고 형통이 되고 하는 그것이 고통될 때에 그때에 왜 고통이 되느냐 자기에게 각양 좋은 은혜와 그 선물이 빛들의 아버지에게로서만 오지 딴데서는 오는기 아니라 딴데서 오는 거는 전부 사망뿐이다 죽이고 망하는 것뿐이다 요것을 요 지식을 가지지 못한 고기에서 요것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법대로 하는 그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걸 주실때에 돈을 주실때에 도을 바로 돈으로 살려주는 것을 직접 '너희 그리 말아라' 살려주시는 걸 주십니까? 무엇이든지 주실때에는 당신이 인도하시는 인도로 줍니다. 다른걸로 주지 않습니다. 인도로 주셔요. 고 인도대로 하면 됩니다. 딴걸로 주시지 안하고 고 인도 고것가지고 주시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때에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고것이 하나님 인도인데 그 인도는 다니엘을 그들이 죽일라하는데에서 살리는 길입니까 죽이는 길입니까? 분명히 살리는 길이요. 살리는 길인데 그럴때에 만일 두렵고 떨림이 생겨진다면 하나님이 두렵고 떨리게 했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에서 사고가 났습니까? 또 하나님이 주시는 고것만 바라지 안하고 엉뚱한 욕심 엉뚱한 소원 엉뚱한 법칙을 자기가 인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외에 딴것을 자기가 바라고 의지하고 인정하고 소원하고 좋아하고 된다고 이렇게 인식을 하면 자기에게서 난 고장 그것 때문에 고통이 됩니까? 하나님의 인도가 고통이 됩니까? 자기에게서 난 고장 그것때문에 고통입니다.
그러면 자기에게서 나는 고장 그것은 그대로 고통없이 자기에게 난 고장 그것때문에 지금 고통이 됐는데 자기에게서 난 고장 그것을 그라면 고통스러운 그런 현실을 만나지 안하고 자기에게 생겨져 있는 그 병인데 고장인데 그대로 죽는날까지 형통하게 살아나가면 어찌됩니까? 자기에게 있는 고장 거기에 맞추어서 거기에 거슬리지 안하고 그 주장대로 거기에 따라 살아나가면 그 산 생활이 사망이 됩니까 생명이 됩니까? 전부 사망되지요. 전부 사망되지. 그러면 그 자기에게 있는 고장 그것을 뽑아서 제하면 사망이 제해지는 것이지요. 실패가 재해지는 것이지요.
이러니까 그 자기 하나님 법칙에 가는데에 자기에게 고통되는 것은 자기속에 고장이 나가지고 그것이 들어서 안될 욕심 삐뚤어진 꺼꾸로 된 인정 꺼꾸로 된 성공 길 이 전부 꺼꾸로 된 것 이것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의 그 인도가 자기에게 거슬려지니 거슬려지는 그것을 그대로 보존해야 됩니까 꺽어서 멸하고 죽어 없애버려야 됩니까? 꺽어죽여 없애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그때에 고통을 느끼는 자는 하나님앞에 맞은 하나님의 법대로 되어있는 살려야 될자가 고통을 당합니까? 죽여야 될자가 고통을 당합니까? 죽어야 될자가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면 속에 참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가 둘입니다. 둘인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는 그 참 사람이 있고 이 껍데기 이 세상과 이런것 의지하는 이 사람이 있는데 이것이 만날 강하게 주장하니까 이 어리석은 마음도 고기덩어리도 그것에게 끌려가지고 그말이 옳은줄 알고 거기에 끌려가지고 만날 헛일하고 있는데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자기에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딸고 그러서만 좋은 것이 온다는 것을 믿는 이 사람이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데 이 사람도 있고 이 세상 법칙대로 해야 된다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하늘의 것보다 좋아하고 하나님보다 이 세상과 세상에 것을 더 믿고 의지하는 그 사람이 자기속에 있어서 그 사람의 마음과 몸뚱이을 주관해 가지고 그렇게 살자하고, 또 하나는 하나님 바라보고 의지하고 살자하고 이렇게 할때에 하나님 말씀대로 인도해서 어려움이 탁 닥쳐오면 그때 자기에게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의 법대로 할라 하니까 거슬리는 것이 많이 있으니 거슬리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사람은 어느 사람입니까? 어느 사람이 고통 당하요. 세상 좋아하는 사람 세상 법칙을 인정하는 사람 또 세상것을 의지하는 사람 그것을 하나님보다 크게 여기는 사람 그 사람이니까. 자기가 그 자기가 고생을 당하지요. 자기가 고생을 당하는데 고통하는데 그 자기 그것은 고생하면 좋습니까 죽어야 좋습니까? 죽어야 좋습니다.
그럴때에 자기속에 참자기는 그 어려움을 당해서 그놈이 고생을 당하고 지금 죽겠다고 당황을 하고 그것이 공연히 소망으로 보여지면 이게 좋다 이게 좋다 해 가지고 자꾸 지금 예수 안에 있는 것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것이 다 헛되고 유한해서 깨진다 헛된다 하는 것을 이렇게 보여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깨지니까 그놈이 좋다하는 것이 깨지고 의지하는게 깨지고 바라보는게 깨지고 그놈이 고통스럽고 이렇게 할때에 속 사람은 좋아하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자기 속사람은 좋아합니다. 왜 자기의 원수 자기를 그저 파묻고 어떻게 거짓뿌리로 역사하고 있는데 사람을 바고 고칠려고 하니까 꾀우는 인간이 와 가지고 자꾸 꾀워가지고 지금 바른 길로 인도못하도록 만드는데 꾀우는 인간 그 인간이 절단이 나게 되버렸고 그가 꾀우는 것이 그게 환하이 들어가서 봐라.
그거는 다 헛되다 하는 것이 들어나면 그 사람을 참 살릴라고 지도하던 그 사람은 속으로 좋겠고 안좋겠소 좋습니다. 그와같소, 우리에게는 믿기전에는 한사람이요. 믿고 난 다음에 두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 심신을 우리 마음과 고기덩어리를 두사람이 들어서 이 심신을 중생된 영이라는 이 새사람은 이것을 자기가 인도해 가지고 옳고 바른 자를 만들어가지고 무궁세계까지 살라고 이것을 옳은 의의 병기로 만들라고 애를 쓰고 옛사람 이것은 어짜든지 이걸 제것을 만들어가지고 세상만 보고 살아라 세상 의지해라.
세상 이것이 크다. 눈에 보이는게 크다. 하나님보다 이기크다 이 법칙대로 모든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느냐 자꾸 이 꼬우고 있는 이제는 그것을 가지고 이 심신을 자꾸 꼬아가지고 제대로 이용하려고 애를 쓰고 이 두 싸움 가운데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있는데,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나님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누가 고생당합니까? 참 자기가 고생을 당합니까? 자기 아닌 자기가 자기처럼 나타난 거짓뿌리 자기 아닌 원수인 그자가 고통을 당합니까? 그자가 고통을 당하요. 누구의 것이 깨집니까? 주님이 주신 것이 깨집니까. 우리가 소망하지 못할 것 의지하지 못할 것 바라지 못할 것 좋아하지 못할것 가짜 그것이 깨집니까 그것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가 우리에게 고통이 되어지는 그 원인은 우리 속에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자기가 되어있는 그놈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그것이 없는 사람은 고통을 당하지 안해요. 그것이 있는것만치 고통이 돼. 또 그놈있다고 왜 고통이 되는가 그놈이 있다고 고통이 되는 이유는 그놈이 주장을 하니까 이 심신이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외에 딴것을 욕심을 내고 딴것을 소원하기 때문에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가 우리에게 고통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그것을 좋다고 인정하고 소원하는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그것을 욕심내는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소원하는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그것을 욕심내는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그것을 욕심내는 욕심 그놈 때문에 고통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그것을 욕심내기 때문에 왜 하나님이 주시는 그것이 깨지는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깨지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 있는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있는 하나님의 법칙밖에 있는 그것을 욕심하는 거기에서 우리에게 고통이 옵니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그것이 내 생명이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해서 있는 재물이 내 제물이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해서 형통한 그것이 내 형통이지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되는 것은 어리석은 지식이라서 그것이 좋은 것으로 보여지지 하나님 법을 어겨 있는 것은 그것은 전부죄요. 그건 저주요 사망의 것이라. 요 지식을 확고히 가져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면 다 좋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다 사망이다 하는 요 지식이 확고하면 이거 하나만 해도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삶이라야 그 삶이 좋지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는 악령이 주는 그 삶이라는 그 삶은 그것은 완전한 사망이 되는 것이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니 하나님의 법을 지켜서 내 생명이 있으면 그 생명은 내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니 하나님의 법을 지켜서 내 생명이 있으면 그 생명은 내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하나님으 법을 어겨야 가지게 되는 그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고 죄악이 주는 생명이기 때문에 그 생명은 사망이라.
영원한 사망이라. 요 지식만 확고히 가져도 자기가 하나님이 인도하는 인도를 따라갈때에 하나님의 법칙을 어겨서 오는 그것이 사망이라는 것만 확고히 자기가 지식하고 있다고 하면 이거 하나만 해도 하나님의 지식을 어기는 그 모든것 사람들이 좋다 어떻다 하는 모든것 하나님의 지식을 어겨 오는 것은 자기를 영원히 사망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그것이 그것이 깨지는 것이니, 그것이 절단나지는 것이니 자기가 하나님 법도대로 지킴으로서 하나님 법을 어겨서 자기에게 오는 세상에 모두다 좋아하는 것 그것이 자기에게 사망이라는 것 요 지식을 확고히 가졌다고 하면 하나님의 지식을 어겨 오는 그것을 탐하지 안하고 또 그것이 있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없어지기를 원하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간다고 해서 그것이 절단나지면 좋아하겠소. 안좋아 하겠소.
자 사람이 불에 타서 죽는 그 지식을 확고히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큰 불이 나가지고 자기옆에 있으니까 뜨거워 못견디겠는데 자기가 아 위 불이라야.
이 불은 내게 좋은 불인데 이 불이야 내가 사는데 이 불이 내게 필요하고 이 불이라야 사는데 이렇게 불 그것이 자기에게 유익하고 자기를 살리고 자기를 유익되게 한다고 생각하면 그불이 꺼지는 것을 좋아하겠소. 꺼지는 것을 싫어하겠소. 그 불에 제가 타죽을 불이요. 그 불은 타죽어 지금 그 불이 지금 자기가 지금 뜨거워서 타죽을 지경인데 그면 그불이 자기를 뜨겁게해서 가까이 가면 죽일 수 있는 그런 불이라고 생각하면 그 불이 없어지는 것을 그것이 없어지는 것을 그 사람이 좋아하겠습니까? 불이 없어진다고 고통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없어지는 것을 좋아하겠지요. 녜, 그거는 왜 그러냐? 불에 들어가면 타죽는다는 지식이 확고하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하나님 법을 어겨 다니엘이 네가 기도 안하면 살고 기도하면 죽는다 할때 기도안하면 산다는 그 생명이 사는 그 생명이 하나님법을 어긴 생명입니까? 하나님 법을 지킨 생명입니까? 그러면 어긴 생명 그 생명이 어긴 생명을 다니엘이 탐하겠습니까? 어긴 생명이 꺼져지기를 원하고 그 어긴 생명을 멀리하고 피하고 그 어긴생명이 없어지기를 원하겠습니까? 어긴 생명이 자기에게 탐이나서 그 생명이 없어지는 것을 원할련지 그 생명을 자기가 가지고 보존하기를 원할련지 뭘 원할련지 어떤것 원하겠습니까? 고만 여 가놓으면 좀 혼돈이 되는데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없어지기를 원하요. 불 없어지는 거와 마찬가지요. 그 사람이 만일 내가 여기에서 사는것은 이 불이라야 산다 불없으면 내가 죽는다 했으면 그 불이 있기를 원할 것이고 불이 꺼진다면은 기가 막힐 것입니다.그러나 그 불이 자기를 죽이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불이 꺼지면 좋아서 춤을 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법을 어기여 있는 그것은 전체가 사망이요 하나님의 법 안에서만 생명이 있다는 요 지식이 확고하면 하나님 법을 어겨 사는 길을 말하면 그때에 그 사람이 기가 기울어지겠습니까? 깜짝 놀래서 도망을 치겠습니까? 도망치지 하나님 법을 어겨 오는 재물은 자기를 저주하고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지식하고 있다면 하나님 법을 어겨 오는 그 재물이 오면은 탐이 나겠습니까 어짜겠습니까? (이필희) 집사 한번 대답해봐. 버려 버릴까? 오면 어짜겠습니까? 피하여 버릴까? 깜짝 놀래지. 깜짝 놀래지 아이쿠 나를 멸망시키는 이 재물이 왔구나? 나를 멸망시키는 재물이 왔구나? 해서 자기를 태워 죽이는 불이 오니까 다른 사람이 이 불이라야 너는 행복되다. 이 불은 너에게 행복되다. 이 불속으로 들어가거라 할때에 야 거 가까이 있다가 안되겠다고서 놀래면서 마구 도망을 치고 불에서 피해 달아나겠소. 거 있겠소.
달아나지 그럴것 아니겠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나감으로 말미암아 세상과 세사에 있는 자기 모든 것이 그것이 말씀대로 말씀으로 인해서 그것이 깨어지게 되면 말씀으로 인해서 깨어지게 되면 말씀을 어기야 보존하게 된다면 말씀을어겨 보존하는 그것을 탐하겠습니까? 말씀을 어겨 가진것은 전체 사망이요. 저주라는 것을 확고히 가지고 있다면은 말씀을 어겨 그것을 보존하려고 하는 소원이 있겠습니까? 그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걸 보존할 소원을 가지겠습니까? 그것이 닥쳤을때에 그 사람이 어떻게 되겠소. 욕심을 품겠소. 깜짝 놀래서 도망을 치겠소. 깜짝 놀래서 도망을 치지 아야 이제까지는 내것이 되어가지고 있었을지라도 지금은 말씀을 어기지 안하면 가지지 못하고 말씀을 어기야 가질 수 있다고 하면은 그것이 자기에게 사망이요. 멸망이요.
저주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지식이 자기에게 되어가지고 있다고 하면 그것을 그런것이 되어 자기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것이 말씀을 어기야만 가질 수 있게 되가지고 있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 미련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욕심이 생겨지겠습니까? 떨어지기가 쉽겠습니까? 그것 가졌다가는 자기까지 타 죽는다해서 거기에서 도망을 하겠습니까? 그게 들어서 자기를 저주시켜서 멸망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은 피해 달아나겠소. 거 붙어 있겠소. 달아나지요.
요 지식에서 거기에대한 욕심이 하나도 없으면 그러면 말씀을 어기지 안하면 이게 깨진다 말씀을 어기지 안하면 깨진다 그러면 말씀 어겨서 가질 수 있는 그것이 떠나기를 원하겠소. 그대로 있기를 원하겠소. 어서 정리되서 떠나기를 원합니다.
또 각양 좋은 상 그 온전한 은사기 빛들의 아버지에게로서만 말미암아 온다는 요것이 확고하게 알면 거기에 있는 어겨서 가지는 그것은 저주요. 계명지키는 데에서만 자기 생명이 있고 자기 성공이 있고 있다고 하는 것을 자기가 확고히 가졌다고 하면 그때에 하나님의 계명 그것이 그에게 뭘로 보겠습니까 보이고 있겠습니까? 죽음으로 보이겠소. 생명으로 보이겠소. 그가 실패로 보이겠소.
성공으로 보이겠소. 성공으로 보이지요.
이러니까 우리가 계명을 지켜 나가는데에 어려움 오는 것은 하나님이 인도를 우리를 어렵게 만들어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어려움 되는 것은 내 속에 잘못된 지식 때문에 어려움이 되지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잘못된 지식 때문에 어려움이 되지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잘못된 지식 때문에 잘못된 욕심 때문에 잘못된 인신 때문에 그것이 어려움이 되어지고 기쁨이 없는 것은 왜 기쁨이 없느냐?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거기에 대해서 그 사건에 대해서 주님이 어떤 지위를 가졌고 어떤 어느 정도 권위를 가졌고 어는 정도 주권을 가졌고 한 그것을 믿지 않는데에서 자기에게는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주의 말씀대로 따라 나아갈때에 고통이 있는 것은 자기에게 지식이 잘못됨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소망 잘못된 소원 잘못된 욕심 잘못된 인식 그것때문에 고통이 돼요. 왜 그게 깨지니까. 그 깨지면 속사람은 즐거워하요.
하나님도 즐거워하요. 거기에 잘못된 지식이 없고 바른 지식으로 예수 밖에는 없다. 진리 밖에는 없다. 진리 밖에는 전부 사망뿐이다 하는 것이 확고히 가지면 말씀을 어겨 사는 길 그것이 사망인줄 알면 그길을 원할턱이 있습니까? 그 길을 원하지 안해. 거기에 미련이나 애착이나 그런게 다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고통은 없어졌습니다.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네가 너한테 속지 말아라 각양 좋은 언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 "빛들의 아버지"라 말은 옳고 바르고 참되다 그말이오.
바른 것 주장하고 바른대로 하시는 이 바름에서 바른 방편으로 나에게 바른 것이오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에게로서 내려오나니 내려오나니 이것을 자기가 확고하게 믿으면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에 길이 그 어렵지 안한데 요걸 믿지 못하는 통에 말씀을 어겨 어겨서도 말씀을 어겨 말씀을 어겨 존재한 것도 말씀을 어겨 이루어지는 것도 혹 좋은 것이 있다 하는 고 인식이 고것이 있는 것만침 저에게는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못된 욕심이 있는 것처럼 고통이 되고 잘못된 인신이 있는 것만침 고통이 되고 잘못된 방편이 있는 것만침 자기에게 인신이 되고 잘못된 지식이 있는 것만침 자기에게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만 제것되면 고통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통되는 것 주의 계명대로 나갈때에 고통이 되는 이 고통이 없어지는 방편은 당신이 인도하시는 당신 법칙 안에만 모든 좋은 것이 있지. 당신의 것으로만 좋은 것이 나오지 당신 법칙 밖에 법칙을 어겨서 당신 외에 딴데서는 내게 좋은 것이 하나도 오는 것이 없다.
이러니까 당신 법칙을 어긴데에서는 좋은게 하나도 없다. 당신 외에 딴데서는 나에게 좋은걸 하나도 주지 않는다. 이러니까 그때에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라고 하니까 안되지는 것 하나님 법칙대로 살라고 하니까 그것이 다 깨어지고 안되지는 그것은 벌써 그것이 시기가 어제까지는 좋았지마는 오늘은 그게 저주의 것이 됐는데 그 변해 버렸는데 그걸 탐할리가 있습니까? 어제까지는 음식이 아주 맛있어. 맛있는데 아, 보니까 고만 시었습니다. 맛있는 고기인데 엊저녁에 먹을 때에는 맛있는 고기인데 오늘아침에 먹을라고 보니까 고만 썩는 내가 나고, 시었어.
그러면 그 사람이 어찌됩니까? 썩은 고기를 그걸 엊저녁에 맛있고 하니까 좋아하는 것처럼 오늘도 좋아하겠습니까? 집어 던지겠습니까? 집어던지지.
요것도 뭐이냐 지식이 고것이 아주 생생한 고기니까 먹으면 맛도 있고 영양도 있다. 이렇지마는 이거 썩었으니까 고기 썩었으니까 먹으면 식중독이 돼 가지고 죽는다. 그래 그것을 모르고 이래 턱 입에다가 젓가락으로 집어 넣었다가 보니까 썩었단 말이오. 그러면 어짭니까? 아이구 이거 내버리기 아깝다 하고서 안내버리겠습니까? 얼른 확퍼갔다가 내버립니까? 퍼 갖다가 내버리지 않습니까? 왜 엊저녁에는 그걸 좋아서 넘어 삼켰는데 왜 지금 퍼 내버립니까? 왜 내버립니까? 벌써 엊저녁에 먹으면 영양 되지마는 오늘 아침에 먹으면 내가 그로 인해서 식중독 되가지고 죽는다 그말이오.
변했기 때문에 이제까지는 내 생명이 하나님 법도대로 안에서 생명도 있었고 소유도 있었지마는 지금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안하면 이 생명을 가질 수 없고 이것을 가질려면 하나님 법을 어기야 되고, 하나님법 밖에 있는 사는 것 하나님의 법밖에 있는 현상유지하는 것 하나님의 법밖에 있는 지위 소유 형통 평안 하나님 법밖에 있는 하나님법 밖에 됐다 말이오.
하나님 법 안에는 그게 없고 하나님 법을 어기야 취할 수 있는 하나님 법 밖이 됐다 말이오. 됐으면 그때에 그것을 없어지는 것을 아까워서 따라가고 그걸 잡기 위해서 하나님 법을 어길려고 어정거립니까? 그것은 깜짝 놀래면서 거기에 잘못하면 현혹해 가지고 자기 죽을까 싶어서 얼른 집어 던지겠습니까? 집어 던지버리요. 이걸 여러분들이 자꾸 요 생명에 대해서 생각해보지를 안했기 때문에 요말이 싹싹 나가질 안하고 자꾸 이 세상 말가지고 하려하니까 안되는데 고거 아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는 하나님이 언제든지 좋고 바르고 옳지만 요렇게 한번 꾸그러지든지 한번 꾸그러지는가 시험해보고 한번 요리 조리 하면 요렇게 그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언제든지 바로 쪽 인도하는데 인도하시면서 하나님이 이 환경을 조절해 가지고 인도하시는 것이 거슬리게 만들기도 하고 형통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 환경가지고 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인도는 똑바르요. 바른데, 이 환경은 마귀를 시켜서 인간시켜 요래가지고 이렇게 이 인도하는 길이 거슬리기도 하고 형통하게도 하고 이 길을 자기 죽는길로 보여지게도 하고 자꾸 이 환경을 조절한다 그말이오.
이런데 하나님 인도하는 그 길이 왜 자기에게 고통되게 하느냐? 고통되게 하는 그것은 왜 고통이 되느냐? 자기에게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서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요 지식을 확고히 가졌고 하나님 법칙떠나는 것은 전부 사망이다 하는 요 지식만 확고히 가졌으면 하나님 법 밖에 것을 욕심내는 것 하나님 법 밖에것을 인정하는 것 하나님의 법 밖에 걸 탐하는 것 하나님 법 밖에것을 미련을 가진것 요것이 없어지면 고통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칙 밖에는 전체가 사망이요.
하나님의 법칙 안에서만 좋은 그 모든 것이 다 오지 그 외에는 다 있는 것이 전체는 사망이라하는 요 지식에서 자기가 주를 따라가는 걸음에 고통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따라가는 그 걸음에 산벼락같은 어려움이 오는데 산벼락같은 어려움이 오는데 그 어려움이 오거나 말거나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이 인정하는 그 걸음이 자기에게 기쁘고 즐거운것은 뭘로 말미암아 됩니까 뭘로 됩니까? 뭐요. 하나님의 법칙을 따라가다가 어려움 오는 것은 어려움 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인도는 언제든지 영생이요.
또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고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인도라는 요 결과가 좋다는 요 결과가 영생이라는 것과 또 그분이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 그분이 주권하시는 것 그분을 믿고 그분의 사랑을 믿고 그분이 나에게 주시는 요 결과로 결말이 영생이라는 것 결말이 좋다는 것 반드시 좋다는 것 육의 것도 여러배 백배도 주고 신령한 것이나 모든 것이 예수밖에 있는 것을 예수밖에 있는 것을 제거하고 예수 안에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예수 밖에도 있고 예수안에 있고 이게 예수 안에 있는지 예수 밖에 있는지 똑똑히 분별 못하는 것을 예수 안에 것으로 확정을 지워지는 이 단계요. 이 순서라는 것을 자기가 믿을때에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믿을때에 고통이 물러가고 하나님을 믿을 때에 이것이 변해서 크게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바른길로만 인도하시지마는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 법을 믿지 않는자로 하여금 녹아지게 하고 고통스럽게 해서 하나님 법을 인정하도록 하고 안되면 이 세상을 바싹 깨가지고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고 이제까지 바랐던 것이다 허무하게 되어지니까 이제는 하나님 법으로 돌아오도록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인도하는 법은 똑바른데 그것이 별별 스럽게 쉽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죽는다. 절망으로 변해지는 것은 환경을 고렇게 조화를 시켜서 고래 되어지는 것인데, 고 조화시키는 그것이 어떤 장게 어려움이 되느냐? 세상 걸 믿고 하나님 만을 믿지 않는자에게 어려움이 되지고 어떤 자에게 슬픔이 되는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는 자에게 슬픔이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 기쁨이 되어지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에게 좋은 결과를 맺고 하나님을 보아 세상과 세상 의지하고 바라는 자는 사망의 결과가 맺도록하고 해서 하나님이 그런일을 만들은 것은 우리에게 잡것을 제해버리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시험은 금을 불로 연단하는 거와 같이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라. 순전히 하나님에게 속한 것 하나님과 진리로 말미암아 된 온전하고 영원한 완전한 것 요것만 남고 나머지기는 다 태워서 없어지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하나님이 바로 인도하시면서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인도하시는 길은 언제든지 곧다는 것 변동이 없이 곧아요. 곧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곧다는 것 곧은데 왜 우리에게는 어렵다. 쉽다. 변해지느냐! 그거는 하나님이 날 만드시기 위해서 내 현실을 하나님이 주권으로 요렇게 변하고 조렇게 변하고 요렇게 변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인기가 있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8.15해방이 지나니까 해방이 되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산것이 막 인기있어. 말씀대로 살았다고 마구 칭찬이 되고 이래서 신사참배 안한 사람들을 이렇게 칭찬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 사는 것이 이렇게 존귀하고 또 어떨때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참 불행중에 불행이고 요렇게 자꾸 환경을 하나님이 요래 만들고 조래 만들고 자꾸 만든다 말이오. 하나님이 말씀이 나를 인도하시는 그 말씀은 언제든지 곧은 줄이요. 똑 곧고 하나님이 환경을 요리 만들고 조리 만들어가지고 다같은 그 말씀이지마는 지키기가 어렵고 쉽고 좀 어렵고 많이 어렵고 자꾸 요 기쁘고 고통스럽게 자꾸 요렇게 환경을 해 조절한다 말이오. 조절하는 것이 그것이 왜 조절하느냐 하나님 말씀만을 하나님의 지식만을 믿고 의지하는 고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지식만이 믿고 의지하지 않는 다른 지식을 믿고 의지하는 고놈을 자꾸 깨트려서 고걸 없애서 고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고통입니다.
어만것 헛된것 욕심내는 데에서 헛된 욕심 내는 그놈이 깨지니까 고통되고 헛된 법칙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법칙을 어긴다니까 고통되고 그것이 전부의 불신의 죄값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통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잡된 것이 제거됩니다.
제거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의 법칙안에서만 살도록 하기 위해서 환경을 가지고 이렇게 조절을 합니다.
조절하는 하나님의 이 광대하신 사랑을 우리가 믿어요. 믿고 모든 존재는 다 이것을 위해서 창조해서 존재케 됐고 모든 순서는 하나님이 이를 위해서 예정하신 그대로 되어지는 이것이니까 우리가 말씀대로 인도하는 똑 고른 바른데 아, 여기에서는 어려움이 왔다. 어려우면은 요걸 하나님이 요렇게 조절을 환경을 조절시키가지고 금방 좋아하던 것이 금방 싫어하고 변해지고 하는 것이 요 조절을 해 가지고 나로 하여금 어렵게 만드는 것이니까 요때는 내가 무엇을 제거하면 어려움이 없어지겠느냐? 무엇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하느냐? 요런때는 내가 무엇때문에 고통을 당하느냐? 다니엘이 기도하라고 하는 그때에 만일 고통이 된다면은 그 고통이 되지면 무엇때문에 고통이 되지겠습니까? 여러분들 같으면 그런 증인됐을때에 고통이 뭣때문에 되겠소? 고통이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고통이 됐지! 고통이 되면 무엇때문에 되는고 알겠지? 알면 그것만 없애버리면 되지. 그것만 포기해 버리면 되지 그거만 포기하면 돼. 그런 일 닥치면 자 이 고통 되겠습니까 안되겠습니까? 자기로서는 고통이 되겠소. 안되겠소? 기도 하면 사자구덩이 집어 넣고 안하면 살려주고 이란다면 그때 그 일을 당하면 고통 되겠소 안되겠소. 자기로서는 고통되겠소 안되겠소. 자기로서는 예수 믿으면 죽인다하는 그거 올때 고통이 되겠소 안되겠소? 안돼. 참 고맙소 안돼. 응, 그래 고통되는 사람이라면 왜 고통이될까? 예수 안믿고 사는 생명이 그 생명을 탐하는 그것때문에 고통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욕심이요. 삐뚤어진 욕심이요. 그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죽는다는 것을 확고히 알면 그런 소리하면 깜짝 놀래서 도망치지요. 내가 예수 안 믿고 살아 예수 안 믿고 사는 예수 안 믿는 생명이 있나 예수 안 믿고 사는 법이 있나 하고서 그 욕심이 제거되면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믿어 나갈때에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은 바르다 때에따라서 요래 인도하고 조리 인도하고 꼬불랑 꼬불랑 사람이 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은 언제든지 곧다 곧은데 왜 나에게는 마찰이 되고 안되고 장벽이 되고 있고 없고 이와같이 되느냐? 그거는 하나님이 환경을 몰아가지고 그렇게 조화를 붙여서 말씀은 내나 그말씀인데 어렵고 쉽고 형통하고 불통하고 그렇게 만든다.
그러면 이렇게 만들때에 내게는 고통이 있느냐 아 고통이 있다. 고통이 있으면 뭣 때문에 고통이 있느냐? 고통이 있는 그놈은 포기해야 된다. 고통있는 그놈을 던지버립니다. 생명때문에 고통이 있을때에는 예수 어겨서 살라하고 살고 싶어 멀찍하는 생애욕심 그놈이 날죽이는 거라. 그래 생애 욕심을 집어 던져버려 생명을 죽여버려 이제 생명을 포기해버리면은 그만 그때 형통하게 지나가고 "생명을 구코저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와 내도를 위해 생명을 버린자는" 뭐라했습니까? "찾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생명이신 하나님에게만 달아붙고 하나님의 지식만 옳다고 인정하는 자 만들라고 자꾸 이와같이 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 지식 외 딴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 것이고 그분외에 딴걸 바라보고 의지하기 때문에 고통이 오는 것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고대로 인도하는데 내게 오다가 그런게 오는 것이니까? 그럴때에 올때마다 여기에서 뭘 버리라는 것이고 뭘 수정하려고 뭘 치료하려고 지금 오는 것인가? 고것을 자기가 깨닫고 고것만 버리면 되는 거라. 버리고 바라보면 그만 돼. 그러면 시험은 지나가고 거기에서 부활이 오고 거기에서 새생명이오고 거기에서 이제 성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새벽으로 와서 진리의 말씀을 배워야 무엇을 알것인데 아무 것도 모르면 어떻게 합니까? 마귀의 우리의 시험은 첩첩히 수 백척도 넘고 천첩도 넘은데 알기를 껍데기만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 그것을 뚫고 들어가겠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기에서 깨닫아야 됩니다. 깨닫으면 지금도 모두 보니까 여도 보니까 시험을 닥쳐가지고 울면서 죽나 사나 하는데 이리 알면 그 문제가 없는데 뭘 지금 요구하고 있느냐? 뭘 요구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에게 백세에 난 아들을 지금 번제로 드리라하니까 하나님이 뭘 요구하는가? 뭘 시험하시는가? 그게 우상될까? 그런것이 딴길이라도 단지 이것을 하나님의 법도 대로해야 이 이삭이 잘된다.
이삭이 좋아진다. 하나님 법칙 어겼으면 이삭이 좋을 것이 없다. 법칙 어기는 이삭은 저주 멸망이다. 요걸 확고히 알아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하나님의 명령대로 고대로 하면 이삭이 더 잘될줄로 알았기 때문에 고게 이긴거라.
그러니까 지금 이 법칙이 한번 거슬리지 안하고 한번 연단받지 안한거는 하나님의 법칙을 지킨 그 이삭 하나님 법칙으로 말미암아 인제 한번 죽었던 이삭은 살아나면은 괭장한 이삭 되겠다 싶어서 밤에 기뻐서 잠을 못자고 나무를 팼다 이거요. 이것이 만사형통입니다. 모든 시험 다 이기는 것이요.
그런고로 하나님의 법칙은 바로 인도하는데 우리에게 고통되는 것은 잘못된 욕심을 잘못된 인식을 잘못된 소망을 잘못된 기쁨을 잘못된 평강을 잘못된 행복을 잘못된 만족을 이것을 다 제거해서 참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어제 몇호가 여섯가지 육호가 여섯가지 내나 그게 지금 오늘 그말입니다. 그 해석이요.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쉽게 배워지는게 아니니까. 이 세상에 썩은 지식도 얻을라면 그렇게 어렵고 몇십년 걸리는데 그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고 뭘 잘 모르겠다 모르면 자꾸 배워야지. 제 아는 걸 배울진데야 배울 필요가 뭐있어요. 뭐 모르는걸 배워서 알아야 되지.
이러니까 말씀 알아 듣기가 어렵고 거가 알아 듣기 어려우니까 쉬운대로 간다 쉬운데 가 가지고 세상 일만 하면 이야기하면 좋아하지만 암만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환란이 와보지 어떻게 될런지 얼떨떨해서 뭘 알아. 그 새벽기도 나와야 됩니다. 자꾸 살리도록 권면해서 자기 사랑하는 자들이 새벽기도 나오도록 자꾸 이래 그 권유를 해요. 해도 안되는 거는 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