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2:03
선한목자
1984. 7. 1. 주새
본문 : 요한복음 10장 11절∼12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과거 신사참배 때 참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내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그 생명을 거두지 안하십니다. 순교는 안 했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도를 믿고 하나님께 대한 바라보는 것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이런 소망을 가지고 이것을 양떼에게 주어서 양떼의 양식이 되고 양떼의 소망이 되고 힘이 되는데, 만일 그럴 때에 자기들이 하나님을 전능의 아버지로 믿지 못하는 것 또 하나님의 계약을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고 증거는 해 놓고 믿지 못하는 것, 또 하늘나라를 위해서는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서 믿음 생활 하는 것이 그것이 구원 이루는 것이라고 말로는 증거해 놓고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에 다 자기들의 신앙을, 신앙의 정조를 팔고 변질이 되면 그 양떼에게 이제까지 가르치고 권한 것이 다 헛일이기 때문에 그때에 첫째는 주님을 위해서, 둘째는 양을 위해서, 셋째는 자신을 위해서 다 그렇게 생명을 아끼지 안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그렇게 한 사람들은 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또 외국 나라로 도피하기도 하고, 혹 목회를 하면서도 갇히지도 안하고 외국으로 도피도 안 하고 신사참배를 하지도 안하고 그렇게 나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또 특별히 그런 사람은 그렇게 취급하셨던 것입니다.
그랬는데. 어려움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뭐 신사참배는 일계명 어긴 것이요 이계명 어긴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당하니까 다 그래 하면서 그 사람들은 말하기를 '내가 계명을 지켜서 감옥에 가서 갇힐 것이로되 내가 갇히면 이 양떼를 어찌하노? 그러기 때문에 나는 양을 위해서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내가 신사참배를 했다.' 이러니까 어리석은 양들은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 듣는 양들도 있습니다. '아 그래, 뭐 자기 구원만 좋은 구원 이루려고 그만 그렇게 신사참배 안 한다고 해 가지고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 가족들도 다 굶어 죽을 지경이고 교인들도 그런데, 자기 몸만 위하는 목자라.' 그렇게 마귀들이 해석을 하니까 그런 해석을 또 옳다고도 다 듣고 있었다 이거요.
그러나 그때에 한국 교회는 다 신신학으로 다 넘어가 버리고 한국에는, 한국 교회는 하나님이 같이 하는 종들이 많지를 못했습니다. 전부 다 정조 팔아서 그라고 난 다음에 그들이 시키는대로 뭐 별별 꼭두각시 노릇을 다 했습니다.
여기 송도 앞바다에도 가 가지고, 여기 경남에 있는 목사들은 전부 다 거기 가 가지고 천조 대신 이름으로 다 새로 세례 받았습니다. 다 세례 받았습니다. 그것 전부 그게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워 벌이나 받지 뭐 하나님이 같이 할 것입니까? 그러나 그때에 한국에서도 신사참배를 이긴 종들이 있었습니다.
이기고 '목숨을 빼앗겨도 하나님의 진리를 어기지 안하고 하나님의 계명 지킨다는 것을 양떼에게 보여 주겠다' 하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그것이 양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신사참배 안 하고 이기는 종들마다 해방 전에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보였습니다. 대개는 보였습니다. '이제는 해방이 돼서 일본 나라가 다 패전한다. 일본 나라가 패전하고 우리 한국은 어떤 형편으로 된다.
남북이 갈라진다. 남북이 갈라지는데 남쪽은 더욱 복음이 전성되고 이북에는 암흑이 된다.' 그런 것도 다 보여 주고 언제 그렇게 된다는 것도 다 보여 주고 했습니다.
일본 나라에서는 그때 신사참배를 이긴 사람이 내 알기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본 나라는 전부 다 신사참배를 다 하고 반대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일본 나라는 지금도 기독교가 힘을 못 씁니다. 아주 일본 나라의 기독교는 있는가 마는가 하는데 지금 그들은 박해를 당합니다. 아따 그거 무엇이고? 조련? 조총련 그들이 지하 운동을 하는데, 첫째 그들은 교회를 박멸하는 그런 운동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차차차 지하 운동 하는 것은 자기네들이 있는 곳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의 상점에는 아무 물건도 사지 안하고 밤낮 그 상점을 허는 말을 하고 암투를 하기 때문에, 자꾸 협박 놓고 이러니까 할 수 없이 믿는 사람들이 거기서 쫓겨 나갑니다. 이래서. 차차 차차 그래 가지고 그들이 점령한 데에는 믿는 사람 한 사람도 없고 교회가 없습니다. 어떤 교회는 거기서 신앙을 유지하려고 하니까 그 생명 내대고, 지금 일본에 있는 제일 교포 신앙이 그렇지 일본 사람 신앙은 없습니다. 일본 사람 참 신앙은 아주 허무합니다. 일본 사람들 뭐 강의니 뭐이니, 그 사람들 서적이니, 뭐 내촌감삼이니 그런 사람도 보면 다 탈선이고 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식은 훌륭하지만 아무 것도 없어. 흡기니 하는 그런 술가도 보면 볼 게 없어. 보기가 싫어, 그 책을. 그래 나 이번에 다 버려 버렸어. 그 책을.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이렇게 양을 사랑하는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다 선한 목자입니다. 주님은 목자장이요 우리는 다 목자입니다. 반사들은 다 목자요 권찰들은 다 목자입니다. 나도 목자요. 내 위에 목자장은 주님이 목자장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요. 구속하신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요, 하늘나라의 소망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양들에게 그것밖에 줄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할 때에 양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런고로, 한국에도 그들을 통해서 다시 이 진리를 증거하는 정통 신학교가 섰습니다. 정통 신학교가 지금 여기에 저게 서고, 또 그들을 통해서 한국 교회는 부흥을 시키고 있습니다. 저도 생각할 때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부산서는 그래도 서부교회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이 모아 주시고 주일학생도 많이 모아 주시고 한 이것이 특수한 은혜를 주시는 것이 당신이. 나는 약했지만 당신이 붙들고 일하신 당신의 일하는 그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천 년 만 년 가도 그대로 시간만 더디고 이런 것뿐이지 변하질 않습니다.
우리들도 남은 때에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이 복음 운동을 위해서 목숨 버리는 것이 양을 위해서 목숨 버리는 것이라 그거요. 자기의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와 소망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다른 양들에게 '아. 하늘나라의 소망을 위해서 모두 목숨을 버리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이루는데 나도 그러자.' 이렇지만 어려움이 있으면 다 무슨 죄도 상관없이 죄를 짓고 하면 모든 양떼들도 '아, 저런 사람도 저런 것 보니까, 다 저래 믿으니 말로만 그렇지, 껍데기로 저래 믿지 속속 그래 믿는 것은 아니다.' 이러니까 그 양떼가 뭘 볼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이런 선한 목자가 되어서 그걸 각오해야 될 것입니다. 양을 위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려움을 인해서 양을 구원하는 마음의 열심이나 충성이 요동치 안해야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가지고 내가 같이 하겠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어리석지를 안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에게 평강에 평강을 더하시리라' 왜? 이는 모든 진리를 지켜 나가려고 하면 다 가다가는 심지가 깨지고 변질되는데 하나님이 도우시는 이 사실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평강에 평강을 주느냐? '그들은 주 여호와를 의뢰함이니라 너희들은 주 여호와를 의뢰하라 그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됩니다.
강하고 담대하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대해서 오해하기 쉽습니다.
속은 강하고 담대하고 겉은 아주 유하고 부드럽고 참 못나고 약한 것같이 그와 같이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그저 아주 부드럽고 유하니까 '아 저런 목사들은 주먹만 내 두르면 그까짓 것 대번에 그만' 이렇게 생각을 가진다 그거요. 그래도 그 사람이 상할까 싶어서 얼마든지 참고 부드럽게 아주 뭐 약하게 이렇게 하나 때가 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 여 준다 이거요. 그래서 우리 진영에도 목사들이 벌로 날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제 딱 오그라붙어 버렸습니다. 인제 속으로는, 딱 오그라붙고 이제는 참 이거 그것 가지고는 되는 게 아니고, 참 불쌍하고 가련해서 이렇게 이 날뛰는데 그게 겁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희들이 안다 그거요.
우리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려야 되고 그런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기 때문에 우리 양을 위해서 사는, 진리 위해서 사는 데는 전능자 주재자 주권자가 우리와 같이 하는데 두려울 것이 뭐 있습니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으로는 강하고 담대하면서도 그것만 가지고 하면 다른 사람이 오해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에 참 속으로 겸손해야 됩니다. '너희들이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우리는 겸손해야 됩니다. 겸손하고 또 '죽도록 충성해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시들지 않는, 면류관을 청청한 면류관을 우리에게 다 씌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목자장을 언제 만날는지, 곧 만날는지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주의 일을 할 때에 힘써 일합시다. 힘써 일해. 자기에게 힘 있는 것 다해서 합시다.
내가 어떤 사람을 볼 때에 '나는 이거 몸이 약해서' 이런 말을 할 때에 나는 그분에게 권면도 그래 하고 내가 보기에는 '저 사람이 몸이 강건하면 강건한 몸 다 가지고 주를 위해 살지 못할 터인데 몸이 약하니까, 약하니까 그 약한 힘 그거나마 다해 가지고 홍순철 목사님이 병석에 있었기 때문에 병석에 있은 지 얼마 동안은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그 목회를 감당했습니다. 아마 건강한 사람은 그렇게 자기에게 있는 건강한 힘을 다하지를 못할 거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자기에게 건강한 힘 있어 가지고 다 바치고자 하는 자에게는 건강 가지고 못 바치면 좀 약하게 해 가지고 조금 있는 대로 다 바치고 나면 그만 병이 나고 또 깨어나면 또 다 바치고 또 병이 나고 또 깨어나면 다 바치면 또 병나고 이렇게 하나님이 조절하셔서 자기에게 가진 것을 다해서 목자 '노릇을 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조절하신다.' 하는 그것을 제가 보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런 말로 위로를 합니다. 건강한 힘 가지고 있으면서, 건강한 힘 가지고 주의 일을 하면서 건강 가지고 다른 것 다 하고 찌꺼레기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하는 그 사람에게 만일 병들게 하면 그 사람 일 안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든지 완전히 다 바친 자로 주님 앞에 서도록 하려 하는 것이 당신의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쨌든지 일생 동안 살고 난 다음에 자기가 계산 할 때에 '나는 양을 위해서, 양을 위해서 살았다.' 양을 위해서 자기의 정력을 기울인 것 시간을 기울인 것이 다 계산이 나을 거요. 우리 사람들의 두뇌로도 말이요, 요새 컴퓨터라든가 그거는 딱 계산을 딱 딱 딱 해 가지고 계산이 나온다 하는데, 한 번 기억시켜 놓으면 딱 기억해서 기억을 해요. 누가 내가 전화기가 머니까 전화기를 갖다 주는데 갖다 주면서 '요거는 어디든지 전화하려면 딱 요래 가지고 전화하고 난 다음에는 딱 스톱을 딱 시켜서 기억을 딱 시켜 놓으면 언제든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럴까?' 이랬더만 그 뭐 얼마가 지나가도 그것만 그래 딱 눌리면 그만 그 번호 나옵니다. 딱 기억하고 있어요. 그렇게, 이러니까, 우리 머리에도 컴퓨터가 뭐 천억이라든가? 천억 만드신 그분이야.
그분이 그렇게 세밀히 알아요. 이러니까 이다음에 우리가 신앙생활 한 것을 그렇게 다 분석을 할때에 딱 딱 나서서 뭐 누구는 어떻게 어떻게 한 그게 나와 가지고 그대로 무궁 세계에 대우합니다. 무궁세계에 대우하니까 무궁세계는 대우 차이가 그렇츰 차이가 있지만 시기심이 없어. 왜? 환하이 다 알고, 그분이 환하이 다 알고 하다 보니까, 다 아니까 거기서 뭐 시기할 수 있소? 자기 행한 대로 딱 딱 정당한 보상을 해 주시는데, 이런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이오. 이 그리스도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누가 알아주든지 못 알아주든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될 것이라.
요새 중간반 반사들 뭐 혹 몇 이 '이거 뭐 교역자 노릇 나갈까?' 그런 마음이 있다 하기 때문에, 네. 그거는 좋습니다. 여러분들 기르는 것이 교역자 하기 위해서 기르는 것이지 달리 기르는 거 아니라 말이오. 그러니까, 여기에 중간반 반사들은 조사님이 세 분이 있고. 또 그 위에 있는데, 중간반 반사들은 제가 신학교를 돌아다니고 미국에 유학을 돌아다니고 아무데 돌아다녀도 중간반 반사 한 것만치 목자 생활을 할 수 있는 실천 신학은 못 했습니다. 지금 중간반 반사로 제법 하는 사람은 어디든지 교역자로 내 보내면 그게 뭐 조금 있으면 설교도 잘할 것이고 심방 전도할 용기도 있을 것이고 양떼를 다스릴 때 속 썩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얼마나, 길러놓은 것 말이지, 얼마나 길러 놓은 게 큰지 그걸, 자기가 이 일이 아니면 어떤 사람이 돼 가지고 있을 건데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이렇게 지금은 어떤 사람 이 돼 있다 하는 거기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점점 자라가고,'내가 이것 안 하고 돈벌이를 했더라면 내가 돈을 얼마를 가졌을 터인데, 월급이 얼마나 올라갔을 터인데, 대우가 어떻게 됐을 텐데, 공부를 했으면 어데 갔을 터인데 헛일했다' 하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이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꾸 세상으로 기어 나갑니다.
그러니까, 오늘도 우리가 심판할 날인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내가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나도 생명을 버릴 때가 되면 생명 버리겠다.' 하는 속에 사랑이 있어야 하겠고, 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무엇이 두렵습니까? 염려할 건덕지가 없어. 손양원 목사님이 검사 앞에서 그러면 '일본적 기독교를 믿으십시오.' 이라니까, '자 대답해 보십시오. 그러면, 큰 산더미 같은 바위를 접시 위에 담을 수가 있습니까?' 이라니까 '그거야 못 담지.' '담으면 접시가 바싹 깨질 것 아닙니까? 무한하신 하나님의 도를 일본 나라 안에다가 담아 놓으면 일본 나라가 바싹 깨져서 가루가 됩니다.' 그거 범성죄라.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소? '천조 대신, 국기 그거 신이라고 하니까 내놓으십시오. 당신 앞에서 내가 불에 사르겠소.'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그거 다 생명을 내놓고 한 말이고 또 생명 내놓을 것도 없고. 하나님은 전능자시기 때문에 그분을 믿으니까 그분의 뜻대로 되지 그까짓 것들 암만 그래 싸봤자 하나도 저거 마음대로 하지도 못한 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오. 하나님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해 져야 되고, 또 양을 사랑함이 있어야 되고, 그런데도 우리가 겸손치 안하면 오해가 갈 터이니까 뺨을 때리면 뺨을 맞고, 발길로 차면 발길로 차이고. 여러분들도 그것 할 줄을 아는데 그걸 하는 것이 그것이 승리라.
나는 ○○○집사, 오늘 아침에도 안 나왔네. 나왔으면, 나는 ○○○집사 가치는 뭐 굴레수염하고 뚱뚱하이 이라니까 그것 가치로 나는 보지 안해요. 그거 혹 가치로 보는 줄 알아도 그 가치는 그까짓 것 주먹으로 조물조물 해 가지고 아무것도 아닌 걸로 보이요. 또 뭐 사장이니 그까짓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봐. 이런데, 내가 들으니까 학생들한테 심방하러 갔다가 그만 그 학생에게 너 나오너라, 나오너라, 이라고 그 학생은 저거 학생 아니라고 말 안 했더니만 그만 달아나 버렸대요. 그라니까 삐꿔서 그만 달아나 버렸대요. 나중에 보니까, 그 학생이 '말 안 하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자기 학생이라. 그런데, 자기 학생인가 남의 학생인가 몰랐어. 그래 가 가지고 빌었어, '아무것아. 아무게 아무게야.' 대답 안 하더래요. 암만 해도 대답 안 하더래요. 하도 불러 싸니까 '나는 안 가요.' 이라더래요. 거기서 빌고 빌고 빌어 가지고 그래 나오라 해 가지고 좀 어루만져 주고 이래 가지고 속을 싹 풀고 '그래,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이라니까 '다음 주일에 나오너라.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예, 나갈 거라요.' 그렇게까지, 그게 뭐이냐? 주먹으로 때려 주면 당장 뭐 직사할 건데. 주님을 생각하고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건데 내가 그래 가지고 그 어린 심령에 마음의 상처를 줬다' 하는 그것이 아파서 하는 그 점을 보고 내가 여러 번 자랑했소. 그런 것 자랑하지 그까짓 거 뭐 사장이면 뭐하며 장관이면 뭐할 것입니까? 저 ○○○박사님 있는 그 교회에, 아따 무슨 성결 교회더라? ○○성결 교회인데 그 교회 가니까 거기는 대학 지금은 대학이 많지만 그때는 대학이 적었어요.
대학 총장이 넷이 있고, 장관이 그때 현 장관이 일곱이 있소. 다른 데는 다 토요일날 오는 건데 하도 그 사람들이 은혜를 받 고 이라면서 '한 주일 좀 봐 주고 가시지요.' 속으로 '예, 그라지요.' 왜? 주일날은 저거가 다 나을 터이니까. 주일날 그날 장관들 막 혼났습니다. 뭐 총장들 전부 그참 그날 혼났어. 좌우의 날선 검으로 얼마든지 그래 놓으니까, 그래도 철면피라. 나중에 다 모여 가지고 '아이구, 참 은혜 받았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이라면서도 그 습관이 돼 가지고 놀래지는 안하고 벙글 벙글 웃으면서 '아이구 참 수고했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이러지 울지를 안해. 대패침으로 찔러도 울지를 안해. 대패침으로 찌르기는 찔렀는데 울지를 안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간 설교 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근방에 가지도 안합니다. 그런 것은 뭐 가치로 볼 것이 없어.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가 참 목자장 되신 주님 만날 것 생각하고, 또 우리 자체가, 무궁세계에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고 심정, 그 인질, 그 인품, 그 본질 본성 이것이 가 가지고 대우 받고,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다 등용하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