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1:38
생애의 지침
1982. 3. 30. 화새
본문: 엡 5:15-1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우리는 직관의 이 감옥을 벗어나야 하고 직감의 감옥을 벗어나야 되고 자기 주관이라는 이 주관을 벗어나야 됩니다. 그리 하여야 신앙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신앙은 가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보기로 바로 보이는 것, 바로 느껴지는 것, 바로 접촉해지는 것 이것이 자기 환경이라 현실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주의 안 하면 이것만 상대해서 사는 자 되기 쉽습니다. 이것에게 피동 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이용할 우리의 소유요 우리들의 주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이것의 종이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현실 자기주의라는 것이 이것이 다 자기의 주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 따라서 생각하고 여기 따라서 행동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따라서 생각하니 마음이 이것의 종이요 또 여기에 따라서 행동하니까 자기의 몸이 이것의 종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직접 보여지는 것, 들려지는 것, 접촉되는 것, 느껴지는 것 이것에게 종이 되느냐 이것의 주인이 되느냐 하는 두 가지로 결말을 짓는 것입니다. 이것에게 종이 되면 첫째 아담이 사망하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걸음입니다. 이것을 다스릴 주인이 되면 둘째 아담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다 이 두 길에서,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고, 하나는 실패하고 하나는 성공하는 이 두 갈래 길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은 너무 큰 일입니다.
너무 큰 일이기 때문에 그저 얼핏 쉽게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가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평생 우리가 사는데 있어 지침입니다, 지남침. 우리의 삶의 지침입니다.
이 두 가지 지식이 자기의 생애의 지남침입니다. 이 두 가지 지식이 없으면 그 사람은 죽는 줄 모르고 죽었습니다. 이 두 지식이 현재에 자기와 함께 하여 이 두 갈래길 중에 어느 길을 택하느냐 하는 여기서부터 죽는 것과 사는 일은 시발됩니다. 성공과 실패는 시발됩니다.
벌써 그 사람이 자기의 보이는 것, 들려지는 것, 접해지는 것 이것을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요, 감옥에 갇혀서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이요,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감옥에 갇혀 자유하지 못하는 죽은 사람입니다. 또 소경이요 본다면 근시자입니다. 멀리 보지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의 현실이 들려지는 것, 보여지는 것, 접해지는 것 그것이 자기 현실입니다. 그러면 현실의 종이 되느냐 현실의 주인이 되느냐. 이것을 그저 알고 하나의 그런 문자처럼 하나의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것이 자기의 삶이라는 이 생애의 첫 발자욱에 속한 것입니다. 이 발자욱에서 모든 것을 바로 찾을 수 있고 또 바로 평가할 수 있고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근원은 아니지마는 자기의 움직임에는 근원이요 종자입니다.
이 두 갈래길을 생각할 때에 비로소 성경은 자기에게 필요있게 되지 이것을 생각지 못하는 자에게는 성경도 하나님도 모든 것이 다 필요없게 됩니다.
왜. 그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죽은 자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없고 자기를 담은 그릇, 자기를 담은 기구, 보자기 그것에게 죽은 시체가 담겨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기구에게 담겨진 그 기구의 움직이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와 꼭 같은 것입니다.
그 다음의 말이 많지마는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행동에 있어서는 이것이 첫째 중요합니다. 현실의 종이 되지 아니할 것, 현실에 피동되지 아니할 것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제가 어떻게 결심했다 할지라도 현실, 보이고 들려지고 접하는 현실을 자기는 주격 다툼이라는 이것을 잊어버렸으면 헛일입니다. 주격 다툼을 잊어 버렸으면 벌써 그 사람은 죽은 자입니다.
내가 이렇게 슬픈 현실은 당했으니 이 슬픔은 나로 더불어 주격 다툼의 투쟁을 할 대상이다 이거 알아야 됩니다. 슬픔을 닥쳤으니 어떻게 슬퍼할까, 이렇고 이러니 더 슬프고 더 깊이 슬프다. 벌써 슬픔에 피동 됐으면 저는 죽은 자입니다.
분하다. 분함도 현실입니다. 분함이 닥쳤을 때에, 이 분함은 나로 더불어 지금 싸워서 제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제가 나에게 이용을 당하느냐 내가 저에게 이용을 당하느냐 이것부터 생각하고 그 현실을 맞이해야 되지 이것 없이 슬프니까 벌써, 슬프니 슬픈 그것만 생각하면 벌써 죽은 것입니다. 슬픔은 자기로 더불어 싸우는 상대가 되어, 슬픔이 내 종이 되어 나에게 이용이 되든지 내가 그것의 종이 되어서, 종이 되어 그것에게 이용을 당하든지. 기쁨도 그러하고, 분하고 노여움도 그러하고, 감사도 그러하고, 두려운 것도, 평안한 것도 이제는 참 평안을 만났다, 평안하다. 평안이 네가 싸워야 할 적인 것을 모르고, 평안이 네 주인이 되고 너는 평안의 종이 될런지 네가 평안의 주인이 되어 평안을 네가 이용을 할런지 그 두 갈래길이 있는데 평안 그것에게 종이 되고, 또 불안, 두려움, 자기에게, 어떤 그 두려움의 만물이 자기에게 닥쳐왔을 때에 내가 이 두려움의 종이 되느냐 이 두려움을 내 종으로 삼아서 내가 이용을 하느냐 하는 이것이 먼저 있는 자가 생기가 있는 자요 눈이 열린 자요. 그자에게 이겨 주인이 되고 이겨 종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이런 투쟁에서 이겨 주인이 되어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면 벌써 생명은 있었고 승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물건도 다 그러합니다.
자기가 들려지는 그것이, 좋은 소리나 나쁜 소리나 귀에 들려지는 그것이 자기의 현실이오. 자기 눈에 불쌍한 것, 가련한 것, 두려운 것, 아름다운 것, 험한 것, 사랑하는 것, 원수, 자기 눈에 보이는 것, 자기에게 접하여 있는 모든 것들 그것을 가리켜서 현실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것이 자기 주위요 환경이요 형편이요 사정인데, 그런 것이 다 현실인데, 현실에 내가 종이 되느냐 현실의 주인이 되어서 이 현실을 이용하느냐. 첫째 아담은 현실에 종 됨으로 죽었습니다. 둘째 아담은 현실을 종으로 이용했지 한 번도 현실에게 이용당한 일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현실을 이용했지, 현실을 주인으로 사용 했지 그것에게 피동되어 이용된 일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자기의 생애에 중요한 법칙인 줄을 알고 이 투쟁을 하는 사람이면 안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오. 이 투쟁을 가진 사람이라면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오. 왜. 그 사람은 이 전투성을, 이 싸움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이에게 무슨 말이 들렸어도 안심할 수 있다, 어떤 말이 들렸어도 그 사람은 그 들려지는 말에게 피동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위험하다.
뭐이 위험해. 그 사람이 시험에 들고 넘어질까 위험한데. 그 사람이 그렇게 지금 열심을 가지고 결심을 가지고 이렇게 해 나가는 일이 곧고 힘 있는데 그 사람이 무슨 염려가 되느냐, 아니다. 그 사람은 듣는 말에 아직도 종의 멍에를 벗어나지를 못했다. 듣는 것에 종의 멍에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듣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오늘 거기 그것을 보고 그것 참관을 해서 위험한데. 아니다. 그 사람은 어떤 거기에서 어떤 어떤 말도 있을 것이고, 어떤 어떤 주장도 있을 것이고, 어떤 어떤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어떤 사건도 있을 것이고, 물건도 있을 것이고 있지마는 아예 그것으로 투쟁할 줄 그 사람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저 무조건 그것에게 종이 되어서 피동될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자기로 더불어 싸울 주격 다툼의 대상인 것을 알고, 내가 이것에게 종이 되어 이것에게 피동이 되느냐 이것에게 순종하느냐 이것으로 인하여 움직이느냐,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움직임으로 이것을 다스리느냐 하는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어느 시대를 당해도, 어떤 현실을 당해도, 어떤 처지와 형편을 당해도, 어떤 사람, 어떤 물건, 어떤 사건을 접촉해도 상관 없다.
안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욜쌍하고 가련하고 감옥에 갇힌 자니까 무슨 자유가 있겠소.
죽은 자니까 무슨 산 것이 있겠소. 소경이요 근시자니까 무엇이 있겠소.
이러기 때문에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생각하라. 너는 시간을 아끼라. 왜. 이 시간과 다음 시간이 다르다. 전 시간과 이 시간이 다르다. 전 시간이면 그 시간이 쭉 여전히 그 시간인 줄 아느냐. 아니다. 전 시간은 네가 현실을 종으로 삼았을지라도 이것으로 이 현실은 또 다르다. 현실에 또 네가 종이 되느냐 네가 주인이 되느냐, 현실을 사용하느냐 현실에게 네가 사용을 당하느냐.
왜 이렇게 주의해야 될까. 왜 이렇게 시간마다 달라지는 이 시간 계산을 해야 되는가. 때가 악하다. 네 환경 전체가 다 피조물 중심이다. 피조물 중심은 환경의 종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피조물은 자기 환경입니다. 오직 조물주 한 분에게 피동 되는 이 자만 피조물 중심을 이길 수 있습니다. 현실을 이용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넓고 깊은 말씀입니다.
"술 취하지 말아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 "술 취하지 말아라" 내나 현실에 피동 되지 말라 그말이오. 자기 주위 환경에 피동되지 말라 그말이오. 자기 형편 사정에 종이 되지 말라 말이오. 자기 형편과 사정을 주께 복종하는 것으로 이용하라 그말이오.
"술 취하지 말라" 이것이 온 세상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말은 세상에 감염되지 말아라 그말이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 믿음을 떠난 것들에게 피동되지 마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그말은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이 도움을 받아라. 네가 하나님이 피동되려고 애를 쓰고 해도 너 혼자 못 이기니까 애를 쓰면서 하나님이여 도와 주시옵소서 하는 그것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좁게 생각지 맙시다. 이렇게 지혜롭게 생각하려면 자기가 살아 있기 때문에 살 것만 생각하는 자도, 내나 그 자도 현실에 종되어 있는 자입니다. 살 것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죽을 것도 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살 것과 죽을 것을 같은 중량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또 죽을 것만 생각해도 안 됩니다.
부활도 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또 현재 수지 계산만 따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 세상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무궁도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발넓게 폭넓게 이 넓게 모든 것을 가지고 계산을 대라 그 말이오.
편벽되게 치우쳐서 일방적으로 계산 대지 말고.
참 주관보다 불쌍한 자가 없습니다. 더 불쌍한 자가 없소. 자기가 있는 동시에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현재가 있는 동시에 과거도 미래도 있었습니다. 과거도 잊어버리고 미래도 잊어버리고 현재만 가지고 말하는 사람을 접촉할 때에 소경이라 그렇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만 가지고.
개구리가 올챙이 때 것을 생각지 못한다는 말이 다 그런 것들을 예를 들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도 거기 자기에게 붙어 있는데 떼어 내버린다고 자기가 그것 모르면 저만 속았지 떨어집니까. 미래가 떨어집니까.
모든 피조물도 있는 동시에 하나님도 계십니다. 조물주가 계시고. 제 마음대로 살 옛사람도 있지마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구속하신 새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한 마디로 해서 자기의 현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접촉하는 대로 그대로의 것이 자기 현실인데, 현실의 종이 되느냐 현실을 자기의 선물로 이용을 하느냐 여기서 결정을 지워야 됩니다.
이 전투가 없는 자에게는 믿을 수도 없습니다. 믿을 수도 없고, 바랄 수도 없고, 약속을 맺을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고, 일을 맡길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언제 무엇의 종이 될런지 모르니까. 이 현실의 종은 안 됐지마는 그 다음에 어떤 현실의 종이 될런지 모릅니다. 이 현실은 저를 종 삼지 않고 저를 도우니까 그렇지마는 아주 자기로 저불어 강한 전투를 해서 참 자기의 생명까지 내놓지 않으면 그 현실을 자기 이용물로 삼을 수가 없고 그 현실에 주격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강한 현실도 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아주 우리의 생애에 지침입니다. 가리킬 지(指)자 바늘 침(針)자 지남침. 우리 생애의 지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