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방편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30일 수새

 

본문 : 마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하면 성경은 깨닫지를 못합니다.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야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대구에서 집회한 후에 어떤 분이  편지를 했는데, 그분이 알고 싶기는 알고 싶은 분인데, 이 설교에 대해서 '배  타고 가는 것은 인간 방편이라고 하셨는데 배를 타고 가면 노를 것은 그거는  필연한 일이 아닙니까?' 배 타고 노 젓은 것은 필연한 일인데 그 노 젓은 것은  인간 방편이라 노를 젓지 안 해도 갈 수 있는데' 그렇게 설교를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좀 깨닫지 못하겠다고 그렇게 문의가 왔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답을 해  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은 다 갈릴리 바다 같은 이 세상을 통과해서 주님이 정해  주신 그 목적을 향하여 다 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신 이것이 그때의 형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요  역사적인 그런 사건이 있는 그런 사실이지만 요 역사 적인 요 사실은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 영원 전부터 그때에 제자들이 배타고 가게 되고,  바람이 일게 되고, 또 제자들이 무서워하게 되고,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게  되고 하는 것이 요것이 일 시에 돌발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계획하실 때에 영원 전에 요 사실이 안 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요 사실을  예정해 놓으시고 그대로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을  그때에 의외에 갑자기 그런 일이 닥켰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바로 깨달아지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예정을 믿지 안하면 어게 대해서 올바른 깨달음을 또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요 사실은 비유는 아니고 비유보다 고 형식적인 고 사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니까, 무슨 이적이 나타났든지 또 성경에 어떤  사건이 있든지 이라면 여기서 우리 구원 도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요  구원 도리를 바로 깨달아서 내가 구원의 그 이치를 써먹도록, 그 이치에 맞도록,  멸망받는 이치라면 그 이치를 피하도록 요렇게 하지 안하면 그 사람에게 이것이  복음이 되 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거쳐서 가는데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라.'  하는 이 목적을 정해 주심같이 우리들은 '세상을 건너서 세상을 건너서 무궁한  세계에 가라,' 주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거쳐서 무궁한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바다에 물에 빠지면 죽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도 이 세상에 빠지면 죽습니다. 익사가 됩니다. 빠지면 죽습니다. 물  위로 배로 타고 가든지 어짜든지 물 위에 물을 타고 밟고 가야 되지 물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을 발 아래 두고 세상에 떠서, 세상을 초월해서  살아야 되지 세상을 초월하지 못하고 세상에 빠져 살면 멸망 받는 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이런 형식으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배타고 건너 갈 때에 노를 저으면서 건너갔습니다. 노를 저은  것이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바다에 건너가면 배타고 노 저어서 건너가는  그것이 일반 방편이요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러 주시는 자연의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을 거쳐서 하늘나라를  갈라고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이 일에는 그들이 배타고 노 젓은 것처럼  우리 세상에 이런 직장 저런 직장, 또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써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배타고 노 저어 가는 것처럼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이런 직장 저런 직장, 이런 현실 저런 현실 따라 가지 현실을 타고 또  노를 저으면서, 현실을 타고 우리 마음과 우리의 몸으로써 이 세상 모든 생활을  하면서, 노를 저으면서 세상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이 갈릴리 바다를 거쳐서  주님이 가라고 목적하신 곳에 가는 것입니다.

 가는데, 왜 풍랑이 일었느냐? 처음에 갈 때는 풍랑이 안 일었는데 뒤에 풍랑이  일었습니다. 물론 풍랑이 이는 것이지만 여기에 풍랑은 다르다 그말이오. 여기에  풍랑은 우연히 일어난 풍랑이 아니고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  영원 전 예정하신 대로 풍랑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풍랑이 일어나다가  예수님이 배 위에 오르시니까 즉시 바람이 잔잔했습니다. 이것도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뭐이냐? 우리가 이 세상 여러 가지 현실이라는 모든  자기의 형편과 사정을 타고 거기에서 노를 것은 것처럼 우리는 이런 생활하고  저런 생활하고, 마음을 쓰고 몸을 써서 이렇게 활동을 해서 생활하는 그 생활을  통해 가지고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데 그 제자들이 이렇게 배타고 가면서 노를  젓고 이래 하다 보니까 그만 노 젓은 데로 자꾸 신경이기 울어져서 '노를 저어야  배는 간다. 또 노를 젓지 안하면 이 배는 주님이 명령하신 그 건너편에 갈 수  없다.' 건너편에 간다는 그 모든 주권이, 건너편에 건너간다는 주권이 노를 것은  데 있다고 노에게만 그만 전권을 맡겨 버리고 그리만 자꾸 옮겨졌던 것입니다.

 첫째 자기네들이 가질 것은,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시요 창  조주시요 주권자시요 대주재시기 때문에 이분이 건너편으로 가라 하시니 첫째  이분에게 주권을 맡겨서, 이분이 가라 했기 때문에 누가 못 가게 하며 바람 이  어떻게 못 가게하며 바다가 못 가게 하겠느냐? 이분이 가라고 하셨으니 만일  배가 없으면 우리가 물 위에 뛰어 내려도 건너편에 갈 수는 없다.

그러면, 물 건너편에 가게 되는 것이 주님이 가라고 하신 이명령 하신 주님에게  총 주권을 둬야 되는데 그 주권은 차차 차차 그만 희미해졌다 말이요. 희미해져  가지고 노를 젓은 데 거기에만 됐습니다.

 또 그들이 둘째로 알아야 될 것은. 주님이 건너편으로 가라 하셨으니 주님이  말씀해 놓고 안된 일이 하나도 없다. 없는 가운데 천지가 이루어 져라 하니까  이루어졌는데,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이 건너편에는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하고 건너편은 가게 된다. 주님이 가라 하시는 그 명령의, 말씀의 능력으로  가게 된다. 둘째로는 이 말씀의 절대성을 저들이 믿어야 될 터인데 그것을 그만  뺏겨 버렸습니다. 그걸 무엇 때문에 그게 희미해지게 됐느냐? 그거는 희미해지고  노를 저어서 간다는 이 노로 말미암아서만 간다는 이리 자꾸 마음이 기울어지다  보니까 하나님의, 주님의 권능도. 주님의 말씀의 그 절대성의 이루어지는 그  성취성도, 또 자기들의 '우리는 건너편으로 간다. 우리는 하늘나라로 간다.

우리는 하늘나라 구원을 이루어 간다. 주님이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말씀하셨고  우리의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 가고' 이런 것은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작정하시고, 명령하셨고, 또 당신의 능력이 이 일을 이루어 주신다.' 하는  요것을 견고히 잡고,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을 우리가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생활 저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해야 우리가 살고 그것을 해야 구원을 이루고 하는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렇게 하시기 때문에 주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주님의 명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데 주님의 권능과 명령을 이루시는 데는  우리에게 주신 이 자연의 법칙을 이것을 써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자연의 법칙을  쓰지 않는 것도 그것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 가 되고, 자연의 법칙에게 정권을  맡기는 그것도 또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가 되고,  그러면, 첫째 주님에게 권위를 두고. 둘째로 말씀에 권위를 두고, 셋째로  목적을 정했으니 이 목적에는 필연적으로 도달한다. 목적에 권위를 두 고, 이 세  가지에 절대 권위를 두고 이 권위가 나타나는 데에는 우리에게 이 자연을 주셨기  때문에 손을 움직여야 되고 발을 움직여야 되고 말을 해야 되고. 일을 해야 되고  하는 것이지 이 세 가지 하나님의 절 대 권위, 명령의 절대 권위, 또 하늘나라로  목적을 정해 주신 목적의 절대 권위 이 세 가지 권위는 이것은 우리에게 이런  직장이 있을 때 이런 직장을 통해서, 저런 사업을 통해서, 또 저런 현실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님이 이루어 가도록 하셨기 때문에 이 자연 법칙이라는  이것을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지. 자연 법칙은 이 세 가지 권위가 나타나기  위해서 이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지 이 사용하는 자연  법칙에 그것이 되고 안 되는 것이 있지 않다. 권위는. 자연 법칙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이 자연 법칭을 사용하는 것이지 자연 법칙을 사용치 아니함으로  안되는 게 아니고 되고 안 되는 것은 그분의 권위에 있기 때문에 그분이 하신 이  세 가지를 믿는 믿음으로 인한 그 권능이 와 가지고 이걸 해야 되지 그 권능을  잊어버리고 나니까, 그 세 가지를 잊어버리고 나니까 노는 열심히 젓고, 저들이  다 어부의 아들이요 어부의, 대대손손이 어부기 때문에 노 젓은 데에 얼마나  능숙하겠습니까? 노를 것고 이러니까, 바람이 이니 '바람 불 때는 이리 저어야  된다, 저리 저어야 된다.' 저거 노 젓은 수단 방법을 다 썼을 것이라 그말이오.

다 썼지만 배는 조금도 항해하지 않습니다. 딱 중단돼 가지고 저희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싸였다.

 요렇게 만드는 이것이 뭣 때문이냐?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연 법칙을  이와 같이 주셨지만 자연 법칙 그것에게 되고 안 되고 권위가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명령하신 그분의 권능과 주님이 목적해 주신 이  목적으로 정해 주신 이 목적에 권위가 있는 것이지. 이러니까, 순전히 주님과  말씀과, 주님과 진리에 권위가 있고, 그분이 목적을 정해 줬기 때문에 이래  이루어진다 하는 권위를 거기에 둬야 될 터인데 거기에 두지 안하고 자기네들이  이 배 부리는 거기다가 자꾸, 부리다 보니까 차차 차차 바람이 불수록 이 바람이  불수록 열심히 저어야 되겠고, 바람이 거슬리니까 또 수단 방법을 자꾸 써야  되겠고 그리 자꾸 기울어지다 보니까 주님의 권능도, 주의 말씀의 절대성도  주님이 정하신 목적에 대한 이 절대성도 이게 그만 희미해진다 말이오.

희미해지니까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희미해지니까 바람이 일어나고 배는 못  갑니다. 이러다가 주님이 오시니까 술술 갔다 그거요 그만 가 버렸어 바람  잔잔하고.

 이러니까, 성도들이 배 타고 노 젓는 거와같이. 노를 젓는 거와같이 이렇게  자기가 뭐 이런 것을 해야 된다는 거기에 주권을 두고. 그만 그거라야 되지,  '내가 예수 믿어 구원 얻을라면 돈벌이를 해야 밥을 먹지 이거 안 하면 밥 못  먹는다' 자꾸 밥 먹는 데에, 뭣 하는 데에 거기다가 총 주권을 기울여 가지고  '그것 아니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는 마찰이 많고, 방해가 많고 지장이 많고, 이 풍랑 때문에 못  가는 것 모양으로 안 된다.

 이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그 신앙생활 하는 것, 그 사람은 자기가 무슨 관직을  가졌으면서 '이 관직 이거 내가 안 하면 죽는다.' 이렇게 생각 하나, 너는  관직을 통해 가지고 그 일을, 신앙생활 해 가지고 구원 이루지만 다른 사람,  관직 말도 못 들은 사람도 저 농사를 지으면서도 이루어 갈 수도 있고 어부  노릇하면서 이루어 갈 수 있다. 이러니까 거기에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자연을. 너희에게 자연을 사용하게 하는 그것도 명령이기 때문에 네게 주신 그  자연, 네게 주신 현실을 네가 사용해서 하라는 것이지, 그 현실 그것에게 뭐,  그것을 네가 함으로 뭐이 된다는 그게 아니다. 이 권능에 있는 것이니까 다만  네가 어떤 현실을 하면서라도, 우리가 싸울 것은 뭐이 싸울 것이냐? 내가 지금  돈벌이를 하면서 돈벌이를 하니까 내가 밥을 먹고 지내나? 암만 쌀이 여러 수천  석이 내 앞에 있어도 쌀낟기 한 낟기도 못 먹게 하시면 못 먹는다. 또 내가  이것을 함으로써 무슨 가정이 유지돼 가느냐? 하나님께서 이 방편이 아니고 다른  방편으로도 먹여 줄 수 있다. 이러니까,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세상을  하늘나라를 향해서 걸어가는 것, 이 승리 생활을 하는 것,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 의의 생활을 하는 것 구원을 이루는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은 순전히 주님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과 주님이 우리에게 정해 주신 목적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의 것에  있다. 있는데, 다만 그것을 우리에게 자연 방법이라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 자연과 관계가 끊어져서 하나의 천사같이 돼 버리고 말고, 이 물질계  자연이라는 이 물질계 사용하는 것이 특권인데 천사는 영뿐이요 육이 없습니다.

육이 없소. 육이 없는데. 우리 사람은 영과 육이 지어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은 천사보다 위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특권인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말씀과 목적이라는 이 세 가지 권위에서만 이루어져 나가고 이 자연을  사용치 안하면 이 육체는 죽는다. 우리 육체는 필요 없는 사람이 돼 버려요.

이러니까, 육체가 필요 없는 사람되니 우리는 이 물질계를 자유로 활동할 수가  없는 사람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육이 죽어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육을 살려서 육도 구원해 가지고 육이 자연 만물을 모두 다 사용  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 고. 자연을 사용하고 또 영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다 이용해 가지고 그 은혜를 힘입어 가지고 살도록 요렇게 하나님이  하시기 위해 가지고 이 자연 방편을 주는 것이지, 그거는 우리가 사용할 것이지  그것에게 권위 있는 것은 아니다. 요것을 우리가 믿어서 무엇을 하든지 내  구원이 이루어져 가는 것, 내가 세상에서 사는 것 이것 저것 하는 것 이것은 이  피조물에게 있는 것 아니다. 피조물을 내가 접하지만 피조물에게 절대 권위가  없다. 피조물에게 절대성을 두면 하나님의 권능은 적이 돼 버리고 만다.

하나님에게만 절대 권위, 단독 권위, 그에게만 홀로 주권의 권위를 두고,  하나님이 이것을 선물로 주셨으니 이런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이용해  보는 것이지. 이것을, 이걸 가지고 시험해 보고 연습해 보고 이용해 보는 것이지  이게 하나도 없다 해도 된다.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게서  우리가 싸울 것이 뭐이냐? 노에게, 노를 젓는, 돛대를 젓는, 노를 젓는, 노에게  항해의 권위를 노를 것은 거기에 배를 타고 가고 안 가고 한다는. 배가 항해해서  이래 전진하는, 배가 항해하는 권위를 노에게 두느냐, 주님과 주의 말씀과  주님이 명령하신 목적을 정해 주신 이 목적에 두느냐? 이 셋에 두느냐 노와  저거들의 활동에 두느냐? 요 둘입니다. 노와 저희들이 열심히 젓은 저희들의  활동과 요 둘, 하나님의 명령인 진리와 보응과 하나님이 목적을 정해 주신 이  목적과 이 세 가지에 둬서 이 세 가지에 능력 있으니 이 세 가지 힘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데,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주신 자연 이것을 이용해서 이 세  가지를 이루라 했기 때문에 이걸 이루는 것이지. 이것은 다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것뿐이지 이거 없어도 된다.

 없어도 된다는 것이 당장 나타났습니다. 뭐이냐? 배도 없고 돛대도 없어도  예수님은 바다 위로 저벅저벅 걸어 왔습니다. 주님과 명령과 그 목적 이  있으니까 오라 하니까 베드로도 사람이지만 물 위로 처벅저벅 걸어가지  안했습니까? 여기에 권위를 두지 말고 이 셋에 권위를 두고 옮기지 말라는 것을  이것을 말씀하는 것인데 그분은 이걸 못 알아들었다 그말이오. 그래서 그걸 뭐  한 사람보고 내가 글을 써서 그렇게 보낼 수는 없고 간단하게 해서 자기가 와서  듣든지 해야 되지 아직 도에서 멀어요. 요새 모두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도에서 멀어.

 이러니까, 그 노에다가 우리가 권위를 두기 쉽다 이거요. 이 셋에 두지 안하고  노에다 두기 쉬워.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딴에는 '이 방편 없어서는 안 되는데'  그 방편 없는 사람도 구원 이루어 간다 그말이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 대장을 칠 때에 '나는 이 물매돌이 있으니까 물매돌  이것 가지고 지금, 지금' 만일 다윗이 '물매돌 있으니까 물매돌의 이 권위로  된다.' '하나님이 뭐 물매돌은 냅두고 막대기로 된다.' 이렇게 권위를 순전히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능력을 믿는 요  믿음을 가지고 그걸 던졌기 때문에 되는 것이지 그 돌이 힘 있는 것 아닙니다.

돌이 힘 있는 것 아니오. 그 다윗이 판개를 야나지게 때려서 그런 것 아닙니다.

다윗이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방편 줬기 때문에 이래 하나 거기다 권위를 두지  안하고 만군의 여호와에 그 권위를 두고 하니까 그 권위가 물매돌을 가지고 이래  하니까 골리앗 대장 머리에 탁 박혀 버렸지 그리 안 하면 안된다 그말이오.

골리앗 대장에, 만일 물매돌도 아무것도 없었다 말이오. 물매돌도 아무것도 없고  그 지팡이밖에 없으면 아무것도 없고 지팡이밖에 없었으면 이제 다윗이 '아,  이제 내가 이 지팡이로 가 가지고 두드려서 저놈을 죽여야 되겠다.' 이라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지팡이를 거머쥐고 이래 가면 그 사람들은 뭐 칼이고  이렇는데 아무것도 없이 지팡이 아닙니까? 오면 모가지 턱 쳐버리면 죽을  것인데,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지팡이를 가지고 갔으면 지팡이를  가지고 간 다윗을 치지 못한다 말이오. 지팡이를 가지고 오면 콱 밀어 버리면  그만 꺼꾸러져 죽을 것이라 그말이오. 또 그러면, 지팡이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네가 만군의 여호와를 욕하는 자이니 내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써 내가 너를 당장 직사하라고 내가 지금 명령한다. 골리앗 대장아  죽어라.' 했으면 즉시 죽는다 그말이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네가 하나님을  속이기 때문에 너거 남편 장사하고 들어오면 그 사람들이 오면 너를 장사할  것이다.' 하니까 손도 안 댔는데 삽비라가 그 자리 쪽 뻗어 죽어서 장사지내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다윗이 어디다가 중점을 두고 무슨 능력으로 했느냐?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되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못하면 자기가 무엇을 하다가 보면 그만  거기에다가 주권을 둬서 주권을 둬서, 직장 때문에 계명 어기게 되고 직장  때문에 하나님 배반하게 되고, 직장 거기서 제 지위와 권세와 명예와 구원이  뭣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여기서. 여기서 배를 타고 가는 사람이 그 제자들이  노 것은 데 중심 두니까 풍랑이 일어서 절단 났다 말이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주일날 신사참배 우상에게 절하러 가다가 뒈졌다.' 이  말 하는 소리 듣고 내가 깜짝 놀랬소. 그 주일날이라. '주일날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능 의지하면 범할 수가 있는가? 죽는 게 마땅하다' 이라는 사람을  봤다 말이오. 그 말이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는 바로 봤다 그거요. 가끔가다가  여기 몇 달 만에 옵니다. 몇 달 만에 오는데 그 사람 오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바보 같고 천치 같고 그렇습니다. 여기 보면, 그래. 그 사람이 지난 주일에도  '삼층에 가서 계시이소.' '나는 삼층에 가 못 있다. 거기 가면 오줌 다 다 싼다.

내려올 때 오줌 다 싸는데 내간 거기 가서 있을 수가 있나? 내가 거기 못 간다.

나 여기 좀 누워야 되겠다.' 손님도 있는데 '누워야 되겠다.' 이라니까 그  손님들은 지금 밥 먹을라고 이라는데 '나는 누워야 되겠다.' 인제 그때  ○장로님이 거기에 좀 있게 해서 그래 있는데 '누워야 되겠다. 그 여기 좀  누워야 되겠다.' 배짱이 있다 그말이오. 이라니까, '그라면 우리 방으로 좀  가십시오.' 이라니까 '그래? 너거 방으로 갈까?' 그라니까 그 사람들은 듣기에  '아마 친정아버지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아주 장로님인데.

하나님은 이래도 쓰고 저래도 쓴다 그말이오. 오면 밥을 잘해 드리라 합니다.

지난번에 생활비 없다 해서 이번에 돈을 삼만 원을 드리라고 이랬습니다.

 이랬는데, 그분이 있다가서, 어찌 얘기가 나오니까 '아 주일날, 예수 믿는  사람이 우상숭배하러 갔으니까 그거야 죽어야 마땅할 것 아니라? 계명 지켰으면  안 그렇지. 계명 지켰는데, 그날 갈 게 뭐 있는가? 주일날 예배당이나 가지.

예배당에 갔으면 뭣 때문에 죽어?' 그 말이 한 마디가 평생 밥을 먹여 살려도  남는다 그말이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아, 내가 모르는 것을 이분을 통해서  나를 깨우쳐 주신다.' 그말을 들었으면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금  깨닫겠소? 목숨이 끊어지는데 이어 주는 말 아니오?

 우리가 요 계시에서, 제자들이 그 권위를 주님이 '명령하신 주님은  하나님이시다. 창조주시다.' 주님의 권위를 믿고, 주님의 말씀이 우주가 엿새  동안에 있으라 하니까 다 있었는데, 말씀의 권위를 믿고 주님이 가라고 목적을  정했으니까 안 갈 수가 있나? 안 갈 수가 있나? 만일 배가 없으면 날아가도 갈  것이고 가만 있으면 뭐이 들어다 놔도 놓지 하나님 말씀은 말씀했는데 안  이루어지는 게 없다. 이래서, 위에서 우로가 내리면 땅을 적시고야 가지 땅을  적시지 안하고 가는 게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한 번 명령했으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말지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없다, 하는 이걸 우리가 믿어야  될 터인데 그거는 안 믿고 그만 노 젓는 데에 기울어지다 보니까 그거 저어야 뭘  일이 될 줄 알고 주권을 거기에다 옮겨 가지고 풍랑 만나고 낭파를 당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환난 만나고 일이 형통치도 안하고 죽자껏 골만 빠지지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 싸움은 우리가 이런 생활 저런 생활하든지 내가 사는 것도  주님에게, 먹는 것도 주님에게, 입는 것도 주님에게, 일이 성공되는 것도  주님에게, 구원 이루는 것도 주님에게 다 주님에게 있지, 주님에게 있는데.

주님이 나에게 이런 형편 사정 현실을 주시니까 이걸 내가 이용하는 것뿐이지  여기에 내가 목숨이 달리고 여기에 의식주가 달린 것 아니다. 하는 것을 주권을  그에게만 두고 해야 우리가 되는 요것을 우리가 가르쳐 주신 거라 말이오.

 '자 노를 안 저으면 되느냐? 그라면 배 안 타느냐?' 배가 없는데 '너 거  건너편으로 가라.' 할 때에 그때 배가 없다고 의심하는 자는 '배가없는 데 어찌  갈 수가 있습니까?' '가라' 이랬으면 '가라니까, 배 없다 해도 가라 하는 것  보니까 그냥 가라 하는구나.' 물로 첨벙 첨벙 건너갔으면 빠져 죽을까? 갔다  그말이오. 왜 홍해 바다에 건너가라 할 때 배가 하나도 없어도 가라 하는데 가라  하는데 가니까 됐느냐 그말이오? 이렇게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않고 이라기  때문에 실패된 것입니다. '아. 배 안 타고 노 안 젓고 어찌 갈 수 있겠는가? 갈  수가 없어? 와? 금방, 당장 그 자리에서 배 안 타고 노 안 젓고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 왔는데. '예수님이시니까 그렇지.' 예수님이시니까 그런가? 내나 배  안에 있던 베드로도 걸어가니까 됐더라 그말이오. 여기서 진리를 깨달아야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노와 배는 이 세상 자기 입장과 현실과 처지와 그 방편과 모든  그런 것인데 그것을 우리가, 그것을 잡고 노력함으로써 그것으로 가지고만  된다는 고게 국한시키지 말고 절대 권위는 주님과 주의 말씀과 주님이 정하신  목적에 거기에 있고, 거기에 있고 다만, 이것은 우리에게 주셔서 방편으로  쓴다는 것을 생각해서 이것은, 이것의 권위는 우리가 사용할 것뿐이고, 그거  있으니까 그것 사용하는 것이 명령 순종이요 또 저거 있으면 저거 사용하고 그것  없으면 또 그것 사용하고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면 또 무인도 거기에 가서 또 뭐  할 게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거기에다가 권위를 두지 말고 주님과 주의  말씀에 권위를 두기로 우리가 마음을 가지고 우리 현실 생활에 자꾸 요 싸움을  해요. 내가 요게 권위 두느냐 내가 주님의 명령과 주님과 주님 목적 정한 데  권위를 두느냐? 요 권위를 어디다가 두느냐 하는 요것을 싸우는 싸움이 우리  대내전이라 그말이오. 요 싸움이 싸워져야 모든 일이 형통해지지 요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벌써 저는 세상에서 암만 해 봤자 세상에 붙들려 가지고 칠십 년  팔십 년 살아도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합니다. 광야에서 죽은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다 썩어지고 말지 하늘나라로 옮겨 갈 것은 하나도 마련 못한다  그거요.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도 또 기도하러 가요. 어짜든지 기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기도  잊어버리면 죽습니다. 뭐 땅위에서, 오늘이라도 주님 구름 타고 와 보십시오.

어찌 되는고. 개인의 죽음이 언제 올지 압니까? 참 구원 준비 뒤로 두고 딴것 뭐  앞세우는 것 우리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짜든지 이 준비부터 하고 딴 거  하지 이 준비하는 그 생활 할 거뿐이오. 이 준비 하는 생활해도 밥 먹고 옷 입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이 준비 하는 생활 하면 더 잘돼요.

 산에 못 갈 사람은, 자기 기도 처소에 자지 못할 사람은 여기서 시간을 걸쳐서  착실히 기도하고 가고 또 그렇지 않을 사람 산으로 갈 사람은 산으로 가고  어짜든지 지금 기도에 분발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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