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힘

 

1981. 11. 29. 주후

 

본문 : 로마서 3장 9절 - 18절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신앙생활하기에 우리 한국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유익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법에 대한 권위성은 좀 인정하는데에 좀 불리하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 강대국 일수록 법을 한번 세워 놓으면 법대로 이행하고 법을  개정을 잘 안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법을 잘 바꾸고 고치고 그런 일이  그동안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때문에 이것이 인식이 되어서 하나님이 정해논 법도 이렇게 변동될 수  있지 않는가 그런 미혹을 받기 쉽고 또 하나님의 법도 이 세상 법에서 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모양으로 이렇게 융통성이 많고 변동 변화성  변정성이 많으니까 그러리라 생각하는 이것이 우리에게는 아주 불리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행사를 가리켜서 알파와 오메가라 그렇게 했습니다. 이는 변동  없다는 말입니다. 또 영원전 작정한 그대로 영원무궁토록 호리도 가감없이  그대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 자체가 완전하고 불변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모든 예정도  완전하고 불변하고 그분의 처리도 완전하고 불변합니다. 하나님은 이러신데  우리는 이 변동 많은 세상과 같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이렇게 저렇게  비집거리서 변명을 하고 변론을 해서 꺼꾸로 옳게 삐뚤어지게 꿔 맞춰도 될 수  있는 이런 것인 줄로 아는 이것이 우리에게 큰 화근입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호리도 가감이 없습니다. 또 거기에는 추호도 변동이 없습니다. 이 법에 대한  절대성 권위성을 이 안다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 어떤 교단에서 재판을 열었는데 그 재판을 하는데에 그 헌법을 가지고  나와서 헌법에 이렇다 헌법을 내대면 헌법을 정한 그 전체는 그 법에 따라서  준행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법을 가지고 말하면 그 진영에 전체가 말하는  그런 권위와 같은 그런 권위를 가지제 됩니다.또 그 법에 어긋났으면 제가  아무리 무슨 소리 한다 해도 그만 그 법을 제정한 그 단체가 없어지기 전에는  저는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헌법이 권위 있고, 헌법보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우리는  그 법에 준해서 사는데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가지고 보라 성경에 이렇다 할  때에 성경의 보호법 성경이 안보해 주고 성경이 함께 해 줄 때에 그는 성경을  부인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부인하기 전에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부인을  당합니까? 성경이 부인을 당합니까? 이러기 때문에 제일 외모에서는 사람들이 세워논 그 법에 준해서 그 법의 보호를  받고 법이 정죄하는 정죄를 받지 안하려고 애를 쓰고 그 법이 정죄를 못하고  법의 보호를 입게 고만 그 정도에서는 담대합니다. 그 정도에서는 뭐 법이  보호하기 때문에 법이 이렇다 법이 이렇다 고만 자꾸 그럽니다.

어떤 회사서라도 이 사람이 무슨 손을 들면서 언권을 청해도 그건 거부할 수  있지마는 뭐이라도 법이다 하면은 모든 것 다 중지하고 그 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법이다 하면은 꼼짝 못하고 그 언권을 줘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  각국이 모인 유엔에서라도 어떤 사람이 언권을 얻어 가지고 무슨 말을 할 때에  법에 정죄가 됐든지 하면 딱 들고 손을 들면서 법입니다 하면은 그 언권 받은  언권이 딱 중단 당하고 법이면 뭐이냐 법에 이렇고 이러기 때문에 이 법에  정죄되기 때문에 안됩니다 하면 그 회의가 그 법 앞에 빨빨 떨고 법대로  처리되는 것입니다.

법이라 하는 것은 그 법 배후의 권세가 어떠냐 하는 문제지 법을 정하는 권세가  있으면 권세 그 이하의 것은 그 법에 준행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전에 말씀하신대로 마귀는 이거다 하나님의 법에 다 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마귀는 제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마귀는 그 배경이  죄입니다. 마귀의 배경이 죄요. 마귀가 뉘 집을 해 하려고 해도 손 못댑니다.

못대니까 그 집을 죄를 짓구로 살금 살금 꼬아 가지고 죄만 하나 지으면 마귀가  그 다음에는 에헴하고 뜩 들어 앉아 가지고 턱 호통치고 잡아 명령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이 복종 안하면 안됩니다. 이놈 마귀 네까짓놈이 암만 내가 이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네가 너한테 당할 줄 아느냐 안당한다 그러면 이놈이  죄라는 놈이 있다가 특 말하기를 하나님의 심판법에 떡 갔다 말이오. 하나님  심판법에 딱 고소하기를 이렇고 이렇고 지금 법에 이렇게 이렇게 위법이  되었는데 이 어떻게 하렵니까? 하나님의 심판법이 그것은 심판을 해야 되겠다  죽이야 되겠다 멸해야 되겠다 꺽어야 되겠다. 이러면 그 법을 항거하면은 그  다음에 법의 주인인 하나님이 나서 가지고 멸하기 때문에 항거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마귀라는 놈의 세력은 죄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죄만 짓도록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여러가지 방편을 써 가지고 죄만 지으면 그 어떤 것이든지 마귀의  벌써 무릎 앞에 들어갔습니다. 마귀에게 복종을 해야 됩니다. 마귀의 마음대로  합니다. 마귀가 아무리 해도 그거는 반대를 못합니다. 반대하면 이기 하나님의  심판 법에 송사를 해 버리면 심판법 저 줄기 위에 하나님이 와서 내리 눌리기  때문에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와 가지고 아무리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해 할려고 해도 우리가  죄를 짓지 안하면 마귀는 해하지 못합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고 만일 의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된 이 하나님의 보호법을 입는 것이 의인데 하나님의  보호법을 척 입고 나오면 그 마귀는 두 말할 것 없이 그 사람에게 이용을 당해야  되고 수종을 해야 되고 들어야 되고 그에게 이용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들어 내신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 모든 조직이요 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조직과 질서가 딱 짜여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시편  2편에 보면 세상에 잘난 자들이 이 그물을 벗어나 보겠다고 저희들이 말하지마는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신다 했습니다. 벗어날려고 하면 더 얽혀서 영원히 멸망  받아 버립니다. 세상에서도 망해버립니다.

그러기에 마귀에 능력은 죄라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죄 그놈은 어떤 독을  가졌는고 하니 죄는 사람을 망치고 죽이는 이 독을 가졌습니다. 죄는 가정도  망치고 개인도 망치고 사업도 망치고 인생과 인생의 행위와 인생의 소유를  완전히 망치는 그 독을 가진 것이 죄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절대 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마귀가 인간을 망칠라고 할 때에 그 개인을  망칠라고 할 때에 그 사업을 망칠려고 할 때에 그 개인을 망칠려고 할 때에  마귀라는 놈이 그 사람에게 죄를 범하게 만듭니다. 요리 조리 꾀 조리를 범하게  만듭니다. 죄는 뭐이 죄인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죄입니다. 죄를 범하게  만듭니다. 죄를 범하기 때문에 죄는 딱 범하면 그 다음에는 이제 제가 들어가서  왕노릇 합니다. 죄 그래 예수님께서 이 세상 임금을 마귀를 임금이라고 말한 것은 이 세상은 죄  안에 있기 때문에 세상은 마귀가 왕이 된 것입니다. 죄의 독은 망치고 죽이는  것이 죄의 독이요 죄가 있으면 제가 안 망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안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있는 그 가정은 망하고 죽습니다. 죄있는 그 사업은 망하고  죽습니다. 죄있는 정신은 망하고 죽습니다. 죄있는 사상은 망하고 죽습니다.

죄있는 지식은 망하고 죽습니다. 죄있는 영광은 죽고 망합니다. 죄있는 개인도  죄있는 가정도 죄있는 사회도 죄있는 국가도 이것은 무엇 때문에 죄 그놈이 무슨  세력이 있어서 모든 것을 그렇게 망치고 죽일 수가 있느냐? 그 배경은 하나님의  심판법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법 하나님이 심판하는 법 하나님이 당신이 법을  만들어 놨는데 이 법에 이렇고 이러니까 이거 어째야 됩니까? 사망이라고  안했습니까? 사망 시킬렵니까 안시키렵니까? 안시킬 수 있습니까? 다리오왕이 파사 나라에서 변치 못할 법을 세워놨는데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은  왕이 한번 명령내렸으면 그 변개할 수 없는 것 명령을 변개했으면 변경했으면  죽이는 것 그 한번 법을 정했으면 그걸 변개 못하는 것 이것이 파사나라의 법  아닙니까? 그러면 왕이 지금 다니엘을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왕이 한번 조서를  내려서 한달동안 딴데 기도하는 자는 사자 구덩이 넣으라고 했으니까 어떻게 할  깁니까? 다리오왕이 왕권을 내 놓기 전에는 안되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죽이기  싫지만은 죽이라 이랬다 말이오. 죽이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다니엘을  사자구덩이 집어 넣지 안했습니까? 이기 법이요.

이러기에 마귀라는 놈이 이 망칠려고 할 때에 거기에 무슨 용호가 있으면 법에  송사를 합니다. 이 법에 이렇고 이러니까 이것은 어째야 됩니다. 심판해서,  심판해서 망치고 죽여야지 항거 못합니다. 거기에서 반대하면 누가 나섭니까?  하나님이 나섭니다. 법의 주인 하나님이 나서 버리요.

이러기에 마귀의 벼경은 죄요 죄의 배경은 율법이요 율법의 배경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마귀는 죄없이는 그것 절단나 버리고 또 죄는  하나님의 심판법이 없어지면 고만 죄는 삐뚤어집니다. 죄가 아주 기운이  펄펄하게 산 사자같이 죄가 이렇게 힘을 가지고 야단을 쳐도 이 죄가 자기가  무엇을 망칠려 하고 죽일려 하고 이러다가 안되면 하나님의 심판법에 가서  고소로 올라갑니다. 죄가 그 사람의 사건을 들고 하나님의 법을 찾아 갑니다.

법이 그 배경이기 때문에 심판법이 배경이기 때문에 그 법에 착 찾아가면 그  법에서 그래 이런 죄를 범하겠으니까 죽이고 망쳐야 된다 하면 그것은 피조물이  항거를 못합니다.

왜 창조주가 창조주가 그렇게 책임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 죄란 놈이  사람을 하나님의 심판법에 끌고 올라갑니다. 올라가서 이제는 승리를 가져  오겠다 하고서 끌고 올라 갔는데 하나님의 심판법에서 끌고 올라가니까  심판법에서 이 법에는 심판법에는 해당치 않다. 이 심판법에는 이 죄는 이  심판법에 해당치 않다. 그 법에서 거부를 당하면 그 죄는 고만 그 자리에서 쭉  뻐들어집니다. 그 자리 쭉 뻐들어지요. 쭉 뻐들어지고 그 죄가 들어서 망칠려  하는 그 사람이 그 죄를 발로 질끈 질끈 밟고도 꼼짝 못하고 쭉 뻐들어집니다.

죄는 쭉 뻐뜰어지요. 심판법이 죽자껀 거 가면 일이 될 줄 알고서 심판법에 가  가지고 이런 죄를 졌습니다. 올라가니까 심판법이 그 죄는 이 심판법에 해당치  않다 하니까 이 죄의 배경이 떡 끊어져버렸습니다.

그 죄란 놈이 항의를 합니다. 어떻게 해서 당신이 이렇게 법을 내놓고 이렇게  이렇게 범죄 했는데 어떻게 이것이 심판법에 해당치 않다고 합니까? 죄의 값은  사망인데 한 죄에 사망 당했으면 그것으로써 그 죄를 범한 값은 다 치뤘지 한  범죄에 두 번 멸망 시킬 수는 없다. 한 범죄에 두 번은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이  심판법에서는 한 죄를 두 번이나 심판할 수 없고 한 죄는 한 번 사망시키지 두  번 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받았기 때문에 그 죄는 심판하지  못한다 할 때에 죄는 뻐드러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떤 죄에 사망의 송사를 받을지라도 그 죄를 가지고 예수님이  대형 대행하신 대속하신 이 공로를 자기가 믿음으로 힘 입으면 벌써 거기에 대한  심판의 법은 해당치 못해서 망치고 죽이는 것은 못합니다. 그러면 죄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음으로 인해서 죄는 그 자리에 죄의 권능 줄이 끊어졌습니다.

죄의 배경에 줄이 끊어져버렸습니다. 죄는 그의 힘이 되는 줄이 끊어져서 그의  생명이 끊어져버렸어. 호랑이가 아무리 용감스럽지마는 그 무섭기가 짝이  없지만은 생명이 딱 끊어져버리면 그만 쭉 턱 버드러지면 그 밟아도 불에 태워도  꾸워도 그만 있는 것입니다. 이것 모양으로 죄가 심판법에서만 탁 끊어지면 죄  그놈은 그만 쭉 뻐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법은 심판법이 있고 하나님이 안보하는 생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 법은 죽이는 법이 있고 살리는 법이 있는데 하나님의 안보의  법 하나님의 생명법 이 생명법을 자기가 연결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생명법에  연결할 수 있는 칭의를 우리에게 입혔고 하나님과 화친의 이 공로를 설정했기  때문에 이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생명법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법에 턱 연결되면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죄를 호롱칩니다. 죄를  이용하게 됩니다. 죄는 제가 싫든지 좋든지 죄가 인간을 해치던 권세는 다  죽어져버리고 끊어져버리고 쭉 뻐드러져 있는데 이제 뻐드러 있는 그 죄를  호롱쳐서 이용 합니다. 죄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죄가 하나님의  안보법에 연결돼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의 그 사람의 움직임은 거기에 관련된  죄는 다 그를 협조해야 되고 옹호해야 되고 수종들어야 되고 유익을 위해서  노력하지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때는 이제 사망도 너희 것이라" 그말은  죄도 너희 것이라 죄도 마음대로 호롱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 현실에서 우리 현실에서 어떤 종류들에게 동참해 가지고  있느냐 하면 우리 현실에는 마귀가 동참해 가지고 있고 죄가 동참해 가지고 있고  사망이 동참해 가지고 있고, 심판이 동참해 가지고 있고 심판법, 하나님의  안보가 동참해 가지고 있고, 하나님이 그 배후에 동참해 가지고 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동참해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 현실에는 마귀 헤아려 보십시오. 마귀, 또 둘째 죄, 셋째 사망, 넷째  하나님의 심판법, 다섯째 하나님의 안보법, 여섯째 뭐라 했소. 여섯째 하나님  하나님, 일곱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이것이 우리 현실속에서 지금 작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은 어떤 현실인가 오전에 말한대로 이 죄의 큰 함정입니다.

죄의 큰 함정이 우리 현실인데 우리 현실은 이런 죄의 함정에도 저런 죄의  함정에도 그 함정에 빠져 가지고 있는 이 죄악의 이 멸망의 함정에 빠져 가지고  있는 나와 같이 있는 것이 몇가지라 했습니까? 같이 있는 것이 몇가지입니까?  일곱 가지, 같이 있는 것이 일곱가지입니다. 일곱가지인데 제일 처음에 나한테  와가지고 접촉을 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마귀가 접하는 것과 믿는 사람에게  마귀가 접하는 것이 다릅니다. 안믿는 사람에게 마귀가 접하는 것은 왕권을  가지고 접사기 때문에 절대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속을 받은 자에게는  왕권은 가지고 접하지를 못하고 패잔병같이 이렇게 침노하고 침범하는 침노  침범하는 이런 마귀로 우리에게 침노합니다. 우리를 침범하려고 날뜁니다.

그러나 그 마귀는 왕권을 가지지 못한 마귀라는 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왕권을 가진 거는 최종까지 권능을 권능 행세를 할 수 있지만은 최종까지 권능을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거는 왕권 안 믿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왕권을 가졌습니다. 최종까지 왕권을 행세할 수 있는 권위가 있습니다.

아무도 방해 못합니다. 하나님도 방해 못합니다. 그런 왕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왕권은 예수님의 마귀를 이겼기 때문에 마귀가 예수님에게  점령을 당해서 예수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이 마귀는 예수님의 부리는  것이므로 예수님이 정한 한계 내에서 제가 활동을 하지 그 이상을 벗어서 자유  행위를 못합니다. 거기에 따라서 활동하지 그 수권 범위 내에서 활동을 하지  그가 절대성인 그런 활동권이 마귀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와가지고 우리를 침노를 합니다. 침노를 할 때에 우리가 그  침노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 죄를 범하면 예수님이 단번에 구속하신 이 구속은  헛일이 되고 맙니다. 단번에 구속하신 구속은 고 현실에 관련된 자에게 대해서는  한번 구속이지 두번 구속이 안됐기 때문에 한번 유혹받아서 범죄해 버리면  이것은 구속받았던 데에서 다시 마귀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마귀의  부하가 되고 마귀가 왕노릇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걸 가리켜서 그걸 가리켜서  둘째 사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마귀가 와가지고 우리를 침노하지마는 마귀가 침노할 때에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여기에서 계속하고 마귀의 침노의 그의 미혹을 받아 다시  주님의 구속받은 것이 구속을 벗어버리고 그에게 타협을 해가지고 마귀와  합작되지 안하면 그 기회만 지나가버리면 고 기회에 관련된 것은 마귀는 다시는  손을 못뎁니다.

이러니까 그게 영생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침범하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죄가 와서 침범을 합니다. 죄가 와서 침범을 할때에 이 죄가 와서  침범을 하면서 그 죄가 하나님의 법에다가 송사를 합니다. 법에다가 송사를 할  때에 우리가 이미 죄 가운데 있는 그것을 이 죄 가운데 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죄가 하나님의 법에서 송사를 해 가지고 우리를 사망케  하려고 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법적으로는 됐지마는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그때에 우리의 죄의  심판법은 예수님이 대속의 심판법에서 다 이것이 벌써 해결되고 면제됐기 때문에  믿을 때에 우리의 행동으로서는 죄가 관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이 심판법에서 대속한 이것을 자기가 믿지아니하고 믿지  아니할 때에 그때에 법적으로는 사죄를 받았지마는 실상으로는 그 대속을 믿지  않기 때문에 다시 죄에게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속한 첫 죄가  아니고 죄에서 사죄를 입은 것이 사죄입은 것을 벗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옛날  죄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것은 두번 죄 가운데 빠진게 되겠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우리가 그 현실에서 죄 문제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의거해  가지고 사죄받은 것을 믿을 때에 사죄 받은 것을 믿어 나는 사죄받은 자라 하는  것을 인정해 죄 없는 자로 인정을 하고 고 다음에 하나님의 보호법 하나님의  생명법 그 법에 복종할 때에 그 법이 무슨 법이냐 자기 현실에 신구약 성경  말씀이 주시는 그것이 안보법인데 정죄 법에서는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공로로서 그 해방을 받고 안보법은 신구약성경 말씀에 네가  이렇게 하면 살리라 하는 그 말씀에 법이 있으니까 그 법을 내가 의지해서 그  법을 힘 입습니다. 그 법을 내가 힘 입을 수 없는데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이  있기 때문에 그 법을 힘 입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생명법이요. 안보법인데 고  법으로 법으로 대략 윤곽을 찾습니다. 더듬어서 이 법을 가지고 대략 많이  삐뚤어진 데에서 바로 찾아 들어옵니다.

이러다가 거기에서 생명에 접선되는 것은 이제 영감의 법 자기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영감법을 만나 가지고 그 법을 힘 입어서 그 법과 접선이  될 때에 그때는 생명의 법에 접선이 됐는고로 고 다음부터 생명법으로 활동할  때에 그 죄는 내게 이용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죄가 그 죄의 행동이 결과적을  나를 위하는 죄가 되고 높히는 죄가 되고 섬기는 죄가 되고 유익되게 하는 죄의  결과를 맺지 그 죄가 아무리 여기에서 아무리 활동해도 그 죄는 내 군대로 내  이용물로 나에게 그 필요있는 것으로 결과를 맺고 말지 해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현실에 이 일곱가지가 한테 있어 가지고 이 현실에서 영생을  취하느냐 영원한 사망을 취하느냐 하는 이 두 가지가 현실에서 결정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현실에 결정나는데 이 결정이 한번 지고 또 두번이 하는 것 아닙니다.

단번 결정입니다. 전부가 단번 결정이요. 그러면 고 현실에서 이 현실 속에 이  일곱가지가 한테 이렇게 석여 가지고 지금 활동을 하는데 요 현실에는 활동해서  고기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 요소가 이것이 생명법에 연결되면 사망법은 볼 일 다  봤습니다. 생명법에 연결만 되면 마귀도 이제는 절단났고 죄도 절단났고 사망도  절단났고 다만 생명법에 연결되면 거기에는 완전, 영생, 무궁, 불변, 하나님 요  진리 요거와 연결이 되는 것으로써 끝을 마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보호를 입은 자를 죽일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보호를 입은 자를 죽이지 못합니다. 망치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의 법이  보호 하셔서 보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보장을 하고 보호를 하고 책임을  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서 보호와 보장과 책임을 지은 이것을 아무도 죽일  자가 없습니다. 왜, 그는 법만이 아니고 법에 법의 주인공인 그 입법한 법의  주인인 법의 권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책임졌기 때문에 법에 법에  정죄받지 안하고 법이 정죄하지 안하고 법이 인정하고 법이 책임지고 법이  보호를 하고 법과 하나가 된 그것을 죽이면 법도 죽고 하나님도 죽습니다.

하나님도 죽을수 없고 법도 죽을 수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믿으면 법이 없어지는 것 아니요. 이제 믿기  전에는 이 법이 우리에게 심판의 법 사망케 하는 법이 됐지마는 이제 믿고 난  다음에는 이 법이 우리에게 생명법이 되어지는 것인데 우리가 이 구속을 벗었을  때에 우리는 사망의 법에 속한 자가 됩니다. 이 법은 사망으로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속을 벗지 않하면 이 법은 생명법이 되어서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보호해서 우리를 존영케 하고 우리를 성공케 하는데에 이  법은 역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그 현실에서 예수님의 사죄와 동행할 때에 죄가 해하지  못합니다. 칭의와 동행할 때에 불의가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결합의 이  친밀에 있을 때에 그 하나님과 원수된 것들에게 역사하는 그것이 하지 못합니다.

그 현실에서 이 진리와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에 이 때에 그는  아무 것도 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이 세 가지 구속과 진리와  하나님과 자기가 하나가 됐을 때에 하나가 됐을 때에 세상적 어려움은 옵니다.

세상적 어려움이 왜 오느냐, 오는 이유는, 세상이 저하고 한덩어리 아니라고  죄하고 한덩어리 안됐다고 불의하고 한덩어리 안됐다고 하나님의 원수의 편에  서주지 않는다고 이 진리와 하나되지 않는다고 제것이 아니라고 저와 한편이  아니라고 그들이 미워하고 해합니다. 미워하고 해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그것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해하는 것은 우리를 미워해서 해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미워하고 해하는 것이 아니고 사죄가 밉고 칭의가 밉고 하나님과 결합이  밉고 진리가 미워서 그것 때문에 우리를 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에 주님의 사죄 칭의 화친 이 진리 이와  내가 한덩어리가 되어서 거서 떨어지지 안하려고 하면 마귀라는 놈이  처음와가지고 살살 꼬옵니다. 달겝니다. 야 너 그만 너 사죄고 뭐이고 그이가  죽었는데 그이가 예수님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너거 죽를 담당해 그 말같지 않는  말하지 말아라. 죄는 지은 대로 되는 것이다. 그 사죄를 믿지 마라. 칭의를 믿지  마라. 하나님과 결합되 하나님이 너거 지금 하나님의 진리의 법을가지고  말하지만 그 법을 그만 버리 버리라 꼬웁니다. 하나님이 뭐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너하고 함께해 그 엉뚱한 소리 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는 것을 부인해라. 자꾸 이렇게 꼬아 재낍니다.

이 마귀라는 놈이 이렇게 우리를 해하지는 못하고 살살 달겝니다. 꼬웁니다.

난중에는 협박을 합니다. 우리를 해합니다. 해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데 죄 아래 것이 있습니다. 그의 것이 있습니다. 죄 아래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몸이 죄 아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죄 아래 있어. 우리 마음이 죄 아래  있어. 우리 소유가 죄 아래 있어, 마귀 그놈들이 세력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구속으로 법적으로 우리를 구속해 놨지마는 영은 완전히  구원했지마는 이 심신의 육은 완전히 구원하지 않하고 이 심신의 육 이것은  아직까지 죄 아래 있습니다. 죄 아래 있기 때문에 마귀라는 놈이 흔들 수  있습니다. 잡아 흔들 수 있어. 그럴 때에 너 이러면 네 재산 다 뺏들겠다. 그  뺏드는 일을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왜 그것은 제가 권세가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속을 입지 아한 돈이요 구속을 입지 안한  사업이요. 예수님을 입지 못한 몸이요. 예수님의 구속을 입지 못한 지위 권세  명예요. 또 이것이 입은 것도 있고 안 입은 것도 있습니다. 입은 것은 어떤 것이  입은 것이냐? 입은 것은 어떤 현실에서 현실에서 마귀라는 놈이 시험을 해서  마구 없앨라고 깨트릴려고 죽일려고 있는 힘을 다했는데 저거 할 방법대로는  다했는데 방법대로는 다해도 하나님이 없어지지 않게 하니까 저거 할대로는 다  했지마는 그래도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저거 할대로 다해도 남아 있는 것이요.

이거 뭐이지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위하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면 이거 죽을 것입니까? 죽음에서 살아난  것입니까? 죽음에서 살아 나온 것입니다. 이것도 살아 믿는 것입니다. 이거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사업이라는 그 사업이 안죽는다는 말이 아니고 그 사업의 기능이  안죽습니다. 그 사업의 기능은 영원히 제가 가지고 갑니다. 돈을 하늘 보배 그  창고에 쌓았다 하니까 만원짜리가 천원짜리가 그 하늘 곡간에 가는것 아닙니다.

돈의 기능 그 물질의 기능이 물질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물질의 기능 그 힘이  영원히 무궁세계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물질의 그 권위성을  제가 가지고 사용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그가 여러가지 협박을 합니다. 협박을 할 때에 요걸 좀 알아야 되는데  요한복음 15장 18절 내가 읽어봅니다. 들어 보이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세상이 우리 미워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  그런게 아니라 주님이 미워서 그럽니다. 주님이 미워서 주님에게 속했다고  지금이라도 주님만 떡 배반하면은 아주 좋아하고 친밀합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알라. 19절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터이나" 우리가 세상에 속했으면 그러면 주님의  구속과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고 세상에서 속했으면 우리가 안 믿을 때는  세상에 속하지 안했습니까? 안 믿는 사람 세상에 속하지 안했습니까? 세상이  저거 편이라 말이요. 저거 부하라 말이오.

그러니까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키리라" 이렇게 우리가 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이 현실에는  일곱가지가 지금 한테 지금 작용을 해서 일곱가지가 한테 마구 섞여 가지고 이래  좀 작용을 해가지고 결말을 냅니다. 여기에서 영원한 판결이 납니다. 여기에서  영원한 판결이 나요. 판결이 나는데 거기에 이용되는 이 만물들은 가슴이  도근거려서 마구 탄식하면서 지금 발발 떨고 있습니다. 왜 거기에 이용된 그  만물이 내가 세상을 끊으면 하나님과 합해지고 세상과 합해지면 하나님이  끊히지고 하나님 끊히지면 아무리 눈 앞에 있고 좋고 환하게 살아 있어도 영원히  죽고 이제 세상과 끊고 하나님과 합해지면 눈 앞에 없어져도 영원한 것으로 있게  됩니다. 그것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만물도 탄식을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때에 현실에서 마귀라는  놈이 우리를 꼬웁니다. 또 이제 범죄하라고 꼬웁니다. 그럴 때에 마귀라는 놈이  와서 우리를 괴롭혀도 죄만 짓지 안하면 마귀라는 놈은 꼼작 못하고 꼼작 못하고  죄만 짓지 안하면 마귀라는 놈은 꼼작 못합니다. 아무리 우리 해하려 해도 죄만  안지면 꼼작 못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의를 싹 행하면 마귀는 딱 오그라들어  가지고 시키는대로 해야 됩니다. 네 우리의 현실에는 마귀가 왕노릇은  못하지마는 역사합니다. 뭐할려고 역사합니까? 둘째 사망에 혹 수입이 있을까  싶어서 역사를 합니다. 절대성 권리는 없다 그말이오.

로마서에 보면은 "사망이나 이 죄나 왕노릇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해  놨습니다. 마귀가 와가지고 이래할 때에 우리가 죄만 안 지으면 마귀는 우리에게  손을 못댑니다. 달게다가 위협하다가 자꾸 이렇지 손은 못데요. 이러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의롭게 행동할 때에 마귀는 패전했습니다. 고  현실에서는 패전했습니다. 고 현실에서 우리는 마귀를 이겼습니다. 고 현실 고  부분적으로는 고 개별은 마귀는 영원히 고면으로써는 우리의 수종을 영원히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죄가 와가지고 이제 다른 죄가 말합니다.

네가 아무때 죄짓지 안했나 아무때 그전에 지은 죄 모든 죄를 다가지고 막  드리댑니다. 요런데 빠지면 안되요 현실로 닥칠 때에 마귀라는 놈이 와가지고 날  죄짓도록 자꾸 죄짓는 것 하나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죗짓도록 할 때에 내가  죄를 짓지 안하고 있으면은 이 죄란 놈들이 와가지고 뚤뚤 뭉치가지고 날  괴롭힙니다. 네가 아무때 무슨 죄를 지었지 무슨 죄 짓지 안했어. 네가 그런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너와 같이 할 줄 아나 네가 뻔뻐 스럽게 이런 죄 저런  죄 마구 모든 죄 뭉텅이 죄뭉텅이가 다 닥쳐 와 가지고 말합니다. 송사를  합니다.

그럴 때에 이제 오는 그 모든 죄를 과거에 그 모든 죄를 이것을 단번에 아주  단번에 물리친 것 그 뭐라 하더라 운동할 때에 뭐 이 저 물리친 것 뭐라 하요.

캔준다 하나 뭐라 하노. 이 시합하다가 시합하다 이젠 뭐 이기면 꼴꼴꼴 하던가  뭐 그 물리쳐서 말이지. 격퇴를 한다 말이오. 이 모든 죄악이 와 가지고 우리가  달라 들때에 그걸 어떻게 격퇴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격퇴할 수가 있소? 과거  모든 자기 아는 죄를 다 이 죄가 뭉치와 가지고 너는 이런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와 같이 하지 않해. 너는 이 죄의 값을 받아야 당연하지 않느냐?  네가 지은 죄 값을 받아야 되지 하면서 이렇게 송사할 때에 그때에 우리가 뭘로  그것을 단번에 한 마디로 탁쳐서 말이지 저 뚝 떨어지도록 어 보니까 권투할 때  보니까 이 못하는 사람 오랫동안 신강이 하지만 어떤 사람 한 주먹에 물리치는  것 뭐라 하더라. 나는 영어를 몰라서 뭐 키로, 그 나는 모릅니다. 이래 단번에  한 마디로 탁쳐서 물리치니까 그 뚝 떨어져서 가버립니다.

이 모든 마귀가 와 가지고 나를 자꾸 요래 꾀우고 조래 꾀우고 달게다가 이렇게  이렇게 협박을 주다가 이제 죄가 와 가지고 그래 합니다. 오는데 마귀 요놈이  오는데 마귀 요놈 이기는 법을 이제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나는 아무리 해봐도  내가 고 현실에서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고놈이 꼼작 못하요. 하나님  명령대로 순종하는 그놈은 내 앞에 종이 되버렸습니다.

모든 죄가 와 가지고 가결 지은 죄가 와 가지고 네가 이런 죄가 있는데 이런  죄가 있는데 내가 뭐 의논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것이라고 네가 뭐이 될  거라고 바라보고 그런 소리하고 있느냐? 네가 이런 죄짓지 않았느냐 할 때에  그때에 그 죄에 대해서 송상석 목사님이 설교할 때에 그 뭐라 하더라. 그  꼴하던가. 뭐 해요. 뭐라 하는지, 나는 뭐라고 케이오, 케이오가. 케이오, 자  케이오. 그 단마디로 케이오 왜 합시다 말이오. 이런데 이게 뭐이냐? 어떻게 그  모든 죄를 케이오할 수 있습니까? 뭐로 할 수 있지요.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떡 말하기를 죄의 값은 뭐이지 사망이지 그 네가 사망해야지 그러면 한번 범죄에  한번 사망하면 되지 한번 범죄에 몇번을 사망해야 되느냐? 한번 범죄에 한번  사망하지 그러면 주님이 대속해서 사망한 거는 어쩔긴가? 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을 때에 그 죄는 그만 케이오가 됩니다. 고만 거서 도망쳐 버려, 그러고 난 다음에 이제는 심판법이 그거는 심판법이 이놈이 심판법을 이용하려고  죄를 가지고 와서 이러는데 그때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부인하면 심판법에  딱 걸리버립니다. 네, 대속의 공로를 부인하면 심판법에 걸려 심판법에 걸리면  그 죄로 권세를 부립니다.

죄로 권세를 부려 죄의 권세는 죄의 세력은 뭐이지요? 죄의 그 죄의 그 법은  뭐이지요. 죄의 독이 뭐입니까? 죄의 독은 사망입니다. 녜, 죄의 독은  사망시키는 것이오. 그때 부인하면 사망받는데 사망 받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헛일인 사망입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배반하고 둘째 사망입니까?  둘째 사망이라 말이오. 부인하면 죄로 부인하면 사망 받아요. 그때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으면 심판법이 심판법을 의지하고 이 죄가 와 가지고  송사를 왔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을 때에 그것들이 바라고 왔던  심판법이 나는 그 손 못덴다. 심판할 권세가 없다. 네가 당한 송사는 무효다 할  때에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네가 하나님의 안보 생명의 이 법 영감과 진리의  법으로써 네가 이렇게 해라! 할 때에 예하고 순종하면 그 다음에 나는 생명되고  그 모든 것은 사망해서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 현실에서 이것을 알고  우리 현실 현실마다 거기에는 마귀가 들어있고 죄가 들어 있고 사망이 들어 있고  심판법이 들어 있고 생명법이 들어 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들어 있고  이렇게 그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이 현실에서 이것을 잘 알고 뭐 우리의  승리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승리는 꼭 현실에만 있습니다. 현실 밖에는  우리 승리가 없어. 우리 현실 밖에는, 그러기 때문에 이 현실은 어떤게 현실이냐? 자기에게 감옥이 오든지 영광이  오든지 천대가 오든지 배가 고픈게 오든지 병이 오든지 우리에게 닥쳐지는 그  모든 것은 이 싸움에서 이 시비에서 영원히 결정되는 이 일을 그 안에서  역사하는 고 공장이요 그 법정이요 그 전쟁터이요. 그 시합장입니다. 우리  현실은 오묘 한 현실이요. 그러기 때문에 요 현실에서 요것을 깨닫고 마귀라는  놈이 우리에게 먼저 온다는 것 죄가 그 다음에 온다는 것 그 다음에 심판법이  우리에게 온다는 것 예수님의 공로로 대번에 그만 단번에 케이오 된다 말이오.

얼마나 재미 있소. 예수님의 공로만 입으면 과거 현재 미래에 모든 내 범죄를 다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범죄하지 안하면 나는 죄가 없다. 알아  듣겠습니까? 과거에 범죄는 날 갖다가 하지 못한다. 지금 내가 범죄하면  하지마는 내가 사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의를 행하면 의로 되어진다. 이  의를 입었기 때문에 의를 벗지만 안하면 된다. 그래가지고 이 심판법에서  예수님의 공로로 심판법에 해방을 받고 영감과 진리의 인도의 이 믿음 법에서  다시 하나님의 생명법에 옹호를 받고 이러면 이제는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법에서 정죄한 자를 면제시킬 수 없고 하나님의 법에서  보장하는 자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는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죄의 문제, 마귀의 문제, 의의 문제, 영생이 문제, 영원한 사망의  문제, 하나님과 결합된 문제, 하나님과 원수되는 문제, 모든 피조물를 내것을  삼는 문제, 모든 피조물들에게 밟히는 그 천물이 되어지는 문제, 내게 있는 나의  관련을 가진 이것을 영원히 나의 것 만드는 문제, 내게 있는 나와 관련을 이것을  영원히 나와 이별해서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는 문제 이런 문제가 우리 현실에  매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소.

이것은 이 세상 어떤 방편 가지고도 이거는 해결 못짓습니다. 마치 노아 홍수  때에 그때도 과학도 있었고, 예술도 있었고, 문화도 있었고, 강대국도 있었고,  미도 있었고, 사업도 있었고, 인간의 선도 있었고 막 그런 것이 수가 지금이나  그저 종류는 거의 같을 만침 다 있었지마는 하나의 효력도 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도 그 홍수에서 효력을 못내고 구원하지 못했어. 아무 필요 없었어.

홍수에서 하나도 구출하지 못했어.

다만 그 홍수로 구출하는 건 뭘 구출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만들어논 것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만들어논 그게 뭐입니까? 홍수의  피난하는 그것을 만들었지 홍수에 피난한것 우리 현실에서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공로로 이 세 가지 문제는 해결을  짓고 그 세 가지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 안되요. 죄의 문제를 제가 암만해도 해결  못지워요. 의의 문제를 해결 못지워요.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해결 못지워요.

이 큰 문제를 예수님의 공로로 해결짓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 공로를 입은  자에게 보증자가 있으니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공로 이 세 가지 보증인데 이  공로를 도우심을 받으면 이제 그것이 이 현실, 홍수같은 이 현실에서 그 멸망을  피하고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노아가 다른 사람은 홍수로 멸망을 받았는데  노아는 홍수로 인해서 천하를 차지했습니다.

노아는 홍수를 만나서 천하를 차지했소! 다른 사람은 홍수로 인해서 다 멸망  받았는데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한 심판이기 때문에 그들이 준비한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방주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준비한 모든 것은  자기네들을 멸망시키는 그 결과를 맺었습니다. 멸망시키는 결과를 맺었고 다만  이 방주만이 그들을 구원시키는 구원을 만들었고 그러면 이 홍수가 들어서  그들은 멸망하고 노아는 구원했는데 구원만 했습니까? 이 홍수는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노아가 다 차지했습니다.

아마 그때 홍수가 척 지나고 나니까 지면에 온기가 돌아오니까 그만 일년동안 물  속에 있어 가지고 이리 됐으니까 아마 포도 넝쿨이 이 팔뚝 같이 올라왔을거라.

인자 쑥 올라오고 올라오디마는 포도가 열고 밑에 있는 모든 생명가진 것만  절단났지 코에 호흡을 가진 것만 절단났지 호흡가지지 안한 것은 하나도  절단나지 안하고 일년동안 가만히 요이 하고 있다가 홍수가 뚝 그치니까 확  나왔으니 아마 그때에 포도 한송이는 괭장히 컸을 것입니다. 그 천하를 상속 다  받았어. 홍수가 그의 우리의 현실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 홍수 한 가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홍수 심판을 받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현실에서 이 현실에서 이 방주를  만들면 그 현실을 통해서 모든 것을 자기 것 만드는 것이 되고 이 현실에 방주  만드는 거와 같이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 예수님의 공로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이 성령과 물과 피, 피는 예수님의 공로인데 예수님의 공로로 인한 진리 하나님  이 세 가지로 인해서만 이 현실에서 피난을 하고 피난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걸  다 받아버려. 하늘의 것과 땅에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소.

그러나 요 현실에 노아가 방주 만들듯이 요렇게 하면은 자기가 멸망도 안 받을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자기의 것이 되지마는 그 현실에 성령, 물, 피 요 세  가지의 보증을 받지 안하고 요걸 힘 입지 안하고 요 현실에서 구원하려고 하지  안하고 그 외에 현실에서 자기는 명철한 지혜를 쳐 가지고 권세를 잡았다. 아주  자기는 용감을 가지고 큰 사업을 했다. 자기는 명철한 지혜와 열심을 가지고  세계에 명망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방편으로 뭐 많지요. 이렇게 성공 저렇게  수많은 성공 힘 꽉 찾지요.

이십세기 과학 만능 강대국 뭐 크든지 작든지 홍수 올 때에 모조리 홍수에 다  매장된 거와 마찬가지로 요 현실에는 어떤 것이든지 요 현실에 이 세 가지 역사  세 가지 역사 나누어서 분리를 말하면은 일곱가지 우리 일곱가지 말했지요.

일곱가지 세 가지 역사 요것으로만 고 현실에 피난도 되고 점령도 되지 취득도  되지 요 세 가지 외에는 어떻게 좋은 방편 썻든지 나쁜 방편 썼든지 열사람이  찬성하든지 만사람이 찬성하든지 세계가 찬성하든지 간에 모조리 요 세 가지  역사 외에 성령 물 피 요 세 가지 방편으로 구원하고 외에는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대학자가 됐든지, 명철하든지, 용모가 아름답든지, 미인이든지  미남이든지,온 가정을 만들었든지,뭐 재미가 있든지 많든지,무슨 상을 받았든지  노벨상 뭐 어쨌든지,강대국이든지 어떤 세력가든지 모조리 고거는 도매금으로 다  멸망입니다. 홍수로 멸하는 것처럼 전부 멸망입니다. 요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요 현실에서 썩은 것을 썩지 안하도록 살리 수 있고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살릴 수있고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릴 수 있고 이 모든 시공에  제한 받는 혈육의 것을 시간을 시간을 초월한 신령한 것으로 구조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요거 우리 현실 싸움인 것입니다.

그래 현실은 요 참 오묘하고 또 큰 것을 지금 좌우하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이라는 것을 큰 것을 좌우하고 있어요. 좌우하고 있는데 이 현실은 뭣뭣이  있는가 하는 것을 이제 오전 오후에서 말했습니다. 죄 마귀는 죄의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만 없으면 마귀는 그만 뻐들어집니다. 마귀를 죽여서 쫓아  낼려거든 죄를 없애버리십시오. 죄 그놈은 죄 그놈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만  끌어다 붙이면 하나님의 심판 법에는 심판법이 옹호하니까 죄 그거는  뻐들어집니다.

죄를 뻐들트리고 난 다음에는 생명의 절대적인 보호를 입을려거든 이 주님의  공로를 인한 성령 진리 피 주님의 이 보호의 법 생명의 법 책임의 법 안보의 법  이 법에 내가 속해서 이 법하고 하나가 되면 안보법 생명법 하나님이 책임진  책임법이 법은 하나님이 책임지기 때문에 이 법과는 하나만 되면 우리는  그것으로 승리로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 우리가 다칠 때에 우리를 미워하거든 나를 미워하기보다  먼저 주님의 사죄를 미워한 줄 아십시오. 칭의를 미워하는 줄 아십시오.

하나님과 화친을 미워하는 줄 아십시오. 진리를 미워하는 줄 아십시오. 예수님을  미워하는 줄 아십시오. 하나님을 미워하는 줄 아십시오. 미워해서 그를 못  때리니까 그를 때리지 못하니까? 우리를 때리 가지고 그 떨어지라고 때립니다.

우리를 때리 떨어지라고 때리요. 떨어지라고 때리는데 우리가 떨어지라고 우리를  때릴 때에 우리가 착각하면 안됩니다. 내가 맞는 것은 진리가 맞는다 진리하고  나하고 같이 맞는다. 주님의 공로하고 같이 맞는다. 또 하나님하고 나하고 같이  당한다. 내가 주님의 세 가지 공로와 함께 매맞고 고난 받고 진리와 함께 매맞고  고난 받고 하나님과 나와 함께 매맞고 고난 받고 같이 한덩어리 되기 때문에  한덩어리 됐기 때문에 때립니다. 때리도 내가 떨어지도록 하는 제 수단 방법 제  힘에 그 있는 대로는 다해도 내가 떨어지지 안했으면 나는 하나님과 진리와 이  공로와 하나 됐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과 진리와 이 공로와 함께 삽니다.

그가 영광 받을 때에 내가 같이 받고 그가 존귀 받을 때에 내가 존귀받고 그가  세력 부릴 때에 내가 세력부리고 그가 유혹 받을 때에 내가 유혹받고 같이 받고  같이 받아 함께 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이렇게 이거 떨어지라고 오른 편에 여기에 떨어지라고 그  떨어지라고 때리는데 해하는데 그들이 해하는 것은 떨어질만침 할 대로 다해도  안 떨어진 것 있습니다. 죽일만침 다했는데도 안 죽는 것 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불로 태우면 죽는 것 아닙니까? 그들은 죽일대로 다 했소. 다 했는데  죽지 않는 것은 저들이 안죽일려고 안죽 것이 아니라 더 죽일 힘이 없어. 저거  힘으로는 다 죽일대로 다 했는데 안죽었어. 사자구덩이 넣은 것도 그러합니다.

안죽고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과 진리와 안떨어질려고 함으로 그들이 있는 방편  다해서 없어지도록 절단나도록 죽도록 해도 하나님이 절단나지 않게 하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공로와 하나가 되가지고 그들이 해할 수 없는 자로 세상에 남아  있습니다. 세상에 남아 있는 것 이것이 살아 믿는 자입니다. 이게 살아믿는  자요. 또 그들이 해할 때에 그들이 해할 때에 받아서 없어질 거는 없어질 때가  닥쳤으니까 없어진 것입니다. 같이 있습니다. 그가 임하실 때에 같이 임함니다.

또 그들이 해하고 하나님이 세상에 더 두니까 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살아서 믿는 것인데 이것은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외형은 죽지마는 그  기능은 죽지 않습니다. 그 기능은 살아서 예수 믿는 기능을 역사합니다.

그러기에 그는 성령과 동행하는 그러기에 사람이 하나님과 진리와 이 예수님의  공로와 동행하는 이 세상에 동행하는 요소가 많은 사람 있고, 적은 사람있고,  동행하는 힘이 강한 사람있고, 동행하다가 세상에서 끝난 사람은 세상 역사는  끝나버렸고 무궁세계 가서만 살게 되고 이것이 떠나지 안하고 남아 있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세상에서 살아서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고난을 받은 자는 벌써 죄에서 끄쳤느니라. 죄에서 끊어졌느니라 죄와  이별 했느니라. 이러기 때문에 살아 믿는 그와 떨어지기 위해 세상에 할 대로  다해도 해하지 못한 것으로 세상을 이기고 남아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은 세상에서  후에 강하게 되고 남아 있는 이것이 적은 사람은 세상에서 의를 행한 데에  약하게 됩니다. 남아 있는 것은 적지마는 세상을 떠나서 간 것이 많으면  세상에서 역사할 때는 빈약하지마는 부활을 할 때에는 그것이 다 나타나기  때문에 무궁세계에는 강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그래서 없어져 이 생명에 생명과  하나가 되가지고 없어짐으로 승리한 그것은 그의 세력과 그의 활동이 예수님  재림 때에 부활 후부터 역사하고 세상이 할 때에 세상을 하나님이 이기게 하셔서  세상에 남겨둔 그것은 세상에 있으면서 생명 역사를 합니다.

우리가 그러면 구원 얻은 요소 중에 세상에 남아 있으면서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으로써 생명 역사를 하는 그 부분도 있고 세상에서는 남은 역사를 하지  못하지마는 부활할 때에 무궁세계에서 역사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우리가 이  생명에 속해서 구원 얻은 것도 있고 이 두 가지를 가진 것입니다.

하나는 영원에만 있고 하나는 영원과 현실에 이 역사를 할 수 있는 자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현실을 당할 때에 요 현실은 일곱가지가 역사를 하는데  고 순서도 이기는 방법도 또 고것이 어려움을 당해도 뭣 때문에 어려움을  당합니까? 세상에서 멸망에서 나오는 어려움이요. 거기에서 그 탈피하는  탈출하는 어려움이요. 생명으로 들어가는 어려움이요. 이러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필연적으로 있을 어려움인데 그 어려움에 대해서 종이 되지마라.

어려움의 종이 되지 말고 뭐이냐? 하나만 각오하면 되요.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없어지기를 두려워하는 고것만 각오하면 되요.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없어지기를  두려워하는 고것만 각오해서 없어져 이겨도 영생이요 없어져 이기는데 하나님이  둬두면 세상에서도 복음 역사를 할 수 있는 것이요. 어쨌든지 없어져 이기든지  세상에 있어. 이기든지 이기는 것은 우리는 세상 악령과 죄악의 그 멸망 속에  거기에서 벗어나오자 하는 고거는 있어야 이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악령과 죄악 속에서 있는 이것을 부인하고 거기에 있기를  싫어해야 됩니다. 거기에서 있지 안하고 거기에 있기를 싫어하고 거기에서  있기를 싫어하고 거기에서 떠나기를 원했는데 떠나는 것도 있고 원했는데 떠나지  안하고 있는 것은 벌써 세상을 이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있어도 세상에서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마귀와 죄가 와서 시험을 하지 못해요. 시험이 와도  벌써 사선을 넘었기 때문에 그는 해하지 못해 살아있는 것으로써 산 생명의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깨닫고 우리 현실에는 별별 모양의 것이 있는데  현실을 닥칠 때에 우리가 그러면 얼마나 어떤 멸망의 함정 속에 들어 있느냐?  고것을 고 다음에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보면은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종류는  거의 다 말해놨습니다. 멸망의 함정 나는 요 멸망에 함정 속이니까 요게서는  어떤 멸망이 올 것이고 요게서는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요  멸망에서는 요렇게 해야 구원을 얻는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참 세상에 이  물질세계에서 물리에 맞추어서 해야 그 무엇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 물리가  아니고 신령한 위치 과학의 주인공인 이 사람이 영생하는 이치 창조주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의 대리자인요.

이 구속받은 자들과 여기에 연단물로 둔 죄 마귀 사망 이 여섯가지 일곱가지가  한테 들어 섞여 가지고 이 복작거리는 여기에서 우리는 이것을 이기고 나는  이것이 뭐이냐?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건너서 저 어린양 섰는 시온산에 서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영원한 큰 싸움있는 걸 모르고 세상에 있는 뭐 두고갈 것 이런 것을 보고서 지금  분망해서 하는 우리 어리석은 사람 되지 안해야 됩니다. 이 싸움만 싸우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그것은 너희 천부께서 아시느니라. 이것을  자기의 전공을 삼아서 할 때에 그 모든 걸 하나님이 더해 주신다고 하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 봅니다.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 결과를 자기가 체험할 수 있고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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