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나 교회-5대관

 

1987. 11. 22. 주일오전

 

본문: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 가장 칭찬받은 위대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빌라델비아 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서머나 교회가 신약 시대의 교회 중에는 제일 깨끗하고 온전한 교회라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서머나 교회는 그 내용과 실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자기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자 하는 자는 살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시는 주님이 당신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여게 나타냈습니다. 세 가지로 우선 나타냈습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이렇게 했습니다. 처음이요 나중이라 말은 시종이라 말입니다. 시종이라 말은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인데 이는 시간관에 대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간관은 이 현상 세계인 처음 시간이 있고 또 나중은 이 처음 시간이 지나간 다음에는 영원 무궁한 무한의 시간이 있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은 이런 시간관을 가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죽음 이편에 있는 시간만 시간으로 알고 죽음 너머 영원 무궁의 시간이 있는 것을 부인하는 자는 예수님에게 속한 자가 아니요 첫째 아담 배암에게 속한 자입니다. 우리는 이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오늘 끝나련지 혹은 얼마 후에 끝나련지 모르나 조만간에 이 시간은 끝이 납니다. 그러면 끝이 나면 그 다음에 시간이 없는 줄로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처음 시간은 성경에 말하기를 하루밤과 같다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이라고 말했고 나중 시간은 끝이 없는 영원 무궁한 시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룻밤과 같은 짤막한 이 시간만 보고 거게 맞추어서 희로 애락과 존비 귀천을 계산하면 그 사람은 속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사나 짧은 세상에서 영원 무궁한 그 시간에 고락이 크고 빈부 귀천이 크고 흥망 성쇠가 크기 때문에 그것을 주로 삼아서 모든 생애 계산을 해야 하는데 그 무궁이 짤막한 이 세상에서 움싹같이 시발되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움싹에서 결정됩니다. 솔씨면 소나무 되고 옥수수 씨면 옥수수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내가 영원 무궁한 시간을 어떤 시간으로 내가 하나님의 공평에서 심판 받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짧은 이 세상이야 천해 봤자 잠깐이요 존귀해 봤자 잠깐이요 가난해도 잠깐이요 부요도 잠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 무궁을 상대해서 무궁을 준비하는 이 세상으로 삽니다. 준비에 힘드는 준비는 그 열매가 좋고 준비에 평안하고 즐거운 준비는 그 열매가 씁니다. 이런 것은 모든 만물로써 우리에게 이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시간관을 첫째로 주님이 가지신 시간관대로 자기도 시간관을 바꾸어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처음 것만 알지 나중 것은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들어도 부인합니다.

다음에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사람들은 이 생사 사생관, 죽고 사는 이 관찰, 산 것이 죽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이 생사관이 예수님과 일치돼야 합니다. 네가 살았으면 오늘 뻐드러져 송장되련지 모른다. 네가 젊어도 오늘 뻐드러져 송장되련지 모른다. 네가 어떤 장사의 젊음의 건강을 가져도 이 시간에 송장되련지 모른다. 너는 죽고 또 부활해서 사는, 죽고 사는 이 생사관이 예수님과 같이 돼야 합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아무리 젊어도 건강해도 구비해도, 세계 체육에서 참표를 가져도 죽는다. 죽는다는 걸 기억해라. 네가 지금 호호 양양한 희망을 가지고 너를 갈고 닦고 씻고 모든 것을 구비한다 할지라도 너의 삶이라는 것은 조만간에 죽는다.

또 죽는 것은 네 사정과 형편과 처지가 그것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 홀로 주관한다. 이 사람은 꼭 살아야 될 것으로 천하가 말해도 당신이 죽는 것은 정하지 그런 중요한 요건들이 아무 죽음에 대해서 권리가 없다. 이는 젊고 모든 것이 의학적으로 다 장수할 수 있다 해도 그게 소용 없다. 그게 주관 못 한다. 이 시간에 죽으련지 모른다.

그러기에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너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또 죽으면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부활해서 심판 부활 받으면 그 고난이 영원 계속하고 생명 부활 받으면 그 평강과 존귀가 영원하다.

이러기 때문에 생사관을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과 같은 생사관으로 바꾸어라.

땅위에 모든 철학자들이 생사관을 말했지마는 그자들은 다 거짓말쟁이라. 모든 이종교가들이 말했지마는 그들은 다 거짓말쟁이라. 저는 몰라. 초지장 가룬 앞에도 몰라. 제 자신의 죽음도 몰라.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이분이 계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올바르게 말씀하셨으니 그분의 시간관 생사관을 따라서 나도 그와 같이 하나되어 그분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 슬기로운 일이라.

셋째로는 9절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실상은 네가 환난받는 자가 아니고 환난당한 자가 아니고 네가 평안한 자다, 네가 궁핍한 자가 아니라 부요한 자다 하는 말입니다.

이래서 빈부관 고락관, 고락관, 고락을 어떻게 보느냐? 땅위에 수많은 인간들이 말한 고락관은 다 틀렸습니다. 그까짓 것은 하나도 참고로 삼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빈부관도 천하 인간이 다 이는 부하다 해도 다 거짓말쟁이요 가난하다 해도 거짓말쟁이오. 왜? 하루밤 나그네 생활은 지나가고 영원 무궁이 있기 때문에 무궁에 고난이 고난이요 무궁에 평강이 평강이요, 무궁에 가난이 가난이요 무궁에 부요가 부요지 땅위에 짤막한 이것으로 전부인 줄 알고 계산대는 자는 다 잘못된 자들입니다.

주님은, 모든 인간이 너를 환난받는 자라고 하지 실상은 네가 누구보다도 평안한 자다. 모든 사람이 너를 궁핍하다고 보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다. 고락과 빈부관을 주님 따라서 그를 좇아서 그와 동일되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왜? 이 세상에서 영원한 쾌락과 평강을 결정지우는 세상이요 영원한 빈부를 결정지우는 세상이니 이 세상에서 고통스럽고 즐거운 고락 빈부 이것을 결정지우는 세상이기 때문에 주님의 고락관에 내가 따르고 빈부관에 따라서 영원한 고난과 영원한 가난을 네가 오늘에 완전히 벗고 영원한 평강과 부강을 오늘에 마련할 수 있는데 예수님의 고락관과 빈부관과 일치되면 누구든지 다 이렇게 살아 가지고서 성공하는 자가 되지마는 이것을 세상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사는 자는 영원한 평강을 팔아서 일시의 평강과 바꾸어 영원을 망치고 영원한 부요를 팔아서 일시에 오늘 끝날지 모르는 이 부강으로 바꾸어 영원을 멸망시키니 네가 고락관과 빈부관을 어서 주님을 따라서 그와 일치돼야 한다 하는 것을 서머나 교회에 말씀했습니다.

왜 서머나 교회가 제일 복된 교회인가? 서머나 교회는 시간관과 생사관과 고락관과 빈부관이 주님과 일치됐었습니다. “너와 나와 같다” 했습니다. 너와 나와 같다.

이랬는데 서머나 교회에 하나 가르치는 것 또 있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이제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요것은 교회관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네가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 교회는 하나님이 너는 참으로 깨끗한 교회라 너는 참 교회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교회라야 되지 하나님이 인정치 않는 인간들의 떼들이 인정하는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온 천하 인간이 다 인정해도 하나님이 인정치 아니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신구약 성경이 인정하는 교회라야 되지 세상에 과학, 정치, 도덕, 철학, 모든 윤리, 고풍, 유전, 세계 여론 어떤 것들이 인정해도 나는 그 인정에 따르지 않는다. 신구약 성경이 인정하는 것이라야 참 교회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라 말은 하나님의 약속받은, 구원을 약속받은 족속이라 말입니다. “유대인이라 하나” 그것이 자칭이라. 인간 저거끼리라.

저거끼리 말해, 하나님이 말하는 게 아니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훼방도 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저거는 이단이다, 저거 사교다, 예수 잘못 믿는다.’ 이렇게 하는 것 안다. 네가 나와 같기 때문에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고 사탄의 회를 사탄의 회로 네가 타협하지 안하고 하나되지 안하니까 그들이 너를 헐고 뜯고, 헐 훼(毁)자 헐 방(謗)자, 헐어 뜯는 걸 말합니다.

이래 하나, “훼방도 내가 안다. 그런 자들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다.” 마귀가 그 속에 왕이 돼 가지고서 주장하는 회다. 요것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요것은 서머나 교회가 옳은 입장에 서서 훼방을 받고 있는 것을 위로를 해 주면서 또 권유를 합니다.

우리는 교회관이 발라야 됩니다. 숫자 많이 모이는 그것이 좋은 교회 아니요, 또 적게 모인 그것이 좋은 교회 아니요, 어떤 사람들은 숫자가 적게 모이면 그것 가지고 어리석게, ‘노아 홍수 때는 여덟 식구밖에 더 있었느냐?’ 숫자 적은 그것이 좋은 건 줄로 숫자 많은 것이 좋은 것인 줄 알지마는 많아도 적어도 거게는 가치를 두지 않는다.

어데 있느냐? 자칭이 아니고 하나님 보실 때에 ‘너는 참 교회다’ 하나님에게 인정받도록 인정받는 것 가지고 되지 많아도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참 교회요 혼자라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안하면 거짓 교회입니다.

네가 참 교회로 살려고 하면 거짓 교회들에게 훼방을 받으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는 다 사탄의 회다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시간관, 생사관, 고락관, 빈부관, 교회관 요것이 발라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돌아다니는 자가 이 다섯 가지를 잘못 보고 무궁세계에서야 어찌 되든지 이 짤막한 현상 세계를 표준해 가지고서 현상 세계에 귀신 같은 제 못된 사욕에 만족이 안 된다고 신앙이 흔들리고 또 그 욕심에 세상 것이 일시 맞아 떨어졌다고 기뻐하는 것. 기쁜 것도 다 가짜, 슬퍼하는 것도 가짜, 다 가짜라.

시간은 영원 무궁이 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이 끝날지 모르는 이 시간에야 네가 어찌 됐든지 영원 무궁한 시간에 비참한 자가 되지 않도록, 네가 후회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서 짤막한 시간이나마 무궁한 시간의 종자라. 여게서 종자가 결정 돼. 무궁세계는 종자가 없어. 여게서 결정이 돼 가지고 무궁세계는 무궁토록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시간관을 단단히 연구해서 주님이 말씀하신 주님의 시간관대로 내가 따라갈 것이요, 주님은 처음과 나중인, 나중은 무궁하고 처음은 짤막하다고 말했는데 이 시간관을 가지지 안하고 세상이 말하는 것은 ‘이 현실뿐이지 그 다음에는 시간이 없다,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말하나 있다고 말하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종교들이 말하는 것은 있다고 가정을 하고 하지마는 그들도 말하는 게 전부 거짓부리요. 기독교 외에는 전부 거짓 종교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증거하지마는 때가 되면 이런 증거를 하면 여게 막 이 악당들이 와 가지고서 백 목사를 끌어 내려서 이 자리서 죽일런지 모릅니다.

알겠소? 무슨 말씀인지도 모르고 여러분들이 그저 귀넘어 듣지 마라. 나는 여러분들에게 할 말 다 했어. 여러분들의 피에 대해서 깨끗해. 하나도 숨기지 안하고 내가 아는 대로는 생명을 내놓고 할 말 다 했어.

시간관이 발라야 됩니다. 이 세상 것 가지고서 이런 조화 저런 조화, 이런 간교 저런 간교, 이런 모략 저런 복술 그런 거 가지고 해도 다 모르는 척하고 이래도, 왜? 주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어쨌건 바른 걸 말하고 끝까지 바른 것을 증거하다가 끝을 마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전에는 여러분들이, 예수님이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했습니다. 주님의 시간관, 현재와 무궁이 있는데 무궁은 무한하고 끝이 없고 현재는 오늘로 끝날런지 모르는 요 시간관을 가진 것이 주님의 시간관이기 때문에 요렇게 주님과 동일한 시간관으로 어서 바꾸어 가져야 할 것이오.

이 시간관은 세상에 수많은 도서실에 산더미같이 쌓인 책 속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다 음행의 포도주라.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되는 것을 다 방해하는, 하나님에게 일치되는 사람을 빼앗아서 저와 하나되도록 하는 음행케 하는, 정절을 팔게 하는 마귀의 미혹의 글들입니다. 그것이 다 음행의 포도주의 교훈들입니다.

시간관.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주님은 이 생명은 죽었고 부활한 생명은 영원입니다.

주님은 살아 있는 이 생명은 죽는 줄 알고 살아 있는 생명을 부활 영원을 위해서 주님은 살았습니다. 한번도 세상에 살기 위해서 살지 안했고 세상살이는 영원 무궁의 부활의 살이를 위해서 영생을 위해서 땅위에서 언행심사로 움직였습니다.

생사관도 주님의 생사관을 네 생사관으로 어서 바꾸어 가지라.

“내가 네 환난을 안다, 또 네 궁핍을 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모든 사람이 보는 환난,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궁핍, 예수님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모든 사람은 환난으로 보는데 예수님은 평강으로 봤습니다. 모든 사람은 궁핍으로 봤는데 예수님은 부강으로 봤습니다. 고락, 빈부관이 인간들과 다릅니다.

이 고락관을 예수님과 같이 가져서 오늘이라는 현재는 영원한 고통을 취하느냐, 영원한 평강을 취하느냐 자유로 하라. 하나님의 지식, 한 분인 하나님의 계약 그대로 하면 세상에는 먹어도 입어도 고난스럽고 세상에는 네가 고난을 당한다.

확 펴 놓고 마귀와 같이 춤추고 움직이면 당장에 어떤 존대라도 해 줄 건데 요것을 타협하지 안하고 양보하지 안하고 영원 무궁의 고난을 보고 그 고난에 해당되지 안하도록 무궁한 평강을 마련키 위해서 어렵고 고생스러운 준비를 합니다.

이러기에 무궁의 그 고난을 보지 않고는 세상에서 고난스러운 믿음의 생활을 할 자가 없습니다. 무궁한 부강을 보지 않고는 짧은 세상의 이 부강을 주의 진리 때문에 포기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다음 시간으로 미루지 마십시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안다.” 하나님이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이 유대인이지 저거끼리 혈육으로 유대인도 소용없고, 인간들이 인정하는 그것도 소용없고, 인간들이 인정하는 신앙, 교회, 그게 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해야 돼.

“라오디게아 교회야 네가 자칭 부요하여 나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하나 네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한다. 내게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발라서 바로 똑똑히 보게 하라.”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자칭 예수 믿는 것이라. 성경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인본주의, 인본주의 예수, 세상주의 예수, 지상 현실주의 예수, 사회주의 예수, 이 정치적인 예수, 도덕주의의 예수, 인본주의 예수, 세상주의 예수, 그것들은 다 자칭 저희들이 예수교를 만든 것이지 하나님의 도는 아닙니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안다” 네가 그들과 같이 따라가지 안하면 그들이 삣고 깎고 헐뜯는다. 그러나!! 담대하라!! 주와 주의 도를 위해서 죽음을 받으면 그보다도 더 완전 성공이 없는 것이니 담대하라.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 그것은 귀신 덩어리들이다, 귀신 단체다, 사탄의 단체다.

“네가 장차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장차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왜 고난받아요? 다섯 가지 때문에 고난받아요.

시간관이 세상과 달리 예수님과 하나되고, 또 생사관이 세상과 달리 주님과 하나되고, 고락관이ㅡ 고락을 어떻게 보느냐?ㅡ 고락관이 세상이 보는 대로의 고통, 세상이 보는 대로의 평강 즐거움ㅡ 고락이라 말은 즐거울 락(樂)자라 말입니다ㅡ 이것이 세상과 달리 예수님과 같애요. 빈부관이 세상이 말하는 대로 가난을 가난이라 부요를 부요라 그렇게 보지 안하고 예수님이 가난이라고 하는 가난을 참 가난으로 알고 부요라 하신 것을 참 부요로 알아서 빈부관이 예수님과 같고, 마지막으로는 교회관, 어떤 게 참 교회냐? 다시 말해 어떤 게 참 믿는 신자냐? 어떤 게 신자냐 어떤 게 교회냐? 신자관, 교회관, 이 다섯 가지가 세상과 같으니 이런 교회들은 세상이 저거 동무라고 좋아합니다. 세상과 다르면 저의 것이 아니라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너희들을 세상이 미워하는 것은 세상에서 나와서 나와 하나 되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 너희들이 세상에서 나오지 안하고 세상에 같이 있으면 세상이 저희 것이라고 저희가 옹호하고 하나될 것이다.”

이번에 우리 총공회 교역자회에서 종이를 나눠 주면서 교리와 신조에 대해서 행정에 대해서 틀린 것은 다 써 내고 어떻게 고쳤으면 좋겠다 하는 것도 다 써 내서 각각 써 내라 해 가지고서 사십 명이 써 낸 것을 나는 보지는 안했습니다.

안 했는데, 어제 서울 지방 공회장이 전화 오기를 ‘그것을 써 냈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다 행정위원, 정치위원들 또 목회위원들 교훈위원들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말했습니다.

그래 내가 ‘틀렸다. 그들의 심판만 받을 게 아니라 그것을 등사해 가지고 온 교역자들에게 다 나눠 줘라. 저희들이 다 나눠 받아 가지고서 연구해서 옳고 틀린 것을 해 가지고서 재판을 하자.’ 그래 가지고서 틀린 것은 틀렸다고 옳은 것은 옳다, 누가 말한 것도 다 기록해서, 이 사람은 한 번 말해서 틀렸고 두 번 말해서 틀렸고 세 번 말해서 틀렸으면 다시 언권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만날 틀린 것만 말하기 때문에 그런 말 갋아서 말할 게 아니라 언권이 없고, 한 번 말한 것 틀렸으면 그만치 권위가 적고 두 번 틀렸으면 그만치 권위가 적고 ‘이렇게 해서 고쳐서 바로 해 나가 보자’ 그렇게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서, ‘박사들에게만 주지 말아라. 박사들이라고 다 잘하는 게 아니다. 모든 일반에게 다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심판해서 심판을 받자.’ 이렇게 해 가지고서 오늘 아침에 그것을 수정했습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되 요것을 바로 가지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오늘 오전 시간에 몇 가지 배웠습니까, 손가락으로? 녜, 다섯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는 세상을 떠나서, 세상에 붙어 있지 말고 세상에서 붙은 데에서 떨어져서 예수님에게로 속하라 그말입니다. 오늘에 속하라. 오늘에 바꿔야 돼요.

예수를 믿으면서 이것은 바꾸지 안하고 방편만 잘 쓰는 자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걸음을 잘 걷는다, 빠르다, 태도가 좋다, 곧게 걷는다.’ 그까짓 게 소용없다. 누운뱅이라도 관계없다. 그의 걸음 걷는 데는 향방을 봐라! 어데로 향해 걷는지 그걸 봐라! 향방을 바로 잡았으면 느리게 가도 결국은 가진다.

우리가 갈 길은 예를 들어서 동이라면 그 사람이 서로 가면 동에 정반대인데 서로 가면서 맵시 있게 잘 걸어간다고, 이 도덕, 사회, 정치, 경제, 윤리, 모든 인간들에게 다 맞다고 좋은 것 아니다.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과같이 하지 않는다” 향방을 정하지 안하고 향방이 틀렸으면 잘 걸으면 걸을수록이 많은 사람을 더 많이 미혹 주고 많이 삐뚤어진다. 이러기 때문에 다섯 가지 이 관을 여러분들이 오늘 오전 시간에 수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배웠지만 하나님 말씀을 만홀이 여기고 떠내려 보냈습니다. 고요히, 나는 무슨 빈부관을 가지고 있느냐? 이 세상이 말한 대로 빈부관을 가졌느냐, 주님의 빈부관을 가졌느냐? 나는 홍포 입은 부자와 같이 이렇게 모든 것이 부요하지만 일단 떠나라 해서 만일 세상을 떠나면 무궁세계에 가서는 내가 어떠한 자가 될란가, 무궁세계에서는 내가 가난한 자가 될란가 부요한 자가 될란가? 무궁세계에서는 내가 곤고하고 천한 자가 될란가, 평강과 존귀한 자가 될란가? 죽음 이편에서는 이렇지마는 죽어 가지고 이다음에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내가 어떠한 자가 될 건가? 지금은 이렇지마는 무궁세계에서는 어떠한 자가 될 건가? 내가 지금 내 스스로 인정하는 내 신앙이 돼 있는가, 성경이 인정하는 신앙이 돼 있는가, 주님이 인정하는 신앙이 돼 가지고 있는가? 오늘에 냉정하게 판정해야 되지 이렇게 이걸 못 믿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도 전부 수지 진짜는 다 귀신 마귀 세상에게 바치고 제가 다 둘러마셔 버리고 나머지기 찌끄러기 아무짝도 쓰지 못할 것 그걸 가지고서 예수 믿습니다. 제 세상 일에는 다 기울이고 주님에게는 일 년에 성탄 때 한 번이나 주일 오전 한 번이나, 가증합니다. 정말로 오늘 죽으면 후회가 없을런지! 새벽으로도 그렇게 말하고 약속해도, 나올라 해도 실행이 안 돼서 무능해서 못 나온다면 탄식할 줄 알아야지, 하루 아침 새벽기도도 약속하고 작정하고 못 하는 이까짓 인간이! 죽어야 되지! 있으면 뭣합니까, 이것! 송장이야, 바로! ‘완전히 마귀에게 붙들려서 자유하지 못하는 마귀의 종이다!’ 이걸 깨닫고 일어 서야지! 돌아서야지! 다 같이 고요히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고요히 생각하면서 작정합시다.

<기도> 노아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만홀히 다 여기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만홀히 여기고 또 신실히 들어도 아직까지 세상이 무엇인 것을 모르고, 인생이 무엇인 것을 모르고, 모든 것이 삐뚤어졌기 때문에 용감스럽게 이 세상이라는 언덕을 떠나지를 못하여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저들이 맛보지 못합니다.

긍휼히 여겨 주셔서 주의 피의 능력과 성신의 감동이 저들을 붙들어 주사 모든 것을 환하게 일관되어 아는 저희들이 됨으로 죽음을 꿰뚫어, 현재를 꿰뚫어, 이 현상 세계를 꿰뚫어 무궁을 보는 명철한 지혜와 총명이 있게 하사 모든 것을 광대하게 전면적을 보고 영원을 봄으로 마귀의 올무에 홀켜서 다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귀한 영원을 좌우하는 이 현상 생활을 빼앗기는 여게서 일어나게 하여 주시고 다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말씀은 천천 금은보다 귀한 것을 깨달아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기의 갈 길과 소망과 자기의 정체를 밝히 알아 후회없이 깨끗이 흰옷 입어 수치를 보이지 않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경 지식을 앎으로 지식으로만 가지고 실행에서 멀어짐으로 교만한 자들이 하나도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십자가의 도, 죽고 살고, 주를 위해서 가난해지고 천해지고 괴로워지고 그 다음, 세상에서 세상이 뺏들어 가지 못하는 온갖 축복을 세상에서부터 충만히 받고 무궁세계에도 받는 이 비결을 확실히 깨닫고 요동치 않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힘써 주의 이 보혈의 구원 역사에 충성하다가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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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6 생명있는 행동과 없는 행동/ 고린도전서 15장 36절/ 880525수새 선지자 2015.11.04
3335 생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사무엘상 7장 12절-14절/ 840408주전 선지자 2015.11.04
3334 생사의 갈랫길/ 요한복음 3장 25절-30절/ 800120주후 선지자 2015.11.04
3333 생사의 갈랫길/ 요한복음 3장 22절-30절/ 800120주전 선지자 2015.11.04
3332 생사의 갈랫길/ 요한복음 3장 25절-30절/ 1980년 4 공과 선지자 2015.11.04
3331 생사화복의 원인/ 신명기 28장 1절-19절/ 840704수야 선지자 2015.11.04
3330 생사화복의 원인/ 요한일서 3장 8절/ 890626월새 선지자 2015.11.04
3329 생애 법칙/ 마태복음 6장 33절/ 790824금새 선지자 2015.11.04
3328 생애법칙 네 가지/ 창세기 9장 20절-27절/ 810528목새 선지자 2015.11.04
3327 생애법칙-기쁨의 결과 맺어지게/ 누가복음 2장 12절-14절/ 871225금새 선지자 2015.11.04
3326 생애의 지침/ 에베소서 5장 15절-18절/ 820330화새 선지자 2015.11.04
3325 생의 가치/ 본문 : 창세기 5장 1절-32절/ 850728주전 선지자 2015.11.04
3324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1절-32절/ 850731수새 선지자 2015.11.04
3323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1절-32절/ 1985. 7. 28.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1.04
3322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21절-24절/ 850731수야 선지자 2015.11.04
3321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18절-27절/ 850802금새 선지자 2015.11.04
3320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1절-32절/ 1985년 16 공과 선지자 2015.11.04
3319 생의 방편/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40530수새 선지자 2015.11.04
3318 생의 본능/ 히브리서 11장 5절-6절/ 870201주전 선지자 2015.11.04
» 서머나 교회-5대관/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871122주전 선지자 201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